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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가 벌써 선거열기/내년 총선 유례없는 대혼전 예고

    내년 4월 치러질 17대 총선을 앞두고 표밭이 벌써부터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17대 총선은 유례없이 정당간,세대간,이념집단간 혼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한나라당·민주당 등 각 정당은 총선승리를 위한 내부개혁 논의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개별 의원들도 서둘러 표밭으로 달려가고 있다.일부 의원들은 설연휴가 끝나는 대로 때이른 총선체제를 가동할 태세다.386주자,소장개혁파 등 각종 연대도 집단세력화를 적극 모색중이다.정치권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국지적인 신호음도 속속 들려온다. ●한나라당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형성된 세대교체의 바람이 영남권에 불어닥치고 있다.현재 한나라당 영남권 의원들은 60대가 주축.63명의 의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36명이 60대다.40대 신진인사들은 전면적 물갈이를 외친다. 이 지역에선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인식되는 까닭에 그 어느 때보다 빨리,그리고 10대1 이상의 치열한 경쟁도 펼쳐지고 있다.특히 당개혁논의를 통해 상향식 공천제가 전격 도입될 경우,대대적인 물갈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는 한 소장파 당직자는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의 퇴진으로 1인 지배구조가 사라진 만큼 총선 득표력만이 공천의 제1조건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당 안팎에서 몰아치고 있는 세대교체의 거센 파고를 맞아 한나라당내 상당수 중진들이 17대 총선 불출마를 결심했다는 소리도 나돈다.한 당직자는 “마음을 접은 중진들은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물갈이’니 ‘청산론’이니 하는 말만은 자제해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 당개혁특위에서 지구당위원장들의 일괄사퇴 등 환골탈태 논의가 치열해지고 있다.특히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가 총선에서 승리한 정치세력이 총리를 맡는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 의지를 천명,긴장감도 높다. 총선 발걸음도 빨라졌다.한화갑(韓和甲) 대표가 일찌감치 총선출마 의지를 천명했다.김홍일(金弘一) 의원도 3선고지 도전의지를 확정,지역구행이 잦아진 것으로 알려졌다.상당수 호남출신 의원들도 공천단계부터 경쟁이 치열하고,‘공천=당선’이란 등식도 깨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판단,지구당상주 체제를 조기에 굳힐 태세다.서울지역 한 의원은 28일 보좌진에게 설연휴 뒤,곧바로 총선준비 체제를 가동토록 지시했다.조직을 정밀점검하고,의정보고회를 자주 가질 기세인 것이다.전국구 의원 상당수는 의원 탈당으로 궐위중인 지역구를 노린 탐색전이 분주하다.공천경쟁도 뜨거워 전북지역 한 지역구는 벌써 인지된 공천경쟁 주자만 38명이라고 한다. ●각종 연대 활발 민주당의 텃밭인 전북지역에 각종 연대 추진이 활발하다.전북지역에만 ‘전주포럼’‘신지식포럼’‘전북정치개혁포럼’ 등 연대모임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노 당선자의 386비서진들도 연대를 구축,역할 분담을 통해 최대한 총선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이들은 수도권 386그룹 중 뜻을 같이하는 인사들과 정당을 떠난 세력화를 통한 물갈이에도 함께 도전키 위해 공동전선을 구축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당내 연대 움직임도 활발하다.40대 원외인사 중심인 ‘통합개혁포럼’은 총선 공천에 공동보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반면 중진의원들도 기득권 보호를 위한 당 대표 밀어주기 등 공동전선을 펼 분위기다. 이춘규 진경호기자 taein@
  • 김민석 당분간 정치중단“印·네팔 돌며 마음정리 3월쯤 기지개 켤 생각”

    지난 대선과정에서 적잖은 정치적 타격을 입고 잠행을 계속하던 김민석(金民錫) 전 의원이 최근 인도 등지를 다녀왔다.그는 지난 14일 불교계의 몇몇 인사들과 함께 출국,열흘간 인도와 네팔의 불교성지를 둘러보고 불교지도자 달라이라마를 예방한 뒤 중국을 거쳐 23일 저녁 귀국했다. 김 전 의원은 2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선 이후 그동안 마음이 많이 정리됐고,지금은 심신이 편안한 상태”라며 “오는 3월쯤 기지개를 켤 생각”이라고 말했다.그는 이어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직후부터 구상한 일이 있다.”며 “당분간 정당활동이나 선거준비는 일절 하지 않고 이 일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년 17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이냐.”는 물음에는 “현재로서는 출마여부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 연말 대선때 민주당을 전격 탈당,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 진영에 합류해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김 전 의원은 이후 정 후보의 노무현 후보 지지철회 파동이 터지자 일체의 대외접촉을 끊은 채 잠행하며 정치적 재기를 모색해 왔다. 진경호기자 jade@
  • [열린세상]생살부, 왜 음모란 말인가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의 최측근 한명회가 죽여야 할 사람과 살려둬야 할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황보인,김종서 등 단종 보위세력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었다.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생살부’다. 그런데 그것이 현대에 들어와 선거 때만 되면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공천자와 낙천자를 가리는 명단을 담은 ‘괴문서’라는 이름으로 떠돌더니 언제부턴가 ‘생살부’도 아닌 ‘살생부’로 그 이름이 확정된 듯하다.예전에는 그 ‘괴문서’와 ‘살생부’가 어떤 방식으로 떠돌았는지 모르겠으나 이번에 정치권을 뒤집어놓고 있는 ‘민주당 살생부 소동’은 그 과정을 인터넷을 통해 지켜본 사람으로서 좀 어이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 기억으로 ‘제16대 대통령당선자 노무현 공식홈페이지 게시판’에 그런 얘기가 뜨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한달 전인,대통령선거 바로 다음날부터였다.그때쯤 하루 이삼천 건도 넘는 게시물이 올라오는 틈틈이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에 어느 의원이 열심히 뛰고 어느 의원이 자기당 후보를 흔들었는지 저마다 알고 있는 의원 정보를 바탕으로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철새 명단,후단협 명단,탈당후 복귀파 명단,고위 당직자이면서도 다른 당 후보에게 러브콜을 하거나 관망하던 자들의 명단 같은 것이 줄줄이 올라왔고,한 네티즌이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민주당 전체 의원의 성향을 가나다 순으로 정리해 올린 것이다. 그때 마침 게시판에 접속하여 그가 올린 명단을 보았을 때 내 생각 또한 ‘이 사람 이 분야에 대해 많이 알고 있구나.’하는 것보다는 ‘이제까지 올라온 자료들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잘 정리했구나.’하는 것이었다.아마 나 역시도 뒤늦게 그 명단만 보았다면 민주당 내부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올린 글로 알았을 것이다.글이 올라오자 한두 사람을 제외하곤 그 분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었다.그것이 바로 인터넷을 통해 드러난 선거 다음날 민주당에 대한 민심이었던 것이다. 당사자 입장에서야 ‘역적’이니 ‘역적중의 역적’이니 하는 분류가 기분나쁘기도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시대가 ‘공신’과 ‘역적’을 구분하여 생사를 여탈하는 왕조시대도아닌 다음에야 같은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끼리 선거 뒷얘기를 하는 마당이라면 비유적으로 아주 쓰지 못할 표현인 것도 아니었다.축구 빅게임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것도 아니고 어쩌다 실수로 공 한번 잘못 건드려 자살골이라도 넣게 되면 성난 팬들 입에서 그보다 더한 표현들도 숱하게 나오지 않았던가. 축구에서 그런 일이 있으면 그 선수는 그것이 단지 실수임에도 괴로워하고 반성한다.정치가 축구 같기만 하다면 그 일로 반성해야 할 쪽은 의도적으로 자기 진영을 향해 공을 몰 듯 자기 당 후보를 흔들거나 발목을 잡았던 민주당 내 인사들이지 그런 당의 후보를 위해 열심히 응원하고 지지한 뒤 그들의 행태를 비판한 유권자 쪽이 아닐 것이다. “저는 정말 고등학교 졸업하고 막노동하다가 군대갔다 와서 공장다니는 노동자입니다.사돈의 팔촌 눈 씻고 찾아봐도 정치하는 사람 아무도 없고,정치에 관련된 사람 또한 아무도 없는 나이 서른의 미혼 남성입니다.돈도 없고,빽도 없고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핸드폰도 없고,카드도 없고,차도없는 그런 놈이에요.” 이틀전 그 청년이 다시 올린 자신의 신상이다.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이 청년이 대체 무슨 정치적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며,또 무엇이 발본색원할 일이란 말인가? 이 청년을 고발하는 일로 지난 여름부터 겨울까지 민주당 의원 저마다에 대한 민의의 평가를 바꿀 수라도 있단 말인가.요즘 말끝마다 개혁 개혁 하는데,이것이 바로 민주당식 개혁인가. 인터넷 상에 한달 전에 있은 이 일을 이제와 정치권과 종이신문이 연일 이슈화하는 것이야말로 인터넷의 영향력을 무력화시키고,네티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정치권과 종이신문들의 또다른 음모가 아닌지 나는 그것이 오히려 의심스럽다. 이 순 원
  • [열린세상] 정부형태를 매년 바꾸면

    링컨이 각료회의를 소집한다.그러고는 주어진 의안에 대해 장시간의 토론 끝에 찬성하면 ‘가’,반대하면 ‘부’로 의사표시를 하라고 한다.전원이 ‘가’표를 던지고,오직 링컨 대통령 한 사람만이 ‘부’쪽에 선다.대통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 이어 그 의안을 즉각 부결로 최종 정리한다. 이 유명한 일화는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 2주년에 즈음한 방송인터뷰에서 이를 인용함으로써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심오한 이론도 풍부한 사례도 다 필요없다. 바로 이것이 대통령제의 어김없는 진면목이요,본질이기 때문이다.모든 결정의 권한 못지않게 뒤따르는 법적 정치적 책임도 오직 대통령만의 몫인 까닭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요컨대 대통령에게는 위임할 권한은 있어도 나누어 가질 권한은 없다는 점을 대부분 사람들은 알면서도 쉽게 잊거나 아예 모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노무현 당선자는 후보시절부터 ‘책임총리제’를 내세우며 총리의 권한 강화를 주장해왔다.그리고 지난 18일 KBS TV토론회에서는 선거운동중의 후보자가 아닌 취임을 앞둔 대통령으로서 ‘프랑스식 이원정부제’를 직접 언급하며 내년 총선 후 시행해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가령 정부형태의 특정한 요소나 현상이 닮았다고 하여 거기에 붙여진 이름처럼 이 땅에서도 기능할지는 미지수라고 본다.우리와 헌법체계가 다르고 헌법관습이 같지 아니하며,더구나 그것이 딛고 있는 정치문화는 더욱 딴판이기 때문이다.바로 엊그제까지도 경선불복,지지철회,후보반대탈당·재입당 등을 보며 ‘분권형’이든 ‘동거정부형’’이든 그 경우 요청될 관용,자제,협조의 기초조건을 과연 한 해 안에 우리가 때맞추어 갖출 수 있겠는가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차기 대통령의 구상대로라면 내달 말부터 1년 남짓은 ‘순수 대통령제’,그리고 자신이 개헌시한으로 잡은 2006년 말까지의 2년여 기간은 이른바 ‘분권형 대통령제’,또 그 뒤 개헌 여하에 따라서는 ‘의원내각제’ 혹은 ‘대통령제’로 간다는 것이다.헌정의 틀을 바꾸어서라도 지향하는 정치개혁목표를 반드시 이루어내겠다는 의지는 박수를 받아 마땅하며,더구나 이번 선거결과에 담긴 국민적명령이 아닐 수 없다.이때 정당개혁을 정치개혁의 출발점으로 잡겠다는 구상이 공염불로 끝난 지난 10년간의 양김정부와는 달리 이번에는 기필코 이루어져야 하겠다. 문제는 대통령제를 같은 헌법아래 ‘해마다 다르게’ 운용한다는 것이 초래할 혼란과 비효율성이 아닐 수 없다.지불할 그 정치적 경제적 비용은 엄청날 것이다.그 실현성 또한 더 두고 볼 일인 까닭에 전체적인 평가를 가늠하긴 어렵다고 본다.다만 각료 몇 명에 대한 제청권 실질화를 책임총리제로 부른다면 몰라도 불과 얼마전의 이른바 ‘공동정부’총리가 어떠하였는가는 기억에도 새롭다. 더구나 외교와 국방은 누가 맡고 경제와 행정은 누가 담당한다는 식의 정부제도는 소꿉장난의 경우는 몰라도 오늘의 현실 국가체제와 국가기능에,특히 압도하는 남북관계와 거대한 우리 경제규모에 비추어 일회용 실험에 그치지 않게끔 신중한 연구검토가 요청된다. 요컨대 정부형태의 변경이 모든 문제해결의 유일한 처방이 될 수 없음을 기억해야겠다.지난 55년의 우리헌정을 지배해온 정부형태의 선택논쟁 같은 후진정치의 선정주의가 이번으로 마감되기를 기대할 뿐이다.노무현정부의 정치개혁을 약속대로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정당제도와 선거제도의 대개혁이 요청되는바,그 제도적 접근으로서 중대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의 확대를 이미 내놓고 있다.물론 이의 법제화가 결코 쉬울 수 없으며 더구나 현재의 국회구성을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18일 차기대통령이 여야총무와 가진 3자회담은 실로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일 만하다.이를 계기로 고질적인 여야관계의 대치구도에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 권 영 설
  • 민주 ‘인터넷 살생부’ 괴담

    민주당이 당 개혁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당 안팎에 이른바 ‘살생부 괴담’이 퍼지고 있다.여기에는 지난 대선 기간중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를 ‘흔든’ 당내 인사 명단과 ‘수구’세력,당선에 기여한 ‘공신’들이 올라 있어 적지 않은 파문이 일고 있다. 괴담의 진원지는 노 당선자의 홈페이지 게시판.대선일을 전후해 올라오기 시작한 ‘살생부’ 관련 글은 지금까지 줄잡아 50여개에 이른다.대부분 장난삼아 올린 것이지만 A4용지 10여장 분량의,제법 그럴듯한 ‘살생부’도 올라 있다. 지금까지 올라온 살생부의 종류는 크게 3가지.지난달 30일 ‘임용관’이라는 네티즌이 ‘블랙리스트 100인 관련 글 바랍니다.’라는 글을 올린 데 이어 15일 퍼온글 형식으로 86인의 블랙리스트 인사와 단체명이 게재된 것으로 네티즌들이 직접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추가해 100명을 채우는 형식이다. 리스트에는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복당 의원,탈당·이적 의원들의 이름과 대선 기간의 행적이 간략하게 적혀 있으며,한나라당의원과 언론매체도 포함돼 있다. 지난달 31일 ‘빛이 되어’라는 네티즌이 올린 ‘민주당 살생부’는 민주당 의원들을 특1등·1등·2등·3등 공신,역적,역적 중의 역적 등 6단계로 나눠 분류하고 그 이유를 적고 있다.특히 역적 이하로 분류한 의원들 중에는 ‘퇴출 대상’ 또는 ‘반드시 몰아내야 함’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도 있다.지난달 25일 올라온 ‘2004년 총선퇴출자’ 명단은 ‘철새 정치인’ 100여명을 적시했다. 인터넷 살생부가 국회 의원회관과 당사 주변에 입 소문을 통해 퍼지면서 퇴출 대상으로 오른 당사자들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인터넷에 글을 올린 당사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 곧 정식 수사를 의뢰할 것으로 알려졌다.노 당선자측도 신경을 곤두세운 채 괜한 정치적 부담을 떠안지 않을까 예의주시했다.일부 글은 이날 오후 누군가에 의해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특히 글의 내용을 보면 각 의원의 입장과 처지를 잘 나타내 민주당 내부사정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 작성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살생부에 이름이 오른 A의원은 “중국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이 대자보를 활용하듯 지금은 당내 일부 세력들이 인터넷 게시판을 활용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B의원은 “살생부에 이름이 올랐다고 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확인해 보니 나쁜 평이 있지는 않았다.”고 안도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회계사 시험·수습제 개선안/회계사 수습기간 1년으로

    재정경제부는 2차시험에서 과목별로 일정점수(100점 만점에 60점)만 넘으면 모두 합격시키는 내용의 ‘공인회계사 시험·실무수습제도 개선방안’을 확정,관련법령 개정을 거쳐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개선안은 최종합격자가 적을 경우에 대비,최소 선발예정 인원의 일정 배수(예:10배)를 1차시험 합격자로 뽑아 성적순으로 보충하기로 했다.2차시험에서 일부 과목만 기준점수를 통과했을 때에는 2년간 해당과목은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된다. 또 회계학 및 세무관련과목(12학점),경영학(9학점),경제학(3학점)을 이수해야 응시할 수 있게 하는 등 응시자격을 대폭 강화했다.다만 경제학·경영학을 일정기준(예:24학점,B학점 이상) 이상 이수하면 해당과목 시험을 면제해준다.영어는 토익 등 공인능력시험으로 대체된다. 2∼3년이던 실무수습 기간은 수습기관에 상관없이 1년으로 줄어든다. 정부는 실무수습제도는 관련법이 개정된 다음해부터,시험제도는 3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07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한편 정부는 올해 공인회계사 선발인원을 지난해와 같은 수준인 1000명으로 결정하고,1차시험은 당초 예정일을 변경해 3월1일에 치르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시험을 2월16일 치르려 했으나 행정고시 날짜가 이 날로 확정되는 바람에 날짜를 바꿨다고 밝혔다.이에 따라 두 시험을 준비해온 수험생들은 ‘중복응시’가 가능해지게 됐다.금감원은 시험날짜를 15일 관보에 확정,게재할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시험을 주관하는 부처가 각기 달라 예정일이 가끔 겹치기도 하지만 관보 게재 전에 상호 조정한다.”면서 “일부 수험생들이 공인회계사 시험 예정일을 확정날짜로 오해해 혼돈을 겪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수험생들은 ‘중복응시 기회를 박탈당했다.’며 거세게 항의하는 소동을 빚었다. 주병철 안미현기자 bcjoo@
  • 한나라 ‘盧 좌파정권’ 규정 안팎/색깔론 다시 불 지피나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대표가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권으로 규정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서 대표는 8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개인적으로 김대중 정권은 중도좌파,노무현 정권은 좌파로 규정하고 싶다.”고 말했다.그는 “노 당선자는 한때 미군철수를 주장했고 ‘반미면 어떠냐.’고 했다.”면서 “북핵 시각 등을 봐서 친북정권으로 규정을 해주든 뭔가 새 정부의 정체성에 대해 언론과 정치권,지식인들이 활발히 논의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좌파정권’ 논란은 대선 전에도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가 제기한 적이 있다.그럼에도 또다시 ‘좌파정권’을 들고 나온 데는 나름의 배경이 있는 듯하다.새 정부 출범후 여야 관계를 개혁 대 보수가 아니라 좌·우익의 대립구도로 짜나가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대선 패배 후 한나라당은 당 개혁과 진로문제를 놓고 이념적 혼란을 겪고 있다.“민주당을 뛰어넘는 개혁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과 “보수다운 보수로 가야 한다.”는 엇갈린 목소리들이 난무한다.서 대표는 이에 “좌·우 논쟁이 더 유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보수’의 이미지가 과거지향적으로 각인됨에 따라 좌·우익 개념을 통해 한나라당의 이념적 외연을 넓히려는 포석인 셈이다. ‘국민속으로’ 등 당내 개혁파들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한 당직자는 “탈당설이 나도는 몇몇 개혁성향 의원들의 섣부른 행동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실제로 한나라당은 노 당선자와 친분이 있는 일부 수도권 의원과 과거 ‘한솥밥’을 먹었던 민주계 의원들 간의 접촉설에 긴장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국민속으로’의 주축멤버인 K,K,S,A 의원과 L 원외위원장이 지난 6일 탈당한 김원웅(金元雄) 의원의 주선으로 노 당선자와 만나 국민대통합과 향후 거취문제 등을 논의했다는 정보가 있다.”고 주장했다.그러나 거론된 의원들은 “시민단체 신년하례회 때 잠시 얼굴을 봤을 뿐 개별적으로 만난 적은 없다.”고 부인하며 되레 ‘음모설’을 제기했다. 민주당은 서 대표의 발언을 ‘대내용’으로 일축하고 있다.문석호(文錫鎬) 대변인은 “한나라당 내부갈등을 외부로 돌려 미봉하려는 정략적 발언”이라고 깎아내렸다.민주당의 대응 수위로 볼 때 좌파정권 발언이 당장 여야관계를 냉각시키지는 않을 듯하다. 반면 한나라당 내부적으로는 당장 문제가 될 모양이다. ‘국민속으로’의 간사 김홍신(金洪信) 의원은 “노 정권이 무슨 좌파냐.색깔 덮어씌우기를 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행태”라고 서 대표 발언에 발끈했다. 진경호기자 jade@
  •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여야대표 청와대회동 정례화 추진

    문희상(얼굴) 청와대비서실장 내정자는 8일 “현재와 같은 수석 제도를 두는 것은 옥상옥”이라면서 비서실 개편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소감은. 부덕하고 불민하지만 신명을 다 바쳐서 전력투구할 각오가 돼 있다. 대야관계에 있어서도 열심히 노력하겠다. ●비서실이 투톱 체제로 가는 것인가.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청와대의 고유 기능은 향후 5년간 정권의 마스터 플랜과 프로젝트를 점검·생산하는 것이다.정책기획수석실에서 행정수도 이전 문제나 동북아물류중심지 방안 등 큰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 ●총무,공보,정책총괄,통일외교안보,사정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의 수석은 없어지나.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다만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정팀을 만드는 것인가. 사정담당관을 둔다는 의미다. ●대야관계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정무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여소야대 상황인 만큼 미국처럼 수시로 여야 책임자가 대통령과 만나는 자리를 정례화하는 게 필요하다. ●김원기 고문과의 관계는. 그분의 자문기능은 강화될것이다. ●국민의 정부 초기부터 민주대연합에 대해 언급했는데. 시대적 상황이란 게 있다.당시 (동교동과 상도동 중심의)민주대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노 당선자도 비슷한 생각이었다.앞으로의 이야기는 말하기 어렵다. ●정치개혁에 대한 생각은. ‘낡은 정치청산’은 중요하다. ●의원직은 사퇴하나. 애초에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있었다.그러나 심사숙고가 필요하다.탈당만 하면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는... 문 비서실장내정자는 민주당 내에서 정국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력을 갖춘 몇 안 되는 인사로 통하는 재선 의원이다.노 당선자처럼 토론을 좋아한다.투박한 외모 때문에 ‘포청천’이라는 별명도 있고,‘겉은 장비지만 속은 조조’라고도 불린다.그러나 ‘직언’을 서슴지 않는 강골 기질이다. 노무현 당선자와는 후보 시절 대선기획단장을 맡으며 인연이 깊어졌고,당내기반이 약했던 노 당선자의 뿌리내리기와 당선을 위해 헌신했다.한화갑 대표와도 가까워 대선 직후 한 대표의 퇴진소동 때 거중조정을 했다.동교동계이면서도 통합민주당 이기택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아 마음고생이 심했었다. 98년 김대중 정부 첫 청와대 정무수석에 발탁됐으나 정계개편에 대한 내부이견으로 3개월여만에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옮기기도 했다.지난 80년 당시 야당이던 김 대통령 진영에 합류한 뒤 정권측의 거센 탄압을 받았으나 굽히지 않고 야당 외길을 걸었다.부인 김양수(金洋洙·57)씨와 1남2녀가 있다. 이두걸기자
  • 한나라 保·革대립 심화 조짐

    한나라당이 정치개혁 논의와 맞물려 이념별로 세력화하면서 보·혁 대립이 심화하고 있다. 지난 5일 진보성향 의원 10명이 ‘국민속으로’라는 모임을 결성,세력화에 나선 가운데 주말쯤엔 중도 성향의 원내외 인사 모임인 ‘통합개혁포럼’이 태동할 예정이다.6일 30명 안팎으로 1차 인선작업을 마친 통합포럼에는 비영남권 원외위원장과 부대변인급 당직자,당 외곽의 변호사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다.금주중 미래연대와 희망연대 등 초·재선 소장파 현역의원 5∼6명을 영입,이번 주중 창립대회를 가진 뒤 자체 개혁안을 제시하며 본격적인 세 확대에 나설 방침이다.한나라당 소장파가 진보 대 중도의 이념집단으로 양분될 가능성을 말해준다. 소장파들의 분화 움직임과 함께 중진과 소장파간 갈등도 첨예해지고 있다.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하순봉(河舜鳳) 최고위원은 “당을 파괴하거나 민주당과 개혁경쟁을 해선 안된다.”고 당내 소장파를 공개 비난했다.서청원(徐淸源) 대표도 “편가르기식 움직임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소장파의 세력화를 우려했다.그러자 미래연대측은 오후 성명을 통해 “당 혁신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분열과 갈등 조장행위로 몰아붙인 하순봉 최고위원의 발언이야말로 당을 파괴하고 분열시키는 것”이라며 정면 반박했다. 소장파간 세력화 경쟁과 중진·소장파간 대립은 개혁을 향한 갈등 외에 3월로 예상되는 당 지도체제 구성과 내년 총선을 겨냥,주도권 확보를 위한 힘겨루기 성격이 짙다.“소장파의 민정계 몰아내기가 시작됐다.”는 관측과 함께 결국엔 상당수 진보성향의 소장파가 탈당할 것이란 전망이 다소 성급하게 터져 나오면서 정면충돌의 긴장이 점차 한나라당내에 고조되고 있다. 진경호기자 jade@
  • 변혁조짐 신년정국 전망/개헌론, 정계개편 도화선 되나

    새해 벽두부터 정치권 일부에서 내각제 개헌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개헌론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나름대로 추진하고 있는 정치·정당 개혁과 맞물려 큰 틀의 정계개편에 도화선이 될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개헌 논란 개헌론 화두를 먼저 던진 이는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 총무다.이 총무는 지난 3일 당직자회의에서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권력구조와 원내정치 구현,지역화합을 위해 다음 임시국회에서 내각제 문제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을 꺼냈다.임시국회에서 공론화해서 제17대 총선에서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자는 주장이다.자민련은 즉각적인 지지를 표시했고,이인제(李仁濟) 총재권한대행은 “총선을 새 헌법으로 치르자.”며 한술 더 떴다.반면 민주당은 이미 노 당선자가 지난해 말 선대위당직자 연수에서 “국정운영 초반 정치개혁을 단행한 뒤 후반에 분권형 대통령제 등으로 개헌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최근 개헌론에 대해선 일체 언급을 피한 채 한나라당측의 의중을 살피고 있다. ●정계개편 가능성 정치권의 지각변동은 개헌론의 확산보다 현재로선 민주당과 한나라당 내부에서 일고 있는 정치개혁의 수위에 따라 발생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민주당은 6일 개혁특위 9인 운영소위 회의를 처음 가졌다.중앙당 축소 및 대의원 구조개편,중대선거구제 도입 등 민주당 특위에서 채택한 의제대로만 정당구조가 바뀐다면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제칠 것으로 보고 있다.인위적인 정개개편의 관행을 깨고 자연스럽게 정치권 판도를 바꾸겠다는 계산이다.운영소위와는 별개로 이날 열린 개혁파 모임엔 그동안 당쇄신 움직임에 소극적이던 중도 진영과 구주류 일부 인사들도 참석,힘이 실렸다.겉으론 당 안팎에서 개혁 논의가 활발해 보이지만 여전히 일부 의제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기득권을 지닌 현 지도부의 반발로 논의가 제대로 열매를 맺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나라당도 이날 당정치개혁특위를 열고 개헌을 포함한 20개 항목의 개혁안에 대해 논의에 착수했다.개혁과제를 민주당보다 선점하기 위해 현 지도부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틀을 짜고 특위를 가동했으나,문제는 소장파 의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점에 있다.소장파는 “대선 패배에 대한 문책 없는 개혁론의 방향이 의심스럽다.”는 입장인 것으로 풀이된다.따라서 당내 의견이 매끄럽게 조율되지 못하고 일부 의원의 탈당 등으로 이어진다면 예상밖으로 정계개편이 빨리 시작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경운기자 kkwoon@
  • 대한매일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경악의 얼굴-기형도론/이성혁

    1.기형도 시의 가상성 그의 죽음에서 벗어나 작품속 죽음 의미찾아 이 비평문은, 그러니까 기형도의 텍스트와 텍스트를 이어보고 만져보면서 이 가상적 구성물인 텍스트에 드러나 있는 것을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재구성(‘시인'의 세계관이나 무의식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닌-)하여 다시 텍스트를 짜내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우선 기형도 시의 ‘가상성'을 부각시키려 한다. 이는 기형도 자신도 원하는 것일 게다. 그의 친구인 원재길은, 별로 주목된 바 없는 글이라 생각되는 10여 년 전의 글에서, “창작자와 시적 자아를 동일시하는 심리주의 비평의 어떤 그릇된 접근 방식은 시인 자신으로부터 이미 거부당하고 있다.”(대화적 울음과 극적 울음)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위에서 거론한 비평가들이 조야한 심리주의 비평에 빠졌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시와 기형도의 의식의 동형관계에서 벗어나 시를 문학적 텍스트로서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원재길은 이미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기형도의 여러 시편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등장 인물과 간단한 사건과 시간에 순연하는 구성이 있는 극적인 구조를 취한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기형도 시가 하나의 독특한 가상적인 구성물임을 말하는 것과 다름 없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해 깊게 논의를 더 진전시키지 않았고, 그의 지적이 논자들에게도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다. 대개의 평문들에선 기형도 시의 등장 인물들-낯선 ‘그'로 자주 등장하는-은 대상화된 ‘나'로 취급되어 기형도의 자아를 반영하는 인물이 되어 버리곤 한다. 즉 기형도 시가 ‘극적 구조', 하나의 가상적 구성물임을 주목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1)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그 춥고 큰 방에서 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 부분 2)김은 중얼거린다, 누군가 나를 망가뜨렸으면 좋겠네, 그는 중얼거린다/나는 어디론가 나가게 될 것이다, 이 도시 어디서든/나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황할 것이다/그가 김을 바라본다. 김이 그를 바라본다/한번 꽂히면 김도, 어떤 생각도, 그도 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다/김은, 그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나는 블라인드를 튼튼히 내렸었다/또다시 어리석은 시간이 온다. 김은 갑자기 눈을 뜬다, 갑자기/그가 울음을 터뜨린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예정된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 정연한가/김은 얼굴이 이그러진다 - 부분 1)에 등장하는 서기나 ‘김'을 대상화된 기형도 자신으로 파악하는 것은 한편으론 옳고 한편으론 그르다. 옳다는 점은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는 나”라고 발언한 것과 같은 의미에서, 모든 허구적 인물들은 작가의 분신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시 같은 서정적 장르에서는 그 분신의 농도가 더 짙으리라. 하지만 그 등장 인물이 시인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파악은 그르다. 시에서도 소설과 마찬가지로, 그 등장 인물은 시 텍스트의 공간 내에서 자기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서정시의 ‘나'는 시인의 자아에서 벗어나게 된 텍스트 속의 ‘나'이다.시인의 자아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을 받은 ‘나'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서정시인일 것이다. 위의 시에서 서기는 시인의 대리일 뿐 아니라 카프카적 의미에서의 서기, 관료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무의미한 일에 탕진하고 있는 우리네 삶의 형식의 상징으로서의 서기이다. 유리창은 그 서기를 바라보고 있는 ‘나'와 서기를 갈라놓는다. 이 유리창 때문에 ‘나'는 울고 있는 서기에게 가서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줄 수 없다. 하지만 유리창 덕분으로 ‘혼자 울고' 있는 서기를 발견할 수 있다. 유리창은 타자와 소통할 수 없게 하는 칸막이면서도 또한 ‘혼자' 각각 서로를 바라보며 소통할 수 있게 한다. ‘나'와 ‘그'를 동일시하여 각자 홀로 있는 ‘나'와 ‘그'의 어긋나 있는 대위 구조를 보지 않는다면 이 시가 뿜어내고 있는 의미를 붙잡기 힘들다. 원재길의 ‘극적 구조'를 넓게 본다면 이 장면 역시 그 구조에 포함시킬 수 있으리라. 침묵의 극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1)의 서기의 울음을 조명하여 해명해주는 텍스트로 볼 수 있는 2) 역시, 독백의 극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그'와 ‘김'은 동일 인물의 분신들이다. 1)에서 시적 화자가 ‘나'라는 인물로 등장하는 것과 달리, 이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적 화자가 담론 배후에 있고 시 표면에 등장한 ‘나'가 독백하는 형식으로 ‘김'의 중얼거림이 나타나 있다. 홀로 있는 ‘김' 옆에서 ‘김'을 ‘바라보는' ‘그'는 사물화된 김의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김이라 할 수 있는데, 성으로만 표시되어 개성을 잃어버렸음을 표시하는 ‘김'보다 더 몰개성적인 무엇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김'이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그와 김, 그리고 흐물흐물한 대명사가 되어 버린 ‘나', 또 이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극적으로 어울리게 된다. 그런데 1)에서 서기의 울음을 볼 수 있는 순간은 바로 홀로 있음의 순간, 침묵의 순간이었다. 침묵이 깨지면, 이 순간은 깨지고 말 것이다. 세계를 토막내는 언어의 세계가 침묵할 때 순수한 존재 자체가 떠오르지 않겠는가. ‘두 시', 삶이 무의미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순간을 깨달을 때의 침묵의 시간, 그 직후터뜨리는 울음의 순간에 배치되는 사물과 인간을 이 시들은 포착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극적 구성은 플롯을 시에 도입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바로 이 순간에 배치된 장면을 응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그런데, 이 일상을 갑자기 전복시키는 시간이 정지된 순간은 기형도 시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동된다. 그는 (어느 푸른 저녁)의 시작 메모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끔씩 어떤 ‘순간들'을 만난다. 그 ‘순간들'은 아주 낯선 것들이고 그 ‘낯섬'은 아주 익숙한 것 들이다. 그것들은 대개 어떤 흐름의 불연속선들이 접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어느 방향으로 튕겨나갈지 모르는, 불안과 가능성의 세계가 그때 뛰어들어온다. 그 ‘순간들'은 위험하고 동시 에 위대하다. 위험하기 때문에 감각들의 심판을 받으며 위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며 이러한 불행한 쾌락 들이 끊임없이 시를 괴롭힌다. 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형식이 기형도의 가상적 구성물-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순간을 포착하여 보여준다. 그 순간은 시간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어떤 흐름의 불연속선들이 접하는 지점'이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말한다는 것은 어떤 연속선상을 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텅 빈 그 순간, 침묵의 순간을 말하기 위해선 우회로를 빙빙 돌아 그 순간을 간접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즉 가상적 공간, 더 나아가 환상적 공간을 구성하여 그 순간을 암시할 수밖에 없다.(어느 푸른 저녁)에서는 그 순간을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이라고 말한다. 이 저녁엔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에서 사람들은 “가벼운 구름같이/서로를 통과해”가는 순간이 온다. 이 환상적인 순간은 어떤 예감을 통해 감지하게 된다고 시적 화자는 말한다.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고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듯/그런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 속에서 진자는/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는/것은 무방하지 않은가/나는 그것을 본다/모랫더미 위에 몇몇 사내가/앉아 있다,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쓰다듬어본다/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그 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누군가 천천히 속삭인다, 여보게/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을 숨기고 있는가/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느낌은 구체적으로/언제나 뒤늦게 온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모든 움직임이 홀연히 정지”한 상태, 이 상태는 환상 속에서 구성될 수밖에 없다. 실제 상황의 묘사로는 이 상태를 그려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상태는 볼 수 없는, 예감으로서만 감지할 수 있는 상태이면서, 예감했다고 알아차린 순간 없어지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이미 늦은 것이다”라고 시는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이 순간은 그러니까 현실 묘사가 아니라 환상 속에서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 환상은 의미의 블랙 홀과 같은 상태다. “보이지 않은 숨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의미는 사라지고 언어도 사라진다. 시인은 또 “이 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순간은 역시 순간일 뿐이다. ‘검은 외투'-죽음의 외투-를 입은 사람들은 여전히,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순간을 애써 외면한다. 그리고 그들의 딱딱하고 무미한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본다”고 시인은 말한다.(여기서도 시적 화자는 보는 사람이며, 증언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블랙 홀과 같은 어떤 순간을 느낀 순간, 나에게 ‘그'가 다가온다. ‘그'는 ‘나'의 분신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동시에 메피스토펠레스적인 악마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악마는 말을 걸어온다. 그럼으로써 지금까지의 인생의 의미를 모두 무화시킨다.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가”라고 그 악마는 속삭인다.다시 말해 모든 것이 무의미의 검은 구멍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을 예감할 때 그 악마는 등장한다. 그리고 세상의 법칙, 아마도 죽음으로 가는 삶의 법칙을 가만히 상기시킨다. 기형도 자신이 말한 ‘가능성'과 ‘불안'은 그 ‘순간'이 이 악마적인 것의 출현을 가져오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악마적인 것이 죽음을 지시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시를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그리하여 새로운 삶,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주며 ‘위대'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의 지경에 다다른 이때 투명하고 푸른 공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감추어진 ‘둥글고 빈 통로'가 열린다. 그래서 악마적인 ‘그'가 말한 숨겨져 있는 ‘법칙'은 다만 죽음의 법칙만이 아니라 환상 속의 다른 통로를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형도 시의 환상은 양면적이다. 일상적 삶의 흐름 속에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채택되는 그의 환상은 우리의 삶을 무화시키는 블랙 홀의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다시 신비롭게감추어진 희망을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 시는 시의 탄생과 그 탄생이 가져오는 양면성에 대한 알레고리일지도 모른다. 2.기형도 시의 이중성 파우스트가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고 외치는 순간,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를 지옥으로 데려간다. 이때 아름다움의 순간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아름다움은 일상의 권태로운 세계를 무화시킨다. 인간은 권태의 세월보다 죽음을 무릅쓴 아름다움의 세계에 닿고자 하지 않겠는가?(그래서 아름다움은 치명적인 유혹이라 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아름다움은 죽음의 세계에 맞닿아 있으면서도, 일상적 삶이 도리어 죽음과 같은 삶이라는 것을 드러내어 삶을 희망하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파우스트의 드라마가 시작되는 것도 늙은 파우스트가 아름다움의 순간을 찾아 나서는 데서부터이다. 물론 그는 끊임없는 생성을 젊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순간이여 ‘멈추어라'라고 만약 자신이 말한다면 자신을 지옥에 데려가도 좋다고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말했다. 그러나 결국 파우스트는 자신이 매립제에건설한 도시(악마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가상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를 바라보며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는 죽음의 말을 토해내며 쓰러진다. 즉 파우스트가 산 젊음은 이 아름다운 가상에 대한 외침에 도착함으로써 끝난다. 그의 젊음과 행위는 결국 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었으며,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아름다움의 순간'이란 착지에서 그의 젊음과 힘은 지옥으로 넘겨진다./기형도 시가 포착하려던 그 “위험하고 동시에 위대하다”는 ‘순간'의 이중성도 아름다움에 대한 《파우스트》적 아이러니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형도의 시가 드러내는 아이러니는 순간이 가져오는 이 이중성에 대해 팽팽한 긴장을 풀지 않음으로써 이끌려 나온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시작 노트와 을 다시 상기해보자. ‘아주 낯선 것들'이면서 ‘아주 익숙한 것들'이라는, 순간들의 이중성에 대한 긴장을 시인은 계속 놓치지 않는다. 아니 순간들의 이중성의 포착은 이 대상에 대한 긴장에 찬 예민성의 끈을 풀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아주 낯선 것들로의 ‘둥글고 빈 통로'를 마련하는 어떤 순간은 우리가 언제나 부딪히는 일상에서의 어떤 순간이다. 그래서 ‘아주 익숙'하기도 하다. 그 순간이 벌려내는 환상은 우리 삶의 현장인 일상의 삶을 무화시키면서도 어떤 다른 세계로의 통로, 다른 삶의 세계를 열어 놓는다. 이 이중적인 통로의 발견을 기록하는 데서 기형도의 시는 드러나기 시작한다. 통로의 이중성은 ‘둥글고 빈'이라는 수식어에서 이미지화되어 있다. ‘둥근 것'은 아날로지의 세계를 상기시킨다. 아날로지는 모든 개체가 전체를 비추고 전체가 개체들을 끌어안는 조화의 세계 아닌가./그 세계는 둥글다. 하지만 또한 그것이 비어 있다는 진술에서 ‘둥근 것'의 아날로지 세계는 아이러니의 상태로 변화된다./‘둥글고 빈' 통로는 아름다움에로의 통로이기도 하지만 無에로의 통로이기도 하다. 이 둥글고 텅 빈 통로를 통과하여 다다른 어떤 다른 세계, 아름다움의 세계는 그래서 다음과 같이 공기 방울의 세계이다. 저녁 노을이 지면/神들의商店엔 하나둘 불이 켜지고/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城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누구나 寺院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한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신비로운 그 城///어느 골동품 商人이 그 숲을 찾아와/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성에 살고 있다///물론 그 작은 당나귀들 역시 - 성 안은 “아름답고/신비”한 세계이다. ‘시작 메모'에서 말한 ‘위대한 순간'이 형상화된 세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위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이 세계에도 해당된다. ‘존재'가 차안의 세계에만 해당된다는 개념이라면 말이다. 이 세계는 신들이 사는 세계이지 않은가. 이 세계는 신들과 농부들과 작은 당나귀는 이 성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어느 하나도 빠지면 성립되지 않는 세계이다. 즉 아날로지의 세계다.시인도 ‘역시' 작은 당나귀들도 평화로운 그 성에 농부들과 살고 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은 공기와 같은 세계라서 “구름 혹은/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다가갈 수 없다. 갑자기 시간이 멈추어지고 세계가 낯설어지며 감각이 착란될 때의 순간이 열어놓는 어떤 ‘푸른 저녁'같을 때, 사람들이 “가벼운 구름같이/서로를 통과해”갈 수 있었다. 이 ‘순간'에만 바로 ‘둥글고 텅 빈' 통로를 따라 이 성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성 안의 세계는 바로 그렇게 공기 방울, 구름이 된 사람들이 어우러져 이룬 세계이다. 그런데 이 공기 방울의 세계는 차안의 공간에 있진 않지만, 차안과 동떨어진 피안의 공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계는 차안의 공기 안에 있다. 우리가 언제나 대하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언뜻 벌려진 공기와 공기 사이의 블랙 홀을 공기가 되어 통과하면 만날 수 있는 세계이다.그러니까 이 성 안은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저 하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뒤-옆-앞에 있다. 그래서 이 세계에 들어가려는 골동품 상인-아마 차안의 세계의 속성인, 살해를 자행하는 폭력성을 보여주는 등장 인물이라 할-이 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가 보았자 헛수고가 될 수밖에 없다. 골동품 상인은 차안의 세계 뒤에 있는 세계를 알지 못한다. 그는 숲만 자르면 성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삼차원적 세계 인식에 머물러 있다. 그가 차안에서 아무리 폭력과 파괴를 행한다 해도 이 숲으로 된 성벽 안은 의연히 평화로운 마을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만큼 불안하다. 우리가 이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방도는 앞에서 보았듯이 기화되는 길밖에 없다. 통로가 ‘빈' 통로여서 들어가려는 이는 빈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루어진 공기 세계는 어떤 무게 있는 물질성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가볍게 둥둥 떠다닌다. 공중에 투사된 영상처럼 흩어졌다 모여지는 그런 세계다. 우리가 손으로 만질라치면 그 세계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버릴 것이다. 이 아날로지의 세계는 그래서 희망의 저편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희망은 품을 수 있으나 어느전도와 착란의 순간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다. 즉 우리가 사는 이 차안에선 이루어낼 수 없을 세계이다. 기형도가 희망에 대해 ‘어둡고 텅' 비어 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숲으로 된 성벽' 자체가 비어 있고, 그 비어있는 곳에 도달하고자 하는 희망도 빈 희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다시 돌아갈 수 없으리, 흘러간다/어디로 흘러가느냐,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희망을 포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리, 흘러간다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 - (植木祭) 중에서 기형도 시에서의 ‘죽음'은 시인의 우울한 세계관이나 유년의 기억 때문이라기보다는, 시적 화자가 희망의 포기와 선택을 통해 ‘각오'한 것이다./ 이 죽음의 각오는 ‘둥글고 빈 통로'에 들어갈 때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통로에 들어간다는 일은 다른 삶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의미와 죽음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앞에서 본 바 있었다. 통로 저 편에 있을 숲으로 된 성벽에 갈 수있으리란 희망은 절망으로 전화될 소지가 있었던 것이다. 둥글고 빈 통로를 걸어 도달할 수 있는 희망이란 빈 희망이기에 그러하기도 하고, 숲으로 된 성벽이 아름답다고 외친 순간 그 아름다움의 덧없음이 부각되면서 죽음이 드러나기 때문에, 즉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은 어두운 희망이라 말할 수 있기에 그러하기도 하다. 그 성벽은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착란과 환상을 통해 대기에 구멍이 나는 순간을 파악하려는 기형도 시는,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을 때의 죽음으로 가는 구멍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푸른 유리병' 같은 공기가 점차 탁해지면서 ‘안개'로 오염되기 시작한다.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 (안개) 중에서 푸른 대기 속의 둥글고 빈 통로는 ‘안개의 빈 구멍'으로 전화한다. 다른 삶으로 가는 ‘순간의 통로'가 안개에 의해 막혀버리고 순간이 가지는 죽음의 성질만이 드러난다. 이 순간은 안개로 뒤덮인 환상적인 마을을 구성함으로써 나타나고, 그 죽음의 성질은 다시 일상이란 것이 얼마나 죽은 상태와 같은가를 간접적으로 포착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차안의 세계에 대한 네거티브 필름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네거티브 필름 같은 가상적 세계는, 흐리멍덩한 색깔인 안개의 색깔로 대상의 윤곽만 드러내면서, 생명 없고 답답한 무엇으로 현상한다. 이 시를 더 읽어보자. 죽음의 공기인 ‘안개'의 빈 구멍은 사람들을 빨아들여 그 속에 가두어 놓는다. ‘이 읍' 사람들의 삶은 ‘쓸쓸한 가축들'처럼 무리지어 있지만, 안개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세계 앞에서 무력하고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들이다. 그 읍은 “몇 가지 사소한 사건”이 일어나는 곳인데, 그것은 “한 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하기도 하고, “방죽 위에 醉客 하나가 얼어 죽”지만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같은 시에서)하기도 하는 사건이다. 겁탈당한 여직공과 얼어죽은 취객은, 윤곽밖에 보이지 않는 이 읍 안 사람들에겐 파괴당한 삶을 흐릿하게 바라보고는 쓸쓸하게 고개를 숙여보게 하는 사건 정도의 의미만 가질 뿐이다. 그들 눈앞에서 타인들은 안개 속으로 ‘지워지고' 그들은 제각기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게 된다. 안개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 없게 만드는 세계의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또는 그렇게 변화 없이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미지화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변화 없는 지속이 기억의 지속을 가져오진 않는다. 그 반대이다. 이 읍에선,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이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나 버린다. 그러므로 이런 지속의 시간성은 텅 빈 시간성이다. 기억이 없이 사는 것은 텅 빈 삶이다. 그것은 현재와 과거와의 상호적인 울림이 없는 시간이고, 그래서 미래조차 가능하지 않은 시간이다. 왜냐하면 현재가 끊임없이 과거로 되어야만 미래가 있을 수 있어서, 과거가 존재하지 않으면 미래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개는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 존재이다. 움직이지 않는 존재는 죽은 존재이다. 죽은 존재인 안개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죽은 존재이다. 안개는 독과 같다. 그러나 그 읍 사람들은 안개를 마약처럼 마신다. 안개를 편하게 느낀다./ 안개가 끼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의 얼굴을 내보여야만 해서 “방죽 위의 얼굴들은 모두 낯설”어지고 “서로를 경계하며/바쁘게 지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읍은 ‘안개의 聖域'이 된다. 안개 속의 삶이 정상적인 삶이 된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게 되기도 한다. 이 세계 속에서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가”게 된다. 이 반어적 표현에는, 안개가 ‘무럭무럭' 키우는 아이들의 삶이란 그들 모두 검은 굴뚝과 폐수와 겁탈의 위험이 있는 공장으로 쓸쓸히 끌려가는 가축과 같은 삶임을 암시한다. 3.작품속 죽음의 포착 (안개)를 읽으면서, 시적 화자가 희망의 포기를 선택했을 때 기형도 시가 발 딛고 있던 ‘순간'은 무서운 죽음의 세계-안개로 뒤덮인 읍과 같은-를 입벌려 드러낸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죽음의 세계-지옥에서의 형벌-는 ‘느릿느릿 새어나'와 계속 ‘미친 듯이 흘러다'((안개)중에서)녀야 한다. 앞에서 본 (식목제)의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라는 구절에서와 같이 이 형벌은 정착이란 있을 수 없게 만든다. 기억도 없이, 미래도, 삶도 없이 흘러다녀야 한다. 오직 흘러다님의 지속만 있을 뿐이다. (안개) 속의 읍내 사람들은 명계(冥界)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아다니는 유령과 같은 존재였다. 삶을 잃어버린 이 유령의 떠돌아다니는 모습이 일군의 기형도 시의 한 주제를 이룬다. 내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러 가시라고/모든 길들이 흘러 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 (정거장에서의 충고) 중에서 기형도는 죽음을 무릅쓰고 희망을 포기했다. 그리하여 현실의 이면에 있는 죽음의 안개를 포착할 수 있었다. 이와 동일하게 안개에 중독된 유령들을 포착하기 위해선 희망을 억눌러야 한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육체를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들이 머무는 정거장으로 쓰려고 한다. 불안이 죽음을 예감할 때 느끼는 감정이라면, 불안을 머물게 한다는 말은 죽음들의 예감을 머물게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죽음들이 방문을 할 수 있도록 길이 자신에게 흘러들어 죽음이 그 길을 통해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길이 흘러드는 정거장으로 자신의 육체를 사용하려면 자신의 육체 자체가 걸어다녀야 한다. 길이 걸어올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길이 흘러 온다는 말은 자신이 걸어다니면서 만나는 길을 흡수한다는 말이다. 걸으면서 길을 흡수하고 흡수한 길을 통해 불안-유령을 만나고 그 유령의 세계를 구성하는 환상으로 시가 구성되게 된다. 이 유령과의 대면을 보여주는 대목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白夜)에선 “빛과 어둠을 분간할 수 없는/팡팡 빛나는 이 무서운 白夜” 속에서 “무슨 農具처럼 굽은 손가락들, 어디선가 빠뜨려버린/몇 병의 취기를 기억해내며” “천천히 걷고 있”는 한 사내를 보여준다. “휘적휘적 사내는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사내는 “문닫힌 商會 앞에서 마지막 담배와 헤어”진다. 그의 등에 “軍用 파커 속에서 칭얼거리는 어린 아들을 업은 채” 말이다. 담배 살 돈이 없을 이 사내는 아마 어린 아들과 함께 길에 쓰러져 쓸쓸히 얼어죽을 것이다. (가는 비 온다)에서는, 어느 가는 비 오는 날,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지 않는다는 시적 화자가 발길이 닿는 대로 걸으면서 전개하는 여러 상념들을 보여준다. 그 상념들은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나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면/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와 같은 죽음의 여러 모습이다. 주검을 직접 보여주는 시도 있다. 가령, “구름으로 가득찬 더러운 창문 밑에/한 사내가 쓰러져 있다, 마룻바닥 위에/그의 손은 장난감처럼 뒤집혀져 있다”((죽은 구름))와 같은 구절이 그것이다. 여기서 주검은 감정이 절제된 상태로 서늘하게 즉물화되어 있다. 시적 화자가 우울하게 가고 있는 거리엔 주검들과 죽음에 대한 상념을 유인하는 ‘낡은 간판'들이 널려 있으며 기후마저도 그러한 상념을 피워 올리게 한다. 그의 눈에 포착되는 사람들은 좀 있으면 죽을 운명이거나 죽어버린 이다. 또는 삶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들이다. 유령들이다. 이들은 회한과 외로움에 말라죽어 가는, 행복과 거리가 먼 이들이다. 플랫폼에서 본 청년들은 “톱밥같이 쓸쓸해 보이”고((鳥致院)), 어느 카페에서 본 사내는 “그것으로 탁자를 파내”면서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장밋빛 인생))라고 새겨 넣는다. 삶을 박탈당한 유령들의 포착은 시적 화자 자신이 유령처럼 ‘흘러다'니는 존재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가 포착하는 대상의 대부분인 흘러 다니는 사람들은 시적 화자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촉매로 작용하게 된다. 그 사람들의 삶이 시적 화자의 삶과 다름없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다시 시적 화자의 내면 독백은 떠도는 자의 내면을 드러내게 된다. 내린다, 진눈깨비, 놀랄 것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이런 귀가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 낸 추억들이 밟히고/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 (진눈깨비) 중에서 진눈깨비 뿌리던 날, 시적 화자는 그날도 역시 거리를 걷는다./ 거리에서 그는 ‘취한 사내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정거해 있는 ‘빈 트럭'도 본다. 그리고 ‘구두 밑창'으로 ‘추억들이 밟히'는 소리를 듣는다. ‘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밟히는 소리도 듣는다. 외로운 빈 트럭과 쓸쓸하게 쓰러지는 취한 사내들에 대한 묘사와 시적 화자의 어린 시절들을 불러오는 회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시적 화자가 주체가 되어 추억들을 불러온다기보다는 저 진눈깨비와 거리의 외롭고 쓸쓸한 모습이 기억들을 불러온다. 그 기억은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오”시기에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엄마걱정) 중에서)의 기억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가 거리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은 엄마가 없어 빈방에 혼자 훌쩍거린 기억을 감추고 있을 사람들이며, 역시 집에 들어가면(집이 있다면) 빈방에 홀로 앉아 있을 사람들일 게다. 죽어가는 이 유령들은 그런 기억을 깊이 품고 살아갈 것이며, 이는 다시 역으로 시적 화자 자신도 그 기억을 품고 쓸쓸히 죽어 가는 유령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그래서 ‘죽음'을 발견하는 ‘흘러 다니기'는 점점 시적 화자 자신 안의 죽음의 흔적을 찾는 여행이 되어버리게 된다. 시적 화자는 “곧 무너질 것만 그리워했”((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다고 말한다. 무너지는 것들이 결국 그의 삶이 되기 때문이다. 죽음을 증언하는 시적 화자 자신이 유령과 같이 떠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박힌, 길쭉하고 가늘은/자신의 다리를 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여행자) 중에서)라고 울부짖는 여행자와 같은, 떠돎을 그만둘 수 없는 유령이다. 환상적 공간의 열린 순간을 통해드러난 죽음의 세계, 그리고 그 안을 떠돌아다니는 유령적 삶의 포착은, 이렇게 자신도 유령이라고 인식하는, 안개의 구멍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도 안개에 중독되어 버렸다는 점을 인식하는 시적 화자의 등장을 통해 완성된다고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죽음의 공간은 더욱 전일화되고 가공할 것으로 드러낸다. 유령의 세계를 증언하는 자신도 유령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의 그 경악의 순간은, 바로 메두사가 페루세우스의 방패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을 때의 그 놀람과 두려움의 순간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기형도의 시는 바로 그 경악의 순간을 포착한 카르파치오의 (메두사)란 ‘그림'과 같은 것일 터, 시 텍스트는 그 경악의 순간 자체, 또는 그 순간의 재현이라기보다는 경악의 순간을 구성하여 현현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시-예술 텍스트가 구성되기 이전엔 그 경악의 순간을 우리는 ‘맞서게 되지' 못한다. 환상을 사용하여 순간을 포착하는 시-예술이 그 경악의 얼굴을 객관화할 때 비로소 경악의 순간은 우리 앞에 나타난다. (입 속의 검은 잎)은 바로 자신의 얼굴을 본 메두사가 경악하는 순간을 객관화하는 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그의 어린 아들은/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택시 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그 일이 터질지 모른다, 어디든지/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입 속의 검은 잎) 중에서 이 시에서 등장하는 진술과 사건들이 현실의 어떤 대응물을 지시한다고 본다면 곧바로 해석의 난점이 생길 것이다. 운전기사, 장례식, 망자의 혀, 없어진 사람들, 죽은 사람, 검은 잎,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나' 등, 이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이었다고 하더라도 이 시 텍스트 안에 배치되었을 땐 이 단어들은 그 대상들을 지시하지 않게 된다. 하나의 극적 공간 속으로 이 존재들은 새로 의미를 얻으며 움직인다. 이 움직임은 공포의 분위기에 맞추어진다. 어떤 가공할 권력에 의해 살육된 자들이라 상상할 수 있는 ‘무더기'의 실종된 자들-망자들-의 말하지 못하는 혀-잘린 혀일까?-는 유령처럼 이 세상을 돌아다닌다. 그 유령들은 벌써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린 사람들 몸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 혀들은 이제 ‘거리에 흘러넘'친다. 장례식은 살육당한 자들 중 한 명의 장례식일까? 그 죽은 이의 잘린 혀 역시 거리에 흘러 다닌다. 물론 그 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잘 들어보면 잘린 혀들이 내는어떤 철버덕거리는 소리, 성대가 잘려나간 채 바람만 빠지는 쇳소리를 내는, 꿈틀대는 소리들을, 원한들을, 슬픔들을, 저주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환청 속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의 혀가 ‘천천히 굳어'감을 자각한다. 그것은 시신을 실은 ‘백색의 차량 가득' 나부끼는 검은 잎 때문이다. 살육이 자행되는 세계에서 살해당한 자들의 유령이 검은 잎일까? 그 유령들-검은 잎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릴 때 혀는 굳어져오며, 이윽고 죽은 자의 혀가 된다. 그리하여 시는 죽은 자의 혀로 쓰여지게 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지옥에 가 있는 이들이 지옥에서 겪는 고통을 무당처럼 대신 말해주는 이가 된다. 정리하자면, 시적 화자가 온통 죽은 사람들의 세계에 와 있음을, 그리고 자신이 바로 그 세계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음을, 더 나아가 ‘죽은 사람'인 운전기사가 어딘가로 그를 데려가서 이 유령들이 시적 화자의 혀를 통해 죽음의 이 세계를 증언할 수 있도록 시적 화자에게 내리는 신들림을, 언제 살육될지 몰라 두려워하는(‘그 일이 언제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이의 음산한 어조로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아득한 공포의 순간/을 객관화시키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어떤 수수께끼를 동반한 순간적 전율을 느끼게 된다. 기형도의 시가 도달한 한 극점은 바로 여기다. 앞에서 보아온, 환상적 공간이 뚫어 놓은 순간의 구멍을 통해 나타나, 죽음을 퍼뜨리는 세계와 그 속에서 떠도는 유령들이, 이 시에선 하나의 전율케 하는 장면으로 종합되어 갑작스레, 충격적으로 우리에게 현현하기 때문이다. 이 경악의 세계는 물론 가상의 세계이고 현실 세계로 치환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형도 시의 세계가 현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향유 대상으로서의 단순한 가상과는 달리, 시어가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 뿜어내는(메두사를 본 메두사), 자기 파열이 가져오는 전율을 우리에게 이 가상 세계는 던져주는데, 그 객관화된 전율과 맞서는 독자는 충격 속에서 새로운 현실에 부딪히며 일상적 시간의 지속이 파열되는 ‘순간'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상적 순간의 충격 속에서 일상적 시간 안에 감추어진 안개와같은 죽음의 습기를 감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공포의 세계는 기형도 시가 열어 놓은 ‘순간의 통로'를 통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입 속의 검은 잎)의 세계는 그 반대 극점이라 할 수 있는 (숲으로 된 성벽)의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고 희망할 순 없을까. ‘순간의 통로'는 다시 저 유토피아적인 미의 세계로, 숲으로 된 아날로지의 세계, 공기 방울 같은 환상의 세계로 길을 열어 놓기도 하지 않았는가. 물론 아날로지의 세계가 급전하여 유령들의 세계, 경악의 세계가 현현하는 것을 우리는 앞에서 보아 왔다. 그러나 반대로, 경악의 세계가 급전하여 다시 저 아날로지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가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는가. 그리고 이 두 극점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경악의 세계는 다시 희미하게 ‘숲으로 된 성벽'으로 가는 길을 비출 수 있지 않을까. 유토피아적 세계는 부정성을 통해서만 희미하게 빛날 수 있다면 말이다./그렇다면 기형도의 시는 일상적 삶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부정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를 통해세계와의 화해의 열망을 담아 놓을 수 있는 용기도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를 보여주기 위해 두 세계의 연결 지점을 찾아내야 할 것이고, 이 작업은 상당한 분석과 해석을 요하는 일일 것이다. 글을 마치는 이 시점에서도 비평적 재구성은 완성되지 않았다. 아니 결코 완성될 수 없을 것이다. 여전히 기형도 시 텍스트는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며 몸을 벌리고 있다. (끝) ◆당선소감 영광이다.기쁘다.하지만 마음이 무거워진다.과연 좋은 글을 내가 계속 써나갈 수 있을지,두렵기조차 하다. 당선 통보를 받고 비평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좋은 비평을 하기 위해선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큰일이다. 지금은 문학의 정치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다.문학이 다시 정치에 복무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 아니라 문학 자체의 정치성에 대해서,그리고 더욱 정치성이 짙은 비평에 대해서. 선거 행위만이 정치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정치는 윤리의 문제로서 생각해야 한다. 또한 윤리가 단순한 도덕의 차원이 아니라면 삶에서의 권력과 활력 문제로서 윤리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문학은 권력 망을 드러내고,비판하며 그것에서 삶이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줄 수 있고,삶의 활력을 북돋을 수 있지 않은가.그렇다면 문학의 윤리-정치성은 더욱 증폭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학 그리고 비평이 정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새로운 인간 관계의 가능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나에게 사랑과 기쁨을 전해 준 사람들에게,그리고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도,빈 말이 아닌 ‘고맙습니다.’란 말을 전하고 싶다. 이성혁 ●약력 67년 서울생, 한국외국어대 일어과 동 대학원(국문학), 외대강사, 99년 ‘문학과 창작' 평론부문 신인상 수상 ◆심사평 김용하의 ‘미적인 것의 정치성과 정치적인 것의 윤리성’,오홍진의 ‘관념으로 빚은 소설의 성채’,이성혁의 ‘경악의 얼굴-기형도론’,이은식의 ‘사물과 하나가 되기까지의 여정’,장사흠의 ‘풍경의 미학과 권력의 탐색’이 주목을 받았다. ‘미적인 것…’은 미학적 범주들과 시적 언어 사이의 조응 양상을꼼꼼히 살핀 글이지만,미적 개념들을 상호 연관시켜 긴밀한 인테리어를 꾸미는 데는 실패하였다.‘관념으로…’는 짐승의 세계와 신성의 세계 사이에서 요동하는 정찬 소설의 권력의 역학을 집요하게 추적하였으나 스스로 논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말았다.‘사물과…’는 다양한 철학적 개념들을 갈아타며 정현종의 시적 여정을 차분히 밟아간 글이었으나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지는 못하였다. ‘풍경의 미학…’과 ‘경악의 얼굴…’이 마지막까지 남았는데,‘풍경의…’는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개진된 권력의 내면화와 그에 대한 문학적 응전의 과정을,핵심 의미체들을 길어내며 흥미진진하게 추적한 글이고,‘경악의…’는 시인의 심리학에 치중한 종래의 평문들을 단김에 뛰어넘어 극적 구성의 관점에서 기형도의 시 세계를 새롭게 조명한 글이다. 그러나‘풍경의…’는 기계적인 구성과 엉뚱한 결말이 글쓴이의 설익은 문학관을 엿보게 하였으며,‘경악의…’는 미학에서 사회학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지리멸렬해지더니 급기야 막다른 길로 뛰어들고 말아,심사자들을 경악케 하였다.하지만 패기만만한 도전과 그 패기가 창안해 낸 새로운 해석 세계는 썩 강렬한 인상을 남겨 마지막 선택의 근거가 되었다.이성혁씨의 당선을 축하하며 끈기 있게 정진하기를 당부한다. 정과리 김인환
  • 與野개혁위 출범부터 ‘氣싸움’

    ***한나라당 움직임 3일 한나라당 정치개혁특위의 첫 회의에서는 특위 운영방안부터 격론이 벌어졌다.회의의 공개여부,분과와 전체회의의 순서 등을 놓고 개혁·소장파와 보수·중진그룹의 의견이 엇갈렸다.미래연대 등 초·재선 의원들은 인터넷 생중계 등을 통해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것부터가 당이 국민들에게 다가서는 방법이라고 역설했다.안영근 의원은 “당의 관료주의적 밀실정치를 없애고 정치인 개개인이 발언에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이에 회의의 효율성과 발언의 제약을 들어 반대가 있었지만 홍사덕 위원장이 발언록의 실시간 인터넷 공개로 가닥을 잡았다. 회의진행 순서도 쟁점이 됐다.전용학,이방호 의원 등은 “패인은 충분히 알고 있다.”면서 “2월에 전당대회를 하려면 시간이 없다.”며 분과별 회의를 먼저 하자고 재촉했다.반면 김영선,허태열 의원 등은 “우선 대선 패인을 분석하고 이에 따라 개혁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맞섰다.김 의원은 “단순히 홍보 잘못이 아니고 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었다.”면서 “학자를 불러 강의도 듣고 공청회나 여론조사도 하자.”고 제안했다.결국 패인분석을 하는 쪽으로 안상수,안택수 의원이 중재를 했다.회의실 걸개의 ‘국민이 OK할 때까지 바꾸겠습니다.’란 구호가 지켜질지 주목되는 순간이다. 앞서 미래연대는 전날 모임을 갖고 전당대회를 3월로 미루고,그 전에 대의원 구조를 성별,연령별로 유권자 비율에 맞추자는 의견을 내기로 합의했으나 이날 논의하지는 못했다.심재철 의원은 “당내 개혁논의가 권력갈등으로 비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중앙당 축소와 최고위제 폐지 등 원내정당화 논의도 좀더 구체적 안을 갖춰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영남 중진을 중심으로 내각제 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하순봉 최고위원이 대선 직후 흘린 데 이어 이날 이규택 총무가 최고회의에서 제의까지 했다.이 총무는 “진정한 여·야 원내관계를 회복하고 지역화합을 이루려면 다음 임시국회 때 내각제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최병렬 의원도 이날 기자실로 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언급하는 등 개혁논의가 다각도로 진행되는 양상이다. 박정경기자 olive@kdaily.com ***민주당 움직임 민주당이 3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의 원만한 국정운영을 위한 전위대로서 거듭나기 위한 대대적 당개혁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대선서 승리하고,당의 지지율도 급상승중인 상황서 환골탈태를 시도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관심도 그만큼 높은 상태다. 민주당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당 개혁특위 첫 회의를 열어 운영소위원회를 구성,가동준비에 들어갔으나 상견례장에서부터 대선 승리가 ‘민주당의 승리냐,국민의 승리냐.’의 성격 규정 등을 둘러싸고 이견을 노정했다.개혁작업의 길이 험난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노 당선자의 취임(2월25일) 전에 획기적인 당개혁안을 만들기 위해서 활동에 들어간 개혁특위는 오는 7일 워크숍을 갖고 위원들간 의견을 교환하고 전국을 돌며 국민토론회를 열어 각계의 목소리를 청취할 예정이다. 김원기(金元基) 위원장은 “정당 지도부의 면모도 새롭게 바꿔야 하며 새롭고 젊은 네티즌을 정당조직에 자연스레 수용해 역량을 만드는전자 정당화도 특위가 할 일”이라고 강조,노풍(盧風)점화의 핵심역할을 했던 노사모 회원들의 민주당 공조직 흡수 방안이 적극 모색될 것임을 시사했다.간사로 선임된 천정배(千正培) 의원은 “위원들간에 위원회 운영과 당개혁에 임하는 자세 등을 놓고 여러가지 토론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김경재(金景梓) 의원은 “나는 회의에서 (개혁서명파 의원)23명의 민주당 해체 주장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면서 “시골에 가니까 분노하고 있더라.노 당선자가 무소속이었으면 그렇게 당선이 됐겠느냐는 얘기다.”고 분위기를 전해 개혁서명파와 선대위본부장 출신,구주류는 물론 일부 탈당검토파도 참여한 당개혁특위 활동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란 추측을 자아냈다. 실제로 특위에서는 당명개정 여부,임시전당대회 시기,대의원 교체,일부 국민참여 여부,그리고 지도체제 등 민감한 사안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특히 노 당선자를 총재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어떤 방향으로 정리될지도 관심사다.개혁국민정당과의 통합 논의가 공식화될 수도 있어 보인다. 이춘규기자 taein@
  • 동교동계 해체 지시 안팎/盧당선자 정치적 부담 덜어주기

    김대중 대통령이 2일 동교동계 해체를 지시한 데는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면서 자신 또한 일절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선언적 의미가 있다. 김 대통령은 민주당 총재직 사퇴(2001년 11월)-민주당 탈당(2002년 5월)에 이어 아직도 영향권 안에 있는 동교동계까지 정리함으로써 국내정치와의 연(緣)을 완전히 끊었다고 할 수 있다. 김 대통령은 지난 16대 대선이 끝난 이후 이같은 구상을 가다듬어 온 것으로 전해졌다.낡은 정치 청산과 함께 개혁을 기치로 내건 노 당선자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로 판단한 것이다.공교롭게도 노 당선자도 이날 민주당 신년하례식에서 ‘인적청산 반대’ 입장을 밝혀 사실상 두 사람간에 ‘정치적 인수인계’가 이뤄진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더욱이 두 사람이 직·간접적인 교감을 나눴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발언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이와 함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가 사실상 해체돼 있는 상태에서 30여년간 지속되어온 동교-상도동으로 대변되는 가신(家臣)정치의 퇴장을 알리는 조치다. 이에 앞서 김 대통령은 구랍 31일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방휴양지인 청남대로 불러 퇴임 후 국내정치에 일절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면서 대통령으로 상징돼온 동교동계라는 말이나 모임,이용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통령이 박 실장을 통해 자신과 40여년간 정치를 함께 한 동교동계의 해체를 언급한 것은 노 당선자가 추구하고 있는 새로운 정치질서 구축의 ‘물꼬’를 터주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시대의 출범에 앞서 새로운 정치질서 구축의 진통을 겪고 있는 민주당을 사실상 ‘백지상태'로 만들어 놓음으로써 새로운 정당으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배려하려는 뜻도 반영됐다는 분석이다.당권 경쟁 등에서 또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큰 동교동계 해체를 미리 지시함으로써 걸림돌을 제거해 준 셈이다. 박 실장도 이날 “민주당이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하고 당권 경쟁이 있을 텐데 그런 과정에서 (동교동계가) 거론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민주당 정치에 김 대통령을 이용하지 말아달라.”고 말해 ‘김심(金心)’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김 대통령이 동교동계 해체를 지시함으로써 동교동계 외곽조직인 ‘연청’도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정비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굄돌]올 최고 코미디언

    우연히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올해 최고의 코미디언이 누구인가를 두고 벌이는 설전을 듣게 되었다.코미디 연출가로서 솔깃하여 들어보니 후보들은 모두 의외의 인물들이었다. 운동권 스타로서 자신의 지지기반을 저버리고 월드컵 스타를 찾아간 젊은 전직 국회의원,또다시 경선에 불복해 탈당하면서 5년 전 불복을 굳이 사과한 중견 정치인,멋지게 후보 단일화해 놓고선 선거 몇시간 전에 어이없이 지지철회 선언을 한 어떤 이.이렇게 세 사람이 올해 최고의 코미디언 후보란다. 순간 이 사람들이 코미디를 너무 심하게 홀대하는군,하는 생각이 들었다.우리네 일상 생활 표현을 보면 코미디에 대한 은근한 폄하가 많다.똑같은 극적인 상황을 두고,한편의 드라마같다고 하면 칭찬이 되고,저거 코미디아냐? 하면 엄청난 비난이 된다.‘저 사람 드라마같이 산다.’고 하면 칭찬이 되고,‘저 인간은 생활이 코미디야.’하면 욕이 되는 것처럼…. 비록 코미디가 폄하되는 시대이긴 하지만,자신의 잇속만 챙기려는 정치인의 철새 행각을 코미디에 비교하는 건,코미디에 대한 명백한 모독이다.코미디언이란 스스로를 희생하여 사람들에게 유쾌한 웃음을 주는 고귀한 직업인데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올해 최고의 코미디언은 누구일까? 많은 희극인들이 사람들에게 즐거운 웃음을 선사했지만 나는 굳이 지난여름 타계하신 이주일 선생님을 올해 최고의 코미디언으로 꼽고 싶다. 현역 시절,‘못생겨서 죄송합니다.’란 말로 웃음을 선사해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남을 즐겁게 한다는 광대 본연의 자세에 충실하셨던 그분.살아 생전엔 웃음으로 삶의 활력소를 주고 노년에는 금연 캠페인으로 생명의 고귀함을 일깨워준 불세출의 희극인.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꼽는 올해 최고의 코미디언은 역시 이주일 선생님이다. 김민식 MBC PD
  • “권노갑 조만간 정계은퇴” “김홍일 의원직 사퇴안해”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26일 차기당권 포기 의사를 밝히며 구주류 퇴진의 물꼬를 튼 가운데 동교동계의 좌장격으로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나 지병을 치료중인 권노갑(權魯甲) 전 고문이 조만간 정계를 은퇴할 것으로 알려져 ‘구주류 퇴조 현상’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권 전 고문은 지난 5월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을 탈당하자 자신도 지난 7월 민주당 탈당의사를 피력했으나 아직까지 탈당은 실행하지 않았다. 그는 5월 MCI코리아 진승현씨에게서 금융감독원 수사무마 청탁과 함께 돈을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1년을 선고받은 뒤 8월 지병이 악화돼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풀려나 서울시내 한 병원에서 치료중이다. 권 전 고문측 한 인사는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돼 있지만 정권초기엔 면담하기 위해 줄을 섰던 사람들이 요즘엔 썰렁할 정도로 문병도안 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라면서 “바뀐 시대에 순응하기 위해 빠른 시기 안에 정치은퇴 의사를 밝힐 예정”이라고 전했다. 다른 측근은 “권 고문은 정치를 계속할 의사가 없다.”면서 “관련 재판과정이 끝나면 적절한 시기에 정계은퇴를 선언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여름 민주당 내홍과정과 최근 당 일각서 의원직 사퇴 압력을 받아온 김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金弘一) 의원은 이날 목포지구당 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하는 등 활동을 계속하면서 사퇴압력은 수용하지 않을 방침이라고지인이 밝혔다.김 의원은 당분간 외유계획도 없다고 측근은 전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인수위간사 인선 안팎/진보학자 주류 ‘개혁 줄달음’

    노무현 당선자가 새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을 잡을 인수위원회 간사진에 현실 정치인이 아닌 학계 인사들을 대거 발탁한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7개 분과위 간사·본부장 가운데 무려 6명이 소장파(40대 후반∼50대 초반) 현직 대학교수다.자연히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보다 참신하고 파격적인 정책을 입안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여기에 대다수가 진보성향의 학자로서,오랜 기간 노 당선자와 “나라를 이렇게 바꿨으면 좋겠다.”는 ‘꿈’을 교환해온 사람들이다.또 역대 정권에서는 미국 박사 출신이 중용된 데 반해,이번엔 미국 박사 3명과 유럽 박사 3명으로 균형을 맞춘 점도 주목할 만하다.유럽학파는 중도 진보적 색채가 강한편이다. 종합해보면 “노 당선자가 예상보다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 것”이란관측이 가능하다.물론 인수위가 학자들 일색으로 짜여졌다는 점에서,현실과너무 동떨어진 정책이 나올지 모른다는 걱정도 적지 않다.이에 대해 임채정인수위원장은 “지금껏 당선자의 정책에 깊이 관여,각종 성안을해왔던 인사들이라 문제없다.”고 일축했다. ◆기획조정분과위 이병완 간사-현 민주당 정책위 상임부의장으로,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과 정책위 부의장을 지내는 동안 임채정 위원장과 줄곧 호흡을 맞춰왔다. ◆정무분과위 김병준 간사-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로,노 당선자 자문교수단의‘좌장’격이다.93년 노 당선자가 만든 ‘지방자치경영연구원’의 이사장을맡으면서부터 핵심인맥으로 활동해왔다.지방자치,지방분권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이번 대선에서 ‘행정수도 이전’ 아이디어도 김 교수가 냈다고 한다. ◆외교통일안보분과위 윤영관 간사-서울대 교수로,세계화론자다.경선 전부터 노 당선자의 외교정책 초안을 마련하는 등 핵심 역할을 해왔다.2000년에 낸 저서 ‘21세기 한국 정치·경제 모델’은 노 당선자가 2∼3차례나 완독했을 정도다.책의 내용은 정치·재벌 등 한국 사회의 주요권력이 유착하면서 IMF가 초래됐다는 것이다.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미국에 인맥이 많다.한·미관계는 ‘상호협력적’으로,남북관계는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경제1분과위(재경·통상) 이정우 간사-경북대 교수로,국내 경제학계의 대표적인 ‘균형발전이론가’로 통한다.당연히 공평한 소득분배와 빈부격차 해소,저소득층 대책 등에 관심을 기울여왔다.노 당선자가 후보가 된 이후 당초 5%였던 성장공약을 7%로 상향조정하기도 했다.여성 노동력 활용도를 높이고,남북평화정착을 통해 동북아시대를 열면 2% 추가 성장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경제2분과위(건교·농림·정보통신) 김대환 간사-인하대 교수로 한국노총자문위원,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을 맡는 등 왕성한 ‘현실참여’로 널리 알려져 있다.재벌개혁에 대한 굳은 소신을 갖고 있다.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운동에 대한 글을 많이 써왔다. ◆사회문화여성 분과위 권기홍 간사-영남대 교수로 사회복지 균형발전과 장애인 복지에 특히 관심이 많다.대구 사회연구소 소장을 맡는 등 대구지역 시민단체의 리더 역할을 해왔다.소득 재분배와 노동자의 참여를 통한 산업민주화에 관한 글을 주로 써왔다. ◆국민참여센터 이종오 본부장- 계명대 교수로 한국사회의 개혁과 사회운동의 정치세력화 등에 관해 주로 글을 써왔다.민주당을 탈당해 국민통합21로간 신낙균 전 의원의 동생 신필균 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의 남편이다. 김상연기자 carlos@
  • 쇄신파“비대위에 지도부 배제” 당권파 “혁신·단결 같이 가는것”

    26일 천안 연수원에서 열린 한나라당 연찬회는 비상대책기구의 성격과 구성문제에 초점이 모아졌다.미래연대 등 쇄신파는 기존 지도부의 일괄 배제를전제로,당의 전권을 수임받는 비상기구를 제안했다.‘단결우선론자’들은 이를 ‘인적청산론’으로 받아들이며 혁신의 속도조절을 강조했다.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모두발언에서 “혁신과 단결이 따로 가는 것만은 아니다.”라면서 “나이든 사람 물러나게 하고 편을 가르는 듯한 오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미리 차단막을 치기도 했다. 다음은 자유토론 발언록. ◆권기술 의원-개혁을 명분으로 자리에 욕심내서는 안 된다.나이가 많다고물러나라고 하면 되나.사고가 젊고 깨끗해야지.제도 개선을 통해서 얼마든지 물러날 수 있다. ◆안상수 의원-당장 물러나는 게 좋다.비상대책기구에는 20∼30대 인구비율을 감안,초·재선을 절반 정도 넣자.부패청산위원회를 구성해 DJ정부 비리의혹도 철저히 조사하자. ◆원희룡 의원-대표 등 지도부가 즉각 사퇴하고 새 지도부 구성에 참여해서는 안된다.(이때 ‘개인의견인지,미래연대 의견인지 분명히 하라.’는 요구가 나옴) 미래연대의 결정사항이다.원내정당을 지향하고 정치개혁을 위한 민주당과의 협의체를 구성하자. ◆이해봉 의원-시민단체와 선관위 요구수준 이상으로 개혁하는 모습 보여주자.(인적청산은) 부정비리 등을 기준으로 해야지 나이로 해선 안 된다. ◆김홍신 의원-과거형 인물,이회창 후보의 옆에 있던 사람들,역사의 흐름을제대로 읽지 못한 사람들은 떠나라.저쪽은 민주당 간판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으로 대선을 치렀다.당이 깨져도 국민에게 이익이 된다면 깨질 필요도 있다. ◆권철현 의원-당개혁이 권력투쟁의 수단이나 특정인 청산의 수단이 돼서는안 된다.쇄신기구에는 의원 10명,원외 5명으로 하되 초·재선이 6명 들어가야 한다.40대 당수가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영국 노동당 중진들이 토니 블레어를 옹립,국민들의 찬사를 받았었다. ◆김용갑 의원-원내정당도 좋지만 한국정치의 현실에 맞아야 한다.민주당의좌파적 개혁에 따라가면 안 된다.사퇴한 최고위원은 즉각 복귀해 수습을 같이해야 한다.탈당 안 한다는 서약을 오늘 모두 하자. ◆이방호 의원-총선대비체제를 시급히 만들자.영·미제도를 무조건 추종하는 원내중심 정당은 재검토해야 하지만 중앙당 축소와 정치비용 감소는 필요하다. ◆박원홍 의원-탈당·해당행위 금지에 서약하자. ◆심재철 의원-선거 키워드는 변화였다.국민이 OK할 때까지 변해야 한다.중진들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박창달 의원-민주당의 인책론은 DJ세력에 대선책임을 묻는 것으로 우리당은 상황이 다르다.사퇴논의에 앞서 어떻게 개혁할지를 논의해야 한다.패인의 가장 큰 이유는 지역주의다. ◆김영춘 의원-질 수 없는 선거를 졌다.책임을 통감한다.한나라당은 혁명수준 아니고는 개혁하기 어렵다.대세론에 안주,그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지 않은 게 후회된다. ◆김형오 의원-경선때 인터넷 투표제를 도입하지 않고 인터넷 세대를 배제,이들을 무시하는 정당으로 낙인찍힌 게 패배의 한 원인이다. ◆심규철 의원-수도 이전 문제에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비용이 많이 드는 최고위원 경선은 폐지해야 한다. 천안 이지운 박정경기자jj@
  • 광역시도서 읍면동까지 대선표심 집중분석

    치열한 양자대결을 펼쳤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의 전국 3515개 읍·면·동 득표율 성적표는 과연 어떨까.그리고 각자의 최고 득표율 지역과 연고지역 득표율도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대한매일은 전국 읍·면·동 득표율을 정밀 분석해 화제가 될 만한 지역 중심으로 특집 기획을 했다. 서울지역에서는 노무현 당선자가 이회창 후보에게 동별 득표판세에서도판정승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1.서울-522개 洞중 396곳 판정승 서울지역 득표율에서도 51.0% 대 45.2%로 이 후보를 이긴 노 당선자는 서울 522개 동 가운데 396개 지역에서 승리를 거뒀다.반면 이 후보는 126개 동에서 우세를 보이는 데 그쳤다. 노 당선자는 주로 저소득계층이 밀집해 있는 성북구 월곡3·4동,종로구 창신2동,관악구 봉천8·10동,구로구 구로4동 등에서 가장 큰 격차로 이 후보를 이겼다.이에 비해 이 후보는 강남구 압구정1·2동,대치1·2동,송파구 잠실7동,서초구 반포본동 등 고액소득자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노 당선자를 여유있게 앞섰다. 전통적인 한나라당 강세지역인 강남·서초·송파구 가운데 일부 지역에서는 노당선자가 이 후보를 앞선 것으로 나왔다.노 당선자는 송파구 마천2동(20.9%포인트차),석촌동(18.24%포인트차)에서 이 후보를 앞섰고,강남구 수서동,일원1동,역삼1동,양재2동,서초구 방배1·2동 등에서도 많게는 8%포인트, 적게는 2%포인트 이상 이기는 예상외의 ‘성적’을 거뒀다.반대로 민주당 강세지역인 구로·강서구에서 이 후보가 선전한 곳도 나왔다.이 후보는 강서구 가양1동,발산1동,구로1동,신도림동,오류2동 등에서 노 당선자에게 2∼3%포인트차로 따라붙었다. 이 후보는 또 영등포구 여의도동과 종로구 평창동처럼 주변지역과 소득격차를 보이고 있는 지역에서도 단연 앞섰다.여의도동에서는 이 후보가 68.6%의득표율로 28.79%인 노 당선자를 39.8%포인트차로 앞섰고,평창동에선 61.9%의 득표율로 노 당선자(34.65%)를 27.3%포인트차로 따돌렸다. 홍원상기자 wshong@ 2.충청- 盧 434개 읍면동중 367곳서 승리 충청 지역에서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25만여표 이상 앞지르며 충남 홍성·예산과 충북 제천을 제외하고 모든 지역에서 우세를 보였다.특히 충청 지역 전체 434개 읍·면·동 중에서는 367개 지역에서 이 후보에게 승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 당선자가 이 후보를 가장 크게 이긴 곳은 충남 논산시 강경읍.이곳에서4237표(69.8%)를 얻어 이 후보의 득표율을 44.4%포인트나 앞질렀다.반면 이후보는 선영이 있는 지역인 충남 예산군 예산읍에서 1만 4878표(78.0%)를 득표,노 후보에게 59.3%포인트 차로 우위를 보였다. 또 노 당선자는 충북 청원군 강외면,충남 공주시 장기면,충남 천안시 쌍룡동,충남 아산시 배방면,충남 연기군 금남면 등 행정수도 이전 유력지로 손꼽히는 지역 대부분에서 높게는 30%포인트 이상의 차이로 이 후보에게 압승,민주당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충청 민심을 노 당선자 쪽으로 끌어오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 당선자는 대전 지역에서는 동구 판암2동에서 4361표(60.5%)를 득표,27.5%포인트 차로 이 후보를 앞지르는 등 대부분의 동에서우위를 확인했다.반면 이 후보는 서구 둔산1동에서 노 후보를 25.7%포인트 차로 이기는 등 5개의동에서만 우세를 보였다. 노 당선자는 충남북 지역에서도 강세를 이어갔다.특히 강경읍을 포함,성동면,채운면,연무읍,가야곡면 등에서 이 후보를 40%포인트 이상의 큰 표 차이로 이기는 등 최근 민주당을 탈당하고 자민련으로 옮겨간 이인제 대표 권한대행의 지역구인 논산에서 맹위를 떨쳤다.또 한나라당 신경식 대선기획단장과 심규철 의원의 소속 지역인 충북 청원과 보은,옥천의 모든 읍·면 지역에서 이 후보를 앞질러 눈길을 끌었다. 이두걸기자 douzirl@ 3.영남-李 통영 한산면서 83% 득표 영남 지역은 대체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과반 득표를 올린 가운데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의 지역구에서는 노 당선자의 득표율이 이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우선 부산은 동·서로 표심이 나뉘는 현상을 보였다.노 당선자의 옛 지역구인 강서구(33.9%)와 사상구(34.0%),북구(33.6%) 등 낙동강에 인접,공단이 발달한 서부 지역에서 노 당선자가 부산 지역 평균 29.6%보다 3∼4%포인트가량 높게 나왔다. 강서구 대저2동(36.4%),사상구 삼락동(39.1%)·덕포1동(39.4%),사하구 장림1동(36.7%),영도구 신선1동(35.1%) 등 8개 동에서는 35% 이상을 득표해 비교적 선전했다. 이 후보는 부산의 221개 동에서 모두 승리했다.특히 75% 이상의 득표율로크게 우세했던 동은 중구 부평동(75.7%)·광복동(78.9%),남포동(78.2%),수영구 남천2동(77.7%) 등으로 상가가 밀집한 도심 번화가들이었다. 울산은 정몽준 대표의 지역구인 동구에서 노 당선자가 47.6%를 얻어 이 후보의 36.2%보다 무려 11.4%포인트를 눌렀다. 동별로 살펴보면 화정동(46.3%),대송동(46.2%),전하1동(48.5%),남목2동(50.6%)) 등 동구의 9개 동과 북구 양정동(31.5%)에서만 노 당선자가 앞섰다.동구 일산동은 43.6%로 노 당선자가 선전했지만 이 후보(44.1%)에 뒤진 동구의 유일한 동이었다. 대구에서 노 당선자가 20% 이상을 득표,비교적 선전한 동은 동구 도평동(22.3%)·방촌동(21.0%),북구 무태조야동(20.7%) 등 모두 12개다.이 후보는 중구 대봉1동에서 83.1%로 이 후보의 전국 최고득표율을 기록하는 등 대구의 138개 동을 모두 석권했다.80% 이상으로 압도한 동도 중구 성내1동(82.6%)·대봉1동(83.1%),수성구 수성4가동(82.8%) 등 무려 34개나 됐다. 경남에서는 노 당선자가 고향인 김해시 진영읍에서 51.4%를 얻어 부산·경남(PK) 지역에서 유일하게 승리를 거뒀다.그밖의 김해시 16개 읍·면과 창원시 동읍(33.6%),대산면(33.0%),진해시 중앙동(35.7%)·웅동2동(34.7%),거제시 신현읍(33.4%)·마전동(34.8%)·능포동(30.5%)·아주동(35.9%)·옥포1동(32.8%)·옥포2동(33.9%) 등지에서도 노 당선자는 30% 이상을 득표했다.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향인 거제에서 선전한 게 눈길을 끌었다.이 후보는 통영시 한산면에서 83.1%로 노 당선자(9.8%)보다 73.3%포인트를 앞서 이 후보의 전국 최대 격차를 기록했다.경북에서 노 당선자가 평균(21.3%)보다 훨씬 높은30% 이상 득표한 지역은 영양군 수비면(31.1%),울진군 북면(36.0%)·서면(36.6%)·근남면(30.6%) 등 모두 4개였다. 박정경기자 4.호남-盧風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거세 노 당선자는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지역인 호남 지역에서 90%가 넘는 득표율을 얻는 등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노 당선자는 또 630개 읍·면·동에서도 이 후보에게 단 한 곳의 우위도 허용하지 않았다. 노 당선자는 전남 목포시 삼학동에서 96.91%의 전국 최고득표율을 얻으며이 후보를 95.12%포인트 차이로 눌러 가장 큰 지지율 격차를 보였다.반면 이 후보는 광양제철이 있어 외부 유입 인구가 많은 전남 광양시 금호동에서 26.3%를 얻었다.노 당선자와의 득표율 차이도 42.4%포인트로 호남지역 최저 격차였다. 노 당선자는 90%포인트 이상의 차이를 보인 전북 정읍시 북면과 남원시 금지면 두 곳을 제외하고 전북 지역에서 전체적으로 80%포인트 안팎의 우위를보였다.이 후보는 전북 무주군 무풍면에서 12.7%를 기록하는 등 6개 읍·면에서 두 자릿수 득표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노풍(盧風)’은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거세졌다.노 당선자는 광양시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광주·전남 지역에서 이 후보를 90%포인트 가까운 차이로앞지르는 등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노 당선자는 84.96%포인트 차로 이 후보를 누른 광주 동구 서남동 등 21개 동을 제외한 63개 동에서 이 후보와 90%포인트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김대중 대통령의 고향인 신안군 하의면에서는 91.76%의 득표율로 이 후보를 87.76%포인트 차로 앞섰다.목포시에서는 89.9%포인트 차이를 보인 북교동을 제외한 나머지 25개 동에서 90%포인트 이상의 차이로 이 후보를 제쳤다. 이두걸기자 5.세대별 득표율-20~30대 60%가 盧찍어 16대 대선에서 세대별 투표 성향은 선거전 여론조사 결과대로 40대를 중심으로 뚜렷이 양분된 것으로 드러났다.MBC와 코리아리서치센터(KRC)가 유권자 7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출구조사 결과 민주당 노무현 당선자는 20,30대유권자로부터 60% 가량의 높은 득표를 했으나,50대 이상 유권자들에게는 저조한 득표율을 보였다. 노 당선자의 득표율은 30대(59.3%)에서 가장 높았고,이어 20대 유권자(59.0%)에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20,30대 유권자 5명 가운데 3명은 노 당선자에게 투표한 것이다. 그러나50대와 60대 유권자들은 각각 57.9%와 63.5%가 한나라당 이회창 전 후보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드러나 세대별 격차를 실감하게 했다.40대에서는 노 당선자(48.1%)는 이 전 후보(47.9%)와 거의 엇비슷하게 표를 얻는 백중세를 보였다.이같은 청년층과 장년층 사이의 득표율 격차는 주로 서울,충청,영남 지역 유권자들의 세대간 대립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투표일 직전 동아일보와 KRC가 전국 유권자 2944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 결과,노 당선자의 지지율 격차는 서울,충청,영남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20대 유권자들의 노 당선자 지지율은 서울에서 55.7%,대전·충청권에서 56.7%,PK(부산·울산·경남)에서 44.1%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으나,이들 지역에서 50대 유권자들은 모두 30% 이하의 지지율을 보이며 노 당선자를외면했다.반면 호남지역과 TK(대구·경북)지역에서는 세대간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세대간 구별없이 노 당선자는 호남에서 우세,TK지역에서는 열세였다.이들 지역에서는 세대보다 지역이 지지 후보 결정에 큰 변수로 작용한 것으로풀이된다. 한편 출구조사 결과 20대 투표율은 40%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KBS와 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세대별 투표율은 20대가 47.5%,30대가 68.9%,40대가 85.8%,50대 이상이 81.0%로 각각 조사됐다.이번 선거에서 역대 대선 사상 최저투표율인 70.2%를 기록한 데에는 20대가 결정적인 역할을한 것으로 분석된다. 오석영기자 palbati@ 6.후보들 출생지 이번 대선에서 후보들은 출생지 읍·면·동에서 인근의 다른 지역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노무현 당선자는 태어나서 성장기를 보낸 경남 김해시 진영읍에서 51.4%를얻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44.5%보다 6.9%포인트 높은 득표를 올렸다.부산·경남 지역에서 유일하게 이 후보를 앞섰을 뿐 아니라 노 당선자의 전국득표율 48.9%보다도 높은 수치다.김해시 전체로는 노 당선자가 39.4%로 이후보의 55.9%에는 못 미쳤지만 노 당선자의 경남 평균 26.7%보다는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 후보는 선영이 있는 충남 예산군 신암면에서 69.0%를 얻어 노 당선자(26.0%)를 무려 43%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예산군 득표율도 70.7%(노 당선자 24.4%)로 이 후보의 충남 평균 40.6%를 훨씬 넘겼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유년기를 보낸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서 300표(8.1%)를 얻었고 산청군 전체로는 1306표(5.4%)를 획득,전국 득표율 3.9%보다높았다. 하나로국민연합 이한동 후보의 출생지인 경기 포천군 군내면에서는 이 후보가 130표(3.6%),포천군 전체로는 2752표(3.9%)를 얻어 전국 평균 0.3%를 10배가량 웃돌았다. 박정경기자 olive@
  • 2002대선 대해부/KSDC교수진 결산 좌담

    30년만에 양강 구도로 치러진 16대 대통령선거는 투표함을 열기 전까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승부였다. ‘노사모’를 축으로 한 변화와 개혁을 원하는 20∼30대 젊은층과 보수 성향의 50대 이상의 세대간 뚜렷한 격차를 보인 끝에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57만표,2.3%P 차이로 신승(辛勝)을 거두며 막을 내렸다.대한매일은 그동안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와 함께 8차례에 걸친 공동여론조사를 통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민심의 흐름과 대선의 향방을 읽어왔다.그 결과 노당선자의 근소한 우세와 73%의 최저 투표율을 점쳤고,결과도 비슷했다.대한매일은 20일 오전 편집국 회의실에서 정치팀 한종태 차장의 사회로 이남영숙명여대 교수(소장),김형준 부소장,안순철 단국대 교수,김도종 명지대 교수,김욱 배재대 교수 등 KSDC 교수진들과 선거 결과 분석 및 평가,새 정부의바람직한 인사정책,정치개혁 방안 등에 대해 짚어봤다. 1.여론조사 문제점 해결책은 ◆이남영-우리나라의 여론조사 시장은 과밀화돼 있는 탓에 경쟁이 치열하고,여론조사의 정확성이 외국에 비해 떨어진다.때문에 국민들에게 혼란만 가중시켜 여론조사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국민의 의사가 정치 과정에 정확히반영돼야 한다는 점에서 여론조사의 중요성은 높아진 반면,여전히 준비가 부족한 편이다.따라서 여론조사 기관이 영리뿐 아니라 국민 생활을 향상시켜주는 지침을 제공한다는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 ◆김형준-우리나라의 기존 여론조사는 특정 후보가 지지율을 몇 % 얻었느냐는 식의 경마식 여론조사에 매몰돼 있다.그러나 지지율의 성격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분석이 더 중요하다.여론조사의 역할은 유권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태도나 생각들을 잘 잡아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김욱-단순히 ‘누가 이길 것인가.’라는 것을 맞히는 여론조사라면 차라리 ‘정치 주식시장’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낫다.현행법상 선거기간동안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지 못하게 돼 있는데,정보의 자유로운 소통과 여론조사의 질적 향상을 위해 이 기간에도 발표토록 법개정이 필요하다. ◆김형준- 대한매일과 KSDC는 여론조사 내내 심층 분석에 중점을 뒀다.기존여론조사는 ‘20∼30대는 노무현 당선자를 지지하고,50대 이상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다.’는 식의 평면적 분석인 반면,우리는 후보의 자질,선호도,현 정부의 국정운영 평가 등 여러 변수들이 어떠한 경로로 유권자들의 선택에영향을 주는지 찾아 나섰다.이것이 심층 분석의 좋은 예다. ◆이남영-무응답층은 지난 97년 대선에 비해 많지 않았지만 그 구성에 있어은폐형 무응답층이 어느 후보에게 유리하게 잠재돼 있다는 식의 의견이 많았다.그러나 실제 현상은 달랐다.과거 군사독재 시절 개인 의사의 표출이 부자유스럽던 상황과는 달리 이제는 자신의 의견 표출이 자연스러워져서 무응답층과 응답층 사이의 괴리가 많이 사라졌다. ◆김형준- 무응답층은 크게 은폐형 부동층,순수 부동층,정치적 무관심층 등세가지다.기권 예상층인 무관심층을 뺀 나머지로 분석해 보니 은폐형 부동층이 모두 특정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2.투표성향.투표율 분석 ◆김도종-역대 대선 사상 최저 투표율이라고는 하지만 두 후보가 ‘모을 표’는 다 모은 것으로 보인다.유권자들 중 ‘반창비노(反昌非盧)’,‘반노비창(反盧非昌)’ 세력이 많은데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남영-동서로 크게 나뉘어지는 표쏠림 현상속에서도 노 당선자와 동질성이 별로 없는 충청권에서 노 후보를 지지하는 등 탈지역적 현상도 나타났다.지역감정 완화의 바람직한 조짐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김욱- 투표율이 감소추세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과거 동원형 투표가 아닌자발형 투표로 투표 형태가 바뀜에 따라 투표율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김도종-조직선거의 영향력이 지난번보다 급격히 감소한 것은 미디어의 영향력이 극대화된 결과라는 해석도 가능한 듯하다. ?김형준 이번 선거의 특징은 ‘동원형 공조직’이 아닌 ‘자발적 사조직’중심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재미있는 것은 모든 언론이 “투표율이 75% 이하로 낮으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고 했지만,실제로 투표율이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후보가 승리했다는 점이다.5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고르게 득표했으며또한 행정수도 이전 등 정책을 통한 지역연대의 성격을 띤 것도 독특했다. ◆이남영-수도권의 경우 한나라당의 공세와는 달리 행정수도 이전 공약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으며 노 당선자에게 많은 표를 줬다.이는 한나라당이 ‘수도권 집값 하락’ 네거티브 전략으로,수도권에서 전월세를 사는 50% 이상유권자들의 표를 발로 차버린 셈이었다.여기에 민주당의 국민경선제와 후보단일화 등이 노 후보의 당선에 일등공신이 되었다는 평가다. ◆김형준-한나라당은 과거지향적인 ‘회고적 투표’를 강요한 반면 민주당은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보였다.한나라당이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은 것이다. ◆김도종-한나라당은 또한 조직이 너무 방대해 전략의 발빠른 수정 등이 쉽지 않았다.큰 조직이 유리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김욱-여론주도층이 이동했다.과거 엘리트 계층이 여론을 주도했다면,이제는 ‘노사모’ 등 정치인 팬클럽이나 열성적인 온라인 네티즌 등이 새로운여론주도층으로 부상했다. 3.달라진 세대간 정치의식 ◆이남영-지난 월드컵 때 우리 젊은이들은 유례없는 자발적 참여를 보여줬다.이를 계기로 젊은이들은 나름의 자신감을 가지게 됐고,이는 대선에도 영향을 미쳤다.이번 선거는 노사모 등을 통해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첫정치적 사건이라고 보여진다.또 젊은이들이 진솔하고 젊은 이미지를 가진 노 당선자 쪽으로 대거 몰려들었다.노 당선자는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가 누리고 있던 월드컵 효과와 노사모라는 ‘여론 주도층 특공대’의 지원을 받았다.이러한 복합적 관계가 20∼30대와 50대 사이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김도종-최근 20년동안 정치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의 주도권은 젊은 세대가 가지고 있었지만 월드컵을 계기로 젊은 층이 정치 분야에도 자신감을 갖게 됐다.이들은 선거에서 노 당선자라는 매개 변수를 통해 정치 권력에까지영향을 미친 것이다. ◆김형준-세대·지역간 갈등은 다원적인 발전으로 바라볼 소지가 있다.우리사회는 지금 다원민주주의로 진입하는 단계다.이번 대선에서 노 당선자는 대북 포용정책,분배중심 정책,개혁적 입장을 취했던 반면 이 후보는 대북강경정책,성장중심 정책,보수적 입장을 취함으로써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식 구도를 보여줬다.이는 우리 사회가 다원적 사회로 돌입했음을 뜻한다.이런 의미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후보가 100만표 가까운 득표를 한 것은시사하는 점이 크다. ◆안순철-젊은 세대의 정치적 성향은 이번 선거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라 누적돼 왔다.실제로 지난 6·13 지방선거나 2000년 4·13 총선 때 이미 기성정치권에 대한 저항 움직임이 있었다.이번 대선에서는 이러한 여건 및 양강구도에서 뚜렷하게 부각된 것이다. ◆이남영-이번 대선의 투표 성향은 개혁적이었다.정당정치가 제대로 됐으면한나라당에도 젊은 사람이 많았을 것이고,젊은 층의 민주당 표쏠림도 현격하게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이번 대선에서 전라도,경상도의 젊은 층은 비슷한 투표 성향을 보여줬다. ◆안순철-우리 사회에는 일반적인 보수·진보의 개념이 정형화돼 있지 않았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이념적인 성향이 점차 두드러지는 추세다.앞으로는젊은 층에서도 분리가 될 것이다.이번 대선은 과도기상태에서 개혁을 바라는 젊은 층의 표쏠림 현상이다. 4.바람작한 인사정책 ◆김도종-인사탕평책은 당연하다.집권자에게 지역 안배문제는 상당히 곤혹스러울 것이다.하지만 인력풀이 너무 적다. ◆안순철- 물론 말로는 항상 탕평책 또는 지역안배라고 한다.하지만 단순한자리 배분의 문제가 아닌 만큼 말 만으로는 해결이 안된다.또한 인력풀이 적다보니 자격이 부족한 사람들이 발탁되는 경우가 있어 문제다. 미국은 모든 공직에 공개채용제도를 채택하고 있다.자신의 정체성에 맞는정부가 들어설 경우 지원하고 정부는 공정하게 심사·평가하여 채용한다.탕평책같은 제스처만 쓰지 말고 공개모집 제도 등 구체적인 제도의 틀을 만들길 바란다. ◆김형준-일정 비율의 쿼터는 반드시 필요하다.영남 출신의 노무현 당선자는 자칫 잘못하면 영호남 양쪽으로부터 공격받을 수 있다.권력의 중요한 포스트는 철저한 지역안배가 필요하다.대신 자격을 갖췄음을 검증하기 위해 인사청문회제도를 확대·강화해야 한다.또한 각계각층의 참여를 통해 요직의 기준을 명확히 정립해 거기에 맞춰 지역안배해야 할 것이다. ◆이남영-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동조하고,그 철학을 민생에 반영할 수 있는사람이 들어와야 한다.단순한 테크노크라트만 있으면 오히려 무책임할 수도있다.그동안 지역안배에 의해 장관 지낸 사람은 매우 많다.바로 위와 같은문제 때문이다.지역안배도 중요하지만 집권자와 동일한 국정철학을 소유한사람들에 대한 인사 역시 적절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안순철-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국정철학이 동일한 사람들이 그동안 요직을 맡아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했던 사례를 너무도 많이 봤다. ◆김욱-이미 존재하고 있는 지역·이념 구도를 깬다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는 것 같다.대통령제 책임정치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이남영 교수의 말처럼 철학과 정책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김형준-미국의 경우를 곧바로 적용하는 것은 다소 위험하다.미국은 제도와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우리는 정치시스템이 개인화돼 있고 미국은 구조화돼 있다.지역으로 분열됐다는 사실을 염두에둬야 한다.▲지역안배 ▲검증시스템 ▲국정철학 공유를 적절히 잘 써야 한다. 5.정치개혁 방향 ◆사회-민주당 재창당 등 정당개혁·정계개편이 예상되고 있는데. ◆김형준-현재와 같은 중앙당 시·도지부와 지구당위원장 중심의 정당 구조에서는 정당 개혁이 있을 수 없다.획기적인 정당 개혁을 위해서는 당 대표도 없이 원내총무만 있어야 한다.이때라야 국회의원의 자발성이 확대될 수 있다.또 중앙당의 슬림화가 필수적이다.중앙당 사무처 월급만 한달에 10억원이상 소요되는 구조에서 어떻게 정당 개혁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안순철-정치 개혁은 지구당 위원장을 없애고 대신 시·도 지부가 중앙당과의 매개 역할을 하는 식으로 돼야 한다.민주당이 야당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안을 내놓는다면 원내정당으로 가는 길이 그리 먼 것만은 아니다. ◆김형준-새 정부가 2004년 4월 총선에서 가장 신경 쓸 문제는 공천의 문제다.당원만의 경선으로 후보 뽑는 식으로는 언제나 지구당위원장이 당선될 수밖에 없다.때문에 정당 개혁은 공천 제도와의 관계에서 추진돼야 한다. ◆사회-노 당선자가 의원 빼오기는 안 한다고 천명했다. ◆이남영-노 당선자는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탈당한 의원을 수용해서는안 된다.한나라당 의원들이 탈당해도 갈 곳이 없게 만들어야 한다.이런 의식 가지고 야당과 적극적으로 대화,때로는 정책 공조도 할 수 있는 리더십을발휘해야 한다.그러면 야당도 여당도 살고,레임덕 현상도 늦출 수 있을 것이다. ◆안순철-노 당선자는 인위적인 정개 개편 욕심을 버려야 한다.그래야 한나라당에 초당적인 협력을 기대할 수 있다. ◆김욱-한나라당에 있으면서 성향이 안 맞는 사람은 민주당으로 가야 한다.김문수 이부영 의원 등 개혁 성향의 의원이 민주당으로 당적 옮기는 게 뭐가 이상한가.어정쩡한 동거보다는 서로 갈라지는 게 낫다. ◆이남영-지역구 주민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당적을 바꾼다면 국민들이 느낄 허망함과 정치 불신은 더욱 가중된다.노 당선자가 새 정치를 원한다면 ‘지역구 주민들의 허락을 맡고 와라.’는 식의 자신감이 필요하다. ◆김형준-역대 정부의 실패 원인은 도덕성 위기 때문이었다.정계 개편을 위해 한나라당으로부터 의원 빼오기를 하면 도덕성의 위기가 시작된다.새 정부는 인위적인 정개 개편을 안 하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줬을 때 1년 2개월뒤 총선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6.50대 대통령의 의미 ◆김형준-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집무 시간의 70%를 야당 의원 만나는 데 썼기 때문이다.성공한 대통령의 제 1조건은의회와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노 당선자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는데 타협은 바로 정보 공유를 뜻한다.이를 테면 국정원장이 야당대표에게 브리핑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게 필요하다. ◆이남영-50대 대통령은 세계적 흐름이다.노 당선자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50대 후진타오 총리로 세대교체에 성공했다.영국·러시아·일본 모두 마찬가지로 젊은 지도자를 선택해 새로운 발전을 기약하고 있다.우리의 지도자 역시,땀흘리고,고민하는 역동적인 지도자상으로 변화의 의미를 띠고 있다.내각도젊어지고,젊은 기운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 것으로기대된다.국가와 사회가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 ◆안순철-노 당선자의 통치환경은 아주 열악하다.이럴 때 자칫 인기영합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대통령의 자질과 보좌진의 기능이 분리돼야 한다.대통령은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거시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보좌진은 철저하고 명확한 분석 등 과학성·전문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두 가지가 유기적으로 얽혀야 한다. ◆김도종-50대라는 의미를 떠나 당선자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여기까지 오는데 크게 두 번의 위기가 있었다.두 번 모두 본인이 자초한 것이다.최고 통치자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는 국익에 직결됨을 인식해 지금 보다 더욱 돌출 행동을 조심하며 국정을 운영하기 바란다. ◆김욱-의원내각제,이원집정제 등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 장기적인 방안을 검토했으면 좋겠다.또 앞으로 국민경선 또는 상향식 공천을 정치개혁의화두로 삼아야 할 것이다.대한매일과 KSDC의 공동 여론조사에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이 북핵 문제보다 더욱 중요한 현안이라는 응답이 많이 나왔다.이는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원하는 욕구가 노 당선자가 표방했던 변화의 흐름과 맞아 떨어졌음을 감안해 향후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본다. ◆김형준-우리가 최근 대통령이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 여론조사를 했을 때응답자들은 개혁성과 도덕성을 가장 많이 지적했다.노 당선자는 이 두 축을중심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분명히 성공한 대통령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정리 박록삼 이두걸기자 youngtan@
  • 선택2002/鄭‘반란’진실 說… 說… 說…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MJ) 대표는 왜 갑자기 ‘노무현 지지’를 거두었을까.대선 투표일을 불과 몇시간 남겨 놓은 18일 밤,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긴박한 대선 현장의 한편에서 벌어진 이 ‘정몽준 파란’이 16대 대선의 최대 최후의 미스터리로 떠올랐다. 정 대표의 노 후보 지지 철회는 민주당뿐 아니라 통합21에도 메가톤급 충격이었다.당직자 누구도 예상치 못했고,이들 중 상당수는 19일까지도 극도의허탈감을 내보였다.이철(李哲) 특보 등 지구당위원장 20명이 반발하며 탈당했고,상당수 당직자들도 정치를 중단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서울 여의도 통합21 당사에는 정 대표를 비난하는 전화가 빗발쳤다.정 대표는 후유증을 몰랐을까.지지 철회가 대선에,노 후보에게,통합21에,그리고 자신에게 어떤결과로 이어질 것인지,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파란이 일기 직전인 18일 저녁 정 대표는 서울 명동과 종로에서 노 후보와 함께 유세를 벌였다.여기서 노 후보가 대북정책과 관련해 정 대표와 합의한 정책내용을 벗어난 주장을 했고,‘차차기대통령’ 관련 발언으로 정 대표의 심기를 건드렸다.주변에선 ‘모멸감’ 등의 용어로 정 대표 심경을 표현했다.그러나 이것이 전부일까. 정가 안팎에선 온갖 설들이 나돈다.우선 현대 일가와 재계의 압력설이다.노 후보가 집권했을 때의 불이익을 우려한 재계 유력인사들이 각종 경로로 끊임없이 정 대표에게 노 후보와의 절연을 요구했고,결국 정 대표가 노 후보의 ‘푸대접’을 빌미삼았다는 것이다. 후보단일화 여론조사에 여권 실세가 개입돼 있고,정 대표가 이런 ‘음모’를 뒤늦게 알고는 등을 돌렸다는 소문도 나돈다.18일 일부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노 후보를 제쳤다는 보고를 정 대표가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심지어 미국 압력설까지 제기된다.노 후보 당선을 원치 않는 미 행정부가 정 대표에게 모종의 압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그러나 측근들 얘기는 이와 동떨어져 있다.이달희(李達熙) 비서실장은 여론조사와 관련,“사흘 전부터 정 대표에게 여론조사 동향을 보고했는데,역전됐다는 조사결과는 나조차 들어보지 못했다.”고 일축했다.여론조사 전문가인김행(金杏) 대변인도 “그런 조사가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온 재계 압력설은 18일 밤 박태준(朴泰俊) 전 총리가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대표에게 정 대표의 지지 철회를 사전에 알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그러나 측근은 “뭘 어떻게 압력을 넣었을지는 모르나 MJ가 이에 굴복했다는 얘기는 너무도 MJ를 모르는 것”이라고 일축했다.다른 배경설에 대해서도 측근들은 “MJ를 지나치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로 부인했다. 측근들의 말을 종합하면 MJ의 행동은 최근 노 후보와의 관계에서 해답을 찾는 것이 보다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한 측근은 “노 후보측으로부터 2∼3일전부터 ‘이상신호’가 나타났다.”고 했다.그는 “노 후보가 최근 한 인터넷신문 회견에서 ‘공동정부 구성에 약속한 적 없다.’‘처음엔 선거공조에 생각이 없었다.’는 등 신뢰를 저버리는 듯한 발언을 했고,이에 MJ가 크게 상심했다.”고 말했다. 이상징후는 최근의 공동유세에서도 잇따랐다.측근들은 이구동성으로 노 후보의 태도 변화를 꼽았다.한 측근은 “지난 16일 유세에서부터 노 후보가 대북정책과 관련해 우리와 합의한 틀을 벗어난 발언들을 계속하기에 여러 경로를 통해 자제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측근은 “노 후보가 청중들에게 재벌개혁의 뜻을 밝히면서 곁에 선 정 대표에게 ‘도와줄거냐.’는 식으로 묻는 등 일방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MJ 주변에선 이밖에 사소한 의전문제를 비롯해 노 후보에 대한 크고 작은 불만들을 열거하기도 한다.18일 저녁 종로 유세에서 노 후보가 ‘차차기 대통령’을 언급하면서 추미애 정동영 의원 등을 거명한 것도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 측근은 “MJ는 이런저런 이상징후에도 불구하고 18일 명동 유세 직전 노 후보에게 ‘부부동반으로 자정까지 동대문,남대문 유세에 나서자.’고 제의했을 정도로 노 후보 당선에 의욕을 보였다.”며 “종로 유세에서의 노 후보 행동이 이런 노력들을 일거에 무위에 그치게 했다.”고 말했다.그는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노후보가 앞섰던 것이 화근인 것 같다.”고 했다.당선을 확신한 노 후보가 대선이 임박하자 정 대표를 가볍게 대하기 시작했고,결정적으로 대선 후 국정협력에 대한 묵시적 합의를 털어내려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 정 대표의 지지 철회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측근은 “정 대표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신의”라며 “최근 노 후보의 달라진 태도를 보고는 ‘합의를 지킬 뜻이 없는 것 같다.’고 판단했고,그런 바탕에서 결별을 결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정 대표는 18일 밤 종로의 음식점에서 당직자들의 의견을 들은 뒤 15분간 별실에서 혼자 고심하다 지지 철회를 결정했다고 한다.이후 음식점과 집에서 잇따라 폭음한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들 말은 결국 노 후보에 대한 불신감으로 귀결된다.한 당직자는 “하루만 참고 기다려 보자며 만류하는 목소리가 많았다.”며 “노 후보 당선이 유력한 마당에 정치적 이득만 생각했다면 국민적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결별을 결심했겠느냐.”고 반문했다.다른 측근은 “아침 자택을 방문했을 때 MJ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하더라.”면서 “현란한 정치꾼이 아니기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정치적 이해득실을 떠나 신뢰를 문제삼은 선택이라 해도 국민들과의 약속을 저버린 데 대한 비난은 정 대표가 감수해야 할 듯하다.나아가 정치적 입지와 이미지가 크게 타격을 입은 만큼 대선 이후 정국을 헤쳐가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당장 통합21 와해 전망까지 나돈다. 정 대표는 19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 칩거한 채 TV로 노 후보의 당선을 지켜봤다.투표에는 불참했다.김행 대변인은 “국민의 뜻으로 단일후보에 선출된노 후보가 당선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지지의사 철회에도 불구하고 정 대표도 같은 마음”이라고 밝혔다.노무현 당선자는 이날 밤 당선소감에서 정 대표와의 공조여부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진경호기자 j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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