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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민주화 등 대선공약·국정마무리 협조 요청 오갔을 듯

    경제민주화 등 대선공약·국정마무리 협조 요청 오갔을 듯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오찬을 겸한 단독 회동에서는 정국 현안을 둘러싼 심도 깊은 의견 교환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동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이뤄졌고 시기적으로 대선이 불과 3개월여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선거를 둘러싼 정치 현안이 주요 화제로 다뤄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쪽 모두 그러나 “두분만 나눈 얘기라 정치 현안 등이 논의됐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비공개로 정국현안 논의 했을 듯 일찌감치 여권의 대선 주자로 확정된 박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핵심 대선 공약에 대한 이 대통령의 협조를 요청했으며 대선 판세와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불거진 한·일 외교 갈등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을 것으로 예상된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수도권 지역에 대한 지지층 확보와 이재오, 정몽준 의원 등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과의 관계 개선 방안도 논의됐을 것으로 점쳐진다. 지난 4·11 총선을 앞두고 이 대통령과 친이(친이명박)계의 탈당설이 제기됐지만 결국 당내 갈등을 봉합한 것처럼 이번에도 당내 화합을 이루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범여권의 지지층 결집과 관련해 박 후보는 이 대통령과 이심전심으로 통했을 것”이라면서 “당내 비박 진영 인사들을 안고 가겠다는 이야기도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도 임기 말에 ‘내곡동 사저 특검’ 등 자신과 관련된 현안이 걸린 데다 집권 말기 국정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여당의 협조를 요청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새누리당은 현직 대통령의 선거 개입 논란을 의식해 관련 질문이 나올 수 있는 별도의 질의응답 시간을 갖지 않았다. 민주통합당은 이 대통령과 박 후보의 오찬 회동과 관련해 “특정 정당 대선 후보의 정책과 공약 사항을 들어주는 모양새로 대화가 오고 갔다.”며 선거 중립을 훼손한 자리라고 주장했다. ●공개된 이야기-朴 “특별 대책 요구” 이날 이상일 공동 대변인 브리핑에서는 ▲태풍 피해 대책 ▲성폭력 등 국민 안전 ▲민생 경제 등 민생 현안만이 나왔다. 박 후보가 대책 마련을 건의했고 이 대통령이 답하는 형식이었다. 역대 회동과는 다른 모습이어서 민생에 올인하는 박 후보의 이미지 극대화를 위해 양측이 조율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도 여당의 대선 후보로서 수권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민생 경제에 대해 유례없이 강한 어법을 사용했다. 특히 대선 공약인 ‘반값 등록금’과 ‘0~5세 영유아 보육수당 확대’에 대해서는 특별 대책이 필요하다고까지 말했다. 박 후보의 평소 화법과 그간의 청와대 회동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학생들의 어려움과 여성들이 자기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향후 정부와의 정책 공조가 쉽지 않음을 예고했다. 박 후보는 또 태풍 피해 대책과 관련, “기준 미달로 도움을 못 받는 사각지대가 많다.”면서 “농어촌이 하루빨리 일어서도록 대통령이 직접 챙겨 달라.”고 요청했고 이 대통령도 “사각지대의 농어민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챙기겠다.”고 답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Weekend inside]경선패배 5년만에 우뚝선 미래권력 朴, MB와의 결말은

    [Weekend inside]경선패배 5년만에 우뚝선 미래권력 朴, MB와의 결말은

    “경선패배를 인정합니다. 오늘부터 당원의 본분으로 돌아가서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 백의종군하겠습니다.” 2007년 8월 20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 대통령 후보경선에서 패배한 박근혜 후보는 결과에 승복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박 후보는 이명박 후보(8만 1084표, 49.56%)에 2452표 뒤진 7만 8632표(48.06%)를 얻었다. 지지율 격차는 불과 1.5% 포인트였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5년 뒤인 지난 20일 박 후보는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여권의 역대 대선 경선 사상 최고인 8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5년의 와신상담 끝에 여당 대선 후보의 자리에 오른 박 후보는 이명박 대통령과 오는 12월 19일 대통령선거일까지 4개월 동안 불안한 ‘정치적 동거’를 시작하게 됐다. ●5년마다 대통령 vs 與대선후보 권력충돌 지난 5년간 18대 총선공천(2008년), 세종시 수정안(2010년),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2011년) 등 현안마다 사사건건 부딪쳤던 두 사람이 ‘대선’이라는 최대의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조용한 동거’를 지속할 것 같지는 않다. 흔히 애증(愛憎) 관계로 표현되는, 현재권력인 대통령과 미래권력인 여권 대선주자의 갈등은 역대 정치사를 봐도 거의 예외 없이 반복됐다. 2인자인 여권의 대선후보는 현직 대통령을 밟고 지나가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며 충돌했고, 결국 상당수는 끝도 좋지 못했다. 1987년 이후 한국의 대통령들은 미래권력과 갈등을 빚다 예외없이 탈당하는 전례도 남겼다. 1992년 노태우 전 대통령은 당시 민자당 대선후보였던 김영삼(YS) 후보와 갈등을 빚다 대선을 3개월 앞두고 탈당했다. 관권선거 의혹과 노 전 대통령의 사돈인 SK그룹에 대한 특혜 의혹 등이 갈등의 원인이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의 갈등은 미래권력과 현재권력이 정면충돌한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YS는 1993년 2월 ‘대쪽 법조인’ 이회창을 감사원장에 임명한다. 같은 해 12월에는 국무총리로 중용했다. 그러나 이 후보는 헌법상 보장된 총리의 권한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마찰을 빚다가 취임 4개월 만에 물러난다. 이 후보가 여권의 대선후보가 되자 YS는 “깜짝놀랄 만한 젊은 후보(이인제)를 내세우겠다.”며 이 후보를 압박했다. 그러자 발끈한 이 후보는 3김(金) 정치 청산을 요구했고, 급기야 YS의 인형을 불태우는 화형식까지 벌인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이 야당인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수사를 중단하자 이 후보는 김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했고, 결국 YS는 대선을 한달 남긴 1997년 11월 탈당했다. 2007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경선을 끝까지 완주했던 정 후보를 각별히 챙겼다. 대선 전 마지막 유세에서는 “차기에는 정동영도 있다.”고 까지 말할 정도로 신뢰가 깊었다. 열린우리당 창당 후 정 후보는 초대 당의장에 올랐고, ‘노인폄훼 발언’으로 시련을 겪지만 노 전 대통령은 그를 통일부장관으로 입각시킬 정도로 무한애정을 보였다. 그러나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하면서 둘 사이의 균열이 불거지기 시작한다. 노 전 대통령은 여당의 압박으로 2007년 2월 열린우리당을 탈당했고, 정 후보는 그해 8월 당을 해체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구태정치, 기회주의자”라며 직설적으로 비난했고, 정 후보는 “공포정치의 변종”이라며 맞섰다. 그나마 2002년 대선 때 김대중(DJ) 대통령과 노무현 대선 후보는 비교적 무난한 관계를 유지해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DJ는 2002년 초 대선 불개입을 선언했고 이어 아들의 비리가 잇따르자 대선을 7개월 앞둔 2002년 5월 자진 탈당한다. 이후 노 후보는 대선까지 “자산과 부채를 승계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그렇다면 대선까지 남은 4개월, 이 대통령과 박 후보는 어떤 관계를 이어 갈까. 두 사람 역시 5년 전 경선 이후 지금까지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며 감정의 앙금을 쌓아 왔다. 경선 당시 박 후보 측이 ‘BBK사건’, ‘도곡동땅 차명소유’ 문제를 놓고 끝까지 물고 늘어진 데 대해 이 대통령이 서운함을 안 갖고 있을 리가 없다. 박 후보도 경선 이후 했던 ‘동반자 약속’을 이 대통령이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말뿐인 ‘권력분점’에 그쳤다는 것이다. 박 후보는 2008년 4월 18대 공천 직후 친박(친박근혜계)이 대거 탈락하자 “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며 직설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이 대통령과 박 후보의 갈등이 정점에 이른 것은 세종시 문제를 놓고 맞섰던 2010년 2월이다. 이 대통령은 2월 9일 충청북도 업무보고 자리에서 “잘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치고 다시 싸운다. 강도가 왔는데도 ‘너 죽고 나 죽자’하면 둘 다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는 박 후보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이다. 그러자 박 후보는 다음 날 “집안에 있는 한 사람이 강도로 돌변하면 어떡하느냐.”라고 이 대통령을 강도에 비유하며 강도 높게 맞섰다. 이른바 ‘강도론’을 둘러싼 두 사람의 마찰이다. 이어 다음 날인 11일 당시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박근혜 대표’가 아닌 ‘박근혜 의원’이라고 꼬박꼬박 지칭하며 “(박 의원의 태도는) 온당치도 못하고 적절치 못할 뿐 아니라 황당하다. 최소한 대통령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일각선 “당적 유지 첫 대통령 나오나” 기대도 사실 당시 두 사람의 충돌은 가장 민감한 부분인 ‘차기 대선 후보’와 관련된 발언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충북 업무보고에서 ‘강도론’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일 잘하는 사람을 밀고 싶다. 정치적 계산만 하면 발전이 없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일부 언론에서 세종시 원안 고수를 주장하며 정부안에 반대하는 박 후보가 차기 지도자로 적합하지 않다는 뜻을 이 대통령이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양측 갈등에 불을 붙였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일 잘하는 사람을 밀고 싶다’는 것은 이 대통령이 평소 자주하던 발언인데, 당시 박 후보가 이를 오해하면서 갈등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로도 두 사람은 지난 5년간 협력과 갈등을 반복해 왔다. 지난해에는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놓고 양측이 또 충돌했다. 하지만 여전히 협력의 끈도 놓지는 않고 있다. 박 후보가 두 차례(2008년과 2011년) 대통령 특사로 외교행보에 나선 것도 이를 방증한다. 올초 여권 일부에서 이 대통령의 탈당요구가 나왔지만 금세 수그러들기도 했다. 박 후보가 지난 3월 7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대통령의 탈당이 해법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과 무관치 않다. 때문에 이 대통령이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당적을 유지한 채 임기를 마무리하는 첫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두 사람은 최근에는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12일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박 후보에 대해 “우리나라에 그만한 정치인이 몇 사람 없다.”고 대놓고 칭찬했다. 박 후보도 지난 17일 SBS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에 대해 “포퓰리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 대통령의 편을 들어줬다. 박 후보는 그러나 정책 차별화는 분명히 하고 있다. 정부의 추가감세는 물론, 연내 차세대 전투기(FX) 선정, 인천국제공항 지분매각 시도에 제동을 걸고 있다. 박 후보는 또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며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을 펴는 이 대통령과 명백히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청와대는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던 ‘김영삼·이회창’(1997년 대선), ‘노무현·정동영’(2007년 대선) 조합 식의 극단적인 갈등을 이 대통령과 박 후보가 겪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강조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31일 “박 후보는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극단적인 언행을 하는 분이 아니며, 대통령도 이미 당에 대한 애정을 밝힌 바 있다.”면서 “차별화를 위해 당에서 제시하는 정책대안도 100%는 어렵지만, 재정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정부는 가급적 수용하고 있어 당·청이 충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런 바람과는 달리 대선과정에서 박 후보가 정책차별화에서 더 벗어나 이 대통령과 정면 충돌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임기 이후의 불안한 미래를 보장받고 싶어 하는 현재권력인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미래권력인 여권 대선주자는 운명적으로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야권 대선 후보가 정해지고 본격적인 여야 대결구도가 펼쳐지면 박 후보 측에서 단순히 이 대통령과의 선긋기를 넘어 ‘MB 부정(否定)’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 후보가 야권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벌이게 되거나 지지율에서 뒤지는 것으로 나오면 ‘MB 때리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동안 잠복했던, 이 대통령에 대한 탈당요구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수세에 몰린 이 대통령도 반격에 나설 수밖에 없다. 정치전문가들도 이 대통령과 박 후보의 충돌은 시간과 수위의 문제일 뿐 피하기 어렵다고 내다본다. “더 이상 얘기할 필요도 없다. 박 후보는 지금보다 더 차별화 전략으로 갈 수밖에 없다. 갈등의 정도도 과거만큼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이지, 박 후보와 이 대통령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지금은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으로 인해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추가로 친인척 비리가 다시 불거진다면 갈등의 강도는 더 커질 것이다. 대통령과 여권 대선후보의 갈등 수위는 대통령의 지지도와 반비례 하는데, 지금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신율 명지대 정외과 교수) “이 대통령의 존재감이 너무 없기 때문에 박 후보 입장에서는 일부러 차별화할 필요조차 못 느낄 수도 있다. 국민들이 이 대통령과 박 후보를 명백히 다르게 보기 때문이다. 박 후보 입장에선 이 대통령이 자진탈당을 해 주면 제일 좋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무시’하는 행보를 할 것으로 본다.”(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수도원 72개 지하방에 묻힌 ‘욕망·죄책’

    수도원 72개 지하방에 묻힌 ‘욕망·죄책’

    서해안 인근 천산 정상에 감춰진 ‘천산수도원’. 폐암으로 투병하다 죽은 형 강영호의 유품을 챙기던 강상호는 형의 유고 속에서 이 신비의 수도원을 처음 접한다. 이곳은 흙과 돌과 나무로만 지어진 절벽 위 천혜의 요새다. 72개의 지하 방에선 아름다운 벽서들이 발견된다. 성서를 정성껏 필사한 벽서 안에 숨은 역사적 진실에 대해선 그 누구도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현실 속 구원 문제에 집착해 온 작가 이승우(53·조선대 교수). 그의 신작 장편 ‘지상의 노래’(민음사 펴냄)는 독자들의 눈길을 끌 만한 서사구조를 품고 있다. 5명의 주인공이 엮어 가는 다섯 이야기는 복잡한 형이상학적 다층 구조를 이뤄 흥미를 배가시킨다. 소설은 궁극적으로 현대사의 굴절된 단면에 숨은 사람들의 얘기를 담았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풀어 가고 이 과정에서 ‘인과’(因果)라는 삶의 굴레를 확인한다. 죽은 자가 ‘유업’(遺業)을 남기고 살아있는 자가 이를 마무리하는 과정이 소설 전체를 떠받치는 핵심 원리로 작용한다. 그러나 작가는 “서울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과 뉴욕을 덮친 태풍 사이의 관련만큼 비정형적이고 무의식적이다. 나비가 날갯짓하지 않아도 태풍은 일어날 것”(40쪽)이라며 인과에 대한 질문을 던져 놓는다. 형이 남긴 기록을 토대로 수도원을 답사하고 벽서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대기업 해외 주재원 강상호의 이야기, 그 책을 읽고 천산수도원의 벽서에 관한 글을 쓴 대학 교회사 강사 차동연의 이야기, 차동연이 쓴 글을 읽고 그에게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 퇴역 군인 ‘장’의 이야기, 장의 이야기에 나오는 군사정권의 핵심 한정효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박 대위에게 겁탈당한 사촌 누나 연희를 사랑했던 ‘후’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중심은 물론 천산수도원. 이곳은 강영호의 군 복무지이자 퇴역 군인 ‘장’이 군사정권 수뇌인 장군의 명을 받고 한정효를 가둬 둔 장소다. 또 다른 장군은 권력을 잡은 뒤 문제의 씨앗을 없애기 위해 수도원을 덮쳐 좁다란 지하 방에 수도사들을 몰아넣고 산 채로 매장했다. 자신이 사라지면 모두 평화로울 것이라 믿고 이곳을 떠났던 한정효는 죽은 ‘형제들’의 시신을 매장하며 방마다 그림을 그리듯 벽서한다. 한정효를 돌보며 그의 일을 마무리하고 숨을 거둔 ‘후’까지. 등장인물들이 모두 죄의식에 사로잡힌 것도 이 때문이다.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천산수도원의 거대한 실체가 드러나면서 독자들이 받는 감흥은 남다르다. 14세기 중세 유럽의 수도원을 배경으로 쓴 움베르토 에코의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을 떠올릴 만하다. 형이상학과 신학이 잘 버무려진 소재가 둘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다. 이는 작가가 문학계에선 드물게 신학을 전공한 뒤 형이상학적 탐구의 길을 걸어 온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작가는 수도원 지하의 72개 방을 초대 교회 신자들의 지하 무덤인 ‘카타콤’에, 이곳에서 발견된 엄청난 분량의 벽서는 중세 벽서인 ‘켈스의 책’에 비유한다. 이 가운데 초월자에 대한 믿음과 미적 추구 사이의 관계, 그리고 사랑과 죄가 얽히며 작용하는 방식 등이 복합적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10년간 이야기의 모티브를 머릿속에 꼭꼭 숨겨 놓았으면서도 제목만큼은 미리 정해 뒀다고 했다. 그런데 왜 천상의 노래가 아닌 지상의 노래일까. 작가는 “천상수도원이 공간적 배경이지만 이곳이 (내가) 추구하는 이상향은 결코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 천상수도원이 이상향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부족함과 불안정함, 부당함을 역설적으로 얘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구원, 욕망, 권력이 매개체였다.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다. 교회사 강사인 차동연이 수도원 72개 방에 묻힌 ‘형제들’의 비극을 신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설명하지 못했을 때 ‘후’의 입을 빌려 소설로 풀어 나간 것처럼 작가도 무언가 얘기하려 했다. ‘5·16’과 19년 뒤에 일어난 ‘5·18’의 아픔이 그것이다. 책 속에 등장한 2개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작가는 “굳이 안 써도 다 아는 ‘장군’의 이름들과 같은 것”이라며 “역사적 사건을 구체화하지 않고도 이것이 (당시)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말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옛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내부 첫 공개

    옛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내부 첫 공개

    미국 수도 워싱턴DC의 ‘로건 서클 역사지구’ 15번지 옛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의 내부가 102년 만에 공개됐다. 당시 명칭이 ‘대조선주차 미국 화성돈 공사관’(大朝鮮駐箚 美國華盛頓 公使館)이었던 3층짜리 빅토리아 양식의 건물은 대한제국 시절인 1891년 11월 고종 황제가 당시로서는 거금인 2만 5000달러를 하사해 매입한 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돼 일제에 외교권을 박탈당할 때까지 14년간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으로 사용됐다.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은 당시 일제로부터 단돈 5달러를 받고 강제 매각당한 이 건물을 최근 350만 달러(약 39억원)에 매입하기로 했고, 경술국치 102주년인 29일(현지시간) 현지 조사단을 파견해 건물 내부 상태를 정밀 검사했다. 이날 공개된 내부 모습 역시 건물 외부와 마찬가지로 100년의 세월이 무상할 만큼 당시의 흔적들이 오롯이 남아 있었다. 조사단이 접견실과 집무실, 주방과 식당 등으로 사용된 1층을 둘러본 결과 벽면에 붙어 있는 세 개의 벽난로와 타일 문양, 벽체와 천장을 잇는 몰딩 장식, 샹들리에가 걸린 천장 부분의 타원형 테라코타 등 사진 속 원형이 대부분 남아 있었다. 내부 골조나 벽체를 허물지 않고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공사의 침실과 휴식 공간으로 사용됐던 2층 역시 유리창 구조와 정교하게 깎은 나무를 조립해 만든 창문 가리개 등이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3층은 중간 벽이나 칸막이 없이 완전히 터진 공간으로 당시 미국 정부 관계자나 외국 외교사절을 초청해 연회를 열거나 각종 이벤트를 벌이는 다용도 공간으로 쓰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올해 안으로 건물 내·외부에 대한 정밀조사를 마친 뒤 전문가와 재미교포 사회의 의견 수렴을 거쳐 건물을 한국 전통문화 전시 및 홍보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연합뉴스
  • 선진 이명수·유한식, 새누리로

    선진 이명수·유한식, 새누리로

    선진통일당 소속 이명수(왼쪽) 의원과 유한식(오른쪽) 세종특별자치시장이 조만간 탈당해 새누리당에 입당하기로 했다. 대선 국면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여야의 주판알 튕기기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 의원은 29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가진 ‘일본 전범기업 3차 명단’ 발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탈당 결심이 섰다. 빨리 탈당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새누리당 지도부와 입당 문제에 대해 사전에 교감한 바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 측 관계자는 “의석수 등에서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면서 “곧 탈당해 정서상 가장 잘 맞는 새누리당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이 탈당하면 선진당 의석수는 5석에서 4석으로 줄어들게 된다. 유 시장도 이날 오후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당을 선언했다. 앞서 이 의원과 유 시장은 이달 중순 선진당 소속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과 모임을 갖고 진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추가 탈당자가 나올 가능성도 높다. 이미 염홍철 대전시장도 탈당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이에 따라 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충청발(發) 정계 개편 바람이 불지 주목된다. ‘선진당 탈당, 새누리당 입당’ 공식이 만들어질 경우 ‘보수 대연합’ 논의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해득실을 따진 ‘철새 정치’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다. 선진당이 지난 4·11 총선 참패 이후 군소 정당으로 전락한 만큼 2014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밥그릇 챙기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선진당 이원복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남의 당 의원과 단체장빼내 가기가 박근혜식 국민통합 정치냐.”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공격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29일 TV 하이라이트]

    ●클래식 오디세이(KBS1 밤 12시 35분) 네 살 때 처음 피아노 앞에 앉은 윤아인은 절대음감을 보이며, 무서운 집중력으로 클래식 명곡들을 소화해 화제가 됐다. 그리고 여덟 살에는 러시아로 이주해 모스크바 중앙음악학교에 입학하면서 더욱 진가를 발휘했다. 게다가 러시아에서 열린 각종 콩쿠르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한 것은 물론, 학교 성적도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다는데…. ●수목드라마 각시탈(KBS2 밤 9시 55분) 각시탈인 이강토의 교란작전에 속아 국방헌금을 강탈당했음을 알게 된 슌지는 종로시장에서 득수마저 놓치고 만다. 그리고 강토와 목단이 함께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경성여관으로 달려간다. 한편 급하게 짐을 꾸리던 목단은 경성여관으로 슌지가 무장순사들과 함께 들이닥치자 다급하게 창문으로 뛰어내린다. ●자원봉사 희망프로젝트 나누면 행복(MBC 낮 12시 15분) 스리랑카 콜롬보 외곽에 위치한 삼밋푸러 지역. 그곳에서 만난 6살 와산나와 배우 이태성의 추억 만들기 두 번째 이야기가 펼쳐진다. 태성은 와산나의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청소한 지 4년이 넘은 공동화장실을 치우는 아르바이트에 도전한다. 스리랑카 소녀 와산나와 한국 삼촌의 알콩달콩 추억 만들기를 함께한다. ●천사의 선택(MBC 오전 7시 50분) 말순(김동주)은 달봉(서범석)인지 모르고 선뜻 만나겠다고 약속을 잡는다. 은설(최정윤)은 정상으로 돌아온 은석(추헌엽)과 함께 민재(정성운)를 위해 엔젤과 보네르사의 합작을 민재 모르게 돕기로 한다. 한편 유란(고나은)은 떠나간 상호(윤희석)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써 보지만, 그럴수록 상호의 마음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다큐10+(EBS 밤 11시 20분) 아프리카는 천연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최근까지 아프리카는 그저 단순 자원 제공자에 불과했다. 거대한 서구 자본들은 이 자원들을 채굴하고 처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더욱이 판로를 장악하고 엄청난 이익을 독식해 왔다. 뒤늦게 아프리카 국가들은 그동안 빼앗겼던 권리와 역할을 되찾고, 스스로 그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나선다. ●미스터리 세계를 가다(OBS 밤 10시) 세계의 미스터리한 첫 번째 이야기, 프랑스의 소녀 잔다르크에게만 들려오는 목소리. 잔다르크는 그 목소리를 신의 계시라 여기게 되는데…. 두 번째 이야기, 17세기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는 그의 쌍둥이 동생에게 왕위를 빼앗길까 두려워 동생에게 철 가면을 씌워 끔찍한 운명 속에 가두고 만다.
  • [사설] 日 ‘임진년 막장외교’ 접고 이성 되찾아야

    일본의 독도 대응이 점입가경이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어제 독도·센카쿠(댜오위다오) 문제와 관련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의 주권을 침해하는 사안이 발생해 매우 유감스러우며, 간과할 수 없다.”면서 “의연하고 냉정·침착하게 불퇴전의 결의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불법 상륙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펴던 데서 한걸음 더 나간 것이다. 우리는 주권 운운한 노다 총리의 발상이 매우 위험하고 우려스럽다고 본다. 이성을 잃은 일본의 대응은 노다 총리뿐이 아니다. 정치인과 내각 모두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의원(하원)은 어제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 발언에 항의하는 결의안을 민주·자민당 주도로 채택했다. 한·일 외교전의 심각성은 일본 외교관들마저 독도 갈등의 첨병으로 나섰다는 데 있다. 한국 외교관이 일본 외무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전박대를 당한 것은 세계 외교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전시에도 있을 수 없는 유치한 일본 외교의 수준을 보여 준 것이다.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의 발언도 전혀 외교관답지 않다. 연내 예정했던 한국 국채 매입 계획을 유보하겠다는 아즈미 준 재무상의 태도는 누가 봐도 감정적이고 소아병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일 관계가 이 지경까지 온 데는 일본 국내 사정 탓이 크다고 하겠다. 10%대의 낮은 지지율로 10월 총선을 치러야 하는 노다 내각이 막가파식 외교를 펴고 있는 셈이다. 소비세 인상 법안을 억지로 밀어붙인 후유증으로 노다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급격히 위축돼 있다. 민주당 의원 50명은 탈당해 신당을 창당했고 내각 불신임안이 제출된 상황이다. 독도와 센카쿠 열도로 한국 및 중국과 영토분쟁을 일으켜 지지율을 회복하고 총선을 치른다는 계산이라고 한다. 노다 내각과는 당분간 이성적이고 냉정한 대화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릴레이 망언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 아래 한시적으로 대화를 중단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은 적절한 조치로 본다. 사태 해결의 열쇠는 일본이 쥐고 있다. 일본은 사태를 더 이상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 일본 정부는 하루빨리 막장 외교를 접고 이성을 되찾기 바란다.
  • “구당권파 찌그러져 있으란 말이냐” “기득권 내려놔야 더 큰 행복 온다”

    “구당권파는 속된 말로 찌그러져 조용히 있으란 말이냐.”(구당권파 오병윤 의원) “기득권 내려놔야 더 큰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강기갑 대표) 통합진보당 신당권파와 구당권파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원색적인 말을 쏟아내며 격돌했다. 다음 달 2일 중앙위원회에 구당권파의 ‘백의종군’을 전제로 한 분당 없는 혁신재창당 안건을 상정하기 이전 터놓고 토론하자며 모인 자리였지만 양측은 깊게 파인 감정의 골만 확인했다. 중앙위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강기갑 대표가 회의에 앞서 당연직 중앙위원인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제외하고 중앙위원 재적 인원을 84명으로 보고하자 구당권파는 “지도부가 임의로 두 의원의 중앙위원 자격을 박탈하려 한다.”며 즉각 반발했다. 중앙당기위가 제명 결정을 내렸어도 의원총회에서 제명안이 부결됐기 때문에 중앙위원 자격 또한 유효하다는 것이다. 강 대표는 “시작부터 슬슬 꼬이기 시작한다.”며 한숨을 내쉬고 상황을 정리하려 했지만 항의가 빗발쳐 성원보고 이후 30여분이 지나서야 개회를 선언할 수 있었다. 구당권파는 토론에 들어가 더욱더 날을 세웠다. 오병윤 의원은 “공공연하게 구당권파의 백의종군을 요구하고 이를 받지 않으면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데, 내가 악의 화신인가.”라며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이에 신당권파의 이정미 최고위원은 “우리도 기뻐서 당을 나가겠다는 게 아니다. 대중화의 실패는 결국 진보정치의 실패”라고 반격했다. 중립 성향의 부산·울산·경남(부울경)연합은 구당권파처럼 탈당·분당 반대, 신당 창당 기구인 혁신진보모임 해체를 요구하면서도 혁신재창당에는 동의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중재안을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신당권파는 두 의원의 자진 사퇴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혁신재창당안 통과는 신당권파도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중앙위원의 과반이 찬성해야 하는데 구당권파 중앙위원이 신당권파보다 많기 때문이다. 다음 달 2일 혁신재창당안이 부결되면 신당권파는 당 해산 안건 처리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블랙 파워 설루트’ 동조해 욕먹은 노먼 44년 만에 호주 의회로부터 사과받아

    ‘블랙 파워 설루트’ 동조해 욕먹은 노먼 44년 만에 호주 의회로부터 사과받아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 육상 남자 200m 시상식 도중 정치적 의사 표현을 했던 미국의 흑인 선수들에게 동조했다는 이유로 조국 호주에서 배척된 피터 노먼(왼쪽·1942~2006)이 하늘에서나마 명예를 되찾았다. 22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호주의회의 앤드루 레이 연방의원은 “노먼의 행동은 인종차별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불렀다.”며 “그 행동으로 노먼은 너무 가혹한 처벌을 당했다.”고 말했다. 존 알렉산더 의원은 “노먼은 호주 언론과 경기단체로부터 배척을 당했다.”고 규정했다. 사실상 호주의회가 44년 만에 사과의 뜻을 밝힌 것이다. 올림픽에 앞서 자메이카에서 열린 영연방 게임 육상 200m에서 동메달을 딴 노먼은 국가대표로 발탁돼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었다. 노먼은 올림픽 200m 결선에서 금메달리스트 토미 스미스(가운데), 동메달리스트 존 카를로스와 박빙의 경쟁을 펼친 끝에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런데 스미스와 카를로스 두 흑인 선수는 시상식에서 흑인 인권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세리머니를 준비했다.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고개를 숙인 채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하늘로 뻗기로 한 것이다. 당시 조국에서 번지던 흑인운동에 찬동함을 상징하는 ‘블랙 파워 설루트’(Black Power Salute)를 한 것. 스미스 등은 노먼에게도 함께하겠느냐고 제안했고, 노먼도 고민 끝에 동의했다. 올림픽에서의 민권운동을 고취하는 배지 OPHR(Olympic Project for Human Rights)을 가슴에 달고 시상대에 올랐다. 한 벌밖에 없던 장갑을 한 짝씩 나눠 끼라고 조언한 것도 노먼이었다. 이 세리머니는 수많은 흑인에게 감동의 눈물을 선사했다. 그러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폭력적 행위’라며 스미스와 카를로스를 선수촌에서 추방했다. 메달리스트의 특권을 빼앗은 것은 물론이었다. 노먼 역시 호주올림픽위원회로부터 엄중한 문책을 받고 차기 올림픽 출전 기회를 박탈당하는 등 ‘역적’ 취급을 당했다. 선수와 코치로 여러 팀을 전전하던 노먼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2006년 심장마비로 64년의 삶을 쓸쓸히 마쳤다. 스미스와 카를로스가 관을 운구했다. 국내에서도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를 계기로 이 사건이 새삼스레 주목받았다. 미리 준비한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한 것에 대해서도 메달을 박탈하지 않았는데 박종우의 메달을 뺏는 것은 지나치다는 논거로 활용됐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교사가 꿈…佛 유학중 육여사 서거

    교사가 꿈…佛 유학중 육여사 서거

    교사를 꿈꾸던 소녀였던 박근혜 후보가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됐다. 박 후보는 학창 시절 ‘엄친딸’에 가까웠다. 박 후보는 서울 장충초교를 다녔으며, 초등학교 4학년 때 5·16 쿠데타를 경험했다. 이후 천주교 계열의 성심여중·고에 진학해 6년 내내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교사들의 의견란에 가장 많이 등장한 표현은 ‘온순, 침착, 성실, 겸손’ 등이었다. 다만 초교 1학년 때 ‘특정 아이들과만 노는 습관이 있음’, 고교 2학년 때 ‘지나치게 어른스러움이 흠’, 고교 3학년 때 ‘지나친 신중성 때문에 과묵한 편’ 등의 평가가 눈에 띈다. ●학창시절 ‘온순·침착’… 대학 수석졸업 박 후보는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려 했으나 아버지가 전자산업에 관심이 많아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선택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중·고교에 이어 대학 역시 수석으로 졸업했다. 평점은 4.0을 기준으로 할 때 3.82, 100점으로 환산하면 98.2점을 받았다. 박 후보는 1974년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으나 6개월여 만인 8월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어머니가 절명하면서 되돌아왔다. 그는 귀국하면서 신문기사로 어머니의 별세 소식을 접했을 때 “머리에서 발끝까지 수만 볼트의 전기가 훑고 지나가는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10·26이후 18년간 야인생활 이후 박 후보는 퍼스트레이디 대행을 맡았다. 1979년까지 청와대에서 아버지의 통치를 곁에서 지켜봤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정치철학에 가장 영향을 미친 이로 “역시 아버지”를 꼽는다. 박 후보는 “아버지가 가진 역사관이나 안보관, 세계관을 들으면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1979년 10·26사태로 아버지를 잃은 뒤 신당동 옛집으로 돌아가 18년을 야인(野人)으로 보냈다. 그는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책도 많이 읽고 사색도 하고 마음을 풀 길이 없어 글도 썼다.”고 말했다. ●46세때 대구 달성 보궐선거로 정계에 박 후보가 다시 정치활동을 시작한 것은 46세 때인 1998년 대구 달성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되면서다. 2000년 당 총재 경선 때는 이회창 전 총재에 이어 부총재로 당선됐지만 이듬해 ‘이회창 대세론’에 반발, 탈당해 ‘미래연합’을 창당했다. 2002년 재입당한 그는 불법 대선자금 수수 사건 등으로 당이 침몰 직전이던 2004년 3월 당 대표를 맡았다. 이른바 ‘천막당사’ 시절이다. 이후 2년 3개월간 당 대표로 재임하면서 5차례의 국회의원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완승해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2007년 8월 치열한 당내 경선에서 국민여론조사에 발목이 잡혀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석패했다. 장세훈·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광고사진 유출은 무단 도용 펠프스, 메달 박탈걱정 안해”

    “광고사진 유출은 무단 도용 펠프스, 메달 박탈걱정 안해”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27·미국)가 광고 사진 유출 때문에 런던올림픽에서 따낸 메달을 박탈당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그의 매니저가 18일(현지시간) 밝혔다. 피터 칼리슬은 AP통신 인터뷰를 통해 “펠프스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새 규정 룰 40을 위배했다고 보지 않는다.”며 “따라서 펠프스가 런던올림픽에서 따낸 메달을 박탈당할지 모른다고 걱정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펠프스는 명품업체 루이비통의 캠페인 광고에 출연해 촬영한 두 장의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런던올림픽이 열리는 도중에 유출돼 IOC의 규정을 위배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유명 사진작가 애니 라이보비츠가 촬영한 두 장의 사진은 펠프스가 수영복 차림에 고글을 쓴 채 욕조에 반쯤 몸을 담근 모습과 옛 소련의 체조선수 라리사 라티니나(78)와 함께 소파에 앉아 담소하는 모습이다. 라티니나는 펠프스가 런던올림픽에서 4관왕에 은메달 둘을 보태 역대 올림픽 최다 메달 기록을 경신하기 전의 기록(18개)을 갖고 있던 인물. 그런데 IOC는 올해 처음으로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에 공식 스폰서가 아닌 업체가 출전 선수나 팀을 이용해 광고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새 규정 ‘룰 40’을 공지한 바 있다. 이 조항은 7월 18일부터 8월 15일까지 적용된다고 못 박았고 루이비통도 이에 따라 16일부터 사진들을 공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문제의 광고 사진 중 두 장이 이달 초부터 ‘페이퍼 맥’과 일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 홈페이지 등에 게재되기 시작한 것. 칼리슬은 “펠프스가 이 사진을 어떻게 사용할지 관장할 위치에 있지 않아 IOC와 논란을 빚을 이유가 없다.”며 “올림픽 스타의 초상권이 무단 도용된 사례는 역대 대회를 돌아봐도 손쉽게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구당권파에 밀린 강기갑?

    통합진보당은 오는 22일 제2차 중앙위원회를 개최하고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안 부결 파문에 따른 당 내분 수습책을 놓고 토론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이정미 대변인은 16일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당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 토론의 건’을 단일 안건으로 하는 2차 중앙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했으며 논의 결과를 통해 다음 달 2일쯤 제3차 중앙위 개최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신·구 당권파의 마찰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당 해산 및 신당 창당에 나서는 신당권파와 이를 막으려는 구당권파의 기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일 이상규 의원을 비롯한 구당권파 34명은 ‘탈당 사태 중단과 당 정상화를 위한 중앙위 소집’을 요청했지만 강기갑 대표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함을 이유로 연기를 주장해 서로 의견 차이를 보였었다. 당헌·당규에 따르면 소집요청 후 15일 이내(17일까지)에 중앙위 소집을 해야 한다. 신당권파가 시기를 미룬 것은 구당권파 46명, 신당권파 40명으로 구성돼 있는 현재 중앙위원의 세력 구도 때문으로 보인다. 당원 과반 이상 투표에 투표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한 상태에서 ‘당 해산안건’ 통과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범수기자 bulse46@seoul.co.kr
  • ‘승부조작’ 前 K리거 장현규 자택서 심장마비 추정 돌연사

    ‘승부조작’ 前 K리거 장현규 자택서 심장마비 추정 돌연사

    승부조작에 연루돼 지난해 K리그에서 퇴출된 장현규(31)가 16일 울산 자택에서 갑자기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고인의 누이가 이날 오전 깨우려고 방에 들어갔다가 숨을 거둔 것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추정된다. 고인은 울산 현대중-현대고-울산대를 거쳐 2004년 대전에 입단하면서 K리그 생활을 시작해 2008년부터 포항에서 뛰었다. 2010년 상무 시절 승부조작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 지난해 8월 보호관찰 3년과 함께 선수 자격을 박탈당한 뒤 큰 상실감에 빠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징후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지인들과 축구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김두관 날다… “축구 한·일전 승리땐 번지점프” 약속지켜

    김두관 날다… “축구 한·일전 승리땐 번지점프” 약속지켜

    김두관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후보가 런던올림픽 축구 한·일전에 승리하면 번지점프를 뛰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김 후보는 15일 경기 성남시 분당 율동공원을 찾아 “독도 세리머니를 이유로 동메달 자격을 박탈당할 상황에 놓여 의기소침해 있을 박종우 선수에게 힘내라는 응원을 보낸다.”며 점프대에 올랐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다음 올림픽에는 남북 단일 축구팀을 만들어 금메달에 도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날 폭우속에서도 지지자 500여명이 노란풍선을 들고 모여 김 후보에게 환호를 보냈다. 이후 김 후보는 트위터에 “번지점프하는 순간 아찔했다.”고 글을 남겼다. 김 후보는 남해군수 때인 1996년에도 지역 벚꽃축제 홍보를 위해 남해대교에서 번지점프를 했었다. 이범수기자 bulse46@seoul.co.kr
  • [사설] 민노총 ‘막말정치’ 대신 노동운동 전념하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어제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전면 철회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통진당의 진로는 분수령을 맞게 됐다. 당비를 납부하는 진성당원 7만 5000여명 가운데 3만 5000여명에 이르는 민노총 당원들의 탈당은 통진당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할 중대변수다. 민노총이 조건부 지지에서 지지 철회로 돌아선 데는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제명을 포함한 당 혁신안이 무산된 데 따른 것이다. 민노총의 지지 철회는 패권다툼에 사로잡힌 통진당, 특히 구당권파에 보내는 엄중한 경고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노총의 통진당 지지 철회를 계기로 노동세력의 정치 참여 문제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민노총과 한국노총의 정치 참여는 적잖이 왜곡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정책 결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일부 노조 간부들의 정계 진출 수단으로 활용돼 온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노동자와 서민대중을 위한다는 명분은 찾아보기 힘들다. 민노총은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종북 성향을 이유로 이들에 대한 제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난 주말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8·15 노동자 통일 골든벨’ 행사에서 스스로 종북 성향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국민의 원수(怨讐)’로, 한·미 군사훈련을 ‘미국놈들의 전쟁연습’이라고 표현했다. 민노총은 “돌발적으로 발생한 적절치 못한 표현”이라고 해명했지만 그들의 정체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기업노조들이 민노총의 정치투쟁과 투쟁일변도의 행동방식에 염증을 느껴 잇따라 탈퇴하고 있다. 민노총은 이런 현실을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민노총이 끝내 운동노선을 재정립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통진당 지지를 철회했듯 기업노조들 또한 민노총을 외면하게 될지 모른다. 민노총은 차제에 ‘막말정치’를 접고 순수한 노동운동에 전념하기 바란다.
  • 새누리, 현기환 제명처리 16일로 연기…“절차 보장” vs “소극대응 당에 부담”

    새누리당이 13일 4·11 총선 공천 헌금 파문 당사자인 현기환 전 의원에 대한 제명안 처리를 16일로 늦췄다. 당초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선 현 전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처리할 계획이었으나 현 전 의원이 오전 9시 15분쯤 당에 재심 청구를 하면서 회의 시작과 동시에 제명안 처리에 제동이 걸렸다. 홍일표 대변인은 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제명안을 빨리 처리하자는 얘기도 있었으나 절차를 지키자는 주장이 공감대를 얻어 일단 오늘은 처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재심청구로… 현영희는 불참 앞서 새누리당이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사태 때 최구식 전 의원, 성희롱 발언 사태 때 강용석 전 의원의 제명·탈당 처리에 신속히 나섰던 것과 대비되면서 당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현 전 의원이 공천 당시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메신저로 여겨졌던 만큼 당의 대응이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론이다. 그러나 한 최고위원은 “당헌·당규상 소명 절차는 보장하되 현 전 의원과 현영희 의원의 거취를 가능한 한 빨리 결정해 대선을 앞두고 부담을 털고 가자는 게 지도부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박근혜 경선 후보 캠프의 정치발전위원인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전 위원장뿐 아니라 나를 포함한 모든 비대위원에게 상당한 도덕적 책임이 있다.”면서 “사과 같은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박 후보 캠프는 신중론 속에 공식사과 시점을 검찰조사 결과가 마무리되는 즈음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4일 또는 16일 출석 요청 당 윤리위는 14일 오전 회의를 열어 제명 여부를 재심사한 뒤 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최종 결정을 내릴 전망이다. 현 의원 제명을 위한 의원총회 소집 시기도 16일 회의에서 논의된다. 현 의원은 재심을 청구하지 않고 13일 당 진상조사위 출석 요구에도 검찰 수사 준비를 이유로 나오지 않았다. 진상조사위는 현 의원과 현 전 의원에 대해 14일 또는 16일 중 하루를 택해 출석할 것을 다시 요청키로 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女 투포환 선수 도핑 적발… 런던 올림픽 첫 메달 박탈

    여자 포환던지기 금메달리스트 나제야 오스탑추크(32)가 도핑테스트에 걸려 런던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박탈당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벨라루스 육상대표팀의 오스탑추크가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 양성반응을 나타내 메달 박탈을 결정했다고 13일(현지시간) 밝혔다. 오스탑추크는 대회 기간 실시한 두 차례의 소변 검사에서 금지약물인 메테놀론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IOC는 설명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일종인 근육 강화제 메테놀론은 이번 대회부터 금지됐다. 2010년 유럽선수권대회 우승자인 오스탑추크는 지난 4일과 5일 열린 포환던지기에 출전해 21.36m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메달 박탈 조치에 따라 은메달리스트인 뉴질랜드의 발레리 애덤스가 금메달을 승계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Weekend inside] ‘응급실 전문의 당직’ 일주일…병원간 온도차

    [Weekend inside] ‘응급실 전문의 당직’ 일주일…병원간 온도차

    지난 9일 밤 10시 인천의 A종합병원 응급실. 10개 남짓한 병상이 환자들로 가득 찼다. 팔을 다친 중학생 소년은 의사가 팔을 주무르자 아프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허리를 구부린 채 다급한 얼굴로 응급실을 찾은 할아버지는 병상에 누워 링거를 꽂자 편안한 표정이 됐다. “입원해야 하지 않을까요. 불안한데….” 젊은 부부가 열이 나 불덩이가 된 아기를 달래며 떨리는 목소리로 의사에게 물었다. “장염 소견이 있네요. 입원수속을 밟아 드리겠습니다.” 응급실 당직의사 2명, 간호사 5~6명이 분주히 오가며 환자들을 살피고 있었다. 이 병원은 지난 5일 시행된 개정 응급의료법에 따라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를 실시하고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이 24시간 응급실에 머물며 환자를 진료하고, 필요에 따라 각 과의 의사(당직 전문의)를 호출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제도 시행 닷새가 지나도록 아직 전문의를 호출하는 ‘온콜’(On-call·비상호출)이 이뤄진 경우는 없었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바뀐 제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취재를 하면서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에 대해 알려주자 “그런 게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새 제도를 한목소리로 반기는 분위기였다. 팔을 다친 딸을 데리고 온 김모(41)씨는 “각 과의 전문의에게 신속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당연히 좋은 일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최모(35·여)씨 역시 “전문의가 제때 병원에 도착할 수만 있다면 환자로서 좋은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비해 병원 측은 ‘딱히 달라진 건 없다.’는 반응이다. 병원 관계자는 “기존에도 응급실 당직의가 초진을 하고 과별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한 경우 호출해 전화로 지시를 받거나 직접 진료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제도 시행 이전의 경우 하루 100~200명의 환자가 응급실을 찾는 가운데 전문의 비상호출로 이어졌던 사례는 5% 정도였다고 한다.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가 시행된다고 해서 전문의가 호출을 받는 건수가 갑자기 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병원 측 판단이다. 또 전문의들 대다수가 병원과 멀지 않은 곳에 거주하기 때문에 1시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하기도 어렵지 않다고 병원 측은 설명했다. 그러나 의사들의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이 병원의 경우 규모는 큰 편이지만 진료과목이 세분화돼 있어 전문의가 1~2명에 불과한 과가 적지 않다. 실제로 응급실에 게시된 2주일 분량의 당직 전문의 명단에는 안과, 피부과 등 10여개 과에서 한 명의 이름만 올라 있었다. 병원 관계자는 “전문의들이 상시 대기할 것을 제도로 규정하고 과태료 등의 책임을 지우니 의사들이 심적 부담을 토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가 마련된 것은 한 어린이의 안타까운 죽음이 계기가 됐다. 2010년 11월 대구에서 장중첩증에 걸린 4세 여아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아 돌아다니다 숨졌다. 국회는 지난해 6월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개정했다. 바뀐 응급의료법에 따르면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응급실 근무 의사가 1차로 환자를 진료하고 다른 과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당직 전문의에게 응급환자의 진료를 요청해야 한다. ‘3년차 이상의 레지던트’가 진료하던 단계를 없앴다. 당직 전문의가 반드시 병원 내부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병원 밖에 있더라도 비상호출을 받고서 병원에 와 진료를 하면 된다. 예전에는 전화로 치료 내용을 지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개정 응급의료법에 따르면 이런 원격진료는 안 되고 호출을 받은 당직 전문의가 직접 와서 진료해야 한다. 호출을 받은 당직 전문의가 응급실에 오지 않으면 병원은 200만원의 과태료를, 전문의는 15일~2개월의 면허정지 처분을 받는다. 제도가 시행되면서 지방의 중소 응급의료기관들은 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개정 응급의료법에는 응급의료기관에 개설된 모든 진료과목에 당직 전문의를 둬야 하는데 지방의 응급의료기관들은 여력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비교적 낫다는 인천 A병원도 어려움을 겪을 정도니 다른 중소 응급의료기관의 사정은 한층 열악할 수밖에 없다. 경남의 한 병원에서는 정형외과 전문의 3명 가운데 2명이 사표를 냈다. “응급실 당직과 외래 진료를 모두 다 하기에는 불가능하다.”는 게 이유다. 그나마 인력 사정이 나은 병원에서도 특정 과에서 당직 전문의들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고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응급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입원시키는 편법도 등장했다. 입원을 하게 되면 응급의료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꼭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레지던트나 인턴 등이 진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간 응급상황에서의 호출 체계가 갖춰진 대형병원은 전문의 당직제 도입이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수도권의 대형병원들은 법 개정 이전에도 소아청소년과 등 응급환자가 많은 과는 전문의가 당직을 해 왔다. 문제는 이런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은 중소병원들이다. 이 병원들은 전문의에게 전화를 걸어 진료지시를 받거나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대형병원으로 환자를 옮기는 식으로 운영해 왔다. 그런데 개정 응급의료법은 이런 곳에서도 전문의를 반드시 상시 대기시켜 긴급상황에 직접 진료하도록 한 것이다. 모든 응급환자가 전문의의 진료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닌 만큼 실제로 의사들이 밤낮 없이 응급실에 가야 하는 건 아니다. 제도 시행 후 당분간은 병원의 실제적 부담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이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병원이 감당해야 할 비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경기 지역의 한 병원 관계자는 “매일 상시대기를 해야 하는 의사들에 대한 보상체계도 요구될 것이고 인력도 충원해야 할 텐데 그럴 여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응급실 당직 전문의를 두지 못하는 병원들 사이에서는 응급의료기관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5일 개정법 시행 이후 10여곳의 지방 의료기관이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을 반납했다.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이 취소되면 국고보조금이 끊긴다. 환자에게 응급의료관리료도 청구하지 못한다.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들이 적자인 경우가 많은데 이런 지원까지 포기하고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까지 취소한 것은 당직 전문의를 구하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지역 응급의료센터 지정을 반납한 강원도의 중소병원 관계자는 “과목별로 최소한 5~6명의 전문의가 있어야 당직 전문의를 할 수 있는데 거의 불가능해 지정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역시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 반납을 검토하고 있는 다른 병원 관계자도 “당직 전문의를 하려고 전문의를 충원한다는 것은 안 그래도 의사들이 부족한 지방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해 정부가 현실에 맞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꼬집었다. 일부에서는 응급실 당직의가 전문의 호출을 하지 않고 자기 선에서 진료하면 그만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러면 환자로서는 좋은 진료를 신속하게 받을 기회를 박탈당하는 셈이다. A병원 관계자는 “모든 병원에 똑같은 비상진료체계를 구축할 게 아니라, 중소병원을 찾은 응급환자가 빠르게 대형병원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병원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복지부는 3개월 동안을 계도기간으로 정했다. 당장 11월까지 시간을 번 셈이다. 그러나 시행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개정 의료법이 정착되면 응급실 내 중증환자 체류시간 및 수술 대기시간 단축에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연말쯤 응급진료 수가를 현실에 맞게 조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나아가 내심 사정이 열악한 응급의료기관이 정리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복지부의 2009년 지역응급의료기관 평가에서 58%는 인력기준을 채우지 못했다. 김효섭·김소라기자 newworld@seoul.co.kr
  • 자이니치 아닙니다 재일조선인 입니다

    “해방 뒤 일본에 남은 60만 조선인에게 국적은 없었다. 식민지 시절 강제된 일본 국적을 1952년 일방적으로 박탈당했는데, 당시 조국은 분단됐을 뿐 아니라 남북 모두 일본과 국교가 없었다. 그 때문에 재일조선인들은 처참한 무권리 상태에 빠졌다.”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서경식 지음, 형진의 옮김, 반비 펴냄)은 몹시 슬픈 얘기다. 사실 그간 한국에서 재일조선인 하면 빠찡꼬업자, 사채업자, 간첩단, 조총련 같은 단어를 떠올렸다. 극심한 차별 속에 먹고살 게 없어 그리 됐다곤 하지만 왠지 밝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최근 들어 정대세, 추성훈 같은 스포츠 스타의 등장으로 이런 이미지는 크게 개선됐다. 그럼에도 ‘한국적’ 아버지 밑에서 자란 정대세가 정작 국가대표로서는 태극기 대신 인공기를 택할 정도로 여전히 모호한 대상이 재일조선인이다. 저자는 이를 ‘자이니치’(在日) 같은 줄임말 말고 ‘재일조선인’이라는 정확한 명칭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집약시킨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자이니치라는 줄임말에는 ‘일본 사람도 아닌데 왜 아직도 일본에 있지?’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의도적으로 ‘조선’이라는 표현을 피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조선=바보 같고 멍청하고 게으르다.’라는 등식을 만들다 보니 조선이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피하려 드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정확하고 분명하게 ‘재일조선인’이라는 이름을 써야 한다고 본다. 재일조선인을 차별하지 않을 때, 행복해지는 것은 재일조선인이 아니라 일본 사람들이라는 점을 강조해 뒀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다 이런 말도 해 뒀다. “재일조선인을 ‘차별받는 가여운 타자’로 규정짓거나 ‘일본인’이라는 ‘악’을 만드는 것으로 자신을 정당화하지 말고, 재일조선인을 차별하는 일본인 속에서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바랍니다.” 1만 4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공천헌금’ 현영희 아웃돼도 새누리 비례대표 승계 가능

    공천 헌금 의혹을 받고 있는 현영희 비례대표 의원이 제명(출당)되더라도 유죄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다면, 새누리당은 후순위 의원직 승계가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8대 국회에서 미래희망연대(옛 친박연대) 비례대표 양정례·김노식 의원이 서청원 대표에게 공천 대가로 수십억원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당선무효형을 받았는데, 당시 의원직을 승계하지 못한 후순위자들이 헌재에 위헌확인소송을 냈고, 이후 승계가 가능해졌다.”고 밝혔다. 공직선거법 200조 2항은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유죄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면 후순위자가 의원직을 승계할 수 있지만, ‘선거범죄로 당선이 무효가 된 경우’에는 예외로 하는 단서조항을 달고 있다. 이 조항은 2009년 위헌판정을 받은 이후 2010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단서조항이 삭제됐지만, 정당 관계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새누리당 지도부도 이러한 사실을 잘 몰라 현 의원이 제명되면 의원직 승계 기회가 박탈된다는 점 때문에 고민해 왔다. 새누리당 경대수 윤리위원장은 8일 “6일 열린 윤리위 전체회의에서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법조항을 재차 확인하고 나서야 이런 내용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당 최고위원회가 현 의원에 대한 ‘탈당 권유’를 결정해 윤리위원회에 통보했음에도, 당 윤리위가 이보다도 더 강력한 ‘제명 결정’을 신속하게 내린 것도 이런 점을 감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최고위원은 “현 의원의 선거법 위반사항이 7가지나 되기 때문에, 수사 결과 의원직이 상실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선거법상 내년 10월 10일까지는 현 의원에 대한 최종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편 새누리당은 이날 공천 헌금 의혹 파문을 자체 조사할 진상조사위원회 위원 9명을 내정하고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출신인 이봉희 변호사를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진상조사위는 9일 오전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구성이 확정되며 곧바로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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