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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대 사법제도 1백돌… 그 영욕의 세월

    ◎“정치권력서 독립” 외로운 투쟁사/조봉암 무죄선고 등 권력맞서 소신의 판결/50년대/민주화투쟁 점철… 제2차 사법파동 진통/80년대/국가배상법 위헌·김시훈 사건·생수시판 허용 등 명판결로 25일은 이 땅에 근대사법제도가 도입된지 꼭 1백주년이 되는 날이다.우리나라 근대사법의 시원은 법률 제1호인 「재판소구성법」이 시행된 18 95년 4월2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재판소구성법의 시행 이후 그동안 「원님재판」에만 의지해 왔던 봉건적 법률문화의 구각을 벗어나 최초의 판결,최초의 판사,최초의 재판부 등 근대적 의미의 각종 사법제도가 착착 뿌리를 내리게 됐다.그로부터 1백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사법제도의 골격을 바꾸는 법조개혁을 눈앞에 두고 있다.근대사법 1백년을 맞는 우리 사법계의 「영」과 「욕」의 발자취를 주요제도의 변천 및 사건과 판결,그리고 인물을 중심으로 되돌아 본다. ▷영욕의 근대사법 1백년사◁ 근대사법사의 뿌리는 1894년 갑오개혁에 두고 있다.그해 7월 「모든 죄인은 사법관에 의하지 않고는 형벌을 과할수 없다」는 법령의 선언은 재판과 행정의 분리원칙이 처음 이뤄졌다는 의미를 가진다.이어 1895년 4월25일 재판소구성법으로 각급 재판소가 설치되면서 근대사법은 비로소 모습을 갖춘다. ○일제권력 시녀로 전락 일제 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사법제도 또한 일본의 근대적 사법제도를 그대로 이식받아 외형상 발전됐으나 내용적으로는 일제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는 질곡을 겪었다.이때 우리에게 이식된 대부분의 일본식 법률과 제도·관행의 기본틀은 지금까지 잔재로 남아있다. 48년7월17일 대한민국 헌법공포와 함께 사법부도 민주사법으로 재출발한다.이후 자유당 통치시대를 통틀어 정치권력과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려는 외로운 싸움이 계속됐다. ○시위대 법원청사 난입 특히 진보당 조봉암의 국가보안법위반사건에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자 이승만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법원을 비난하는가 하면 정권의 사주를 받은 시위대가 법원청사와 판사집에 난입,2심에서 판결이 번복되는 일이 벌어졌다.그러나 이 시기에도 동백림사건·한일회담반대시위자 영장기각등 「소신판결」이 잇따라 사법부의 독립의지도 돋보인 시기로 평가된다. 5·16과 10월유신,10·26사건으로 이어진 60∼70년대는 사법부의 시련기였다.「대법관」이 「대법원판사」로 격하됐고 법관의 임명권과 인사권까지 대통령이 장악했다.그 와중에서도 71년6월 대법원은 국가배상법 위헌판결로 소신을 보였으나 같은해 7∼8월 2달동안 법관의 구속에 항의한 전국법관들이 일제히 사표로 맞서는 사태가 벌어졌다.이른바 「사법파동」으로 사법부의 독립과 권위지키기가 시도된 것이다. ○「대법관」 명칭 87년 부활 민주화투쟁으로 상징되는 80년대 초·중반에는 미국 문화원방화사건 법정소란,유태흥 대법원장탄핵소추안 국회발의,김영삼 신민당총재 직무집행가처분신청 인용 등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위협당하는 고난의 시기였다. 87년 25년만에 격하됐던 「대법관」의 명칭이 부활됐으나 88년6월 서울지역 법관 50여명의 개혁요구로 제9대 김용철 대법원장이 조기퇴임하는 「제2차 사법파동」의 진통이 이어졌다. 93년 문민정부출범후 사법부는 진정한 민주사법을 구현하기 위해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지난해 7월 법원조직법 등 사법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했다.사법개혁은 지난 2월 김대통령의 지시로 다시 제2장을 기다리고 있다. ▷명판결들◁ 최근 법관들을 대상으로 「근대사법사상 가장 의미있는 판결」을 물은 여론조사에서 법관들은 ▲71년 국가배상법 위헌판결 ▲82년 김시훈 사건 무죄판결 ▲94년 생수시판금지 위헌판결 등을 대표적 판결로 꼽았다. ○강압에 의한 진술 방지 국가배상법 위헌판결은 국고손실을 이유로 군인·군속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제한한 국가배상법 제2조 단서조항은 위헌이라는 대법원전원합의체의 판결로 당시 최고회의의 비상입법에 대한 유일한 위헌판결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했다. 김시훈 사건은 경찰수사단계에서 작성된 자술서를 피고인이 법정에서 부인할 때는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으로 강압에 의한 진술을 방지해 피의자의 인권을 지켜준 판결이었다. 생수의 국내시판을 불허한 보사부고시는 헌법에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와행복추구권 및 환경권을 침해한 위헌이라고 판결한 대법원의 생수시판금지 위헌판결도 오랜 행정편의주의를 법원이 준엄하게 꾸짖은 대표적 사례였다. ○처 능력제한 무효판결 이밖에 처의 능력제한을 규정한 구 민법은 민주주의의 원리에 반하므로 무효라는 판결(대법원 47·9·2)은 남녀평등 실현에의 「거보」를 내디딘 판결이었으며 검찰에서의 자백에 임의성이 인정되더라도 객관적 상황과 모순되고 객관적 합리성이 없다면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판결(대법원 82·2·1)과 거짓말탐지기의 증거능력을 배제한 판결(대법원 83·9·13)도 명판결사의 대열에 올라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판결들이 법원을 빛낸 영광의 판결이었던 반면 정치적 격변기에 내려진 일부 판결들은 법원이 「힘의 논리」 앞에 굴복한 사례들로 지적되고 있다. ◎법관들의 영원한 사표/가인 김병로/독재 맞서 사법부 독립 추석 마련/일제시대 항일사건 변호 전담 1백건 넘어/관용차 거부 청렴·대쪽법관… 반독재투쟁 일관 후배 법관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법관으로는김병로 초대 대법원장,김홍섭 전서울고법원장,이회창 전대법관 등이 우선 꼽힌다. 특히 가인 김병로는 법관들의 영원한 「사표」로 불린다. 일제때는 항일운동 관련사건의 변호를 전담하다시피 했고 해방 이후에는 독재에 맞서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법언을 앞서 실천해 우리나라 사법부 독립의 초석을 다져놓은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가인은 1888년 1월 전북 순창에서 태어났다.7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12살때 결혼,홀어머니를 모시고 집안일과 농사일을 돌보면서 「소학」과 「중용」「대학」 등 한학을 열심히 공부했다. 1913년 일본 메이지대학 법과를 졸업한 뒤 15년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경성전수학교 조교수를 거쳐 19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 뒤 그가 맡은 독립운동관련 사건만도 안창호와 수양동우회사건,6·10만세운동사건,광주학생운동사건 등 자그마치 1백여건이 넘는다.그러나 만주사변이 일어나 일제의 회유와 탄압이 거세지자 32년 서울 근교 양주군 노해면 창동(지금의 서울 창동)으로 들어가 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농사를 지으며보냈다. 가인의 진면목은 그가 초대 대법원장에 취임한 48년 8월부터 58년 1월 정년퇴임할 때까지 9년 남짓 재임기간 동안 더욱 빛을 낸다.50년 2월 골수염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그였지만 의족과 외지팡이에 기댄채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정면으로 맞서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투혼」을 불살랐다. 먼저 사단은 이승만 대통령의 전횡에서 비롯됐다.52년 봄 자유당정부가 부산정치파동을 전후해서 대통령에게 밉보인 사람들을 마구 얽어매자 법원은 그때마다 무죄를 선고했다.이대통령은 법원의 이같은 판결에 크게 진노했지만 가인은 이를 일축했다. 『판사가 내리는 판결은 대법원장인들 이래라 저래라 말할 수 없는 일이다.무죄판결이 불만이라면 절차를 밟아 상소하면 되는 것이지…』,『나는 단언하노니 재판이나 사법운영에 있어 나의 소신과 양심에 어그러진 판단을 한 일이 없으며 장래에도 없을 것이다.독립된 사법운영에 추호도 양심의 가책을 받은 일이 없다』 가인은 정년퇴임한 뒤에도 자유당 말기의 반민주적 행태와 부정선거를 규탄했으며 5·16쿠데타 때에도 강력히 반대하는 등 반독재투쟁을 벌이다 64년 1월 77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이와 함께 김 전서울고법원장은 고위직 법관에게 제공되는 관용차마저 마다하고 도시락을 싸들고 걸어서 출퇴근하는 「청렴법관」으로,이 전대법관은 소신을 굽히지 않는 「대쪽판사」로 후배법관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 4일 본회의(의정중계)

    ◎노인복지 1천6백억 지원… 의보 확대/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12·12」 처벌안해 군하극상 부추겨/질문/의사상자 보상 현실화·특혜 확대/답변 ▷질문◁ ◇김중위의원(민자당)=도덕성회복을 정책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부정불량식품제조업자·가정파괴범·부실시공업자·마약업자·환경오염업자등을 5대 사회악으로 규정해야 한다.연공서열형 공무원 인사제도를 성과형 인사제도로 바꾸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종은 모두 계약직공무원으로 전환해야 한다.교수평가제도는 물론 각급 학교 교사평가제도도 두어 교육부실도 예방해야 한다. ◇채영석의원(민주당)=「12·12」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규정한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과 검찰의 발표는 어떤 차이가 있나.민주당은 검찰총장을 탄핵하기로 당론을 정했다.검찰발표에 대해 대통령과 총리는 『검찰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는데 검찰결정이 사법적 판단인가.군사반란 관련자들이 죄를 지었다면 그들에게 국가가 수여한 훈장은 회수하고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도 개정해야 한다. ◇박세직의원(민자당)=내각은 지금까지의 개혁성과와 문제점을 소상하게 분석해 본 적이 있는가.더 이상 모든 폐단을 과거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된다.과거의 잘못중에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현정부와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과제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생계조차 어려운 수천명에 달하는 고엽제피해자의 후유증 문제에 대해 정부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할 것인가. ◇국종남의원(민주당)=「12·12」사태에 대한 검찰의 기소유예방침은 법적용의 형평성을 현저하게 상실한 것이고 군의 하극상사건을 더욱 부추기게 될 것이다.세계 2위의 산업재해 왕국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정부의 대응책은.환경전문교사 양성책과 환경교사 충원대책을 밝히라.입법예고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으로 환수하게 될 부정축재 공무원의 재산으로 노인복지사업에 투자할 용의는. ▷답변◁ ◇이영덕 국무총리=국정운영과 문제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언제라도 퇴진한다는 각오로 열심히 일해 나가겠다.열심히 일하는 공직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인사상 대우를 해주는 목표관리형근무평정제도를 시행하고 고급인력의 계약직 공무원채용제도를 확대하겠다.교수평가제는 대학의 연구풍토 확산을 위해 대학 스스로 적극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겠다.의로운 봉사활동을 한 의사상자 보호제도를 교과서에 소개하고 보상을 현실화하는 한편 각종 특전을 확대하겠다. ◇최형우 내무부장관=대형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응급구호체제를 확립해 나가겠다.경찰관직무집행법,보안관찰법등에 따라 국가안전에 위험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등을 대상으로 동향을 파악하고 있지만 그 정당한 한계를 벗어난 인권침해가 절대로 없도록 지도하겠다. ◇김두희 법무부장관=12·12 관련자들은 통치권을 침해하고 군내 지휘계통을 문란시키는등 우리 헌정사를 후퇴시켰다.그러나 과거사 처벌로 국론분열과 안정의 저해가 초래된다면 국가발전에 장애가 올 수 있다.또 이미 형성된 제반질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심각한 고뇌 끝에 국가장래를 위해 검찰의 법률판단이 내려졌다. ◇김숙희 교육부장관=오는 96학년도부터 환경교과목을 초·중·고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위해 새마을 주임교사를 환경교사로 전환하겠다.올해말부터 환경관련 과목이 있는 대학 학과에서 환경교사 자격을 부여할 권한을 주겠다. ◇서상목 보사부장관=생활보호대상 노인 뿐 아니라 전체 노인들의 건강·복지등 종합적인 노인복지를 위해 노인치매센터와 가정간호사를 확대하고 노인들의 의료보험혜택을 한해 현행 2백10일에서 보다 확대하겠다.이를 위해 내년도 노인복지예산을 32% 증액한 6백9억원으로 하고 국민연금기금 1천억원을 지원하겠다.노인복지사업에 지역사회등 민간투자가 늘어나도록 유도하겠다. ◇남재희 노동부장관=블루(노동)라운드에 대비,결사에 관련된 국내법규정등을 면밀히 분석,검토하겠다.지난해 1월부터 올해 9월말까지 임금체불,부당노동행위 등으로 사법처리된 사용자는 구속자 2백75명을 포함,2만7천여명이다.지난해 3월부터 지금까지 복직된 해고근로자는 노동부에 복직신청한 1천5백59명 가운데 5백20명이며 복직근로자가 늘도록 기업단위의 노사협의를 유도하겠다.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도급순위 2백위안의 업체들에 대해 대형공사 안전사고발생 건수를 공개,입찰참여를 제한하고 2001년까지 매년 1천억원씩의 예산을 중소기업 사업장 안전시설확충에 지원하겠다. ◇박윤흔 환경처장관=그린라운드에 대비,환경표준규정을 제정하겠다.97년까지 15조원을 4대강 수질개선등에 투입하는등 2000년까지 환경을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시키겠다.
  • “1국 2대통령” 러정국 대혼미/옐친·의회 통치권 다툼

    ◎군부선 “옐친 지지” 다짐/의회,해산반발 루츠코이대행 선임/헌재소장,총선·대선 동시실시 촉구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21일(한국시간 22일 상오) 최고회의(상설의회)를 전격 해산하고 12월 조기총선 실시를 발표한데 맞서 최고회의가 22일 옐친대통령의 권한을 박탈하고 알렉산드르 루츠코이 부통령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선포함에 따라 러시아정국은 지난91년 보수파의 불발 쿠데타 이후 최대의 혼미상황에 빠졌다. 루츠코이는 대통령 권한대행 지명후 즉각 대통령 포고령을 발표,옐친대통령의 조치를 무효화하는 한편 자신의 지시에 따를 것을 명령하는 등 통치권 장악을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군부 지도자들이 여전히 옐친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고 있고 국민들도 냉담한 반응을 보여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모스크바 시내 최고회의 의사당 주변에 수천명의 시민들이 결집한 것을 제외하고는 22일 현재 러시아는 시위나 병력이동및 군부동요 없이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등서방선진 각국과 독립국가연합 공화국들로부터 지지성명이 잇따르는 가운데 옐친대통령은 22일 상오 국방·내무·보안장관을 대동하고 모스크바 중심가를 돌아보며 『우리는 어떤 폭력도 쓸 의사가 없으며 모든 것을 평화적으로 유혈사태 없이 해결하기를 원한다』면서 정치위기 해소를 위한 무력동원 가능성을 배제했다. 옐친대통령은 또 루츠코이부통령의 권력장악 기도에 대해 『별로 심각한 일은 아니며 아마추어적인 것』이라고 일축하고 독립국가연합 정상회담이 오는 24일 모스크바에서 예정대로 열릴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파벨 그라초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각급지휘관들과 협의한 결과 군부는 옐친대통령을 전폭 지지하고 있으며 국방부는 최고회의에 복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군부대 상황은 평온하다고 강조했다.국방부는 또 러시아 핵무기 발사지휘장치가 옐친대통령의 통제하에 있다고 밝혔다. 그라초프장관은 그러나 일부부대와 군사학교가 최고회의에 의해 보수파 국방장관으로 임명된 블라디슬라프 아찰로프장군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음을 시인했다. 러시아의 정정불안으로 인해 세계주요증시가 폭락세를 보였고 달러화는 강세를 띠었으며 귀금속 가격및 유가는 급등세를 나타냈다. 러시아헌법재판소가 22일 옐친대통령의 의회해산 포고령이 위헌이며 탄핵대상이 될수 있다고 판시한데 이어 발레리 조르킨 러시아 헌법재판소장은 위기상황 타개를 위해 의회·대통령 선거의 동시 조기실시를 촉구했다. 21일밤 비상소집돼 철야로 진행된 최고회의는 옐친대통령의 자격박탈을 표결에 부쳐 출석의원 1백39명중 1백16명의 찬성으로 가결한데 이어 루츠코이부통령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선임하고 국방·보안·내무장관을 해임,각각 후임자를 임명했다.옐친대통령의 최대정적인 루슬란 하스불라토프 최고회의의장은 옐친의 조치를 쿠데타로 규정,퇴진을 요구했으며 전국적인 총파업과 함께 군경에 대해 대통령의 명령에 불복종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앞서 옐친대통령은 21일밤 예고없이 20분간 생중계된 대국민 TV연설을 통해 최고회의와 인민대표대회의 모든 권한을 즉각정지시키고 오는 12월11,12일중 상하원 연방의회를 선출하는 조기총선을 실시한 뒤 대통령선거도 조기에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었다.옐친대통령은 시장개혁을 고의로 저해하고 있는 의회를 제거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이같은 전격적인 조치를 취하게 됐다면서 보수파들이 러시아를 끝없는 혼돈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 유해 봉환 임정요인 5인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민족사상를 고취/박은식/을사조약때 음독/신규식/미서 독립군 양성/노백린/한국노병회 결성/김인전/상민공동회 조직/안태국 ◇박은식(1859∼1925년)황해도 황주태생.1898년 「황성신문」을 창간했으며 1905년 황성신문에 장지연의「시일야방성대곡」을 게재,일제의 탄압을 받게 되자 영국인 배설이 경영하던 「대한매일신보」로 옮겨 주필을 역임하는등 민족언론인으로 민족사상을 고취. 1924년 임시정부의 국무총리에 취임하고 대통령대리를 겸직했으며 1925년 3월에는 이승만대통령의 탄핵면직을 계기로 2대 대통령으로 취임,독립운동에 헌신하다 같은해 11월1일 노환으로 상해의 한 병원에서 작고.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신규식(1879∼1922년)충북 청원태생.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에 비분강개,음독자살을 기도했다가 오른쪽 눈을 실명.1911년11월 중국으로 망명,손문의 신해혁명에 참여했으며 상해·남경등지에서 망명동지들과 함께 독립운동단체인 「동제사」를 조직.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출범과 함께 법무총장에 임명되고 임시의정원 부의장에 선출됐으며 1921년에는 국무총리 겸 외무총장에 취임하는 등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쳐오다 1922년 9월25일 과로로 상해에서 43세로 별세.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노백린(1873∼1926년)황해도 송화태생.1910년 일제에 국권이 침탈되자 미국으로 망명,하와이에서 독립군을 양성했으며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해로 달려가 임시정부수립에 참여하고 군무부총장에 임명됨.1922년 국무총리대리를 거쳐 다음해 국무총리에 정식 취임했으며 1924∼25년까지 국무총리,교통 및 군무총장직을 겸임하다 1926년 1월22일 상해에서 지병으로 별세.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김인전(1876∼1923년)충남 서천태생.1919년 4월 상해로 건너가 이듬해 임시의정원 재무예산위원직을 시작으로 의정원부의장,임시정부 재무부 비서국장과 임시공채관리국장,임시정부의학무총장대리 등을 역임. 1922년 임시의정원 전원위원장에 피선됐고 같은해 4대 의정원의장에 선출돼 임시정부의 의정활동을 이끌었다. 김구·여운형 등과 함께 한국로병회를 결성,군대양성과 독립전쟁의 비용 조달에 주력. 1923년5월24일 과로로 순국.1980년 건국훈장 국민장. ◇안태국(1875∼1920년)평남 평양태생.평양에서 협동사라는 회사를 설립,실업구국운동에 앞장섰으며 이승훈 등과 함께 상민공동회를 조직하고 1917년 신민회가 창립되자 여기에 가입,최고위간부로 활동.1911년 간도의 독립군기지 설치운동과 관련,경찰에 체포돼 징역 2년을 언도받았다.
  • 「두개의 국민투표」에 휩싸인 러 정국/제9차 인민대회이후

    ◎옐친­의회안 내용·시행방법 등 제각각/타협 여지 좁아져… 탄핵·해산공방 예산 보리스 옐친대통령과 의회내 보수세력간의 사생결단의 대결로 러시아헌정사상 최대의 위기를 불러일으켰던 9차 인민대표대회가 4일간의 회기를 마치고 29일 폐막됐다. 회기 막바지에 이르러 전격 상정될 대통령탄핵안이 부결되고 의회가 대통령신임투표에 동의함에 따라 보혁대결은 일단 4월25일 실시될 대통령신임투표에서 승패를 가리게됐다.그러나 투표에 부칠 내용과 투표방법상의 법적용을 놓고 양측간 입장차가 워낙 커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또한 옐친대통령은 이번 9차인민대표대회를 통해 어쨌든 탄핵표결이 강행됐고 96년말로 만료되는 임기를 3년여 남겨 놓고 재신임을 받아야 될 입장에 처함으로써 큰 정치적 손상을 입게됐다. 옐친대통령은 신임투표가 헌법상의 국민투표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지난 91년 대통령선거때 채택된 대통령선거법에 의거해 치른다는 방침이다.이 경우 총유권자 과반수 투표에 투표자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재신임을 받게된다.현재 러시아의 총유권자수는 1억6백만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반면 의회는 이를 국민투표로 규정,전체유권자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재신임의 요건으로 하는 별도의 결의안을 채택했다.전체유권자 과반수 찬성을 고집할 경우 재신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게 중론이다. 투표에 부칠 내용도 옐친대통령은 대통령신임외에 새헌법안,조기총선실시에 대한 가부를 묻기로 한 반면 의회는 ▲대통령신임 ▲현정부의 개혁노선에 대한 지지여부 ▲대통령및 의회조기선거실시에 대한 가부를 투표에 부치기로 했다.옐친대통령은 개혁노선에 대한 가부는 물론 대통령조기선거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쪽으로 방침을 바꾼 상태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양측의 현저한 입장차를 들어 자칫 의회·대통령이 실시하는 「두 개의 국민투표」가 강행될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의회도 29일 전날 자신들이 받아들인 발레리 조르킨 헌법재판소장의 중재안을 무효화시키는 한편,지난 20일의 대통령비상통치포고령도 무효화시키는 결의안을 채택,사실상 타협의 여지를 모두 막아버렸다.따라서양측간 입장차는 사실상 인민대회개막전 보다 더 악화됐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이와함께 양측 모두 의회내에서의 대치는 일단 마감하고 대규모 집회등을 통한 장외세력대결에 돌입함으로써 러시아 정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있다.옐친대통령은 의회의 입장과 상관없이 자신의 구도대로 국민투표를 강행,여기서의 승리를 발판으로 의회해산등 강경책을 구사할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대통령이 추진하는 신임투표는 법적구속력이 없는 여론조사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의회해산등을 강행할 경우 「국민의 지지」라는 최소한의 명분은 얻겠지만 위헌시비는 똑같이 재연될 것이 분명하다. 이 경우 의회에서는 인민대회를 또 다시 소집,대통령탄핵을 재시도할 것이고 그 결과도 이번 인민대회와는 다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달 남짓 남은 국민투표시까지 투표방법에 대해 양측이 과연 어떤 식으로 타협을 이뤄낼지가 최대 관심사항으로 등장했다.그렇지 않을 경우 2개의 국민투표는 물론 보수세력들의 조직적인 투표방해등에 의해 어떤 불상사가발생할지 알수 없기 때문이다.
  • “옐친,클린턴과 회담뒤 정치적 결단/예측불허의 러시아사태 이모저모

    ◎언론,루츠코이에 “대통령병 감염” 비난/기계화사단 1만명 모스크바 향진설 ○장소변경 다시 검토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다음달로 예정된 미·러시아 정상회담 장소를 캐나다의 밴쿠버에서 모스크바로 바꾸는 것을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에게 요청하는 문제를 고려중이라고 아나톨리 크라시코프 대통령실 대변인이 24일 말했다. 크라시코프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옐친 대통령은 최종결정을 앞두고 현재 미국을 방문중인 안드레이 코지레프 외무장관의 협의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고 『가부간의 결정은 24일이나 25일중으로 내려질 것』이라고 밝혔다. 옐친대통령에 대한 자문역할을 맡고 있는 대통령평의회의 한 간부는 이와 관련,『옐친대통령이 현재 모든 선택권을 쥐고 있다』면서 『그가 클린턴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에 러시아 정국안정에 필요한 정치적 결단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루츠코이 부통령은 옐친이 인민대표대회에서 탄핵돼 도중하차되고 새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그 자신이 임시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하스불라토프의장의 언급이 나오자 크렘린에 있는 부통령집무실을 의사당으로 옮기겠다고 주장. 루츠코이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러시아 언론들은 그가 대통령병에 단단히 걸렸다고 하면서도 옐친의 포용력 부족을 지적하기도. ○시민 65% 옐친지지 ○…러시아 TV는 이날 모스크바 시민 2천3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옐친의 비상조치령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 이에 따르면 비상조치령에 대한 지지가 65%,반대 18%,기권 17%로 나왔으며 인물면에서 옐친지지가 65%,루츠코이 지지 20%,기권 15%로 옐친이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파의 본거지인 최고회의 의사당 경비는 우익단체중에서 가장 드센 구국전선의 정예요원들이 맡고 있다고 모스코프스키 콤소몰레츠지가 23일 보도. 이 신문은 또 루츠코이가 옐친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게 된데는 옐친의 비상조치 발표직후 주가노프 공산당당수와 전KGB간부인 스테롤리코프를 만나고 나서 나온 것이라고 폭로. 특히 최고회의 비상회의가 개최되던 21일 의사당 주변의 옐친반대군중집회에 91년8월 쿠데타사건 주범으로 투옥됐다 최근 석방된 루키야노프 전소련최고회의의장이 나타나 『소련만세』를 외쳤다는 것. ○…러시아의 헌정 위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23일 모스크바에서는 지난 91년 쿠데타 때 동원됐던 내무부 산하 최정예 부대가 전투 태세를 갖추고 모스크바로 향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해 긴장을 고조시키고있다. 소문에 따르면 모스크바에서 북동쪽으로 약20㎞ 떨어진 지역에 본부를 두고있는 특별기계화 보병사단인 병력 1만명규모의 제르진스키 부대가 전투 태세를 갖추고 모스크바로 출동중이라는 것. 이에 대해 이 부대의 롭초프 『사단장은 현재 일상적인 훈련중일 뿐 부대 이동에 관한 어떤 지시도 받은바 없다』고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교 68% 개혁찬성 ○…러시아군 장교들의 68%가 현재 군부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23일 러시아 국방부가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밝혀졌다. 이타르 타스통신이 23일 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교중 55%가 도덕적인 이유로 군인을 직업으로 택했다고 대답했으며 32%는 고용 여건때문에,28%는 각종 편의시설 때문에 택했다고 대답. 이같은 조사 결과는 구소련군 시절에 누렸던 특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군조직내의 근무 조건과 생활 여건이 나쁘다고 불평해온 많은 장교들의 입장과 배치되는 것. ○“러 20개 국가로 분열” ○…서방의 즉각적인 지원이 없으면 러시아는 20개의 소국들로 분열될 것이라고 유럽재건개발은행의 자크 아탈리 총재가 23일 경고. 아탈리 총재는 당장 60∼70억 달러의 국제원조가 있어야 옐친 대통령 정부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하고 『앞으로 5주일안에 실질적 협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1년전에 목격했던 일을 다시 보게될 것』이라고 주장. ○…상트 페데르부르그(구레인그라드)시내 중심광장에는 23일 약 10만명의 시민들이 몰려나와 옐친지지집회를 갖고 보수파들을 대규모로 성토. 다음세대 지도자로 유력시되고 있는 소브차크시장은 이날 연설을 통해 『지금은 민주세력이 승리하느냐 공산당이 승리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있다』면서 『우리에게는 옐친말고는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 러시아 보혁 타협에 돌파구/옐친 국민투표철회 제의 함축

    ◎소모정 정쟁에 여론 악화… 의회반응 주목 오는 4월11일로 예정된 국민투표를 앞두고 대통령과 의회사이에 엄청난 소모전을 계속해온 러시아정국이 9일 옐친 대통령의 협상제의로 타협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옐친 대통령은 그동안 국민투표를 통해 강력한 대통령제의 채택과 양원제의 새 의회구성을 명시한 개헌안을 관철시키는데 강한 집념을 보여왔다. 반면 하스불라토프의장을 중심으로 한 의회 보수세력은 경제난의 심화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옐친 여론을 업고 94년 봄 대통령 및 의회총선을 주장해왔다.개헌국민투표 외에 「대통령선거와 대의원선거를 94년봄 실시하는데 동의합니까」라는 항목을 국민투표에 추가시키자고 들고나온 것이다. 내친 김에 대통령뿐 아니라 의회안의 잔여 개혁세력까지 모조리 몰아내버리겠다는 기세였다. 의회나 대통령이나 모두 비밀리에 개헌안을 마련하고 있으나 기실 국민들은 어떤 개헌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질지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양자간 이전투구만 계속 됐다.사회여론도 완전히 조각나 갖가지 제안·선언이연일 신문지면을 뒤덮었다.가브릴 포포프 전모스크바시장·알렉산더 야코블레프 전고르바초프 보좌관등이 주축이 된 22명은 제헌의회의 소집을 요구하고 나섰고 일부에서는 새 헌법채택시까지의 과도헌법채택요구까지 나왔다. 극우보수단체인 구국전선이 옐친대통령의 탄핵을 위한 임시대의원대회의 소집을 요구하고 나오는가 하면 개혁세력결집체인 전련방민주단체협의회는 이에 맞서 지난 6일 하스불라토프의장의 사임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국민투표가 실시된다해도 정치에 식상한 국민들의 투표율이 과연 통과에 필요한 과반수를 채울지조차도 의문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게 제기됐다.이같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조기선거와 관련,옐친은 『의회가 먼저 제의한 94년봄 동시실시는 국정공백의 위험부담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의회와 대통령이 다같이 임기를 1년씩 남겨둔 95년말 대선과 94년 총선 등 분리선거를 제의했다. 이같은 옐친의 새로운 제의에 따라 새 헌법을 채택하는데는 국민투표가 아닌 제3의 방안이 동원될 수 있는 여지가마련된 셈이다.일차적으로는 최고회의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가 주목거리이다.만약 타협이 이루어진다면 조만간 임시대의원대회의 개최가 불가피하다.
  • 옐친의 행로(외언내언)

    러시아가 큰일났다.옐친대통령의 급진개혁을 둘러싼 보수개혁양파싸움이 사생결단의 기세를 보이고 있다.인민대표대회(의회)에서 주먹다짐이 벌어지더니 마침내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중도보수파지배의 의회는 의회대로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맞서고 있다.이렇게 부딪치면 결과는 파국뿐이다. 현재로선 옐친과 개혁파가 궁지에 몰린 국면이다.발단은 급진개혁파 총리 가이다르에 대한 중도보수파 지배의회의 비준거부다.가이다르는 옐친개혁의 진두지휘관이다.그의 사임은 옐친개혁의 사임을 의미한다.그는 대폭적인 가격자유화와 긴축정책을 통한 생산회복과 인플레억제의 급진경제정책을 추진해왔으나 연2천%의 인플레와 20%의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참담한 결과에 쫓기고 있다. 국민들도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힘을 얻은 것은 급진개혁반대의 시민동맹등 중도파와 그에 편승한 보수파다.맹목적 모방이 아니라 러시아토양에 맞는 정책개발을 주장한다.통제와 보호를 유지하는 단계적 자유화와 민영화를 주장하며 급진개혁실패책임의 총리와 각료대폭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타협의 여지가 없지도 않을 것 같은데 쉽지를 않은 모양이다.옐친은 본격개혁이 이제겨우 1년인데 당장의 성과요구는 우물에서 숭늉달라는 식의 성급한 비판이라고 반격한다.하면서도 풀토라닌부총리등 개혁파지도자들을 연이어 사임시키는등 타협의 안간힘을 다했으나 옐친개혁의 마지막 보루인 가이다르의 총리인준을 거부당하는 참패를 당한 것이다. 70여년의 사회주의체제를 하루아침에 자본주의체제로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것이다.피와 땀과 눈물의 국민적 인내와 헌신과 협력이 있어도 시간이 필요한 개혁이다.그러나 국민은 오래참고 기다려주지 않는 것이 민주정치의 현실이다.자칫하면 러시아의 개혁이 큰 혼돈과 좌절의 수렁으로 빠져들지 모른다.개혁혼돈의 동구에선 이미 구공산당 재집권등 복고주의가 나타나고 있다.러시아는 어디로 갈것인가.세기말의 비상한 주목거리가 아닐수 없다.
  • 브라질 하원,대통령 탄핵 가결

    ◎“콜로르부패 인정”… 압도적 표차로 통과/6개월 직권정지… 상원심리 거쳐 확정/프랑코부통령이 권한대행 【브라질리아 로이터 AFP 연합】 브라질 하원은 29일 저녁(한국시간 30일 새벽)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킴으로써 페르난두 콜로르 데 멜루 대통령(43)을 사실상 권좌에서 밀어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는 브라질은 물론 중남미를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이로써 약 4개월간 이나라 정정을 파국으로 치닫게 해온 콜로르 부패 스캔들은 사실상 일단락됐다. 하원의 탄핵소추 결정으로 지난 89년 오랜 군정 끝에 29년만에 처음 실시된 자유선거에서 대권을 잡은 콜로르는 앞으로 최장 6개월간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권한이 정지되며 사실상의 재판절차인 상원 심리를 거쳐 탄핵이 확정된다. 콜로르의 탄핵에 따라 이변이 없는 한 이타마르 프랑코 부통령(61)이 대권을 승계해 오는 95년 1월까지의 콜로르 잔여 임기를 대행하게 된다. 하원은 브라질 전역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실시된 호명 투표에서 재적 5백3명중 탄핵소추에 필요한 3분의2가 넘는 4백41명이 찬성표를 던져 이를 통과시켰다. ◎청렴구호속 부패에 분노의 단죄/중남미 초유의 일… 민주정착 토대 마련/군부 중립으로 의회위상도 한층 강화/해설 브라질 하원이 29일 페르난두 콜로르 데 멜루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압도적으로 가결함으로써 4개월을 끌어온 이른바 「콜로르 게이트」는 일단락되고 이로 야기됐던 브라질정국의 혼돈도 수습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현직대통령을 강제퇴진으로 내몬 이번 사건은 지난 5월 공교롭게도 대통령의 막내동생인 페드루 콜로르가 형의 측근에게 앙심을 품고 한 주간지에 측근들의 부정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시작됐다. 진상 조사에 나선 의회 특별위원회는 3개월에 걸친 조사끝에 대통령보좌관들의 거액횡령사실과 대통령의 친·인척들이 대통령재임 2년6개월동안 2천3백만달러의 뇌물및 상납금을 받은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부정부패가 잦은 남미국가에서 최고권력자가 이같은 스캔들만으로 물러나게 됐다는 것은 아무래도 설명부족이라 할수 있다.관측통들은콜로르의 탄핵성사배경을 ▲부패일소를 내세웠다가 부패에 연루됐기 때문에 동정을 받지 못했고 ▲정치적 영향력이 큰 군부가 중립을 지켰으며 ▲스캔들 공방기간동안 측근들이 그에게 등을 돌려 지지기반이 취약해졌고 ▲국가경제사정이 극히 악화된 점등으로 분석하고 있다. 콜로르는 29년동안의 군사독재끝에 최초로 실시된 89년의 민선대통령선거에서 부패척결과 인플레억제를 제1의 공약으로 제시,폭넓은 국민적 지지와 희망속에 사상 최연소대통령으로 당선됐었다.그러나 지난해말 경제장관과 여성법무장관간의 혼외정사추문이 터진데 이어 금년초 노동사회복지장관과 보건장관의 금융부정사건등 각료들의 부정부패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설상가상으로 부인이 자신의 정부투자단체 회장직을 이용,친정집안의 이익을 추구했다는 비난을 받고 면직당하는 망신이 이어졌다. 이번 탄핵결정은 군부와 군부의 들러리에 불과했던 의회가 이를 계기로 역할과 위상을 재정립할수 있다는 점에서 브라질의 민주화와 관련,긍정적 평가를 받고있다.아울러 오랜 군부독재이후 싹을 틔운 중남미의 민주화가 진전된 징표로서 의미가 깊다. ◎프랑코는 누구/경험 풍부한 정부내 비판론자 브라질 하원의 페르난두 콜로르 데 멜루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로 앞으로 최소한 6개월동안 브라질을 이끌어 가게 된 이타마르 프랑코 부통령(62)은 신중하고 원숙하며 경험이 풍부한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백발에 안경을 낀 학자풍의 외모를 지닌 그는 지난 89년 대통령선거에서 정치적 자살행위라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명에 가까운 콜로르대통령을 지지,사회주의자인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후보를 누르고 승리케 한 원동력이 됐었다. 온화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나 지난 88년 상원의원시절 경제의 국가통제를 위해 투쟁했으며 콜로르대통령 집권초기 정부의 인플레억제를 위한 긴축정책을 비판했었다.91년에는 출신주인 미나스 제라이스주에 있는 국영 우시미나스제철소를 민영화하려는 움직임에 반발,정부에 호된 질책을 가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70년대 부인과 별거했으며 두 딸을 두고 있다.
  • 브라질 대통령 사임 임박/「콜로르게이트」 파문 확산

    ◎의회,수뢰 확인·탄핵심의 예정/민·군도 사퇴압력… 새달 하야설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로 탄핵소추 위기에 직면한 브라질의 페르난도 콜로르 데 멜로대통령(43)이 국정운영 능력을 상실,금명간 사임할 것으로 보인다.지난 89년 첫 직선 대통령에 당선된 콜로르는 현재 의회·국민 뿐아니라 브라질 정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군부로부터도 사임압력을 받고있어 부통령의 승계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의 「9월 하야설」이 정가에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 앞서 브라질의회내 「콜로르 스캔들」에 대한 22인 특별조사위원회는 26일 콜로르대통령이 보좌관들의 거금 횡령사실을 알고 있었고 뇌물을 받았다고 확인하는 보고서를 16대 5란 압도적 표차로 승인했다.3개월에 걸친 조사끝에 이날 채택된 2백쪽의 보고서는 콜로르대통령이 대선운동당시 재무담당이자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파울로 세자르 파라스가 조직한 「공갈단」을 통해 6백50만달러를 부정 착복했다고 발표했다.조사위원들은 이 공갈단이 정부발주 공사등에서 각종 특혜를 미끼로 기업인들로부터 금품을 뜯어냈다고 밝혔다.보고서는 또 콜로르대통령의 가족·인척등이 대통령 재임 2년6개월간 2천3백만달러의 뇌물과 상납금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에따라 하원은 내달 2일 대통령에 대한 탄핵요청을 심의할 예정이다.브라질대통령의 탄핵은 하원의원의 3분의2이상 찬성으로 소추되며 대통령직무가 정지되는 1백80일 이내에 상원의 결의로 가결된다. 일명 「콜로르 게이트」로 불리는 이번 사건이 드러난 것은 지난 5월.놀랍게도 이 사실은 대통령의 막내동생인 페도로 콜로르가 자신의 사업이 형의 측근인 파라스가 지원하는 경쟁사 때문에 타격을 입게되자 한 주간지를 통해 폭로했었다. 대통령의 부정축재혐의가 폭로되자 브라질 국민들은 지난 2주간 연일 사상최대규모의 반정부시위를 벌여왔다.앞서 콜로르대통령은 지난 3월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공직자의 비리행위를 엄중처벌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는 더욱 커져 현재 국민의 70%이상이 그의 퇴진을 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면초가에 몰린 그는 그러나 대통령궁에 칩거,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여전히 권좌에 집착하고 있다. 콜로르대통령은 탄핵소추의 저지선인 하원의원의 3분의1을 확보하기 위해 국고에서 4억달러를 빼내 야당의원 포섭및 서민주택건설과 위생정책에 충당하는등 대통령직 고수를 위해 무분별한 「선심정책」을 펴고있다. 하지만 콜로르의 지지기반은 시간이 지날수록 침몰하고 있다. 이달초 호세 골뎀베르그 교육장관이 선심성 예산을 편성하라는 대통령의 요구에 반발,사임한 것을 비롯해 그의 측근 10여명이 등을 돌렸다.특히 골뎀베르그장관은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어서 콜로르의 충격은 더욱 컸다. 그런가하면 21년간의 군정 끝에 지난 85년 병영으로 복귀한 뒤에도 브라질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군부도 오는 9월7일 독립기념일 이전에 콜로르가 자진 사퇴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반정부시위가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대통령이 경축식장에 참석할 경우 불상사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육·해·공군 장관들이 콜로르에게 사임을 권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하튼콜로르대통령에 대한 탄핵문제와 관련,그가 「정치적 쇼」의 희생양이란 일부의 동정도 없지않지만 30년만에 선출된 최초의 직선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그를 벼랑끝까지 내몰고있다.
  • 야권의 장외투쟁을 보며/권해옥 의원(특별기고)

    ◎「단체장선거」가 민생보다 중요한가/「분산선거」합리성 외면은 국민우롱처사 우리는 작년에 지방의회를 발족시킴으로써 지방자치가 중단된지 30년만에 역사적인 지방자치시대를 다시 열게 되었다. 그리고 금년 상반기중에 실시하도록 되어있는 자치단체장선거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우리의 실정으로 한해에 선거를 네번씩 치르고는 경제와 사회의 안정을 바랄 수 없다는 국민들의 한결같은 여론에 따라 연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구체적인 시기는 14대국회에서 결정하도록 제의한 바 있다. 사실 한해 네번의 선거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형편에 감당할 수 없는 경제·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판단은 차라리 상식에 속할 것이다.연중 선거분위기가 지속될때 전반적인 근로분위기의 해이,산업현장의 인력난심화,막대한 선거자금조달과 살포로 인한 기업자금압박과 과소비 물가상승유발 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선거관리에 쏠리는 행정의 공백을 틈탄 불법·무질서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그야말로 「선거망국」을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예정대로 단체장선거를 실시할 경우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현행 단체장선거일정으로는 선거횟수의 과다와 각종 선거의 연속·집중에 따른 사회·경제적 부담과 부작용을 근원적으로 방지할 수 없다는 점이다.즉,지방의원과 단체장의 임기개시시점이 1년의 시차를 두고 있어 지방의원과 단체장선거의 동시실시가 불가능하게 될 뿐 아니라 시·도지사및 시장·군수 또는 시·도및 시·군의원의 동시선거조차도 정당참여의 차이 때문에 불가능하여 선거횟수를 줄여나갈 수가 없게 된다.앞으로 20년동안에 예정된 29번의 선거중 무려 20번이 지방선거라는 점은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또 이렇게 대폭 늘어나는 지방선거가 국회의원선거와 주기가 불규칙적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각종 선거가 한해에 지나치게 집중되거나 몇해에 걸쳐서 연속되는 현상이 매 4년마다 나타난다는 점이다. 둘째,우리의 오랜 중앙집권적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감안할때 지방의회가 구성된지 불과 1년만의 단체장선거는 급격한 지방분권화 이행을 가져옴으로써 국가사회적 혼란과 부작용을 충분히 소화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지방자치의 안정적 정착이나 국정의 효율적 수행 측면에서 볼때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특히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엄존하고 있고 지나치게 과열되고 금전·지연·혈연 등에 얽매이고 있는 전근대적인 선거풍토에서 성급한 단체장선거는 인격과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당선되기보다는 정치꾼이나 졸부들의 잔치판이 되기 쉬운 현실을 감안할 때 더욱 우려된다. 정치권의 합의라는 명분만으로 심각한 문제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고집하는 것은 국민의 살림살이와 나라형편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자세라 아니할 수 없다.작년의 지방의원선거,올해의 단체장선거일정은 90년 경색된 정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여·야간에 정치적 타결을 서두르다 보니 위에서 지적한 문제점들을 자세히 고려하지 못한것이 사실이다.문제가 있다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라도 발전적인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바른 길일 것이다.정부가 합리적인 대안을 담은 법개정안을 이미 국회에 제출했는데도국회는 개원조차 아니하고 단지 선거공고일을 넘겼다는 이유로 탄핵운운하며 장외공세나 벌이는것은 책임있는 정당의 자세로 보기 힘들다. 정부가 제시한 95년실시방안은 그동안 전국순회공청회등 각계각층의 충분한 여론수렴을 거쳐 작성된 것이다. 정부안은 제2대 지방의원선거와 동시실시함으로써 선거횟수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고,급격한 지방분권화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부작용을 방지할수 있는 제도정비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간확보라는 점에서 상당히 합리적인 방안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야당에서는 단체장선거를 연내에 또는 늦어도 연말 대통령선거와 동시에 실시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불과 6개월 사이에 3번의 선거를 치르자는 것은 전혀 현실감각이 없는 주장이다.솔직히 대통령선거 하나만 치러내는데도 엄청난 국력이 소요되고 그렇지 않아도 정부이양준비기의 행정누수현상이 심하다고 하는데 지역행정의 책임자인 시·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까지 일시에 교체할 경우 일어날지도 모를 국정공백과혼란을 누가 감당하겠는가.그리고 대폭 늘어나게 될 선거관리업무와 방법상의 차이로 인한 착오등으로 빚게 될 각종 시비는 차치하고라도 우리정치현실에서 대통령선거와 시·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 선거는 지역감정을 망국적인 상황으로 증폭시키게 될 것이다. 또 야당에서는 단체장선거연기를 행정선거의도로 왜곡시키고 있는데 행정의 선거관여는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수준과 민간단체·언론·지방의회의 활발한 감시활동을 감안할때 불가능한 일이며,오히려 어설픈 행정개입은 감표요인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이러한 모든 문제와 당면한 민생문제를 진지하게 토의하기 위해서 지금이라도 즉시 국회를 열어 국민의 소리를 진지하게 토의하여야 할 것이다.
  • 아쉬운 정책대결(대선정국:14)

    ◎국민여망 좇아 민생문제 우선해야/인기에 영합,「아파트반값」등 공약 안될말/여곤 등진 야의 단체장선거 강행도 무리 우리 국민중에 현시점에서 경제 및 민생문제 해결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가깝게는 14대국회개원에 즈음해,멀게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민이 정치권에 바라는 제1차적인 요구사항도 역시 경제문제해결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최근 믿을 만한 여론조사기관으로 손꼽히는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여론조사에 의해서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검증됐다.이 연구소가 20세이상 일반국민을 대상으로한 표본조사에서 경제안정(17.9%)물가안정(16.4%)등 경제문제해결에 대한 기대가 단체장선거실시(0.1%)등 정치적 요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던 것이다. 이같은 결과는 여야정치권이 현시점에서 지향해야할 정상궤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다.다시 말해 여야는 인기영합성 정치적 구호에 매달릴 게 아니라 민생·경제문제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조사에서 나타난 주목할 만한 사실은 14대국회개원문제와 관련,야당측의 「단체장선거­개원」연계전략이 국가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수 국민이 현재의 경제·사회적 어려움을 감안,총선·단체장·대선등 선거를 1년에 3번이상 치르는 것은 무리라는 논리에 묵시적으로 동의하고 있음을 말해준다.또한 단체장선거의 연내실시라는 야당측 요구도 그 주장의 적실성 여부는 차지하고 「장외」보다는 국회 내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대명제를 재확인해주고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야당측이 현행 지방자치법상 단체장선거 공고일인 12일까지 국회개원에 불응,정부측의 지방자치법 개정안 처리기회를 원천봉쇄한 것은 설득력없는 정략적 태도로밖에 볼 수 없다.더욱이 이같은 저간의 사정에도 불구,현행 지방자치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대통령과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것은 여권에 대한 「흠집내기」차원의 공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왜냐하면 민주·국민 두 당의 의석수를 합쳐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발의 정족수는 물론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의결 정족수(모두 재적의원 과반수)에 크게 미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같은 대여 흠집내기공세로 이번 대선에서 「반사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과거 「야당탄압시대」에나 통했던 낡은 사고방식이라는 지적이다.우리 사회가 더 이상 「민주·반민주」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민주화·다원화의 단계에 접어든 만큼 「상대당의 불행이 우리당의 행복」이라는 제로섬 게임식 발상도 통용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가올 대선을 앞두고 야당측이 국민의 지지기반을 넓히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면 장외에서 실현불가능한 정치공세로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는 것보다는 의정단상에서 여권의 정책부재를 지적하고 민생분야에서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단체장선거 연기 또는 연내실시문제는 국회내에서 민주적 토론과 표결절차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며 차기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에 의해서도 최종결론이 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 및 민생문제에 대한 정책대결이 가장 바람직하고 시급한 과제라 할지라도 그같은 정책제시는 실현가능한 내용이라야 할 것이다.이는 우리 정치가 「말의 성찬」이 아닌 「실천의 정치」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선결요건이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당측이 「아파트 반값 공급」등 국민적 인기를 겨냥한 「공약」을 내건 바 있다.그러나 국민당의 모태라 할 수 있는 현대건설측이 아파트분양과정에서 보여준 행태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주장이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황당무계한 「공약」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같은 견지에서 볼때 차기 대선은 여야후보들의 정책대결의 장이 되어야 하겠지만 실현가능성도 없이 각계각층의 모든 부문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한 경연장이 되어선 안된다는 지적이다.다시 말해 농촌에 가선 재원마련대책도 없이 무조건 추곡수매가를 대폭 올려야 한다며 농민표를 구걸하고,자신의 모든 정치자금을 가명계좌로 관리하면서 당장 금융실명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의 모순된 정치행태를 더 이상 계속한다면 양식있는 유권자들로부터 배척당할 것이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이상룡선생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무력으로 독립쟁취” 만주 항일투쟁 이끌어/한일 합방직후 망명,신흥무관학교 등 설립/독립군단체 통합 주도… 임정국무령도 역임/의병활동·교육자로 평생 구국활동… “광복전 유해 옮기지 마라” 유언도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길이 본받기 위해 서울신문사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역임한 이상룡선생이 선정됐다. 5월의 독립운동가 이상룡선생은 1896년 경북지역의 의병으로 활동하다 한일합방이후인 1911년 만주로 망명,그곳에 한인사회를 건설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독립전쟁을 위한 인재양성과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 1926년 1월 국무령을 사임한 이 선생은 32년 5월12일 74세의 노령으로 중국 길림성에서 서거했다. 이 선생의 생애와 사상 업적을 되새겨 본다. 1925년 3월23일 상해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은 미국의 위임통치안을 제안한 이승만대통령을 탄핵면책하고 국무총리 박은식을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박은식대통령은 임시정부헌법을 대통령중심제에서 내각책임제로 개헌하고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국무령에 만주지역에서 가장 큰 독립운동단체인 한족회와 통군부를 이끌던 이상은선생을 지명했다. 1911년 만주로 이주한 이 선생은 만주에 항일독립운동기지를 만들어 청년들에게 군사교육을 시키는 한편 동포들에게 독립운동의식을 고취,신망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이 국무령은 만주에서 독립군을 지휘하며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서온 김좌진·오동진·김동삼 선생들을 국무위원에 임명하고 임시정부가 활발한 무장독립투쟁을 이끌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국무위원들은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창조파와 개조파,국내파와 해외파 등으로 나뉘어 임시정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1926년 1월 이 선생은 초대 국무령을 사임하고 다시 만주에 돌아와 독립운동조직인 의정부·신민주·참의부의 통협에 심혈을 기울이고 힘썼다. 윤봉길의사가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일본 군국주의 지도자들을 살해한 뒤 12일만인 1932년 5월12일 이 선생은 74세로 만주 길림성 소성자에서 『외세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더욱 면려하여 독립을 관철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노환으로 선거했다. 70평생중 반세기에 걸친 이 선생의 일관된 구국노력은 의병활동·민족계몽운동·독립군지도자·임시정부 정치지도자·교육자·사상가 등 당시의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32년 74세로 별세 이 선생의 깊은 학식과 큰 인품은 조국은 되찾겠다는 의지와 정열로 승화되어 민족진영이나 사회주의 진영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많은 추종자들을 낳았다. 이 선생은 1858년 11월24일 경북 안동에서 유학자 이승목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문가의 후예로 태어난 이 선생은 유학자로서의 학문적인 수업을 쌓다가 1896년 일자 명성왕후를 시해하자 영남지방의 의병에 참가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지방유지들과 합자,가야산에 군사기지를 건설할 계획을 계획을 세웠으나 자금부족과 일본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선생은 김동삼 등 동지들과 안동에 대한협회 안동지부를 결성,민족각성과 청소년 교육등 민족자강운동에 헌신했다. 1910년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자 이 선생은 국내최대의 항일비밀경사 신민회에 가입했다. 신민회는 전국 13개 도의 유지들과 부호들을 규합,만주에 거대한 조선인 자치구를 설립할 목적으로 이민을 모집하고 있었다. 이시영·이회영·이동영·주진수·김창환 등 구한말의 관리와 양반·선비들은 가산을 정리하고 무인지경이던 만주로 이민을 떠났다. 1911년 4월 53세의 이 선생은 52명의 대가족을 인솔하고 만주로 이주했다. 이 선생은 만주의 땅을 매입하여 조선인 촌락을 만들고 학교와 교회를 설립,청년들을 교육시키고 무관학교를 세워 독립전쟁을 일으킬 목적으로 동지들과 함께 개척이민의 선두에 섰다. 이 선생은 만주에 도착하자마자 유하현 삼원포에 거류민단조직인 경학사를 설립,사장에 취임했다. 경학사는 1914년 부민단으로 발전되고 신흥학교를 설립,인재를 양성했다. 이 선생은 3·1운동직후에는 한족회를 설립,동포들에게 민족자긍심과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한인청년들을 신흥무관학교에 입교시켜 1천여명에게 군사교육을 받게 했다. 이 선생은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는 무장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독립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서로군정서를 설립,총재에 취임했다. 부총재에는 여준,정무청장은 이탁,참모부장은 김동삼,독립군사령관엔 지청천을 임명,일제에 항거하는 한편 국내 진공작전계획도 세웠다. ○서로군정서 총재 당시 만주에는 3·1운동이후 일제의 탄압과 만행에 시달린 조국의 열혈청년들이 대거 이주해와 2천여명을 무장킬 수 있었다. 이 선생의 서로군정서 조직은 당시 해외독립운동단체중 최대규모였다. 1919년 4월13일 이동영·이시영선생이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자 이 선생은 『한민족에 두개의 정부가 있을 수 없고 광복운동에는 단결이 가장 큰 선결조건』이라는 이유를 들어 참모들을 대동하고 임시정부 산하의 군사조직으로 들어갔다. 이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에서는 외교와 내치·재정을 담당하고 만주의 항일무장세력은 단결해서 군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부하들을 설득,조선의용대를 조직하고 북만주와 시베리아에서 활동중인 홍범도·이동주 등과 항일연합전선을 펼 것을 모색했다. ○통군부 확대개편 이선생은 1920년초 북경에서 개최된 조선인 군사통일회에 참가,박용만·신숙 등과 군사기구의 통합방안을 협의하고 22년 6월에는 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이룬 통군부를 조직했다. 그뒤 이 선생은 통군부를 다시 확대개편하여 17개 독립운동단체로 하여금 통의부를 구성하는 등 독립군의 군세확장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전통깊은 유학자집단에서 태어나 성장한 이 선생은 다른 독립운동가들과는 달리 외교나 교육에 치중하지 않고 일생동안 무력항일투쟁만을 주장했다. 조국광복을 위해서는 일본제국주의와 무력으로 싸워서 이기는 수 밖에 없고 이를 위해서는 중국·소련 등과 연합해서 독립군을 조직,화력과 무장을 갖추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1925년 3월 미국에 체류하면서 위임통치를 주장하던 이승만대통령이 탄핵되자 국무령에 취임한 이 선생은 임시정부를 독립군지휘관으로 구성,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려고 작정했다. 그러나 이 선생의 구상은 내분으로 결실을 보지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되자 26년 1월 국무령직을 사임하고 다시 만주로 돌아왔다. 만주에 돌아와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지도하던 이 선생은 일본이 만주국을 설립한 32년 5월12일 노령으로 별세했다. 『국토를 찾기전에는 내 유해를 고국에 싣고 가지말라』고 한 유언을 남김으로써 이 선생의 유해는 광복된지 45년만인 90년 9월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중국 흑룡강성에서 봉환,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유족으로는 증손자인 항회·범회씨가 서울에 살고 있으며 선생의 기념사업회 결성을 준비중이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역사적 평가/20년대 독립군총사로 불멸의 업적 석주 이상룡 선생은 70생을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민족지도자였다. 이 선생은 1896년부터 1910년까지 향리에서는 의병의 지도자로서,민족계몽운동가 또 2세교육자로 활동했으며 1911년 만주로 이전해서는 민족의 선구자로서 역할을 다했다. 이 선생은 독립운동의 방략으로 교육·산업운동과 항일무장투쟁을 병행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이를 동지들과 함께 실행에 옮겼다. 그는 만주의 한인사회에서산업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동포들의 법적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중화민죽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는등 외교적인 노력을 통해 한인들의 권익옹호에 앞장섰다. 이 선생은 이주한인들의 생업을 위해 벼농사를 적극 권장,지도해 만주에서 쌀을 생산했으며 경제적인 기반이 마련된뒤 독립군을 조직했다. 그는 경학자·부민단·한족회·군정부·통의부·정의부·혁신의회 등으로 이어지는 항일 민족독립운동단체를 직접 지도해 만주지역의 민족지도자로서 불멸의 자취를 남겼다. 이 선생은 노년에는 김동삼을 위시한 여러 혁명가들을 지도함으로 써 항일대열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1923년 해외 항일독립운동단체의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상해의 국민대표회의에 김동삼을 파견,6개월동안 의장을 활동시켜 항일독립운동의 전략·전술을 수립하게 했다. 유학자로서,의병으로서,때로는 민족의 교육자요 지도자로서 다양한 역할을 하던 이 선생은 1932년 5월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망명지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그의 혁명가적인 행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귀감이 되어 남을 것으로 확신한다.
  • 「브란트 이라크행」 EC에 파문/“인질석방 개별외교” 싸고 논란

    ◎“거대독일이 「공동대처」 결의 깼다” 콜총리 맹공/“12월 전독총선 겨냥한 사민당 승부수” 분석도 빌리 브란트 전 서독총리의 바그다드행차가 유럽공동체(EC)내에 불협화음을 조성하고 있다. 브란트는 지난 5일 바그다드에 도착,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만나는 등 독일인 인질석방 교섭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인도적 사명」임을 앞세운 브란트의 바그다드행이 EC 국가들 사이에서 말썽을 빚고 있는 것은 『정부차원의 개별협상을 말자』는 EC 정상들의 로마 합의가 이루어진지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라크에 억류되어 있는 인질들을 빼내기 위해 각국은 그동안 노련한 외교관 또는 고위급의 정치인들을 바그다드에 보내 민간차원의 활발한 교섭활동을 펴왔으며 브란트가 현지에 머물고 있는 기간에도 일본의 나카소네(중증근) 전 총리가 후세인과 만나 모두 1백6명의 인질들을 석방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또한 덴마크의 앙케르 요르겐 센 전 총리와 뉴질랜드의 데이비드 롱이 전 총리도 금명간 바그다드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같은 각국의 「개별행동」은 대 이라크 응징을 위한 공동전선에 균열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따르고 있는게 사실이지만 브란트의 행동이 유럽사회에서 유독 눈총을 받고 있는 것은 「거대독일」이 EC 전체 의사를 가볍게 여기려는 징후가 아닌가 또는 EC통합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브란트의 바그다드행이 발표되자 네덜란드 정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로마 정상회담에서의 약속이 있은지 불과 5일만에 발표된 브란트의 바그다드행을 예의 주시하겠다』며 로마회의에서 인질협상에 반대하는 결정을 내리자고 가장 강력히 주장한 장본인이 바로 헬무트 콜총리임을 지적,브란트의 행동을 막지 못한 콜정부가 못마땅하다는 지적을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독일 국내에서도 브란트에 대한 탄핵의 소리가 만만치 않다. 외무장관을 역임한 막스 반데르 스토엘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대를 철수케 하려는 국제적 공동노력을 브란트가유치한 국내정치 놀음에 이용하고 있다면서 『이는 오로지 이라크 지도자들의 콧대만 높여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나무랐다. 공식적으로는 「개인자격」으로 발표됐지만 브란트의 바그다드행에는 기민당정부의 지원과 협력이 크게 뒷받침된게 사실이다. 그가 인질들을 싣고 나오기 위해 타고간 항공기는 정부가 전세낸 루프트 한자기이며 그 비행기에는 이라크에 답례로 줄 의약품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당초 브란트측에서 바그다드방문 의사를 비췄을 때 콜 총리는 반대의사를 표시하다가 48시간도 안되어 정치참모들을 모아 놓고 어떻게 하면 정부가 외교적 손상을 덜 입고 브란트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인가를 숙의했다는 후문이다. 콜은 또 EC 의장인 이탈리아의 길리오 안드레오티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브란트의 바그다드행이 독일정부의 단독행동이 아님을 누누이 설명하고 이를 EC 차원에 연결시켜 파악할게 아니라 유엔활동의 하나로 인정해 주도록 케야르 사무총장에게 요구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상(자민당)도 EC내의 자민당 지도자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등 정부차원의 면책작전에 심혈을 기울여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바그다드행을 실천에 옮긴 브란트 측으로서는 오히려 기민당정부와는 정반대의 정치적계산을 바탕에 깔고 있음을 쉽게 점칠 수 있다. 브란트의 사민당측은 이라크 인질문제를 오는 12월2일의 역사적인 전독 총선을 앞두고 있는 미묘한 정치상황에 적절히 이용하고 있는 느낌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71년도)이며 총리를 역임한 브란트는 독일인 인질석방교섭에 나설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인물로 꼽혀 왔으며 석방된 인질들과 함께 금의환향 하는 장면은 선거를 앞둔 사민당진영이 결코 놓칠 수 없는 호재로 판단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게다가 선거에서 꺾어야할 기민당의 콜총리가 주동이 된 EC 정상회담의 합의내용을 염두에 둘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역행함으로써 기민당에 정치적 부담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음직하다. 인질석방이 이루어질 경우 국내 정치게임에서 브란트의 사민당이 콜의 기민당에게 멋진한판의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EC 차원에서 볼때는 별로 탐탁치 못한 행위로 비치고 있는게 문제이다. EC는 5일 로마에서 긴급외무장관회담을 소집,이 문제를 논의했으나 「개인적 행동」이었다는 독일측의 설명에 따라 지난번 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을 재확인 하는 선에서 그쳤다. 인도적 사명을 앞세운 브란트의 바그다드행을 각국이 정부차원에서 비난하고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EC 각국은 민간외교나 또는 다른 명분들을 내세운 개별행동이 국제적 위기에 행동통일로 대처해 나간다는 EC의 목표를 일그러뜨릴 위험성이 있다는데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브란트의 바그다드행은 지난번 정상회담 합의내용을 두고 정치적 통합을 앞당길 수 있는 EC 공동외교정책 수행의 시범 케이스 라고 떠들썩하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었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
  • “국회해산” 야 공세 민자의 법리 대응

    ◎“총선불가”… 대치정국 새 국면/“현행헌법에도 위배… 어거지 주장”/경제상황 고려,선거 부작용 홍보 임시국회이후의 여야간 대치정국은 야권의 의원직 사퇴,국회해산 및 조기총선 실시주장을 민자당이 헌법을 짓밟은 발상이라고 반격하는 법리론을 전개함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민자당측이 지금까지 지난 임시국회때 법안의 일방처리를 유도한 평민당측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던 전략을 수정,법리론으로 맞서기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벼랑끝으로 몰고가는 야권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방송관계법ㆍ국군조직법중 문제조항의 수정 ▲문공위의 폭력사태 및 야권의 법안상정 실력저지 ▲민생관련 법안의 처리불가피성 등 평면적인 논리로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민자당은 이에따라 국민의 절대다수가 경제불안을 이유로 조기총선 실시를 반대한다는 여론결과에 착안,총선이 실시될 경우 예상되는 정치ㆍ경제ㆍ사회불안 외에 현행 법체계상으로도 국회해산과 총선실시는 불가능하다는 논리로 여론에 호소키로 전략을 세운 것 같다. 민자당측이 18일의 소속 국회의원 및 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에 이어 19일의 당무회의에서 채택된 당의 공식입장은 「개헌이 전제되지 않는 한 국회해산과 총선실시는 불가능하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88년 2월25일부터 발효된 현행 헌법은 당시 야당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회 해산관련 조항을 삭제했기 때문에 국회의원의 4년 임기를 보장한 헌법 제42조에 의거,국회해산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민자당의 주장이다. 설령 야권의 요구에 따라 국회의원이 전원 사퇴하더라도 총선이 될 수 없으며 13대 국회의 잔여임기기간인 1년6개월을 채우는 보궐선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자당측은 이처럼 총선이 자주 실시될 경우 현재 극심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우리 경제가 이를 감당해 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야권의 총선실시주장은 국가장래를 도외시한 당리당략차원의 술수에 불과하다고 몰아붙이고 있다. 게다가 전국구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했을 경우 보궐선거에서는 다시 의원직에 지명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 등록된 순서에 따라 예비후보가 승계해야 하며 승계자가 없을 땐 궐석이 돼야 하는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다. 야당측은 총선실시의 근거로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는 헌법조항(72조)을 내세우고 있으나 민자당은 법안의 일방처리나 3당통합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특히 야당측이 『헌법이 국회해산 명문규정이 없기 때문에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결의로 국회해산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우리 헌정사에서 비정상적인 헌정 중단사태의 실례로 꼽히고 있는 「이승만 전대통령의 논리」를 인용,맞서고 있다. 즉 이 전대통령이 6ㆍ25전쟁중 부산피난시절 국회를 해산시키기 위해 『헌법에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규정도 없지만 국회해산금지 규정도 없기 때문에 국회를 해산시킬 수 있다』고 했던 억지논리를 빗대어 『야당측이 편의에 따라 헌법을 해석,국회를 해산하는 선례를 남길 경우 훗날 여권도 자신들의 정치적인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회를 해산시킬 수 있다』면서 야권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이밖에도 우리의 권력구조는 대통령중심제이기 때문에 설령 야당의 요구대로 국회가 해산돼 총선이 실시되고 야당이 압도적인 우위의 의석을 확보하더라도 그것은 국회의 구성비율에만 변동을 가져올 뿐 야권이 정치공세의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정권퇴진으로는 연결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은 재임기간중 탄핵소추에 의하지 않고는 임기가 중단될 수 없다는 사실을 대통령중심제의 전형으로 꼽히는 미국이 입증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경우 매 2년마다 실시되는 중간선거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두어도 우리의 야당처럼 그것을 정권퇴진의 논리로 비약시키지 않는다면서 야권정치공세의 예봉에 맞서고 있다. 그러나 야권은 지금까지 법논리보다는 정치논리가 여론에 보단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던 헌정 40년의 관행을 근거로 의원직사퇴­국회해산­총선실시라는 이미 정해진 수순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하고 있다. 비록 헌법상 국회해산의명문규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평민ㆍ민주당의원 79명이 모두 사퇴할 경우 민자당이 야당이 없는 여당만의 일당국회를 고집할 수 있겠느냐는 계산인 것 같다. 또 민자당이 이미 표명한대로 사퇴서를 반려하더라도 다시 사퇴서를 제출하게 되면 여당의 사퇴서반려전술도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9월 정기국회이전까지 여야의 공방과 대결해소를 위한 막전ㆍ막후의 절충은 계속 되겠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여론이 여야공방의 강도와 타협의 수준을 가늠하는 데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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