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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L사건 진상파악 나서야(사설)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워싱턴방문중 언급한 KAL007기 격추사건 진상규명 약속은 이번 미소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획기적인 핵 추가감축 이상의 큰 의미로 우리에게 와닿는다.지난 83년9월1일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공군기에 의해 자행된 KAL기격추사건은 그 진상이 아직도 베일에 싸인채 우리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있다.소련은 왜 비무장 민항기를 격추했으며 탑승객 2백69명 전원을 몰사시킨 이 반문명적인 격추명령은 누가 내린 것인지.KAL기의 블랙박스는 과연 회수된것인지.또한,믿어지지는 않지만 일부의 주장처럼 생존자도 있는 것인지.이런 의문들이 규명되고 진실을 바탕으로 이 사건이 정리되지 않는한 한·러시아 관계의 진정한 진전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에 옐친대통령은 KAL기 격추사건의 전모를 밝힐 극비문서를 추적중이며 발견될 경우 즉각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그는 각종 사건에 얽힌 소련의 어두운 과거를 반추하는 가운데 『우리는 외국 사람들에게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면서 러시아의 새로운 의지를 거듭천명했다. 2년전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소련비밀경찰이 1940년 카틴 숲에서 약 1만5천명의 폴란드 장교를 학살한 것을 입증하는 KGB 문서 2상자를 폴란드 정부에 넘겨주었다.이전까지 소련은 나치군이 카틴 숲 학살사건의 장본인이었다고 주장했었다.소련이 거짓말을 해온 부도덕한 과거를 자인하면서 이 사건의 진상을 털어놓기란 결코 쉬운게 아니었다.그러나 국가관계란 진실을 통해서만 진정한 쇄신과 이해의 길을 찾을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고르바초프는 그렇게 했다. 우리는 올가을 서울을 방문하는 옐친대통령으로부터 KAL기 격추사건의 진상이 담긴 문서상자를 넘겨 받을수 있기를 바란다.그리고 새로 규명된 진실에 기초한 모스크바의 정중한 사과도 기대해본다. 옐친대통령이 이번에 언급한 극비문서란 작년 8월 쿠데타를 좌절시킨후 장악한 KGB와 공산당중앙위 산하 문서보관소에 보관돼 있던 서류들이다.이 문서들은 소련공산당 통치사 74년이 남긴 역사의 많은 의문을 풀어줄 열쇠로 인식되고 있다.보도에 따르면 프랑스는 지난2월35억프랑의 원조를 제공하고 1837∼1915년까지 80년간의 러시아·프랑스 관계 비밀자료를 러시아로부터 넘겨 받았다.체코도 체코공산화과정및 68년 체코민주화 탄압과 관련한 소련측 비밀자료의 양도를 약속받았다. 유럽과 아시아의 각국 공산당들은 이 문서보관소에서 공산당관련 각종 자료를 마이크로필름으로 대량 전사해 갔다.일본은 수십명을 동원해 일본관련 문건을 바쁘게 찾고 있다고 한다.우리도 서둘러 모스크바의 문서고로 달려가 한국관련자료의 탐색과 수집작업을 벌여야 한다. 소련은 KAL기사건뿐만 아니라 시베리아의 광복운동,적군과 김일성,스탈린과 6·25등 우리 현대사에 많은 여백을 남겨 놓았다.이 여백을 메우기 위해선 정부와 학계의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관민합동자료수집단을 구성,운영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동안 KAL기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피해당사자인 우리보다도 미·일의 전문가나 민간단체들이 더욱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던 일을 되돌아볼때 우리의 각성과 주도적인 자세가 요청되는 때라고 생각된다.
  • 왜 시설공개·사찰수용 했나(북한핵:8)

    ◎서방접근의 지렛대로 활용/동굴 1만여개… 지하핵기지 은폐 의혹/공산권붕괴 파동 막기위한 생존카드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대해 자신이 갖고 있는 핵시설을 공개한 이유에 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북한은 IAEA의 사찰에 대비해 대부분의 핵시설과 이 시설에서 만들어진 플루토늄및 핵무기를 다른 곳으로 빼돌렸기 때문에 자신있게 IAEA 조사단을 맞이할 수 있었다는 견해가 첫번째로 꼽힌다. 또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으로 더이상 핵개발을 추진할 여력이 없으며 서방세계의 경제협력을 얻는 대가로 실제로 핵개발에서 손을 뗐기 때문에 떳떳하게 공개하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견해가 서로 엇갈리고 있다. 전자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북한의 성실성을 의심하는 근거로 ▲북한이 군사기지에 대한 불시사찰이 가능한 남북한 상호사찰을 극구 거부하고 있고 ▲위성에 포착된 사진에 녕변원자력단지를 빠져나가는 트럭들의 행렬이 나타났으며 ▲북한에는 1만1천여개의 지하동굴이 있고 그들의 땅굴굴착기술로 보아 지하핵기지가 있을 수 있는 점등을 든다. 이들은 북한이 재래식 무기로는 남북한간의 군사력비교에서 절대로 우위를 점할 수 없기 때문에 재래식 무기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핵무기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설사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에 사용할 뜻이 전혀 없다 할지라도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여러가지 이익에 흥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실제로 북한은 「핵카드」를 이용해 지금까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남한지역의 전술핵무기를 철수시켰고 노태우대통령으로하여금 지난해 11월8일 핵부재선언을 하게 한 것은 그들이 얻어낸 최대의 수확이라는 측면도 있다. 북한은 또 북경 등 제3국에서 지금까지 23차례나 성사된 미국과의 접촉수준을 참사관급에서 그 이상으로 격상시키려고 애써왔다.그러한 시도는 지난달 아놀드 캔터 미국무부 정무차관으로부터 김용순 당국제담당비서의 서한에 대한 답신을 받아냄으로써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이와함께 그들의 핵을 최대 쟁점으로 부각시킴으로써 공산권의 와해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위치를 고수하는 효과,즉 인권과 정치탄압에 대한 세계의 시각을 전환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후자의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북한이 기술력은 몰라도 플루토늄재생산을 위한 시설을 운용할 경제적 능력이 없으며 궁극적으로 핵에 의존할 상황을 상정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김일성이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여러차례 강조한 사실과 『핵을 사용한다면 남쪽을 향해 사용하는건데 왜 우리 동족을 대량살상하는 무기를 사용할 것인가』라며 완강히 부인한 사실에 상당한 신뢰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또 북한당국자가 IAEA 임시사찰단에게 『다른 어느 나라에도 핵시설을 공개할 용의가 있으며 IAEA가 원한다면 사찰대상목록 이외의 시설까지 보여주겠다』고 말한 것을 액면 그대로 믿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북한이 현재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이를 숨기고 있든,북한이 미정보기관의 주장처럼 수개월 또는 1년내에 핵폭탄을 만들 능력을 갖추고 있든,그리고 그 능력이 핵무기를 제조하기에 아직 먼 수준이든 간에 분명한 것은 북한의 핵문제는 한반도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재처리시설을 갖고 있지 않다는 종전의 주장에서 녕변 방사화학실험실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했다는 쪽으로 전환했다.어느 시점에 가면 그들이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진 고속증식로(FBR)또는 핵폭탄제조에 충분한 양의 플루토늄을 공개할 지도 모른다. 북한은 「핵카드」가 아직도 상당한 위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이를 활용해 얻어낼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는 속셈인 것같다.단계적으로 하나씩 공개해가면서 서방세계로부터 경제원조 등을 얻어내자는 계산이다.
  • 대만 사상경찰제도/의회,폐지안건 통과

    【대북 AP 로이터 연합】 대만 입법원(의회)은 16일 그동안 반정부인사들을 탄압,투옥시키는데 악용돼온 것으로 비난받아온 이른바 「사상경찰」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고 의회관계자들이 밝혔다. 이에 따라 그동안 「사상경찰」제도에 입각,공무원및 국영기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집권 국민당에 대한 충성도및 행태등을 점검,수만건의 관계 사정자료를 작성해온 정부내 감시기구인 제2 인사처가 폐지됨은 물론 이 기구가 작성한 자료들도 모두 파기처분되게 됐다. 이와 함께 대만의회는 이날 공직자들의 부패척결과 기강확립 등에 관한 새로운 법안을 최종 심의,통과시켰다고 의회관계자들이 말했다.
  • 아쉬운 정책대결(대선정국:14)

    ◎국민여망 좇아 민생문제 우선해야/인기에 영합,「아파트반값」등 공약 안될말/여곤 등진 야의 단체장선거 강행도 무리 우리 국민중에 현시점에서 경제 및 민생문제 해결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가깝게는 14대국회개원에 즈음해,멀게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민이 정치권에 바라는 제1차적인 요구사항도 역시 경제문제해결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최근 믿을 만한 여론조사기관으로 손꼽히는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여론조사에 의해서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검증됐다.이 연구소가 20세이상 일반국민을 대상으로한 표본조사에서 경제안정(17.9%)물가안정(16.4%)등 경제문제해결에 대한 기대가 단체장선거실시(0.1%)등 정치적 요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던 것이다. 이같은 결과는 여야정치권이 현시점에서 지향해야할 정상궤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다.다시 말해 여야는 인기영합성 정치적 구호에 매달릴 게 아니라 민생·경제문제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조사에서 나타난 주목할 만한 사실은 14대국회개원문제와 관련,야당측의 「단체장선거­개원」연계전략이 국가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수 국민이 현재의 경제·사회적 어려움을 감안,총선·단체장·대선등 선거를 1년에 3번이상 치르는 것은 무리라는 논리에 묵시적으로 동의하고 있음을 말해준다.또한 단체장선거의 연내실시라는 야당측 요구도 그 주장의 적실성 여부는 차지하고 「장외」보다는 국회 내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대명제를 재확인해주고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야당측이 현행 지방자치법상 단체장선거 공고일인 12일까지 국회개원에 불응,정부측의 지방자치법 개정안 처리기회를 원천봉쇄한 것은 설득력없는 정략적 태도로밖에 볼 수 없다.더욱이 이같은 저간의 사정에도 불구,현행 지방자치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대통령과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것은 여권에 대한 「흠집내기」차원의 공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왜냐하면 민주·국민 두 당의 의석수를 합쳐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발의 정족수는 물론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의결 정족수(모두 재적의원 과반수)에 크게 미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같은 대여 흠집내기공세로 이번 대선에서 「반사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과거 「야당탄압시대」에나 통했던 낡은 사고방식이라는 지적이다.우리 사회가 더 이상 「민주·반민주」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민주화·다원화의 단계에 접어든 만큼 「상대당의 불행이 우리당의 행복」이라는 제로섬 게임식 발상도 통용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가올 대선을 앞두고 야당측이 국민의 지지기반을 넓히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면 장외에서 실현불가능한 정치공세로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는 것보다는 의정단상에서 여권의 정책부재를 지적하고 민생분야에서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단체장선거 연기 또는 연내실시문제는 국회내에서 민주적 토론과 표결절차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며 차기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에 의해서도 최종결론이 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 및 민생문제에 대한 정책대결이 가장 바람직하고 시급한 과제라 할지라도 그같은 정책제시는 실현가능한 내용이라야 할 것이다.이는 우리 정치가 「말의 성찬」이 아닌 「실천의 정치」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선결요건이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당측이 「아파트 반값 공급」등 국민적 인기를 겨냥한 「공약」을 내건 바 있다.그러나 국민당의 모태라 할 수 있는 현대건설측이 아파트분양과정에서 보여준 행태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주장이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황당무계한 「공약」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같은 견지에서 볼때 차기 대선은 여야후보들의 정책대결의 장이 되어야 하겠지만 실현가능성도 없이 각계각층의 모든 부문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한 경연장이 되어선 안된다는 지적이다.다시 말해 농촌에 가선 재원마련대책도 없이 무조건 추곡수매가를 대폭 올려야 한다며 농민표를 구걸하고,자신의 모든 정치자금을 가명계좌로 관리하면서 당장 금융실명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의 모순된 정치행태를 더 이상 계속한다면 양식있는 유권자들로부터 배척당할 것이다.
  • 정 대표 “공산당허용”… 각계의 반향

    ◎“국법체계 도전” 충격… 우려… 비난/무책임한 실언… 지도자자질 의심/대선겨냥,신뢰성없는 정치적발언/진의뭔지 국민들에 분명히 밝혀야 국민당 정주영대표의 공산당 허용관련 발언에 대해 사회각계는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타당성을 찾을 수 없는 무책임한 행위라는 반응을 보였다.특히 정대표는 주요정당의 대통령후보라는 점에서 단순한 실수로 넘겨서는 안되며 그 배경과 진의를 철저히 따져야 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현희교수 성신여대◁ 공산체제가 대부분 와해된 국제현실을 감안하더라도 공산주의의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공산당을 옹호하고 그 체제를 신봉하는 발언이 나왔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정씨의 발언은 그가 주요 정당의 대통령후보라는 점에서 단순한 실수로 끝날 수 없다. 정씨가 자신의 발언을 번복했다고는 하나 앞으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는 망언을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한 어떻게 책임있는 정치인으로 믿고 따를 수가 있겠는가. ▷김영수의원 민자당◁ 정대표의 이번 발언은 형식논리로 적실성을 따지기 이전에 공산주의의 몰락이라는 국제조류에 역행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국민정서와도 맞지않는다. 특히 그의 발언은 북한 공산당정권의 탄압을 피해 월남한 수많은 실향민들에게 엄청난 실망을 안겼다고 볼 수 있다. 공산당허용 운운하는 등의 발언은 국민당의 당론으로 뒷받침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계산된 발언이라기 보다는 분별없이 불쑥 내뱉은 우발성 해프닝으로 믿고 싶다. ▷이해찬의원 민주당◁ 국내 최대 재벌의 총수였던 정주영대표가 공산당 허용을 말한 것은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다. 일본같은 일부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산당을 허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40여년동안 분단·대치 상황에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국민 정서상 아직 있을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진민자원장 청년여성교육원◁ 원칙적으로 그런 발언을 한것이 이해가 안된다.하물며 차기 대통령후보로서 그런 발언을 한것이 납득이 안간다.학생운동이 순수하고 이상적이지만 결국은 북한측에 의해 선전의 수단으로 이용당하고 있지 않은가.우리나라의 경우 북한과 대치상황에 있고 세계적으로는 인간을 위한 삶을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적합하다는 결론에 도달해 공산주의가 붕괴되고 있다. ▷안동대씨 변호사◁ 대통령후보로 출마하겠다는 정치지도자가 현 국법체계와 질서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즉흥적이고 신중하지 못한 발언을 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국가보안법이 잘못됐다면 손질하고 대체입법을 해야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학문적인 검토를 거쳐 국회차원의 입법절차를 통해 이루어져야 할 성질의 것이다. 정대표가 어떤 상황과 배경에서 그같은 발언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의 무책임한 범법적 행위는 정치지도자로서의 경륜을 의심케하기에 충분하다. ▷김석환씨 연세대독문과4년◁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누구나 이념문제에 관한 소신을 피력할 수 있다고 본다.그러나 정씨의 발언은 대통령선거를 겨냥한 것으로 그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공산당 결성을 막을수 없다는 정주영 국민당대표의 발언은 그 진의를 어느곳에 두고 있는지 모르겠다.반공을 국시로 삼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우리나라의 정당책임자로서 또 차기대통령후보로서 이처럼 생각없이 무분별한 실언을 한데대해 크게 실망했다. ▷신창섭부위원장 전국금융노연◁ 세계적인 공산주의체제의 붕괴는 공산주의 자체에 많은 모순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수정자본주의가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대두된지 오래되었다.공인의 말은 즉흥적으로 할수있는 것과 할수없는 것이 먼저 가려져야 한다.
  • 기협,언론탄압 비난

    한국기자협회 부산시지부(지부장 차용범)등 단체도 이날 성명서를 내고 『경찰이 파출소직원과 사소한 시비를 벌인 현직기자 2명을 증거인멸및 도주등의 우려가 없는데도 불구,사전구속영장까지 발부받아 전격 구속한 것은 한국언론사상 초유의 언론탄압작태』라고 주장했다.
  • 일 「주간문춘」,「현대그룹 허상」 특집서 정주영씨 비난

    ◎“금융스캔들 장본인이 대통령후보라니”…/상장전주식 가족에 부당배분 행위/일본·서구사회에선 철저하게 비판 일본의 대표적인 월간지 문예춘추가 발행하는 주간지 주간문춘은 6월11일자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 현대그룹은 기업이익의 「사물화」경향이 지나치게 강하고 정주영씨 일가는 기업윤리가 결여돼 있다고 보도했다.주간문춘은 「승용한국의 심벌 현대재벌의 허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금융스캔들 관련인물이 대통령후보가 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현대그룹의 실상과 정씨일가의 금융스캔들을 보도했다.다음은 주간문춘보도의 요약이다. 한국재계에는 일본기업들이 들으면 놀란만한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한국은 무엇보다도 기업이익이 국민의 부로 환원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이같은 문제의 해결없이는 지속적인 경제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재벌들은 부의 사회환원에 소극적이다.그 대표적인 재벌중의 하나가 현대그룹이다.한국재벌들의 규모는 지나치게 거대하다.더욱이 재벌의 이익이 일부 가족의 사물화되는 경향이 너무 지나치다.그러한 재벌들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한 커다란 경제발전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막대한 이익 독점 현대그룹은 한국경제 발전과 함께 성장해왔다.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이라 할 수 있는 현대그룹의 탈세가 얼마전 국세청에 의해 적발되었다.일본에서는 크게 보도되지 않았지만 현대의 탈세사건은 「한국판 리크루트사건」이라고 불릴만한 커다란 금융스캔들이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정주영씨와 그의 자녀등에게 10개사 계열기업 주식부정매매에 의한 탈세혐의로 1천3백61억원을 추징했다.정씨의 5남인 정몽헌 현대상선회장은 법인세법 위반혐의로 체포되었다. 현대 탈세사건에 대해 한국의 일부 언론은 정부의 「탄압」이라고 보도했다.그러나 탈세와 주식양도의 공사를 혼동하는 것은 경제법칙의 국제적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다. 정씨 일가는 현대그룹의 일부 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되기전 미공개주를 가족에 양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정씨는 현대그룹 소유자로 주식공개의 권한이 있다.그러나 현대는 적절한 절차를 밟지않고 가족에게대량의 미공개주를 분배했다.정씨 일가는 이 주식을 상장,차익을 챙겼다.정씨 일가는 더욱이 주식양도를 상속이라고 주장,상속세밖에 내지 않았다. 국세청 당국은 「정당한」가격으로 미공개 주식을 매각,기업에 돌아가야 할 매각이익을 지위와 특권을 이용해 정씨 가족이 차지한 사실을 중시하고 있다.더욱이 염가로 매각,막대한 이익을 독점했다.이같은 행위는 현대기업과 사원에 대한 배신이 아닌가. 정씨 일가는 또 현대임원들의 이름을 사용,주식을 위장분산시켜 놓았다.이 주식은 당연히 정씨 개인의 것이 아니라 기업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주식의 위장분산은 자본시장에서 윤리성을 결여한 행위이다. 정씨 일가의 미공개주식 양도는 건전한 주식시장 발전을 저해하고 일반투자자의 신뢰를 배반하는 행위다.이같은 행위는 주식투자자의 투자의욕을 저하시키는 것으로 일본과 서구사회에서는 철저한 비판을 받는다. ○「부의 환원」에 인색 현대사건은 미공개주식을 상장전에 양도했다는 점에서 리크루트사건과 같은 구도의 금융스캔들이다.현대사건은 금액면에서 리크루트사건보다 많다.리크루트사건은 정치인·재계인사 등이 대상이었으나 현대사건은 전원이 가족이었다.리크루트 금융스캔들은 일본총리를 물러나게 했다.그러나 정씨는 대통령선거에 입후보하고 있다.금융스캔들에 관련됐던 인물이 대통령후보가 되는 것을 일본인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그룹의 또 다른 문제는 주식의 가족독점·현대그룹은 가족의 주식독점률이 특히 높은 기업이다.90년말 현재 정씨가족의 주식지분율은 22.4%·더욱이 현대그룹내에는 주식을 공개하지 않은 기업도 많다.비상장기업은 가족의 독점지배하에 있다. 현대문화신문의 경우 정씨가 26.8%,정몽준(6남)21.7%,현대자동차 12.5%,현대정공 25%등이다. ○대통령되면 폐해 현대그룹에는 부의 재분배문제 뿐만 아니라 사실 중대한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현대의 90년말 현재 부채는 약 18조8천억원. 일본계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한 금액만도 약 6천억원이다.이윤은 가족의 사물화가 되고 부채비율이 높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씨는 기업이윤이 사물화된 현대그룹의 사실상 총수다.그는 더욱이 금융스캔들의 장본인이다.기업윤리를 결여한 기업가가 「공정한 경제정책」을 주장하며 대통령후보가 되는 것은 온당한가.재벌총수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 폐해는 너무나 분명하다.
  • 외교적 고립 중국 벗어났다/천안문사태 3돌… 북경의 위상

    ◎서방제재 세월지나며 “희석”/등소평 제2차 경제개혁 가속화될듯 북경 천안문광장에서의 민주화시위가 유혈진압된지 4일로 만3년.그러나 아직도 「6·4천안문사건」은 어제의 일처럼 자금성일대를 어슬렁거리는 망령으로 남아 있다.북경의 대학가와 천안문 주변에는 5월하순부터 경찰의 경계활동이 강화되면서 생업에 몰두해온 일반시민들에게는 오히려 「그날」이 오고 있음을 일깨워주게 된다.정부당국자들은 올해도 초긴장상태에서 이날을 맞고있다. 최근들어 수감자들의 인권위반문제로 시달려온 당국자들은 이번에는 유명작가 왕약망등 일부반정부인사들의 출국을 허용하고 6·4시위주동자들인 왕단위경생 왕군도 진자명등이 건강한 모습으로 옥중생활을 하고있는 사진까지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지도자들은 아직도 유혈진압의 무자비함과 인권위반 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대신 6·4사태직후 서방선진국들이 내건 경제제재와 외교고립문제는 이제 거의 마무리지은것 같다.경제제재의 경우 지난해 5월 아시아개발은행(ADB)차관재개 발표를 끝으로 모두 풀렸으며 외교적고립문제도 지난해 11월 베이커미국무장관의 북경나들이를 고비로 사실상 후권단계로 접어들었다. 지난 1년동안 서방선진국들로부터 외교적 후권을 인정받기위해 중국지도부가 쏟아부은 노력은 처절할 정도였다. 어쨌든 지난해 8월 가이후 일본총리가 북경을 방문하면서부터 서방의 대중국외교제재가 풀리기 시작했다.중국지도자들과는 얼굴도 대하지 않겠다던 선진국 수뇌들중 9월초 메이저영총리에 이어 10여일후 이탈리아총리가 방중길에 올랐으며 11월중순에는 마침내 미국도 베이커국무를 북경에 보내 화해의 신호를 보냈다. 뒤이어 지난 1월말 이붕총리는 6·4사태이후 처음으로 스페인 스위스 이탈리아등 서구국가를 순방하고 유엔안보리 정상회담에까지 참석,잠시나마 부시미대통령과 대좌할 기회를 가짐으로써 천안문사태에따른 서방의 제재로부터 벗어날수 있게 됐다.다시말해「외교적사면」을 받은 셈이다. 중국은 이같은 외교적 성과를 위해 서방선진국 이외 중동·아시아 국가들과의 외교채널 보강을 위해 강택민총서기를비롯,양상곤국가주석,이붕총리등 최고의 거물급들이 직접 앞장섰다.이들 3명이 지난1년간 20여개국을 순회한 것을 비롯,부총리급이상 고위대표단의 해외방문은 모두 57개국에 달했다.그런가하면 김일성이나 도 무오이 베트남당총서기 등 외국국가원수및 정부수뇌를 북경으로 초청한 경우도 38회에 달했다.지난5월 한달동안에만도 5명의 대통령과 3명의 총리가 다녀갔을 정도여서 중국TV의 톱뉴스는 매일같이 중국지도자들의 외국손님 접대장면으로 채워지고 있을 정도이다. 파리와 뉴욕 등지에서 반정부활동을 주도해온 그룹들의 목소리도 차츰 낮아지고 있다. 홍콩에서 해마다 열리는 6·4기념시위 행진이 처음에는 10만명에서 지난해 1만명으로,다시 올해는 4천명으로 줄어들어 가는 것도 세월따라 그만큼 관심이 멀어져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중국내부에는 아직도 40여개의 반체제 지하조직이 형성돼 은밀히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경찰당국은 지목하고 있으며 호남성출신 한 학생지도자는 2일 워싱턴에서 중국지하조직망을 연결시켜 반정부활동을 활성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경제정책의 경우 3년만에 6·4사태 이전상황으로 회귀하는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지난해 말까지 치이정돈(안정화)을 끝낸데다 소붕괴의 원인을 경제실패 때문이라고 판단한 등소평이 다시 2단계 개혁개방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올해 6·4기념일이 조용히 넘어가길 바라고 있는 것같다.강경보수파에서 탄압의 빌미를 주지 않을뿐아니라 2단계 개혁물결이 뒤집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지청천

    ◎독립군지휘,만주태평령서 일 연대 섬멸/33년 6·10대첩 독립전쟁 최대승리로 기록/무장투쟁 한평생… 40년 광복군사령관 역임/광복후엔 대동청년단 결성,“민족단결” 호소… 제헌­2대의원도 지내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길이 본받기 위해 서울신문사와 국가보훈처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백산 지청천장군이 선정됐다.6월의 독립운동가 지청천장군은 일본이 대륙침략에 기승을 부렸던 1933년 6월10일 만주의 길림성에서 독립군을 이끌고 일본의 이이즈카연대를 섬멸한 공을 세우고 40년부터는 임시정부의 광복군사령관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지휘했다.해방후 귀국한 지장군은 제헌의원과 2대의원을 지내고 57년1월15일 69세로 별세했다.지장군의 생애와 사상,업적을 되새겨 본다. 1933년 6월10일 만주의 길림성 태평령에서 한국독립군 2천5백명과 중국군 2천명의 연합작전을 지휘하던 지청천장군은 일본군과의 결전을 앞두고 짤막한 훈시를 했다. 『오늘의 공격은 2천만 대한인민의 원수를 갚는 것이다.총알 한개 한개가 우리 조상의 수천 수만의 영혼이 보우하여주는 피의 사자이니 제군은 단군의 아들로 굳세게,용감히 모든 것을 희생하고,자손 만대를 위해 최후까지 싸우라』 비록 몇 마디 되지 않는 짧은 훈화였으나 결전을 앞둔 독립군 병사들의 뼛속까지 사무쳐 대부분의 병사들이 눈물을 흘리며 조국의 광복을 굳게 다짐했다. ○소총등 다량 노획 이날 일본의 정예부대인 이이즈카연대는 한중연합군의 맹렬한 공격에 혼비백산했다. 동서남북으로 완전히 포위된 상태에서 4시간동안의 치열한 전투끝에 일본군은 완전히 전멸되고 말았다. 군복 3천벌,박격포 5문,군용물자 20마차,담요 3천장,평사포 3문,소총 1백50정을 노획해 한국독립사상 가장 큰 전승을 기록했다. 지청천장군의 태평령전투는 독립전쟁사중 20연대의 김좌진장군의 청산리전투와 함께 2대 대첩으로 평가되고 있다. 30년대의 지장군이 지휘한 태평령전투가 규모와 노획물이 더 큰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장군은 전투부대의 지휘관으로서 뿐만아니라 신흥무관학교 교장으로서 독립을 위한 청년장교들을 양성한 교육자로,광복후에는 제헌의원·청년운동 등으로 평생을 애국·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지장군은 1888년 2월15일 서울 삼청동에서 태어났다. 다섯살때 아버지와 사별하고 홀어머니(이씨)밑에서 자란 지장군은 우리나라에 종두법을 처음 도입한 아저씨 지석영의 권고로 교동국민학교를 거쳐 배재학당에 진학했다. 1904년 한국무관학교에 입학한 지장군은 1907년 일본이 한국군대를 강제해산하자 관비유학생에 선발되어 일본유학을 떠났다. 어머니는 적의 나라로 유학을 떠나는 지장군에게 『나는 너를 죽어 없는 아들로 생각하겠다.구국의 일군이 되지 못하거든 일본에서 돌아오지도 말고 나를 어머니라고 생각하지도 말라』고 엄하게 훈계했다. ○일 정규육사 출신 적도 도쿄에 도착한 지장군은 일본의 눈부신 문물을 보고 놀라면서 일본의 앞선 기술과 제도를 하나라도 더 배워 조국을 되찾는 첨병이 될 것을 다짐했다. 일본 유년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정규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지장군은 1914년 1차대전이 일어나자 일본군 제14사단에 배치되어 중국 산동성 청도에서 독일군과 치열한 전투경험을 하게 됐다. 당시의 전투경험이 만주에서의 독립군 전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일본군 중위로 진급한 지장군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일본군을 탈출,독립운동의 요람이던 만주 봉천성 통화현에 도착,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의 교관이 되었다. 당시 만주에는 일본육사출신의 김광서장군과 구한말 군관출신인 신팔균 김창환 이범석 오광선등 쟁쟁한 인재들이 신흥무관학교를 중심으로 독립군을 양성하면서 민족의 힘을 키우고 있었다. 일본 육사에서 정규교육을 받은 지장군은 교성대장(교성대장)에 이어 교장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독립운동의 기반이 공고해질수록 일본의 독립군 탄압도 집요해져 지장군은 신흥무관학교출신을 주축으로 하는 서로군정서군을 이끌고 백두산 부근의 밀산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김좌진장군의 북로군정서군,홍범도장군의 대한독립군 등과 합세,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고 여단장을 맡아 군세를 통합했다. 지장군은 보다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독립전쟁 수행을 위해 1921년 러시아 자유시로 이동,독립군부대를 고려혁명군단으로 개편하고 고려혁명군관학교를 설치,교장을 맡아 전열을 정비하고 일본과의 독립전쟁을 준비했다. 그러나 일본의 사주에 의한 소련정부의 배신으로 소련군과 혈전을 벌인 끝에 장군은 체포되어 러시아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났다. 구사일생으로 다시 만주에 돌아온 지장군은 국민대표회의 등을 통해 독립운동세력을 규합,1924년 정의부가 조직되자 중앙위원과 산하 의용군 총사령관이 됐다. 정의부소속 군대를 지휘하게 된 지장군은 일본경찰주재소를 소각하고 일본군부대를 습격하는 등 독립투쟁을 전개했다. 1931년 9월18일 일본은 중국침략의 마수를 뻗쳐 만주사변을 도발했다. 지장군은 만주지역의 중국군 이두·정초·고봉림장군 등과 한중연합군을 결성해 쌍성보,경박호,동경성,사도하자,대전자등 만주 각지에서 일본군과 맞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지장군은 1919년부터 33년까지 14년간 만주 곳곳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하면서 수많은 독립군을 양성하고 강한 군대를 육성했다. 1933년 8월 일본이 만주를 석권하다시피하여 독립군의 항일투쟁이 어렵게 되자 임시정부의 김구선생은 지장군을 하남성의 낙양군관학교로 초청,한국청년들의 군사교육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임정 군무부장에 넓고 넓은 만주땅을 베개삼아 죽으리라던 지장군은 이범석·오광선 등과 함께 낙양으로 내려가 한인청년들을 교육하고 1937년에는 임시정부의 군무부장,40년 9월17일 광복군이 창설되자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참모장 이범석과 함께 명실공히 한국군을 대표하게 됐다. 광복군은 중국을 비롯한 연합군과 협력하여 일본군과 직접적인 전투를 벌이는 한편 대적선전·포로심문·선전전단작성·암호해득등 다방면에 걸친 눈부신 활동을 했다. 지장군은 1946년 4월28일 남한에 진주한 미군의 반대로 개인자격으로 중국에서 귀국했다. 귀국후 장군은 혼란한 국내정세를 바로잡을 원동력이 청년에게 있음을 깨닫고 전국적인 청년운동을 일으킬 것을 구상,대동청년단을 구성했다. 지청천단장은 전국청년지도후원회를 결성하고 『뭉치라,길은 하나이다』라는 구호로 민족단결을 역설했다. 1948년 5·10총선과 50년 5·30총선에 출마하여 초대 및 2대국회의원이 된 지장군은 국방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건국의 기틀을 다졌다. 지장군은 57년 1월15일 69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정부는 62년 지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지장군은 달수씨와 복영씨등 남매를 두었는데 남매도 모두 광복군으로 항일활동에 참가했다. 달수씨는 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받고 69년에 작고했으며 복영씨는 현재 지장군의 일대기를 정리하고 있다. ◎탁월한 전략·순수한 군인정신의 귀감/역사적 평가/이현희 성신여대교수 백산 지청천장군은 70평생을 조국과 겨레의 행복을 위해 보냈다. 8·15이전의 60평생을 조국광복을 위한 무장독립투쟁에 보냈으며 귀국후에는 제헌의원과 2대의원으로 국정에 깊이 관여했다. 한국무관학교 학생으로 입학해서 일본육사를 졸업한 지장군은 평생을 통해 권모술수를 모르는 순수한 참군인의 정신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해왔다. 지장군이 일본육사에 진학한 의도는 적을 잡기 위해서는 적의 소굴로 들어가는 용기와 지혜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서 였다. 일본육사에 유학,현대 전략과 전술을 공부한 지장군은 훗날 만주에서 일본군과 무장투쟁을 하면서 일본육사에서 배운 군사학을 활용했다. 열악한 무장,숫적인 열세,보잘것 없는 보급을 받으면서도 지장군은 일본정규군을 자유자재로 유린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일본의 현지 지휘관들은 『지청천이가 일본의 전술과 전략을 너무 잘 알고있기 때문에 우리의 격전이 무색하다』고 격찬 한 사실을 보아도 지장군은 탁월한 지휘관이었다고 생각된다 지장군은 1940년에는 임시정부의 직할무장부대인 광복군의 총사령관으로 5년동안 국내외 청년들을 모아 훈련을 시키고 일본군 후방교란,연합군과의 연합작전,심리전 등을펴 명실공히 독립군의 최고지도자로 역을 다했다. 그는 건국후에도 광복군의 정통성을 의병독립군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역설함으로써 민족정기를 바로잡는데 크게 기여했다.그러나 광복이후의 혼미한 정국에서 지장군의 크고 높은 뜻은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지장군이 별세한 35년이 지난 지금 그의 크고 높은 뜻이 마침내 달성되는 듯한 느낌이어서 다행스럽다 하겠다.
  • 김귀정양 1주기/성대서 추모행사/사노맹 현수막 등장

    성균관대를 비롯한 서울시내 대학생 2천여명은 25일 하오2시쯤 성균관대 운동장에서 김귀정양의 1주기 추모식을 갖고 김양이 숨졌던 중구 퇴계로4가 쪽으로 나가 거리굿을 가지려고 교문을 나서다 경찰에 막히자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집회에는 「모진 탄압에도 굽힘없이 항상 민중형제들과 투쟁한다」는 「사노맹」의 대형플래카드와 「사회주의」라고 쓴 깃발을 흔드는 모습을 그린 「사노맹 수도권위원회」의 대형 그림이 나붙기도 했다.
  • 민자경선후 김 후보·이 의원측 움직임

    ◎전당대회 축하연/「손에 손잡고」 선률속 「결속다짐 90분」/각계의견청취후 당정개편방안 구상/김 후보/당내투쟁 재다짐… 「새정치모임」구성/이 의원 5·19전당대회에서 김영삼대표가 대통령후보로 확정되자 민자당의 김영삼후보·이종찬의원측은 20일 각각 김후보추대위와 경선대책본부를 해체시켰다. 김후보는 이날 한국종합전시장에서 열린 전당대회 축하연에 참석하는등 여당대통령후보로서의 공식 행보를 시작했고 이종찬의원진영은 경선결과에 불복,당내 투쟁을 전개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전당대회축하연◁ ○…20일 하오 한국종합전시장(KOEX)에서 열린 전당대회 축하연은 노태우대통령내의와 김영삼대표 내외를 비롯,박준규국회의장 이춘구총장및 당4역등 3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1시간30분동안 진행. 이상벽씨의 사회로 식전행사로 진행된 여흥마당에서는 가수 최진희씨와 현철씨가 자신의 히트곡인 「사랑의 미로」와 「봉선화연정」을 각각 부르며 잔치분위기를 한껏 고조. 참석자들은 여흥시간동안 테이블을 돌며 전당대회 경선을 화제로 담소했으며 이어 「희망의 나라로」란 배경음악이 울려퍼지며 노대통령이 김대표및 당4역과 함께 입장하자 참석자들은 박수로 환영. 김종필최고위원의 인사말에 이어 단상에 오른 박준규 국회의장은 참석자들에게 『영광된 승리를 위해 건배하자』고 말하면서 「지화자」란 선창에 「좋다」라고 화답해줄 것을 제의. 이날 서울대 박인수교수는 축가로 당초 예정된 곡목인 「목련화」대신 「희망의 나라로」와 「선구자」를 불렀는데 「희망의 나라로」는 지난 88년 노대통령이 국회에서 대통령취임식을 가졌을때 의사당에 우려퍼졌던 노래라는 것이 행사진행자의 설명. 이날 하이라이트는 장내에 올림픽로고송인 「손에 손잡고」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노대통령이 김대표와 함께 손을 쳐들어 당의 단합을 과시한 대목. 노대통령이 당의 단합과 화합을 강조하며 김대표의 손을 번쩍 치켜들자 참석자들은 루뢰와 같은 박수를 보내며 열렬히 환호. 노대통령은 이날 연설을 통해 『5년전 내가 6·10 전당대회에서 후보지명을 받고 힐튼호텔에서 축하연을 가졌을 때는 거리의 시민·학생·경찰들이 최루탄으로 눈물을 흘렸다』면서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 참석키 위해 차를타고 오는 동안 나는 길거리를 지나는 밝은 표정의 시민들을 보았다』고 지난 5년의 변화를 언급. ▷김영삼대통령후보◁ ○…전날 전당대회에서 민자당대통령후보로 선출된 김영삼대표는 후보당선 첫날인 20일 상오9시30분쯤 여의도 당사에 출근,이춘구사무총장과 신경식비서실장으로부터 당무를 보고받고 축하객을 접견하며 집무를 개시. 김대표는 이날 상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상도동자택 인근 야산에서 조깅을 했으며 부인 아들 딸등 가족들과 함께 조찬. 이날 상오 상도동에는 황명수 유돈우의원과 노승우당선자,부산 경남지역 일부대의원및 손주환전청와대정무수석이 축하인사를 겸해 방문했으며 중앙당 김대표 집무실에는 무소속의 정필근당선자를 비롯,수십명의 현역의원이 찾아와 인사. 김대표는 이날 기자들이 당직개편여부를 묻자 밝은 표정으로 『그 얘기는 그만하자』며 언급을 회피했으나 청와대주례회동 재개문제에 관해선 『오늘저녁 노대통령과 만나는 자리에서 논의될 것이며 조만간 주례회동은 재개될 것』이라고 답변. 김대표는 이종찬의원문제에 대해서는 『누구와도 만나 이야기 할수 있다』며 포용의 뜻을 시사. 그러나 김대표측근인 최형우정무장관은 이날 『이의원에 대한 처리방향이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가장 중요한 변수는 지금부터의 이의원 움직임』이라고 말해 이의원의 향후 태도에 따라 방향이 결정될 것임을 시사. 이와관련,당내에서는 현재 이의원에 대한 즉각 조치와 시한부 조치등 의견이 다소 엇갈리고 있는데 김대표측의 한 측근은 『민주당전당대회가 26일 마무리되고 13대 국회임기도 29일로 끝나는 만큼 개원협상에 앞서 당내문제는 처리될 것』이라고 조기수습가능성을 귀띔. 국정쇄신과 국면전환을 위한 타개책과 관련,김대표의 한 핵심측근은 『김대표는 그동안 각계의 의견을 청취,국정의 획기적 쇄신과 당정의 변모일신을 위한 구상을 갖고 있다』면서 『우선 당직개편을 통해 경선후유증을 조기수습하고 14대 원구성을 위한 여야협상을 통해 국면전환을 이루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 그는 또 『범여권의 결속이란 차원에서 조만간 최규하·전두환전대통령등과의 회동문제도 검토하고 있다』고 부연. 김대표측은 14대 원구성과 관련,무소속인사의 영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이날 무소속인사의 명단을 성향별로 분석하는등 최종점검에 돌입. 한편 김후보는 이날 하오 한국종합전시장(KOEX)에서 열린 당전당대회 축하연에 참석한뒤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청와대에서 노대통령과 만찬. 이에앞서 김영삼대통령후보추대위는 이날 상오 여의도 뉴서울빌딩에서 김종필명예위원장 주재로 김윤환대표간사 김종호총괄간사등 핵심간부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해단식을 갖고 당의 결속과 12월 대통령선거에서의 필승을 다짐. ▷이종찬의원진영◁ ○…5·19전당대회에서 경선거부에도 불구,예상외의 높은 지지율로 고무된 이의원진영은 우선 당내 민주화투쟁에 주력키로 하면서 매일 광화문사무실에서 중앙대책위원회의를 개최하는등 선거대책본부해체이후 이의원중심의 체제정비에 본격착수. 당초 이의원측은 김영삼대표측의 제명­출당조치가 빠른시일내 현실화될 것으로 보고 신당창당에 이은 대선독자출마의 수순에 서둘러 돌입할 예정이었으나 대의원들의 이같은 지지열기를 감안,일단 당내비리척결에 적극적으로 나설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것. 20일 상오 이의원주재로 광화문사무실에서 열린 중앙대책위원 간담회에서도 이의원에 대한 당측의 징계움직임과 관련,『이의원의 경선거부는 불공정사례를 파헤쳐 완전한 자유경선을 이루기위한 구당행위』라고 규정짓고 『따라서 당의 징계움직임은 반대파에 대한 명백한 정치적 탄압이며 나아가 정권재창출을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당분열의 책임을 면치 못하게되는 행위』라는데 의견을 집약. 이날 간담회가 끝난뒤 안택수부대변인은 『그동안 이의원을 지지했던 원내외인사모임을 최단시일내 갖기로 했다』고 밝히고 참석대상은 지구당위원장과 전국구당선자및 중앙위분과위원장까지 포함해 대략 50명선이라고 설명. 따라서 이 모임은 지방에 체류중인 박태준최고위원과 박철언의원등이 상경하는 즉시 이번주말쯤 열릴 것으로 관측. 간담회는 또『이의원에 대한 출당등 당의 징계문제가 현실적으로 나타날 경우 오늘 모인 지구당위원장등이 하나로 뭉쳐 공동대처키로 했다』고 안부대변인이 전언. 그는 그러나 당선무효 가처분신청등 법적대응 문제에 관해서는 『검토한 적도 없고 앞으로 검토할 생각도 없다』며 『법적투쟁은 우리가 주장하는 새정치의 근본정신에도 부합하지않기 때문』이라고 설명. 한편 이의원캠프의 명칭을 놓고 「새정치모임」,「경선무효화투쟁모임」등 여러안이 제기됐으나 이의원이 내세운 슬로건인 「새인물 새시대 새정치」에 부합되는 「새정치모임」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 한편 이날 간담회에는 이의원외에 심명보·오유방·장경우·이긍령·최재욱·강우혁·이상하·김현욱·유수호·이동진·유기수·홍희표의원과 박범진·박명환·남재두당선자,유경현·조남조·조기상·이영일위원장등 모두 29명이 참석. 그러나 병환중인 모친을 문병하기위해 고향 양산에 내려간 박최고위원을 비롯,신병치료차 입원중인 채문식고문과 역시지방체류중인 윤길중고문·박철언의원 그리고 김용환의원은 불참.
  • JC­지지세력 「고리끊기」 빠른행보/민자「경선거부」어떻게 수습될까

    ◎일단 설득… 실패땐 조기출당 가능성/당정개편 통해 「대선분위기」 조성도 이종찬후보가 경선을 거부함에 따라 위기국면을 맞은 민자당은 수습책 마련에 총력을 쏟고 있다. 민자당 관계자들은 이후보의 경선거부가 정권재창출에 어려움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보고 후유증을 조기에 해소,당내분열을 막고 결속을 강화할 방침이다. 김영삼후보진영과 당선관위등 대부분의 당관계자들은 우선 19일의 전당대회를 원만히 치르고 후속조치를 신속히 진행시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당선관위는 18일 이후보를 지지했던 대의원들이 전당대회에 무더기로 불참하는 사태를 막기위해 전국 2백37개지구당위원장과 중앙위분과위원장등에게 대의원들이 전당대회에 모두 참석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이와함께 이후보를 지지하는 대의원이 전당대회장에서 극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상정,나름대로의 대비책을 갖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당대회가 끝나면 곧 이후보에 대한 징계여부가 현안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김후보진영을 비롯한 대부분의 당관계자들은 이후보진영을포용한다는 입장이다.김후보측의 이같은 입장은 이후보가 경선포기선언을 한뒤 곧바로 「해당행위」라고 규정하며 경선에 임하라고 촉구했던 데 비해 18일에는 『부덕의 소치이며 국민과 노태우대통령께 송구스럽다』라고 한걸음 후퇴한데서도 잘 나타난다. 김후보진영에서는 그동안의 행적으로 보아 이후보가 탈당의 수순을 밟아왔으며 탄압등의 명분만 있으면 탈당을 결행할 가능성이 큰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울려고 하는 사람의 뺨을 때려 울도록 만드는 격」의 명분을 주는 대응은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김후보진영과 당관계자들이 이같은 입장을 얼마나 유지할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후보가 당내 민주화투쟁등을 이유로 불협화음을 계속 만들어 낼 경우 끌어안기보다는 방출하는 것이 더 나을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인사도 적지않다. 특히 이후보가 기자회견에서도 밝혔듯이 경선무효를 선언하고 당원과 국민들을 상대로 군중집회등의 형식으로 「허구에 찬 경선의 실상」을 선전하고 다닌다면 당기위원회를 열어 이후보를 조기에 출당또는 제명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경우에도 이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이후보진영에 가담했던 인사들은 정치적으로 불이익이 없을 것임을 강조하며 가급적 모두 끌어안는다는 계획이다. 김후보진영의 김종필최고위원·김윤환대표간사등은 이미 이날부터 이후보진영의 박태준최고위원,심명보·이한동·박준병의원등 핵심인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의사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보의 탈당이 어차피 예정된 일이라면 나머지 인사들은 최대한 수용,이후보를 고립시킴으로써 탈당이 가져올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조속히 당내 화합을 기한다는 계산이다. 이춘구총장이 이미 밝혔듯이 당내 중도·온건인사들이 중심이 된 「당을 걱정하는 모임」도 경선이 끝난뒤 계속 모임을 갖고 당의 화합을 위해 노력한다는 입장이어서 그 활동이 주목된다. 경선이 끝나 대통령후보와 총재,최고위원등이 확정되는등 당의 기본 골격이 갖추어지면 후유증을 없애고 대선분위기조성을 위해 곧바로 각종 당내 개혁안과 쇄신책등이 검토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는 당직및 국회직·정부 요직의 개편을 통해 당 체제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방안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김후보진영에서는 3당통합정신을 살려 계파의식을 가급적 배제하고 범계파적으로 체제를 개편,당의 결속과 화합분위기를 이루는데 최대한 역점을 둔다는 복안을 세워둔 것으로 전해지고있다. 체제개편에서는 김종필최고위원 김윤환대표간사 김종호총괄간사등이 중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체제정비가 끝나면 곧 대통령선거체제로 들어가 그동안 실추된 당및 김후보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각종 민생과 관련한 정책을 개발,이를 널리 홍보하고 야당과의 차별성과 야당 주장의 허구성을 부각시킨다는 계획이다.
  • 수친다 사임번복이 도화선/태국 유혈사태 배경과 정국전망

    ◎군부,집권연장 겨냥 초강경/「민선총리」 개헌안 무산 위기 태국의 긴장정국이 결국 유혈충돌이라는 최악의 길로 치닫고 말았다.17일 저녁 20만명의 대군중이 방콕 중심가에 운집했을 때만해도 사태의 민주적인 해결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분위기였으나 18일 신새벽과 함께 시위군중들에게 전해진 것은 기대했던 집권층의 요구조건 수락성명이 아닌 군·경의 무차별총성이었다. 수친다총리의 즉각사임을 요구하는 반정부시위는 지난 4일부터 본격화했으나 무력탄압 강행이 예상됐던 집권세력은 그동안 엄포만 놓았을 뿐 이를 행동화하지 않았었다.뿐만아니라 요구조건 수락 내지는 타협할 용의까지 비춰 11일까지 연속된 반정부시위는 피흘림없이 소기의 목적을 거둔듯 했다.그러나 이날 새벽 총성으로 군부의 절대지지를 업고있는 수친다총리의 사임거부 「본뜻」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것이다. 유혈충돌 발생과정을 두고 시위군중이 먼저 과격해져 무력해산을 유발했다는 주장도 없는 건 아니다.그러나 민주화시위의 핵인 잠롱 스리무앙 전방콕시장의 제3불순세력 개입 주장이 보다 설득력있게 들릴 만큼 이날 군경의 무력진압은 적극적인 공세로 일관됐었다.정부의 비상사태선언은 계엄령보다는 한급 아래이지만 집회시위를 원천봉쇄하고 있어 수친다총리를 위시한 군부세력의 집권유지를 위한 강경국면 전개가 전망된다. 무력진압 반나절전 북부지방시찰중에 반정부시위에 관해 아주 유화적인 제스처를 썼던 수친다총리는 유혈사태발생과 함께 방콕으로 귀환하면서 국회를 해산할 계획을 갖고있지 않다고 말했다.비상사태 선포를 축으로 시국안정을 꾀하겠다는 것이다.이같은 발언은 자신의 즉각사임의 차선책으로 거론되던 「새총선 실시를 위한 국회해산」의 타협안마저 거부하겠다는 의사로 보여진다.그러면서 수친다는 국회가 의결하면 사임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친군부정당세력이 과반수의석을 차지하고있는 의회에서 그의 불신임결의안이 가결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또한 민주화시위의 대안으로 채택돼 큰 기대를 모았던 총리의 민선의원 자격요건및 군부직접지명의 상원권한축소 등 개헌안논의도유야무야될 가능성이 높다.수친다총리는 그전부터 개헌안이 통과되더라도 차기총리부터 해당되지 자신에게 소급적용할 수 없다고 반발해왔었다. 한마디로 태국군부는 지난 32년 절대왕정 폐지이래 16번의 쿠테타를 통한 집권전통을 총칼로서 유지 보전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경제개발과 함께 국민의식이 옛날과 사뭇 달라졌지만 태국군부에 대한 정치불개입 요구는 아직도 「시기상조」라는 태도이다.따라서 의외의 변수가 돌출되지 않는 한 민주화세력으로부터 「시대착오」의 집단으로 규정받고있는 태국군부의 집권유지 강경노선은 강화될게 뻔하다.
  • 비 총선과 서구민주주의(사설)

    「피플스 파워」(민중의 힘)로 지난 86년 민주화혁명에 성공했던 필리핀이 또다시 정치혼돈의 큰시련에 직면하고있다.3개월간의 선거운동기간을 통해 30여명의 사망자와 6천여명의 부상자를 내는 진통끝에 지난11일 실시된 총선이 대통령선거개표를 둘러싼 시비로 극한대립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이번엔 독재타도가 아니라 민주화정착의 시련이다. 개표초반의 선두에 섰던 산티아고 후보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아키노대통령의 지원을 받은 라모스후보에 역전당하면서 먹구름이 드리우기시작한 것이다.부정부패척결로 대중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산티아고후보는 개표및 집계과정에서 대대적인 부정이 자행되고 있으며 자신의 승리가 강탈당하고 있다고 주장,대규모 반정부시위에 나서기 시작했다.1,2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근소한 표차가 화근이다.라모스후보가 패배해도 그냥있을 것같지는 않다.현상황으론 어느쪽도 상대방의 승리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같지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있다.또한차례의 큰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마르코스독재축출과 아키노민주화이후 처음실시된다는 점에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필리핀총선이다.질서있고 성공적인 총선을 통해 필리핀민주화가 정착되고 발전하기를 세계는 물론 우리도 기대하고 있으며 그만큼 혼돈의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도하다.동시에 민주정치를 발전시킨 구미와 다른 문화와 여건의 개발도상국들이 서구민주정치를 수용하고 정착시켜 발전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도 생각하게 된다. 필리핀은 아시아에서는 가장먼저 민주주의를 접한나라라 할수있다.1898년부터 미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42년에 민주국가로 독립,민주정치체제정착을 위해 노력해왔으나 부정부패와 폭력,공산반란과 독재의 소용돌이로 얼룩진 나라다.마침내 안정된 민주발전의 길로 들어서는가 했으나 쿠데타소용돌이의 혼돈이 이어졌으며 이제 총선의 파국위기인 것이다. 사회주의정치는 몰락했고 해가고있다.민주정치의 승리가 구가되고 있는 오늘이지만 서구민주정치는 정말 만국공통의 만병통치제도인가.구소련과 동구등의 민주화 진통과 함께 필리핀의 혼돈을 보면서하게되는 반성이다.한때 신생아시아에선 토착민주주의란 말이 유행한적이 있었다.우리경우엔 한국적민주주의가 강조되었었다.그런주장들이 독재와 장기집권및 탄압의 방편으로 이용됨으로써 국민에게 외면당하고 실패 할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지금까지 실험된 최상의 정치제도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문제는 그 제도를 일률적으로 적용 운영하는데는 적지않은 부작용이 있음을 우리는 오늘의 필리핀사태에서 새삼 실감하고 있다.깬 시민의식이 있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유권자가 있고 민중의 힘을 두려워 할줄아는 위정자가 있을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그 진가를 발휘 할수 있다. 우리는 현재 개표가 진행중인 총선결과에 주목하면서 필리핀의 국민이 원하고 유권자의 뜻이 제대로 반영된 대통령이 선출돼 민주제도가 하루속이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 대학가 인공기… 이철승씨는 말한다

    ◎「김일성왕국」 찬양은 국제적 조소거리/「김부자 초상화」는 나붙지 않을지…/사상교육강화,반역사세력에 대처해야 『안팎으로 위기에 몰려있는 김일성부자의 왕조구축전략에 우리 학생들이 말려들고 있습니다』 철저한 자유민주체제 수호론자인 이철승 자유민주총연맹총재는 지난 8일 부산 동아대와 광주 전남대에 북한의 「인공기」가 내걸린데 이어 13일 서울에서도 인공기가 게양된데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이씨는 『한참 발전해 나가는 한국에서 일부 친북세력이 경제·교육·사상등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혼란을 주도하고 있는데 대해 전세계의 식자들이 불가사의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더욱이 옛소련과 동유럽에서도 볼셰비키즘과 마르크시즘이 무너지고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추구해가는 상황에서 역사의 흐름에 반역해 고립왕국을 유지해 가려는 김일성부자에 우리학생들이 동조하는 것은 세계의 조소거리가 되고 있다』고 이씨는 안타까워했다. 그는 최근 대학가에 인공기가 내걸린 것은 『정부가 통일노선을 선택하고 진행하는 과정과 학생들을 교육하고 학원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의 오류가 오랜 세월 누적되어 일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가 북한과의 교류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좋지만 그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기본인식을 흔들리게하는 것도 사실』이라는 지적이다. 제7차 남북총리회담에서 북한대표들이 이산동포의 고향방문등 몇가지 합의를 도출하고 돌아간뒤 곧바로 이런 사건이 터진 것은 그들의 일면협상 일면투쟁의 양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씨는 『해방을 전후한 미 군정시대에도 남로당의 조직이 사회 각계각층에 잠입해 있었고 학생들도 공산당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간헐적으로 붉은 깃발을 들고 기습시위를 벌였지만 수천 수만의 학생들이 길 한복판에 북한기를 걸어놓는 행위는 없었다』면서 『당시에는 좌경화된 학생과 사회세력에 맞서 대항할 학생및 사회세력이 있었으나 최근의 대다수 학생들은 통일과 안보문제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이씨는 이어 『50년동안이나 암흑속에서 억압과 탄압을 받아온 북한주민들이 해방되어야 할 이 시점에서 엉뚱하게 준동하는 반체제세력에 대항할 세력이 하나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서 『이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우리의 책임감이 미군정 때보다 떨어지고 사상교육이 후퇴했기 때문』이라고 개탄했다. 이씨는 이와함께 『학원가에 인공기가 게양된 사태는 정부가 학생운동을 적절한 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라 최루탄만으로 해결하려 한데서도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루탄만으로는 수만명 「주사파」의 돌팔매는 막을 수 있어도 그들의 마음은 돌릴 수가 없다』면서 『최루탄이 없으면 그들의 행동을 아무런 제재없이 방치할 것이냐』고 이씨는 반문했다. 이씨는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도 정치를 이끄는 여야지도자들은 대권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국기를 흔드는 이런문제가 대통령선거운동의 쟁점이 되어야 하는데도 정치지도자들은 학생들에게 아부하느라고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이다. 정원식국무총리가 『정부와 치안당국은 학원가의 인공기 게양문제를 단호한 의지를 갖고 대처하겠다』고 밝힌데 대해 이씨는 『이 문제는 총리가 아니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학원가에 「인공기」가 내걸린 사태는 몇년전부터 지적해온 사실이기 때문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면서 『그러나 좌경화된 학생들의 행동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몇년후에는 대학가에 김일성의 동상이 들어서고 김정일의 초상화가 나붙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인공기비난 대자보/성대에 나붙어/“국민의 외면 자초”

    13일 하오 성균관대 문과대앞 게시판에 최근 일부 대학가에 인공기가 내걸린 것을 비난하는 전지5장짜리 대자보가 나붙었다. 사회과학대학생일동 이름으로 된 이 대자보는 「인공기게양이 뭐길래」라는 제목아래 『인공기를 게양한 사람들은 남북합의서가 이행되는 현재의 정세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학우들로부터 외면,비판받는 인공기게양행사는 올바른 투쟁이 아닐뿐만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소외되고 고립되는 행동임을 알아야한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알레르기증상이 남아있고 용납할수없는 상황』이라면서 『개구쟁이 소년이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듯이 아무런 생각없이 게양한 인공기가 민중진영에 대한 정부의 탄압 빌미를 줄것』이라고 주장했다.
  • 필리핀 대선/투표 하루 앞으로… 표밭기류 점검

    ◎라모스­미트라 대접전/인신공격 난무속 분위기 혼탁/코후앙코,마르코스 기반 흡수 “맹추격”/이멜다·라우렐도 참여… 큰 변수 못될듯 지난 86년 2월의 피플 파워(시민혁명)로 마르코스독재를 종식시킨지 6년만에 처음으로 치러지는 필리핀의 대통령선거가 폭력과 쿠데타설이 나돌고있는 가운데 오는 11일 실시된다. 대선과 함께 부통령·상하원 및 주지사·지방의원등 1만7천2백여명의 각급 지방행정 책임자를 선출하는 선거도 이날 동시에 치러져 필리핀열도는 지금 「선거열풍」에 휩싸여있다. 대권고지를 향해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있는 후보는 7명으로 이중 피델 라모스 전국방장관과 라몬 미트라 하원의장,그리고 독재자 마르코스 추종세력인 실업가 에두아르도 코후앙코등 3명이 선두다툼을 벌여왔다. 아키노 대통령의 지지를 받으며「안정속의 개혁」을 내세우고 있는 라모스와 집권 필리핀 민주투쟁당(LDP)의 공식후보인 미트라등 두명의 여당 후보가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있는 가운데 코후앙코는 마르코스 지지기반의 상당부분을흡수하고 있으나 카톨릭계의 배척 뿐만아니라 지식인층의 그에대한 거부감도 만만치않아 결과를 예측하기가 쉽지않다. 이밖에도 미리암 산티아고(여)전농지개혁장관을 비롯,호비토 살롱가전상원의장,「3천켤레 구두」의 주인공 이멜다 마르코스,반아키노기치를 내세운 국민당의 살바도르 라우렐 부통령도 대통령경선에 나섰으나 당선 가능성은 희박한 편이다 현지 분석가들은 6년전의 마르코스­아키노 대결 때와는 달리 이같은 후보 난립상의 원인을 아키노현정권의 실정과 지도력 부재에서 찾고있다.국민들의 열화같은 지지로 취임한 아키노대통령의 집권기간동안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으며 필리핀내 미군기지를 둘러싼 국론분열,정책집행 과정에서의 우유부단,그리고 정부내의 부패등으로 인해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조정 기능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집권세력이 내부분열을 겪고있는 직접적인 이유는 지난해 11월 전당대회에서 LPD창당을 주도했던 「조직의 명수」미트라가 차기 대통령후보로 결정됐으나 아키노대통령이 이를 뒤집고 라모스를 후계자로 지명했기 때문이다.아키노의 라모스에 대한 지지는 마르코스 정권말기에 반란에 가담,86년의 피플파워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자신의 집권기간에 발생한 7차례의 쿠데타를 진압한 공을 인정한 것이지만 과거 인권탄압에 대한 그의 전력시비로 종교계와 지식인들의 반감이 만만치않다. 이와관련,전국민의 85%가 카톨릭신자인 필리핀의 정신적 지주 하이메 신추기경은 최근 『과거 마르코스시절 거들먹거렸던 인물들에게 표를 던져서는 안된다』며 라모스·이멜다·코후앙코및 개신교도인 살롱가등을 이번선거에서의 기피인물 명단에 올려놓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이상룡선생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무력으로 독립쟁취” 만주 항일투쟁 이끌어/한일 합방직후 망명,신흥무관학교 등 설립/독립군단체 통합 주도… 임정국무령도 역임/의병활동·교육자로 평생 구국활동… “광복전 유해 옮기지 마라” 유언도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길이 본받기 위해 서울신문사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역임한 이상룡선생이 선정됐다. 5월의 독립운동가 이상룡선생은 1896년 경북지역의 의병으로 활동하다 한일합방이후인 1911년 만주로 망명,그곳에 한인사회를 건설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독립전쟁을 위한 인재양성과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 1926년 1월 국무령을 사임한 이 선생은 32년 5월12일 74세의 노령으로 중국 길림성에서 서거했다. 이 선생의 생애와 사상 업적을 되새겨 본다. 1925년 3월23일 상해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은 미국의 위임통치안을 제안한 이승만대통령을 탄핵면책하고 국무총리 박은식을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박은식대통령은 임시정부헌법을 대통령중심제에서 내각책임제로 개헌하고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국무령에 만주지역에서 가장 큰 독립운동단체인 한족회와 통군부를 이끌던 이상은선생을 지명했다. 1911년 만주로 이주한 이 선생은 만주에 항일독립운동기지를 만들어 청년들에게 군사교육을 시키는 한편 동포들에게 독립운동의식을 고취,신망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이 국무령은 만주에서 독립군을 지휘하며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서온 김좌진·오동진·김동삼 선생들을 국무위원에 임명하고 임시정부가 활발한 무장독립투쟁을 이끌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국무위원들은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창조파와 개조파,국내파와 해외파 등으로 나뉘어 임시정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1926년 1월 이 선생은 초대 국무령을 사임하고 다시 만주에 돌아와 독립운동조직인 의정부·신민주·참의부의 통협에 심혈을 기울이고 힘썼다. 윤봉길의사가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일본 군국주의 지도자들을 살해한 뒤 12일만인 1932년 5월12일 이 선생은 74세로 만주 길림성 소성자에서 『외세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더욱 면려하여 독립을 관철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노환으로 선거했다. 70평생중 반세기에 걸친 이 선생의 일관된 구국노력은 의병활동·민족계몽운동·독립군지도자·임시정부 정치지도자·교육자·사상가 등 당시의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32년 74세로 별세 이 선생의 깊은 학식과 큰 인품은 조국은 되찾겠다는 의지와 정열로 승화되어 민족진영이나 사회주의 진영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많은 추종자들을 낳았다. 이 선생은 1858년 11월24일 경북 안동에서 유학자 이승목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문가의 후예로 태어난 이 선생은 유학자로서의 학문적인 수업을 쌓다가 1896년 일자 명성왕후를 시해하자 영남지방의 의병에 참가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지방유지들과 합자,가야산에 군사기지를 건설할 계획을 계획을 세웠으나 자금부족과 일본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선생은 김동삼 등 동지들과 안동에 대한협회 안동지부를 결성,민족각성과 청소년 교육등 민족자강운동에 헌신했다. 1910년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자 이 선생은 국내최대의 항일비밀경사 신민회에 가입했다. 신민회는 전국 13개 도의 유지들과 부호들을 규합,만주에 거대한 조선인 자치구를 설립할 목적으로 이민을 모집하고 있었다. 이시영·이회영·이동영·주진수·김창환 등 구한말의 관리와 양반·선비들은 가산을 정리하고 무인지경이던 만주로 이민을 떠났다. 1911년 4월 53세의 이 선생은 52명의 대가족을 인솔하고 만주로 이주했다. 이 선생은 만주의 땅을 매입하여 조선인 촌락을 만들고 학교와 교회를 설립,청년들을 교육시키고 무관학교를 세워 독립전쟁을 일으킬 목적으로 동지들과 함께 개척이민의 선두에 섰다. 이 선생은 만주에 도착하자마자 유하현 삼원포에 거류민단조직인 경학사를 설립,사장에 취임했다. 경학사는 1914년 부민단으로 발전되고 신흥학교를 설립,인재를 양성했다. 이 선생은 3·1운동직후에는 한족회를 설립,동포들에게 민족자긍심과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한인청년들을 신흥무관학교에 입교시켜 1천여명에게 군사교육을 받게 했다. 이 선생은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는 무장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독립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서로군정서를 설립,총재에 취임했다. 부총재에는 여준,정무청장은 이탁,참모부장은 김동삼,독립군사령관엔 지청천을 임명,일제에 항거하는 한편 국내 진공작전계획도 세웠다. ○서로군정서 총재 당시 만주에는 3·1운동이후 일제의 탄압과 만행에 시달린 조국의 열혈청년들이 대거 이주해와 2천여명을 무장킬 수 있었다. 이 선생의 서로군정서 조직은 당시 해외독립운동단체중 최대규모였다. 1919년 4월13일 이동영·이시영선생이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자 이 선생은 『한민족에 두개의 정부가 있을 수 없고 광복운동에는 단결이 가장 큰 선결조건』이라는 이유를 들어 참모들을 대동하고 임시정부 산하의 군사조직으로 들어갔다. 이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에서는 외교와 내치·재정을 담당하고 만주의 항일무장세력은 단결해서 군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부하들을 설득,조선의용대를 조직하고 북만주와 시베리아에서 활동중인 홍범도·이동주 등과 항일연합전선을 펼 것을 모색했다. ○통군부 확대개편 이선생은 1920년초 북경에서 개최된 조선인 군사통일회에 참가,박용만·신숙 등과 군사기구의 통합방안을 협의하고 22년 6월에는 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이룬 통군부를 조직했다. 그뒤 이 선생은 통군부를 다시 확대개편하여 17개 독립운동단체로 하여금 통의부를 구성하는 등 독립군의 군세확장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전통깊은 유학자집단에서 태어나 성장한 이 선생은 다른 독립운동가들과는 달리 외교나 교육에 치중하지 않고 일생동안 무력항일투쟁만을 주장했다. 조국광복을 위해서는 일본제국주의와 무력으로 싸워서 이기는 수 밖에 없고 이를 위해서는 중국·소련 등과 연합해서 독립군을 조직,화력과 무장을 갖추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1925년 3월 미국에 체류하면서 위임통치를 주장하던 이승만대통령이 탄핵되자 국무령에 취임한 이 선생은 임시정부를 독립군지휘관으로 구성,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려고 작정했다. 그러나 이 선생의 구상은 내분으로 결실을 보지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되자 26년 1월 국무령직을 사임하고 다시 만주로 돌아왔다. 만주에 돌아와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지도하던 이 선생은 일본이 만주국을 설립한 32년 5월12일 노령으로 별세했다. 『국토를 찾기전에는 내 유해를 고국에 싣고 가지말라』고 한 유언을 남김으로써 이 선생의 유해는 광복된지 45년만인 90년 9월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중국 흑룡강성에서 봉환,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유족으로는 증손자인 항회·범회씨가 서울에 살고 있으며 선생의 기념사업회 결성을 준비중이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역사적 평가/20년대 독립군총사로 불멸의 업적 석주 이상룡 선생은 70생을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민족지도자였다. 이 선생은 1896년부터 1910년까지 향리에서는 의병의 지도자로서,민족계몽운동가 또 2세교육자로 활동했으며 1911년 만주로 이전해서는 민족의 선구자로서 역할을 다했다. 이 선생은 독립운동의 방략으로 교육·산업운동과 항일무장투쟁을 병행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이를 동지들과 함께 실행에 옮겼다. 그는 만주의 한인사회에서산업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동포들의 법적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중화민죽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는등 외교적인 노력을 통해 한인들의 권익옹호에 앞장섰다. 이 선생은 이주한인들의 생업을 위해 벼농사를 적극 권장,지도해 만주에서 쌀을 생산했으며 경제적인 기반이 마련된뒤 독립군을 조직했다. 그는 경학자·부민단·한족회·군정부·통의부·정의부·혁신의회 등으로 이어지는 항일 민족독립운동단체를 직접 지도해 만주지역의 민족지도자로서 불멸의 자취를 남겼다. 이 선생은 노년에는 김동삼을 위시한 여러 혁명가들을 지도함으로 써 항일대열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1923년 해외 항일독립운동단체의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상해의 국민대표회의에 김동삼을 파견,6개월동안 의장을 활동시켜 항일독립운동의 전략·전술을 수립하게 했다. 유학자로서,의병으로서,때로는 민족의 교육자요 지도자로서 다양한 역할을 하던 이 선생은 1932년 5월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망명지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그의 혁명가적인 행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귀감이 되어 남을 것으로 확신한다.
  • “미국의 고질병” 인종갈등 언제까지/악순환의 저변과 파장

    ◎복지정책 후퇴에 피해의식 증폭/쌓였던 불만,집단폭력으로 폭발/“멕시코계 가담·우리 교포 희생양” 60년대와 다른 양상 지난달 30일 미국 LA중심가에서 발생,이틀째 시가지 전역으로 약탈과 방화가 확산되고 있는 흑인폭동은 미국사회의 고질병인 인종갈등이 표출된 것으로 다인종국가인 미국에 있어서의 백인과 비백인간 또는 비백인 상호간의 새로운 관계설정의 필요성을 대두시키고 있다. 미국내 사회계급의 최하층에 자리잡고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천대와 멸시를 받아온 흑인들이 집단폭력을 통해 욕구를 발산해온것은 늘상 있어온 일이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이례적으로 시당국과 주정부의 비상사태선포및 주방위군 투입조치에 이어 조지 부시대통령도 사건발생 하루만에 국민들에게 법과 질서의 유지를 호소하고 연방정부차원의 조사를 명령하는등 신속한 조치를 취하고 나서는 것으로 보아서도 그 사태의 심각성을 알수있다. 특히 이번사건은 흑백갈등에서 비롯된 흑인폭동의 형태로 시작됐으나 그 전개과정에서 히스파닉(주로 멕시코계)이 새로이 폭동에 가담했으며 반면에 피해당사자는 한인들이어서 갈등의 양상이 백인대 비백인에서 비백인끼리의 대립으로 새롭게 발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흑백갈등의 역사는 미국 독립이전부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최근들어서는 지난 60년대 중반이후부터 70년대초까지 가장 절정에 달했다.65년 LA지역에서 한 흑인의 체포로 시작된 이른바 「와츠사건」으로 사망34명,체포4천여명과 엄청난 재산피해를 입은데 이어 68년에는 멤피스에서 흑인지도자 마틴 루터 킹목사의 암살과 뒤이은 전국적인 폭동으로 38명이 사망하는등 극심한 대립양상을 보였다. 이같은 60∼70년대의 흑백갈등을 겪으면서 미행정부와 의회는 80년대들어 한동안 인종분규의 문제점을 제도적으로 수렴하고 또 소수인종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한 각종 정책의 입법화를 활발하게 추진했다. 그러나 소수민족 우대를 골자로 하는 그같은 법안들은 레이건행정부 이래 계속된 거부권행사에 막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그 까닭은 점점 어려워지는 경제상황하에서 제반분야에서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을펼때 그만큼 상대적으로 고용및 교육기회등을 박탈당하게 되는 백인 중하류층의 불만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소수인종들의 지위향상에 대해 대부분의 백인들이 내심으로 반대하고 있는 실질적인 이유는 백인에 비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소수인종들의 인구증가율 때문이다.현재는 백인이 80%를 차지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그들에게 수적으로 압도당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두려움이 내재돼 있는 것이다. 최근 한 통계에 따르면 현재의 인구증가 추세가 지속될 경우 앞으로 64년후인 서기2056년을 기점으로 유색인수가 백인을 압도,백인이 소수인종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색인의 인구증가 원인은 아시아계와 히스파닉은 높은 이민율 때문이고 흑인은 높은 출생률 때문으로 이 통계에 따르면 금세기말까지 아시아계는 22%,히스파닉은 21%,흑인은 12%가 증가하게 되는데 반해 백인은 2%의 증가에 불과한 것으로 돼있다.또 이에따라 2020년까지 유색인수는 현재의 두배인 1억1천5백만명에 달하게 되는 한편 백인인구는 정체상태로 접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백인사회의 보수화를 촉진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흑인탄압으로 악명높은 백인우월주의단체인 KKK단 출신 데이비드 듀크가 루이지애나 상원의원과 주지사선거에서 백인중산층의 전폭적 지지를 얻었던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흑인들의 한인상가에 대한 무차별 파괴행위와 관련,미국내의 인종문제가 과거와는 달리 소수인종끼리의 충돌가능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 커다란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흑인들이 자신들의 거주지에 들어와 경제적으로 번성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백인대신 희생양으로 삼는 상황이 일반화된다면 그것은 한흑간 심각한 인종갈등의 양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흑 지도자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 학생회간부 중징계 항의/공주교대생 수업거부

    【공주=이천렬기자】 공주교대(학장 이충구) 학생 1천여명은 28일 학교측의 학생회간부 부당징계및 자치활동탄압 철회등을 요구하며 이틀째 수업을 거부하고 있다. 이에 앞서 이 학교 학생 2백여명은 지난 9일부터 학교측이 올해 신입생들에게 4년간의 총학생회비를 한꺼번에 받은 총학생회장 최현문군(21·미술교육과정 3년)등 2명을 제적하고,이들의 제적철회를 요구하며 학내시위를 주도한 총학생회 교육부장 박형숙양(22·사회교육과정 4년)등 5명에게 무기정학등의 징계를 내린데 항의,학장실등을 점거한 채 농성을 벌여왔다. 이에 따라 학교측도 지난 10일부터 대학내의 전기와 전화등을 전면 차단하고 교대부속 국민학교로 옮겨 학교업무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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