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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여 강경투쟁 철회/국민회의 「김 대통령 경고 결의안」 유보

    국민회의는 26일 김대중 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지도위원회를 열고 내년 1월 임시국회 소집요구 및 임시국회에서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경고결의안 제출을 유보하기로 했다. 국민회의는 또 야당탄압 및 표적사정 중단과 김대통령의 대선자금 공개를 촉구하기 위한 대규모의 공청회 개최도 연기하기로 하고 이와 관련된 향후 일정은 김총재와 김상현 지도위의장에게 일임했다. 국민회의의 이같은 입장 변화는 총선을 앞두고 대대적인 정치권 사정은 없을 것이라는 자체판단에 따라 지금까지의 강경일변도식 대여투쟁 방침을 사실상 「철회」한 것으로 풀이돼 그 귀추가 주목된다.
  • DJ,민주세력 연립 촉구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22일 『여당도 민주주의 정통성이 있는 사람이 지배하고 야당도 민주주의 정통성이 있는 사람이 할 때 진정한 민주주의 발전이 있다』고 지적하고,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 김총재는 이날 하오 경기 안양 동안갑(위원장 최희준),수원 팔달지구당(위원장 박왕식) 창당대회에 잇따라 참석,『과거 나는 김영삼대통령과 민주협 공동의장을 함께 했고,군사독재와도 맞서 싸웠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총재의 이날 발언은 「민주세력의 연립」을 뜻하는 것으로 향후 여권의 대응이 주목된다. 김총재는 『법이 허용하는 한 전­노씨 일당을 수사하고 처벌하는데 우리당도 전면적으로 지지한다』면서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이 사심을 갖고 야당을 탄압하는데 이용하려 하기 때문에 국민을 불행하게 하는 정치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여“사정과 무관”·야“탐색용”경계/「김병오 의원 소환」정치권반응

    ◎국민회의­자민련 “대선자금 공개” 반격 정치권 사정이 임박했다는 얘기가 나도는 가운데 검찰이 국민회의 김병오의원을 6·27지방선거때 금품수수 혐의로 전격수사함에 따라 정치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신한국당은 야당의 표적사정 주장을 일축하고 있으나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정치권 사정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신한국당◁ ○…김의원의 소환을 정치권 사정과는 관계없는 선거비리 차원이라는 생각이다.손학규 대변인은 『김의원에 대한 수사는 정치권 사정과는 전혀 관계없는 선거사범에 관한 문제일 뿐』이라면서 『이를 정치권 사정의 시작이라고 보는 견해나 야당탄압이나 표적사정의 시작이라는 야당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손대변인은 또 『사정의 시작이라는 것은 일련의 연속된 과정의 처음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선거비리 차원에서 완전히 독립된 별개의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신한국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두환·노태우씨에 대한 검찰의 조사과정에서 일부 정치인의비리혐의가 드러났을지는 모르지만 이들에 대한 본격적인 소환조사 움직임은 구체화되고 있지 않다』면서 『특히 계좌추적 등을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며 사정이 시작돼도 단계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특히 『현재 신한국당내에서 검찰수사대상과 시기 등에 대해 정확이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 사정착수설이나 표적수사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신한국당의 일각에서도 김의원의 소환이 사정정국으로 가는 신호가 아니냐는 추측도 나돈다.특히 최형우의원이 이날 한 토론회에 참석,『검찰의 수사에 대해 왈가왈부해서는 안된다』면서 『나를 포함해 누구든 문제가 있다면 성역없이 과감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해 정치권 사정이 임박한 것을 시사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야권◁ ○…국민회의는 김병오의원의 검찰 소환조사에 대해 『본격적인 정치권 사정으로 보지 않는다』며 사정과는 줄기가 다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김의원 스스로도 『지구당 장부에 기록,당비로 썼다』며 『진정서가 접수됐거나 검찰에서 인지수사를 했을 것』이라며 사정설과의 관계를 배제했다. 이 때문에 당 차원에서 준비중인 1천만명 서명운동·전당대회 개최·장외집회 검토 등 초강경 대응은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그러나 「사정의 칼」을 휘두르기에 앞서 슬쩍 반응을 떠보는 「탐색용」일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언제 닥칠지 모른다」며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정대철 부총재는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준비단계로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회의가 이날 김대중총재와 자민련 김종필총재의 「비리설」을 담은 신한국당의 홍보책자 「이렇게 말한다 2」를 강도 높게 공격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예비전의 성격이 크다.박지원대변인은 『김총재가 평민당 창당과 중간평가 유보때 여권으로부터 어떤 돈도 받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며 명백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관련자들을 모두 고발조치할 방침임을 밝혔다.여권에 일단 국민회의측의 「결사항전」의지의 강도를 보여주겠다는 계산으로 여겨진다. 현재 당사 주변에서는 이종헌 부총재는 처가식구들의 계좌까지 추적당했고,특히 김대중총재의 측근인 권로갑·한화갑·김옥두의원의 경우 친인척 재산내역까지 수사를 마친 상태라는 등 소문이 무성하다.일부는 구속을 각오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얘기까지 심심치않게 들리는 태풍전야의 형국이다. ○…국민회의와 같이 사정권에 들어있는 자민련도 바짝 긴장하면서 여차하면 「야당탄압을 위한 표적사정」으로 보고 국민회의와 공조,역공을 펼칠 태세다.구창림 대변인은 『김총재의 1백억 계좌설을 여권이 홍보책자를 통해 사실인양 떠들고 있다』며 『노씨에게 받은 2천억원 외에 또다른 대선자금 내역을 즉각 공개하라』고 「경고」,국민회의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민주당은 예의 「여야를 막론한 철저한 사정」을 촉구하고 있다.그러면서도 비자금과 관련된 인사를 제쳐두고 국민회의 김의원의 소환조사한 데는 비판적인 시각이다.박석무의원은 『덫에 걸린 야권인사부터 먼저 칼을 들이댈 경우 「표적수사」 「편파수사」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 정치권 사정한파 임박설 “초긴장”/검찰 움직임에 신경 집중

    ◎“제팔 자르기 불가피” 대상 촉각­여/거센 반발속 대응책 없어 고심­야 다음주부터 본격적인 정치권 사정작업이 전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이때문에 여야는 「유혈」의 향배를 예측할 수 없다는 위기감 아래 검찰쪽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특히 국민회의측은 사정의 실체가 나타나지도 않은 단계에서 『임시국회때 대통령에 대한 경고 결의안,총리에 대한 불신임결의안을 내겠다』는 등 지레 초강경 대응책들을 「예고」해 시선을 모았다. ▷신한국당◁ ○…정치권 비리에 대한 사정작업이 「청산정국」의 마지막 정리수순이라는 판단이다.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사건으로 어수선해진 정국을 수습,총선 분위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차피 거쳐야 할 관문이라는 것이다.하지만 당으로서는 그 귀추만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처지여서 답답해 하는 분위기다. 당 주변에서는 검찰의 「사정칼날」이 야당측보다 먼저 들이닥칠 것으로 내다보면서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하다.야권을 겨냥하기 앞서 그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제팔 도려내기」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때문에 노씨 비자금 수사과정에서 비리혐의가 드러난 것으로 알려진 10여명의 의원가운데 소속 의원이 누구인가를 놓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러한 소문은 신한국당 4명,야당 6명 등 구체적인 숫자와 함께 이름까지 낳으면서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다.특히 충청권과 부산권 출신 민주계 의원이 포함되어 있다는 등 「얼굴없는 소문」이 더욱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든 정치권 사정이 또다시 정국을 뒤흔들게 하는 쪽이 아니라 「곪은 데」를 수술,「청산정국」을 정리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손학규 대변인이 『노씨사건 수사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비리 정치인은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고 내다본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야권◁ ○…국민회의는 『여권 스스로의 자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배수진을 치고 당내 인사에 대한 사정이 가시화될 경우,「결사항전」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나아가 지방강연회 형식의 장외집회도 신중히 검토중이다. 국민회의가 『무엇인가 있기 때문 아니냐』는 여론의 의혹을 무릅쓰고 이날 갑자기 단계를 높여 초강경으로 치달은 것은 「사정의 칼」이 2∼3명의 김대중 총재 측근을 겨냥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이는 결국 김총재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혀 그의 향후 행보를 결정할 내년4월 총선 승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4대 대선자금 공개 공세와 국민회의가 끌어안으려는 중산층과 서민층이 꺼리는 장외공세 말고는 뾰족한 대응방안이 없어 고민하는 모습이다.박지원 대변인은 연일 『여권의 자기정화없이 「표적사정」을 한다면 이는 명백한 야당탄압』이라고 으름장만 놓고있다. ○…「무풍」으로 믿는 탓인지 민주당은 여야를 막론한 「철저한 사정」을 촉구하고 있다.여권을 향한 대선자금 공세도 여전히 늦추지 않고 있다.이규택 대변인은 『정치권 사정이 가시화되면 민주당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눈에 띄게 달라질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한편 자민련은 1∼2명 중진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등 「태풍권」에 있다고 판단한 때문인지 대선자금 수사와 이를 위한 특검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한영수 총무는 『표적사정이 되거나 야당탄압으로 비쳐지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게 될 것』이라며 상황에 따라 야권공조에 나설 채비다.
  • “집권후반기 개혁기조 분명히 했다”/「12·20개각」정치권 반응

    ◎“15대 공천방향 암시” 긴장감­여/“선거관리 포석… 기대 못 미쳐”­야 김영삼 대통령이 20일 단행한 개각과 청와대비서진 개편에 대해 신한국당은 『집권후반기 개혁의 확고한 추진의지』로 해석한 반면 국민회의·민주당·자민련 등 야권 3당은 『김대통령의 친정체제 강화』라고 평가를 달리했다. ▷신한국당◁ ○…의외의 인물이 일부 포함된데 놀라워 하면서도 집권후반기 개혁기조를 분명히 함으로써 과거청산과 내년 총선승리에 임하겠다는 김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인사로 풀이했다. 김윤환대표는 『세대교체등 다양한 의미가 포함된 것 같다』고 김대통령의 정국운영 방향이 함축된 것으로 풀이한뒤 『잘됐다』고 긍정평가 했다.김대표는 특히 권오기동아일보사장의 통일부총리 발탁에 대해 『경북고 동창으로 보수적 통일관을 가진 언론계 출신』이라고 친밀감을 표시했다. ○…강삼재 사무총장은 김광일 청와대비서실장 발탁에 대해 『통일민주당 시절부터 김대통령을 가까이 보필했고 김대통령이 아껴온 적임자』라고 호평했다. 박범진 총재비서실장은 『지역안배와 함께 과거와 정치적으로 연계되지 않은 신선한 인물들의 대거 발탁이 특징』이라면서 『특히 수도권 총선에서 당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 그러나 민정계 일부 의원들은 『구여권의 장·차관출신들이 배제된 것은 향후 공천방향을 암시하는 것 아니냐』고 긴장감을 보이기도 했다. ▷야권◁ 공통적으로 『특징을 찾을 수 없는 개각』이라는 반응이다.아울러 내년 총선을 겨냥해 친정체제를 구축한 「선거용 포석」이라고 혹평했다. ○…국민회의의 박지원 대변인은 『새로운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기에는 부족한 인선』이라며 『국민적 기대에 미흡한 수준이하의 개각과 청와대 비서진의 개편』이라고 혹평했다.특히 김광일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우석내무장관 등을 겨냥,『주요직에 민주계가 집중 포진됐다』며 『진정한 국정운영 보다 내년 총선에만 신경을 쓴 선거용 개각』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은 『노력한 흔적은 엿보이나 기대에는 아주 미흡하다』는 반응이다.이규택 대변인은 『개혁성과 도덕성을 갖춘 참신한 인사들이발탁될 것을 기대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뉘에 약간의 쌀이 섞인 격」이다』면서 『과연 새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이 역사 바로세우기등 시대적 소명을 다할지 의문』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자민련은 『실타래처럼 꼬인 현정국을 풀기에는 역부족인 개각』이라고 논평했다.구창림 대변인은 『청와대 비서진을 강화한 것은 정국을 강공 드라이브로 운영하겠다는 의도』라고 정치권 사정을 우려했다.특히 내무부장관에 가신출신을 기용한 것은 공명선거 의지가 없다는 뜻이자 야당을 탄압하려는 선거전략』이라고 혹평했다.
  • “인권·대만싸고 미·중관계 악화”/미지의 내년 국제정세 전망

    ◎러시아 우경화속도 늦춰질듯/천형 에이즈치료약 개발 기대 미국 대통령선거와 올림픽이 치러지며 국제적으로는 보스니아 평화를 둘러싼 탈냉전 이후의 다자간 국제평화가 시험대에 오르는 96년의 세계는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18일 발간된 미국의 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지 송년호는 25개분야에서 96년의 국내외 정세를 전망하는 특집을 게재했다. 미국 대통령선거 최대 이슈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이후 최초로 민주당대통령의 재선기록을 세우려는 클린턴 대통령과 늦어도 3월26일의 캘리포니아 예비선거까지는 드러나게될 공화당 후보와의 격돌이 예상되고 있으나 8월 전당대회 직전에 치러지게 되는 올림픽으로 인해 예년에 비해 다소 열기가 수그러들 것으로 전망했다.또한 선거에서의 가장 큰 이슈는 최근 1백만 흑인대행진등에서 불거진 흑·백대립과 같은 인종문제가 될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깅리치 하원의장의 저서 「미국을 새롭게」를 비롯,윌리엄 베네트의 「도덕의 한계」등 보수적 성향의 책들이 95년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것과 같이 96년도에 이같은 보수적 책들이 「빅 북」의 위치를 차지하게 될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최근 총선에서의 공산당 득세로 탈냉전 이후 러시아가 추구해오던 우경화의 속도가 늦춰질 것으로 전망됐다.또 중국의 인권탄압과 대만문제 등으로 미·중관계가 벼랑에 처하게 될것으로 보았으며 미군의 보스니아 파병은 나토등 유럽 서구세력의 단합과 함께 클린턴 행정부의 평화의지를 과시할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한편 미국의 경제는 완만한 성장을 나타낼 것이다. 인류 최대의 천형으로 알려진 에이즈의 치료를 위한 새로운 약의 개발도 96년의 업적으로 기대되고 있다.정부의 교육예산이 삭감된 상황에서 대학 학비가 상당히 오를 것이며 또한 미국인들은 빌리 그레이엄 목사등과 같은 정신적 지도자들로부터 정신적 각성을 추구하게 될것 이라고 이 잡지는 전망하고 있다.
  • 위경생 14년형의 저변(해외사설)

    중국의 정치와 경제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중국사회도 개화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반체제 인사 위경생이 징역 14년형을 받은 사실이 큰 충격을 주고 있다.그런 기대는 항상 잘못돼 왔다. 위경생은 결코 폭력옹호주의자가 아니다.중국정부의 눈에 비친 그의 범죄는 민주주의적인 자유를 요구했다는 것으고 그의 요구는 아주 합리적이고 신중한 방법으로 이뤄져 왔다.그에 대한 대우는 해리 우의 경우보다 더 악랄한 인권탄압이다.이제는 미국시민이 된 해리 우는 지난 여름 신중하게 중국에 들어갔지만 추방당하고 말았다. 위경생에게는 그럴 기회도 별로 없다.공산당으로서는 인민통제를 잘 하는 것이 생존의 비결이다.자유로운 정치토론은 권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따라서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유해한 것이고 나타나기만 하면 무장반란이 일어난 것처럼 무자비하게 진압해야만 한다. 이것은 서구정부나 투자가들이 중국과 사업을 하려면 직면하는 가혹한 현실이다.중국은 재판사실을 공개하면서 국제여론을 바보취급하고 있다.이같은 사실은97년이후 홍콩의 장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주고 있다.대만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는 틀림없이 비난할 것이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그러나 중국이 이런데 신경을 쓰리라는 기대는 환상일 것이다.강택민 국가주석은 지난 가을 빌 클린턴 미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어떤 경우에도 중국의 변화는 내부에서 일어나지 외부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서 마찰이 있다는데 약간의 위안을 찾을수 있다.공산당이 민주주의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들이 약하다는 신호이다.권력유지를 하려면 인민들의 지지와 높은 생활수준 유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종국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인민들은 더많은 정치기구를 요구할 것이지만 불행하게도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천안문사건같은 전통이 쉽게 사라질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 “생존 건 투쟁” 첫날부터 대여 강공/DJ 일산자택 입주 하던날

    ◎집들이 행사로 서교동 성당신부 초청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15일 상오 일산 자택에 입주한뒤 기자들에게 『이제 고생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피력했다.35년의 「동교동시대」가 갖고 있던 탄압·구속·연금등의 어두운 이미지를 염두에 둔 듯했다.첫 「집들이」 행사로 자기가 다니던 서교동 성당 신부를 초청,응접실에서 기도회를 가진 것도 이를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김총재는 이날 상오 비자금정국이 시작된 이후 가장 강도높게 정부·여당을 공격하는 것으로 「일산시대」를 열었다.그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무위원 및 의원 연석회의에서 시종 『역사를 바로잡으려면 자기가 지나온 역사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정부·여당을 공격했다.또 『이제 생존을 건 투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마치 전장에 나서는 장수처럼 의원들을 독려했다.여권의 정치권에 대한 사정방침을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자세이다. 김총재는 지난 61년 5·16직후 입주했던 사연 많은 동교동 자택에서의마지막 밤을 보낸뒤 15일 아침 출근하면서 잠시 깊은 감회에 젖었다고 했다.그리곤 국회에서 열린 연석회의에 참석한뒤 곧바로 일산자택으로 직행,측근의원들과 기자들에게 집내부를 공개했다. 일산 새집은 정발산 기슭에 위치한 단독주택으로 140평의 대지에 기와지붕인 2층짜리 본채와 1층짜리 별채로 지어졌다.동생 김대현씨가 맡아 지은 이 집 내부의 벽·계단·기둥·바닥은 한옥을 선호한 김총재의 생각대로 모두 나무를 사용했다.그러나 전체적인 구조 및 형태는 양옥이다.박지원 대변인은 『땅값 1억5천만원,건축비 3억원등 4억5천만원이 들었다』며 『장남 홍일씨가 동교동에 살고 대신 홍일씨의 반포동아파트(47평)를 팔아 자금을 조달했다』고 말했다.
  • 96년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

    정부는 14일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선생 등 12명을 96년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확정,발표했다.「이달의 독립운동가」는 조국광복에 크게 기여한 유명무명의 애국선열을 고루 발굴,그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는 뜻에서 국가보훈처,서울신문사와 광복회,독립기념관이 공동으로 92년부터 선정해왔다. 이들 독립운동가의 주요공적을 간추려본다. ▲1월 우강 송종익선생(1887∼1956)=1919년 임시정부 건설 경비를 조달하는 등 해외 한족대회에 미주대표로 활동했다.95년 독립장. ▲2월 단제 신채호선생(1880∼1936)=「조선사」 등을 저술,애국 계몽운동과 근대 민족사학을 확립하는데 기여했다.62년 대통령장. ▲3월 은재 신석구선생(1875∼1950)=3·1 독립선언서에 민족대표로 서명,만세삼창한 뒤 체포돼 2년동안 옥고를 치렀다.63년 대통령장. ▲4월 송재 서재필선생(1866∼1951)=1896년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임시정부의 외교고문으로 미국에서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세계에 알리는데 공헌했다.77년 대한민국장. ▲5월 해공 신익희선생(1892∼1956)=임시정부 법무·외무총장을 지내면서 통일된 독립단체 조직 및 항일 독립투쟁을 전개했다.62년 대한민국장. ▲6월 유일한선생(1894∼1971)=재미 한족연합회에서 독립의 당위성을 홍보하고 수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임시정부에 제공했다.95년 독립장. ▲7월 해운당 김하락선생(1846∼1896)=명성황후 시해에 격분,이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안동·의성 등지에서 항전하다 자결.82년 대통령장. ▲8월 고헌 박상진선생(1884∼1921)=대한광복회를 결성 친일부호의 처단 등 투쟁을 전개하다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했다.63년 독립장. ▲9월 만호 홍진선생(1877∼1946)=1926년 임시정부 국무령(수반급)에 추대돼 광복 때까지 항일 구국투쟁을 전개했다.62년 독립장. ▲10월 건재 정인승선생(1897∼1986)=조선어학회에서 한글사전을 편찬했으며 일제 탄압으로 복역중 광복을 맞았다.62년 독립장. ▲11월 죽엽 전명운의사(1884∼1947)=1908년 일제 통감부 외교고문 스티븐스를 저격,옥고를 치른뒤 미국에서 의용군을 조직해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보냈다.62년 대통령장. ▲12월 정이형선생(1879∼1956)=1922년 평북 초산부근의 파출소와 일경 주재소 5곳을 습격하는 등 무장항일운동을 벌이다 체포돼 복역중 광복을 맞았다.63년 독립장.
  • 정치관계법 협상 어떻게 돼가나

    ◎국고보조 축소·지정기탁제 존폐 쟁점/여 “국민부담 덜자”에 야 “돈 없는데”­국고보조금/야 “1개당이 독식… 폐지하는게 정의”­지정기탁제/선거비용 현실화·자원봉사 폐지엔 대체로 공감 여야는 13일 정치자금법·선거법 등 정치관계법을 돈안드는 정치풍토 조성이라는 대의명분에 맞게 개정하기 위한 실무협상에 착수했다.그러나 정치자금 배분규정을 둘러싼 여당과 야3당간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회기내 처리에 진통이 예상된다. 먼저 정치자금법과 관련,신한국당은 정당 국고보조금을 현행 유권자 한사람당 8백원에서 6백원으로 축소하는 안을 내놓았다.정당의 살림을 국민세금에 의존하는 비율을 줄이는게 돈안쓰는 정치의 기본이라는 논리다.신한국당은 또 국고보조금 가운데 교섭단체의 균등배분 비율을 현행 40%에서 20%로 축소,의석비율에 따른 배분 폭을 늘리는 조항도 내놓았다.국민회의 등 야권 3당은 펄쩍 뛴다.다른 정치자금 조달이 어려운 야당의 현실에서 국고보조금의 감축이나 균등배분 비율의 축소는 신종 야당탄압이라는 것이다. 야권은 오히려 여당이 독식하는 지정기탁금 가운데 일정비율만 빼고 나머지는 각 정당이 의석비율 등을 기준으로 나누거나 아예 지정기탁금제를 폐지하는 것이 「분배의 정의」라고 주장한다.한 정당이 기탁금 총액의 75%이상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선관위의 안도 야당안에 근접한다.야권은 그러나 국고보조금의 배분을 전년도 당비모금액의 2배 이내로 한정시키려는 선관위 안에는 반대한다. 신한국당이 별도의 「돈세탁 방지법」 대신 정치자금법에 정치자금의 세탁금지 및 처벌조항을 삽입하려는데 대해서는 야권도 긍정적이다.다만 정치인 뿐 아니라 고위관료,사채업자도 처벌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후원회에 대한 기부한도액과 관련,중앙당을 기준으로 개인 5천만원,법인 1억원에서 각각 2배씩 인상하고 중앙당의 모금 한도액도 현행 50억원에서 75억원으로,선거가 있는 해는 1백억원에서 1백50억원으로 상향조정하자는 신한국당안에도 야권은 찬성이다. 선거법과 관련,선거공영제를 대폭 확대하자는데 여야가 한 목소리다.신한국당은 특히 선전벽보의 부착비용 뿐 아니라 작성비용,그리고 가정에 배달되는 선거공보의 작성·발송비용을 모두 국고부담으로 하자는 입장이다. 현행 평균 5천7백만원인 국회의원선거의 법정선거비용 상한액을 2억원 정도로 증액,현실화하자는 신한국당안에 대해 야권은 대체로 수긍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액수문제에는 신중을 기한다.선관위도 국회의원선거비용 51%등 각종 선거의 법정선거비용을 평균 45% 증액하자는 것이다. 자원봉사제도는 우리 풍토에서 실효성이 없으므로 폐지하고 대신 유급사무원수를 대폭 늘리자는 신한국당안에 대해 야권은 대체로 수긍한다.다만 국민회의측은 섣부른 폐지보다 개선방안,이를테면 식대 등 일정액의 활동비를 일정 수의 자원봉사자에 한해 지급허용하는 것을 검토하자는 의견이다. 후보자 부인의 공개장소 찬조연설을 폐지하고 호별방문시 가중처벌 조항을 두는 것에는 여야가 모두 찬성이다. 가장 민감한 선거구 재조정 문제는 빠르면 이달말 쯤 헌재가 현행 선거구를 위헌으로 판정하면 내년 1월쯤 다시 논의하자는데 여야가의견을 같이 한다.다만 신한국당은 소선거구제 속에 군소선거구 통폐합,신한국당은 가능한 한 현행유지,민주당과 자민련은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한다.
  • 전·노씨 구속 해외언론 반응

    ◎미 타임지 특집/“한국은 이제 법치국가가 되었다”/금융실명제·반부패 개혁으로 과거청산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5일 발매된 최근호(12월11일자)에서 한국의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의 구속과 관련,「더러운 손들­한국의 어두웠던 과거를 파헤쳐」,「피와 탐욕이 남긴 것」등을 제목으로 하는 커버스토리 기사를 통해 『한국인은 강력한 의지로 과거청산문제를 대하고 있으며 이제 경제기적에 걸맞는 정치변화를 함께 이룩할 수 있다고 한국국민은 믿고 있다』고 분석했다. 타임은 무려 6개면에 걸친 대대적인 이번 특집에서 『독재로부터 민주주의로 이행한 나라 치고 한국처럼 과거를 대대적으로,또 갑작스럽게 심판대에 올린 나라는 드물다』고 지적하고 『한국의 이런 자신감은 경이적 경제성장에서 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잡지는 이어 『이번 위기의 결과는 한국이 법치국가가 되었다는 분명한 증거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이같은 일은 김영삼대통령이 금융실명제와 같은 반부패개혁을 단행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말했다. 타임의 보도요지는 다음과 같다. 역사가 마침내 전씨를 덮쳤다.그는 79년 쿠데타와 90년 광주 유혈탄압에서의 그의 역할로 말미암아 합천에서 구속되었다. 한국에서의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79년 쿠데타와 공식집계상으로도 2백명이 사망한 광주학살의 책임자들을 사법처리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할 것이라고 밝힌 2주일 전 김영삼 대통령의 발표일 것이다. 이 두 사건은 다년간 한국정치의 성가신 문제였으나 누구도 감히 이를 제거하려 들지 못했다.전씨와 노태우씨가 이 두 사건의 핵심인물이었으나 이들은 이들이 누린 절대권력의 보이지 않는 힘 때문이었는지 법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는 것같았다. 광주와 반체제자 사이에서는 이 두 장성을 재판에 회부하라는 촉구가 있었으나 김대통령은 이를 거부하면서 노씨와 전씨에 대한 심판은 역사에 맡기자고 국민에게 호소했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정의에의 동력을 과소평가했다.쿠데타와 광주사건을 조사하라는 야당의 요구는 지난 2년 사이 오랫동안 억눌려온 이들 사건에대한 새로운 세부내용이 TV 다큐멘터리와 잡지들에 의해 속속 드러나면서 더욱 거세졌다.이러한 국민적 정서에 굴복하고 또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김대통령은 마침내 검찰로 하여금 과거를 캐도록 놓아주었다. 그러나 염려스러운 것은 한국 주요정치인간의 사생결단의 싸움이다.군사유산에 대한 김대통령의 기습적 공격은 한국을 단합시키지는 않고 오히려 정치위기를 촉발시켰다. 김대통령의 여당은 노씨가 김종필씨와 김대중씨에게 비밀리에 준 자금의 내역을 공개하겠다고 공공연히 위협하고 있고 김 대통령의 라이벌도 이에는 이로써 보복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비즈니스 위크/“「과거청산」 장기적으로 경제력 강화”/한국은 지금 구조개편 통해 21C 준비중 김영삼 대통령의 과거청산은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력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미국의 경제전문지 비스니스 위크(12월11일자 아시아판)지가 보도했다. 이 잡지는 최근 한국에서 진행중인 전두환 전대통령의 광주사태 연관 문제와 노태우 전대통령의 뇌물수수 사건과관련,표지기사를 통해 『대다수의 한국전문가들은 한국이 이러다 녹아버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섞인 전망보다는 지금의 소용돌이를 오히려 한국 경제력을 강화시켜줄 구조적 개편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이 잡지는 이어 『지금의 과정은 매우 혼란스러워 보이고 또 조사 결과가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을 미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김대통령은 그러나 이런 위험부담이 큰 도박을 해서라도 곧 21세기로 진입할 한국을 개편할 굳은 결의로 차있다』고 말했다.
  • 강삼재 민자총장 일문일답

    ◎“「12·12」­「부정축재」 처리 정치타협 없다”/특수부 이미 가동… 5자회동 의미없어/5·6공인사 고뇌불구 갈등 극복할것 민자당의 강삼재 사무총장은 4일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12·12 및 5·17 문제와 노태우씨 부정축재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가장 경계할 것은 정치적협상이나 타협』이라면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5인회동 제의를 일축했다. ­김총재가 5인회동을 제의했는데. ▲5인회동 제의는 본말을 전도시키려는 의도일 뿐이다.12·12와 5·17문제 그리고 부정축재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정치적 협상이나 타협이다.전두환씨의 역사적 죄과를 단죄하기 위해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된 마당에 5인 회동이 무슨 의미가 있나.모든 것은 사직당국의 엄정한 수사를 통해서 그 진실이 명백히 규명될 것이다.김총재는 정국수습방안을 위장한 대여공세나 명분쌓기식의 구시대적 정치행태를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 ­김총재는 현 정국을 「혼란과 격동의 비상사태」라고 규정했다. ▲국민을 선동하고 기만하는 행태다.장외선동정치를 강행,오히려 국민적 혼란만 가중시킨 국민회의와 김대중씨다. ­전두환씨 구속에 대해서는. ▲전씨 구속은 단순히 한 개인의 처벌 차원이 아니다.잘못된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한 단죄로 봐야 한다.불법쿠데타를 일으킨 자신이 마치 탄압받는 양심수인 양 떠벌리고 작금 사태에 대한 모든 원인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있는 것처럼 책임을 전가하는 가증스런 모습은 적반하장의 표본이다.전씨는 국법질서를 문란케하고 헌정을 유린한 죄악에 대해 국립묘지로 갈 것이 아니라 망월동으로,합천으로 갈 것이 아니라 서초동 검찰청사로 출두했어야 했다. ­전씨 구속에 대한 국민회의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오욕으로 점철된 역사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그러나 국민회의는 전씨를 꾸짖기는 커녕 검찰수사 중단을 요구하고 『전씨가 대통령에게 할 말을 했다』고 부추기고 있으니 이게 책임있는 공당의 태도인가.김대중총재와 국민회의는 도대체 전씨 구속이 잘됐다는 것이냐,못됐다는 것이냐.전씨 처리에 있어 가장 강경해야 하는 사람,언필칭 자신이 제1의 피해자라고 하는 김대중총재가 정말 뭔가 켕기는게 있는 것 아니냐. ­당내 민정계 의원들의 동요움직임이 있는데. ▲과거 5·6공에 참여해 전두환·노태우씨를 모셨던 당소속 의원들의 인간적 갈등과 고뇌를 사무총장으로서 충분히 헤아린다.그러나 지금 대통령은 대의에 입각해서 역사와의 대화를 통해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작업을 하고 있다.개인적 의리에 얽매여 보다 큰 일을 그르치거나 동요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 ­5·6공 출신 인사들에 대한 인적청산작업의 필요성은. ▲검찰수사가 마무리되면 당의 공식입장을 밝힐 것이다.다만 이번 사건은 노태우씨 부정축재와 12·12,5·17쿠데타에 대한 수사다.5·6공에 참여한 사람들과의 단절을 위한 수사가 아니다.수사결과 법적으로 문제되는 사람들은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대책을강구하겠지만 5·6공 단절로 범위를 확대시켜 보지 마라. ­민자당의 5·18 특별법에 야당이 반대하면 강행처리할 것인가. ▲여야합의를 거쳐야 할 것이다.특별법 제정의 뜻이 순수한데 야당도 응하지 않겠는가.만약 합의처리가 되지 않는다면 국회법에 따라 표결처리하면 될 것이다.
  • 사우디 파드 국왕 중태/뇌응혈로 쓰러져/왕세자 권한 확대

    【두바이 AFP 연합】 사우디아라비아의 파드 국왕(74)이 뇌의 응혈로 중태에 빠진 후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서 통치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제기되는 가운데 후계자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3일 현지 외교관들과 의사들이 밝혔다. 수도 리야드의 한 의사는 전화회견에서 파드 국왕의 용태가 『좋지 않다』고 밝히고 회복되더라도 『가까운 장래에 집무를 재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랍국 외교관들은 30명의 왕자가 수차의 회담 끝에 상황이 명확해질 때까지 압달라흐 왕세자의 권한을 확대키로 합의했으나 확대수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 수렴을 이루지 못했다고 전했다. 또한 여러명의 소식통들은 압달라흐 왕세자가 4일 오만 무스카트에서 개막되는 걸프협력회의(GCC)정상회담에 파드 국왕을 대신해 참석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아직 공식확인은 없는 상태다. 한편 사우디 내각은 이날 국왕이 격무로 인해 갑자기 발병한 후 상황이 호전되고 있으며 단지 의사들이 충분히 휴식을 취할 것을 권고했을 뿐이라고 발표했다. ◎파드 이후 사우디 어디로 가나/압둘라 왕세자­술탄 왕자 왕위각축 예상/석유공급 차질 우려… 서방세계 이목 집중 이란·이라크와 함께 중동의 아랍세계를 지배해온 사우디아라비아의 파드 국왕(72)이 건강악화로 입원하고 회복 가능성이 적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사우디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사우디는 세계 석유의 안정적 공급에 막대한 영향력을 휘둘러온 중동 「검은 황금」 제국들의 대부격.따라서 사우디와의 안정된 관계를 바탕으로 원유의 안정적 공급을 추구해온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로서는 사우디의 정국 안정에 지대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특히 지난달 13일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서 미군시설에 대한 폭탄테러가 발생,사우디 내의 반정부세력 존재및 사우디의 친서방 노선에 반대하는 이란·이라크·수단 등 아랍내 반서방 노선 국가들과 이들 반정부세력간의 연계 여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사우디의 정국 안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쳐온 파드 국왕의 건강 문제가 불거짐으로써 사우디의 안정 유지에 대한 우려를 높여주고 있다.파드 국왕은 막대한 석유수입과 친서방 노선을 바탕으로 오늘의 사우디 현대화를 일궈낸 인물.그러나 최근 급격히 세를 불리고 있는 회교 과격파들의 비난과 탄압적인 사회체제에 대한 중산층의 불만이 커지면서 파드 국왕의 전제적인 통치 스타일에 대한 비난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파드 국왕의 건강이 회복될 수 없다고 전제하면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로서는 사우디의 안정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친서방 노선을 견지할 수 있는 후계자 취임이야 말로 가장 바람직한 일.그러나 사우디가 나름대로 정해 놓은 왕위 승계 절차를 서방쪽이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는 형편이다. 현재로서 왕위 승계가 가장 유력한 후계자는 파드 국왕보다 한살 적은 이복동생으로 제1부총리겸 사우디 국가수비대의 사령관직을 맡고 있는 압둘라 왕세자.이밖에 국방장관을 맡고 있는 사우디의 실질적 2인자 술탄 왕자(67),내무장관으로 언론을 전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나예프 왕자(62)등이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다. 사우디의 순조로운 권력 이양과 안정 유지 여부는 아직도중동에 대한 석유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문제일 수 밖에 없다.
  • 제1공화국의 과오(새로쓰는 한국 현대사:46)

    ◎이승만­이기붕 장기집권으로 건국공로 퇴색/중석불­원면사건 등 고질적 정경유착 싹 키워 대한민국사 첫쪽에 등장한 제1공화국은 오명으로 얼룩졌다.국가의 기초를 다진 공화국일지라도 과오가 공적을 가려버린 것이다.그 이유는 이승만 대통령이 카리스마적 지배로 일관한 권위주의정권이었다는 데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12년간 절대권력을 유지하는 동안 관료와 경찰을 철저하게 끌어들였다.필요할 때는 군도 직접 동원했다.그래서 충성심에 젖어 있는 봉건적 엘리트가 주변에 몰려들었다.이들 그룹은 이승만의 카리스마에 쉽게 편승하여 지배영역을 거침없이 확대해나갔다.그리고 사사오입이라는 전대미문의 국회 개헌투표를 통해 건국대업을 이룩한 이승만에 한해 종신대통령으로 당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절대권력 위해 군 동원 제1공화국에서 3대에 걸쳐 대통령자리를 차지한 이승만의 종신집권욕은 대단했다.가히 독선이었다.그의 정치고문이던 로버트 T 올리버박사(전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대한민국 건국비화」에서 당시 이승만대통령의 심경을 명확히 밝혔다.1959년 봄 서울에 온 자신이 이대통령에게 1960년에는 대통령직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더니 『누가 맡아 일을 할 것이오』라고 반문했다는 것이다.그러니까 대통령직에서 물러설 뜻이 조금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승만은 자기자신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신화속에 산 인물이다.그래서 자신이 대통령직에 있는 한 부통령자리는 별스럽지 않은 것으로 여겼다.다만 자신에게 충직한 인물을 부통령자리에 앉히고 싶어했을 뿐이다.당시 이승만은 정·부통령선거에서 함께 당선한 장면 부통령과는 같은 단상에 앉아서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 사이였다. 이때에 이승만 의중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인물은 이기붕 이었다.이기붕은 장면에게 부통령자리를 놓친 바 있지만 이승만은 또 그를 점찍었다.이기붕이 60년 선거에서 이긴다고 하면 부통령은 매력적인 자리였다.이승만대통령이 제4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하더라도 이미 고령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했다. 이기붕은 미국 유학시절에 일찍 이승만과 인연을 맺었다.이승만의 환국후 개인비서로 일하다 한국전쟁 직전에 서울시장을 거쳐 전쟁중 국방장관에 기용된 것을 계기로 권력의 양지에 들어섰다.이어 1953년 창당한 자유당의장에 선출되고 54년 5·20선거에서는 서대문 을구에서 민의원에 당선했다.그리고 민의원의장을 차지하는 것으로 자유당 제2인자가 되었다.실세로 부상한 것이다. 제3대 민의원을 뽑는 5·20선거는 관권에 의한 혹독한 탄압선거였다.그래서 이기붕과 서대문 을구에서 경선키로 한 조봉암 은 유권자 추천심사에서 제동이 걸려 입후보자등록조차 못하고 말았다.이기붕은 압도적 지지를 얻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뒷날 여론에 밀려 19 58년 제4대 민의원선거에서는 서대문 을구를 버렸다.부랴부랴 선거구를 경기도 이천으로 옮겨 당선하는 정치곡예를 연출했다. 그럼에도 이기붕의 지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이천에서 민의원에 당선하기 전해인 57년 맏아들 강석이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로 들어가 있던 터라 오히려 막강해졌다.이무렵 사람들은 서대문로터리에서 가까운 그의 집을 「서대문경무대」라 불렀다.거대한 집권여당 자유당을 거머쥐고 대통령을 움직일 수도 있는 확고한 지위의 제2인자자리를 굳힌 것이다. 이승만대통령의 장기집권은 민주주의방식의 국가경영과는 거리가 멀었다.그의 집권은 통치 그것이었다.그래서 채찍 말고도 당근이 필요했다.당근으로 비유되는 돈,다시 말하면 정치자금을 거두어들였다.그 돈은 이승만대통령에게도 직접 전달되었고,그를 핵으로 한 권력주변 인물도 챙겼다.정치와 돈,정권과 재벌의 유착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정치자금은 주로 한국은행의 돈을 산업은행이 지정한 기업에 대출하는 이른바 연계자금에서 조달되었다.58년2∼4월 사이에 39억7천만환(원)을 11개 대기업에 대출해주었다.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이 자금대출을 통해 10억환의 정치자금을 챙겼다고 주장했다.이 기업 가운데는 해방 이후부터 이승만에게 생활비를 댄 태창의 백악승이 끼었는데,자유당시절 가장 많은 특혜를 받았다. 제1공화국의 경제비리는 어떤 정치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터져나왔다.부산정치파동이 있던 1952년 중석불사건에 이어 58년 5·2선거에 따른 연계자금사건이 그것이다.3·15정부통령선거에서도 외환·금융·건설입찰을 통해 70억환의 자금을 마련했다.특히 1958년 정부통령선거를 7개월 앞두고 실시한 4개 시중은행에 불하되어 큰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정치자금과 맞물린 비리는 돈이 될 만한 틈새가 보이면 비집고 들어갔다.심지어는 외원 달러를 들여 민수용으로 구입한 솜뭉치를 국방부가 국군의 겨울나기이불과 방한복을 만든다는 명목을 달아 빼돌렸다.그 유명한 1956년의 원면사건이다.50만달러어치나 되는 62t짜리 8천2백54뭉치의 솜을 유령회사 등에 되팔았다.이익금은 물론 자유당의장 이기붕에게 돌아갔다. ○손원일 해임으로 수습 이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으나 겨우 쥐 한마리를 잡는 꼴이 되었다.국방부장관 손원일을 해임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그리고 나서 손원일은 곧바로 해외여행길에 올랐다.이 원면사건 조사책임자는 육군특무대장 김창룡 소장이었다.그는 사건을 매듭짓지 못한 채 갈등관계가 있는 다른 패거리의 저격을 받고 숨졌다.그의 죽음은 원면사건과직접 관련을 가진 사건은 아니었으나 이승만대통령을 등에 업은 정치군인의 비극으로 기록되고 있다. 제1공화국의 말기증상은 여러 분야에서 표출되었다.1960년3월15일 제4대 대통령과 부통령을 뽑는 3·15선거는 그 대표적 케이스로 이승만을 핵으로 한 그 추종자의 몰락을 재촉했다.선거는 전해 59년3월 선거내각의 내무부장관으로 기용된 최인규에 의해 철저한 부정선거로 치러졌다.치안국장 이강학을 비롯한 전국 경찰과 내무공무원의 사전투표 등 온갖 부정방법이 동원되었다. 그 3월15일 이른 봄,날씨는 차가웠으나 하늘은 맑았다.그런데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부정선거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최인규는 그 시간 국무회의를 마치고 나와 기자들에게 『전국의 투표가 평화스럽게 치러지고 있다』고 능청을 떨었다.민주당 대통령후보 조병옥이 서거하고 없는 이 선거에서 자유당 대통령후보 이승만이 9백63만표,자유당 부통령후보 이기붕이 8백33만표로 집계되었다.민주당 부통령후보 장면의 표는 1백84만여표에 불과했다.그러나 투표결과를 아무도 믿지 않았다. □특별취재반 ▲황규호(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 차장) ▲김성호( 〃 기자) ▲김영중(조사부 〃)
  • 특검제 촉구/곳곳서 시위

    1일에 이어 주말인 2일에도 특별검사제 도입 등을 촉구하는 5·18관련 집회와 시위가 서울시내 곳곳에서 잇따라 열렸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상임의장 이창복)은 이날 하오 2시30분부터 종묘공원에서 시민·학생 등 1천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5·18 특별검사제 도입 촉구 및 공안탄압규탄 결의대회」를 가졌다. 5·18 비상대책위와 「5·18 특별법제정 구로·금천 1백인 선언모임」(대표 이봉우) 회원 50여명도 이날 하오 각각 여의도와 신도림역에서 5공비리 척결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한편 삼청교육진상위원회(위원장 서영수) 회원 50여명은 상오 9시부터 4시간여 동안 여의도 대하빌딩 앞에서 삼청교육 피해자 보상과 특별검사제 도입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특별법 “공감”…특검제 “이견”/국회 본회의 긴급 현안질의·답변

    ◎국회 청문회·국정조사 요구­야권/위법문제 우선 해결이 중요­이 총리 30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는 긴급 현안질문을 통해 5·18특별법 제정에 대한 각당의 견해를 밝히고 정부의 방침을 물었다.강신옥(민자)·안동선(국민회의)·장기욱(민주)·김동길(자민련)의원 등 여야 4당의 대표질문자로 나선 의원들은 특별법의 당위성에는 모두 공감하면서도 특별검사제 도입과 대선자금문제등의 쟁점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김동길 의원(자민련)◁ 최근의 12·12나 5·18,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파문에 대한 김영삼 대통령의 자세를 보면 마치 법 위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앞서 특별법 제정을 지시한 것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김대통령은 3당통합을 했기에 대통령이 되지 않았는가.호랑이 잡기 위해 들어갔다고 하는데 들어가서(통합해서) 정말 호랑이 잡으러 왔다고 했다면 민정계가 그를 도와주었겠는가.도와달라고 했으니 도와준 것 아니냐.이제와서 그들을 칠 수 있는가. ▷안동선 의원(국민회의)◁ 김대통령이 5·18특별법 제정을 지시한 것은 비자금정국에서 탈출하려는 「깜짝쇼」가 아닌가.12·12와 5·18주범들에게 공소권없음 결정을 내린 검찰이 어떻게 동일인들을 동일한 사실로 기소할 수 있는가.검찰이 재수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검찰이 독립성을 유지하기 힘든 최고권력층 비리나 헌정파괴,집단학살 등의 범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특별검사제를 도입해야 한다. 노태우씨의 비자금은 국회청문회와 국정조사권,특별검사제를 도입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 ▷장기욱 의원(민주당)◁ 새로운 질서는 잘못된 과거를 완전히 파기할 때 만이 창조될 수 있다.일부 5·6공 세력들이 보수를 자임하면서 마치 5·18특별법 제정을 우익대 좌익의 대결로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민주세력을 좌익으로 몰아 탄압하던 과거 독재정권들의 못된 버릇을 못버린 것이다. 김대통령은 모든 것을 정치로 풀지 않고 검찰로 풀려고 한다.정치검찰에 의한 검찰정치가 계속되는 것이다. ▷강신옥 의원(민자당)◁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12·12 불기소처분 이유는 수단이 부정해도 성공만 하면 된다는 그릇된 가치관을 국민에게 심어주었다.늦은 감이 있지만 5·18특별법을 제정하려는 김대통령의 용단은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일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사전 유출돼 헌재의 권위와 위상이 크게 떨어졌다.진상과 대책을 밝혀달라.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볼 때 5·18에 대해 공소권없음 결정을 한 검찰이 다시 수사를 맡을 수는 없다고 보는데 법무부장관의 견해는.아울러 불기소결정을 한 검찰관계자들을 문책할 용의는. ▷이홍구 국무총리◁ 대통령의 5·18특별법 제정지시는 관련 당사자들을 의법처리해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의도로서 결코 사과할 성질의 문제는 아니다.지금 우선 중요한 것은 입법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특별검사제 도입등 법집행을 둘러싼 방법문제가 아니다.법체계가 다른 미국의 특검제를 무조건 도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그러나 법제정 과정에서 논의된다면 3권분립의 토대 위에서 논의가 진행돼야 할 것이다. 이번 특별법 제정은 특정 정치세력이 아닌 사건 관련 당사자를 법적 처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지난 40여년 헌정사에서 자주 정치가 법보다 우위에 섰다.따라서 오늘의 과제는 어떻게 법에 입각한 정치를 만드느냐에 있다.비자금정국과 특별법정국을 처리하는데 있어서는 법에 따라 철저하게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처리하겠다.특별법이 제정되면 시행에 필요한 후속조치를 마련하는데 만전을 기하겠다. 검찰이 노태우씨 비자금의 사용처를 철저히 조사하고 있으므로 여권의 대선자금 부분도 밝혀질 것이다.청문회개최와 국정조사권 발동 등에 대해서도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조사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를 거둔 검찰 책임자를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문책할 수는 없다. ◎허화평 의원 본회의 발언 안팎/“「민주」 위장 좌파,군·보수세력 공격”/“보수우익 국민이 최후심판 내릴것” 주장/구시대 청산 국민여망·당론 정면 도전 3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잇따라 고함이 터지는등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다.5공「신군부」 핵심중 한사람인 민자당 허화평의원이 신상발언을 통해 5·18특별법제정에 정치적 좌파의음모가 개재된양 꼬집는 「망언」에 가까운 소신피력을 했기 때문이었다. 허의원은 『한국 민주주의의 보루인 헌법재판소가 이른바 민주투사들에 의하여 조종을 울리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로 시작되는 두쪽짜리 유인물을 비장한 표정으로 읽어내려갔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구시대의 청산을 갈망하는 국민의 여망과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는 당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내용이었다.야당의석은 물론 민자당의석에서도 그의 4분간 신상발언 도중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허의원은 『역사에 있어 책임은 일방적일 수 없고 같은 시대,같은 무대에서 서로 다투었던 세력들에겐 책임이 함께 있을 수 밖에 없다』며 『80년 당시 민주화세력들이 분열하지 않고 과격한 민중전술을 동원하지 않았던들,5공탄생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서두를 꺼냈다.그러자 이때부터 국민회의 의석쪽에서 『무슨 말이야』라는 고함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의원은 목청을 높여 『민주화투쟁 그것만으로 모든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며 민주라는 미명하에 진실이 은폐되고 왜곡된 점 역시 허다했다』고 주장하면서 『진실규명이 문제라면 여소야대 정국하에서 1노3김에 의한 5공청산이 있었고,12·12에 관한 국정조사와 12·12와 5·18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있었다』고 강변했다. 다시 의석에서 『먼저 반성해야지』(국민회의 김영진 의원),『어렵다』(민자당 변정일 의원),『무슨 소리야』하는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허의원은 특히 정치권의 5·18특별법 제정 추진에 대해 『나라 요소요소에 자리하고 있는 좌파들이 이른바 민주세력·양심세력·진보세력·통일세력으로 위장하면서 12·12와 5·18을 투쟁의 고리로 삼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를 계기로 군을 무력화시키고 보수우익세력에게 일대 타격을 가해 국면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자극적 분석」을 해 여야의원들의 분노를 촉발했다. 허의원은 『작금의 현실은 국민의 다수인 보수우익이 침묵하는 가운데 좌파가 주도하는 소수세력이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듯 소란하고,일부 전파매체들은 당대의 역사를 정치드라마 형식으로 왜곡 날조해 국민을 오도하고 있다』고 최근 시청률을 높이고 있는 「제4공화국」「코리아게이트」등 TV드라마를 겨냥하기도 했다. 허의원은 또 『4·19직후 민주당이,또 5·16군사정부가 소급입법을 했으나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정치발전이 있었느냐』고 반문한 뒤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보면서 좌우투쟁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고 「엄포성」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자 『수백명을 죽이고도 뻔뻔스럽다』(국민회의 김옥두 의원),『내버려 둬』(민주당 장기욱 의원)등의 고성이 의사당을 다시 어지럽혔다. ○…허의원은 야유에 개의치 않고 비감한 어조로 『나는 정치보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진실은 영원하고 최후심판은 국민의 다수인 보수우익이 내려줄 것』이라고 끝을 맺었다.그의 발언에 대해 민자당 강삼재사무총장은 『이 시점에서 그런 말을 해서야 되겠느냐』며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보이면서도 『그러나 현재로선 당차원의 대책은 세우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 노씨 비자금­5·18 문제/김호진 고려대교수 신문로포럼 조찬강연

    ◎국민은 「정치적 해결」 바라지 않는다/역사적 소명의식 갖고 진실규명·과거청산을 「신문로 포럼」은 29일 상오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에서 조찬 강연회를 개최했다.이날 강연회에서 김호진고려대교수가 「5·6공 청산과 새 시대의 개막」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내용을 요약한다. 비자금 사건과 5·18광주민주화항쟁 탄압사건은 그동안 지배세력에 의해 은폐되어온 군부권위주의의 원죄적 모순이요 치부이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발전과 역사발전을 원천적으로 왜곡시켜온 역기능 요인이었다.따라서 이 두 사건을 극명하게 처리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미래사는 결코 바르게 전개될 수 없을 것이다.말할 것도 없이 이 두 사건이 사법적인 단죄의 대상이 된 것은 역사의 필연이요 당위이다.통치권과 무력을 악용하여 역사와 민의를 배반하고 정의를 유린했던 당사자들이 사법적 심판을 받게 된 것은 그들의 당연한 업보이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로서는 이 사건의 처리문제가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다.그러나 김영삼 정부가 이 두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김영삼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역사적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무엇보다 다음 세가지 점이 주목된다. 첫째,김영삼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개혁정책이 진정으로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고자 하는 소명의식에서 출발한 것인지,아니면 정파적 이해와 집권기반 구축에 입각한 것인지가 판가름 날 것이다. 둘째,총선과 대선에서 이기느냐 아니면 패하느냐가 결정난다.달리 말하면 개혁주의와 문민주의의 맥을 이어 나가느냐 못하느냐가 결판난다. 셋째,사법정의와 정치정의를 구현함으로써 개혁정치의 이상을 현실세계에 정착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된다. 이 세가지 테제는 김대통령과 국민과 한국역사의 공통된 테제이다.그리고 이 테제의 실현여부는 전적으로 김영삼대통령의 의지와 리더십에 달려있다. 김대통령은 이 두 사건을 다룸에 있어 정치주의를 떠나 역사주의의 입장을 취해야 한다.정치적인 고려를 초월해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역사적 소명의식으로 접근해야 국민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으며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치적으로도 이기는 길이다.만약 김대통령이 정치적 명분주의와 상징주의에 빠진다거나 현실주의에 사로잡힌다면 또 다시6·27 지방선거와 같은 정치적 좌절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선 김대통령은 왜 국민들이 비자금사건과 5·18문제에 그토록 천착하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그리고 이 문제에 관한한 국민들은 결코 정치적 해결이나 어떤 미봉책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5·6공청산작업이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그리고 그 대상은 두 전직대통령과 친정세력 뿐만 아니라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비자금과 5·18문제에 연루된 사람은 모두 의법처리되어야 하며 정치적 접근을 지양하고 엄정한 사법적 접근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고 엄정하게 다스리는 것이 정도이다. 결론적으로 김대통령은 이번 기회를 수구부패세력을 철저히 단죄하고 정리함으로써 새로운 정치세력과 정치문화를 창출하는 대전환의 분기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이광요 명예훼손」21만달러 보상합의/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

    【싱가포르 AFP 연합】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지 간부 3명은 27일 이광요 전 싱가포르 총리의 명예를 훼손한 기사를 보도한데 대해 30만싱가포르달러(21만4천2백85달러)의 벌금과 피해보상금을 지불키로 합의했다고 싱가포르 TV가 27일 보도했다. IHT는 94년10월7일 전국립싱가포르대학교 미국인 교수 크리스토퍼 링글이 기고한 정치논평에서 싱가포르나 이광요를 직접 거명하지는 않은 채 『편협한 정권이 야당 정치인들을 탄압하기 위해 고분고분한 사법부를 이용했다』고 비판했었다. 이광요는 이 기사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IHT의 편집인 존 비노큐어,아시아담당편집인 마이클 리처드슨,출판인 리처드 매클린,기사를 쓴 링글 등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으며 고등법원은 지난 1월 이들 피고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리고 매클린에게 2천5백,리처드슨에게 5천,링글에게 1만싱가포르달러의 벌금을 각각 선고했었다.
  • 「반인류 범죄」 처벌에 시효없다/과거청산 외국선 어떻게 했나

    ◎유럽/나치전범 86년까지 6,479명 단죄­독일/2차대전 유태인 학살 투비에 종신형­프랑스 집단학살등의 반인류 범죄를 처벌하는데는 시한이 없다.특히 2차대전당시 인류를 학살하고 괴롭힌 전범들에 대해서는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세계 곳곳에서 단죄를 받고 있다. 반인류범 처벌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뉘른베르크 국제군사법정.미·영·불·소 등 4개국이 2차대전 전범자들을 처벌할 목적으로 지난 45년 11월20일 개설한 이 특별법정은 지난 20일로 개설 50주년을 맞았다. 뉘른베르크법정이 열리자 히틀러의 측근인 헤스를 비롯해 24명의 나치 지도급인사를 처벌됐으며 46년 10월1일까지 1년 가까이 4백8명의 전범들이 법정에 서야만 했다. 독일은 특히 56년부터 루드스비히에 나치전범연구소를 세워 전쟁자료를 추적,구체적 죄목을 입증해 전범을 꾸준히 처벌해왔다.이에따라 86년까지 모두 6천4백79명이 날카로운 법의 심판을 받았고 이중 12명이 사형이 선고됐고 1백60명은 종신형,나머지 6천1백9명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7천5백명 정도의 나치전범이 아르헨티나·브라질·파라과이 등지에 불안에 떨면서 숨어지내고 있다.그러나 이들을 찾아내 처벌하려는 노력은 세계 도처에서 계속되고 있어 시한이 걸리기는 해도 법의 심판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유엔은 반인류범을 집단학살은 물론이고 정치·종교·인종적인 이유에서 학대하거나 약탈행위·암살·포로나 인질을 괴롭히는 등의 행위로 규정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도 이같은 반인류범을 시한없이 끝까지 추적하고 있다.프랑스는 64년12월 반인류범죄에 대해서는 시효를 적용치 않는다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지난해엔 형법을 개정해 집단학살범에 대해서는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에 처한다고 명시했다. 프랑스에서 전범으로 처벌받은 대표적인 인물은 폴 투비에.투비에는 리옹 등지에서 나치 비밀경찰에 협조해 유태인 추방과 학살등에 관여한 혐의로 45년9월 열린 궐석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잠적해 버렸다.사면을 받는 등 우역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결국 89년 붙잡혀 지난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또 유태인 어린이50여명을 학살한 클라우스 바르비도 반인류적인 행위자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리옹지역의 게슈타포 지휘자였던 바르비는 52년 궐석재판을 받았다가 지난 83년 붙잡혀 4년뒤 종신형을 받았다. 스페인도 15년 동안의 작업 끝에 최근 인권 학대 등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뉘른베르크 특별법정 이후에도 반인류범을 처벌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유엔은 93년 결의안 808조에 따라 유고내전에 대한 특별법정을 헤이그에 설치,전쟁을 일으킨 주범들을 처벌하고 있다.또 르완다내전에 대한 국제법정이 지난해 탄자니아의 아루샤에 설치돼 집단학살의 책임자들에 단죄를 가하고 있다. 이런 법정들은 특정사안을 다루는 특별법정이지만 항구적인 법정도 있다.유엔 사법재판소는 45년 헤이그에 설치된 항구법정이고 유럽연합(EU)은 51년 룩셈부르크에 사법재판소를 두고 있다.EU는 이것도 모자라 59년 스트라스부르에 인권법정을 마련해 반인류범에 대한 강한 처벌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의회,67년 군부행위 쿠데타 규정 특별재판서 주모자들 무죄징역 그리스의 쿠데타주모자 처벌은 비교적 순조롭고 철저하게 이루어졌다.2차대전 종전과 함께 부활된 왕정을 무너뜨리고 군부가 실권을 장악한 것은 67년.쿠데타 주역은 예오리오스 파파도풀로스 대령이 이끄는 영관급장교 24명.이들은 콘스탄틴 2세를 폐위시킨 뒤 68년 독재헌법을 마련,7년간의 군사정권이 계속됐다. 74년 키프로스사태가 군사정권 몰락에 크게 작용했다.키프로스공화국내 터키계 주민과 그리스계 주민 사이에 주도권 쟁탈을 놓고 벌어진 유혈사태에 그리스군을 파병하기 위해 군정실권자들이 총동원령을 내리자 그동안의 독재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했고 일부 군장성과 민간정치인들도 합세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명목상 군정대통령을 맡고 있던 기지키스 장군이 7월22일 야당지도자들과 민선 이양에 합의했다.당황한 군정측은 군대를 동원,아테네시를 포위하는 무력위협에 나섰고 시내 의사당 앞에 군정에 반대하는 수십만 시민이 모여 일촉즉발의 대치상태를 연출했다.결국 대세에 굴복한 군정측이 3일만에 손을 들었고 7월24일 파리에 망명했던 야당지도자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가 금의환양했다. 그해 11월 총리직에 오른 카라만리스는 곧바로 67년 쿠데타주역들을 재판에 회부했다.75년초 의회는 67년 군부행위를 쿠데타로 규정하는 결의안 채택과 함께 특별법을 제정했다.군정기간중 60여명이 독재에 항거하다 숨졌고 수천명이 부상당했음이 재판을 통해 밝혀졌다.같은해 8월 끝난 특별재판에서 쿠데타주모자인 파파도풀로스와 마카레조스에게는 사형이 선고됐고 여타 주모자들에게 최고 사형에서 최하 25년의 중형이 선고됐다.이후 사형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으나 쿠데타주역들은 지금도 복역중이다. ◎남미/쿠데타 집권 전대통령 등 법정에­아르헨/인권탄압자 사면조건 범죄고백 받아­칠레 ▷아르헨티나◁ 76년4월 이자벨리타 페론 대통령을 내쫓고 정권을 잡은 군부는 라울 알폰신 민선대통령이 취임하는 83년12월에 이르기까지 최소 1만3천여명의 동족을 좌파타도의 슬로건 아래 납치·살해(실종 9천여명 포함)했다.알폰신 대통령은 취임 즉시 군 최고지도층 절반을 은퇴시키는 군개혁을 실시한 뒤 군부가 민정이양 4개월전 제정한 과거 10년간 군·경의 정치범죄에 대한 소급 사면법을 폐기,쿠데타주도의 혁명평의회 장군들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쿠데타 장군들의 재판은 85년4월 시작돼 12월 혁명후 첫대통령 비델라 장군과 마세라 제독(종신형) 등 5명이 형을 받았고 4명은 석방됐다.포클랜드전쟁(82년) 당시의 갈티에리 대통령 등 3인혁명위원에 대한 재판은 따로 열려 갈티에리는 12년형을 받았다.그러나 알폰신정부는 87년 부분사면법을 통과시켜 인권침해 혐의로 기소된 3백70명의 군·경중 40명의 고위직을 제외한 나머지를 석방했다. 89년7월 취임한 카를로스 메넴 새 대통령은 이전 페론당으로서 군부에게 학대를 받기도 했지만 군부집권시의 좌파대상 「추악한 전쟁」이나 민정 이후 쿠데타기도에 연루된 2백10명의 장교·하사관들을 89년10월 사면했다.그리고 90년12월 2차 대통령사면령을 통해 군부정권 1,2번째 대통령인 비델라,비올라 장군및 마세라제독 등 군부지도자들을 「국민화합」을 이유로 석방했다. 당시 「추악한 전쟁」에 참가했던 군인 두명이 올 2월과 4월에 약물에 마취된 좌파인사들을 비행기에서 바다로 떨어뜨리는데 일조했다고 최초로 고백하기도 했으나 1만여 동포살해의 진상은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칠레◁ 세계최초의 민선 사회주의자 대통령인 아옌데를 살해하고 73년9월 정권을 잡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은 국민투표 신임미달(43%)로 90년3월 파트리시오 아일윈 민선대통령에게 정권을 이양했으나 자신이 오는 97년까지 육군참모총장에 재직할 수 있도록 했다.앞서 군부는 80년 헌법개정을 통해 자신들의 73∼78년 좌파대상 정치범죄를 일괄사면시켰으며 민정이양하면서 상원의 5분의1을 임명하는 권한을 가졌다. 지난 17년간의 군부독재 아래서 자행된 인권탄압 범죄를 법적으로 처리할 힘이 부족한 민선정부는 90년4월 「진실과 화해 전국위원회」를 구성,가해자에게 사면을 조건으로 범죄고백을 받고,모든 피해를 확인·적시하는 문서작성에 들어갔다.91년3월 아일윈대통령은 2천2백79명의 정치박해 사망자에 관한 1천쪽 분량의 보고서 완성을 TV방송을 통해 발표하면서 「국민화합」을 강조했다.여기서 피해자는 인적사항을 명확히 기록했으나 가해자는 이름 대신 소속기관을 거명하는데 그쳤다.칠레의 이같은 과거청산 방식은 동유럽,남미,남아공 등 14개국이 모방하는 세계적 모델로 예시되곤 한다. 한편 76년 미 워싱턴에서 전외무장관을 살해한 범죄는 군부의 사면법에서도 제외되었는데 92년11월 장기조사 결과 군부의 정치탄압 실행기관인 국가정보국 소행으로 밝혀졌고 당시 국장인 콘트레라스 퇴임장군과 참모장 에스피노사 현준장은 각각 7,6년형을 선고받았다.이 선고는 올 5월 최고법원에서 확정되었지만 피노체트 장군과 장교들은 콘트레라스 장군을 해군병원으로 피신시켜 에스피노사 준장만 현재 수감중이다. ◎남아공/「진실 및 화합을 위한 위원회」 창설/과거 인종차별 범죄행위 조사키로 지난 7월20일 넬슨 만델라 남아공대통령은 「진실및 화합을 위한 위원회」를 창설한다는 법안에 서명했다.만델라는 이 위원회가 흑백 인종차별 정책 아래 저질러진 숱한 인권탄압 등 국가의 주도 아래 벌어진 범죄들을 조사·단죄하기 위해 창설되며 창설 후 18개월간의 한시적 활동을 통해 인종차별 정책 아래 저질러진 모든 범죄행위들을 철저히 조사,남아공의 어두운 과거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새 출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아공국민들은 대부분 이 위원회의 활동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인종차별정책에 따른 피해가 많은 국민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겨놓았기 때문이다.현재 남아공의 연정을 이루고 있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나 국민당도 모두 겉으로는 이 위원회의 취지에 찬성하고 지지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그러나 실제로 이들 정치인들이 이 위원회의 활동을 전폭 지지할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과거의 범죄행위들이 정말로 철저히 파헤쳐지면 과거의 백인 소수정부를 이끌었던 데 클레르크 부통령의 국민당측은 물론 만델라 대통령의 ANC측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실제로 일부 관측통들은과거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가져올 정치적 대가가 도덕적인 사기 앙양에 비해 훨씬 클 것이라며 과거의 범죄행위가 어디까지 파헤쳐질 수 있을 것인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범죄가 밝혀지더라도 처벌에 있어 어떤 예외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만델라 대통령은 『진실만이 과거를 잠재울 수 있다』며 과거의 범죄행위를 밝혀내는데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 문민정부의 「5·18」 자리매김

    ◎김 대통령 취임직후 “자료 정리” 지시/「주도 장성」 예편·묘역 성역화·피해 보상 김영삼 대통령의 「5·18특별법 제정」방침은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김대통령은 문민정부 출범 직후부터 5·18관련 자료들을 충분히 챙겨 놓도록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에 지시해왔다고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했다. 취임직후에는 「12·12」 혹은 「5·17」을 주도했던 군장성들을 과감하게 예편시켰다.이어 특별담화를 통해 「5·18광주항쟁」을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김대통령이 취임 첫 해인 지난 93년5월13일 발표한 특별담화에는 「5·18」을 보는 김대통령의 시각이 담겨져 있다. 김대통령은 『80년 5월 광주의 유혈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됐으며 오늘의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민주정부』라고 규정했다.5·6공이 광주항쟁을 「탄압」함으로써 출범한 군사정부인 것에 비해 새정부는 「5·18」쪽에 서서 탄생했다는 「차별화」를 일찍부터 시도한 것이다. 김대통령은 특별담화에서 ▲망월동 묘역의 성역화 ▲기념공원 조성및 기념탑 건립 ▲상무대 시민공원조성및 기념일 제정 ▲사망자·행방불명자·부상자에 대한 추가신고 접수 ▲연행구금·유죄판결을 받아 사면복권된 자에 대한 전과기록 말소 등을 약속했다. 망월동 묘역의 성역화를 위해 모두 1백14억원을 들여 지난해 11월 공사가 착수됐다. 사업이 끝나면 5·18관련 사망자 1백31명과 시국관련 사망자 31명 등 총1백61기가 이장된다.묘역은 진입·참배·묘역·체험공간 등으로 구성돼 「민주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5·18항쟁의 주무대였던 광주시 동구 광산동 전남도청 자리 4천11평에는 오는 98년까지 2백50억원이 투입돼 기념공원과 기념탑이 들어선다. 또 옛 상무대 자리 5만평에는 5·18시민공원을 조성하기로 하고 지난 1월 기반조성공사가 시작됐다.상무대 시민공원에는 당시 시민이 끌려가 고초를 당한 군영창과 군사법원이 옮겨져 원형 그대로 보존될 예정이다. 피해자 추가보상은 총 2천7백50명이 신청해 재심을 통해 상당수가 보상의 혜택을 받았다.명예회복 차원의 전과기록 말소도 관련 구속자 6백79명에 대한 조치가 이미 완료됐다. 광주시가 시의회에 제출한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관한 조례안」은 계류중이다.광주만을 대상으로 기념일을 제정할때 5·18이 자칫 「지역화」될 것을 우려,심의를 늦추고 있다. 한편 검찰은 작년 12월부터 지난 7월까지 「5·17쿠데타」와 「5·18진압」관련 인사 58명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검찰은 그때 5·17주동자의 기소는 유예했지만 5·18 당시 시위전개 상황과 게엄군의 진압과정은 상당부분 밝혀내 공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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