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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자금법·정당법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선관위 조사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증거물품의 수거권,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자에 대한 금융거래자료제출요구권,범죄조사와 관련한 동행요구권 등을 신설했다.정치자금법 위반 행위자를 처벌할 뿐 아니라 정당·후원회·법인·단체에 대해서도 벌금형을 부과하도록 양벌규정을 두었다. 야당탄압 논란을 빚은 정치자금 고액기부자의 인적사항 공개도 합의됐다.국회의원 등의 후원회는 연간 120만원,정당 및 시·도지부 후원회는 연간 500만원을 초과해 기부한 기부자가 공개 대상이다.또한 1회 100만원 이상의 기부와 1회 50만원 이상의 지출은 수표·신용카드 등 실명이 확인되는 방법으로 하도록 했다.현금지출은 연간 지출총액의 20%를 초과해서는 안된다.정당이든 국회의원이든 정치자금을 수입·지출하는 경우는 회계책임자만이 하게 했다.모든 정치자금의 수입은 선관위에 신고된 복수계좌로 하되,지출은 단일계좌로 하도록 했다. 정치신인인 예비후보자도 후원회를 선거일 전 120일부터 할 수 있지만 당내 경선에서 떨어지거나,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때는 후원회 운영경비 등을 빼고는 전액 국고 환수토록 했다. 정당의 회계책임자는 비당원으로,공인회계사협회의 추천을 받은 사람으로 조건을 강화했다. 정당법 개정안은 지구당을 정당의 구성 단위에서 제외했다.중앙당과 시·도지부는 남게 됐다.법정 시·도지부는 5개 이상,시·도지부의 법정당원수는 1000명 이상이어서 정당 창당이 한결 쉬워진 셈이다.인터넷을 이용한 입·탈당과 결의 허용은 ‘공인전자서명’을 조건으로 달았어도 향후 논란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여성 비례대표 50% 할당도 명문화했다.당내 경선 불복자는 본선에 나올 수 없도록 했다. 이지운기자˝
  • 최대표 “閔펀드 國調 검토”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4일 안상영 부산시장 자살사건과 관련,“권력에 의한 살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4면 최 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야당 광역단체장에 대한 무모한 수사가 빚은 결과”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 대표는 “야당 정치인과 단체장을 빼가기 위한 정치공작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회유를 거부하는 정치인과 단체장에게는 비열한 정치보복과 탄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김혁규 전 경남지사를 빗대 “안 시장은 죽음을 스스로 택했으나 전직 도지사는 변절해 권력을 향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중심에 서서 불법 관권선거와 공작정치를 계속한다면 이번 총선은 정상적으로 치를 수 없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당은 대통령 탄핵을 포함해 모든 조치를 심각하게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노 대통령 사돈인 민경찬씨의 653억원 펀드조성 의혹에 대해선 “노 대통령과 검찰은 한점 숨김없이 진상을 밝히지 않으면 국회 국정조사에서 모든 의혹을 파헤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부정부패와 관련된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법원 영장이 발부되는 경우 불체포특권을 과감히 포기하고 대통령의 사면권도 제한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은 돈을 건네는 사람도 돈을 받는 사람도 동일한 형량으로 처벌하는 쌍벌제를 도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대출기자 dcpark@˝
  • “노태우정부, 전노협 와해 공작”

    노태우 정부 시절 정부가 공안기관을 동원해 현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를 와해시키려는 활동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4일 노동부가 공안기관의 협조를 받아 작성한 ‘90년 하반기 전노협 및 문제노동상담소 대책’‘급진 노동세력 대책과 위법부당 쟁의행위 지도방안’ 등의 문서를 공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90년 8월 작성된 전노협 대책 문건에는 “지역별 전노협 대책반을 구성해 탈퇴유도 등 범정부적 차원에서 집중 지도·관리하고,검찰·노동부·안기부·경찰 등 유관기관 합동대책반을 구성해 전노협 노조간부를 설득,탈퇴를 유도하는 등 순화활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한다.”는 세부지침이 적혀 있다. 또 민주노조 추진 핵심인물에 대한 내사와 제3자 개입 조항 등을 적용한 사법처리 방침,손배·가압류를 통한 노동세력 탄압,노조 자금원 차단대책 등이 기록돼 있다.90년 7월 작성된 부산시 경찰국의 ‘부산노련 정기대의원 대회 개최결과’ 문건에는 “8개 잔존 노조의 와해 활동을 적극 전개할 경우 부산노련의 조기해체가 가능할 것”이라고 기록돼 있어 전노협 지역조직의 와해활동이 적극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이세영기자 sylee@˝
  • “盧정권 총선전략의 희생양”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와 자살한 안상영 부산시장은 친구다.부산고 동기동창이다.1학년 때는 1반에서 공부했다.둘은 ‘단짝’으로 다른 한 친구를 포함해 셋이 잘 어울렸다고 한다.안 시장 집안은 부유한 편이었다.셋은 안 시장 집에서 밥도 자주 먹었다고 한다.최 대표는 “키가 비슷해 한칸 건너 옆줄에 앉았다.”고 회상했다. 최 대표는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때 안 시장 얘기를 꺼냈다.원래 연설문에 없던 대목이다.최 대표는 ‘50년 친구’라며 말문을 열었다.이어 “안 시장은 복마전이라던 서울시에서 30여년 근무해도 한번도 비리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상기시켰다. 최 대표는 “노 대통령이 몇차례나 함께 일하자고 하더라고 안 시장이 말했다.그러나 안 시장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더라.”고 말했다.“저 자신 여러번 들었다.”고 덧붙였다. 안 시장의 수뢰 혐의에 대해선 “한 건은 사실 관계를 다투고 있고,다른 한 건은 급전으로 구했다가 나중에 갚았다.”며 “현 정권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총선 전략의 희생양”이라고 규정했다.‘비열한 정치보복과 탄압’이라며 ‘한화갑 전쟁’과 연결지으려는 전략도 내비쳤다. 최 대표는 연설 뒤 기자들에게 설 연휴 때 안 시장을 면회간 얘기도 전했다.“못 견뎌하더라.”고 전했다. 안 시장 관련 연설은 ‘관권선거’ 대목으로 이어졌다.한나라당이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보여준다.한나라당의 총선 전략도 읽게 해준다. 그는 ‘친노단체’에 대해 “노 대통령의 시민혁명 선동에 화답해 10만대군 거병을 외치면서 나라를 불안과 혼란의 선거전쟁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난했다.그러면서 “국민 여러분께서 노무현 정권의 불법·관권선거를 단호하게 응징해 달라.”고 호소했다.이날 연설은 ‘차떼기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했다.“몸둘 바를 모르겠고,입이 열개인들 무슨 말로 사죄를 다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4·15총선을 앞둔 한나라당의 최대 고민임을 반영한다. 최 대표는 “모든 질책과 회초리를 겸허하게 받겠다.”고 다짐했다.“불법 대선자금에 대해서는 당사와 천안연수원 등 당의 재산을 팔아서 국민 여러분께 돌려 드리겠다.”고 말했다.‘혁명적 공천 물갈이’도 약속했다. 최 대표는 현 상황을 ‘국민 절망의 시대’라며 “생활은 없고,생활고(生活苦)만 남았다.”고 진단했다.연설은 “한나라당에게 기회를 달라.”고 표심(票心)에 호소하는 말로 마감됐다. 박대출기자 dcpark@˝
  • 푸틴 언론통제 실상 폭로 언론인 집앞서 폭발사건

    |모스크바 연합|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한 전직 여기자의 집 앞에서 2일 폭발 사건이 발생,언론탄압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전직 언론인인 엘레나 트레구보바(30·여)는 이날 오전 2시께 모스크바 중심 볼쇼이 그네즈드니코프스키 거리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강력한 폭발 사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그녀는 “택시를 부른 뒤 집을 나서려는 순간 밖에서 강한 폭발음이 들리며 아파트 건물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면서 “흔들림은 마치 지진이 발생했을 때와 같았다.”고 말했다. 트레구보바는 앞서 지난해 11월 출간한 ‘한 크렘린 탐구자의 이야기들’이란 책에서 푸틴 대통령 정권의 교묘한 언론통제 실상을 폭로해 크렘린 당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었다.그는 책에서 크렘린 당국은 출입기자들이 극단적으로 비굴하게 아첨하든지,아니면 영구 출입금지 조치를 당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 “4년여만에 ‘자유인’이 되었습니다”/민노총 수장자리 떠나는 단병호 前위원장

    “하루도 긴장을 풀지 못하다 이제야 ‘자유인’이 된 느낌입니다.” 4년 5개월 동안 민주노총 수장자리를 지켰던 단병호(55) 전 위원장은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임기만료를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만난 그는 오랜만에 평온한 모습이었다.‘한국노동운동 1세대’‘열혈투사’ 등의 수식어와는 거리감을 갖게 했다. 집무실에는 미처 옮기지 못한 짐꾸러미들이 박스에 포장된 채 한켠에 쌓여 있었다.성급하게 향후 거취문제에 대해물은 탓일까, “아직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쉬면서 동료나 주변의 의견을 들어 움직이겠다.”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40줄 가까워 노동운동 시작… 가족에 늘 죄책감 그는 “앞으로의 포부랄까 커다란 계획 같은 것은 좀더 두고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그러면서 국내 최대 노동조직으로 꼽히는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역할을 무사히 마칠 수 있다는 점에 만족감을 표했다. 그는 87년 40줄에 가까운 늦은 나이에 노동 운동에 발을 들여놓았다.올해로 17년이 됐다.하지만 지금까지 노동운동에 투신한 것을 후회하거나 다른 일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는 “앞으로는 가족들과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징역살이와 수배생활을 하면서 가족은 언제나 뒷전이었기 때문이다.그는 대학생인 딸과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이 아버지가 걸어온 길의 의미를 나름대로 이해하는 것 같아 대견스럽다고 자랑한다. 노동운동을 벌이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아주 우연히’라고 답했다.청년시절은 험난하기만 했다며 먹고 살기 위해 행상까지 나서야 했다고 밝혔다. 직장다운 직장을 갖게 된 것은 83년 ㈜동아콘크리트에 입사한 것이 처음이다.전신주를 만드는 회사로 동아건설 창동공장으로 이름이 바뀐 뒤 87년 7월 노조가 결성됐다. 당시 이 회사는 휴일도 반납한 채 일을 했지만 보수가 형편없어 근로자들이 뭉칠 수밖에 없었다.”며 “마음씨 좋다는 이유로 떼밀려 위원장이 된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월 총선때 노동자 정치세력화 힘 보탤 것” 실제 그는 동아건설 창동공장노조위원장이 된 이후 서울지역노조협의회 의장이 됐고,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1∼4대 위원장을 거쳐 민주노총 위원장이 됐다. 그는 ‘푹 쉬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노동운동의 중요한 과제이자 여망인 4월총선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힘쓰겠다는 심정은 숨기지 않았다.그러나 본인의 출마여부에 대해서는 끝내 말을 아꼈다. 앞으로 민주노총에 기여할 방법에 대해 “다양한 통로를 열어놓고 고민해 보겠다.위원장직을 떠난다고 해서 노동운동을 접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또 다른 위치에서 힘을 보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원장으로서 보람과 아쉬운 심경도 토로했다.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주요과제로 삼아 활동했던 것이 보람이었지만 제도개선으로까지 끌어올리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주5일 근무제 도입도 사회의제로 만드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국회가 중소영세업체나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배제한 방향으로 입법화된 것도 마찬가지다.손해배상 가압류 등으로 목숨을 끊은 일도 두고두고 마음에 걸릴 것이라고 했다.이밖에 노동자들의 염원대로 민주노총 합법화를 이뤄낸 일이나 민주노총 조직이 70만명에 육박할 만큼 거대해진 점 등은 노동자와 국민들의 공으로 돌렸다. ●새 집행부 변화 원한다면 정치·자본부터 바뀌어야 새집행부 구성을 놓고 노동운동의 연성화나 큰 변화가 될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에 대해 과도한 기대에 따른 편의적인 해석일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변화와 혁신은 필요하지만 신임 위원장이나 집행부도 그 동안 민주노총을 세우고 강화하는데 함께 힘써왔던 사람들이다.새집행부 역시 전혀 동떨어진 외인부대가 아니라 민주노총 조합원임을 강조했다. 신임 집행부 당선을 전후해서 “언론들은 마치 민주노총이 이전과 완전히 다른 조직으로 변할 것처럼 진단하고 심지어 무쟁의 선언을 하라는 등 무책임한 말을 하고 있는데 모두 과도한 기대에 따른 주관적 바람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아울러 “민주노총의 투쟁노선은 노동운동을 배제하고 탄압해온 정권과 기업의 탄압에 따라 불가피하게 택하게 되는 것”이라며 “이에 대한 노력없이 민주노총운동의 큰 변화를 예단한다는 것은 우스운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민주노총 노선의 변화를 바란다면 정치와 자본의 태도부터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새 집행부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해결과 정부의 ‘노사관계선진화 방안(로드맵)’을 저지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주문했다. 정부가 올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 창출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업률을 낮추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일자리 문제의 핵심인 ‘안정된 정규직 일자리 늘리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어려운 고비 때마다 관심을 갖고 성원해 준 분들에게 감사한다.”며 “나쁜 이미지는 모두 잊고 좋은 것만 기억했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유진상기자 jsr@ ▲1949년 경북 포항 출생 ▲1967년 포항 동지상고 중퇴 ▲1983년 동아건설창동공장 입사 ▲1987년 동아건설창동공장 초대 노조위원장 ▲1988년 서울지역노조협의회 의장 ▲1993년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공동대표 ▲1996∼98년 금속연맹 위원장,민주노총 부위원장 ▲1999년 9월 민주노동 위원장 보궐선거 당선 ▲2001년 1월 민주노총 위원장 ▲2004년 1월31일 민주노총 위원장 임기 만료
  • ‘총선정국’ 일대 회오리/‘한화갑 쇼크’ 민주 재결집

    ‘한화갑 쇼크’가 4·15총선 정국 기류에 일대 변화를 몰고 올 조짐이다.민주당이 강도 높은 대여(對與) 투쟁에 나섬으로써,그동안 형성돼온 3각 전선(戰線)이 청와대·열린우리당의 여권과 한나라당·민주당의 2야(野)간 전면대치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추미애 상임중앙위원은 1일 “노무현당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한다.”며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그는 “한 전 대표가 불법적으로 받은 돈이 노 대통령 것의 10분의1을 넘는다면 당장 구속하라.한나라당이 리무진이고 노 대통령이 티코라면 한 전 대표는 세발 자전거도 안 된다.한 전 대표가 경선자금으로 구속된다면 노 대통령은 4년 뒤 당연히 구속된다.”고 노 대통령에게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추 의원은 지난해 7월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도 지적했다.“당시 ‘도저히 합법적 틀 속에서 (경선을) 할 수 없었다.경선자금 관련자료를 무슨 자랑이라고 보관했겠느냐.다 파기했다.’고 스스로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증거까지 인멸했다고 말했다.”며 즉각적인 고해성사를 촉구했다.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에대해서도 “좀 더 정직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김홍일 의원의 이날 복당은 민주당 총선전략의 근본적 변화를 상징한다.호남 물갈이를 통한 세 확대에서 호남민심 확보를 통한 제2당 사수 전략으로 전환한 것이다.김 의원과 추미애 의원의 ‘화해’가 이를 말해 준다. 추 의원은 지난달 31일 김 의원의 자택을 찾아가 그의 복당에 뜻을 같이 했다. 김 의원 요청으로 자택을 찾은 추 의원은 복당의사를 적극 환영했고,이에 따라 김 의원의 복당이 이뤄졌다.추 의원은 “한 전 대표 소식에 김 의원이 눈물을 흘리면서 ‘노 정권에 맞서 남은 힘을 보태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당사를 찾은 김 의원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전날 아들인 김 의원의 결심을 듣고 탈당 때처럼 “네 일이니 네가 잘 알아서 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추 의원은 “김 전 대통령 뜻을 따랐던 대부분이 차가운 감방에 들어갔다.햇볕정책 전도사들까지 범법자가 됐다.이제 DJ 철학과 정책이 담긴 민주당마저 죽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나라당은민주당의 대여투쟁에 엄호사격을 했다.홍사덕 총무는 “현 정권의 ‘호남 죽이기’와 야당 탄압에 모든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며 서청원 전 대표와 함께 한 의원 구명(救命)에 나설 뜻임을 밝혔다.그는 불법대선자금 청문회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자신들의 비리를 감춘채 총선에 임하는 것을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민주당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청문회 대신 곧바로 특검을 추진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열린우리당은 김홍일 의원이 전격 복당하자 호남민심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웠다.정동영 의장은 최근 김 의원 탈당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의 중립에 대한 확실한 조치”라고 말한 바 있어 난처해졌다.그러나 신기남 상임중앙위원은 “며칠 전 호남에 가보니 민심이 호락호락하지 않더라.호남 민심에는 아무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경호 박정경기자 jade@
  • 한나라 이번엔 ‘단수공천’ 내홍

    한나라당 공천심사위가 부산·대구·울산·경남·경북 등 영남권 65곳 가운데 18곳을 ‘단수공천 유력 지역구'로 분류,당무감사자료 유출에 이은 공천 갈등이 재연될 조짐이다. 공천심사위는 27일 경북 이상배(상주)·임인배(김천)·이상득(포항 남·울릉)·권오을(안동)·김성조(구미)·이병석(포항북) 의원 등 6명을 ‘단수공천 유력’으로 분류한 것으로 알려졌다.서울의 김덕룡(서초을)·이재오(은평을)·홍준표(동대문을)·이성헌(서대문갑)·박진(종로)·원희룡(양천갑)·권영세(영등포을) 의원 등도 단수후보로 압축된 것으로 전해졌다.그러나 이상득 의원은 사무총장,김성조 의원은 공천심사위원이란 이유로 고사,경선을 자청했다. 전날에는 부산 정형근(북·강서갑)·정의화(중·동구)·허태열(북·강서을),대구 강재섭(서구)·박근혜(달성군)·이해봉(달서을),경남 박희태(남해·하동)·이강두(함양·거창)·김학송(진해)·이방호(사천)·김기춘(거제)·이주영(창원을) 의원 등 12명이 단수 공천 유력자로 분류됐다. ●“심사위 일방 결정 수용 못해” 공천 의결권을 가진 시·도지부장들은 “공천심사위의 일방적 결정인 만큼 수용하기 어렵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부산시지부장인 권철현 의원은 “시·도지부장은 공천심사위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의결권도 갖고 있는데 한마디 상의도 없이 사실상 공천을 확정한 것은 당헌·당규 위반”이라고 주장했다.5선의 김진재 의원도 “부산지역 의원들 가운데 여론조사 1위를 했는데도 근거없는 루머를 근거로 단수 공천에서 배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최악의 경우 무소속 출마도 불사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소장·개혁파 의원들도 ‘인권탄압' 논란으로 시민단체의 낙선대상에 오른 정형근 의원이 ‘단수 공천 유력'으로 분류되자 공천심사위와 지도부를 향해 집단 반발조짐을 보이고 있다.한 소장파 의원은 정 의원의 단수 공천 여부와 관련,“정 의원 같은 경우 나중에 공천자 명단에 넣어도 되는데 먼저 해서 좋을 게 뭐 있느냐.”면서 “우리 당 사람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고 일침을 가했다. 일각에서는 공천심사의 형평성을문제삼기도 했다.정갑윤 의원의 경우 울산 중구에 단독으로 공천을 신청했지만 ‘단수 공천'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지도부,파문 진화 부심 앞서 당무감사자료 유출로 홍역을 치렀던 당 지도부는 이번 파문이 더 이상 확산돼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발빠르게 진화에 나섰다. 최병렬 대표는 “언론이 ‘잠정 결정'이라는 표현을 써서 12명에 대한 공천이 마치 확정된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뿐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으며 공천심사위에는 그런 권한도 없다.”고 일축했다.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도 “거론은 됐지만 확정되지는 않았다.”며 단수 공천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소설가 이문열씨 등 민간 심사위원들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공정한 심사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밀실공천을 통해 공천자를 확정한 것처럼 보도한 일부 언론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전광삼기자 hisam@
  • 올 노사 최대쟁점 주 5일제/근무단축 따른 임금보전 대립

    올해 노사관계 기상도는 주 5일제 시행에 따른 노사갈등과 손배소 취하 문제 등으로 어느 때보다 뜨거운 한 해가 될 전망이다. 당장 오는 7월부터 종업원 1000명 이상 사업장과 금융보험업 및 공기업에서 주 5일제가 실시되지만,정부 방침과는 달리 노사가 서로 다른 근로기준법 시행지침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 주 5일 근무를 놓고 노사가 대립하고 있는 부문은 월차휴가폐지 등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보전이다.이 문제가 올 노사관계의 최대이슈가 될 것 같다.노동부가 마련한 ‘근로기준법 시행지침’에는 줄어든 근로시간에 대한 임금보전이나 휴일조정 등 세부 시행규칙의 경우 사업장별 단체협약에서 정하도록 돼 있다.특히 토요일 근무를 하더라도 휴일 근무수당은 없으며,토요 근무에 따라 주 40시간이 초과했을 경우에만 연장근로수당이 발생하게 된다.이에 따라 노사협상이 본격화되면 사업장마다 임금보전 문제 등을 놓고 노사간 힘겨운 싸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정부지침은 선언적 차원에서 제시한 것이고 임금보전 등은 노사가 단체협상을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라는 선을 긋는다.다만 임금보전과 관련해서는 지속적인 행정지도를 편다는 방침이다. 또다른 이슈는 지난해 1월 두산중공업 배달호씨 분신 사망 이후 불거지기 시작한 손배·가압류 취하 문제.지난해 말 현재 노동계가 집계한 손배·가압류액은 1400억여원에 이른다. 이미 지난해 말 노사정위원회에서 ‘손배·가압류 해결을 위해 서로 노력한다.’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했음에도 제도개선은 늦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협약 자체가 선언적인 데다 민주노총이 빠진 상황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부정적 반응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경총 등 사용자측은 불법파업에 대한 최소한의 조치로서 손배·가압류를 존속시켜야 한다는 분명한 입장이다.정부 역시 명확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노동계는 공공부문에 대한 가압류 400억여원만이라도 풀어달라고 요구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정부가 민간부문에 대한 파급효과 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노동계 관계자는 “손배·가압류는 노조활동을 옥죄는 신종 탄압수단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밝혀 여기에 상당한 무게를 실을 것임을 예고했다. 유진상기자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5)백제인의 사랑 진표율사

    진표 스님을 뵙기 위해 금산사(金山寺) 가던 날은 절기로 소한이었다.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는 겨울 속에 봄 날씨를 차려 입고서 뜬금없이 진표 스님의 안부를 묻는 나그네에게 개구리는 왜 우느냐고 되물었다.이 질문은 금산사를 찾아가는 모든 길손에게 던지는 것이면서 금산사에 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대답을 알았느냐고 또 묻는다고 했다. 그날은 잿빛 참나무 숲에서 우는 동박새 울음소리에 실려서 물어왔다.어떤 때는 봄날 노고지리 노래나 겨울 갈가마귀떼 울음으로도 물어온다 했다.눈보라로 울부짖거나 천둥번개로 절규하기도 하며,살모사 눈빛이나 하현달의 쓸쓸함으로 물어올 때도 있단다. ●견훤이 물었다 “후백제를 아시오?” 개구리가 왜 우느냐고요? 실은 저도 오늘 그걸 여쭙기 위해 찾아가는 길인 걸요.돌아갈 때는 꼭 대답을 들려주고 가란다.걸음이 무거워졌다.금산사 일주문 조금 못미쳐 돌로 된 굴다리 앞에 이르자 이번엔 안내판 글자 속에서 견훤이 걸어나오더니 나그네를 붙들었다.후백제를 아시오? 후백제라….신라와 당나라연합군에 백제가 멸망한 660년에서 무려 240년이나 지난 뒤에 옛 백제를 계승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건국한 나라가 아니냐고 대답하자 견훤이 버럭 고함을 쳤다. 연합군이라고? 이런 시러베아들놈 같으니라구.연합군은 뭔 연합군이야,늑대 같은 외세지. 외세 끌어들여 욕심 채우려다가 시퍼런 증오와 원한의 늪에다 백제인들을 처밀어놓고,고구려 저 광활한 영토 몽땅 다 빼앗기고서 반도 남쪽 구석에 내몰려서 쭈그리고 사는 꼴 하고서는….그 잘난 신라가 저질러버린 엄청난 과오를 당신도 지금 보고있지 않은가.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즈그네덜거로 한다며 떵떵거리고 있는데도,그 뭣인가 대한민국 정치인이라는 얄궂은 것들은 입 딱 봉하고 있담서.외세 끌어들여 민족 영토 거덜내버린 신라 정치인들이나,중국 눈치 살피면서 몸사리는 정치인들이나 모조리 다 거시기할 것들이여. 참으로 두렵고,아프고,무거운 해후였다.견훤은 백제 유민인 전주지방 인민들의 회고적 감정에 호소하며 후백제를 세울 수 있었는데,그때 가장 결정적인 힘이 백제 유민들의 그 회고적감정이었다.백제가 신라 역사에 편입된 지 240년이 지날 때까지도 옛 백제를 못잊어하고,신라의 지배질서에 원한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는 뜻이다.단순히 옛 일만이 아닌 것 같다. ●금산사에 계신 진표 스님을 뵙다 진표 스님은 금산사 대웅전 뒤편 조사당(祖師堂)의 영정 안에 계셨다.오른 쪽에는 은사이신 숭제법사(崇濟法師)께서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나그네와 진표 스님 사이에는 1200년이라는 시간적 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우주는 마음으로 짓고 허무는 것이라는 진표 스님의 법문을 믿고 오직 간절한 마음으로 스님께 여쭈었다.스님은 고요속에다 말씀을 풀어놓으셨다.그렇게 조사당문답(祖師堂問答)이 시작되었다. 나그네: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라크 국민들은 참담한 좌절감에 빠져 있습니다.목숨을 내건 테러로 살상과 증오의 날들이 쌓이고 있습니다.이 불행을 종식시키기 위한 방법을 먼저 여쭙고자 합니다.오늘날 이라크 국민들이 겪는 고통은 스님께서 목숨을 건 망신참회(亡身懺悔) 수행을 통하여 백제인들과 신라 집권자들이 상생(相生)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시던 그때 상황과 매우 닮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진표 스님:미국과 이라크는 인간이 지닌 모순의 두 측면을 각각 대변하고 있구나. 자신의 견해만이 옳다고 여기는 쪽과 일체의 사물을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집착하는 또 한 측면의 충돌이지.똑같으니까 싸우는 것이지.나는 그때 백제인들에게는 무모한 저항을 하지 말도록 설득시켜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과,신라의 지배자들에게는 잔혹한 탄압을 중지시켜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이 문제는 매우 미묘한 것이어서 자칫 잘못하면 어느 한쪽만의 이익을 위해 편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거든.그리되면 약자들로부터는 굴종을 강요한다는 원성을 들을 수 있고,강자한테서는 저항을 부추긴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지도자는 불만·투쟁 잘 다스려야 나그네:스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지요. 진표 스님:다스리되 군림하지 않는 사람이다.인간이 사는 세상은 불만과 투쟁이라는 두 축 위에서 절규하는 것일 수도 있다.좋은 지도자는 두 원인을 잘 다스리되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자랑이란 욕심을 만드는 종자이기 때문이다.백제인들에게는 신라의 지배질서를 따름으로써 누릴 수 있는 이익을 제시해야 하고,신라 지도자들에게는 비폭력적 방법으로 백제인을 끌어안을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만 했다.그런데 그 방법을 터득하는 데는 엄청난 장애들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그네:가장 큰 장애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진표 스님:내가 왜 이 일을 맡아야 하는가 하는 의심이었다. 나그네:어떻게 해결하셨는지요? 진표 스님:비상한 시름은 평범한 물건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백제인들은 한 세기 가깝도록 신라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왔다.증오는 저주로 변했다.신라의 편견도 지배자라는 타성에 젖어서 점점 더 폭력적인 지배방법만 강구했다.서로의 견해 차이가 워낙 커서 웬만한 조정능력으로는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었다.그래서 나는 결심을 했다.과거의 인연을 알 수 있는 능력을 얻고자 했다.그 능력으로 나와 타인의 과거에 얽힌 인연과선악에 관한 것을 알고자 했다.이를 숙명통(宿命通)이라 하느니라.또 하나는 나와 다른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었다.인과응보를 확인시켜줌으로써 눈에 안 보이는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힘이지.이것은 천안통(天眼通)이라 하느니라.번뇌가 끝나서 얻은 지혜로서 현재의 번뇌를 끊어버리는 능력을 얻는 누진통,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나타날 수 있는 신족통,보통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 능력인 천이통,타인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능력인 타심통을 합한 육신통(六神通)과 해탈법을 깨닫기 위한 결심을 한 것이다.이 육신통이야말로 비상한 시대 문제를 풀 수 있는 비상한 물건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지.그런 능력이 있어야만 양쪽 모두를 조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깨달았다.지배자와 민중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적대감정을 해결하여 공존과 상생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율자가 되기로 한 것이지.그런 조율자로서의 능력과 방법을 지장보살님과 미륵부처님께 물었다.내 몸을 던져서 답을 구했다.그것을 세상 사람들이 망신참회라 부른다. 나그네: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수행법인 망신참회를 선택하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까? ●내 개구리는 업장을 깨우쳐 주었노라 진표 스님:동기라고 했느냐?(스님은 오른쪽에 있는 그의 스승이신 숭제법사 쪽을 바라보며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머금었다.)너는 개구리가 왜 우는지 아느냐? 나그네:생물시간에 배우기로는 암컷과 수컷이 교미하기 위해서라고 들었습니다만. 진표 스님:그래야겠지.그런데 내 개구리는 울어서 내 미혹과 업장을 깨우쳐주었다. 나그네:무슨 말씀이신지…. 진표 스님:나는 열 살 이전에 활을 잘 쏘아 명궁 소리를 들었다.자주 사냥에 나가 활솜씨를 자랑하곤 했지.어느날 사냥가던 길에 개구리떼가 울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놈들을 잡아 구워먹고 싶었다.크고 살진 놈만 잡아서 버들꿰미에 꿰었다.돌아올 때 갖고 가기위해 냇가에 두었는데 사냥길이 어긋나는 바람에 그만 집에 오면서 잊어버렸어.일년 뒤 다시 그 길을 지나다가 작년에 내가 잡아서 꿰어둔 개구리들이 그때까지 살아서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 순간 개구리들의 처량한 모습이 내 이웃 사람들로 느껴졌고,나는 내 이웃 사람들을 박해하는 신라 지배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참으로 부끄러웠다.그 일이 계기가 되어 나는 금산사 숭제법사님을 의지하여 출가를 했다.
  • “사업차 방문… 中서 날조”

    중국에서 파룬궁(法輪功) 활동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중국당국으로부터 추방된 남상식씨와 박창국씨는 14일 “사업조사차 중국을 방문했을 뿐인데 파룬궁을 지원하기 위해 방송 통신을 교란하려고 공작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거짓 날조”라고 말했다.이들은 기자회견에서 “파룬궁이 탄압받는 장면을 담은 영상물과 이를 볼 수 있는 무선 영상장치를 갖고 중국에 간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중국내 파룬궁 박해현실을 알리는 게 인간적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NGO/“지나친 개입” 시민단체 안팎서 논란

    17대 총선을 90여일 앞두고 ‘당선운동’과 ‘낙선·낙천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힌 시민·사회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시민단체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정능력을 상실한 부패 정치권에 대한 개혁의 한 축을 시민단체가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시민단체의 지나친 정치개입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보수단체들도 진보단체들의 당선운동에 맞서 ‘낙선·당선운동’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져 보·혁간 갈등도 우려된다. 12일 시민·사회단체들에 따르면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가 여성후보 102명의 당선운동 명단을 발표한 데 이어 조만간 ‘총선 물갈이 국민주권연대’(물갈이연대),생활정치 네트워크 국민의힘,반핵반김청년운동본부,민주노총 등도 잇따라 당선후보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도 이날 무능·부패정치인에 대한 낙선·낙천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수백명 참여… 물갈이연대 곧 출범 지난 9일 여성네트워크가 당선자 명단발표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손봉숙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이사장은 “현재 여성 국회의원 수는 16명으로 전체 국회의원의 5.9%에 불과한 상황”이라면서 “102명의 명단을 각 정당에 제안,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 공천을 촉구하는 등의 방법으로 당선운동을 벌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오는 15일에는 강만길 상지대 총장과 최열 환경운동연합 대표 등 수백명의 인사들이 참여하는 물갈이연대가 출범할 예정이다. 이 단체의 결성을 주도하는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도덕성,개혁성,의정 활동의 성실성,주요 정책에 대한 입장 등이 주요 잣대가 될 것”이라면서 “227개 선거구별 후보자에 대해 다양한 검증을 거쳐 중점지지후보,개혁후보,클린후보 등으로 차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 힘은 홈페이지 ‘2004 출마오디션’이라는 코너를 통해 출마예정자들을 검증하는 한편,이달 말 50명 규모의 중앙선거인단,시도 광역선거인단,지역구별 선거인단을 구성,인터넷 공개투표로 지역구마다 한 명씩 지지 후보를 선정할 계획이다. 여기에 환경운동연합도 친환경 후보,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하는 조합원,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장애인 후보 등에 대해 각각 당선운동을 펼 것으로 알려졌다. ●보·혁단체 총선 대립각 이라크 파병 등을 놓고 목소리를 높여온 자유시민연대 등 보수단체 등도 파병반대 등을 주장해 온 진보단체에 맞서 ‘맞불’ 당선운동을 펼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참여연대와 민중연대 등 351개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은 당선운동을 파병과 연계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국회의원들을 압박하고 있다.파병에 찬성하는 의원들을 ‘물갈이’ 대상에 포함시켜 이를 적극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자유시민연대와 북핵저지시민연대,반핵반김청년운동본부 등 15개 보수단체들은 이에 맞서 파병에 찬성하는 의원들의 당선운동을 준비하고 있다.반핵반김청년운동본부 신혜식 대표는 “북한의 현실과 인권탄압 현실 등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킬 수 있는 인사에 대해 당선운동을 펼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더 이상 부패한 현정치인들에게 정치개혁을 기대할 수 없는 만큼 시민단체가 나서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정치개혁의 명분과 국민의 이름을 팔아서 시민단체의 잇속 채우기나 특정 정치세력을 돕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중한 낙선·당선운동 전개해야 시민단체 안팎에서는 신중한 낙선·당선운동을 당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지난 2000년 총선에서 시민단체들에 ‘찍힌’ 낙선대상자 86명 중 69명이 떨어질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김종철 한양대 법학과 교수는 “시민단체의 낙선·당선운동은 부작용보다 아직까지 순기능이 많다.”고 전제한 뒤 “외국의 경우 각 정당들이 선거자금문제와 선거운동 규제를 피하기 위해 시민단체를 편법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만큼 시민단체들은 법적으로 허용된 범위내에서 활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언론과 홈페이지를 통한 지지ㆍ낙선 후보자 명단 공개는 허용하되 이밖의 모든 사전ㆍ불법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법 적용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광식 21세기한국연구소 소장은 “낙선·당선운동은 우리나라 정치 문화가 균형을 잡아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라면서 “정치개혁은 시민단체의 임무라고 할 수 있지만 명단 발표에 앞서 피해를 당하는 후보자의 입장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인터넷 여론조사기관인 ‘폴에버'의 사이버투표에서 네티즌들은 시민단체의 당선운동에 대해 64.8%가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표현으로 당연하다.’,33.7%는 ‘특정세력을 위한 불법운동이다.’고 각각 응답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4)한국인을 사랑한 사람, 무어 목사

    1898년 10월29일 종로 네거리 운종가 광장에는 독립협회가 주최하는 만민공동회가 열리고 있었다.외세의 국권 침탈위기에 맞서기 위해 정부 대표자와 민간인 각 계층 대표자가 한 자리에 모여서 국정개혁 원칙을 민중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고,결정된 내용을 실천하기 위한 다짐을 하자는 큰 모임이었다.이 모임은 거리에서 관민이 함께 참여하여 벌이는 한국 최초의 합동토론회였다. 오후 2시.광장에는 황국협회,황국중앙총상회,순성회,협성회,광무협회,진신회,친목회,교육회,국민협회,진명회,일진회,보신사 등 각 사회단체들이 모였다.순성회 부인들,각 학교 생도들,시전상인들,맹인,승려들,백정(白丁)들,정부부처 관료 및 신사들이 청첩장 받은 순서대로 참석해 있었다. ●무어에 세례받은 백정 만민공동회 연설자로 오후 3시.대회장인 윤치호가 먼저 만민공동회의 목적을 설명하고 인사말을 했다.곧이어서 군중은 만세를 불러 대회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한편 질서유지에 힘썼다.그런 다음 만민공동회의 개막연설자가 단상에 올랐다.회의장은 순간 물을 뿌린 듯이 고요해졌다.연단으로 올라서고 있는 사람에게 모든 눈길이 일제히 쏠렸다.개막 연설자로 지명된 사람은 놀랍게도 백정 신분이자 새뮤얼 무어 목사한테서 세례받은 곤담골교회 박성춘(朴成春)이었다.박성춘이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으로서 연설을 시작했다. “나는 대한의 가장 천한 사람이고 무지몰각합니다.그러나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뜻은 대강 알고 있습니다.이에 이국편민(利國便民)의 길인즉 관민이 합심한 연후에야 가하다고 생각합니다.저 차일(遮日)에 비유컨대 한 개의 장대로 받친즉 역부족이나 많은 장대를 합한즉 그 힘이 심히 견고합니다.원컨대 관민합심하여 우리 대황제의 성적에 보답하고 국조로 하여금 만만세를 누리게 합시다.” 회중은 연설을 끝낸 박성춘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고,연단 아래 모였던 수십명의 백정들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만세를 불렀다.이 광경은 여러 날을 두고 장안의 화제였다.박성춘,그는 이날의 연설로서 독립협회 주요인물인 안창호,서재필 같은 큰 인물들과 함께 국가의 독립과 민족자립을 논의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무어 목사는 한국에 온 이듬해인 1893년 지금의 조선호텔과 롯데호텔 중간쯤에 있었던 곤담골에다 교회를 열고 곤담골교회라 이름을 지었다.교회에는 마을 아이들을 위한 예수교학당을 함께 열었다.무어 목사는 늘 길거리에서 한국사람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아이들을 예수교학당에 보내라고 권했다.그 마을에 살던 박성춘이라는 백정도 무어 목사라는 사람의 진실된 성품이 싫지 않아서 그의 아들 박서양을 주일학교에 보냈다. 그후 박성춘은 발진티푸스를 앓아서 죽게 되었다.박서양은 주일학교에 나와서 아버지 병을 낫게 해달리는 기도를 하면서 울었다.이를 본 무어 목사가 그 까닭을 물었고 박서양은 아버지의 병환의 위급함을 말했다.무어 목사는 박서양을 돌려보낸 뒤 급히 다른 선교사를 만나러 갔다. 고종황제의 어의(御醫)인 에비슨(Oliver R Avison)을 만나 도와달라고 부탁했다.황제의 전문의사에게 천민보다 더 핍박받는 계급 백정을 진료해달라고 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설혹 에비슨이 승낙한다 하더라도 그런사실을 정부 대신들이나 서울의 양반들이 알게 되면 날벼락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에비슨은 무어 목사의 간곡한 청을 듣고 망설이지 않았다.무어 목사의 눈에 백정들의 참담한 생존이 가장 시급한 구원의 대상으로 비쳤듯이 에비슨의 눈에 비친 무어 목사의 행동은 천사로 비쳤기 때문이다. 두 명의 선교사들이 백정 박성춘을 찾아왔다.박성춘이 완쾌할 때까지 두사람의 발걸음은 계속되었다.박성춘은 임금님의 주치의가 자기 같은 천민을 치료해주기 위해 누추한 곳까지 와준데 깊은 감동을 받았다.완치된 뒤 그의 자식들 모두를 주일학교에 보낸 그도 열렬한 기독교인이 되어 같이 설움받고 사는 백정들에게 전도를 시작했다.그런가 하면 큰아들 박서양이 의학을 공부하여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치료해주는 삶을 살아가도록 키웠다.박서양은 결국 1899년 제중원의학교(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08년 졸업하면서 세브란스의학교 제1회 졸업생이 되기도 했다. 그 무렵 무어 목사는 한국식 이름을 지었다.모삼열(牟三悅).소울음소리 모(牟)자를 즐겨 쓴 이유는 백정들의 애환과 고난을 자신의 삶 안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1895년 박성춘은 무어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고,곤담골교회는 교인 20명의 제법 뜻있는 교회로 자리잡아갔다. ●“양반전도 어렵다” 선교사들 불평·비난 받아 그 무렵 첫 차별사건이 교회 안에서 일어났다.교회에 나오던 양반 신도들이 발길을 끊는 일이 생긴 것이다.사정을 알고보니 양반 신도들은 백정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심지어는 백정 같은 천민도 예수를 믿으면 죽은 뒤 천당에 갈 수 있다고 하는데,백정이 가는 천당이라면 가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양반 신도도 있었다.백정이 믿는 하느님과 양반이 믿는 하느님이 동일하다는 것은 곧 양반을 능멸하는 짓이며,더욱이 한 교회 지붕 밑에서 같은 자리에 앉아 천당을 생각하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이도 있었다. 여러 날이 지난 뒤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 같다며 뉘우치는 이들이 생겼다.그들은 무어 목사에게 새로운 제의를 했다.자기들을 앞자리에 앉게 하고백정들을 뒷자리에 앉도록 좌석을 구별해준다면 다시 교회에 나올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무어 목사는 단호하게 거절했다.그후 1904년 지금의 인사동으로 옮겨 1905년 승동교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한국 기독교사상 가장 뜻깊은 역사를 간직한 교회의 하나가 되었다. 박성춘이 교인이 된 뒤 무어 목사는 에비슨 박사와 함께 뜻을 모아서 백정들에 대한 차별 철폐를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1895년에서 189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조정에 탄원서를 냈다.이들의 호소는 받아들여졌다.비로소 백정도 한국의 국민 자격을 얻어 호적에 오를 수 있었고 일반인들처럼 갓도 쓰고 두루마기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백정들은 머리에 갓 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 외출할 때에는 패랭이를 쓰고다녀야 했기 때문에 어디서나 한 눈에 백정 신분임을 드러내도록 했다. 2차대전 이전 독일의 유태인들이 가슴에 노랑색 별을 달고다녀야 하듯 했고,인도의 최하층 노예신분인 수드라가 항상 황토색깔의 옷을 입고 다녀야 하는 것과 같았다.그러다가 갓을 쓸 수있다는 법령이 공포되자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령을 발표했을 때 기뻐했던 흑인들의 경우보다 훨씬 더 강도높은 기쁨이 한국 전역의 백정들을 울부짖게 만들었다.어떤 백정은 하도 좋아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갓을 쓰고 살았던 이가 생겨났을 정도였다. ●‘철도공사장 노동자 인권침해' 日에 항의 이와 같은 선지자적인 무어 목사의 행동은 많은 선교사들의 불평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서울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이들은,교회가 백정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해주는 곳으로 알려지게 되면 양반들에게 전도하기 어려워지게 되고 결국에는 교회가 성장하는데 치명적인 장애가 된다는 불평을 서슴없이 털어놓았다.또한 한국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양반들을 교인으로 전도해야만 교회의 위상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실익이 생길 수 있지만,백정 같은 천민들이 아무리 교인으로 많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교회의 권위와 영향력은 별로 커지지 않는다고 했다.백정들의 인간해방 운동을 위하여 동료 선교사들과 아무 의논도 없이 임금에게 탄원서를 낸 것은미 국무부 정책을 위반하여 다른 나라 정치와 관습에 간섭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1899년 12월 무어 목사는 고종황제에게 전도하기 위하여 알렌 공사로 하여금 주선해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거절당한 일이 있었다.그때 무어 목사는 한국의 백정들에 대한 인권탄압 정책과 제도를 혁파해달라는 요구를 고종황제에게 해볼 결심으로 그런 부탁을 했던 것이다.거절당한 뒤 할 수 없이 문제의 그 편지를 직접 고종황제에게 보냈고,그로하여 알렌 공사와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무어 목사는 아내의 건강이 몹시 쇠약해져 1902년부터 1년 동안 미국의 고향에서 요양을 끝내고 1903년 9월 다시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그 무렵 무어 목사는 서울을 벗어나고 싶어했다.알렌 공사와 다른 선교사들과의 갈등 때문이었다.천민이나 서민들보다 양반과 부자,귀족들에게 주로 선교활동을 펴면서 백정선교에 집중하는 무어 목사를 미국의 이익에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고 비난하는데 지쳐갔다. 그는 살림도 할 수 있는 작은 배 한 척을 장만하여 ‘기쁜 소식(The Glad Tidings)’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서해안에 흩어져 있는 작은 어촌과 섬,그리고 한강 언저리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길은 마음 속에서 차별을 없애는 것이라고 설교했다. 그런 중에 일본 군용철도 공사장에 강제로 동원된 한국 노동자들의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를 일본영사관에 제기했다.일본영사관에서 아무런 반응을 안보이자 일본군의 잔혹행위를 고발하는 성명서를 해외선교부에 보내 도와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1906년 전도여행길서 병얻어 46세로 사망 그때 무어 목사는 한국인들이 일본군인들에게 그토록 짓밟히면서도 민중봉기가 없는 것은 한국인들이 수탈과 억압에 너무 익숙해져 인간의 혼이 죽어버린 탓이 아닌가 하고 통곡했던 적도 있었다.그때부터 평양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유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자유사상을 고취시켜 나간다면 장차 인간의 혼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한국인을 사랑하던 무어 목사는 1906년 전도 여행길에서병을 얻어 그해 12월22일 세브란스병원에서 46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한국의 백정을 사랑한 인권의 은인이자 인간해방의 참뜻을 가르친 위대한 사도였다.그의 인권사상은 그가 죽은 지 16년 뒤인 1922년 백정해방운동으로 되살아났다.
  • ‘후세인 전쟁포로’ 신분 공방

    미 국방부가 지난 9일(현지시간)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을 전쟁포로(POW)로 규정하자 그의 법적 지위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미국이 그를 이라크 법정에 세울 뜻을 밝히면서 제네바협정 위반이란 지적도 제기된다.아울러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IGC) 등은 과분한 지위 부여라며 반발하고 있다. 제네바협정에 따르면,비인간적 범죄를 저지른 전쟁포로의 경우 국제법정이나 점령국 관할 법정에서만 재판을 받을 수 있다.미국이 후세인 전 대통령을 전쟁포로로 규정하면,국제재판소나 미국 관할의 재판소에서만 재판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전쟁포로로 규정한 뒤 이라크 법정에 세우면 제네바협정을 위반하게 되는 셈이 된다. 범죄자에게 전쟁포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과분하다는 반발도 거세다.10일 IGC는 미국의 이번 결정에 당혹감과 실망감을 표시했다. 일부 위원들은 후세인 전 대통령이 제네바협정이 정한 법률적 권리를 누리게 되면,인권탄압 등의 혐의로 이라크 내에서 재판 받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공방이 뜨겁자 이라크주둔 미군의 댄 세너 대변인은 10일 “후세인의 최종지위는 앞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해명했다.미 국방부는 지난 9일 후세인이 이라크군 최고사령관이었던 점을 감안,전쟁포로로 규정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미군은 10일 ‘전쟁포로 지위 부여 문제로 연합군이 후세인 전 대통령과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강력 부인했다. 한편 지난달 후세인 전 대통령 체포 이후 아직까지 면담을 하지 못한 국제적십자사(ICRC)는,이날 이라크 연합군 임시기구(CPA)측에 또다시 면담을 신청했다. 황장석기자·외신surono@
  • [정동주 역사문학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3)한국인을 사랑한 사람, 무어 목사

    “대황제 폐하께,나 새뮤얼 무어는 미국의 시민으로서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느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아 주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만약에 황제폐하께서 폐하의 신하들과 함께 이 말씀을 듣기를 원하신다면 저를 불러주시길 황송한 마음으로 바라옵니다.” 한글로 적힌 이 편지는 겉봉에다 ‘코리아의 황제,서울시(The Emperor of Korea,City)’라 적고 그 안에 넣어져 우체통에 있었다. 이 편지는 고종황제께 전달되지 않고 내무부 관리의 손에 들어갔다.그 관리는 편지를 보낸 이가 그즈음 한창 한국의 백정(白丁)들에게 설교하는 일로하여 미국선교단과 서울 주재 외교관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는 새뮤얼 무어라는 사람임을 알았다.그 관리가 보기에 무어 목사는 불손하기 그지없었다.감히 일개 외국선교사가 사사로이 고종황제에게 편지질을 한 것은 크게 비난받을 무례한 짓이라는 공식 불평과 함께 그 편지를 미국 공사 알렌(H,N,Allen)에게 다시 보냈다. ●“무어는 정신이 건전치 못한 사람 같다” 편지 겉봉의 수신인은 ‘코리아의 황제’,수신인의 주소를 ‘서울(City)’이라고 적은 것은 우습기도 하고 기발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 편지를 검토한 알렌 공사는 미 국무부에 보낸 공문서에서 “이런 겉잡을 수 없고 무례한 선교사는 공사관 영창에 가둬야 옳다.”고 했다.그의 어머니께 보낸 편지에서는 “무어라는 괴짜 선교사 한 사람을 감금시키겠다고 협박할수밖에 없다.”고 했으며,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 총무 엘린우드(Ellinwood)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무어 목사는 가장 어렵고 귀찮은 사람이며 내가 언젠가 그를 ‘미친인간’으로 보지 않으리라 장담 못하지만 그의 행동은 분명 ‘정신이 건전치 못한 사람’같다.”고 썼다. 또한 “무어 목사가 고종황제를 만나겠다는 것은 그의 백정들(his butchers)을 인정받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며,‘정신 상태가 건전한 사람’으로 인정할 수가 없어서 공사관에 관계된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삭제해버렸다.”고 하면서 “선교사들의 보호뿐만 아니라 무어 목사같은 괴짜들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선교사 거류지를 차라리 부산,인천,원산과 같은 개항지로제한하는 것이 좋겠다.”고 까지 썼다. 알렌 공사는 1900년 가을 평양에서 열린 장로교 선교사들의 연례회의에서,앞으로 무어 목사가 미국 정부를 대표하는 알렌 공사의 모든 명령에 순종하고 재한 미국인 거류민으로서 어울리는 행동을 하겠다는 서약을 받도록 했다.그리고 이같은 사실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는 회의록을 미국공사관에 전달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무어 목사는 이 통고를 받은 뒤 몹시 괴로워하다가 “내가 미국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에 대하여 너무 추상적으로 생각하여 나의 상관에게 매우 버릇없이 말했음을 깨닫지 못했었다.”는 사과편지를 알렌 공사에게 보내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지을 수 있었다. 알렌 공사의 말대로라면 “무식한 토박이 글쟁이가 썼기 때문에 무례한 글”이었으나 무어 목사는,“그 편지는 지도를 받아 가장 존대하는 말로 썼으며,편지 겉봉의 표기가 잘못되어서 불손하다는 항의를 받게 되었다면 그것은 본의가 아니고 이 나라의 관례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며,불손한 의도는 전혀 없었고 다만 황제폐하와 그가 다스리시는 나라의 현재와 영원한 복락을 염원해서 쓴 것이었다.”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비단 이 사건뿐만 아니라 한국의 천민 계급의 대명사이자 가장 탄압받고 사는 백정들에게 기독교를 통하여 인간의 존엄과 평등의 참뜻을 깨닫게 하기 위한 선교활동으로 인하여 알렌 공사와 무어 목사 사이에는 비난과 해명의 편지가 여러 차례 오고 갔다. ●1900년 서울 외교관들 화제의 주인공 무어 목사는 참기 어려운 마음의 괴로움을 선교본부 엘린우드 총무에게 편지로 토로했다.“나와 같은 사람을 파괴시키기 위해 알렌은 그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고 느껴집니다.나는 지금까지 누구를 증오한다는 것이 어떤 심정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알렌에게 품었던 미워하는 감정은 몇 주간이었고,그 폭풍은 벌써 지나가버렸습니다.아마 누군가가 특별히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라고. 1900년 한해 내내 서울의 외교관들 사이에서 단연코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던 무어 목사는 그때 40세였다. 새뮤얼 무어(Samuel F.Moore,한국 이름 모삼열·牟三悅)는 1860년에 태어나서 1906년에 이 세상을 떠났다.그가 한국에 온 것은 1892년 9월19일 제물포를 통해서였다.시카고 부근 그랜드 리지(Grand Ridge)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1889년 몬타나대학(College of Montana,현재 이름은 RoCky Mountain College)을 마치고,매코믹신학교(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에 입학하여 1892년 봄에 졸업했다. 대학 시절부터 남다른 소명의식을 갖고 있었던 그는 대학시절 학교 근처 감옥의 죄수들을 찾아다니면서 인간답게 사는 길을 열렬하게 외쳤고,신학교 시절에는 경찰서 유치장의 죄수들을 찾아다니며 인간의 행복에 대해 설교하기도 했다.그해 9월 로즈 엘리(Rose Elly)와 결혼하여 미국 북장로 선교사가 되어 두 달 뒤 아내와 함께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15년동안 한국에 살면서 아들 셋,딸 하나를 모두 한국땅에서 낳아 길렀다.딸은 무어 목사가 세상을 떠날 때 아내의 복중에 있어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그는 죽은 뒤에도 한국땅에 묻혀서 우리와 함께 살지만,그가 떠난지 100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한국인은 그토록 그가 차별받은 사람들을 붙들고 절규했던 인간평등과 사랑을 많이 잊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리 스스로에게 되묻고 싶다. ●3년만에 한국말로 완벽하게 설교 그는 한국에 온 뒤 빨리 한국말을 익히기 위하여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그 당시 선교사들은 정동이나 연동에 모여 살았다.신변의 안전과 가정생활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무어 목사는 한국인 마을에서 서민들과 함께 어울려 살았다.빼어난 언어감각으로 한국이 온지 반년이 채 못지나서 한국말로 주기도문을 유창하게 외웠고,간단한 기도는 거뜬히 할 수 있었다. 3년 뒤 그는 수원의 한 교회에서 한국말로 설교를 했는데 너무나 완벽하게 한국 서민이 사용하는 말로 교인들을 감동시킨 나머지 한 교인이 미국에서도 목사들이 한국말을 쓰는지 묻는 바람에 크게 웃은 일이 있었다. 한국사람이 양복만 입은 것 같다는 한국인들의 그에 대한 칭찬은 그의 한국말 솜씨가 얼마나 자연스러웠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그의 생활 대부분이 한국인들과의 생활 속에서 이루어져 그의 말은 서민들의 생활언어여서 서민이라면 누구하고도 원활하게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 그즈음 미국의 선교사위원회에서는 선교활동을 돕기위하여 선교사들에게 ‘한국어 시험’을 치르도록 하고 있었다.그런데 그토록 한국말을 잘하는 무어 목사는 그 시험에서 늘 낙제점수를 받았다.이유는 사뭇 엉뚱했다.그 시험에서는 서울 양반계층들이 사용하는 유식하고 고급스러운 말들만 물었기 때문에 무어 목사가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이다.선교위원회에서는 무어 목사에게 양반의 고급 교양어를 배우도록 권고했다.무어 목사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민중을 가르치려면 민중과 호흡해야 자신이 최선을 다해 섬기고 싶은 것은 평범하고 진실된 한국 서민들이며,그들을 위하는 길은 양반들의 고급스러운 말을 이용한 성경운동 보다는 그들의 가난하고 낮은 삶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의 입장이 되어서,그들의 마음이 되어서 그들의 눈과 가슴으로 인간이 평등해야 하는 까닭을 설명했다.자유를누리기 위해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그들의 사용하는 말을 쓰는 것 보다 현명한 것은 없다고 했다. 감리교의 초기 선교사였던 아펜젤러(H.G.Appenzeller) 목사는 어느날 무어 목사가 어느 교회앞 길거리에서 많은 한국인들에게 한국말을 자유롭게 구사하면서 전도하는 것을 보고 매우 감동적이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기도 하다. 그는 민중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민중의 습속을 생활하면서 민중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다.이런 그의 진지하고 애정어린 태도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갖게 했고,향기롭게 새겨진 그의 인상은 오래도록 가슴에 살아남아 있다. 그의 집은 늘 한국 서민들로 북적거렸고,항상 그는 길거리에서 서민들을 만나 세상사는 얘기를 주고 받았다.예수를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조금도 차별하지 않고 좋은 이웃이 되려고 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그의 집을 인의예지가(仁義禮智家)라 칭송했다. 오늘,같은 한국인이면서 한국인을 차별하는 저 천하에 몹쓸 지연,학연,혈연이 만든 질병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무어 목사를 그리워한다.
  • 엇갈린 정가 반응/ 한나라 민주·우리당 “표적수사” “법집행 당연”

    검찰이 9일 각종 비리에 연루된 여야 의원 8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자 한나라당은 크게 ‘반발’한 반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승복’했다. 한나라당은 “김영일 의원을 표적으로 삼기 위한 야당탄압용 표적수사의 전형”이라고 반발했다.강금실 법무장관 및 검찰 수뇌부에 대한 책임추궁과 대선자금 특검 도입 등 각종 강경책을 검토 중이란 얘기도 흘러나왔다. 최병렬 대표는 “검찰이 부르면 언제든 가겠다고 김 의원이 밝혔음에도,구속영장을 청구키로 한 것은 한나라당에 대해서만 대선자금 출구조사를 하겠다는 명백한 총선 방해행위”라며 “일단 지켜보겠으나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그러면서도 “방탄국회라도 열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럴 수는 없잖아…”라고 말해,구체적인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한편 당사자인 김영일 의원은 전날 당지도부에 전화를 걸어 “(검찰이 부르면) 당당하게 검찰에 출두할 테니 나를 보호하기 위해 방탄국회를 열지는 말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구속 대상에이훈평·박주선 의원 등 소속 의원 2명이 포함된 민주당이 “엄정한 법 집행은 당연하다.”며 선뜻 승복한 것은 다소 의외다.조순형 대표는 “지난해 미국 하원은 뇌물수수 혐의로 유죄평결을 받은 하원의원을 420대 1이라는 압도적 투표결과로 제명했는데,우리 국회는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 국민에게 비판받고 있다.”고 검찰의 이번 조치를 평가했다.유종필 대변인도 “법앞에 만인은 평등하며,어느당 소속 의원이든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깨끗한 정치의 실현과정으로,정치권은 당당하게 수사에 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동채 홍보위원장은 정대철 의원이 구속 대상에 포함된 데 대해 “동료의원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지만 시대의 대세가 깨끗한 정치 실현과 부패정치 척결로 흘러가고 있다.부패혐의를 받는 사람은 누구도 검찰수사를 피할 수 없다.”고 원칙론을 폈다. 전광삼 김상연기자 carlos@
  • [씨줄날줄] 용서

    미국 스탠퍼드대에 용서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강좌가 있다.강좌이름은 ‘과거경험 치유(Healing Our Past Experience)’의 머리글자를 딴 HOPE.1999년 여름 북아일랜드 30년 내전에서 부모,형제자매,애인을 잃은 남녀 십여명을 대상으로 시작한 게 시발점이 됐다. 90분 수업으로 일주일에 한번 6주간 계속되는데 지금은 참가자가 300명 가까이로 늘었다.분노를 삭이는 과정,상대를 용서하는 과정이 단계별로 체계화돼 있는데 교육효과가 매우 높다고 한다.설립자인 프레드 러스킨교수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 자신을 위해서 용서가 필요한 것임을 강조한다.분노를 품고 살아간다면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23년만에 열린 재심법정에서 당시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가한 신군부를 “인간적으로 원망하지 않고 마음으로나 종교적으로 용서했다.”고 말했다.캄캄한 지하실에서 욕설과 고문을 당했고 함께 구금된 민주인사들이 바로 옆방에서 지르는 비명소리를들어야 했다고 그는 말했다.그 분노가 오죽했을까.하지만 팔순의 그는 용서하는 길을 택했다.그들을 질타하는 어떤 웅변보다도 더 값진 용서다. 용서의 전범을 보인 이로 교황을 빼놓을 수 없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1년 성베드로광장에서 자신을 저격한 터키청년 알리 아그자를 감옥으로 찾아가 그를 용서하고 당국에 그의 사면까지 청했다.나치의 만행을 묵인한 죄,십자군전쟁으로 이교도를 탄압한 교회의 죄를 참회한 데는 용서를 구함으로써 상대의 분노를 덜어주려는 배려가 담겨있다. 반면 세밑 이승을 떠난 허주(虛舟)김윤환은 자신을 내친 상대방을 용서하지 못하고 화를 키워 스스로에 해가 된 경우일 것.그가 진작 스탠퍼드대의 HOPE강좌를 알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물론 세상에는 쉽게 용서되지 않는 죄목도 있다.힐러리는 자서전에서 남편 클린턴이 르윈스키와의 부정을 털어놓을 때 “그의 목을 비틀어 죽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힐러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그를 용서한다는 말은 자서전 어디에도 쓰지 않았다. 이기동 논설위원
  • 한나라 “특검서 대통령 조사해라”

    한나라당은 ‘썬앤문 게이트’ 등 측근비리에 노무현 대통령이 간여됐다는 일부 보도와 관련,노 대통령에 대한 특검의 직접 조사를 요구하는 등 전방위 공세를 펼쳤다. 박진 대변인은 8일 “모 일간지가 보도한 검찰수사 기록에 따르면,썬앤문그룹 문병욱 회장은 2002년 2월 민주당 대선후보경선에 나선 노 대통령의 직접 요청에 따라 5000만원을 줬다고 진술했다.”면서 노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다.이어 “김성래 전 부회장도 같은 해 7월 노 후보를 만난 자리(김해관광호텔)에서 문 씨가 자신이 들고 있던 현금 쇼핑백을 건네받아 노 후보에게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의도적으로 축소·은폐하려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자신들에 대한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야당 탄압을 위한 편파·강압 수사’라고 몰아세웠다.최병렬 대표는 오후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검찰이 야당에 대해 ‘출구조사’에 착수한다는 것은 총선 방해 행위로 강력 대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광삼기자 hisam@
  • 수사 전망·반응/檢, 최돈웅의원 영장재청구 방침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7명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모두 부결됨에 따라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자칫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그러나 현대비자금과 나라종금 사건에 연루된 의원들의 경우 수사가 사실상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사법처리 수위만 결정하면 된다. 검찰은 이들 의원 7명 가운데 혐의가 무거운 사안에 대해서는 영장을 재청구키로 했다.최 의원과 정대철 열린우리당 의원이 대상이다.반면 상대적으로 혐의가 가벼운 다른 의원 5명은 불구속기소할 방침이다.대검 중앙수사부는 최 의원의 신병확보 없이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삼성·LG·현대차 등으로부터 362억원의 불법자금을 모금한 서정우 변호사에 대한 공소유지와 한나라당 김영일 의원에 대한 조사를 위해 최 의원의 신병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때문에 대검은 최 의원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기로 방침을 세웠다는 것이다. ●정대철의원도 새달초순 재청구 시사 굿모닝시티 윤창렬 회장으로부터 인·허가 청탁 등 명목으로 4억원을 받은 정 의원에 대해서도 영장 재청구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채동욱 서울지검 특수2부장은 “(영장 재청구는) 지금 당장 급한 일이 아니다.”면서 “7명의 의원이 함께 걸려 있는 만큼 대검 및 대구지검과 조율을 거쳐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영장을 재청구한다 해도 임시회기가 끝나는 다음달 9일까지는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한 회기 중에는 같은 사안을 다시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영장 재청구는 다음달 9일 이후 이뤄질 전망이다. 현대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한나라당 박주천,민주당 이훈평 의원과 나라종금 사건에 연루된 박주선 의원,개인비리 성격의 한나라당 박명환,박재욱 의원 중 혐의가 가벼운 일부 의원에 대해서는 불구속기소로 기울고 있다. ●법조계 “불체포 특권 폐기 고려해야” 한편 검찰을 비롯한 법조계는 이날 제식구 감싸기에 나선 정치권을 강하게 비난했다.법무부의 한 검사는 “국회의원에 대한 불체포 특권을 없애는 방안도 고려해볼 때가 됐다.”면서 “부당한 탄압으로부터 국회를 지키기 위해 도입된불체포특권이 악용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김갑배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이사는 “정치권이 7명 모두를 부결시킨 것은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한나라 물갈이 탄력받나

    한나라당 이재오 사무총장이 당내 인적 쇄신과 관련,‘5·6공 청산론’을 제기하고 나섰다.29일 공천심사위 구성을 앞두고 한 발언이어서 안팎의 시선을 모았다.물갈이의 방향을 내보였다는 분석과 함께 지목된 당사자들을 중심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20∼30명 공천 탈락 확실 이 총장은 지난 27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지금은 한 시대를 정리할 시간”이라며 “한나라당도 17대 총선을 통해 ‘3김’을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이어 “5·6공 인사들은 근대화,산업화,가난 해결,민주화 등 성취한 것도 있지만 부끄러운 것도 있다.”며 인권탄압,광주학살,노동탄압 등을 꼽았다.특히 “건전하고 양심적인 보수세력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것을 보여주면 한나라당이 살고,그렇지 못하면 죽는다는 게 개인적 역사 의식”이라고 말했다. 이 총장의 ‘5·6공 퇴진론’은 본격적인 공천심사를 앞두고 당사자들의 자발적 용퇴를 이끌어 내려는 의도로 보인다.공천심사에서 탈락해 모양새를 구기느니 스스로 결단을 내리라는 ‘최후통첩’인 셈이다.구체적으로 누가 퇴진 대상인지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그가 열거한 ‘인권탄압’ 등과 관련,그동안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아온 인사들이 대상이 될 것 같다.이들 외에도 한나라당은 공천심사규정을 통해 부정비리 관련자,파렴치 범죄 연루자,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재판이 계속되고 있는 인사 등을 공천 부적격자로 정해 놓았다.이들까지 합치면 148명의 현역의원 중 줄잡아 20∼30명은 이미 공천배제가 확정된 것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영남권 중진 진퇴 고민 문제는 당사자들의 반발 가능성이다.5선의 강창희 의원은 28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고 말할 입장에 있지 않다.물갈이가 대세이고,앞으로도 분명 물갈이가 될 수밖에 없는데 굳이 ‘물갈이’라는 말을 써서 서로 불편한 관계를 가져갈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불쾌감을 나타냈다.그는 “지난 16대 총선에서도 초선의원이 50%를 넘은 것으로 안다.”면서 “물갈이라는 말을 안써도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용퇴 압력을 받고 있는일부 중진들의 서운함을 대변했다. 일부 중진의원들은 “그런 기준이라면 최병렬 대표가 물갈이 ‘1순위’”라면서 “6공 실세였던 최 대표가 5·6공 물갈이론을 주장하는 게 설득력이 있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그러나 5·6공과 관계없이 용퇴의 뜻을 지닌 중진들도 적지 않아 한나라당 지도부의 인적쇄신 작업은 의외로 순항할 가능성도 있다.현재 불출마를 공식화한 의원은 김용환·양정규·김찬우·주진우·박헌기·윤영탁 의원과 한나라당 출신 박관용 국회의장 등 7명이다.이들 외에도 영남권의 J·Y·P·K 의원 등 6∼7명이 불출마를 저울질 하고 있다.이 총장도 “중진 5∼6명 정도가 추가로 불출마 의사를 내게 전해 왔다.”고 말했다. 진경호기자 j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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