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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마당] 사월혁명에 생각나는 대중가요/이동순 시인·영남대 국문학 교수

    [문화마당] 사월혁명에 생각나는 대중가요/이동순 시인·영남대 국문학 교수

    사월혁명이 나던 해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대구의 2·28을 도화선으로 해서 마산을 거쳐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갔던 사월혁명. 이후 나는 사리분별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학생들이 외쳤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그들이 뿌렸던 깨끗하고 순결한 피의 의미가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차츰 알게 되었다. 4·19를 겪으며 문단이 정신의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오히려 대중문화의 첨단이라 할 수 있는 가요계에서 놀라운 작품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가수 남인수가 취입한 음반 ‘사월의 깃발’은 지금 들어도 놀랍다. 당시 학생들이 뿌렸던 혈흔을 강하게 연상시키려는 듯 음반의 상표를 붉은 빛깔로 처리하였다.SP음반으로 발매된 이 음반을 들어보면 마치 씩씩하고 격렬한 분위기의 행진곡을 듣는 듯하다. 사월의 깃발이여 잊지 못할 그 날이여/ 하늘이 무너져라 외치던 민주주권/ 그 주권 찾은 날에 그대들은 가셨나니/ 임자 없는 책가방을 가슴에 고이 안고/ 눈물 눈물 눈물 속에 어린 넋을 잠재우리 손인호가 불렀던 ‘남원 땅에 잠들었네’도 사월혁명을 다룬 특별한 노래이다.3월15일 선거 당일에는 마산에서 학생들이 데모를 벌였고, 자유당의 작태를 목격한 시민들도 선거포기선언을 한 민주당 당사 주변에 모여 “협잡선거 물리치자.”라고 외치면서 학생 데모에 합류하였다. 경찰과 자유당 정권은 이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여 많은 사상자와 행방불명자가 속출하였다. 흉흉한 풍문은 마산시민들을 극도로 흥분시켰다.4월11일, 그동안 행방불명이 된 마산상고생 김주열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무참하게 살해된 시체로 바다에서 발견되었다. 전국의 학생과 국민들의 흥분은 극에 달하였다. 가요 ‘남원 땅에 잠들었네’는 이러한 역사적 경과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사월혁명을 다룬 가요가 썩 드문 현실 속에서 이런 작품의 출현은 놀라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가수 손인호의 거의 절규에 가까운 창법과 호소력이 느껴지는 애절한 분위기로 이 노래는 취입되었다. 대개 구체적 사건이나 실명을 다룬 노래들은 그리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거나 유행을 타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노래 또한 앞의 ‘사월의 깃발’과 마찬가지로 가요팬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대중적 유행을 탔건 못 탔건 간에 우리가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당대의 삶을 얼마나 어떻게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진지한 삶을 살아갔던가 여부를 추적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가요는 때로 민중의 갈망이나 당대 정치현실을 은근한 풍자와 암시의 수법으로 담아서 구체적 내용을 반영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손인호가 불렀던 ‘비나리는 호남선’과 박재홍이 불렀던 ‘유정천리’의 경우가 바로 그 표본이 아닌가 한다.‘비나리는 호남선’은 1956년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발매된 작품으로 대중들은 1960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유세 중 세상을 떠났던 해공 신익희 선생의 정치적 불운을 담아서 추모곡으로 노래가사를 바꾸어 불렀다. 가련다 떠나련다 해공 선생 뒤를 따라/ 장면 박사 홀로 두고 조 박사도 떠나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당선 길은 몇 구비냐/ 자유당에 꽃이 피네 민주당에 비가 오네 오늘의 우리 가요들은 이런 역사와 정신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가? ‘4월학생혁명기념탑’ 앞에 서서 나는 돌덩어리에 새겨진 다음 구절을 큰 소리로 읽어본다.‘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 되살아 피어나리라.’ 이동순 시인·영남대 국문학 교수
  • 샌프란시스코서 反中 촛불시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을 저지하려는 대규모 시위가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이어졌다. 8일(이하 현지시간) 새벽 캘리포니아주에 도착한 성화에 발맞춰 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중국의 반인권행위를 규탄하고 티베트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펼쳐졌다. 시위대 1500여명은 정오 무렵부터 티베트 국기와 각종 플래카드를 들고 샌프란시스코 시내 유엔플라자 인근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샌프란시스코 시청으로 이동하면서 중국의 인권 탄압을 비난하고 티베트의 자유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 1500명 “티베트 자유” 연호전국에서 몰려든 시위대는 이날 저녁 ‘티베트인의 자유 성화’를 들고 수십명의 경찰관들이 경비에 나선 중국 영사관까지 행진했으며 날이 어두워지면서 촛불 시위를 이어갔다. 전날인 7일에도 티베트 인권단체 회원 3명이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 올라가 ‘티베트 자유’를 촉구하는 대형 플래카드를 내걸고 시위를 벌이는 등 일찌감치 긴장감이 고조돼 왔다. 이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경찰은 성화가 도착한 캘리포니아 국제공항에 수백명의 경찰관들을 배치해 일반인들의 접근을 완전 차단하는 등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고 AP,CNN 등이 전했다. 시 당국은 하루동안 성화가 안치될 장소를 비공개하는 조치를 취했다. 또 9일 시위대 수천명이 봉송 저지에 나설 것에 대비해 대규모 경비 인력을 투입하고 불상사 발생시 예정 봉송로를 수시로 변경하는 변칙작전까지 세웠다. 폭력사태가 일어날 것을 우려한 한 주자는 봉송을 포기했다고 샌프란시스코 성화봉송 당국은 밝혔다. 성화는 9일 오후 1시부터 태평양 해안을 낀 시내 6마일(9.6㎞) 구간에서 봉송됐다.●자크 로게, 성화봉송 중단론 일축한편 해외 봉송도시마다 과격시위로 성화봉송 중단론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지만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잘못된 소문”이라고 일축했다.8일 한 프랑스 방송에 출연한 그는 “그 문제는 논의하지 않고 있다.”고 조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세계 정상들의 올림픽 보이콧 압력은 계속 커지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날 중국이 달라이 라마와 직접 대화에 나서지 않으면 프랑스는 개막식에 불참하겠다고 재차 압박을 가했다. 스티븐 하퍼 캐나다 연방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 등은 개막식 불참 의사를 이미 표명했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오늘의 눈] 손으로 하늘 가리려는 중국/최종찬 국제부 차장

    [오늘의 눈] 손으로 하늘 가리려는 중국/최종찬 국제부 차장

    지난달 14일 수도 라싸에서 대규모 독립 요구 시위로 시작된 티베트 사태가 9일로 27일째가 됐다. 티베트인들의 정당한 요구를 중국이 다시 무력 진압하면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는 이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동조시위는 중국을 넘어 전세계로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21세기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의 눈치를 보던 국제사회도 비난의 강도를 갈수록 높이고 있다. 티베트가 중국의 영토라는 주장은 힘의 논리에 의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중국이 티베트를 불법적으로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한다.1950년 한국전쟁으로 국제사회가 정신없는 틈을 타서 엄연한 독립국가를 탱크를 앞세워 강제로 합병했다. 그 이후 반세기가 넘게 탄압과 회유 등 수단을 총동원해 자국 영토로 유지해오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모르는 것은 힘으로 누르면 누를수록 티베트인들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열망은 이에 비례해서 커진다는 사실이다. 시한폭탄으로 째깍거리는 그 열망의 중심엔 티베트인들의 정신적인 지주이며 중국에 대한 저항운동의 리더인 스님들이 항상 있었다. 중국은 오는 8월에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에 악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은 이미 흠이 많이 났다. 독일, 체코 등 각국 정상들의 올림픽 개막식 불참 선언이 잇따르고 있는 데다 올림픽 해외성화 봉송도 가는 곳마다 반중국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이 베이징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려면 티베트에 대한 정책을 바꿔야 한다. 품을 떠나겠다고 하는 티베트를 언제까지 강제로 끌어안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중국의 입장은 접는 것이 바람직하다. 티베트 국민들이 진정으로 독립을 원한다면 들어주는 것이 대국의 자세다. 분리독립 찬반투표가 한 방법이다. 중국이 자기 마음을 비워야만 베이징 올림픽이 세계인의 축복속에서 평화의 제전으로 거듭날 수 있다. 최종찬 국제부 차장 siinjc@seoul.co.kr
  • 성화 봉송중 세차례 꺼져

    |파리 이종수특파원|중국의 티베트 탄압에 항의하는 시위대의 강력한 저지에 막혀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도심에서 봉송되던 올림픽 성화가 세 차례 버스에 옮겨지고 20여분 동안 꺼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일간 피가로 등 현지 언론은 이같이 전한 뒤 “낮 12시30분 에펠탑 2층에서 출발한 성화 행렬이 안전상의 이유로 세 차례나 버스로 옮기고 내리는 과정을 반복했고 이 과정에서 20여분 동안 꺼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일간 리베라시옹은 경찰의 발표를 인용,“오후 1시30분께 기술적 문제로 성화가 꺼진 뒤 20분 뒤에 다시 켜졌다.”고 공식 발표했다. 반면 BBC는 이날 “프랑스 정부관리들이 안전 때문에 올림픽 성화를 봉송 도중에 세 차례 끌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AP·AFP도 “수백명의 격렬한 반(反)중국 시위 때문에 경찰들이 성화를 세 차례 껐다.”고 전해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이날 경찰과 시위대의 격렬한 충돌로 성화 행렬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예상시간인 오후 5시를 훨씬 넘겨 목적지인 샤를레티 스타디움에 도착했다.‘올림픽 개막식 보이콧’을 촉구했던 국경없는기자회와 국제인권연맹 등 2000여명이 참가한 시위대 가운데 일부 강경파는 소화기를 갖고 성화를 끄려고 시도하다 경찰의 저지를 받았다. 또 일부 시위대는 수차례 성화 봉송로를 막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오후 4시 현재 4명의 시위대가 경찰에 체포됐다. 앞서 첫 성화주자인 육상선수 출신 스테판 디아가나는 에펠탑 2층에서 성화를 들고 내려오자 시위대의 야유와 축하 환성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중국인들의 축하 공연이 벌어지는 가운데 성화가 출발하자 에펠탑 접근이 봉쇄된 300여명의 시위대는 다섯 개의 수갑 모양을 한 오륜기를 그린 검은 깃발을 흔들며 “티베트에 자유를!”“티베트 승려를 석방하라!”는 구호를 연호했다. 시위에 참가했던 연극배우 스테파니(34)는 “티베트인들을 탄압하는 중국의 올림픽 개최는 보이콧해야 한다.”며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는 프랑스 정부의 입장은 수치”라고 말했다. vielee@seoul.co.kr
  • ‘中 규탄’ 전세계 티베트인 뭉친다

    |베이징 이지운특파원|티베트 독립 시위를 둘러싸고 다시 지구촌이 긴장하고 있다. 전세계적인 시위가 계획돼 있고 덩달아 티베트 및 칭하이(靑海)성 등 중국 내 티베트인 집거 지역들이 술렁이고 있다.●베이징올림픽 성화 해외봉송 차질 우려 티베트 망명정부 및 관련단체들이 참여한 ‘티베트인 연대 위원회’는 오는 10일부터 사흘 동안 중국 정부의 유혈 탄압에 항의하는 집회와 시위를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최키로 했다고 2일 밝혔다. 이에 따라 티베트 등 중국 국내 및 각 지역별로 충돌이 우려된다.1일 시작된 베이징올림픽 성화 해외 봉송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10일은 티베트 시위 유혈사태 발생 한 달째로 이를 계기로 6∼12일 전세계 티베트인들과 지지자들이 참여하는 기도회와 집회를 연다는 것이 티베트 망명정부 측의 계획이다.7일 기도회에는 참석자들의 집단 삭발식도 예정돼 있다. 티베트인 연대 위원회 위원장 펜파 체링은 “평화시위와 요구사항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계획됐다.”며 “인도 뉴델리에서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가 열리는 17일 평화적 시위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티베트 시위는 위구르족이 모여 사는 신장(新疆)자치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망명 위구르인 조직인 ‘세계 위구르대표대회’ 대변인 딜사트 라시트는 최근 신장·위구르 자치구 허톈(和田)시에서 1000여명의 위구르족들이 항의 시위를 벌였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의 진압으로 모두 500여명이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중국으로서는 이슬람을 신봉하는 위구르족들의 움직임에 더 긴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올림픽 개최전이나 개최 기간에 시위·테러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 준 군사조직인 66만명 무장경찰에 동원령을 내렸다고 인민무경보(人民武警報)가 2일 보도했다. 사태 악화가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프라납 무케르지 인도 외교장관은 유례 없이 달라이 라마에게 “달라이 라마는 존경받는 손님이며 손님으로 인도에 머무는 동안 인도와 중국간 관계를 해치는 어떤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까지 내보냈다.●美의회, 부시 올림픽 참석금지 법안 추진 그럼에도 국제사회의 압력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미국 공화당 하원 정책위의장인 타데우스 매코터 의원은 중국의 티베트 시위 무력진압 등을 이유로 조지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관리들의 베이징 올림픽 참석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1일 정식으로 발의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베이징 올림픽 불참 의사를 밝힌 상태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불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 등 왕족들도 오는 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산케이신문이 2일 보도했다. 중국은 지난해 4월 방일했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통해, 같은 해 1월엔 왕세자 부부를 초청했었다.jj@seoul.co.kr
  • 친일청산 기초 다진 재야 학자

    임종국 선생은 친일파에 대한 문제제기가 매우 힘들었던 1960년대부터 친일문제에 몰두, 현 친일청산의 기초를 놓은 재야 학자다. 그의 작업은 ‘혼자 하는 반민특위’로 불렸다. 문학에 뜻을 둬 59년 시인으로 정식 등단했지만,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방식에 충격을 받고 친일문제 연구로 방향을 바꿨다.66년 출간한 ‘친일문학론’은 문단 거목들의 친일행위를 낱낱이 고발해 엄청난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70년대에 들어서면서 연구 폭을 한층 넓혀 정치·경제·사회·교육·종교·군사·예술 등 사회 전반에 드리운 친일행적을 파헤쳤다. 그의 노력은 ‘일제 침략과 친일파’‘밤의 일제 침략사’‘일제 하의 사상탄압’‘일본군의 조선침략사’ 등 14권의 저서와 수백편의 논문으로 결실을 맺었다. 천도교 청우당 대표로 국방헌금을 모집했던 부친 임문호의 친일사실을 스스로 공개한 일화로도 유명하다.2005년 10월 보관문화훈장을 추서받았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열린세상] 중국 소수민족 정책의 덫/강효백 경희대 중국법 교수

    [열린세상] 중국 소수민족 정책의 덫/강효백 경희대 중국법 교수

    “그들은 우리를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것이 아니라 어르고 치켜세워서 죽이고 있어요.” 작년 여름방학 때 베이징의 중앙민족대학에서 만난 한 장족(藏族:티베트족) 청년이 내게 건넨 귀엣말이다. 최근 티베트의 라싸에서 수십명의 시위군중이 사망하는 유혈 폭력사태가 발생하였다는데 그의 안위가 걱정된다. 중국 소수민족 정책의 기조는 채찍보다 당근이다. 이번 티베트 사태처럼 비상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단 어르고 달래는 회유책을 펼친다. 중국 현행헌법 제4조를 보더라도 그렇다.‘중화인민공화국의 각 민족 인민은 모두 평등하다. 국가는 소수민족의 합법적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고, 각 민족의 평등·단결·상호 협조관계를 옹호하며 이를 발전시킨다. 국가는 소수민족의 특성과 필요에 근거하여, 각 소수민족지구의 경제와 문화발전에 최선을 다한다. 각 소수민족 집거의 지방은 구역자치를 실시하고, 자치기관을 설치하며, 자치권을 행사한다. 각 민족자치 지방은 모두 중국과 분리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각 민족 모두는 자신의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고 발전시킬 자유가 있으며, 모두 자기의 풍속과 관습을 유지하고 개혁할 자유를 가진다.’ 실제로도 한족(漢族)에 한해서만 1가구 1자녀만 낳게 하였고(저출산 문제로 최근 전면폐지 검토) 소수민족은 두자녀 이상을 낳을 수 있게 하였다. 우리의 국회의원 격인 전인대 대표 의석 비율을 소수민족에게 2배가량 많이 배정해 준다. 자치정부의 제1인자는 한족이 맡지만, 제2인자는 현지민족에게 맡긴다. 소수민족 집거지역의 자체 문자를 중시한다. 연변 조선족자치주를 가보더라도 각종 간판에는 한글이 한자보다 위에 위치함을 알 수 있다. 소수민족에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명문대학 입학에 정원외 입학 등 특혜를 부여한다. 그 대신 현지 소수민족의 엘리트들이 빠져나간 빈 자리에 세계 최다를 자랑하는 한족을 풀어놓는다. 어떤 외국인은 이토록 관대한(?) 중국의 소수민족 우대정책에 감격스러워하지만 오히려 나는 이것이 가장 무섭게 느껴진다. 과거 일제의 이민족 탄압정책은 과격하였지만 오래가지 못하였다. 그에 비해 중국의 그것은 민족 주체성 자체를 마비시켜 버리는, 훨씬 교활하고 치밀한 민족말살 정책이라는 생각이다. 12억의 한족과 1억의 55개 소수민족을 합한 13억 인구, 한반도 면적의 40배를 넘는 영토를 하나로 묶는 중국, 막강한 중국의 힘은 중화사상이라는 자부심에 근거한 포용성의 제도화에서 나온다. 그러나 중화사상도 다른 각도로 살펴보면, 자신만이 전세계의 중심이라는 과대망상적 사고방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리고 오랜 의문 하나는 ‘과연 12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단일민족이 가능한가?’이다. 골상 자체가 한족과 다른데도 불구하고 중국 최북단 헤이룽장성에 사는 기골이 장대한 천(陳)선생도, 최남단 윈난성에 사는 영락없는 월남사람같이 생긴 롼(阮)여사도 모두 “나는 한족이야.”라고 자족하고 있는데…. 중국 건국 초기 최고지도자들은 민족의 정체성이 명확한 8%만 55개 소수민족으로 구분해 놓고 나머지 92%를 모조리 한족으로 한데 뭉뚱그려 놓았다. 따라서 실제로는 소수민족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주류민족인 한족, 즉 메인스트림에 속한다는 착각의 덫에 걸려 살게끔 한다. 지금은 우리가 민족독립을 지상목표로 삼고 외세와 투쟁하던 20세기 전반이 아니다.21세기 지금 우리의 주요 국가과제는 국가통합이다. 이번 티베트 사태에서 우리는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며 티베트의 평화와 자유를 염원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단일민족이면서도 양분된 국토에다가 다시 지역·계층간, 동서남북으로, 내편 네편 갈라진 우리의 처지를 자성하며, 거대 중국이 소수민족들에게 도대체 어떤 마취제를 주입하였기에 통합을 유지하면서 발전하고 있는지, 그 마취제의 성분도 함께 연구하여야 할 때가 아닐까. 강효백 경희대 중국법 교수
  • “우리도 테러와 전쟁이다”

    티베트(시짱·西藏) 분리주의 세력들이 테러조직을 만들어 자살 테러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며 중국이 비난하고 나섰다. 중국 공안부 우허핑(武和平) 대변인은 1일 베이징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티베트 분열주의자들의 다음 계획이 자살테러를 감행할 조직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이들은 어떤 유혈 사태나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우 대변인은 지난달 15일 이후 공안당국이 조사를 벌인 결과 시위 주동자들이 중국 밖의 달라이 라마 집단 간부와 긴밀한 연락을 취했던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것이 달라이 라마가 이번 시위를 선동하고 배후조종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가 이끌고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고 AP통신이 이날 전했다. 삼동 린포체 티베트 망명정부 총리는 “우리는 전적으로 비폭력노선을 추구하고 있다.”면서 중국측의 주장을 부인했다. 린포체 총리는 “중국이 티베트인인 것처럼 가장해 이 같은 공격을 벌임으로써 티베트인들의 이미지를 훼손하려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편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1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에게 중국의 티베트 탄압에 맞서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보이콧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펠로시 의장은 미국이 올림픽 경기 자체를 보이콧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스탈린 치하때 정치 희생 한인 인명록 8년만에 완간

    옛소련 시절 스탈린 치하에서 처형된 한인 인명록 전 10권이 완간됐다. 항일운동가의 딸 스베틀라나 구(70)가 지난 1995년 자료 수집에 나선 지 13년 만이자 2000년 1권이 나온 지 8년 만이다.‘소련에서 정치탄압 희생자들-고려인(1934∼1938)’이란 제목의 이 러시아판 책에는 스탈린 압제시절 간첩 혐의로 체포돼 처형된 총 6500여명의 이름이 처형 일자, 장소 등과 함께 실렸다.1937년 연해주 지역 고려인 17만 1000여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될 무렵 희생된 인사들은 물론 1924년부터 1953년까지 정치적으로 희생된 한인들이 망라돼 있다. 관련 사진들과 일부 수인들이 처형되기 전 가족들에게 남긴 편지 등도 수록됐다. 스베틀라나는 러시아 민간단체와 러시아 역사도서관에서 자료 대조작업을 한 뒤 컴퓨터에 일일이 입력하는 과정을 거쳐 이 책을 완성했다.모스크바 연합뉴스
  • [강유정의 영화 in] ‘고야의 유령’

    [강유정의 영화 in] ‘고야의 유령’

    신의 권능이 인간에게 주어질 때, 그것은 권력이자 도착이 된다.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간의 권력은 신의 잔혹함만을 강조한다. 자비도, 사려도 없이 금지로 이루어진 율법들은 인간의 삶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곤 한다.‘고야의 유령’(Goya‘s Ghosts·새달 3일 개봉)에 등장하는 신부처럼 말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사라질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흉내낸다. 때론 신부로, 때론 정치가로 말이다. ‘고야의 유령’은 ‘카프리초스 연작’ ‘거인’과 같은 작품을 남긴 화가 고야의 시선을 따라간다. 제목은 고야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이 영화는 고야가 살았던 스페인의 격동기를 한 여자와 신부의 삶을 통해 입체화한다. 고야는 척박한 시대를 온 몸으로 버티며 살아야 했던 여인과 시대의 급물살을 아슬아슬하게 이용했던 한 남자를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시선은 고야의 것이지만 엄밀히 말해 감독 밀로스 포먼의 것에 가깝다. 천재 모차르트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던 살리에르가 누구보다도 뛰어난 모차르트 평론가였듯이 밀로스 포먼은 뛰어난 고야 해석가로 자리잡는다. 이러한 태도는 고야가 스페인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배어 있다. 스페인 하면, 가우디 성당과 벨라스케즈, 피카소 등의 이름으로 환기되지만 ‘고야의 유령’에서는 역사의 수난지로 그려진다. 영화는 신의 이름으로 처녀를 종교재판에 회부하고, 도움을 핑계로 겁탈하는 신부 로렌조를 통해 스페인 왕조 말기의 부패한 가톨릭 권력을 섬뜩하게 보여준다. 사랑스러운 막내딸을 종교심판에 보낸 아버지는 당시의 권력자 로렌조 신부를 불러 거액의 성당 보수비용을 조건으로 청탁한다. 탐욕스러운 신부는 돈은 받되 신의 심판은 있을 것이라며 외면한다. 로렌조 신부는 “신앙심만 있다면 그 어떤 ‘심문’에도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 죄가 없다면 풀려날 것이라고 말이다. 그가 말하는 심문은 질문이지만 사실상 고문이다. 세월이 훌쩍 지나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종교재판을 주관하던 신부들이 형장에 끌려나온다. 부패한 권력집단이라는 이름으로 프랑스군은 스페인 성당에 진입해 재산을 갈취하고 스페인 여자들을 강간한다. 종교의 이름을 한 구정권도 잔혹하지만 외국어를 쓰는 군인들의 행동은 잔인무도하기 그지없다. 가톨릭, 프랑스, 영국으로 이어지는 스페인 수난사는 ‘아네스’라는 희생양과 ‘로렌조’라는 기회주의자를 통해 그려진다. 가톨릭이 최고의 권력이던 시절 신부였던 로렌조는 프랑스군과 함께 그가 비난했던 자유주의 사상을 탑재하고는 관리로 돌아온다. 그는 앞장서서 스페인을 탄압하고 문화재를 빼돌리며 사리사욕을 채운다. 로렌조의 아이를 낳은 ‘아네스’에 대한 핍박은 곧 역사의 거친 흐름에 유린당한 스페인을 상징한다. 아네스는 곧 순결한 스페인의 영혼인 셈이다. 밀로스 포먼의 ‘고야의 유령’은 전작에 비해 거칠지만 여전히 힘이 넘친다. 고야의 시선은 밀로스 포먼의 해석 덕분에 예술적 가치를 넘어선 증언으로 자리잡는다. 로렌조 신부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 역시 일품이다. 기억은 언제나 상처를 강박적으로 되풀이한다. 치욕스러운 과거의 상처를 통해서야, 어쩌면 ‘진실’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영화평론가
  • 혁명의 시간/알렉산더 라비노비치 지음

    한국 근현대사와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일제강점기 러시아에까지 흘러 들어간 조선인들은 일본의 시베리아 침공 소식을 듣자마자 내전 초기부터 볼셰비키 편에서 반혁명에 맞서 싸웠다. 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은 볼셰비키 당원이었고, 레닌에게 받은 권총을 평생 소중히 간직했다.1980년대 젊은이들은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는 이론적 틀로서 러시아혁명을 숨어서 공부했다. 인연의 깊이에 비해 러시아혁명은 우리에게 오랜 기간 금기어였다. 특히 볼셰비키 ‘10월 혁명’에 초점을 맞춘 국내 연구서는 번역서조차 흔치 않았다. 근래에 번역된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과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가 명저로 꼽히나, 전자는 혁명의 현장을 기록한 저널리스트의 르포르타주 성격이, 후자는 혁명 주체가 쓴 혁명옹호 성격이 강한 글로 엄정한 학술서와는 거리가 있다. ‘혁명의 시간’(알렉산더 라비노비치 지음, 류한수 옮김, 교양인 펴냄)은 박진감 넘치는 르포 형식을 띠면서도 객관적 사료에 기반한 학술서란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만하다. 미국 인디애나대 역사학과 명예교수인 알렉산더 라비노비치가 냉전의 절정기인 1976년에 쓴 이 책은 ‘10월 혁명’을 ‘볼셰비키로 대표되는 극소수 무자비한 혁명가들의 권력 탈취 쿠데타’로 규정해온 서구 역사학계의 통설을 뒤집는 대담한 주장을 담고 있다. 저자는 혁명의 성공요인을 대중의 요구를 민감하게 포착한 볼셰비키의 현실 인식과 토론과 논쟁이 거침없이 이뤄진 볼셰비키 내부의 민주적 논의구조에서 찾는다. 이는 볼셰비키 집권요인을 당의 권위적 위계에서 찾는 서구 학계와 레닌의 탁월한 지도력을 강조하는 구 소련의 관점을 모두 뒤집는 해석이다. 볼셰비키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계 러시아인 집안 출신인 저자는 혁명 당시의 신문기사와 관련 문서, 회고록 등 1차 사료들을 광범위하게 활용해 ‘10월 혁명’의 성공 요인을 재규명했다. 그의 학설은 이후 서구 학계가 러시아 혁명을 재평가하게 만든 계기가 됐고,70년대 보수적 역사해석에 반발해 등장한 수정주의적 관점을 형성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구 소련 비밀문서 해제 후 수정주의가 도전받고 있는 지금도 저자는 “새로운 자료가 내 분석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지만 결론까지 바꾸지는 못했다.”고 주장한다.2만 9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20&30]경찰 체포전담반 추진… 다시 떠오르는 ‘백골단의 추억’

    [20&30]경찰 체포전담반 추진… 다시 떠오르는 ‘백골단의 추억’

    봄 기운이 완연한 요즘,30대 직장인들의 술자리에는 ‘벚꽃 구경’과 함께 ‘백골단’이 단골 메뉴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경찰이 불법 시위 엄단 조치의 하나로 발표한 ‘체포 전담반’이 90년대 중반까지 시위 현장에서 흰색 헬멧을 쓰고 대학생들을 잡아들이던 ‘백골단’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봄과 함께 시작되곤 했던 대학가 시위와 ‘백골단’을 둘러싼 30대들의 추억을 들어봤다. 90학번인 조모(37)씨는 봄만 되면 등줄기가 욱신거린다. 실제 상처가 남아 있다기보단 그저 화인처럼 남아 있는 곤봉 폭행의 상흔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1학년이던 90년은 수업에 들어갈 시간조차 없었다. 매일 현장 노동자들이 파업 진압에 픽픽 쓰러지고, 농민들은 시장 개방에 비쩍 말라갔다. 책을 든다는 게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시절 조씨에게 ‘백골단(白骨團)’은 공포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1991년 봄.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학과 동료를 위해 법원 마당에서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시위대 앞에 전·의경들이 서 있었고, 경찰 기동대장은 해산을 요구했다.“평화시위를 해산할 이유가 없다.”고 호소한 지 10여분 뒤. 청재킷과 흰 운동화, 몽둥이를 든 백골단이 전·의경 머리 위로 날아오르듯 확 튀어나오더니 시위대를 마구 팼다.“몸집이 참 큰 사람들이었죠. 그저 공포였습니다. 철거예정지에 가면 가끔 조폭들과 연계해 나타나기도 했죠. 대학생들이 왜 정치적인 사건에 개입하냐고 말들 많지만, 배우는 학생들이 주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게 21세기가 원하는 협동심과 리더십을 공유한 사람이 되는 길이죠.” 직장인 이모(36)씨도 봄만 되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벚꽃놀이 갈 생각에 설레는 게 아니라 대학 새내기 시절인 91년 봄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해 4월 초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학교 앞 집회에서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다. “매일 집회가 계속 됐죠. 쩌렁쩌렁 울리는 스피커 굉음과 강의실까지 스며드는 최루가스가 절 그냥 놔두지 않았어요. 집회가 시작되면 친구들이 하나둘씩 강의실을 빠져나갔습니다. 그 힘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강씨 사망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성균관대생 김귀정씨도 을지로 골목에서 백골단의 ‘토끼몰이식’ 진압에 숨졌다. 이후 대학생들의 분신이 이어졌고, 매일 대규모 집회가 서울시청 주변에서 열렸다.“서울시청 광장을 놓고 백골단·전경과 매일 싸웠죠. 지금 생각하면 다른 장소도 많은데 왜 꼭 서울시청 광장만 고집했는지 모르겠어요.” 이씨는 91년 봄부터 초여름까지 청바지·청재킷에 하얀 헬멧을 쓴 백골단과 명동, 시청, 종로, 을지로 거리에서 숨바꼭질을 계속했다.“백골단은 전·의경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 ‘전투력’을 보유했죠. 한마디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아다니는 경찰이 바로 백골단이었습니다. 두꺼운 진압복을 입은 전·의경은 그저 특정 장소를 지키는 일에 주력했지만, 백골단은 검거가 목적이었죠. 백골단에 잡히지 않으려고 얼마나 뛰었던지….” 최근 경찰이 체포 전담반을 꾸린다고 하자 이씨는 가슴이 벌렁거린다.“지금이 대체 어떤 때입니까. 진짜 과거의 백골단을 다시 만든다는 얘기는 아니겠죠?” ●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포의 대상´ 통일운동가 황선(34·여)씨도 씁쓸한 추억담을 털어놨다.92학번인 황씨는 같이 집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백골단에 의해 숨지거나 다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참 많이 닦아냈다고 돌아본다.“87년 민주화 이후에 집회시위는 어느 정도 안정적이고 평화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백골단의 모습은 변한 게 없었죠. 당연히 집회 참가자들은 더욱 분개했고 갈등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민운동가 안진걸(37)씨도 백골단에 대한 ‘추억’ 아닌 ‘추억’을 생각하면 아직도 한숨이 나온다. 안씨는 백골단이 단순히 시위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포의 존재’였다고 말한다.“무작정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달려드는 백골단이 누가 시위대고 누가 시민인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냥 몽둥이를 휘두르는 거죠. 이유도 모른 채 다치는 시민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디 한군데 하소연할 때도 없었습니다.” 96학번인 대학생 황모(31)씨는 백골단의 끝물을 맛봤다.97년 노동절 집회 때 한양대 근처에서 당한 토끼몰이식 폭행을 아직 잊지 못한다. 당시 집회는 80년대와는 달리 선배의 강압 없이, 자기 생각대로 나가든 말든 결정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경찰은 96년 있었던 한총련 집회 뒤 또다시 강경 진압을 남발했다. 집회에 갔다가 여자 후배 한 명과 함께 백골단에 쫓겼고 여자 후배를 멀리 피신시킨 뒤 자신만 집중 폭행을 당했다.“백골단은 시위대를 공격하기 위해서 생겼던 조직입니다. 해외에도 시위대를 곤봉으로 때리는 경찰들이 있지만 이들은 최소한의 방어선을 유지하다 시위대가 흥분해 주변 시민을 위협하면 그제서야 곤봉을 듭니다. 무조건적인 체포와 폭력진압을 위주로 하는 백골단과는 성격이 다르죠.” 중학교 교사가 된 96학번 이모(31·여)씨는 같은 대학, 같은 학번 노수석씨를 기억한다.96년 초 새내기였던 이씨는 선배들의 권유로 등록금 투쟁에 나섰다. 이씨는 “당시에도 등록금은 치솟고 있었고, 신입생 때는 무엇이든 참여하고픈 생각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남대문에 다다르자 ‘등록금 투쟁’ 구호는 ‘정권 타도’로 바뀌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느낄 무렵 최루탄이 터졌다. 이씨는 남자 동기의 손을 잡고 서울역 방향으로 무조건 뛰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백골단이다. 남대문엔 골목이 많다. 큰길로 뛰어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비규환이었다.“대부분 서울역으로 뛰었죠. 하지만 나중에 들으니 노수석씨를 비롯한 몇몇이 골목으로 뛰었다는 거예요. 골목은 목격자도 없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르는데….”결국 노씨는 백골단에 폭행당해 숨진 채 발견됐다. 학원강사를 하고 있는 유모(32)씨는 백골단하면 촌스러운 청재킷이 떠오른다.96년 여름, 신분증 검사도 떠오른단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측은했다고 말했다.“연세대에서 8월 사태가 있었죠. 그리고 교문을 들어갈 때면 신분증 검사를 해야 했어요. 당시에는 정말 무서웠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위에서 시킨다고 폭력까지 휘둘렀던 백골단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백골단으로 불리는게 너무 싫었어요” 90년대 초반 광주에서 ‘백골단’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던 전남지방청 소속 한모(44) 경사에게도 그 시절의 기억은 아픔으로 남아 있다.“누가 하고 싶어서 했겠습니까. 당시엔 초임 경찰관 가운데 덩치가 좋고 날렵한 사람들이 대거 검거전담반으로 차출됐죠. 백골단으로 불리는 게 너무 싫었는데…. 진압복도 입지 않은 채 대학생들이 휘두르는 쇠파이를 막느라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습니다. 더이상 그런 아픔은 없어야 겠죠.” 회사원 이모(32)씨는 98년 말부터 2001년 초까지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의경으로 복무했다. 그가 기억하는 백골단은 시위를 진압하는 ‘최후의 수단’이다.“의경 입장에서는 하얀 헬멧과 청재킷만 봐도 힘이 났죠. 각목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대학생들 앞에서 ‘이젠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백골단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이씨에게 대학 시절 백골단은 무섭고 혐오스러운 존재였지만, 전·의경 복무 시절 시위 현장에서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갑자기 시위와 관련된 모든 이론이 싫어졌어요. 어떤 생각도 뛰어넘은 평화주의자가 되고 싶었죠.” 사건팀 nomad@seoul.co.kr ■ 백골단을 아시나요? “백골단이요? 알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백골부대를 모르는 사람 있나요.” 백골단이 한창 활동하던 80년대와 90년대 초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코흘리개 시절을 보낸 아이들은 벌써 어엿한 대학생과 직장인이 됐다. 그들에게 백골단은 그저 생소한 이름이었다. 갓 대학을 졸업한 회사원 김모(25·여)씨는 백골단을 백골부대의 다른 이름으로 알았다.“백골단, 유명한 부대잖아요. 여자인 저도 아는 걸요. 해골 부대 마크 있고…. 철원에 있잖아요. 백마부대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부대 중 하나 아닌가요.” 백골단은 80∼90년대 활동했던 사복 시위 진압대라고 알려주자 김씨는 몹시 당황했다.“그런 진압대가 있었나요. 처음 들어봅니다. 아무리 그 당시 유치원생이었지만 우리 근대사의 일부분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너무 부끄럽네요. 인터넷에서 좀 찾아봐야겠어요.” 새내기 대학생 정모(19)씨도 백골단을 부대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글쎄요. 왠지 군대쪽에 관련된 거 같긴 한데…. 학교 다닐 때 백골단에 대해 배운 적이 없고, 아직 대학 입학한 지 얼마 안돼 잘 모르겠네요.” 정씨는 기자로부터 백골단의 의미를 알게 되자 되레 의아해했다.“정말 그런게 있었나요. 진짜 조선시대 이야기 같습니다. 당당하게 경찰복을 입고 진압하지 왜 치사하게 사복을 입고 진압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직장인 최모(26)씨도 백골단은 금시초문이었다. 최씨는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모습을 담았던 영화 ‘화려한휴가’를 본 뒤 관련 책 등을 읽어봤지만 백골단은 난생 처음 듣는 단어였다. “사복경찰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봤는데 그들이 백골단이란 이름으로 움직인 조직원들인지는 몰랐습니다. 고작 20여년밖에 안 된 일인데 정부가 교묘히 국민을 탄압했다는 사실에 그저 화가 나네요.”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독립시위 근본 원인

    “상권은 한족에게 빼앗기고, 고유언어는 동화정책으로 시들어가고, 종교적으로도 탄압받고….” 티베트(시짱·西藏)인들이 중국에 강제로 합병된 지 57년이 지난 지금의 티베트인들 모습이다. 이런 상황은 20년 만에 최대 규모의 분리 독립 시위가 일어난 배경이기도 하다. 티베트에서 소수민족이자 외지인인 한족들은 근년의 개발 붐을 타고 몰려들었다. 한족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개발 이익을 독차지하면서 빈부격차는 더 벌어졌다. 중국의 강압적인 동화정책으로 티베트어 사용 인구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티베트어 사용 인구가 5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는 것도 중국어로의 동화현상을 보여준다. 경제권력도 한족이 쥐고 있다 보니 경제활동 역시 중국어를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고 도시로 진출한 젊은 티베트인들이 배우자를 찾지 못해 한족과 결혼하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중국의 티베트 불교 억압정책도 독립 열망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휴화산’으로 만들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티베트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인정하지 않고 티베트 불교와 승려들을 탄압해왔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中, 티베트 사태 강온 양면전략?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서울 최종찬 기자|중국 정부가 달라이 라마 집단과 ‘생사를 건 투쟁’을 선언하면서 티베트(시짱) 사태의 긴장감이 증폭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달라이 라마와 대화 의지도 밝혀 극적인 사태 해결이 가능할지 주목된다. 장칭리 중국 티베트자치구 당서기는 19일 “우리는 현재 달라이 라마 집단과 피비린내 나는 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적들과 생사를 건 투쟁 중”이라고 밝혔다. 조만간 중국 당국이 제2호 포고령을 내릴 것이라는 홍콩 문회보(文匯報) 의 보도도 나왔다. 이에 따라 지난 10일 대규모 사망자 발생 이후 한동안 조용했던 티베트에 다시 유혈사태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양안 긴장도 높아졌다. 중국-타이완 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미국 항공모함 키티호크호가 동중국해에 대기 중이라고 홍콩 명보(明報)가 19일 보도했다. 오는 22일 열리는 타이완 총통선거의 최대 현안으로 티베트 사태가 급부상한데 따른 조치다. 한편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이날 달라이 라마와의 대화 의지도 표명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이날 하원 연설에서 “오전에 원자바오 총리와 통화했다.”면서 “원총리는 티베트의 완전 독립을 지지하지 않지만 달라이 라마와 대화에 돌입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달라이 라마 “시위 배후설 공개 조사하라” 시짱자치구 정부는 “이날까지 유혈 폭력시위에 참가했던 시위대 105명이 경찰에 투항했다.”고 밝혔다. 자치구 정부 대변인은 최후 투항 통첩 시한이 마감됨에 따라 집집마다 가택수색을 통해 혐의자를 체포·구금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19일 중국 정부가 제기한 자신의 티베트 시위 배후설에 대한 공개 조사를 제안했다. 그는 이날 성명을 통해 “중국의 주장이 사실인지를 믿을 만한 국제기구에 맡겨 조사할 것을 제안한다.”며 “물론 조사 주체에 중국 대표도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티베트 망명정부는 수도 라싸(拉薩)에서 무차별 검거 선풍 속에 중국 정부가 시위대의 뿌리를 뽑기 위해 티베트 독립 운동가로 의심되는 인사는 물론 옛 정치범과 그 가족까지 표적 검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완벽한 진압’을 위해 장갑차 등으로 중무장한 군인 및 경찰을 동원해 가택수색을 지속하고 있으며 ‘싹쓸이’식으로 잡아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달라이 라마의 비서인 톈진 타클라는 라싸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80명 이외에, 최근 간쑤성 등에서도 19명이 사망해 시위 사망자는 100명에 육박한다고 밝혔다. 망명 정부는 또한 “학살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망명정부는 온몸에 총상을 입은 티베트 현지의 시체 사진들을 공개하기도 했다. ●망명 정부 “학살증거 있다” 보도 통제가 강화되면서 제임스 글래스먼 미국방송위원회(BBG) 위원장은 “티베트 사태를 제대로 알리기 위한 라디오와 TV 방송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임스 위원장은 “티베트에서 중국 당국의 폭력적 탄압은 방송을 강화하게 만들고 있다.”면서 “자유아시아방송(FRA)과 미국의소리(VOA)가 현재 극초단파를 이용해 하루 8시간과 4시간씩 티베트에 방송을 내보내고 있으나, 앞으로는 방송 시간을 하루 각각 2시간씩 연장하겠다.”고 말했다. VOA는 또 ‘아시아샛3’ 위성을 통해 티베트어로 방송하는 주말 TV 프로그램을 기존 1시간에서 2시간으로 늘릴 계획이다. 한편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19일 티베트 사태에 대해 처음으로 유감을 표시했다. 교황은 “폭력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면서 중국과 티베트 양측에 대화와 관용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 jj@seoul.co.kr
  • “베이징 개회식이라도 보이콧 하자”

    |파리 이종수특파원·서울 임병선기자|중국의 티베트 유혈진압에 항의해 베이징올림픽을 전면 보이콧해야 한다는 주장이 호응을 얻지 못하는 가운데 개회식에 초청된 각국 귀빈들이라도 참석을 거부해 중국에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무장관은 18일 국경없는기자회(RSF)가 제안한 개회식 보이콧이 “흥미롭다.”며 19일 유럽연합(EU)에 이를 검토해 보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쿠슈네르 장관은 “다음주 EU외무장관 회담에서 이 문제를 다룰 수 있을 것”이라며 “개회식 참석 거부가 올림픽을 전면 보이콧하는 것보다 덜 부정적”이라고 말했다.자크 랑 전 문화부 장관도 라디오 토론프로그램에서 “개회식 불참에 동의한다.”고 거들었다. 한스 게르트 푀터링 유럽의회 의장도 독일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탄압이 계속된다면 올림픽 개회식 참관을 계획한 정치 지도자들은 베이징행이 책임있는 행동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중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래 전부터 티베트의 영적인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지지해온 찰스 영국 왕세자는 이미 중국의 올림픽 행사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티베트 돕기에 앞장서온 미국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도 목소리를 보태고 있다. 선수들도 나서고 있다. 남자 접영 50m 세계챔피언인 롤랜드 쇼먼(남아공)은 17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나서서 티베트의 인권탄압을 거론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올림픽 금메달을 세 차례나 따낸 네덜란드의 수영영웅 피터 반 덴 호헨반트도 IOC가 선수들을 대신해 중국의 인권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왕광야 유엔주재 중국 대사는 큐슈네르 장관의 발언이 다수 의견은 아니라고 일축한 뒤 “중국 정부는 법과 질서를 복원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EU 차원에서 한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IOC 역시 이 문제에 결단을 내리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국제 티베트지지 네트워크는 이날 IOC에 서한을 보내 유혈사태가 발생한 티베트, 쓰촨(四川), 칭하이(靑海), 간쑤(甘肅)지역을 성화 봉송 루트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전날 스위스 로잔의 IOC본부 앞에선 400명의 시위대가 티베트 진압중단을 외쳤다고 AP통신이 전했다.bsnim@seoul.co.kr
  • “中 정치범 작년 742명”

    중국에서 국가체제를 해쳤다는 이유로 2007년 한 해 동안 구속된 정치범 숫자가 8년 만에 가장 많았다. 세계적 인권단체 ‘두이화 재단(Dui Hua Foundation·中美對話基金會)’은 17일(현지시간) 배포한 보고서를 통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는 명목으로 중국 내에서 구속된 사람은 2006년 561명에서 지난해 742명으로 늘어 1999년 이래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중국 사법제도에서 국가안보 범죄의 범주에는 체제 전복, 간첩 행위, 티베트 독립추진 등과 같은 ‘분리주의’ 및 이를 사주한 경우를 포함하며, 관련 법들은 불만을 진압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올해 정치범들이 급작스럽게 는 것도 올 8월 치러지는 베이징 올림픽 등 중대사를 앞두고 반체제 인사들을 미리 단속하겠다는 중국측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두이화 재단의 연구ㆍ프로그램 책임자 조슈아 로젠츠바이크는 “대부분의 구속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루어진다.”면서 “꾸준한 추적에도 불구하고 구속자 가운데 2∼3%의 신원만 파악된다.”고 말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두이화 재단은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각국 인사들에 관련된 일들을 주로 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저명한 인권운동가 존 캄(57) 이사장이 주도하고 있으며, 중·미 대화를 통해 중국 정치범들을 석방하는 데 크게 기여해왔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정신적 지주서 ‘독립 아이콘’으로

    지난 10일부터 시작된 티베트의 독립시위에서도 승려들이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미얀마 민주화 시위에서 승려들이 민주화의 상징으로 부상했듯, 티베트에서도 독립요구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 ‘티베트 봉기’ 49주년을 맞아 시작된 독립시위 중심에는 붉은 가사를 입은 승려들이 서 있었다.14일 라싸에서 발생한 대규모 시위 현장에서도 승려들이 있었다. 승려들에게서 시위가 촉발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수 도 있다. 16일 라싸에서 약 1000㎞ 떨어진 쓰촨(四川)성 아바의 티베트인 밀집지역에서 1000여명이 시위를 벌일 때에도 승려들이 함께했다. 중국이 라싸 시내의 조캉, 세라, 드레풍사원에 군과 경찰을 배치해 3중으로 에워싸고 승려들을 외부와 차단했을 때도 승려들은 이를 뚫고 시위를 이끌었다. 승려들은 불교국가인 티베트에서 일반 국민들의 정신적인 지주의 역할을 해 왔다. 그 정점에는 달라이 라마가 있다. 중국이 1951년 티베트를 강제 병합한 뒤 크고 작은 독립 시위에 앞장을 서왔다.59년 무장독립 항쟁이나 84,87년,89년의 독립 시위에서도 승려들은 목숨을 걸고 시위대를 이끌었다. 중국은 그동안 티베트 불교를 탄압해 왔다. 불교사원 6000여곳을 파괴했으며 승려들도 60만명에서 4만명으로 줄였다. 이런 탄압정책은 티베트 승려들을 또다시 거리로 나서게 했고 사원들을 독립운동의 산실로 만들었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경제 살린 세계의 지도자] (7) 리콴유 싱가포르 前총리

    [경제 살린 세계의 지도자] (7) 리콴유 싱가포르 前총리

    싱가포르는 ‘원래 존재할 수 없는 나라’였다. 그런 나라를 아시아의 용으로 키운 이는 리콴유(李光耀·85) 전 총리다.1959년부터 1990년까지 31년간 싱가포르를 이끌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그를 가리켜 “수에즈 운하 동쪽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고 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시대가 인물을 만드는지, 인물이 시대를 만드는지의 오랜 의문에 후자라는 해답을 준 이”라고 극찬했다. 광둥 하카(중국대륙을 떠나 다른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주민)에서 ‘건국의 아버지’가 된 리 전 총리. 그는 지난해 8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싱가포르는 원래 존재할 수 없는 나라였다. 그래서 살아남는 데 필요하다면 무조건 오케이였다.” ‘리콴유 개혁’의 핵심은 다름 아닌 ‘국가 생존’이었던 것이다. ●국가생존 전략 ‘12345 비전´ 서른여섯에 그가 총리가 된 1959년, 싱가포르자치령의 1인당 국민소득은 400달러(40여만원)에 불과했다. 실업률은 13%를 넘었다.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등 여러 인종이 뒤섞여 툭하면 폭동과 파업이었다. 그나마 자원이 있는 말레이시아에 기대 살아보려고 1963년 말레이시아연방에 가입했지만 이내 인종 갈등으로 쫓겨났다.‘원치 않는 독립’이었다. 1965년 싱가포르공화국을 세운 변호사 출신의 젊은 엘리트 총리는 ‘12345비전’을 내걸었다.1명의 부인,2명의 자녀,3개의 침실,4바퀴 달린 승용차,500달러 주당 소득이라는 야심찬 청사진이었다. 당시 싱가포르는 아내를 네 명까지 둘 수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747공약’을 연상시킨다. 문제는 비전을 현실화시킬 수단이었다. 당시 싱가포르는 돈도 자원도 없었다. 마실 물조차도 없어 말레이시아에서 사다 먹는 형편이었다. 리 총리는 ‘없으면 오게 하자.’고 생각했다. 돈, 물건, 사람을 끌어 모으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면 유인책이 필요했다. 규제부터 대폭 풀었다. 외국기업이라도 사업설명서를 제출한 뒤 승인만 받으면 국가에서 연구개발비를 지원했다. 영어 공교육을 강화, 의사소통도 가능하게 했다.2차 오일쇼크의 와중에도 막대한 돈을 쏟아 부어 국제공항을 지었다.1981년 개항한 창이 국제공항이다. 정부 주도의 투자회사(GIC)와 국부펀드(테마섹홀딩스)도 만들었다.GIC는 훗날 우리나라의 한국투자공사(KIC) 모델이 됐다. 의사소통(영어)이 되는 인력자원, 해고가 자유로운 노동시장, 편리한 교통, 빗장 푼 규제 등은 싱가포르에 돈과 사람을 가져다 주었다. 그가 총리직에서 물러나던 1990년,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소득(1만 2200달러)은 취임 당시보다 무려 30.5배나 불어났다.‘(말레이시아에서)버림받은 작은 섬’이 아시아의 금융·물류 허브로 변신한 것이다.2006년 싱가포르의 외국인 투자 유치액(242억달러)은 우리나라(112억달러)의 두 배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도 지난해 싱가포르(2위)는 우리나라(29위)보다 훨씬 앞섰다. ●강력한 리더십 근간은 실용·반부패 리 총리가 경제개혁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단행했던 것은 부패 척결이다. 부패행위조사국(CPIB)을 신설,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최측근이자 절친한 친구에게도 예외는 없었다.20만달러 뇌물수수 의혹을 받던 테체앙 당시 국가개발부 장관은 오랜 동지였던 리 총리의 단호한 태도 앞에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청렴만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리 총리는 공무원 월급을 파격적으로 올렸다. 지금도 싱가포르 총리의 연봉(132만달러·13억원)은 미국 대통령(약 44만달러)의 3배, 한국 대통령(2억 4000만원)의 5배가 넘는다. 대신,‘파인(벌금) 공화국’ ‘태형의 나라’라는 별명도 얻었다. 인구 450만명의 작은 도시국가가 거대 미국사회의 거센 반발에도 공공기물을 파손한 미국인 청년(마이클 페이)에게 기어코 곤장 6대를 때린 일화는 유명하다. 리 총리는 포커게임으로 가산을 탕진한 아버지 때문에 도박을 지독히 혐오했다. 그러나 “세계경제 흐름이 바뀌고 있다.”며 2005년 싱가포르 정부의 카지노산업 허가를 지지했다. 이같은 실용주의와 원칙주의는 그가 퇴임한 후에도 강력한 ‘그림자 리더십’을 발휘하는 근간이 됐다. 물론 정치 인생을 둘러싸고는 논란이 따른다. 그는 부유한 중국계 집안에서 태어나 영국 유학(영국 케임브리지 법대)을 거쳐 변호사가 됐다. 이후 노동운동가로 변신, 좌파와 연대해 권력을 잡은 뒤 좌파를 몰아내고 화교자본을 끌어들여 정권을 지켰다. 그의 통치철학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섞여 있는 것은 이 영향으로 풀이된다. 그런 그도 벌써 여든을 훌쩍 넘겼다. 하지만 여전히 ‘작은 나라의 위대한 거인’으로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90년대 DJ·리콴유 사상논쟁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1990년대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벌인 사상논쟁이다. 리 전 총리는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거부하고 자주적 정치체계를 만들려 애썼다. 덩샤오핑 전 중국 주석, 박정희 전 한국 대통령과 ‘닮은꼴 리더십’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 근간이 바로 유교적 철학에 바탕을 둔 ‘아시아적 가치’였다. DJ는 아시아적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부작용의 폐해에 눈돌렸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지도자들간의 이례적 사상논쟁이었다. 당시에도 국제사회에서 큰 화제가 됐지만 지금도 종종 국제 심포지엄 화두로 오르내린다. 양승윤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리 전 총리가 자유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몰랐다거나 평가절하했던 것은 아니다.”면서 “다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길고 고통스러우니 도달 속도를 단축하기 위해 아시아적 가치를 들고 나온 것”이라고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리콴유 업적’ 빛과 그림자 정호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익에 도움되면 누구와도 손잡는다는 실용주의 표방이나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외국인 고문을 영입한 MB(이명박 대통령)정부는 리콴유 정부와 여러모로 닮았다.”고 분석했다. 정 연구원은 그러나 “1950∼1960년대 일반 대중이 무지하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한 것이 리콴유 개혁이었다.”며 “지금은 사회수준이 높아지고 이해관계도 복잡해져 (우리나라에)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다.”고 경계했다. 그는 “(리콴유의)강력한 리더십과 부패청산 의지 등은 MB정부가 벤치마킹해야 할 대목이지만 지나친 엘리트주의, 국익 앞에 개인을 희생시킨 전제주의 등 부정적 유산도 많은 만큼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뛰어난 소수에게 최상의 대우를 해주는 엘리트주의는 가뜩이나 작은 도시국가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엘리트와 열패자 사이의 위화감이 심각하다. 국내 금융계조차 싱가포르투자청(GIC) 사람들의 엄청난 엘리트의식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인권을 탄압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지나친 원칙주의는 개인과 기업의 창의성을 억압하기도 했다. 청렴했다고는 하지만 독재자란 굴레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2001년 홍콩 중문대가 리콴유에게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주려 하자 학생들이 “독재자”라며 거세게 반대시위를 벌인 적도 있다. 권력 세습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싱가포르 현 총리(리셴룽)는 그의 장남이다. 국부펀드를 운용하는 테마섹의 최고경영자(호칭)는 그의 며느리다. 그 자신 지금도 싱가포르투자청(GIC)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의 싱가포르 열풍이 요즘보다 더 극심했던 적이 있다.YS(김영삼)정부 출범 초기 때다.‘리콴유-권력과 리더십’ 책을 쓴 양승윤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당시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싱가포르를 배운답시고 어찌나 많이 갔던지 싱가포르 정부가 대사관을 통해 ‘업무에 지장이 많으니 자중해 달라.’고 요청했을 정도였다.”고 비화를 소개했다. 양 교수는 “리콴유는 사회주의적 가치관에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가부장적 철권통치를 휘두른 사람”이라며 “작은 도시국가이기에 리콴유식 개혁이 가능했던 대목도 있고 우리나라와는 사회구조의 틀도 다른 만큼 옥석을 가려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싱가포르의 지속 성장에 주목했다. 양 교수는 “서방의 많은 학자들이 싱가포르 경제가 1987년에 과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싱가포르는 견실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면서 “MB정부가 배워야 할 대목은 바로 이 점”이라고 환기시켰다. 소유는 국가가 하고 경영은 민간에 맡기는 싱가포르식 공기업 민영화 모델도 ‘노사정위원회 위상 강화’라는 전제조건이 요구된다는 조언이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도 “GIC와 테마섹이 꼭 잘한다고는 볼 수 없는 만큼 (싱가포르식 모델 도입에)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사설] 中 티베트 사태 무력사용 자제해야

    중국의 시짱(西藏) 자치구 수도 라싸에서 계속되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분리독립 요구 시위가 최악의 반문명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엊그제 중국측 군경이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20년래 최악의 유혈 사태를 빚었다. 티베트 망명정부는 이미 확인된 사망자 수만 해도 수십명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더 큰 참상으로 번지지 않도록 중국 측은 무력사용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중국정부의 무력 사용이 여하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역사적 연원을 보더라도 티베트는 오랜 기간 고유한 문화를 가진 독립국가였다.1950년 티베트를 무력 점령한 중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동화정책을 펴왔다. 그러나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앞세운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은 티베트에 관한 한 성공적이지 못했다. 티베트인들의 분리독립 요구도 불교 등 그들의 문화적·종교적 다양성을 중국정부가 포용하지 못한 결과 아닌가. 티베트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탄압하는 중국의 처사에 강력히 반발해온 게 그 방증이다. 중국정부가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무력 진압에 나서는 것이야말로 패권주의적 발상이다. 중국은 대화로 사태를 풀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경고를 귀담아듣기 바란다. 특히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는, 온건파 티베트 지도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시위 주도 승려를 처벌하는 식의 강경 대응은 세계평화의 대제전인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중국의 국가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행위임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 티베트로 웃은 자 티베트로 괴롭다?

    티베트에서의 유혈 독립 시위가 발생한 가운데 15일 집권 2기를 시작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티베트와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후 주석은 1989년부터 92년까지 티베트의 최고책임자인 당 서기로 당시 최고지도부에 강한 인상을 심어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 BBC는 15일(현지시간) 후진타오 2기 지도부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전했다. 후 주석은 구이저우(貴州)성 서기로 지내다 88년 말 티베트에 부임했다.89년 3월5일 라싸에서 티베트 병합 이후 사상 최대규모의 독립 저항운동이 발생, 계엄령 발동속에 후 주석은 철모를 쓰고 유혈진압에 앞장서 덩샤오핑(鄧小平) 등 당시 지도부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후 주석도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티베트 부임 뒤 고산병으로 고생하면서 인근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 사무실을 두고 ‘원격 근무’를 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나갔다. 그는 92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됐다. 티베트와 이런 ‘인연’을 지닌 후 주석은 올림픽개최의 해에 소수민족 문제라는 난제와 다시 맞닥뜨렸다. 경제개발과정에서 소외된 티베트인과 위구르인들의 독립운동은 강한 탄압속에서도 확산되고 있어 그의 2기 순항에 큰 도전장을 던지게 된 것이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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