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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카에다 “중국과 성전 벌이자”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의 위구르인과 전세계 무슬림들에게 중국에 대한 성전(聖戰·지하드)을 촉구하는 알카에다 고위 간부의 동영상이 공개됐다. 알카에다의 3인자로 알려진 아부 야히야 알 리비가 7일 아랍계 웹사이트에 공개된 20분 분량의 동영상에서 “위구르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에 진정으로 귀의해 전능하신 신의 길을 따라 성전을 준비하고, 중국인 침략자들에 대항해 무기를 들어 불의와 억압을 제거해야 한다.”며 성전을 촉구했다고 8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보도했다. 지난 7월5일 서북부 신장위구르자치구 수도 우루무치에서 위구르족과 한족간 충돌로 197명이 사망한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한 이후 알카에다 핵심 지도자가 중국에 대한 성전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알 리비는 동영상에서 “동(東)투르키스탄(신장위구르자치구)의 억압받고 상처입은 형제들을 최선을 다해 지원하는 것이 무슬림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슬람 무장세력이 1979년 아프간을 침공한 옛 소련 군대를 패퇴시킨 사실을 상기시킨 뒤 “무신론 국가(중국)는 멸망으로 치닫고 있으며 러시아 곰의 운명을 답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알 리비는 중국이 무슬림을 억압하기 위해 사탄과 같은 행위를 저지르고 있으며 위구르인들을 다른 인종으로 대체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동영상은 7월 말~8월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루무치 사태’ 이후 위구르 분리주의 단체인 투르키스탄이슬람당(TIP)과 알제리 무장단체인 ‘이슬람 북아프리카 알카에다’ 등이 중국인과 중국기업에 대한 보복테러를 경고한 바 있다. stinger@seoul.co.kr
  • 이탈리아 총리 “이 나라와 정계 떠나고파”

    “정계와 이탈리아를 떠나고 싶다.”수많은 염문설과 실언으로 세계적 ‘이슈 메이커’가 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최근 피곤(?)에 지쳐 내뱉은 말이다. 이탈리아 일간지 라 스탐파는 5일(현지시간) 비판 공세에 공격적으로 대응해 왔던 그가 언론의 끈질긴 추적 보도와 세간의 줄기찬 비판에 힘이 빠져 지인들에게 이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베를루스코니는 최근 악재가 겹치면서 어지간히 ‘마음 고생’을 하고 있다. 그와 성매매 스캔들 당사자로 알려진 여성 파트리치아 다다리오는 성매매가 사실이었다고 털어놨으며 지난 3일에는 이탈리아 출판협회 주최로 30만명이 참석한 베를루스코니 규탄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들은 베를루스코니가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한 일간지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 배상 소송을 한 것이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했다.결정적으로 같은 날 밀라노 법원에서 내놓은 판결이 그를 더욱 곤욕에 빠뜨렸다. 그가 1978년 설립, 현재는 그의 맏딸 마리나가 사장으로 있는 투자 금융 회사가 불법 주식 거래를 했다는 혐의가 인정된 것. 법원은 마리나에게 7억 5000만유로(약 1조 3500억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하면서 “베를루스코니도 공동 책임이 있다.”고 강조,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베를루스코니는 격분했다. AP통신은 그가 “이건 법원의 횡포다.”라며 크게 화를 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를 떠나고 싶다.”는 발언도 당시 함께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한편 의회는 대통령, 총리, 상·하원의장 등 4명의 재임기간 중 발생한 어떠한 형사 사건에도 면책 특권을 주는 ‘로도 알파노’ 법안에 대한 최종 투표를 7일 실시할 예정이다.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시국대회 공무원 11명 파면·해임

    공무원노동조합 시국선언 탄압규탄 대회를 주도한 공무원에 대해 파면·해임 등 중징계 결정이 내려졌다. 행정안전부 중앙징계위원회는 30일 ‘7·19 공무원노조 시국선언 탄압규탄대회’를 기획·주도하거나 적극 참여한 전 민주공무원노조 홍성호 수석부위원장, 이언구 본부장 등 2명을 파면 조치하고 9명을 해임하는 등 11명 전원을 중징계키로 의결했다. 시국선언으로 인해 공무원을 파면·해임키로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징계 대상 공무원들은 ‘시국대회 참여를 독려하고 시국선언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신문에 전면광고 또는 릴레이광고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전 민공노 간부들이다. 행안부는 공무원들의 이 같은 집단 행동이 공무원노조의 정상적 활동과 무관하고 정치적 의사를 집단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간주했다. 또 국가공무원법상의 성실·복종·품위유지 의무와 공무원노조법상의 정치활동 금지 등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밝혔다.김진수 행안부 복무담당관은 “정부의 거듭된 경고와 자제 권고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으로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한 법을 위반했다.”며 중징계 배경을 설명했다.이에 대해 이충재 통합공무원노조 공동집행위원장(전 민공노 사무처장)은 “시국선언은 자유권이며 기본적 권리인데 징계 양정과 이유가 터무니없다.”면서 “통합공무원노조 차원에서 법적 소송을 통해 정면 대응할 것이며 향후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도 더욱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다.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일제의 민족종교 말살정책 집중조명

    동학-천도교, 원불교, 증산도, 대종교 등 19세기 후반 흥성했던 민족 종교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급격히 세력이 감소했다. 일제의 민족정신 말살정책에 따른 왜곡과 탄압의 결과였다. 그 여파가 남아 일부 민족종교들은 아직 ‘사이비’라는 오해를 받고 있다. 당시 조선총독부에 의해 행해졌던 한국 민족종교 탄압책을 집중 조명한 다큐멘터리가 제작됐다. 증산도 계열의 민족문화채널 STB상생방송이 한국전파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조선총독부특명-조선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라’(연출 이재문)는 6개월 동안 국내와 미국·일본 등을 오가며 일제의 민족정신 말살정책의 실상을 파헤쳤다. 3일 오후 10시 방송. 특히 방송은 일본인 인류학자 무라야마 지준과 그가 작성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일제의 정신문화 식민지화 과정을 추적한다. 총독부의 촉탁 학자인 무라야마 지준은 1920년대 조선 곳곳을 돌며 민간신앙과 종교·풍속 등을 연구했다. 이 연구자료를 활용해 총독부는 일본 신도교를 민간에 침투시키고, 한국신화를 왜곡하는 등 정신문화 탄압을 자행했다. 제작진은 이와 함께 당시 민족종교들이 펼친 독립운동 활약상이 기록된 ‘밀러 보고서’도 공개한다. 또 물산장려운동 등 민족종교의 경제 운동도 소개하고, 신도·불교·기독교 외 종교를 ‘유사종교’로 분류했던 일제의 종교 통제책 및 왜곡된 종교교육도 고발한다. 방송에는 세계적인 종교학자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를 비롯, 윤이흠 서울대 교수 등 종교학 분야 석학이 대거 참여했다. 제작진은 “일제 식민통치가 만들어 민족종교에 씌운 ‘유사종교’라는 틀은 광복 64주년이 된 오늘에도 사라지지 않았다.”면서 “일제시대 민족혼을 지키며 독립운동에 지대한 역할을 했던 민족종교의 본모습을 널리 알려야 할 때”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모닝 브리핑] “北, 파키스탄 칸 박사에 원심분리기 요청”

    파키스탄 핵무기의 아버지로 불리는 압둘 카디르 칸 박사에게 북한이 300만달러(약 36억원)를 주면서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원심분리기의 설계도와 기계를 부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20일(현지시간) 칸 박사가 아내에게 지난 2003년 12월 보낸 편지 사본을 입수, 이같이 보도했다. 이 편지에서 칸 박사는 중국, 이란, 북한 등에 핵 관련 기술을 제공한 경위를 밝히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의 탄압을 우려한 칸 박사는 편지 복사본 한 부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사는 조카에게 보냈다. 우여곡절을 거쳐 사본은 편지에 이름이 언급된 더 타임스 기자에게 2007년 전달됐다. 칸 박사는 편지에서 “(지금은 은퇴한 장성이) 북한인으로부터 300만달러를 가져와 설계도와 기계를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칸 박사가 지난해 일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원심분리기를 제공했다고 밝힌 점을 고려하면 ‘설계도와 기계’는 원심분리기일 가능성이 크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장영달 등 민청학련 8명 재심서 ‘내란음모’ 무죄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김창석)는 11일 내란음모와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됐던 장영달 전 민주당 의원 등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관련자 8명의 재심에서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긴급조치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면소 판결했다. 이는 현재 서울고법에 계류 중인 민청학련 재심 사건 네 건 가운데 첫번째 판결로 관련 사건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1974년 유신정권은 민청학련 명의로 정권에 반대하는 유인물이 배포되자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장영달 전 의원 등을 주동자로 지목한 뒤 180명을 구속 기소하고 8명에게 사형을 선고했었다. 이 사건은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의 재조사를 통해 학생운동 탄압이라는 진상이 드러났다. 재판부는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이들이 당시 유신헌법 반대 및 긴급조치 철폐를 목적으로 폭동을 모의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정권교체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은 내란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 긴급조치는 1980년 10월 유신헌법이 폐지되면서 이미 효력을 잃었다.”고 덧붙였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낯설지만 영롱한 티베트 이야기

    달라이 라마로 상징되는, 탄압받는 망명정부의 치열한 독립운동이 진행되는 곳, ‘오래된 미래’처럼 경건하게 구도하는 라마불교 승려들, 종교적 계율 속에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이 있는 땅. 티베트의 이미지는 대단히 제한적이다. 신문의 국제정치면, 또는 TV 다큐멘터리, 서구의 책 등에서 쌓은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이런 단선화된 인식 환경에서 티베트 출신으로 중국 본토 문단은 물론 세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아라이(阿來)의 연작 소설집 ‘소년은 자란다’(아우라 펴냄)가 나왔다. 소설은 바깥에서 애써 보고자 하는 티베트의 단면만이 아닌, 티베트의 자연과 역사, 사람들의 생활과 종교, 고민, 불안, 희망, 욕망 등을 꾸밈없이 덤덤하게 풀어내고 있다. 비 갠 뒤 나뭇잎 위를 굴러다니는 빗방울처럼 청량한 느낌의 감각적인 문체는 티베트의 자연과 질박한 사람들을 노래하기에 딱 맞는다. 화려한 색깔은 뺀 맑은 수채화처럼 담백한 작품들 열세 편이 모여 있다. 따로따로 읽어도 좋고, 마치 장편소설인 듯 순서대로 읽어도 좋다. 아라이가 1998년에 쓴, 마오둔 문학상 수상작인 ‘색에 물들다’는 이미 2년 전 국내에 소개되며 티베트 문학의 정수를 선보인 바 있다. 10년 남짓이 흘렀지만 티베트 사람들에게 쏟는 애정은 더욱 두터워졌고, 애정 담뿍 담긴 문장은 세밀한 변화도 놓치지 않는 섬세함까지 가미됐다. 티베트와 떼놓을 수 없는 라마교 얘기는 여러 작품에서 등장한다. ‘라마승 단바’는 1957년 중국의 침략, 대학살 뒤 강제 환속(還俗)된 비구승 단바의 얘기다. ‘라싸의 높디높은 궁전 안에 있던 대 라마(라마교의 고승)들은 재빨리 외국으로 떠나버린’ 뒤 속세에서 ‘전직 라마’를 모시며 살던 단바는 다시 종교의 자유를 얻고 사원으로 돌아가 이미 충분히 세속화된 라마들 틈바구니에서 수행 정진을 계속한다. 거센 외침은 아니지만, 티베트의 아픈 역사와 수행심을 잃고 물질에 연연하는 라마에 대한 비판을 또박또박 짚는다. ‘소년 시편’에서도 환속한 라마 외할아버지와 그의 제자인 외삼촌은 바뀐 현실에 적응하며 양을 치는 노동을 기꺼이 마다하지 않게 된다. 순수한 소년의 눈에 비친 사촌누나, 나병에 걸린 여인 등 소박하고 아름다운 이웃들이 있다. 또한 표제작 ‘소년은 자란다’(원제 거라창다·格長大)에서도 모자란 듯 순박한 여인 쌍단과 그녀의 사생아 아들 거라의 가슴 먹먹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열세 작품 모두 티베트 지춘(機村) 마을에 사는, 혹은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일독하고 나면 구름 위에 있는 듯 높은 곳의 티베트가 눈높이쯤으로 사뿐히 내려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옛 기무사터 미술전시장으로 변신

    옛 기무사터 미술전시장으로 변신

    국군기무사령부 옛터는 ‘보안사’와 ‘기무사’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면서 음습하게 군부권력이 탄생했고, 민간인 불법사찰과 인권탄압이 다반사로 이뤄지던 비밀스러운 곳이었다. 이제 ‘기무사’는 과천으로 이전을 했고 이곳의 문이 활짝 열렸다. 아트선재센터가 주관하는 미술기획전시 ‘플랫폼 인 기무사 2009’가 서울 소격동 165번지 옛 기무사 터에서 열린다. 국내외 아티스트 101팀이 참가해 200여점 이상의 작품을 설치·전시했다. 기무사 옛 건물을 국립현대미술관 분소로 활용하겠다는 정부의 결정이 나온 이후 첫 대규모 기획 전시인 셈이다. 예술총감독을 맡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의 김선정 교수는 “이번 전시에는 기무사라는 공간의 장소성과 역사성, 조형성을 반영한 작품들이 대거 출품됐다.”면서 “과거를 씻어 내고 미래로 연결되는 공간으로 탄생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의 제목은 ‘Void of Memory(기억의 덧없음)’이다. 중앙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마치 초혼(招魂)을 하듯 기무부대의 군가를 가사로 정가(正歌·한국전통음악인 정악의 한 장르)를 부르는 여자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작품을 설치한 이수경 작가는 “젊은 남자로 이뤄진 양기가 가득한 장소를 여성의 음기를 통해 씻어 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낡고 허름한 기무사 건물에서 유일하게 번듯한 2층 사령관실에는 임동식·이성원 작가가 조개와 새, 식물의 이미지를 통해 자유와 자연을 강조했다. 1960년대 스파이들의 활동을 손바닥만 한 뿌연 흑백 사진으로 보여 주는 도모코 요네다의 작업이 전시되고, 유토피아의 붕괴를 나타낸 이불의 4m 크기 ‘새벽의 노래(Audade)’ 등이 설치됐다. 남북한의 분단상황을 보여 주는 백승우의 사진작업과 스웨덴 마구누스 배르토스의 영상작업 등이 마련됐다. 김선정 총감독은 “금지됐던 장소에서 느낄 수 있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오후 5~9시의 자유관람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조언한다. 전시 3일부터 25일까지 오후 2시부터. 성인 8000원, 학생 4000원. (02)733-8945.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막내 케네디, 형들 옆에 잠들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지난 25일 타계한 에드워드 케네디(77) 미국 상원의원이 29일 밤(현지시간) 워싱턴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케네디가(家) 형제들 중 막내인 케네디 상원의원은 형들인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 로버트 케네디 전 상원의원 묘 사이에 영원한 안식처를 찾았다. 안장식에는 직계 가족들과 오랜 친구인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과 존 케리 상원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날 오전 보스턴에서 장례미사를 마친 뒤 항공기편으로 앤드루 공군기지에 도착한 케네디 의원의 관은 상원의원으로 47년을 보낸 의사당 앞에서 추도식을 가진 뒤 워싱턴기념탑, 링컨기념관, 포토맥 강을 거쳐 장지인 국립묘지로 운구됐다. 1000여명의 전·현직 의회 보좌관들은 의사당 앞에서 박수로 케네디 의원의 운구차량과 유가족들을 맞이했고, 운구차량이 지나가는 도로 주변에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케네디 의원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이에 앞서 케네디 의원의 장례미사는 이날 오전 가랑비 속에 보스턴의 ‘영원한 도움의 성모’ 성당에서 1400명의 조문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전·현직 부통령과 50여명의 전·현직 상원의원들이 자리를 같이 해 미 정치에서 케네디 의원이 차지하는 위상을 실감케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조사를 통해 “케네디 의원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의원”이며 “가지지 못한 자들의 대변인이었으며, 개인적 비극을 극복하고 병들고 가난하고 탄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싸운 전사였다.”고 추모했다. kmkim@seoul.co.kr
  • [모닝 브리핑] DJ·에드워드 케네디 서신 10여통 공개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은 27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부의 정치적 탄압을 받아 미국으로 망명했을 당시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과 주고받은 서신 10여통을 공개했다. 케네디 의원은 1980년 김 전 대통령이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자 구명운동에 앞장섰고 미국 망명 생활과 귀국 때도 큰 도움을 줬다. 케네디 의원은 1971년 당시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미국을 방문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당신은 한국의 존 F 케네디”라며 지지를 표명했다. 도서관측은 또 김 전 대통령의 안전한 귀국을 보장하라며 케네디 의원과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앨 고어 전 부통령 등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등도 공개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시론] DJ 이후 시대의 리더십/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론] DJ 이후 시대의 리더십/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다차원의 시대 선도자였다. 한국 정치사에 여러 번의 획을 그으며 여러 번 시대변화를 선도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국가건설이라는 큰 획을 긋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산업화라는 큰 획을 그은 데 비해, 그는 민주화라는 획, 지역균형발전이라는 획, 남북화해라는 획 등 여러 차례 획을 그었다. 역대 대통령 중 누가 더 위대한지 비교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그가 수차례에 걸쳐 시대변화의 주인공이었다는 데 이의를 달 수 없다. 물론 그 명암이 분명히 있고 아직도 논란을 낳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다양한 족적을 남기며,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지만 시대구분의 여러 계기를 제공했다. 민주화는 김 전 대통령이 선도한 시대변화 중 첫 번째이고 가장 널리 칭송받는 것이다. 권위주의적 탄압을 인동초(忍冬草)처럼 참으며 민주화를 견인한 공로는 참으로 크고 결정적이었다. 야당 지도자로서 추락한 국회의 권위를 지키고 꺼져 가는 정당정치의 불씨를 살리며 민주화를 향한 희망을 불어 넣은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유신 시대와 제5공화국 시대에 이어 민주화 시대가 등장할 수 있었다. 그가 이끈 두 번째 시대변화인 지역주의 구도의 형성은 칭찬보다는 비판을 더 받는다. 1987년 민주 대 반민주 대립구도가 깨지자 김대중·김영삼·김종필 3인은 각기 지역주의 감정을 조장하며 지역주의 시대를 열었다. 물론 김 전 대통령은 오래 차별받아 소외된 호남을 살려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나름대로의 의도를 지녔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지역 간 반목과 갈등의 골을 깊게 했다. 민주화나 지역주의 시대가 평생의 경쟁자이자 동지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합작품인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도한 세 번째 시대변화인 남북화해는 그만의 결단에 의한 것이다. ‘햇볕정책’, 정상회담과 6·15선언, 금강산 관광 등으로 상징되는 남북화해 시대는 그의 오랜 신념 덕에 그 첫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일방적 퍼주기’였고 북핵 개발을 오히려 도왔다는 비난이 있지만, 남북 긴장은 적어도 한동안 크게 줄었다. 시대 선도자로서 김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이념의 사회적 분출에까지 이어졌다. 이념적 폐쇄성을 면치 못하던 우리 사회는 그의 당선 자체, 그리고 그의 적극적 시민사회 지원정책과 남북교류 노력으로 인해 이념적 다양성의 시대에 접어들 수 있었다. 이념의 분출이 지나쳐 남남갈등이 격화됐다는 평가도 있지만, 어쨌든 후임 노무현 전 대통령 시기에 정립된 이념적 대립구도라는 시대추세의 기저에는 김 전 대통령의 원초적 역할이 있었다. 이처럼 여러 갈래의 시대흐름을 이끌며 그는 공과를 함께 남겼다. 우리의 과제는 이 중 공은 살리고 과는 줄이는 것이다. 민주화를 성숙시키되 방종과 아집으로 흐르지 않고, 지역균형발전을 이루되 지역감정을 북돋우지 않고, 남북화해를 진행시키되 그 효과성을 따지고, 이념의 다양성을 중시하되 추상적 이념대립이 구체적 현안 중심의 대화를 막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제 누가 이런 방향으로 시대를 이끌까? 누구보다 김 전 대통령이 거쳤던 직(職)을 현재 맡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그의 공과를 헤아리며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 그러나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개인적 리더십이 작동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오늘의 사회상황은 개인보다 제도·시스템 중심의 새 시대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시대를 이끌어야 할 이유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中인권운동가 이례적 석방, 압력? 타협?

    │베이징 박홍환특파원│탈세 혐의로 지난달 29일 체포됐던 중국의 인권시민단체 공멍(公盟)의 대표인 법학자 쉬즈융(許志永·36)이 법원의 보석 결정으로 지난 23일 오전 풀려났다. 중국에서 이처럼 체포된 인권운동가가 정식 재판을 받기 전에 석방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어서 법원의 결정 배경이 주목된다.공멍 동료들과 중국 안팎의 인권단체들은 중국 정부가 건국 60주년을 앞두고 시민단체에 대해 집중적인 탄압에 나섰다며 그의 석방과 시민단체 활동 보장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중국의 원로 인권변호사 장쓰즈(張思之)를 비롯한 법학계 및 경제학계 원로들은 지난 19일 ‘공멍 사태에 대한 당국의 원만한 해결을 촉구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멜라민 분유 피해부모, 고문 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지원에 앞장섰던 쉬즈융의 조속한 석방은 이런 국내외 압력과 관련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하지만 일각에서는 중국 당국과 쉬즈융의 ‘타협’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 쉬즈융은 석방 직후 “때때로 타협은 불가피하다.”며 “앞으로는 민감한 문제를 다룰 때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stinger@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DJ이후 한국사회’ 각계 인사의 제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각계에서는 고인이 평생을 두고 노력해온 민주화, 국민 대통합과 화해, 지역주의 극복, 남북통일 등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각계에서 듣는다.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 화해정신 담을 헌법개정 필요 민주주의의 선봉과 지식인들 사이에 반복된 반목이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문병과 조문을 통해 대승적 차원에서 해소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전두환 전 대통령, 영원한 경쟁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방문은 그 자체로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를 계기로 화합과 화해의 정신을 국민 모두가 깊이 새겨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이 평생 몸바쳤던 민주화가 후퇴하고 있다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 국민적 대통합과 화해의 정신을 담은 헌법 개정의 시기가 도래했다고 본다. 특히 대통령이 우리사회의 ‘큰 어른’이자 ‘지식인의 본보기’로서 권위를 세우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고민할 때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국가발전에 온 국민이 힘써야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국가적으로 힘든 시기에 원로를 잃게 됐다는 점에서 큰 불행이자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정착과 남북화해협력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고 외환위기 때 우리의 경제체질을 강화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업적을 남기셨다. 이제 고인이 남긴 큰 뜻과 업적을 기리면서 국가 발전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특히 고인이 그토록 강조하셨던 지역주의 극복이 이뤄지고 국민통합의 새 시대를 앞당겨야 한다. 온 국민이 새 마음 새 뜻으로 새 출발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이제 막 어둠의 터널을 지나기 시작한 경제가 완전히 회복돼 많은 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것을 고인이 가장 바랄 것이다. ●김창국 초대 국가인권위원장·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장 보복 않는 화합정신 계승을 김 전 대통령의 가장 큰 공은 ‘보복을 하지 않는 화합의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또 이같은 사회통합 정신을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철학으로 계승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취임할 때 김 전 대통령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당부했다. 김 전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에게서 받은 탄압을 극복하고 보복 대신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승인한 점에서 우리가 키울 자산을 찾아야 한다. 남북화합, 동서화합도 자산이다. 이를 위해 김 전 대통령이 싹틔운 ‘과거사 창산’을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역사 인식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면 결코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배상근 전경련 경제본부장 미완의 과제 노사선진화를 김 전 대통령은 수출증대정책을 통해 무역수지 흑자를 늘려갔고, 외국인직접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 빠르게 유입된 달러화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상환해 갔다.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으로 유수의 기업과 은행이 문을 닫고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등 뼈를 깎는 고통을 주었지만 전대미문의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우리 기업과 금융회사가 버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4대 부문 개혁 중 특히 노동부문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이제 대한민국이 선진경제로 도약할 수 있도록 국민, 기업, 정부 모두가 지혜를 모아 노사관계의 선진화에 나서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 한국문화의 비전 숙제로 평생 추구했던 민주화와 통일, 세계 평화의 뜻을 채 이루지 못해 가시는 마음도 편치 않으셨을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프다. 역대 대통령 중 문화에 대한 식견과 애정이 대단하신 분이었다. 문화 산업 정책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셨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철저히 지켜내셨다. ‘문화대통령’이라고 불리는 분이었기에 문화인으로서 더욱 아쉬움이 느껴진다. 김 전 대통령이 남긴 한국 문화의 비전에 대한 숙제는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고, 나 개인에게도 남겨진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나라의 큰 어른들을 연이어 보내는 슬픔이 남아 있다. 이것이 슬픔으로만 그치지 않고 그분들의 뜻을 이어받아 모두가 새롭게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란다. ●정천석 울산동구청장 해묵은 지역감정 뿌리뽑자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망국적인 지역감정 해소와 남북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만큼 고인의 큰 뜻을 받들어 이제 해묵은 지역감정을 완전히 뿌리뽑을 때가 왔다. 영호남 지역감정은 김 전 대통령의 생전 노력과 대통령직 당선으로 상당히 해소됐지만 여전히 선거철만 되면 악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영호남은 다양한 교류와 공동발전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벌이면서 지역감정 해소에 노력해 왔다.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자칫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되살아나지 않도록 국민들의 성숙한 견제 의식이 필요하고 정치권도 선거제도 개선 등을 통해 지역감정의 불씨를 사전에 잡아야 한다. ●소설가 공지영 민주화의 후퇴 없었으면… 원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 뭐라고 말하기는 딱히 그렇지만 소설을 쓰면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업적을 알게 됐다. 2004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쓰기 위해 취재에 들어가면서 사형수들을 많이 만났다. 이때 구치소와 교도소 등의 시설과 상황을 새삼 보게 됐는데 일본보다 좋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변화는 김 전 대통령 재임시절 대부분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사회가 대체적으로 약자와 소외자, 장애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생각을 평소 가졌는데 김 전 대통령은 이런 곳에 많은 관심을 가졌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다. 이번을 계기로 앞으로 약자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더 있어야 하고 또 민주화의 후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장현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장 역사의 계승 발전 동기 찾을때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게 사회통합이다. 남북문제든 내부문제든 간에 사회통합이 절실하다. 현 정부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폄하하는 지난 역사도 겸손하게 평가하고 계승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파도 속에 휘말린 나머지 정치·경제·사회·계층적으로 통합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단절시키고 새로 쓰는 게 역사가 아니다. 남북 문제나 민주주의 문제 등 역사를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할 동기와 전환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사회통합은 통합위원회 등 기구나 제도의 차원이 아니다. 용산참사나 비정규직, 노사문제 등 우리가 당면한 각종 현실에 진정성을 갖고 함께 아우르는 자세로 나아갈 때 이것들은 비로소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 [특별기고-김대중 전대통령 영전에 부쳐] ‘대화의 힘’ 믿은 뼛속깊은 휴머니스트

    [특별기고-김대중 전대통령 영전에 부쳐] ‘대화의 힘’ 믿은 뼛속깊은 휴머니스트

    그는 ‘대화의 힘’을 신봉했다. 뼛속깊이 민주주의자였다. 정치의 정도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집단을 향해 대화와 설득으로 합의와 타협을 이루는 과정이라 했다. ‘공산국가를 향한 억압과 고립화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오로지 개방과 대화만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흔들림없이 믿었다. 역사발전은 이를 실증하고 있다. 철의 장막, ‘중공’의 빗장을 열게 한 것은 닉슨이 먼저 찾아가 대화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감옥으로 몰아 넣고 생명을 위협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7·7선언’을, 그 대화의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그래서 그는 납치와 투옥, 감시와 연금 등으로 자신을 모질게 탄압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여러 차례 대화를 시도했다. 그는 독재정권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그들과의 ‘적대적 경쟁’이 아니라 ‘형제적 경쟁’을 원했다. 상대방을 파멸시키는 경쟁이 아니라 경쟁자가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원했다. 늘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을 갈구했다. 감옥 안에서도 그랬다. 그는 추위를 몹시 타는 체질이었다. 그런데도 머리맡의 물그릇이 얼어 터지는 혹한의 감옥에서도 그는 결코 독재자를 증오하지 않았다. 대신 한달에 한 장만 주어지는 봉함엽서에 깨알 같은 작은 글씨로 가족과 대화를 시도했다. 엽서 주소란까지 촘촘히 메운 사연은 그가 참으로 자잘하고 섬세한 여성적 심성을 가진 남성임을 보여 준다. 이 ‘양성적’인간은 놀랍게도 영하의 감옥에서 오히려 진정한 화해와 용서의 경지에 닿는다. 증오와 복수가 아니라 오래도록 참고 기다리는 사랑의 기술을 터득한다. ‘대화지상주의자’인 그는 1980년대에 택할 수밖에 없었던 ‘장외투쟁’을 싫어했다. 그는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사랑했다. 대의정치가 맺은 국민과 대표자 간의 계약과 신의를 존중하고자 했다. 그래서 재임기간에는 거부권을 한번도 행사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으로는 너무도 부당했지만 국회의 결정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것 역시 그의 오랜 인내의 결실이다. 그는 북한이 거부하는 조선일보 기자의 방북취재와 김일성 주석이 잠들어 있는 금수산궁전 참배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평양으로 향했다. 그는 오히려 평생 동안 자신을 음해하고 괴롭힌 보수신문의 취재허가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했다. 누구 못지않은 빼어난 논리와 달변을 갖춘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양에 머무는 내내 북한 지도부의 말을 ‘경청’하기만 했다. 그는 극도로 자신의 말을 아꼈다. 대화를 위한 선결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인여천(事人如天)’을 좌우명처럼 여겼다. 친지들에게 자주 붓글씨로 써주었다. ‘때로 잘못 판단하기도 하고 흑색선전에 현혹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이외에는 믿을 대상이 없었던’ 그는 오로지 국민의 힘에 철저히 의지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사면복권되었을 때 그는 국민에 대한 그의 무한신뢰를 확인했다.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는 ‘가난은 나라가 구제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자본주의 정글에서 소외되고 뒤처지는 이들이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고 믿었다. ‘기초생활보장제’는 간난신고를 거듭했다. 재원도 부족하고 일각에서는 이념공세를 퍼부었다. 그는 굽히지 않았다. 이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는 굶거나 헐벗는 이들은 없다. 휴머니스트인 지도자의 힘은 그래서 존귀하다. 그는 ‘가난은 나라도 구제못한다.’는 왕조의 수준을 ‘공화국’으로 변환시켰다. 이러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두고 군사정권이 조작하고 유포한 거짓들이 아직도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더 기다려야 할까? 만인을 잠시 속일 수 있고, 소수를 오래 속일 수 있지만 만인을 영원히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믿자. 한 시대 대중의 소망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이를 두고 우리는 영웅이라 부른다. 김대중, 그는 진정 민주주의와 평화를 꿈꾸는 우리들의 캡틴이었다. 실로 너무 멀고도 험한 길을 외롭게 걸어온 당신. 이제 더는 음해와 핍박이 없는 하늘에서 부디 평안을 누리소서.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상임위원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DJ와 애증의 20여년 광주·전남 추모위원장 지선스님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DJ와 애증의 20여년 광주·전남 추모위원장 지선스님

    “그 분을 영원히 떠나 보내야 하니 마음이 아프고, 만감이 교차합니다.”‘김대중 전 대통령 광주·전남추모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된 지선 스님(백양사 주지)은 20일 “그가 평생 추구해온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화해 등의 정신을 이어 받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며 “장례일까지 매일 저녁 그를 기리는 추모문화제를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열겠다.”고 밝혔다. 5·18민주화운동 이후 ’산승(山僧)’에서 ‘투사’로 변신해 20여년 동안 광주지역 재야운동을 이끈 지선 스님은 DJ와 불가에서 말하는 ‘억겁의 세월’을 거친 ‘인연’을 맺는다. 지선 스님은 1980년대 이후 ‘반독재 투쟁’이란 기치 아래 대학생들과 섞여 매일 거리 최루탄 공방전의 선봉에 섰고, 이는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았던 그는 이 과정에서 국가보안법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됐으나 6·29 선언 다음달인 7월 초 석방된다. “석방되던 날 DJ와 YS가 교도소 앞에 찾아와 처음으로 두 거물 정치인을 동시에 만났다.”며 “이후 두 분 사이를 오가며 후보 단일화를 강력히 촉구했으나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두 분으로부터 선거 전까지는 꼭 단일화될 거란 말을 들은 뒤 각 대학에서 강연이 있을 때마다 ‘민주진영의 후보 단일화는 반드시 이뤄진다.’고 역설했으나 그 것이 거짓으로 드러났을 때 가장 가슴 아팠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광주에서 재야활동에 열중이던 지선 스님은 DJ가 1987년 대선 패배 이후 평민당을 이끌던 때도 여러번 부딪쳤다. “DJ는 당시 ‘비 폭력, 비 반미, 비 용공’이란 3대 원칙을 끝까지 강조하며 우리 재야운동가와는 일정 거리를 두려 했던 현실 정치가였다.”며 “이런 점 때문에 고성이 오가는 상황이 자주 빚어졌다.”고 말했다. 지선 스님은 1989년 ‘조선대생 이철규 변사 사건’을 한 예로 들었다. 그는 지역 재야인사인 고 조아라 선생 등과 함께 동교동을 방문했다. 보기에도 흉측한 모습이었던 이철규씨 사진의 일간지 게재를 건의하기 위해서였다. DJ는 당시 “공안 당국에 탄압의 빌미만 제공할 뿐”이라며 일거에 거절했다. 지선 스님은 “5·18 이후 수많은 대학생과 열사들의 죽음을 외면하려면 정치를 그만 두라.”고 맞섰다. DJ역시 “법복을 입고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든 대학생을 선동하면 되느냐.”며 질책했다. DJ와 지선 스님은 이 때부터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DJ가 집권한 이후부터 그는 10여년 동안 ‘산방’에서 지냈고, 최근 3개월 간 하안거를 마친 뒤 DJ추모행사를 진두지휘하게 됐다. “어른은 가셨지만 우리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 계실 그 분을 되새기고, 그의 정신을 계승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지요.” 지선 스님에겐 애증의 20여년이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조선독립 꾀했으니 내란죄”

    “피고인들이 자산가에게 금전을 강탈하고 살해하더라도 독립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내란죄로 논할 것이 아니지만, 구한국의 독립을 달성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내란죄의 음모 또는 예비를 한 것에 해당한다.” 3·1 독립만세운동이 있은 지 꼭 1년이 지난 1920년 3월1일 ‘대한광복회’를 만들어 독립운동을 한 박상진·채기중 선생 등이 조선고등법원에 섰다. 재판부는 “독립을 꾀했으니 내란죄가 성립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웠다. 3·1운동 직후 일제의 잔학상이 14일 대법원 법원도서관이 발간한 ‘조선고등법원 판결록’ 7권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법원도서관은 2004년부터 모두 30권 36책 2만여쪽에 달하는 ‘조선고등법원판결록’에 대한 국역 사업에 착수했으며, 7권에서는 1920년 조선고등법원의 민·형사 판결문을 번역했다. 식민지 관리는 되지 않겠다며 판사직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나선 박상진 선생의 판결문에는 당시 대한광복회가 군자금 모금을 위해 부호들에게 보낸 포고문의 내용도 일부 판시됐다. 포고문에는 “우리 2000만 민족은 노예로 변했다.” 등 고국을 잃은 슬픔이 드러나 있다. 일제의 언론탄압 사례도 눈에 띈다. 동경의 조선유학생들을 모아 ‘조선청년독립단’을 만들고 ‘신조선(新朝鮮)’이라는 신문을 발간, 신문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달 선생에게 법원은 “조선의 독립을 기도하게 하려는 것과 같은 기사는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것”이라며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만주독립군 군자금 모금 베일 벗다

    만주독립군 군자금 모금 베일 벗다

    #1 “동지를 모아 총을 발사해 협박하고…, 금 1000원을 올해 12월20일까지 조달하겠다는 서약서를 제출케 하고…, 협박장을 보내고 우리 경찰(일제)의 엄중한 경계를 돌파하다 체포됐고….”(일제 간도총영사관의 대한민국 의민단의 군자금 모금 기록 중에서) #2 “독립사상을 선전하며 군자금 모집이라 칭하고… 영수증을 교부하고 기부금이 적은 촌락에 대해 위협적 언사를 일삼으며….”(임시군정부 소속 장남섭 선생의 일제 재류금지 처분 기록 중에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단체들의 군자금 모금활동 실상을 알려주는 문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당시 독립운동단체들은 ‘독립의무금’으로 단체 기부를 독려했다. 협박장을 발송하고 영수증을 교부하기도 했다. 아편거래의 이익금을 군자금으로 송금한 사례도 있었다. 국가보훈처가 13일 발간한 ‘만주지역 본방인(本邦人) 재류금지(在留禁止) 관계잡건(關係雜件)’에는 만주지역에서 군자금 모금을 담당한 인물들의 사진과 활동 내역이 상세히 드러나 있다. 자칫 역사의 뒤편에 가려진 만주지역의 군자금 모금 활동을 재조명할 사료로 평가받는다. 이 자료는 일제가 1915~26년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불령선인’(독립운동가 지칭)의 거주를 제한하고 추방 이유를 담은 보고서이다. 체포된 독립운동가 175명의 사진과 그들의 행적에 대한 보고 내용이 담겨 있다. ‘본방인’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을 지칭한다. ‘재류’(체류) 금지는 본적지로 추방하는 행정처분이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조선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는 제도로 악용됐다. 일본 교토대 이승엽 교수가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발굴, 보훈처 전문사료발굴분석단에 전달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당시 임시군정부, 독립의군, 북로군정서, 대한의군단, 대한통의부, 참의부, 정의부 등 만주지역의 군자금 모금 주체와 전달 경로 등이 상세히 기술됐다. 북간도 용정의 3·13 만세운동이 국내와 연관된 사실도 규명됐다. 국민회 소속인 조영(당시 29세), 유인학(33) 선생은 간도 일대에서 국제연맹에 독립 승인을 요청할 대표단 파견 비용을 모금하다 체포됐다. 이들은 1920년 2월 3년동안 재류금지 처분을 받고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 이송돼 사법처리됐다. 오지화(27) 선생은 1920년 5월 방우룡을 중심으로 하는 독립의군에 가입, 무기구입 자금을 모금하다가 같은해 10월 간도총영사관 경찰에 체포돼 재류금지 3년 처분을 받았다. 장남섭(미상) 선생은 군자금 모금을 하다 임시군정부에 가입했고 1919년 11월 체포됐다. 장홍국(39), 장의묵(31), 현성도(32), 황현범(30), 석태화(22) 선생은 북로군정서의 군자금 조달을 전담했다. 박환 수원대 교수는 “이번 자료를 통해 만주지역 독립운동가들의 공백기와 새로운 활동 내용을 발굴하게 돼 만주 독립운동 영역의 역사적 확대를 가져온 귀중한 사료”라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국제적 관심이 이란 민주화에 큰 도움”

    “이란 대통령 선거 결과에 항의하던 시민을 변론하다 변호사 2명이 체포됐습니다. 한국 변호사들이 항의서한을 이란 대사관에 보내 주길 바랍니다.” 이란 인권운동가 시린 에바디(62) 변호사는 10일 대한변호사협회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한국 변호사와의 조찬간담회에 참석해 이란의 차별적 법률을 소개했다. 제13회 만해대상(평화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지난 8일 6일간의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찾았다. 2006년 광주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수상자 회의 참석에 이어 두 번째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여자의 가치는 남자의 반이다’라는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남동생과 길을 가다 교통사고 나면 법률상 동생이 저보다 2배 많은 보상금을 받습니다. 법정에서도 여성 증인 2명이 나와야 남성 증인 1명과 똑같이 취급됩니다.” 에바디 변호사도 차별적 법률의 희생자다. 1970년 이란 최초의 여성 판사가 됐지만, 혁명 이후 여성은 법 집행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판사직을 박탈당했다. 변호사 등록도 받아주지 않아 8년간 법률 서적을 집필하며 때를 기다렸다. 1992년 마침내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선 그녀는 ‘이란인권수호협회’라는 시민단체(NGO)를 만들어 동료 변호사 20명과 함께 정치범 무료변론을 펼쳤다. 대학생을 변론하다 투옥되기도 했던 그녀는 2003년 이란의 여성과 아동의 권리를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에바디 변호사는 “교수, 변호사, 언론인 등 많은 정치범이 감옥에 갇혔지만 판사는 변호사 접견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면서 “국제적 관심이 이란 민주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지난 6월11일 스페인으로 떠난 뒤 귀국하지 않고 영국 런던,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프랑스 파리 등을 돌며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정부의 언론 탄압과 대선 이후 시위 사태에 대해 알리고 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정부는 용산참사 유가족 요구 받아들여야”

    69세의 노()신부는 7일 한여름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서울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이날로 용산참사 200일이 됐지만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문정현 신부는 참사의 현장에서 긴 한숨만 내쉬었다. 문 신부는 용산참사가 발생한 첫날부터 이날까지 참사현장을 지키고 있다. 문 신부는 ‘길 위의 신부’로 알려져 있다. 1974년 인혁당 사건을 시작으로 약자들의 고난을 함께 해온 문 신부도 이번 싸움은 힘에 부친 듯했다. “지병이 많은데다 얼마 전 경찰과 대치하다 다쳐 앉아있기조차 힘들다.”며 힘겨워했다. 그러다가도 유가족의 진상규명 요구를 들은 체도 하지 않는 정부에 대해 얘기할 때면 목에 힘이 들어가고 눈은 분노로 가득 찬다. 문 신부는 “정부가 이 사건을 아예 덮어버리려는지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으면서 유족들의 정당한 요구를 탄압하는 데만 급급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감추는 게 있으니 진실이 두려운 거다. 그렇지 않으면 검찰 기록 3000쪽을 공개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유가족과 범국민대책위가 이날 오후 남일당 참사 현장에서 200일 범국민 추모제를 가진 가운데 문 신부는 “유가족들의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시국대회 참가 공무원 105명 중징계

    지난달 야당과 시민단체가 주최한 범국민대회에 참가해 시국대회를 연 공무원 100여명이 무더기로 파면·해임 등 중징계 처분을 받게 됐다. 정부가 공무원의 집단행동에 대해 대규모 중징계 결정을 내린 것은 2004년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파업 이후 처음 있는 일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행정안전부는 4일 지난달 서울역 광장 시국대회와 ‘시국선언 탄압 규탄대회(2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공무원 16명을 검찰에 고발하고, 고발 대상자 15명을 포함한 105명을 소속 기관에 중징계토록 요청했다고 밝혔다. 5년 전 전공노 파업 때는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었으나 이번에는 단순 참가자까지 처벌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정부 노사 간 갈등이 극심해질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법리검토와 고발된 공무원을 소환 조사한 뒤 사법 처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고발 대상자에는 전국민주공무원노조(민공노)의 정헌재 위원장 등 핵심간부 5명과 법원노조의 오병욱 위원장이 포함됐다. 중징계 대상자들은 해당 기관의 징계위원회를 거쳐 파면, 해임, 강등, 정직 등의 처분을 받게 될 예정이다. 행안부는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의 집단행위 금지 규정과 성실의 의무, 복종의 의무, 품위 유지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핵심간부 5명이 고발된 민공노 측은 “공무원 개개인이 휴일에 합법적인 집회에 참석한 것을 집단행위라고 징계하는 것은 징계권 남용”이라면서 “공무원 시국선언을 다시 열고 기관과 법정에 정부 조치의 부당성과 시국대회의 당위성을 알리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강주리 장형우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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