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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이 만난사람] 정약용 탄생 250주년 맞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김문이 만난사람] 정약용 탄생 250주년 맞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누구나 출생의 비밀은 있다. 이름을 빛낸 위인의 경우에는 더욱 관심이 쏠린다. 그 비밀의 문으로 잠시 들어가보자. 다산 정약용은 1762년(영조 38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250년 전인 음력 6월 16일, 아버지 하석 정재원(荷石 丁載遠)과 어머니 해남 윤씨(海南 尹氏) 사이에서 출생했다. 태어난 곳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이다. 아버지는 대과에 급제하지 않았지만 영조 임금의 특별한 지시로 연천현감, 화순현감, 예천군수 등 고을 수령을 지냈다. 조정에 들어와서는 호조좌랑과 한성서윤을 지내고, 다시 수령으로 나가 울산부사를 거쳐 진주 목사까지 지냈다. 어머니는 고산(孤山) 윤선도의 후손이요,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의 손녀였다. 윤선도의 증손자인 윤두서는 한국 회화사에 유명한 자화상을 남긴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세 부인 사이에 모두 5남 5녀, 그러니까 10남매가 있었다. 첫 부인은 24세로 요절한 의령 남씨. 소생으로 큰아들 약현(若鉉)이 있다. 둘째 부인 해남 윤씨와 사이에 약전(若銓), 약종(若鍾), 약용(若鏞) 3형제와 딸을 두었다. 딸은 나중에 조선 최초의 영세교인인 만천(蔓川) 이승훈에게 시집간다. 다산 정약용의 나이 9세 때 어머니 해남 윤씨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12살 때 서울에서 20세의 김씨(1754~1813)를 데려왔다. 어린 다산을 친자식처럼 돌봐준 그가 바로 서모(庶母) 김씨다. 서모 김씨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김의택(金宜澤)의 딸로 슬하에 3녀 1남(약횡)을 두었다. 다산의 작은형 약종은 형제보다 뒤늦게 천주교를 접했지만 그 믿음이 독실하여 신유사옥 때(1801) 희생됐다. 전도에 힘쓰다가 책롱사건(册籠事件)으로 마흔 둘의 젊은 나이에 순교했다. 형 약전과 막내(다산)가 믿음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형제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했다. 엄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배교하지 않은 약종의 아들 철상(哲祥), 하상(夏祥), 딸 정혜(貞惠) 역시 천주교로 인해 요절했다. 형 약전은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다. 다산과 한배에서 태어난 형제의 인연뿐만 아니라 다산의 학문을 알아주는 지기(知己)이기도 했다. 1801년 11월 하순 함께 귀양길에 올라 나주 율정점(栗亭店)에서 눈물로 헤어진 후 16년 동안 서로 한번도 보지 못했다. 약전은 그의 나이 59세인 1816년에 유배지에서 세상을 떴다.(다산연구소 자료 참조) 올해 정약용 탄생 250주년을 맞아 다산의 생애와 학문, 사상을 재조명하는 행사가 풍성하게 열린다. 국립박물관과 실학박물관의 전시회, 음악제, 국제학술대회 등이 잇따른다. 지난 3월부터 올 12월까지 계속된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다산의 일대기가 처음으로 판소리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다산연구소 주최로 열리는 이 행사는 오는 9월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정해석 명창에 의해 1시간 20분동안 진행된다. 창본은 김세종씨. 특히 영문판 CD까지 제작, 세계 각국에 보급할 예정이다. 그동안 부분적으로 다산을 기리는 판소리 무대는 있었지만 75년 생애를 오롯이 담기는 처음이다. 이 밖에 다산이 직접 쓴 글씨와 그림을 전시하는 ‘한국 서예사 특별전-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 기념전’이 다음 달 9일부터 7월 2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다. 또 다산 기념 음악회가 8월 24일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열린다. 다산연구소의 박석무(69) 이사장. 그는 요즘 이 같은 행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는 올해로 다산 연구에 몰두한 지 40년째가 된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순화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 이사장은 연구소 설립 이후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편지를 지금까지 700여회 쓰고 있다. 자리에 앉으면서 최근에 쓴 편지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왔다. ‘대군(大君)이다, 멘토다, 실세 중의 실세다라는 사람들의 감옥행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보기에도 딱하고 국가 체면도 구겨질 대로 구겨져 버렸습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큰소리치면서, 그들을 그런 직위에 임명했던 임명권자의 입장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중략)화려했던 권력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 부와 권세를 놓치고 감옥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분들, 그런 기회에 목민심서라도 읽으면서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의 감옥행을 보면서 다산의 시선으로 글을 썼다. 또 있다. ‘정약전·약용 형제는 세상에 없는 지기지우인 동포 형제였습니다. 두 분이 주고 받은 편지나 학문적 토론의 글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는 사이였습니다.(중략)오늘의 세상에야 사촌이 남이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고 친형제조차도 재산 싸움에 남보다 더 원수지간이 되고 있음은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재벌가의 왕자난이나 쟁송(爭訟)의 보도를 읽다보면 다산 형제의 우애가 세상을 바로잡을 청량제로 여겨집니다. 오늘에도 그런 형제애를 복원할 수는 없을까요.’ 이런 편지의 내용은 전국 35만 4000여명에게 이메일로 보내진다. 일주일에 주말을 제외한 4~5차례 꼬박꼬박 쓴다. 어리석은 질문 하나, 박 이사장은 목민심서를 몇 번이나 읽었을까. “몇 번 읽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회 현상을 보면서 문득문득 목민심서나 논어를 다산적으로 해석한 글들을 생각날 때마다 다시 뒤적이고 그 뜻을 가슴에 담지요. 수시로 읽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편지 쓸 때에도 다산의 눈으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대학이나 단체 등에 강의 나갈 때도 다시 목민심서를 읽고 가지요. 성균관대에서 ‘다산과 21세기’라는 교양과목 강의를 하고 있는데 아주 명품강좌로 소문났다지요(웃음).” 지금도 틈 날 때마다 다산을 연구한다는 그는 대학 시절부터 ‘반계수록’ 등 실학에 관심을 두었으며 1971년 대학원 때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석사 학위논문을 쓴 것을 계기로 다산 연구와 인연을 맺었다. 1973년 유신에 항거하다 투옥됐을 때에 다산의 책을 여러 차례 읽었고 이후 8개월 수배 생활 동안에도 다산을 공부했다. 1982년 3월 복권됐을 때 비로소 7년 동안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쓰기 시작해 다산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편역,발간했다. 이 책은 지금까지 50여쇄나 찍을 정도로 꾸준히 인기를 끄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다산은 학문의 깊이가 끝이 없는 최고의 학자이자 사상가입니다. 다산은 52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통해 정치, 행정, 법학, 경제, 지리, 의학, 공학 등을 아우르면서 인간존중 사상, 개혁정신, 실사구시의 철학 등을 펼쳐 시대정신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학자로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안목과 방대한 지식을 섭렵하고 있지요. 특히 유배지에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의 인간성과 철학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산이야말로 칠흑같이 어두운 봉건시대에 실낱같은 한 줄기의 민중적 의지로 75년동안 치열하게 살다 간 역사적 인물이지요.” 가난에 찌들어 굶어 죽어가는 이웃의 아픔을 견디다 못해 공동 경작에 의해 공동분배하도록 하자고 혁명적인 전론(田論)을 주장하기도 했고 부정부패와 착취를 일삼는 관리들을 어떻게 해야 올바른 생각으로 돌아서게 할 수 있을까 해서, 관리들의 지침서인 ‘목민심서’를 저술한 것, 그리고 시를 통해서 백성들을 일깨워 보고자 했던 그의 생애는 250년이 지난 지금에도 따르고 연구하려는 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산은 22세때 진사과에 합격했는데 정조임금이 답안지를 직접 읽고 휼륭한 인재임을 알고는 근처에 있도록 하면서 자주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시문행사때마다 항상 1등을 차지하는 다산을 늘 아꼈고 기쁨을 누렸습니다. 정조는 다산을 통해서 사실상 정치를 바로 할 수 있었고 그런 다산은 정책 보고서를 임금에게 직접 올리게 됩니다.” 박 이사장은 가정의 달을 맞아 “요즘처럼 가족윤리가 무너지고 사제 간의 의리도 깡그리 파괴된 때, 우리는 다산의 사상과 철학을 통해 가족의 중요함과 사제간의 정다운 의리를 복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다산의 효제(孝悌)사상을 새삼 강조했다. 다산의 탄신일과 관련해서는 “1762년 6월 16일에 태어났는데 그날이 양력으로 8월 5일이어서 생일 기념은 매년 8월 5일에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도 그날에 회혼례, 산신제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석무 이사장은 1942년 전남 무안에서 4대째 한학을 공부해온 집안에서 자랐다. 전남대 법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로 구속되는 등 민주화 운동에 투신, 4차례 옥고를 치렀다. 1971년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면서 다산 연구에 집중했다. 1973년 유신반대 유인물인 전남대학교 ‘함성’지 사건에 연루돼 1년 동안 복역하면서 감방 안에서 본격적으로 다산 저술에 대한 연구의 시간을 가졌다. 출옥후에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발간했다. 지금까지 50쇄나 찍을 정도로 꾸준히 읽히고 있는 명저가 됐다. 1980년 광주항쟁 때는 관련 주모자로 몰려 오랜 수배생활 끝에 붙잡혀 1년 3개월여를 또다시 복역했다. 1988년 13대 국회에 진출한 후 14대 국회의원 시절에는 국회다산사상연구회를 조직, 간사를 맡아 활동을 펼쳤다.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과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 초빙교수, 전남대학교 초빙교수와 단국대학교 이사장, 한국고전번역원 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석좌초빙교수이자 (사)다산연구소의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술로는 ‘다산기행’, ‘우리 교육을 살리자’, ‘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1,2’,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가 있으며, 편역서로는 ‘흠흠신서’, ‘애절양’, ‘다산산문선’, ‘나의 어머니, 조선의 어머니’ 및 ‘다산 논설선집’, ‘다산 문학선집’(공편역) 등이 있다.
  • [인도통신] 무려 12년 동안 단식 투쟁 중인 인도 여성

    인도 북동부 마니팔주의 한 인권운동가가 무려 12년 동안 이어오고 있는 단식투쟁이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고 현지 IBN라이브가 10일 보도 했다. 올해로 40세인 이롬 샤밀라 챠누라는 여성은 2000년 11월 2일 단식투쟁을 시작해 올해로 12년째 세계 최장 기간 단식투쟁을 이어 오고 있다. 그녀는 물이나 음식을 전혀 먹지 않고 인도 당국이 튜브를 통해 강제로 주입하는 영양분에만 의지해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인도의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이 여성은 전직 기자로 마니팔주의 버스정류장에서 일반 시민 10명이 무장한 인도 군인에 의해 끔찍하게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 뒤 이 같은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인도 북동부에는 수십 개의 반정부무장세력이 활동 중인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로 인해 인도 정부로부터 여러 탄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 중 특수 목적의 군인이 반군세력으로 의심되는 시민이라고 판단되면 강제로 체포하거나 즉각 사살할 수 있는 무장병력특별권한법의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샤밀라의 몸무게는 불과 37kg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그녀의 가족들은 샤밀라가 승리하는 그날까지 끝까지 응원하겠다고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인도통신원 K.라지브 k.rajeev0828@gmail.com
  • 인권 변호사 이정희 노조탄압 전력 논란

    인권변호사로 활동해 온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가 2007년 제주 P업체의 노사 분쟁에서 사측 소송대리인을 맡았던 전력이 당내 갈등 국면에서 새삼스레 비판을 받고 있다. 당시 P업체 노조는 해고무효 소송에서 패소, 핵심 노조 간부가 해고된 뒤 사실상 와해됐다. 이 사건은 2004년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를 사측이 거부하고 직장폐쇄로 맞서면서부터 시작됐다. 노조는 전면파업을 단행하며 사측에 직장폐쇄 해제를 요구했지만, 사측은 “노조가 임금협상이 아닌 계약해지된 직원의 원직 복직을 관철하기 위한 쟁의행위를 벌이고 있다.”며 불법쟁의 행위로 노조를 고소했다. 소송은 2007년까지 3년간 이어졌고 사측은 노조 핵심 간부를 징계했다. 노조 측 변호인단은 이를 ‘노조탄압’으로 봤지만 이 대표가 속했던 사측 변호인단은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대응했다. 이 대표 측은 “이 대표가 있었던 법무법인 덕수에 의뢰가 와 소송에 나선 것”이라며 “의뢰가 오면 변호사는 당연히 맡는 게 아니냐.”며 문제 될 것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대표는 2008년 국회에 입성한 뒤 의원실에 비정규직 형태의 인턴 직원을 고용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 직원은 이후 내부에서 정규직화됐다고 이 대표 측은 설명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중국 관련 다양한 시각의 필요성/우형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옴부즈맨 칼럼] 중국 관련 다양한 시각의 필요성/우형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올해는 한·중 수교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북한문제, 역사 및 영토문제, 경제문제 등 다양한 이슈로 양국 간에 처리해야 할 내용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은 지난 100년을 제외하고 한국에 대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나라였다. 앞으로 중국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상시적인 정보 제공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3일 자 서울신문은 중국에 대한 세 가지 기사를 게재하였다. ‘천광청 관련 미·중 간 인권외교문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한·중 수교 20주년 세미나’이다. 특이한 점은 세 기사 모두에서 나타나는 중국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다. 각 기사에서 기술되는 중국은 인권운동가를 탄압하는 국가, 세계시장을 지배할 가능성이 큰 위협적인 경제 대국, 불신의 벽이 높아 미래관계가 불투명한 외교 대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물론 세 기사가 중국을 대상으로 취재한 모든 기사를 대표하지 않고, 한쪽으로 편향된 기사도 아닌, 사실에 기초한 내용이지만 부지불식간에 신문에서의 중국은 긍정보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많이 있는 국가로 강조되고 있다. 미디어 효과 가운데 ‘뉴스프레임 효과’는 사건의 특정 측면을 강조하거나 배제함으로써 재현되는 현실을 확대하거나 축소할 수 있고, 호의적으로 보이거나 비호의적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즉, 언론에 의해서 재구성된 뉴스가 정보 취득자에 대한 지침서의 역할을 하여 특정한 현실을 규정함으로써 사건의 원인 규명과 도덕적 판단 및 대안 제시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중국의 인권문제, 복잡한 FTA, 양국의 외교문제에 정통하지 않거나 적극적으로 인지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에 관한 뉴스의 정보는 전적으로 구독자의 인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에 대한 기사는 지금보다 더 심층적이고 입체적이어야 한다. 특히, 중국 관련 보도는 팩트에 대한 사실검증을 넘어서는 역사적 흐름과 통찰력을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중국이 역사적으로 큰 나라이고 우리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는 20년이라는 짧고 약한 외교관계를 가진 대상 국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서울신문의 한·중 수교 20주년 관련 기사에서 김흥규 성신여대 교수는 “현재 한·중의 정치적 신뢰도는 최저점으로 평가”되며, “중국의 국내적 어려움이 예상되는 2015년 이후의 양국 관계는 폭발적인 갈등 상황으로 전환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언론은 중국이 대국임에도 왜 인권문제에서 미국의 내정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 분명한 이유를 알릴 필요가 있다. 왜 중국은 여러 국가 가운데 한국과 FTA를 체결하려는지 그리고 한·중 관계는 성숙했지만 여전히 모호성과 갈등이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 서로 한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도전을 극복하는 데 어떤 장애가 있는지 체계적으로 분석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아직도 우리는 중국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20년 세월 동안 중국에 대한 피상적인 이미지 확인과 이데올로기적 관점에만 매몰되어 있지, 중국의 시각에서 중국을 보지 못한 것이다. 지금은 중국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심층적인 분석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미래의 중국은 미국을 능가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우리의 언론이 미국에 대해 신경 쓰는 것만큼 중국을 다루어야 한다. 미국적 시각이 아닌 다른 차원의 시각으로 중국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누적된 중국에 대한 정보와 분석 결과는 우리가 중국에 대해 가진 중립적이지 못한 시각을 바꿔줄 것이고, 냉정하게 중국을 바라보게 하는 힘을 길러줄 것이다. 언론은 중국이 사회주의에 찌들어 있고, 부정부패가 만연하며, 더럽고, 비위생적 음식만을 만들어 내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부터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 [더 꼬인 천광청 사건] 천광청 “美정부, 대사관서 나가라고 압박… 나를 속였다”

    모든 것은 아름다워 보였다. 지난 2일 낮 중국의 시각장애인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이 베이징의 미국 대사관을 나선 이후 미국 정부는 그의 ‘용기’를 칭송했다. 국무부 당국자는 “천광청은 자신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견하면서도 중국에 남겠다고 결정한 애국자”라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천에게 전화를 걸어 격려하자 그가 서툰 영어로 “당신과 키스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우리가 해낸 일이 자랑스럽고 중국 정부 협상 상대자들에게도 감사한다.”며 피아(彼我)를 모두 치켜세웠다. 그런데 이런 ‘감동의 드라마’는 불과 하루 만에 ‘막장 드라마’로 급전직하했다. 병원에 입원한 천광청이 3일 낮 AP, CNN 등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변 위협을 이유로 “미국으로 보내달라.”고 180도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천은 미 정부가 자신을 속였다며 배신감을 토로하기까지 했다. 대사관에 있을 때 미국 측이 “대사관에서 나가지 않으면 가족들이 중국 공안에 맞아 죽을 것”이라고 압박해서 어쩔 수 없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측 인사들이 나와 계속 함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해놓고 병원에 입원한 직후 모두 사라졌다.”고 비난했고 “클린턴 장관에게 키스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으며 보고 싶다고 말했을 뿐”이라고도 했다. 전날 기자들 앞에서 천광청 사건 타결을 자랑하던 미 정부 당국자들은 졸지에 그의 주장을 일일이 해명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국무부는 “천광청은 대사관에 있을 때 시종일관 중국에 남아 공부와 변호사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으며 대사관을 나서기 직전에도 우리가 3차례 이상 ‘괜찮겠느냐’고 거듭 의사를 확인했다.”며 “중국 정부도 천광청의 신변 안전을 확약했다.”고 강조했다. 또 대사관을 떠나라는 압박을 받았다는 천의 주장을 부인했다. 미 당국자들이 병원에 입원한 뒤에도 같이 있었고 앞으로도 천의 상태를 주시할 것이라고도 했다. 천이 클린턴 장관에게 키스하고 싶다고 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천이 대사관을 나오기 전 그가 중국에 남고 싶어 한다는 관측이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고 미국으로 데려가는 게 미국으로서도 속 편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황상 미국이 굳이 거짓말을 해가면서까지 천을 대사관에서 몰아냈을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천의 심경은 병원에 입원한 뒤 외부적 요인에 의해 변한 것으로 보인다. 천의 친구와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그의 변심은 ① 병원에서 만난 그의 부인이 미국행을 종용했거나 ② 그의 친구들이 중국 정부를 어떻게 믿느냐며 미국행을 부추겼거나 ③ 막상 대사관을 나오자 공포감이 엄습한 게 원인일 수 있다. 이날 국무부 언론 브리핑에서는 천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냐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국 내 인권운동가들의 비판은 미국 정부로 향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천을 다시 탄압할 게 뻔한데 미국이 순진하게도 중국의 감언이설에 현혹돼 그를 사지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미·중 전략 경제대화 개막 전에 서둘러 일을 매듭지으려다 일을 그르쳤다는 지적도 곁들여진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美 대사관 피신 中인권변호사 천광청 신병처리 어떻게?

    ■ 궁지몰린 中 중국 당국으로부터 탄압받아 온 천광청(陳光誠) 인권 변호사의 미 대사관 피신 사건에 대한 중국 정부의 처리 향방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천 변호사의 피신은 당국이 납치와 감금, 투옥 등 불법적인 수단으로 공산당을 비판하는 민주 인사들을 탄압해 왔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에 최근 보시라이(薄熙來) 사건을 처리하면서 유독 법치주의를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중국 정부로서는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천, 망명보다 중국 내 활동 원해 중·미 양국 모두 사태의 조기 해결을 바란다는 점에서 이르면 오는 3일 전략경제대화가 시작하기 전에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반중 인권단체 차이나에이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BBC 등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29일 당초 일정보다 앞당겨 베이징에 도착한 것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중국이 미국 정부로부터 천 변호사 문제와 관련해 압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사태의 조기 해결에 힘을 싣고 있다. 미국은 당장 북한, 시리아, 이란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의 도움이 필요하고 이에 따라 공개적으로 중국을 자극하지 않을 것이며, 중·미 전략경제대화도 경제와 통상을 주제로 제한된 범위 내에서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 정부의 압력 여부와 상관없이 천 변호사의 뜻대로 움직여 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미국의 영사 보호를 받고 있는 천 변호사 역시 중국의 지시에 순순히 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에 따라 결국 천 변호사가 미국으로 보내지는 방안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천, 美 로크 中대사와 만나” 천 변호사는 톈안먼 사태 이후 수배령이 내려졌던 팡리즈(方勵之)나 국가 기밀을 제공해 ‘배신자’로 규정된 왕리쥔(王立軍)의 사례와 다르다는 점에서 중국 정부의 처분을 기다리는 입장이 아니다. 더욱이 천 변호사는 망명 의사를 밝힌 적이 없으며 오히려 중국에서 기본권과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자신과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한 관료·부패인사들을 처벌해 달라며 법치주의에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중국 당국으로 하여금 아킬레스건인 인권 문제를 스스로 인정하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천 변호사의 뜻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떨어진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차이나에이드의 푸시추(傅希秋)는 “천이 자유로운 중국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중국 정부가 조치를 취해 줄지가 향후 그의 거취를 결정할 관건”이라고 전제한 뒤 “중국이 그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없다면 해외에서 편안히 생활할 수 있도록 중·미가 함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의 탈출을 도운 후자(胡佳)는 “천 변호사가 게리 로크 주중 미 대사와도 면담했다.”고 밝혔다고 명보가 전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고민중인 美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입장에서 인권 변호사 천광청 문제는 중국에 양보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우선 천 변호사를 중국 정부에 아무 조건 없이 넘겨 주는 일은 오바마 정부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꼴이다. 미국 정부는 줄기차게 중국 인권 문제를 제기해 왔으며, 가깝게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지난해 11월 천 변호사의 가택 연금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을 쏟아냈다. 재선을 앞두고 미국 여론을 신경 써야 한다는 점도 오바마로서는 부담이다. ●3일 전략경제대화 전 봉합 총력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지난 27일 성명에서 “미 당국자들은 천광청과 가족들이 또 다른 박해에서 보호받도록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이 문제를 선거 이슈화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면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두 가지 선택지가 남는다. 하나는 중국 정부로부터 천 변호사를 처벌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신병을 넘겨주는 것, 다른 하나는 중국 정부로부터 천 변호사의 망명을 얻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첫 번째 방안은 중국 정부 입장에서 사법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화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따라서 두 번째 시나리오가 더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미 CBS방송도 “미국이 천광청과 그의 가족을 미국으로 망명시키는 쪽으로 중국과 타협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망명을 허용하기도 쉽지 않다. 정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데다 천 변호사의 망명이 제2, 제3의 망명 사태를 부르면서 체제 기반이 흔들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中, 천 망명거부땐 외교갈등 장기화 그동안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당국자들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면전에서까지 인권 문제를 제기할 정도로 거침이 없었다. 그러던 그들이 이 문제에 관해 지금까지 함구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중국의 양보를 얻어 내는 게 간단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워싱턴에서 미·일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전에 부랴부랴 중국 방문길에 오른 데서도 정면 대결보다는 중국을 달래 망명을 관철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만약 중국이 망명을 거부한다면 천 변호사의 미 영사관 체류가 길어지면서 양국 간 장기 외교 갈등 이슈가 될 가능성도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천 변호사 본인이 망명보다는 중국 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이라면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 정부는 물론 천 변호사도 설득해야 하는 이중과제를 안은 셈이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美망명 中인권변호사, 제2 팡리즈 되나

    오는 3일 중·미 전략경제대화를 앞두고 중국 당국으로부터 장기간 탄압을 받아온 인권 변호사 천광청(陳光誠)이 베이징 소재 미 대사관으로 망명해 미국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가뜩이나 팽팽한 양국 사이의 갈등이 심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에 본부를 둔 반중(反中) 인권단체 차이나에이드 측은 시각장애인인 천 변호사가 현재 미국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미·중 양국은 현재 이 문제를 놓고 고위급 회담을 벌이고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밝혔다고 로이터 등 외신들이 28일 보도했다. 앞서 중국의 반체제 사이트 보쉰(博訊)은 “천 변호사가 26일 베이징의 미 대사관으로 들어갔다.”고 27일 전했으나 중국 외교부는 물론 미국 당국도 이를 정식으로 확인해 주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천 변호사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직후 미 국회 및 시민단체 등의 압력으로 미국 정부를 움직여 망명에 성공한 반체제 인사 팡리즈(方勵之)의 뒤를 밟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서방 언론들은 중국 내 인권운동가들의 말을 인용해 천 변호사가 오랫동안 중국의 열악한 인권 문제를 위해 싸워온 유명 인사란 점을 감안할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그를 보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 백악관 측은 앞서 실각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 서기의 비리 자료를 가지고 지난 2월 청두(成都) 미 영사관을 찾은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 부시장의 망명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문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반대파로부터 ‘중국에 약하다’는 공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중국 측도 공산당의 치명적인 약점인 인권 문제로 양국 관계가 더욱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란 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방점을 둘 것으로 점쳐진다. 이와 관련, 중·미 간 전략대화를 앞두고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천 변호사 문제로 방중 계획을 취소하진 않을 것이라고 미 외교부 관계자가 28일(현지시간) 밝혔다. 추이톈카이(崔天凱) 외교부 부부장(차관급)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천광청 사건으로 중·미대화가 연기될 수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화는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답했다. 베이징 인권 변호사 푸즈창(浦志强)은 “천 변호사는 외부와 격리되어 온 탓에 중·미 대화가 열린다는 것을 몰랐고 그가 최근 탈출을 감행한 것도 이 일정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천 변호사는 산둥(山東)성 정부가 산아 제한을 위해 주민들에게 낙태와 불임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폭로해 4년 동안 복역했고 2010년 9월 석방된 이후 가택에 연금됐으나 최근 탈출에 성공한 뒤 원자바오 총리를 상대로 요구사항을 밝힌 내용을 담은 동영상을 보쉰 사이트에 올렸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열린세상] 건국 아버지들의 공과/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열린세상] 건국 아버지들의 공과/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공화국을 세우기 위한 일제하 독립운동전략은 두 방향에서 추진됐다. 1919년부터 6년간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은 외교를, 그리고 1940년부터 5년간 주석을 맡았던 김구는 무장투쟁을 통해 독립을 이루려고 했다. 1941년 6월 김구는 이승만을 임정을 대표하는 주미외교위원장 겸 주미 전권대표로 임명했다. 방법론은 달랐지만 두 사람은 그때 나라의 독립을 위해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러나 광복을 맞은 조국은 미·소 양국에 의해 분할 점령됐으며, 1945년 9월 20일 스탈린은 북한에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이승만과 김구가 귀국하기도 전에 이미 남북의 분단은 결정되고 말았다. 1945년 12월 한반도에 대한 4개국 신탁통치를 결정한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가 전해지자 김구와 이승만은 임시정부를 모태로 한 반탁운동의 선봉에 함께 나섰다. 반공·반소·반탁 노선을 함께 취한 두 사람은 1946년 6월 이승만이 단독정부 수립을 촉구한 정읍선언을 내면서 갈라섰다. 5·10 총선거를 코앞에 둔 1948년 4월 19일 김구는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連席)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38선을 넘었다. 그러나 이 회의는 그가 김일성에게 보낸 2월 16일자 서한에서 제안했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 정치지도자 간의 정치협상’, 즉 책임 있는 당국자끼리 머리를 맞대고 현안을 논의하는 구수(鳩首)회담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북회담 문제는 세계에서 소련 정책을 아는 사람은 다 시간을 연장해 공산화하자는 계획에 불과한 것으로 간파하고 있는데 한국 지도자 중에서 홀로 이것을 모르고 요인회담을 지금도 주장한다면 대세에 몽매하다는 조소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이승만의 논평(동아일보 1948년 4월 2일자)은 정곡을 찌른다. 1945년 말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우익 탄압, 이듬해 6월 폴란드 공산당의 국민투표 결과 조작, 그리고 1947년 8월 20%밖에 득표하지 못한 공산당이 소련군의 비호하에 정권을 강탈한 헝가리 사태 등을 볼 때, 당시 남북협상은 북한의 통일전선 전술에 이용될 가능성이 컸다. “조국은 지금 독립의 길이냐, 예속의 길이냐, 통일의 길이냐, 분열의 길이냐 하는 분수령의 절정에 서 있다. 우리의 지표와 진로는 가능·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라 가위(可爲)·불가위의 당위론인 것이니 올바른 길일진대 사력을 다해 진군할 뿐일 것이다.” 북행(北行) 하루 전날 나온 문화인 108인의 지지성명처럼, 김구는 실패할 줄 알면서도 민족통일의 대의를 위해 북으로 갔다. “공산주의나 여하한 주의를 가진 것을 불문하고 외각(外殼)을 벗기면 동일한 피와 언어와 조상과 풍속을 가진 조선민족이다.” 북행 4일 전 연설은 그가 남북협상의 성공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음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이미 결의문은 ‘채택’돼 있었다. 4월 23일에 나온 결의문은 ‘연석회의 개최와 관련해서 김일성에게 조언을 제공할 데 대하여’라는 4월 12일자 스탈린의 지령을 그대로 베꼈다. 4월 28일과 29일에 열린 김구·김규식·김일성·김두봉 ‘4김 회담’과 30일에 나온 ‘남북조선 제정당 및 사회단체 공동성명서’도 구속력 없는 휴지 조각과 다름없었다. 그의 구상이 성공하려면 김일성과 김두봉이 자주적 결정권이 있어야 했지만, 당시 북한은 소련 군정 치하였고 공산진영의 황제였던 스탈린의 지령은 불가침의 성헌(成憲)이었다. 이미 정읍선언 네 달 전인 1946년 2월에 북한은 이미 실질적 정부인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를 세웠으며, 1948년 2월에는 ‘조선인민군’을 창설하고 ‘헌법’ 초안도 공표한 상태였다. 김구의 북행으로 북한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 소련의 정치공작은 성공한 반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큰 상처를 입었다. 그때 김구는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우(愚)를 범했고 이후 이승만은 독재의 과(過)를 범했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하면 다른 것이 보인다. 대한민국 건국사를 임정이 수행한 민족독립운동의 역사와 연속선상에서 파악할 때, 이승만과 김구 모두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로 우리 역사에서 함께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집트, 유력 대선후보들 출마 봉쇄

    이집트의 유력 대권 주자 3명이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출마 자격을 박탈당했다. 지난해 2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하야 뒤 혼란이 계속된 이집트 정국은 다시 요동치게 됐다. 이집트 선거위원회는 14일(현지시간)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대선 후보 10명의 출마 자격이 박탈됐다.”고 밝혔다. 10명 가운데는 무바라크 정권 시절 정보기관 수장을 지낸 오마르 술레이만 전 부통령, 무슬림형제단의 카이라트 알 샤테르,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가 하젬 아부 이스마일 등 중량감 있는 후보 3명도 포함됐다. 이들 후보는 48시간 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며, 선거위원회는 오는 26일 최종 후보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술레이만 전 부통령은 선거법상 필요한 15개 주의 지지 성명을 받지 못해 후보 등록이 취소됐다. 무바라크 정권의 2인자였던 그는 “출마하지 않겠다.”는 애초 약속을 번복하고 이번 달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그의 출마 소식이 알려지자 수천명의 이집트인이 카이로 시내로 쏟아져 나와 출마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갑부 사업가이기도 한 알 샤테르 후보는 무바라크 정권 시절 테러를 주도한 혐의 등으로 수감됐다가 지난해 3월 사면받아 풀려났다. 그러나 이집트에서는 법적으로 6년이 지난 이후에만 출마할 수 있어 후보 등록이 취소됐다. 그는 자신이 출마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CNN이 전했다. 하젬 아부 이스마일은 어머니의 국적이 미국이라는 사실이 확인돼 출마를 제한받게 됐다. 출마 불허 결정을 받은 후보들은 선거위원회를 일제히 비난했다. 알 샤테르 후보 측 대변인인 알라 아야드는 이번 발표에 대해 “정치적 결정”이라고 비난하며 무슬림형제단이 조직한 자유정의당(FJP) 측 변호인이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야아드는 또 “이번 결정으로 거리의 긴장감이 다시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스마일 후보 측도 “우리의 지지자들이 분노했으며 출마가 허용될 때까지 거리를 점령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당초 후보로 등록했던 23명 가운데 암르 무사 전 아랍연맹 사무총장, 아메드 샤피크 전 총리, 온건파 이슬람 주의자인 압델 모네임 아볼포토 등 13명은 후보 자격을 유지했다. 이집트 대선 1차 선거는 다음 달 23~24일 열린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사설] 4·11 선거사범 수사 엄정·신속하게 끝내라

    검찰이 4·11 총선 이후 선거사범 처리에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19대 총선 다음 날인 엊그제 국회의원 당선자 3명의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들을 포함해 79명의 당선자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고 덧붙였다. 선거사범 공소시효가 6개월(10월 11일)로 짧다는 점을 감안해도 검찰의 행보는 이례적으로 신속하다. 여야 가리지 않고 공정하고 엄정하게 수사해 뒷말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19대 총선 선거사범은 규모가 커지면서 당선자 선거사범이 늘어난 것이 특징이다. 선거일까지 입건된 선거사범은 1096명으로 18대의 792명을 훨씬 웃돈다. 치열한 공천경쟁으로 선거 초기부터 과열양상을 빚었기 때문이다. 19대 선거사범 당선자 79명 가운데 불기소된 5명을 제외하면 수사대상자는 74명이나 된다. 이는 전체 지역구 당선자의 30.1%에 이르는 것으로, 이들은 대법원에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될 경우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유권자들에게 음식 또는 자서전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새누리당의 김근태(충남 부여·청양) 이재균(부산 영도) 당선자와 민주통합당의 원혜영(경기 부천·오정) 당선자도 수사결과에 따라 의원직을 잃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외에 당선인의 배우자·직계존비속 등이 연루된 3건까지 포함하면 당선무효 사범은 모두 77명으로 늘어나 역대 최대다. 18대 국회에선 37명의 선거사범 의원 가운데 15명이 의원직을 잃었다. 이를 감안하면 수사결과에 따라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법원과 검찰은 선거 전 4·11 선거사범을 신속히 처리하고 선거사범에 대한 양형도 엄격히 하기로 했다. 당초 방침대로 선거사범을 이른 시일 내에 엄정하게 처리해 정치지망생이나 당선자들에게 불법선거운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확고하게 심어줘야 한다. 특히 대법원은 허위사실 유포, 금품 살포 등 주요 선거범죄에 대한 당선 무효형 이상의 양형 기준을 하루 빨리 제시해 혼선이 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치권도 야당 탄압이라며 물타기를 하거나 여당 프리미엄을 이용해 당선무효형 이하로 형량을 낮추려는 꼼수를 부려서는 안 될 것이다.
  • 남극의 눈물은 인간 탓인가? 사람만이 닦아줄 수 있어요~

    남극의 눈물은 인간 탓인가? 사람만이 닦아줄 수 있어요~

    대뜸 나오는 반론은 이렇다. 그러면 성장하지 말자고? 747 같은 허황된 대선 공약은 젖혀 두고서라도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3.6%에 ‘그쳤다’는 한숨이 나오는 사회에서? 온 국민이 은행 돈으로 아파트 평수 늘리기를 꿈꾸는 나라에서? 적게 벌어 나누고 사는 삶, 꼭 필요한 것만 만들어 사는 세상, 자발적인 가난 같은 것들을 입에 올리긴 쉽다. 멋있어 보인다. 그리고 뛰어난 개인은 개별적으로 실천할 수도 있다. 그 결단, 박수받을 만하다. 그러나 사회 전체에 대한 적용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부도덕하다는 소리까지 들을는지 모른다. 참여정부 정책 브레인이었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개마고원 펴냄)는 책에서 속시원하게 이렇게 말했다. “(저성장 혹은 마이너스성장 하자는) 그런 철학자 같은 얘기는 은퇴 뒤에나 하라.”고. 누구든 그런 고상한 얘기를 할 수 있지만 “최소한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된다. 저성장의 아픔은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간다.”고. 보수 언론이, 그것도 노무현 정권의 브레인에게 환호한 이유다. 물론 성장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성장이되 어떤 성장이냐가 관건이라는 점은 뭉갰지만. 구체적 한국 상황이 거북스럽다면 논의를 전 세계적 차원으로 높여 봐도 된다.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에 비유한 ‘가이아’ 이론으로 유명한 제임스 러브록은 메탄가스 종말론자다. 가이아를 질식시키는 메탄가스 문제를 파고들다 축산 동물에 주목했다. 인간이 육식을 하다 보니 소 같은 거대 가축을 기르게 되고, 그 가축이 메탄가스를 뿜어내는 동시에 그 동물 먹여 살리느라 식료품 가격이 뛰고 숲이 없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해법은? 소 한 마리 죽이고 대신 나무 한 그루 심기. 그런데 이 방법은 척 봐도 좀 치사하다. 그 소를 먹기 위해 키운 건 사람이다. 깃털더러 몸통이라는 격이다. 이 문제에 부딪힌 생태학자들은 연구 끝에 답을 내놨다. 그렇다면 전 세계 인구 규모를 신석기시대 수준으로 축소하자는 것. 구체적 수치도 추정해 내놨다. 대략 4000만명, 그러니까 남한 인구 정도다. 팔은 안으로 굽으니 한국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을 한 명씩, 차마 직접적 표현을 못 하겠으니 처리(?)하면서 나무를 심자고 주장해야 할 차례인가. 생태환경론의 근본주의적 주장은 근본주의 아니랄까봐 사람들에게 안기는 불편함까지도 근본적이다. 물론 생태환경론이 전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많은 환경상의 여러 문제점들로 인해 고통받고 분노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 한들 생태환경론자들의 주장을 따르자니 마뜩잖다. 어서 빨리 문명의 대전환에 착수해야 한다는 종말론적 죄의식을 강요당하다 보니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묘한 반발감까지 일어난다. 요아힘 라트카우의 ‘자연과 권력’(이영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은 이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저작이다. 저자는 독일 빌레펠트대 근대사 교수다. 1970년대부터 과학기술사의 입장에서 원자력산업의 이면 들추기를 연구 테마로 삼아 왔다. 정부와 언론이 합세해 원자력에 대한 환상을 심어 주던 시절 반핵을 주장했으니 독일 정부로부터 탄압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저자는 근본주의적 환경생태론에 대한 여러 반론들을 받아들인다. 혹시 현대 사회의 문제점 때문에 고대와 중세보다 현대의 환경파괴를 더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태환경론에 늘 달라붙는 ‘지속가능한’(Sustainable)이란 수식어 역시 결국은 인간중심주의 아닌지, 오직 인간만이 자연을 해치는 요인인지, 인위가 개입되지 않은 자연 그 자체만의 조화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 그것은 혹시 처녀성 숭배의 또 다른 이름은 아닌지 등등.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를 근대사회의 키워드로 잡았지만, 어쩌면 근대 이전이 더 위험 사회였을지도 모른다는 질문을 던진 셈이다. 저자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환경을 키워드로 인류사 전체를 조망해 본다. 해서 환경사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늘 환경과 싸우고 협력하고 타협하며 살아 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퓰리처상을 받아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김진준 옮김, 문학사상 펴냄) 같은 과학문명사 저서를 떠올리게 한다. 지리학과 생리학을 토대로 삼고 있는 다이아몬드가 고고학적, 생물학적, 문화인류학적 증거자료들을 광범위하게 동원한다면, 역사학에서 출발한 저자는 여기에다 물질문명과 지중해 세계라는 키워드로 전체사를 제시한 페르낭 브로델, 수력사회론(책에서는 ‘수압사회’로 번역됐다)을 통해 동서양의 정치체제 비교를 진행했던 칼 비트포겔 같은 사회경제사의 대가들까지 얹어 놨다. 정치 문제를 끌어들인 셈인데 그 덕분에 차별되는 지점도 나온다. 가령 다이아몬드가 ‘의도하지 않은 자살’이란 개념으로 자연을 함부로 부린 문명은 결국 퇴장당했다는 점을 지적한다면, 저자는 “생태학이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맥락에서 분리되면 실제로는 설명력이 극히 미미한 이데올로기가 된다.”고 본다. 즉 자연 고갈로 닥쳐 오는 문명의 위기에 주목하는 것만큼 그에 대한 인간의 대응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에 대한 비판에도 적용된다. 저자는 가이아 이론에 대해 “크게 매료됐지만 역사가로서 그 생산적인 면이 어딨는지 찾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차라리 지구를 다양한 작은 생태 시스템들의 집합으로 상상하고 싶다.”고 해 뒀다. 생태환경론이 주장하는 종말론에서 한 발 뺀 셈이다. 대신 “결국 환경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임”을 확인하면서 책을 끝낸다. 저자는 이제껏 제출된 증거 자료들을 모두 검토해 보자는 입장이기 때문에 똑 부러지는 결론이나 대안을 제시하진 않는다. 거꾸로 그렇기에 인류 역사 전체를 되돌아보면서 각 분야의 연구성과들을 빠짐없이 인용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것은 큰 장점이다. 한국에서 요즘 유행하는 ‘지구사’(Global History)의 본거지 미국세계사학회가 주는 도서상을 2008년에 받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두 개다. 밥과 똥. 제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인간은 밥과 똥의 순환체계 안에 있는 존재라는 점을 음미해 보는 것도 좋다. 3만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反이민·反이슬람” 사르코지 재선 승부수

    “反이민·反이슬람” 사르코지 재선 승부수

    오는 22일(현지시간) 프랑스 대선 1차투표를 앞두고 재선 가도가 불투명한 니콜라 사르코지(얼굴) 대통령이 이슬람 성직자와 급진주의자를 색출, 국외로 추방하는 등 보수 우익 노선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알제리계 이민 1.5세대인 무함마드 메라의 툴루즈 연쇄 테러를 계기로 유권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반(反)이민, 반이슬람 정서를 파고들겠다는 전략으로 여겨진다. AFP와 BBC 등에 따르면 프랑스 내무부는 2일 알제리 출신 이슬람 급진주의자와 말리 출신의 이맘(이슬람 성직자) 등 2명을 각각 고국으로 내보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이맘과 튀니지 과격분자 등 3명도 추가로 추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방된 말리인 이맘 알마니 바라지는 반유대주의를 전파하고, 프랑스에서는 금지된 부르카 착용을 지지했다는 혐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알제리 출신인 알리 벨하다는 1994년 모로코 마라케시 총격 테러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프랑스에서 18개월간 복역한 인물이다. BBC는 내무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이슬람 극단주의자 등의) 추방 행렬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클로드 게앙 내무장관은 BFM TV에 출연해 “우리는 이슬람 극단주의를 용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테러 전담반 프랑수아 몰랭 검사는 기자회견에서 “‘포르사네 알리차’(자부심의 기사들)라는 이슬람 무장단체 대원들이 작년 9월 모임에서 남부도시 리옹에 있는 판사를 납치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실행 단계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르 피가로 신문 등은 납치 대상이 유대인 판사인 알베르 레비였다면서 그와 가족은 이후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아왔다고 전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한층 격앙된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2일 프랑스 동부의 낭시에서 가진 선거 유세에서 “프랑스의 가치에 반하는 의견을 표명하는 사람들은 모두 프랑스 영토 바깥으로 쫓겨날 것”이라면서 “어떤 예외도, 관용도 없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프랑스 당국과 국내중앙정보국(DCRI)이 툴루즈 연쇄 테러 용의자인 메라의 입국을 막지 못한 이유로 비난을 받고 있으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과격분자를 색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메라의 형 압델카데르를 메라를 도왔다는 혐의로 이미 기소했고, 메라가 타고 다닌 스쿠터를 훔치는 데 연루된 제3의 인물을 쫓고 있다. 당국은 또 6일 파리 교외에서 열리는 이슬람기구연맹(UOIF)에 참석하려던 이슬람 성직자 4명의 입국을 금지시키는가 하면, 여성인권 탄압 등을 이유로 사우디 출신 이맘 등의 입국을 불허하기로 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달 30일 툴루즈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기습작전을 벌여 19명의 이슬람 과격주의자와 성직자들을 체포하고 AK 소총을 비롯한 여러 점의 무기를 압수했다고 밝혔다. 이들 가운데 16명은 여전히 구금된 상태다. 한편 툴루즈 연쇄 테러가 일어나기 직전인 지난달 6일 여론조사에서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1차 투표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에게 2% 포인트 뒤질 것으로 전망됐지만, 최근 1차 투표 여론조사에서는 사르코지가 근소한 차로 역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다음 달 6일 결선투표에서는 지난달에 이어 이번 조사에서도 여전히 사르코지가 8% 포인트 뒤질 것으로 예측됐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사제 서품 60주년 맞는 원로신학자 백민관 신부

    사제 서품 60주년 맞는 원로신학자 백민관 신부

    5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성당에선 특별한 미사가 열린다. 올해로 사제 수품 60주년과 50주년이 된 신부 5명을 위한 축하미사. 이가운데 백민관(테오도로·85) 신부는 수품 60년을 맞는 서울대교구 원로 신학자다. 사제 생활 60년중 두차례 가톨릭대 신학대학장을 지낸 것을 포함, 50년을 신학교에서 살아 ‘신학교 귀신’‘신학교의 어머니’‘신학교 운영의 백과사전’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수품 60주년 축하미사에 앞서 3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대건관 숙소에서 노 사제를 만났다. 봄비가 을씨년스럽게 오락가락하는 아침, 백 신부는 기자를 반갑게 맞아 숙소로 안내했다. 사제 60년에 대한 특별한 감회라도 전할 성싶은데 노 사제의 소감은 의외로 덤덤하다. “일반인도 환갑이면 인생의 반환점을 돈 것이지요. 사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마지막 정리라도 해야할까요.” 짤막한 인사말이지만 그 무게가 묵직하다. ‘깨어 기도하라.’는 그의 사제 서품 성구 그대로 규칙을 거듭 강조한다. “그저 교회 안의 규칙을 따라 살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그 규칙의 강조는 사제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기준이자 어길 수 없는 삶의 방향일까. 거듭 규칙을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백 신부는 후배, 후학들에게 “자유를 향유하라.”고 늘상 말하는 독특한 사제로 통한다. “자유롭게 산다는게 어디 멋대로 산다는 것인가요. 일반 사회도 마찬가지이지만 규칙을 잘 지켜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숙소 벽면에 제자들이 적어놓은 존경의 인사말들이 빼곡하다. ‘깜찍한 천재’‘쉼 없이 공부하는 부지런한 신부님’…. 제자, 후배들의 인사말은 험한 세상을 밝게 살아온 사제의 궤적을 고스란히 전한다. 황해도 장연 태생으로 상고를 졸업하고 덕원신학교에 입학했지만 날로 드세지는 북한 당국의 교회 탄압과 통제를 못 이겨 걸어서 단신으로 월남한 사제. 어렸을 적 목사가 되고 싶은 꿈을 간직한 채 월남 직후 곧바로 명동성당을 찾아갔단다. 6·25전쟁중인 1952년 12월 피난지 부산에서 전 원주교구장 고 지학순 주교와 단 둘이 사제서품을 받았다. 이후 서울 가회동성당 보좌와 돈암동성당 주임을 맡은 것을 빼놓곤 50년간 줄창 신학교 교수로 살아왔으니 ‘신학교 귀신’이며 ‘신학교의 어머니’란 별명이 따라붙는 게 당연해 보인다. ‘높은 종탑이 있는 성당에서 살면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 사제 서품을 받던 날 백 신부가 세운 두 가지 소원이다. “평생을 신학교에서 보냈으니 높은 종탑이 있는 성당에서 살고 싶다는 소원은 이루지 못한 셈이네요.” 그래도 벨기에와 프랑스 유학을 다녀왔고 신학교 학장을 두 번씩이나 지냈으니 공부하는 사제의 꿈은 이뤘다며 웃는다. 60년 전 ‘공부하는 사제’의 원을 세웠다는 그가 한국천주교에 일궈 놓은 업적은 즐비하다. ‘기도문’과 ‘미사통상문’ 개정작업, ‘공동번역 성경’ 출판을 도맡았던 인물. 그중에서도 무려 15년간 홀로 고된 작업을 벌여 팔순의 나이에 세상에 내놓은 ‘백과사전-가톨릭에 관한 모든 것’(2007년)은 가장 보람된 일이다. 그 작업은 그의 오른쪽 눈을 빼앗아갔지만 한국천주교에선 그 누구도 출간을 시도하지 못했던 걸작으로 기록된다. 이젠 책을 보기도 힘들 만큼 시력이 나빠졌지만 빠짐없이 아침, 저녁 미사를 홀로 드린다고 한다.그래도 “매일 한강변, 성북천을 1시간반쯤 걸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백 신부. “부모 형제들과 떨어져 이산가족이 된 아픔은 큰 고통”이라고 말한다. 뼛속까지 사제인 그도 혈육의 정은 어쩔 수 없나보다. 지난 2009년 ‘백과사전’ 출판의 공을 인정받아 수상한 ‘가톨릭학술상’ 시상식장에서 “하느님의 특별한 가호로 흰머리가 생겼다.”는 말을 남겼다는 백 신부. 그는 인터뷰 말미에 “다시 태어나도 사제가 되겠다.”고 했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미화, 李대통령이 못마땅하다고 하자…

    김미화, 李대통령이 못마땅하다고 하자…

    민간인 사찰 파문이 총선 정국을 흔드는 가운데 논란의 중심에 선 방송인 김제동씨와 김미화씨가 잇따라 인터뷰를 갖고 심경을 밝혔다. ● 김제동 “명계남·문성근이 가면된다. VIP께서 걱정하신다고 하더라” 4일 MBC 노동조합에 따르면 김제동씨는 지난 3일 서울 서래마을 집에서 MBC 노조와 인터뷰를 가졌다. 미국 워싱턴, LA 등지에서 열리는 ‘토크 콘서트’를 위해 5일 출국하는 그는 논란만 키우느니 솔직하게 털어놓고 가자는 의미에서 인터뷰에 응했다고 말했다. 김제동씨는 “2010년 노무현 대통령 1주년 추도식 전후로 방송 담당하는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가볍게 술이나 한잔 하자고 아는 분을 통해 연락해왔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갔고, 두번째 만났을 때는 친해졌다는 생각도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추도식 조금 전이었는데 ‘추도식 가느냐’고 해서 ‘간다’고 했더니 ‘명계남, 문성근 같은 사람들이 가면 좋지 않냐’, ‘제동씨는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냐, ‘VIP’(대통령)께서 걱정을 하신다’고 하더군요. 제가 술이 너무 취해서 ‘말씀드려라, 제 걱정하지 말라고. 전 잘 사니까 다른 걱정하시고 저에 대한 걱정은 접어라’ 그랬습니다.” 그는 이어 “국정원 직원들이 찾아왔어도 나는 (무사히) 집에 가지 않았느냐.”면서 “고문당한다, 끌려간다 그랬으면 추도식 안간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협박이나 탄압이라고 생각 안했다.”고 설명했다. “협박이나 외압 이런 게 겁나는 게 아니고 (사찰 문건에) 내용이 없다, 그게 제일 무섭습니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 거죠. 암묵적으로 느끼는 불안, 사찰 탓이라고 얘기할 순 없지만 사실 제일 무서운 건 그것입니다. 알아서 불안하게 만드는 것. 나는 좌파인가 우파인가 나는 빨갱이인가. 당신들이 말하는 좌파 연예인의 기준이 뭔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그 자체가 심각한 검열이지요.” 김제동씨는 “국정원 직원, 경찰청 정보과 정도 사람들은 별로 겁도 안 난다.”면서 “(지금 MBC 노조와) 인터뷰를 하는 이유도 나는 역으로 보호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제 나를 더 어떻게 하겠냐. 나는 쓱 잡아가면 난리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문건에 제 이름을 적어주셔서, 신문 1면에 제 이름 나가게 돼서 감사합니다. 국가 기관이 조사해도 흠결이 없는 남자다 발표를 하세요. 웬만한 결혼정보회사보다 더 잘 조사했을 것 아닙니까. 나이나 외모 빼고는 큰 흠결이 없다고 발표를 해줘요. 서로 이렇게 퉁치자니까요.” ● 김제동 “국정원 직원이 팬이라며 시골 우리집까지 찾아와” 김미화씨도 3일 MBC 노조가 제작하는 ‘제대로 뉴스데스크’와 인터뷰를 갖고 국정원 직원이 2010년 자신을 두 번 찾아왔었다고 전했다. 김미화씨는 “김제동씨와 똑같은 시기에 국정원 직원이 두 번 찾아와 ‘VIP’가 나를 못마땅해한다고 말했다.”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사찰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한 번은 팬이라며 집까지 오겠다고 해서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국정원 직원이 그렇게 바쁜데 왜 나를 서울에서 한번 보고도 시골에 있는 우리 집으로 그렇게 놀러 오고 싶어 했을까요.” 한편 KBS는 3일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제작진의 자율적인 판단과 관련 연예인들의 동의와 수용, 사과 등으로 일단락된 사안들이 마치 정치적 배경에 따른 것처럼 호도되는 것은 깊은 유감”이라면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과 제작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밝혔다. ● KBS “김미화, 김제동, 윤도현 교체는 본인 동의 얻어 이뤄진 일” KBS는 “김미화, 김제동, 윤도현씨의 프로그램 진행 교체는 내부 모니터상 부적합 의견이나 개인사정, 장기간 진행 등의 이유로 본인의 동의를 통해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KBS는 “김미화씨는 2010년 5월 KBS 심의평가에서 내레이션의 호흡과 발음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문장의 띄어 읽기의 정확도가 떨어져 인지도는 있지만 프로그램에는 크게 도움되지 않는다는 데 따른 결정이었다.”면서 “김미화씨가 사실무근인 이른바 ‘블랙리스트’ 발언으로 KBS의 명예를 훼손해 피소된 뒤 사과와 용서를 구한 적이 있는데 최근 다시 KBS 교향악단이 사장과 친분이 있는 칠순잔치에 사적으로 동원됐다며 트위터에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사과하는 등 근거없이 공영방송의 명예를 함부로 훼손하는 무책임한 행태를 반복하고 있어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김제동씨의 경우 전임 사장 시절인 2009년 10월 가을개편 과정에서 4년간 진행해 온 ‘스타골든벨’이 시청률 부진으로 쇄신이 불가피해 진행자를 교체한 것이며 이후 김제동씨는 재능이 인정돼 ‘해피투게더’와 ‘승승장구’ 등에 정상적으로 출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도현씨 교체는 2008년 11월 프로그램 개편때 자신의 음반작업을 위해 50여일 휴가를 요청해온 데 따른 조치로 본인도 흔쾌히 동의한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사설]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이 정도였다니…

    도대체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끝은 어디인가. 벗겨도 벗겨도 연일 불법과 탈법이 새롭게 드러난다. 장진수 총리실 전 주무관의 잇단 폭로로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에 청와대의 연루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그제 파업 중인 KBS 새 노조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3년간 공직,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사찰한 2600여건의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은 확인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그동안의 전례로 볼 때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이래저래 사건의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공개된 문건에 따르면 2008년 7월부터 3년간 벌인 총리실 윤리지원관실의 불법사찰은 여당 의원의 지인은 물론 시민단체, 문화계, 재벌과 금융계 인사 등 사회 각계를 망라하고 있다. 사찰의 목적도 단순한 사회동향 파악보다는 탄압, 보복 등 정치적 이유에 맞춰져 있다.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에게 반기를 든 정태근 전 한나라당 의원을 만난 개인사업가가 사찰 대상에 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현 정부에 비판적 성향인 서울대병원 노조는 물론 우호적인 선진화시민행동 대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설립한 장학재단도 사찰 대상이 됐다. 총리실 불법사찰 사건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아무리 의욕이 넘치는 정권 초기라 하더라도 민간인 사찰이 가능하다고 여긴 정권 핵심인사들의 안이한 인식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이 이렇게 그릇된 인식을 갖게 된 것은 포항을 중심으로 한 지역인사들이 총리실과 청와대에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엊그제 소환된 이인규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 자칭 몸통이라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등이 모두 동향이다. 지연이 있으면 결속력은 강해지지만 폐쇄성으로 인해 비리에 대해서는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은 지연을 기반으로 권력기관을 폐쇄적·독선적으로 운영하면 정권에 독이 된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뒷감당도 못하면서 민간부문까지 사찰한 무모함과 저돌성, 관리 부재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동안 수차례 지적한 것처럼 검찰은 성역 없는 수사로 이번 사건의 전모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엄정한 수사를 통해 청와대도 초법적 기관이 아니라는 인식을 국민과 공직자들에게 확실히 심어줘야 한다.
  • 그때 민초들은 목숨 대신 신앙을 택했다

    19세기 중반은 세계사에서 보면 사상과 체제의 분수령으로 꼽힌다. 서구의 문명국가들은 보호령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제3세계 국가들을 식민지화했다. 일본은 외세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군국주의의 기점이 되는 메이지 유신을 단행했고 러시아에서는 차르 체제 아래서 사회주의가 태동했다. 조선에도 개화의 물결이 다가왔다. 북에서는 러시아가 교역을 요구했고 프랑스 군대와는 전쟁을 겪었다. ‘조선이 버린 사람들’(이수광 지음, 지식의 숲 펴냄)은 이 시기 중 1866년(병인년)에 집중한다. 천주교를 중심으로 한 당시 정치·사회 현상을 살피면서 ‘1866, 애절한 죽음의 기록’이라는 부제처럼 처절한 천주교 박해 사건들을 파헤친다. 책은 김아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1839년에 순교한 아가타 김아기와 다른 인물이다). 천주교도인 남편 김진은 이미 닷새 전에 양화진에서 처형됐다. 김아기는 배교(背敎)를 종용받으며 모진 고초를 당하고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천주교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다가 결국 참수에 처해졌다. 이 이야기가 마치 드라마처럼 펼쳐지지만 실제로 이 인물에게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왕조실록에 단 한 줄 나와 있다.”는 저자의 설명처럼 언제 세례를 받았는지 어디 출신인지조차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 김아기를 시작점에 둔 것은 그가 책에서 다루려는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과 민초의 삶을 대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은 경제 대부분을 사대부에게 장악당하고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도적이 되는 궁핍한 시기였다. 백성은 굶지 않고 고통도 없는 세상을 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세의 고통도 내세의 행복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 천주교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이 천주교와 함께 빠르게 확산한 배경도 같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부터 흥선대원군의 과감한 개혁 정치와 남인과 유림의 대립, 러시아의 침략 속에서 대원군이 프랑스 신부들에게 요구했던 역할과 그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시작된 천주교 탄압 등을 입체적으로 그렸다. 저자가 낸 대중 역사서가 그랬듯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장면 장면을 소설처럼 풀어내 재미를 더한다. 저자는 책을 쓰기 위해 직접 천주교 성지를 찾아 역사의 흔적을 살폈다. 출판 전에는 책에 들어갈 사진을 찍기 위해 보름 동안 카메라를 들고 곳곳을 누볐다. 그러면서 저자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신념을 지켜내는 숭고함과 종교의 진정성을 느꼈다.”고 했다. 어쩌면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 “그들은 신앙을 위해 귀한 목숨까지 버렸는데 오늘날의 교회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게 책의 핵심일 수도 있겠다. 1만 28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보시라이 부인, 작년 충칭 英사업가 사망 개입”

    “보시라이 부인, 작년 충칭 英사업가 사망 개입”

    ‘왕리쥔(王立軍) 사건’으로 실각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영국인 사망 사건이 왕 전 충칭시 부시장의 청두(成都) 미 영사관 망명을 유발한 직접적인 계기라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된다. 특히 영국 정부가 지난해 11월 충칭 시내 호텔에서 급사한 보 전 서기 아들 보과과(薄瓜瓜)의 영국 유학 당시 보호자였던 자국인 닐 헤이우드의 사인을 조사해 달라고 중국 정부에 정식 요청함에 따라 ‘왕리쥔 사건’이 중국 권부와 연관된 국제적 추문으로 비화되고 있다. 영국 외교부는 자국인 헤이우드가 사망한 뒤 부검 등 충분한 조사 없이 서둘러 화장 처리된 사건에 대한 조사를 중국 당국에 정식 요청했다고 26일 월스트리트저널과 홍콩·타이완 등 중화권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헤이우드가 중국인 부인을 통해 보 전 서기 가족과 가깝게 지냈으며 보 전 서기 부인과는 사업 때문에 다툼이 있었다고 전했다. 또 왕 전 부시장이 헤이우드가 독살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 전 서기에게 보고한 뒤 두 사람 사이가 벌어졌다고 신문은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익명의 소식통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특히 왕 전 부시장과 돈독한 사이로 알려진 남방도시보 계열의 주간지 남방주말(南方周末)의 주차오신(?朝新) 기자는 25일 자신의 웨이보(微薄·중국판 트위터)에서 ‘헤이우드는 지난해 11월 충칭에서 살해됐으며, 왕 전 부시장은 살해 용의자로 구카이라이를 지목했고, 그 탓에 왕 전 부시장은 겸직하던 공안국장 자리에서 쫓겨났으며, 이에 따라 미 영사관으로 망명을 신청했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왕 전 부시장으로부터 받았다고 공개했다가 즉각 삭제 처리했다. 홍콩 명보(明報)도 주 기자의 이 글을 인용하면서 헤이우드가 피살됐고, 사건은 구카이라이와 연관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헤이우드는 12살 때부터 영국의 유명 사립학교인 해로 스쿨에서 유학한 보과과의 보호자 역할을 했으며 지난해 11월 충칭에 들렀다가 호텔에서 급사했다. 당시 경찰은 과도한 음주가 사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헤이우드의 지인들은 그가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면서 주중 영국대사관에 충칭시 경찰이 발표한 사인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영국 외교부는 “웨이보에 떠도는 소문을 믿지는 않지만 헤이우드의 사망에 대해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어 사인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중국 당국에 요청했다.”고 밝혔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반면 중국 외교부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영국 외교부로부터 헤이우드의 사인 조사 요청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관련된 상황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즉답을 피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유혈진압 작전, 알아사드 직접서명”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에 대한 유혈 진압 작전에 직접 개입했음을 보여 주는 정부 기밀문서가 유출됐다. 수천명의 국민이 목숨을 잃는 와중에도 버젓이 명품 쇼핑과 사치스러운 일상을 즐긴 이메일 내용이 최근 공개되면서 안팎의 공분을 사고 있는 알아사드 대통령은 한층 궁지에 몰리게 됐다. ●금요일마다 1000여명 수도입구 봉쇄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시리아의 국가위기관리본부 정보국장이었던 압델 마지트 바라카트가 시리아를 탈출하면서 빼내온 수백쪽 분량의 문서를 인용해 “시리아의 정보·치안 책임자들이 매일 회의를 열어 시위 현황과 진압 계획을 점검했으며, 모든 회의 결과는 알아사드 대통령의 승인하에 실행됐다.”고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일례로 불법 시위자에 대한 징역형을 승인하는 한 문서에 알아사드 대통령의 사인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문서에 따르면 시리아 정부는 반정부 시위가 수도 다마스쿠스로 확산되는 것을 가장 우려했으며, 이를 막는 데 진압 작전의 최우선 순위를 뒀다. 시위 열기가 가장 뜨거운 금요일에는 다마스쿠스로 들어오는 도로마다 검문소를 설치해 외부인 출입을 철저하게 차단했고, 도심 중앙 이슬람 사원에는 1000여명의 경비원을 배치했다. 현재 반정부 인사들과 터키에 머물고 있는 바라카트는 “이 문서들을 보면 누구나 시리아가 살인과 범죄 등 탄압의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며 “시리아의 치안 책임자들은 대통령의 사기를 위해 시위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상들을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병대 탄 러시아 함정 시리아 입항” 한편 특수부대 요원들을 태운 러시아 함정이 이날 시리아 항구에 입항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은 흑해함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대(對)테러부대 요원들을 태운 탱크선이 시리아 타르투스항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BBC도 러시아 흑해함대 소속 탱크선 ‘이만’이 시리아 해안에 정박했으며, 탱크선에는 해병대원들이 타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에 대해 시리아에 정박 중인 선박은 군함이 아니라 보급 임무를 수행하는 화물선이라고 주장했다. 국방부 대변인은 “탱크선 승조원들은 모두 민간인들로 구성돼 있으며, 여기에 경비 요원들이 추가로 타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타르투스는 러시아가 옛 소련 영토가 아닌 곳에서 운용하고 있는 유일한 국외 해군기지다. 러시아 해군 함대는 지난 1월에도 이곳에 정박한 적이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팔다리 잃은 군인, 백발 할머니… ‘오륜기 정신’ 건넨다

    제30회 런던올림픽 개막이 128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성화를 봉송할 주자들이 20일 공개됐다. 런던조직위원회는 8000마일(1만 2875㎞)에 이르는 성화 봉송 경로와 7300명의 주자 명단을 공표했다. 7300명은 조직위와 코카콜라, 로이드보험, 삼성전자 등 스폰서 업체들의 프로그램을 통해 선정됐다. 나머지 700명은 선수와 유명인 위주로 선정되는데 이달 안에 발표된다. 그리스를 출발한 성화는 5월 18일 잉글랜드에 도착, 이튿날부터 70일간 영국과 아일랜드 더블린까지 모두 1018곳을 돌고 돌아 7월 27일 런던올림픽 스타디움에 안착하게 된다. ●5월19일부터 70일간 영국 순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08년 베이징 대회 당시 인권단체들이 중국의 티베트 탄압을 비판하며 국경 밖 봉송 경로에서 집회를 벌인 이후 성화 봉송을 개최국에서만 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아일랜드를 봉송 경로에 포함시키는 예외를 인정하기로 했다. 7300명 중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하다 팔다리를 잃은 퇴역 군인, 최고령 현역 소방수, 자선기금 모금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포함돼 있다. 대다수가 사회공헌 활동을 했거나 주변에 용기와 스포츠맨십을 보여준 국민들로 선발됐다. 최연소 주자는 11세 도미닉 맥거완(오른쪽)이고, 최고령 주자는 오는 5월 23일 100세가 되는 런던 시민 다이애나 굴드(왼쪽) 할머니다. ●100세 굴드 “평지 걷기는 자신” 굴드는 BBC 인터뷰에서 “평지에서만 걷는다면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주자들은 각자 300m씩 나눠 뛴다. 봉송 첫날인 5월 19일 주자로 나서는 해안경비대 자원봉사자 데이브 잭슨(61)은 “첫 주자로 나서게 되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성화를 떨어뜨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계속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잉글랜드 최서단 콘월주 펜잔스의 랜즈엔드 곶에서 시작하는 성화 봉송은 세계인들이 영국의 문화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석구석을 누비게 된다. ●최종 주자는 개막식까지 비밀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성화가 영국인의 95%를 16㎞ 반경 안에 두고 지나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부분 걷거나 뛰게 되지만 일부는 스케이트를 탄 채 봉송한다. 조직위는 그러나 성화 봉송 마지막 이틀 동안의 경로와 올림픽 성화대에 점화할 최종 주자는 비밀에 부쳤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열린세상] 탈북자 문제, 우리 사회가 해결 방안 찾아야/임강택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열린세상] 탈북자 문제, 우리 사회가 해결 방안 찾아야/임강택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탈북자 강제송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면서 한달 넘게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악화되고 있는 탈북자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의 적극적인 관심, 정부의 공개적인 행보, 시민단체와 유명 연예인들의 참여와 호소, 정치인의 단식 등이 시너지 효과를 거둔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의 이러한 노력에 국제사회도 관심을 보이면서, 국제 외교무대에서도 중요한 이슈로 다뤄지고 있어 중국의 변화를 끌어낼 수도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탈북자들이 북송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기존의 노력들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소위 ‘조용한 외교’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북한당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탈북자 일부라도 한국으로 오게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당분간 그조차 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탈북자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공론화 또는 이슈화’와 ‘조용한 외교’라는 정책적 선택 문제가 다시 쟁점화되고 있는 것이다. 탈북자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어떤 것이 보다 효과적인지는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는 탈북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가 같은 생각이라고 본다. 따라서 여전히 중국에 체류하고 있는 수많은 탈북자들이 강제송환의 위험에 직면해 있고 탈북자 송환문제는 이미 국제적인 이슈가 되었다는 현 상황을 출발점으로 삼고, 우리 모두가 염원과 지혜를 모아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힘을 모았을 때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이념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동포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손을 맞잡아야 할 때이다. 탈북자 문제는 발생 원인을 중심으로 다양한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당장에는 강제송환 중단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북한의 장기화된 경제난과 폐쇄적인 정치체제의 경직성 때문에 야기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보다 본질적으로는 남북이 분단되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해법 모색도 단계적이면서 종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획기적인 해결책 마련이 어렵다면, 강제송환 시 생존권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게 될 그룹을 중심으로 일부라도 난민지위를 획득할 수 있도록 중국 정부를 설득하고 국제사회와 공조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에 먼저 와서 정착한 식구가 있는 탈북자들은 송환될 경우 혹독한 탄압이 예상된다. 현재로서는 중국 정부가 탈북자들에게 난민지위를 인정하는 선례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중국이 탈북자들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적으로 북송하지 않도록 ‘정책 전환’을 이끌어 내는 노력도 요구된다. 북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노력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목숨을 걸고 국경선을 넘는 대다수가 굶주림 때문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북한 사회 내부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한쪽에서는 ‘강성대국의 문’을 열겠다고 분주하지만 일반 주민들의 삶은 피폐한 상황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삶에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도적 지원과 경제협력을 고민해야 한다. 통일을 이루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도 확대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수많은 일들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두 가지만 꼽아 보자. 하나는, 우리 사회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상을 극복하는 일이다. 중국에 있는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면서 정작 우리 사회에 있는 그들을 따뜻하게 껴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통일시대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세대들의 통일에 대한 무관심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데도 개선책 마련에 무관심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한들 남북한이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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