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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여성대통령 시대] CNN“문제는 경제였다” AFP“독재자의 딸 선택”

    19일 한국 대선을 주요 머리기사로 올린 세계 주요 언론들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우세한 출구조사 결과를 비롯해 개표 상황을 실시간 긴급 타전하며 “한국에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박 당선자가 내년 2월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경기 침체, 북한과의 관계 재정립, 일자리 확대, 소득불균형 등 갖가지 난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AP통신은 박 당선자의 승리는 아직도 남성 문화가 지배적인 한국에서 첫 번째 여성 대통령의 탄생일 뿐 아니라 전직 대통령의 혈연이 당선된 첫 사례라고 전했다. AFP통신도 한국이 잔혹한 야권 탄압과 빈곤 타개 사이에서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 독재자의 딸을 첫 여성 대통령으로 뽑았다고 긴급 타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 집권했던 독재자의 딸이자 미혼인 박 당선자가 세계에서 가장 성별 격차가 확고한 나라를 이끌게 됐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박 당선자가 육영수 여사 암살 이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청와대로 다시 돌아가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가 앞으로 적대적인 북한과의 관계 재정립과 지난 50년간 연평균 5.5%에서 2%대로 떨어진 경제성장률 등의 험난한 과제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영국 등 주요 서방 언론들은 지난 12일 로켓 발사로 불거졌던 북한 변수는 대선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한 반면 경제·일자리·교육 문제 등이 판세를 갈랐다고 지적했다. 홈페이지에 한국 대선을 메인 기사로 띄운 CNN은 지난 11월 미 대선과 마찬가지로 한국 대선에서도 ‘경제’가 유권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현안이었다고 분석했다. 영국 BBC도 경제와 복지, 일자리 창출 이슈가 한국 대선의 주요 ‘키워드’가 됐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새 정권과 미국·북한의 관계 변화에 특히 주목했다. 박 당선자는 국가 안보와 신뢰를 바탕에 둔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조건 없는 북한 원조 재개 등을 공약으로 내건 문 후보보다 대북 정책에서 더욱 신중한 입장이라는 게 공통된 지적이었다. 외신들은 박 당선자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강력한 지지자라는 점을 부각하기도 했다. 일본 언론들도 하루 종일 한국의 대선 투개표 상황을 상세히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여야 후보 간의 대접전으로 박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면서 한국이 보수 정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면서 박 당선자가 경제 성장도 고려하면서 온건한 재벌 규제를 추진하겠다는 공약으로 보수 중장년층의 지지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또 박 당선자의 일대기, 정책, 한·일 외교관계 전망 등의 기사를 잇따라 내보냈다. 일본 언론들은 박 당선자가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독도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양보하지 않겠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지지통신은 ‘비극의 딸’인 박 당선자가 고도 경제성장과 민주화 운동 탄압이라는 공과 과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부친이 못 이룬 국민 대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NHK는 이날 매 시간 뉴스를 통해 투개표 상황을 전하면서 ‘복지’가 선거전의 화두가 됐다고 보도했다. 고용 정책, 저출산 및 고령화 문제 등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들이 이번 선거전에 쟁점이 됐다고 전했다. 중국의 주요 관영 매체들도 일제히 한국의 대선 결과를 예측·분석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신화통신은 오후 9시쯤 박 당선자의 당선이 확실시된다고 전했다. 관영 중국중앙(CC)TV의 뉴스 채널은 투표가 종료된 오후 6시부터 특별 프로그램을 편성, 대선 동향을 상세히 보도했다. CCTV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당사에 파견한 특파원들을 연결해 실시간으로 대선 뉴스를 전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서울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朴 “성폭력·가정파괴범 뿌리 뽑겠다” 文 “현 정권 유지하려다 치안에 구멍”

    범죄예방·사회안전 분야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흉악범죄 발생 원인을 놓고 ‘정권유지에 경찰력 남용’, ‘사기저하’ 등 엇갈린 문제의식을 보였다. 노후 원전 재활용 여부를 놓고도 찬반이 갈렸다. 흉악범죄 증가 이유에 대해 문 후보는 “국가의 가장 큰 책무가 국민 안전을 지키는 것인데 새누리당 정부는 경찰력을 불법 사찰, 시위 진압, 노동운동 탄압 등 정권유지에 쓰다 보니 치안에 구멍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반면 박 후보는 “경찰력 부족과 사기저하도 폭력 난무의 원인”이라면서 “국민행복을 위해 성폭력·학교폭력·불량식품·가정파괴범을 확고히 뿌리 뽑겠다.”고 말했다. 흉악범죄 대책에 대해서는 두 후보 모두 공통적으로 경찰인원 대폭 증원을 언급했다. 박 후보는 경찰력 2만명 증원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문 후보는 “경찰 증원과 더불어 복지국가를 통해 사회적 좌절을 해소시키는 게 근본 대책”이라고 덧붙였다. 노후원전 처리에 대해 박 후보는 “전문가도 참여시켜 검사를 철저히 해서 국민들에게 자료 공개를 투명히 하겠다.”면서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국민들에게 (재활용 원전 안전에 대해) 확신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후보는 “설계수명 이후엔 위험하다. 무리하게 가동하다 사고 나면 엄청난 재앙”이라면서 “고리 1호기만 해도 반경 30㎞ 내에 부산·양산시청이 있다. 설계수명이 만료되면 일단 가동을 끝내는 게 옳다.”고 반박했다. 이에 박 후보는 “무조건 중지보다 테스트해 보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중지하는 것도 방법이다.”면서 “제가 만약 대통령이 되면 확실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씨줄날줄] 노벨평화상의 역설/함혜리 논설위원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으로 만들어진 노벨상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힌다. 노벨상 6개 부문 중에서도 평화상은 특별한 권위를 부여받았다. 다른 상을 스웨덴 왕립 과학아카데미와 한림원 등에서 선정하는 것과 달리 평화상은 노벨의 유언에 따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선정과 시상 권한을 갖고 있다. 노벨이 유독 평화상만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 맡긴 이유를 두고 온갖 설이 분분하다. 유언장을 작성한 당시 노르웨이는 스웨덴에 합병된 상태였고, 노르웨이가 중재와 협상을 통해 각종 국제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기여했다거나, 노벨이 노르웨이 출신의 작가 겸 평화운동가를 워낙 좋아해 그렇게 정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아무튼 노벨은 유언장에서 ‘국가 간 우호, 군비 감축, 평화 교섭 등에 실질적 공을 세운’ 인물이나 단체에 상을 주도록 했다. 하지만 노벨의 숭고한 뜻과 무관하게 평화상은 정치적 시류에 따라 선정 기준이 정해지는 경향이 강해 종종 비난을 받았다.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도 1939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던 적이 있다. 히틀러는 영국 체임벌린 총리와의 회담에서 더 이상 다른 나라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당시 노벨위원회에서는 이를 히틀러가 야욕을 버리고 평화를 선택했다고 생각하고 후보에 올렸다. 그해 히틀러의 유대인 탄압이 본격화됐으며 2차대전 기간인 1939~1943년 노벨 평화상 시상은 중단됐다. 반면 상을 받고도 남을 공적을 쌓은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다섯 차례나 후보로 추천됐지만 결국 업적을 인정받지 못했다. 최근에는 2009년 수상자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구설수에 올랐다. 취임 8개월밖에 안돼 업적을 쌓을 시간도 없었던 그를 선정한 데 대해 세계 최강국의 현직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고려가 너무 많이 작용했다는 냉소적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올해 유럽연합(EU)의 수상을 두고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재정위기로 남·북 유럽의 갈등이 고조되고, 유로존이 분열 일보직전인 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역대 최악의 노벨평화상’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노벨의 사망일인 지난 10일 오슬로 시청에서 평화상 시상식이 열렸지만 결코 평화롭다고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영국·체코·스웨덴 등 6개국 정상은 일찌감치 시상식 불참을 선언했고, 밖에서는 수상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평화상이 분열의 상징이 되어가는 이 상황을 노벨이 안다면 얼마나 기가 막힐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與 “탕평인사·기회균등위 실천”… 호남지지 호소

    새누리당은 대선을 열흘 앞둔 9일 ‘국민대통합’ 과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며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의 차별화를 꾀했다.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은 오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번 선거는 미래와 민생을 걱정하는 국민대통합 세력 대 실패한 노무현 정권의 부활을 꿈꾸는 친노 세력의 대결”이라고 규정하며 “문 후보는 친노 세력이 조종하는, 친노 후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에는 보수 세력뿐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동교동계 인사들, 민주화 세력에게 탄압받은 세력까지 함께하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김 본부장은 이어 “지역과 계층, 이념으로 갈라진 국민을 통합하고 경제위기와 안보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국민대통합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면서 “이번이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에게는 특별한 비책이 없다. 박근혜 후보의 국민을 향한 진정성이 최고의 전략”이라고도 덧붙였다. 앞서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이 공약으로 밝힌 ‘국정쇄신정책회의’에 각계각층의 전문가를 비롯해 야당 추천 인사를 포함시키겠다는 내용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안 위원장은 “국정쇄신정책회의는 박 후보가 약속한 대통합 탕평인사, 민주적 국정운영, 기회균등위원회 설치 등의 국정쇄신 과제를 선정하고 과제별로 구체적 실천 계획을 수립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누리당은 특히 대통합 실현을 위해 호남에서의 높은 지지를 호소했다. 이정현 공보단장은 “호남 출신의 유력 대선 후보가 없는 18대 대선이야말로 호남의 정치를 바꿔 볼 기회”라면서 “정치변화를 확실하게 보여 줘야 호남이 정치적으로 대접받고 친노 세력에 배신당하지 않고 획기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동서화합의 적임자라고 지적한 박 후보가 18대 대선에서 호남을 중심으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어 호남 정치교체를 이룩해 줄 것을 소망한다.”고 호소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美 상원, 對러 ‘인권법’ 통과… 新 냉전시대 열리나

    미국과 러시아가 ‘신냉전’에 돌입할 기세다. 미 의회가 러시아에 대한 무역 제한법을 폐지하는 대신 인권 실태를 문제 삼는 새 법안을 통과시키자 러시아 정부가 격앙된 반응을 쏟아내며 향후 강력한 대응을 예고했다. 미 상원이 6일(현지시간) 부패와 인권 탄압에 연루된 러시아 관리들의 미국 비자 발급을 금지하고 미국 내 자산을 동결시키는 대(對)러시아 인권법, 일명 ‘마그니츠키법’을 찬성 92표 대 반대 4표의 압도적인 표 차로 통과시켰다고 AP통신 등이 7일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도입을 주도한 것으로, 지난달 하원에서는 찬성 365표 대 반대 43표로 통과됐다. 이 법안은 러시아 변호사인 세르게이 마그니츠키의 이름을 딴 것이다. 마그니츠키는 2008년부터 검사, 판사, 경찰, 세무직원 등 러시아 고위 공무원들이 연루된 2억 3000만 달러(약 2500억원) 규모의 대형 비리 사건을 파헤치다 탈세 혐의로 기소됐다. 조사를 받던 중 2009년 11월 교도소에서 숨졌다. 사인은 당초 심장마비로 알려졌지만 뒤늦게 고문사라는 게 밝혀졌다. 하지만 그의 사망과 관련된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아 국제사회의 비난이 잇따랐다. 법안이 발효되면 마그니츠키의 죽음은 물론 다른 인권 침해 사건에 연루된 러시아 공무원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미국 입국과 금융 거래가 금지된다. 법안을 주도해 온 벤저민 카딘(메릴랜드) 민주당 상원의원은 “오늘 우리는 인권 보호에 앞장서는 미국의 리더십에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즉각 트위터를 통해 “21세기에도 납치와 고문이 합법인 미국으로부터 인권에 대한 불만을 듣는다는 건 가당찮은 일”이라며 “워싱턴은 여전히 ‘냉전’이 진행 중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고 맹비난했다. 콘스탄틴 돌고프 러시아 외무부 인권·민주주의 담당 특별대사는 인권법 통과를 “내정 간섭”이라고 규정한 뒤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알렉세이 푸시코프 러시아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은 보복 조치의 일환으로 “러시아 의원들이 인권을 침해한 미국민들에 대한 러시아 입국 금지와 자산 동결을 담은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인권 사수’라는 명목을 내걸었지만 이면에는 ‘실리’가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 상원은 마그니츠키법을 통과시키는 대신 옛 소련 시절인 1974년 도입된 대러 무역 제한 법안(일명 ‘잭슨 배닉 수정안’)을 폐지했다. 이 법안은 올해 러시아가 가입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는 미국 무역업계에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불만이 높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러 간 무역 정상화를 위해 의회에 ‘잭슨 배닉 수정안’ 폐지와 ‘마그니츠키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해 왔다. 하지만 양국 간 ‘리셋 외교’(화해를 위한 관계 재설정)는 제동이 걸리게 됐다. 오린 하치(유타) 공화당 상원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이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올해 초 영국 의회도 비슷한 내용의 러시아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영국 외무부는 러시아와의 관계 경색을 우려해 도입을 반대한 바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멕시코 새 대통령 취임 날… 곳곳서 反정부 시위

    엔리케 페냐 니에토(46) 멕시코 대통령이 공식 취임했다. 그러나 취임 당일 도심 곳곳에서 그의 취임에 반대하는 시위가 거세게 일어 향후 6년간 멕시코를 이끌 ‘페냐 니에토’호의 험로가 예상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수도 멕시코시티 국회의사당에서 대통령 선서를 한 뒤 인근 국립궁전으로 자리를 옮겨 취임사를 했다. 그는 “멕시코의 경제 발전을 제한했던 악습과 기존 패러다임을 함께 고쳐야 할 때”라면서 사회기반시설 확충, 공교육 개혁 및 범죄예방 등 새 정부가 추진할 13개 주요 역점 과제를 발표했다. 그는 ‘마약과의 전쟁’에 국력을 소진했던 펠리페 칼데론 전 대통령과 달리 경제성장 위주 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저개발 지역의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하고 국가적 빈곤 탈출 계획을 수립하는 등 서민 경제 활성화 계획과 함께 국영석유회사 페멕스에 대한 외국자본 투자 활성화 등 에너지 개혁안이 포함됐다.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또 “새 정부의 첫 번째 목표는 멕시코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밝히면서 마약조직 단속과 함께 범죄자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을 위한 형법 개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제도혁명당(PRI) 소속의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지난 7월 1일 치러진 대선에서 야당 좌파진영인 민주혁명당(PRD)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를 상대로 승리했다. 이에 따라 71년간 장기 집권하다 2000년 국민행동당(PAN)에 정권을 내 준 PRI는 12년 만에 정권을 되찾아 오게 됐다. 그러나 과거 부패와 탄압을 일삼으며 악명을 떨친 PRI가 재집권함에 따라 독재 시절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날 페냐 니에토 대통령의 선서식 장소 안팎에서는 취임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선서식에 앞서 국회의사당에 있던 좌파 의원들은 피켓을 들고 페냐 니에토 대통령이 불법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고 비판하면서 “과거로의 회귀라는 악몽이 시작됐다.”고 규탄했다. 선서식장 밖에서는 시위대가 “제도혁명당 없는 멕시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화염병과 돌을 던지고 경찰이 최루가스로 맞서는 등 격렬히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76명이 부상을 입고 폭력 시위에 가담한 혐의로 92명이 체포됐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조희선기자 hsncho@seoul.co.kr
  • 러·中 큰손들 英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백만장자들이 영국으로 대거 이주해 ‘큰손 투자자’로 떠오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외국인 부호들이 영국의 ‘1급 투자이민비자’를 발급받은 건수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419건으로 전년 동기(235건) 대비 78% 이상 급증했다고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08년 도입된 1급 투자이민비자는 영국에 최소 100만 파운드(약 17억 4000만원) 이상을 투자하는 외국인에게 발급된다. 영국 이민국(UKBA) 집계에 따르면 이 가운데 24%가 러시아인, 23%가 중국인으로 전체의 절반에 이른다. 미국인은 5%에 불과하다. 이들은 주로 런던에 정착해 자녀들을 영국 시민권자로 키우고 있다. 러시아, 중국 부호들이 런던으로 몰려드는 이유는 뭘까. FT는 유럽의 관문으로 다른 나라로의 이동이 쉽다는 점, 안정된 부동산시장이 형성돼 있다는 점, 우수한 사립학교가 많다는 점 등을 부유한 외국인들을 런던으로 이끄는 기본적인 배경으로 꼽았다. 법률회사 핀셋메이슨의 사이먼 호스필드 기업이민팀장은 “외국인들은 런던의 안정된 정치체계와 투명한 법률 시스템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지난 3월 재벌 탄압이 심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3선에 성공하면서 유럽, 그중에서도 영국을 ‘최고의 피난처’ 삼아 비자를 발급받는 부자들이 늘고 있다. 주식, 채권 투자를 위험하다고 여기고 부동산 등 안정형 투자를 선호하는 중국인들은 런던의 부동산 붐에 일조하고 있다. 영국 부동산 업계는 해외 투자자들의 런던 부동산 투자 건수가 대폭 증가했다고 입을 모은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업체 나이크프랭크의 리암 베일리 주택리서치팀장은 “200만 파운드가 넘는 부동산 매입의 60% 이상이 해외 구매자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6)박정양과 안경수

    [선택! 역사를 갈랐다] (36)박정양과 안경수

    박정양(1841∼1905)과 안경수(1853∼1900)! 모두 일반인들에겐 낯선 이름들이다. 그러나 독립협회 혹은 만민·관민공동회와 밀접하게 관련된 인물이라고 하면, 조금은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 안경수는 독립협회 초대 회장이었고, 박정양은 의정부 참정으로 관민공동회를 주도했던 장본인이었다. 자주독립과 자유민권의 열기가 무르익었던 당시의 현장에서 두 사람은 정부와 재야의 대표로서 각각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몸을 던졌다. 하지만, 가문과 신분, 지위가 서로 달랐던 두 사람은 개혁의 수위를 놓고 서로 다른 행보를 이어갔다. 그들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떠한 화두를 던져줄까? ●명문가 출신 전형적 관료형 정치가 박정양 박정양은 조선시대 노론의 대표적 가문인 반남 박씨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한 이래 출세길을 달렸다. 1881년 조사시찰단의 조사로 선발되어 일본의 제도와 문물을 시찰한 뒤 개화정책을 추진하였다. 1887년에는 초대 주미 전권공사로서 청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미국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자주외교를 펼치다가 강제 귀국당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정양은 반청자주외교의 상징적 인물로 부각되었다. 이후 그는 호조판서·내무부독판을 거쳐 전환국관리 겸 교환국관리를 겸직하면서 화폐개혁을 주도하였다. 갑오개혁 기간에 박정양은 일본의 내정간섭에 반대한 친미 반일세력 ‘정동파’의 핵심인물로 군국기무처 회의원·학부대신·내각총리대신 등을 지냈다. 1896년 아관파천 후 그는 의정부 참정대신으로 민심을 수습하고, ‘독립신문’의 창간과 독립협회의 설립을 지원하고 근대적인 제도개혁을 주도해 나갔다. 이처럼 박정양은 줄곧 고종의 신임 아래 정부의 요직을 거치면서 점진적인 개혁을 펼쳤다. 특히 그는 외국인들도 인정할 정도로 청렴결백한 성품으로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한 전형적인 관료형 정치가였다. ●몰락 잔반 출신 개혁론자 안경수 안경수는 조선 중기 이래 몰락한 죽산 안씨 출신으로 농사를 짓다가 서울로 올라와 당시의 세도가인 민영준의 문객이 되었다. 그는 민영준의 추천으로 1884년쯤 일본으로 건너가 방직기술을 배웠으며, 능통한 일본어 실력을 인정받아 1887년 외아문 주사를 거쳐 새로 설치된 주일공사관의 번역관이 되었다. 이어 그는 전환국방판으로 발탁되어 일본을 왕래하면서 화폐개혁의 실무를 맡았는데, 자신을 후원해준 민씨척족의 전횡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취하였다. 따라서 안경수는 1894년 고종과 민씨척족이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국군의 파견을 요청한 데 반대하면서 군국기무처 회의원·탁지부협판 등으로 갑오개혁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그는 일본의 보호국화정책에 반발해 삼국간섭 후 정동파로 돌아섰다. 민비살해사건 후에 고종을 경복궁에서 탈출시키려는 춘생문사건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었다. 아관파천이 성공한 뒤 사면을 받은 그는 독립협회 초대 회장과 대조선저마제조회사 회장 등 주로 재야에서 활동하였다. 이처럼 그는 처음에 일본을 근대화의 모델로 삼은 일본통이었지만, 시세에 민감하게 대처한 현실주의적 개혁론자였다. ●개혁 수위를 둘러싸고 다른 선택 박정양과 안경수는 개화정책의 추진세력으로 전환국과 군국기무처에서 함께 근무했으며, 정동파의 일원으로서 활약한 인연도 있었다. 또 박정양은 정부 대신으로 독립협회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비서 격인 이상재를 통해 독립협회에 관여했던 만큼, 안경수와 여전히 개혁의 뜻을 공유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신분과 정치 역정이 달랐듯이 개혁의 추진과 방법에 대한 입장차이도 존재하였다. 독립협회 회장으로 안경수가 마지막으로 펼쳤던 행동은 1898년 2월 독립협회 회원 135명의 서명을 받아 고종에게 ‘구국운동상소문’을 올렸던 일이었다. 이 상소문은 러시아 등 제국주의 열강의 내정 간섭과 이권 침탈로 국가적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 속에서 대한제국이 재정·군사·인사권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법률을 실행하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황권의 자주(自主)와 국권의 자립(自立)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상소문에 대해 고종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독립협회는 회장을 안경수에서 이완용으로 바꾸는 등 대대적인 임원 개편을 통해 현안에 신속하게 대응해 나갔다. 러시아의 이권 요구 철회, 러시아 군사교관과 재정고문 철수, 그리고 이권양도에 관련된 대신 규탄 등을 요구했던 것이다. 또한, 이를 관철하기 위해 3월 10일 독립협회의 주도로 종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민중대회 또는 정치집회로 평가되는 제1차 만민공동회가 열리게 되었다. 만민공동회에 참가한 1만여명의 시민들은 외교사절단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질서정연하게 회의를 진행하면서 자주의식을 대내외에 과시하였다. 당시 서울 인구가 17만명 전후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실로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단순한 1만명이 아니라 온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만민’이었다. 결국, 고종도 만민공동회에서 드러난 민의를 쫓지 않을 수 없었고, 러시아 측도 기존의 요구를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정부가 외세에 질질 끌려가면서 제대로 오금도 펴지 못하던 상황 속에서 민중의, 민중에 의한, 민중과 국가를 위해 자주와 독립을 쟁취한 쾌거였다. 그 후 독립협회는 국내문제에 관심을 돌려 민권보장 및 참정권획득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쳐나갔다. 그러나 황제권의 축소를 염려한 고종과 수구파는 독립협회를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독립협회는 국권의 상징으로서 황제권을 인정하되 교육과 계몽을 통해 점진적인 제도개혁을 주장하는 윤치호·이상재 등 온건파, 그리고 황제 중심의 권력구조 자체를 부정하고 정부의 대폭적인 인사 개편으로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체제변혁을 도모하려는 안경수·정교 등 급진세력으로 나누어졌다. 그 가운데 안경수는 일본에 망명 중인 박영효와 관련을 맺고 고종의 양위를 추진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이른바 ‘안경수 쿠데타 음모사건’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고종은 정부의 요직에 조병식 등 수구적 인사들을 대거 기용하고, 동시에 독립협회를 탄압·해산시키려 하였다. 위기에 직면한 독립협회는 다시 만민공동회와 합동집회를 열어 수구파 대신들의 탐학을 비판하고 사직을 요구하였다. 학생들과 시민들이 대거 집회에 가담하고 상인들도 철시를 통해 독립협회를 성원하자, 고종은 마침내 수구파 대신을 해임한 뒤 독립협회가 선호하는 인물을 중심으로 새로운 내각을 출범시켰다. 이 개혁내각의 수장은 박정양이었다. 고종을 부정하던 안경수가 정계에서 쫓겨나고 박정양이 정부의 개혁을 담당한 선봉장으로 나섰던 것이다. ●민심을 외면한 고종과 수구세력의 희생양 박정양은 독립협회와 협조하면서 내정개혁과 중추원 개편을 통한 의회 개설을 추진하고, ‘백성과 나라를 편하게 하는’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관민공동회에 참석해 ‘헌의 6조’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위기의식을 느낀 수구파세력은 독립협회가 박정양을 대통령으로 추대해 황제 중심의 전제군주체제를 공화정치 체제로 바꾸려고 한다고 모함하였다. 이에 고종은 “관리와 백성의 마음을 합하자.”는 민심을 외면한 채 박정양을 파면시키고 독립협회의 지도자들을 체포한 데 이어 독립협회마저 해산시켰다. 이로써 황제권을 인정하되 중추원의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황제권을 견제하고 관민협동을 도모해 개혁을 추진하려 했던 역사상 최초의 의회개설운동은 좌절되었다. 박정양과 안경수가 활약했던 시기에 우리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매우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었다.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과 위정자들의 무능·부패로 여러 차례 국망의 위기를 맞이했음에도, 자주독립을 보존하고 근대적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실낱 같은 가능성이 아직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중의 각성된 모습과 저력을 보여주었던 최초의 근대적 민중집회인 만민공동회, 정부 관료와 민중이 머리를 맞대고 국가의 장래를 논의했던 사상 초유의 관민공동회는 한국근대사상 획기적이고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주목할 만하다. 그 역사적 현장에서 박정양과 안경수는 각각 조야에서 방법을 달리하면서도 민의를 바탕으로 시대적 당면과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고종의 무능함을 비판하고 혁신을 도모했던 안경수는 망명길을 떠났고, 고종을 위해 민중과 소통해 점진적 개혁을 추진했던 박정양마저도 쫓겨나고 말았다. 기득권을 고수하는 데 눈이 먼 고종과 수구세력에 의해 그들은 모두 개혁의 꿈을 접었던 것이다. 수구세력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되돌렸던 대가는 너무나도 가혹하였다. 그들이 그토록 애써 지키려 했던 황제권뿐만 아니라 국권마저 일본에 강탈당하는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120여년 전 만민공동회와 관민공동회에 참여했던 민중은 장작불을 태워 밤을 지새우면서 외압에 저항해 자주를 주장하고, 위정자들의 무능과 탐학에 항거해 개혁 추진과 민권 강화를 외쳤다. 그 반면 민의를 저버리고 탄압으로 일관한 소통 부재의 위정자들은 기득권을 보존하기는커녕 국망을 초래하고 국민을 고통과 신음의 구렁텅이로 빠트렸다. 황제가 아니라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된 지금, 국가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선택의 순간순간에서 100여년 전 역사의 거울을 다시금 냉철하게 들여다본다. 한철호(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
  • 어제의 ‘피스메이커’ 무르시, 오늘은 ‘현대판 파라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중재해 중동의 ‘피스메이커’로 떠오른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갑작스러운 권력 확대로 ‘현대판 파라오’(전제군주)라는 불명예에 휩싸인 가운데 23일(현지시간) 이집트 전역에서 무르시 대통령의 지지자와 반대파 시위대 간 충돌이 벌어졌다. 이집트 국영TV는 이날 무르시 대통령 반대파가 포트사이드, 이스마일리야 등에서 무르시 대통령을 배출한 무슬림형제단의 자유정의당(FJP) 사무실에 불을 질렀다고 전했다. 관영통신 메나는 무르시 대통령이 시위가 벌어진 대통령궁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 “이집트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 길에 있다. 누구도 우리의 전진을 멈출 수 없다.”면서 “나는 신과 국가를 위해 내 임무를 수행하고 모든 이들과 협의한 후에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무르시 대통령은 앞서 22일 자신이 정한 칙령과 법안, 결정에 대해서는 법원을 포함해 어떤 개인이나 정치단체, 정부기관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새 헌법 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는 대통령은 혁명과 국가 안보, 국가 통합을 위해 어떤 조치와 결정도 내릴 수 있고 사법기구가 헌법기구인 의회를 해산할 수 없다는 것 등 권력 남용으로 볼 수 있는 내용들이 포함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무르시 대통령은 지난해 봄 반정부 시위대 탄압을 주도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재심도 명령했다. 시위대 학살 혐의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관련자들이 잘못된 증거에 의해 판결을 받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무바라크 정권에서 임명된 압델 마지드 마흐무드 현 검찰총장도 해임하기로 했다. 무르시 대통령은 “이번 결정은 지난해 1월 25일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축출한 혁명을 보호하고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라며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했다. 하지만 야권의 거센 반발로 이집트에서 ‘정국 혼란’이 재현될 가능성이 커졌다. 야권 대표 인사인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트위터를 통해 “무르시가 사법 체계의 감시, 감독을 넘어섰다.”며 “그가 모든 국가 권력을 가로채 자신을 이집트의 현대판 파라오로 임명했다.”고 맹비난했다. 엘바라데이와 암르 무사 전 아랍연맹 사무총장 등이 참석한 야권 합동 기자회견에서 사메흐 아슈르 변호사협회장은 “정당성을 거스른 쿠데타”라고 비판하며 시민들에게 이집트 전국의 모든 광장에서 반대 시위를 전개하자고 촉구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23일 TV 하이라이트]

    ●디파이언스(KBS1 밤 12시 30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1년 벨라루스를 점령한 독일군의 유태인 탄압이 시작된다. 부모의 처참한 주검을 목격하고 숲으로 도망친 투비아와 주스는 어린 동생 둘을 이끌고 은둔생활을 시작한다. 하나둘씩 모여든 유태인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도와주면서 무기를 얻기 위해 독일군과 교전하며 조금씩 유격대의 틀을 갖추게 되는데…. ●오감만족 세상은 맛있다(KBS2 밤 8시 20분 7000여개 섬들로 이루어진 필리핀. 울창한 원시림이 고스란히 간직된 보석 같은 섬 민도로에 모태솔로 개그우먼 오나미가 찾아간다. 마을에서 준비하고 있는 요리는 바로 통돼지 바비큐. 불쌍한 마음은 잠시, 당연하다는 듯 오나미는 바비큐 굽는 담당이 되고 통돼지 바비큐가 완성되자 마을은 축제의 현장으로 변한다. ●일일연속극 오자룡이 간다(MBC 밤 7시 15분) 민우에게 무시당해 분한 공주는 민우의 차에 음식물 쓰레기를 뿌린다. 이를 목격한 경비원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대신 차를 닦아 놓으라고 하고 옆에 있던 자룡에게까지 불똥이 튄다. 한편 미국 회사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고 한국 회사에 입사했다는 것이 들통 난 용석은 하루아침에 해고되고 만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5시 35분) 개편을 맞아 새롭게 바뀌었다. 육아 전문가 ‘오은영의 현장코치’, ‘초보맘 육아일기’ 등으로 꾸며진다. ‘초보맘 육아일기’에서는 엄마 품에서 떨어지기만 하면 울음을 터트리는 생후 5개월 된 승유의 이야기가 방송된다. 엄마 품을 벗어나면 우는 아이 때문에 걱정인 초보 엄마들의 고민을 함께한다. ●명의(EBS 밤 9시 50분) 하루 중 가장 편안해야 할 수면 시간. 그러나 이 시간마저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고혈압, 당뇨 등으로 이어지는 현대인의 대표 질환 수면장애. 수면 중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하는 무호흡증부터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증까지, 환자가 궁금해하는 수면장애의 모든 것과 치료의 해법은 무엇인지 각계 전문가들에게 들어 본다. ●콘서트 고백 - 내 젊음의 낮은 음자리(OBS 밤 11시 5분) ‘흐린 기억속의 그대’, ‘현진영Go 진영Go’, ‘슬픈 마네킹’, ‘두근 두근 쿵쿵’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현진영이 현란한 댄스와 함께 라이브 무대로 관객을 매료시킨다. 한편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과의 인연, ‘현진영과 와와’ 활동 시절의 에피소드 등을 MC들과 나누며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 “버마군부 핵개발 포기 안할 것… 北과 군사관계 단절도 없을 것”

    “버마군부 핵개발 포기 안할 것… 北과 군사관계 단절도 없을 것”

    “버마(미얀마) 군부는 핵 개발을 포기하지도, 북한과의 군사 관계를 끝내지도 않을 것이다.” 미얀마 군사정부의 탄압을 피해 망명한 미얀마인들이 주축이 된 ‘재미 버마 불자 연합회’(BABA)의 틴 멍 터(63) 부회장은 20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에 따른 파장을 이렇게 진단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방문에서 처음으로 ‘미얀마’ 호칭을 사용한 것과 달리 터 부회장은 인터뷰 내내 옛 국명인 ‘버마’로 호칭해 미얀마의 현 상황에 대한 인식차를 보여줬다. →오바마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을 어떻게 평가하나. -버마의 개혁을 고무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현 단계는 단지 개혁을 향한 첫 걸음일 뿐이다. 버마는 아직도 내전이 계속되고 있고, 정치범 문제도 여전하다. 화해를 통해 이런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버마는 탄 슈웨 장군 등 5~6명의 군벌이 국부를 독점하고 있기에 대부분의 국민이 가난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이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길 기대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왜 재선 후 첫 해외 방문지로 미얀마 등 동남아를 선택했을까. -외교적 업적 과시 차원이다.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버마를 방문해서 40년 이상 해결이 안 되던 버마 문제를 처음으로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으려 한 것 같다. 동남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으려는 의도도 작용했다. →미얀마 정부는 왜 미국과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것인가. -동남아에서 갈수록 영향력을 키워 가는 중국에 위기의식을 느껴서다. 군사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경제적으로 중국에 예속되는 상황을 버마 정부는 두려워하고 있다. 버마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통해 국익을 최대화하려 할 것이다. 미국의 경제적 지원으로 버마의 경제적 상황을 개선시키려는 의도도 있다. 버마의 경우 젊은 층 실업률은 50%가 넘어 결혼으로 가정을 이루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국의 투자는 일자리를 증가시킬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한다고 해서 중국과 소원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긴가. -그렇다. 중국과의 관계도 유지하면서 이익을 챙길 것이다. 지난해 중단됐던 중국과의 수십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가 재개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부 인권단체들은 미얀마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이 시기상조라고 비판하는데. -진정성이 의심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과거에 비해서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의회 의석의 25%가 선출되지 않은 군부 인사에게 자동 배정되고 야당이 선거에서 이길 경우 언제든 군부가 정권을 회수할 수 있도록 규정한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민주화는 요원하다. 현재 의회 의석의 97%와 정부 당국자의 95%를 군부 내지 친군부 인사가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이 시기상조였다는 얘기인가. -좀 더 기다려야 했다고 본다. 오바마 대통령은 리비아 등 다른 지역에서 지지부진한 외교적 성과를 버마 방문을 통해 과시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미얀마 국민들이 오바마 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더 많은 자유와 기회, 번영이 올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꿈에 그칠 수도 있다. 미국도 ‘재정절벽’ 등 재정적자 문제로 여유가 있는 형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얀마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874호 준수와 함께 북한과의 군사관계를 끊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진정성이 있다고 보나.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버마 군부는 현대적 무기를 갖길 원한다. 핵무기도 갖고 싶어 한다. 핵개발을 위한 비밀 프로젝트는 여전히 가동되고 있다. →IAEA 사찰을 수용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핵개발을 계속한다는 얘기인가. -아무도 갈 수 없는 정글 같은 곳에서, 위성으로도 탐지할 수 없는 지하에서 핵 개발을 할 수 있다. 이란과 북한의 사례를 보면 된다. →그런 게 의심되는 정도라면 오바마 대통령이 몸소 미얀마를 방문했을까.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빌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에 핵 포기를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했지만 북한은 끝내 핵을 포기하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특히 테인 세인 대통령은 실권이 없고 군부가 뒤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군부는 공식 정부 예산과 별도로 그들만의 예산을 따로 갖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성급한 외교적 성과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당대회 전후 티베트인 13명 분신… 민족갈등 해결도 과제

    ‘시진핑(習近平) 시대’ 중국의 사회 안정을 위협하는 한 축이 빈부격차로 인한 양극화라면, 또 다른 한 축은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움직임이다. 실제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 중심의 5세대 지도부가 출범한 18차 전국대표대회(전대)를 전후해 티베트인들의 분신시위가 최고조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달라이라마 “中 무력 사용 말라” 17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18차 전대 개막 전날인 지난 7일 이후 분신한 티베트인은 최소 13명에 이른다. ‘연쇄 분신’을 통해 티베트인들이 중국의 강압통치에 항거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 다람살라의 티베트망명정부 집계에 따르면 2009년 이후 분신한 티베트인은 최소 79명이며, 이 가운데 59명이 숨졌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인들의 잇단 분신과 관련, 중국 정부에 탄압중단과 무력사용 금지를 촉구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달라이 라마를 분신시위의 선동자로 지목하면서 대내외적으로 그를 강력 비난하고 있다. 문제는 티베트인들의 항거 지역이 점차 확산된다는 데 있다. 실제 티베트인들의 분신은 맨 처음 쓰촨(四川)성의 아바(阿?)자치주에서 시작됐지만 최근에는 칭하이(靑海)성, 간쑤(甘肅)성 등 인접지역으로 확산됐고, 심지어 중국이 대대적으로 틀어막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본거지 시짱(西藏·티베트)자치구 지역도 들썩이고 있다. ●초기엔 안정위해 강압 이어갈 듯 시 총서기는 집권초기 정권 안정을 위해 소수민족의 시위 문제에 전임자들처럼 강압적인 자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특히 티베트 등을 ‘핵심이익’으로 규정, 분리독립 요구에 절대 응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민족갈등의 ‘폭발력’이 변수다. 점화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파괴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섞어 사용하며 갈등의 확대를 저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인터넷사이트 인민망은 18일 시 총서기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勛)이 티베트 지도자 샹첸(項謙)을 여러 차례 설득해 무장투쟁을 포기토록 만든 일을 전하며 그의 민족문제 해결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시진핑號 어디로] (2) 민주화와 정치 개혁

    [시진핑號 어디로] (2) 민주화와 정치 개혁

    시진핑(習近平) 시대의 최대 화두는 단연 정치개혁이다. 망국병으로까지 거론될 정도로 심화된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정치개혁은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점에 대해서는 중국사회 내 이견이 없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언론통제 완화, 사법개혁, 당정 분리 등 정부 감독 강화와 정부 권력 제한을 골자로 하는 정치개혁 구체안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는 민주화와 직결되고 공산당 일당 독재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이 때문에 공산당 지도부는 정치개혁은 하되 서구식 민주제 도입은 절대로 안 된다고 쐐기를 박고 나섰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지난 8일 18차 전국대표대회(전대) 개막식 정치보고에서 중국의 정치노선과 관련, “폐쇄된 옛길로 가지 않겠지만, 동시에 깃발을 바꿔 달고 사악한 새 길로 가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관영언론들은 “폐쇄된 옛길이란 개혁·개방 이전의 (마오쩌둥식)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사악한 새 길이란 자본주의 정치 체제와 서구식 입헌민주주의 노선을 말하는 것”이라고 부연설명했다. 시진핑 총서기도 “18차 전대 정치보고는 당이 어떤 깃발을 내걸지, 어떤 길을 갈지를 명확히 선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3권 분립, 양원제 등 서구식 민주주의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 내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시 총서기의 정치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자신을 덩샤오핑(鄧小平)의 중국특색 사회주의 계승자로 강조한 대목도 예사롭지 않다는 지적이다. 베이징의 한 우파 지식인은 “덩샤오핑의 중국특색 사회주의는 경제적으로는 개혁·개방을 허용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일당 독재 구조와 사회 통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 덩샤오핑 이후 중국 지도자들은 ‘강경 진압’에 나섰던 공통점이 있다. 후 주석은 1989년 티베트자치구 당서기 당시 철모를 쓰고 시위대 제압에 성공해 최고지도자로 오르는 발판을 마련했고, 같은 해 톈안먼(天安門) 사건 당시 상하이시 당서기였던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은 상하이 지역의 격렬했던 학생시위에 적극 대처해 총서기로 발탁됐다. 시 총서기의 경우 지난 2009년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에서 한족과 위구르족 간 민족 갈등이 폭발했을 때 위구르 분리독립 세력 탄압을 주도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중국 내 제도권 학자들은 서구식 민주주의가 아니더라도 당내 민주화 확대를 통해 정치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급격한 서구식 정치체제를 도입하는 대신 당내 민주화 확대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내 민주화 역시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이번 중앙위원 선거에서 중국 공산당이 당내 민주화의 척도로 여기는 차액선거(정원보다 많은 후보자를 등록시켜 득표 수가 적은 후보를 탈락시키는 선거방식) 비율이 5년 전에 비해 겨우 1% 포인트 늘어난 데 그친 것이 그 방증이다. 새 상무위원 대부분이 기득권층으로 대표되는 태자당과 상하이방인 점도 정치개혁 회의론을 부채질한다. 개혁파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아들인 후더핑(胡德平) 정협 상무위원은 최근 태자당 모임에 나가 정부에 대한 공산당의 지배력 제한을 주장했으나 별 호응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中 시진핑시대 개막] 류윈산 상무위원, 타자수 출신서 선전분야 최고위직에

    류윈산(劉雲山)은 타자수로 출발해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지닝(集寧)시의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으나 금세 타자수로 변신해 선전 분야와 인연을 맺었다. 1974년에는 신화통신 네이멍구자치구 분사 톈충밍(田聰明) 기자의 추천을 받아 정식 기자로 채용됐다. 승승장구하는 톈충밍의 천거로 네이멍구자치구 선전부 부부장에 이어 12기 중앙위원회 후보중앙위원 자리까지 올라갔다. 중앙무대로 발탁한 것은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시절 당 중앙선전부장인 딩관건(丁關根)이다. 1993년 중앙선전부 부부장으로 베이징에 입성했고 2002년에는 역대 최연소인 55세에 중앙선전부장이 됐다. 그는 선전 분야의 책임자로서 사회안정을 내세워 언론 탄압과 사상 통제를 해 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 실명제도 그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장 전 주석 측근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기 때문에 공청단 출신이면서도 장쩌민 계열로 분류된다.
  • “총리실 불법사찰로 피해 입어” YTN 해직기자 국가에 손배소

    뉴스채널 YTN의 노종면 전 노조위원장 등 4명이 13일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사찰로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2억 5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원충연 당시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관에 대해서도 같은 금액의 소송을 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대통령 후보 특보 출신 사장 임명으로 촉발된 YTN 사태에 대해 노조를 탄압하고 와해시키려는 의도로 관련 동향을 사찰하고 이를 보고했다.”며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로 막대한 경제적, 사회적, 정신적 등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청와대가 이른바 ‘BH 하명’을 통해 YTN 사찰에 비선으로 개입한 증거도 발견됐다.”면서 “불법사찰에 수사기관이 동원돼 막대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정부는 단 한마디의 사과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인기기자 ikik@seoul.co.kr
  • 安 “흑색선전” 고발… 권·정 “근거 있어”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캠프가 12일 “안 후보 캠프가 여론조사 기관에 돈을 풀었다는 얘기가 돈다.”고 주장한 권영세 새누리당 종합상황실장과 선대위 부위원장인 정우택 최고위원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권 실장이 다시 재반박에 나서면서 ‘여론조사기관 돈 제공설’ 논란이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안 후보 측은 오후 3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과 함께 두 사람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의 고소장도 제출했다. 안 후보는 부산대 강연 중에 “근거 없는 흑색선전을 한 사람은 단호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이례적으로 직접 거론했다. 박선숙 공동선대본부장도 “권 실장과 정 최고위원이 책임지지 않는 막말정치, 구태정치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권 실장은 전날 기자들과 오찬에서 “안철수 캠프가 여론조사기관에 돈을 엄청 풀었다는 얘기가 돌고, 일부 언론이 그런 소문을 추적한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정 최고위원도 1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권 실장이) 전혀 근거 없는 얘기를 한 것 같진 않다.”고 두둔했다. 안 후보 측 고발 직후 권 실장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자청하며 재반격에 나섰다. 권 실장은 “안 후보가 내세운 새 정치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새로운 모습은 없고 과거 구태가 되풀이되고 있다.”면서 “구태·철새 정치인들과 ‘한탕하겠다’는 분들이 (캠프에) 들어가서 (이런 구태가) 시작된 것 아닌가.”라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후보 때부터 탄압하는데 대통령이 되면….”이라면서 “고발당한 것은 하나도 겁이 안 나지만 앞을 생각하면 겁이 나고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4) 1930년대 모던 보이 vs 마르크스 보이

    [선택! 역사를 갈랐다] (34) 1930년대 모던 보이 vs 마르크스 보이

    조선시대 서울의 공식 이름은 한성부(漢城府)였다. 사람들은 한양이라 불렀다. 한양은 북한산 남녘과 한강 북쪽 사이에 자리 잡은 양지바른 터전이라는 뜻이다. 1910년 일제는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면서 한성부를 경성부(京城府)로 바꾸고 경기도에 소속시켜 위상을 낮추었다. 서울을 일본의 오사카나 교토와 같은 지방 도시로 만든 것이었다. 1920년부터 1935년까지 경성의 인구가 많이 늘어났다. 1935년에는 44만명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25% 남짓이 일본인이었다. 식민지 도시 경성은 청계천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나뉘었다. 청계천 이남에는 본정통(오늘날 충무로), 명치정(지금의 명동)에서 일본인 상가를 중심으로 남촌이 생겼다. 진고개 중심의 남촌 상가는 근대의 상품과 화려한 건물, ‘현대인의 신경’인 네온사인으로 덮였다. 카페, 우동집, 빙수집, 찻집이 즐비했다. 남촌은 ‘경성 속의 일본’이었다. 오늘날 명동 부근인 진고개는 본디 변두리 마을이었다.일본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와 ‘작은 도쿄’를 세우고 주인으로 들어앉았다. 백화점과 카페, 당구장, 극장 같은 근대 유흥시설이 남촌에 몰려 있었다. 청계천 이북에는 조선인 상가가 많았던 종로통을 중심으로 북촌이 되었다. 북촌 지역은 전통 한옥과 나지막한 상점들이 있었으며 밤거리는 어두컴컴했다. 식민 도시의 ‘원주민 상가’였던 종로는 중심에서 밀려났다. 종로의 밤거리에는 온갖 ‘싸구려’ 물건을 파는 야시가 열렸다. “극도의 생활난에 빠진 빈궁한 사람들이 혹시나 입에 풀칠이나 할까 하는 눈물겨운 생각”으로 야시에서 물건을 팔았다. 경성은 식민지 지배층이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 ‘하이칼라 경성’과 식민지 빈곤층과 실업자가 넘쳐나는 ‘실업 경성’의 두 모습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쾌락 추구 ‘모던 보이’ 1920년대가 되면서 양복 입은 남자와 양장한 여성이 늘어갔다. 옷과 장신구 등은 유행 바람을 탔다. 헤어스타일도 바뀌었다. 사람들은 이발소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면도를 하는 것을 ‘신식’으로 가는 길처럼 여겼다. 그럼에도 여자 단발은 아직 문제가 되었다. 단발한 여인들은 ‘단발미인’이라 하여 뭇사람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엔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몇몇 여인이 단발했지만, 1930년대 중반부터 단발이 크게 번졌다. 일부 여성은 단발에 ‘물결을 일으키는’ 파마도 했다. 겉모습만이 아니다. 생각과 취향이 남다른 사람이 생겨났다. 1920년대 중반부터 그들을 일컬어 모던 보이, 모던 걸이라고 불렀다. 모던 세대들은 사랑법도 새로웠다. 그들은 자유연애를 바랐다.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누구인지를 딱 부러지게 정의 내리기는 힘들다. 모던 세대란 도시와 서구 또는 일본문화를 즐기며 근대를 적극 받아들인 신세대로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대개 이들은 식민지 현실이나 사회모순에 관심을 두지 않고 ‘모던’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다. 모던 보이, 모던 걸은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영화가 문화 영역에서 터를 잡았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배우를 따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축음기가 보급되면서 대중음악 시장이 커졌다. 1930년대 초반 ‘레코드의 홍수, 유성기의 천하’라는 말이 떠돌았다. 모던 보이는 근대적 유흥공간을 찾아 여가와 유흥도 즐겼다. ‘거리의 오아시스’ 다방에서 근대의 상징처럼 커피를 마시며 서양음악을 듣기도 했다. 그 무렵 다방은 하나의 문화공간이기도 하고 ‘도시인의 피난처’이기도 했다. 그러나 카페는 문제가 있었다. 도시의 분위기를 좇던 모던 보이를 ‘에로’의 길로 안내한 것이 바로 카페였기 때문이다. 카페란 여급이 술시중을 드는 곳에서 비싸게 술을 먹는 곳이었다. 여급에게 팁도 주어야 했다. 카페는 ‘퇴폐적 취미’를 발산하는 곳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카페를 ‘에로의 신전’ 또는 ‘향락 제작소’라고 불렀다. 모던 보이들은 백화점 가기를 좋아했다. 1930년 일본 미쓰코시 백화점이 문을 연 뒤 잇달아 히라다·조지야·미나카이·화신백화점 등이 문을 열었다. 백화점의 화려한 쇼윈도는 ‘시각의 쾌락’을 맛보게 한다. 최첨단 기기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으리으리한 백화점에 들어선다. 갖가지 물건을 쓰임새에 따라 가지런하게 분류해 놓은 백화점은 ‘과학적’이다. 매장 앞에는 ‘어여쁜 숍걸’이 매우 상냥하다. 어디 그뿐인가. 백화점은 호화로운 식당과 전람회를 열 수 있는 전시공간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모던 보이들은 ‘도시의 심장’인 백화점에서 도시의 감각과 유행의 물결을 느꼈다. 모던 보이는 갑자기 닥쳐온 근대 도시의 습속을 하루라도 먼저 몸에 익혀야 했다. 그러한 모던 보이에게 경성은 근대의 훈련장이자 여가와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유흥의 도시였다. 그들은 자기가 경험하는 근대가 ‘혼종의 근대’ 또는 ‘식민지 근대’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식민 도시를 거닐고 근대를 소비했다. ●이재유의 경성 1936년 12월 25일이었다. 농사꾼, 장돌뱅이, 노동자, 학생 등으로 변장한 32명의 경찰이 ‘검거 중대’를 만들어 창동 남쪽에서 시골 농민 차림인 30대 초반의 한 남자를 체포했다. 일제에 맞서 비합법 혁명운동에 몸을 던졌던 이재유였다. 이재유는 식민지 조선에서 보통 사람으로 살기에는 너무나 ‘불온’했다. 이재유는 일제 식민지 체제에서 해방되고 노동자와 농민이 새 나라의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려 했다. 이재유는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굳게 믿었다. 이재유의 정세 판단은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혁명적 낙관주의 없이 어떻게 온몸을 던질 수 있겠는가. 1930년대는 대공황이 닥쳐와 자본주의가 큰 위기에 빠졌다. 숨통을 연장하려는 자본주의는 노동자와 농민을 더욱 수탈했다. 이에 맞서 곳곳에서 노동자 투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 투쟁은 아직 공장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농민투쟁도 기껏해야 군단위에 머물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툭툭 불거지는 여러 투쟁을 한데 묶어 한꺼번에 타오르는 들불로 만들 수는 없을까. 이재유는 1920년대 노동조합·농민조합과는 다른 혁명적 노동조합·혁명적 농민조합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이 조직은 선진 활동가들의 비합법 모임이다. 그러나 혁명적 노동조합과 혁명적 농민조합만으로 혁명운동을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재유가 보기에 혁명운동을 앞장서 이끌 혁명가들의 조직인 ‘조선공산당’이 없으면, 혁명이란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공황을 벗어나려고 제국주의자들이 전쟁에 뛰어드는 형국에서 반제국주의 투쟁을 조직하려 해도 당은 꼭 있어야 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이재유는 1920년대처럼 전국적인 당 조직을 먼저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역에서 시작해서 전국으로 확장하는 당 조직을 만들려 했다. 그는 운동의 근거지를 경성으로 삼았다. 이관술, 김삼룡, 이현상, 이순금, 정태식 등 수많은 동지가 그와 함께했다. 이재유 수사기록에는 “요즈음 경성을 중심으로 일어난 거의 모든 공산주의운동의 흑막으로 이재유가 활동함으로써 수많은 청년 남녀가 해를 입었다.”고 적었다. 이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재유 조직에는 학생과 노동자, 농민도 많았다. 이재유는 피검과 고문, 옥살이, 탈옥, 재검거를 되풀이했다. 일제 탄압으로 조직이 무너지면 다시 세우면서 굽힘 없이 혁명운동을 했다. 이재유는 1932년에서 1936년 말까지 ‘경성 트로이카’, ‘경성재건그룹’, ‘조선공산당재건 경성준비그룹’을 만들었다. 이재유에게 경성은 혁명운동의 근거지이자 그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킬 발판이었다. ●모던 보이의 ‘핑크’ vs 이재유의 ‘적색’ 1930년대 일본에서 ‘에로’가 유행했다. 이것은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다. 왜 그랬을까. 한 연구에 따르면, “1930년대 ‘공황과 전쟁의 시대’를 맞이하여 일본 청년들은 일본의 긴자거리를 배회하며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핑크’가 되거나 진지하게 사회주의 혁명을 실천하는 ‘마르크스 보이’, ‘엥겔스 걸’이 되어 ‘아카(red)’가 되는 것, 둘 가운데 하나였다.” 식민지 조선도 이와 비슷했다. 식민지 조선의 모던 보이는 경성의 혼마치(지금의 충무로)부근을 서성였다. 이 ‘핑크’들은 카페와 기생집을 드나들며 향락의 길로 들어섰다. 이와 상반되는 ‘마르크스 보이’, ‘엥겔스 걸’도 조선에 있었다. 1920년대 근대 교육을 받은 젊은이 사이에서 사회주의가 크게 유행하여, “입으로 사회주의를 말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졌다.”고 했다. 이 새 세대를 일컬어 조선에서도 ‘마르크스 보이’, ‘엥겔스 걸’이라고 불렀다. 1920년대 신문과 잡지에는 거의 빠짐없이 사회주의 관련 글이 실렸고,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을 비롯해 주요 사회주의 글도 번역됐다. “사회주의를 믿고 안 믿는 것은 다른 문제요, 사회주의가 실현되고 안 되는 것도 다른 문제다. 다만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는 알아야만 행세를 하게 된 것이 오늘의 형편이다.”는 책 광고까지 있었다. 일제 기록에 따르면, “예전의 독립운동이 실패를 거듭함으로써 초조해진 민중에게 사회주의운동은 일종의 자극과 광명을 주었다.” 1905년에 태어난 이재유도 ‘마르크스 보이’였다. 개성 송도고보에 다닐 때부터 ‘마르크스 보이’가 된 이재유는 동맹휴학으로 퇴학당했다. 그 뒤 그는 여러 단체에서 실천운동을 하다가 옥살이를 했다. 감옥에서 나온 이재유는 1932년 ‘경성트로이카’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적색’ 혁명가가 되었다. ‘트로이카’란 “몇몇 지도부가 먼저 당의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세 마리 말이 자유롭게 마차를 끄는 것과 같이 회원 모두가 저마다 자유롭게 선전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이재유는 “일생을 혁명가로서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남기기로 결심했다.” 그는 감옥에서도 조선어 사용금지 반대, ‘수감자 대우 개선’ 등의 투쟁을 했다. 이재유는 형이 다 끝나고도 전향하지 않았기 때문에 청주보호교도소에 갇혔다. ‘핑크’의 모던 보이가 ‘메이크업’한 경성을 누빌 때 지하에서 혁명운동을 했던 이재유, 그는 1944년 10월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뒷날 사람들은 그를 “비합법 혁명운동사에서 최고의 기록을 남긴 사람”으로 기억했다. 최규진(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
  • 에티오피아 난민 “살아 있으니 우린 행운아”

    “그래도 나는 행운아입니다.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요.” 타셈마(가명·28)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에티오피아 난민으로 지난 5월 낯선 한국에 입국한 그는 “독재정권의 탄압 속에 목숨을 잃은 가족과 친구가 부지기수”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타셈마는 한참을 뜸들인 뒤에야 “여전히 에티오피아에 있는 제 아내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관 앞에서 에티오피아 난민 5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에티오피아 정부의 인권탄압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자유는 음식보다 소중하다.”면서 “에티오피아의 공정한 선거와 언론 자유를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에티오피아 정부는 북한과의 무기밀매도 서슴지 않는 부정한 정권”이라면서 “한국 정부는 에티오피아 정권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티오피아 난민들이 기자회견을 연 것은 모국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 때문이다. 에티오피아는 1995년 집권당 지도자였던 멜레스 제나위가 총리로 취임해 지난 8월 사망하기까지 사실상 독재 체제에 있었다. 제나위는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과 함께 언론과 반정부 인사를 탄압하는 등 민주주의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독재자는 사망했지만 집권당의 폭정은 여전하다. 모국의 탄압을 피해 한국에 난민신청을 한 에티오피아인은 지난해 12월 31일까지 70명. 이 중 29명이 난민 지위나 인도적 체류를 인정받았다. 734명이 난민을 신청해 14명만이 난민 인정을 받은 파키스탄 등에 비하면 인정률이 훨씬 높다. 에티오피아 난민들을 돕고 있는 정지우(23·여)씨는 “우리 정부가 그만큼 이들의 불안정한 지위를 인정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커피보다 검고 쓴 에티오피아의 현실이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언론매체 유해물 지정 신문규제법은 탄압”

    한국신문협회(회장 김재호)는 신문 콘텐츠 규제를 담은 법률 개정안이 거푸 발의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5일 “국가기관이 신문 콘텐츠를 직접 규제하거나 언론 활동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언론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신문협회는 관련 법률 개정안 폐지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에 각각 제출했다. 지난 9월 발의된 청소년보호법 개정 법률안은 종이신문, 인터넷신문 등 매체 종류를 불문하고 언론 매체를 청소년보호법상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의료·의료기기·건강기능식품법 일부 개정안은 신문사 등 매체 관리자가 의료·의료기기·건강기능식품 광고 등을 게재할 때 해당 기관의 심의를 받았는지, 심의 내용이 맞는지 반드시 확인토록 하고 있다. 이에 신문협회는 “극소수 인터넷 매체의 일부 광고를 규제하기 위해 신문 전체를 청소년 유해 매체물에 포함시키는 것은 과잉 규제”라면서 “‘신문은 청소년 유해 매체물’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 주고, 신문 또는 언론이 갖는 사회적 역할과 위상을 훼손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또 “(의료 광고 등에 대한 규제는) 현행법의 엄정한 집행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영화프리뷰] 솔라나스 각본·연출 ‘업사이드 다운’

    [영화프리뷰] 솔라나스 각본·연출 ‘업사이드 다운’

    위아래가 거꾸로 맞붙은 두 행성이 태양을 따라 공전하는 세상. 정반대 방향의 중력이 존재하는 두 세계의 만남은 용납되지 않는다. 두 세계가 가장 가까이 맞닿은 비밀의 숲에서 우연히 만난 하부 세계의 가난한 소년 아담(짐 스터게스)과 상부 세계의 부유한 소녀 에덴(커스틴 던스트)은 강렬한 끌림을 느낀다. 하지만 금지된 만남이 국경수비대에 적발되면서 에덴은 추락 사고를 당한다. 10년이 흐른 뒤 아담은 TV에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에덴을 본다. 남다른 천재성을 지닌 아담은 사랑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상부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특별한 물질을 개발한다. 주어진 시간은 단 1시간, 체온이 높아져 몸이 타 버리기 전에 빠져나와야만 한다. 프랑스, 캐나다 합작 영화 ‘업사이드 다운’은 각본, 연출을 맡은 후안 디에고 솔라나스의 남다른 상상력에서 출발했다. 솔라나스 감독은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 ‘탱고, 가델의 추방’ ‘남쪽’ 등의 걸작 다큐멘터리를 쏟아낸 아르헨티나의 거장 페르난도 솔라나스의 아들이다. 1976년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의 탄압을 피해 망명길에 오른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영화를 접한 후안은 연출과 촬영, 각본을 도맡은 데뷔작인 단편 ‘머리 없는 남자’로 2003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전에 ‘머리’를 파는 상점에 들러 여러 가지 ‘머리’를 착용해 보는 남자의 모습을 통해 화려함만을 좇는 대중문화와 만연해진 대량 생산 체제를 꼬집었다. ‘머리 없는 남자’만큼 ‘업사이드 다운’의 설정도 기발하다. 영화 서두에서 아담의 내레이션을 통해 솔라나스는 이른바 ‘이중 중력의 법칙’이 지배하는 우주를 창조한다. “물체의 무게는 ‘역물질’, 즉 반대 세계의 물체로 상쇄될 수 있다. 역물질에 접촉한 채 몇 시간이 지나면 맞닿은 물체가 타 버린다.”고 주장한다. 정반대의 중력이 존재하는 두 세계가 거꾸로 맞닿아 있다는 설정에 대해 ‘이중 중력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우리끼리 약속하자. 과학적 타당성을 들먹이지 말자’고 요구한 셈이다. 공상과학(SF) 판타지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만큼 논리적 잣대를 들이댈 생각은 없다. 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와 환상적인 비주얼에 비해 부실한 캐릭터와 엉성한 스토리텔링은 아쉽다. 상부 세계 거대 기업 트랜스월드가 하부 세계의 석유를 착취하는 것이나 서로 다른 두 계층(상부·하부 세계 사람들)은 접촉조차 금지되는 것 등은 자본주의의 뒤틀린 단면을 풍자하는 듯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후 영화는 그다지 애절하지도 않은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흐른다. 둘의 사랑을 위협하는 국경수비대나 트랜스월드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커스틴 던스트와 할리우드의 블루칩 짐 스터게스가 주연을 맡았지만 엉성한 캐릭터 탓에 겉돈다. 오는 8일 개봉.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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