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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슬픔이 기쁨에게 - 소록도 한센병 박물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슬픔이 기쁨에게 - 소록도 한센병 박물관

    # 세 번 죽어야만 되는 한센병 환자의 삶. 소록도에는 단종(斷種)과 불임 시술의 현장이 그대로 “그건 이곳 규칙입니다. 환자가 건강인을 대할 때는 반드시 다섯 걸음 이상 거리를 유지해라. 말을 할 땐 45도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손으로 입을 가려야 한다.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p32, 1976, 문학과 지성사> 우리나라에서는 한센병을 나병(癩病), 업병(業病) 혹은 문둥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나(癩)’는 ‘두꺼비’의 의미도 담고 있는 데, 한센병 환자의 피부가 흡사 두꺼비 모양과 비슷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예전에는 동서양을 구분할 것 없이 한센병에 걸리게 되면 사회는 물론 가족으로부터도 철저히 격리, 배척되었다. 소록도에 들어온 한센인들도 '당연히' 이름이나 고향은 숨겼다. 육지의 가족들을 위한 마지막 배려였다. 천형(天刑)이었다.그러나 현대 의학에서 한센병은 중병이라고 이름 짓기 미안할 정도로 정복된 지 오래다. 단적인 예로 한센병에 걸려도 항생제의 일종인 ‘리팜핀’ 600mg을 단 한 번만 복용하면 체내 나균의 99.99%가 전염력을 상실한다. 또한 성적인 접촉이나 임신을 통해서도 감염되지 않으며 유전도 되지 않는다. 한센병 환자와 24시간 같이 생활하는 경우에도 전염 위험은 240만 명 중의 1명 꼴이니 통계자체가 신뢰도를 확보하지 못할 수준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 20여 명 정도의 환자가 발견되는 정도이며, 의무접종 중의 하나인 결핵 예방 BCG 접종을 받은 사람들의 경우라면 이런 발병 확률조차도 의미가 없어진다고 본다. 설사 발병되더라도 복용약만으로 대개는 6개월, 최장 2년 이내 완치가 되며 흔적 조차 남지 않는다. 또한 한센병 완치환자의 경우 감염위험은 완전 소멸된 상태로 일상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한센인들의 시간이 가득 담긴 소록도 한센병 박물관으로 가 보자.소록도는 전라남도 고흥군에 위치한 자그마한 섬이다. 2009년 3월 3일에는 소록대교가 개통되어 지금은 육로로도 자유롭게 연결된다. 바로 이 곳에 소록도 자혜의원(조선총독부령 제7호)이 1916년에 문을 열고 전국의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 분리, 수용하기 시작하였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센병 환자들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내하기 힘든 모멸과 강제 노동, 단종 수술 및 불임 시술을 받는 등 극심한 인권 침해에 시달려야만 했다.과거에는 한센병에 걸리면 세 번 죽는다고 하였다. 처음은 가족, 친지, 사회로부터의 단절을 뜻하는 사회적 죽음을, 두 번째는 피부가 산 채로 썩어 들어가면서 죽는 육체적 죽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죽음은 한센병 환자들은 죽어서도 묻히지 못하고 해부되는 치욕의 죽음을 뜻한다. 그러니 한센병 환자들의 소원은 토요일에 죽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2일장인 장례 절차에서 일요일은 해부를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무지(無知)와 편견, 그리고 비과학적인 상식이 만들어 낸 인간 비극의 종착지가 소록도였다.# 40 여 년을 무보수 자원봉사로, 소록도 할매 '마리안느'와 '마가렛' 바로 이런 소록도에 거주하는 한센병 환자들의 인권 탄압은 해방 후에도 ‘갱생원’이라는 명칭 아래 지속되다 1960년 7월에 이르러서야 국립소록도병원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개선된다. 또한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해외 선교 단체에서 파견된 자원봉사자들이 소록도로 들어온다. 이 중에서 ‘소록도 할매’라고 불렸던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인 마리안느 스퇴거(1934년생)와 마가렛 피사렛(1935년생)의 봉사 활동은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은 수녀가 아닌 무보수 일반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40여 년을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과 어울렸다. 특히 맨손과 맨입으로 환자들의 피고름을 짜내고 한센병 환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을 하며 존대말을 쓰는 등 당시 격리된 채 생활하던 한센병 환자들의 인권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더구나 오스트리아에서도 부유한 의사 아버지를 둔 마가렛의 헌신으로 풍부한 약품 지원을 받았으며 마리안느를 후원하던 오스트리아 부인회의 경제적인 지원까지 더하여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의 생활 환경은 극적으로 변화하여 지금에 이르렀다.이에 국립 소록도 병원은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의 삶과 역사, 그리고 고통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하여 2016년 개원 100주년을 맞아 한센병 박물관을 소록도내에 개관하였다. 지상 2층 연면적 2006㎡ 규모로 지어진 박물관은 1층에는 수장고와 아트숍, 2층엔 5개 주제(한센병·인권·삶·국립소록도병원·친구들)로 꾸며진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이 있어 소록도를 찾는 일반인들에게 한센인들이 겪어 왔던 힘든 세월을 알려 주고 있다. <소록도 한센병 박물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아름다운 섬이다. 한센인들의 삶과 그들이 거쳐 온 고통이 온전히 느껴지는 공간. 의미있는 방문지로 적극 추천. 2. 누구와 함께? - 누구라도. 가족 단위도 좋지만 단체 모임 단위의 견학지로 훌륭하다. 3. 가는 방법은? -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해안길 65 / 광주, 순천, 여수, 벌교 터미널에서 녹동행 시외버스 이용. 4. 감탄하는 점은? - 생각보다 훨씬 잘 정비된 공간. 섬 전체 기후가 온화하고 전체적으로 외부인들의 흔적이 많지 않아 섬 자체의 자연 경관을 잘 보존한 공간.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섬이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명성에 비해 방문객들이 많지 않다. 소록대교가 연결되어 교통편은 수월하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한센병 박물관, 중앙공원, 감금실, 검시실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가까운 녹동항에 맛집이 많다. ‘우정식당’, ‘풍년식당’, ‘소담식당’, ‘금일식당’, ‘정다운식당’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sorokdo.go.kr/sorokdo/board/sorokdoHtmlView.jsp?menu_cd=030101 - 마리안느 마가렛 노벨평화상 추천 서명 사이트 -> http://recommend.lovemama.kr/ko/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외나로도 우주 과학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고흥우주천문과학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소록도는 국내 여행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섬 자체도 풍광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조잡스런 외부 시설이 없기에 깨끗한 섬 자체의 환경을 지니고 있다. 또한 소록도에서는 인간이 지닌 삶의 환경과 인권에 대해서도 다시금 깨닫을 수 있다. 여행지로 특별 추천!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野 “성창호 기소는 정치보복” 공세에도 숨죽인 민주당

    與, 사법부 탄압 우려에 탄핵 속도 못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 야권은 6일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1심에서 실형을 선고한 성창호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사법 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것을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성 부장판사 기소는 누가 봐도 명백한 보복이고 사법부에 대한 겁박”이라며 “삼권 분립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 앞으로 어떤 판사가 정권에 불리한 판결을 내릴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맞서서 싸우고 투쟁해야 할 문재인 정권의 좌파독재”라고 강조했다. 이주영 국회부의장은 “이번 기소를 보면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검찰의 현주소를 다시 느끼게 된다”며 “이건 공정한 법무부, 검찰이라고 볼 수 없는 이중잣대이자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성 부장판사 기소가 드루킹 판결에 대한 보복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라며 “과거 군사정권 때도 사법부 독립의 원칙, 삼권 분립의 원칙을 권력이 무너뜨린 적은 없었는데 역사가 거꾸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당은 김 지사에 대한 ‘제2의 특검’도 요구하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김 지사 판결문과 관련해 당 특별위원회에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며 특검과 국정조사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며 “작년 특검 때는 수사 대상 등에 제한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 원내대표는 “수사 대상을 확대한 제2의 특검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댓글조작과의 연관성 등을 따질 국정조사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법 농단 판사에 대한 기소에도 탄핵 추진에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 김 지사 재판 문제제기, 사법 농단 판사 기소 등을 ‘사법부 탄압’으로 바라보는 만큼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주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법관 탄핵과 김 지사 사건은 흐름이나 맥락이 전혀 다르다”며 “탄핵 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은 다 정리를 해놨고 언제든지 5~6명을 골라 발표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양승태 보석 기각… ‘공범’ 전·현 법관 10명 추가 기소

    양승태 보석 기각… ‘공범’ 전·현 법관 10명 추가 기소

    ‘김경수 법정구속’ 성창호 등 현직 8명 “범행 전 물러나” 권순일·차한성 제외 기소와 별개로 대법에 66명 비위 통보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석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 전 대법원장을 기소한 검찰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등 전·현직 법관 10명을 추가 기소했다. 법원행정처 차장 시절 일제 강제징용 재판 지연과 법관 인사 불이익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은 권순일 대법관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는 5일 양 전 대법원장의 보석 청구를 기각했다. 보석은 보증금을 내는 조건으로 석방하는 것을 말한다. 법원은 지난달 26일 보석 심문 기일을 열어 양 전 대법원장과 검찰의 의견을 청취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첫 공판준비기일은 오는 25일 열린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이 전 기조실장 등 10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제외하면 모두 현직 판사다. 이로써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재판을 받는 전·현직 판사는 14명으로 늘었다. 성창호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는 2016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재직 당시 같은 법원 신광렬 형사수석 부장판사의 지시를 받고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와 함께 수사기록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정운호 게이트’ 수사 대상이 법관으로 확대되자 수사가 예상되는 판사 등 31명에 대한 명단을 법원행정처에서 제공받아 영장심사에 활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이 제출한 영장청구서에서 수사 상황과 향후 계획 등 수사기밀을 수집해 10회가량 보고하고, 153쪽 분량의 수사기록을 복사해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성 부장판사는 서울동부지법으로 근무지를 옮기기 전인 1월 30일 댓글조작에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성 부장판사가 양 전 대법원장 비서실에 근무한 전력이 있는 ‘양승태 키즈’라고 비판했다. 성 부장판사는 최근 법원에 자신에 대한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유 전 수석연구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 김영재 원장 부부의 특허소송 관련 자료를 청와대로 누설한 혐의와 대법원 재직 중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 의견서(판결문 초안) 파일과 문서를 퇴직 이후 변호사 사무실로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이 전 기조실장과 이 전 상임위원은 통합진보당 행정소송에 개입하고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할 목적으로 부당하게 탄압한 혐의를 받는다. 이 전 상임위원은 헌법재판소의 주요 사건에 대해 자료를 수집한 혐의도 있다. 권 대법관과 차한성 전 대법관은 기소 대상에서 빠졌다. 검찰은 “둘 다 행정처 보고 라인에 있었던 것은 맞지만 범행이 구체화되기 전에 해당 보직에서 물러났다”며 “기소 여부를 정하는데 있어 범죄 혐의 중대성, 가담 정도, 실제로 수행한 역할, 지시에 따른 수동적 이행인지 적극적 가담인지를 종합 고려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추가기소와 별도로 권 대법관 등 현직 판사 66명의 비위 사실을 대법원에 통보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교육부 “세월호 시국선언 참여 교사 고발 취하”

    재판은 계속 진행… 하급심엔 참작될 듯 교육부가 세월호 참사 당시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에 대한 고발을 취하했다. 5일 교육부는 “세월호의 아픔을 공감하고 소통과 통합, 화해와 미래 측면에서 새로운 교육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며 고발 취하서를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시국선언 참여 교사의 명예회복 기회와 그간의 대립과 갈등을 치유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청와대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일간지에 시국선언 광고를 실은 교사들을 형사 고발했다. 고발 대상자는 1차 교사선언 참여자 43명, 2차 80명, 3차 161명 등 모두 284명에 달했다. 교육부는 이들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고 봤다. 고발 대상 중 61명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신원이 특정되지 않았고, 60명은 혐의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지도부 등 33명은 불구속 기소돼 현재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나머지는 기소유예되거나 벌금형에 약식기소됐으나 약식기소에 불복해 79명이 정식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은 재판 진행 등의 이유로 3·1절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고발 취하로 재판까지 취소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급심에 계류 중인 경우 양형 참작 사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사의 정치적 참여를 보장하는 쪽으로 정부 입장이 변화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세월호 5주기에 맞춰 하려던 조치였으나 화해와 치유 차원에서 앞당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교조는 논평을 내고 “고발 취하는 교사 입에 재갈을 물리려던 부당한 탄압에 대한 피해 복구 조처”라고 환영하며 “국제노동기구(ILO) 권고에 맞춰 교사도 교육과 무관한 정치 활동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세계 최대 마애관음상, 파괴돼…“中 공산당의 종교 탄압” (영상)

    세계 최대 마애관음상, 파괴돼…“中 공산당의 종교 탄압” (영상)

    중국 공산당이 대대적인 종교 탄압을 벌이고 있다고 알려진 가운데 허베이성 당국이 폭발물을 사용해 세계에서 가장 큰 마애관음보살상을 파괴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뉴욕에서 발행하는 중화권 글로벌매체 에포크타임스가 4일 공개한 이탈리아에 본사를 둔 온라인 중국 종교·인권잡지 한동(비터윈터)의 2일자 보도와 사진·영상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일 중국 북부 허베이성 스자좡시 관할 핑산현에서 정부 관료들이 절벽에 새겨진 높이 57.9m의 관음보살상을 폭발물로 파괴했다.이에 대해 한동은 “‘쇄수관음’으로 알려진 이 관음상은 마애상, 즉 절벽에 새겨진 관음상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크기였다”고 설명했다. 파괴된 관음상은 황안사가 있는 물물수생태풍경구(沕沕水生态风景区)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곳은 4A 등급의 국립경관지구이자 허베이성 당국이 관리하는 주요 역사문화지구이기도 하다. 한동은 또 “중국 공산당은 지난해부터 불교의 상업화에 대처한다는 구실로 중국 전역에 걸쳐 실외에 설치된 종교 조각상과 종교적 장소들에 대해 극심한 단속을 벌여왔다”며 “각처에서 유명한 실외 조각상들이 가려지거나 철거됐다”고 전했다. 이어 “경관지구에 있는 거대한 종교 조각상들에 대한 단속이 가장 심하다”고 덧붙였다. 보도에 따르면, 1월 30일 쇄수관음상을 철거하기 위해 성(省), 시(市), 현(縣)의 정부 지도자들, 현지 공안 경찰들을 포함해 20명이 넘는 관리들이 현장을 지휘했다. 이들은 황안사 경관지구 전체를 출입금지 지역으로 설정할 것을 지시해 사람들의 출입과 사진 촬영을 금지한 뒤 “철거를 막는 사람은 누구라도 체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철거 작업에 참여한 한 노동자에 따르면, 정부에서는 폭파 전문가들을 고용해 철거 계획을 세우게 하고 노동자들에게는 여러 대의 굴착기를 동원해 관음상의 기반을 제거하게 했다. 다음으로 노동자들은 관음상 뒤쪽의 산에 20m 깊이의 구멍을 뚫었다. 폭파 작업을 준비하는 데에 이틀이 걸렸다. 2월 2일, 엄청난 굉음과 함께 관음상의 상반신이 산산이 조각났다. 불과 몇 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폭발이 끝나자 높이가 거의 60m에 달했던 이 관음상은 잔해만을 남긴 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됐다.며칠 뒤, 관음상이 재건축되거나 누군가가 남은 잔해라도 거두는 일을 막기 위해 정부 관리들은 철거팀에게 남은 하반신도 폭파해서 관음상을 완전히 제거하라고 지시했다.한 소식통에 따르면, 폭발물을 이용해 관음상을 철거하라는 명령은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직접 내려온 것이다. 이 소식통은 한동에 “중국 전역에 걸쳐 불상에 절을 하거나 공물을 올리는 행위가 금지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동은 “파괴는 순식간에 이뤄졌지만 쇄수관음상을 완성하는 데는 거의 5년의 시간과 1700만 위안(약 28억6000만 원) 가량의 비용이 들었고, 이후 수많은 관광객과 참배객들을 끌어 모았었다”면서 “관음상은 겨우 2년 가량 유지되다 파괴됐으며 그로 인해 경관지구에 들어오던 엄청난 수입과 지역 경제도 함께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현지 주민에 따르면, 종교 축일이나 휴일이 되면 매일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찾아와 절을 하거나 불심을 다잡곤 했다. 주민은 “보통 사람들이 부처에게 절하고 찬불하기는 해도 중국 공산당에게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중국 공산당이 그 꼴을 두고 볼 리가 있겠느냐?”며 “사람들이 공산당을 믿지 않으니 공산당은 불상을 계속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한동, 유튜브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사설] 한유총의 ‘폐원 투쟁’ 협박, 국민 우습게 본 행위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유치원 개원 무기한 연기로 사실상 ‘집단휴원’을 강행한 것도 모자라 ‘폐원 투쟁’까지 할 수 있다고 위협하고 나섰다. 한유총은 개원을 하루 앞둔 어제 기자회견을 열어 “개학일 결정은 유치원장 고유 권한인 만큼 개학 연기는 준법투쟁”이라며 “정부가 불법적으로 계속 한유총을 탄압하면 폐원 투쟁으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보육대란의 가능성에 애타는 학부모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당장 집단 휴원을 철회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휴원으로 인한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도 적반하장 격으로 아이와 학부모를 볼모 삼아 협박의 강도를 높이는 한유총의 행태에 분노보다 참담함이 앞선다. 한유총은 ‘유치원 3법’ 철회와 사유재산권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관리회계시스템(에듀파인) 도입 등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유치원 3법’은, 교육부가 어제 공개한 설문조사에서 국민 80%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립유치원 용지와 건물 등을 사유재산으로 인정해 시설사용료를 정부에 요구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긴 마찬가지다.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금을 받을 때는 공공 교육시설이고, 설립자의 주머니를 채울 때는 사유재산이라는 한유총의 이중 잣대에 수긍할 국민이 몇이나 되겠나. 정부는 어느 때보다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 “엄정한 대응”을 지시한 데 이어 서울과 경기·인천 등 수도권 교육감들도 어제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협상은 없다”며 법에 따라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내일까지 개원하지 않으면 즉각 형사고발하는 것은 물론 한유총의 설립허가도 취소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한유총의 억지에 끌려가지 않고,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단호히 대응하는 것은 마땅하다. 다만 자칫 힘겨루기에 집착해 학부모와 아이들이 고통받거나 희생돼서는 안 된다. 국공립유치원과 초등돌봄교실, 어린이집과 아이돌봄서비스 등 정부의 모든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 보육대란을 최소화하는 대책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정치권도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야가 지난 연말 정기국회에서 유치원 3법을 통과시키지 못한 탓에 한유총이 이렇듯 여론도 무시하고 안하무인으로 실력행사에 나서는 것 아니겠나. 특히 유치원 3법의 발목을 잡았던 자유한국당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듯한데, 정부 탓을 하는 데 열을 올린다. 아무리 국정운영의 책임이 없는 야당이라지만, 균형감각을 잃은 처사가 아닐 수 없다.
  • 한유총 “개학 연기, 집단 폐원”…교육당국 “허가 취소”

    한유총 “개학 연기, 집단 폐원”…교육당국 “허가 취소”

    한유총 “유치원 1533곳 연기 동참” 교육부 “전국서 381곳” 집계 공개 경기·광주 등 일부 개학연기 철회유치원 개학을 하루 앞둔 3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무기한 개학 연기’ 강행에 이어 집단 폐원까지 들고 나왔다. 이덕선 한유총 이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계속 우리를 탄압한다면 ‘폐원 투쟁’으로 나아갈 것”이라면서 “오는 6일까지 회원들의 의견을 취합해 폐원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한유총은 특히 “개학 연기에 참여하는 유치원이 1533곳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참여 유치원의 명단 공개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지적엔 “정부의 압박으로 원장들이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며 공개를 거부했다. 한유총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파면도 요구했다. 교육부는 이날 정오 기준으로 각 교육청에 개학 연기 의사를 밝힌 유치원이 381곳이고, 명확한 의사를 밝히지 않은 유치원이 233곳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전날 집계된 190곳의 약 2배 수준으로, 명확한 의사를 밝히지 않은 유치원까지 실제로 4일부터 개학 연기에 들어가면 교육부 기준으로만도 614곳의 어린이들이 피해를 입을 전망이다. 더욱이 한유총 주장대로 1500개 이상의 유치원이 개학 연기 투쟁에 가담해 개학을 무기한 미루면 초유의 보육대란이 현실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출근을 해야 하는 맞벌이 부부는 당장 4일 아침 긴급돌봄서비스를 신청해 새로운 곳에 아이를 맡겨야 하는 등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한유총의 막다른 집단행동에 교육 당국은 한유총 설립 허가 취소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3곳 교육감은 이날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4일 개학 연기를 강행하면 즉각 설립 허가 취소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4일 아침 7∼8시 전국 사립유치원 총 3875곳의 개학 여부를 확인하고 개학을 연기한 유치원이 있으면 인근 국공립유치원·어린이집 등 대체 돌봄기관으로 안내한다. 개학 연기가 확인된 유치원은 즉시 시정명령을 받게 되고, 5일에도 시정되지 않으면 형사 고발된다. 한편 정부가 ‘무관용 원칙’을 고수하며 압박하자 한유총 광주지회가 개학 연기 방침을 철회하고, 경기도 일부 유치원도 개학 연기를 철회하는 등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한유총 “폐원투쟁 불사” 학부모들 “아이들이 인질이냐” 분노

    한유총 “폐원투쟁 불사” 학부모들 “아이들이 인질이냐” 분노

    유치원 개원연기에 반대하는 경기 용인 수지지역 학부모 비상대책위원회 회원과 어린이들이 3일 수지구청 앞에서 무기한 입학 연기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이날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인질이냐”,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은 내 아이로 거래하지 말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덕선 한유총 이사장이 설립한 유치원 학부모들은 개학연기를 철회하지 않으면 손해배상소송을 내려고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학부모는 자유발언을 통해 “지난주 수요일 담임선생님과 통화하면서 ‘우리 아이를 잘 부탁한다’고 말했는데 다음날 밤에 휴원 안내 문자를 받았을 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당장 월요일에 일하러 가야 하는데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며 “정상 개학을 한다 하더라도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아이들을 2년이나 보냈던 유치원이 서슴없이 폐원 통보를 하고 놀이학원으로 전환하는 행태를 보며 분노를 느꼈다”며 “사립유치원이 개학을 무기한 연기하겠다는 걸 보며 이 상황을 좌시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사립유치원 폐원 사태를 직접 경험했다는 한 학부모는 “다행히 아이들은 병설 유치원에 모두 수용됐고 통학버스까지 보장받았다”며 “처음부터 정부가 움직인 게 아니다. 학부모들이 똘똘 뭉쳐야만 얻어낼 수 있는 일이다”고 강조했다. 시위 현장을 찾은 김한메 전국유치원학부모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우리는 이번 일을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학부모들의 삶을 파괴하는 ‘유아교육 농단’으로 규정한다”며 “만약 개학연기 사태가 장기화한다면 조만간 서울 광화문에 전국 학부모들이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별 유치원 단위로는 직접 피해를 본 학부모가 원고로 나서 유치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유총은 유치원 개학 하루 전인 이날 개학연기를 강행하기로 했다. 한유총은 이날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무총리까지 나서 사회불안을 증폭하며 교육공안정국을 조사한 것이 매우 강한 유감을 표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한유총 자체조사 결과 개학연기 동참 유치원은 전국 1533곳이었다. 전체 사립유치원(4천220개)의 36.3%, 한유총 회원(3천318개)의 46.2%다. 지역별로는 경기·인천이 492곳으로 최다였고 이어 경북·부산·대구 339곳, 경남·울산 189곳, 충청·대전 178곳, 서울·강원 170곳, 전라·광주 165곳 등이었다. 교육부는 전국 교육청을 통해 조사한 결과 개학연기 동참 유치원이 전날 전국적으로 190여곳에서 이날 380여곳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은 곳을 더하면 개학연기 유치원이 최대 600여곳으로 늘어날 우려도 있다. 한유총은 개학일 결정은 유치원장 고유권한이라며 개학연기가 ‘준법투쟁’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불법적으로 계속 (한유총을) 탄압하면 폐원투쟁으로 나아가겠다”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이덕선 한유총 이사장은 “오는 6일까지 폐원 관련 회원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유총은 이어 “유 부총리를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협박 등 혐의로 고발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유 부총리를 파면해달라”고 덧붙였다. 한유총은 “유치원을 설립할 때 최소 30억원 이상 개인자산이 들어간다”면서 “이에 대한 합리적인 회계처리방안이 필요하다”고 ‘사유재산 인정’을 거듭 주장했다. 누리과정비 학부모 직접지원 주장도 되풀이했다.서울과 경기·인천 등 수도권 교육감들은 이날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협상은 없다”며 ‘사실상 집단휴업’이 이뤄질 경우 한유총 설립허가 취소 등으로 강력히 제재하겠다“고 맞섰다. 이런 가운데 교육 당국은 ‘보육대란’에 대비해 긴급돌봄서비스 제공 준비에 나섰다. 지역별 공립단설유치원을 중심으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돌봄교실, 국공립어린이집을 동원해 돌봄을 제공할 계획이다. 여성가족부가 주관하는 가정 방문 아이돌봄서비스도 무료로 제공하는 등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돌봄에 차질이 없도록 할 계획이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수도권 교육감들 “한유총, 유치원 개학연기땐 강제 해산”

    수도권 교육감들 “한유총, 유치원 개학연기땐 강제 해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은 3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유치원 개학연기는 명백한 불법”이라며 “주도한 유치원뿐 아니라 소극적으로 참여한 유치원도 강력하게 제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사립유치원단체 한국사립유치원연합회(한유총)에 대해 “집단휴업(개학연기) 철회와 에듀파인(국가관리회계시스템) 무조건 수용 등 진정성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한 협상은 없다”면서 “4일 개학연기를 강행하면 즉각 법에 따른 설립허가 취소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이날 수차례 “한유총이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 이번 기회에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경기도에는 전체 사립유치원(4220개)의 25%가 넘는 1096곳이 몰려 있으며 용인시 수지구 등 신도시를 중심으로 ‘한유총 세’가 강한 곳으로 꼽힌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비영리 사단법인인 한유총이 국민이 지탄하는 행위를 벌이며 관계장관 파면을 요구하는 것은 비이성적”이라고 지적했다. 한유총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파면을 요구했다. 조 교육감들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유아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한유총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면서 “국민이 ‘단호한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수도권교육감들은 4일 오전 각 유치원에 교육청과 주민센터 직원, 경찰 등을 보내 개학 여부를 확인하고 즉각 시정명령을 내린 뒤 5일에도 유치원 문을 열지 않으면 바로 형사고발하겠다고 경고했다. 4일 유치원 현장조사는 전국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또 “에듀파인과 처음학교로(온라인 입학관리시스템)를 사용하지 않고 개학연기에 가담하는 모든 유치원에 우선 감사를 실시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교육감들은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긴급돌봄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한유총은 이날 개학연기를 강행하기로 했다. 한유총은 이날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무총리까지 나서 사회불안을 증폭하며 교육공안정국을 조사한 것이 매우 강한 유감을 표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한유총 자체조사 결과 개학연기 동참 유치원은 전국 1533곳이었다. 전체 사립유치원(4천220개)의 36.3%, 한유총 회원(3318개)의 46.2%다. 지역별로는 경기·인천이 492곳으로 최다였고 이어 경북·부산·대구 339곳, 경남·울산 189곳, 충청·대전 178곳, 서울·강원 170곳, 전라·광주 165곳 등이었다. 한유총 측은 “각 유치원이 학부모에게 보낸 개학연기 안내문자를 지역지회·분회별로 ‘인증’받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자체돌봄 제공여부와 관련해서는 “아이들을 다른 기관에 맡기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교육부는 전국 교육청을 통해 조사한 결과 개학연기 동참 유치원이 전국적으로 190곳에 그친다고 발표했다. 개혁연기 여부에 대해 답하지 않은 유치원은 296곳이었다. 한유총과 교육부의 개학연기 동참 조사결과가 크게 다른 데 대해 한유총은 “교육부가 개학연기에 동참하려는 유치원을 협박했다”면서 “극소수만 (개학연기에) 참여하는 것처럼 숫자를 왜곡하는 치졸함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한유총은 개학일 결정은 유치원장 고유권한이라며 개학연기가 ‘준법투쟁’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불법적으로 계속 (한유총을) 탄압하면 폐원투쟁으로 나아가겠다”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이덕선 한유총 이사장은 “오는 6일까지 폐원 관련 회원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유총은 “유 부총리를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협박 등 혐의로 고발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유 부총리를 파면해달라”고 덧붙였다. 한유총은 “유치원을 설립할 때 최소 30억원 이상 개인자산이 들어간다”면서 “이에 대한 합리적인 회계처리방안이 필요하다”고 ‘사유재산 인정’을 거듭 주장했다. 누리과정비 학부모 직접지원 주장도 되풀이했다. 반면 교육부는 한유총 조사결과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한유총과 반대로 유치원들이 협박에 못 이겨 개학연기에 동참하겠다고 밝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한유총이 자체조사한 개학연기 동참 유치원 수는 진실이 아니라고 본다”면서 “(한유총 중앙본부나 지회에서) 강하게 나오니깐 어쩔 수 없이 동참한다는 곳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학연기 동참 유치원 수가 크게 엇갈리면서 애꿎은 유아와 학부모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학부모들은 이른바 ‘맘카페’를 중심으로 유치원에서 받은 개학연기 안내 문자를 공유해가며 ‘자체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한유총, 개학연기 고수 “정부 탄압하면 ‘폐원투쟁’ 검토”

    한유총, 개학연기 고수 “정부 탄압하면 ‘폐원투쟁’ 검토”

    사립유치원단체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개학연기 방침을 고수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당국의 개학연기 동참 유치원 조사결과는 허위라고도 주장했다. 한유총은 3일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무총리까지 나서 사화불안을 증폭시키며 교육공안정국을 조성한 것에 매우 강한 유감을 표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한유총은 “유치원을 설립할 때 최소 30억원 이상 개인자산이 소요됐다”며 “설립비용에 대한 합리적인 회계처리방안이 필요하다”고 ‘사유재산 인정’을 거듭 주장했다. 이들은 교육부가 전국적으로 개학연기 동참 유치원이 최소 190곳이라고 발표한 데 대해서는 “(조사를 수행한) 교육청 장학사를 통해 협박하고 참여 유치원 수를 조작했다”면서 “우리의 준법투쟁을 탄압하면 (개학연기를 넘어) 폐원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유총은 개학연기 동참 유치원이 전국적으로 1533곳에 달한다며 교육부 조사가 허위라고 주장했다. 지역별로는 경기·인천이 492곳으로 최다였고 이어 경북·부산·대구 339곳, 경남·울산 189곳, 충청·대전 178곳, 서울·강원 170곳, 전라·광주 165곳 등이라고 한유총은 주장했다. 앞서 교육부는 전국 교육청을 통해 조사해보니 개학연기 동참 유치원이 전국적으로 190곳에 그친다고 발표했다. 개학연기 여부에 대해 답하지 않은 유치원은 296곳이었다. 한유총은 개학일 결정은 유치원장의 고유권한이라면서 개학연기가 준법투쟁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불법적으로 계속 (한유총을) 탄압하면 폐원투쟁으로 나아가겠다”고 경고했다. 한유총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무능불통’으로 교육을 망치고 있다”면서 “직무유기나 직권남용, 협박 등 혐의로 고발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덕선 한유총 이사장은 “오는 6일까지 폐원 관련 회원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전날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부처·지방자치단체 긴급합동회의를 열고 “개학연기 강행 시 법에 따라 엄정대처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오후에는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 3개 지역 교육감들이 서울시교육청에 모여 개학 연기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이들은 당초 4일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었으나 사안이 긴급하다고 보고 일정을 하루 앞당겼다. 교육감들은 한유총에 개학연기를 철회할 것을 요청하며 대응 방침을 밝힐 계획이다. 앞서 서울교육청은 지난달 28일 한유총에 개학연기 철회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또 불법적인 집단행동을 계속하면 법에 따라 설립허가를 취소하겠다고 경고했다. 정현용 기자 jugnhy77@seoul.co.kr
  • 경찰·법무부·공정위까지 … 정부 - 한유총 ‘벼랑 끝 대치’

    경찰·법무부·공정위까지 … 정부 - 한유총 ‘벼랑 끝 대치’

    정부가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집단행동에 범부처 차원의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한유총이 “군사독재 시절에도 볼 수 없는 교육공안정국”이라며 맞서고 있어 정부와 한유총의 대치가 극을 향해 치닫고 있다. 정부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한유총 개학연기 발표 관련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경찰과 검찰, 공정거래위원회와 합동으로 개학을 연기한 유치원에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한유총의 유치원 개학 무기한 연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법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시·도교육청의 고발 건이 접수되면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말했으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에 대해 신속하게 조사하고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유치원이 유치원 운영위원회의 자문을 거치지 않고 개학을 연기할 경우 불법이며, 한유총 차원에서 유치원들의 개학 연기를 종용할 경우 공정거래법상의 담합에 해당한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시정명령과 형사고발 등 무관용의 원칙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유총도 물러서지 않는 상황이다. 한유총은 2일 성명서를 내고 “걸핏하면 국세청장과 경찰청장, 공정거래위원장 등 권력기관을 동원해 사립유치원 죽이기 겁박과 탄압정책을 펴고 있다”면서 “행정감사와 형사고발 운운하며 겁박하는 직권남용과 협박죄에 해당해 당장 중지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한유총은 운영위 자문을 거치지 않은 개학 연기가 불법이라는 정부의 지적에 “태풍, 호우 등으로 휴원할 때 운영위를 거치지 않고 원장이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입학 연기는 운영자의 권한”이라면서 “변호사 자문 결과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한유총은 에듀파인을 수용하는 대신 정부가 대화에 나서면 개학 연기를 철회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가 한유총과의 대화는 없다고 못박고 있어 대화를 통한 타협도 불가능할 전망이다. 한유총은 유치원 폐원 시 학부모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에듀파인을 도입하지 않을 경우 행정처분 방안을 명시한 유아교육법 시행령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또 ▲사립유치원 원아들에 대한 무상교육 ▲유치원의 사유재산 인정 ▲누리과정 폐지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같은 요구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설세훈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국장은 “누리과정을 전제로 무상교육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한유총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물밑 대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다수의 유치원이 개학하는 4일이 정부와 한유총 간 대치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유총이 전체 회원의 60% 이상(약 2000여개)에서 개학을 연기할 것이라고 예고한 것에 비해 참여율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일 정오 기준으로 전국 3875개 사립유치원 중 190개(4.9%)가 개학을 연기했다. 한유총이 자체돌봄도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과 달리 이들 중 80곳은 자체돌봄도 제공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296개 유치원이 응답을 하지 않아 참여율은 가변적이다. 시·도교육청의 조사 이후 개학 연기를 철회한 곳이 있는가 하면 시·도교육청에는 정상 개학한다고 보고하고 개학을 연기할 가능성도 있다. 응답하지 않은 유치원까지 포함하면 많게는 500곳 가까이가 개학 연기에 참여할 수 있다. 개학을 연기한 사립유치원들의 명단이 공개된 후에도 학부모들의 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서울 노원구의 학부모 A씨는 “유치원으로부터 개학을 연기한다는 통보를 받지 못했는데 교육청이 공개한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면서 “당장 개학일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도 되는건지 아닌지도 모르니 속이 터진다”고 말했다. 정부와 한유총 간 공방전은 3일에도 이어진다. 서울과 인천, 경기교육감은 3일 서울교육청에서 한유총의 개학 무기한 연기 관련 공동 기자회견을 연다. 한유총도 같은 날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종 입장을 발표한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문 대통령 “색깔론은 친일 잔재” 3.1절 100주년 기념식 연설에 나경원 반박

    문 대통령 “색깔론은 친일 잔재” 3.1절 100주년 기념식 연설에 나경원 반박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100주년 기념사에 대해 “색깔론을 친일과 등치시킨 것은 역(逆)색깔론”이라고 비판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1일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 문 대통령이 3·1절 경축사에서 색깔론을 제기하면서 이를 친일 잔재라고 했다”면서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세력에 입도 벙긋하지 못 하게 족쇄를 채우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단한 역색깔론이다”라고 규정했다. 이어 “사회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던 세력을 모두 사면하고, ‘백두칭송위원회’가 광화문 한복판에서 버젓이 활동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문재인 정부이니 당연한 수순인가보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문 대통령은 “아직도 사회에서는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는 도구로 ‘빨갱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면서 “변형된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 친일 잔재”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좌의 적대, 이념의 낙인은 일제가 민족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었다”면서 “일제는 독립군을 ‘비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다”면서 “여기서 ‘빨갱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빨갱이’는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 찍는 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빨갱이라는 말은) 해방 후에도 친일 청산을 가로막는 도구가 됐다”면서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 경찰 출신이 독립운동가를 빨갱이로 몰아 고문하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빨갱이’로 규정되어 희생됐고, 가족과 유족들은 사회적 낙인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문 대통령 “친일잔재 청산 너무 오래 미뤄…이념 적대 지워야 100년 시작”(종합)

    문 대통령 “친일잔재 청산 너무 오래 미뤄…이념 적대 지워야 100년 시작”(종합)

    “‘친일잔재 청산’은 너무 오래 미룬 숙제, 공정한 나라의 시작”3·1절 기념사서 북미관계도 언급 “북미대화 완전타결 반드시 성사”“우리가 주도하는 100년의 질서…새 경제협력공동체 열 것”문재인 대통령은 1일 “친일잔재 청산은 너무나 오래 미뤄둔 숙제”라며 “잘못된 과거를 성찰해야 함께 미래를 향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마음에 그어진 ‘38선’은 이념의 적대를 지울 때 함께 사라질 것”이라며 “혐오와 증오를 버릴 때 우리 내면의 광복은 완성되고 새로운 100년도 비로소 진정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야말로 후손들이 떳떳할 수 있는 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친일은 반성해야 하고, 독립운동은 예우받아야 한다는 가장 단순한 가치를 바로 세우는 것이 친일잔재 청산”이라며 “이 단순한 진실이 정의이고, 정의가 바로 서는 것이 공정한 나라의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아직도 사회에서는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는 도구로 빨갱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며 이를 변형된 색깔론으로 꼬집고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 친일잔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좌우의 적대, 이념의 낙인은 일제가 민족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었다”면서 “일제는 독립군을 ‘비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다. 여기서 ‘빨갱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빨갱이는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었다”고 설명했다. ‘빨갱이’라는 단어가 해방 후에도 친일청산을 가로막는 도구가 됐다면서 “많은 사람이 ‘빨갱이’로 규정되어 희생됐고,가족과 유족들은 사회적 낙인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다”고 떠올렸다. 문 대통령은 이를 ‘우리 마음에 그어진 38선’이라고 규정하고 “혐오와 증오를 버릴 때 우리 내면의 광복은 완성되고 새로운 100년도 비로소 진정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과거의 상처를 헤집어 분열을 일으키거나 이웃 나라와의 외교에서 갈등 요인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는 모두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친일잔재 청산도, 외교도 미래 지향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체제의 청사진도 함께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의 한결같은 의지와 긴밀한 한미공조, 북미대화의 타결과 국제사회의 지지를 바탕으로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했다. 이어 “신한반도체제는 이념과 진영의 시대를 끝낸, 새로운 경제협력공동체”라면서 “한반도에서 ‘평화경제’의 시대를 열기 위해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방안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군사적 적대행위 종식과 함께 남북이 합의한 ‘군사공동위원회’를 언급하면서 “비핵화가 진전되면 남북 간 경제공동위원회를 구성, 남북이 혜택을 누리는 경제적 성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남북관계 발전이 북미관계의 정상화와 북일관계 정상화로 연결되고 동북아 지역의 새로운 평화안보 질서로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3·1 독립운동의 정신과 국민통합을 바탕으로 신한반도체제를 일궈 나가겠다”며 “한반도 평화는 남북을 넘어 동북아와 아세안, 유라시아를 포괄하는 새로운 경제성장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노이 담판 결렬에 대해 “더 높은 합의로 가는 과정”이라며 “우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는 많은 고비를 넘어야 확고해질 것”이라며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2차 북미정상회담도 장시간 대화를 나누고 상호이해와 신뢰를 높인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두 정상 사이에 연락사무소 설치까지 논의가 이뤄진 것은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한 중요한 성과였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준 지속적인 대화 의지와 낙관적인 전망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하늘·땅·바다에서 총성이 사라졌다”며 “이제 곧 비무장지대는 국민의 것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또 “우리는 그곳에서 평화공원을 만들든, 국제평화기구를 유치하든, 생태평화 관광을 하든, 순례길을 걷든, 자연을 보존하면서도 남북한 국민의 행복을 위해 공동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문 대통령은 “그것은 우리 국민의 자유롭고 안전한 북한 여행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산가족과 실향민이 단순한 상봉을 넘어 고향을 방문하고 가족 친지를 만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문 대통령은 아울러 “통일도 먼 곳에 있지 않다”며 “차이를 인정하며 마음을 통합하고 호혜적 관계를 만들면 그것이 바로 통일”이라고 짚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0년 우리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 인류의 평화와 자유를 꿈꾸는 나라를 향해 걸어왔다”며 “새로운 100년은 진정한 국민의 국가를 완성하고, 과거 이념에 끌려다니지 않고 새로운 생각과 마음으로 통합하는 100년”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신한반도체제는 우리가 주도하는 100년의 질서로, 새로운 100년은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100년이 될 것”이라면서 “국민 모두의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친일잔재 청산 의지 밝힌 문 대통령 “빨갱이 같은 변형된 색깔론 하루빨리 청산해야”

    친일잔재 청산 의지 밝힌 문 대통령 “빨갱이 같은 변형된 색깔론 하루빨리 청산해야”

    문재인 대통령은 1일 “친일잔재 청산은 너무나 오래 미뤄둔 숙제”라며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잘못된 과거를 성찰할 때 우리는 함께 미래를 향해 갈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의 앞부분을 친일잔재 청산 의지를 밝히는 데 할애했다. 문 대통령이 기념사를 읽을 때 처음으로 박수가 터져 나온 부분도 친일 잔재 청산 의지를 처음으로 밝혔을 때였다. 문 대통령은 “이제 와서 과거의 상처를 헤집어 분열을 일으키거나 이웃 나라와의 외교에서 갈등 요인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친일잔재 청산도, 외교도 미래 지향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일본의 반발과 확대해석 등을 경계했다. 친일잔재 청산의 의미에 대해 문 대통령은 “친일은 반성해야 할 일이고 독립운동은 예우받아야 할 일이라는 가장 단순한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며 “이 단순한 진실이 정의이고 정의가 바로 서는 것이 공정한 나라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친일잔재 청산의 구체적 방향에 대해 잘못된 ‘색깔론’부터 없애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일제는 독립군을 ‘비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다”며 “여기서 ‘빨갱이’라는 말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이어 “좌우의 적대, 이념의 낙인은 일제가 민족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고 변형된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우리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잔재”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 정부의 역사의식 부재를 직접 비판했던 것과 달리 올해 기념사에는 일본 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없었다. 대신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일본과의 협력도 강화할 것”이라며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역사를 거울삼아 한국과 일본이 손잡을 때 평화의 시대가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라며 “힘을 모아 피해자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할 때 한국과 일본은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친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일본이 역사를 반성할 때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갈 수 있다는 기존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한편 문 대통령이 이날 연설문에서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우리’로 40회였다. 그다음으로는 ‘평화’ 30회였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촛불 대신 횃불로… 3·1 만세는 밤에 외쳤다

    촛불 대신 횃불로… 3·1 만세는 밤에 외쳤다

    시위자 독립된 줄 알고 경찰에 으름장 인쇄술 낮아 독립선언서 배포 어려워 장터 아닌 대부분 야간 산상봉화시위 정형화된 교과서 너머의 역사 생생히우리가 배운 ‘역사’란 대개 특정 사건의 일부이거나, 특정 시선에 따라 편집된 사실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사건의 주인공은 주로 사회를 이끌던 고위 관리들일 테고, 사건들은 대개 정치, 외교, 경제 등의 시선으로 잘 정리됐을 터다. 그래서 학교에서 배운 역사에서는 특정 사건이 ‘기승전결’에 따라 아주 부드럽게 흘러가고 마무리된 느낌을 주곤 한다. 그러니 역사 공부가 재미없을 수밖에. 좀더 나은 점수를 받고자 사건 발생 연도와 배경, 그리고 결과와 의미를 달달 외웠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동안 알고 있던 역사와 굉장히 다른 역사의 면면을 마주하면 ‘어?´ 하고 놀라게 된다. 3·1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봇물 터지듯 관련 책이 쏟아진 가운데, 권보드래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신간 ‘3월 1일의 밤´이 유독 돋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교과서는 3·1 만세운동이 왜 발생했는지, 우리는 어떤 저항을 했고, 일제는 어떻게 탄압했는지를 알기 쉽게 알려준다. 대한제국 황제 고종이 죽은 뒤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모두 기다렸다는 듯 한마음으로 태극기를 꺼내 들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곧바로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이 진행됐다고. 그러나 좀더 알아보면 고종은 별반 힘없는 왕에 불과했고, 민중은 그의 장례식을 3·1 만세운동의 도화선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태극기가 정작 3·1 만세운동에선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도 익히 알려진 터다. 최근 나오는 역사책이 이처럼 교과서보다 한 단계 더 들어간 수준이라면, 권 교수의 신간은 교과서보다 두 단계 정도 더 들어갔다 할 수 있다. 예컨대 3·1 만세운동이 벌어졌을 당시 민중의 사고방식은 어땠을까. 너도나도 벌이는 만세 시위에 대개는 조선이 당장 독립된 줄 알았다. 수백명이 집단으로 경찰서와 헌병분대를 찾아가 “조선은 독립했으니 일본은 물러서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일제의 고문에 “나는 돈 준다고 해서 만세를 불렀다”거나 “강압에 못 이겨 만세를 불렀다”고 한 이들은 풀려나고서 또다시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시위문화 역시 익히 알던 모습과 다르다. 3·1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장소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대개 장터를 꼽지만, 촌락공동체에서는 산상 봉화시위가 주를 이뤘다. 특히 충청도에서의 시위는 거의 다 야간 봉화시위였다. 1919년 3월 31일 아산군에서만 50여곳에서 2500여명이 횃불을 올리고 야밤에 만세를 외쳤다. 밤을 새우고, 혹은 2~3일 연거푸 목이 터져라 산에서 만세시위를 하다 마을로 내려오는 사례가 많았다. 탑골공원에서 벌어진 시위보다 더 재밌는 모습도 많았다. 경남 함양군 함양시장에서는 30세 농민 김한익이 장터 한가운데 소금 가마니를 쌓아 둔 곳에 올라가 만세를 외쳤다. 평안북도 선천에서는 신성학교 교사 김지웅이 고무신장수가 끌고 온 수레 위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들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대량으로 인쇄해 전국에 뿌리는 모습을 상상하겠지만, 사실 당시 등사기는 구하기도 어렵고 인쇄기술도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일제의 감시도 심했다. 이 때문에 유생이었던 송준필은 서당의 마룻장을 뜯어내 통고문을 인쇄하기도 했다.신간은 이처럼 3·1 만세운동 전후 20년사의 세밀한 이야기를 풍부하게 엮어 냈다. 시간에 따른 일반적인 서술에서 벗어나 ▲선언 ▲대표 ▲깃발 ▲만세 ▲침묵 ▲약육강식 ▲제1차 세계대전 ▲혁명 ▲시위문화 ▲평화 ▲노동자 ▲여성 ▲난민 ▲이중어 ▲낭만 ▲후일담 모두 16개 키워드로 정리했다. 저자는 10년 전 3·1 만세운동과 관련한 당시 신문조서를 읽다가 자신이 생각하던 역사와 다른 모습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고 밝힌다. 3·1 만세운동에 관해 좀더 알고 싶은 호기심에 저자는 방대한 각종 사료로 향했다. 그 10년 공부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례, 이를 분석하는 저자의 깊이는 어느 역사학자 못지않다. 특히 3·1 만세운동 당시 사상 흐름이라든가, 저자의 주된 연구 분야인 문학 관련 자료들에 관한 분석 등이 그렇다. 3·1 만세운동에 관해 교과서 수준의 정형화된 역사 너머가 궁금하다거나, 그저 그런 역사책에 갈증을 느꼈던 이들에게 권하고픈 책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교통·통신도 힘든 시절 민족 10%가 만세시위… 상상 어려운 대사건

    교통·통신도 힘든 시절 민족 10%가 만세시위… 상상 어려운 대사건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각종 정치 현안을 꿰뚫고 있는 정치인이 맡는 게 지금까지의 관례였다. 1963년부터 현재까지 36명의 비서실장이 거쳐 갔지만, 이낙연 총리의 초대 비서실장이었던 배재정 전 의원처럼 정치인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서울신문 등에서 재직한 언론인 출신이자 역사학자인 정운현(60) 비서실장이 임명됐다. 특히 별다른 친분이 없는 이 총리가 “내게 없는 역사에 대한 지식과 기개를 채워 달라. 길동무가 돼 달라”며 비서실장직을 제의한 사실이 알려지자 화제가 됐다.총리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 ‘실세 총리의 실세 비서실장’으로 알려진 정 실장을 3·1운동 100주년을 하루 앞둔 28일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앞에서 만났다. 역사 전문가인 그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3·1운동 100주년에 대한 의미를 잔뜩 풀어놨다.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은 국권이 침탈된 지 9년이 지나면서 한반도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필설로 다할 수 없는 탄압과 감시 때문이었다”면서 “뜻있는 지사들은 거의 망명길에 올라 이 땅에는 소위 민초만 남은 상태였다. 그런 여건에서 뚜렷한 지도자도 없고 교통·통신 수단도 변변찮던 그 시절 인구의 10%가 만세시위에 가담한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대사건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이런 상황에서도 3·1 거사는 추진 과정에서 철통같은 보안이 지켜졌고, 수십 명이 가담했으나 배신자가 한 사람도 없었고 비밀 누설도 전혀 없었다”면서 “전적으로 하늘이 우리 민족을 보우하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3·1 운동은 대한독립 만세만 외친 것이 아니다. 얼음장 밑에도 물고기가 살아 있듯이 일제의 압제하에서도 우리 민족이 굳건히 살아 있음을 만천하에 알린 전 민족적 외침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1926년 6·10만세항쟁,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이어 독재 정권에 항거한 4·19혁명, 광주 5·18민주화운동, 최근의 촛불시위도 3·1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3·1운동 100주년 행사는 이런 정신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친일파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교체하는 움직임 등 몇몇 교육청이 학교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 청산 작업에 나서는 것에 대해 “만시지탄이나 반가운 일”이라면서 “생활 현장 또는 우리 의식 속에 남아 있는 식민 잔재를 말끔히 청산하는 것이 3·1운동 100주년의 참뜻을 되살리는 길”이라고 덧붙였다.그는 3·1운동 100주년 남북 공동 행사가 무산된 점을 못내 아쉬워했다. “북측이 북미 2차 정상회담을 준비하느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대사를 앞두고 민족 내부의 일은 잠시 보류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최근 ‘3·1혁명을 이끈 민족 대표 33인’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지난해 여름 한 역사 전문가와 민족 대표 33인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이와 관련한 자료가 너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집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정 실장은 30여년 친일파·독립운동사 분야 등의 책 30여권을 펴냈다. 1년에 한 번꼴로 친일·항일 관련 책을 출간했으니 이 분야 최고 전문가인 셈이다. 경남 함양 출신인 정 실장은 대구고와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고려대 언론대학원 신문학과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 역사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던 그가 친일·항일 전문가가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1980년대 말 한 주간지에서 친일파 연구가 임종국 선생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그는 “임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가 대문호요, 민족지사라고 학교에서 배웠던 사실이 허구였다는 점을 알고 배신감, 분노 같은 게 터졌다”고 회고했다. 그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등 1차 사료를 뒤지면서 진실을 알게 됐고, 이후 1989년 임종국 선생이 급작스레 타계하면서 친일파 연구를 숙명처럼 이어받았다. 1990년 임 선생 1주기 관련 공저를 낸 뒤 고서점 등을 다니며 친일 관련 자료를 사 모으기 시작했고, 생존자들의 증언들을 수집했다. 30여권의 책 가운데 ‘반민특위 재판기록’(전 4권)과 1990년대 후반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주변인들을 인터뷰하며 펴낸 ‘실록 군인 박정희’를 가장 역작으로 꼽았다. 대화는 지난 26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개최한 현장 국무회의에서 유관순 열사에게 독립운동 유공 최고 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로 서훈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옮겨 갔다. 정 실장은 “유관순 열사는 그간 3·1 운동, 3·1절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면서 “유 열사가 과거에 받은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은 3·1운동 당시의 공적으로 받은 것이다. 이후 유 열사가 끼친 교육적 효과 등을 감안하면 충분히 1등급감”이라고 평가했다. 독립유공자 가운데는 공적이 허위로 드러나 서훈이 취소된 사례가 종종 있었다. 그는 “이미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사람들 중에는 친일 행적, 완벽한 가짜(동명이인 포상 등), 자료 미비, 형평에 어긋난 포상 등으로 소위 ‘의심 인물’이 최대 1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면서 “국가보훈처가 독립 유공 서훈자 1만 5000여명을 전수조사해 문제 있는 사람들을 가려 내겠다고 하니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선진국 같았으면 우리의 애국가는 벌써 폐기했을 것’이라는 글을 썼다. 의도를 묻자 그는 “애국가는 안익태가 작곡했다. 문제는 안익태의 행적이다. 그동안 친일파로만 알려져 왔는데, 최근 이해영 교수의 노력으로 친나치 행적마저 확인됐다. 국기(태극기)와 함께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애국가의 작곡가가 반민족 행위자라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민족의 정체성, 과거사 문제 등에 엄정한 입장을 견지하는 유럽의 선진국에서라면 벌써 폐기했을 것이라고 본다. 상황이 이렇다면 애국가 문제도 한 번쯤 진지하게 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최악인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시대 상황이 크게 변한 탓”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들의 식민지였던 한국은 세계 10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G2로 성장한 중국의 급부상으로 일본이 동북아에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시대는 끝이 났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아베 신조 정권은 진지한 성찰보다는 ‘극우’라는 헌 칼을 다시 꺼내 들었다. 전적으로 일본 국내 정치용이고 자폐적이다”라고 비판했다. 한일 양국이 갈등을 푸는 해결책으로는 “선린의 시작은 가해자인 일본이 과거를 직시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면서 “신문사 도쿄특파원 출신으로 일본 전문가인 이낙연 총리의 말처럼 일본은 과거 앞에 겸허하고, 한국은 미래 앞에 겸허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거론했다. 정 실장은 지난 22일 공개된 고위공직자 재산 등록에서 재산이 7000만원인 것으로 공개됐다. “재산이 왜 이것밖에 안 되냐”며 짓궂은 질문을 던지자 “0이 하나 빠진 게 아닌가요”라며 되받아쳤다. 그는 “재산이 적은 것은 자랑도 아니지만, 수치도 아니다”라면서 “친일파 연구자들은 대학에서 마땅한 강의 자리를 찾기도 어렵고, 책도 대중적 인기를 끌기가 쉽지 않다. 내 주변의 연구자들은 대개 그렇게 지낸다”고 말했다. 그는 “더 큰 문제는 사학과 학생들 가운데서도 현대사 특히 독립운동사 전공자가 드물다”면서 “역사학계로서도 민족사로서도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정치 입문 가능성에 대해 묻자 손사래를 쳤다. 정 실장은 “국회의원 출마 등 정치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국정 고위책임자가 나를 알아주고 도와달라는데 이를 거부할 명분이나 이유가 없어서 돕기로 한 것뿐”이라면서 “나는 정치의 영역에서 일을 할 뿐이지 의도를 갖고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정치인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정치 얘기가 나오는 걸 보니 인터뷰가 끝난 것 같다”며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횡단보도를 건너 집무실이 있는 정부서울청사 쪽으로 발길을 총총히 옮겼다. jrlee@seoul.co.kr
  • 도굴 드라마 인기로 희귀종 천산갑 수난당해

    도굴 드라마 인기로 희귀종 천산갑 수난당해

    중국에서 도굴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악의 기운을 쫓기 위해 천산갑으로 만든 부적을 사는 것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천산갑은 멸종 위기 2등급의 희귀 동물로 불법적으로 사냥하거나 판매하다 적발될 경우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16일 ‘세계 천산갑의 날’을 맞아 발행된 보고서에 따르면 천산갑으로 만든 제품이 도굴을 주제로 한 드라마 덕분에 인기를 끌고 있다고 28일 보도했다. 천산갑의 발톱은 장식품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발톱 장식품은 ‘귀취등(鬼吹燈)’이란 판타지 소설에서 악귀를 물리치는 것으로 묘사된다. 비록 불법이지만 천산갑으로 만든 장식품과 부적, 빗 등은 중국 골동품 시장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으며 가격은 2000 위안(약 34만원)에 이른다. 중국 최대의 인터넷 상거래 플랫폼인 타오바오에서도 늑대나 개의 이빨로 만든 부적이 팔리는데 가격은 개당 10~100위안 정도다. 2007~2016년에는 모두 209건의 천산갑 밀수 사건이 적발된 바 있다. 도굴을 주제로 한 ‘귀취등’과 ‘도묘필기’(盜墓筆記) 등의 소설과 드라마는 2006년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다양한 인터넷 드라마와 영화가 2015년부터 등장하면서 천산갑 부적은 더욱 자주 드라마에 나왔다. 중국에서 부적을 만들기 위해 천산갑을 소비하는 양은 매우 적으며, 대부분의 천산갑은 약의 재료로 쓰인다. ‘도묘필기’는 50년 전 창사의 도굴꾼들이 보물을 찾으려 시도하다 모두 죽음을 맞고 홀로 살아남은 생존자의 젊은 손자가 할아버지의 노트에서 비밀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할아버지의 노트에 따라 보물을 찾으려 시도하면서 온갖 미스터리와 모험을 겪게 된다는 것이 내용이다. 처음에는 만화로 시작해 이어 소설과 영화로 제작됐으며 9편으로 구성된 소설은 2000만부 이상 팔렸다. 2006년 발매된 소설 ‘귀취등’은 50만 권의 판매고를 올렸다. 중국 공산당은 기독교, 이슬람교 등 종교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미신은 철저하게 탄압한다. 관영 신화통신은 공산당원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상을 지지하고 미신을 믿거나 초자연적 풍습을 따르면 안 된다고 27일 보도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미신을 믿는 풍습은 오래된 전통으로 2015년 반부패 처단에 따라 무기징역형을 받은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도 국가 기밀을 점쟁이에게 이야기한 바 있다. 유명한 점쟁이이자 풍수가인 차오융정은 공산당의 실세인 저우와의 인맥을 이용해 다양한 이권 사업에 개입했다가 둘다 반부패의 철퇴를 맞았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3·1’ 혁명·촛불·메타역사·여성… 구국의 100년 다시 읽다

    ‘3·1’ 혁명·촛불·메타역사·여성… 구국의 100년 다시 읽다

    3·1운동 100주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100년간 3·1운동은 숱한 분석의 대상이었으나 최근 들어 학계에서는 민족 대 반민족, 수탈 대 저항 등의 낡은 이분법적 구조에서 벗어나 다각도로 재조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껏 주목받지 못했던 다양한 주체들을 재조명하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미치는 영향을 재구성하는 일 등이다. 출판계에 쏟아지고 있는 다양한 기념 저작들을 4가지 키워드로 알아봤다.●3·1운동인가, 3·1혁명인가 3·1운동에 관한 학계의 첨예한 논쟁거리 중 하나는 ‘3·1혁명론’이다. 책 ‘3·1혁명과 임시정부’(두레)에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인구의 10분의1 이상이 만세시위에 참여했으며, 군주제를 폐지하고 근대적인 민주공화제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며 3·1운동에 ‘혁명’이라는 ‘정명’을 붙여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학, 문학, 종교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 8인이 머리를 맞댄 책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창비)에서는 보다 심화된 논의가 이뤄진다. 식민지 조선인들이 정치적인 목표로 내걸었던 대한독립이 3·1운동으로 달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혁명으로 부를 수 없다는 입장(오제연 성균관대 사학과 조교수)과 ‘3·1운동보다 규모가 작았던 1919년 이집트 독립운동에도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입장(김학재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등이 맞부딪친다. 혁명을 새로운 시대에 대한 지향이나 욕망, 유토피아에 대한 해방감, 그걸 표현하는 축제로 봐서 3·1운동이나 촛불에도 모두 ‘혁명’을 붙일 수 있다는 의견(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명예교수)도 있다. ● ‘촛불’ vs 촛불 100년 역사를 뛰어넘어 오늘날 ‘촛불’과의 연계를 시도하는 모습도 눈여겨볼 만하다. 책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에서 이기훈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촛불시위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선언과 3·1운동의 ‘내가 대표다’라는 선언 사이에 100년의 차이가 있지만 3·1운동은 공화와 주체의 자각이라는 측면에서, 촛불은 그 정치 원리의 구현이자 정점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언론인 손석춘씨가 펴낸 소설 ‘100년 촛불’(다섯수레)은 촛불은 갑자기 출현하지 않았으며, 3·1운동을 기점으로 한 100년의 역사가 만들어 냈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계약직 노동자로 평범한 삶을 영위해 온 소설 속 화자는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 함께 참여한 시아버지로부터 대한민국 역사 속 굵직한 인물·사건들과 얽힌 4대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600쪽가량의 두꺼운 책에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역사적 사건들이 촘촘히 담겼다. ●메타역사적 관점에서의 비평적 3·1운동 읽기 한국역사연구회가 3년의 준비 끝에 펴낸 ‘3·1운동 100년’(전5권·휴머니스트)은 메타역사적 관점에 따라 비평적 역사 읽기를 시도했다. 3·1운동의 기억이 남과 북, 한국과 일본이라는 공간에 따라, 그리고 정치적 변동에 따라 그 위상과 해석이 달라지는 역사적 주제임에 주목한 것이다. 3·1운동의 세계사적 의의가 갖는 과장된 측면을 짚어내고, 해방 직후 사회주의자들과 북한, 일본의 3·1운동에 대한 인식 흐름을 살폈다. 정설화되고 있는 ‘고종독살설’에 대한 문제제기와 ‘3·1운동=서울 파고다 공원’이라는 상식을 깨는 북부 지방 도시들의 만세시위 등 3·1운동 사건사의 새로운 해석을 보여 준다. ‘3·1운동 100년’에서는 당대를 겪은 다양한 주체들의 시선을 담았다. 도쿄 유학 중 혁명을 꿈꾸며 귀국한 청년, 경남 산청 출신의 유림 청년, 서울 한복판에서 3·1운동을 비판한 YMCA 총무 윤치호, 시위 탄압을 진두지휘한 일본군 사령관, 서양인 선교사 등 여러 관점에서 3·1운동을 재구성했다.●소외 됐던 여성에 대한 조명 문학에서는 그간 조명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여성 문학, 페미니즘 문학에 주목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2014년부터 ‘김말봉 전집’을 발간해 왔던 소명출판은 이번에 7, 8권을 내놨다. 기자로 활약했던 김말봉(1901~1961)은 ‘보옥’이라는 필명으로 193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동아일보에 연재한 ‘밀림’, 조선일보에 연재한 ‘찔레꽃’ 등이 히트를 하며 일약 통속소설가로서 자리를 굳혔다. 이번에 출간된 책에는 김말봉의 단편소설과 미완성 장편, 시, 수필, 칼럼, 기사 등이 수록됐다. 그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쓴다’는 신조를 가진 대중소설가임과 동시에 1940년대 공창폐지위원장으로 여성 인권 신장에 앞장선 인물이었다. ‘신여성, 운명과 선택’(에오스)은 1910~1940년 한국 근대문학에 불꽃을 피운 여성작가 7인의 선집이다. 백신애, 이선희, 나혜석, 강경애, 김명순, 임순득, 지하련 등 해방 이전 사망했거나 해방 이후 월북해 상대적으로 빛을 못 봤던 작가들이 중심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日, 세계 평화주의 흐름 오판해 동아시아를 수렁에 몰아”

    “日, 세계 평화주의 흐름 오판해 동아시아를 수렁에 몰아”

    진보적 언론으로서도 이례적 보도 평가 아베 개헌 추진·군비 확장에 경종 의미 “조선 전역서 비폭력으로 日군경에 맞서 독립선언서는 아시아의 미래도 통찰” 마이니치신문도 “日에 저항한 독립운동”‘3·1운동에 대한 일본 군경의 탄압은 극도로 가혹했다. 강덕상(재일사학자)의 ‘현대사 자료 조선2편’에 따르면 ‘3분간 사격에 51명 즉사’라는 내용이 군 보고서에 적히기도 했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27일 1개면을 할애해 100년 전 한국에서 일어났던 3·1운동의 역사와 의미, 당시 일본의 무자비한 탄압 등을 다룬 특집기사를 실었다. 아사히는 ‘기로의 1919년…동아시아 100년의 그림자’라는 제목의 기획기사를 통해 1919년 1차 세계대전의 전화를 딛고 세계에는 평화주의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일본은 이 흐름을 잘못 파악해 오판을 함으로써 동아시아를 수렁으로 몰아넣었다고 지적했다. 아사히가 상대적으로 진보적 색채가 강하다고는 해도 일본 언론으로서는 이례적인 보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방향으로 개헌을 추진하고 막대한 방위비를 지출하며 군비 확장을 꾀하고 있는 아베 신조 정권에 대한 경종의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던 100년 전을 상기시킴으로써 아베 정권에 반성과 각성을 촉구한다는 것이다. 아사히는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조선 민중은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를 빼앗긴 채 헌병의 감시 아래 침묵을 강요당했다”며 “이에 1919년 3월 1일 서울 중심부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됐고 수십만명이 거리에 나와 ‘독립만세’를 외쳤다”고 전했다. 이어 “독립운동은 조선 전역으로 확산됐고 민중들은 비폭력 정신을 내걸고 일본 군경에 맞섰다”고 소개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무자비한 탄압에 나서 그해 5월 말까지 3개월 동안 희생자는 사망 7509명, 부상 1만 5961명에 달했다고 박은식 선생의 ‘조선독립운동지혈사’를 인용해 전했다. 아사히는 독립선언서를 일본 정치인과 학자에게 보낸 독립운동가 임규(1867~1948) 선생에 대해서도 다뤘다. 임규 선생은 3·1운동 당일 밤 자신이 일본어로 번역한 독립선언서를 들고 도쿄역에 도착한 뒤 이를 200통 복사해 당시 총리 등 정치인, 학자, 언론사, 대학 등에 보냈다. 아사히는 독립선언서 내용 중 ‘2000만 조선인을 힘으로 억누르는 것은 동양의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니다. 4억 중국인들이 일본을 더욱 두려워하고 미워하게 하여 결국 동양 전체를 함께 망하는 비극으로 이끌 것이 분명하다’는 대목을 들며 “독립선언서는 아시아의 미래도 통찰하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아사히는 “그러나 조선의 이런 외침이 일본 사회에 퍼지지는 못했다”며 ‘역사평론’이라는 잡지가 독립선언서를 게재해 일본의 독자들에게 알린 것은 패전 후인 1948년이었다고 설명했다. 아사히는 동아시아를 전화에 빠뜨린 일본의 책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1차 세계대전 후 전 세계에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고양되고 ‘부전(不戰)조약에 의해 전쟁을 불법화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었지만, 일본은 이러한 신조류를 잘못 읽었고 결국 그것이 동아시아를 불행에 빠뜨렸다”고 썼다. 마이니치신문도 이날 문답형 기사를 통해 “한국의 3·1운동은 일본의 한반도 지배에 저항해 전국적으로 퍼진 독립운동”이라고 설명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3·1운동 100년] 평화행진 첫날부터 발포한 日, 만행·사망자 조직적 은폐·축소

    [3·1운동 100년] 평화행진 첫날부터 발포한 日, 만행·사망자 조직적 은폐·축소

    “서울에서 발생한 일이다. 어린 학생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자 일본 헌병이 칼로 그의 오른손을 잘랐다. 오른손이 잘린 학생은 다시 왼손에 국기를 들고 더욱 높은 소리로 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헌병은 그의 왼손마저 잘랐다.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한 서양인이 사진을 찍어 남기려다가 헌병에게 끌려갔다.”(1919년 4월 12일자 중국 국민공보) “체포된 한인들은 밤낮으로 잔인한 고문을 당한다고 한다. 한인 가운데 죽은 자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알려진 것이 없다. 서울에서 50마일(약 80㎞) 이내 무수한 촌락이 불탔다. 시체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른다.(1919년 5월 19일자 국민공보)●시위 확산 3월 말부터 조준 발포… 희생 급증 일제는 3·1운동에 나선 조선인들을 총칼로 탄압했다. 그들의 눈에 태극기를 든 시위대는 식민지 체제를 전복하고자 선량한 조선인들을 선동하는 폭도에 불과했다. 만행과 학살이 일상이 됐다. 총을 든 일본군과 경찰, 시위 주동자에게 다가가 몸에 색분필을 발라두는 조선인 밀정까지 뒤섞이면서 만세운동은 시작과 동시에 아수라장으로 변하곤 했다. “파리채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 단호한 처치만 필요할 뿐”이라던 한 일본 경찰의 외침 속에 3·1운동을 대하는 일제의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26일 국사편찬위원회의 ‘3·1운동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3·1운동 참가 인원 가운데 사망자는 최대 934명으로 집계된다. 일제가 파악한 사망자 553명보다 두 배 가까이 많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내놓은 7483명, 박은식(1859~1925)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분석한 7509명에는 크게 못 미친다. 이와 관련해 국편 측은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망자수가 최소 934명이라는 것”이라며 “자료의 오류 수정과 추가 발굴 등의 연구가 진행되면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사망자수에서도 알 수 있듯 일제의 만행은 도를 넘었다. 3·1운동 첫날인 1919년 3월 1일부터 발포가 이뤄져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점이 최근 연구에서 드러났다. 만세운동이 격화된 3월 말~4월 초 사이에 사망자가 집중됐다는 사실도 재확인됐다. 실제로 3월 1일 평양에서 주민 5000여명이 참가한 시위를 기록한 외국인 자료에는 “총상 환자 5명이 병원에서 숨졌다”는 기록이 나온다. 같은 날 평북 선천에서도 시위 중 체포된 11명의 학생 가운데 3명이 사망했다는 보고가 있다. 이들은 가혹한 태형으로 중상을 입고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시위 첫날부터 무자비한 폭행이 가해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이계형 국민대 특임교수는 “아무래도 서울 시내는 외국인이나 선교사 등 보는 눈이 많아서 조선총독부 입장에서도 발포가 조심스러웠을 것”이라면서도 “(더는 서양인의 눈치를 보지 않기로 결심한) 3월 말부터 사람을 직접 조준 발포가 잦아졌다”고 말했다. 국편이 파악한 3·1운동 관련 사망자 934명 가운데 47.6%(445명)가 3월 28일~4월 6일 사이에 몰려 있다. 서울에서는 사망 추정자가 3명에 불과하지만 외국인이 거의 없던 평안도에서는 423명이나 됐다.●日軍 4만여명 준계엄체제… 2만 6713명 검거 3·1운동이 대부분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진행됐음에도 시간이 갈수록 사상자수가 늘어난 것은 시위가 사그러들지 않고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 총독부가 강경 대응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총독부는 수시로 총독 명의의 유고(諭告·담화문)를 발표했다. 3월 7일에는 “허튼소리로 인심을 흔드는 자에 대해서는 가차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4월 10일에는 “지방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중앙정부에 군대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으니 화를 입지 말도록 하라”고 최후통첩성 발언을 내놨다. 일본 군경의 총기 사용을 용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일본측 발포가 없는 날은 7~8일에 그쳤다. 이양희 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 연구원은 “1919년 3월 11일쯤 일본 육군성 차관이 만세운동 초기 진압에 실패한 것을 두고 조선총독을 질책했다”면서 “무력 탄압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일본 내각의 명령에 의한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3·1운동 기간 중 최악의 사태로 꼽히는 ‘제암리 학살 사건’도 일본의 강경 진압이 최고조에 달한 1919년 4월 15일 발생했다. 보병 79연대 중위 아리타 도시오는 “화성 발안장 만세운동의 주동자를 검거한다”며 제암리 마을에 들이닥쳤다. 15세 이상 남자들을 교회당 안으로 몰아넣은 뒤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이때 한 부인이 어린 아기를 창 밖으로 내놓으며 “아기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일본 군경은 아이마저 찔러죽였다. 일제는 만행의 증거를 없애고자 교회당에 불을 질렀다. 이 사건으로 제암리에서만 23명이 목숨을 잃었고 인근 지역 참살까지 포함하면 사망자가 30명을 넘는다. 고주리에서는 일가족 6명의 목을 쳐서 죽인 뒤 시신을 토막 내 짚가리 위에 올려놓았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 조선군사령관으로 재직 중이던 우쓰노미야 다로가 쓴 일기에는 “일본군이 약 30명을 가두고 학살과 방화를 했다.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고 처분하면 간단하지만 이렇게 되면 학살을 자인하는 꼴이 돼 제국의 입장에서 불이익이 크다. 이 때문에 간부회의에서 조선인들이 저항해 살육한 것으로 하고 학살은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적혀 있다. 일본 스스로도 정당한 행동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국제 여론이 나빠지자 사건을 일으킨 아리타 중위는 재판에 회부됐지만 4개월 뒤 무죄로 풀려났다. 4월 초 일본에서 조선으로 추가 파견된 ‘임시조선파견보병대대’도 조선 민중들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3·1운동 확산의 원인 가운데 하나를 병력 부족으로 본 일본 내각과 조선총독부의 이해가 맞물린 것으로, 6개 대대 4200명 규모였다. 3·1운동 발발 당시 일본군 2개 사단이 상주해 3만~4만명가량 군이 있었던 점을 감안해보면 1919년 4월 일본군은 최대 4만 5000명까지 늘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임시파견대대는 1905년에 개발된 근접 전투용 무기인 ‘38년식보병총’과 기관총, 수류탄을 소지하고 있었다. 이양희 연구원은 “임시파견대대는 시장에서 무장을 한 채 훈련을 하는 등 만세운동을 준비하려는 조선인들에게 겁을 주는 행동이 잦았다”며 “일제가 3·1운동에 대해 준계엄 체제로 대응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조선총독부 내부 자료를 보면 3·1운동 시작부터 4월 30일까지 약 두 달간 검거된 조선인은 2만 6713명이었다. ●3·1운동 약화 유화책 펼쳐… 단속·감시 체계화 일제는 3·1운동을 약화시키고자 무력 진압 외에도 의료선전 활동, 시장 개시(開市) 독려 등 유화책을 썼다. 당시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는 “일본적십자사 조선본부가 3·1운동에 참가했다가 부상당한 이들을 무료로 진료할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나온다. 서울시내 유력 상인 40여명을 설득해 상점을 다시 열게 하는 등 조선인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뒤로는 경비인력을 늘리면서 3·1운동이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를 이어갔다. 3·1운동 이전 1만 3230명 수준이었던 경찰 수는 1921년 2만명을 넘어섰다. 일제의 단속과 감시가 더욱 체계화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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