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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지은 프로무대 첫 출발 ‘상큼’

    역시 ‘슈퍼 루키’였다. 미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네이플스메모리얼대회에 출전한 한국의 박지은(21)이 21일 새벽 플로리다주 스트랜드골프장(파 72)에서 열린 데뷔전 첫 라운드에서 기대 이상의 경기를 펼치며 2라운드 반격에 나섰다. 박지은은 이날 첫 라운드에서 버디 4개,보기 2개로 2언더파 70타를 쳐 선두와 6타차로 공동 21위에 올랐다.선두는 지난해 이 대회 우승자 멕 맬런(8언더파 64타). 이날 새벽 4시42분 제10번 홀.첫 홀 티박스에 나선 박지은에서새내기의 긴장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주저없이 휘두른 드러이버 샷은 278야드(평균 거리 263야드) 날았다.이어세컨드 샷을 홀컵 1m에 붙인 박지은은 가볍게 첫 버디를 낚아 출발부터 상쾌한 기분을 맛봤다. 하지만 지나친 여유였을까. 11번홀(파5)에서 특유의 장타를 뿜어 내며 2온에 성공,이글 기회를 맞은 박지은은 결국 뼈아픈 3퍼팅을 범해 반격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박지은 이날 주무기인 드라이버 샷과 아이언 샷이 살아나며 번번이 버디찬스를 잡고도 퍼팅을 놓쳐 갤러리들의탄식을 자아냈다. 한편 함께 출전한 ‘슈퍼 땅콩’ 김미현(22·한별텔레콤)은 오른쪽 손목 팔꿈치 통증이 생겨 2오버파 74타로 80위권에 밀렸으며 첫 데뷔전을 치른 박희정(20)도 3오버파 75타로 부진,최하위권에 처졌다. 박성수기자 ssp@
  • [대한매일 신춘문예] 편혜영씨 당선소감

    이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상상하여 그려 놓은 책이 있다.거기에는 양끝에 둥근 고리가 달리고 가운데 열쇠홈이 파인,문 밖에서 잠글 수 있다는 이중열쇠가 있고,받침대가 하나 뿐인 곡예사용 침대,옆구리에 문이 달린 욕조,손가락 모양의 장갑 다리는 판,하나의 납덩이에 많은 낚시바늘이 달린 바다낚시대 따위가 있다. 그 책에 있는 물건들은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는 것들이다.간혹 하,기발하군,탄식을 하고,낄낄,웃기도 하나,그것들은 대부분 터무니 없으며,유치하고,일견 하찮은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세상에 처음으로 내 놓은 내 소설이,그것들을 닮은 것 같아 헛헛하게 가슴을 쓸어 내린다. 어딘가 급하게 가야할 곳이 있다는 듯 종종걸음을 치면서 지름길을 찾곤 한다.잔뜩 어깨를 움추리고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로 걷고 있으면 왜 빨리 가는데?의문이 들고,그러면 대답이 궁색하다.서둘지 않으면서 제 갈길로 갈 일이다,중얼거리면서 걸음을 늦춘다. 돌아보면 온통 고마운 사람들 뿐이다.서울예대 문창과 교수님들,한양대 국문과 교수님들,그리고 작품을 심사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약 력]▲72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한양대 국어국문과 ▲한양대국어국문과 대학원 재학
  • [대한시론] 대우그룹 부실자산 책임론

    근래에 와서 바닷고기를 산채로 운반하는 기술이 발달되어 산오징어나 활어회를 전국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게 되었다.동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오징어의 경우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산채로 운송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햇볕에건조하여 팔 수밖에 없었다.한여름에 만선의 깃발을 단 어선들이 항구에 도착하면 바닷가 사람들이 손수레를 끌고와 물오징어를 사서 집앞 건조대에 널어 말려서 건오징어를 시장에 내다 팔았다.햇볕이 내려쬐는 여름날에는 물오징어는 제값을 받을 수 있었다.그러나 비가 오기 시작하면 물오징어값이 폭락하고 때에 따라서는 그냥 버리기까지 했다.물오징어값은 맑은 날에는 건오징어의 시장가격을 반영하여 정상적으로 결정되지만 비가 오기 시작하면 시장기능이 붕괴되고 말았다. 재벌순위 국내 2위를 자랑하던 대우그룹이 과중한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대우그룹 계열사의 자산가치는 비오는 날의 물오징어값처럼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한여름 폭우를 만난 오징어잡이 어선처럼 아쉬움의 탄식이 대우선단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부도상태에 빠진 대우그룹 계열사의자산실사를 담당한 회계법인이 값을 후려치는 바람에 자산가치가 절반 이상날아가 버렸다.지난해 말 정상적인 상태에서 대우그룹이 작성한 결산서에 대한 회계감사보고서와 부실기업평가를 위한 실사보고서의 자산평가액에 큰 차이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자산평가액의 차이에 대한 책임을 김우중 회장을 비롯한 대우그룹임직원에게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또한 대우그룹 계열사에 대한 회계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에 대한 책임문제도 제기되면서 금융감독원이 대규모 인력의 특별감리반을 투입해 조사를 시작했다. 대우그룹은 세계경영의 기치를 들고 동유럽과 서아시아 등 과거 공산주의치하에 있던 국가에 많은 공장을 세웠다.유럽연합의 관세장벽을 뚫기 위하여 동유럽 국가를 활용하려는 의도에서 다소 무리한 사업을 추진했던 것이다. 과거 공산치하에 있었던 동유럽 국가의 경제시스템은 아직도 제자리를 잡지못하고 있으며 정상적인 돈을 지급하고도 영수증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다.서면으로 작성된 약정서도 없이 정부관리들과 구두로만 합의하고아무 증빙없이 돈을 투입하는 사례도 빈번했다.대우그룹이 자동차나 전자제품을 정상적으로 생산하여 유럽시장에 팔아서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면 이와 같이 비정상적으로 처리된 비용을 정리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좋은 날을 보지 못하고 그룹해체의 비운을 맞았고 아까운 돈을그냥 날리게 된 것이다. 대우그룹 계열사들이 작성한 결산서에 대한 회계감사를 실시한 회계법인은기업이 계속 존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속기업의 가정 하에 영업활동에 투입된 원가를 대부분 인정했던 것이다.회계감사는 경제성 측면을 고려하여 소액의 감사수수료만 징수하기 때문에 거래전체를 조사하지 못하고 표본을 선정하여 감사를 실시한다.또한 회계법인과 감사 수감자들은 민간인 신분으로강제적 조사수단을 동원하기도 어렵다. 부실기업 실사는 허위진술을 하는 임직원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강력한 조사이며 실사수수료는 감사수수료의 수십배에 달하고 동원되는 인력도 비교가안될 정도로 많다.또한 실사대상기업이 청산될 것을 전제로 하여가치를 평가하므로 정상적인 투입원가가 부인되는 경우도 있다.따라서 회계감사와 부실자산실사와의 차이가 나는 금액을 대우그룹 임직원과 회계법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실제로 외국인 채권단은 이와 같은 자산실사 결과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우그룹의 실패는 20세기 후반기의 성장위주의 한국경제의 문제점이 노출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이는 김우중 회장 개인 뿐 아니라 금융기관,금융감독기관,회계법인,학계 및 정부의 책임이 모두 집결된 것이며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우리 경제가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사례인 것이다. 李晩雨 고려대 교수·경영학
  • 지수 하룻새 20P 폭락

    “이럴 수가…” 코스닥시장이 3일 연속 하락세를 보이면서 투자자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이다.개인투자자들은 몇개월전에 겪은 조정장(7월20일 코스닥지수 214→10월1일150)의 악몽 때문인듯 17일 앞다퉈 ‘팔자’에 나섰다.외국인들은 정보통신주 위주로 차익실현에 나섰고,기관투자가까지 매도에 가담하면서 불안감이급속히 확산되는 모습이었다.지수는 사상최대인 20포인트 가까이 내렸으며벤처지수도 최대규모의 하락폭(장중 한때 61포인트)을 보였다. 불길한 조짐들=무엇보다 코스닥의 대표주인 새롬기술이 이틀 연속 하한가를 치면서 우려를 증폭시켰다.새롬의 하한가 잔량은 150만주가 넘었다.한통프리텔의 경우 상승세를 유지하긴 했지만,장중에 매물이 대거 쏟아져 나와한계점에 도달한 느낌을 줬다.꿋꿋하게 상승세를 지켜온 다음커뮤니케이션도 하루종일 등락을 거듭하는 등 힘겨운 모습이었다.전문가들은 거품이 빠지는 단계로 해석하는 분위기이다. 붕괴장은 아닌 듯=신영증권 노근창(盧勤昌)연구원은 “코스닥의 규모가 아직 ‘피크’는 아니기 때문에‘상투’로는 볼 수 없다”며 “지난 7월과 같은 본격 약세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코스닥에 대한 기관과 외국인의 참여 여지가 아직 많은데다 정부가 벤처기업 육성책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상태여서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회복 시기에 대해서는 올해말까지 갈 것이라는 견해와 다음주중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린다.신흥증권 류승철(柳承哲)연구원은 “외국계 펀드들이 연말 평가에 대비해 차익실현을 계속하고 있어 쉽게 반등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반면 한빛증권 유성원(柳性源)주식운용팀장은 “주가가어느정도 조정을 받으면 다음주 중반쯤 내년초 특수를 겨냥한 선취매가 들어오면서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투자 어떻게=전문가들은 그동안 주도주 역할을 하며 급등했던 종목은 매수주문이 나올 때마다 팔아치우는 게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은다.한국투신 신긍호(申肯浩)과장은 “현재 급락하고 있는 선도주의 경우 나중에 회복되더라도 전(前)고점까지 올라갈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신영증권 노근창 연구원은“당분간은 신규매수를 자제하다가 외국인과 기관의 매수세가 본격화되는 등 반등기미가 보이면 그동안 실적이 좋으면서도 못오른 종목을 매수하라”고 밝혔다.텔슨전자,에이스테크놀로지,스텐더드텔레콤 등을 추천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코스닥시장 이모저모 코스닥 폭락사태로 손해를 본 투자자들은 17일 탄식과 함께 정부와 코스닥증권 당국에 불만을 터뜨렸다. 투자자들이 주로 의견을 교환하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하루종일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한 투자자는 “이기호(李起浩) 경제수석 등 정부관계자들이 최근 코스닥 안정책 발언을 한 이후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며 정부에 화살을 돌렸다. 한편에서는 “일부 외국인과 기관이 17일 매수를 한 것은 개인투자자들을 유인한 다음 다음주초 팔아치우려는 속셈인 만큼,추격매수를 해서는 안된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투자자들은 코스닥증권시장의 고질적인 체결지연 사태가 주가 폭락사태를부추겼다고 입을 모았다.한 투자자는 코스닥시장의 전산시스템이 폭주하는주문을 견디지못하고 30분∼1시간 정도의 체결지연을 보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는 점을 상기시킨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체결지연으로 정확한 호가를 알수 없어 하한가 주문을 낼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이같은 주문양태가 투매를 불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투자자들은 선도주의 향방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새롬기술은 급락세 속에서도 개인이 4만8,000주,외국인이 1,800주를 매수해 눈길을 끌었다.동양증권 최용호 애널리스트는 “최근 한 외국계 증권사가 새롬의 적정주가를 27만5,000원으로 잡은 것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10만원의 차익을 바라고 뛰어들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입장을 보였다.한통프리텔은 상한가로 마감했지만,매물이 240만주나 나와 ‘꼭지’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김상연기자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44)노동시인 박노해

    ‘노동해방문학’지를 통해 꾸준히 시사시와 시평을 발표했던 박노해 시인은 그 복간호(이 잡지는 1989년 12월호까지 나온 뒤 휴간,1990년 6월 복간호를 내면서 종막을 고했다)에서 시인의 얼굴이 아닌 혁명가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기획좌담,박노해 선배와 9박10일간의 비밀 좌담-남한 선진 노동자와의 대화’란 제목이 붙은 이 글의 ‘전문은 200∼300매의 단행본 2권 분량에 가까운 방대한 원고였으나 본지의 지면 관계상 토론의 전반부 중에서 일부만을요약,발췌’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박노해 시인이 사회를 맡은 이 좌담 참석자는 실록 ‘마침내 전선에 서다’의 필자 김미영을 비롯한 정준하(마창지역 해고 노동자),이장태(현대중공업 노조 대의원),최성호(마창지역 해고 노동자) 등이며,몇몇 옵저버들이 함께했다.이 좌담은 1989년 결성된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 동맹(세칭 사노맹 사건)의 단초를 엿볼 수 있는 혁명에의 투지를담아낸 실로 장쾌한 대서사시에 가까운 담론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참석자들은 서로가 자기소개를 하는데,박시인은 “1978년부터 본격적인 노동운동을 시작하여 그 후로 직업적 노동운동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1985년도에 해고되고 공식 수배되어 졸지에 우리나라 최장기 수배자로서 전위정당결성 투쟁에 주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논의는 선진 노동자는 누구인가란 문제부터 그 조직적 발전 전망,노조 활동,전국 노동운동의 분석,사회주의의 위기와 동요,수정,배신에 대한 가차없는 투쟁,노동자 계급 주도의 민중통일전선 등 노동자 주체적 전위 혁명조직의 전모를 담아내고 있다.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내면서 나는 돌아올 수 없는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이 시집을 발표하면 내 앞에는 수배와 구속,어쩌면 의문사나 사형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각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리고 나는 ‘얼굴 없는 시인’으로 쫓기기 시작했다.…그런 처지에서 무책임하게 아이를 낳아 기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하지만 죽음을 예감할수록 나 닮은 아이를 남겨두고 싶은 인간의 본능은 더욱더 강렬히 솟구쳤다.아내도 아이를 원하기는 했지만 봉재 공장 미싱사로잔업 철야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 긴장된 현장활동을 해나가자니 도저히 임신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마침내 나는 동원 예비군 훈련장에서 정관수술을 하고 말았다.그건 나를 온전히 세상에 바치겠다는 결단이기도 했다.1980년대를 현장에서 열정으로 살아낸 친구들 중에 그렇게 정관 수술을 한 사람이 많았다”고 그는 고백한다.(‘나 닮은 아이 하나기르지 못하고’)사노맹 사건이 터지면서 박 시인은 ‘얼굴 없는 시인’에서 ‘지명 수배 당하는 혁명가’로 그 실체를 드러냈고,1991년 피체되었다.누구나 당하는 고문 말고 이 교육부의 ‘가방 끈’이 짧은 혁명가는 “지하 밀실의 고문장에서좌우의 이념보다 더 무서운 또 하나의 숨은 흑백 논리 앞에 직면”하게 된다.“‘노동의 새벽’은 누가 써준 거냐?대학도 못 나온 사람이 어떻게 그런시를 쓰고 어려운 이론 글들을 쓸 수 있느냐?”는 추궁 앞에서 시인은 다시노동자 해방의 정당성을 깨닫지 않을 수 있었을까. 여순 사건에 연루되었던 아버지가 소리꾼으로 떠돌다 암으로 타계한 건 시인이 여섯 살 때였다.‘빨갱이 자식’의 업보로 신부와 수녀와 노동자 시인이된 이들 남매를 키웠던 어머니는 “내가 죽어서 네가 산다면 열 번이라도 죽으련만…”이라며 “기도밖에 더 할 게 없구나”고 탄식했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참고인 진술·정황증거에 나타난 실체

    지난 88년 당시 평민당 김대중(金大中)총재가 서경원(徐敬元)의원으로부터북한의 공작금 1만달러를 받았다는 검찰 발표는 검찰과 안기부의 공조 조작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참고인의 진술과 정황 증거 등을 종합하면 안기부가 89년7월10일쯤 서 의원의 비서관 방양균(房羊均)씨로부터 “흰 종이에 1만달러를 싸 갖고 가는 것을 봤다”는 자백을 받아내 검찰에 넘겼으며 이를 바탕으로 검찰이 7월28일 서 의원으로부터 ‘1만달러 제공’ 진술을 얻어냈을 가능성이 짙다.검찰과 안기부가 짜맞추기 수사를 한 것이다. 방씨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당시 안기부가 서 의원이 1만달러를 솔 담뱃갑2개 크기로 포장해 김 총재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을 강요했으며 고문을 이기지 못해 허위자백했다고 밝혔다.수사는 정형근(鄭亨根) 당시 대공수사국장이 총괄했다.방씨는 자신을 직접 고문한 김모씨를 최근 만나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방씨 진술대로라면 ‘1만달러 수수 공작’은 안기부에서 시작돼 검찰이 마무리한 셈이다.정형근 의원이 ‘1만달러 수수’ 부분은 검찰이 밝혀낸 것이라고 한 발언과도 배치된다. 더욱이 당시만 하더라도 대공업무과 관련해서는 검찰과 안기부는 탄탄한 공조를 유지했다.안기부가 수사해 송치한 공안사건을 수사하다 송치내용과 다른 점이 발견되면 검찰이 반드시 안기부와 협의 또는 조정을 거치는 게 관례였다.검찰 관계자는 “사건의 중대성에 비추어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 책임자가 당연히 검찰의 수사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며 조율가능성을 내비쳤다. 서 전 의원과 방씨는 안기부뿐 아니라 검찰에서도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방씨는 자신이 당시 안모검사에게 안기부의 수사가 조작됐다고 하니까 ‘사형을 면해줄 테니 시인하라’고 회유했다고 진술했다.서 전 의원의 보좌관이었던 김용래(金容來)씨와 김씨의 친구인 안양정(安亮政)씨가 당시 검찰에제출한 진술서와 2,000달러 환전영수증이 누락됐다는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것도 검찰의 공작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수사검사팀은 안기부와의 합작 수사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따라서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좀더 진행되어야 ‘공작’의 실체가 명백히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주병철기자 bcjoo@ *“어느선까지 소환”고민하는 검찰 검찰이 깊은 시름에 빠졌다.지난해 대전 법조비리사건에 이어 조폐공사 파업유도 및 옷로비 의혹사건에 대한 특별수사로 자존심을 구긴 검찰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 1만달러 수수 공작’사건으로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검찰 내부에서는 심각한 위기라는 탄식의 소리와 함께 ‘이번 기회를 통해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치권의 논리로 검찰이 수사 검사를 수사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앞으로 수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만도 제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재수사’라는 칼을 뽑아든 것은 당시 수사에대해 조작 의혹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검찰 수사 발표에서 빠져서는 안될 서경원(徐敬元)전 의원의 보좌관 김용래(金容來)씨와 조흥은행 영등포지점 외환담당 대리 안양정(安亮政)씨 등 참고인의 진술과 물증의 누락 확인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이 같은상황에서 그대로 덮을 경우 검찰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할 것이라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검찰은 특히 당시 수사검사를 어떻게 조사할 것이며 어느 선까지 소환해야하는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검찰 수뇌부는 계속해서 회의를 열어 대책을숙의하고 있다. 당시 안기부에서는 정형근(鄭亨根)수사국장,안응모(安應模)1차장,徐東權(서동권)·박세직(朴世直)안기부장이 수사 보고라인이었다.검찰에서는 서울지검 安鍾澤(안종택)·이상형(李相亨)검사,안강민(安剛民)공안1부장,김기수(金起秀)1차장,김경회(金慶會)검사장,김기춘(金淇春)총장라인이었다. 이와 관련,안기부에서는 당시 안응모 1차장,검찰에서는 안강민 공안1부장까지 소환하는 것이 불가피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적지않다. 주병철기자
  • 金星坤의원 공개적 자성

    국회의원들의 집단이기주의가 공개석상에서 자아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1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 종합정책 질의에서 국민회의 김성곤(金星坤)의원은 국회의원의 정수 조정문제를 거론하며 여야 의원의 무책임하고 이기적인행태를 문제삼았다. 김의원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여야 모두 구조조정차원에서 10% 감원을 당론으로 정했다가 최근 이를 재검토하기로 했다는 얘기가 슬며시 나오고 있다”면서 “상황에 따라 말을 이랬다 저랬다 뒤집는 우리 정치인의 무책임성을 지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김의원은 “정치개혁이나 IMF가 의원 숫자줄이기와 무관하다면 왜 진작 소신있게 그런 얘기를 하지 못하고 지금에서야 뒤집는가.이래서야 어떻게 우리가 국민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가”라고 탄식했다. 그는 지난해 6·4지방선거 직전 시의원과 광역의원을 20∼30%씩 줄인 사례를 들었다.“보조원 한 명도 안 주는 지방의원은 대폭 줄이면서 보좌진 5명에 수백만원을 세비(歲費)로 받는 국회의원은 10% 감원도 아까워서 ‘없던얘기’로 하자는 것이냐”고 되물었다.그러면서 “국회의원만 국민의 대표성이 있고 시·도의원은 대표성이 없는가”라고 자성(自省)의 물음표를 이어갔다. 박찬구기자 ckpark@
  • “경찰 氣 살려주세요 자성도 필요합니다”

    15일 이무영(李茂永) 신임 경찰청장 취임에 부쳐 인터넷에는 경찰의 자성과 개혁을 부르짖는 갖가지 글들이 홍수를 이뤘다.땅에 떨어진 경찰의 명예를되살려 달라고 호소했다.특히 ‘고문 기술자’ 이근안(李根安)전 경감에 대한 당시 경찰 고위직들의 비호설과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 수사에서 드러난경찰과 업주의 유착 비리 등을 질타했다. 경찰청 인터넷 사이트(www.npa.go.kr) ‘대화의 광장’에 ‘김규주’라고밝힌 경찰관은 “몇몇 비리 경찰관 때문에 경찰 모두가 ‘도둑놈’이 다 됐다”고 탄식.그는 “자식과 마누라 볼 낯이 없는 경찰,동네 사람 보기에 창피한 경찰,무엇 하러 경찰이 됐나 후회하는 경찰,옷을 벗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경찰,경찰을 맥 풀리게 하는 경찰”이라고 지적하고 “이무영 청장님.모든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떳떳한 경찰,당당한 경찰이 되도록 기(氣) 좀 살려 주세요”라고 호소했다. 그는 또 “몇몇 경찰이 150만 경찰의 명예를 실추시켜 말없이 밤을 낮 삼아 자기 업무에 충실히 근무하는 많은 경찰이 얼마나 맥 풀리겠는가”라고 반문. ‘***’라고 밝힌 경찰관은 “(호프집 사건을 통해) 우리 조직의 한계를 보게 된다”면서 “동료 여러분,우리 자성합시다.말 못하고 지내는 시대는 지났습니다.우리도 할 말 하고 삽시다”라며 자정 노력을 강조했다. ‘답답함’이라고 밝힌 경찰관은 “경찰의 부패는 당연히 추방되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검은 돈에 현혹되지 않을 만큼의 충분한 보수,다른 사람들처럼 휴식과 여가를 누릴 수 있도록 근무 여건의 개선,상의하달이 아닌 하의상달의 정책 결정,원칙대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경찰’이라고 밝힌 한 경찰관은 “경찰도 정신을 차려야 하겠지만 시민들도 모든 것을 경찰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먼저 자신의 잘못을 한번쯤 돌이켜 보기 바란다”고 항의 섞인 자성을 털어놨다. 김경운기자 kkwoon@
  • [대한광장] 기록과 국가

    지난 9월말께 미국 AP통신사는 추적취재를 통해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26일 미군이 무차별 포격과 사격으로 500명 가량의 양민을 학살한 이른바‘노근리사건’의 사실성을 확인해 국내외에 큰 반향을 불렀다.이 사건은 그간 피해자 가족들이 한국과 미국 정부에 여러차례 진상조사를 확인했으나 사실적 근거가 없다고 하여 묵살돼 왔던 터라 AP의 기사는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 보도가 있자 국내의 언론이나 일반의 반응은 여러가지로 나타났다.‘군사작전 지휘권’이 미국에 있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되새기면서 ‘반미구호이유있다’는 독자투고가 있었는가 하면,이미 사건이 벌어진 직후부터 이제까지 꾸준히 진상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통신사가 보도하니까 대서특필하는 국내 언론의 ‘사대주의’를 꼬집는 한 언론인의 자기반성이 있었고,도대체 반세기가 다 되도록 억울하게 숨져간 원혼들을 위로하려는 마음의 자세조차 보여주지 못한 정부를 과연 정부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주위의 탄식도 있었다. 필자가 보도를 접하면서 받은 감상은 역시 미국은 세계를 지배할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강렬한 느낌이었다.AP통신사가 입수해 공개한 문서는 한국전 당시 미1기갑사단의 명령서와 25보병사단의 명령서,미8군 본부의명령서 등 4가지다. 1기갑사단은 양민학살 당시 현장에 배치돼 있었고,25보병사단은 1기갑사단의 오른쪽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으며,8군은 한반도에 투입된 모든 부대를 관할하고 있었다.특히 1기갑사단 휘하 8연대의 통신문은 사건이 있기 이틀 전에 7연대 2대대가 발포명령을 받고 있었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중요한 것은놀랍게도 이 모든 문서를 미군이 급격하게 수세에 몰리는 상황에서도 간수해 이제까지 보관해 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같으면 ‘전통’으로 처리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을 것을 왜 미국은 자신에게도 불리한 이 문건들을 다른 엄청난 규모의 전사자료와 함께문서고에 유지해온 것일까.이는 기록의 작성과 유지가 연속성을 보장하고 책임의 소재를 명확히 하며 근본적으로는 역사의식을 확보해주는 가장 확실한 장치이기 때문이다.그러기에 근대국가만이 아니라 왕조국가에서도 나라다운 나라가 서게 되면 통치자는 기록을 남기고 보관하려고 노력했다.주권자의속성에 따라 기록작성 의도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그것은 나라를 주체적으로 꾸며보겠다는 의지의 한 강렬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조상들도 그러했다.국왕은 사관이 입석하지 않은 채 신하를 독대할수 없었으며,사관은 국왕의 일거수 일투족만이 아니라 국사와 관련한 모든자료를 사초에 기록해 실록에 전했다.왕실은 ‘규장각’을 만들어 문서고로서 기능하게 했다.조선왕조의 이런 행위가 프랑스혁명 직후 의사록 작성과국립문서고 설치를 결정한 혁명의회의 조치와 일정한 차이가 있음은 사실이지만 문화적 자존과 역사적 주체의식이 양자에 공통된 것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현재의 우리가 부끄럽게도 조상들이 지녔던 기록문화를 발전시키기는커녕 복원하는 데도 이르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최근 정부문서기록보관소가 생기기는 했지만 아직도 중요한 사항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반문화가 건재하고 있다.대통령이나 고위 공직자들이 퇴임하면 재임시에 지녔던 문건들은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 양 함부로 가져 나오거나 없애는 일이 아직도 다반사인 듯하며,국회나 지방의회에서만 속기록이 작성될 뿐 정작 중요한 국무회의는 간단한 회의록만을 남기고 있다. 모든 중요한 공적 회의에서는 속기록이 작성돼야 한다.자신의 모든 언행이남김없이 기록돼 진정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면 어찌 “기억이 나지않는다”고 둘러댈 것이며,‘역사’ 운운하며 진실을 호도할 수 있겠는가.속기록이 작성되는 회의에서 발언의 무게가 어떨 것인지 우리는 쉽게 상상할수 있다. 우리는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후 아직도 나라를 주체적으로 꾸렸던 역사적경험을 회복하고 있지 못하다.기록문화의 복원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의 주인이 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관건인 것이다. [崔甲壽 서울대교수·서양사]
  • ‘벗 잃은 校庭’ 애도·탄식만 가득

    인현동 ‘호프 러브’ 화재 참사로 학생들을 잃은 인천시내 30여개 학교들은 1일 급우와 교사들의 애도와 탄식,자성의 목소리로 가득했다.수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가 없었다.자체 애도행사를 갖고 조위금을 걷는가 하면,학교 내 분향소 등에 이들의 조문행렬과 흐느낌이 이어졌다.학교장들은 학생들이 유해업소에 출입하는 일이 없도록 적극 나서기로 다짐했다. 광성고 1학년 김현경군(16)과 박문여중 3학년 이아름양(15)의 ‘만남 백일잔치’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양측 친구 11명 중 광성고생 7명과 박문여중생 2명 등 9명이 숨진 가운데 두 학교 학생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졸지에 급우를 잃은 충격에 할 말을 잊은 듯 무거운 분위기였다. 박문여중 3학년 신(信)반 구명수(43)교사는 “학생 지도를 잘 하지 못한 죄로 얼굴을 들 수가 없다”고 고개를 떨궜다.학생들은 교내 2층 시청각실에마련된 분향소에서 분향하고 ‘아름이가 바른생활부장을 하며 우리들의 고민을 들어줬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광성고 학생들은 고인의 명복을 비는 뜻으로 검은 리본을 달고 오후에 희생자가 생긴 학급의 학생 전원이 영안실을 찾아가 조의를 표했다.김군의 담임차상삼(車相三·41) 선생은 “이번 중간고사에서 김군의 성적이 많이 올라칭찬해줬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황미선양(18)의 생일파티를 위해 3학년 학생 9명이 난생 처음 호프집에 들렀다 모두 함께 변을 당한 인천여상은 이날 오전 교내방송을 통한 추도행사를 가진 후 ‘친구들이 죽은 것은 어른들 때문’이라며 울부짖는 학생들을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고 3학년5반 이정미양(18)은 친구 김태연양(18)의 죽음을 슬퍼하다 실신,인하대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한편 인천시 교육청은 이날 시내 82개 고교 교장단회의를 열어 유족들에게사과한 뒤 ‘5자 순찰대’(학부모회,학교운영위,민간단체,자원봉사자,교사)를 활성화해 매월 2차례씩 경찰,구청과 합동단속을 하기로 했다. 특별취재반
  • 朴총재 국회연설…‘정치개혁=역사적 소명’역설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의 국회 대표연설의 핵심은 정치개혁이다.그중에서도 중선거구제다.박총재는 정치개혁의 완수를 역사적 소명이라고까지 했다. 그만큼 정치개혁에 온 체중을 싣겠다는 뜻이며, 국민회의측에도 중선거구제관철과 완벽한 선거공영제 도입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줄 것을 주문한 것으로보인다. 박총재는 “지금의 정치제도가 그대로 있는 한 정당과 정치인이 아무리 바뀌어도 국민의 질책과 탄식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정치는 ‘상대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쓰러지는’ 로마제국식 격투기가 돼서는 안된다”고 정치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먼저 보스정치의 폐단과 지역갈등 구조를 들었다.지역주의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보스의 성(姓)씨만 바뀔 뿐 보스체제는 청산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또소선거구제가 불법 타락선거의 온상이라는 점도 꼽았다.‘우선 당선되고 보자’는 심리의 만연으로 온갖 타락선거가 자행되고 있고,이같은 폐단은 곧바로 중앙정치로 연결돼 대화정치의 실종과 사생결단식 극한대결,흑백논리와중상모략이 판치는 각종 발언과 성명,지역감정을 촉발해서라도 특정지역의당선자를 독점하겠다는 정략적 발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돈 많이 드는 선거구조를 깨뜨리기 위해서도 중선거구제가 도입돼야 한다는게 박총재의 판단이다. 나아가 유권자 표의 50% 이상이 사표(死票)가 되는 ‘원초적인’ 문제점도짚었다.이로 인해 유능한 신진인사들의 정계입문도 좌절될 수밖에 없다고 박총재는 지적했다. 중선거구제에 대한 박총재의 강한 ‘집착’은 “자민련은 건전보수세력의대변자로서 맡겨진 소임을 다할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합당반대를 표명한것과도 맥이 닿는다.이는 곧 당의 정체성 확립으로 받아들여진다.안보문제에서 이 부문은 특히 두드러졌다. 박총재는 이밖에 경제전문가답게 금융시장 불안,재벌개혁,물가 등 제반 경제현안을 진단하면서 해법을 제시했다.또 “문화예산은 문화산업보다 문화의토양 가꾸기에 더 많이 투자돼야 한다”며 ‘문화토양론’을 주장한 것은 이채롭다. 한종태기자 jthan@
  • [데스크시각] 재경부를 위한 변명

    지금 우리 경제가 금융시장의 불안조짐으로 또 한번 위기를 맞지 않느냐는우려가 팽배해 있다.‘11월 금융대란설’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또 대우처리의 지연과 투신사 문제로 야기된 금융시장 혼란의 책임에 대해서도 경제부처 간의 정책혼선과 경제팀의 팀웍부재가 종종 거론된다.그때마다경제부처의 맏형 격인 재정경제부는 단골로,도매금으로 매도를 당하고 있다. 재경부는 그동안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불러일으킨 환란(換亂)의 주범으로 지목을 받아왔다.돌이켜 보면 재경부관료들은 시쳇말로 ‘엄청나게 깨지면서’ 여기까지 왔다.과거 모피아(MOFIA,옛 재무부의 영문 이니셜인 MOF와MAFIA의 합성어)로 불리면서 화려했던 시절에 비하면 절로 장탄식이 나올 법도 하다. 우리는 이쯤해서 IMF체제 이후 할말이 있어도 못해온 재경부에 변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 옳을 듯 싶다.시야를 넓혀서 진정한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안을모색해야 할 차례라는 얘기다. 옛 경제기획원과 재정경제원은 장관이 부총리를 겸임,다른 부처들을 효과적으로 통솔했었다.지금 재경부는 수석 경제부처이면서도 다른 부처에 대해 효과적인 통제수단이 없다.구조적으로 맏형의 위상을 상실한 것이다. 말못할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경제운용상 현 금융감독위원장이나 공정거래위원장,기획예산처장관등 다른 부처장관들은 나름대로 권한이 막강하고 개성들도 강하다.이들을 견제하고 업무를 총괄할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없다. 재경부는 과거 예산 금융 세제라는 ‘경제 3권(權)’을 한손에 넣고 영화를 누리다가 IMF체제로 최후를 맞은 꼴이다.그들이 선후배 간에 서로 끝까지봐주는 모피아식 유대관계에 푹 빠졌던 것은 잘못이다.미세한 문제이지만 현 강봉균(康奉均)장관이 기획원 출신들을 중용한 반면 재무부출신들을 홀대,금융정책을 실기(失機)했다는 일각의 주장이 맞다손 치자.모든 것을 양보하더라도 현 재경부는 ‘머리카락 잘린 삼손’의 모습과 흡사하다.불행하게도현재대로라면 재경부는 앞으로도 비난받을 소지는 많지만 잘했다는 평가를받기가 어렵게 돼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경제부처들을 이끌고 추스리려면 재경부장관에게 맏형의 권위를 인정하고 동생들을 다스릴 수단을 줘야 한다.다스리는 과정에서당근을 던져주든,채찍을 휘두르든 그것은 뭔가 확실한 수단을 재경부장관에게 준 다음 그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러고도 일사불란한 경제팀 운영이 안되거나 효율적인 정책집행을 못한다면 임명권자는 그때가서 인사권을 행사하면 될 것이다. 정부조직법을 고쳐서 재경부장관을 부총리로 보(補)하든지,특단의 조치를통해 경제총수로서의 권한을 확보해 주지 않는다면 다음 재경부장관도 맏형으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하고 경제정책은 구심점이 없이 현재처럼 겉돌 공산이 매우 크다. 그럼에도 경제팀의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현재 기능이 대폭 축소된 재경부의 존재의의를 원점부터 따져보는등 경제행정조직의 개편방안을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경제가 IMF체제의 극복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은 사실이다.여기에는어쨌든 경제관료들의 역할이 컸다.그렇다면 그들에게 비난과 질책보다는 애정어린 박수와 격려를 한번 보내보자.경제정책의 수립과 집행이 재경부를중심으로 이뤄지는 데다,재경부에 여전히 우리 경제를 맡길 수 밖에 없는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있는 까닭이다. 정종석 경제과학팀장elton@
  • [외언내언]‘노근리’에는 왜 갔나

    6·25동란때 미군에 의해 양민이 대량학살된 충북 영동 ‘노근리사건’을조사하기 위해 지난 5일 현장을 방문한 국회의원들의 행태가 그곳 주민들은물론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노근리 양민 대학살사건 대책위’정은용위원장이 국회의원들에게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고 있는데 국회의원중 누군가가 “미군이 오인사격(誤認射擊)을 한 건 아니냐?”고 질문을 했다.정위원장이 “절대 아니다”고 답변하는 순간 의원들 가운데 누군가가 “에이…그럴리가 없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별거 아닌데 그만 가지”라는 말도 이어졌다. 놀란 유족들이 발언자를 살폈으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확인되지 않았다.이뿐 아니다.자민련 박신원(朴信遠)의원은 “우리 고향에서는 2,000명이 미군에게 죽었다”고 했다.유족들이 ‘그정도 가지고…’라는 뉘앙스로 듣고 항의하자 박의원은 “유사 사건이 9건이나 있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유족들이 “그동안 정부가 진상규명을 외면한 것도 모자라 국회의원들까지 이럴 수 있느냐”고 항의했다.그러나 의원들의 반응은 엉뚱했다.“농담삼아 던진 이야기를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느니,“의원들끼리 한 이야기인데(유족들이)쌓인 게 많아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는 식이었다. 국회 행자위 2반 소속 이들 국회의원들이 이날 보인 행태는 민족의 상처를뒤늦게나마 씻어주겠다는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아니라 제3국 국회의원들의그것이었다.제3국 의원들이라고 무고한 양민이 대량학살당한 현장에서 그런태도를 보였겠는가.그렇다면 국민들은 “노근리에는 왜 갔는가?”그들에게묻지 않을 수 없다.AP통신이 ‘노근리양민학살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던 때 국내신문도 보지 않았다는 말인가.“그들(피란민들)을 적군으로 대하라-Treat them(refugees) as enemy”라는 비밀해제된 당시 군 작전명령의 원문(原文)까지 나와 있었다.‘오인사격’은 무슨 얼어죽을 ‘오인사격’인가.게다가 ‘의원들끼리 던진 농담’이라는 말은 또 무슨 소리인가.거액의 출장비를 받고 농담이나 하려고 노근리에 갔다는 말인가.아녀자까지 포함된 무고한 주민 200여명이 학살당한 노근리사건이 ‘별것’아니라면,얼마나 많은 양민들이 떼죽음을 당해야 ‘별것’이 된다는 말인가.“나라가 참으로 큰일이다”라는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장윤환 논설고문
  • “무심한 장대비…”농민들 탄식

    “이제 무슨 수를 또 써보겠습니까”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만우리에 사는 우학제(禹鶴濟·51)씨는 20일 들녘에서 장대비에 맥없이 쓰러진 벼이삭들을 손으로 어루만졌다.이미 지난달 수해로 올 농사에 대한 기대를 포기해서인지 그의 표정은 담담해 보였다. 수확을 불과 10여일 앞두고 지난 18일부터 파주시 일대에 내린 200㎜ 이상의 폭우로 누런 벼들은 그 자리에 눕고 말았다.쓰러진 벼를 세우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우씨는 “일일이 세워서 새끼줄로 묶을 일손이 어디 있느냐”고 안타까워했다.그는 “논에 고인 물이라도 빼야 하지만 이렇게 비가 계속 내려서야…”라며 말끝을 흐렸다. 우씨는 지난 수해 때 논 2,000여평의 벼가 이삭이 갓 나온 채 6일동안 빗물에 잠기는 바람에 땅을 갈아 엎었다.그런 터에 이번 비로 나머지 3,000여평가운데 절반 이상의 벼가 다시 쓰러졌다. 만우리 집성촌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우씨는 5,000여평의 벼농사 이외에 소 26마리를 키우고 밭농사도 지어 제법 부농에 속한다.하지만 수해로 인한 벼농사 피해로 올해 2,000만여원의 빚을 또 지게 생겼다.수해 보상비는지금까지 한푼도 받아본 적이 없다.지난해와 96년 수해때도 마찬가지였다.그나마 우씨의 논은 지대가 높은 편이어서 이웃보다 사정은 나은 편이다.탄현면의 나머지 18개 리(里)와 근처 교하면은 70% 이상의 논에 물이 고였다. 우씨는 “추석이 다가왔지만 아무 준비도 못하고 있다”면서 “내년 농사도수해로 망치지 않으려면 임진강 입구에 배수펌프 시설을 갖추는 길 뿐”이라고 말했다. 파주 김경운기자 kkwoon@
  • 전경련회장단회의 이모저모

    안도의 숨을 고르기도 전에 불만과 장탄식이 터져 나왔다.현대전자 주가조작 혐의로 이익치(李益治) 현대증권 회장이 구속되고 정부가 재벌정책의 강도를 높이자 재계의 반발도 노골화되고 있다.전경련은 9일 회장단회의에 이어 재계원로들과 오찬간담회를 잇따라 열고 정부의 재벌정책을 ‘성토’했다. 재계원로들도 불만 토로 전경련 회장단과 원로자문단이 가진 오찬에서 신현확(申鉉碻) 전 총리 등 재계 원로들은 정부의 재벌정책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원로들은 “정부의 재벌정책이 너무 조급하다”고 지적하고“시간을 두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민이 협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기업인이 존경받을 때 선진국이 된다”면서 “정부가 기업에 대해 파생적 문제에만 자꾸 접근하게 되면 근본적인 문제를 놓치게 된다”고 재벌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침통한 회장단회의 회장단은 출자총액제도 부활 등 정부의 각종 규제조치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한 그룹회장은 “정부의 규제가 점점 많아진다”면서 “기업의 자율성이 점차 없어지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또다른 그룹회장은 “경영은 기업인의 재량에서 나오는 것인데 현재는 그렇지못하다”면서 “모든 것을 세세한 조항까지 비율로 묶는 것은 기업을 하지말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불참 회장단 다른 때보다 많아 당초 회장단회의에 참석키로 한 정몽구(鄭夢九) 현대 회장과 이건희(李健熙) 삼성회장이 선약을 이유로 불참,배경에관심이 쏠렸다.정회장은 현대측이 8일 밤늦게 불참을 통보해왔다.삼성 관계자는 “선약 때문”이라고만 밝혔다.전경련 고위관계자는 “주가조작 수사와 세무조사설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두 회장이 재계 행사에 나올 기분이겠느냐”고 반문했다. 구본무(具本茂)LG,박정구(朴定求) 금호,조석래(趙錫來) 효성 회장 등 9명은 독감과 해외출장 등을 이유로 불참,회의가 활력을 잃었다.전날 청와대에 참석한 김승연(金昇淵) 한화회장은 5대그룹 빅딜에 문제를 제기한 이후 빠져갈등설을 낳았다. 김환용기자 dragonk@
  • [데스크 시각] 구조조정의 칼과 방패

    (1)빨리 팔고 비싸게 받는다 (2)천천히 팔고 비싸게 받는다 (3)빨리 팔고싸게 받는다 (4)천천히 팔고 싸게 받는다. 기업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금융감독위원회가 매물로 나온 회사들을 국내외원매자들에게 팔려고 하면서 항상 생각하는 4가지 ‘경우의 수’다.이 가운데 가장 좋은 방안은 물론 (1)의 경우다.내놓은 매각대상 물건들을 빨리 팔고 값도 비싸게 받는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인 까닭이다.그러나 팔려는 측과 사려는 측의 이해관계가 정반대라는 점이 문제다.사려는 측에서는 싸게 사야만 이익을 많이 남기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치다. 제일은행과 서울은행 매각협상이 수포로 돌아가거나 지지부진한 것은 파는측인 금감위와 사려는 측인 뉴브리지-캐피털,HSBC(홍콩상하이은행)사이에서시기와 가격을 놓고 벌인 흥정이 깨지고 말았기 때문이다.법정싸움에서 최순영(崔淳永)회장측이 일부 승소한 대한생명 처리문제도 따지고 보면 해외매각 시기 및 방법과 깊은 관련이 있다.금감위가 제시했던 해법(解法)은 대한생명을 빨리,그리고 비싸게 팔려고 했던것이나 이것이 뜻대로 안되고 그 과정에서 법률적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다. 새 정부 출범 뒤 꿋꿋하게 구조조정을 추진해온 금감위나 재정경제부가 대한생명 문제에서 낭패를 당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금융구조조정이처음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시행착오로 볼 수 있다.실제로 소액주주들이 많은 은행과는 달리 보험·증권사 등 제2금융권은 정부로서 다스리기가 까다롭다.제2금융권에는 은행과는 달리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주주가 존재한다.이를 잊고 주식소각과 감자(減資) 등 행정처분에 따른 법률적 검토를게을리했고,시한에 쫓겨 졸속으로 처리하려고 한 데서 비롯된 일이다. 정부는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대한생명을 예정대로 이달내 국영보험사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확고히 밝히고 있다.구조조정 자체보다는 절차상 하자를 지적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좌우를 살펴보며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비록 최회장이 일부 승소했다고는 하지만 금감위나 최회장측 모두 ‘반쪽의 승패’일 뿐 이를 확대해석한다면 곤란할 뿐이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행정행위의 합목적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합법성이다.대우그룹 후속처리에서도 정부는 일부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보여 재계를 당황케 했다.이번주 초 대한매일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8%가“정부의 재벌정책에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재벌개혁이나 금융구조조정이나 현장에서 번쩍이는 칼을 쉽게 쓸 수는 있다.시간은 없고 갈 길이 바쁜 탓이다.다만 이번 법원의 판결로 대한생명을 비롯한 전반적인 구조조정의 지나온 길을 새삼 반성하게 된 만큼 이제 “우리금융당국자들에게 과연 구조조정의 철학이 있는 것이냐”는 그동안의 비판에도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 줬으면 싶다. 쾌도난마식 칼쓰기에 앞서 목적뿐만 아니라 절차에 있어서도 합법성을 갖추고,우리 사회의 다른 한쪽에서는 법의 정의를 주시하며 방패와 같은 역할을하는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동시에 생각해 줬으면 한다.한번 넘어졌다고 탄식하지 말고 ‘급할수록 돌아서 가는’ 지혜를 찾아보면 어떨까.鄭鍾錫 경제과학팀장 elton@
  • [굿모닝 새천년 ‘기초부터 다지자’](10)프로정신

    “한국에 월가(Wall street)사람들과 회의할 수 있는 전문가 10명만 있었어도…”.전 한국은행총재 이경식(李經植)씨가 지난 2월 환란특위에 출석,외환위기와 관련된 증언을 하면서 쏟아낸 탄식이다.당시 국제통화기금(IMF)관계자들이 우리 관리들과 금융기관 당국자들의 ‘무식함’에 경악했다는 것은익히 알려진 사실.국제금융 프로,즉 전문가 부재가 빚어낸 참담한 결과는 현 우리 사회의 프로지수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알려준 쓰디 쓴 경험이다. ‘프로는 아름답다’.낭만적인,어쩌면 매우 상업적인 이 명제는 그러나 더이상 낭만의 화두가 아니다.진정한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지향과 체질화는 21세기 우리 한국인의 명운이 걸린 관건이다. 한국사회의 프로지수는 얼마나 될까. 수많은 문화재와 무형문화재를 언급할 때 우리는 ‘장인정신’의 결과란 말을 써왔다.그러나 역사적으로 진정한‘장인정신’지수는 바닥에 가깝다는게 김용운(金容雲)교수(울산대 석좌교수)의 결론.매니지먼트(관리·감독)만 있었지 프로페셔널리즘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세계 문화사에 빛나는 고려청자,팔만대장경에 작가의 이름은새겨져 있지 않다.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았고 사회도 그들을 인정해주지 않았던 까닭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책입안에서 결정,시행까지를 관리자가 좌지우지하는 사회가 바로 한국이다.모두가 관리·감독자가 되려 할 뿐,한곳에서 자신의 직업에 천착(穿鑿)하지 않는다.자신의 일을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 사람도 드물다. 서울대생의 80%가 고시를 지망하고,매년 실시되는 사법시험 결과 이공계통출신이 점차 느는 사실도 전문가 천시현상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만족스럽지 않은 자리에서 창의성과 자기개발,1인자가 돼야겠다는 의지가 나올리만무다. 최덕인(崔德印)한국과학기술원(KAIST)원장은 “과학기술인 사이에서도 자식은 관리자로 키우지,과학기술인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풍조가 생겨나고 있다며 ‘제너럴리스트’ 위주의 병폐를 지적했다. 프로페셔널리즘의 진작은 개인의 각성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 분위기가 결정적이다.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대접받는 풍토가 우선이다.그러나 현실은 대기업이건,관료조직이건 인사 원칙은 ‘돌리기’에 있다.조직원이한우물을 파도록 지원하지도,기다려주지도 않는다.현장에서의 전문가적인 시각은 제너럴리스트의 ‘상식적’인 잣대아래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것 저것 다 잘한다는 긍정적인 의미의 팔방미인(八方美人)이란 단어가 ‘전문가 정신의 나라’ 일본에선 다르게 쓰인다.일본말 ‘핫포비징’(八方美人)은 이것 저것 걸치는 사람이 제대로 하는 일이 뭐 있겠느냐는 나쁜 의미로 쓰인다.여러 대에 걸쳐 한분야에 매진하는 전통으로 유명한 일본인들이얻고자 하는 타이틀은 해당 분야의 ‘1인자’다. 전문가 부재 및 프로페셔널리즘의 부족에서 비롯된 우리의 위기에 대한 처방은 오히려 저해요소가 될 수도 있다.구조조정의 명분아래 연구소 등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할 부문이 우선 순위에서 잘려나간다는 것이다. 프로는 물론 아름답다.매력이 있다.그들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공동체에 대한 자세이다.미국 조지아주 대법원이 10년째 주내 법조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해온 ‘프로페셔널리즘 고양’교육의 제1모토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80년대 전문분야에 대한 막대한 투자로 지금의 호황과 안정을 누리고 있는 미국사회의 성숙된 프로페셔널리즘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프로페셔널리즘이란 자기의 직업,그리고 그 직업과 관련된 기능 및 전문 지식에 강한 자부심을가지는 것을 말한다.끊임없는 탐구심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자기개발을 추진하려는 의식과 행동양식을 일컬으며,동시에 직업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자각하는 정신이다.전문적 직업의식 또는 프로의식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인(匠人)정신이라는 말을 대용어로 써오고 있다.그러나장인의 원뜻은 전 근대사회에 각종 수공업을 전업으로 삼는 직업군의 사람. 나중에 대를 물려가며 혼을 쏟아 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정신을 헤아려,프로의식을 장인정신에 빗댔다. -미국의 사례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뉴올리언스에 사는 찰스 스미스(42)씨는 이름 그대로 대장장이 일을 4대째 해오고 있다. 옛 것의 보존이 잘된 이곳에서 관광객을 위한 솜씨자랑과 함께 가정용 수제도구를 파는 일자리가 마련된 것도 대를 물려가며 대장장이 일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다.역사가 짧은 미국이지만 대를 잇는 일들은 뜻밖으로 많다. 그런가 하면 뉴저지에 사는 한국 교포 오모씨(34)처럼 미 증권가에서 활약하는 증권맨들은 40대 초반이면 벌써 은퇴를 계획하고 있다. 가업이 후대에 전수되거나 뉴욕 월가의 증권맨들이 40대에 은퇴를 계획하는 것은 얼핏 보면 상반되는 것 같지만 바로 미국의 ‘프로페셔널리즘’을 상징하는 편린(片鱗)들이다. 한쪽은 한 분야에서 천직임을 자처하며 남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장인정신을 발휘하고 이를 후대에 전수하고 있다.다른 한쪽은 누구에게도 뒤지지않는 노력과 분석력으로 재산을 형성해 조기은퇴가 가능한 사례다.모두가 전문가들만이 만들 수 있는 일들이다. 미국의 역사는 이같은 프로들이 만든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미시시피강을 처음 개척한 데이빗 클라크같은 탐험가,대장장이,소몰이꾼,와이엇 어프와 같은 총잡이 할 것 없이 모두들 일류가 되기위해 서로 경쟁하고,때에따라서는 목숨을 걸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 미국의 프로페셔널리즘이 잘 드러나는 분야는 스포츠다. 프로 스포츠의 세계는 잘 알려진 대로 잔인하리 만치 냉혹하다.잘못하더라도 안면이 깊고 한때 기여한 바가 크면 그런 대로 봐주는 애정어린 세계가아니다. 그렇다고 누가 누구를 원망하거나 인정없다고 욕하지 않는다.오히려 잘못한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는 게 사회전반에 퍼져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첨단과학 분야를 지배하는 것도 역시 프로정신이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 앞서가는 회사들의 창설자가 대부분 30대인 것도 그들이 일찍 자기가 개발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기 때문이다.물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밤잠을 설치며 연구하고 노력하는 이유도 없지는 않다. 바로 이 최고들이 모여 우주탐사를 벌이고 방위산업을 주도하고,세계를 들여다보며 정책을 주도하는 위치로 미국을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hay@-밀레니엄 탐방/외환은행 딜링룸 무제한의 정보와 무한대의 변수(變數). 스스로의 선택으로 정보의 날줄과 씨줄을 엮어 ‘판돈’을 걸고 책임을 진다.결과가 좋으면 그만이지만 잃으면 회사 돈이 날아간다.늘 스트레스 덩어리.그래도 아찔한 외줄타기 승부의 재미를 놓지 못하는 사람들.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의 외환딜러들이 살아가는 프로들의 세계다. 원-달러 딜러들이 하루에 사고 파는 돈은 5억 달러 선.80% 정도가 수출입에 따른 환율위험을 막기 위한 기업들의 요구를 받아서 하는 경우다.거래 고객의 일이다 보니 더욱 신경이 쓰인다.일반거래의 경우는 그래도 나은편이다. 선물같은 투기거래가 되면 아예 모니터 앞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야한다.이들에게 주어진 손해의 범위는 15%.이 한계를 넘으면 사유서도 쓰고 경고조치를 받는다.책임이 돌아오는 이럴 때가 가장 힘들다. 외환딜러들은 스스로 ‘조직의 이단아’라고 느낀다.혼자서 손익을 구성해주문을 내지만 결과는 조직의 틀안에서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는 탓이다.더욱 외환딜러들은 외환외 다른 은행업무에대해서는 일반 고객 수준이다.그래서다른 부서으로 옮기기 힘들고오히려 은행간 이동이 많은 편이다. 마음고생을 많이 하지만 거기에 대한 성과급은 그동안 거의 없었다.외환위기가 오고 외환딜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제야 성과급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상황은 다른 국내은행도 모두 마찬가지다. 딜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련을 버리는 것이다.10여년간 딜링룸을 지킨이창훈(李昌勳·43) 과장은 “판에서는 누구나 잃고 딸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그는 손실액이 10%가 되는 순간을 전환점으로 삼고 있다.실패를 인정함으로써 더 이상의 손실을 막는 것이다.늘 미련을 갖지 않도록 훈련을 받는다. 그는 외환딜러를 ‘소신을 가진 카멜레온’이라고 표현한다.시장의 힘에 따라 몇 초만에도 마음을 바꾸지만 저변에는 자신의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전경하 기자 lark3@
  • 안방극장 ‘386세대’ 작가군 떴다

    “요즘 국문과 친구들은 조금만 재능있어 보인다 싶으면 어느새 방송으로 영화로 튀고 없더라”한 30대 문학평론가는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영상이 현대의 주류 문화양식으로 떠오르면서 글재주있는 젊은이들이 방송 드라마 집필로 우르르 몰리고 있다.작가실의 386세대라고 불릴 법한 이들 젊은 드라마 작가들은 일단 숫적으로 대풍(大豊)인데다 스타일에서도 기성작가군과 대별되는 자기네만의 세대적 감수성을 인정받으며 안방극장의 빼놓을수 없는 인기 제조기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KBS ‘거짓말’,MBC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를 쓴 노희경(33)은 작가 신드롬까지 불러일으킨 신세대 군단의 대표주자.유부남의 삼각사랑을 다룬 그의 ‘거짓말’은 윤리타령을 배제한 냉정한 시선과 폐부를 찌르는 대사 등으로 특히 네티즌들에게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MBC에서 ‘사과꽃향기’,‘세상끝까지’,‘눈물이 보일까봐’ 등을 집필한정유경(31)은 개성 뚜렷한 서정으로 꾸준히 자기 세계를 다져온 유망주.서울대 사회학과 87학번으로 구성작가 출신이란 경력이 이채롭다. 최근 ‘미스터 Q’,‘토마토’ 등 잇단 히트작을 안겨주며 SBS드라마 중흥의 촉매 역할을 한 이희명(35)은 코미디 작가 출신다운 유머감각과 시청자의욕구를 읽는 예리한 눈의 결합으로 재미를 봤다. SBS ‘홍길동’의 이한호(33)는 PD들 사이에서 철학적 소재를 가장 유연하게 빚어내는 신예 작가의 하나로 꼽힌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별은 내 가슴에’ 등 MBC드라마를 써온 이선미(35)는 풍자,사회성,느와르 등에서 두루 다재다능함을 뽐낸다. 내달 13일 마수걸이하는 MBC 새 월화드라마 ‘여인의 향기’의 정성희(33)는 ‘흐르는 것이 세월뿐이랴’ 한편만으로도 크게 주목받는 작가.얄팍한 감각이 앞서는 시류에서 삶의 깊숙한 곳을 통찰하는 선굵은 시선을 선보여 MBC가 아끼는 차세대 병기의 하나다. SBS ‘해피투게더’의 배유미,MBC ‘마지막 전쟁’의 박예랑,‘짝’의 윤성희 등은 가장 어린 71년생들이지만 시청자와의 승부에서만은 베테랑을 능가하는 승률을 기록중이다.각각 만화적 감수성,나이를 의심케하는 입담,경쾌하고 발랄한 유머감각 등이 트레이드 마크다. 젊은 드라마 작가 약진은 인터넷 등을 통한 공모제도 활성화,작가 양성기관증가 등 방송 주변환경이 북돋운 바 크다.그러나 무엇보다 TV를 보고 자란세대의 본격적 TV진출 신호탄이란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감각적이고 매사에스피디한 이들의 등장으로 한때 지배적 드라마 양식이던 연속극이 호흡 짧은 미니시리즈로 바뀐지 오래다.방송 관계자들은 당분간 스토리텔링 중심의 인기 중진들과 영상감각에서 압도하는 무서운 신예들이 안방극장을 이분할 것으로 판도를 점치고 있다. 손정숙기자 jssohn@
  • [사설]‘환란’에 책임자가 없다면

    ‘환란사건’ 피고인 강경식(姜慶植)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金仁浩) 전청와대경제수석의 ‘직무유기 혐의’에 대한 서울지법의 무죄판결에 노동계와 시민단체 등 시민사회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재판부가 일반 국민의정서나 법감정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판결을 내렸다는 게 그 이유다. 재판부는 지난 20일 판결문에서 “피고들이 대통령의 질책이나 명예실추 등을 우려해서 외환위기를 축소·은폐 보고하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조요청을 지연시켰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며 피고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피고들이 IMF행을 조속히 결정하지 못한 점은 비난할 수 있을지 몰라도,그것을 곧바로 직무유기로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재판부의 설명대로라면 “환란이 일어난 것은 분명하지만,그에 대해 책임을 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 된다.그렇다면 환란은 ‘인재(人災)’가 아니라 지진이나 태풍 같은 일종의 천재(天災)였단 말인가.6·25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IMF사태로 직장을잃고 아직도 거리를 헤매고 있는 200만 가까운 국민들은 자신들의 비극을 ‘개인적인 운명’으로 돌려야 한단 말인가. 국민이 강경식씨와 김인호씨를 환란 책임자로 지목하고 그들에 대한 처벌을 주장한 것은,이참에 외한위기의 구조적 원인을 밝혀내고 그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정책결정자의 직무유기를 사법적으로 단죄함으로써 다시는 이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기계적인 법이론에 매달린 나머지 “정책적 판단의 실패를 두고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려 일반 국민들의 정서와 법감정에 정면으로 맞서는결과를 빚어냈다.국가 주요정책 결정권자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피해를 입은국민들은 어디에 호소한단 말인가.이번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노동·시민단체들은 일제히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은 경제파탄 주범들에게 면죄부를 준 꼴”이라며 “환란의 진상규명과 그 책임자 처벌을 위해 강력히 투쟁하겠다”고 나서고 있다.주요 정책결정과 관련,이번 1심 판결에 의한 공직사회 기강해이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물론 이번 판결은 하급심 판결에 지나지 않는다.따라서 검찰은 상급심에서는 이들 피고인의 유죄를 이끌어낼 만한 구체적인 증거와 법이론을 결정적으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또한 이번 판결은 피고들에 대한 정치적·도의적 책임까지 면제해준 것은 아니다.그럼에도 사실상 경제파탄의 최종적 책임자인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측은 이번 판결을 ‘사필귀정’이라며 정치재개 의지를 더욱 굳히고 있고,강경식씨는 내년 총선 출마까지 거론하고 있다고 한다.어쩌다가 나라가 이 꼴이 됐는가.“이 나라에서 국민 노릇 하기도 힘든다“는 탄식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 진흙·오물더미 아수라장…그러나 “절망은 없다”

    3일 오전 비가 잠시 주춤해진 틈을 타 무릎까지 차오른 진흙더미를 뚫고 들어선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과 파주시는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백학면은 지난달 31일부터 지금까지 대부분 고립됐었다. ■연천 백학면은 온통 진흙과 오물투성이였다.거리에는 온갖 쓰레기가 풀과뒤엉켜 나뒹굴고 있었다.논과 밭은 붉은 진흙으로 뒤덮였다.집들은 간신히형체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분뇨는 집안에까지 넘쳐 흘렀다.마당 가득내놓은 가재도구에서는 분뇨냄새가 진동했다. 주민들은 사투(死鬪)를 벌이다시피했다.기계설비 가게에서 열심히 기계부품을 닦던 김상범(金相範·41)씨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하나라도 건져보려고 빗물로 열심히 닦아보지만 허사였다.발에는 피가 솟아나고 있었다.가재도구를 치우다 찢어졌다.김씨는 “치료할 곳도 없고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흙탕물이 쏟아지는 계곡에는 설거지를 하는 주부들로 붐볐다.설거지 마무리는 빗물로 했다.빗물을 받아놓은 양동이 앞에서 세수를 하거나 머리를 감는주민도 여럿 눈에 띄었다.하지만 비누가 없어흙만 닦아내는 정도였다. 주변 하천의 범람으로 고립된 뒤 4일 만에 외부와 접촉이 된 장남면에서는70대 남자 등 6명이 두통과 고열 등 말라리아 유사증을 호소해 군용 헬기로이송됐다.먹을 것도 떨어졌지만 주민들은 무엇보다 말라리아를 걱정했다.고열과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집단 폐사된 뒤 들판에 버려진 가축들을 매립해야 다른 전염병도 막을 수있지만 손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오물이 제대로 치워지지 않아 수인성질병도 염려됐다.하지만 이재민들은 자신의 몸도 추스르기 어려워 보였다. ■파주 최악의 홍수대란을 겪고 있는 파주시 수재민들은 3일 아침 물이 빠지자 “태풍이 비켜가기를 바랄 뿐”이라며 또다시 범람이 우려되는 지역에 서둘러 삽질을 했다. 수재민들은 2일 밤 빗줄기가 약해지자 대피 시설을 박차고 나와 자신의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가재도구를 닦아내고 진흙탕으로 변해 버린 방을 청소했다.또 금촌과 봉일천 등으로 나가 생필품과 식수 등을 구해 오는 등 밤새‘공수작전’을 폈다.전기조차 들어오지않아 차량 불빛과 손전등·촛불 등을 켜놓은 채 수마에 할퀸 상흔을 닦아 냈다. 하지만 3일 오후 바람을 동반한 장대비가 쏟아지자 “하늘도 무심하지”라며 장탄식을 토해 냈다.문산시장 의류 가게에서 4일째 갇혀 있다가 이날 오후 2시쯤 해병대에 구조를 요청,침수지역을 빠져나온 안기호(安基鎬·58)씨는 “촛불을 켠 채 빗물로 밥을 지어 먹으며 나흘을 견뎠는데 옷가지가 모두태풍으로 날아갈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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