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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르비,“「공동체」 이행후 사임”/타임지 회견

    ◎조기퇴진 요구한 옐친과 마찰 예상/「과도조정기구」 제의/셰바르드나제 【모스크바·도쿄 외신 종합】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13일 자신의 사임문제에 대해 『헌법상의 절차과정의 문제로서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처음으로 자신의 진퇴시기를 밝혔다고 일 도쿄(동경)신문이 모스크바발로 보도했다. 이는 「독립국가 공동체」이행이 헌법에 따라 추진될 경우 그 완료시점에서 대통령직을 그만 둔다는 것을 시사한 발언이지만 「헌법절차」를 둘러싸고 「공동체」측과 대립점이 많아 논란을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이 신문은 설명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날 미시사주간지 타임과의 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핵무기를 포함한 군장악을 전제로 『베이커 미국무장관과의 회담(16일)까지는 사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임문제와 관련,헌법상 절차과정과 연결짓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발언은 「공동체」측의 일부에서 제기된 「이행기의 잠정대통령으로서 용인할 용의가 있다」는 의견과 일치하는 것이지만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권력이양을 재촉할 경우 혼란을 초래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도쿄신문은 설명했다. 【모스크바 AFP 연합】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은 14일 독립국가공동체 창설에 이르는 과도기간동안 조정역할을 맡게 될 기구의 창설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셰바르드나제는 이날 정치개혁파 인사들의 모임인 민주개혁운동(DRM)의 한 회의에 참석,연설을 통해 소련을 휩쓰는 정치적 변혁에 민주적인 질서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누구나 소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새로운 정치적 실체를 창설할 수 있으나 최소한 이같은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셰바르드나제는 또 지난 4월 발족시킨 DRM은 새로운 정당이 되기보다는 『권리와 민주주의 및 안녕의 기치를 내건 정당과 개인의 유연한 집단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사임임박설과 관련,고르바초프가 사임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으나 2∼3일이내에 사임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부시,빠르면 주내 개각/집권후 인기도 최저… 46%선

    【워싱턴 로이터 AP 연합】조지 부시 미대통령의 인기도가 집권후 처음으로 50% 이하인 46%로 떨어진 것으로 미 CNN방송과 타임지의 공동여론조사 결과 나타났다. 또한 미국 국민중 18%만이 부시대통령이 경제운용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 반면 74%는 잘못하고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편 LA 타임스지는 30일 인기도의 하락을 겪고 있는 부시 대통령이 존 수누누 비서실장을 포함한 행정부의 개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확인 소식통의 말을 인용,부시 대통령의 측근들이 빠르면 다음주께 개각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 외언내언

    70년대 국외추방된 소련의 반체제 작가·시인은 10여명에 이른다.「소련은 1984년까지 살아 남을 것인가」를 쓴 안드레이 아말리크를 비롯하여 안드레이 시냐프스키,버질 타나세등등.알렉산드르 솔제니친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그들에게 공통되는 점은 자유를 얻은 대신 작품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생활이나 언어 환경이 바뀐 때문이라는 지적도 따랐다.솔제니친도 미국에 정착하여 몇해동안 단편 하나를 쓰는데 그쳤다.그나마 소련에서 쓰다가 만 것의 완결.하지만 솔제니친은 그후 러시아 혁명사를 그리는 「붉은 수레바퀴」를 보완해나갔다.53년 동안 구상하고 자료를 모은 작품이다.◆픽션의 수법으로 쓴 방대한 역사소설이 「붉은 수레바퀴」.그 일부인 「1914년 8월」은 71년에 나왔다.미국에 사는 동안 여기에 3백 페이지 정도 가필하여 내놓은 8백54페이지의 증보판이 그책.그는 이 책이 나온 후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붉은 수레바퀴」가 소련에서 발간되기 전에 내가 귀국한다면 나는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미국에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서방측에 경고를 보냈던 솔제니친.서방측이 공산주의의 속성을 너무 모른다는 충고였다.하지만 그는 소련이라는 나라를 사랑했던 애국자.병자와 질병은 다른 것이라면서 소련 사람과 소련의 현체제를 혼동하지 말라고도 호소했다.그러면서 그는 서방사회의 도덕적인 타락상을 개탄하기도.『동양이 떠오른다』는 말의 배경도 거기 있었다 할 것이다.◆솔제니친에게 귀국길이 열렸다.국가반역죄 기소가 취하되었기 때문.「수용소 군도」등의 금서가 출판허용된 것이 그 전조였다.17년 망명생활 끝의 귀국길은 승리자의 개선길이 된다 하겠다.
  • 외언내언

    89년 첫 방미길의 한낮 공항 활주로에서 태연히 소변을 본 사람.방소 부시미대통령 초청 공식만찬에서 반쯤잘린 불구의 왼손인지 손가락에 묻은 버터를 혀로 핥은 사람.천상천하에 거칠것이 없는 낙천주의자.소쿠데타 저지로 영웅이 되기도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 보리스 옐친.최근의 미시사주간지 타임이 그를 소개한 글의 서두다.◆삼엄한 계엄령과 자신에 대한 체포령도 아랑곳없이 탱크위로 기어오르는 그의 용기와 그런 성품이 소련을 구했는지 모른다.러시아 민족주의자요 대중 선동가이기도한 그런 그를 러시아인들은 무척 좋아한단다.그것이 그의 최대무기라고 타임지는 지적하고 있다.그러나 그의 그런무기도 러시아밖에선 통하지 않는 모양.◆쿠데타 저지후 열린 최고회의에서 자신의 비상조치안을 시간없어 못읽었다는 고르바초프에게 삿대질하며 모욕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실망했다.러시아최초의 민선대통령이자 민주주의를 지키기위해 생명을 건 정도이상의 인물은 아니지 않는가.그렇게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타임지는 쓰고있다.◆최근의 타임과 CNN­TV공동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가운데 고르바초프의 계속 집권을 바라는 사람은 53%,옐친을 지지한 사람은 22%.그런 여론을 반영이라도 하듯 옐친을 특별히 못마땅해 하고있는 것은 부시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라고.이기주의적이고 권력욕에 미쳐 있으며 조급하고 오만방자해 지도자 자질이 의심스럽다는 것.◆러시아의 영웅이 세계의 영웅일수는 없는 것인가.미국에 뒤질세라 중국도 옐친을 경계하고 나섰다.보수파 원로 진운은 중국에 옐친같은 인물이 절대 등장하지 못하도록 막아야한다는 것.급진개혁에 대한 두려움의 표시다.옐친을 막자면 고르바초프가 잘해야하듯 중국도 그것이 겁나면 개혁을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막기만하면 많은 옐친을 기르는 결과가 된다는것을 중국의 보수파는 모른단 말인가.
  • “모택동 미망인 강청 자살”/타임지 보도

    ◎지난달 연금·식도병 고통 못견뎌/「천안문」 2주… 시위 우려,발표 안해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 최근호는 모택동의 미망인 강청이 지난 5월 자살했다고 보도했다. 타임지는 익명의 북경소식통을 인용,올해 77살의 강청이 진난달 하순 연금돼 있던 북경교외의 한 빌라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고 밝혔다. 타임지는 강청의 자살동기에 대해 오랜기간 동안 식도암으로 고생해 오다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면서 북경당국은 천안문사태 2주년이라는 미묘한 시점 때문에 강청의 자살 사실을 공표하고 있지 않으며 그녀의 죽음이 또 다른 민주화시위의 도화선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장춘교,요문원,왕홍문 등과 함게 소위 「문혁4인방」으로 군림하면서 극좌석 통치를 자행했던 강청은 지난 76년 9월 모택동 사망 후 권력계승을 꾀하다 당시 제1부주석인 화국봉과 군부지도자인 엽검영·이선념·진석련·왕동흥 등에 의해 체포됐으며 81년 1월 북경 공개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그러나 강청에 대한 사형집행은 2년간 보류되다 지난 83년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지금까지 북경교외에 감금돼 왔다. 강청은 일찍이 연극에 종사하다 1939년 모택동과 결혼한 후 연안로신예술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66년 문혁 당시엔 중앙문화혁명소조 제1조장을 거쳐 73년 당 제10기 중앙위원,중앙정치국 위원 등을 역임했다.
  • 퀘일 불신론의 저변/김호준 워싱턴특파원(오늘의 눈)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심장 박동의 이상으로 입원했던 지난주말 워싱턴에선 2편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하나는 부시 대통령의 건강을 걱정하며 쾌유를 비는 인간 드라마였고,다른 하나는 부시 유고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할 댄 퀘일 부통령의 자질을 의심하는 정치 드라마였다. 퀘일의 자질을 불신하는 여론과 관련,부시가 내년 선거에서 러닝 메이트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는 그 동안 부시의 타고난 건강에 묻혀 쟁점화되지 않았을 뿐 공화당과 민주당 안에선 내연하고 있던 불씨였다. 이번에 부시의 건강에 처음으로 적신호가 나타나자 공화당 사람들은 『부시가 퀘일의 지위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우려를 넌지시 표명했고 민주당 사람들은 이를 다시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고 있는 빌 클린트 아칸소주 지사는 NBC 뉴스 대담프로에서 『미국은 부시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말한 뒤 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부시는 자신의 유고시 대통령직을 승계할 가장 유능한 사람이 퀘일 부통령이라고 믿고 있는지에 관해 답변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클린튼의 힐난은 내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여론을 업고 공화당을 향해 퍼부을 치열한 공격전의 개시를 알리는 신호이다. 지난주 타임지 여론 조사에 의하면 올해 44세인 퀘일에 대해 대통령 자격이 있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19%에 불과했다. 퀘일이 부시를 따라 백악관에 입성한 1989년 1월엔 이 수치가 30%였다. 1988년 선거에서 부시의 지명을 받아 무명의 상원의원에서 일약 부통령 후보로 도약한 퀘일은 월남전 징집을 기피하기 위해 주방위군으로 입대했다는 비난과 함께 정치적 미숙과 관련해 「부잣집 철부지」라는 조롱을 받아왔다. 퀘일 불신론과 더불어 제기된 문제는 다음달에 만67세가 될 부시 대통령이 마라톤 여행과 광적인 운동으로 직무 수행 및 건강에 영향을 미칠 만큼 「과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때 부시는 하루에 워싱턴∼런던을 왕복하는 강행군을 검토했었다. 그의 저돌적인 여행 계획은 수행에 지친 백악관 참모들과 보도진 사이에서 많은 화제가 되고 있지만 그는 「뜨거운 철판 위의 개미들」처럼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스타일이다. 부시는 이번 사건의 경종에도 불구하고 활동 스케줄을 늦추지 않을 것이며 또 내년 선거에선 퀘일과 함께 다시 뛸 것이라고 백악관 측근들은 예견했다. 6일 아침 병원에서 퇴원해 백악관으로 돌아온 부시는 환호하는 직원들에게 측근들의 예견대로 『돌아가서 일을 하자』고 독려했고 퀘일 부통령문제에 대해선 『그는 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며 거듭 신임을 표시했다. 근엄하지만 변화무쌍한 한국의 대통령들을 보아온 기자의 눈엔 밝고 의욕에 넘치면서도 「의리있는 두목」의 모습이었다.
  • “중동의 화약고”… 숨가쁜 대치의 현장

    ◎소 군사고문단,이라크군 계속 지원/이라크,성전독려ㆍ애비난 방송시작/금값 4백불선 돌파… 소도 후세인제안 반박/이스라엘 시민들 방독면 사려 장사진 ○미ㆍ소 외교문제 비화 ○…1천여명으로 추산되는 소련군사고문들이 이라크에 남아서 후세인대통령군을 지원하고 있어 미소간의 외교문제가 되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지가 12일 미정부 고위소식통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이 신문은 소련이 공식적으로는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을 비난하고 있으나 소련요원들이 이라크군에 계속 관여하고 있어 미소간에 알력이 생겼으며 중동문제해결을 위한 초강대국간 협력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라크군 자원 급증 ○…이스마일 하무디 후세인 이슬라마바드 주재 이라크대사는 13일 외세의 공격으로부터 이라크의 회교성지를 방어하기 위해 6천여명의 파키스탄인들이 자원입대했다고 말했다. 후세인대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이슬라마바드의 이라크 대사관과 카라치의 영사관에서 지원병 등록을 받아 이라크에 통보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4만여명의 요르단인과 1만여명의 튀니지인,그리고 레바논과 수단ㆍ예멘ㆍ팔레스타인인 등 많은 사람들이 이라크를 돕기 위해 자원입대했다고 밝혔다. 후세인대사는 『파키스탄인은 우리의 회교형제』라며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있는 21만여명의 파키스탄인들이 자유롭게 출국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파키스탄의 한 관리가 이라크내의 파키스탄인들을 면담하기 위해 조만간 이라크를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련은 13일 이라크가 제시한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조건은 당장 실현될 수 없는 「한낱 제안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리 그레미츠키흐 소련외무부 대변인은 이라크가 그 조건을 이행하는 일이 얼마나 현실적인 것인지를 판가름하기 위해서는 페르시아만사태와 아랍­이스라엘분쟁을 연계시키고 있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의 제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어떻든 이런 조건들을 당장 실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는게 분명하다』고 밝혔다.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13일 페르시아만사태와 팔레스타인 문제를 연계시켜 해결하자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의 제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PLO는 한 성명에서 12일 발표된 후세인대통령의 제안을 「현 페르시아만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객관적인 접근」이라고 말한 뒤 미국이 『파괴적인 전쟁을 부추기고 있으며 완전 폭발로 가도록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PLO는 전 아랍국 및 국제사회에 『이라크제안이 담고 있는 국제정의와 합법성이라는 긍정적인 원칙과 일치하는 해결방안을 모색할 것』을 요구했다. ○…중동위기가 고조되면서 13일 세계 주식시세와 미달러화의 환율이 떨어진 것과는 반대로 금시세는 1온스당 10달러이상 치솟아 4백달러선을 돌파했다. 런던시장의 금시세는 이날 11시50분 현재(현지시간) 올들어 최고가를 기록했던 지난 10일의 1온스당 3백91.24달러보다 10달러이상 폭등한 4백1.375달러로 거래됐다. 파리시장 금시세는 지난 주말의 3백93.17달러보다 12달러 이상 오른 4백5.49달러를 기록했다. 이같은 금값 폭등은 지난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후 예상했던 것만큼 오르지 않았던 금 장세에도 마침내 중동위기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라크는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에 대한 봉기와 「제국주의자」에 대한 공격을 촉구하는 내용의 「아랍 이집트의 목소리」라는 특별방송을 시작했다. 니코시아에서 13일 수신된 이라크의 뉴스보도들은 이 방송이 이라크 라디오 국내방송 주파수로 지난 11일 개시됐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77년 고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했을때도 이 방송과 똑같은 명칭의 방송이 행해진 적이 있다. 후세인은 앞서 무바라크대통령의 발의로 카이로에서 열린 긴급 아랍정상회담에서 이라크의 침공에 대비한 아랍군의 사우디아라비아 파병이 승인된 이후 이집트대통령을 비난했었다. ○…이스라엘 국민의 62%가 이라크의 화학무기공격에 대비,방독면 지급을 원하고 있다고 13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다. 이스라엘의 한 신문이 3백8명의 이스라엘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2%가 방독면이 필요하다고 대답한 반면 32%는 필요 없다고 응답했다고. 이라크가 최근 화학무기사용을 위협하자 이스라엘에서는 방독면 구입이 급격히 증가했으며 지난주 수백명의 이스라엘인들이 텔아비브의 한 상점에서 방독면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정부는 그러나 당장은 방독면이 필요없다며 국민들에게 방독면 구입을 서둘지 말 것을 설득중이라고. ○화학장비 영서 구입 ○…이라크는 독가스전에 필요한 장비들을 영국에서 구입하려 한다고 옵서버지가 12일 보도. 이 신문은 이라크가 특히 화학전의 사전 처치제로 쓰이는 「납스」정제와 「콤보」주사제를 입수하려는데 이 약품들은 독가스에 대한 인체의 저항력을 높이거나 신경계통의 피해를 줄이는데 효과가 있는 약품들이다. 이라크는 제네바협정으로 독가스의 사용이 금지되어 있는데도 불구,공격을 받을 경우 이를 사용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라크는 다량의 「겨자가스」 「시안화물 가스」 및 「사린」 「타분」 등과 같은 신경가스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특히 이를 장거리로 운반할 수 있는 미사일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한편 「인디펜던트 온 선데이」지는 이날 런던의 이라크계 회사들이 쿠웨이트사태 후에도 여전히 핵무기를 비롯한 서방의 첨단기술과 군사장비를 구하고자 은밀히 활동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민들 70% 이상은 조시 부시 대통령의 페르시아만 파병결정에 이해를 표시하고 있으나 페르시아만 사태가 악화,전쟁에 이를 경우 월남전때와 같은 장기전이 될까 우려하고 있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뉴욕 타임스지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12일 밝혔다. 타임스지가 9.10일 양일간 미국 성인 6백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미국민 절반가량은 이라크와의 유혈충돌없이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사태가 해결되리라고 믿고 있는 반면,약 3분의 1은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어쩌면 월남전과 같은 장기전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 ○콜라주고 검문 통과 ○…쿠웨이트를 탈출,지난 9일 워싱턴에 도착한 한 미국인은 자신이 다이어트 콜라 한 캔을 검문하던 이라크 병사에게 주고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있었다고 말했다. 쿠웨이트 국가대표 수영팀의 코치로 일해온 스티브 베츠는 지난주초 쿠웨이트를 탈출하던 도중 쿠웨이트시티에서 1백35㎞쯤 떨어진 지점에 이르렀을때 이라크 군인들의 검문을 받았으나 콜라 한 캔을 주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미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미취재진 입국 허용 ○…미 취재 및 사진 기자단이 사우디아라비아 배치 미군병력이 증가함에 따라 이를 취재하기 위해 이번 주말 미군용기로 사우디에 입국할 것이라고 10일 미국방부가 밝혔다. 기자단에 포함되는 언론사는 로이터ㆍAPㆍUPI 등 세계유수통신사를 비롯,뉴스전문 유선방송인 CNNㆍ타임지 등이다.
  • 노대통령·고르바초프회담 이모저모

    ◎「86년 단절」 잇는 첫 악수… 화기 넘친 1시간/“반갑다”·“꼭 만나고 싶었다” 첫 인사/고르비 일정쫓겨 회담 1시간 지연/노대통령 회견장 성황… 소 방송 “전세계에 센세이션”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역사적인 샌프란시스코 회담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일정 지연때문에 당초 예정보다 1시간20분 늦은 4일 하오 5시20분(현지시간)부터 진행. 이날 한소 정상회담이 열린 페어몬트호텔 신관23층 스위트룸은 한쪽의 창이 태평양을 면해 있는 방으로 노태우대통령이 창을 향해,고르바초프대통령은 태평양을 등뒤로 해 양측 배석자와 나란히 착석. 회담시작직전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바쁜데도 만나 뵙게 돼 반갑다』고 인사했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나도 바쁘지만 꼭 노대통령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인사. 노대통령은 회담서두에 창밖의 태평양을 가리키며 『저 건너편에 우리 한반도·소련 그리고 아시아가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을 멀리 보면서 태평양서쪽의 평화를 얘기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라고 말하자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태평양지역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지역이며 이곳의 평화와 번영은 모두에게 소중한 것』이라고 화답.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회담을 과일에 비유,『우리가 시작한 새로운 시발을 잘 익도록 해 모든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것으로 성숙시켜 나가자』고 말하는 등 회담 중간중간에 양국 대통령은 위트와 유머도 섞어가면서 화기로운 회담을 진행했다고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이 전언. ○고르비,“시간 아쉽다” 당초 이날 하오 6시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캄차카로 향할 것으로 알려졌던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일정이 순차적으로 늦어져 노대통령과의 회담이 6시20분에야 끝나자 서둘러 회담장을 떠났는데 노대통령과 헤어지면서 『시간때문에 아쉽다. 오랜 시간의 비행계획이 남아있고 떠나는 일정이 급해 정말 아쉽다』고 말하며 『오늘 우리의 만남은 건설적인 양국관계의 출발』이라고 다시한번 의미를 강조. 이날 회담이 예정보다 늦어진 것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레이건 전 미대통령과의 조찬을 1시간정도 늦게 시작해 그후일정이 자동적으로 순연했기 때문이라고. ○…한소 정상회담과 노태우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은 한국기자들에게 별도로 회담내용을 발표. 이대변인은 『페어몬트호텔의 23층 페어몬트특실에서 1시간동안 열린 이날 회담에서 양국정상은 아주 솔직한 의견을 나누었으며 의례적인 것이 아니고 핵심적인 문제에 상호입장을 충분히 얘기해 합의를 도출한 회담이었다』고 소개. ○환한 표정으로 회견 ○…노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양국정상회담이 끝난지 40분만인 하오 7시 정각에 시작,노대통령의 준비된 성명서 발표와 가지들의 일문일답으로 35분간 진행. 감색 양복을 입은 노대통령은 역사적인 정상회담의 결과가 당초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둔 듯 환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인 페어몬트호텔 1층 베네치아홀에 입장한 뒤 곧바로 노창희의전수석의 통역으로 기자회견을 개시.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만남이 한반도 냉전의 얼음을 깨는 첫걸음이라는 내용등 중요 대목에 이르러서는 상기된 표정으로 기자들을 응시하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노대통령은 7쪽의 성명서를 20분가량 읽어 내려간 다음 한국기자 2명(조선·한국)과 미국(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영국기자(파이낸셜타임)등 4명의 질문을 차례로 받고는 상세하게 답해 주었는데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지 코니강기자의 감회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끝에 『샌프란시스코시장과 시민들이 3일을 노태우 날로 지정해 주고 4일을 고르바초프의 날로 지정해 주는 알뜰한 협조와 정성을 보여준 데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치하,역사적 정상회담 장소를 제공한 샌프란시스코시에 대해 고마움을 표명. 노대통령은 마지막 질문자인 영파이낸셜 타임지 기자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 끝나자 『여러분을 기다리게 한데 대한 미안한 마음에서 보너스로 한분만 더 질문 받겠다』고 조크,굳어있던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를 일순 바꾸는 여유를 보이기도. ○미·소측,삼엄한 경호 ○…이날 회담장인 페어몬트호텔에는 미국과 소련측 경호원들이 경비견까지 동원한 삼엄한 경비를 펴 엘리베이터 입구에서부터 내외신기자들의 접근을 차단.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미경제인 오찬장인 본관에서부터 복도를 따라 30여m 걸어와 회담장인 신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회색 더블보턴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꽉 짜인 일정 때문인지 다소 피곤한 표정. 이날 회담장에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국빈으로 방미했기 때문에 모든 편의시설이용의 우선권을 소련측이 행사해 모든 엘리베이터 사용이나 경호절차를 소련측이 전담. 이 바람에 우리측 수행기자들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측 대표단을 뒤따르려다가 소련측 경호원들의 제지로 기록사진사 1명만 회담장 입장이 가능했으며 이 사진사도 회담시작 20여분전에 미리 소련측 안내를 받아 회담장인 23층에서 대기. ○미소회담 설명들어 ○…한소 정상회담을 6시간여 앞둔 4일 상오 10시(한국시간 5일 상오 2시) 노대통령은 숙소인 페어몬트호텔에서 솔로몬 미국무부 동아태차관보로부터 미소 정상회담결과에 대해 1시간15분동안 설명을 듣고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회담에 대비하는등 분주한 일정. 솔로몬차관보는 노대통령의 북방정책이 성과를 거둬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을 갖게된 데 대해 깊은 경의를 표한다는 부시대통령의 인사를 전한 뒤 『부시대통령은 아울러 노대통령의 방일을 통해 일왕과 일총리가 「솔직한 사죄」를 함으로써 미국의 주요한 아시아맹방인 한일양국이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된 데 대해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언. ○김대표위원과 통화 ○…노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이 끝난 뒤 하오 10시30분쯤 서울로부터 걸려온 김영삼민자당대표최고위원의 국제전화를 받고 정상회담결과 등에 대해 20여분간 환담. 김대표는 노대통령에게 『이번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간의 정상회담은 냉전시대를 종식시키려는 노대통령의 의지와 우리국민 모두의 노력을 전세계에 과시한 것이며 우리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과 동북아안정을 앞당기는 획기적 계기였다』면서 『이번 회담은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인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경의를 표시. ○라이사,한인상점에 ○…고르바초프대통령부인 라이사여사는 4일 샌프란시스코 시내 관광중 한국교포 김혜자씨(31)가 경영하는 가게에 들러 약 10분간 담소를 나누면서 부군고르바초프대통령과는 또다른 내조자로서의 한소외교에 한몫을 담당. ○…소련의 모스크바방송은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이 전세계적으로 『진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모스크바방송은 노대통령이 한소 정상회담에서는 쌍방의 수교문제와 경제협력 증대문제뿐 아니라 한반도평화 및 통일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하면서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간의 이 회담은 만남 그 자체에 「큰 의의」가 있다고 역사성을 부여한 로이터 통신의 보도를 인용,소개했다.
  • 고르바초프,나토ㆍ바 기구 해체 촉구

    ◎미지회견서… 「동서 새 시대 진입」 천명/“유럽은 「국가연맹체」 될 것”/「통독」 나토 잔류는 절대불용 【워싱턴 AP 로이터 연합 특약】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은 6월4일자 미 시사주간 「타임」지와의 회견에서 유럽통합을 위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바르샤바조약기구는 해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르바초프는 『우리는 이미 양대 기구를 대신할 새 안보체제 시대로 들어섰다』고 말하고 앞으로 유럽은 공동의 기구들을 갖는 하나의 국가연맹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그러나 통일독일의 나토 잔류문제와 관련,미국이 통합유럽을 나토 지배하에 두려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미국이 통일독일을 나토에 잔류시키겠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소련은 결코 이것을 용납치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타임지는 밝혔다. 이번 회견은 오는 30일 워싱턴에서 개막될 미소 정상회담을 앞두고 모스크바에서 있었다. 고르바초프는 이번 정상회담중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통일독일의 나토 잔류문제와 관련,견해차가 있을것임을 인정하고 『그러나 양국관계로 볼때 우리는 뒤로 후퇴하기 보다는 진전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희망한다』고 말했다.
  • “평양은 지구 최후의 「빙점하 도시」”/영 선데이타임스기자 방북기

    ◎거리마다 김일성동상ㆍ선전용빌딩만/정치범15만ㆍ비참한 주민생활상 감추기 급급 최근 평양을 방문했던 영국 선데이 타임스(더 타임지 발행)의 존 스웨인기자는 『평양은 실제에 있어 낙원이 아니라 잃어버린 낙원에 가깝다』고 말하고 북한주민들은 『거짓말만 계속되는 곳에서는 오직 진실만이 왕』이라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다음은 「빙점하의 북한에서 본 조지 오웰의 악몽』이란 제하의 스웨인기자 방문기 요약이다. 평양은 얼핏보기에는 현대적이고 매력적인 도시같이 보인다. 마천루가 있고 넓은 거리가 있고,거대한 체육시설ㆍ문화센터가 있다. 그러나 한꺼풀만 벗기고 나면 이것들이 남한과의 경쟁을 의식한 엄청난 낭비이며 2천만 북한주민들에게 이나라가 노동자의 낙원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려는 기도임을 알수 있다. 실제에 있어서 평양은 낙원이 아니라 「잃어버린 낙원」에 가깝다. 평양은 세계에서 가장 숨기는게 많고 금지된게 많은 황량한 곳이다. 현대식 빌딩의 이면에는 노인들과 지체부자유자들이 시골 변두리에 쫓겨나 살고있는가 하면 15만명의 정치범들이 강제노동수용소를 꽉 채우고 있다는 소름끼치는 사실이 은폐되어 있는 것이다. 한 외교관은 『북한땅은 세계에서 가장 황량한 곳이며 조지 오웰적 악몽이 현실로 나타난 곳』이라고 미리 나에게 밝혀준 바 있지만 북경을 출발한 열차가 압록강 다리를 건너 북한으로 들어서면서 그 말의 의미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열차가 변경의 한 역에 도착하자 열차안에 있는 북한 승객들은 그들의 옷깃에 김일성배지가 제대로 붙어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확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배지는 공공장소에서는 꼭 달도록 의무화되어 있다. 김일성의 모습은 어디에나 있었다. 드넓은 광장에는 으레 거대한 그의 동상이 우뚝 서 있으며 빌딩에서도 그의 얼굴이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다. 김의 생일은 연중 가장 큰 축제일이며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데 이용되고 있다. 그가 자기선전을 위해 벌인 가장 기묘한 짓은 평양에서 3시간 걸리는 곳에 6만점의 선물을 차려놓은 것이었다. 거대한 탑식궁전에 전시된 선물 가운데는 루마니아의 독재자였던 니콜라이 차우셰스쿠가 보낸 박제된 곰(분명히 차우셰스쿠가 손수 사냥한 것이리라),에티오피아의 하일레 마리암대통령이 보낸 박제된 사자,아프리카에서 보낸 상아와 물소뿔이 있었다. 김은 49세인 그의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임명하여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을 격분시킨바 있다. 한국전쟁후 분단 40년간 김은 한반도의 북쪽을 외계로부터 봉해버렸으며 신문과 방송은 정부선전만 하도록 통제되어 왔다. 그 결과는 조지 오웰적 대중조작이었다. 북한사람들은 외부에 관한 정보를 거의 모르기 때문에 무엇이건 쉽게 믿을 수밖에 없다. 동유럽의 개혁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들은 남한보다 훨씬 더 잘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진실을 아는 사람들이 있다면 동구에서 유학중이었던 수백명의 유학생 정도인데 그들은 작년에 갑자기 소환되어 사상교육 캠프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차우셰스쿠의 처형과 루마니아 현지의 격렬한 개혁이 김을 놀라게 했다는 증거가 있다. 평양에는 주로 공산당 핵심분자와 충성분자들만이 살도록 허용되고 있지만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죽던날 김의 거처를 경비하는 군병력이 배로 늘어났다고 외교관들은 귀띰해 주었다. 22일에 끝난 최고인민회의 조기선거도 주민들의 불만을 피해보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이 그의 아들에게 권력을 조기이양할 것이라는 소문들이 나돌았으나 현재로서는 그럴 의사가 없음이 분명하다. 그는 아들 김정일이 신뢰도와 카리스마가 부족하며 당이나 군의 지지도 받고 있지 못한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김정일은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며 몇몇 테러행위에도 연루되어 있다. 『그는 매우 유치하며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와 같다』고 한 외교관은 말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개인 숭배가 김의 사후에까지 계속되지는 않으리라고 보고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거짓말만 계속되는 곳에서는 오직 진실만이 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날이 오면 동유럽에 있는 그의 공산주의 친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김씨왕조도 떠내려 갈 것이다.
  • 「신사고」 앞세워 동서데탕트시대“견인”/고르바초프 집권5년의 평가

    ◎새로운 「자결원칙」 제시,동구 대변혁 “촉발”/강력한 대통령제 신설,개혁 가속화의 기틀 다져/“발등의 불”경제난ㆍ민족분규등 현안 “첩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겸 최고회의의장이 11일로 집권 5주년을 맞았다. 고르바초프는 그동안 사고의 대전환을 통한 대담한 개혁정책 추진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역사적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소연방내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민족주의 물결과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경제난 때문에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르바초프는 12ㆍ13일 열리는 인민대표대회에서 비상대권 등 막강한 권한을 지닌 소련 최초의 서방식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취임 5주년 기념일인 11일에는 리투아니아공화국 최고회의가 독립국가를 선포하기 위한 표결을 준비하는 등 그에대한 도전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이같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는 개혁정책과 신사고외교를 성공리에 추진,소련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아니라 끝없는 군비경쟁으로만 치닫던 냉전체제에 종지부를찍으며 국제적인 데탕트 기류를 몰고 온 장본인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대담하게 개혁 추진 지난 85년 체르넨코 서기장 사후 그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른 고르바초프는 지난 88년말 유엔총회연설에서 일방적인 국방비삭감과 50만명의 소련군 감축을 선언,세계의 군비경쟁에 결정적 브레이크를 걸었다. 또 소련의 동구개입을 뜻하는 브레즈네프독트린을 폐기하고 이른바 시내트러독트린(프랭크 시내트러의 히트곡「My Way」처럼 각국이 제갈길을 찾아가라는 의미)이라 불리는 새로운 자결원칙을 제시,지난해 동구의 민주화변혁을 가능케 했다. 고르바초프의 신사고가 없었다면 베를린장벽의 제거와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몰락도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함께 아프가니스탄 주둔 병력을 철수시키는등 지역분쟁 해결을 위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ㆍ재편)와 글라스노스트(개방ㆍ정보공개)를 세계적인 유행어로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세계평화의 위협자에서 수호자로,동구제국의 지배자에서 해방자로,혁명수출국에서 분쟁중재국으로 소련의 역할전환을 이룩해낸 것이다. 시사주간 타임지는 고르바초프를 지난 8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플라톤의 정치의 도를 터득한 사람』이라고 극찬하면서 「80년대의 인물」로 선정했다. 지난달 미CNN방송이 고르바초프의 서기장직 사임설을 보도하자 뉴욕ㆍ도쿄등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 증권시장에서 주가폭락을 초래했을 정도로 그는 이미 전세계의 기대와 희망을 한몸에 받고 있다. ○군비경쟁에 쐐기 국내에서도 국제무대에서 만큼 가시적인 효과를 얻어내지는 못했으나 나름대로 소련의 정치체제를 뒤흔드는 일련의 개혁정책을 성공리에 추진하고 있다. 볼셰비키혁명이후 70년이 넘도록 유지돼온 공산당 권력독점을 포기,고질적인 관료제를 타파하고 정치적 다원주의의 물꼬를 텄다. 강력한 대통령직을 신설,개혁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기틀도 마련했다. 인민대표대회의 권한을 강화,자유로운 토론의 장으로 변모시켰는가 하면 각급 선거를 복수후보경쟁에 의한 비밀투표로 실시토록 했다. 정치범 석방,언론ㆍ종교ㆍ출입국 자유화 등의 민주화 조치도 취했다. 경제적으로도 관료적인 중앙집중식 계획경제의 비능률성을 개선하기 위해 기업의 독립채산제를 채택하고 협동조합기업(코페라티브)설립과 합작을 통한 외국자본의 유입을 허용하는등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침체의 늪에 빠져든 소련 경제를 소생시키지는 못했다. 생산수단 사유화및 임금노동과 토지의 개인영구임대 및 상속을 허용하는등 보다 실질적인 조치들이 곧 입법화될 예정이지만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물자부족등 피부에 와닿는 경제혼란으로 인해 주민들의 불만과 급진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팽배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정보의 공개와 언론자유에 힘입어 소수민족공화국들의 민족적 자각과 그에 따른 분리독립요구가 높아져 연방해체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이같은 페레스트로이카와 신사고에 대해 고르바초프는 관료체제를 타파하고 「인간의 얼굴을 가진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발전을 위한 제2의 혁명이며 「보편적 인간 가치」를 위한 자본주의 국가와의 협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역 분쟁해결 앞장 일부 서방전분가들이 지적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마르크스­레닌주의의 포기」「자본주의로의 전환」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의 재생이라는 주장이다. 개정된 공산당 강령은 레닌주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여도 안되지만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국유 또는 사회소유에 반하는 사적소유와 인간노동의 착취행위로 금지돼왔던 임금노동을 허용하는 문제들을 놓고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던 것처럼 아직도 사회주의적 「사회정의」와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상반된 개념중 어느 것을 취할 것인지 완전한 의견의 일치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소련과 동구의 변혁이 일방적이 아닌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것처럼 소련내의 개혁도 집권층과 국민들간의 상관관계속에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에측불허인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개혁작업이 어떤 동기에 의해 추진됐건간에 전임자들도 똑같이 느꼈던 문제를 고르바초프만이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일단 그의 대담한 실천력은 높이 평가할만 하다고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제 대통령으로서 집권2기를 맞으며 앞으로 4년의 임기동안 실각의 우려를 덮어둔채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게 된다. ○부분적 시장경제로 개혁을 가속화시켜 국민들로부터 계속 지지를 받게될지 아니면 일부의 우려처럼 독재자로 변신할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적어도 오는 94년의 2대 대통령은 국민들의 직접비밀투표에 의해 선출된다는 점에서 스탈린식 강권통치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자유의 맛을 느낀 소련국민들도 두번다시 과거행 타임머신에 동승하기를 거부할 것이다. 강제이주 이전 거주지인 크림반도로 돌아가겠다는 타타르족등의 단순한 요구로부터 발트해연안 3국의 즉각 분리독립요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민족문제들이 고르바초프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또 루블화의 태환성 부여,가격ㆍ금융제도의 개선,완전자유시장의 도입등 근본부터 흔들어 놓아야 할 경제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세기의 영웅 고르바초프가 70년동안 타율성과 의욕상실증에 찌들대로 찌든 국민들을 다독거려 이같은 난제들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해나갈 것인지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취임5돌 고르바초프 공과 ■외교 정책 ▲동구 각국에 대한 불간섭정책을 선언함으로써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등 동유럽에 엄청난 변혁이 일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 ▲핵전쟁 발발 가능성의 공포와 유럽 및 중국에 대한 소련의 선제공격 우려를 현저히 불식. ▲국방비를 삭감하고 병력 50만명과 탱크 1만대 감축을 일방적으로 선언 ▲중부유럽 주둔 병력의 철수를 미국과 잠정적으로 합의 ▲미국과 중거리핵미사일 폐기를 합의한데 이어 오는 90년까지 장거리 핵미사일도 절반으로 삭감한다는 목표를 협상중. ▲아프가니스탄에서 병력 11만5천명을 철수. ▲앙골라ㆍ나미비아ㆍ캄보디아ㆍ니카라과 등 분쟁국에 대해 협상을 종용 ■민주화 ▲지난 89년 경선제를 도입하고 공산당의 권력독점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지도부를 설득,동의얻어냄. ▲강력한 대통령제 도입을 제안. ▲언론ㆍ집회ㆍ종교의 자유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법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 ▲정치범 수백명을 석방하고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에 대한 탄압을 종식 ■경제정책 ▲일반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생화수준 개선을 위한 노력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 ▲당지도부가 공장의 개인소유제도를 받아들이게 하는데 성공 ▲개인이 토지를 임대차하는 것은 물론 이 권리를 상속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으나 개인의 토지소유는 거부. ▲합작을 통한 외국자본의 유입을 대폭 완화. ▲90년도 적자가 1천5백억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함으로써 재정적자를 처음으로 공개. ■국내정책 ▲발트해연안 3개 공화국의 독립요구 운동을 묵인.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등 일부 공화국에서 민족분규가 발생해 진압군 수십만명을 파견. ▲관료들의 부정 근절 실패,폭력범죄도 계속 증가. ▲환경보호주의자들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환경개선에는 아직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했음. ▲주택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성과는 별로 나타나지 않았음.
  • 기대와 불안… 「통독」움직임의 반향

    ◎무너지는 동독… 일어서는 「거대 독일」 동서독이 통일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국제적인 데탕트 기류에 힘입은 통독논의는 오는 18일 동독의 자유총선후에는 더욱 구체적이고도 가시적인 단계로 뛰어오르게 될 전망이다. 미국과 소련등 강대국들,특히 독일과 인접한 유럽각국은 거대독일의 출현을 우려,통독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데 대해 상당한 불안감을 갖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도 분단극복이 거역할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판단,벙어리 냉가슴앓이를 간직한채 통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통독 움직임을 바라보는 유럽과 미국의 시각,배경및 전망을 살펴본다. ◎미국의 시각/초강대국화 우려,나토잔류 강력 희망/고르비 실각땐 통일행보 지연 가능성/국민열망이 원동력… “올해가 재결합 완성의 해”인식 지난2월 모스크바와 워싱턴을 돌며 통독외교를 벌인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양독의 신속한 통일만이 동독의 경제적ㆍ정치적 붕괴와 동독인들의 서독 이주 사태를 막을수 있다』고 주장했다. 콜총리의 「동독붕괴」발언은 서독측의 정치적 주장이기보다는 객관적 현실을 직시한 것으로 워싱턴은 보고 있다. 동독은 지금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 미국 각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동독 경제위기감 팽배 동독의 미래에 대한 동독인들의 불안감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된 동독인들의 대규모 엑소더스라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작년에 34만4천명의 동독인이 서독으로 넘어갔다. 올들어 지난 두달간 서독으로 이주한 동독인은 11만5천명에 달한다. 1월의 하루 1천8백명에서 2월엔 하루 2천2백50명으로 늘어났다. 미국의 독일문제 전문가들은 이같은 추세가 내년엔 다소 고개를 숙이겠지만 앞으로도 동독 인구 1천6백만명 가운데 1백80만명 이상이 더 빠져 나가 동독의 공동화 현상을 심화시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동독 사회의 공동화 실상은 작년 11월10일의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절반으로 줄어든 동독군이 잘 대변하고 있다. 불과 수개월전만 해도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 최강을 자랑하던 동독군은 수천명씩의 탈영자가 발생하고 기강이 무너져 『이미 군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나토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나토측 추정에 따르면 동독국가인민군(NPA)의 병력 수는 작년의 17만3천명에서 지금은 9만명에 불과하다. 동독경제는 지금 파국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숙련 노동 인력의 엑소더스로 사회 각 분야가 인력난에 허덕이고 살쾡이 파업(노동조합의 일부가 본부의 통제를 받지않고 멋대로 벌이는 파업)ㆍ작업정지ㆍ태업 등의 만연으로 심각한 생산 차질이 빚어져 인플레가 계속되고 있다. 동­서독 마르크화간의 공정 환율은 1대1이나 서베를린 암시장에선 10대1로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동독경제에 절망과 무질서가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능성」이 「현실」로 성큼 콜 총리가 지난 2월 제의한 「양독의 통화 단일화」는 1차적으로 동독인 엑소더스의 저지를 겨냥한 것이었다. 날로 시세가 떨어지는 동독의 「장난감」 돈을 서독의 안정되고 태환성 있는 통화로 바꿔주면,그것도 1대1의 공정 환율로 바꿔주면 동독인들이 동독경제의 미래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돼 엑소더스가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것이 「통화 단일화」의 논리라고 타임지는 풀이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인의 3분의2와 서독인의 4분의3이 통일을 지지하고 있다. 분단된 독일 국민의 이같은 통일 열망이 통독의 원동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동독을 붕괴의 위기로 몰아가고 서독의 사회복지에 중압감을 안겨주고 있는 동독 주민의 끊임없는 엑소더스야말로 현실적으로 양독의 신속한 통일을 촉구하는 가장 강력한 압력 요인이라고 뉴욕타임스는 풀이했다.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은 얼마전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독일통일이 1990년에 완성의 호기를 맞고 있다』고 년내 통일을 예견하면서 『사실상의 경제 통합과 통일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개방됐을 때만 해도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독일통일이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믿고,당초 금년 5월로 예정됐던 동독 총선때까지는 진지한 조치가 요구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난 1월28일 동독정부가 총선일을 3월18일로 앞당긴다고 발표하자 사태의 급박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동독지도부가 5월까지 나라를 지탱해 나갈수가 없기 때문에 총선일을 당긴 것으로 분석했다. 그리고 3월 동독 총선에선 통일 지지 정당들이 압승할 것이 분명하므로 이제 독일통일은 가능성이 아니라 뚜렷한 현실로 다가섰다고 판단했다. 부시 정부는 국제적인 통독 협상방안을 서둘러서 만들기로 결정했다. 지난 2월13일 오타와 회담에서 두 독일과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미 영 불 소 4개국간에 합의된 통독협상의 틀 「2+4」가 그것이다. 「2+4」방식에 따르면 먼저 독일이 통일의 경제적 정치적 법적 측면을 논의한다. 그 다음에 두 독일과 4강이 만나서 통일된 독일의 병력 규모라든가 나토와의 관계등 유럽의 안보 문제를 논의한다. 금년 초까지도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독일 통일에 반대했다. 나치와의 전쟁에서 2천6백만명의 희생자를 낸 소련이 유럽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독일인 7천7백만명의 재결합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뜻밖에도 고르바초프는지난 2월초 동독 총리 한스 모드로브의 독일 중립화 통일안을 지지했다. 그리고 서독 총리 콜의 방소를 받아들여 『통독은 독일 국민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통일된 독일의 비대한 힘과 영향력을 억제하는데 나토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통일 독일의 나토 편입을 주장하고 있다. 통일 독일의 중립화는 「경제거인」 독일을 고립시켜 강대국이나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상황을 조성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어 고르바초프도 결국 독일의 나토 잔류를 받아 들일것으로 워싱턴은 내다보고 있다. ○통독협상 방안 마련중 콜이 이끄는 서독의 기민당 정권은 소련에서 고르바초프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동안 새로운 유럽안보체제와 독일 통일을 확정시켜야 한다는 방침 아래 서독의 온 체중을 실어 통독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콜과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은 통일된 독일이 나토 회원국이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도 소련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전 동독 영토내에는 나토군이 주둔해서는 안된다는 방안을내놓고 있다. 서독은 또 과도기간중 독일 동부에 소련군 주둔을 허용하는 방안도 마련중이다. 일부 소련문제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심각한 경제난과 인종분규 등에 직면한 고르바초프가 언제 실각할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으며,만일 그가 실각할 경우 그의 대담한 동서긴장완화정책에 따라 급격히 빨라진 통독 행보도 지연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유럽의 시각/동독에 어떤 정부 들어서도 「통독」불변/국제적 지위ㆍ국경ㆍEC와의 관계 촉각/양독의 경제격차가 기폭제… “민족주의 망령 부활”긴장 쾌속으로 진행되고 있는 동서독 통일 작업을 바라보는 서유럽 나라들의 요즈음 모습은 엉거주춤한 상태 바로 그것이다.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그렇다고 달리 어떻게 해볼 묘책도 그들에게는 있어 보이질 않는다. 『독일은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독일민족의 소리를 외면할 처지가 못되며,자국의 이해에 관련된다 하여 민족자결의 명분에 반하는 처신을 할 입장이 아닌 것이다. ○국제정치 변화가 촉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통독에심한 거부감을 가져오던 서유럽나라들이 어느새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동독총선이 끝난 뒤에 곧 통일이 실현될 것이라든지,오는 7월1일부터는 서독 돈이 동독에서도 통용되는 등 통화 통합과 경제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들이,성급한 것으로 여겨지거나 불가능한 소리로만 들리지는 않는 상태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같은 현실인식은 통독작업이 급진전될 수 있었던 상황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동서 냉전체제의 종식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고 봅니다. 말할것도 없이 독일의 분단은 2차세계 대전의 결과입니다. 전쟁이 끝나면서 독일은 두쪽으로 갈라졌으며 그것이 바로 냉전시대의 개막신호였습니다. 이러한 대결 구조가 존속되는 한 독일의 분단상황도 지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반대로 냉전시대가 종료되면서 분단국의 재통일문제가 부각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요』 런던 국제관계연구소의 토머스 펠러만 박사는 독일의 재통일 문제를 국제정치 상황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조명하면서 동서간 대립과 대결구조의 해소는 분단민족의 통합을 촉진시킬수 있는 가장 중요한 모멘트가 될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반도라 해서 이같은 국제정치 질서의 흐름이 외면해 지나칠 이유가 없으며 당사자들(남북한 지칭)이 이같은 분위기를 자기 것으로 흡수 소화할때 분단이라는 긴 터널의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같이 분단국 재통일 문제의 부각은 국제정치 질서의 변화가 촉매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대부분의 견해이지만 이에 곁들여 『동독의 소멸』현상을 중요한 모멘트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개혁을 완강히 거부하던 호네커정권이 무너지면서 동독의 공산당은 물론 과거의 동독 자체가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서독은 책임있는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다고 구체적인 통일 논의는 오는 18일의 동독 총선뒤로 미루어 놓았습니다. 총선뒤 동독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그 첫 과제는 서독의 통일 스케줄에 자신들의 일정표를 짜맞추는 일이 될것입니다』 파리사회과학연구소의 코르넬리우스 교수는 줄곧 두개의 독일을 고집해 오던 공산당 정권의 붕괴로 통일논의의 최대 장애가 제거된 셈이며 이로인해 국민들의 통일욕구가 분출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따라서 서독이 대화할 책임있는 상대가 없는 때를 역으로 통일논의의 최적기로 삼아 기회를 놓칠세라 안팎으로 뛰어 통일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놓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산당 붕괴로 새 국면 이와함께 동서독간에 빚어진 경제ㆍ사회적 격차가 통일작업을 재촉하는 계기의 하나가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5월 헝가리가 국경철조망을 걷어 치운 뒤부터 시작된 동독인들의 대량 탈출 현상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도 계속되어 요즈음도 하루 2천∼3천명이 서독으로 넘어오고 있다. 그들은 체제나 이념문제를 떠나 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보다 잘사는 형제들 곁으로 향하는 대열이다. 『서독으로의 탈출 대열이 보여주듯 파탄지경에 이른 동독경제는 서독경제의 도움이 절실하며 칼자루를 쥔 서독의 통일논의에 응할수 밖에 없는 상황』(불 리베라시옹지)이 통독작업을 서두르게 하는 원인중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기도 하다. 이밖에도 그동안 동서독이 꾸준히 힘기울여온 통일기반 조성 작업이 그 토대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서독에 의한 대동독 경제원조,인적교류,문화ㆍ체육교류등을 통한 민족동질성의 고취등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통일논의가 동서독 국민들에게 다같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지닌다. 이와같은 통독논의의 가속화에 대한 원인분석 뒤에 따르는 관심은 자연히 통일독일의 지위와 국경보장문제, EC(구주공동체)와의 관계등에 대한 것이다. 서유럽 사람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서독 페이스 불가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날 곡괭이를 들고 장벽을 부수겠다고 달려드는 독일 젊은이들의 모습을 TV를 통해,신문을 통해 보면서 섬뜩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알랭 투랜박사(파리 국제전략연구소)는 많은 유럽사람들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 장면을 한맺힌 통일염원의 표출로 보기보다는 「민족주의 망령의 부활」을 느꼈을 것이라고말했다. 그들은 통일독일이 다시 유럽을 지배하거나 중부유럽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 싸여있다. 이같은 통독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서 연유하는 것이 요즈음 초점이 되고 있는 오데르­나이세국경선 선보장문제이며 헬싱키협약 준수의무 요구나 EC통합범위 안에서의 통독작업 진행 주장 등이다. 콜총리가 6일 오데르­나이세 국경의 불가침성을 인정하겠다고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통독을 보는 유럽 사람들의 불편한 심기가 씻은듯 가셔질리는 없는 것이다.
  • 「소비에트 연방 해체」타임지 특집

    ◎“공화국 불만 증폭… 소연방 와해 위기”/인구 51% 차지한 러시아공도 독립주장/민족주의 확산땐 회생불능의 혼란 초래 【뉴욕 연합】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12일자 최신호에서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라는 특집기사를 실어 고르바초프 정권이 당면한 위기상황을 폭넓게 전하는 가운데 소련내 15개 공화국 거의 모두가 중앙정부에 대해 너무 많은걸 요구하고 있거나 불평ㆍ불만에 차있어 고르바초프의 소련제국이 와해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진단했다. 타임지의 이 특집기사는 이제까진 발트해 소수민족 공화국들의 독립요구가 고르바초프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으나 2억8천9백만 소련인구의 51%를 차지하고 있는 대러시아공화국의 러시아주민들이 점차 그들 특유의 민족주의감정을 내세워 독립을 요구할 기미여서 고르바초프를 긴장시키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러시아공화국이 독립을 요구할때 소련의 지도층은 물론 소련내 다른 공화국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커다란 이유가 있다. 소련 전체인구의 절반이상이 러시아인이라는 사정 이외에 소련경제가 거의 러시아공화국 경제에 의존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련 전체 전력의 63%,석유의 91%,천연가스의 75%,석탄의 55%,철의 58%,쇠고기의 50%,밀의 48%,종이의 85%,시멘트의 65%를 러시아공화국이 생산하다는 통계수치로 소비에트연방에서 차지하는 러시아공화국의 절대적 영향력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이 러시아공화국 주민들이 볼셰비키혁명이래 소련 역대지도자들의 대국 야심 때문에 괜한 희생을 해 왔다는 그 오랜 불만을 서서이 터뜨리고 있어 고르바초프정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타임지의 이 특집기사는 작고한 핵물리학자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와 함께 소련 인민대표회의내 진보적 세력을 주도해온 역사학자 유리 아파나시에프(55)가 기고한 「소련제국이 와해돼야 할 이유」라는 논문도 다루고 있는데 아파나시에프는 이 논문에서 고르바초프가 추진해온 페레스트로이카(개혁)는 물론 고르바초프라는 인물에 대한 소련 국민들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아파나시에프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소련사회가 안고 있는 근원적 문제들을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으며 페레스트로이카가 진정 의미하는 개념조차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타임지의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라는 이 특집기사는 결론부분에서 『미래 역사가들이 20세기의 소련제국을 회고할 때 가질 의문은 소련제국이 왜 붕괴했는가라는 점보다 소련제국이 어떻게 그렇듯 오래 버틸 수 있었느냐는 점에 모아질 것』이라고 지적,소비에트연방의 앞날을 매우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 “절반의 성공” 아시아계 미 이민/타임지 「낙원의 이방인들」특집

    ◎소득 백인 앞질러 경제적으론 풍족/인종적 반감 확산… 정신적 뿌리 흔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3월5일자에서 「낙원의 이방인들」(Strangers in Paradise)이란 제목으로 미국속의 아시아계 이민들의 얘기를 특집으로 다루면서 이들 아시아계 이민들이 미국에서 찾으려 한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타임지는 그것이 경제적 부였다면 그들은 분명 찾고자 했던 것을 얻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만약 「낙원」이라면 미국은 과연 이들 아시아계 이민들에게 낙원이 될 수 있을까를 반문하고 있다. 미국의 서부해안지역은 전체적으로 조금씩 변모하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의 꿈을 좇아 미국으로 이민오는 아시아계 이민들이 미 서부지역에 밀집해 있어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10명에 1명꼴로 아시아계를 만나게 되며 이들과 함께 건너온 아시아의 문물이 점차 미국내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아시아계 이민들은 대부분 타고난 근면성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는 지난해 미국내 아시아계 이민들이 1가구당 평균 2만3천6백71달러의 소득으로 백인들의 2만1천1백달러를 앞질러 고소득을 올렸다는 통계만 봐도 잘 알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거두는 경제적 성공이 커질수록 아시아계 이민들에 대한 반감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지난 82년 한 중국계의 이민이 디트로이트에서 일본인으로 오인돼 살해된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에는 지금 막대한 대미무역흑자를 올리고 있는 일본에의 적대감이 전체 아시아계 이민들을 향한 증오로 확산되고 있다고 타임지는 지적했다. 또 아시아계 문화충격을 극복하고 미국사회에 쉽게 동화하기 힘들다는 점,인종차별과 인종적 시기심 등 아시아계 이민들이 겪어야 하는 불평등은 곳곳에 산재해있다. 아시아계 이민들중에서도 특히 한국계는 가장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고 따라서 부의 성취도 가장 빨리 이루는 민족으로 돼있다. 그러나 이들은 너무 많은 시간을 일에만 매달려 있음으로써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으며 이로 인해 많은 한국계 이민의 자녀들이 한국인이면서도 스스로 한국인이기를 원치 않는 등 귀속감과 자긍심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쓰고있다. 부의 성취동기라는 측면에서만 볼 때 미국은 분명히 이들 아시아계 이민들에게 「낙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인종차별 등 곳곳에 도사린 불평등의 요소들은 미국을 「너무도 문제가 많은 불완전한 낙원」으로 만들고 있다. 타임지는 결론적으로 이들 아시아계 이민들은 미국에서 과연 무엇을 찾을 것인가. 과연 무엇을 위해 미국에 오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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