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포그래픽 디자이너 안상수 교수 작품전
‘촌놈’이 출세했다.타이포그래픽(typographic·서체)디자이너 안상수(50·홍익대 시각디자인과)교수 말이다.스스로 말하듯이 “충청도 촌 것이 순수미술도 아니고 ‘그림에 붙은 껌’정도로 여기던 한글 몇자로,디자이너로서는 처음으로 로댕갤러리의 높은 문턱을 넘어선 것”이다.그러나 전시회장에 들어서면 이같은 본인의 말은 겸양에 불과했음이 여지없이 드러난다.아울러 월드컵을 맞아 한국을 찾은 세계인에게 한글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보여주겠다는 전시 기획도 참으로 시의적절하다는 인상을 준다.
안교수는 제 얼굴을 한글 자·모음으로 형상화한 문자초상(타이포 포트레이트·typo-portrait)으로 관객과 가볍게 눈인사를 한다.전시실 안쪽으로 한발 옮기면,‘한글.만다라’(1998년작·한글날 기념 포스터)가 침을 꿀꺽 삼키게만든다.한글을 그릇 삼아 우주의 진리를 표현한 만다라를그려낸 것이다.
한쪽 벽에서 무뚝뚝한 듯하면서도 조용히 웃는 관음보살은 또 어떤가.한글 모음 ‘ㅡ’와 ‘ㅣ’의 조화에 웃음이 절로 난다.자·모음을 문살로활용해 꾸민 대문(大門)과,‘ㅁ’자를 3차 공간으로 끌어내 붉은 주련(한국 전통가옥과 사찰 기둥에 그림이나 글씨를 새겨넣어 붙인 목판)을건 대형 설치물에서도 그 감각에 놀라게 된다.특히 그가쓴 글귀들은 성철스님 등이 깨달음을 얻은 후 읊은 ‘게송’으로,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해탈의 언어를 역시 똑같이 군더더기 없는 서체로 그려냈다.영문 알파벳 첫자인 ‘a’가 우연히 연결된 곳이 한글의 마지막 자음인 ‘ㅎ’이라는 상상력은,예술적이라기보다 영어의 홍수 속에서 사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직관이다.안교수는 이렇게 한글로조형한 포스터 40여점과 탁본,사진,오브제 등으로 관객을마중하고 있었다.
“77년 홍익대 시각미술학과를 졸업한 것을 감안하면 이번 전시가 공교롭게도 디자인 경력 25년을 기념하는 자리가 됐습니다.”
흰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짧은 머리를 쓸어넘기며,키 크고 다소 싱겁게 생긴 안 교수는 이번 전시를 과거에 대한 결산이자 미래를 위한 시작이라고 말한다.홍익대 학보사 편집장을 거쳐 광고대행사(LG애드)에서 5년간 근무한 뒤,잡지 ‘마당’‘멋’등에서 일한 경험이 토양이 됐다.그 시절 언어는 별이 되어 그의 마음과 머리와 손에 떨어졌다.최근 그는 시인이 되거나,행위예술가로 변신하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하다.“순수와 응용 사이에는 거리가 없다.”는 깨달음을 강조한다.
안 교수는 컴퓨터를 만난 후로 ‘안상수체’같은 독창적인 한글 서체를 만들고 이를 포스터,광고,간판,북디자인,신문편집 등에서 응용해 사용할 수 있었다.그러나 요즘은직접 쓰고 그리는 손작업을 더 좋아한다.게다가 그를 더욱 들뜨게 하는 것은 일주일 뒤에 체코에서,9월에는 중국에서 현지 학생들과 만난다는 사실이다.한글을 모르는 그 나라 학생들을 상대로 안교수는 무슨 꿍꿍이셈을 하고 있을까.로댕갤러리 7월21일까지.관람료 4000원.(02)2259-7781.
문소영기자 sym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