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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공산독재 막 내렸다(옐친의 소련:1)

    ◎공산당사 폐쇄·레닌동상 철거의 대변혁/쿠데타 꺾은 「시민파워」업고 개혁 줄달음 소련의 공산주의시대가 마침내 「비극적」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지난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후 마르크스­레닌의 공산주의실험이 실패로 끝나고 마르크스­레닌이즘은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공산당을 해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소련관영 타스통신도 소련최고회의 당기구는 공산당활동의 종식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지난 70여년간 소련을 지배해온 공산주의체제가 붕괴되고 추악한 역사의 한장이 끝나고 있는 것이다.소련 공산주의체제의 붕괴는 「시민혁명」의 승리이다.고르바초프대통령은 쿠데타가 실패한후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나는 사회주의자이며 결코 공산당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그러나 그는 공산당의 해체를 스스로 선언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소련의 피플파워는 보수파의 상징인 공산당을 거부했다.소련의 피플파워는 옐친시대의 개막을 예고하고 있다.옐친은 강경보수파의 쿠데타를 저지시킨 시민혁명의 구심점이었다.옐친은 이미 공산당을 탈당했었고 러시아공화국내에서의 공산당 활동을 금지시킨바 있다. 고르바초프의 공산당해체선언이전에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이미 소련사회에서 소멸해가고 있었다.공산당원들조차도 마르크스­레닌주의 깃발을 휘날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쿠데타이후 공산주의의 종말을 고하는 2개의 사건이 있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한뒤 지난 74년간 소련공산체제 수호의 선봉을 맡았던 KGB의 창설자 제르진스키의 동상이 끌어 내려졌다.크렘린궁에서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KGB본부건물앞 광장에 버티고 서있던 제르진스키의 동상이 끌어 내려지는 동안 KGB직원들은 창문을 통해 속수무책으로 그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공포의 권부였던 KGB건물앞에 동상의 기단만 덩그랗게 남은 광장을 바라보며 모스크바시민들은 말할수 없는 감회에 젖는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두 장면의 주역은 소련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아니라 러시아공화국 대통령 보리스 옐친이었다. 고르바초프의 비극은 바로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데서 시작한다.「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라는 시대의 유행어들을 만들어내며 스탈린주의 통치시대를 끝내고 변화의 물꼬를 튼 그였지만 그 변혁의 파장은 그의 사고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의 희망은 스탈린주의 교조적 마르크스주의를 버리고 진정한 사회주의를 만들어가겠다는 것이지만 소련국민들의 가슴속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은 이미 깨졌고 공산주의는 조롱거리로 전락돼 있었다.사회주의체제내에서의 개혁을 고집하는 그가 소 국민들의 눈에는 우유부단하고 결단력 없는 지도자로밖에 비쳐지지 않았다. 이번 쿠데타를 물리친 가장 위대한 힘은 바로 모스크바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저항정신이었다.맨손으로 쿠데타군의 탱크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자유에 대한 그들의 욕구가 얼마나 진한가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더이상 공산독재의 노예가 아니었으며 그들이 공산독재 부활기도를 물리친것은 일종의 시민혁명이었다. 옐친은 이러한 성숙한 시민의식의 흐름을 읽고 과감히 그들의 앞장에 섰다는 점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비치고 있다. 쿠데타세력은 물러갔지만 돈이 있어도 살 물건이 없는 경제,와해직전에 놓인 연방체제등 이전의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있는게 소련의 현실이다.러시아민족주의·반공산주의 히스테리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경제난이 계속되고 민족간의 충돌이 재발되면 시민들은 또다시 불평을 터뜨릴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옐친의 주장대로 시장화 5백일 계획이라는 급진경제개혁안이 채택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동서냉전구도의 청산,동구의 대변혁등 외부에서의 찬사말고도 고르바초프는 분명 암울하던 구시대를 청산하고 소련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어준 위대한 지도자였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그러나 이제 그가 쿠데타의 충격에서 벗어나 이전의 자신에 찬 모습을 다시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뚜렷한 전망을 삼가고 있다.그는 공산주의자임을 헛소리같이 되뇌이고 있지만 어느덧 고르비의 시대는 공산당독재시대와 함께 막을 내리고 있다.소련에서는 이제 옐친시대가 개막되고 있는 것이다.
  • 고르비,공산당 해체 선언/인테르팍스통신 보도

    ◎당 서기장직도 사임/연방최고회의 당기구도 활동종료 독자결정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특약】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24일 소련공산당 서기장직을 사임하고 공산당을 해체할 예정이라고 중립계 인테르팍스통신이 보도했다. 소련 정부의 최고위층 동향보도에 강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이 통신은 이 기사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의 홍보비서인 비탈리 이그나텐코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고 말했으며 고르바초프가 당지도부와 회담중이라고 덧붙였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 대변인은 고르바초프가 옐친에게 이같은 계획을 전한바 없다고 밝혔다.미국무성과 로만 포파뒤크 백악관대변인 역시 이 보도를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당 서기장 직분으로서는 공산당의 해체를 명령할 수 없으나 연방대통령으로서 어느 정치단체라도 해산을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한편 연방최고회의의 당기구가 24일 스스로 자신들의 활동을 종료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이 기구의 이같은 결정은소련 전역에 걸쳐 공산당의 활동을 제한하는 각종 조치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취해졌다. 발트해 연안의 리투아니아공화국과 라트비아공화국이 공산당을 불법화한데 이어 에스토니아공화국·몰다비아공화국·그루지야공화국이 24일 공산당이 공화국 영토내에서 활동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특약】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24일 공산당 서기장직에서 사임했다고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의 보좌관들이 밝혔다.
  • “승리” 외치며 붉은광장서 촛불축제/환호의 물결… 모스크바 표정

    ◎“KGB 없애라”… 창설자 동상을 부숴/“이번 쿠데타는 3번째 기도” 옐친 주장 ○…10만명이상의 러시아인들은 22일 모스크바에서 쿠데타 저지를 축하하는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러시아 최고회의빌딩 앞에서 열린 이날 집회에서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은 쿠데타의 실패는 피플파워의 승리라고 선언.러시아공화국은 이날 70년간의 공산주의시대 종언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붉은색 공화국기를 러시아혁명 전의 백·청·적 3색기로 공식 교체했다. 모스크바시민들은 최고회의 빌딩앞에서의 집회를 마치고 붉은 광장으로 행진,이곳에서 다시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이들은 「옐친」과 「러시아」를 연호하며 강경보수파들의 쿠데타 저지를 축하했다. ○…약5천명의 군중들이 22일 모스크바에 있는 KGB 본부앞 광장에 집결,반KGB 시위를 벌이고 KGB를 창설한 제르친스키 동상을 철거하기 시작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 ○“옐친에 노벨평화상을” ○…유럽의회의 기독민주그룹 지도자는 22일 소련 러시아공화국의 보리스 옐친대통령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할 것을 제안했다. 독일의 에곤 클렙슈씨는 유럽의회지도자들의 비상회의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을 실각시키기 위한 3일간의 쿠데타에 저항을 선도한데 대해 옐친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동유럽에서 강경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고 평화적 혁명을 이루는데 기여한 정책으로 이미 노벨평화상을 받은바 있다. ○…소련정부 기관지 이즈베스티야의 기자들은 22일 동지 편집국장 니콜라이 예피모프가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한 쿠데타사건에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그를 파면하기로 결의했다고 이즈베스티야의 막심 유신기자가 말했다. 유신기자는 이즈베스티야의 기자들이 이날 총회에서 또한 앞으로는 이 신문의 1면 머리에 있는 마르크스주의 슬로건인 「전세계의 노동자들이여,단결하라」라는 문구를 삭제하기로 결의했다고 전했다. 그는 AFP통신에 기자총회는 이날 「예피모프가 쿠데타에 기여한 인물」이라는 이유로 그를 파면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타스,사전에 알았었다○…소련 관영 타스통신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실각되기 하루전인 지난 18일 이미 쿠데타가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이 통신사의 한 간부가 말한 것으로 모스크바의 네사비시마야 가제타지가 보도. 이 신문은 텔레팍스를 통해 배포된 호외판을 통해 타스통신의 한 간부가 겐나디야나예프 부통령의 성명서 전문과,8인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지난 17∼18일 밤 타스통신에 소개됐음을 밝혔다고 전했다.이 성명은 지난 19일 아침 공개됐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의 쿠데타저항본부인 의사당을 지키는 군인및 민간들은 쿠데타 실패 소식에도 불구하고 21일 저녁 여전히 경계를 펴고 있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축출하려다 실패한 이른바 「쿠데타 음모자들」은 벽에 세워놓고 총살을 해야 할 것이라고 콘스탄틴 코베츠 러시아공화국 국방장관이 21일 밝혔다. 지난 20일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 의해 국방장관에 임명된 그는 이날 러시아공화국 의사당 복도에 집결해 있던 일단의 기자들에게 이같이 밝히면서『옐친 대통령이 나에게 장관직을 제의했을 때 내가 수락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만약 쿠데타 주동자들이 그들의 음모가 실패해 체포될 경우 이들을 처형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복귀와 쿠데타 주동자들의 체포를 충심으로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지난 19일 실각되기 이전에 이미 2건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고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21일 공개. 옐친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공화국 의회에서 대의원들에게 첫번째 쿠데타 음모는 예두아르트 세바르드나제 전외무장관이 지난해 12월 장관직 사퇴연설을 통해 소련에 독재가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성 발언으로 실패했으며 두번째 쿠데타는 발렌틴 파블로프 총리가 소련 최고회의에 대해 자신에게 특별 권한을 부여해 줄 것을 설득했던지 난 6월에 있었다고 말했다.
  • 고르비,지도부 개편/옐친 연정제의… 오늘 요직인선

    ◎새국방·KGB의장·내무 임명/“공산당도 개혁세력으로 교체”/고르비 회견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모스크바로 돌아와 집무를 시작한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은 22일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과 함께 공석이 된 지도부의 요직인선에 착수,1차로 국방장관에 미하일 모이세예프참모총장을 임명했다.또 국가보안위원회(KGB)의장에 레오니드 셰바르신을,내무장관엔 바실리 투르신을 발령했다.이에앞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국방차관에 보리스 파안코프대장을 임명했는데 타스통신은 쿠데타 주동자의 체포로 자리가 빈 일부 핵심요직의 임명이 「임시적」인 것이라고 전했다. 고르바초프는 이날 모스크바로 귀환한 뒤 처음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공산당안의 반동세력을 몰아내고 개혁지지세력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정변을 계기로 급부상한 옐친러시아공대통령은 보수파 제거에 본격 착수함으로써 자신의 세력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옐친대통령은 그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23일 만나 정부구성문제를 비롯한 「대단히중요한」사안들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그는 3인의 요직인사와 관련,『앞으로 러시아공화국이 연방정부구성에 보다 많이 대표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그 이유는 어려운 시기에 민주주의를 수호한 것이 러시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옐친은 또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연금돼있었던 크리미아휴양지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온 직후 그에게 자신의 지지세력들과 연정을 구성할 것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모스크바 라디오방송이 보도했다. 이에앞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모스크바공항에서 크렘린관저로 돌아온 직후 발표한 첫 성명에서 『나를 축출하려던 쿠데타가 실패한 것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의 승리』라고 강조하고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소련은 큰 재난을 겪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시 미국대통령은 그동안 주저해왔던 대소직접경제원조 제공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했고 유럽공동체(EC)와 일본등도 소련에 대한 지원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 고르비 복귀 소식이 반가운 예레멘코 소 대사대리

    ◎“소­한유대 모든 분야에서 가속화확신/콜레라핑계 고위회담 기피 우스운일” 『27년동안의 외교관생활중 가장 길고 어려웠던 사흘이었습니다.그동안 쿠데타에 맞선 소련국민들에게 지지와 성원을 보내준 한국정부와 국민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본국에서 개혁에 반대하는 강경보수파들의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대통령직에 복귀한 22일 아침 주한소련대사관의 로엔그린 예레멘코대리대사(52)는 참으로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올레그 소콜로프대사가 본국에서 휴가중이었기 때문에 주한대사관의 총책임자로 누구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본국정세의 변화에 온갖 신경을 다 썼기 때문이다. 그는 『타스통신을 통해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그땐 대통령이 체포됐는지 어떤지 몰라 불안했고 매우 슬펐다』면서 『이제 국민들이 쿠데타를 물리친 만큼 소련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소련의 장래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가 여기서 끝나면 안된다.개혁은 시작하면 계속해야하는 것이다.자전거가 굴러가지 않으면 쓰러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고르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으로서 존경한다.소련의 민주화를 추진하는데 교량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실세로 떠오르고 있는 것처럼 외신은 전하는데. 『옐친이 쿠데타기간중 국민에게 반쿠데타를 직접 호소한 것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같다.그도 이미 개혁의 맛을 봤으며 연방대통령(고르비지칭)밑의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일 뿐이다. ­한소관계는 우리의 북방정책추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소관계의 장래를 어떻게 내다보는지. 『기존의 유대관계가 계속 진전할 것으로 낙관하며 특히 정치·사회·문화·경제 등 모든 분야의 협력이 더욱 가속화되기를 희망한다』 ­북한에 대해 매우 잘 아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난 57년부터 8년동안 세차례에 걸쳐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에 2등·1등서기관과 참사관으로 근무했다.지난 88년11월엔 셰바르드나제 당시외무장관의 북한 공식방문준비단으로 평양에서 김일성주석과도 만났다.어제 신문에서 북한측이 남북고위급회담을 한국의 콜레라비상때문에 판문점에서 열자고 제의를 했다는 뉴스를 봤는데 우스운 얘기다』 소련 모스크바국립대 동양대학에서 우리말을 익힌뒤 64년까지 소련과학아카데미에서 몇년동안 근무하다 외무부에 들어온 예레멘코대사대리는 모스크바에있는 부인과 역시 모스크바의 한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외딸(34)과 떨어져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3일천하」로 끝난 쿠데타의 부담을 던 탓인지 활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소 대사관·상의 활기/항공사엔 모스크바행 예약 쇄도 ○…서울 용산구 한남동 262 청산빌딩 2층에 자리잡은 소련대사관은 예레멘코대리대사가 상오8시57분쯤 출근한데 이어 유학생·기업인 등의 비자발급도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강남구 삼성동159 공항터미널 6층에 있는 소련연방상공회의소 주한대표부(소장 발레리 리자로프)는 이날 소련인 직원 5명과 한국인 직원 1명이 평소보다한시간 빠른 상오8시쯤 출근해 본국에서 전해오는 텔렉스와 타스통신 등을 지켜보며 쿠데타실패에 안도하는 표정. ○…이 건물1층의 소련국영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 서울지점(지점장 파블리오크 비탈리)도 비행기 좌석을 예약하기 위해 걸려오는 문의전화를 바쁘게 받는등 정상업무에 들어갔다. 예약과 직원 오모양(25)은 『지난 20일과 21일 이틀동안 비행기 이륙이 가능한지,또는 예약을 취소할수 있는지에 대해 문의가 쇄도했으나 오늘은 상오에만 20여통의 비행기 좌석 예약문의가 들어와 바빴다』고 말했다.
  • 소 쿠데타 61시간만에 왜 실패했나

    ◎“공산회귀는 불용”… 국민이 등돌렸다/명분없는 거사에 군수뇌부 적전분열/경원동결등 서방의 강경대응도 큰 몫 전세계에 충격을 던진 소련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이유로는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강렬한 저항 ▲저항선봉장으로 나선 옐친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 ▲군장악의 실패등을 들수 있으며 그외에 간접적인 원인으로는 소련에 대한 서방세계의 강력한 압력도 들수 있다.그러나 한마디로 말한다면 소련국민들의 호응을 전혀 받지 못한 것이 쿠데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그것은 또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국민들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모하게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뜻이기도 하다. 3일간의 짧은 기간동안이긴 하지만 탱크로 무고한 시민을 깔아뭉개는 무자비한 무력탄압 앞에서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시위금지령과 통금령을 무시하고 20일 하룻동안에만 80만에 가까운 시민들이 반쿠데타 시위를 벌이는 한편 육탄으로 탱크를 저지한 소련국민들의 용기는 진정 놀라운 것이었다.과거 수차례에걸친 소련에서의 정변때마다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소련국민들이 이처럼 용기있게 변한 것은 바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개방정책이 소련국민들의 의식수준을 크게 향상시킨 결과라고 할수 있다.따라서 이번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것은 결국 쿠데타 주역들이 고르바초프의 신병은 체포할수 있었지만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이 국민들의 가슴속에 불어넣은 자유정신마저 가둬둘수는 없었던데 따른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지난 3일간의 쿠데타 진행과정을 지켜보면 이번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아무 계획도 없이 『일단 일부터 일으키고 보자』는 형태로 상황이 벌어졌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이들은 그동안 누려오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지난 20일 체결될 예정이었던 신연방조약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저지해야겠다는 초조감에서 쿠데타 성패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군장악과 국민동향,지도부내의 결속등을 사전에 치밀하게 점검하지 못한 상태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처럼 사전준비가 미비된 상태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과거처럼 무관심으로 나타나지 않고 적극적인 저항으로 나타나자 비상위는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쿠데타의 절대적 동조세력으로 생각했던 공산당이 중앙위원회 성명을 통해 쿠데타를 비난하고 나선 것은 비상위에 결정적인 정신적 타격이 된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타격은 비상위내부의 적전분열로 나타났다. 쿠데타 발생 이틀이 안돼 비상위의 8인 멤버중 3명이 『건강상의 이유로』사임했다는 것이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도부내의 분열과 함께 군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 것도 쿠데타 실패의 중요한 원인이다.비상위는 당초 군부내에 냉전종식에 따른 군위상 축소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판단,일단 쿠데타가 일어나면 군 대다수가 이에 동조할 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물론 군부가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자 평소 「국민의 군」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던 소련군은 『우리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돌릴수는 없다』는 쪽으로 급선회함으로써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됐다. 이번 쿠데타에서 서방이 보인 대응도 쿠데타실패를 간접적으로 도운 한 원인이 됐다고 할수 있다.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이 전해지자 서방측은 한결같이 고르바초프의 복귀를 요구하며 서방의 경제지원을 갈구하는 소련에의 원조를 동결시켰다.서방세계는 또 반쿠데타 저항세력의 선봉에 선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보냄으로써 옐친으로 하여금 국민저항을 극대화할수 있도록 했다. 결국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조속한 개혁의 완결이란 점을 무시하고 오히려 개혁을 지연내지는 후퇴시키는 쪽으로 기치를 들고 시작됐다는 점에서 소련에서의 쿠데타는 처음부터 실패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고 국민들의 진정한 바람 앞에선 무력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보여준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할수 있다. ◎“3일천하” 쿠데타 일지/비상위 구성→불복선언→서방 경원동결→유혈충동→비상위 분열→병력 철수→고르비 귀환 소련의 강경보수파가 21일 소련역사상 처음 「월요정변」으로 기록될군사쿠데타를 야기한지 3일만에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해체됨으로써 이들의 꿈은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모스크바정변 소식이 전해진것은 19일 상오4시.소련전역에 6개월시한의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언론과 출판물의 검열이 시작됐다.방송국들도 쿠데타군에 접수되어 방송이 통제됐다. 타스통신은 크리미아반도 휴양지에서 휴가중이던 고르바초프가 실각되었다고 전하면서 대통령직을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이 승계하고 8인으로 구성된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전권을 인수했다고 보도했다.그러나 기세 좋게 몰아 붙이던 쿠데타세력들은 옐친의 시민 불복종운동촉구와 총파업선동으로 시작부터 예상치않던 장애물에 직면했다. 보수파들에 의해 야기된 쿠데타가 시련을 맞기 시작한것은 정변이 발생한지 8시간만인 19일 정오.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포고령을 무효라고 선언하며 반쿠데타 봉기를 부추기자 모스크바 시민들은 이미 모스크바시내에 진입했던 중무장 소련군과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며 강력히 저항했다.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휴가를 중단하고 긴급대책회의를 연뒤 기자회견을 갖고 하오5시 소련의 군사쿠데타를 강력히 비난했으며 대소원조를 보류할것임을 시사했다. 이튿날 쿠데타세력들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상오6시 일류신76 수송기 60대를 동원,모스크바로의 병력을 증강했으나 이에 맞서는 소련국민들의 시위는 세를 더해갔다. 그후 러시아공내에 주둔하고 있던 무장병력들은 러시아공 의사당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으며 21일 새벽 급기야 유혈충돌로 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처음의 상황과는 달리 쿠데타세력이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주춤거리고 서방세계의 외압이 가중되는 가운데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이날 최후의 「히든카드」를 내보였다. 군내 강경파인 모이셰프군참모총장이 전면에 나서고 그로모프중장(전아프가니스탄 주둔군사령관)과 바렌니코프 지상군총사령관이 실세로 급부상한 것이 그것이다. 쿠데타 지도자들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듯 「최후의 항전」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으며 무력충돌도 불사하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뒤 10시간만에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듯 강경입장을 누그러뜨리고 고르바초프와의 면담을 시도했다. 루키아노프 소연방 최고회의의장이 크림반도로 고르바초프를 만나기 위해 떠났으며 소련 국방부는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역에 배치됐던 병력들에 대해 철수명령을 내렸다.이어 모든 포고령이 무효화되고 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 귀환길에 오름으로써 보수파들이 주연한 「쿠데타」드라마는 61시간만에 막을 내렸다.
  • 소 쿠데타 실패/고르비 대통령직 복귀

    ◎비상위 8인 체포,곧 재판회부/군 철수… 통금등 포고령 무효화/모스크바 이기동특파원/옐친 급부상… 오늘 긴급간부회의 소집 유혈사태까지 빚으며 내란위기로 치닫던 소련의 반개혁 쿠데타가 실패로 끝났다.이에따라 크리미아휴양지에서 연금상태에 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하오 모스크바로 돌아왔으며 연방최고회의는 그의 대통령직을 복권시켰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쿠데타 주도세력인 8인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20일 해산됐고 8인위원들도 대부분 체포되거나 도피한 것으로 전해졌다.이들은 모두 재판에 회부될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와 발트3국을 비롯한 비상사태선포지역에 배치됐던 모든 연방군 병력도 이날 철수를 시작했으며 모스크바를 비롯한 소련 전역은 축제분위기를 이뤘다. 연방간부회의는 22일 긴급회의를 열고 향후 정치일정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쿠데타의 실패에 따라 반쿠데타 선봉에 섰던 옐친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강화됐다. 【모스크바 AP 연합 특약】 고르바초프는 21일 모스크바로귀경길에 올랐다고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보좌관이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연금상태에 있던 크리미아반도의 휴양지로부터 루키야노프 연방최고회의 의장등과 함께 모스크바로 떠났다. 【모스크바 AP 연합】 소련 연방최고회의 지도자들은 21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축출기도 쿠데타를 비난했으며 쿠데타 지도자들에 의해 내려진 모든 포고령을무효화했다고 연방최고회의의 유리 카리아트킨 대의원이 말했다. 그는 연방최고회의가 모스크바의 야간통행금지령과 독립적인 언론매체의 보도금지령 등 쿠데타 주도세력들이 내렸던 모든 포고령을 무효화했다고 덧붙였다. 【모스크바 타스 AFP 연합】 소련 국방부는 모스크바를 비롯,비상사태가 선포된지역에 배치된 모든 연방군 병력에 대해 철수를 명령했다고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21일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국방부가 비상사태 선포 지역으로부터 모든 부대와 분견대 병력의철수를 이행토록 하는 결정을 채택했다고 전했다. ◎TV 정규방송/언론검열 해제 【모스크바 AP 연합】 쿠데타 세력들이 모스크바를 떠남에 따라 쿠데타발생이후 방송이 중단됐던 소련의 TV와 라디오가 21일 방송을 재개했으며 관영 타스통신은 독립적인 출판물에 대해 내려졌던 출판금지령이 해제되고 있다고 전했다.
  • 빗속의 모스크바 온통 환호물결/이기동특파원 「대반전 현장」서 급전

    ◎“시민의 승리… 동조세력 처벌 안해”/옐친/검열중단에 “고르비 축출항의”기사/프라우다/수㎞ 탱크행렬 사라지자 시민들 안도 ○…소련군 탱크들이 물러가고 쿠데타를 주도한 8인이 비행기로 도주 혹은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21일 하오 러시아공화국 정부청사앞 광장에는 여전히 10여만명의 시민들이 운집. 정문앞에 모인 사람들은 현관위에 설치된 대형확성기를 통해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대의원들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소련군 탱크에 깔려 죽은 사람들을 국가유공자로 간주해 그 가족들에게 공화국 정부에서 연금을 주기로 결정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수많은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 또 쿠데타 세력들의 명령에 따라 모스크바에 진주했던 군인들을 비롯,KGB·경찰 등 모든 쿠데타 동조세력들에 대해 일체의 처벌도 하지 않겠다는 옐친의 포고령도 발표. ○…정부청사안 프레스센터로 들어가는 정문입구에서는 군복을 차려입고 각목들을 든 러시아시민군들이 출입자들을 일일이 체크했다.기자가 프레스 카드를 내보이고 출입을 요청하자 가방을 열어소지품을 일일이 검사한 뒤에야 들여보내 주었다.이런 절차를 3번이나 거친뒤에야 프레스센터내 공보책임자에게 안내됐다. 그러나 이 공보책임자는 『모든 상황이 아직 유동적이어서 2∼3일 뒤에나 정리된 정보들을 내놓을 수 있다』면서 일체의 코멘트를 피했다. 청사구내와 뒷마당에는 간밤의 긴장을 말해주는 잔해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수백개가 됨직한 보드카 빈병들이 흩어져 있고 천막·음식찌꺼기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21일 하오2시쯤 모스크바 남서쪽 외곽도로에는 병영으로 복귀하는 탱크 수백대가 수㎞에 걸쳐 목격됐다.하오4시가 되자 철수가 완료된듯 시가지에서 쿠데타군의 탱크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러시아공 정부청사로 가는 칼리닌가 주변에는 옐친지지 탱크들이 백·청·적 3색의 러시아국기를 당당히 내걸고 서 있었다.탱크병들은 시민들이 건네준 화환들에 싸여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하오들어 비도 그치고 칼리닌 다리위에는 바리케이드도 많이 치워졌으며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긴장감이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21일 쿠데타 발생 이후 처음으로 언론검열을 중단하라는 호소문과 함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축출에 항의하는 상당량의 기사를 게재하는등 크렘린 당국과의 전통적인 유대를 단절하는 등 이례적인 태도를 취해 눈길. 쿠데타 지도부에 의해 발행이 허용된 7개 매체들 가운데 하나인 프라우다지는 1면에는 쿠데타 지도부가 발표한 통금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시위에 대한 기사를 동시에 게재. 프라우다는 이와함께 강경파들의 권력장악에 대한 항의를 호소하는 옐친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공정부대 요원들이 러시아 정부청사에 집결하고 있다고 전언. 프라우다는 이어 고르바초프의 축출과 관련,런던과 파리,본,워싱턴등의 부정적인 반응을 게재해 외국의 비난을 무시한 관영 타스통신과는 대조적인 모습. ◎철수군인들 “우린 영원히 떠난다” ○…성바실대성당과 시청 등 모스크바 시내 중심가에 배치돼있던 소련군탱크 및 병력이 21일 대부분 철수해 고리키가의 차량통행이 재개되는 등 모스크바 시내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연도에 나온 시민들은 철수하는 군인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냈고 군인들도 『우리는 영원히 떠난다』고 말했다. ○…보리스 옐친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을 중심으로한 쿠데타반대세력들은 이들 「비상위」8인을 국법질서문란을 이유로 적법절차에 따라 재판에 회부할 것이 확실하다.옐친등 개혁주의자들은 이들이 일으킨 쿠데타를 「초헌법적이며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해온 이상 8인을 재판에 회부,장갑차와 탱크를 앞세운 「강제명령」만으로는 산적한 소련문제를 해결할수 없음을 전세계에 알릴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쿠데타반대세력의 중추역할을 한 러시아공의회 건물을 에워싼 채 시위군중들과 충돌,4명의 소련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소련군병사들에 대한 처벌은 없을 것 같다. 옐친은 이와관련,『이들은 상관의 명령에 복중했을 뿐』이라고 지적,『소련헌법을 준수한다면 처벌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소련 발트해연안의 에스토니아 공화국에 이어 라트비아 공화국도 21일 소련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고 인근 리투아니아 공화국 대변인이 말했다. 이 대변인은 현재 라트비아 공화국과 연결되는 모든 전화통화가 두절됐으며 라트비아 공화국 의회에 의해 의결된 이 독립선언은 리투아니아 공화국 자체의 통신망을 통해 전해졌다고 밝혔다.
  • 고르비는 어디서 무얼하나

    ◎크리미아서 안전히 휴식/비상위원/모스크바이송,연금상태/옐친측근 크리미아에서 여름휴가중 전격 실각된 고르바초프는 현재 어디에,어떤 상태에 있을까. 고르바초프의 신변과 관련,그가 축출됐음을 처음 알린 타스통신은 『고르바초프가 건강상의 이유로 대통령직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어 야나예프가 대통령직을 인수했다』고 밝혀 그의 신변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었다.그러나 그뒤로 전해진 보도나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그의 건강엔 이상이 없으며 그는 집권세력에 의해 모스크바로 이송,계속 연금상태에 놓여있는 것 같다. 그의 신변에 대해 이번에 쿠데타를 주도한 8인 비상위원의 한사람인 야나예프대통령대행은 『크리미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프바초프는 수년동안 너무 지쳤으며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할 뿐 더 이상의 자세한 것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그는 고르바초프의 신변에 큰 우려를 표시한 헬무트 콜 서독총리에 친서를 보내 『고르바초프는 극히 안전한 상태에 있으며 어떠한 위협도 받고 있지않다』고 안심시키고 있다.그러나 야나예프의 말처럼 고르바초프가 크리미아휴양지에서 어떤 위협도 받지않고 안전한 상태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또 『고르바초프가 건강을 회복한 뒤 대통령직에 복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한 것도 선무용 발언에 지나지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야나예프의 발언과는 달리 레닌그라드의 사프차크시장등은 그가 연금상태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사프차크시장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사임을 강요당했지만 이를 거부했기 때문에 크리미아휴양지 별장에서 연금돼 있다』고 말하고 쿠데타를 계획한 일원으로 보이는 인물이 휴가중인 고르바초프의 별장으로 찾아가 미리 준비한 사임문서에 서명토록 강요했었다고 그 내막을 폭로했다.러시아의 RIA통신은 그가 크리미아의 별장을 떠나 알려지지 않은 장소로 향했다고 보도하고 목격자의 말을 인용,그의 건강이 양호한 상태라고 전했다.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한 측근 소식통도 그가 지난 토요일밤 크림반도로부터 모스크바에 이송돼 강경파들로부터 대통령 권한을 포기한다는 문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받았으나 거부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한편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한 보좌관은 고르바초프가 지난 19일 군용기편으로 모스크바에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그의 소재확인과 관련,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은 고르바초프가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나야 하는지 의료검진을 받아야하며 고르바초프와 새로운 강경파지도부가 제3자와 대면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의 소재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연금돼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 반고르비 쿠데타를 보고/한승조 고려대교수·정박(특별기고)

    ◎“볼셰비키노선 회귀는 시대착오”/소 국민은 이미 자유·개방맛을 아는데… 타스통신은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건강상의 이유로 대통령직을 사임하였고 대통령의 권력은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이 승계했다고 지난 19일 제1보를 내보냈다.이것은 결코 정상적인 권력승계가 아니라 하나의 정변이라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명백하다. 앞으로 8인의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국정을 담당한다는데 그 면면을 보면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인하여 신변의 위협을 느껴온 구세대 공산당보수파가 군부,그리고 비밀경찰의 도움을 받아 쓸데없이 일으킨 작난인 것처럼 보인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에 전념해온 고르비정권의 중도하차는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온 일이었다.러시아혁명이 난지 74년,그동안에 저질렀던 이념적 오류와 정책적 과오,그리고 공산당독재의 적폐가 단시일내에 한사람의 지도자 힘으로 개혁될 것으로 기대할 수가 없다.고르비의 개혁노선은 공산당의 정치노선과 정반대되며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소련체제의 민주화,자본주의경제제도의 도입,대서방화해와 협력증진을 추진하려는 것이었다.70여년동안 안간힘을 다해 실시해오던 노선과는 정반대의 길로 가는 개혁노선이므로 순탄하기를 기대할 수가 없는 일이다.도리어 서두르면 서둘수록 개혁노력에 대한 반동도 거세질 수 밖에 없었다. 고르바초프정권은 그동안 주요세력으로부터 정반대의 압력을 받아 왔다.첫째 소련공산당이 추구해왔던 이념이나 정책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닫고 개혁을 보다 근본적으로,그리고 하루바삐 추진하려는 개혁세력의 압력이다.그런데 오늘의 공산당조직은 개혁을 방해해온 직업관료층,노멘클라투라들에 의하여 장악되어 있으므로 그 조직을 가지고 개혁노선의 성공을 기대하기가 어렵다.그러므로 공산당을 탈퇴하여 개혁적인 민주정당을 만든다음 선거를 통하여 집권해야겠다고 주장해 왔다.둘째는 소련공산당의 이념과 정책이 기본적으로 옳은 것이었지만 오늘에 와서 약간의 조정과 조완적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한다.그러나 소련체제의 붕괴나 변질을 초래하는 개혁은 용납할 수 없다는 보수파세력들의 반대압력이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초기에는 개혁주의세력과 손을 잡고 개혁을 추진하였다.그러나 실시하는 개혁마다 기대했던 성과보다는 예상하지 못했던 혼란과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고르비의 개혁의욕은 약화되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실제로 생필품부족·물가앙등·생산부진·실업의 증가로서 국민생활이 심각하게 위협받게 된데다가 연방공화국의 독립운동으로 소련의 체제와괴의 위협에 직면하였기 때문이다.또 무엇보다도 정권수호는 하고 볼 일이니 보수세력의 반발을 무마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그러다 보니 고르비는 개혁세력을 실망케하고 또 그들의 반발을 일으켜 양면협공의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르비개혁정책의 최고 두뇌이자 이론가인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가 공산당으로부터 출당을 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이것은 고르바초프가 발길질 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야코블레프는 8월16일 공산당지도부내의 스탈린공산주의자들이 모두 개혁파대표들을 당에서 제거할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11월에 열릴 제26차 당대회에서는 고르바초프대통령까지 당에서 밀어낼 것이라고 경고하였다.이것도 보수파들의 거사를 앞당기게 한 요인일 것이다. 현재 수백대의 탱크가 크렘린궁 근처에 집결해 있고 수천명의 군중이 항의시위를 하고있다.옐친은 보수파들의 비상사태선포를 불법이라고 단정하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복귀를 요구하는 총파업및 시민불복종운동을 촉구하였다.소련의 군부와 비밀경찰의 힘만으로도 쿠테타는 얼마든지 일으킬 수가 있다.그러나 그들이 정권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1964년 소련의 보수적인 당관료와 군부·비밀경찰이 흐루시초프를 권좌에서 몰아낸 다음 20년동안 브레즈네프를 정점으로 하는 노멘클라투라의 지배체제도 묶어둘 수가 있었다.그러나 이런일이 오늘날 소련에서 되풀이될 것같지가 않다.그 이유는 개방사회와 자유의 맛을 본 소련시민이 60년대나 70년대의 권위순종적이며 무지몽매한 정치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오늘날 소련의 최대문제는 첫째 경제난이고 둘째 연방해체의 경향이고 세째 민주화의 과제이다.그런데 보수파가 집권해서 해결할 수 있는 과업이 하나도 없다. 첫째 소련의 경제난은 외국의 원조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인데 소련의 군부정권이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는가.둘째 보수세력이 신연방조약을 없앤 다음에는 공화국의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무한정 국력을 마모하게 된다.셋째 소련을 가장 효과적으로 침체·멸망으로 몰고가는 요인이 공산당독재이다.그런데 그것을 유지하면서 누가 소련의 민주화를 인정해 주겠는가.또 소련이 다시 냉전정책으로 복귀한다고 해서 지금 지구상에서 소련을 무서워할 나라가 있을까.이런 부질없는 짓을 보수세력이 최후발악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이번 반고르비 쿠테타는 결국 소련의 민주·개혁세력을 내실있게 다져주고 반볼셰비키노선과 새 역사창조를 위한 대장정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것으로 나는 보고있다.
  • 소 비상위,옐친 체포령/쿠데타군 내부분열… 유혈충돌 위기

    ◎3개부대 옐친측 가담… 70여만 시민 시위/군부선 남부병력 모스크바로 대량 공수/“탱크부대 러시아공의회 진격” 옐친/모스크바 이기동특파원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축출하고 집권한 소련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쿠데타 이틀째인 20일 저항세력의 선봉장인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의 체포령을 내리는등 사태장악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러시아공화국관리들은 비상위가 흑해연안의 오데사항으로부터 일류신76 수송기 약60대로 병력을 모스크바로 공수,모스크바병력을 증강시켰다고 밝혔다. 그러나 모스크바에 배치된 소련군부대중 3개부대가 옐친진영에 가담한데 이어 수개 기계화사단이 쿠데타작전 참가를 거부하는등 쿠데타에 대한 불만표출과 함께 군부내의 분열가능성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또 이날 모스크바에서 15만명,레닌그라드에서 20만명,몰다비아공화국의 수도 키시니예프에서 40만명등 수많은 시민들이 비상위의 시위금지 포고령을 무시하고 고르바초프를 실각시킨 쿠데타에 항의하는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에따라 옐친 러시아공 대통령의 총파업 호소에 호응하는 시베리아 탄광지대에서의 파업돌입에 이어 쿠데타에 대한 저항이 더격렬해지면서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고 유혈충돌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한편 카자크공화국의 나자르바에프대통령과 레닌그라드 시의회는 이날 열린 임시회의에서 비상위의 모든 결정은 『무효』라고 선언했다. 소브차크 레닌그라드시장은 이날 시위에 나선 20만군중앞에서 레닌그라드로 향하던 2개의 소련군탱크행렬이 돌연 레닌그라드앞에서 진격을 중단했다고 밝혔으며 소련관영 타스통신도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이같은 사실은 소련군부내 일부계층에 쿠데타에 대한 극렬한 저항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이에 앞서 비상위는 레닌그라드와 발트3국으로 병력을 추가급파,언론사와 전화국등 공공건물을 장악하는 한편 총파업호소에 동조한 소련공정부대사령관 파벨 크라체프를 체포하는등 친고르바초프세력 제거작업에 나섰었다.
  • “모스크바 사태 파악하라” 긴급훈령

    ◎고르비 실각 하던 날… 궁·정가 움직임/하오에 급전 받고 긴급회의로 부산/대소관계·북방정책 파급영향 분석/외신보도에 촉각… 공식논평은 유보 ▷총리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대통령직 실각설」에 접한 총리실은 외신으로 들어온 「건강상의 이유」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외무부 등 관계부처에 긴급 지시를 내리는 한편 고르바초프의 사임이 북방정책및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을 놓고 나름대로 분석에 열중하는 모습. 특히 오는 27일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을 앞둔 때여서 남북관계에 보다 신경을 쓰는 눈치. 총리실의 한 고위당국자는 『현재로선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으며 각종 외교채널을 통해 진상을 확인중』이라면서 『고르바초프의 사임으로 세계질서는 물론 우리의 북방정책에도 영향을 미칠게 분명하다』고 전망. 그는 이어 『남북고위급회담과 관련해 북한의 태도변화가 예상되긴 하나 우리가 먼저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면서 『현재로선 대북정책을 포함,모든 북방정책을 예정대로 밀고나간다는 것이 우리정부의 기본 방침』이라고 설명. ▷기획원◁ 경제기획원은 고르바초프의 실각설이 전해진 19일 하오 김인호 대외경제조정실장 주재로 긴급관계관 모임을 갖는등 사태파악에 부심. 그러나 소련의 정정소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데다 아직까지는 정부의 공식대응이 시기상조라고 보고 공식회의는 자제하는 듯한 분위기. 경제기획원의 한 관계자는 『사태의 실상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는 상태에서 정부가 공식입장을 밝히기 어려운게 아니냐』며 좀더 두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라고 짤막하게 언급. ▷외무부◁ 19일 하오1시쯤 소련 관영 타스통신을 통해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 사임 소식이 전해지자 외무부는 공로명 주소대사에게 긴급훈령을 내려 정확한 경위및 국내 정정을 파악,보고토록 지시하는 한편 이상옥장관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대응책마련에 착수하는 등 긴박한 모습. 이장관은 이날 시내 모음식점에서 점심식사도중 외신보고를 받고 곧바로 외무부로 돌아와 간부회의를 소집,고르바초프대통령 사임이 몰고올 한소관계변화 가능성,동북아를 비롯한 세계정세 변화,우리의 북방외교에 미칠 파장 등에 대한 다각적인 대응책을 논의. 유종하차관·장만순제1차관보·권령민구주국장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는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의 발표 문안을 놓고 분석작업을 벌였는데 내용 가운데 「추진중인 개혁정책 계속」「기존의 국제관계 유지」등의 문구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일단 한소간 기본관계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사태 추이를 지켜보기로 결론. ○통화량 평소의 4배 ▷체신부◁ 소련 현지소식을 알아보려는 기업체들의 호출로 한소간 직통회선 10회선을 포함한 국제전화망은 통화량이 평소의 4배 이상 증가하는 폭주상태를 빚고 있다. 19일 하오 현재 자동전화는 송·수신 모두 정상 소통이 되고 있으나 수동통화는 현지 연결이 안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 ◎한반도 영향·대응책 논의/노 대통령,보고 받아 노태우대통령은 19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실각등 소련사태와 관련,이날 낮 김종휘외교안보보좌관으로부터 1차보고를 받은데 이어 하오3시 대사 16명의 신임장을 수여한 자리에 배석한 이상옥외무부장관으로부터 종합보고를 받았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소련사태에 대한 일체의 공식언급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힌뒤 사견임을 전제,『이번 사태로 소련의 개혁·개방정책의 속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나 기본방향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소 시민들,탱크 올라가 거센 항의/긴박한 모스크바

    ◎이기동특파원 긴급 통화/쿠데타군전차 수십대,크렘린궁 완전포위/시위대,군트럭 공격… 공포 쏴 해산/“고르비 실각은 신연방조약이 원인”/일부시민은 “오히려 잘된 일” 담담한 표정 ○…19일 하오(현지시간) 현재 국방부건물을 비롯,크렘린궁 주변은 수십대의 탱크가 포진,반고르비 세력들이 사태를 거의 장악한 듯한 분위기이다. 구토자브스키가·고르키가등에서는 군장갑차들이 계속 크렘린궁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목격되고 있다. ○…고르비의 실각소식에 접한 모스크바 시민들은 『흘러간 옛노래가 다시 되풀이되고 있다』며 불안한 반응들이었다. 한시민은 『스탈린시대로 되돌아갈까 무섭다』고 말하며 허탈한 표정이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아침7시 첫 TV보도가 나온뒤 매시간 반복되는 TV·라디오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과학아카데미산하 동양학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이런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며 고르바초프가 아발킨·프리마코프같은 개혁인사들의 말만 믿고 보수파와의 관계에 소홀히 한것이 큰 실책이었다고 지적했다.○…타스통신의 추다데프기자는 보수파들이 거사를 결심하게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신연방조약 체결이라고 밝히고 이번 사태로 인해 발트해 3국의 독립운동은 물론 앞으로 연방공화국들의 주권은 크게 제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곳 관측통들은 대통령직 대행에 임명된 야나예프는 전혀 실권이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이다음 어떤 인물이 부각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부에서는 야조프국방장관,크류치코프 KGB의장등 군부 당·보안책임자들로 당분간 집단지도체제가 유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고르비 실각보도가 나온뒤 하오 현재 모스크바의 TV채널 5개중 제1채널인 중앙TV만 되풀이해서 비상위원회의 발표문들을 내보내고 있을뿐 나머지 채널은 모두 방송을 중단했다. ○…고르비의 신상에 대해선 피격설등 갖가지 추측이 나돌고 있으나 소련남쪽 모처에서 휴양중이라는 공식보도가 있었을뿐 전혀 오리무중인 상태이다. ○…한 소련외교관은 군부·강경보수파들의 권력탈취가 분명한 이상 일부 공화국에서 공화국 군·경찰들과 연방군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가장 큰 우려를 표시했다. 한편 일부 모스크바 시민들은 고르비의 실각에 대해 『그가 지난 6년동안 우리에게 가져다 준게 하나도 없다』며 환영을 하기도. 일리나(40)라는 한 주부는 『구호가 아니라 앞으로 「진짜 개혁」을 할 새 지도자가 나타난다면 나쁠 것도 없다』며 자신은 고르비에 대해 희망을 버린지가 이미 오래라고 말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 고르바초프 축출에 저항하는 총파업을 촉구한 직후 십여대의 탱크들이 19일 옐친의 본부인 러시아공화국 의사당건물 앞에 포진했다고 목격자들이 말했다. 러시아공화국의 이반 실라예프 총리는 의사당 안에서 기자들에게 『우리는 기관총도 탱크도 없으나 러시아 국민들과 모스크바 시민들이 우리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옐친 대통령은 고르바초프와 지난 18일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었으며 고르바초프는 당시 기분좋은 상태로 건강도 양호했다고 말했다.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크림반도에 있는 그의 별장에 연금되어 있다고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 대통령의 공보관이 19일 밝혔다. 보리스 옐친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접촉하려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소련의 모든 TV와 라디오 방송국은 쿠데타 음모자들의 수중에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러시아공 정부와 국민들에게 쿠데타 음모자들에게 불복종할 것을 명령할 것이라며 우파에 의한 이번 쿠데타를 논의하기 위해 다른 공화국 지도자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의 소련군이 19일 러시아공화국 의사당건물 부근에서 성난 시위대가 차량에 탑승한 병사들을 공격하자 이들을 해산하기 위해 공포를 쏘았다고 목격자들이 밝혔다. 약 60명의 소련군 병사들은 이날 두대의 군용트럭에 분승,시위대들이 의사당건물 인근 모스크바강의 한 교량에 설치한 바리케이드를 뚫으려 돌진했으며 성난 시위대가 이들 트럭을 공격하자 적어도 1명이상의 병사가 권총을 빼들어 공포탄을 쏜 것으로 알려졌다. 사상자에 대한 보고는 없었다. ○…새로 정권을 장악한 소련의 우익지도부는 19일일부 전국지 신문들을 제외한 모든 출판물에 대해 발간금지를 명령하는 포고령을 내렸다.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이날 자유성향의 이즈베스티야지만 제외하고 모두 우익계인 9개 신문들에 대해서는 별도 통고가 있을 때까지 계속 발간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검은 베레」란 속칭으로 유명한 소련 내무부소속 폭동진압 특수부대 병력이 이날 리투아니아공화국의 수도 빌나시에 있는 전화국을 장악하고 국제통신망을 차단했다고 현지 언론인들이 말했다. 이들 병력은 2대의 장갑차에 나눠타고 전화국 건물내로 돌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렘린궁 밖 마네즈광장에서는 19일 정오(한국시간 하오6시)경 1천여명의 시위군중들이 탱크를 둘러싼채 일부 시위대들은 탱크위로 올라가는 등 탱크의 길을 봉쇄했다고 목격자들이 밝혔다. 이 시위는 민주러시아운동(DRM)이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실각에 항의하며 일으킨 것으로서 일단의 병력수송차량과 트럭이 광장을 통과하려하자 시위대들이 모여들어 이를 가로막았다. 경찰이나 보안군은 보이지 않았으며 시위대들은 계속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다.
  • 충격·초조… 소 대사관 업무중단

    ◎“고르비 실각”소식… 주한 소 각기관 표정/“반신반의”… 사태파악 분주/소 상의/“잼버리 참가자 귀국 가능”/항공사 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이 전해진 19일 하오 용산구 한남동 261의1 주한 소련대사관은 7대의 일반 전화를 일체 받지 않는 등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며 본국에서의 소식만을 기다리는 등 매우 초조한 모습이었다. 때마침 소콜로프대사가 휴가로 본국에 가있는 상태여서 대사관 직원들은 더욱 안타까운 표정이다. 예레멘코공사는 이날 하오 기자들과 만나자 『아직 본국으로부터 어떠한 공식훈령도 접수되지 않았다』면서 『우리가 알고있는 것은 타스통신이 보도한 대통령의 사임사실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공식통보가 오면 한국 외무부를 통해 공식입장을 밝히겠다』고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대사관측은 국내 정세변화와는 관계없이 매주 월·화·목·금요일 상오9시30분부터 낮12시30분까지 해오던 비자발급업무를 정상적으로 해나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날만큼은 비자 업무를 일찍 중단하고 문을 닫았다. 이날 소련에 유학을 가기 위해 대사관에 비자신청을 하러온 김종미씨(26·여·고려대 노어노문학과졸)등 학생 3명은 『자칫 소련 국내정세의 급변으로 한소관계가 냉각돼 유학길마저 막힐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159 공항터미널 6층 소련연방상공회의소 주한대표사무소(소장 발레리 라자로프)는 라자로프소장이 지난달 본국으로 휴가를 떠나 소련인 직원 4명이 사태파악을 위해 대사관등으로 달려가는등 동분서주하는 모습. 이날 상공회의소에는 직원 6명 가운데 소련인 직원 1명과 한국인 여직원 1명만 남아 타스통신의 속보를 지켜보며 사태진전을 초조하게 지켜봤다. 한국인 여직원 홍모양(25)은 『하오2시쯤 타스통신을 보고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서울의 대기업체등에서 고르비실각 사실을 본국으로부터 연락받았느냐는 전화가 빗발쳤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공항터미널내에 위치한 소련 국영 아에로플로트항공 서울지점에서 일하는 소련인 4명과 한국인 2명 등 6명의 직원들은 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이 전해진 19일 낮 한결같이『그럴리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앞날을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아에로플로트 항공사 김포공항사무소의 이근영차장(39)은 『고르비가 실각됐다지만 수요일과 금요일 등 매주 2회씩 운항하는 비행기편은 차질없이 운항할 것으로 본다』며 『 20일에도 세계잼버리대회에 참가했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피해청소년 1백2명이 예정대로 전세기를 이용,김포를 떠나게 된다』고 말했다.
  • 고르바초프 실각/소 쿠데타… 강경보수파 전권장악

    ◎「8인 비상위」구성… 비상선포/고르비 연금… 야나예프가 대행/“추진중인 개혁정책 계속실행”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개방과 개혁의 기치아래 소련과 동구에 민주화의 새시대를 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19일 실각했다. 6년5개월만에 고르바초프를 권좌에서 몰아낸 세력은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과 드미트리 야조프국방장관,올레크 바클라노프국방위제1부의장등 현정부내 보수파들이며 이들은 이날 8명으로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구성,전권을 장악했다. 대통령직무대행겸 국가비상사태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야나예프는 이날 하오 기자회견을 갖고 새지도부는 지난 85년이래 고르바초프대통령에 의해 추진돼온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이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실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야나예프는 또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고르바초프가 현재 크림반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히고 『그가 건강을 회복한뒤 직무에 복귀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군부대의 수백대의 탱크및 장갑차들이 진주한 모스크바 시내에는 보수파의 정권장악에 분노한 수천명의 시민들이 크렘린광장과 러시아공 의사당주변에 몰려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탱크에 올라타 운전병을 끌어내리는등 격렬한 항의시위를 벌였다. 소련관영 타스통신은 19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건강상의 문제로 대통령직무를 더이상 수행할수 없게됨에 따라 야나예프부통령이 대통령직무를 인수했으며 19일 상오4시(현지시간)를 기해 소련내 일부지역에 6개월간의 비상사태가 선포됐다고 보도했다.고르바초프대통령은 관저에 연금상태에 있다고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대변인인 파벨 보슈차노프가 전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야나예프대통령직무대행은 비상사태의 선포와 국가비상사태위원회로의 권력이전을 통보하는 전문을 유엔사무총장과 세계각국의 정부수반들에게 보냈다. 이 전문은 『이번 조치는 일시적으로 취해진 것이며 소련의 모든 부문에서 진행되고 있는 심대한 개혁의 길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고 설명하고 『소련경제를 페허에서 구하고…소련국민들과 전체국제사회를 위해 예측불허의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는 대규모 분쟁위협이 고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검열·시위금지 【모스크바=로이터 연합】 소련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19일 언론을 검열하고 시위를 금지하며 저항이 있는 지역에서는 야간통행금지를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고르바초프의 실각 발표 이후 이위원회가 최초로 발표한 포고령은 국가보안위원회(KGB)와 내무부가 이같은 지시를 수행하고 소련의 「동족상잔과 내전」을 막기 위한 강력한 권한을 가진다고 말했다.
  • 북한,이례적 신속 보도

    【내외】 북한은 19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실각소식을 이날 하오7시 비정규 뉴스를 통해 이례적으로 신속 보도했다. 북한방송들은 이날 타스통신 보도를 인용,고르바초프대통령이 「건강상의 이유」로 소련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됐으며 야나예프부통령이 대통령 직무를 집행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고르바초프대통령 실각에 대한 이같은 신속한 보도는 지금까지 보도관행에 비추어 매우 이례적이며 이는 고르바초프대통령 실각에 대한 북한의 지대한 관심과 함께 앞으로의 이해득실관계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상징적인 태도로 보여지고 있다.
  • 신데탕트·페레스트로이카 “위기”(크렘린 대지진:1)

    ◎“개혁혼란·경제난 타개”구실,보수파 반격/동서화해 조류 역류 위기… 세계가 긴장 동·서화해의 새로운 국제조류가 역류할 위기를 맞고 있다. 2차세계대전이후 세계사를 지배해온 냉전시대의 막을 내리게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실각하고,소련이 다시 강경보수화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실각으로 소련은 최대의 정치적위기를 맞았으며 국제정치무대의 주인공 중의 하나였던 고르바초프의 퇴장은 국제정치 기류를 크게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 전세계를 놀라게 한 고르바초프의 실각은 최근 절정에 이른 소련내의 개혁파와 보수파간의 갈등과 대립에서 보수파가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소련 공산당은 지난15일 고르바초프의 핵심 측근이며 개혁정책 입안자인 야코블레프를 축출,개혁파에 대한 대반격을 본격화했다. 소련군부도 군기관지 적성을 통해 『군내의 모든 공산당원들은 일치단결하여 당과 군을 방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혀 오랜 침묵을 깨고 자기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었다. 소련의 강경·보수파들은 지난 16일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공장의 공산당 활동금지조치를 적용하자 더 이상 개혁파에게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20일로 예정돼 있던 신연방조약체결 하루전날 고르바초프를 축출했다. 강경파 지도자들은 소련의 새로운 「탄생」을 저지한 것이다. 관영 타스통신은 소련은 새로 구성된 국가비상사태위원회에 의해 통치될 것이며 의장은 겐나디 야나예프 부통령이 맡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권한은 소련 강경보수파의 상징인 군부와 KGB가 장악한 것으로 분석된다. 8명의 국가비상사태위원회에 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과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 KGB의장이 포함돼 있는 사실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위원회에는 또 발렌틴 파블로프 연방총리,보리스 푸고 내무장관등 강경파들로 구성돼 있어 소련이 다시 강경보수파의 통치시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알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은 동유럽의 대변혁을 가져오며 서방세계에서는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소련의 경제를 회복시키는데는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를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며 점진적인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시도해 왔다. 정통적인 공산주의 경제체제로는 소련의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접목시키는 「실험」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고르바초프의 실험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는 면도 없지않다. 소련의 경제성장은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때도 있었고 고질적인 식량난은 더욱 악화돼왔다. 더욱이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은 소연방체제의 「붕괴」를 가져왔다.리투아니아공화국등 발트해 3개공화국을 비롯,6개공화국이 신연방조약 가입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국가해체과정」을 더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밝혀,발트해 3개공화국 등이 주도하고 있는 소련내의 분리·독립움직임을 힘으로라도 저지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강경보수파들은 소연방이 해체되는 것을 막아야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분리독립을 추진하고 있는 발트해 3개공화국들의 독립의지도 매우 강하기 때문에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르바초프의 개혁으로 자유의 실체를 체험한 이들의 저항도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분리독립을 추진하는 공화국 국민들 뿐만아니라 러시아공화국등 다른 소련인들의 반응도 주목된다. 옐친대통령의 급진개혁 깃발아래 개혁을 서두르는 러시아공화국 국민들도 개혁이 후퇴될 경우 반발이 예상된다.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물론 비상사태선포가 소련 각부문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의 길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개혁의 속도나 방법에 대해 보수파들이 큰 불만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소련의 개혁속도는 늦추어지지 않을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강경보수파들도 개혁은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식의 개혁이든 현재 소련이 안고 있는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의 실각은 소련 국내보다 오히려 세계사적인 측면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도 할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갈등과 대립의 시대를 마감하고 동서화해의 새시대를 개막시켰다. 고르바초프의「대변혁 드라마」는 유럽의 정치지도를 다시 그리게 만들었으며 지구촌 곳곳의 분쟁을 하나 하나 해결시켰었다. 그의 개혁정책은 냉전의 마지막 잔재로 남았던 한반도에도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한국은 소련과 국교정상화를 이루었으며 북한도 지금까지의 철저한 고립정책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한반도의 긴장완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이같이 세계를 무겁게 누르고 있던 냉전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화해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창출하는데 미국과 함께 주연역을 맡았었다. 그러나 세계사를 바꾸어 놓은 고르바초프의 「정치드라마」는 대단원의 막이 내리기도 전에 또다른 힘에 의해 중단됐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이 강경보수파에 의해 중단된 것이다. 소련의 보수화는 미국을 주축으로한 서방세계를 긴장시킬 것이다. 미국은 고르바초프를 소련역사상 최초로 믿을만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를 체결하는 등 미소밀월시대를 맞았었다. 그러나 미소의 밀월시대는 일단 끝났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냉전의 시대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정치분석가들은 전망한다.소련도 「스탈린이나 브레즈네프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국제정치 역학관계는 미국의 대소대응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새로운 지도자들과 어떤 관계를 정립하느냐에 따라 국제정치의 성격도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시대의 화해의 새국제질서가 정착되기는 당분간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의 환한 웃음이 국제정치무대에서 사라지면서 국제정치가 난기류에 휩싸이고 있다.
  • “월요일의 대충격”… 세계가 「비상」

    ◎「고르비 실각」… 각국의 표정/“사태유동적”… 주요국들 「공식논평」 유보/“개혁­보수파 대립… 내전비화 가능성도” ▷미국◁ 미백악관 관리들은 소련의 사태를 놀라운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한 정보를 얻기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CNN 등 미국방송들은 고르바초프 실각사실을 긴급 주요뉴스로 취급,현지와 연결해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조지 부시미대통령은 이날 케네벙크포트의 하계휴가 별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둘러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등 신속히 대처했다. 부시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쿠데타가 실패할 수 있음을 상기시키고 대소경제지원 동결을 발표하는 한편 고르바초프를 높이 평가하는 등 쿠데타 주도세력에 대해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는 간접적인 의사를 밝혔으나 『권력을 장악한 소련 강경파들이 국제적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해 쿠데타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하고 쿠데타 주도세력들과 정면으로 맞서지는 않을 뜻임을 시사했다. 로먼 포파듀크 백악관 부대변인은 이에 앞서 발표한성명을 통해 『우리는 고르바초프대통령과 관련된 보도를 듣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19일 하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사임소식이 전해지자 일본정부와 국민들은 큰 충격과 우려를 나타냈다. NHK 등 일본방송들은 고르바초프 사임소식을 매시간 주요뉴스로 보도하면서 특집프로를 마련,소련의 향후 정치향방을 전망했다.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일본총리는 이날 낮 사임소식을 듣고 『외무성을 통해 사실관계나 배경에 대해 조사중이므로 자세한 소식을 파악한 뒤 논평하겠다』고 대답을 회피한 뒤 자민당 중진들도 참석한 가운데 긴급 각의를 열고 소지도부의 급작스런 변화에 관한 가능한 모든 정보를 입수하도록 지시했다. 사카모토(판본)관방장관도 『일본정부로서도 정식으로 확인할 수 없다』고 밝히고 미국과 정보를 교환하는 등 사태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관리들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사임이유가 건강상의 문제라고 전해진데 대해 『병이 생겼다면 비상사태를 선포할리가 없다』고 지적,쿠데타일 가능성이 있다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영·불◁ 존 메이저 영국총리는 19일 고르바초프 실각에 대해 『탈헌법적 권력찬탈』이라고 비난하고 실각소식이 냉전으로의 복귀를 의미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메이저총리는 『현재 사태는 소련내 개혁과정에 대한 저항』이라면서 『우리는 소련이 고르바초프대통령이 했던 약속들을 존중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말했다. 마거릿 대처전영국총리는 소련국민들에게 거리로 나가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 린다 찰커 영외무차관은 고르바초프의 실각은 소련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을 수 있고 동서관계에도 심각한 의미를 갖고있다고 밝히면서 『이는 매우 걱정스럽고 당혹스런 사건』이라고 말했다. 한편 TF­1 등 프랑스방송들은 19일 일제히 아침뉴스의 머리기사로 고르바초프의 실각을 보도하고 그것이 유럽의 안정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다. 프랑스와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은 이날 크레송총리,뒤마외무장관과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고르바초프실각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독일◁ 헬무트 콜 독일총리는 19일 새로운 소련지도부에 대해 국제조약을 준수하고 인권을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콜 총리는 이날 하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실각소식을 듣고 휴가중이던 오스트리아에서 본으로 돌아와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힌뒤 실각한 고르바초프가 신체적인 위협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콜 총리는 이에 앞서 부시 미국대통령과 미테랑 프랑스대통령,메이저 영국총리와 전화통화를 갖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실각에 따른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한편 테레초프 본주재 소련대사는 독일총리실을 방문,소련신지도부의 성명을 독일정부에 전달했다. 유럽안보회의는 20일 회의를 갖고 소련사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한다. 한편 로스 소련서부군대변인은 이날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실각에도 불구하고 독일주둔 소련군의 철수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 고르바초프 실각 소식이 전해지면서 19일 홍콩 증권시장의 항생지수가 1백94포인트나 폭락하는등 이곳 홍콩주민들은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곳 시민들은 소련의 강경파 집권으로 냉전체제가 부활하지 않겠느냐고 우려하면서 현재 소군부의 동향이 어떤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한편 중국에서는 신화사통신이 고르바초프 실각뉴스를 타스통신을 인용,간단히 보도한채 별다른 반응을 즉각 보이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이곳 관측통들은 중국지도층이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을 극구 반대해 왔으며 최근 소공산당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공식 포기한데 대해서는 경악을 금치 못한채 급격히 보수회귀 성향을 보여왔다고 지적,고르비의 거세를 가장 반가워할 사람들은 북경의 중남해(중국지도층 집단거주지)에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토­EC도 긴급회담 소집 ▷나토·EC◁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19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축출에따라 정치위원회 비상회의를 소집했다고 나토대변인이 밝혔다. 유럽공동체(EC)외무장관들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실각과 강경파 비상위원회의 집권을논의하기 위해 20일 헤이그에서 긴급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고 네덜란드 외무부가 19일 밝혔다. ▷유엔◁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유엔사무총장은 이날 포르투갈 남부에서 휴가를 즐기던중 고르바초프 실각소식에 접하고 이 사태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회원국의 내정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자신의 위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타국가◁ ▲인도=최근 20년만에 소련과 우호협력관계를 재개하기 위한 조약을 체결한 바 있는 인도는 소련내의 정치적 변화로 양국 관계가 영향을 받지 않기를 희망했다. ▲필리핀=코라손 아키노 필리핀대통령은 고르바초프의 축출 소식을 접한 뒤 발표한 성명에서 소련 사태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고르바초프의 집권시에 추진되던 세계평화를 향한 전진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체코=바츨라프 하벨 체코대통령은 『소련의 현사태가 슬프게도 지난 68년 프라하의 봄 민주화운동에 대한 소련의 강경진압을 상기시킨다』고 말했다. ▲이라크=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이날 혁명평의회와 바트낭지도부 합동회의를 주재한 뒤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고르바초프의 실각이 국제적인 세력균형을 재구성하게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점령지내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날 고르바초프의 실각을 열렬히 환영하면서 소련이 이제 중동평화정착 과정에서 미국의 독주에 제동을 걸어주길 희망했다.
  • 러시아공/「공당활동 규제」 첫 적용

    ◎“공장일과 시간중 각종 모임 금지” 【모스크바 UPI 연합】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의 고향 인근 도시의 한 검사는 금주초 옐친 대통령의 공장내 공산당 활동금지 조치를 처음으로 적용,공산당관리들이 공장에서 일과시간중 모임을 갖지 말라는 경고를 내린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러시아공화국내 카멘스크­우랄스키시의 블라디미르 옐루닌 검사는 금주초 인구 20만의 이 도시 공산당 본부에서 열린 공장감독관 회의에서 일과시간중 당활동 모임을 금지하는 경고령을 내렸다고 러시아 인포메이션 에이전시 (RIA)가 보도했다. 이같은 조치와 관련,공산당 정치국원인 올레그 셰닌은 『지방 당조직에서 어떻게 이같은 반민주적이고 반체제적인 행위가 있을 수 있는가』고 반문하면서 『옐친 대통령의 당활동 제한령은 당활동을 크게 위축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노동자들을 사회적으로 보호하는 조직들을 무력화 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규탄했다고 타스통신이 전했다.
  • 중국,대소 군협 강화

    【모스크바 AFP 연합】 지호전 중국군 참모총장과 겐나디 야나예프 소련부통령이 7일 회담을 갖고 중­소군사협력문제등 다양한 사안에 관해 견해를 교환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중국군 참모총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소련을 방문한 지장군은 미하일 모이세예프 소련군참모총장의 초청으로 지난 5일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지장군은 앞서 6일에는 모이셰예프 소련군 참모총장 및 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과 회담을 갖고 세계의 군사·정치적 상황과 군사노선을 포함한 양국간 관계를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타스통신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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