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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옐친,군 전면개혁 명령/세금 감면등 생활개선책 병행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은 러시아공화국 군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 및 군복무자들의 생활조건개선을 명령했다고 관영 타스통신이 30일 보도됐다. 옐친대통령의 이같은 조치는 향후 소련 정국의 최대 불안요소로 간주되고 있는 군의 불만을 완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타스통신은 옐친대통령이 최근 발표한 일련의 포고령을 통해 러시아공화국내 군인가족의 생활조건 향상,군인에 대한 세금 감면,장교들의 주택난을 개선 등을 명령했다고 전했다. 지난 28일 서명된 이 포고령들은 또한 러시아공 군사위원회에 대해 대대적인 군개혁계획을 착수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 소 외무에 판킨

    【모스크바 AP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지난주 쿠데타가 발생한 직후 이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던 체코슬로비키아주재 소련대사 보리스 판킨(60)을 28일 새 외무장관에 임명했다. 쿠데타에 반대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은 후 지난주 해임된 알렉산드르 베스메르트니흐의 후임인 판킨 대사의 외무장관 임명은 관영 타스통신과 국영TV로 보도되었으나 다른 구체적인 사항은 일체 밝혀지지 않았는데 연방 최고회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 이그나텐코 타스사장(소 권부 새 인물 프로필)

    ◎고르비 대변인 맡았던 진보주의자 언론인출신으로 지난 75년부터 78년까지 타스통신에서 서열 2위인 부편집장을 지내기도 했다.1년전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대변인을 맡기전까지도 「뉴 타임스」라는 급진적인 잡지의 편집장을 맡아오는 등 진보주의적 경향을 보여왔다. 큰 키에 붙임성있는 그는 고르바초프와 정기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몇안되는 고위언론인으로,지난 4월 고르바초프가 방한했을 때 수행하기도 했다.그는 대통령대변인시절에 무기력하다는 평판을 받기도 했다. 흑해 휴양지 소치에서 태어난 그는 모스크바대학의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후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에서 수습기자에서 부편집장에 이르기까지 15년이상 근무했다.
  • “외환 연방서 관할”/옐친,입장 후퇴

    【모스크바 AP 연합 특약】 경제업무관장과 관련,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종전주장에서 후퇴해 외환거래업무등을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연방관할로 귀속시켰다고 타스통신이 29일 보도했다. 그러나 러시아공화국 관리들은 연방은행들이 외환업무를 취급하고 러시아공화국내의 귀금속 소유권을 보유하는 것은 잠정적인 조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옐친대통령은 러시아공화국내에서 연방정부의 외환업무 및 재정활동은 러시아공화국의 허가를 얻어야 된다는 포고령을 내렸으나 이에 대해 고르바초프대통령은 28일 이같은 포고령이 위법적이라고 최고의회에서 주장했었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러시아공화국을 비롯,대부분 공화국들은 자기 공화국에서 취득한 외화를 공화국소유로 하려는 움직임을 지난해부터 보여왔었다.
  • 소 쿠데타 주역 사형가능성/타스통신 전망

    ◎“비상위원등 11명… 반역죄 적용”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특약】 고르바초프 축출을 기도한 지난주 쿠데타의 주도자들이 「조국배반」죄목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27일 보도했다. 이들에 대한 기소는 러시아공화국 형법 64조에 의거하고 있다고 이 통신은 덧붙였다. 【모스크바연합】 쿠데타사건 수사를 총지휘하고 있는 스테판코프 러시아공화국 검찰총장은 27일 현재 투옥중인 사건 관련주모자는 파블로프 전총리,크류치코프 전KGB의장,야조프 전국방장관,세닌,티자코프 전국가비상위 위원,스타로드브체프 전국가비상위위원,바클라노프 전국가비상 위원,볼딘 대통령 비서실장,바레니코프 전지상군총사령관,플레하노프 전KGB경호국장,그루시코 KGB 제1부의장 등 모두 11명이라고 밝혔다. 스테판코프 검찰총장은 이들에 대한 심문이 진행중이며 조만간 사건전모를 공식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모스크바 교외 삼림지대의 한 비밀가옥에 감금됐다가 26일 모두 감옥으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감옥의 정확한위치는 확인되지않고 있다.
  • 급변하는 모스크바… 이모저모

    ◎시민들 “공산당은 변신말고 사라져라”/옐친,고르비가 주려던 최고훈장 거절/러시아공,타스통신 개혁지원 약속/쿠데타 이후 고르비 밀착경호로 강화 ○…26일 열린 소련 최고회의 특별회의에서는 한 경호원이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밀착 경호를 하는 모습이 처음으로 목격되었다고 기자들이 전했다. 종전에는 고르바초프가 최고회의에 참석할때는 비밀경찰이 밀착 경호라기보다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경호를 해왔으나 쿠데타후 밀착 경호로 강화된 것이라고. ○…소련 최고회의의 26일 임시회의 사회를 맡은 이반 라프티예프 의장대리는 개회사에서 『나는 합법성의 최초의 보증인이어야 할 최고회의에 대해 수치심을 느낀다.소련 전국,모스크바 전체가 민주주의를 외치던 지난 3일간 침묵했던 우리는 무슨 변명을 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일부 대의원들은 임시회의 개회직후 이 회의가 텔리비전과 라디오로 생중계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한 시도를 하기도 했으나 중계방송 여부를 투표에 부친 결과,4백17명의 대의원중 12명만이 반대표를 던져 방송매체로 생중계됐다. ○…셰바르드나제 소련 전외무장관은 25일 한 스위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쿠데타를 감행한 보수세력을 잔인하게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셰바르드나제는 『그들을 처형한들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물론 처벌을 받아야 하겠으나 앞으로 우리앞에는 많은 난관이 있다』면서 『쿠데타가 발생하기 바로 직전에 미국의 조지 슐츠 전국무장관으로부터 조건이 좋은 대학교수 자리를 제의받았다』고 소개하기도. ○…24일 저녁 자살한 세르게이 아흐로메예프 소련원수는 유언장에서 『생애를 바쳐 일해온 이념·이상이 모두 무너졌기 때문에』자살을 택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공 다음으로 규모가 큰 소련 제2공화국인 우크라이나공화국의 레오니드 크라프추크 최고회의의장은 24일 독립을 선언하면서 오는 12월1일 독립선언의 찬반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발표. ○…옐친 러시아 공화국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수여하는 「최고영웅」메달을 거절했다고 러시아 TV가 25일 보도. 옐친은 『훈장을 받아야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공화국 의사당 근처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탱크의 진입을 막았던 사람들』이라며 훈장수여 제의를 거절했다고. 이에앞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24일 거행된 이번 사태 희생자들의 장례식에서 최고훈장을 추서했다. ○…연방정부 내무장관으로 기용된 빅토르 바라니코프는 25일 레닌 등 공산주의지도자들의 동상을 파괴하거나 불발 쿠데타를 지지한 세력들에 대한 린치는 중단되어야 한다고 호소. ○…모스크바 시민들은 바간코프스코예 공동묘지의 검은 출입문에 몰려가 쿠데타 시도가 있었던 지난주 소련군에 의해 목숨을 잃은 시민 3명의묘소에 줄을 이었다. 그러나 24일의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들과는 달리 25일 공동묘지를 찾은 군중들은 생기가 있었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태에 대한 논평을 서슴지 않았는데 은퇴한 엔지니어 야코프 헤이켄손은 『공산당에 관한한 종말인 것같다.공산당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어 좋다.공산당이 자체변신을 할듯하나 그것도 존재하지 않는것이 더 좋다』고 말하고 『사태가 이렇게 빨리 진행될줄은 몰랐다』고 덧붙이기도. ○…미하일 폴토라닌 러시아공화국 공보장관은 26일 타스통신내의 진취적인 세력들이 지난주 제안한 타스통신 개편계획에 대한 지지를 표명. 타스통신 개편계획은 타스를 국영매체에서 사원소유의 독립통신으로 전환하고 기존의 협의회를 사원회의를 통해 선출된 기구로 대체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있다. 폴토라닌장관은 이날 타스통신 개편계획이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내각에 지시한 타스통신 개편지침과 실질적으로 일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타스의 구경영체제를 민주적으로 선출된 새로운 경영체제로 대체하려는 생각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타스는 언론관계법 등 법률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독립적인 기구가 돼야하며 정부나 정당·단체 등은 타스에 압력을 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라이사,건강 회복중”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쿠데타발생후 갑자기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진 부인 라이사여사가 「정상으로 회복」되고 있다고 26일 밝혔다. 소련의회 복도에서 기자들과 만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상황이 안정되고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아무 위험도 없으며 그녀는 정상적으로 말하고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 고르비 보좌/원수 자살

    【모스크바 AP AFP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최고 군사보좌관인 세르게이 아흐로메예프 원수(68)가 최근 실패한 강경파 쿠데타와 관련,24일밤 자살했다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의 한 대변인이 25일 밝혔다. ◎중앙위 사무국장도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사무국장 니콜라이 크류치나가 자살했다고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26일 보도했다.
  • 서방은 환영일색… 북한·중국은 당혹/소 공산당 몰락사태 각국 반응

    ◎“공산당 해체는 필연적”,개혁 기대/서방/논평없이 짧게 보도… 초조감 암시/북한/“기관지 정간등 부당”… 불쾌감 표명/중국 【워싱턴·런던·파리·북경·도쿄 외신 종합 연합】 세계각국의 대부분 지도자들은 25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공산당 서기장직 사임발표와 함께 당중앙위 해체를 촉구한 「사건」에 대해 공산주의 체제의 전세계적인 사망을 알리는 조종이라고 환영의 뜻을 표시했으나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 북한 중국 쿠바 베트남 등은 논평없이 보도하거나 우려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메인주 케네벙크포트에서 휴가중인 조지 부시미대통령은 25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당서기장직 사임은 소련의 개혁을 가속화시키는 진일보』라고 평가했다. 존 메이저 영국총리는 25일 『소련공산당의 해체를 환영한다』면서 『공산주의는 전세계적으로 애도하는 사람도 없이 사멸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메이저총리는 『공산주의는 항상 기만에 기초했다』면서 『공산당은 소련인민들로부터 영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해체는 필연적』이라고말했다. 롤랑 뒤마 프랑스외무장관은 『고르바초프의 당서기장직 사임은 소련의 개혁속도가 가속화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면서 『소련 국민들의 이해에 부응하는 새롭고 독창적인 구조를 창출하는 것은 소련국민들에게 달려 있다』고 밝혔다. 헬무트 콜 독일총리는 『서방국가들이 현명하다면 그들은 즉각적으로 대소원조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고르바초프의 당서기장직 사임에 대해서는 논평하지 않았다. EC(유럽공동체)의장국인 네덜란드의 외무대변인인 디그 이스타는 『EC는 소련에 신민주주의시대가 도래하도록 소련에 남아있는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대소협력을 할 것』이라면서 『소련에서의 급진적인 조치가 소련인민의 자유및 기본권을 고려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편 북한의 관영 평양방송은 25일 소련관영 타스통신을 인용,고르바초프대통령의 공산당해체성명을 논평없이 짧게 보도했으며 공식적인 입장은 밝히지 않고 있다. 중국은 TV와 라디오를 통해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당서기장직 사임을 국제뉴스톱으로 보도했으나 관영신화통신을 통해 소련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등의 발행정지처분결정을 부당하다고 보도,중국지도부가 현 소련 정세에 불쾌감을 갖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쿠바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당서기장직 사임을 논평없이 보도했으며 쿠바정부 및 공산당은 소련공산당의 해체움직임과 관련,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 “소 연방 탈퇴 공화국대상/러시아공,국경선 재고”

    ◎옐친대통령 밝혀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특약】 러시아공화국은 26일 소 연방으로부터 탈퇴하려는 공화국들에 대해 국경선을 문제삼을 권리가 있다고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이 말한것으로 파벨 보슈카노프대변인이 밝혔다. 타스통신은 이날 보슈카노프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발트3국은 제외하고 소 연방으로부터 탈퇴하려는 공화국들에 대해 러시아공화국은 국경선을 재검토하는 문제를 제기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우크라이나공화국이나 카자흐공화국등 국경지역에 러시아인이 다수 거주하는 공화국들의 독립시에는 러시아공화국과 국경문제가 발생할것으로 예상된다.
  • “소의 새 역사 여는 신호탄”/「고르비 서기장직 사임」 각국 반응

    ◎개혁과정의 전향적인 조치/미국/신중론속 “고르비 계속 지지”/독일/공식 논평없이 사실만 보도/중국 ▷미국◁ 미국은 24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공산당서기장직사임에 대해 『개혁과정에 있어 또하나의 전진적 조치」라고 환영했다. 말린 피츠워터 백악관대변인은 조지 부시 미대통령이 휴가를 보내고 있는 케네벙크포트에서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일본◁ 일본은 25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공산당서기장직 사임은 소련역사의 새 전환점이라고 환영했다. 나카야마 다로(중산태낭)일본외상은 이날 성명을 발표,『고르바초프의 서기장직 사임은 민주화와 자유화를 향한 전면개혁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독일은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공산당서기장직 사퇴가 소련개혁의 길을 더욱 순탄하게 할 것이라며 이를 조심스럽게 환영했다. 디터 포겔 독일정부대변인은 고르바초프의 서기장직 사임이 독일과 소련간의 관계에 즉각적인 변화를 의미하는것은 아니라며 독일정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소연방대통령으로서의 고르바초프의 역할일 뿐이라고 논평,서기장직 사임이 그에대한 지지여부와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프랑스◁ 롤랑 뒤마 프랑스외무장관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공산당서기장직에서 사임한것은 소련의 개혁움직임이 가속화함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우리는 이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는 또 24일 소련사태에 대한 EC(유럽공동체)의 공동입장 마련을 위한 EC 긴급외무장관 회담의 개최를 촉구했다. ▷중국◁ 중국은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에서 공산당이 해체되고 고르바초프당서기장이 사임키로 했다는 소식에 대해 25일 저녁까지 아무런 공식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이 25일 아침에야 뒤늦게 타스통신을 인용,이 뉴스를 간단히 보도했을 뿐이다.
  • 「공산당나팔수」소 언론 “대수술”/옐친의 「언론포고령」무얼 뜻하나

    ◎「선전선동」기능 배제… 「자유언론」으로/신문서 마르크스심벌 삭제/개혁지향적으로 면모 일신/재산도 국유화… 공산당과 연결 “원천봉쇄” 소련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심벌을 발행인란에서 삭제했다.쿠데타 실패 이후 권력구조개편과 함께 소련의 관영언론도 변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소련 관영언론의 체질 변화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언론 포고령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옐친대통령은 23일 포고령을 통해 6개 공산당기관지를 잠정적으로 정간시키고 자산을 국유화했으며 관영 타스통신과 반관영 노보스티통신사 사장을 전격 해임시켰다. 옐친의 이같은 조치는 언론을 공산당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쿠데타 실패이후 정치적 힘을 크게 상실한 공산당은 언론에 대한 영향력도 함께 잃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옐친에 의해 정간된 신문들은 소련 언론의 상징인 프라우다를 비롯,소비에츠카야 로시야·글라스노스트·라보차야 트리부나·모스코브스카야 프라우다·레닌스코예 즈남야지 등이다. 이들 관영언론들은 과거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주요 매체들이었다.페레스트로이카가 소련사회를 변화시키면서 이들 관영 매체들도 많은 변화를 보여왔다. 그러나 관영언론들은 늘 공산당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보수적 성향을 견지해온 것이다. 관영 타스통신을 비롯한 공산당기관지들은 이번 쿠데타에서도 쿠데타 주도 세력의 선전매체구실을 했다.이들은 고르바초프의 실정을 비난하고 신지도부의 공식발표들을 충실히 보도했다.어느 쿠데타에서나 마찬가지이지만 이번 쿠데타세력들도 우선 언론을 장악했기 때문에 관영언론들이 이들의 명령을 거부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쿠데타 지도자들은 거사당일인 19일 고르바초프 집권이후 8천5백여개로 늘어난 신문 가운데 9개를 제외한 모든 신문들을 정간시킨바 있다. 옐친대통령은 그러나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아니라 관영언론들이 쿠데타에 공모했다고 주장한다.그는 타스통신의 레프 스피리도노프사장과 노보스티통신의 알베르트 브라소프사장이 쿠데타세력에 「동조」했다며 이들을 해임시켰다. 옐친은 한 공화국의 대통령이면서도 전국적 기관인 타스통신의 사장을 해임하고 프라우다지를 정간시켰다.이는 옐친의 영향력이 크게 강화되었음을 말해주며 언론도 개혁지향적으로 대수술이 이루어질 것임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옐친대통령은 러시아공화국공산당이 소유하고있는 수백개의 출판관련 업체들도 국유화시켰다.공산당과 언론과의 연결고리를 끊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옐친의 강경 언론정책에 대한 비판도 일고 있다.옐친이 공산당기관지를 정간시키고 통신사사장을 해임시킨 것은 언론의 자유 침해라는 측면에서 쿠데타 주도세력들이 신문을 정간시킨 조치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프라우라지의 셀레즈네바 부국장은 『소련의 언론이 85년 고르바초프 등장 이전같이 한목소리만을 낸다면 파멸적인 결과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등장 이후 소련은 많은 언론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쿠데타의 와중에서도 이즈베스티야 기자들은 옐친의 성명서 게재를 허용하지 않자 신문제작을 거부하기까지 했다.이번 쿠데타 저항에서도 자유언론을 지키려는 소련 언론인들이 큰몫을 했다. 소련 언론인들은 옐친의 언론 대수술로 더욱 많은 언론의 자유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언론의 자유는 보다 빠른 속도로 소련을 개방적인 민주사회로 전환시킬 것이다.
  • 고르비,공산당 해체 선언/인테르팍스통신 보도

    ◎당 서기장직도 사임/연방최고회의 당기구도 활동종료 독자결정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특약】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24일 소련공산당 서기장직을 사임하고 공산당을 해체할 예정이라고 중립계 인테르팍스통신이 보도했다. 소련 정부의 최고위층 동향보도에 강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이 통신은 이 기사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의 홍보비서인 비탈리 이그나텐코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고 말했으며 고르바초프가 당지도부와 회담중이라고 덧붙였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 대변인은 고르바초프가 옐친에게 이같은 계획을 전한바 없다고 밝혔다.미국무성과 로만 포파뒤크 백악관대변인 역시 이 보도를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당 서기장 직분으로서는 공산당의 해체를 명령할 수 없으나 연방대통령으로서 어느 정치단체라도 해산을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한편 연방최고회의의 당기구가 24일 스스로 자신들의 활동을 종료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이 기구의 이같은 결정은소련 전역에 걸쳐 공산당의 활동을 제한하는 각종 조치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취해졌다. 발트해 연안의 리투아니아공화국과 라트비아공화국이 공산당을 불법화한데 이어 에스토니아공화국·몰다비아공화국·그루지야공화국이 24일 공산당이 공화국 영토내에서 활동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특약】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24일 공산당 서기장직에서 사임했다고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의 보좌관들이 밝혔다.
  • 옐친,「발트3국 독립」 인정/리투아공 이어 라트비아·에스토니아도

    ◎포고령 발표… 고르비에도 허용 촉구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특약】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은 24일 발트해의 라트비아공화국과 에스토니아공화국의 독립을 공식 인정하고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도 같은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옐친대통령은 관영 타스통신이 보도한 포고령을 통해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의 독립인정을 밝히고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소연방과 2개 공화국간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위해 협상을 시작하라고 요구했다. 옐친은 발트해 3개 공화국의 분리독립 움직임에 대해 동정적인 입장을 취해 왔으며 란츠베르기스 리투아니아공화국 대통령과 리투아니아의 「주권국가」를 인정하는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 소,공산독재 막 내렸다(옐친의 소련:1)

    ◎공산당사 폐쇄·레닌동상 철거의 대변혁/쿠데타 꺾은 「시민파워」업고 개혁 줄달음 소련의 공산주의시대가 마침내 「비극적」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지난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후 마르크스­레닌의 공산주의실험이 실패로 끝나고 마르크스­레닌이즘은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공산당을 해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소련관영 타스통신도 소련최고회의 당기구는 공산당활동의 종식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지난 70여년간 소련을 지배해온 공산주의체제가 붕괴되고 추악한 역사의 한장이 끝나고 있는 것이다.소련 공산주의체제의 붕괴는 「시민혁명」의 승리이다.고르바초프대통령은 쿠데타가 실패한후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나는 사회주의자이며 결코 공산당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그러나 그는 공산당의 해체를 스스로 선언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소련의 피플파워는 보수파의 상징인 공산당을 거부했다.소련의 피플파워는 옐친시대의 개막을 예고하고 있다.옐친은 강경보수파의 쿠데타를 저지시킨 시민혁명의 구심점이었다.옐친은 이미 공산당을 탈당했었고 러시아공화국내에서의 공산당 활동을 금지시킨바 있다. 고르바초프의 공산당해체선언이전에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이미 소련사회에서 소멸해가고 있었다.공산당원들조차도 마르크스­레닌주의 깃발을 휘날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쿠데타이후 공산주의의 종말을 고하는 2개의 사건이 있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한뒤 지난 74년간 소련공산체제 수호의 선봉을 맡았던 KGB의 창설자 제르진스키의 동상이 끌어 내려졌다.크렘린궁에서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KGB본부건물앞 광장에 버티고 서있던 제르진스키의 동상이 끌어 내려지는 동안 KGB직원들은 창문을 통해 속수무책으로 그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공포의 권부였던 KGB건물앞에 동상의 기단만 덩그랗게 남은 광장을 바라보며 모스크바시민들은 말할수 없는 감회에 젖는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두 장면의 주역은 소련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아니라 러시아공화국 대통령 보리스 옐친이었다. 고르바초프의 비극은 바로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데서 시작한다.「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라는 시대의 유행어들을 만들어내며 스탈린주의 통치시대를 끝내고 변화의 물꼬를 튼 그였지만 그 변혁의 파장은 그의 사고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의 희망은 스탈린주의 교조적 마르크스주의를 버리고 진정한 사회주의를 만들어가겠다는 것이지만 소련국민들의 가슴속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은 이미 깨졌고 공산주의는 조롱거리로 전락돼 있었다.사회주의체제내에서의 개혁을 고집하는 그가 소 국민들의 눈에는 우유부단하고 결단력 없는 지도자로밖에 비쳐지지 않았다. 이번 쿠데타를 물리친 가장 위대한 힘은 바로 모스크바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저항정신이었다.맨손으로 쿠데타군의 탱크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자유에 대한 그들의 욕구가 얼마나 진한가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더이상 공산독재의 노예가 아니었으며 그들이 공산독재 부활기도를 물리친것은 일종의 시민혁명이었다. 옐친은 이러한 성숙한 시민의식의 흐름을 읽고 과감히 그들의 앞장에 섰다는 점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비치고 있다. 쿠데타세력은 물러갔지만 돈이 있어도 살 물건이 없는 경제,와해직전에 놓인 연방체제등 이전의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있는게 소련의 현실이다.러시아민족주의·반공산주의 히스테리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경제난이 계속되고 민족간의 충돌이 재발되면 시민들은 또다시 불평을 터뜨릴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옐친의 주장대로 시장화 5백일 계획이라는 급진경제개혁안이 채택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동서냉전구도의 청산,동구의 대변혁등 외부에서의 찬사말고도 고르바초프는 분명 암울하던 구시대를 청산하고 소련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어준 위대한 지도자였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그러나 이제 그가 쿠데타의 충격에서 벗어나 이전의 자신에 찬 모습을 다시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뚜렷한 전망을 삼가고 있다.그는 공산주의자임을 헛소리같이 되뇌이고 있지만 어느덧 고르비의 시대는 공산당독재시대와 함께 막을 내리고 있다.소련에서는 이제 옐친시대가 개막되고 있는 것이다.
  • “승리” 외치며 붉은광장서 촛불축제/환호의 물결… 모스크바 표정

    ◎“KGB 없애라”… 창설자 동상을 부숴/“이번 쿠데타는 3번째 기도” 옐친 주장 ○…10만명이상의 러시아인들은 22일 모스크바에서 쿠데타 저지를 축하하는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러시아 최고회의빌딩 앞에서 열린 이날 집회에서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은 쿠데타의 실패는 피플파워의 승리라고 선언.러시아공화국은 이날 70년간의 공산주의시대 종언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붉은색 공화국기를 러시아혁명 전의 백·청·적 3색기로 공식 교체했다. 모스크바시민들은 최고회의 빌딩앞에서의 집회를 마치고 붉은 광장으로 행진,이곳에서 다시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이들은 「옐친」과 「러시아」를 연호하며 강경보수파들의 쿠데타 저지를 축하했다. ○…약5천명의 군중들이 22일 모스크바에 있는 KGB 본부앞 광장에 집결,반KGB 시위를 벌이고 KGB를 창설한 제르친스키 동상을 철거하기 시작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 ○“옐친에 노벨평화상을” ○…유럽의회의 기독민주그룹 지도자는 22일 소련 러시아공화국의 보리스 옐친대통령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할 것을 제안했다. 독일의 에곤 클렙슈씨는 유럽의회지도자들의 비상회의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을 실각시키기 위한 3일간의 쿠데타에 저항을 선도한데 대해 옐친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동유럽에서 강경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고 평화적 혁명을 이루는데 기여한 정책으로 이미 노벨평화상을 받은바 있다. ○…소련정부 기관지 이즈베스티야의 기자들은 22일 동지 편집국장 니콜라이 예피모프가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한 쿠데타사건에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그를 파면하기로 결의했다고 이즈베스티야의 막심 유신기자가 말했다. 유신기자는 이즈베스티야의 기자들이 이날 총회에서 또한 앞으로는 이 신문의 1면 머리에 있는 마르크스주의 슬로건인 「전세계의 노동자들이여,단결하라」라는 문구를 삭제하기로 결의했다고 전했다. 그는 AFP통신에 기자총회는 이날 「예피모프가 쿠데타에 기여한 인물」이라는 이유로 그를 파면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타스,사전에 알았었다○…소련 관영 타스통신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실각되기 하루전인 지난 18일 이미 쿠데타가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이 통신사의 한 간부가 말한 것으로 모스크바의 네사비시마야 가제타지가 보도. 이 신문은 텔레팍스를 통해 배포된 호외판을 통해 타스통신의 한 간부가 겐나디야나예프 부통령의 성명서 전문과,8인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지난 17∼18일 밤 타스통신에 소개됐음을 밝혔다고 전했다.이 성명은 지난 19일 아침 공개됐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의 쿠데타저항본부인 의사당을 지키는 군인및 민간들은 쿠데타 실패 소식에도 불구하고 21일 저녁 여전히 경계를 펴고 있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축출하려다 실패한 이른바 「쿠데타 음모자들」은 벽에 세워놓고 총살을 해야 할 것이라고 콘스탄틴 코베츠 러시아공화국 국방장관이 21일 밝혔다. 지난 20일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 의해 국방장관에 임명된 그는 이날 러시아공화국 의사당 복도에 집결해 있던 일단의 기자들에게 이같이 밝히면서『옐친 대통령이 나에게 장관직을 제의했을 때 내가 수락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만약 쿠데타 주동자들이 그들의 음모가 실패해 체포될 경우 이들을 처형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복귀와 쿠데타 주동자들의 체포를 충심으로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지난 19일 실각되기 이전에 이미 2건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고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21일 공개. 옐친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공화국 의회에서 대의원들에게 첫번째 쿠데타 음모는 예두아르트 세바르드나제 전외무장관이 지난해 12월 장관직 사퇴연설을 통해 소련에 독재가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성 발언으로 실패했으며 두번째 쿠데타는 발렌틴 파블로프 총리가 소련 최고회의에 대해 자신에게 특별 권한을 부여해 줄 것을 설득했던지 난 6월에 있었다고 말했다.
  • 고르비,지도부 개편/옐친 연정제의… 오늘 요직인선

    ◎새국방·KGB의장·내무 임명/“공산당도 개혁세력으로 교체”/고르비 회견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모스크바로 돌아와 집무를 시작한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은 22일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과 함께 공석이 된 지도부의 요직인선에 착수,1차로 국방장관에 미하일 모이세예프참모총장을 임명했다.또 국가보안위원회(KGB)의장에 레오니드 셰바르신을,내무장관엔 바실리 투르신을 발령했다.이에앞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국방차관에 보리스 파안코프대장을 임명했는데 타스통신은 쿠데타 주동자의 체포로 자리가 빈 일부 핵심요직의 임명이 「임시적」인 것이라고 전했다. 고르바초프는 이날 모스크바로 귀환한 뒤 처음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공산당안의 반동세력을 몰아내고 개혁지지세력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정변을 계기로 급부상한 옐친러시아공대통령은 보수파 제거에 본격 착수함으로써 자신의 세력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옐친대통령은 그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23일 만나 정부구성문제를 비롯한 「대단히중요한」사안들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그는 3인의 요직인사와 관련,『앞으로 러시아공화국이 연방정부구성에 보다 많이 대표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그 이유는 어려운 시기에 민주주의를 수호한 것이 러시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옐친은 또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연금돼있었던 크리미아휴양지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온 직후 그에게 자신의 지지세력들과 연정을 구성할 것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모스크바 라디오방송이 보도했다. 이에앞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모스크바공항에서 크렘린관저로 돌아온 직후 발표한 첫 성명에서 『나를 축출하려던 쿠데타가 실패한 것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의 승리』라고 강조하고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소련은 큰 재난을 겪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시 미국대통령은 그동안 주저해왔던 대소직접경제원조 제공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했고 유럽공동체(EC)와 일본등도 소련에 대한 지원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 고르비 복귀 소식이 반가운 예레멘코 소 대사대리

    ◎“소­한유대 모든 분야에서 가속화확신/콜레라핑계 고위회담 기피 우스운일” 『27년동안의 외교관생활중 가장 길고 어려웠던 사흘이었습니다.그동안 쿠데타에 맞선 소련국민들에게 지지와 성원을 보내준 한국정부와 국민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본국에서 개혁에 반대하는 강경보수파들의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대통령직에 복귀한 22일 아침 주한소련대사관의 로엔그린 예레멘코대리대사(52)는 참으로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올레그 소콜로프대사가 본국에서 휴가중이었기 때문에 주한대사관의 총책임자로 누구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본국정세의 변화에 온갖 신경을 다 썼기 때문이다. 그는 『타스통신을 통해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그땐 대통령이 체포됐는지 어떤지 몰라 불안했고 매우 슬펐다』면서 『이제 국민들이 쿠데타를 물리친 만큼 소련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소련의 장래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가 여기서 끝나면 안된다.개혁은 시작하면 계속해야하는 것이다.자전거가 굴러가지 않으면 쓰러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고르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으로서 존경한다.소련의 민주화를 추진하는데 교량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실세로 떠오르고 있는 것처럼 외신은 전하는데. 『옐친이 쿠데타기간중 국민에게 반쿠데타를 직접 호소한 것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같다.그도 이미 개혁의 맛을 봤으며 연방대통령(고르비지칭)밑의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일 뿐이다. ­한소관계는 우리의 북방정책추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소관계의 장래를 어떻게 내다보는지. 『기존의 유대관계가 계속 진전할 것으로 낙관하며 특히 정치·사회·문화·경제 등 모든 분야의 협력이 더욱 가속화되기를 희망한다』 ­북한에 대해 매우 잘 아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난 57년부터 8년동안 세차례에 걸쳐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에 2등·1등서기관과 참사관으로 근무했다.지난 88년11월엔 셰바르드나제 당시외무장관의 북한 공식방문준비단으로 평양에서 김일성주석과도 만났다.어제 신문에서 북한측이 남북고위급회담을 한국의 콜레라비상때문에 판문점에서 열자고 제의를 했다는 뉴스를 봤는데 우스운 얘기다』 소련 모스크바국립대 동양대학에서 우리말을 익힌뒤 64년까지 소련과학아카데미에서 몇년동안 근무하다 외무부에 들어온 예레멘코대사대리는 모스크바에있는 부인과 역시 모스크바의 한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외딸(34)과 떨어져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3일천하」로 끝난 쿠데타의 부담을 던 탓인지 활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소 대사관·상의 활기/항공사엔 모스크바행 예약 쇄도 ○…서울 용산구 한남동 262 청산빌딩 2층에 자리잡은 소련대사관은 예레멘코대리대사가 상오8시57분쯤 출근한데 이어 유학생·기업인 등의 비자발급도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강남구 삼성동159 공항터미널 6층에 있는 소련연방상공회의소 주한대표부(소장 발레리 리자로프)는 이날 소련인 직원 5명과 한국인 직원 1명이 평소보다한시간 빠른 상오8시쯤 출근해 본국에서 전해오는 텔렉스와 타스통신 등을 지켜보며 쿠데타실패에 안도하는 표정. ○…이 건물1층의 소련국영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 서울지점(지점장 파블리오크 비탈리)도 비행기 좌석을 예약하기 위해 걸려오는 문의전화를 바쁘게 받는등 정상업무에 들어갔다. 예약과 직원 오모양(25)은 『지난 20일과 21일 이틀동안 비행기 이륙이 가능한지,또는 예약을 취소할수 있는지에 대해 문의가 쇄도했으나 오늘은 상오에만 20여통의 비행기 좌석 예약문의가 들어와 바빴다』고 말했다.
  • 소 쿠데타 61시간만에 왜 실패했나

    ◎“공산회귀는 불용”… 국민이 등돌렸다/명분없는 거사에 군수뇌부 적전분열/경원동결등 서방의 강경대응도 큰 몫 전세계에 충격을 던진 소련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이유로는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강렬한 저항 ▲저항선봉장으로 나선 옐친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 ▲군장악의 실패등을 들수 있으며 그외에 간접적인 원인으로는 소련에 대한 서방세계의 강력한 압력도 들수 있다.그러나 한마디로 말한다면 소련국민들의 호응을 전혀 받지 못한 것이 쿠데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그것은 또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국민들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모하게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뜻이기도 하다. 3일간의 짧은 기간동안이긴 하지만 탱크로 무고한 시민을 깔아뭉개는 무자비한 무력탄압 앞에서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시위금지령과 통금령을 무시하고 20일 하룻동안에만 80만에 가까운 시민들이 반쿠데타 시위를 벌이는 한편 육탄으로 탱크를 저지한 소련국민들의 용기는 진정 놀라운 것이었다.과거 수차례에걸친 소련에서의 정변때마다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소련국민들이 이처럼 용기있게 변한 것은 바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개방정책이 소련국민들의 의식수준을 크게 향상시킨 결과라고 할수 있다.따라서 이번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것은 결국 쿠데타 주역들이 고르바초프의 신병은 체포할수 있었지만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이 국민들의 가슴속에 불어넣은 자유정신마저 가둬둘수는 없었던데 따른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지난 3일간의 쿠데타 진행과정을 지켜보면 이번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아무 계획도 없이 『일단 일부터 일으키고 보자』는 형태로 상황이 벌어졌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이들은 그동안 누려오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지난 20일 체결될 예정이었던 신연방조약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저지해야겠다는 초조감에서 쿠데타 성패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군장악과 국민동향,지도부내의 결속등을 사전에 치밀하게 점검하지 못한 상태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처럼 사전준비가 미비된 상태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과거처럼 무관심으로 나타나지 않고 적극적인 저항으로 나타나자 비상위는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쿠데타의 절대적 동조세력으로 생각했던 공산당이 중앙위원회 성명을 통해 쿠데타를 비난하고 나선 것은 비상위에 결정적인 정신적 타격이 된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타격은 비상위내부의 적전분열로 나타났다. 쿠데타 발생 이틀이 안돼 비상위의 8인 멤버중 3명이 『건강상의 이유로』사임했다는 것이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도부내의 분열과 함께 군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 것도 쿠데타 실패의 중요한 원인이다.비상위는 당초 군부내에 냉전종식에 따른 군위상 축소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판단,일단 쿠데타가 일어나면 군 대다수가 이에 동조할 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물론 군부가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자 평소 「국민의 군」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던 소련군은 『우리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돌릴수는 없다』는 쪽으로 급선회함으로써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됐다. 이번 쿠데타에서 서방이 보인 대응도 쿠데타실패를 간접적으로 도운 한 원인이 됐다고 할수 있다.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이 전해지자 서방측은 한결같이 고르바초프의 복귀를 요구하며 서방의 경제지원을 갈구하는 소련에의 원조를 동결시켰다.서방세계는 또 반쿠데타 저항세력의 선봉에 선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보냄으로써 옐친으로 하여금 국민저항을 극대화할수 있도록 했다. 결국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조속한 개혁의 완결이란 점을 무시하고 오히려 개혁을 지연내지는 후퇴시키는 쪽으로 기치를 들고 시작됐다는 점에서 소련에서의 쿠데타는 처음부터 실패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고 국민들의 진정한 바람 앞에선 무력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보여준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할수 있다. ◎“3일천하” 쿠데타 일지/비상위 구성→불복선언→서방 경원동결→유혈충동→비상위 분열→병력 철수→고르비 귀환 소련의 강경보수파가 21일 소련역사상 처음 「월요정변」으로 기록될군사쿠데타를 야기한지 3일만에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해체됨으로써 이들의 꿈은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모스크바정변 소식이 전해진것은 19일 상오4시.소련전역에 6개월시한의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언론과 출판물의 검열이 시작됐다.방송국들도 쿠데타군에 접수되어 방송이 통제됐다. 타스통신은 크리미아반도 휴양지에서 휴가중이던 고르바초프가 실각되었다고 전하면서 대통령직을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이 승계하고 8인으로 구성된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전권을 인수했다고 보도했다.그러나 기세 좋게 몰아 붙이던 쿠데타세력들은 옐친의 시민 불복종운동촉구와 총파업선동으로 시작부터 예상치않던 장애물에 직면했다. 보수파들에 의해 야기된 쿠데타가 시련을 맞기 시작한것은 정변이 발생한지 8시간만인 19일 정오.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포고령을 무효라고 선언하며 반쿠데타 봉기를 부추기자 모스크바 시민들은 이미 모스크바시내에 진입했던 중무장 소련군과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며 강력히 저항했다.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휴가를 중단하고 긴급대책회의를 연뒤 기자회견을 갖고 하오5시 소련의 군사쿠데타를 강력히 비난했으며 대소원조를 보류할것임을 시사했다. 이튿날 쿠데타세력들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상오6시 일류신76 수송기 60대를 동원,모스크바로의 병력을 증강했으나 이에 맞서는 소련국민들의 시위는 세를 더해갔다. 그후 러시아공내에 주둔하고 있던 무장병력들은 러시아공 의사당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으며 21일 새벽 급기야 유혈충돌로 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처음의 상황과는 달리 쿠데타세력이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주춤거리고 서방세계의 외압이 가중되는 가운데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이날 최후의 「히든카드」를 내보였다. 군내 강경파인 모이셰프군참모총장이 전면에 나서고 그로모프중장(전아프가니스탄 주둔군사령관)과 바렌니코프 지상군총사령관이 실세로 급부상한 것이 그것이다. 쿠데타 지도자들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듯 「최후의 항전」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으며 무력충돌도 불사하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뒤 10시간만에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듯 강경입장을 누그러뜨리고 고르바초프와의 면담을 시도했다. 루키아노프 소연방 최고회의의장이 크림반도로 고르바초프를 만나기 위해 떠났으며 소련 국방부는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역에 배치됐던 병력들에 대해 철수명령을 내렸다.이어 모든 포고령이 무효화되고 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 귀환길에 오름으로써 보수파들이 주연한 「쿠데타」드라마는 61시간만에 막을 내렸다.
  • 소 쿠데타 실패/고르비 대통령직 복귀

    ◎비상위 8인 체포,곧 재판회부/군 철수… 통금등 포고령 무효화/모스크바 이기동특파원/옐친 급부상… 오늘 긴급간부회의 소집 유혈사태까지 빚으며 내란위기로 치닫던 소련의 반개혁 쿠데타가 실패로 끝났다.이에따라 크리미아휴양지에서 연금상태에 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하오 모스크바로 돌아왔으며 연방최고회의는 그의 대통령직을 복권시켰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쿠데타 주도세력인 8인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20일 해산됐고 8인위원들도 대부분 체포되거나 도피한 것으로 전해졌다.이들은 모두 재판에 회부될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와 발트3국을 비롯한 비상사태선포지역에 배치됐던 모든 연방군 병력도 이날 철수를 시작했으며 모스크바를 비롯한 소련 전역은 축제분위기를 이뤘다. 연방간부회의는 22일 긴급회의를 열고 향후 정치일정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쿠데타의 실패에 따라 반쿠데타 선봉에 섰던 옐친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강화됐다. 【모스크바 AP 연합 특약】 고르바초프는 21일 모스크바로귀경길에 올랐다고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보좌관이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연금상태에 있던 크리미아반도의 휴양지로부터 루키야노프 연방최고회의 의장등과 함께 모스크바로 떠났다. 【모스크바 AP 연합】 소련 연방최고회의 지도자들은 21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축출기도 쿠데타를 비난했으며 쿠데타 지도자들에 의해 내려진 모든 포고령을무효화했다고 연방최고회의의 유리 카리아트킨 대의원이 말했다. 그는 연방최고회의가 모스크바의 야간통행금지령과 독립적인 언론매체의 보도금지령 등 쿠데타 주도세력들이 내렸던 모든 포고령을 무효화했다고 덧붙였다. 【모스크바 타스 AFP 연합】 소련 국방부는 모스크바를 비롯,비상사태가 선포된지역에 배치된 모든 연방군 병력에 대해 철수를 명령했다고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21일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국방부가 비상사태 선포 지역으로부터 모든 부대와 분견대 병력의철수를 이행토록 하는 결정을 채택했다고 전했다. ◎TV 정규방송/언론검열 해제 【모스크바 AP 연합】 쿠데타 세력들이 모스크바를 떠남에 따라 쿠데타발생이후 방송이 중단됐던 소련의 TV와 라디오가 21일 방송을 재개했으며 관영 타스통신은 독립적인 출판물에 대해 내려졌던 출판금지령이 해제되고 있다고 전했다.
  • 빗속의 모스크바 온통 환호물결/이기동특파원 「대반전 현장」서 급전

    ◎“시민의 승리… 동조세력 처벌 안해”/옐친/검열중단에 “고르비 축출항의”기사/프라우다/수㎞ 탱크행렬 사라지자 시민들 안도 ○…소련군 탱크들이 물러가고 쿠데타를 주도한 8인이 비행기로 도주 혹은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21일 하오 러시아공화국 정부청사앞 광장에는 여전히 10여만명의 시민들이 운집. 정문앞에 모인 사람들은 현관위에 설치된 대형확성기를 통해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대의원들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소련군 탱크에 깔려 죽은 사람들을 국가유공자로 간주해 그 가족들에게 공화국 정부에서 연금을 주기로 결정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수많은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 또 쿠데타 세력들의 명령에 따라 모스크바에 진주했던 군인들을 비롯,KGB·경찰 등 모든 쿠데타 동조세력들에 대해 일체의 처벌도 하지 않겠다는 옐친의 포고령도 발표. ○…정부청사안 프레스센터로 들어가는 정문입구에서는 군복을 차려입고 각목들을 든 러시아시민군들이 출입자들을 일일이 체크했다.기자가 프레스 카드를 내보이고 출입을 요청하자 가방을 열어소지품을 일일이 검사한 뒤에야 들여보내 주었다.이런 절차를 3번이나 거친뒤에야 프레스센터내 공보책임자에게 안내됐다. 그러나 이 공보책임자는 『모든 상황이 아직 유동적이어서 2∼3일 뒤에나 정리된 정보들을 내놓을 수 있다』면서 일체의 코멘트를 피했다. 청사구내와 뒷마당에는 간밤의 긴장을 말해주는 잔해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수백개가 됨직한 보드카 빈병들이 흩어져 있고 천막·음식찌꺼기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21일 하오2시쯤 모스크바 남서쪽 외곽도로에는 병영으로 복귀하는 탱크 수백대가 수㎞에 걸쳐 목격됐다.하오4시가 되자 철수가 완료된듯 시가지에서 쿠데타군의 탱크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러시아공 정부청사로 가는 칼리닌가 주변에는 옐친지지 탱크들이 백·청·적 3색의 러시아국기를 당당히 내걸고 서 있었다.탱크병들은 시민들이 건네준 화환들에 싸여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하오들어 비도 그치고 칼리닌 다리위에는 바리케이드도 많이 치워졌으며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긴장감이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21일 쿠데타 발생 이후 처음으로 언론검열을 중단하라는 호소문과 함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축출에 항의하는 상당량의 기사를 게재하는등 크렘린 당국과의 전통적인 유대를 단절하는 등 이례적인 태도를 취해 눈길. 쿠데타 지도부에 의해 발행이 허용된 7개 매체들 가운데 하나인 프라우다지는 1면에는 쿠데타 지도부가 발표한 통금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시위에 대한 기사를 동시에 게재. 프라우다는 이와함께 강경파들의 권력장악에 대한 항의를 호소하는 옐친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공정부대 요원들이 러시아 정부청사에 집결하고 있다고 전언. 프라우다는 이어 고르바초프의 축출과 관련,런던과 파리,본,워싱턴등의 부정적인 반응을 게재해 외국의 비난을 무시한 관영 타스통신과는 대조적인 모습. ◎철수군인들 “우린 영원히 떠난다” ○…성바실대성당과 시청 등 모스크바 시내 중심가에 배치돼있던 소련군탱크 및 병력이 21일 대부분 철수해 고리키가의 차량통행이 재개되는 등 모스크바 시내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연도에 나온 시민들은 철수하는 군인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냈고 군인들도 『우리는 영원히 떠난다』고 말했다. ○…보리스 옐친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을 중심으로한 쿠데타반대세력들은 이들 「비상위」8인을 국법질서문란을 이유로 적법절차에 따라 재판에 회부할 것이 확실하다.옐친등 개혁주의자들은 이들이 일으킨 쿠데타를 「초헌법적이며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해온 이상 8인을 재판에 회부,장갑차와 탱크를 앞세운 「강제명령」만으로는 산적한 소련문제를 해결할수 없음을 전세계에 알릴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쿠데타반대세력의 중추역할을 한 러시아공의회 건물을 에워싼 채 시위군중들과 충돌,4명의 소련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소련군병사들에 대한 처벌은 없을 것 같다. 옐친은 이와관련,『이들은 상관의 명령에 복중했을 뿐』이라고 지적,『소련헌법을 준수한다면 처벌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소련 발트해연안의 에스토니아 공화국에 이어 라트비아 공화국도 21일 소련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고 인근 리투아니아 공화국 대변인이 말했다. 이 대변인은 현재 라트비아 공화국과 연결되는 모든 전화통화가 두절됐으며 라트비아 공화국 의회에 의해 의결된 이 독립선언은 리투아니아 공화국 자체의 통신망을 통해 전해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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