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읽기아는만큼 보인다/이재근(서울광장)
구소련의 「6·25외교문서」가 주는 교훈적인 의미는 크다.역사적 진실은 결코 감춰질 수 없다는 진리가 그것이고 과거의 사실은 같은 형태로는 두번다시 되풀이될 수 없다는 확신을 사람들에게 심어준것이 또다른 하나다.6·25를 놓고 북침이니 남침유도전쟁이니 하는 속절없는 강변이 이제 무슨 근거를 갖겠는가.역사는 세월속에 확연해지고 사물은 아는만큼 보인다는 교훈이다.우리의 북한관이나 대북한인식도 그래야한다.
열이틀간에 걸친 장의행사와 추도대회의 장막뒤에 무슨 꿍꿍이속이 있었는지는 조만간 밝혀질 일이다.「그 아버지의 아들」이 후계권력자로 일단 굳혀진 사실도 알려졌다.그러나 그것이 곧 김정일이 그 자리를 계속 유지한다는 보장은 아니라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국내외적으로 체제유지에 불리한 요인이 가중되고 내부반목이 첨예화할 경우 큰 변화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새가 죽을때 소리가 아름답고 사람이 죽을때 말이 착하다』(조지장사 기명야애 인지장사 기언야선)는 옛말이 있다.50년 독재자의 마지막은 어떠했을까.그들 장의기간 내내 그것을 생각했다.그건 그렇고,김일성은 자신의 죽음을 다분히 예감했으리라고 나는 본다.죽기전에 가슴에 감춰둔바 과거의 잘못을 털어놓고는 뭔가 하나라도 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남북정상회담이 그것 아니었을까.카터씨에게 얘기했다는 일흔살이상 이산가족 고향방문제의도 사실이라면 그렇다.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이고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그러나 어떻든 김일성은 희대의 음모가요 책략가였음이 분명하다.그는 정상회담을 제뜻대로 끌고가다가 여의치않거나 중동무이하는 경우 아들에게 「물려준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김일성은 근년에 들어 유난히 김정일후계체제를 비롯한 통치권인계작업과 연관된 언행을 많이 한것으로 나타났다.아들후계구도 및 주체사상의 강화와 관련해서는 『내가 우리인민의 토양에 씨를 뿌리고 키워온 주체사상을 김정일동지가 무성한 숲으로 가꾸어 풍만한 열매를 맺게했다』『그가 없으면 동무들도,사회주의도 없다』『그만큼 신념이 강하고 배짱이 센 사람은 처음봤다』는 등의 공언이 그런 것들이다.밝혀진 바로는 최근 수년동안 김일성은 다만 「군임」해왔을뿐 김정일이 당·정·군의 전권을 장악했다.김일성은 세습후계체제의 공고화에 모든힘을 쏟았다는 얘기다.오랜기간 타스통신 평양특파원을 지낸 알렉산더 레빈은 그의 저서에서 김부자의 「일체관계」를 이렇게 묘사한다.『내가 목격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1984년 평양주재 소대사관에서 일어났던 일이 있다.그곳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안드로포프 서기장의 서거에 조의를 표하러 와있었다.서기장과 개인적으로 친분을 가져왔던 김일성은 추억에 잠긴듯 조금은 감상적으로 보였다.그는 소련대사 슈브니코프와 대화를 더 하기위해 강당중앙에 멈춰섰다.그러자 그보다 앞서가던 김정일은 돌아서서 「갑시다.갑시다」하고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조급히 재촉했다.아무것도 거칠것이 없다는 몸가짐이었다.김일성은 갑자기 대화를 중단하고 온순하게 아들의 뒤를 따라갔다.이 광경에 놀란 우리는 그후 오랫동안 이 「사건」을 분석했다』
독재자 아버지는 죽었고 그 아들이 아버지와 형식적으로나마 나눠가졌던절대권력을 아우르게 됐다.「한몸 두머리」의 권력이 지금 「한몸 한머리」로 되는 마당이다.그래서 우리는 이제 전체 북한읽기는 물론 그 한 머리 권력주체의 인물탐구에 철저해야한다.남북정상회담이나 이산가족 교류를 위한 남북회담의 진전을 위해서도 그러하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은 원칙이 유효하다는게 우리 입장이다.원칙과 정신은 살아있다는 말이지만,단 새로운 상황 새인물에 맞게 조정돼야한다고 본다.남북정상회담은 이제야말로 북이면 북 어느 한쪽의 책략으로 이뤄질 일이 아니다.처음 우리쪽 여론이나 국민정서가 그러했듯 시기는 여유있게 잡고 장소도 평양이나 서울아닌 제3의 지역이 좋다.판문점도 그렇고 공해상의 어느 함정에서도 안될것이 없다.그리하여 차츰 평양으로 서울로 가고 오자는 것이다.
상황은 많이 변했고 그래서 사람을 아는 일이 또한 중요하다.김정일을 더욱 연구하고 탐색해야한다.현재로선 그가 정상회담의 한쪽이 되는것이기 때문이다.그들 장의행사 전기간에 걸쳐 말한마디 하지않았고 공개석상에서는 병색이 완연한 넋나간 모습이었는데 왜 그랬는지를 정확히 알아내야한다.그의 성격,언행,사고,감정처리가 어떻든 남북한 관계변화와 직결되는 것이라면 우리의 지피지기는 단순한 인물탐구가 아닌 큰지혜에 속하는 것이다.『사람은 아는만큼 느끼고 느낀만큼 보인다』고 누군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