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고르는 우리당
열린우리당이 보폭을 조절하고 있다.일단 오는 4일부터 시작되는 17대 첫 국정감사가 개혁법안 처리에 신경을 덜 쓰게 하고 있다.물론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사 진상규명,신행정수도 건설 등 주요 현안을 11월에 처리키로 한 데 따른 시간적인 여유가 생긴 탓도 있다.
일부에서는 ‘휴지기’에 접어들었다고도 했다.하지만 이보다는 소속 의원들이 추석 귀향활동을 통해 확인한 냉담한 민심이 근본적인 원인인 것 같다.민생회복에 최우선 가치를 둬 달라는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11월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을 비롯한 과거사 관련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각종 개혁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열린우리당으로선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30일 상임중앙위원회에서도 이같은 흐름은 여과없이 드러났다.이부영 의장은 “민심의 따가운 질책과 바람들을 받았다.”면서 “이번 정기국회에 추석 민심을 정말 그대로 잘 반영하고,특히 민생과 관련한 법을 추진하는 데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수행했던 이미경 상임중앙위원은 언론인 교류 활성화를 강조한 러시아 이타르타스통신 사장과의 대화록을 소개할 뿐 한나라당과 각을 세우고 있는 과거사,친일진상규명,국보법 폐지 등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회의에선 ‘서울시 관제데모 진상조사위’ 장영달 위원장만이 유일하게 한나라당 소속인 이명박 서울시장에 대한 공세를 거두지 않았다.
추석 연휴 전 대대적 공세의 연장선상이기도 하다.하지만 장 위원장도 “이 시장이 서울시 예산을 불법전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해 투자하고,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문제 판결을 앞두고 영향을 미치겠다는 의도로 불법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고 공격했으나 “이 시장이 스스로 반성을 하고 제자리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강도는 현격히 누그러뜨렸다.같은 맥락에서 ‘서울시 관제데모 의혹’과 관련한 자료와 업무를 국회 행정자치위 소속 의원들에게 모두 넘겨줬다.
이같은 열린우리당의 변화에 대해 민병두 기획위원장은 “추석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면서도 “개혁법안을 11월에 처리키로 한 만큼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또 한나라당이 정부·여당을 ‘좌파정부’로 규정하는 등 이념 공세를 펼치는 데 일절 맞대응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오는 30일 파주,거창,해남,강진,철원 등에서 치러질 기초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20%인 반면,한나라당이 30%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작전상 후퇴를 요구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