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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金 중위사건 공세 전환/경비병 북한군 접촉 등 현정권과 무관

    ◎“한나라당 주장은 자가당착일뿐” 반박 여권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경비병들의 월경 및 북한군 접촉과 金勳 중위 사망사건에 대해 공세로 전환했다. 이들 두 사건은 구 정권때 일어난 것이며 현 정부는 사태 수습을 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때문에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千容宅 국방장관 해임 건의안은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는 시각이다. 국민회의 鄭東泳 대변인은 14일 “한나라당이 제기한 국방장관 해임 건의안의 시점이나 논리에 있어 문제가 있다”면서 “판문점 경비병의 북한군 접촉은 기본적으로 전 정권에서 발생해 마무리된 사건으로 국방장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밝혔다. 구 여권의 책임론을 집중 거론했다. 북한군 변용관 상좌가 귀순한 것은 2월3일이고 이 사건이 종결 처리된 시점도 구 정권 때라는 것이다. 鄭대변인은 “金東鎭 전 국방장관은 2월10일,林載文 전 기무사령관은 2월18일 경비병들의 대공용의점이 없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처리했다”면서 “경비병들의 월경과 대공 용의점은 현 정부와 무관하며 金중위 사망과의 연계성은 최근에 드러난 일”이라고 역설했다. 잘못이 있다면 金전장관 등 구 정부의 지휘부가 책임져야 하며 千장관과는 무관하다는 논지다. 그러나 金중위 사망사건에 대해서는 신중론을 보이고 있다. 2차에 걸친 수사에서 자살로 드러난 것이 3차 조사에서 타살로 밝혀질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3차 조사 결과 및 청문회를 지켜본 뒤 그 때 가서 千장관의 해임건의를 해도 늦지 않다고 여운을 남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 사건 역시 구 정권 때 일어난 일로 수사상의 잘못은 있을지언정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은폐·축소 사실은 없다고 일축했다. 千장관은 이날 국민회의 의총에서 “과거 정권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정정당당하게 한점의 의혹도 없이 조사해 군이 국민에게 신뢰를 받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 金 중사 혐의 완강히 부인/金勳 중위 사망 軍 수사 점검

    ◎“북한군 접촉했지만 포섭 안됐다” 주장/金 중사외 제3의 인물 관련여부 등 추적 “단순히 호기심에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군사분계선 상에서 북한군과 만났다. 결코 포섭되지 않았다” 지난 4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金榮勳 중사(28)는 12일까지 9일동안 기무사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단순 접촉의 정도를 지나 북한에 포섭됐던 것은 아닌가”라는 추궁에 이처럼 일관된 대답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무사는 지난 2월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제3벙커에서 권총에 맞은채 숨진 金勳 중위 사망사건과 관련,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金중사가 ‘金중위의 타살’에 연루돼 있다면 이를 설명할 만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金중사에게 이 대목을 집요하게 캐물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는 30차례 가량 북한군과 접촉했으면 포섭됐을 가능성이 크고 전 북한군 상위 변용관씨의 귀순에 따른 보복으로 북의 지령을 받고 金중위를 살해했을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金중사의 완강한 부인으로 수사에는 진전을 보지못했다는 것이다. 다만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 조사한 전역병 및 현역 병사 11명으로부터 ‘金중사 외에 여러 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군 적공조원들과 만나고 돌아왔다’는 진술을 확보,金중사 말고 제3의 인물이 관련됐을 가능성도 함께 조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상황인데도 기무사는 이번 주 안에 수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 구체적인 혐의를 확인하고도 ‘연막전술’을 펴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군 수사 관계자는 이와 관련,“새로 드러난 숱한 정황증거에도 불구하고 金중사의 북한군 접촉과 金중위 사망사건을 연계시킬 만한 구체적인 물증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다른 군 고위 관계자는 “올 1월5일 경비대대에 전입,신임 소대장 교육등을 받은 후 1월20일부터 사고일인 2월24일까지 2소대장으로 근무한 金중위와 부소대장이던 金중사가 함께 근무한 기간은 1개월여에 불과하다”면서 “이토록 짧은 기간에 金중위에게 위해를 가해야 할 급박한 사정이 있었는지를 찾아내는 게 이번 사건을푸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金중사의 자백에 의존한 수사가 벽에 부딪히자 14일 새벽 金중사의 신병을 넘겨받은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은 金중위 사망사건 발생 당시 근무했던 전·현역병 등 모든 소대원들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金중사와 대질 신문을 하는 등 구체적인 물증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까지 金중위 사망사건과 관련해 제기된 모든 의문점을 리스트로 정리해 자살 또는 타살가능성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 ‘金勳 사건’ 安秉熙 변호사 인터뷰

    ◎“공범 최소 2명… 타살 확실” “훈이는 자살한게 아닙니다.적어도 2명이 가담한 타살입니다” 10개월째 金勳 중위 의문사 사건의 진상 규명에 관여하고 있는 安秉熙 변호사(36)는 13일 기자와 만나 이렇게 주장했다. 安변호사가 金중위 사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버지 金拓씨(55·예비역 중장)와의 의리 때문.그는 30사단과 1군단에서 법무참모로 근무하면서 당시 사단장,군단장을 지낸 金씨를 1년7개월간 모신 인연이 있다. 육사 생도였던 金중위도 이때 처음 만났다.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사망 두달 전인 지난해 12월.“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에 근무하게 됐다고 하더군요.표정도 밝았고 의욕에 차 있었어요” 두달 뒤 金拓씨로부터 金중위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때부터 사고현장,육군본부,국방부,국회로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그는 사고 당시 핏자국 방향 등 현장 증거와 법의학자들의 소견,전역병들에게서 들은 정황 등을 종합해 볼 때 金중위는 적어도 2명에게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 모든 군 의문사 철저규명을(사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경비소대장 金勳 중위 사망사건을 계기로 80년대 이후 군(軍)내에서 일어난 모든 의문사도 재조사키로 한 것은 당연하고 잘한 결정이다. 金중위의 경우뿐만 아니라 그동안 군이 밝힌 사망원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유가족들이 많은데다 자식을 군복무중 잃은 유가족에게 정확한 사망원인을 알려주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군은 한창 혈기가 왕성한 각양각색의 젊은이들이 모여있는 특수집단이다. 게다가 개인화기와 폭발물등 위험한 장비들을 가지고 각종 훈련과 작전을 해야하는 군에서 갖가지 사고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애통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죽음의 원인이 석연치 않을때 유가족들의 안타까움과 억울함은 대단할 것이다. 군대 안에서 일어나는 사고사의 경우 부대 밖에서는 구체적인 사고 내용이나 원인을 알 길이 없다. 군에서 통보해주는 대로 믿을 도리밖에 없다. 그러나 사고 경위나 사망원인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의문의 사망사고가 적지않아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이나 재조사를 탄원하지만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그동안의 현실이었다. 양쪽 가슴과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숨진 병사나 머리의 함몰상으로 과다한 출혈때문에 숨진 하사관을 자살이라고 하는 군의 처리를 믿을 유가족이 어디에 있겠는가. 육군 중장출신의 金중위 아버지가 30여년 동안 몸담았던 군을 상대로 그토록 애타게 타살가능성을 제기했지만 끝내 외면당했을 정도이니 다른 경우는 오죽하겠는가. 군에 따르면 매년 각종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400여명에 이르며 이들 대부분이 자살로 처리되고 있다. 자살의 경우 유가족들은 대개 사고 경위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가족을 잃은 슬픔도 견디기 어려운데 재조사를 진정하거나 탄원하려고 몇년동안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고생까지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군 의문사에 대한 이번 재조사로 유가족들의 의혹이 명백히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그래야만 군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국민들이 안심하고 자식들을 군에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앞으로 군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사의 조사에는 민간 전문가와 유가족대표를 참여시켜 한점 의혹이 없도록 하는 것을 제도화하기 바란다. 지금처럼 사고조사를 군에게만 맡긴다면 문책이나 복잡해질 뒤처리를 피하기 위해 손쉽게 적당히 처리하는 일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北 軍접촉 병사 다수 확인/金 중위 死因 내주중 규명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북한군 접촉사건을 수사중인 군 수사당국은 11일 현재까지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조사한 전역병 및 현역 병사 11명으로부터 “구속된 金榮勳 중사 외에 여러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군 적공조원들과 만나고 돌아왔다”는 진술을 확보,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군 수사관계자는 “전·현역병들에 대한 조사결과 당시 金중사뿐 아니라 다른 소대원들의 불법행위들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면서 “그러나 金중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金勳 중위 살해 혐의는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金중사 이외 다른 병사들도 북한군과 활발히 접촉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이들도 金중위 사망사건과 관련돼 있는지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주말까지 金중사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짓고 다음주 초부터 金중위 사망사건과의 연관성을 본격 수사할 계획”이라면서 “늦어도 다음 주중이면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 북한군 상위 변용관씨가 지난 2월 귀순한 직후 ‘북한군 적공조원들이 JSA에서 한국군 경비병들과 빈번하게 접촉하며 포섭공작을 펴고 있다’고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작전·지휘권을 가진 주한 유엔군사령부는 어떠한 대응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경비대대 중대장이었던 金益賢 대위(32·육사·영어강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변 상위 귀순 전후 나를 비롯,미군 경비대대장 등 현지 지휘관들은 남북한 병사들의 접촉사실을 전혀 몰랐으며 유엔군사령부로부터 이를 저지하라는 지시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 金勳 중위 사망의혹 파문­당시 중대장 일문일답

    ◎“金 중사 北 접촉사실 전혀 몰랐다”/美 사절단 시찰 대비 사건형장 페인트칠/총기대장 관리 철저해 조작은 불가능 金勳 중위 사망 당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경비대대 중대장이었던 金益賢 대위(32·육사 45기)는 11일 국방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당시 정황 등에 대해 진술했다. ●사건 당시 상황은 당일인 2월24일 오전 10시쯤 군단 관계자가 견학을 나와 2시간쯤 함께 돌아다녔다. 사무실로 돌아와 커피를 마시는데 상황병으로부터 “金勳 소대장이 총에 맞고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마침 미국인 대대장이 들어와 급히 보고를 했더니 곧 대대에 비상을 걸었다. 낮 12시30분쯤이었다. 이어 대대장과 함께 현장을 보았고 미국측 수사관과 한국군 수사요원,군의관 등이 속속 도착했다. ●증거인멸 의혹에 대해서는 사건 직후 金중위의 수첩을 회수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외부인과의 접촉을 자제하라는 상부의 지시도 없었다. JSA는 유엔사령부의 관할지역이기 때문에 기무사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 사건 직후 벙커 내부에 페인트를 칠한 것은 미군 수사기관의 양해를 얻고 한 것이다. 이틀 뒤인 26일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 미국 축하사절단이 시찰을 나온다고 한 때문이었다. ●북측의 포섭공작은 지난 96년 12월 부임한 뒤 순찰을 돌면서 북한 경비병들이 자신들의 상관이 보는 앞에서도 농담을 걸고 쪽지·담배·선전물을 던지는 것을 보고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 막기위해 대원들이 북측 유인물 등을 가져오면 특별휴가를 보내줬다. 하지만 金중사가 월북하는 등 북한측과 광범위한 접촉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소대장들의 보고도 없었다. 변용관 상위가 접촉했다는 사병들에 대해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만약 모두 사실이라면 나의 지휘 잘못이다. ●金중위,金榮勳 중사에 대한 인상은 金중위는 처음 보았을 때 착하고 선하다는 느낌이었지만 내성적이었다. 일은 열심히 했지만 경험이 부족해 보였다. JSA에서는 모든 것이 한국군과 다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 한다. 처음 부대에 왔을 때는 표정이 밝았지만 3주간 집체교육을 받은 뒤 얼굴이 어두워졌다. 부중대장은 “金중위가 ‘무력감을 느낀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고 사병들도 “소대장은 면담할 때 상대를 어색하게 했고 제대를 앞둔 장병에게 부럽다는 말도 했었다”고 말했다. 金중사는 다정다감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할 일은 다했다(자세한 언급은 회피). 자살인지 타살인지 수사 주체가 아니어서 말할 수 없다. ●총기 관리는 현장에서 발견된 金모 일병의 총을 지급받은 사람은 분명 金중위였다. 사건 직후 총기를 반납할 때 金중사는 자신의 총을 반납했다. 金중위의 총은 고장나 수리를 맡겼다. 총기 대장은 조작될 수 없다. 관리가 철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사인을 하는 일 등은 있을 수 없다.
  • 金勳 중위 사망의혹 파문­국회 국방위 중계

    ◎金榮勳 중사 북한군 접촉행위/정권교체기 정치배경 여부 추궁 국방위는 1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경비병들의 북한군 접촉과 金勳 중위 사망사건을 집중 추궁했다. 먼저 여당의원들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경비병들의 북한군 접촉에‘정치적’배경은 없는지를 따졌다. 국민회의 張永達 의원은 “북한군과 접촉한 金영훈중사가 간첩으로 포섭돼 활동한 것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우리쪽에서 첩보활동을 위해 보낸 것은 아닌지 알아봐야 한다”면서 접촉시기가 지난해 대선과 비슷한 점을 부각시켰다. 자민련 李東馥 의원은 “미스터리였던 95년 4·11총선 당시 판문점 북한군 무력시위 사건은 金중사의 북한군 접촉으로 단서가 나왔다”며 이번 사건과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의 연관성을 물었다. 반면 한나라당의원들은 정부가 이번 사건을 축소·은폐한 의혹을 집중 캐묻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한나라당 許大梵 朴世煥 의원은 “金중위는 정황상 타살 가능성이 많다”면서 “군 수사당국이 수사과정에서 사건을 축소·은폐한 의혹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답변에 나선 千容宅 장관은 “필요할 경우 특별합동조사단에 민간 변호사와 법의학자를 참여시켜 金중사 등의 대공 용의점과 金중위 사망사건의 연계성 등 모든 의혹에 대해 원점에서 재수사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千장관은 4·11 총선 당시 북한군 판문점 무력시위 사건과 관련,“내부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千장관은 또 귀순한 변용관상위가 ‘판문점 내에서 북한이 대남공작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진술한데 대해 “당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병사들의 대공 용의점에 대해 한번도 공식보고를 받지 못했다”면서 “최근에는 ‘대공 용의점이 없어 종결지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정권교체기여서 이 문제를 소홀히 했거나 직무유기했을 가능성도 있어 이 부분을 확실히 조사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千장관은 또 “카투사에 대한 지휘체계가 최선인지 한·미간 공동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우리측 정보기관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데도 유엔사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면서 이를미국측과 협의하겠다고 덧붙였다.
  • ‘金 중위 타살 가능성’ 진술 확보

    ◎국방부 조사단,金榮勳 중사 등 10여명 조사 金勳 중위 사망사건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병들의 북한군 접촉사건을 수사중인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은 10일 金중위가 살해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金중위 소대의 부소대장을 지낸 金榮勳 중사(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를 상대로 사건 당시의 알리바이 등을 집중 추궁했다. 이미 전역한 해당 소대 병사 10명도 참고인으로 소환,조사했다. 군 관계자는 “이들로부터 북한의 ‘공작조’와의 연계 하에 金중위가 타살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진술 등을 일부 확보한 것으로 안다”면서 “권총을 소지할 수 있는 장병이 金중위와 金중사를 비롯해 4명이라는 점을 중시,살해됐다면 金중위를 제외한 3명중 한 명이 용의자일 것으로 보고 정밀 조사중”이라고 말했다. 조사단은 金중사가 북한군 공작조조장과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찍은 사진과 이들이 통성명한 내용이 적혀 있는 메모지 등을 증거물로 확보했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金중사 등이 사건 발생일인 지난 2월24일하루동안의 부대내 행적을 지난번 육군 검찰부에서의 조사 때와는 일부 다르게 진술하고 있는 점을 중시, 사건 당일의 행적을 캐는 데 주력하고 있다. 조사단은 또 사인규명을 위해 JSA를 관할하는 미8군사령부의 협조를 얻어 금명간 JSA내 벙커와 소대장실 등에서 현장검증 및 총성 실험을 하기로 했다. 조사단은 이와 함께 그동안 金중위의 사인을 둘러싸고 유족 등이 각종 의혹을 제기했음에도 자살로 결론지은 육군 검찰부가 이 사건을 고의적으로 축소 또는 은폐했는지 여부를 조사,문제점이 드러나면 관련자 전원을 중징계할 방침이다.
  • 金 중위 死因 정확히 밝혀내야(사설)

    판문점 경비병사들의 북한 접촉사건과 함께 경비소대장 金勳 중위의 사망사건이 새롭게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군 당국의 자살 결론에 국회 국방위 진상조사소위가 金중위의 타살가능성을 지적하자 국방부는 이 사건을 전면 재조사키로 했다. 뒤늦었지만 군의 재조사 결정은 당연하며 철저한 조사로 金중위의 사망원인은 정확히 밝혀져야 한다. 金중위의 사망이 판문점 병사들의 북한접촉과 관련됐는지도 명확히 규명돼야 한다. 金중위의 사망원인은 지금까지 나타난 여러가지 정황과 증거들로 보아 자살보다는 타살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진전되고 있다. 재조사 결과 만약 金중위가 타살됐으며, 추측대로 북한에 포섭된 부대원에 의해 살해됐다면 병사들의 북한접촉 못지않은 엄청난 일이다. 우리 군의 정신자세와 안보의식에 근본적인 허점이 있음을 드러내며 군 기강을 뿌리째 뒤흔들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24일 낮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 벙커에서 머리에 권총을 맞고 숨진채 발견된 金중위의 사망원인은 그동안 논란이 계속됐었다. 사고 후 군 당국이 金중위가 부대운영의 부담으로 자살했다고 밝히자 유가족들은 여러가지 증거와 함께 타살가능성을 강력하게 제기했었다. 육군중장 출신인 金중위의 아버지가 이리저리 뛰며 혼자 힘으로 조사해낸 증거들은 누가 보기에도 타살가능성이 짙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金중위가 사망하기 얼마전 북한 경비병 상위의 귀순으로 북한이 보복을 공언하고 있었고 구속된 부소대장의 북한 접촉사실도 일부 알려져 있었던 상황이라면 가족들의 탄원이 없었더라도 金중위의 사망원인은 보다 정밀하게 조사됐어야 했을 것이다. 더구나 남북이 민감하게 마주하고 있는 판문점 경비구역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면 결코 가볍게 처리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金중위 사망사건을 서둘러 자살로 처리한 군 수사당국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 유가족들의 10개월에 걸친 재조사 요구와 과학적 증거들도 묵살했다. 경비병들의 북한접촉사실과 관련여부도 국회 조사소위의 문제제기가 있고서야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이 문제를 더이상 확대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덮어버리려 했거나 적당히 얼버무리려 했다는 냄새가 짙게 풍긴다. 최근 잇따른 군 관련 사고들로 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국방과 안보태세에 대한 걱정도 크다. 철저한 조사와 근본적인 대책으로 안보태세를 더욱 굳건히 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 ‘軍 의문사’ 모두 20여건/사례와 문제점

    ◎유족들 재수사 요구해도 묵살 예사/지금까지 대부분 자살·사고사 처리 자살 타살의 여부가 분명하지 않으면서 사인에 관한 진실이 은폐되거나 조작되었다는 의혹이 있는 죽음인 의문사는 특히 군부대 내에서 많이 발생해왔다. 군의 본질인 구성원간의 수직적 관계가 잘못되어 ‘석연치 않은 죽음’을 싹틔운 토양으로 변질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독재 정권 시기일수록 이 토양은 비옥해져 의문사가 많았다. 전국 민족민주 유가족협의회(유가협) 등에 따르면 의문사는 총 40여건에 달하며 이중 군부대 의문사가 20여건으로 절반이 된다. 특히 유가협은 군사독재정권인 5공과 6공 초기인 80년부터 88년 사이에 무려 18건의 군 의문사가 있었다고 밝혔다. 국정감사가 부활된 지난 88년 10월 국방부는 이제까지 군대에서 안전사고로 3,723명이,군기사고로 2,670명이 사망했으며 군기사고중 2,254명이 자살,나머지는 폭행으로 죽었다고 공식 발표했었다. 유가협이 제기한 군 의문사는 모두 성격결함,환경비관 등의 염세성 자살이거나 사고사인 것으로 처리되었다. 즉군에는 한건의 의문사도 없음을 천명한 것이다. 군 의문사 관련 가족들은 군부대가 자식들의 죽음을 연락하는 데는 크게 지체하지 않았지만 부대에 도착해도 상황을 설득력있게 설명해주기는 커녕 돌연사태에 경황이 없는 틈을 타 화장동의서를 받는 데 급급했다고 불평하고 있다. 유가협이 제기하고 있는 군 의문사는 5공 초기 시국관련 문제 대학생들을 강제징집하고 강제순화 교육을 실시한 ‘녹화사업’에서 처음 발생했다. 강제징집된 6명의 학생들이 프락치 역을 강요받으며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소문이 83년말부터 학원가에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5공은 국방장관의 국회보고를 통해 이들의 죽음이 모두 염세성 자살이거나 군기사고라며 의문사 의혹을 부인했다. 84년에 사망한 허원근의 경우 아버지가 앞가슴에서 어깨뼈를 관통하여 갈비뼈가 어깨 등뼈를 뚫고 나왔는데 어떻게 팔을 움직여 다시 총을 잡아 제 2, 제3의 총알을 쏠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하자 부검의로 나온 군의는 “총을 일곱발이나 맞고도 살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87년에 사망한 이이동의 경우 아버지가 지문채취와 부검 미실시,사체검안 및 현장검증 등에서의 의문사항을 들며 재수사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또 87년 박상구의 의문사에서는 농약을 먹고 병원에서 죽었다는 군부대의 설명과 달리 부대내에서 타살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우측 목 부근에 칼 자국이 있어 어머니가 손가락을 넣어보니 끝이 닿지 않았으며 목이 졸린 흔적이 역력했다.
  • 부대내 각종 비리 소상히 기록/金 중위 사망전 메모 노트 발견

    ◎‘탄약 은닉’ 등 전역병 진술과 일치 타살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金勳 중위는 지난 2월 숨지기 전 부대내의 총기분실·탄약은닉·음주사고 등 각종 비리를 메모식으로 노트에 적어두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金중위의 아버지 金拓씨(55·예비역중장)는 10일 기자들과 만나 “훈이의 유품으로 간직하고 있는 대학노트 1권에는 부대내의 각종비리가 소상하게 적혀 있었다”면서 “소대장의 위치에서는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당시 군기가 문란해졌음을 짐작케 한다”고 말했다. 노트에는 ‘총기 분실’ ‘탄(약)은닉 및 금기사건’, ‘총기장난,MP(헌병)체포’ ‘구타,동기끼리 때려’ ‘선임자 지적에, 선임자 멱살→소대 교체’ ‘초소근무지 총구 위협’ 등 군기 문란 행위가 89쪽에 걸쳐 적혀 있다. 이어 소대원들의 실명과 함께 ‘북쪽에 올라가기 12시간 전 음주’, ‘음주운전, 새벽 3시’라는 메모와 함께 ‘군복무규정을 지키지 않는 우리는 군인도 아니다. 우리는 거짓말쟁이다. 명예를 손상시켰다는 자책하는 메모가 영문으로 쓰여 있어 김 중위가 부대원들의 군기 문란 때문에 고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金씨는 “웬만한 비리라면 지휘관이 자신도 문책당할 수 있는데 노트에 이런 얘기들을 적어 놓지도 않았을 것”이라면서 “훈이가 부대내의 문제를 고치려고 혼자 고민하며 갈등을 빚다 반대세력에 의해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金씨는 “‘탄약은닉’이라는 메모만 봐도 ‘당시 실탄을 쏘다가 남으면 감춰두고 있었는데 어떤 때는 박스째 다량으로 보관한 적도 있었다’는 전역병의 진술과 일치한다”면서 “당시 부대 내에 많은 비리가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金씨는 “훈이가 죽은 뒤 전역병들로 부터 ‘군수품을 팔아먹고 나중에 남대문시장에서 보충했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군기가 엉망이었다”고 덧붙였다.
  • 金勳 중위 사망의혹 파문­청와대 시각·반응

    ◎“前 정권때 일… 진상규명 급선무”/金 중위 타살 가닥에 신경 곤두 청와대는 판문점 경비병들의 북한군 접촉 및 金勳중위 사망사건의 수사결과에 대한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서서히 金중위의 사인이 타살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자 여론의 추이를 면밀히 관찰중이다. 비록 전 정권에서 발생한 일이긴 하나 수사 등은 현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사건은 군내 기강과 사기문제가 본격 거론되면서 미사일 오발사고 등 잇따른 군내 사고와 겹쳐 파장이 증폭될 기미를 보이자 우려의 시각이다. 물론 현재는 철저한 수사가 우선이다. 전 정권의 일이나 현 정부로 이어진 사안인 만큼 정확한 진상규명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때문에 수사상의 오류나 이로 인한 문책 여부 등은 아직 ‘뒷전’이다. 朴智元 청와대대변인도 “수사결과가 나와야 될 것 아닌가”라면서 “곧 金大中대통령에게 수사내용이 보고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청와대는 일단 수사를 위한 여건은 마련됐다고 보고 있다. 유엔사 소속 군인들이 이제 우리 군부대로 전근된상태여서 철저한 조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사건발생지역이 유엔사 관할구역이어서 초동수사를 우리 군수사기관이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는 유엔사의 초기수사에 오류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어서 주목된다. 어떤 형태로든 마무리 수순을 밟아야 하지 않느냐는 게 청와대의 기류다. 朴대변인은 “아직은 무엇도 예단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으나 최근 군내 사고가 잇따른데 따른 국민불안이 심각한 수준이어서 처방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군의 사기”라는 관계자들의 언급을 감안할 때 수습처방이 확대될 것 같지는 않다.
  • 이제 내 아들 죽음 진실 밝혀져야/金 중위 아버지 金拓씨 인터뷰

    “피와 눈물로 보낸 세월이었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근무하다 지난 2월24일 의문사한 金勳 중위(25·육사 52기)의 아버지 金拓씨(55)는 9일 “이번 사건이 모든 의문사를 뿌리뽑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金씨는 사고 이후 아들을 잊지 못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밖에서 통곡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잠도 서너시간밖에 자지 못했고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꼭 풀어야겠다는 일념으로 가족들은 힘을 모았다. 아들의 죽음을 타살로 의심하게 된 것은 영결식 때였다. 영결식 도중 미군 수사기관 사람들이 와서 아들의 지문을 채취해 갔기 때문. 군의 초동수사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金씨는 스스로 증거 확보에 나섰다. 아내,처제와 함께 부대 근처에 살다시피하며 몇시간씩 눈물을 흘리며 병사들을 만나 사정하기도 했다. 갖은 고생끝에 아들이 자살할 때 사용했던 총에 지문이 없다는 점,머리 위쪽에 피멍이 있었으며 반항한 흔적이 있는 점 등 타살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아냈다. 그러나 군당국으로부터 번번이 묵살당했다. 육사 21기로 군단장을 거쳐 중장으로 전역한 예비역 장성인 金씨는 평생을 몸담은 군당국의 무성의한 태도와 싸우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나는 36년,아들은 6년의 군생활을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군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면서 “군당국이 사실대로 수사해 진실을 밝혀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 ‘북한군 접촉’ 은폐의혹 수사

    ◎국방부 “장관에 보고 안해 직무유기 혐의”/千 국방 “金勳 중위 사망사건도 전면 재수사” 국방부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 경비병들의 북한군 접촉 사건과 관련,군 수사기관들의 조직적인 직무유기 의혹 등에 대해 전면적인 내사에 착수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9일 “전 북한군 상위 변용관이 지난 2월 3일 귀순,북한 대남심리전 특수요원인 ‘적공조’가 JSA내 한국군 경비병들을 대상으로 포섭공작을 하고 있다고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3일 국회 국방위 진상조사 소위원회에서 한 전역병사가 증언할 때까지 이같은 사실을 수사해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경위에 대해 내사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3일 국회에서 문제가 제기될 때까지 千容宅 국방장관에게 수사기관의 보고가 없었다”면서 “정권 교체기에 발생한 변용관 귀순 사건에 대해 수사관련자들이 사건 은폐 등 조직적으로 직무유기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양인목 중장을 단장으로 기무부대장,법무관리관,일반 검찰 등 관련부서 요원들로 국방부 특별 합동수사팀을 구성,모든 의혹을 수사할 방침이다. 군 당국은 또 金勳 중위가 숨진 JSA내 경비병들의 북한군 접촉 등 군기 문란행위가 새롭게 확인됨에 따라 ‘자살’로 수사종결했던 金중위 사망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에 나섰다. 千국방장관은 이날 “金중위 유족 등으로부터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한점 의혹도 없이 원점에서 다시 조사해 이른 시일내에 수사결과를 공개하라”고 지시했다. 군 고위 관계자는 “金중위가 지난 1월 신임 소대장으로 부임했다가 군기문란 실상을 확인하고 제재하려다 이번에 구속된 金모 중사 등 부하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에 따라 자살과 타살 두가지 가능성을 놓고 원점에서부터 재조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金중사 외에 상당수 경비병들이 북한군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JSA내 4개 소대 160여명의 경비병 전원을 차례로 소환해 집중 조사하기로 했다. ◎朴智元 청와대 대변인/前 정권때의 사건이지만 의혹없게 진상 철저조사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은 9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북한군 접촉 및 金勳 중위 사망사건과 관련,“이들 사건이 비록 과거 정권 때 이뤄진 것이지만 정부는 연속성이 있기 때문에 철저히 조사한다는 방침”이라면서 “조사가 끝나면 모든 것을 국민에게 정확히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朴대변인은 또 “金중위의 사망이 공동경비구역내 군인들이 북한군과 접촉한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진상을 철저히 조사,국민의 의혹을 불식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 “타살 가능성” 재수사 급선회/국방위가 보는 사건 개연성

    ◎“경비병 北 왕래 金 중위사건과 연루” 제기/“타살 단정말고 차근차근 수사” 신중론도 ‘金勳 중위 사망사건’ 파문이 커지고 있다.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전면 재수사로 방향을 틀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경비병들의 북한 왕래사건과 맞물려 안보공방으로 번질 조짐이다. 국회 국방위 ‘金勳 중위 사망사건 진상파악소위’(위원장 河璟根 의원)는 9일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차 결론은 전면 재수사로 마무리됐다. 국방부측의 ‘자살단정’ 결론을 뒤엎는 데 초점을 맞췄다. 먼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권총을 문제삼았다. 소위는 “군이 金상호일병의 권총을 金중위 권총이라고 성급하게 단정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육군본부의 재수사과정에서도 입증하지 못한 부분이라고 했다. 총기 수불대장 작성과정에서의 몇가지 허점도 짚었다. 동기부여로 이어갔다. 타살 가능성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첫째,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병의 북한 왕래사건을 문제삼았다. 金중위와 같은 부대 부소대장 등이 연루된 사건이다. 河위원장은“재수사 요구에 핵심부분”이라고 분명히 했다. 두 사건과의 연결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북한 개입 가능성도 빠트리지 않았다. 북한군 상위가 귀순한 데 대한 보복차원이라는 전제를 깔았다. 자민련 李東馥 의원은 “북한이 우리군 장교를 살해토록 교사했다는 개연성은 없느냐”고 의문을 표시했다. 河위원장도 “심증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둘째,군수품 유용사건에도 연관의혹을 제기했다. 이날 발표문에는 빠졌지만 앞서 참고인 신문에서 불거졌다. 자민련 李의원은 “金중위가 이를 파헤치려고 했다면 대행수단으로 일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소위위원들은 “이들 부대에서 군수품을 몰래 빼내 후방에 팔아넘기는 사례가 잦다”고 주장했다. 수사를 맡은 金영열 1군단 수사과장도 시인했다. 의원들은 관련의혹을 제기하며 참고인들과 공방을 벌였다. 미군과 우리 군의 차이점을 대비시켰다. 미군측은 최초 사건보고에서 ‘자살로 추정되나 더 조사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 군은 처음부터 ‘자살사건’으로 단정한 보고서를 냈다며 신랄히 추궁했다. 신중론도 개진했다. 국민회의 林福鎭 의원은 소위에서 “국방부의 당초 金중위 자살결론이 성급했다는 의혹이 강력히 제기되긴 하지만 국방위 소위의 성격상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지 말자”고 말했다. 여당 의원들은 사건이 이전 정권에서 일어난 일임도 상기시켰다.
  • 金 중위 의문사 재수사 전말

    ◎유족 등 잇단 타살 의혹 제기에 ‘총격 자살’ 사건 원점서 재조사 金勳 중위 의문사 사건이 재수사에 이르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지난 2월24일 金중위는 권총에 맞아 숨진 채로 발견됐고 군 수사당국은 金중위가 자살했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었다.그러나 유족들은 金중위가 타살됐다는 확신 아래 국회 국방위에 탄원서를 내는 등 진상규명에 나섰다. 金중위가 타살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는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제기됐다.지난 9월 미국 뉴욕 주정부의 법의학자 루이스 에스 노 박사(한국 이름 노여수)는 金중위의 사망이 ‘자살로 교묘하게 위장된 타살의 전형’이라는 소견을 밝혔다.권총을 오른손으로 잡고 자살했으면 신체 구조상 탄환은 왼쪽 머리 위쪽으로 나와야 하는데 金중위의 경우는 아래쪽으로 나왔다는 것이다.모 주간지는 사망 현장에 있던 권총번호가 金중위의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보도하며 타살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같은 의혹 제기에 따라 결국 육본 고등검찰부는 약 5개월 동안 사건을 재수사한 결과,지난달 27일 사망원인을 ‘격무와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로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 10월 구성된 국회 국방위 ‘金勳중위 사망사건 진상파악 소위원회’ 비공개회의가 처음으로 열린 지난 3일 밤 金중위 소대의 부소대장인 金영훈 중사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군기무사에 체포되면서 국면은 바뀌기 시작했다.국방위 소위의 조사와 유족들의 노력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金중위의 아버지 金拓씨가 그동안 확보한 전역 병사들의 증언도 타살 가능성을 내비쳤다.증언을 종합하면 金중위의 사망 시간에 있어서도 군 당국의 발표와 실제 상황에서는 차이가 났다.이들은 金중위의 사망 시간이 아침 10시35분에서 11시 사이라고 증언했다.하지만 군 당국은 오전 11시50분에서 12시20분 사이라고 발표해 1시간 가량 차이가 났다. 사건이 일어난 지 한달 후 조사차 방문한 1군단 헌병대 수사팀은 소대원을 한자리에 불러 놓고 서로 상의하면서 그 날의 행적을 쓰게 했다.중대장 金모 대위도 ‘이미 자살로 결론이 난 사건이니 상의해서 작성하라’고 지시했다.이 때 金중사는 ‘내가 사고 현장에도착해 시계를 보니 12시29분이었다’고 강조,소대원들은 이를 기준으로 진술토록 유도했다.그러나 金중사의 증언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결국 金중사의 구속,전역병들의 증언,국방위 소위의 조사 등과 유족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사건은 9개월 만에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 ‘판문점 병사 내통’이라니(사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근무하는 우리 병사들의 북한군 접촉사실은 국민들에게 또한번 충격을 주고 있다. 미사일 오발에다 불발포탄 폭발,조명탄 사고에 이어 최전선 병사들의 ‘적과의 내통’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최근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 군관련 사고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도 군기(軍紀) 해이가 어느 정도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한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근무하는 장병들에게는 투철한 군인정신과 보안의식이 필수적이다. 이들이 북한군과 수시로 접촉하며 값비싼 손목시계를 선물로 받는가 하면 몰래 북쪽으로 넘어가 술까지 마셨다니 우리 군의 기강이 얼마나 흐트러져 있는지 짐작할 만한 일이다. 더욱이 북한 경비병들은 심리전의 특수훈련을 받은 ‘적공조’요원들로 알려져 있다. 우리 병사들이 이들과 접촉하면서 어떤 중대한 정보를 얼마나 주었는지 걱정스럽다. 군 관계자들은 공동경비구역 장병들이 북한 경비병들과 접촉하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로 그리 놀라워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언제 어떤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동경비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얼굴을 익히고 지내는 것이 긴장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상사의 엄격한 통제아래 이루어져야 하며 결과는 반드시 지휘계통에 보고되어야 한다. 병사들이 멋대로 북쪽을 오가며 적과 만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마디로 지휘체계나 안보의식이 엉망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우리 군의 보안체제이다. 구속된 김모중사의 경우 지난해 7월부터 북쪽을 들락거렸고 부대 안에서도 몇차례 문제가 됐었는데도 보안계통에 전혀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지난 2월 귀순한 북한군 상위가 우리 병사들의 북한군 접촉사실을 진술했는데도 이에 대한 조치가 없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군 당국이 알고도 방치하거나 은폐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게 한다. 이 사건이 판문점에 근무하던 한 소대장의 의문사와 관련됐다는 의혹도 주목된다. 군 당국이 스트레스로 인한권총자살이라고 발표한 소대장의 죽음이 유가족들의 주장대로 북한 접촉사실을 숨기기 위한 타살이라면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철저한 재조사로 정확한 사망원인을 밝혀야 할 것이다. 군의 생명은 군기이다. 군의 기강이 이처럼 흐트러져서는 튼튼한 국방이나 안보는 기대할 수 없다. 특단의 대책을 거듭 촉구한다.
  • 군기문란 실상 노출 큰 충격/한국군 판문점서 北韓軍 접촉 파문

    ◎‘不法’ 알아낸 金勳 중위 피살 가능성/재수사 통해 연계 드러나면 파장 클듯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 북한군의 대남심리전 요원인 ‘적공조’와 수시로 접촉,선물을 받고 술을 나눠 마시는 등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를 저질러 왔다는 사실은 군의 기강이 얼마나 해이해졌는가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특히 이 사건으로 지난 3일 구속된 金모중사(28)가 지난 2월24일 JSA내 벙커에서 권총에 맞아 숨진채 발견된 金勳 중위(25·육사 52기) 아래서 부소대장으로 근무했다는 사실이 관심의 초점이다.국방부는 金중위가 자살했다고 발표한 반면 유족은 타살이라고 주장해 왔다.앞으로 재수사를 통해 이번 사건과 金중위 사망사건이 연계된 것으로 드러나면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金중위가 병사들의 불법행위를 알게되자 ‘증거인멸’ 차원에서 金중위를 살해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혹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군 검찰은 불과 열흘전인 지난 달 27일 5개월여간에 걸쳐 정밀 재수사 결과 ‘金중위가 군복무에 대한부담감과 무력감 등으로 자신의 권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했다.소속 부대원들의 군기강 문란행위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군 수사당국에 따르면 구속된 金중사 등 JSA에 근무하는 병사들의 북한군 접촉은 지난해 7월부터 12월 사이에 중점적으로 이뤄졌다.그러나 이들은 지난 2월 북한군 적공조원이 귀순한 이후 이같은 불법 행위를 그만둔 것으로 밝혀졌다. 군 수사당국은 지난 3일 국회 국방위 金勳 중위 사망사건 진상규명소위원회에 출석한 전역병사가 이같은 사실을 증언한 이후에야 본격 수사에 나섰다. 지난 2월 귀순한 북한 적공조원에 대한 수사에서 이같은 사실을 감지조차 못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한편 1군단장을 거쳐 3군 부사령관으로 예편한 金중위의 아버지인 金拓 예비역 중장(55·육사 21기)은 ●권총에 金중위의 지문이 남지 않았고 ●오른 손잡이인 金중위의 왼손에서만 화약이 발견됐고 ●발사지점보다 위쪽에서 형성되는 탄착점이 金중위의 키보다 낮은 곳에서 발견된 점 등을 들어 타살 가능성을 제기해 왔다.
  • 판문점 경비 국군하사관/北韓軍과 수시 접촉 적발

    ◎선물 등 받은 중사 구속… 사병 5∼6명도 곧 소환/‘金勳 중위’ 부대 부소대장… 사망사건 관련여부 조사 국방부는 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근무 중 북측 경비원들과 상습적으로 접촉하면서 선물을 받은 金모중사(28)를 국가보안법(회합·통신) 위반혐의로 지난 4일 긴급 구속,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공동경비구역은 지난 2월24일 金勳 중위(25·육사 52기)가 벙커에서 권총에 맞아 숨진 곳으로 국방부는 자살이라고 발표한 반면 유족은 타살이라고 주장,사망 원인을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돼 왔다.군 수사당국은 金중사가 金중위 밑에서 부소대장을 지낸 점을 중시,金중위 사망사건과 관련이 있는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 수사당국에 따르면 金중사는 JSA 부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지난해 7월부터 12월 사이에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북한군 심리전 담당인 ‘적공조’ 1조장 金경호중좌와 金철호중좌,리경남 상등병 등과 군사분계선에서 30여차례에 걸쳐 접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군 수사당국은 지난 2월3일 JSA를 통해 귀순한 북한군 적공조 출신 상위 변용관씨(26)의 진술과 전역 병사들의 증언 등에서 JSA에 근무하는 한국군 병사들이 북한군과 수시로 접촉한다는 사실을 확인,수사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金중사는 북한군과 서로 이름을 알려주고 북한산 담배와 인삼주를 건네 받은데 이어 나중에는 주소까지 교환할 정도로 두터운 친분관계를 쌓은 혐의도 받고 있다. 아울러 북한산 맥주와 담배,인삼주,독일제 위장약 등을 선물받아 순찰 도중 우연히 주운 것으로 상부에 허위보고한 뒤 보관했으며 지난해 11월 초 오전 2시쯤에는 군사분계선을 약 20m까지 넘어갔다가 돌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군 수사당국은 지난 5월 전역한 吳모병장도 북한군과 무단 접촉한 뒤 롤렉스시계를 건네받은 사실을 추가로 확인,국가기밀을 넘겨준 대가로 선물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이 부분도 수사 중이다. 군 수사당국은 이와 함께 金중사를 상대로 군사기밀 유출여부를 집중 추궁하는 한편 북한군을 접촉한 혐의가 짙은 전·현역 장병 5∼6명을 조만간 소환,국가보안법위반 혐의에 대해 조사하는 등 수사대상을 확대키로 했다. 지난 3일 구성된 국회 국방위의 金勳 중위 사망사건 진상규명 소위원회는 최근 비공개회의에서 金중위가 군 당국의 발표와는 달리 타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잠정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위의 한 관계자는 “金중위가 근무하던 부대의 하사관이 북한군과 자주 접촉한 점으로 미루어 金중위가 부대원의 불법행동을 인지했을 경우 ‘증거인멸’ 차원에서 희생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국방위 진상 소위는 金중위가 타살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근거로 국방부에 재수사를 촉구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으며 9일 소위활동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민주열사 열전:12/‘녹화사업’ 의문사:하(정직한 역사 되찾기)

    ◎‘염세 자살’로 매도된 의문의 죽음들/이윤성­신검없이 징집… 제대 8일 앞두고 죽어/김두황­운동권 리더… ‘애인변심 자살’ 軍 강변/한영현­늑막염 앓아 軍면제 판정 불구 끌려가/최온순­가족 항의로 재수사해 자살 오명 벗어/한희철­새벽 4시 사망… 녹화사업중 고문 의혹 대학생들의 강제징집과 이들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었던 녹화사업은 80년대초 연세대생 정성희를 비롯한 여섯명의 죽음과 결부되어 계속 거론되고 있다.대부분 염세 자살이라는 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인권단체들과 가족들은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의 강제순화·관제프락치 공작활동이 이들 의문사의 직간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다섯명의 의문사를 차례로 알아본다.(정성희는 10월15일자 녹화사업 첫회에 보도) ▷이윤성◁ 81년 성균관대 역사철학 계열에 입학한 이윤성은 유복한 가정환경이었지만 사회·역사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었다고 한다.2학년 때 인문과학연구회라는 동아리의 회장직을 맡았다.82년 11월3일 학생의 날 가두시위에 참가, 여러 학생들과 함께 경찰서로 연행됐다.조사 과정에서 동아리 회장이란 것이 밝혀져 11월7일 새벽 신체검사도 없이 군에 끌려갔다. 그는 부친이 60세가 넘은 고령인 3대 독자인데다 시력마저 나빠 상식대로 하자면 현역입대가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83년 1월10일쯤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면회갔을 때 이윤성은 건강한 모습으로 “내가 여기서 짬밥을 제일 잘 먹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뒤늦게 가정환경이 참작돼 5월말 의가사 제대가 결정되었다.제대가 8일밖에 남지 않은 5월4일 이윤성 부모는 아들이 이날 새벽 자살했다는 군당국의 통보를 받았다. 국방부는 88년 국정감사 자료에서 ‘이윤성은 군 수사기관의 조사기간 중에 사망했으나 이 조사는 학원소요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국감 자료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이윤성은 83년 4월19일 소속대 인근에서 북괴가 살포한 월북용 안전보장증 등 불온전단 2매를 습득,본인의 철학개론 책자 속에 보관하다가 4월30일 소속대대 보안담당관 중사에 의해 관물함에서 적발됐다.5월3일 당시 지역 보안부대 대공계장 상사가 월북 용의성 및 전단휴대 경위 등을 조사하고 취침에 들도록 했으나 4일 새벽 2시 반경 용변본다고 밖으로 나가 부대 정구장 심판대에 군화끈 및 요대를 사용해 목매 자살했다.가족 입회 아래 부검을 실시했으며 구타 등의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들은 지금도 그의 죽음에 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84년 국방장관의 국회보고와 마찬가지로 이 국감 자료도 이윤성이 자살할 당시 제대가 8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김두황◁ 80년 고려대에 입학해 경제학과 과대표와 경제학 동아리 회장을 맡은 김두황은 학내활동의 활성화와 민주화를 주도한 고대 운동권 리더의 한명으로 알려졌다.4학년이 된 83년 3월초 학내 학회,동아리 회장들과 호국단 선거,4·19행사 등을 논의하던 중 성북경찰서에 연행됐다.1주일간 조사를 받고 석방되었으나 곧 부모와 함께 다시 경찰서로 불려온 뒤 어쩔 수 없이 자원입대서에 서명했으며 즉시 군대로 끌려갔다. 3월18일 입대한 김두황은 3개월 뒤인 6월18일 밤11시 30분 자살했다고 가족들에게 통보됐다.그간 외출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군생활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나 훈련 성적이 우수해 사단장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시신은 두부가 없어진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군 당국은 가족들에게 “동료 2명과 경계 근무를 서던 중 ‘소변보러 간다’고 한 후 잠시 있다가 총성과 함께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군은 가족들에게 사인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와 화장동의서를 받아낸 뒤 부검은 실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84년 국회에 보고할 때 국방부는 김두황의 사망 원인에 대해 ‘내성적인 성격으로 전방부대에 배치된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내무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군복무에 염증을 느껴왔으며 애인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고심하다가 자신의 소총으로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그의 고대 학우들은 김두황의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 등과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 ‘관제’ 사망원인이라고 반박해 왔다. 같이 강제징집된 뒤 죽음의 공포감이 엄습하는 녹화사업을 겪었던 친구 양창욱씨는 “두황이가 고대 운동권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생각하면 나보다 훨씬 심한 녹화사업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영현◁ 81년 한양대 기계과에 입학한 한영현은 민속문화연구 동아리와 야학활동에 참가하던 중 83년 1월 부천 야학선배의 경찰조사 과정에서 이름이 나와 성동경찰서로 연행됐다.경찰서 조사후 4월1일 수원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늑막염으로 병종 판결,군대에 갈 수 없는 처지였다.그러나 이튿날 경찰서 출두명령을 받고 나간 뒤 행방불명되었으며 보름 후 그의 옷이 집으로 우송되자 가족들은 비로소 강제로 군에 끌려간 것을 알았다. 그는 입대후 훈련소에 가지 않고 4월10일부터 18일까지 군 수사기관에서 그간의 활동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고 뒤에 말했다.6월18일 포상휴가를 나왔는데 그의 팔에 철사로 심하게 맞은 듯한 피멍이 선명했다고 한다.휴가중 그는 “정신력으로 모든 환경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되나 자신이 없다” “기관의 어느 사람을 만나면 의가사로 10월이면 제대가 가능할 수 있지만 죄책감이 너무 크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전한다. 귀대한 지 얼마 안되는 7월2일 부대로부터 전보로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불침번 근무중에 분대장의 탄입대에서 실탄 1발을 절취한 뒤 2일 아침 9시 경계근무를 서다 M16 소총으로 자살했다”는 것이다.국방부는 84년,88년 관련보고에서 모두 한영현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강조했다.‘한영현은 모친이 부동산투기로 가산을 탕진하여 부친이 사우디 취업중 귀국해 불화 끝에 모친을 토막살해한 죄로 무기형 복역중이고 형도 소아마비인 것을 고민해 세상을 비관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마치 그의 아버지 사건이 당시에 일어난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은 3년 전인 고3 때의 일이며 한영현은 이 와중에서도 한대 기계과 장학생으로 입학했다.대학 학우들도 그의 학교생활이 아주 건강했다고 말한다. ▷최온순◁ 83년 동국대 사대 수학교육과 3학년이던 최온순은 시위예비 음모 혐의로 5명의 학우와 함께 경찰에 연행돼 1주일 간 조사를 받은 후 3월29일 강제징집 되었다. 4개월이 조금 지난 8월14일 군에서 급위독이라는 전보를 보내와 가족들이 급히 부대로 가보니 그는 벌써 새벽 4시경 숨을 거둔 뒤였다.헌병대에서 나온 사람이 자살이라고 통보했으나 가족들이 자살할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갖고 강력히 항의하고 영안실의 사체를 며칠간 지키면서 재수사 및 진상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이에 군 수사대가 재수사를 하여 그 결과 고참병과 말다툼 끝에 피살되었다는 수정 통보를 얻어내 최온순은 자살이라는 오명을 벗고 대전 국군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공식 군 수사기록은 가족의 항의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가운데 철책선에서 같이 복초를 서던 고참 상병이 ‘최온순의 자살을 주장했으나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추궁하자 그의 우발적 살인 범행을 자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84년 국회 보고서는 ‘최온순은 복초근무중 잠을 자다가 고참인 상병이 주의를 주자 이에 반항해 소총으로 가해하려다 상병이 소총으로 위협한다는 것이 잘못돼 오발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강제징집된 뒤 최온순과 함께 훈련받았던같은 대학의 최석민씨는 “한대 때렸다고 해서 고참에게 총을 겨누기엔 그는 너무 밝은 성격이었다”고 아직도 못믿어 한다. ▷한희철◁ 빈한한 가정에서 79년 철도청 장학생으로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에 입학했으며 4학년말인 82년 12월1일 군에 자진입대했다.서울대 가톨릭학생회와 성남 대학생연합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등 운동권 성향을 보이자 지도교수가 장학금을 주지 않겠다고 해 일단 휴학을 했다는 것이 가족들의 설명이다. 군 생활에 잘 적응해 포상휴가를 두번이나 받았고 83년 10월14일 보름간의 첫 정기휴가를 나왔다.친구들에게 “늦어도 한달 후에는 의가사 제대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귀대한 지 한달 쯤 지난 12월11일 자살했다는 연락이 왔다.84년 국방부 사망원인에 따르면 ‘평소 가정빈곤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음을 비관했고 입대전 의식화 동아리에 가입했으며 정기휴가 때 학원소요와 관련해 도피중인 친구의 주민등록 갱신을 위해 방위병인 다른 친구에게 용지를 훔칠 것을 부탁한 사실이 적발돼 조사를 받고 훈방된후 평소 불만과 주민등록증 절취모의 탄로로 고민하다 자살했다’는 것이다. 사망 당시 군 당국의 설명에 의혹을 떨구지 못한 부친 한상훈씨가 끈질기게 알아본 결과 한희철은 12월6일 당시 보안사령부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10일 귀대한 것으로 드러났다.부친은 이때 전기고문이 가해졌고 주민등록증 용지 건뿐 아니라 심한 녹화사업 취조가 행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그의 11일 새벽4시 사망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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