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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지성 손흥민과 한솥밥 판니스텔로이, 에인트호번 감독으로

    박지성 손흥민과 한솥밥 판니스텔로이, 에인트호번 감독으로

    박지성, 손흥민(토트넘)과 한 팀에서 뛰어 국내 축구 팬들에게 낯익은 ‘왕년의 골잡이’ 뤼트 판니스텔로이(46)가 네덜란드 명문 PSV 에인트호번 지휘봉을 잡았다.영국 BBC는 판니스텔로이가 올 시즌 종료 후 계약이 끝나는 로거 슈미트 감독을 대신해 에인트호번 감독으로 부임할 예정이라고 31일(한국시간) 보도했다. 계약 기간은 3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판니스텔로이는 2000년대 초반 네덜란드를 대표한 골잡이다. 2012년 은퇴할 때까지 19시즌 동안 에인트호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등 유니폼을 입고 592경기에 나서 349골을 넣었다. 특히 에인트호번은 그가 정규리그에서만 1998-1999시즌 31골, 1999-2000시즌 29골을 넣어 특급 스타로 올라설 발판을 마련한 팀이다. 에인트호번은 2017-2018시즌 이후 아약스에 밀려 정규리그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무관이 시간’이 길어지자 구단은 유소년팀을 지도하며 지도자 수업을 쌓던 판니스텔로이를 예상보다 일찍 사령탑에 앉히게 됐다.판니스텔로이는 “원래 1년 정도는 더 코치 생활을 하며 배우려고 했다”면서도 “때로는 인생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이 다음 단계를 밟을 적절한 시점일 수도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판니스텔로이는 2001년부터 5시즌 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며 공식전 150골을 넣었는데, 마지막 시즌에는 에인트호번에서 영입된 ‘후배’ 박지성과 함께 뛰었다. 말년에는 손흥민과의 인연을 맺었다. 2010-2011시즌에 독일 함부르크에서 당시 막 성인 1군 무대에 데뷔한 손흥민과 호흡을 맞췄다.
  • “고진영 경기력, 전성기 타이거 우즈 능가…믿기지 않는 기록”

    “고진영 경기력, 전성기 타이거 우즈 능가…믿기지 않는 기록”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손꼽히는 분석가이자 해설가인 카렌 스터플스(잉글랜드)가 고진영(27)의 경기력이 전성기의 타이거 우즈(미국)를 넘어선다고 극찬했다. 영국 매체 텔리그래프는 31일(한국시간) 스터플스와 인터뷰를 통해 “고진영은 우즈의 전성기에서도 보여주지 못한 놀라운 기록들을 써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터플스는 지난해 고진영이 세운 63홀 연속 노보기 기록을 예로 들었다. 우즈의 연속 노보기 기록은 51홀이다. 스터플스는 “2019년 고진영은 114홀을 보기 없이 마쳤다. 우즈는 110홀이다”라면서 “고진영은 최근 치른 9개 대회에서 5승을 거뒀고, 우승하지 못한 4개 대회에서 가장 나쁜 성적이 6위였다. 선수가 매 대회 우승을 다툰다는 건 생각하기 힘들다”고 치켜세웠다. 고진영은 1일부터 열리는 LPGA 올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셰브론 챔피언십에 출전한다. 스터플스는 “이번 대회에서도 고진영은 압도적인 우승 후보”라면서 “우즈가 전성기 때 우승하지 못하면 실망했든 고진영이 우승하지 못한다면 똑같이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스터플스는 고진영의 강점으로 꾸준함을 들었다. 그는 “고진영의 무기는 정확성이다. 볼을 아주 똑바로 보낸다. 휘어지는 볼이 거의 없다. 목표를 맞추는 훈련이 잘 되어 있다”라면서 “63홀 연속 노보기는 고진영이 얼마나 볼을 정확하게 치고, 거리 조절을 잘하는지를 설명해준다”고 강조했다. 고진영은 올 시즌 그린적중률 80.56%, 평균타수 68.13타로 모두 1위를 기록 중이다. 스터플스는 “앞으로 고진영은 메이저대회 우승 트로피를 더 가져갈게 확실하다”고 평가했다.
  • 박효준 홈런·김하성 4할·최지만 3볼넷… 승승장구 빅리거들

    박효준 홈런·김하성 4할·최지만 3볼넷… 승승장구 빅리거들

    박효준(26·피츠버그 파이리츠)이 시범경기 두 번째 홈런포를 터뜨리며 메이저리그 개막 로스터 진입 청신호를 켰다. 김하성(27·샌디에이고 파드리스)과 최지만(31·탬파베이 레이스)도 순항하며 이번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박효준은 30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브레이든턴 매케니츠파크에서 열린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시범경기에서 6번 타자 3루수로 선발 출전해 2타수 1안타 1타점 1볼넷을 얻었다. 박효준의 활약에 피츠버그도 보스턴을 6-2로 꺾고 시범경기 5승째를 거뒀다. 첫 타석부터 박효준의 방망이가 폭발했다. 박효준은 0-0이던 2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고 보스턴 선발 닉 피베타(29)의 초구 시속 92.6마일(약 149㎞)의 포심패스트볼을 공략해 비거리 107m의 홈런포를 만들어냈다. 지난 24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에서 나온 홈런에 이어 시범경기 2호 홈런이다. 결승점을 뽑아낸 박효준은 4회말 타석에선 볼넷을 골라냈고, 6회말에는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다. 시범경기 타율은 0.273(11타수 3안타)인 박효준은 3안타 중 2개를 홈런포로 장식하며 장타력을 제대로 뽐냈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만 이어진다면 충분히 개막 로스터 진입이 가능하다. MLB닷컴 등 현지 언론도 긍정적으로 봤다.김하성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스타디움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 2타수 1안타로 시범경기 타율을 0.400을 만들었다. 2회초 첫 타석에서 2루 땅볼로 물러났지만 4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우전 안타를 때려냈다. 지난 28일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에서 멀티 히트(3타수 2안타)를 때려낸 김하성은 2경기 연속 안타와 3경기 연속 득점을 모두 성공했다. 지난해 시범경기에서 타율 0.167(42타수 7안타)로 부진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에 기대감도 크다. 특히 팀 동료이자 지난해 내셔널리그 홈런왕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가 왼 손목 골절 부상으로 빠지면서 주전 유격수 경쟁력을 보여줘야 하는 김하성으로서는 연일 이어지는 맹활약에 코칭스태프의 믿음을 사고 있다. 최지만은 탁월한 선구안으로 3볼넷을 얻어냈다. 최지만은 30일 플로리다주 포트 샬럿의 샬럿스포츠파크에서 열린 미네소타 트윈스전에서 3볼넷 1득점했다. 비록 시범경기에서 9타수 1안타로 아쉬움이 남지만 출루율은 0.429로 끌어올리며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최지만의 선구안과 함께 탬파베이도 4-2로 승리했다.
  • 구준엽 처제 “두 사람, 가장 사랑할 때 헤어져”…전 남편 격한 반응

    구준엽 처제 “두 사람, 가장 사랑할 때 헤어져”…전 남편 격한 반응

    구준엽(53)과 대만 톱스타 쉬시위안(서희원·46)에 대해 쉬시위안의 동생이 “두 사람은 가장 사랑할 때 헤어졌다”고 밝히자 쉬시위안의 전 남편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대만의 유명 진행자이자 쉬시위안의 여동생인 쉬시디(서희제·46)는 29일 대만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구준엽과 언니의 러브 스토리를 전했다. 쉬시디는 “언니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했을 때 ‘설마 구준엽은 아니지?’라고 물어봤다”면서 “놀랐지만 기쁠 수밖에 없었다. 언니의 마음속에 구준엽이 얼마나 깊이 있었는지 발견했기 때문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많은 것을 말할 순 없지만 언니와 구준엽은 가장 사랑했던 시기에 헤어져야 했다. 그래서 서로에 대해 깊은 후회가 남아 있었다”고 떠올렸다. 쉬시위안은 대만판 ‘꽃보다 남자’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인기를 얻은 대만 톱스타로, 구준엽이 속한 그룹 클론이 2000년대 대만에 진출해 인기를 얻었을 당시 서로 만나 교제했다. 두 사람은 당시 약 1년여간 교제했지만 연예 활동을 우려한 소속사의 반대 등 주변 여건이 여의치 않아 헤어지게 됐다. 당시 쉬시위안은 동생과 함께 진행하던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서 이별과 관련한 고충을 털어놓으면서 “할 말은 있지만 연예인이기 때문에 노코멘트 하겠다. 내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라며 눈물을 흘렸던 바 있다.그리고 약 10년 뒤 2011년 쉬시위안은 중국인 사업가 왕샤오페이와 결혼했다. 그러나 왕샤오페이와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과 대만 사이에 정치적 갈등이 심해진 가운데 왕샤오페이가 대만을 자주 비난해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는 소문도 돌았다. 왕샤오페이와 사이에 딸과 아들을 뒀지만 쉬시위안은 결국 2021년 11월 이혼을 발표했다. 이혼 소식을 들은 구준엽이 20년 전 저장했던 쉬시위안의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아직까지 번호를 바꾸지 않았던 쉬시위안이 전화를 받아 두 사람은 20년 만에 다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결국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한 두 사람은 교제를 시작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만나지 못하다가 구준엽의 청혼을 쉬시위안이 받아들이면서 20년 만에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 동생 쉬시디의 인터뷰 방송이 나간 뒤 왕샤오페이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30일 새벽 왕샤오페이는 자신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쉬시디는 쉬시위안과 구준엽이 사귀는 것을 짐작했다’는 내용이 담긴 글을 공유하며 “그래? 네가 이미 짐작을 했었다고? 언제부터?”라고 비아냥대며 “오늘 약을 너무 많이 먹은 것 아니냐”고 쏘아댔다. 왕샤오페이는 구준엽과 쉬시위안의 결혼 발표 이후 쉬시위안 계정 팔로우를 끊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 “이제는 힐링할 때” 윌 스미스 폭행 이후 처음으로 입 연 아내

    “이제는 힐링할 때” 윌 스미스 폭행 이후 처음으로 입 연 아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서 사상 초유의 폭력을 행사해 물의를 빚고 결국 사과한 미국 배우 윌 스미스의 부인 제이다 핑킷 스미스가 29일(현지시간) 사건 이후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제이다는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제는 힐링할 때”라고 짧은 글을 올렸다. 이 게시물에서 남편의 폭력 행사나 그에 따른 사회적 논란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논란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윌 스미스, 아내 탈모증 농담에 시상자 폭행앞서 윌 스미스는 지난 2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된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중 시상자로 나온 코미디언 크리스 록의 뺨을 때렸다. 원형탈모증으로 삭발 차림으로 참석한 아내 제이다를 가리켜 크리스 록이 삭발한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지.아이. 제인 2’에 출연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농담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윌 스미스는 패션이 아닌 질환으로 하게 된 삭발 머리의 아내를 농담거리로 삼은 데 분노, 생방송 중에 무대 위로 난입해 크리스 록의 뺨을 때리고 객석으로 돌아와서도 방송금지 단어인 ‘F’ 욕설을 섞어가며 크리스 록을 비난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전 세계로 그대로 생중계됐다. 미국 내 윌 스미스 비판 여론 거세수위 높은 농담도 용인되는 미국 문화에서 이를 폭력으로 대응했다는 점에서 미국 내에선 윌 스미스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셌다. 비록 크리스 록 측이 윌 스미스를 고소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아카데미 시상식 주최 측은 윌 스미스의 행동을 규탄하며 공식 조사에 착수했다. 할리우드 배우와 감독 등도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윌 스미스의 폭력 행사를 비판했다. 윌 스미스는 시상식 중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수상소감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사과했지만, 정작 폭행 피해자인 크리스 록에게는 사과하지 않았다.윌 스미스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킹 리처드’의 실존인물인 리처드 윌리엄스도 아들을 통해 윌 스미스의 폭행을 비판했다. 그는 딸 비너스·세리나 윌리엄스 자매를 흑인 빈민가에서 전설적인 테니스 스타로 키워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다음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글을 올려 “크리스 록에게 사과하고 싶다”, “선을 넘은 행동이었다”, “용납할 수 없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사과했다. 그러나 여전히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으며, 한편에선 질환을 농담거리로 삼고 당사자인 제이다를 불쾌하게 한 크리스 록 역시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나왔다. 크리스 록 침묵 속 공연 입장권 가격 9배 폭등윌 스미스의 사과에 대해 크리스 록은 아직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그의 코미디 공연 입장권 예매자가 폭증하고 입장권 가격이 9배나 폭등하는 등 크리스 록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은 전했다. 입장권 예매 사이트인 ‘틱픽’은 지난 28일 하루동안 그의 공연 티켓 판매량이 지난 한 달 동안 팔린 양보다 많다고 밝혔다. 이 사이트 대변인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30일 보스턴에서 열릴 예정인 그의 공연 입장권 가격이 46달러(5만 6000원)에서 411달러(50만원)로 급등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한 주 동안 웹사이트를 통해 팔린 입장권 판매량의 88%는 그가 윌 스미스에게서 뺨을 맞은 뒤 팔렸다. “흑인 여성에게 헤어스타일은 정체성과 자존감”한편 이번 사건으로 흑인 여성이 겪는 탈모증의 고충을 조명하는 기사도 나왔다. 탈모로 인해 머리를 가꾸길 포기하는 것은 흑인 여성에게 외모적인 것을 넘어 자존감에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AP통신은 ‘탈모가 사람들의 정체성을 빼앗을 수 있다’는 해설 기사를 통해 “흑인 여성에게 머리를 꾸미는 것은 사회에서 통용되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에 저항하려는 욕망과 연결돼 있다”라며 “아프로(흑인의 둥근 곱슬머리)와 콘로우(머리카락을 촘촘하고 단단하게 여러 가닥으로 땋는 형식), 가발과 붙임머리까지 흑인들의 머리 모양은 스타일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라고 보도했다. AP는 “흑인 여성들은 오랫동안 백인의 미의 기준에 맞도록 머릿결을 바꾸도록 강요받아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P는 “대중의 주목을 받는 흑인 여성에게 자신의 헤어스타일로 드러내 온 자부심과 대표성을 잃는 것은 큰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전했다. 배우 샤론 스톤은 윌 스미스의 폭력에 대해선 비판하면서도 크리스 록 역시 사과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누군가의 아픔을 웃음거리로 삼으면 안 된다. 탈모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으로 웃음거리가 아니다”라면서 “뺨을 때린 건 분명 잘못이지만, 그 누구도 오스카 시상식에서 내 배우자의 질환을 가지고 놀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 LG 우승에 진심인 루이즈 “자신 있다… KS 진출이 목표”

    LG 우승에 진심인 루이즈 “자신 있다… KS 진출이 목표”

    자신감은 실력에서 나온다. LG 트윈스의 새 외국인 타자 리오 루이즈(28)가 시범경기 마지막 날 멀티 히트, 멀티 타점을 올리며 자신감을 가득 안고 프로야구 정규리그에 나선다. 루이즈는 개인 성적보다는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목표로 이번 시즌 맹활약을 예고했다. 루이즈는 29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시범경기 한화 이글스전에서 4타수 2안타 2타점으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이날 루이즈의 맹타 덕에 LG는 초반 끌려가던 경기를 뒤집으며 7-3 역전승을 거뒀다. 지난 시즌 외국인 타자 때문에 애를 먹은 LG로서는 올해 성적을 위해 루이즈의 활약이 중요하다. LG가 지난해 12월 신규 외국인 선수 영입 상한선인 100만 달러를 주고 데려온 만큼 기대도 크다. 루이즈가 시범경기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 12일 KT 위즈전을 비롯해 시범경기 10경기 중 절반인 5경기에서 무안타에 그쳤다. 그러나 최근 3경기만 보면 긍정적이다. 지난 24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4타수 1안타, 28일 한화전에서 3타수 1안타, 29일 한화전에서 4타수 2안타로 연속 안타 기록을 썼다.최근의 반등에 대해 루이즈는 타이밍 문제라고 분석했다. 루이즈는 “최근 이틀 동안 강한 타구를 만들며 마쳤다는 게 만족스럽다”면서 “타이밍 맞추는 건 훈련량에 비례한다. 꾸준히 열심히 한다면 타이밍은 맞아갈 거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훈련하겠다”고 말했다. 기분 좋게 시범경기를 마친 만큼 루이즈의 자신감도 넘쳤다. 루이즈는 “시범경기 마지막에 좋은 타구를 생상하면서 긍정적으로 끝낼 수 있는 것에 만족한다”면서 “다가올 시즌도 기대된다. 지금의 자신감이 시즌 때도 연결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격에서 안 되더라도 수비에서 팀에 도움이 되겠다는 각오도 남달랐다. 시범경기는 시범경기일 뿐이라지만 LG가 공동 1위로 마친 만큼 분위기도 좋다. 루이즈의 활약이 많이 없었음에도 1위에 오른 LG로서는 루이즈만 제대로 활약해준다면 정규리그에서도 상승세가 이어질 수 있다.팀이 좋은 분위기로 시범경기를 마친 덕에 루이즈 역시 LG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루이즈는 “우리 팀이 리그 최강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어제(28일) 경기도 주전이 빠졌음에도 15점을 냈고, 오늘(29일)도 투수가 잘 막고 수비가 도와주니까 경기를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팀타율 0.250(8위)으로 방망이가 약했던 LG로서는 루이즈의 자신감과 함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에 나선다. 우승청부사가 되기 위한 루이즈의 각오도 비장했다. ‘LG의 우승’에 대해 묻자 루이즈는 “자신 있다”면서 “개인 기록보다는 팀이 한국시리즈에 가는 게 목표”라는 말로 LG팬들의 마음에 설레는 봄을 선사했다.
  • 한나은·송희주, ‘두 명의 비너스’ 최강 섹시미

    한나은·송희주, ‘두 명의 비너스’ 최강 섹시미

    한명이 아닌 두 명의 비너스가 동시에 팬들 앞에 섰다. 최근 헬스 남성잡지 맥스큐는 올해 4월호 커버걸로 낙점된 ‘심쿵’ 미녀 한나은과 송희주의 표지컷을 선공개했다. 지난해 열린 ‘2021 맥스큐 머슬마니아 피트니스 코리아 챔피언십’에서 커머셜모델 종목을 제패한 ‘비너스’ 한나은과 송희주는 선공개된 표지컷에서 남성 독자들의 가슴을 ‘심쿵’하게 하는 최강의 섹시미와 환상의 케미로 시선을 강탈했다. 한나은과 송희주는 지난해 7월 25일에 열린 ‘2021 맥스큐 머슬마니아 피트니스 코리아’ 챔피언십에서 각각 커머셜모델 여자 그랑프리와 커머셜모델 오픈 톨 1위를 차지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특히 머슬마니아 대회에서 높은 인기를 자랑하며 어느 종목보다 경쟁이 치열한 커머셜모델에서 그랑프리와 1위를 거머쥔 한나은과 송희주는 빛나는 미모와 완벽한 몸매 그리고 타고난 끼를 바탕으로 차세대 스포테인먼트의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다.
  • 美체류 정호연에…7년 사귄 이동휘 ‘좋아요’

    美체류 정호연에…7년 사귄 이동휘 ‘좋아요’

    이동휘와 정호연이 잘 만나고 있는 근황이 포착됐다. 모델 겸 배우 정호연은 최근 자신의 인스타에 여러 장의 사진을 올렸다. 공개된 사진에서 정호연은 미국 방문 중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고, 남자친구 이동휘는 ‘좋아요’를 눌렀다. 배우 이동휘와 정호연은 지난 2016년 1월 부터 공개 열애 중. 7년 넘게 사랑을 키워온 장수커플로서, 이동휘는 최근 연인 정호연이 ‘오징어 게임’으로 미국 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자 정호연의 목에 금메달을 건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한편 정호연은 지난해 9월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통해 글로벌 스타로 떠올랐다. 제28회 미국배우조합상에서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제27회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에는 시상자로 참석했다. 정호연은 할리우드 거장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애플TV+ 새 스릴러 시리즈 ‘디스클레이머’에 출연한다.
  • 구준엽, 대만서도 혼인신고 마쳐…쉬시위안 모친은 여전히 불만

    구준엽, 대만서도 혼인신고 마쳐…쉬시위안 모친은 여전히 불만

    구준엽(53)과 대만 톱스타 쉬시위안(서희원·46)이 한국에 이어 대만에서도 혼인신고를 마쳤다. 다만 쉬시위안의 어머니는 여전히 두 사람의 결혼에 불만을 드러냈다. 29일 대만 중시신문망 등 현지 매체들은 구준엽과 쉬시위안의 혼인신고 소식을 보도했다. 두 사람의 대만 혼인신고는 지난 28일 이뤄졌다. 그러나 쉬시위안 자택 인근의 동사무소에 취재진이 몰려들면서 쉬시위안의 매니저가 혼인신고를 대리 신고했다. 쉬시위안의 매니저는 현지 매체에 “두 사람의 혼인신고가 완료됐으며, 결혼 날짜는 한국에서의 혼인신고 날짜인 2월 8일로 한다”고 밝혔다. 이어 “새로운 시작을 하는 두 사람을 축복해달라”고 덧붙였다.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마쳤지만 쉬시위안의 어머니는 여전히 마뜩잖은 입장이다. 최근 쉬시위안의 어머니는 페이스북에 닭 사진을 올리며 “관리할 수 없다. 성가신 이곳을 떠나겠다”는 글을 남겼다. 구준엽은 지난 8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20년 전 사랑했던 여인과 매듭을 못 지은 사랑을 이어가려 한다”면서 쉬시위안과의 결혼 소식을 알렸다. 쉬시위안은 대만판 ‘꽃보다 남자’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인기를 얻은 대만 톱스타로, 구준엽이 속한 그룹 클론이 2000년대 대만에 진출해 인기를 얻었을 당시 서로 만나 교제했다. 그러나 주변 여건이 여의치 않아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됐고, 쉬시위안은 2011년 중국인 사업가 왕샤오페이와 결혼했다. 쉬시위안의 결혼은 순탄치 못했고, 결국 2021년 11월 이혼을 발표했다. 이혼 소식을 들은 구준엽은 20년 전 저장했던 쉬시위안의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아직까지 번호를 바꾸지 않았던 쉬시위안이 전화를 받아 두 사람은 20년 만에 다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결국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한 두 사람은 교제를 시작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만나지 못하다가 구준엽의 청혼을 쉬시위안이 받아들이면서 20년 만에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 대만으로 출국한 구준엽은 지난 20일 자가격리가 해제돼 쉬시위안의 자택으로 향했고, 두 톱스타의 세월을 뛰어넘은 사랑에 대만 매체들은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고 있다.
  •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품은 오스카… OTT 장벽도 허물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품은 오스카… OTT 장벽도 허물었다

    넷플릭스 제치고 영화계 새 역사감독상엔 ‘파워 오브 도그’ 캠피언윤여정, 시상자로 특유 입담 뽐내윌 스미스, 아내 탈모 놀린 록 때려얼마 전까지 백인 위주에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받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올해는 여성과 비백인, 성소수자와 장애인까지 주인공으로 품으며 다양성을 과시했다. 특히 사상 처음 극장 개봉이 아닌 스트리밍 영화에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안기며 마지막 장벽까지 허물었다. 27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애플TV+의 ‘코다’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영화 최초로 작품상의 영예를 안았다. 션 헤이더 감독이 연출한 ‘코다’는 농인 부모를 둔 10대 소녀 루비가 음악과 사랑에 빠지며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남우조연상(트로이 코처)과 각색상까지 3관왕을 차지했다. 루비 가족은 실제 농인 배우들이 연기했고, 감독은 작품을 위해 수화를 배웠다. 농인 캐릭터를 연기한 농인 배우의 오스카 수상은 ‘작은 신의 아이들’(1986) 말리 매틀린 이후 코처가 역대 두 번째다. 매틀린은 코처의 상대역인 루비 엄마 역을 맡아 ‘코다’에도 출연했다. 애플TV+는 이 작품으로 OTT 중 가장 먼저 오리지널 영화를 내놓고 꾸준히 오스카 후보작을 배출했던 넷플릭스를 따돌리며 역사를 썼다. 최다 12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넷플릭스의 ‘파워 오브 도그’는 제인 캠피언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했다. ‘피아노’(1994)에 이어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두 번 오른 첫 여성이라는 기록을 세운 캠피언 감독은 2008년 ‘허트 로커’의 캐스린 비글로, 지난해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 감독에 이어 오스카를 품은 역대 세 번째 여성 감독이 됐다. 남우주연상은 ‘킹 리처드’에서 진한 부성애 연기를 펼친 할리우드 스타 윌 스미스가 가져갔다. ‘킹 리처드’는 비너스·세리나 윌리엄스 자매를 세계 최고 테니스 스타로 길러 낸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전기 영화다. 스미스는 ‘알리’(2001), ‘행복을 찾아서’(2006)에 이어 세 번째 도전 끝에 생애 첫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흑인 남자 배우로는 역대 다섯 번째 주연상 수상이다.그동안 오스카와 인연을 맺지 못했던 연기파 제시카 채스테인도 1970년대 유명 여성 방송인의 흥망성쇠를 그린 ‘타미 페이의 눈’으로 생애 첫 여우주연상을 움켜쥐었다. 채스테인은 작품 제작자도 겸했다. 여우조연상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춤과 노래 솜씨를 뽐낸 라틴계 배우 아리아나 드보스에게 돌아갔다. 공개적으로 성 정체성(퀴어)을 밝힌 배우로는 첫 수상이다. 이 밖에 드니 빌뇌브 감독의 SF 대작 ‘듄’이 편집·촬영·미술상 등 최다 6관왕에 올랐고, ‘제2의 기생충’이라는 평가를 받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는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했다.시상식은 안팎에서 화제를 모았다. 돌발 사고도 있었다. 윌 스미스는 다큐멘터리상 시상자로 나선 코미디언 겸 배우 크리스 록이 자기 아내의 탈모에 대해 농담을 하자 무대에 올라가 록의 뺨을 때리고 욕설을 하는 아찔한 장면을 연출했다.지난해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여우조연상)를 품었던 윤여정은 남우조연상 시상자로 등장해 재치 있는 입담과 따뜻한 배려를 뽐냈다. 그는 “작년에 제 이름이 제대로 발음이 안 되는 것에 대해 한마디 했는데 이번에 후보들 이름을 보니 발음이 쉽지 않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죄송하다. 발음 실수를 할 수 있으니 미리 사과한다”고 말해 웃음을 불렀다. 이어 수상자 코처를 배려해 수어로 호명했고, 양손을 이용해 수상 소감을 전하는 그를 위해 트로피를 대신 들어 주기도 했다. ‘코다’의 작품상 수상 때 참석자들은 박수 대신 손을 ‘반짝반짝’ 흔드는 수어로 축하를 보냈다. 케이팝을 대표하는 방탄소년단(BTS)이 시상식 도중 ‘페이버릿 필름 뮤지컬 위드 BTS’라는 문구와 함께 영상으로 깜짝 등장해 환호가 나오기도 했다.한편 이날 시상식에서는 참석자들이 러시아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에 지원과 연대의 뜻을 나타내며 30초간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 “내가 너무 잘하니까 징계”...푸틴 찬양한 러 선수, ‘적반하장’ 분노

    “내가 너무 잘하니까 징계”...푸틴 찬양한 러 선수, ‘적반하장’ 분노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나는 단순히 내 나라(러시아)와 대통령(블라디미르 푸틴)을 응원했을 뿐인데, 그게 왜 논쟁의 대상이 되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를 획득하며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했던 러시아 수영 선수가 국제연맹의 징계 방침에 강하게 반발하며 분노를 표출했다고 일본 스포츠매체 다이제스트가 28일 현지 보도를 인용해 전했다. 하지만, 그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자국과 상대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푸틴 대통령을 강력히 지지하고 나서 지탄을 받고 있다. 장본인은 2020 도쿄올림픽 배영 100m와 200m에서 각각 우승을 차지하고 자유형 계주에서도 은메달을 땄던 예브게니 릴로프(25). 릴로프는 지난 18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크름(크림반도) 병합 8주년 기념 콘서트’에 참석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상징하는 ‘Z’ 표식을 가슴에 달고 무대에 올라 9만 5000대 관중의 갈채에 화답했다.이에 국제수영연맹(FINA)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올해 6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출전을 금지한 것과 별개로 릴로프 개인에 대한 징계 절차 착수를 결정했다. 징계위는 이번 주에 구성된다. 릴로프의 후원사인 세계적 수영복 브랜드 스피도는 그와의 계약을 즉각 해지했다. 이에 대해 릴로프는 현지 일간지 ‘스포르트 엑스프레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나름의 항변을 했으나 자국의 무고한 인명 살상과 평화 파괴에 대해서는 극도의 불감증을 드러냈다. “나는 지난 18일 기념 콘서트에서 ‘Z’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고 우리나라 국가를 불렀을 뿐이다.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단순히 내 나라와 대통령을 응원했을 뿐인데 왜 논쟁의 대상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는 또 “(내가 핍박받는) 중요한 것은 내가 세계 수영계의 얼굴이기 때문”이라며 “루즈니키 스타디움(지난 18일 문제의 기념 콘서트가 열린 장소)에 있었던 게 내가 아닌 다른 선수였다면 이렇게까지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가 올림픽에서 지대한 관심을 끌다 보니 모든 생활 전반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어 “경쟁이 없는 곳에 스포츠의 진보는 없다”며 “우수한 선수가 없으면 스포츠는 전진할 수 없다”고 강변했다.
  • ‘여제’ 김가영이 또 이겼다, ‘여신’ 차유람 상대로 3전 전승, LPBA 6번째 결승행

    ‘여제’ 김가영이 또 이겼다, ‘여신’ 차유람 상대로 3전 전승, LPBA 6번째 결승행

    이번에도 김가영이 이겼다. 두 세트를 먼저 내주고 내리 4개 세트를 따낸 대역전승.김가영은 3일 경기 고양시 빛마루방송센터에서 열린 여자프로당구(LPBA) 투어 SK렌터카 월드챔피언십 4강전(7전4선승제)에서 차유람을 4-2(10-11 6-11 11-8 11-10 11-6 11-10)로 따돌리고 결승에 진출했다. 지난 1월 3일 NH농협 챔피언십 4강전에서 통산 두 번째 대결을 이겨 우승까지 차지했던 김가영은 84일 만에 가진 세 번째 대결에서도 판정승, 상대 전적 3-0의 절대 우위를 유지했다. 통산 여섯 번째 결승에 합류한 김가영은 이보미를 4-2로 꺾고 첫 월드챔피언십 결승에 선착한 스롱 피아비(캄보디아)와 상금 7000만원을 놓고 격돌한다. 김가영은 스롱과 지금까지 세 차례 맞붙었지만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무려 176분 간 펼쳐진 대접전. 김가영은 6이닝째 4연속 득점으로 리드를 잡은 차유람에게 15이닝 만에 첫 세트를 내줬다. 2세트에서도 김가영은 앞돌리기와 뒤돌리기의 필수 요건인 두께 조절에 애를 먹었다. 공의 회전도 말을 듣지 않았다. 당연한 듯 큐볼은 제2 목적구를 깻잎 2~3장 차이로 번번히 비켜갔다.장타(5점 이상 연속 득점)는 고사하고 1포인트짜리 득점도 징검다리 건너 듯 이닝을 건너 뛰었다. 김가영은 경기 뒤 “달라진 테이블 컨디션에 적응하지 못하니 템포를 찾지 못했고, 자신감도 떨어졌다”고 털어놓았다. 간신히 6-8까지 쫓아갔지만 이번엔 차유람이 뱅크샷으로 달아나 세트 포인트를 만든 뒤 뒤돌리기 대회전으로 결정타를 날리며 2세트마저 기져갔다. 김가영은 전체 10이닝 가운데 7개 이닝을 빈 손으로 돌아섰다. 공타율은 무려 70%. 45%의 차유람을 도무지 당해낼 재간이 없어보였다. 두 세트를 내리 내준 김가영은 그러나 세 번째 세트부터 바짝 힘을 냈다. 처음으로 선제점을 올렸지만 5-6으로 밀리던 6이닝째, 첫 5점짜리 장타로 단박에 10-6의 세트포인트를 민든 김가영은 공타로 돌아선 뒤 되돌리기 뱅크샷으로 두 점을 쫓아온 차유람을 따돌리고 8이닝 만에 한 세트를 만회했다. 4세트 3-3 동점에서 3차례 공타 끝에 앞돌리기로 먼저 균형을 깬 김가영은 두 차례 연속 횡단샷을 묶어 3연속 득점으로 8-6으로 앞서나갔다. 이어 뒤돌리기로 만든 9-7의 우세를 옆돌리기 세트포인트로 연결한 뒤 옆돌리기 대회전으로 차유람을 또 따돌렸다.차유람으로서는 연속 뒤돌리기, 빗겨치기 등 연속 3득점으로 쫓아간 더블 세트포인트가 두고두고 아쉬웠던 순간. 김가영에겐 잃었던 당점과 두께는 물론 자신감까지 되찾은 순간이었다. 세트 2-2로 균형이 맞춰진 5세트, 오구 파울을 범한 차유람을 2점에 묶고 멀찌감치 앞서간 김가영은 뱅크샷으로 만든 10-6의 세트포인트에서 옆돌리기로 다시 한 세트를 집어와 3-2로 전세를 뒤집었다. 6세트 차유람이 행운의 득점 등을 등에 업고 8-10 세트포인트를 먼저 만들어 ‘멍군’을 부르는 듯 했지만 김가영은 뒤돌리기 두 번으로 더블 세트포인트를 만들고 회심의 옆돌리기로 2시간 56분 간의 기나긴 승부를 매조졌다. 김가영은 경기를 마친 뒤 “이기긴 했지만 만족하기 못한 경기였다. 마지막까지 승부를 예상치 못했다”면서 “승부처는 결국 세 번째 세트를 가져와 역전의 발판을 다진 때가 아니었나 한다”고 뒤돌아봤다. 그는 이어 “올 시즌 처음과 마지막 대회 결승을 피아비와 함께 한다. 결승 목표는 내 에버리지를 찾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레 우승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89세를 일기로 26일 별세했다. 서울신문은 2013년 5월 ‘명사가 걸어온 길’이라는 인물탐구 기획 코너를 통해 고인이 밟아온 삶의 궤적을 2회에서 걸쳐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고인은 당시에도 만 80세 고령이었지만, 스트레이트로 5시간에 걸친 짧지 않은 인터뷰를 정력적으로 소화해 냈다. 자신의 인생을 채워온 수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을 대부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인터뷰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다. ========================== [명사가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해방·전쟁·좌우 분열… 격동의 시대, ‘책벌레 소년’ 헌법에 눈을 뜨다유신헌법 참여 협박에도 정치권 러브콜에도… 학자의 양심 지켰다열두 살 되던 해 일제가 패망했다. 환희에 천지가 요동쳤다. 해방. 어렸지만 그게 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러나 조국의 운명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혼돈과 분열이었다. 국토는 남북으로 찢기고 민중은 좌우로 갈렸다. 얼마 전까지 ‘조국 해방’을 외치며 함께 어깨를 걸었던 동지들이 생각이 다르다고, 처지가 다르다고 원수가 돼 등을 돌렸다. 어제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좌익 프락치로 몰려 책상을 비웠다. 해방 공간의 극심한 무정부 상태를 보며 소년은 결심했다. 국가 시스템의 뼈대가 되는 헌법을 공부하겠노라고. 그 다짐대로 헌법 연구는 평생의 업이 됐고, 소년은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泰斗)가 됐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국헌법연구소에서 만난 김철수(80) 서울대 명예교수는 5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꼿꼿하게 여든 성상의 인생과 철학을 얘기했다. 유복한 친구 둔 덕에 책 실컷 읽고...극렬한 좌우 대립 지켜보며 성장1933년 7월 대구에서 빈농(貧農) 집안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책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유복한 친구를 둔 덕에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느라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통학 기차 안에서도 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당시 대구지역 마사회 회장이었어요. 경마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가져온 세계 문학대전집, 세계 사상대전집 같은 책들이 그득그득 꽂혀 있었지요. 그때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었어요. 강의 중에 ‘레 미제라블’을 말하면 학생들은 ‘아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쳤다가 탈옥하는 거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 무려 2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형벌, 정치, 법철학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고민이 담겨 있으니까요.” 책에 빠져 살던 김 교수의 관심이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나라가 광복을 맞으면서였다. ‘민주국가 건설’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택하느냐를 두고 극심한 분열 양상이 온나라를 휩쓸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나라가 완전히 엉망이었지요. 특히 제가 살던 대구는 당시 공산주의의 총본산인 모스크바(소련의 수도)에 빗대어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을 정도예요. 좌익의 활동이 국내 어떤 도시보다도 활발하고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극렬한 좌우 대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또 반대되는 공공기관 테러가 일어나고.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헌법이었던 것이지요.” 1947년 제헌(制憲) 헌법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법대생이나 학자들이 보던 고시 잡지 등을 읽으며 헌법학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었다.시력 나빠 전쟁터 끌려가지 않아...대학 입학 천막 강의실 공부 1950년 전쟁이 터졌다. 고도근시로 고생하던 그는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았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전쟁 탓에 서울의 대학들이 부산으로 피란 온 터였다. 부산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법학 강의를 들었다. 법학도들이 ‘천막 강의실’에서 힘겹게 공부하던 이 시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불법적인 개헌을 추진한다. 이른바 ‘발췌개헌’의 시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가 있는데 거기에서 임기 4년이 만료됐어요. 이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려 들었는데, 이걸 야당이 반대했고 그 결과로 야당 의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어요” 이 대통령은 “전시에 부산에 침투한 간첩이 많으니 소탕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내 속셈을 드러냈다. 간첩을 잡겠다던 당초 주장과 달리 야당 의원과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검거와 폭력이 이뤄졌다. “야당 지도자였던 장면 선생도 잡아넣었어요. 3명 이상 모이면 잡아갔어요. 국회로 출근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에 탄 채로 계엄사령부에 끌려 가기도 했어요. 옛 경남도청에 무덕관이라고 해서 유도 연습장 같은 곳을 국회의사당으로 썼는데 그 일대에 ‘백골단 깡패’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은 전부 계엄사령부로 소환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김 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질곡의 상당 부분은 친일파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지만 일부 불가피한 대목도 있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척결은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처벌하는 법률도 만들었는데 법률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당시 정부관료, 경찰, 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렸던 거죠. 일제강점기 때는 외국 유학자를 비롯해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 보기에 친일파를 다 쫓아내면 행정이나 정치를 못하겠다 싶었던 거죠. 반민특위에 걸렸던 경찰들을 풀어주고, 결국 그 경찰들이 치안 등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 전쟁통에 질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죠. 일부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없앴다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의 사정도 일부 헤아릴 필요는 있을 겁니다.”이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했고 1953년 전쟁이 끝났다. 김철수는 스무 살의 청년이 됐다. 김철수는 한 살 아래 학과 동기를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궁핍과 혼돈의 시대에 서울대 법대 커플의 사랑은 주위의 부러움과 시샘을 샀다. 하지만 당사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대화 주제가 ‘첫번째 아내’로 옮겨가자 김 교수의 목소리톤이 낮아졌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 아내’ 전혜린과 캠퍼스 커플...뮌헨대 유학중 결혼 김 교수의 첫 번째 아내는 한국 문학계와 여성 예술인들 사이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으로 회자되는 전혜린이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맺은 인연을 서독(독일 통일 전) 뮌헨에서 키워나갔다. 전혜린이 1955년 먼저 뮌헨대 유학길에 올랐고 김 교수는 이듬해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역만리에서 기쁨과 고통을 나눴다. 문학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성화로 법대에 진학했던 전혜린은 독문학과에 입학해 그토록 바랐던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체계적인 법 공부에 목 말랐던 김 교수는 법학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전쟁국가 출신 동양인에게 서독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 너무도 가난했다. 나라를 벗어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삶이 됐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허가가 있어야만 외국 송금이, 그것도 최고 50달러까지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장학금과 통·번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전혜린은 훗날 유학생활의 궁핍에 대해 “물을 마시니까 죽지는 않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다. 지구상에 한국,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코리아’라고 그러면 아프리카 콩고에서 왔냐고 그랬어요. 그 나라에 기차는 있느냐, 뭘 먹고 사느냐 등 질문을 해대는데, 미개인 취급을 하더군요. 교수들도 저를 보며 전쟁 중인 나라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했겠느냐며 일본 학생들과도 크게 차별을 뒀습니다. 약소국 국민의 설움이란 게 뭔지 당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1957년 그들은 뮌헨에서 결혼을 했다. 생활은 결혼 전과 다름 없이 곤궁했지만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의지와 위안이 됐다. 그러던 중 전혜린은 1959년 딸을 낳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성균관대에서 강사로 둥지를 틀었다. 김 교수는 2년 뒤 모교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서울로 돌아왔다.이혼 1년 뒤 전혜린 작가 스스로 목숨 끊어 배 고프고 힘들었던 서독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에 왔지만 서울에서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5·16 쿠데타가 터졌다. 박정희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무력으로 청와대를 장악했다. 당시 박정희 군부가 취한 여러 조치 가운데 ‘군 미필자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게 있었다. 시력이 나빠 군대에 못 간 김 교수는 공무원인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지 못했다. 서울대는 물론 어디에서도 군 미필자인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입국한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의 문인들과 어울렸다. 밤 늦게까지 명동에서 삶과 죽음, 예술을 논했다.“아내가 언제부턴가 문인의 죽음을 동경했어요. 처음에는 나는 사회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학자이고 아내는 사회의 틀보다는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문학가라서 서로 다르겠거니 했는데 이 사람이 자꾸 ‘니체도 카프카도 일찍 죽었다’ 이러면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거예요. 수면제도 많이 갖고 다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결국 두 사람은 1964년 합의이혼을 했다. 그리고 1년 뒤 전혜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교수 임용 제한이 풀리면서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고교 교사와 재혼...꼬박꼬박 ‘그 사람’ 제사 챙기는 아내 그로부터 2년 뒤 김 교수는 고교 교사와 재혼을 했다. “아내는 지금도 꼬박꼬박 그 사람(전혜린)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제사에 꼭 참석하라고 그러고.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반평생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표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난 그는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체계적인 헌법학 이론과 정력적인 강의,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헌법학계에서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새롭게 부상하는 법학자에 대해 점차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들이대도록 만드는 빌미가 됐다. 드디어 등장한 유신헌법의 시대. ‘학자 김철수’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12월 17일부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스러진 1979년 10월 26일까지 15년 10개월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잘살아보세~”라는 한목소리 외의 다른 의견과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 시대였다. ‘지성인의 전당’인 대학에는 사복 경찰과 정보원들이 교수와 학생들을 감시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런 박정희 정권에도 대학과 언론의 비판이 제한적이나마 가능했다. 적어도 잡아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1962년부터 3년간 서울대 학생과장...‘중정’과 맞서“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고 학교에서 무급 조교로 일하다가 1962년 9월 취업 제한이 풀리면서 학생과장을 맡았어요. 요즘 같으면 학생담당 부학장쯤 되는데 그걸 만 3년 했어요. 3년 동안 중정(중앙정보부) 사람들이랑 참 많이도 싸웠었죠. 학교에 출입하던 중정 사람 중 훗날 안기부(중정의 후신 국가안전기획부)의 장까지 하고 그랬는데 이 사람들은 어느 교수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뭘 가르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낱낱이 기록해 상부에 보고했어요. 그때 중정의 한 간부가 ‘당신에 대한 기록이 엄청 쌓여 있다. 중정에서는 당신이 학생들 선동하는 걸로 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었죠. 하긴 그땐 법대 학생들이 제일 열심히 데모했고, 그 학생들에게 우리 법이 잘못됐다고 가르친 것도 나였으니….” 교수들로부터 정의와 바른 법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거리로 나갔다. 김 교수의 말대로 당시 서울대에서는 법대생들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조직됐다. 이때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법대 소속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실장을 지낸 정정길(71)씨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연합해 정권의 부당함에 맞섰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4년 한일기본 협정 반대 시위다. 박 대통령이 일본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정을 추진하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굴욕 외교’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시위 세력은 들불처럼 번지면서 그해 ‘6·3 사태’가 터졌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시위 선봉 고려대 이명박-서울대 정정길 박 대통령은 6월 3일 시위대 해산을 위해 서울시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서울 시내에 4개 사단병력을 투입해 시위 학생들을 잡아들였다. 이때 시위대 선봉에서 정정길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나선 인물이 이명박 고려대 상대 회장이다. 김 교수는 “당시 단과대 회장은 훗날 대통령이 되고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은 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됐는데 어찌 보면 거꾸로 된 거 같기도 하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인연이죠. 노태우 정권에서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13~15대 국회의원)도 시위단 사이에서 격문 쓰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라며 웃어 보였다. 학생들을 거리로 이끈 것은 바른 정치와 민주화를 향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망과 굳은 의지였지만, 중정에 끌려간 그들을 빼오는 것은 교수들의 몫이었다. 6·3사태로 정정길을 비롯한 수많은 서울대생들이 중정과 경찰 등에 잡혀갔다. 법대 학장이 학생들에 대한 보증서를 써 주고 김 교수 등이 중정 등을 찾아가 사정해 수감된 학생들을 빼왔다. “그땐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시위만 했다 하면 학생들이 청와대로 가야 한다고 해서 중앙청(현 경복궁 자리)으로 가곤 했죠. 저는 학생 관리도 제 일이었으니까 관리 차원에서 같이 중앙청으로 따라가고 하면서 치안국 보안과장과 서울 정보분실장과도 자주 마주쳤죠. 한 놈은 중학교 동기고 또 한 놈은 대학 동기였는데 그놈들이 저한테 ‘너는 학생 과장이라면서 왜 학생 선도도 못하냐’고 난리를 피우고 그러면 저는 ‘니들이나 똑바로 해라’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어요.” 정보요원이 수업을 감시하고 학생들이 중정과 경찰서 유치장 등을 드나들었어도 김 교수는 ‘그나마 괜찮았던 시절’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1960년대에 몇 없었던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소개했다.창경궁 통째로 빌려 이대생들과 미팅 주선 “그때라고 해서 학생들이 시위만 하고 돌 던지고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하루는 총학생회장 정정길이 우리가 종합대학이니까 종합대 축제를 하자면서 서울대생 전원과 이화여대생 전원 미팅을 제안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청춘 남녀들에게 좋은 일이겠다 싶어서 제가 창경원(현 창경궁)을 빌려볼 생각으로 창경원장을 찾아갔어요. 창경원장도 학교 선배였거든요. 창경원장도 암울한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승낙하면서 날을 잡아 ‘창경원 오후 휴원’이라고 걸어놓고 두 학교 학생들만 무료 입장시켰죠. 지금 보면 대규모 미팅 같은 것인데 순 남학생 판에 여학생은 몇 없고 그런 모습도 어찌나 재밌던지… 그래도 훗날 그 만남을 계기로 결혼한 사람이 10쌍도 넘더라고요. 우리한텐 재미고 낭만이었지만 다음 날 청소하시는 분들 애 많이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캠퍼스의 소소한 낭만도, 학자 김철수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1972년 10월 박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선포한다. 박정희 정권은 김철수에게 유신헌법에 근거한 탄압에 앞서 유신헌법 제정 공신이 되기를 강요했다. “정권이 유신헌법 만들려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어요. 몇몇 교수는 해외에 보내서 자료 수집을 담당하게 하고 나를 포함한 야당 성향 교수들도 법무부 자문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그걸 하라고 강요했죠.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정부 쪽에서는 쉽게 말해 까불지 말라는 식이었고 일부는 참여를 거부하면 항명죄라며 협박까지 했죠. 그게 다 나중에 유신헌법이 각계의 자문위원들이 참여해 만든 것이라는, 정당성 부여를 위한 계략이었던 거죠.” 김 교수는 갖은 협박성 설득에도 학자의 양심을 지켰다. 하지만 이어 유신헌법 홍보에 나서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말이 제안이지 명령과 강압이었다. 정권은 중정을 통해 김 교수가 방송과 라디오에서 유신헌법 홍보를 맡도록 압박했다. 유신헌법 찬양 글·홍보방송 안하고 버텨 “하루는 학교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식사 마치고 저를 TBC(동양방송) 앞에 내려주더군요. 방송에 출연하라는 뜻이었죠. 결국 정문으로 들어가 바로 후문으로 빠져나갔죠. 방송은 저 대신 다른 분이 출연했는데 중정에서는 방송 펑크 냈다고 난리가 났고, 그때 제대로 찍혀 저에 대한 탄압도 시작됐습니다.” 당시 김 교수는 한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었다. 역시 유신헌법을 찬양하는 글을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김 교수는 학자의 양심에 반하는 글은 쓸 수 없었다. 결국 해당 언론사의 정치부장이 찬양 글을 대신 썼다. 이후 김 교수를 대신해 유신을 찬양했던 한 인사는 국회 배지를 달았고, 또 한 인사는 장관까지 올랐다. 반면 김 교수에게는 정권의 보복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저술 활동이 금지됐다. “청와대 쪽 사람들과 법학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저한테 ‘절대로 책 쓰지 말라. 책 쓰면 큰일 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때 이미 제3공화국에 관한 헌법책을 다 써놨고 유신헌법이 나오면서 유신헌법의 문제점까지 다 정리한 상태였거든요. 출간을 강행했죠. 그게 1973년 1월 10일이었습니다.” 저술활동 금지당한 후 미·독 떠돌아 하지만 책은 출간 즉시 전량 몰수됐고 김 교수는 중정에 끌려갔다. 일주일간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박 대통령을 ‘독재적인 대통령’, 유신헌법을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한 대목에 대해서는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는 억지도 부렸다. 결국 김 교수는 정권이 문제 삼은 부분의 수정을 약속하고 풀려났다. 1년간 집필이 금지됐고, 연구비도 끊겼다. 김 교수는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독일 등지의 방문 교수를 지원해 국외를 떠돌며 박정희의 시대가, 유신의 시대가 저물기만을 바랐다. 철권(鐵拳) 같았던 박정희의 시대가 저물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유신헌법으로 유린된 헌법을 바로잡을 논의가 시작됐다. 이때 김 교수도 헌법 개정에 참여했다. 김 교수 등이 제안한 개정안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도 만족했다. 그러나 곧 전두환이라는 걸림돌을 만나 헌법도 정치적 의도로 변질됐다. 그래도 김 교수는 1987년 헌법재판소 설치를 ‘유신 이후 헌법적 발전’으로 꼽았다. 대화는 자연스레 헌법재판소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애정 어린 쓴소리를 늘어놨다. “요즘 헌재의 결정을 보면 재판관들이 얼마나 헌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야간 옥외집회 금지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런 것들은 또 질서 유지의 관점으로 보면 필요하거든요. 판검사들이 재판관이 되는데 판검사 때는 헌법을 읽을 일이 없어요. 오히려 연구관들이 재판관보다 헌법을 더 잘 알아요. 재판관 임명 시 헌법에 대한 이해도를 반영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긴급조치 위헌에 대한 해석 권한을 놓고 헌재와 대법원이 갈등을 빚은 데 대해서는 헌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독일은 최고 사법부가 헌법재판소입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도 헌법 만들 때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로 둬야 한다고 주장해 법원에서 결사반대했던 건데 헌법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헌법 해석권한을 가진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에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유신시절 정권에 저항했던 모습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대중의 평가에 대해서는 ‘공동체 주의’를 강조했다. “30대에 진보적이지 않고 40대에 보수적이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젊을 때는 개인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죠.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해도 개인은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찰을 2만명 증원하겠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국민이 질서를 지킨다면 이런 사회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 개인주의에서 공동체 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판관 임명시 헌법 이해도 반영 필요”여든의 노학자는 헌법 연구에만 매진한 인생을 조용히 돌아봤다. 그는 학자가 대통령이 될 게 아니라면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학자가 정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학자의 소신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교수는 1980년대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에서도 관료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저는 대학교수가 관료나 정계로 가는 걸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요. 학자나 언론인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관료나 정치인이 되면 조직 논리가 우선하거든요. 소신을 지키려면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공직에서 그런 사람은 살아 남기 힘들죠. 정치권은 특히 더 심하고요. 어떤 정치인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수와 싸울 수 있겠어요” 장시간의 인터뷰는 젊은 기자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지만 김 교수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헌법과 사회 질서에 대한 고민에서는 좌익 프락치로 몰려 잡혀가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소년 김철수의 고민도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인터뷰를 마치며 책장 가득한 그의 저서를 보며 “인세도 많이 받으셨겠다”는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옛날엔 꽤 들어오더니만 요즘은 학생들이 책을 안 사긴 참 안 사네요”라며 웃어 보였다. ■김철수가 걸어온 길 1933년 경북 대구 출생(6남 1녀 중 장남)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57년 서독 뮌헨에서 전혜린과 결혼 1961년 서독 뮌헨대 졸업 1962년 서울대 법과대학 조교수 1967년 미국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대 법학박사 1972년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1998년) 1988년 한국공법학회 회장(~1989년) 1990년 한국헌법연구소 소장(~2001년) 1995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국제헌법학회 이사 1998년 제주 탐라대 총장(~2000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1998년~) ■주요저서 헌법학(1972) 현대헌법론(1979) 비교헌법론(1980) 법과 사회정의(1982) 한국헌법사(1988) 법과 정치(1995) 정치개혁과 사법개혁(1998)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2012)
  • 흐름 탄 김하성, MLB 시범경기 첫 타점

    흐름 탄 김하성, MLB 시범경기 첫 타점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김하성(27)이 첫 시범경기에서 안타를 기록한데 이어 두 번째 경기에서 타점을 올렸다. 김하성은 22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오리아스포츠컴플렉스에서 열린 시범경기에 콜로라도 로키츠를 상대로 유격수로 선발출전, 2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지난 20일 2번 타자로 출전했던 김하성은 이날은 7번 타자로 타석에 섰다. 1회말 2사 3루 상황에서 선발로 출전한 상대 투수 라이언 롤리슨을 상대로 2루타를 만들어냈다. 좌익수 팀 로페스가 햇빛으로 인해 공을 놓치면서 평범한 외야 플라가 안타로 이어지면서 1타점을 기록했다. 4회말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김하성은 무사 1루 상황에서 병살타를 치고 돌아셨다. 김하성은 6회초 도밍고 레이바와 교체돼 이날 경기를 마쳤다. 팀의 주전 유격수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가 부상으로 3개월 간 출전이 어려워지면서 선발로 경기에 나서고 있는 김하성은 두 경기 연속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시즌 초 기대감을 높였다. 김하성은 시범경기 2 경기에서 4타수 2인타 1타점 1볼넷을 기록 중이다.
  • NC 선수로 찾은 손아섭, 사직구장에서 시범경기 첫 안타

    NC 선수로 찾은 손아섭, 사직구장에서 시범경기 첫 안타

    아직은 사직구장이 편한 모양이다. 새 유니폼을 입고 옛 직장을 찾은 손아섭(34·NC 다이노스)이 아껴 뒀던 시범경기 첫 안타를 친정팀을 상대로 터뜨렸다. 손아섭을 지켜보는 옛 동료도, 손아섭도 잇몸 미소가 가득한 친정 나들이였다. 손아섭은 21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NC와 롯데 자이언츠의 시범경기에 3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전했다. 15년간 정들었던 친정팀을 떠나 새로 NC 유니폼을 입은 손아섭은 늘 익숙했던 1루가 아닌 3루 더그아웃에 머무는 낯선 모습을 보였다. 경기 전에는 옛 동료와 함께 반갑게 인사도 나눴다. 이동욱(48) NC 감독은 “그동안 1루 더그아웃에 있다가 3루로 위치가 바뀌어 어색해할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이날 경기 전까지 7타수 무안타에 그쳤던 손아섭은 첫 타석부터 안타를 터뜨리며 ‘사직 체질’임을 보여 줬다. 이날 손아섭이 타석에 들어서자 포수 지시완(28)이 벌떡 일어나 손아섭에게 인사를 건넸고, 손아섭은 잇몸 미소로 화답했다. 손아섭의 절친한 후배로 맞대결을 기다리던 최준용(21)도 마운드에서 손아섭을 향해 미소를 보냈다.사이는 더없이 좋았지만 승부에 양보는 없었다. 1회 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손아섭에게 최준용은 시속 147㎞의 직구를 선보였다. 두 번째도 시속 147㎞의 정면 승부. 그러나 손아섭에게 자비란 없었다. 손아섭은 최준용 옆을 지나 내야를 꿰뚫는 중전안타를 때려냈다. 손아섭의 시범경기 첫 안타였다. NC 더그아웃은 끝내기 역전승이라도 나온 듯 크게 환호했다. 안타를 때린 손아섭이나 안타를 맞은 최준용 모두 웃었다. 최준용은 멋쩍은 듯 곧바로 견제구를 날리며 손아섭의 발을 묶었다. NC가 3-5로 졌지만 손아섭이 3타수 1안타로 활약한 점은 고무적이었다. 손아섭은 “옛 동료를 만났을 때 찡한 마음이 들었다. 게임을 시작하고는 즐거운 마음으로 뛰었다”며 웃었다. 이어 “확실히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곳이라 그런지 타석에서 공이 잘 보이고 집중도 잘된다”면서 “시범경기 첫 안타가 나왔는데 남은 경기에서 타격 페이스를 빨리 끌어올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불타오르는 LG… 불만 차오르는 외인

    불타오르는 LG… 불만 차오르는 외인

    LG 트윈스의 불방망이는 정규시즌에도 이어질까. 대형 외국인 선수들의 침묵은 언제 깨질까. 올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반환점을 돌았다. 다음달 2일 개막하는 정규리그를 앞두고 눈여겨볼 관전 포인트는 지난해와 달라진 LG 타격감과 기대에 못 미치는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이다. LG는 20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시범경기에서 안타 12개 맹타를 휘두른 타선을 앞세워 5-2로 승리했다. LG는 1회 1번 타자로 나선 홍창기에 이어 4번 루이즈의 중견 적시타로 1-0 앞서갔다. 2회엔 LG 첫 타자로 나선 송찬의가 솔로 홈런을 쏘아 올리고, 문성주와 정주현, 홍창기, 오지환이 안타 4개를 몰아쳐 4-0으로 달아났다. 4회와 8회 NC가 1점씩 만회했지만 LG는 9회 문보경, 신민재의 연속 안타에 이어 이상호의 추가 안타로 1점을 더 도망가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4승1무로 1위를 달리는 LG의 불방망이는 이번 시범경기 내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8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원정경기에선 홈런 4개를 포함해 안타 22개가 쏟아졌다.군 복무 후 지난해 2군에서 뛰며 프로 무대 데뷔전도 치르지 못한 내야수 송찬의는 시범경기에서만 홈런 3개를 때려내며 현재 홈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홍창기는 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시범경기 성적이 정규시즌으로 이어지리란 보장은 없지만 지난해 정규시즌 팀타율 8위(0.250)로 부진했던 점을 감안하면 LG 팬들의 올해 기대감은 높아지고 있다. LG 팀타율은 0.324로 롯데(0.339)에 이어 2위다. 지난 시즌 LG의 시범경기 팀타율은 0.215로 최하위였다.LG 타자들의 활약과 함께 눈에 띄는 건 야시엘 푸이그(키움 히어로즈)를 포함해 올 시즌 KBO 데뷔 무대를 치르는 대형 외국인 타자들의 부진이다. 푸이그는 이날 한화 이글스와의 시범경기에서 1타수 무안타로 또 침묵했다. 전날까지 15타수 2안타로 부진했던 푸이그는 이날도 안타를 쳐내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861경기 출전, 타율 0.277, 132홈런 등 빅리그 강타자로 이름을 날린 푸이그는 타격 감각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SSG 랜더스의 새 외국인 타자 케빈 크론도 이날까지 16타수 3안타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만 지난 18일과 이날 각각 2개, 1개의 안타를 쳐내며 타격감을 조금씩 끌어올리고 있다.장성호 KBSN 해설위원은 “이번 시범경기에서 LG 타선의 컨디션이 올라온 것 자체가 과거와 달리 고무적인 모습이다. 올 시즌 충분히 기대해 볼 만하다”면서 “푸이그 등 외국인 타자들의 부진은 아직 시간을 두고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붕붕 불방망이 LG, 빌빌 고개 숙인 외인

    붕붕 불방망이 LG, 빌빌 고개 숙인 외인

    LG 트윈스의 불방망이는 정규시즌에도 이어질까. 대형 외국인 선수들의 침묵은 언제 깨질까. 올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반환점을 돌았다. 다음달 2일 개막하는 정규리그를 앞두고 눈여겨볼 관전 포인트는 지난해와 달라진 LG 타격감과 기대에 못 미치는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이다. LG는 20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시범경기에서 안타 12개 맹타를 휘두른 타선을 앞세워 5-2로 승리했다. LG는 1회 1번 타자로 나선 홍창기에 이어 4번 루이즈의 중견 적시타로 1-0 앞서갔다. 2회엔 LG 첫 타자로 나선 송찬의가 솔로 홈런을 쏘아 올리고, 문성주와 정주현, 홍창기, 오지환이 안타 4개를 몰아쳐 4-0으로 달아났다. 4회와 8회 NC가 1점씩 만회했지만 LG는 9회 문보경, 신민재의 연속 안타에 이어 이상호의 추가 안타로 1점을 더 도망가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4승1무로 1위를 달리는 LG의 불방망이는 이번 시범경기 내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8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원정경기에선 홈런 4개를 포함해 안타 22개가 쏟아졌다. 군 복무 후 지난해 2군에서 뛰며 프로 무대 데뷔전도 치르지 못한 내야수 송찬의는 시범경기에서만 홈런 3개를 때려내며 현재 홈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홍창기는 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시범경기 성적이 정규시즌으로 이어지리란 보장은 없지만 지난해 정규시즌 팀타율 8위(0.250)로 부진했던 점을 감안하면 LG 팬들의 올해 기대감은 높아지고 있다. LG 팀타율은 0.324로 롯데(0.339)에 이어 2위다. 지난 시즌 LG의 시범경기 팀타율은 0.215로 최하위였다. LG 타자들의 활약과 함께 눈에 띄는 건 야시엘 푸이그(키움 히어로즈)를 포함해 올 시즌 KBO 데뷔 무대를 치르는 대형 외국인 타자들의 부진이다. 푸이그는 이날 한화 이글스와의 시범경기에서 1타수 무안타로 또 침묵했다. 전날까지 15타수 2안타로 부진했던 푸이그는 이날도 안타를 쳐내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861경기 출전, 타율 0.277, 132홈런 등 빅리그 강타자로 이름을 날린 푸이그는 타격 감각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SSG 랜더스의 새 외국인 타자 케빈 크론도 이날까지 16타수 3안타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만 지난 18일과 이날 각각 2개, 1개의 안타를 쳐내며 타격감을 조금씩 끌어올리고 있다. 장성호 KBSN 해설위원은 “이번 시범경기에서 LG 타선의 컨디션이 올라온 것 자체가 과거와 달리 고무적인 모습이다. 올 시즌 충분히 기대해 볼 만하다”면서 “푸이그 등 외국인 타자들의 부진은 아직 시간을 두고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신인 라일리, PGA 발스파 챔피언십 3라운드 1위

    신인 라일리, PGA 발스파 챔피언십 3라운드 1위

    올 시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데뷔한 신인 데이비스 라일리(25·미국)가 발스파 챔피언십(총상금 780만 달러) 3라운드 단독 선두에 올라섰다. 라일리는 20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 하버 이니스브룩 리조트 코퍼헤드 코스(파71·7340야드)에서 열린 대회 3라운드에서 버디 9개로 9언더파 62타, 합계 18언더파 195타로 2타차 단독 1위로 올라섰다. 매슈 네스미스(28·미국)가 16언더파 197타로 단독 2위다. 2라운드까지 선두에 5타 뒤진 5위로 시작한 라일리는 이날 보기 없이 버디만 기록해 9개의 타수를 줄였다. 2위 네스미스는 15번 홀까지 공동선두를 유지하다 16, 17번 홀에서 1타씩을 잃으면서 1위 자리를 내줬다. 라일리는 지난 시즌까지 2부 콘페리투어에서 뛰다가 올 2021~22 시즌부터 처음 PGA 투어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11월 버뮤다 챔피언십의 공동7위가 가장 좋은 기록이다. 저스틴 토머스(28)와 전 시즌 이 대회 우승자인 샘 번스(25·이상 미국)가 15언더파 198타로 선두에 3타 뒤진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노승열(31)은 3언더파 210타로 공동 62위로 3라운드를 마쳤다.
  • ‘세기의 미남’ 알랭 들롱, 안락사 결정…아들도 동의

    ‘세기의 미남’ 알랭 들롱, 안락사 결정…아들도 동의

    “안락사는 가장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개적으로 안락사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세기의 미남’ 배우 알랭 들롱(86)이 최근 아들과 상의 후 안락사를 선택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1999년 스위스 국적을 취득해 프랑스 이중국적자인 그는 2019년 뇌졸중 수술 후 스위스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재산 역시 모두 정리했다. 1964년 나탈리와 비밀리에 결혼해 낳은 아들 앙토니 들롱은 20일(한국시간) 프랑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안락사를 부탁했다”라며 스위스에서 아버지 알랭 들롱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알랭 들롱과 4년 6개월 결혼생활 후 이혼한 나탈리는 지난해 프랑스에서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알랭 들롱은 뇌졸중 수술 직전 “나이 든다는 건 끔찍하다. 우리는 나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며 “특정 나이, 특정 시점부터 우리는 병원이나 생명유지 장치를 거치지 않고 조용히 떠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알랭 들롱은 냉담한 듯한 표현과 잘 생긴 외모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려왔다. 르네 클레망 감독의 1960년 작 ‘태양은 가득히’로 세계적인 톱스타로서의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대표작으로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1966), ‘태양은 외로워’(1962), ‘볼사리노’(1970), ‘조로’(1975) 등이 있다. 들롱은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과거 부인을 심하게 구타하는 등 가정폭력의 가해자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명예 황금종려상 수여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들롱은 상을 받는 자리에서 “내가 유일하게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내 배우 경력으로, 이 명예 황금종려상은 그러한 내 경력에 주는 것이라 기쁘고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 신인 땐 다크호스, 2년차 ‘다 큰 호스’

    신인 땐 다크호스, 2년차 ‘다 큰 호스’

    안재석, 타율 5할에 수비도 척척장재영, 평균자책점 0으로 순항김기중·김진욱, 선발 자원 거론 불과 1년 만에 처지가 달라졌다. 그러나 지난해보다 내실은 더 알차다. 1년 전 자신들처럼 후배들에게 관심이 쏠린 사이, 2년차 선수들은 지난해 못다 피운 꽃을 활짝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시범경기가 한창 진행 중인 프로야구에서 올해도 많은 신인 선수가 화제가 되고 있다. 새 얼굴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듯 선수들은 안타 하나에도 주목받는다. 특히 ‘제2의 이종범’이라고 평가받는 김도영(19·KIA 타이거즈)의 인기는 슈퍼스타 못지않다. 김도영은 17일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시범경기에서도 5타수 3안타로 맹활약하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많은 2년차 선수가 지난해 그랬다. 불과 1년 사이 달라진 처지에 격세지감을 느낄 만한 상황이다. 그러나 신인 티를 벗은 2년차 선수들은 ‘소퍼모어 징크스’(2년차에 더 부진한 현상) 없는 시즌을 위해 알차게 준비한 대로 시범경기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다.안재석(20·두산 베어스)은 17일 기준 시범경기 5할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김태형(55) 두산 감독도 “재능이 있다”고 인정한 타격 능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특히 지난 15일 KT전에서는 2루타와 3루타를 날리며 존재감을 뽐냈다. 약점이던 수비도 시범경기에서 유격수, 2루수, 1루수를 가리지 않고 척척 해내 두산 팬들을 행복하게 하고 있다.고교 시절부터 강속구로 많은 주목을 받은 장재영(20·키움 히어로즈)은 시범경기 평균자책점 ‘0’으로 순항 중이다. 여전히 제구가 불안하지만 빼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 주고 있다. 장재영은 “작년에 후회했던 경기들이 많아서 올해는 편하게 하자는 마음으로 준비했다”며 2년차에 달라진 마음가짐을 설명했다.김기중(20·한화 이글스)은 카를로스 수베로(50) 감독의 눈도장을 받아 선발로 낙점되기도 했다. 한화의 1차 지명 정민규(19) 역시 시범경기에서 수차례 큼지막한 타구를 선보이며 한화 야수진에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지난해 초 신인왕 후보로 꼽혔던 김진욱(20·롯데 자이언츠)은 겨울에 구단의 투구 프로그램을 차근차근 소화하며 팀의 선발 자원으로 거론되고 있다. 신인왕 이의리(20·KIA)는 말하지 않아도 2년차 활약이 주목되는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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