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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심 중립” 해석속 미묘한 시각차/여 예비주자 반응

    ◎이회창·박찬종 고문측 공정경선방침 환영/3·5보선후 후보군 본격 경쟁체제 나설듯 신한국당의 대선예비주자들은 김영삼 대통령의 『대통령 후보를 투명하고 민주적이며,공정한 경선을 통해 선출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데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대부분 최대 킹메이커로 여기던 이른바 「김심」의 중립으로 해석하는 눈치였다. 이를 뒷받침하듯 강삼재 사무총장도 『현재의 당헌·당규를 고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했다.이미 실무작업이 진행중임을 시사한뒤 조만간 당내에 개정위원회의 설치 뜻까지 피력했다. 당헌·당규의 개정은 사실상 당내 예비주자들간 대권레이스 돌입을 의미하는 일이다.그동안 일부 주자군이 누차에 걸쳐 당헌·당규 개정필요성을 제기하고 그 때마다 당지도부가 이를 전면 부인한 「다람쥐식」 설전도 사실은 대권논의와 맞물려있었다. 개정의 핵심은 경선출마자가 8개 시·도 각 50명 이상의 대의원 추천을 받아야 하는 현행 규정의 존폐여부다.또 미국식 예비선거제도를 도입할 것인지와 이에 따라 현 대의원 수를 얼마나늘리느냐로 압축된다. 대부분의 예비주자군들도 앞으로 논의해야 할 문제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이를 인정한다.이회창·박찬종 고문측이 공정한 경선 방침을 환영하면서 실질적인 조치로 대의원수 확대에 보다 큰 관심을 나타냈다.반면 당내 지분이 비교적 탄탄한 최형우 이한동 고문과 김덕룡 의원측은 대통령의 의지표명 자체에 무게를 싣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후보군은 「공정한 경선」에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대통령의 공정한 경선관리는 상대적으로 각 진영의 역할 증대를 위한 공간확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또 후보간 합종연횡의 가능성은 물론 「김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후보군의 세력약화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설사 그렇더라도 당총재의 역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시각도 없지않다. 어째튼 「3·5 보선」이 끝나면 당은 사실상 후보군들간의 본격 경쟁체제로 돌입한다고 봐야할 것이다.이홍구 대표의 한 측근은 『경쟁을 위한 자유로운 분위기가 조성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무욕을 넘어 경쟁에 합류할 뜻임을 시사한 대목이다.
  • 등소평 사망­중 이끌 5인의 실력자

    중국을 현대화한 카리스마적 지도자 등소평이 사망함에 따라 등없는 중국의 미래에 세계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강택민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지도자들은 등과 같은 지도력과 카리스마적 권위가 없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강을 중심으로한 집단지도체제가 유지되며 권력투쟁의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등이후의 정치역학 구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실력자들을 알아본다. ◎강택민/개방정책 지휘한 등의 적자/상해·기술관료 출신… 추진·포용력 돋보여/대중적 카리스마 부족… 군부기반도 취약 「강철 미소」.북경외교가에서 강택민을 평하는 말이다.부드럽고 여유있게 보이는 이면에 치밀하고 끈질긴 추진력을 평하는 말이다.각 부문을 통괄하고 무리없이 이끄는 포용력은 등소평도 크게 평가했다고 한다.문제를 파악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지도력도 그의 장점으로 꼽힌다.현재와 같은 중국의 집단지도체제에선 강과 같은 적격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다른 지도자들의 입지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점진적으로 지도력을 강화해 나가고있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강은 명문대(상해 교동대)를 졸업한 전형적인 기술관료(테크노크래트)다.지난 95년 한국방문때 삼성전자 등을 둘러볼때 전문지식과 식견으로 주위를 놀라게 할 정도다.그러나 특유의 인화력과 포용력으로 조정과 막후 교섭등 정치력이 돋보인다는 평이다.지난 89년 천안문사건으로 전국이 혼란에 빠졌을때 상해서기로서 유혈사태를 피하면서도 시위대를 적절히 제압하는 「성과」를 거두어 등소평의 점수를 얻었다.그는 강소성의 비교적 넉넉한 학자집안의 자제다.그가 영어·러시아어 등 외국어에 능통하고 서예와 그림,중국전통악기 및 피아노 다루기 등에도 조예가 깊은 것은 그같은 집안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이붕에 비길수 없지만 그의 양아버지인 숙부가 공산당원간부로서 이선념·장애평·진의 등 신4군 수뇌들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이같은 출신배경도 그의 능력과 함께 출세의 밑천이 됐다.인민해방군의 거목인 이선념은 생전 그를 적극 지원했었다.강택민은 상해시 당위원회 부서기·서기·시장 등을 거치면서 중앙의 인정을 받았다.상해가 권력의 기반일뿐 아니라 출세의 발판이고 그의 고향도 넓게 범상해권에 속하는 강소성이다.상해의 식품공장과 비누공장에서 기술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뒤 기계공업부와 전자공업부 부장 등으로 기술관료로서도 엘리트코스를 거쳤다. 그의 뒤에는 상해파벌의 대부격인 왕도극이 후견인 역할을 해왔다.오방국·황국·서광적 등이 다 그와 정치적 운명을 같이하는 소위 「상해방」이다.그는 증경홍 당중앙판공실 주임을 정치국으로 끌어올리려는 등 계속 상해출신의 진용을 강화하고 있다.94년 14기4중던회 때 상해시장 황국과 당시 당서기 오방국을 정치국원으로 진입시키는 등 주위를 두텁게 하고 있다.등소평에 의해 뽑혀 올려왔지만 지난 8년동안의 최고지도자로서의 입지 강화해 모택동에 의해 선택된 화국봉처럼 쉽사리 뽑혀나갈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그러나 국가지도자로서 카리스마나 구체적인 치적이 없고 취약한 군부의 지지기반 등이 그의 아픈 곳이다. ◎이붕/보수파 대변 태자당의 리더/거미줄처럼 깔려있는 관료인맥이 강점/천안문사태 강경진압 지휘… 대중반감 커 이붕 국무원총리는 지난 8년여동안 강택민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쌍벽을 이루며 중국을 이끌어 오고 있다.이미 79년 국무원 전력공업부 부부장으로 중앙에 진출한뒤 국무원 부총리(83년),중앙위원 겸 정치국위원 등을 거친 기술관료로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중앙위원이나 정치국원도 강택민보다 먼저 올랐다.제3세대 기술관료들의 본산인 소련유학파의 수장격으로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관료인맥의 대부격이다. 87년이후 10년 가까운 총리직을 통해 각 지방에 자신의 인맥을 상당히 확보해왔다.정부를 통괄하는 국무원 판공실주임 라간 등도 그의 수하다.최근 그는 지난 95년 북경시의 진희동·왕보삼사건 등으로 곤경에 몰리는 등 강택민의 상해파에게 밀리는 듯 위축된 모습이다.그러나 그의 경력과 배경은 앞으로 전개될 권력투쟁에서 강점으로 꼽힌다. 그는 중국 공산혁명 제1세대의 적자로 비유되는 소위 로열패밀리의 성원이다.아버니 이석훈은 장개석 국민당군에게 처형된 「혁명열사」고 어머니 조군도도 열렬한 핵심당원이었다.그의 외가는 혁명1세대의 핵심성원이다.고아가 된 그는 혁명1세대들에게 「우리들의 아이」로 키워졌고 특히 주은래와 등영초의 양자로 성장했다.진운은 사망했지만 당원로 팽진·등력군 등은 그의 배경이 되고 있다.또 중국 정·관·군의 주류로 건재한 로열패밀리출신의 「태자당」들의 구심점이란게 무엇보다 그의 강점이다.이같은 배경은 그의 생각과 행동을 보수적인 성향을 갖게 한다. 이붕은 그러나 지난 89년 천안문사건때의 강경진압 주도자라는 부담을 지게하고 있다.진압의 총지휘자인 등소평이 사라진 마당에 천안문의 부담은 더할 것만은 분명하다.이붕은 연임제한규정에 묶여 오는 98년초 총리직에서 내려와야 한다.아직 그에게 마땅한 자리는 없는 듯하다.강택민·오방국·황국 등을 주축으로한 상해파가 계속 북진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의 입지가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시장개방정책과 국유기업개혁 등 경제체제개혁이 심화돼 부작용이 높아질수록 그의 발언권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중국의 방대한 관료체계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상층부 인사들과의 인적관계,총리 등 당·정 지도자로서의 엘리트코스 등은 그가 1인자는 될 수 없어도 영원한 2인자,견제세력으로의 위치를 지키게 할 것으로 보인다. ◎교석/온건·합리… 서열3위 중도파/개혁·보수파 조정역… 전면 나서진 않을듯 올해 74세의 교석은 당 공식서열 3위로 국회의장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맡고 있다.절강성 출신으로 대학시절(상해 동제대) 상해학생운동의 총지도자였다.당조직부와 정법부문에서 오래 근무해왔다.공안부 및 검찰·감찰업무를 총괄하는 정법위원회 서기 임건신,부정부패처벌 등을 총괄하는 기술검사위원회 서기 위건항 등이 모두 그의 직계로 꼽힌다. 천안문사건 당시 강경진압에 기권의사를 표시하는 등 온건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전인대 상무위원장직을 맡은 이후 전기운부위원장의 지지 아래 전인대의 정부에 대한 감독·비판역할을 강화하고 있다.또 법률정비 및 법치제도 완비추세 속에 각종 법률제정 등을 주도하며 보이지 않게 중국사회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강택민 서기의 선배격이며 당조직 부부장 때는 현재 중국지도부의 거의 대부분을 발탁,관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발이 넓다.빠른 판단력에 기분과 의사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 성격은 그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결정적인 순간 그의 동의는 더욱 무게를 갖는다.그러나 개인적으로 최고지도자의 자리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위사람의 이야기다.사실상 실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란 것이다.한때 「강락석출(강택민은 떨어지고 교석이 등장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일반의 인정을 받고 있다.「불편불기,심장불로」로 요약되는 그의 조심성과 균형 있는 처신은 전환기를 맞아 정치적 힘을 배가시킬 것으로 보인다.중앙대의연락부 부장,중앙당교 교장 등 당·정 핵심요직을 두루 거쳐 넓은 인맥도 강점이다.또 최근 해외나들이 등 국회외교를 보여 주목받기도 했다.실질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경제개혁·개방에 이어 정치적 개혁의 바람을 주도할지 그의 역할이 주목되고 있다. ◎조자양/개방의 전도사… 대중적 인기/천안문사태로 실각… 세력잃어 재기 의문 소년 홍군병사 출신으로 총서기에 올랐다가 「급진」자유주의적 견해 때문에 권좌에서 추락한 올 79세의 조자양은 개인적인 권력기반보다는 중국 자유주의사조의 부침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의 입지변화의 귀추가 주목된다.89년 천안문사건 당시 천안문광장에서 학생과 얼굴을 맞대며 설득을 시도하던 그의 실각도 8년여가 되지만 개혁·개방정책의 주도자로서의 그의 명성과 성취는 기존지도자들을 위축되게 한다.경제성장,개혁·개방의 전도사란 말은 늘 그의 성공을 수식하며 따라다니는 말이다. 그만큼 그는 지금도 요주의인물의 하나로 감시받고 있다는 것이 북경외교가의 이야기다.이미 정치의 꿈은 버렸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그의 복귀가 현정권 자체에 위협시되고 있는 것이다.그는 성장시절 빈곤에 찌든 사천성에 빈곤추방을 시작해 대성공을 거두었다.「곡식 먹고 싶거든 조자양에게로 가라」는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로 그의 경제개혁은 성공을 거두었다.그는 중앙무대에서도 혁명세대와 혁명후 전문기술관료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며 입지를 다져왔었다.그는 1932년 13살의 나이에 중국혁명에 참가한 소년병 출신이다.양상곤의 다음세대인 2.5세대로 평가된다.80년대 개혁·보수의 힘겨루기 속에 급진적 정치·경제개혁을 추진하다가 천안문사태로 「동란을 지지하고 당을 분열시켰다」며 정치적 매장을 당해야 했다. 그는 지방의 자율성과 중앙권력의 지방이양을 강조,지금까지도 지방세력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특히 80년대 호요방에 의해 형성된 기술관료층이 현집권세력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복귀를 두려워하는 현정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그러나 세력기반이 뿔뿔이 흩어져 재기는 의문시된다. ◎양상곤/군부 영향력… 킹 메이커 노려/「천안문」 강경진압 주역… 나이도 너무 많아 양상곤이야 말로 등소평없는 중국에서 당·정·군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로다.그는 인민해방군의 창설자의 한명이자 중국공산당의 원로며 전임 국가주석겸 권력의 핵인 당 중앙판공실 주임을 20년가까이나 맡았다.실권은 없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즉 중국국내의권력투쟁이나 분쟁이 가열되고 문제해결이 어려워질 경우 그의 발언권과 선택이 상당한 무게를 갖는다는 점에서 그의 향배는 앞으로의 주요 변수로 꼽히고 있다. 올해로 91살이지만 쉬지않는 지방시찰 등으로 정력적인 활동으로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그는 95년 광동성,96년 동북3성을 순회한데 이어 올해초에도 주해와 심천 등을 시찰하고 개혁개방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중국건립 당시 팽덕회가 지휘하던 제3군의 정치위원이었다.양상곤은 지난 93년10월 정치 연소화란 구실로 권좌에서 밀려났다.실은 그와 그의 이복동생 양백빙의 군에 대한 장악력등은 강택민정권의 가장 큰 위협세력이 된다고 판단한 등소평의 기습으로 군의 실세였던 양백빙과 함께 실권에서 밀려나게 된 것이다. 그 역시 이붕처럼 89년 천안문사건때 「손에 피를 묻힌」강경진압자중 대표인물이다.부담을 벗어버리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천안문사건의 강경진압주장과는 달리 그는 비교적 유연한 사고와 실용주의적 노선이 지지자로 평가된다.나이 때문에 권력의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없지만 유사시 「킹메이커」는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문화혁명때 주자파로 몰려 66년부터 13년동안 소련간첩 혐의를 뒤집어쓴채 감옥생활을 한 쓰라린 과거도 있다.등소평과는 고향도 갖고 깊은 친분을 갖고 있다.〈북경=이석우 특파원〉
  • 「대권 카르텔」 활기띨듯/예비선거 검토와 여 기류

    ◎도입땐 김심 입김 감소… 독주자 없을듯/합종연횡→당·정 분권… 그룹통치 예상 여권의 차기대선주자를 미국식 예비선거 방식으로 선출한다는 것은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이후 견지해온 후보선출 방식의 변화를 의미한다.아직 검토단계여서 실현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지만,여권내 대선예비주자들이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변화의 핵심은 물론 김대통령의 「킹메이커」로서의 역할이다.미국식 예비선거 도입은 당총재로서 김대통령이 그동안 천명해온 「특정후보 지지」의 영향력이 크든,적든 감소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실무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당 핵심인사들도 이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 변화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한보사태를 거치면서 후보뿐아니라 최대 킹메이커로서의 변신 가능성도 갖고있던 민주계 주자들이 상처를 입은 터이다.여기에 이른바 「김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일부 후보군도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신한국당의 후보군은 대중적 이미지와 함께 「3김」에 비해 아직은 미세하지만,나름의 지역적 기반을 수반하고 있다.벌써부터 당내에는 「어느 지역 대의원은 누구표」라는 각종 관측이 난무하고 있다.실제 그런 징후들이 포착되기도 한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확고한 우세를 보인 주자가 없다는 점이다.우열이 나눠질 뿐,대세를 확정지을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이홍구 대표가 19일 정당대표 연설에서 밝힌 『소수의 「통치시대」는 끝났다』는 화두에 주목한다.민주계의 한 핵심인사도 『다음 정권은 여야를 떠나 누가 담당하든 권력분점이 예고된다』고 말한다.당정의 역할분담은 물론 사회 제 그룹의 통합운영체제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이러한 진단은 후보간의 「합종연횡을 기저에 깔고 있다.만일 예비선거제도가 실시된다면 김심보다 훨씬 위력적이라는게 당안팎의 중론이다.당내에 「이회창­김윤환 고문」에서 부터 「민주계와 이한동 고문 제휴설」,「민주계의 당밖의 새인사 찾기」에 이르기 까지 여러 가설들이 끊임없이 떠돌고 있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 김 대통령 연두회견 이후의 신한국

    ◎“「김심 공개천명」 대선후보군에 파문일듯/「이·이 체제」 최소한 올 6월까진 지속 전망 김영삼 대통령이 7일 연두기자회견에서 밝힌 정치적 화두는 「김심」을 당원과 국민에게 공개리에 확실히 하겠다는 것과 현 당정의 이홍구 대표·이수성 국무총리 체제 유지,그리고 후보 경선시기에 대한 언급이다. 모두 향후 정치일정에 나름의 폭발성을 갖고 있다.특히 김심의 공개 천명의사는 당내 예비후보군의 역학관계에 많은 파문을 몰고 올 조짐이다. 이미 이회창·김윤환 고문 등은 자유경선론을 주장해온 터이다.각 후보군이 이날 제각각의 반응을 보이며 「응전」채비를 갖추기 시작한 것도 음미해 볼 대목이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이날 언급의 배경은 당총재로서의 선택인 김심이 자유경선 원칙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나아가 후보간 합종연횡이나 당내 킹메이커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풀이된다.즉 자신이 최대 킹메이커로서 선거때까지 당내 예비후보군을 보다 확실히 관리하겠다는 의지로 후보군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도 담고 있다. 이렇게 되면 누가 당대표이고 국무총리라는 것,즉 포지션이 중요한 변수가 되지않는다.김대통령이 취임 4주년을 즈음해 당정개편을 단행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도 이 때문이다.현재로는 현 「이·이체제」가 최소한 올 6월까지는 지속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바꿔말해 김심이 존재하는 한 이·이체제가 별 무게를 갖지 못한다고 봐야한다.김심의 낙점여부에 따라 현 당체제가 선거관리체제로 그대로 이어질 수도,아니면 김대통령의 전례대로 정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이총리에 대한 부분이다.『국무총리로서 일을 잘하고 있어 계속 맡기는게 옳다』고 밝힘으로써 일각의 상임고문설을 일축했다.당내에서는 1차 후보군 정리로 보는 성급한 시각도 없지않다. 또 하나는 전당대회 시기에 대한 언급이다.김대통령은 그동안 『늦출수록 좋다』는 방침에서 이날 『너무 늦추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추가했다.이는 소모적인 논쟁 속에서 후보군을 무작정 끌고가지 않겠다는 당에 대한 일종의 「배려」로 여겨진다.
  • 야 중진들 「대권 계산법」 골몰

    ◎김상현­“대선후보 경선” 이달말 공식 선언/정대철­“DJ는 킹메이커로 나서야” 강조/한영수­DJ 불신… 「DJP 공동집권」 반대/이기택­3김 청산·야권 대통합론 기치 「97대선」을 맞는 야권 중진들의 「대권 해독법」이 시작됐다.일부는 「DJP(김대중­김종필 총재)대세론」을 인정하면서 후일을 노리는가 하면 「제3후보」를 꿈꾸며 노골적인 도전에 나서는 인물도 있다. 그렇지만 모두 대선판도가 자신들의 「정치생명」과 직결된다고 판단,복잡한 「대권계산법」에 골몰하고 있다. 국민회의 김상현 의장은 「DJP공동집권」에 반기를 들며 「제3후보론」의 선봉에 섰다.4·11총선후 「DJ흔들기」에 주력했던 그는 이달 하순에 대선후보 경선을 공식적으로 선언,전면대결에 들어간다.5월전당대회를 주요 공략목표로 정했다.오는 26일 「후농배 바둑대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세몰이」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포스트­DJ를 노리는 정대철 부총재는 『DJ는 대권후보가 아닌 킹메이커로 나서야 수평적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며 「DJ불가론」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재야대표 격인 김근태 부총재는 「DJP공동집권」에 반대하고 있지만 「DJ대세론」엔 동참하는 「외줄타기」에 나섰다. 조세형 권한대행과 이종찬 부총재는 「DJ대통령 만들기」로 입장을 정리했다.총선후 한때 반DJ 입장을 취했던 조대행은 권한대행을 맡으며 DJ지지로 돌아섰다.이부총재는 처음부터 「DJ 정권교체호」에 탑승,여권의 정보분석및 종합정세판단의 역할을 수행중이다.올 2월에 출범하는 당내 「대선기획단」에서도 주요 임무를 맡을 것으로 점쳐진다. 자민련 중진들도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졌다.한영수 부총재는 『DJ는 정치적 약속을 지킨 적이 없다』며 「DJP 공동집권」에 반대하고 있지만 박철언 부총재 등 TK(대구·경북)의원들은 절호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이들은 무주공산 TK가 이번 대선에서 결정적인 열쇠를 쥐었다고 판단,『차기정권의 공동주체로서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며 「TK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제4당을 이끄는 민주당 이기택총재는 3김청산의 목소리를 높이며 「야권대통합론」의 기치를 내걸었고 김원기전 공동대표도 당내 비주류 그룹을 묶은 통추를 중심으로 「범국민후보 추대」에 나설 예정이다.
  • 야블린스키·지리노프스키/옐친 지지

    ◎“주가노프와 협력않겠다”… 러 대선 변수 부상/레베드,주가노프와 전격회동 “눈길” 【모스크바 AP 로이터 연합】 러시아 극우파의 리더인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 자유민주당 당수가 19일 뜻밖에도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를 선택하지 말 것을 촉구하고 나섬으로써 선거정국에 새로운 변수를 제공했다. 지리노프스키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를 지지한 유권자들이 결코 결선투표에서 공산당으로 쏠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나의 유권자들은 내가 말한 대로 투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이같은 언명은 사실상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것으로,주가노프 후보에게는 적지 않은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공산당을 지지할 것으로 예상됐던 지리노프스키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는 1차투표에서 3위를 차지,「킹 메이커」로 부상한 알렉산드르 레베드 장군과 이날 밀담을 나눈 직후에 나온 것이다. 지리노프스키 당수는 지난 1차 투표에서 비록 5위를 차지했지만 6%라는 만만찮은 득표를 기록했으며 노선상으로 볼때 결선투표의 승리를 위해 부심하고 있는 주가노프 후보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여겨져 왔다. 또 1차투표에 참가한 스비아토슬라프 표도로프 후보도 이날 옐친을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3위 득표자인 레베드 후보의 가세로 힘을 얻고 있는 옐친진영의 사기는 한층 고양될 전망이다. 한편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대선 결선투표를 앞두고 1차투표에서 4위를 차지한 그리고리 야블린스키와 제휴할 가능성이 있다고 옐친 대통령의 한 고위 측근이 이날 밝혔다. 【모스크바 AFP AP 연합】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안보담당 보좌관 겸 러시아 국가안보위원회 사무총장에 전격 임명된 알렉산드르 레베드는 19일 옐친 대통령과 대선 결선투표에서 맞붙게 될 공산당의 겐나디 주가노프 당수와 만나 러시아 정치상황 등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 16일 대선 1차투표에서 3위를 기록해 일약 「킹메이커」로 부상한 레베드는 주가노프와의 이날 회동에 대해 『1차선거에 따른 통상적인 정치협의의 일환』이라고 말했다.또 주가노프 당수는 1차투표에서 1%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한 모든 후보와 만나기로 한 계획에 따른 평범한 논의였다고 말했다.
  • 러 급진개혁 수정 불가피/러시아 대선­결과분석·결선투표 전망

    ◎주가노프,옐친지지율 육박… 사실상 승리/3위 레베드 지지표 향배따라 결선 당락 16일 실시된 러시아의 대통령선거에서 어느 후보도 과반수의 지지를 얻지 못함에 따라 상위 1∼2위득표를 기록한 옐친과 주가노프 두 후보가 2차투표에서 다시 한번의 격돌을 벌이게 됐다. ○개혁부작용에 반발 그러나 1차투표의 결과만으로도 이번 선거는 공산당후보인 주가노프의 지지율이 옐친 대통령에 거의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나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지금 같은 식의 급진경제개혁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주가노프후보는 개표초반부터 시종 5%미만의 표차로 옐친후보를 육박하며 결국 2차투표까지 이끌어내는 위력을 과시했다. 일각에서는 옐친 대통령이 선거기간중 모든 언론매체를 장악하고 미국등 서방의 거의 일방적인 지지를 누린 점등을 들어 이번 선거가 사실상 주가노프의 「승리」라는 평가도 내리고 있다.특히 서방언론까지 가세해 이번 선거를 「악의 세력」인 공산당 잔당 주가노프 대 민주화의 「화신」 옐친후보의 대결로 몰아세워 옐친의 바람몰이를 도왔다. 지난 91년 공산당의 몰락 뒤 5년여만에 다시 공산당후보가 러시아국민으로부터 이같이 높은 지지를 되찾게 된 1차적인 배경은 역시 개혁과정에서 빚어진 각종 폐해 탓으로 돌릴 수 있다. 빈부격차,거의 마비상태에 빠진 치안상태,점차 악화되는 경제난등 개혁과정의 부작용은 한두가지가 아니었고 이 과정에서 소외계층의 많은 이가 주가노프지지로 돌아선 것이다.따라서 옐친 대통령으로서는 설사 2차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이같은 여론의 동향을 외면하기는 힘든 상황이 됐다. ○공산회귀에도 반대 주가노프후보의 한계는 역시 공산주의자라는 「이념」의 족쇄에 있다고 볼 수 있다.1차투표때 개혁의 부작용에 반발해 반옐친표를 던진 많은 지지표가 2차투표에서 주가노프지지로 모여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그가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이다.이념적으로 다시 공산주의로 되돌아가는 것을 지지하는 국민은 별로 없는 게 현실이다. 주가노프도 이같은 한계 때문에 옛정서를 앞세워 소외계층의 표를 모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의 부활과는 한사코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공산주의이념도 아니고 개혁도 아닌 개혁의 중도를 찾아내 제시하는 게 주가노프의 한계이자 출구다.2차투표때까지의 짧은 기간중 그가 이 과제를 어떻게 소화해낼지가 관건중 하나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일이라면 역시 퇴역장성인 레베드후보의 약진이다.그는 예상외의 높은 지지를 얻어 3위를 기록함으로써 야블린스키후보나 지리노프스키후보가 캐스팅보트로서 설 자리를 잃게 만들었다.지지발언여부에 따라 그는 옐친 혹은 주가노프를 당선시킬 수 있는 「킹메이커」자리에 우뚝 선 것이다. ○킹케이커후 급부상 하지만 레베드후보가 설사 옐친지지를 표명하더라도 그의 지지층까지 모두 옐친지지로 돌아선다는 보장은 없다.레베드는 지금까지 옐친이 개혁중 만들어낸 각종 실정과 러시아민족주의에 호소해 인기를 모은 사람이기 때문이다.자칫하면 그의 「변절」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아 그의 지지층을 더욱 반옐친으로 묶어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지리노프스키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는 주가노프에게몰릴 가능성이 크다.야블린스키후보는 이미 옐친후보와 「밀실협상」이 깨진 상황이다.하지만 야블린스키의 지지자성향으로 볼 때 2차투표에서 공산당후보를 밀 가능성은 극히 적을 것으로 분석된다.야블린스키후보는 옐친후보보다 더 공산당을 싫어하기 때문이다.2차투표때까지의 변수도 많다.「불안한 체첸사태의 추이」도 그 가운데 하나다.〈모스크바=류민 특파원〉
  • 국민회의 김상현 의장(오늘의 인물)

    ◎「민주대권 구상」 흘려관심/대선후보 자유경선주장이 핵심인듯 3박4일의 일본방문을 마치고 6일 귀국한 국민회의 김상현 지도위의장이 이달중 『민주대권구상』을 발표할 예정이다.내용을 묻는 질문에 특유의 웃음을 섞어가며 『원칙적인 얘기지 뭐』라며 얼버무리기 일쑤다. 그러나 김의장이 간간이 내비친 말을 종합해보면 『내년 대선후보를 민주적 절차인 자유경선을 통해 뽑자는 것』이 핵심인듯 하다.『97년 대선주자는 김대중 총재』라고 못을 박으면서도,『추대형식을 취하면 국민회의가 김총재의 사당으로 비쳐지는 역효과가 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의 구상은 총선에서의 신승에 대한 돌파구인 동시에 낙선으로 경쟁자들이 대거 사라진 헌정구에서 확실한 지문을 노린 『기다림』의 다른 표현이다.『킹메이커』를 자처하면서 상황이 바뀌면 자신이 대안의 중심에 서겠다는 복안이라는 해석이다. 총선후 조세형­김근태 부총재의 민주통합론이나,정대철 부총재의 『대권환경변화론』등 당중진 사이에서 일종의 『DJ 대안론』이 고개를 드는 상황에서 미묘한 파장도 예상된다.여기에 김대중­김종필 양당총재회담에서 거론된 『내각제』와 맞물려 자칫 당내 권력논의에 불을 지필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 신한국/총선민의 반영 본격“새판짜기”/김 대통령의 당직개편 구상

    ◎당장악력 강화… 대권경쟁 조기과열 차단/새 진용 누가 뽑히든 관리형역할 맡길듯 신한국당 김윤환 대표위원은 25일 김영삼 대통령과의 마지막 주례보고를 겸한 오찬을 마쳤다.당사에 돌아온 김대표는 별로 말이 없었다.『다음달 7일 전국위원회를 열라』는 김대통령 지시를 소개하고는 말문을 닫았다.대표 교체설의 확인이자 여권 「새판 짜기」의 개시를 공식 선언한 순간이었다. 허주(빈배라는 뜻의 김대표 아호)는 전국위원회까지는 공식 업무를 계속 수행한다.그러나 곧 빈배가 될 그에게 뭐가 채워질지는 속단할 수 없다.국회의장설이 나돌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는 게 여권 내부의 분위기다. 그는 전국위원회를 마친 뒤 외유에 나설 예정이다.기자들도 대동할 계획이다.바깥에서 속내를 털어놓을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인다.기사거리는 대권과 관련한 것이 분명하다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그는 이런 예상을 뒷받침하는 언급을 자주 해 왔다.『직책이 있어야 정치가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향후 정치적인 역할을 자신하기도 했다.「킹」이든,「킹메이커」든 결코 뒷전에 있지만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는 대목이다.이날 모처럼 홀가분한 표정을 지은 것도 자유로운 처지에서 뜻한 바를 추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반영한다. 이제 정치권의 관심은 「포스트 허주체제」의 개편구도에 쏠린다.후임대표와 사무총장등 김대통령과의 「핫라인」이 핵심이다.강삼재 사무총장은 『다음달 7일 총재지명 전까지 누구도 모를 것』이라고 섣부른 예측을 경계했다.인사와 관련한 YS 특유의 의외성에 비춰 당연한 말이다.그동안 그래왔듯이 여권내부의 속사정상 최종 낙점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이 예상된다. 하지만 큰 줄기는 잡혀가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김대표를 위시한 당직자 전원의 사의표명이 주는 명분이 그 단서다.총선에서의 민의가 요구한 대로 김대통령이 새로운 구상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게 요체다.김대통령의 강력한 친정체제 구축을 뜻하고,동시에 차기 대권경쟁의 조기과열 차단을 전제로 한다. 후임 대표 등 개편되는 새 진용은 「관리형」이 확실하다는 전망도 이런 배경에서나온다.그러나 「관리형」대표가 주는 의미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다.그 표현에만 집착하다 보면 두사람이 가시권에 들어온다.민주계 원로인 김명윤 고문이나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유력한 대상이다.모두 무색무취형으로 김대통령의 강력한 지도력 발휘에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점이 기준이다.김고문은 그러나 최근들어 국회의장설로 방향이 선회되는 분위기도 있다. 여기에 이회창 전 선대위의장과 이한동 국회부의장이 최근들어 급부상하고 있다.두사람 모두 「수도권 제1당」의 일등공신인 점을 김대통령이 높이 사는 배경에서 나온 관측이다.차기 대권후보군에 포함되기 때문에 가능성을 차단하는 분석도 있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김대통령의 당 장악력은 이들의 조기 부각을 허용치 않을 만큼 여전히 강하다는 게 그 이유다. 「YS사람」인 서석재 전 총무처장관은 특유의 친화력·흡인력으로 김대통령이 안심하고 당을 맡길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대표카드가 여의치 않으면 사무총장으로 기용,강력한 직할체제를 구축할 가능성도 높다는 분석이다.이런 선택은 어느 대표든 「관리형」으로 제한 가능한 이점도 있다.〈박대출 기자〉 ◎당대표 임명동의 등 전대위임사항 처리 ▷신한국당전국위란◁ 신한국당이 5월7일 소집키로 한 「전국위원회」는 당의 최고 의결기구인 전당대회의 개최가 곤란할 때 위임된 사항을 대행,처리하는 당 기구. 전국위는 전당대회의 기능 가운데 ▲명예총재의 추대 ▲대표의 임명동의 ▲당헌의 채택 및 개정 ▲기타 주요 당무사항의 의결및 승인을 대행할 수 있다.그러나 ▲당 강령 및 기본정책의 채택과 개정 ▲당의 해산 및 합당 ▲총재와 대통령후보자 선출 등 전당대회의 핵심기능을 대행하지는 못한다.
  • 신한국 중진들 발걸음 빨라졌다/김대표 청와대보고 재개등 의욕과시

    ◎이회창씨 당료접촉·박찬종씨 국토순례/이영동 부의장 「신중부권」으로 영역확대/최형우·김덕용 의원 등 민주계는 정중훈 신한국당 대권후보군들의 발걸음이 부쩍 빨라지고 있다. 김윤환대표는 총선 기간동안 중단됐던 김영삼대통령과의 주례보고를 18일 재개했다.이 자리에서 자신을 포함한 당직자 일괄 사의용의를 전달했다. 그에게 「대표자리」는 「플러스요인」이 될 수 있다.하지만 『포스트(자리)가 없다고 정치가 안되느냐』며 당직을 초연한다는 입장이다.『나와 손잡지 않고서 누가 대권을 바라볼 수 있겠느냐』고 말하기도 한다.최소한 또 한번의 「킹메이커」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다. 김대표는 지난 16일 이한동 국회부의장을 시작으로 17일 박찬종,18일 이회창,19일 최형우,20일 이홍구씨 등 당내 중진들과 잇달아 접촉한다. 「영입빅3」의 일원인 이회창 전 선대위의장은 이제 백의로 돌아갔다.전국구 의원만이 남아 있는 유일한 자리다.그럼에도 「새정치」를 등에 업고 점차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전의장은 18일 김대표와단독 대좌했다.하루전에는 중앙당 실국장 모두와 저녁을 함께 하고 총선 때 노고를 격려했다. 역시 「영입 빅3」인 박찬종 전 수도권선대위원장은 이날 필리핀 라모스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출국했다.57번째 생일인 19일 귀국해 배낭 하나 짊어지고 국토순례에 나선다.묘하게 63번째를 맞은 김대표와 생일이 같다. 그는 21일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을 시작으로 민초들의 얘기를 들을 예정이다.『논두렁에서 농부들과 막걸리를 곁들이고,고기잡는 어부도 만날 것』이라고 한달동안의 여정을 소개했다. 민정계 이한동 국회부의장의 행보는 의욕에 넘쳐 있다.중부권 역할론에서 서울 강원까지 포함시킨 「신중부권역할론」으로 영역확대를 꾀하고 있다. 이부의장은 지난 16일 일본에 있는 박태준씨에게 「밀사」를 보낸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에 비해 민주계 중진들은 겉으로는 조용하다.맏형 격인 최형우의원은 총선에서 황명수·송천영 의원등 지지그룹을 상당부분 잃었다.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한다.김덕용 의원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지지세를 부쩍 넓히고 있고,서석재 의원 역시 정치 재도약을 꾀하고 있다.〈박대출 기자〉
  • 가네마루 전 자민부총재 타계/80∼90년대 일 정계 막후실력자

    ◎킹메이커… 92년 정치자금파문으로 은퇴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정계의 막후 실력자로 금권정치의 상징이었던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일본 자민당 부총재가 28일 향리인 야마나시(산이)현 자택에서 당뇨병과 그 합병증으로 사망했다.향년 81세. 가네마루는 총리를 역임하지는 못했지만 탁월한 정치자금 모금과 막후 영향력 행사로 80­90년대 일본정계의 「대부」로 가이후 도시키총리,미야자와 기이치 총리 선출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킹 메이커」라는 별명을 얻었다.자민당내 최대 파벌이었던 다케시타파의 회장을 맡았던 그는 상당수 의원에게 자금을 대주고 이들을 통솔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인물을 총리로 만들었다가 사임시킬 수도 있다고 자랑하기까지 했다. 그는 특히 지난 90년 9월 당시 사회당의 다나베 마코토 위원장등과 북한을 방문,김일성과 회담한후 일본의 자민·사회당과 북한 노동당간의 이른바 「3당 공동선언」을 발표,일본과 북한간의 국교정상화회담의 길을 열었다.김일성과 만났을때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그는 한동안 북한의 대일창구역할을 맡기도 했다.그러나 그의 북한방문은 많은 일본인들로부터 지나치게 저자세였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92년에는 강연중 우익세력으로부터 권총저격을 받기도 했으나 무사했다.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 전 총리와 함께 금권정치의 대표주자로 인식되기도 했던 가네마루는 결국 지난 92년 10월 운송회사인 사가와규빈(좌천급편)으로부터 5억엔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고 시인,구속된후 정계에서 은퇴했다.93년 보석으로 석방된 그는 고향에서 칩거해왔다. 도쿄농대를 졸업한 그는 58년 총선에서 첫 당선,정계에 입문한뒤 12선을 기록하면서 건설·국토청·방위청장관등을 역임했었다.
  • 강택민 주석 방한특집(한·중 새 시대:1)

    ◎강택민 당·정·군 최고위직… 권력 25% 장악/“중국의 트로이카” 강택민·이붕·교석의 역학관계/이붕­경제분야서 전권행사… 영향력 커져/교석­사법·공안기관 출신… 킹메이커 유력 현재 중국의 권력체제는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의 7인 위원이 이끌어가는 일종의 집단지도체제라고 할 수 있다. 7명의 상무위원 가운데서도 등소평 이후 중국을 이끌어갈 지도자는 단연 강택민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와 이붕 총리,교석 전인대 상무위원장등 3명을 꼽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강주석이 권력의 25% 정도를,이총리와 교위원장이 각각 20%를,이서환·주용기·유화청·호금도 등 4명의 위원이 나머지 35%를 잡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중국의 실세 3인 가운데 이붕 총리가 지난해 10월,교석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지난 4월에 방한한데 이어 오는 13일 강주석이 방한하게 됨으로써 중국을 움직이는 실세 3명이 1년여에 걸쳐 모두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마치 경쟁을 하는듯한 양상이다. 강·이·교 세사람은 모두 등소평에 의해 발탁된 인물이다.강은 정통 기술관료 출신이고,이는 행정관료,교는 당과 공안계통에서 성장한 인물이다. 이들은 현재 중국권력의 중심에서 협력과 경쟁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등소평은 일단 권력의 안정을 위해 세사람 가운데 강에게 많은 무게를 실어줬다.강은 현재 국가주석과 당 총서기,중앙군사위 주석등 당·정·군의 최고직위를 모두 갖고 있다.이는 모택동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등은 지난 몇년동안 군의 요직을 개편하면서 강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강이 국가권력 전체를 완전히 장악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등사후 그가 명실상부한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될 것은 분명하다. 이붕 총리는 경제분야에 대해서는 거의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중국으로서는 경제발전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있기 때문에,이의 영향력과 지도력이 커지는 것이다.이총리는 외국을 방문할 때 강주석 못지않은 의전을 요구하고 있지만,이따금씩 『우리는 강주석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강조하며 우위를 과시하기도 한다. 교석위원장은 개인적인 파워면에서는 가장 막강한 것으로 알려진다.그가 당 조직부장과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등을 역임한 중국의 대표적인 사법·공안통이기 때문이다.그점이 오히려 그가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요인이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전문가들은 그의 역할을 「킹 메이커」라고 말하고 있다.만일 교가 강이나 이 가운데 한사람에게 일방적으로 힘을 몰아주게 되면,현재 중국 권력내부의 세력균형은 크게 흔들리게 된다.그러나 신중한 교는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 움직임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한다. 등소평 사망후에도 중국의 이같은 권력 체제는 최소한 97년 제15차 당대회 때까지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97년이 지나고 98년3월에 9차 전인대가 열리면 크고작은 변화가 올 전망이다.총리직의 3임이 허용되지 않기때문에 현재 연임중인 이총리가 자리바꿈을 해야 하기때문이다. ◇인터뷰 ◎“강 주석 방한은 세계 정치사적 사건”/황병태 주중대사/“중은 한국을 가장 편한 파트너로 생각/한반도 안정을 고려 미군주둔 수용”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준비하기 위해귀국한 황병태 주중대사는 9일 상오 외무부 기자실에서 회견을 갖고 강주석 방한의 의미를 설명했다. 황대사는 『중국측에서 볼때 강주석 방한은 「세계 정치사적 사건」』이라고 말문을 열었다.황대사는 『김일성 사망후 중국의 장관급이상 인사 가운데 한 사람도 북한을 방문한 일이 없다』면서 『당·정·군 등 3분야의 실권을 가진 국가주석이 처음 한반도를 방문한다는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황대사는 강주석이 이번 방문기간 정치·외교적이고 국제적인 현안을 다룰 것이라고 설명했다.황대사는 특히 사회주의 국가지도자가 외국의회를 방문,TV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연설하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라고 말했다.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기존의 「정치는 북한,경제는 남한」이라는 공식을 깨고 남한을 경제 뿐만 아니라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이미 선회했다는 것이 황대사의 설명이다. ­강주석이 한국방문에 이례적인 선례를 남기는 이유는. ▲우리나라를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편안한 파트너로 생각하는 것 같다.강주석뿐만 아니라 이붕·교석등 세 지도자가 모두 마찬가지인 것 같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중국이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며 북한을 의식하는 단계는 넘어섰다.외교·정치·국제문제에 있어서 한·중의 3년간 관계는 다른 나라와의 30년 관계보다 더 긴밀하다고 중국측은 평가하고 있다.김일성사망후 북·중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 사실이다. ­김정일 권력승계에 대한 중국의 예측은. ▲공식적인 권력승계없이 김정일이 북한을 통치하는 것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김정일은 김일성체제를 대체할 자기나름의 독특한 지도노선과 이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김정일에 대한 중국의 평가는. ▲김정일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은 미·북간의 제네바 핵합의 이행,대남비방,국제사회에 대한 쌀지원 호소 3가지뿐이라고 평가한다.중국은 북한이 식량난등 경제침체에서 벗어나려면 협동농장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그러나 이는 공산체제의 핵심을 변경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안승운목사 피랍사건 수사결과는. ▲수사과정을 수시로 통보받고 있다.그러나 그 결과는 완전히 수사가 끝난후 양국이 공동발표할 것이다.관련자 사법처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발표내용이 우리가 생각하는 기대에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주한미군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중국은 한반도문제와 관련,한반도 안정을 위해 현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비자금사건에 대한 중국 반응은. ▲노태우씨 개인의 문제보다 한국의 청렴정치가 어디로 가느냐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중국도 부정부패 일소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한국의 이번 사건을 표본으로 삼고자 세밀하게 관찰중이다.
  • 화합·친화력 돋보이는 「킹메이커」/민자당 김윤환 대표의 정치역정

    ◎정치적 격변기마다 「조정능력」 발휘/5·6공 정권교체때 권력이양 담당/4선의원에 정무장관 3번·집권당 총장­총무 두차례. 「허주」(빈배­김윤환 대표위원의 아호)가 돛을 올렸다.집권 민자당을 관리하는 대표위원으로서 정국운영의 핵심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이제 김대표는 10년 가까이 그에게 따라 다니던 「중진급」이라는 꼬리표를 뗐다.당 대표급으로 부상한 것이다. 「화합의 달인」「조정의 명수」라는 별칭에 걸맞게 그는 친화력 있는 정치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그래서 산적한 민자당의 현안,즉 소속 의원들의 동요를 막고 대화합의 정치를 지휘해 내년 총선에 승리해야 하는 임무가 일단 김대표에게 맡겨져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대표위원 기용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그가 정치적 격변기에는 항상 그 중심에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5공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있을 때 민정당 노태우 대통령후보의 「6·29선언」이 나왔다.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5·6공 정권교체기 권력이양의 역할을 맡았다.또 민정당 원내총무 때는 「5공청산」과 「3당합당」의 기획에 참여했다.「대세론」으로 신민주계를 이끌며 「김영삼대통령」을 탄생시킨 주역의 한사람이기도 하다.따라서 「정치설계사」로서의 그의 새로운 역할을 기대하게도 한다. 63세인 김대표의 정치역정은 큰 굴절 없이 화려하게 이어졌다.79년 조선일보 편집국장대리로 재직하다 10대 유정회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고향인 경북 선산에서 11·13·14대에 당선된 4선의원이다.5공시절에는 문공부 차관,청와대 정무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냈다.6공정부와 문민정부에서는 정무장관만도 3번 지냈고,민정당과 민자당에서 사무총장과 원내총무를 각각 2번씩 지낸 진기록을 갖고 있다.현재는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등 일본 정계인사들과도 깊숙한 친분을 맺고 있다. 그러나 그는 문민정부 출범후 사정과 개혁바람이 몰아칠 때 한때 일본과 유럽 등지를 유랑하는 등 은둔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또 구여권 인물,반개혁 이미지로 매도당하기도 했다. 이제 그는 집권당 대표위원으로서 당의 화합과 개인적인 이미지 구축에 나설 것이다.아마 그의 개인적인 과제는 「TK(대구·경북)」의 맹주라는 지역적 한계,당내 계파들의 견제,대표위원이라는 직책상 권한의 한계 등을 어떻게 소화하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그는 서초동 자택에서 부인 이절자 여사(55),둘째딸과 함께 살고 있으며 맏딸은 출가했다.
  • 세대교체론(「6·27」이후 정국:11·끝)

    ◎97대선 「제1핫이슈」로 잠복/여 분위기 “차기구도 조기 가시화”로/두김씨 대 「뉴페이스」 일대결전 예고 지금 정치권은 일대 변혁기를 맞고 있다. 「DJ(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신당」이 그 신호탄이다.그의 등장으로 제1야당인 민주당은 분열의 소용돌이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지방선거에서 힘을 얻은 자민련은 구여권 인사들을 주요 대상으로 세력확장에 분주하다.민자당은 야권재편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새판짜기」에 대비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는 자민련의 약진에 따라 3당 정립의 새로운 구도를 창출했다.DJ와 JP(자민련 김종필 총재)를 야권의 양대축으로 자리잡도록 했다.두 사람의 최근까지 언행을 종합해 보면 차기대권을 겨냥하겠다는 뜻을 굳힌 인상이다. 정가에서는 이를 놓고 『세대교체는 물 건너갔다』고 성급히 말하기도 한다.DJ와 JP가 다시 나선 마당에 무슨 세대교체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그렇지만 이 두사람이 10년전,20년전에도 벌였던 해묵은 정치행보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설 여권의 인사는 세대교체의 주체임에 틀림없다.야권에서 제3의 주자가 나온다면 그도 마찬가지다.현 정치판에서 「3김」만이 「1세대」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차기 대권경쟁에서 세대교체 공방이 가장 뜨거운 현안으로 부각되리라는 전망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당장은 「DJ신당」등 정계개편의 소용돌이속에 묻혀 있을 뿐 언젠가는 폭발할 「메가톤급」사안인 것이다. 그래서 DJ와 JP에 맞설 인물이 누구냐는 것도 정가의 관심거리다.과연 새 인물이 두 김씨를 제칠 수 있을 것이냐는 데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같은 의문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안개속」이다.이제 막 정계개편의 태풍권에 접어든 상황에서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이고,진로가 어느 쪽이 될 지 아무도 점칠 수 없기 때문이다. 야권은 지금 DJ신당 출범을 눈앞에 두고 있다.민주당 이기택총재가 이에 맞서 비호남 야권의 결집을 모색하고 있고,재야 인사들을 중심으로 「시민연합」이라는 새로운 야당이 출현할 가능성도 있다.5·6공 인사들이 주축이 되는 「TK(대구경북)신당설」도 고개를 들고 있다.이들의 자민련의 포섭대상이기도 하다.민자당에서는 민정계와 민주계가 접점을 찾아 화합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김윤환 사무총장의 기용으로 민자당 주요 당직을 민정계가 대부분 차지했지만 장수여부는 점칠 수 없다.자연히 여든,야든 서로 붙고 갈라지는 대규모의 이합집산이 벌어질 가능성이 설득력 있게 거론되고 있다. 민자당은 야권의 움직임만을 관망하면서 신중한 반응을 견지하고 있다.DJ와 JP등이 제공하는 변수에 따라 적절히 대처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그러나 마냥 지켜볼 수 만은 없다.정국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지방선거 패배로 침체된 분위기에 돌파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대교체 구도를 조기 가시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민자당내에서 드높아지고 있다.김윤환총장은 『국민들에게 세대교체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대상들이 국민앞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대다수의 국민들이 양금씨의 재등장에 따른 지역할거주의를 원하고 있지 않으므로 세대교체가 이들을 누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설명이다.민자당내 차세대 그룹으로 분류되는 실세급 인사들이나 야권내의 개혁지향성향의 소장파 인사들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세대교체의 대상이 누가 될 것인지는 앞으로 최대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김총장은 자신을 「1·5세대」로 분류하면서 세대교체의 주체는 아닐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김총장을 비롯,민주계의 최형우·김덕룡 의원이나 서석재 총무처장관,민정계의 이한동 국회부의장 등 중진실세 인사들은 차세대 주체의 한사람으로 거론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물론 제3의 인물이 출현할 가능성을 포함해서다.이들의 합종연횡에 따라 「차기후보」와 「킹메이커」의 역할배분이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세대교체구도가 언제 가시화될 지를 점칠 수 있는 단계는 아직 아니다.그러나 야권 두금씨의 「한번 더」와 여권 새 주자의 「이제 그만」을 둘러싼 일대결전의 시기가 점차 다가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 “국민 뜻 수용… 신뢰회복 진력”(인터뷰)

    ◎김윤환 신임 민자사무총장/민심이탈 원인 분석… 당정책 반영/개혁·안정 동시 추구 “분위기 쇄신” 『민심이 왜 민자당에서 떠났는지를 잘 분석해 정책적으로 조율해 나가겠습니다』 새정부 출범 이후 민정계 인사로는 처음으로 4일 민자당의 「자금」과 「조직」을 떠맡은 김윤환 신임사무총장은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신뢰받는 정당이 되도록 진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91년에 이어 다시 사무총장이 된 소감은. ▲어깨가 무겁다.국민들이 불안해 하는 개혁과 변화가 아니라 개혁과 안정이 동시에 추구되는 정치를 과감히 추진해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겠다. ­청와대로부터 언제 연락받았나. ▲오늘 아침에 받았다. ­그동안의 개혁에서의 문제점은. ▲앞으로 처방을 마련할 것이다.당분위기 쇄신책도 생각해 보겠다. ­이춘구 대표,김윤환 사무총장 체제가 어색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대표와 같이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지금은 당력을 모을 시기다. ­후속당직 개편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이 체제가 내년 총선까지 갈것으로 생각하나. ▲여러분들이 판단할 일이다. ­그동안 주장해 온 「신주체론」과 이번 당직개편은 어떤 관계가 있나. ▲이번 개편이 그런 쪽이 아니냐. ­부총재제도 도입문제는. ▲전혀 논의된 바 없다.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문제나 선거법 개정문제는. ▲임시국회에서 선거구 획정문제를 처리했으면 좋겠지만 정기국회까지 갈 것같다.선거법에서 많은 문제점이 노정됐으니 여야간 협의를 통해 개정문제를 논의하겠다. ­그동안 당운영 과정에서 소외된 인사들의 추스르는 방안은. ▲서운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합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김영삼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나. ▲대통령도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이 뭔지 이제는 알고 있다.정치를 달리 주도하지 않겠는가. ▷프로필◁ 김신임총장은 하주(빈배)라는 아호에 걸맞게 특유의 포용력과 친화력으로 주변에 사람이 많다.6척이 넘는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눈매가 돋보인다.언론인 출신의 4선의원으로 6공에 이어 문민정부의 출범과정에서 고난도의 정치력을 발휘하며 「킹메이커」로서의 역할을 수행.문민정부 출범 이후 「TK대망론」을 내세우며 한동안 활동을 자제하다 지난해 12월 정무장관으로 발탁된 뒤 「신주체론」을 역설하면서 민자당내 소외그룹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부인 이절자씨(54)와 2녀 ◎김영구 신임 정무장관/“대통령에 민의 굴절없이 전달”/당내 가교역할… 야와도 협조체제 유지 『당과 정부의 언로가 보다 활성화되고 대통령에게 민의가 굴절없이 전달되도록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4일 정무1장관에 전격기용된 김영구의원은 『사무총장과 원내총무를 지낸 경험을 살려 어려운 시국을 풀어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3당 체제의 재현으로 대야관계에 어려움이 예상되는데. ▲국회와 정부,당과 정부간 가교 역할은 물론 야당과의 협조관계에도 최선을 다해 원활한 국정이 펼쳐지도록 하겠다.유사 이래 선거에서 여당이 이런 매를 맞은 적이 없다.뼈를 깎는 자기성찰의 자세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당과 정부에서 특히 어떤 역할에 주력할 것인가. ▲당내에 여러 회의체와 기구가 있으나 그동안 솔직히 요식행위에 그친 감이 있다.토론을 보다 활성화하고 직선적인 얘기들을 전달할 수 있도록 총재인 대통령을 보좌하겠다.민의가 여과 없이 전달되도록 나도 직언하겠다. ­총장에 이어 정무1장관도 민정계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우리당의 패인중에 계파라는 말을 극복하지 못한 것도 들어 있다.이젠 정말 그런 말은 없어져야 한다.계파만 따지다 내년 총선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프로필◁ 3공 시절 옛공화당 당료로 정계에 입문,11대 때 민정당 전국구의원으로 원내에 진출한 김장관은 전국구 두번,지역구 두번을 거친 4선의원.민자당 사무총장과 원내총무,국회 재무위원장등 화려한 자리를 거치면서 추진력을 평가받았다.검은 얼굴,건장한 체구로 별명은 「흑선풍」.호방한 성격에 두주불사형으로 이한동국회부의장과 가깝다.부인 오경자씨(55)와 1남2녀. ◎김덕룡 전총장 퇴임의 변/책임질 사람이 떠나는건 당연/6·27선거는 새정치 향한 산고 민자당의 김덕룡 전사무총장은4일 자신의 퇴진이 발표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여론을 수렴하고 심기일전해서 새출발을 한다면 국민이 우리당에 다시 한번 기회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신임 김윤환 사무총장에 대해서는 『당을 맡아서 직접 운영한 경험과 리더십이 있기 때문에 위기관리를 잘 해낼 수 있는 분』이라고 평가했다. ­사의를 표명한 이유는. ▲엄청난 결과가 나왔는데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떠날 사람은 떠나는 것이 총재와 당을 위해서 옳은 일이다.그래서 대통령을 만나뵙고 직접 말씀을 드렸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번 지방선거는 어느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혁명적인 정치관계법을 제정한 이후 국민과 당원들의 의식이나 행동이 부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거를 치른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고 어려운 일이었다. ­총장 취임 당시 대통령의 세대교체구상과 연관짓기도 했는데. ▲대통령이 말하는 세대교체는 특정인을 상정한 것이 아니다.일종의 정치적 철학이자 소신이고 시대적 흐름을 말한것이다. ­이번 인사를 개혁의 후퇴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개혁을 추진하는 자세와 방법을 좀 더 검토하자는 것이다.
  • 작고 다나카 전 총리/전후 일 정치 좌우한 거인

    ◎「록히드사건」땐 실형 수모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 전총리는 영욕을 함께한 전후 일본의 최대 정치인으로 손꼽힌다.그는 지난 72년 56세때 총리가 된후 돈과 국회의원수를 배경으로한 「힘의 정치」를 폈다.그러나 「록히드 뇌물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는 수모를 겪었다. 다나카 전총리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국교출신으로 총리가 되었으며 70년대 초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일본정치를 지배했다.28세때 처음 중의원에 당선된 그는 연속 16선을 기록했다.총리가 되기전 그는 대장상을 3기 연임하고 자민당 간사장,통산상등 주요 직책을 두루 거쳤다. 그러나 76년 미국의 록히드사로부터 5억엔의 뇌물을 받은 것이 발각되어 구속되었다.그는 83년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그러나 그의 정치적 영향력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그는 국회의원수에 의한 「힘의 정치」를 지향하며 자민당내 최대의 다나카파를 형성했다. 그는 이러한 다나카파를 배경으로 일본정치를 지배했다.정부와 자민당의 주요 직책은 모두 다나카파가 독점했다.지금 일본정치를지배하는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오자와 이치로 신생당대표간사,하타 쓰토무외상등도 과거 다나카파 출신이다. 다나카전총리는 또 록히드 사건과 관련,자민당을 탈당했지만 오히라·스즈키·나카소네총리 탄생에 결정적 역할를 하며 일본정계의 「킹메이커」로 군림했다.그는 일본개조론을 주창하며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기도 했으며 총리때인 지난 73년에는 일·중국교정상화를 실현, 외교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힘의 정치」는 부패한 일본정치를 상징하는 금권정치의 시작이기도 했다.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지난 87년 다케시타 노보루 전총리등이 다나카파를 떠나 다케시타파를 만듦으으로써 급속히 약해졌다.다카카 전총리는 지난 89년 정계를 은퇴,그의 정치시대는 막을 내렸다.그러나 그의 뒤를 이어 딸인 다나카 마사코가 이번 총선에서 중의원에 당선됐다.
  • 민주당권 경쟁 세 후보 출마의 변

    ◎“지역당 극복… 차기대권 도전할터”/이기택/“강야 만들기·킹메이커역에 최선”/김상현/“개혁 충족할 젊은세대로 교체를”/정대철 민주당이 19일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 개최를 3월11일로 정식공고하자 이미 뜨거운 각축전을 벌여왔던 이기택대표와 김상현·정대철최고위원 등 3명에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갖고 당권경선에 본격 돌입했다.이번 당권에 도전하는 세 후보들로부터 「출마의 변」을 들어보았다. 『왜 대표경선에 나서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대표를 비롯 김·정 두 최고위원등 세후보는 모두 『당내 체질을 민주적으로 개선하고 「강여」에 맞서는 강한 야당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당내 민주화를 이뤄내고 수권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당은 각기 자신들이 필요로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자신이 되어야한다는 당위론에 대한 설명은 3인3색이다.이대표는 「순리론」,김최고위원은 「후보­당권분리론」,정최고위원은 「세대교체론」을 각각 앞세우고 있다. 우선 이대표는 『야당통합정신에 따라 대표를 맡는 것은 당연한 순리이며 바로 이것이 김대중전대표의 뜻』이라며 이른바 「김심」을 내세운다. 이대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지난 대선때 지역정당·「색깔론」으로 졌는데 당권을 「호남출신」에게 또 맡겨서는 진정한 국민·정책·수권정당으로 태어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김최고위원은 『김영삼차기대통령과 당당히 맞설 수 있으며 민주당의 「법통」을 이을 사람은 바로 나』라면서 『민추협을 창립하고 2·12선거혁명을 끌어낸 경륜을 살려 강력한 야당을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유일하게 나』라고 내세우고 있다. 이대표도 이에 맞서 『지도력이 약하고 차기대통령이 영남사람이라 야당당수가 힘들 거라는 주장은 근거없는 억측』이라고 반박하고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얼마만큼 잘 할 것인가를 기준으로 뽑듯이 차기대통령과 지역이 같아서 안된다는 주장은 통합정신에도 위배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정최고위원은 『당풍쇄신을 통한 내부개혁을 이루지 못한다면 집권여당을 견제할 수도 없고 정권교체는 영원히 불가능해진다』면서 『국제적시대에 부응하는 미래지향적인 민주정당을 위해서는 젊고 개혁적인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이다. 정최고위원은 『영·호남대결구도라는 망국적 지역색을 없애기 위해서는 중부권의 인사가 당을 꾸려야한다』면서 『지역개념에서 떠나 있고 젊고 개혁정신을 충족하는 사람이 누구겠느냐』며 세대교체론이라는 기치를 앞세우고 있다. 이들 세후보가 들고 나올 정권교체 전략도 각기 차이가 있다. 이대표와 정최고위원은 대권은 당내인사에서 나와야하며 여건이 닿는다면 차기대권에 도전한다는 계산이다.그러나 김최고위원은 『당권을 잡은 사람이 대권후보까지 가져가면 당내에는 끊임없는 소모전이 계속돼 결국 실패한다』고 주장한다.따라서 권력지향의 정치행태를 벗어나 합리적인 정치문화를 창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외부인사를 영입하자는 소위 「킹메이커론」이다. 이에 대해 이대표는 『야당의 최대 목표가 정권교체라면 김최고위원의 이 주장은 자신감이 결여되고 미흡한 주장』이라면서 정최고위원의 세대교체론에 대해서는 『내가 바로 4·19세대이며 「한자세대」의 막내이며 「한글세대」의 맏형격인 나만이 무리없이 정통야당을 국민정당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정최고위원은 『기회가 주어지면 대권에 도전해볼 생각』이라면서 『이제는 젊고 패기있고 활기찬 세대가 정치전면에 나서야한다는 것은 국민적여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의 운영방식과 전략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 모두는 민주당이 강한 국민정당,정책정당,수권정당으로 거듭나게 하는데 한결같이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대표는 『대여투쟁과정에서 한번도 약해본 일이 없는 나로서는 당내 민주화를 실현하고 색깔과 지역성을 극복시킴으로써』,김최고위원은 『전당대회에서의 공정한 지도부선출과 결과승복,당내민주화와 과학화,여러 계파의 융합을 통해서』,정최고위원은 『내부적 제도개혁,재정운영의 공개화,당운영의 과학화,지역패권주의의 청산등을 통해서』 각각 강력한 국민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당권가도는 호남과 영남대의원의 구성비가 7대3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고 당에서 추진하는 선거공영제가 무색할만큼 금품수수의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어 이번 전당대회를 계기로 국민정당으로 거듭나기 까지에는 걸림돌이 많다는 지적이다.
  • 1년만에 막내린 재벌정치 실험/정주영씨 은퇴배경과 정치행적평가

    ◎비자금 유입 등 행태에 국민평가 냉정/명분보다 사업적 계산으로 악수연발 정주영국민당대표의 「재벌정치실험극」이 1년만에 실패로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 최대 재벌그룹 총수였던 정대표는 지난해 2월8일 국민당을 창당,일약 3당체제의 한 축을 이루는 정당으로까지 키워놓았다.그러한 그의 정치은퇴선언은 14대 대선직전 김우중 대우그룹의 「출마포기」소동과 함께 재벌의 정치참여에 한계가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대표의 이날 퇴진발표는 전격적이긴 하지만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었다. 그의 정치실험은 이미 지난 대선패배로 사실상 종막을 고했으며 그 이후는 「연명」이라고 표현하는게 옳다는 지적이다. 정대표의 정계입문과 은퇴는 여러 면에서 교훈을 남기고 있다. 그는 긍정과 부정의 엇갈린 평가속에 정치를 시작했다. 기성 정치권,특히 「양김씨」에 대한 일부 국민의 불만과 경제난은 정대표가 정치권에 터를 잡을 여지를 만들어 주었다.국민당이 창당 50여일만에 치러진 14대 총선에서 31석을 획득,원내교섭단체구성에 성공한 것도 새로운 정치모델과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가 작용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정대표의 정치행보는 부정적 측면을 훨씬더 부각시켰다. 일부 떳떳지 못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해온 재벌기업의 관행이나 운영방식이 정치에 그대로 전이되면서 정치판이 보다 흐려졌다. 더욱이 「김권정치」를 더욱 심화시켜 국민이 바라던 새정치의 모습을 보이는데 실패했다. 국민당은 재벌기업 현대와 밀착돼 정당도,기업도 아닌 「괴물」이 되어버렸다. 특히 정대표를 대통령에 당선시키자는 단일 목표를 추구하는 「사당적」 성격이 강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냉정했다. 14대 대선결과 김영삼차기대통령이 압승한 반면 정대표는 3백38만여표(16.3%)를 얻어 3위로 낙선했다. 이번 선거에서 2위로 낙선한 김대중 전민주당대표가 정계를 은퇴,양금구도로 상징되던 기성정치권이 일대 변혁을 맞게됐다.때문에 이제는 정대표가 정치를 계속할 명분도 국민적 기대도 사라졌다는게 중론이었다. 그럼에도 정대표는 정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대선과정에서의 실수에 대한사법당국의 「선처」나 현대에 대한 「방패막이」를 위해 정치를 계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관측됐었다. 그러나 정대표의 생각은 오판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정대표가 정치에서 손을 떼느냐 여부와 관계없이 사법처리의 엄정함을 피할수 없는 상황이 지속됐다. 정대표가 「개인 욕심」에 의해 정치를 계속하려는 것에 대한 당내반발도 만만치 않았다.2천억원 당기금조성압력이나 정대표 2선퇴진요구가 공개리에 터져나왔다. 이같은 당내외의 갈등을 극복치 못하면서 대선이후 실수를 연발했다. 새한국당과의 통합약속 일방파기,김해공항에서 일본행저지 등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명분보다는 손실을 줄여야 한다는 사업가적 계산에 익숙한 정대표에게는 정계은퇴를 심각히 고려해야될 궁지에 처해버렸다. 따라서 지난1월 보름이상 미·일등지에서 해외구상을 마치고 귀국한 정대표는 이미 정계은퇴의 수순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대표에게 정치에서도 성공할수 있었던 기획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대권에뜻이 없으며 킹메이커로 만족하겠다』는 국민당 창당 초기의 공언을 실천했다면 14대 대선에서 의외의 「돌풍」이 가능했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다.또 자신이 직접 나섰더라도 현대와의 고리를 완전히 끊고 선거과정에서 페어플레이를 펼쳤다면 대선후 입지가 보장됐을 수도 있었다. 선거가 끝난뒤에도 「사리」를 딛고 공당화 약속을 지켰다면 국민당의 장래도 확고해지고 자신의 명예도 실추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는 가정이 있을 수 없다. 정대표가 이날 정계은퇴 선언에서 밝힌 정치입문의 잘못을 시인한 것이나 김영삼차기대통령및 김대중 전민주당대표에 대한 사과표명이 단순히 사법처리의 선처를 위한 것이 아니고 진심이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인식의 바탕위에 자신이 만든 국민당이 「미예」가 되지 않도록 음양으로 도울때 그의 정치행적이 조금이라도 나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정대표 의총 발언 오늘부터 통일국민당의 대표최고위원직을 사임하고자 합니다.그래서 사직서를 써 왔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동안 많은것을도와줘 고맙게 생각합니다. 정치인으로서의 경력이 짧기 때문에 잘못도 있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오늘 대표최고위원직을 사임합니다. 나는 당을 떠난 다음 정치를 하기보다는 전에 하던 경제를 계속함으로써 우리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민자당의 김영삼후보와 민주당의 김대중후보를 선의의 동반자로 여기지 않고 경쟁자로만 생각,개인적으로 공격한데 대해 충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정치가 서툴러 상대방 공격을 한것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도 미안합니다. 총선때처럼 대선에서 이긴곳이 별로 없어 인간이 다 자기를 위해 산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잘 의논해서 국민당을 잘 이끌어주길 바랍니다.
  • “공당화 보장하라” 최후통첩/국민당의 김동길파동 증폭(진단)

    ◎당기금 흐지부지… 사유화 위기감/2인자입지 동요도 한 원인으로 국민당이 와해될 것인가. 정주영대표와 함께 국민당의 얼굴이었던 김동길최고위원이 5일 정대표의 2선후퇴를 주장한데 이어 6일에는 최고위원직사퇴의사까지 밝혀 당의 체제개편이 불가피해졌으며 당의 존립 자체까지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졌다.김최고위원은 이날 정대표 2선후퇴,2천억원 당발전기금조성 등이 이행되지 않으면 탈당·의원직사퇴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민당의 두 기둥사이에 생긴 이같은 심각한 반목이 조기치유되지 않는다면 「국민호」의 앞날은 어찌될지 아직은 불투명하다. 김최고위원이 이같은 행동을 한 이유는 두갈래로 분석되고 있다. 첫째 이같은 돌출행동은 현 위치에 대한 불만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김최고위원은 지난 대선에서 정대표가 자신에게 후보를 양보해주기를 은근히 바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득표력면에서 볼때 자신이 정대표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정대표가 킹메이커 역할로 물러섰더라면 참패는 없었으리라는 것이 김최고위원의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정대표도 이러한 상황을 감지,대선기간동안 또 대선이후에도 김최고위원에게 당내 2인자위치및 후계약속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 정대표는 최근 의총이나 당직자회의에서 김최고위원을 「수석최고위원」으로 임명하자는 제안을 여러차례 했다.그러나 양순직·한영수·김용환·이자헌·박철언최고위원이 강력히 반발,뜻을 이루지 못했다.특히 양최고위원은 새한국당 입당 인사들을 등에 업고 대표 및 최고위원경선을 주장,김최고위원의 2인자 입지확보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김최고위원은 정대표가 일부 반발을 이유로 자신의 지위격상을 미루고 있는 것은 확고한 2인자위치를 주고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새한국당과의 통합약속을 식은죽 먹듯 번복했던 정대표이기에 위약의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두번째 이유는 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정대표의 최근 언행을 보면 공당화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2천억원의 당발전기금조성이나 현대와의 완전단절문제 등에 있어 모호한 태도를 계속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당을 자신의 「사당」으로 유지하려는 것처럼 외부에 비쳐지고 있으며 정대표가 손을 떼는 순간 당붕괴는 필연적이라는 예측이다. 따라서 김최고위원은 차제에 이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정대표가 대선에 출마했던 것이 오류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당발전기금을 내놓은뒤 2선으로 퇴진하라는 김최고위원의 주장은 배수진을 친 처음이자 마지막 통첩인 셈이다. 따라서 김최고위원 파문의 수습여부는 전적으로 정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정대표가 김최고위원의 반기를 개인적 차원의 당권 다툼으로 받아들인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독선적 당운영,언행불일치에 대한 당내 불만의 일단이 표출됐다고 인정할때만 해결의 수순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금 국민당내에는 김최고위원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인사가 다수이다.정대표의 「자금공급」이 끊길 경우 당존립 자체가 어렵다는 우려때문에 입조심을 하고 있을 뿐이다. 정대표는 일단 김최고위원을 「수석최고위원」으로 임명,발등의 불을 끄려하는 인상이다. 정대표의 1인체제,독선적 당운영이 개선되지 않으면 제2,제3의 「김동길」이 속출할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정대표의 결단과 「희생정신」만이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첩경이라는게 정가의 분석이다.
  • 새 정부 제로베이스개혁 호기/역대정권보다 홀가분한 입장 분석

    ◎과거청산·부정선거론 등 굴레 없어/인수위 활동때부터 강력한 영향력 김영삼대통령당선자는 지난 23일 기자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차기정부가 몇 공화국이냐는 질문에 『정치학자들중에는 2공화국이라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이는 해방이후 지금까지를 1공화국으로 보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그같은 견해는 많은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최소한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박사정권은 제1공화국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반론의 대표적인 예이다. 어쨌든 『2공화국이라는 의견도 있다』는 말은 김당선자의 의욕과 자신감은 물론 이제 곧 출범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치적 성격과 운용방향에 대해서도 중요한 시사를 던져주는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질 것이 확실시된다.이는 김당선자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공명정대한 선거에 의해 완승을 거둔 문민정치인이라는데서 오는 힘이다. 지금까지 어느 대통령도 김당선자와 같은 여건은 갖지 못했었다.과거의 모든 대통령이 정통성및 부정선거시비 또는과거청산이라는 굴레에 시달렸다.그러나 김당선자의 인수위는 그같은 굴레가 없다. 예컨대 이승만박사는 친일분자처벌,장면정권은 3·15부정선거및 반민족주의청산,노태우대통령은 관권선거시비및 5공 청산등에 매달려야했다. 개혁을 추진해야 할 집권초기에 과거사 문제로 힘을 소진한 것이다.특히 노대통령은 실질적인 「킹메이커」가 전두환전대통령이었던만큼 운신의 폭이 제한돼 있었다. 인수위의 성격은 김당선자측이 당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설치령」이 아니라 「정권인수위원회설치령」이라는 제목으로 정부당국에 제안한데서도 잘 나타난다.법률적으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적절하다는 법제처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김당선자측은 설치령의 제목은 정권인수,설치령안의 구체적인 조문에서는 정부인수라는 표현을 사용했었다. 이는 노대통령 당시의 취임준비위와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노대통령때에는 취임을 준비하는 것이었지 정권이나 정부를 인수하는 것이 아니었다고도 할 수 있다. 설치령에 규정된 인수위원회의 권한도 막강하다.필요한 인원및 예산지원은 물론 국정전반에 걸쳐 제로 베이스(zerobase),즉 영점에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기능을 부여했다고 할수 있다.물론 우리나라 국정 모두가 개혁의 대상은 아닐 것이다.그러나 인수위의 권한만큼은 국정전반을 개혁할 수 있도록 근거규정을 마련한 것은 틀림이 없다. 김당선자의 개혁방향은 인수위와 함께 자문기구인 「신한국건설위원회」에서 결정된다.신한국건설위원회는 「신경제건설단」「지역감정해소를 위한 인사위원회」「공무원부정부패방지위원회」등 5개정도의 위원회를 두어 개혁의 방향을 결정하고 인수위원회를 거쳐 대통령당선자에게 보고하도록 되어있다.신한국건설위원회가 인수위의 하부기구는 아니지만 인수위가 건의내용을 걸를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인수위 역할의 중요성을 더해주고 있다. 위원장 밑에 정치·행정·경제·외교·안보·통일·법사·노동·여성·문화·교육·환경·언론·의전·총무등 15개 분야의 부를 맡게 될 위원들의 인선에도 당연히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당선자는 『인수위가 차기 내각의 성격을 갖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이는 6공화국 당시의 취임준비위 멤버들 대부분이 노대통령이 집권하는 동안 장관으로 입각하는등 영예를 누렸던 것을 의식,그같은 기대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지로 해석된다.하지만 김당선자의 그같은 언급에도 불구,인수위 멤버들이 차기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하다. 전체적으로는 인수위원의 절반에서 3분의 2정도는 당내 인사들이 주축이 되리라는 전망이다.당내인사를 주축으로 하는 것은 아무래도 정권창출에 기여한 인물이 중용되어야 한다는 의견때문이다.나머지는 각계각층의 참신한 전문가·학자·행정경험이 있는 관료출신,지역성을 감안한 호남출신등이 기용될 것으로 보인다. 위원장으로는 정원식전국무총리가 유력하다.정권창출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학식과 덕망을 갖추고 있고 당내의 어느 누구도 그의 기용에 불만을 나타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윤환 이한동 이춘구 정호용의원등 당내중진들은 가급적 실무진들을 기용한다는 방침에 따라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인사는 정책통인 서상목 백남치 강용식정책조정실장 김영수 정세분석위원장 김영진기조실장 최병렬 박관용 김덕용 강재섭 강삼재의원 이원종부대변인등 실무당직자와 김중위정무 오인환정치 이경재공보 박재윤경제 정주년의전 한리헌경제 특보 또는 보좌역,호남출신인 황인성 정책위의장 김식 전의원 등이다. 또 김당선자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온 송희년 한국개발원(KDI)원장 이규억 KDI선임연구위원 차동세 럭키금성경제연구소장 구본호 전KDI원장 한완상 이명현 표학길 서울대교수 최평길 연세대교수 한기춘 외국어대교수등 자문그룹도 거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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