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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 평화협상 주역/레둑토 사망

    【하노이 AP 로이터 연합】 베트남의 전쟁영웅이며 전후 지도자로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됐던 레 둑 토가 79세 생일을 하루앞둔 13일 사망했다고 베트남 외무부의 한 관리가 밝혔다. 1911년 10월14일 베트남의 남하주에서 태어난 레 둑 토는 생애의 대부분을 공산주의 혁명가로 보냈으며 지난 40년대에는 공산주의 활동으로 투옥된 뒤 중국으로 탈출,망명생활을 보내다 1945년 귀국,공산혁명 그룹인 메트민과 베트남 노동자당(공산당)을 창설했다. 그는 지난 68년부터 73년까지 파리에서 진행된 정전협상에 특별고문으로 참가했으며 협상을 타결시킨 공로로 헨리 키신저 당시 미 국무장관과 함께 73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수상을 거부했다.
  • 중국정부 수뇌 대한 인식 청취/노대통령,키신저 만나

    노태우대통령은 11일 낮 청와대에서 최근 중국정부 지도자들과 접촉하고 서울에 온 헨리 키신저 전 미국무장관과 함께 오찬을 나누며 한반도 정세,남북한관계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대우그룹 초청으로 방한중인 키신저씨는 북경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한 한중 관계개선에 관한 중국정부 수뇌부의 견해를 노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지도자들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키신저씨는 자신의 중국 방문기간중 양상곤국가주석등 중국 정부지도자와 면담한 것을 토대로 중국 관계개선에 대한 의중을 설명하고 최근 남북 총리회담등 남북대화에 대한 중국의 입장도 전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앞서 키신저씨는 이날 상오 강영훈국무총리및 최호중외무장관과도 만나 한반도 주변정세및 한중 관계개선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 키신저 내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무장관이 중국방문을 마치고 10일 하오 내한했다. 키신저씨는 11일 청와대를 방문,노태우대통령에게 방중결과를 설명하고 강영훈국무총리와 최호중외무장관을 면담할 예정이다.
  • 유엔 “선전장” 오명 벗고 분쟁해결사로(특파원수첩)

    ◎냉전소멸따라 “평화 수호자” 부상/이란­이라크전ㆍ캄보디아내전 종식에 기여/「이라크봉쇄」 결의뒤 페만평화 중재를 기대 「실패작」「제3세계의 선전장」으로 치부됐던 유엔이 냉전 종식과 더불어 새시대의 「분쟁 조정자」「평화수호자」로 부상하고 있다. 페르시아만의 전화를 막는 메커니즘으로 세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유엔은 지난달 28일 캄보디아 내전 종식문제에서도 중요한 진전을 이룩했다. 이날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간에 합의된 휴전안은 캄보디아에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캄보디아에 대한 유엔관리를 규정함으로써 「지역분쟁 역사상 유엔의 가장 깊은 개입」을 예고했다. 지난달 25일 안보리의 대 이라크 무력사용 승인을 통해 과시된 유엔의 새로운 협조정신은 탈냉전시대의 미소 동반관계를 반영하는 한편 국가적 이해가 일치되면 집단행동으로 나아간다는 국제관계의 새로운 기본원칙을 확인한 것이었다. 그것은 또 유엔이 창설때부터 간직해온 평화구현의 수단이기도 하다. 이라크의 8ㆍ2 쿠웨이트 침공이후 지속적으로 채택된 5건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과 페레스 데 케야르 유엔 사무총장의 분쟁해결 중재선언은 유엔을 아라비아 반도의 전쟁방지 매체로 인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결의안들은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 ▲사담 후세인 정부에 대한 경제제재 ▲쿠웨이트 합병 무효선언 ▲외국인 인질화 및 외국공관 폐쇄 철회요구 ▲이라크에 대한 무력 해상봉쇄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유엔 45년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이러한 연속 합의는 5대 상임이사국인 미ㆍ영ㆍ불ㆍ중ㆍ소의 권한포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미소의 안정 요구가 투영된 새로운 국제외교 환경,즉 분쟁은 세계가 하나로 뭉쳐서 대처하는 것이 돈도 덜 들고 효과적이라는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미국은 유엔의 성공여부에 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유엔의 조치가 실패할 경우 미국은 무력으로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축출할 것인지,아니면 대규모의 미군을 사우디아리비아에서 영구히 주둔시킬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전 부시 미 대통령은 케야르 총장의 중재선언에 대해 『유엔이 미국의 이해에 기여한다면 유익하겠지만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평하면서 페만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중재활동에 나선 케야르에게 「어떠한 권한도 위임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부시로서는 걱정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중재활동이 실패하더라도 잃을 것은 케야르의 체면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엔 사무총장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국가수뇌들이 기피하는 일부 위험부담을 떠맡아 주는 것이다. 안보리의 대 이라크 무력봉쇄 결의안은 미국이 추진한 강경정책에 국제적인 합법성을 부여한 것이었다. 부시의 전략은 레이건의 정책과 대조된다. 부시 행정부는 유엔을 통해 미국의 대 이라크 정책을 적법화하고 있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는 3년전 이란­이라크 전쟁중 이란의 공격으로부터 쿠웨이트 유조선을 보호하기 위해 쿠웨이트 유조선에 유엔기를 달게 하자는 소련제의를 거부했다. 세계인의 머리에 새겨진 초기 유엔의 이미지는 비토권을 행사하는 소련대사의 찡그린 얼굴과 소란스러운 안보리 회의 광경이었다. 한국전이 발발하자 사상최초의 유엔군 파병을 결의한 안보리는 소련의 보이콧 속에 소집된 것이었다. 미소 대결로 안보리의 기능이 마비됐던 냉전시대에 유엔의 중심은 실제적인 힘이 거의 없는 총회로 넘어갔고 숫적으로 우세한 제3세계 국가들은 유엔을 반서방 선전장으로 만들었다. 유엔의 변화가 시작된 것은 2년전 소련의 대외정책이 데탕트 지향으로 선회한 이후부터다. 지난 2년간 소련은 유엔의 활성화를 강력히 주장했다. 세계가 더욱 평화롭게 되어야 군비를 삭감할 수 있고 또 소련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모스크바의 판단이 유엔 강화론을 펴게 한 것이다. 어느 국제정치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 소련에 있어 유엔은 세계무대에서 발을 빼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적은 비용으로 큰 합법성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워싱턴과 모스크바간의 협력분야가 늘어나면서 유엔 사무처는 지역분쟁의 해결을 돕는 역할을 확대할 수가 있었다. 케야르 총장과 그의 보좌관들은 이란­이라크 8년전쟁의 휴전을 중재했고 나미비아 독립을 감독했다. 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철군계획을 조정했으며 캄보디아ㆍ중미ㆍ서사하라 등의 분쟁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같은 진전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만 사태를 둘러싼 미소 협조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초강국 미소의 이해가 일치하면 할수록 지역분쟁 해결에 유엔이 더욱더 많이 활용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 이라크의 군사대국화 방지에 초점/윤곽 잡히는 부시의 중동과녁

    ◎경제제재 계속… 침략정책 포기 유도/중동 세력균형 구축돼야 미군 철수 부시 미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으나 미 행정부의 페르시아만 외교계획에는 「후세인에게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를 강요한다」는 온건한 목표가 설정돼 있다. 부시 대통령 측근들은 미국과 그 우방들이 후세인 대통령을 억제시킬 수 있으며 그를 전복시키지 않고도 이라크를 일개 지역세력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초점이 돼온 이 접근법은 「페르시아만 위기가 중동은 물론 세계의 정치적 군사적 질서를 바꾸고 있기 때문에 후세인이 팽창정책을 추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국 관리들 말에 의하면 미국이 추진하는 것은 후세인 축출정책이 아니라 후세인 침략 저지정책이다. 미국의 일부 보수파 평론가들은 부시의 사우디아라비아 파병에 대해 「나쁜 정책」「나쁜 정치」라고 걱정하면서 『제2의 베트남 전쟁에 말려들어서는 안된다』는 경계의 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욱이 내주에 의회가 속개되면 부시 대통령은 『냉전 종식으로 생긴 「평화 배당금」을 페르시아만의 장기 군사작전에 꼭 써야 하느냐』는 논쟁에 직면할 것이다. 부시의 전략은 아랍인들과 불화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미군의 장기적인 페르시아만 주둔을 전제하고 있다. 이번 페르시아만 사태는 이집트ㆍ시리아ㆍ이란 등을 이 지역에서 이라크의 힘과 상쇄시킬 위치에 놓았다. 또 질적으로 새로운 수준에 오른 미소 협조와 서구맹방들의 이 지역에서의 군사역할확대는 군사적으로 취약한 걸프 국가들에 안보를 제공하고 후세인을 억제시키고 있다. 그러나 후세인은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더라도 패배를 뜻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부시의 접근방법엔 여전히 위험성이 따르고 있다는 점을 미국 관리들은 시인하고 있다. 부시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회피했던 종합적인 중동정책의 수립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는 그의 구상에 관해 아직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 없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지는 부시 측근과 행정부에서 흘러 나온 이야기들을 토대로 미국의 새로운 대 중동 종합정책의 윤곽을 더듬었다. 첫째,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새로운 외교활동에 관해 조심스런 낙관론을 피력하기 시작했지만 부시는 후세인이 쿠웨이트 철수신호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부시 대통령이 군비증강을 계속하자 전 국가안보 담당보좌관 헨리 키신저와 같은 국제문제전문가들은 『부시가 무력을 사용할 계획이라면 오랫동안 기다릴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도발이 없는데 군사행동을 취한다면 그렇지않아도 깨지기 쉬운 아랍연합을 갈기갈기 분열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고위관리들에 따르면 부시는 「후세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입장이 아니며 그런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 현재 이라크에 대한 미 정책의 제1조는 이라크가 식량ㆍ재화ㆍ군수품의 부족을 버틸 수 없을 때까지 경제제재조치를 계속하는 것이다. 후세인이 철수가 아니라 공격할 가능성은 항상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경제제재로 이라크가 약화돼 전쟁을 치를 수 없을 것이며 후세인은 체면을 살릴 수 있는 협상을 희망하면서 쿠웨이트로부터 철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부시는 유엔의 기본 요구,즉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가 이루어지기 전엔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고위관리들은 아랍국가들이 내놓을 수 있는 몇가지 방안에 대해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후세인은 쿠웨이트 침공시 쿠웨이트가 영토문제와 대 이란 전비문제 협상에 성의있게 임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백악관 국가안보 담당보좌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는 이라크가 쿠웨이트 철수에 동의하면 이라크­쿠웨이트간 이견을 해소하기 위한 회담이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의 접근은 후세인이 정치적 군사적으로 「상자 속」에 갇혀 있게 될 것이라는 희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 고위관리는 『미군 철수는 후세인이 지금처럼 행동할 수 없도록 중동의 군사력과 정치적 균형이 재정립된 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은 몇가지 가정,즉 ▲미소의 이해 일치 ▲나토 회원국들의 군사적 역할 확대 ▲이집트 시리아 이란의 연대 등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서구맹방들이 장기간 확고한 군사력으로 남아 있거나 앞으로도 신속히 대응할 것이란 보장이 없다. 중동의 세력재편이 미국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란 보장도 없다. 미국과 이집트 사이의 거래에는 늘 말썽이 많았고 이란의 대미 반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시리아는 테러리즘 지원 때문에 오랫동안 비난 받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아랍 국가들이 부시를 지원하는 대가로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 같은 것을 요구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쿠웨이트 정부에 관한 문제다. 분명히 미국은 쿠웨이트 왕정회복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수십년동안 지구촌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미국으로선 그건 꼴사나운 정책이 아닐 수 없다.
  • 동북아 새 질서 태동 진단(서울신문 광복45주년 특집)

    ◎한반도에도 데탕트 기류 가속화/하야시 다케히코 일본 동해대교수/「4강 역학」 어떻게 변화될까/평화공존 10여년 거쳐 통일정부 수립 가능성/GNP 1만불 육박땐 「5극체제」 출현 예상 지금 세계는 동·서 이데올로기 대립의 시대를 지양,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시대로 이행하려 하고 있다. 런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에서의 선언과 미 휴스턴의 선진 7개국(G7)정상회담의 선언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및 그것과 표리일체를 이루는 공산주의의 좌절선언에 지나지 않았다(프랜시스후쿠야마 「세계를 말한다」 산경신문 7월31일). 38도선의 북쪽에 「아웃 사이더 국가」 즉 북한이 존재하고 있는 한반도도 그같은 세계변화의 큰 격랑속에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웃 사이더 국가를 포기한다는 것은,대외적으로는 국제사회의 룰을 받아들이는 국가로 되는 것이며,대내적으로는 「남반부 해방에 의한 통일」이라는 혁명노선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다. 이상 세계정치의 본류를 우선 확인한 연후에 10년후 21세기초의 동북아시아 정세를 전망할 경우,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시점에서의 남북 분단의 극복 상황이다. 거기에는 3가지 케이스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제1은 북한이 언젠가는 닥쳐올 김일성주석의 죽음을 계기로 분단의 현상을 받아들여 평양정권의 존속을 꾀하기 위해 남북한 교차승인과 공존체제를 인정하고 그 결과로써 「1민족 2정부」의 상태가 도입되어 꽤 장기에 걸쳐 지속하는 케이스이다. 제2는 노태우대통령의 「한민족공동체통일안」에 따라 과도적으로는 남북 국가연합의 단계를 거쳐 통일국가의 형성을 지향하는 경우이다. 제3은 과도적 단계를 생략,동·서독일처럼 통일총선거를 선행시켜 일거에 통일정부를 발족시키려 하는 경우이다. 제1의 케이스는 72년 12월 국가간의 기본조약을 맺고 「1민족 2국가」의 체제를 작년 11월의 베를린장벽 붕괴로 연결시킨 동·서독일형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다. 동서독일형은 3월 실시된 동독의 총선거에서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동독시민이 과도적인 국가연합단계를 생략,「독일의 재통일」을 희구하는 중도우파연합을 압도적으로 지지한결과였다. 다시 한번 3가지 경우를 앞으로 예상되는 10년간의 한반도의 내외 정세추이에 맞춰볼 때 남북한도 다시 동서독 같이 남북공존체제의 제1의 케이스를 거친 뒤 점차 실현성을 갖게 되는 통일에 대한 남북시민의 실현의지의 강도가 동서독같이 「국가연합」의 단계를 생략시켜 제3의 케이스를 지향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여진다. 남북 공존체제를 통해 북한의 주민·민중들이 곧 알게되는 것은 남북 양체제의 우열이다. 그 우열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가속화하는 세계의 흐름에 합치하는 것으로써 북한민중들도 동독시민들이 베를린의 벽을 「시대의 흐름」으로 붕괴시켰던 것처럼 군사분계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자연의 추세일 것이다. 여기서 좀더 대담한 예측을 해 본다면 앞으로 10년을 거쳐 21세기의 초장을 맞는 한반도에는 수도를 서울로 하는 통일국가,통일정부를 수립해 문자 그대로 선진국에 들어서려는 국가가 출현할 것이라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 즉 인구 7천만,국민 1인당 GNP 1만달러에 육박하는 국가의 출현이다. 인구 7천만이라고 한다면 정말로 재통일을 이루려는 90년대 초의 동서독인구 7천7백만명에 필적하는 것이며 인구 규모로서는 선진 7개국중의 프랑스 이탈리아(양쪽 5천만명대)를 능가한다. 90년 현재 한국의 국민 1인당 GNP는 5천달러,북한은 1천달러(추정) 수준이다. 한국의 경우 연간 7.2%의 성장률을 10년간 계속 확보한다면 1만달러 수준의 달성은 가능하다. 남북 공존체제는 북한경제의 개방체제를 더욱 촉진시켜 한국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남북 경제교류기금 2천∼3천억원의 운용과 북한합영법에 의한 남북 경제교류의 신장과 확대로 결국 남북통일에 앞서 북한경제의 한국형 경제에로의 수렴을 불가피하게 한다. 남북통일의 상징은 한국의 현대그룹이 계획하고 있는 시베리아의 천연가스 수송을 위한 파이프 라인이다. 야크츠크로부터 하바로프스크 블라디보스토크,나아가 평양을 거쳐 서울·부산까지 이어지는 4천㎞의 에너지 동맥이야말로 남북을 직결시키는 원동력이다. 파이프 라인 부설이 가져오는 주변의 경제개발이라는 파급효과도 시베리아·남북한을 통해 막대하다. 세계적 명산 금강산의 본격적인 관광개발사업도 남북 공동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며,그 공동사업이 초래하는 남북일체감 조성의 효과도 간과할 수 없다. 나아가 한국·일본·소련 사이에 최근들어 각광을 받기 시작한 「일본해=동해신시대」(조일신문 7월6∼14일 연재)는 남북공존시대의 시작과 더불어 북한이 참가하고 북한경유 「일본해=동해」를 연결하는 중국 동북부가 참여하게 됨으로써 21세기와 함께 동북아시아에 성립하게 되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경제적 측면을 대표하는 신경제권으로 될 것은 확실하다. 인구 7천만,국민 1인당소득 1만달러국가의 출현은 경제적으로는 중·소를 압도하는 경제국가의 출현을 의미한다. 그것은 단적으로 말해 기존의 미·소·중·일의 주변 4대국에 남북통일 한국을 첨가시켜 동북아시아에 5대국에 의한 오극구조시대가 대두한다는 것과 직결된다. 오극구조를 갖는 국제관계에 있어서 세력균형의 이상적 체제와 위치를 부여한 것은 키신저박사(전미국무장관)의 연구성과였다. 물론 21세기 초엽 동북아시아지역에 통일한국을 축으로 오극구조가 성립된다는 것은 현단계에서 거대한 가설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오극체제의 성립을 보증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극의 한귀퉁이를 중·소가 각각 맡기 위해서는 중·소 자신이 더욱 개방체제를 추진하는 가운데 국가적 안정과 발전을 꾀해야 한다. 이 지역에 역사적으로도 가장 활발한 이해관계를 갖는 중·소 양국의 안정적 발전없이는 동북아시아의 오극체제는 그림의 떡이다. 이것은 남북 통일국가의 출현없이는 있을 수 없는 신국제질서이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평가되어야 하는 것은 남북을 통한 한민족의 역량이며 영지이다. 제2차 세계대전후 45년,세계 격변의 시점에서 정말로 타의에 의하지 않는 민족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통일국가 실현의 지평을 여는 것이야말로 주변 4대국의 전면적인 협조와 협력체제를 가능케 하는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동북아시아의 오극체제에 의한 안정적 신질서의 도래는 모든 것이 그 한가지 사실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윤병익 통일연수원 교수/「통일시나리오」를 엮어보면…/체제공존→동질성 회복→총선이 합리적 수순/「4강 지렛대」로 북녘 개방 적극 유도 바람직 해방 45돌을 맞았다. 우리의 민족해방은 국제정치적 희생물로서 강요된 45년의 민족분단사로 이어져 우리 민족은 남북한체제의 갈등 속에서 끝없는 고통과 국가발전의 제약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광복절은 국제적으로는 동·서 체제간의 긴장완화 추세,공산권전반의 개혁·개방정책,목전에 이른 독일통일,그리고 민족 내부적으로는 변화된 국제정세의 파장을 한반도에로 끌어들이려는 양국및 국민의 노력이 상승작용을 하여 통일을 앞당기려는 민족의 열망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의 통일」은 어떻게 이루어 질 것인가,또 「국제정세와 남북한 체제발전추세의 맥락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의 예상모형을 어떻게 상정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민족통일운동의 방향모색을 위해서도,민족의 발전과 번영을 보장할 수 있는 올바른 통일실현을 위해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분단국문제의 해결방안을 생각해 본다면 분단쌍방체제간의 평화공존,교류·협력관계의 정착화를 통한 민족동질성의 회복 그리고 총선거를 통하여 국민이 선택하는 통일국가의 수립만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통일방안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통일방안을 북한당국이 체제적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한사코 거부함으로써 한반도 통일문제 해결의 어려움이 있다. 북한당국은 통일로 가는 불가피한 과정인 남북한체제의 상호개방을 「사회주의 지상낙원」이란 북한통치명분을 위협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이른바 「조선노동당시대의 기념비적 건조물」로 꾸며진 평양은 개방할 수는 있으나 「미제의 식민지」아니면 「거지소굴」로 선전되어 온 「남조선」을 북한주민에게 개방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당국은 서독체제로 흡수·통합되는 독일통일 과정에서 남북한 체제개방의 결과를 예견하고 전율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이른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내세우면서 『남북의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그대로 두고연방제로 최종의 통일정부를 수립하자』고 내세우고 있지만 이것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간의 연방구성안이 아니며,「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이란 「선남조선혁명,후통일」전략의 일환이다. 따라서 진정한 통일방안이라기보다 전 한반도의 공산화 방안임이 분명하다. 남북한 체제공존을 북한체제 전복의 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는 북한당국으로서는 「연방제 통일」의 주장과 함께 대남통일전선전술을 구사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체제수렴론」이 한반도의 통일방안으로 수용되지 않고 있는 현상황하에서는 결국 국민에 의한 「체제선택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공산권 전반의 개혁·개방정책을 「사회주의 초급단계론」 「인간적인 민주적 사회주의」 등으로 위장을 하고 있으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제적 한계성을 자인한 것임에 틀림없으며,따라서 우리는 아집이 아닌 인류문명사적 시각에서 민족통일을 위한 북한체제의 변화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자유와 안정과 행복을 보장하는 통일국가의 수립을 표방하고 있으며 우리는 비록 마지막이 될지언정 공산권의 개혁·개방의 물결이 북한에도 와 닿을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숙청으로 점철된 북한정치사 속에서 반김일성·김정일 세력이 완전히 제거되었을 뿐만 아니라,이른바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투쟁사」와 「주체사상」으로 세뇌된 신정체제하에서 조직적인 저항세력도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루마니아에서와 같은 인민봉기에 의한 체제변화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북한의 변화는 「위로부터의 변화」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북한당국은 남북한 경제발전의 격차를 의식한 나머지 1984년 합영법을 제정하여 대외개방경제정책을 제한적으로 시도하고,「경공업혁명」을 추진할 뿐만 아니라 비록 대남전략적 의도가 강할망정 종교활동을 선전하는등 제한적인 변화의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산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내경제체제와 정치체제의 개혁을 완강히 거부하면서 오히려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표방,체제수호를 위하여 역사의 흐름을 거역하고 있다. 따라서 민족통일을 위한 당면과업은 공산권 전반의 개혁개방의 물결을 어떻게 북한체제에 불어넣느냐의 문제로 압축된다. 우선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활용하는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미소등 한반도 주변강대국은 동·서 냉전체제의 마지막 유산인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남북대화를 강력히 종용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은 북경 등지에서의 접촉과정을 통해 미국과 북한만의 평화협정 체결을 고집하는 북한에 분명히 거부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의 경제교류·협력을 강력히 바라고 있는 소련은 남북한 평화공존관계를 위한 「두개의 한국정책」 추진을 위해 「김일성의 항일빨치산투쟁」의 허구성과 김일성·스탈린의 「한국전쟁」 유발책임을 폭로하고,한소수교를 가시화시킴으로써 대남혁명전략에 따라 「하나의 조선정책」을 고집하는 김일성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소수교는 궁색한 「정경분리원칙」을 고수하지 않을 수 없는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에도 정책선택의진폭을 넓혀주고 있다. 이런 배경때문에라도 북한은 「남북 고위급회담」등 남북대화의 마당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체제공존을 지향하는 남북대화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대화의 자리에 나온다 하더라도 대남전략적 발상의 주한미군 철수,군축,한반도의 비핵·중립화 등 상투적인 군사문제 선결입장을 계속 제기하면서 당국,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를 통한 「고려연방제통일방안」의 관철을 주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남북한의 체제공존을 지향하면서 민족통일로 접근하려는 우리의 통일정책과 「남조선」의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을 지향하는 북한통일정책의 막판 승부의 장으로 급히 줄달음치고 있는 형국이다. 긴장완화와 공산권 전반의 개혁·개방정책으로 기울어진 인류문명사의 대세와 신정체제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북한체제간의 간격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또 북한체제가 고립화되면 될수록 북한당국은 더욱더 「남조선」 민중과의 「통일전선」 형성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통일은 「남조선 혁명」 전략에 따른 북한의 대남 제의를 우리가 능동적으로 수용하여 오히려 북한사회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시점이 언제냐에 따라 가까워질 수도 있고 늦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 외언내언

    『중국은 등소평의 경제개혁이 계속될 경울 서구민주주의와는 다를지 모르나 반드시 일종의 복수주의 내지는 입헌정치에 이를 것이다. 현재의 노선을 계속 추구한다 하더라도 10년후에는 소련보다는 자유롭고 휠씬 풍요한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다』. 전 미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박사의 진단이다. ◆지금은 비록 뒤져 있으나 정치ㆍ경제 민주화개혁을 위한 객관적 조건은 중국이 소련보다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중국은 한국ㆍ대만ㆍ홍콩 등 주변에 성공적인 모델들이 있고 해외거주 화교들도 많으며 「장사꾼 정신」의 전통도 뿌리가 깊다는 것. 천안문사건이후 지난 1년은 엄청남 충격의 흡수를 위한 정리기간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금년들어 천안문사태와 차우셰스쿠 비극의 충격이 진정되면서 조심스런 변화의 조짐을 보여왔다. 1월의 북경계엄령 해제에 이어 천안문사건 구속자도 두차례에 걸쳐 8백명이나 석방했다. 탄압과 처벌 일변도의 정책도 설득과 회유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25일엔 지난 1년20일동안이나 북경주재 미대사관 구내에 갇혀 있던중국의 반체제 지도자 방려지부부의 출국허가가 나온 것이다. ▲중국이 국가위신을 걸고 완강이 거부하던 방씨 부부의 출국허가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경제압력에 굴복한 결과로 지적되고 있으나 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이 이제 얼마간의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닌다 하는 점이다. 4월15일 호요방 1주기이후 6월4일 천안문 1주년까지의 불안했던 북경의 봄을 무사히 넘긴 데서 오는 자신감일지도 모른다. ◆굴복이라도 좋골 자신감이라도 좋다. 중요한 것은 비록 작은 일일지라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길이 옮겨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늦어도 좋으나 한걸음이 열걸음 백걸음으로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지난 5월 서울에 왔던 헌터 영 전략문제연구소부소장도 말했듯이 아시아,특히 북한의 변화는 중국의 변화가 있고서야 가능할지 모르기 때문디다. 천안문이 없었던들 오늘의 북한은 어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역사란 알다가돌 모를 것인가 보다.
  • 고르비,리무진 세우고 시민들과 대화/미ㆍ소 정상회담 이모저모

    ◎“개혁 「출산」엔 최소 9개월 필요”조크도/소대사관 오찬땐 현역 배우 대거 참여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저녁 러시아워에 백악관에서 속소인 소련대사관으로 돌아오던중 갑자기 리무진을 세우고 차에서 내려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이날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대사관으로 돌아오던 중 인파로 북적대는 백악관 앞의 펜실베이니아 가에서 장갑 리무진을 세우고 보도에 내려서 시민들과 악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길을 건너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과도 인사하고 차로 돌아왔다. 예정에 없는 그의 이같은 행동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것으로 그는 지난 87년 워싱턴 방문 때도,최근 오타와 방문 때도 아무 때나 길에서 차를 내려 경호원들을 당혹케 한바 있다. ○…미국과 소련의 기업가와 정치인 등 약 1백30명의 양국 손님들이 초대된 백악관 환영만찬의 주메뉴는 미국식 메뉴인 스테이크와 바닷가재 요리. 이날 식탁에는 메인주에서 공수된 바닷가재와 통옥수수,로스트 비프와 레몬과 올리브유 드레싱을 친 아스파라거스 스프링 샐러드,그리고 3가지 종류의 미국산 포도주가 올려졌다. ○잭슨ㆍ키신저도 참석 ○…고르바초프 부처가 약 70명의 미국 지식인과 연예계 인사들을 위해 베푼 오찬은 레이건 전대통령 퇴임 이래 최대 규모의 스타모임이었다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논평. 소련의 한 관리는 이날 초대손님의 명단을 작성하는데는 라이사의 역할이 컸다고 은밀히 시인.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날 오찬에서 소련을 임신한 여성에 비유,『경제개혁을 낳으려면 최소한 아홉달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인내를 강조. 미국의 대표적 지식인과 연예인 등을 위해 이들 부부가 주최한 오찬에는 배우 제인 폰다,그레고리 펙,작가 레이 브래드버리,헨리 키신저 전국무장관 등이 참석했고 현직 정치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제시 잭슨이 초대됐다. 이밖에 로버트 레드퍼드,버트 랭커스터,프랭크 시내트라,잭 레몬,디지 질레스피,밴 클라이번,국립 미술관장 카터 브라운,퇴임하는 데릭 보크 하버드대 총장 등도 하객으로 참석. ○…경호관계자들은 고르바초프가87년 방미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워싱턴 이외에 미니애폴리스와 캘리포니아 등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상당한 고충을 겪고 있다. 비밀 경호팀의 앨런 크레이머대변인은 자신은 고르바초프가 예정에 없는 곳에서 갑자기 차를 세우고 리무진에서 나와 군중에게 인사를 한다해도 이제는 더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라이사 고르바초프와 바바라 부시 등 양국 퍼스트레이디들은 두정상이 회담을 갖는 동안 별도로 마련된 객실에서 차를 마시며 웨슬리여대 졸업참가등 앞으로의 일정을 논의 환영식과 외교사절 접견 등 딱딱한 공식행사가 끝나자 부시여사는 손님들을 백악관으로 안내 링컨의 침실을 비롯해 집안을 보여주었다. ○…스탠퍼드대 학생들은 지난달 31일 자신들이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을 직접 볼 기회를 얻게 되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당첨자명단이 실린 대학신문쟁탈전을 벌이는등 아우성. 고르바초프는 4일 스탠퍼드대를 방문,연설할 예정으로 있는데 강당수용인원이 1천7백명밖에 안되기 때문에 대학당국은 2만3천명의 학생ㆍ교직원을 대상으로 컴퓨터로 추첨,14대1의 경쟁률을 보였던 것. ○…미소 양국 정상의 부인들 자신은 예의를 갖추며 서로를 치켜세우는데도 불구하고 미국 언론과 사교계 등에서는 두 퍼스트 레이디를 놓고 한창 비교분석을 행하고 있는데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리처드 블랙웰도 이들의 의상을 촌평해 눈길. 「세계에서 가장 옷을 못입는 여성」과 「세계 최고의 베스트 드레서」를 지목해 발표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미안한 말이지만 라이사가 바바라를 눌렀다』면서 라이사에게 10점 만점중 9점을,바바라에게는 7점을 각각 매겼다. ○…라이사는 지난 31일 미국 의회 도서관에서 러시아의 고문서 전시회를 열고 개막식 리셉션에 참석했는데 이곳에 모인 4백명의 참석자들 대부분은 전시물 자체보다도 라이사를 보러 온 이들로 그의 「지성미」에 찬사를 거듭 보냈다. ○라이사 동정에 관심 ○…소련 신문과 TV 등 언론매체들은 서방인들로부터 열렬히 환영받는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날렵하게 차려입은 그의 부인 라이사가 미국의 중심부를 누비는 모습을 연일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다. 특히 TV방송의 경우 지난 31일 백악관에서 있은 환영식의 연설 광경을 특별 생방송으로 내보낸 것을 비롯,정규 뉴스의 전부를 이번 미국방문에 할애하고 있다.
  • 박철언정무,김영삼위원 비난의 파장

    ◎“김ㆍ박 힘겨루기”… 내분수습 먹구름/정치생명 건 승부수… 서로 팽팽한 대립/박정무,민주계견제ㆍ운신의 폭 확대도 겨냥/김위원측,“공작정치에 시달렸다” 간접 비난 박철언정무1장관의 10일 상오 「폭탄발언」으로 민자당 내분은 수습이 더욱 어려운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김영삼최고위원측은 박장관의 경고성 발언만으로 이미 정치적 이미지와 권위에 상당한 내출혈을 본 상태다. 김최고위원측이 박장관을 「적」개념으로 설정,정치생명을 건 대반격을 시도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측은 박장관의 발언에 유보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사태는 민정계와 민주계의 전면전으로 확대될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박장관의 이날 아침 양재동 자택발언을 단순한 비보도용 신상 발언으로 보려는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장관 스스로가 몇차례 「비보도」를 전제로 했고 미금시 지구당 개편대회 참석중이던 박태준최고위원 대행이 보고를 접한 뒤 『그렇게 말을 못 참나』라면서 심한 낭패감을 보인데서 이런 해석은 가능하다는 분석. 그러나 이날 박장관이 1시간10여분 동안 기자들에게 자신의 심경을 밝힌 점이나 발언보도로 파문이 확대된 뒤에도 당황하거나 이를 적극 수습하려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날 발언이 고도로 계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 ○청와대선 유보적 자세 박장관이 김최고위원의 부산서구 지구당 개편대회에 맞춰 김최고위원의 「정치이면 폭로가능성」을 강도높게 시사한 것이 의도된 것이라면 박장관은 적어도 두가지 목표아래 자신의 정치생명을 건 대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첫째는 지난 7일의 김최고위원 청와대회의 불참으로 시작된 민주계의 스트라이크가 3당통합의 기본약속을 무시하고 김최고위원의 당내 상대적 우위확보로 결론이 날 조짐을 보이는 것에 대한 견제목적을 갖지 않았겠느냐는 것. 박장관은 이날 발언에서 김최고위원을 강도높게 비판하면서 지도체제문제가 합당결의 당시에 명확하게 3자간에 결론이 난 바 있다고 강조. 즉 노태우대통령이 임기중에 당을 명실상부하게 총괄하며 김영삼최고위원은 일상적 당무를 위임받아 총괄키로 합의됐다는 것이 그것. 김최고위원이 지도체제문제와 관련해 정부는 노대통령이,당은 자신이 맡기로 합의된 것처럼 은연중 시사하고 있는 상태에서 박장관이 처음으로 「지도체제 합의사항」을 폭로한 것은 이날 발언의 지향성을 분명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는 민정계 내외에 이번 싸움으로 자신의 정치생명이 사실상 끝난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운신폭 확대를 위한 자구책의 성격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평. 민주계와의 확전을 통해 민정계 핵심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과 확전의 결과로 비록 2선으로 물러나더라도 민정계로서는 장렬한 희생이 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소멸」보다는 정치적 이득이 큰 것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박장관이 「김최고위원에 대한 경고성 발언→당내분 악화→자진사퇴」의 수순을 상정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는 상태. 박장관이 시사한 김최고위원의 방소 및 합당비사는 아직 정확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 측근들에 따르면 김최고위원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회동이 3∼5분 동안의 수인사에 그쳤고한소수교에 대해 언급이 없었음에도 국내 언론의 확대보도를 유도한 것과 관련,소련측 기관의 비공식 항의가 있었다는 점도 방소비사에 포함돼 있다는 후문. ○“자진사퇴 수순” 추측도 ○…김최고위원의 지역구인 부산서구 지구당 개편대회 참석을 위해 10일 부산에 도착한 김최고위원과 민주계 핵심인사들은 현지에서 박장관 발언내용을 전해듣고 긴급대책회의를 갖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산한 모습. 민주계는 회의에서 박장관 발언에 김최고위원이 직접 반박하는 것은 상대방을 이롭게 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김최고위원은 일단 「공작정치」에 대한 원칙론적 비난을 하는 수준으로만 짚고 넘어가고 계보내 소속의원들로 하여금 박장관을 공격토록 하는 양면작전을 구사키로 결론을 내렸다는 전문. 민주계는 자신들의 이같은 대응방법에 대한 민정계의 반응을 하룻동안 지켜본 뒤 11일의 김최고위원 기자회견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고 청와대 면담등과 관련한 후속태도를 결정할 방침. 민주계는 또 박장관측이 김최고위원측의 방소성과홍보를 「과대포장」이라고 지적하는 데 대한 대응으로 이날 김최고위원의 서구지구당 개편대회 인사말에 앞서 황병태의원으로 하여금 방소 및 고르바초프대통령 면담의 의미를 다시 한번 강조. 민주계의 이같은 대응전략이 수립됨에 따라 김최고위원은 지구당 개편대회의 인사말에서 특정인을 비난하거나 공격하지는 않았으나 연설 중반과 말미에 각각 한차례씩 흥분을 감출 수 없는 듯 『절대 공작정치와 정보정치를 용납치 않겠다』고 고성. ○…김영삼최고위원이 「공작정치」를 운위한 데 대해 청와대나 민정계는 「공작」의 구체적인 실체가 무엇인지 얼른 감이 오지 않는다는 반응. 8일 밤 김최고위원과 만났던 노재봉대통령 비서실장도 『무슨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는 말로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음을 시사. 김최고위원이 「공작」을 거론한 것은 자신의 후원세력에 대한 「기관」의 뒷조사설과 함께 민정계가 평민당과 짜고 자신을 정치적으로 「물」을 먹이려는 술수를 부린다는 정보에 벌컥했다는 후문. ○부산서 긴급대책회의 여권관계자는김최고위원에게 『현직각료든 누구든 무슨 첩보가 있으면 하부기관에서 기계적으로 스크린을 하는 것은 기관의 오랜 관행』이라는 점을 설명,앞으로 오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고. 또 노태우대통령과 김대중평민당 총재간의 회담추진도 민자당내에서 YS의 정치적 위상을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 전혀 아님을 김최고위원측근에게 설명했다는 것. ○…박철언정무1장관은 10일 하오 정부종합청사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20여분 동안 만나 자신의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에 대한 공격성 발언의 진위를 설명. 박장관은 『문제를 확대하려는 점은 물론 김최고위원을 반격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고 말하고 『나는 정치질서가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인내하고 침묵할 것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강조. 박장관은 이날 특히 3당통합 과정과 방소기간에 있어 김최고위원과의 「오해」를 의식한 듯 『마치 언론에 엄청난 일이 있는 것처럼 비춰졌다면 그것도 사실과 다르니 충분히 해명해 달라』고 주문하면서 자신은 화합을강조했음에도 그동안 민주계에서 자신에 대한 근거없는 인신공격등을 이에 대한 심경의 일단을 피력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 한편 박장관은 이날 밤 11시30분쯤 양재동 자택으로 돌아와 강재섭의원등 핵심측근의원 9명과 심야대책회의를 개최. 박장관은 회의에 들어가기 직전 기다리고 있던 보도진들에게 『오늘은 더이상 할말이 없다』며 굳은 표정을 지어 심야회의가 심상치 않음을 시사. ○…청와대측은 박장관의 발언으로 민자당 내분수습국면이 다시 악화되자 『안타깝다』는 표정. 노재봉비서실장은 사태가 험악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박장관이 해명을 했다니 수습이 되겠지』라면서도 『머리가 아프다』고 곤혹스러움을 표시. 노실장은 그러나 『결혼(합당)을 해 살다보면 부부싸움도 할 수 있지 않느냐』며 『현 상황은 부부싸움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해 사태가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는 청와대측의 입장을 우회적으로 설명. 한편 최창윤정무수석비서관은 부산에 가 있는 박희태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어 『박장관이 스스로 발언을 해명했다』며 김최고위원측에 잘 설명해줄 것을 부탁하는등 「발언」파문 진화에 총력. 청와대 고위참모들은 이번 사태와 관련,노대통령에 대한 측근 참모로서의 박장관과 박장관 개인의 「성격」문제로 2분화하여 문제를 파악하는 입장을 비치고 있어 눈길. ○“확대 해석은 말아달라” 한 고위당국자는 노대통령이 박장관의 조언에 따라만 움직인다는 지적에 대해 『대통령의 통치권 행사가 결코 특정인 한사람의 얘기만 듣고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일단 전제하면서도 『정치지도자는 누구나 상대적으로 더 신뢰하는 참모를 갖고 있게 마련』이라며 노대통령의 박장관 신뢰를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된다고 강조. 미국의 루스벨트대통령과 홉킨스 특별보좌관,닉슨대통령과 키신저 안보담당특별보좌관 사이의 관계를 되돌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국정의 최고책임자는 언제나 최종 결정을 해야 되는 입장이고 그 과정에서는 극도의 보안속에 자신을 보좌하고 심부름을 시킬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고 이 당국자는 설명. 이같은 청와대측의 시각을 감안해 보면 이번 사태로 박장관이 현직에서 물러나기 보다는 언행에 조심을 하도록 하는 「근신령」이 내려질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지배적.〈김교준ㆍ우득정기자〉 ◎김위원을 겨냥한 박장관발언 요지/합당과정ㆍ방소비화 공개하면 손해보는 사람 누군지… 박철언정무1장관이 10일 민자당의 김영삼최고위원측을 겨냥한 발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지금은 우리 민족사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시기다. 그래서 3당통합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계에서는 나를 「용팔이 사건」의 배후자라느니,차지철ㆍ이기붕에다 비유하는 등 별의별 음해공작을 펼치고 있는데 김최고위원 자신이야말로 말 그대로 구국적 결단을 내려 정부여당에 들어 왔으면 거기에 상응하는 자세변화를 보여야 할 것이다. ▲민족통합이라는 엄청난 일을 앞두고 내가 반격하면 일을 그르치게 될까봐 인내로서 참고자 한다. 과거 2년간 서로 어떤 관계를 설정해 왔으며 통합과정 혹은 방소기간중의 비사를 내가 말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면 또다른 내분과 불화가 생기게 될 것이다. ▲김최고위원이 통합과정에서 어려운 결정을 해준 데 대해 나로서도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 분을 최대한 도와줘야 한다는 자세를 갖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나 정무장관을 적으로 규정하고 이 사태를 무한정 끌고 간다면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직막 순간에는 그동안 숨겨진 모든 비화와 방소기간중 정치적 인기를 위해 국익과 국가안보를 소홀히 한 모든 행각을 공개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나로선 전혀 손해볼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도리어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을 민주계측에선 알아야 한다. ▲민자당의 통합추진위는 전원 합의제인데 내가 무엇을 전횡하고 독주했다는 말인가. 자료를 준비,배포한 것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심부름한 것이지 누구도 앞장서지 않으면 통합만 선언해 놓고 어쩌자는 것인가. ▲오늘 아침에도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 『YS(김영삼최고위원)를 견제해야 한다』는 전화를 많이 받았지만 우리가 참자고 설득했다. 우리 민정계측이나 참모들은 가만히 있지 않느냐. 특히방소기간중 김최고위원의 상상을 초월한 행위에 격분한 정부실무대책반원은 김최고위원이 스스로 결과에 책임지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자고 했지만 그래도 국익을 위해 그들을 설득,수습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저쪽(민주계 지칭)은 말로만 개혁이니 뭐니 떠들고 있지만 내심 권력과 당권을 장악하려는 속셈 아니겠는가. YS가 대표최고위원으로서 당무를 관장한다는 것은 원래 3당통합시 약속된 내용이 아니다. 노태우대통령의 임기중 노대통령이 당을 총괄,관장하도록 확실하게 해 놓았다. 최근 YS의 움직임은 약속된 것을 그대로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시도하려는 것으로 본다.
  • 「통독」을 보는 현지의 시각/아스거 라슨(특별기고)

    ◎“거대 독일”… 명암 엇갈리는 유럽/“EC 통한 평화적 유럽통합의 새 전기” 기대/“독일 중립화 땐 큰 재앙 초래” 우려 목소리도 독일은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유럽의 성쇠에 있어 중요한 지위를 점해 왔다. 정치적ㆍ사회적 대변혁의 음모 뿐만 아니라 심오한 사상도 독일에서 생성됐다. 문화적ㆍ과학적 주요 경향들은 루터 칸트 쇼펜하워 니체 아인슈타인 괴테 마르크스 헤세 베토벤 바흐 등과 같은 사람들로 대표되는 과거 독일제국에서 비롯됐다. 독일은 전후 「경제기적」을 이룩한 나라이면서 또한 2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전쟁 책임이 있는 비스마르크와 히틀러를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유럽에 있어 독일은 경모의 대상이면서 증오의 상징이며 본받을 존재이자 두려운 상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독의 붕괴 이후 지금 유럽에서 논의되고 있는 독일재통일 문제는 주변국가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8일은 전후 서독과 동독을 갈라 놓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1백일이 되던 날이었다. 지난 1백일 동안 독일에서는 숨막힐 정도의 격변이 열광과 두려움 속에서 진행되었다. 열광하게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부패하고 싫증난 동독에 불어닥친 자유화바람 때문이었으며 반면 두려움을 갖게된 것은 거대하고 강력한 독일의 경우 제국주의적 충동에 사로잡혀 왔다는 과거 경험 때문이었다. ○유럽성쇠의 중추역 비록 동독은 지금 피폐된 자국의 경제 때문에 고통받고 있지만 1천7백만의 동독인과 6천1백만의 서독인이 합치면 유럽대륙에서 인구가 제일 많고 경제적으로도 가장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동독인들이 진실로 그들의 동포인 서독인들과 재통일을 이루고 싶어한다는데는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공산주의의 상징은 동독의 3색국기에서 이미 뜯겨 나갔으며 거의 매일 대규모 시위 군중들은 『공산주의는 영원히 죽었다. 이제는 통일이 필요하다』고 외치며 비밀경찰에 대한 두려움 없이 동베를린 라이프치히 등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또 전 공산당 지도자들은 전에 없이 비참한 모습으로 TV에나와 『자유선거에서 공산당이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 특권을 누리던 공산당원들은 달아나기에 바쁘며 2백30만에 달하던 당원수는 최근 1백일 동안에 불과 7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동독 공산당의 한 고위관리는 『이달 18일로 예정된 자유총선에서 공산당은 겨우 10% 정도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며 『통독문제는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아닌 가까운 미래의 현실』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문제는 동독인들의 지나친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지난 1백일동안 자신들이 직접 동서독간의 엄청난 경제적 차이를 실감했다. 따라서 통일문제는 이제 시장경제와 혁명의 문제가 될 것이다. ○국제지위변화 불원 오늘의 유럽은 50년 전의 상황과 한가지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것은 서독이 지금 나토와 EC에 있어 주요핵심국가라는 사실이다. 독일이 통일을 이룩했을 경우 또다시 주변국에 대해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주변국인 영국과 프랑스 국민들도 이같은 생각을 하고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의 일부 국민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통일독일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현재의 서독보다 훨씬 막강해진다는 사실이다. 또다른 우려는 통일독일의 국제적 지위와 관련이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독일의 중립화는 유럽에 커다란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견해는 나토동맹국들은 물론 아마 소련까지도 같은 생각일지 모른다. 소련은 20세기 전반기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독일이 유럽의 한부분으로 귀속되지 않으면 몹시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공식적으로 2차대전의 전승4개국인 미ㆍ영ㆍ소ㆍ불 등은 독일사태의 진전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45년이 지난 지금 이것은 단지 형식에 불과하다. 고르바초프는 서독 콜 총리와 회담에서 독일의 재통일은 전적으로 독일국민의 문제라고 확인했다. 통일된 독일은 나토군이 현재의 동독땅에는 주둔하지 않은채 나토에 귀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EC에도 회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유ㆍ민주적 선거와 함께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통일을위한 전제조건이며 마르크화를 단일통화로 하는 것은 피폐된 동독경제 재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10만명 정도의 동독인들은 지난 몇달동안 서독으로 이주했으며 9만5천명에 이르는 비밀경찰과 10만9천명의 정보원들은 보복을 피해 달아났다. ○탈 이테올로기 시급 서독 콜 총리는 『늦어도 내년에는 독일의 재통일이 이뤄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으며 헝가리와 폴란드의 경제지원을 위해 각각 40억달러와 60억달러의 차관을 승인했던 EC는 『동독경제문제는 독일인의 문제』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금세기에 들어 베를린의 주요 쇼핑거리인 「운테르 덴 린덴」은 나치와 공산주의자들이 군화소리로 메아리 졌었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고 유럽은 더 이상 분단된 대륙으로 존재할 수 없다. EC를 통한 유럽통합은 독일통일을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가능케 하고 있다. 이는 또 사회주의의 어둠으로부터 벗어나 서서히 제 갈길을 찾아가야 하는 동구국가들을 포함한 전유럽의 평화적 통합에도 길을 열어주게 될 것이다. 이같은 통합과정이 외부의 간섭 없이 지속되기 위해 유럽은 이제 탈 이데올로기화하고 보다 인간적인 모습을 갖춰가야 할 것이다.
  • 거취 유보 민주의원들의 「민자」합류 급선회 배경

    ◎각개 설득 주효… 이탈 진통 조기 진정/김 총재,옛정 호소ㆍ자리보장 언질/민정 유력인사들의 지원도 한몫/잔류파,원내 세 확장 중단… 원외에 미련 남겨 민주자유당(가칭) 참여문제로 진통을 겪던 민주당은 일부 동요의원들이 김영삼총재를 따르기로 결정함으로써 일단 내부동요를 수습하고 큰 탈없이 「거대여당」에 합류할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은 이기택총무의 야권잔류선언을 계기로 여당으로의 변신에 갈등을 느껴온 일부 의원들이 크게 흔들리는 등 한때 위기를 맞는 듯 했으나 김영삼총재의 각개격파식 선무작업이 주효하면서 이탈의원을 5명으로 묶고 탈야당과정에서의 1차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이로써 김총재는 3당통합을 추진하며 표방해온 「구국적 결단」의 명분이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안방에서 훼손당할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당초 거취표명을 유보해온 김재광국회부의장,최형우 전총무,박종률의원,신상우보사위원장 등 중진들과 김동주,정정훈의원 등이 모두 야권잔류를 선언했을 경우 원내교섭단체 구성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기대했던 신야당추진모임은 더 이상의 원내의석확보 노력을 포기하고 신야당 결성의 구체적 작업에 나서고 있다. 한때 만만치 않은 세를 과시하던 신야당 돌풍이 이처럼 급속히 진화되게 된 원인은 김영삼총재가 동요의원들을 최소한 한차례 이상씩 만나 인간적 호소와 신여권내에서의 자리보장 약속 등을 통해 이들의 마음을 돌려놓았기 때문이다. ○큰 탈없이 관문 통과 김재광국회부의장과 박종률의원의 경우 『당신들이 떠나면 나의 정치생명은 끝난다』는 김총재의 극구만류로 신당참여를 결정했으며 특히 김재광부의장은 고위 국회직에 대한 언질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연구모임 소속의 김동주의원에 대해서는 민자당내의 당직보장이 있었으며 지역구내서의 기득권도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약속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동요의원에 대한 설득과정에서 민정당 유력인사들의 직ㆍ간접지원도 있었던 것이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김총재의 측근들은 『무엇보다 김총재의 저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 했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총재는 설득과정에서 서독 기민당과 사민당의 연정을 예로들며 앞으로 자신의 위상정립 방향을 시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나치시절 외무부 고위관리를 지낸 경력의 키신저 당수가 이끄는 여당 기민당의 연정제의를 야당인 사민당 당수 브란트가 받아들였을 때 원내총무를 포함한 많은 의원의 반대가 있었고 5분의1 이상의 의석이 이탈했으나 차기선거에서 최대의석 정당으로 발돋움하고 브란트 자신은 수상이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또 이로써 브란트가 동방정책을 펼칠 수 있었고 이는 궁극적으로 동독의 변화를 가능케 했으며 당시 고도성장 끝에 침체기를 맞은 서독경제를 중흥시켰던 것과 김총재 자신의 선택을 비교시켰다고 전해진다. 이와함께 동요의원들이 민자당 참여를 결심한 계기는 김총재쪽으로 돌아서는 의원들이 지난주말을 고비로 늘어나면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불가능해진 데 따르는 역도미노현상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 입장유보 의원들이 전원 김총재와의 동행을 결정함에 따라 신야당추진모임도 그동안의 원내 세확장노력을중단하고 의사결정기구인 집행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나름대로의 본격적인 창당작업에 착수하는 모습이다. ○저력 재확인의 계기 신야당추진모임은 민자당의 창당 수순이 신여권의 향후 정국운영계획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보고 민자당의 창당작업에 보조를 맞추는 것이 상황변화에 대한 효율적 대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에따라 신야당추진모임은 민자당내에서의 입지마련에 불안감을 느끼는 원외위원장들을 포섭,우선 정당창당에 필요한 법정지구당 결성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신야당결성은 전도가 험난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민자당은 신야당이 목표로 하는 비호남지역에서의 지지기반 확보계획에 결정적으로 이해가 맞부닥치는 상대다. 또 평민당은 신야당이 김영삼총재를 집중공격하며 민자당을 괴롭힐 것이란 점에서는 제휴관계를 성립시킬 수도 있는 대상이다. 그렇지만 신야당이 비호남지역에서의 민주당에 대한 대체정당으로 성장할 경우 평민당의 탈호남전략이 차질을 빚게되며 김대중총재의 퇴진압력 가중을 의미하는 만큼원내에서 최소한의 협력외에는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지자제 선거에 총력 그러나 신야당추진모임측은 김영삼총재의 여당변신에 대한 여론의 반향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고 주장하며 거대여당 출현에 따르는 유권자의 반사심리인 야당육성 필요성 인식에서 입지를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야당으로서의 선명성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지원호소 노력을 계속할 경우 지자제선거에서 7석의 원내점유율(2%)를 크게 상회하는 득표율을 올림으로써 질의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민주당내의 민자당 참여그룹 및 야권 잔류그룹의 구분이 분명해짐에 따라 더이상의 내부진통은 없어졌으며 앞으로 참여파는 신여권내에서의 개혁주도,잔류파는 신야당결성에 대한 공감대 확산이라는 나름대로의 과제를 각각 안게 됐다고 해야겠다.
  • 한반도의 통일 논의 김일성 사후 본격화/키신저 전망

    【도쿄 연합】 헨리 키신저 전 미국무장관은 11일 나카소네(중회근강홍) 전 일본총리와 가진 요미우리(독매)신문 특집 대담 기사를 통해 북한주석 김일성 사망후 전개될 새로운 정치상황에 따라 남북 통일문제가 본격 거론되고 금세기말쯤 가면 동서독과 같은 연방체제가 고려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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