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키스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가치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대주주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검증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연극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3,104
  • ‘이란판 석해균’ 해적피랍 이란선원 기지발휘

    이란 핵 개발을 둘러싸고 이란과 갈등을 벌이는 미국의 해군이 걸프해에서 해적에 피랍된 이란인들을 구출했다. 극적인 구조극 뒤에는 이란 선원의 재치 있는 거짓말이 빛났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미 국방부 등에 따르면 미 해군 구축함인 키드호는 지난 5일(현지시간) 이란 인근 걸프해를 항해하던 중 민간 선박 한 척을 발견했다. 미 해군은 보통 때처럼 확성기를 통해 “만약 무기를 싣고 있다면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조타실 위에 놓아 주세요.”라고 우르두어(파키스탄·인도 등에서 쓰이는 언어)로 안내했다. 선박에 타고 있던 선원들은 뭔가 긴장한 듯 보였다. 당시 배에는 이란인 선원 13명 외에 해적 15명이 올라타 있는 상황이었다. 해적들은 지난해 11월 이 배를 납치했다. 하지만 우르두어를 알아듣지 못한 해적들은 이란인 선원들에게 “저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느냐.”고 물었다. 이때 배에 인질로 잡혀 있던 선원 칼레드 압둘칼레드가 태연히 말했다. “이 배를 조만간 박살 내 버리겠다는데요.” 해적들은 기겁해 이리저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일부는 투항할 의사를 내비쳤고 다른 해적들은 숨을 곳을 찾았다. 곧 미 해군 병사들이 선박에 올라탔고, 뱃머리 등에 숨어 있던 해적들을 별 저항 없이 제압했다. 존 키르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미 해군이 소말리아 출신으로 추정되는 해적 15명을 생포해 미 항공모함 존 C 스테니스함에 구금해 놓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라민 메흐만파라스트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7일 아랍어 국영방송 알아람에서 “이란 선원의 목숨을 구해준 미군의 행동은 인도주의적이며 긍정적인 행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란 반관영 파르스 통신은 이를 미군의 걸프 주둔을 정당화하기 위한 ‘할리우드 영화’식 선전전이라고 비꼬았다고 중동 현지 일간지 걸프뉴스가 보도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송파 A중 일진 “이 XX야” 여학생 성희롱해도…

    송파 A중 일진 “이 XX야” 여학생 성희롱해도…

    서울 송파구 A중학교의 한 2학년 교실은 이른바 ‘일진’이라고 불리는 한 남학생의 막가파식 성폭력 발언에 속수무책이다. 여학생들을 향해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의미의 말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모욕을 본 피해 학생들은 치욕스러움에 울 뿐이다. 다른 학생들도 입을 꾹 닫고 있다. 남학생의 행동을 누구도 제지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학교에 나오지 않던 같은 중학교의 여학생은 지난해 여름 인근 고교의 일진 남학생과 어울렸다. 빈집으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다. 때문에 한달간 학교를 결석했다. 소문이 날까 봐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그러나 학생들 사이에선 이미 소문이 널리 퍼졌다. 담임교사만이 이 같은 사실을 몰랐다. ●학교 성폭력 3년새 2배 늘어 최근 ‘학교 폭력’의 유형인 학내외 학생 성폭력도 심각하다. 금품갈취·단순폭행은 줄어든 반면 학생 간 성폭행 사건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8일 경찰청의 연간 학교폭력 검거현황 건수에 따르면 성폭력은 2007년 298건에서 2010년 575건으로 3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단순폭력은 2007년 1만 4368건에서 2010년 1만 5537건으로 8.1%, 금품갈취는 2007년 5584건에서 2010년 5992건으로 7.3%씩 증가했다. 원인은 다양하다. 학교 현장의 부실한 성교육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사회 전반을 따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각종 매체 등에서 자극적인 음란물이 넘쳐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고, 접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사회적 병폐를 반영하듯 중·고교 학생들 사이에서는 일진회에 가입하면 신고식 차원에서 다른 여학생을 성폭행하도록 협박, 강요한다는 말도 떠돌고 있다. 대구의 B고교에서는 쉬는 시간을 이용해 남학생 선배가 여학생 후배를 상대로 강제로 키스하는 사건도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선생님이 간섭할 일 아니예요” 그러나 학교가 학생들의 성폭력적 행동과 발언에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교사들은 대체로 “땅에 떨어진 교권으로는”이라며 자책과 함께 책임을 돌렸다. 해당 학생들은 “서로 좋아서 했다.”, “선생님이 간섭할 일 아녜요.”라며 대들기 일쑤라는 것이다. 학부모의 거센 항의 때문에 성폭력을 쉬쉬하는 경향도 강하다. “한번 불거지면 걷잡을 수 없고 아주 귀찮아진다.”는 이유에서다. 경남 남해 한 초등학교 이모(58) 교장은 “학교는 수사기관이 아니며, 교사는 학생을 범죄자가 아닌 교육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학생들의 비행을 일일이 밝혀내 처벌하기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성교육도 학생 눈높이 못맞춰 학교의 성교육 부재 및 내용 부실도 문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9월 연간 10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성교육을 하도록 지침으로 내렸다. 하지만 일선 학교에서 성교육은 형식적으로 이뤄지거나 자율학습이나 국어·영어·수학 수업 등으로 대체하는 곳이 많다. 한 지방교육청 관계자도 “성교육은 형식적으로 10시간 이상 서류만 꾸미는 게 현실”이라면서 “학내 성폭행을 예방할 수 있도록 교사들의 성교육 관련 사이버 연수를 더욱 활성화하고 담당교사가 제대로 교육하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성교육 내용도 학생들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영준·명희진기자 apple@seoul.co.kr 36) 목졸려 살해된 시신, 라면박스만 없었어도… 범죄가 흔적을 남기기 위해… 35) 그녀와 만난 남자는 모두 죽는다 마약에 눈먼 20대 명품녀의 엽기적 살인행각 34) 하얀 피부와 사후강직이 일러준 토막살인의 진실 전철역 화장실에 유기된 30대女의 시신 33) 억울한 10대 소녀의 죽음…두줄 상처의 비밀 추락에 의한 자살? 몸을 통해 타살 증언하다 32) 살해된 20대女의 수표에 ‘검은 악마’의 정체가 담기다 완전범죄를 꿈꾸던 엽기 살인마 31) 최악의 女연쇄살인범 김선자, 5명 독살과 비참한 최후 청산염으로 가족, 친구 무차별 살해 30) 동거女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시신이 물속에서 떠오르자… 살인후 물속으로 던진 사건 그후 29) 살인자가 남기고 간 화장품 향기, 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女 살인사건의 전말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7) 40대 여인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6) 목졸리고 훼손된 60대 시신… 그것은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1) 자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젊은 남자들…누구의 저주인가?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비밀 20) 아파트 침대 밑 女 시신 2구…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18) 헤어드라이어로 조강지처 살해한 50대의 계략… 몸에 남은 ‘전류반’은 못 숨겼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범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5) 무참히 살해된 20대女…6년만에 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이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4) 백골로 발견된 미모의 20대女, 성형수술만 안 했어도… 가련한 여성의 한 풀어준 그것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1) 자살한 40대 노래방 여주인, 살인범은 알고 있었다 생활반응이 알려준 사건의 진실 10) 소변 참으며 물 마시던 20대女, 갑자기 몸을 뒤틀며…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물’ 9) “그날 조폭은 왜 하필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8) 변태성욕 30대 살인마의 아주 특별한 핏자국 혈흔속 性염색체의 오묘한 비밀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6) 천안 母女살인범, 현장에서 대변만 보지 않았더라도…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여성의 사연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3) 친구와 함께 차안에서 아내에 몹쓸짓 한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전체 시리즈 목차보기 (클릭)
  • 박희태, 돈봉투 속이거나 몰랐거나

    박희태, 돈봉투 속이거나 몰랐거나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의 당사자로 지목된 박희태 국회의장은 8일 “(돈 봉투 살포는)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돈 봉투 살포 사실을 부인하면서도 “그러나 검찰 수사에는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박 의장은 아시아·태평양 의회포럼(APPF) 총회 참석 차 일본을 방문, 도쿄의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다 검찰의 고승덕 의원 조사 내용을 보고받고는 이같이 말했다. 신각수 주일대사, 정진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단장 등과 저녁식사를 한 박 의장은 밤 9시 30분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 “검찰 수사에 협조할 일이 있으면 협조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거야 말할 것도 없지.”라고 강하게 긍정했다. 앞서 박 의장은 자리를 파하고 나오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고 의원이 누구한테 돈을 받았는지 말했다더냐.”라고 묻는 등 수사 진척 상황에 관심을 보였다. 박 의장은 고 의원이 검찰에서 돈을 준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내게 전달된 쇼핑백에 300만원과 특정 후보의 명함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말을 전해 듣고 “나는 그때 평당원이었기 때문에 명함도 들고 다니지 않았다.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도 “고 의원의 일방적 주장일 뿐 구체적인 팩트(사실)가 나온 게 없지 않느냐.”면서 “지금은 뭐라고 말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쪽에서는 전달할 사람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 의장이 돈 봉투 전달 사실을 부인한 데 대해 당 주변에선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실제로 당시 박 의장 아랫선에서 돈을 돌린 탓에 박 의장 자신은 구체적인 상황을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박 의장은 일단 9일 오전 도쿄에서 열리는 제20차 아시아·태평양 의회포럼(APPF) 총회 개회식에 참석한 뒤 우즈베키스탄과 아제르바이잔, 스리랑카로 이어지는 순방 일정을 예정대로 소화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10박 11일 일정으로 18일 귀국하게 된다. 앞서 박 의장은 지난 7일 지역구인 경남 양산의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윤영석(46) 총선 예비후보의 출판기념회에 참석, 윤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는 것으로 4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북핵 1차 실험때 北편든 中, 사석선 분노·비난 표출”

    “북핵 1차 실험때 北편든 中, 사석선 분노·비난 표출”

    리처드 그러넬(45). 조지 W 부시 행정부 유엔 외교의 산증인이다. 부시 행정부 임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8년 동안 주유엔 미국대표부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존 볼턴 등 4명의 대사를 보필했고 임기 후반 4년 동안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미국 대표를 겸임하면서 각종 표결에 참여했던 그가 한국 언론 중에서는 처음으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북핵 문제 해결이 새해 6자회담 당사국 간에 최대 현안으로 부상한 가운데 북한의 새 지도부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역대 최장수 주유엔 미국 대변인으로 기록된 그러넬 전 대변인은 지난 6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동안 풍문과 관측으로 떠돌던 것들을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로 확인시켰다. 특히 북한의 1차 핵실험에 대해 중국이 겉으로는 북한의 편을 들면서도 사석에서는 분노와 응징의 속마음을 나타냈다는 사실은 북·중 관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선출에 얽힌 비화와 평가, 한국 외교관에 대한 냉철한 평가 등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 -주말을 맞아 버지니아주 햄튼에 가서 쉬고 있었는데 존 볼턴 당시 유엔주재 미국대사한테서 “빨리 복귀하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북한 핵실험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 직전이었다. 황급히 짐을 싸서 뉴욕으로 올라오는 길에 뉴스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즉각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소집과 결의안 채택을 위한 표결을 요구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정보를 더 달라.”, “대응을 바로 할 필요는 없다.”면서 시간을 끌었다. 이에 우리는 “북한이 옳지 않은 행위를 한 만큼 강한 대응을 해야 한다. 표결에 임하라.”며 맞섰다. 결국 우리 뜻대로 결의안이 채택됐다. →버티던 중국을 어떻게 결의안 표결에 응하게 했나. -무슨 특효약이나 ‘마법의 언변’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표결을 진행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직설적으로 얘기했다. →중국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협박’이나 ‘애원’ 같은 방법도 동원했나. -협박도, 애원도 없었다. 집요하게 “표결하자.”고 했을 뿐이다. 협상은 최대한 하되 표결해야 한다는 원칙에서는 물러서지 않았다. 중국한테 “결의안에 반대한다면 표결에 참여해서 거부권을 행사하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 결국 그들은 찬성표를 던졌다. →명분 싸움에서 이긴 건가. -중국은 결의안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결국 찬성했다. 속으로는 결의안을 좋아하는 마음이 싫어하는 마음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중국이 겉으로만 북한을 비호하는 척했다는 얘기인가. -공식적인 입장과 사적인 행동이 달랐다. 공식적으로 중국은 “북한의 행동이 부적절하긴 하지만 지나치게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사석에서는 “북한의 행동에 화가 난다. 우리도 비난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게 결국은 그들이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이유다. →북한이 핵실험 전에 중국한테 알리지 않았다고 하나. -공식적으로는 중국이 “우리도 놀랐다.”고 하더라. →결과적으로 채택된 대북 제재 결의 1718호는 미국이 당초 추진한 원안보다 수위가 약화된 것인가. -중국은 결의안 수위를 낮추려고 했지만,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우리가 원하는 강력한 수준으로 채택됐다. 그렇게 결의안을 채택했어도 중국은 준수하지 않았다. 중국은 결의를 무시하고 북한이 중국은행을 이용하는 것을 허용했고 핵, 미사일 개발 관련 인사들의 중국 입국도 허용했다. 중국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2008년 9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임기 중 마지막 유엔 연설에서 북한을 맹비난한 배경은. -북핵 문제에서 진전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식량지원을 해줬고 6자회담에도 응했다. 그러나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입국을 금지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결의를 준수하지 않는 데 진절머리가 났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결의를 준수하지 않으면 대가를 치를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우리는 그때 파키스탄 AQ 칸 박사의 핵무기 기술 이전에 대해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부시 행정부 초기에는 북한에 강경하게 나가다 임기 말에는 대화에 나서는 등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에 대해 비판도 있었는데. -이랬다저랬다 한 것은 사실이다. 북한에 이런저런 정책을 다 구사해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거칠게도 나가봤고 협상도 해봤고 식량지원도 해봤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 나는 북한에 대해 강력한 입장을 고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정일 사망에 따라 새로 들어선 젊고 새로운 북한의 지도자한테 결의를 준수하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던져야 한다. 협상할 시간은 충분하다. →안보리 안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태도는. -이슈에 따라서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미국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도록 시간을 끌거나 처벌을 약화시키려 하는 경우가 더 많다. →8년 동안 유엔에서 일하면서 중국의 성장을 체감했나. -물론이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중국은 개발도상국으로서의 문제도 많이 안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선출 과정에도 관여했나. -깊숙이 관여했다. 미국은 반 총장을 비롯해 몇몇 후보들을 놓고 사상을 검증하며 누가 적임자인지를 오랫동안 조사했고, 영국, 프랑스 등과 많은 논의를 했다. →반 총장은 한국 정부가 추천해서 후보에 들었나. -한국 정부로부터 추천받은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해 반 총장은 미국의 첫 번째 선택이 아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훌륭한 후보가 있었지만 러시아가 반대했다. 반 총장은 미국의 두 번째 내지 세 번째 후보였다. 하지만 상임이사국 5개국이 각각 처음에 밀었던 후보들이 다른 나라에 의해 모두 거부되면서 결과적으로 반 총장이 된 것이다. →일본이 반 총장 카드에 반대했나. -일본은 처음엔 다른 사람을 후보로 추천했다. 하지만 중국이 반대했다. →그 뒤 일본이 반 총장 카드를 수용했나. -결과적으로는 받아들였다. →옆에서 지켜본 반 총장의 능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지금보다는 처음 사무총장이 됐을 때가 훨씬 좋았다. 처음에는 신선했다. 자신이 믿는 것을 과감하게 말했고 유엔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원고만 보고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원고에 의존하고 이것저것 재는 것 같다. →유엔에서 북한 외교관의 스타일은 어떤가. -북한 외교관은 매우 불행해 보이고 비밀스럽고 말을 잘 하지 않는다. →혹자는 북한 외교관이 한국 외교관보다 영어를 잘한다고 하는데. -많은 경우 북한 외교관이 한국 외교관보다 영어를 잘한다. 하지만 그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외교관들은 영어를 충분히 잘한다. 글 사진 로스앤젤레스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리처드 그러넬은… 부시 행정부 유엔외교 산증인 8년 내내 대표부 대변인 맡아… 안보리 대표 겸임 1967년 미국 미시간주에서 태어났다. 하버드대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정제된 화술과 탁월한 상황판단력으로 일찍부터 대변인의 자질을 보였다. 대학 졸업 후 정계에 들어가 공화당의 마크 샌퍼드 하원의원과 데이브 캠프 하원의원 등의 대변인을 거쳐 뉴욕주 조지 패타키 주지사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1992년 조지 H 부시 대통령 재선 캠프에서 활약했고, 2001년 조지 W 부시 정부가 들어서자 34세의 나이에 주유엔 미국대표부 대변인에 발탁됐다. 부시 행정부 임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4명의 대사를 거치며 무려 8년 동안 대변인 자리를 지켰다. 지금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 최강희호 새달 데뷔전

    최강희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한국 축구대표팀이 첫 시험대에 오른다. 대한축구협회는 6일 “최강희 감독의 요청에 따라 오는 2월 29일 쿠웨이트와의 브라질월드컵 3차예선 6차전 최종전(원정경기)을 앞두고 2월 25일 우즈베키스탄과 국내에서 평가전을 갖기로 합의했다.”면서 “장소와 시간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축구협회는 평가전을 위해 K리그 소속 선수들이 대표팀에 조기 소집될 수 있도록 프로축구연맹에 협조를 요청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75위인 우즈베키스탄은 월드컵 3차 예선 C조에서 4승1무(승점 13)로 일본(승점 10)과 함께 이미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떠도 고민 져도 고통…G2의 시련] 시험에 든 美 ‘슈퍼파워’

    국제 정치학계의 거물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84)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한국 등 8개 국가를 미국의 쇠퇴로 지정학적 위기가 심화된 지역으로 꼽았다. 8개 국가는 한국 이외에 타이완과 그루지야,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스라엘 및 중동 지역 등 미국이 오랫동안 정세에 개입해 온 곳이다. ‘세계의 보안관’을 자처해 온 미국이 재정난 탓에 국방예산을 크게 줄이면서 그 여파가 모든 대륙에 영향을 미치게 될 전망이다. 여기에 국제사회에서 중국과 인도의 영향력 증가와 러시아의 부활 등이 이들 지역의 지정학적 위협을 가중시킬 것으로 내다봤다. 브레진스키는 5일 미 외교전문지인 포린폴리시(FP)에 기고한 글에서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미국은 남한 안보의 보증인 역할을 했다.”면서 “눈부신 경제성장과 정치 민주화를 이룬 한국은 미국 개입 정책의 성공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북한은 최근 몇년간 천안함 폭침 등 도발을 계속해 지역 내 불안을 키웠다. 브레진스키는 “미국의 쇠퇴로 한국은 고통스러운 선택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날로 커지고 있는 중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받아들이고, 핵으로 무장한 북한을 통제하기 위해 중국에 더욱 의존하거나 혹은 역사적으로 껄끄러운 일본과의 연대를 더욱 강화하는 방안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다른 아시아 국가인 타이완도 미국의 영향력 감소로 중국의 직접적인 압력에 더욱 노출되게 됐다고 설명했다. 브레진스키는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 놓인 소국의 안보 환경도 우려했다. 특히, 영토 문제를 두고 2008년 러시아와 전쟁을 벌인 그루지야는 미국의 쇠락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1991년 이후 그루지야에 30억 달러(약 3조 4500억원)를 원조했으며 이 가운데 10억 달러는 2008년 러시아와의 전쟁 이후 지원됐다. 그는 “미국의 쇠퇴가 자신의 옛 영토를 되찾으려는 러시아의 요구를 자극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러시아는 미국의 견제가 사라진 상황에서 자국에 정치·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벨라루스를 재흡수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해온 미국의 국제적 입지가 줄면서 중동이 다시 한번 세계의 화약고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브레진스키는 평가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새해맞이 방송중 ‘마이크펀치’ 날린 기자

    새해맞이 방송중 ‘마이크펀치’ 날린 기자

    새해맞이 행사 생중계를 나온 한 방송 기자가 자신을 밀치는 인파들에 화를 참지 못하고 한 소년을 향해 들고 있던 마이크를 휘두른 장면이 잡혀 놀라움을 주고 있다. 이 장면을 당시 생방송으로 파키스탄 일대에 보도됐으며, 지난 2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서도 공개됐다. 공개된 영상을 보면 ‘시티 42’의 방송기자 아사드 사히라는 한 남성 리포터는 왼손에 스튜디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오른손으로 파란색 마이크를 쥐고 현장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여느 나라와 같이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기자 뒤에도 방송에 얼굴을 비취려는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 기자는 많은 인파가 자신을 밀치자 방송에 어려움을 느꼈는지 자리를 바꿔가며 상황을 보도했다. 그래도 인파는 그의 뒤로 따라왔다. 그런데 한 십대 소년이 펄쩍펄쩍 뛰면서 사히 기자의 방송을 방해했다. 이에 그 기자는 그만 이성을 잃고 자신이 쥐고 있던 마이크로 그 소년의 얼굴을 때린 뒤 방송을 이어 갔다. 그 소년은 잠시 화면에 모습이 비치지 않았지만 잠시 뒤 기자보다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소 얌전해진 모습으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다행히 다치진 않은 것으로 보였다. 이후 스튜디오에 있던 여성 앵커 역시 웃음을 참지 못하고 살짝 미소를 띠는 모습이 잡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편 새해를 맞아 방송 기자가 시민에게 마이크를 휘두른 소식은 메트로, 텔레그래프 등의 주요 외신을 통해 소개됐다. ▶ 새해맞이 방송중 마이크펀치 날린 기자 영상 보러가기  사진=시티 42(유튜브 캡처)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코리안 특급 새 필살기는?

    코리안 특급 새 필살기는?

    올시즌 한화 이글스의 주황색 유니폼을 입는 박찬호(39)가 컷패스트볼을 필살기로 쓰겠다는 뜻을 비쳤다. 박찬호는 3일 공식 홈페이지 chanhopark61에 가상 인터뷰 형식으로 국내 복귀를 앞둔 심정을 소상히 털어놓은 뒤 “다양한 구질을 구사할 수 있지만 최근에는 컷패스트볼에 많은 매력을 느꼈고 계속 연습을 해나가면서 자신감이 붙었다.”고 밝혔다. 컷패스트볼을 굉장히 매력적인 구종이라고 표현한 박찬호는 미국프로야구 필라델피아 시절 제이미 모이어와 라이언 매드슨에게 던지는 법을 배웠고, 뉴욕 양키스에 있을 때 마리아노 리베라를 만나면서 더 다양한 방법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찬호는 “일본에서 시간을 보내며 성적을 떠나 여러 가지로 많이 배우게 됐다.”며 “혹자는 실패했다고 혹평할 수도 있지만 개인의 야구 삶에는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농구장 공개 프로포즈男, 참담한 실패에 ‘굴욕’

    농구장 공개 프로포즈男, 참담한 실패에 ‘굴욕’

    결혼 프로포즈의 순간은 남자나 여자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지만 실패했을 경우에는 최악의 순간으로 평생 남게된다. 최근 농구장에서 공개 프로포즈에 나섰다가 참담한(?) 실패를 맛본 남성의 사연이 화제에 올랐다.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열린 미국 대학농구 UCLA와 리치몬드의 시합 중 전광판에 몇몇 관중들의 모습이 비쳤다. 전광판에 관중석의 모습이 비추자 몇몇 커플은 진한 키스를 나눴고 잠시 후 무릎을 꿇은 한 남성이 등장했다. 현장을 중계하던 여성 진행자가 “무슨일이 일어나는 건가요? 키스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고 이 남성은 여자친구에게 반지를 내밀며 공개적으로 청혼했다. 이 장면은 전광판을 통해 농구장을 찾은 모든 관객들이 지켜봤고 관중들은 “예스!” 라고 말하며 분위기를 달궜다. 그러나 남자친구의 극적인 프로포즈는 ‘비극’으로 끝났다. 당황한 듯 여성이 고개를 흔들고 자리를 떠난 것. 현장을 중계하던 여성 진행자는 “카메라가 있으면 부끄러워하기 마련”이라며 애써 남자를 위로했으나 남자는 낙담한 듯 고개를 떨군 후 밖으로 나갔다. 이 장면은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로 퍼져 남자에 대한 위로와 재미있다는 댓글이 넘쳐났다. 한편 UCLA대학 홍보 담당자는 “우리 대학은 이번 실패한 프로포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재미있는(?) 코멘트를 남겼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일본통신] ‘야구계의 이단아’ 신조 츠요시

    [일본통신] ‘야구계의 이단아’ 신조 츠요시

    2009년 일본시리즈 2차전. 니혼햄 홈인 삿포로돔에 전 일본 야구팬들의 시선이 집중돼 있었다. 당시 일본시리즈에서 격돌한 팀은 센트럴리그 우승팀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퍼시픽리그 우승팀인 니혼햄 파이터스와의 대결이었다. 1차전을 요미우리에게 내준 니혼햄은 당시 부상 등의 이유로 출전이 불투명했던 에이스 다르빗슈 유(25)를 2차전 선발로 내세우는 배수진을 쳤다. 이에 요미우리는 좌완 우츠미 테츠야를 선발로 내정하며 니혼햄의 기를 꺾을 기세였다. 하지만 이날 2차전은 다르빗슈의 출전 유무와는 별개로 팬들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들이 다분했다. 해설을 맡은 인물들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날 경기에서 후지TV는 ‘카리스마의 대명사’인 기요하라 카즈히로(전 세이부)와 ‘야구계의 노홍철’ 신조 츠요시(전 한신)에게 경기 해설을 맡겼다. 당시 요미우리 소속의 이승엽은 스타팅 멤버로 8번 타순에 배치됐다. 3회초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서자 신조는 “이승엽이 8번타순에 들어선 것은 놀랍다. 그만큼 요미우리 타선의 강함을 엿볼수 있다.” 며 “이승엽의 프리배팅은 돈을 내고서라도 보고 싶다. 그의 프리배팅은 엄청나다.”며 이승엽을 극찬했다. 이 타석에서 이승엽이 다르빗슈를 상대로 우전안타를 때려내자 또다시 신조는 “이승엽의 프리배팅을 보노라면 배리 본즈인지 이승엽인지...” 라는 멘트와 함께 중계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신조 츠요시는 야구계의 이단아다. 현역 시절 그가 보여준 엽기적인 카리스마(?)는 아직도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의 가슴속엔 웃음꽃을 먼저 피우게 한다. 흔히 일본야구의 ‘3대 돌아이’를 가리켜 신조와 더불어 모리모토 히쵸리(히쵸리는 ‘희철’ 즉 모리모토는 한국계 선수다) 이가와 케이(뉴욕 양키스)를 일컫는데 모리모토가 독특하고도 엽기스런 퍼포먼스로 유명하다면 신조의 야구는 그 자체가 개그의 미학을 담고 있다. 외야수인 신조는 평범한 플라이도 점프캐치로 잡으며 일명 ‘신조캐치’로 명명된 플레이를 보여줬던 선수다. 1989년 전체 드래프트 5위로 한신 타이거즈에 입단한 신조는 훗날 메이저리그 진출과 마지막 니혼햄에서의 선수 생활을 끝으로 은퇴했다. 현역시절 타격은 내세울게 없는 평범한(일본 통산 타율 .254)이었지만 수비력만큼은 발군의 기량을 선보이며 야구팬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야구 명언중 ‘타격이 좋은 선수는 팬들이 좋아하지만 수비가 뛰어난 선수는 감독이 좋아 한다.’라는 말이 있지만 신조의 수비만큼은 오히려 팬들이 더 열광할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타격에서 워낙 내세울게 없다는 점에서 신조의 가치는 일본야구계에서도 별다른 메리트가 없다. 하지만 현역 시절 보여준 그의 플레이 하나하나만큼은 아직도 그를 그리워 해야 할 이유가 충분할만큼 매력적인 선수임엔 틀림없다. 신조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극도로 혐오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시구때 초등학생이 던진 초구도 대형타구로 만들어낸 적이 있다. 그의 엽기 행각은 이뿐만이 아니라 야구 외적인 부분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2004년에 신조는 일본의 모 퀴즈프로그램에 출현해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다. 당시 우승 상금은 한화로 약 1억원. 웃긴 사실은 연필을 굴려서 퀴즈 정답을 맞췄는데 당시 우승상금의 사용처는 홈구장에 있는 자신의 광고판을 만드는데 사용했다. 외야석 100석을 자신의 돈으로 사들렸는데 그 자리를 야구 꿈나무들을 위해 무료로 초대했고 그 좌석은 일명 ‘신조 시트’가 됐다. 니혼햄 시절 신조는 어느날 갑자기 파워레인저 복면을 쓰고 경기장에 등장하는가 하면(팀원들에게 까지 복면을 착용하게 하는) 한신 시절이던 1992년 시즌 말미에 히어로 인터뷰에서 ‘우승입니다’를 외쳤지만 한신은 우승에 실패했고,1999년 요미우리와의 경기(6월 12일)에선 상대의 고의사구 작전을 좌전 적시타로 연결하기도 했다. 이러한 신조의 엽기행각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도 그치지 않았다. 신조는 한신이 제시한 12억엔이란 거액의 계약을 뿌리친 후 일본돈으로 약 2,200만엔을 받고 뉴욕 메츠에 입단한다. 이후 샌프란스시코를 거쳐 메이저리그 마지막 해였던 2003년 다시 뉴욕 메츠로 돌아온 신조는 스프링캠프에서 빅리그 진출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던 마이너리그 선수를 보고 “나 대신 저 사람에게 개막전의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바람에 구단에 찍혔고 공교롭게도 그해를 마지막으로 다시 일본으로 유턴하게 된다. 일본 복귀 후 모 언론과의 인터뷰중 영어에 관한 질문을 받자 “나는 미국시절 영어를 하나도 못배웠다. 하지만 그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고 말하는 등 끊임없는 개그 본능과 보편적 정서를 파괴하는 말과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신조는 자신을 야구선수로 불리는 걸 싫어했지만 일본의 야구팬들은 이러한 신조를 사랑했다. 어느 순간에 괴짜와 같은 모습을 보여줄지 예측할수 없었고 이러한 신조를 보기 위해 야구장을 찾는 사람들은 승패와 상관없이 웃는 얼굴로 야구장을 떠날수 있었을 정도로 야구팬들에게 신조가 끼친 영향력은 이루 다 말할수가 없을 정도였다. 2006년 신조는 당시 소속팀이었던 니혼햄에서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당시 니혼햄은 에이스 다르빗슈 유를 앞세워 44년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이란 감격을 맛봤지만 한편으론 신조의 마지막이란 사실에 팬들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을 정도였다. 마지막 타석에 등장한 신조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3구 삼진을 당했는데 주니치 포수 타니시게는 “울지마라. 모두 직구만 던지게 할거야.”라는 말에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훗날 전해지고 있다. 신조는 야구의 본질성, 즉 온전히 야구에만 미쳐있던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팬들을 사랑했고, 자신의 기량을 스스로 인정했으며 팬들이 원하는게 무엇인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실천한 선수다. 아직도 신조 츠요시 하면 ‘괴짜’ 이미지가 뿌리깊이 박혀 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스포엔터테인먼트를 최초로 보여준 선수가 아니였나 싶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스마트폰 배경 화면은 ‘작품사진 갤러리’로

    스마트폰 배경 화면은 ‘작품사진 갤러리’로

      “어? 스마트폰 배경화면이 자꾸 바뀌네.”  작품 사진들을 활용해 스마트폰 배경화면을 꾸며주는 애플리케이션(앱)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앱을 내려받는 순간 정적인 배경화면이 동적으로 바뀌며, 약속 장소에서 긴 시간을 기다릴 때의 무료함을 덜어 준다. 엄선된 사진 작품이어서 관련 전시회를 보지 못한 아쉬움도 떨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서비스의 메인 화면은 ▲전체 사진 ▲즐겨찾기 ▲ 갤러리 설정 ▲ 이벤트 ▲ 앱 정보 등으로 구성돼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케팅도 가능하다. 페이스북, 트위터, 홈페이지로 연결된다. 이 서비스는 비즈니스 특허(제10-2010-0083335호)도 받았다.    이 마켓에 등록된 주요 배경화면은 기아대책본부 라이브, 영화 일루셔니스트 라이브, 청산도축제 라이브, 키스포토 라이브, 살 빠지는 그림 다이어트 라이브 등이다. 예를 들어 기아대책본부 라이브 배경화면을 누르면 후원 방식 등이, 청산도축제 배경화면을 누르면 청산도축제에 관한 개요 등이 소개된다. 사용자가 설정한 시간에 갤러리에 등록된 사진이 자동 변경되며, 변경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키스포토 라이브 월’은 안드로이드 폰에 적용되며 가장 인기 있는 앱이다. 이 앱은 국내 사진 동호회인 ‘키스포토’에서 만들었다. 가입 회원에게 개인 갤러리가 주어지고 회원은 사진 작품을 온라인에 전시할 수 있다. 이들 중 베스트 컷을 모아 매일 ‘베스트 포토’를 선정하고, 이를 모아 앱에 업로드 한다. 여기에서 ‘베스트 포토’가 되면 20만명의 스마트폰 배경 화면에 자신의 작품 사진을 넣을 수 있다.  키스포토 앱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안드로이드 마켓과 T스토어에서 11만여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특히 안드로이드 마켓에서는 9만여건을 다운로드 받았다. 이 앱은 ‘키스포토’ 혹은 ‘kissphoto’로 검색해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이 앱을 기획한 사진작가 김지현(SYN 대표)씨는 “매주 질좋은 사진이 업 데이트 되고, 사용 방법도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사용자들의 평점도 후했다. 두 곳의 마켓에 업 로드된 이후 별 5개 만점에 4개를 유지 중이다. 사용자들의 후기도 “예술미가 가미돼 만족스럽다.”는 평가가 많다. 사진동호회에서는 이 앱을 이용하는 이들을 상대로 매일 연극 티켓을 주는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 김 대표는 ‘HD(고화질) 독도 라이브 배경 화면’도 준비 중이다. 독도 앱은 내년 봄에 글로벌 버전으로 전 세계에 발표될 예정이다. 독도의 사진들을 라이브 배경 화면으로 만들 수 있고 독도 관련 내용도 담는다. 번역에는 학교 선생님들이 무료로 동참했다. 김 대표는 “이들 라이브 배경화면은 모바일 마케팅 기업이나 관광업소 등에서 활용하면 아주 유용하다.”고 추천했다. 문의 (02)2168-3373.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프리미어리그] Ji, 키스 받아줘

    [프리미어리그] Ji, 키스 받아줘

    지동원(21·선덜랜드)이 새해를 열자마자 슈퍼 히어로가 됐다. 1일(현지시간) 영국 선덜랜드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열린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와의 2011~12 프리미어 리그 19라운드 홈 경기 후반 32분 투입된 지동원은 경기 종료와 거의 동시에 마법처럼 시즌 2호골을 터뜨리며 결승골의 주인공이 됐다. 선덜랜드 팬들도, 축구 종가 영국도 모두 깜짝 놀랐다. 지동원이 유니폼 자락을 입에 물고 팬들에게 달려가자 흥분한 남성 팬이 지동원에게 키스 세례를 퍼붓는 등 경기장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 영국 매체들은 지동원의 골을 메인 화면으로 도배하다시피 했다. 약속이나 한 듯 깜짝 놀랄 때 쓰는 감탄사 ‘Gee, Whizz’를 ‘Ji Whizz’로 바꿔 제목으로 달았다. 영국의 유력 신문 더 타임스는 이날 스포츠 섹션 1면 전면과 본지 1면 하단에 지동원이 유니폼을 입에 물고 양팔을 편 채 달리는 모습의 골 세리머니 사진을 게재했다. 이 신문은 분석기사에서 “선덜랜드 지동원의 막판 한방이 선두 맨시티를 침몰시켰다.”고 높이 평가했다. 스포츠 전문 채널 스카이스포츠는 “지동원이 경기를 끝내는 최후의 킥으로 프리미어리그 선두에 비극적인 새해를 안겼다.”고 평가했다. 일간 데일리 메일 온라인판은 “지동원이 날았다.”고 칭찬했고, 국제축구연맹(FIFA)은 “지동원이 EPL 선두인 맨시티를 마지막에 질식시켰다.”고 전했다. 전날 패배로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은 생일을 망쳤지만 이날 맨시티가 뜻밖에 패배함으로써 선두 맨시티와 전적(14승3무2패)과 승점(45)까지 같아졌다. 사실 데뷔 시즌 지동원의 입지는 매우 불안했다. 맨시티전을 빼고 13경기에서 선발 1회, 교체 12회뿐이었다. 더구나 그를 영입한 스티브 브루스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다. 젊은 지동원은 기회가 찾아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연말연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그동안 뛰지 못했던 선수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신임 마틴 오닐 감독의 부름을 받았는데 기대에 부응한 것. 특히 지동원은 몸값의 10배 이상 되는 활약을 펼쳤다. 초호화 군단 맨시티에는 지동원 몸값의 10배가 넘는 선수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세르히오 아궤로는 무려 3800만 파운드(약 665억원)에 이적했으며, 에딘 제코는 2700만 파운드(약 472억원), 마리오 발로텔리 2500만 파운드(약 450억원), 사미르 나스리는 2400만 파운드(약 428억원)를 받아 이적했다. 반면 지동원의 몸값은 고작 38억원. 영국 무대에서 잊혀질 뻔했던 한국의 신예가 터뜨린 새해 첫 축포는 그래서 더욱 값지다. 로베르토 만치니 맨시티 감독은 지동원의 득점 상황이 “오프 사이드였다.”며 “믿기지 않는 패배”라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기/이강진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기/이강진 1. ‘저항’의 시대와 그 기원 누군가 제게 2000년대 문학에게 주어질 단 하나의 이름을 꼽으라 한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저항의 시대’라고 명명할 것입니다. 물론 이 저항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저항’의 기표, 이를테면 세계에 대한 저항이나 주체를 둘러싼 폭력들에 대한 투쟁 등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최근의 문학이 보여주는 강렬한 ‘저항’들은, 오히려 역사적 투쟁이 끝났다는 저 냉엄한 현실과 맞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제 말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실제로 지난 몇 해간 문학은 끊임없이 그가 떠맡을 수 있는 정치적 가능성들에 대해 고민해왔고, 또 우리 앞에 그 실천적 노력을 내놓았으니 말입니다. 실은 저의 고민도 이곳에서 출발합니다. 최근 갑작스럽게 대두된 ‘시와 정치’에 대한 격렬한 저 논쟁의 배경에는, 과연 일반적인 평가에서처럼 단지 촛불시위나 용산참사와 같은 문학 외적인 요인만이 작용했던 것일까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진단은 문학이 예술적인 층위에 안주하면서도 대중적 관심을 추수하는, 일종의 권위적 시장주의를 드러냈다는 음울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관심사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반응이라고 보기에, ‘시와 정치’논쟁은 지나치게 끈질기고 또 적극적이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단순한 사회적 정세 이상의 무언가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여기에, ‘저항의 시대’가 숨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2000년대 들어서 낯선 감각과 새로운 어법으로 무장한 젊은 시인들이 ‘집단적’으로 출현했다고 말한다. 이들의 출현과 반응, 이 집단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소통불능의 자폐적이고 이기적인 문학이라는 신랄한 비판이나 조금만 더 자아 밖으로 나오라는 애정 어린 충고에서부터, 여러분이야말로 ‘도래’할 문학적 민중이 될 거라는 뜨거운 격려에 이르기까지, 상이한 반응들의 폭발에 정작 시인들은 당황했다. 새로운 시들을 둘러싼 이 논의들은 여러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나를 난감하게 만드는 문제, 즉 문학과 윤리 또는 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영원 회귀하는 질문들 그리고 그 대답들로 느껴진다.(진은영, ‘감각적인 것의 분배: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 ‘창작과 비평’ 2008년 겨울호. 69쪽) 문학이 고민하는 정치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시와 정치’논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진은영의 ‘감각적인 것의 분배: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에서부터 이미 드러납니다. 하지만 시가 미학적인 완성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직접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귀결은, ‘문학과 윤리 또는 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영원 회귀하는 질문들’에 대한 당연한 정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진부한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라는 그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어째서 진은영은 특정한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낯선 시들의 출현으로부터 시의 정치성에 대한 고민을 읽어냈던 것일까요? 80년대와 결별한 후 정치에 대한 반동적인 면모를 보여 왔던 문학이, 촛불시위와 용산참사를 목격한 후 뒤늦게 정치성에 대한 필요를 느꼈다는 해석은 지나친 음모론같이 보입니다. 반면에 이 글의 출발점이었던 ‘젊은 시인’들을 주목하는 순간,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진은영이 가진 문제의식이란 현실과 문학 사이의 괴리에 대한 즉흥적인 고민이 아니라, 포스트모던 담론 이후 등장한 새로운 시에 대한 오래된 고민이었던 것입니다. 랑시에르의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문학을 비롯한 예술 전반의 문제는 ‘감각적인 것을 분배하는’ 문제이며 그런 면에서 예술은 필연적으로 ‘정치’와 관계한다―책제목 ‘감각적인 것의 분배: 감성론과 정치’라는 말 자체에 이미 그의 문제의식과 결론이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진은영, 앞의 글, 71쪽) 진은영이 소개한 랑시에르의 감성론은, 미적 자율성의 이름으로 정치를 함께 담보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이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시 문단에서 이 이론을 열렬하게 환영했던 데에는, 혹시 ‘시와 정치’에 대한 고민과는 별개의 이유가 있지는 않았을까요? 저는 그것이 우리 문학이 직면했던 거대한 과제,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을 넘어설 방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어디까지나 ‘근대문학’이며, 근대의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일종의 상상적 권위에 불과하다는 이 충격적인 선언 앞에 당시 우리 문단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때마침 유령처럼 배회하던 ‘문학의 위기’에 대한 우울과 겹치면서, 가라타니의 종언론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폭탄으로 다가왔던 까닭이죠. 한참 후에야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른 비평가들은, 이후 너나 할 것 없이 앞을 다투어 ‘문학의 종언-이후’에 대한 갖가지의 견해들을 내놓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나는 더 이상 문학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라는 가라타니의 태도가 지나치게 자극적인 종언의 기표일 뿐이라거나, 그가 논의하는 내용이 일본문학만의 특수한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는 식의 비생산적인 사족에 그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애초에 가라타니가 종언을 이야기한 맥락이 문학의 소멸을 말하는 비관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가라타니가 문학에 요구한 것은 종언을 받아들이고 그 이후에 전개될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는 태도였습니다. 이것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표제를 내걸었음에도 실제로 그가 집중적으로 조명한 것이 세계자본주의의 전개양상이었던 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요. 따라서 문학에 대한 기대를 그만두겠다는 그의 말은, 철저하게 ‘근대문학’에 부여된 상상적 층위의 정치적 역할과 그 권위에 기대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가라타니에게 문제의 핵심은 ‘정치’에 있었지만, 당시 우리 문단은 그것을 성급하게 ‘문학’에 국한시키며 오해를 낳은 셈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렇게 급조된 대응담론이 아니라, 고진이 ‘종언’을 선언한 이후에 등장했던 우리의 문학 그 자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2. ‘정치’의 자유, ‘정치’로부터의 자유 ‘근대문학의 종언’이 등장했던 해는, 우리 문단에서 ‘미래파’라는 새로운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처음 그 갑작스러운 등장에 대해 보내던 우려와 달리, ‘미래파’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을 환영하는 이들과 비판하는 이들 모두에게 중심담론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새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인들이 과거와 같이 (담론화하기 쉬운)특정 논의의 틀 안에 규정되는 일이 드물었던 까닭도 있었겠지만, 미래파 논의가 이토록 빠르게 문단의 중심담론으로 부상한 데에는 분명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죠. 이후 전개된 ‘미래파 논쟁’의 주된 핵심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과연 ‘미래파’란 존재하는가, 둘째는 이들이 진정으로 우리 시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숨어있습니다. 논쟁에 참여한 거의 모든 이들이, 별다른 합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움’을 보여준다는 데에 동의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미래파 논쟁’이 얼마 지나지 않아 기세가 한풀 꺾였던 것에 비해,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시적 ‘새로움’에 대한 믿음은 ‘미래파’라는 분류가 유명무실해진 지금까지도 굳건히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단순히 최근 젊은 시인들의 시적 작업을 분석하여 그것이 ‘미래파’의 증거가 되느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우리 문단에 이러한 논의가 등장했고 또 불붙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일인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 시의 미래는 이들이 적어나갈 것이다. 이들에게는 80년대 시인들이 걸머져야 했던 역사와 시대에 대한 채무의식이 없고, 90년대 시인들이 내세운 그럴듯한 서정, 고만고만한 서정이 없다. 그 대신에 다른 게 있다. 그리고 이들의 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재미있다.(권혁웅, ‘미래파: 2005년, 젊은 시인들’, ‘미래파’, 문학과지성사, 2005. 149~150쪽) 가라타니는 문학의 종언을 가져온 중요한 전제로서, 이제 더 이상 문학이 현실의 ‘정치’나 ‘실천’을 대리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반면에 권혁웅은 ‘채무의식’이 없어짐으로써 우리 시가 시적인 새로움을 폭발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을 마련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두 사람의 차이로부터 시의 ‘새로움’이 가진 기원을 엿보게 됩니다. 이제 시는 80년대적인 ‘역사와 시대에 대한 채무의식’, 즉 ‘실천’이라는 기표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당당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의 현실이 80년대의 시가 직면했던 폭력적인 억압을 그대로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현실의 억압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시는 더 이상 불가능한 실천을 상상적으로 담보하던 과거의 역할을 해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는 ‘우리에게/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진은영, ‘70년대産’) 사회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여전히 존재하는 폭력들과 맞설 것을 요구받습니다. 가라타니가 ‘정치의 자유’로 인해 발생한 이 모순적 상황을 종언의 원인으로 인식했다면, 우리는 이 모순된 상황을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한 후 겪는 일시적인 홍역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바로 이 분기점이야말로 어째서 진은영이 랑시에르의 감성론을 급히 ‘수혈’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설명해준다고 봅니다. ‘시와 정치’에 대한 논의는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한 ‘새로운’ 시가, 어떻게 여전히 남아있는 저 정치에 대한 요구를 떠맡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직접적으로 정치적이면서도 첨예하게 미학적이’고 싶다는 진은영의 고백에는, 전자에 의한 ‘실천’의 획득과 후자에 의한 ‘새로움’의 향유를 동시에 소유하고픈 욕망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바로 이곳에서, 제가 진은영이 랑시에르를 소개한 배경에 ‘근대문학의 종언’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숨어있다고 말한 이유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시적인 ‘새로움’에 대한 요란한 환영, 심지어는 강박적인 것으로마저 여겨지는 저 ‘새로움’에 대한 추수는 단순한 예술사조의 변천이나 시대적 흐름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의지로 얻어낸 것이 아니었던 ‘정치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강한 채무감에서 기인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다수의 논의들은 ‘채무의식’의 극복이 ‘새로움’의 원동력이라고 말해왔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던 셈이지요. 아마도 신형철은 이러한 진실에 일정 부분 닿아 있는 듯 보입니다. 그가 황지우의 시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야기하는 미학과 정치의 논의는, 앞선 것들과는 조금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렇게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한몸이었던 사례가 우리 시사(詩史)에 있는가? 물론 있었다. 예컨대 황지우의 시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그의 시가 대표적으로 보여준, ‘회의하면서 긴장하는’ 그 언어의 배후에는 권력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의 억압이라는 외적 상황이 있었다. 할 수 있는 말과 해야만 하는 말의 분열 속에서, 언어의 회의 혹은 언어의 긴장은 (시인 자신의 의지나 역량에 힘입은 바 못지않게) 상당부분 ‘역사적으로’ 성취되었다. 덕분에 그의 시는 첨예하게 미학적이면서 동시에 직접적으로 정치적일 수 있었다.(신형철, ‘가능한 불가능’, ‘창작과 비평’ 2010년 봄호, 375쪽) 과연 최근 우리 시는 80년대의 채무의식을 ‘극복’하였을까요? 신형철은 여기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는 과거의 시가 정치를 떠맡을 수 있었던 원인이 현실정치의 불가능함에 있었다는 가라타니의 견해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날 ‘시’와 ‘정치’가 확고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시인이 가진 분노의 감정이 미학의 이름을 통해 고스란히 정치적 정념의 형태로 분출될 수 있었던 역사적 맥락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형철 또한 이 이상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실패하고 맙니다. 새로운 시와 비평에 대한 요구가 ‘아무도, 적어도 시에서는, 그 어떤 발화도 억압하지 않는’ 오늘날의 상황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그가 제시하는 방향이란 ‘첨예하게 미학적인 시들에서 우선 그 미학적인 것의 핵심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그 이후에 거기에서 정치학적인 것까지를 읽어내는 일’에 그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적’인 것과 ‘정치학적’인 것을 구분하는 신형철의 화법에서, ‘실천’의 강박과 ‘새로움’의 강박을 서로 다른 것으로 떼어놓으려는 시도를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들이 지니는 동일성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또 인정하지 않는 이상, ‘시와 정치’는 영원한 제자리걸음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정치를 ‘고유한 주체의 합리성에서 유래하는 특정한 행위 양식’으로, 시를 ‘주체가 스스로의 자유 안에서 건네는 내밀한 고백’이라고 정의할 때, 시와 정치가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해 보입니다.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시인을 거부했던 이유는, 시가 가지는 본연의 속성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이었던 데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훌륭하게 완성된 공동체에게 시는 위협적인 존재가 됩니다. 왜냐하면 시가 가지는 힘이란 공동체의, 세계의 질서가 보지 않으려 하는 것들을 목격함으로써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정치의 과정 또한 이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논의하던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자면, ‘정치는 권력 행사가 아니’며, ‘정치는 그 자체로, 즉 고유한 주체 때문에 현실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세계의 상징체계 속에 ‘없음’으로 규정된 ‘자리-없음’(placelessness)들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실재의 공간이라고 말했던 라캉의 언명과 동일한 맥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치란 처음부터 통치 과정(치안)의 바깥,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만이 가능한 행위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바깥의 존재양식이야말로 시와 정치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임을 입증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놓쳐버린 권위’라고 생각했던 과거 문학의 정치성을 되돌아보면, 그것들이 방금 이야기한 ‘정치’와는 사뭇 다른 층위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정치적인 시’라고 불러온 것들은, ‘정치’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인 것’에 더욱 가깝게 다가서 있었던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실체가 있는 폭력들에 맞서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였고, 다른 곳에서는 도래할 혁명을 향해 나아갈 것을 소리 높여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신형철도 이미 지적했듯이, 과거 우리 시들이 ‘정치적인 것’에 대한 행동을 통해 스스로의 정치적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역사적 맥락에 기댄 결과였습니다. 때문에 이제부터 시가 추구해야 할 정치성이란 랑시에르의 진단과 같이 본래적인 의미의 ‘정치’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최근의 논의는 단순히 이전과 다른 ‘정치’의 정의에만 집중한 나머지, 스스로 경계할 것을 주장했던 전위적 언어에 대한 맹신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비평가들은 ‘감성의 분할’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것을 벌충하려 하였으나,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혹독한 비판을 받았던 ‘텅 빈 해체’의 문제를 그대로 답습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시 비평의 영역에서 그동안 관성적으로 제기되어온 ‘소통’에 대한 요구가 지닌 본질적 문제점은, 개인과 사물 세계를 ‘자명한 것’들로 번역하려는 ‘투명성’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오히려 시적 공간에서 보존해야 할 것은 개인과 사물의 불투명성이며, 빛의 언저리에 드리워진 기이한 그림자와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아닐까? (…) 그러므로 낯선 현전의 형식들에 직면해 여전히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비평이 우선 대결해야 하는 것은, 텍스트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의사소통 공동체의 지평에 나타난 저 낯선 얼룩을 깨끗이 지우고자 하는 순백을 향한 비평 자신의 욕망이 아닐까? (함돈균, ‘균열, 불면, 기화, 그리고 여백은 어떻게 정치적인 것이 되는가’, ‘얼굴 없는 노래’, 문학과지성사, 2009, 133쪽) 함돈균이 내놓은 ‘불투명성’의 문제의식은 이러한 오류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명한 것’과 ‘투명성’을 추구하는 질서란 개인과 사물을 명확하게 재단함으로써 그것들을 교정하고 규정지으려 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랑시에르가 ‘세계의 감성분할행위’라고 불렀던 것과 동일한 행위를 뜻하지요. 언뜻 생각하기에 이들에 대한 저항이란 혁명의 의지를 내포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세계의 규정들을 무화하는 시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저항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려한 수사와 문장들을 걷어내고 함돈균의 주장을 다시 읽어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그가 비평이 나아가야 할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비평 자신의 욕망’과의 대결이란, ‘낯선 얼룩’을 보존하고 ‘불투명성’을 획득하는 작업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함돈균이 이것을 결국 우리들이 직면한 ‘낯선 현전의 형식’에 대한 옹호를 위해 주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의 논리는 세계에 대한 전위의 저항을 제시한 이후에 실제로 태어나고 있는 ‘낯선 형식’들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새롭게 출현한 시들을 ‘낯선 현전’과 ‘낯선 형식’으로 명명한 뒤, 이들에게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는 태도의 반동성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비단 함돈균만이 보여주고 있는 문제가 아니며, 전반적인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공통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문제점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그의 논리적 모순을 합리화해줄 수는 없을뿐더러, 오히려 우리 문학담론 전체의 병폐를 폭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한마디로 해체나 전위를 통한 저항의 대부분은, 다분히 사후적인 평가를 위해 ‘만들어진’ 정치성이었던 셈입니다. 백낙청은 자신의 글에서, 시의 정치성에 대한 논의들이 가지는 이러한 환원론적 오류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통상적인 의미의 윤리 내지 도덕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문학의 진정한 윤리임을 강조하는 데 머물 경우 그것은 구체적인 정치현실과 무관한 또하나의 정언명령을 발하는 것밖에 안 된다.’(백낙청, ‘우리시대 한국문학의 활력과 빈곤’, ‘창작과비평’ 2010년 겨울호, 20쪽)고 강조합니다. 그의 이러한 지적은 매우 정확한 것이어서, 대부분의 논의들이 가지는 정치성이 단지 제스처에 불과한 껍데기라는 것과 함께, 이제는 그러한 논의방식들이 하나의 새로운 정형이 되어가고 있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낙청은 그 너머로 논의를 이어가지 못한 채, ‘동아시아 전통에서 말하던 도덕, 즉 도(道)와 ‘도의 힘’으로서의 덕(德)에 대한 사유가 실종되고 만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며 방향을 선회합니다. 그의 글에서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가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도(道)는 노자의 ‘道’ 개념으로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규정적 명명을 거절하는 상태로서의 이 개념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적 사고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부분이지요. 그리고 덕(德)을 일종의 공동체적 당위성, ‘세계-내-존재’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점으로 바라본다고 할 때, 우리는 백낙청의 이 진술이 포스트모더니즘 담론들의 한계를 재차 강조하고 있음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즉 ‘동아시아 전통에서 말하던 도덕’을 이야기함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이 도달할 수밖에 없는 허무주의가 앞뒤 없이 계속된 막무가내식 해체의 결과임을 꼬집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백낙청의 지적은 매우 합당함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지적을 어디까지나 ‘모더니즘 논의’의 문제로 국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낙청은 (모순을 드러낸)이들과 달리 ‘다른 흐름’들이 있음을 주장하며, 그것의 구체적 성과로 자신이 전개해 온 리얼리즘 논의를 들고 있습니다. 한국적인 리얼리즘 논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면, 랑시에르의 감성론보다 훨씬 우리의 현실에 밀착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논쟁적인 문제제기를 피하기 위해 자세한 검토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역시, 마구 가거나 너무 가서는 잘 갈 수가 없다’는 경구적 발언을 인용하는 백낙청의 태도로부터, 우리는 자신이 발전시켜온 리얼리즘론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그의 함의를 어렵지 않게 발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문학이 직면한 문제가 이전부터 계속되어온 리얼리즘 대 모더니즘의 구도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전에 없던 시적 변화들은 문학이 직면한 고민을 그대로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더니즘 논의’로 한정짓는 태도는 여전히 ‘시’와 ‘정치’를 별개의 것으로 보려는 자세를 드러내고 있는 셈입니다. 강동호는 이러한 오류를 극복하고 정치성의 논의를 상당 부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재현행위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한계를 오롯이 인정하고, 그 실패로부터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한 우회로를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여기까지인지도 모른다. 시의 잠재적 정치성을 긍정적 어법인 잠재성의 정치로 바꾸는 일은 오롯이 독자에게 남겨진 몫일 것이다. 아울러 저 시적 언어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찾아주는 것, 즉 시의 유물론적 조건을 탐사하고 그것을 현실의 언어로 변환시키는 ‘목숨을 건 비약’(salto mortale)을 감행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비평가의 몫이다. 이러한 작업은 오늘날의 미학과 사회적 현실 간의 상관도를 상세히 규명하는 사회학적 분석에 해당하며, 이를 근거로 이 세계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던지는 복화술사의 정치에 속할 것이다. (강동호, ‘존재론적 비명으로서의 시적인 것’, ‘창작과비평’ 2009년 가을호, 312쪽) 시의 언어는 삶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는 없지만, 그것이 처한 시공간을 써냄으로써 제 기능을 수행한다는 그의 주장이 기존의 ‘텅 빈 해체’와 결별할 수 있는 것은, ‘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여기까지인지도 모른다’는 진실에 과감하게 다가서는 태도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궁극적으로 강동호가 ‘비평의 의무’라고 여기고 있는 ‘시의 유물론적 조건’을 탐색하는 행위란, 어디까지나 시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예외성 너머에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가 세계에 대한 어떠한 물리적 강제를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양식을 이끌어내기 위한 선전이 되는 순간, 그것이 이미 시로서의 생명력을 상실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와 시인에게 ‘예술가의 의무’라는 이름하에 불가능한 것들을 요구하는 일이란 기만에 다름 아닌 셈입니다. 물론 제가 여러분에게 ‘시는 정치적일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가 가진 예외성을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강동호가 지적했듯 오로지 시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초석이 됩니다. 왜냐하면 시의 예외적 속성에 대한 고의적인 망각이란, 시가 ‘정치적인 것’에 봉사할 것을 요구하는 논리의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현실정치에 대해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는 시를 가지고 통치행위에 연관된 영향력을 고민하려다 보니, 우리 시는 필연적으로 스스로의 불가능성을 은폐하고 왜곡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형철이 말한 ‘역사적 맥락’이 소멸한 지금, 더 이상 망각의 방법은 통용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문학은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자신을 첨예하게 인지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조건’들을 낳았던 본래의 ‘정치’로 회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4. ‘상상적 대리자’에서 ‘상상의 대리자’로 앞서 저는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문학의 의무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이분법적 구분을 모두 넘어서는 것으로만 가능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모더니즘-리얼리즘의 이분법적 구도를 해체하자는 맥락의 이야기가 아니라, 분리된 담론으로 여겨져왔던 각각의 한계들을 한번에 조망하고, 그것들을 총체적으로 극복할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가라타니는 자유로워진 ‘정치’의 시작이 ‘문학의 종언’을 가져왔다고 했지만, 제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기실 오늘날 우리 문학이 직면한 위기는 달리 보면 ‘정치’의 위기이기도 했습니다. 격렬한 투쟁의 시대가 이미 지나갔음에도, 우리에게 ‘80년대적 실천’은 커다란 그림자가 되어 여전히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두 가지 과제를 오늘의 정치에 요구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지난 역사를 통해 이미 민주화를 달성했다는 승리의 착각을 극복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투쟁의 과정을 경험하며 우리에게 각인된 ‘실천’의 기표에 대한 강박을 벗어던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두 과제는, 흥미롭게도 문학이 직면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유입 이후, 이제까지 문학은 더 이상 대문자로 적어야 할 정치행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 위를 내달려왔습니다. 지금에야 그 유행이 거의 수그러들었지만, 몇 해 전만 하더라도 ‘거대담론이 사라졌다’는 구호가 굉장한 인기를 얻었음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요. 그러나 80년대의 투쟁이 맞서왔던 억압의 구조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의 깊은 이면에 내재된 채 현존하며, 오히려 더욱 교묘한 전술로 우리를 구속하고 있습니다. 허용된 자유의 형태로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자유는 문학이 겨냥할 만한 명확한 적대를 제공하지 않았지요. 이후 문학은 진퇴양난의 고민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해체주의의 대안적 담론을 추수하자니, 그것은 이미 ‘거대담론의 붕괴’라는 잘못된 필요조건을 요구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고, 과거의 실천적 구호를 답습하자니 오히려 그 적대행위 자체가 초자아적 정언명법이 되어 주체를 구속할 뿐이었습니다. 확고한 결단이 불가능했던 문학은 결국 두 가지 사이에서 모호하게 표류하였고, 그 결과 등장한 것이 기형적인 ‘미래파’의 규정과, 그들의 부족한 정치성을 벌충할 ‘시와 정치’의 논의였던 셈입니다. 흑백논리의 모순을 회색이 되어 피해보고자 한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자기합리화는 문학의 생명력을 더욱 옥죄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며, 가라타니의 진단대로 문학은 독자들에게 더 이상 스스로의 권위를 내세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몇몇 비평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미적 모더니티의 운명’으로 설명해보려는 시도를 했지만, 그것이 억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들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었을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문학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방향성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문학이 철저하게 현실정치의 바깥에 존재하는,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의 역할을 재인식할 것을 주장합니다. 과거의 문학이 불가능했던 정치의 ‘상상적 대리자’ 역할을 통해 권위를 획득했다면, 이제부터 문학은 그것을 넘어서서 현실정치의 불가능한 감성을 떠맡는 ‘상상의 대리자’가 됨으로써 그것을 넘어서야만 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벤야민은 이미 1929년에 이러한 개념의 기초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초현실주의자들이 그 ‘공산주의자 선언’이 오늘날에 내리는 지령을 파악한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들의 얼굴 표정을, 매분 60초 동안 째깍거리는 자명종의 숫자판과 맞바꾸며 짓고 있다. (발터 벤야민, ‘초현실주의’, ‘발터 벤야민 선집 5’, 길, 2008, 167쪽) 오늘날의 문학은 현실정치가 절대로 수행할 수 없는 두 가지의 역할을 짊어짐으로써 스스로의 정치성을 획득해내야 합니다. 우선 첫째는 ‘정치적인 것’들에 발목이 잡혀 있는 현실정치를 대신하여 ‘정치’만의 고유한 미래적 지향을 상상하는 일입니다. 수많은 조건들의 제약을 받는 ‘실천’을 대신하여, 문학은 자신의 자유로움을 통해 ‘정치’가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아나키스트적 상상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억압의 구조가 주관적 폭력에서 객관적 합리성으로 이행된 이상, 현실정치의 조직적인 치밀함만으로는 저 합리성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문학은 이들에게 객관을 넘어설 상상력을 부여함으로써, 저 ‘정치’에 부재하는 ‘미래에의 의지’를 대신하는 역할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벤야민에게 ‘초현실주의자’로 상징된 예술가의 의무가 다음 시대로부터의 지령을 파악하는 것이었듯이, 시인이 세계를 조망하는 소실점들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란 처음부터 저 상상력을 지켜내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문학에 부여된 두 번째 역할은, 우리 주변의 ‘얼굴 표정’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바라보는 일입니다.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한 번도 진보하지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친부살해를 통해 권력구조를 뒤집은 형제는 결국 그들 중 한 사람이 아버지의 권좌에 앉음으로써 권력을 더욱 강하게 재생산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혁명’을 자처했던 지난 역사의 모든 변화들은, 대개 그 결과가 새로운 지배구조를 낳는 반복을 가져왔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문학이야말로 이러한 역사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 최후의 희망이 됩니다. 이제까지의 혁명이 다시 권력이 된 까닭은, 그 전개과정 안에서 필연적으로 소외되는 이들을 끌어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학은 현실정치의 과정이 미처 목격하지 못하는 그늘에까지도 자신의 시선을 가져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학이야말로 모두를 끌어안을 영구한 혁명, 벤야민이 희구했던 단 한 번의 진보를 완성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명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수식을 붙인다 하더라도, 문학이 감행하는 정치란 처음부터 예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학이야말로 라캉적 ‘없음’이 된 자리들, 상징체계에서 추방된 이들과 초대받지 않은 미래를 세계 속에 드러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의 감성분할을 재분할하는, 상징계를 넘어설 ‘미학적 예술 체제’의 실재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시와 정치’에 대한 논의가 이제 끝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 [2011 키워드로 본 인물] 올해 사라진 해외 인물들

    오사마 빈라덴 / 9·11테러 10년만에 사살 9·11 테러 배후로 지목된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 최고 지도자로 지난 5월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은신처에서 미국 특수부대원들에 의해 사살됐다. 테러 발생 10년 만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부호 출신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미국의 적을 자처했던 그는 9·11 이후에도 미국과 서방을 타깃으로 테러를 감행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현상금 2500만 달러(약 266억원)를 내건 것을 포함해 빈라덴 목에 걸렸던 현상금은 총 2700만 달러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사나이였다. 미군에 사살된 뒤 아라비아해에 수장됐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 ‘세기의 미인’ 한 시대 마감 ‘만인의 연인’ ‘세기의 미인’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할리우드 은막의 스타. 지난 3월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젊은이의 양지’, ‘자이언트’,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등 수많은 작품들에 출연해 세계 남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녀는 두 차례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동료 배우 리처드 버튼과 두 차례 결혼하는 등 모두 8차례 결혼하는 화려한 남성 편력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최근 소장했던 보석류가 경매 사상 최고가인 1300억원대에 낙찰돼 또다시 화제가 됐다. 스티브 잡스 / 아이폰·패드 남기고 ‘IT의 신화’ 떠나다 미국 애플 창업주로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의 거인으로 우뚝 선 스티브 잡스는 지난 10월 5일 생을 마감했다. 56세. 2003년 췌장암 진단 후 8년간 투병하며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혁신적 제품들을 잇따라 내놓았다. 1976년 세계 첫 개인용컴퓨터 애플을 개발해 PC 대중화의 시대를 연 주인공이지만 1985년 애플에서 축출되는 불운을 겪었다. 그는 1997년 최고경영자로 복귀한 뒤 ‘포스트 PC’ 시대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애플을 시가총액 1위(3530억 달러)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가 남긴 ‘항상 갈망하라, 늘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은 사생아에서 IT 신화가 된 인생 역정을 대변한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 약혼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왼쪽·48)이 곧 재혼할 것으로 보인다. 조던은 지난 3년여간 교제해 온 쿠바계 미국인 모델 이베트 프리에토(오른쪽·32)와 크리스마스인 지난 25일 약혼식을 올렸다고 조던의 대변인이 29일(현지시간) 밝혔다. 결혼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1980~90년대 미 프로농구(NBA) ‘시카고 불스’에서 활약하며 NBA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던 조던은 현재 ‘샬럿 밥캐츠’ 농구팀의 공동 구단주다. 프리에토는 26일 샬럿 밥캐츠 농구경기장 관중석에서 조던의 친구들, 프로야구 뉴욕양키스 선수 데릭 지터 등과 나란히 앉아 경기를 관람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쿠바 태생으로 오랫동안 모델로 활동해 온 프리에토는 스페인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아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주니어와 한때 사귀었으며, 10년 전에는 법원에 파산신청을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조던은 2006년 이혼한 전 부인 주아니타 바노이와의 사이에 제프리(22), 마커스(20), 재스민(18) 등 2남 1녀를 두었다. 그는 이혼 당시 바노이에게 1억 6800만 달러(약 1937억원)의 위자료를 지불해 화제가 됐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이라크 화약고 우려·이란發 국지분쟁…”

    올해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있어 ‘격동의 해’였다면 내년은 ‘위기의 해’가 될 전망이다. 시사주간 타임은 ‘핫스폿’인 중동과 북한, 유럽 등에서 워싱턴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다며 내년 오바마 정부가 맞닥뜨릴 10대 외교 난제를 27일(현지시간) 선정했다. ●北 상황, 中과 경쟁에 불리 개전 9년 만인 올해 미군이 모두 철수한 이라크가 당장 ‘화약고’로 떠오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쟁 종식을 알리는 성명에서 “성공적이고 민주적인 이라크가 전 지역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낙관이었다. 최근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교 갈등이 극심해지면서 지난주에만 수니파 교도 73명이 숨지는 현재 기류로 미뤄볼 때 내년 이라크에 유혈사태 폭증이 예상된다고 타임은 지적했다. 최근 핵무기 개발과 제재를 둘러싸고 서방국가와 갈등을 벌이고 있는 이란과의 전쟁 가능성도 도사리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과의 전쟁은 물론, 세계 경제를 악화시킬 중동 내 위기 전이를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공화당 측은 오바마의 무능을 탓하며 이란에 더 강경한 해법을 쓰라고 압박하는 등 국내 정치는 양국 관계를 대치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과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최고책임자였던 메이어 다간 국장 등은 미 정부가 여전히 협상 테이블에 있다고 주장하는 ‘군사적 옵션’이 이란이 핵억지력 구축을 유도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지도부가 교체된 북한의 ‘시계제로’ 상황도 미국에 큰 위협이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후견인 역할에 기대온 미국은 올해부터 전략적 우선순위를 중동에서 아시아로 이동, 외교정책의 중심을 중국과의 지정학적 경쟁으로 옮겼다. 이러한 전략적 경쟁 고조는 북한을 다루는 데 필요한 (중국과의) 생산적인 파트너십을 해치는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리비아 등 중동 지도부 공백도 걸림돌 리비아와 이집트의 지도부 공백과 새 권력층에 대한 우려, 유로존 위기,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내 테러와의 전쟁, 시리아와의 애매한 관계,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 아프리카 내 알카에다의 영향력 확대 등이 남은 난제로 꼽혔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2012서울신문 신춘문예 응모작 분석

    2012서울신문 신춘문예 응모작 분석

    문학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작가라는 ‘운명’을 씌워주는 신춘문예. 201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는 시 2518편, 소설 457편, 평론 22편, 동화 272편, 시조 401편, 희곡 145편을 합해 모두 3815편이 응모됐다. ●“거칠어도 자신만의 생각 중시” 평론, 동화, 희곡의 응모 편수는 지난해보다 늘고 시조는 비슷했으나 시와 소설 응모작이 줄면서 전체적으로는 지난해(4356편)보다 경쟁률이 다소 낮아졌다. 심사위원들은 공통적으로 서울신문 응모작에 대해 문학에 열정을 바치는 젊은이들의 지원이 많았다고 평했다. 지난 15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소설 부문 예심을 맡은 백지연 평론가는 “장르 소설, 공상 과학(SF) 소설, 판타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등 장르적 실험은 잦아들고 방과 같은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많았다.”고 총평을 밝혔다. 같이 예심을 담당한 백가흠 소설가는 “실직이나 취직이 안 되는 등 사회에 두 발을 딛고 설 수 없다는 불안과 가족의 붕괴를 섬세하게 추적한 작품이 많았다.”며 “문학에 인생을 건 젊은이들이 많이 응모해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거의 없었다.”고 덧붙였다. 소설 부문 본심을 맡은 윤대녕 작가는 “아들은 키스방 전단지를 돌리고 아버지는 실버 택배를 하는 등 소재가 무척 다양했다.”며 “그러나 주제가 썩 명료하게 다가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시 부문 예심을 맡은 강정 시인은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기술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드러내는 시가 많아 조금 거칠어도 자신만의 생각을 드러내는 작품을 골랐다.”고 심사기준을 밝혔다. ●팍팍한 현실 희극적 승화 시 본심을 맡은 송찬호 시인은 “신춘문예 신인들에게 요구되는 패기나 뛰어난 상상력이 아쉬운 작품이 많았다.”며 “신춘문예 자체가 규격화되면서 상상력이 판박이처럼 흐르는 듯해 아쉽다.”고 설명했다. 희곡 부문 심사를 맡은 노이정 평론가는 “팍팍한 현실을 희극(comedy)적 톤으로 풀어서 심리적으로 극복하려는 경향이 다른 어느 때보다 두드러졌다.”면서 “동시대적 문제의식을 포착해서 우리 시대를 비추는, 신춘문예만이 해낼 수 있는 작품성에 주목했다.”고 전했다. 시조 부문 심사를 맡은 이근배 시인은 “시조는 시와 다를 것으로 생각하는데 모국어가 가진 기본적 리듬의 형식이 있을 뿐이다.”라며 “오랫동안 연마한 시조의 천재가 방송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처럼 신춘문예에서 경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론 부문 당선작은 작품 비평이 아니라 평론 자체로 독자적 의미를 지니는 메타 비평이어서 심사위원들의 논의가 이어졌다. 심사를 맡은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몇 년 전부터 문단에서 문학이 정치를 어떻게 하는가가 이슈였다. 1970~80년대 두드러졌던 문학의 정치 참여에 대해 본래 문학이 가지는 정치적 기능과 직접적으로 정치를 하는 문학을 아우르는 주장을 편 평론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10살 의붓딸에 술 먹여 성폭행하려던男 ‘철창행’

    10살 의붓딸에 술 먹여 성폭행하려던男 ‘철창행’

    크리스마스에 의붓딸을 성폭행하려던 남자가 경찰에 체포됐다. 남미 베네수엘라의 산프란시스코에서 10살 된 의붓딸을 성폭행하려던 32세 남자가 경찰에 연행됐다고 현지 언론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네우로 예수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 남자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폭죽이 터지면서 들뜬 분위기를 틈타 의붓딸을 노렸다. 남자는 “크리스마스에는 모두 마시는 것이다. 어린이도 마셔도 된다.”며 의붓딸에게 맥주와 포도주를 마시게 했다. 의붓딸이 거부하자 “술을 마시지 않으면 밤새 때려주겠다.”고 위협하며 강제로 술을 마시게 했다.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한 남자는 의붓딸을 침대로 데려가 키스를 퍼부으며 성관계를 가지려 했다. 소녀가 울며 결사적으로 반항하자 머리와 다리를 때리면서 성폭행을 하려 했다. 의붓딸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다 기회를 잡고 집을 탈출했다. 성폭행을 당하기 직전에 도망친 의붓딸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거리를 방황하다 순찰 중이던 경찰에 발견됐다. 소녀는 “의부가 강제로 성관계를 가지려 했다.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해 정신이 몽롱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곧바로 소녀의 집으로 달려가 의붓딸을 성폭행하려 했던 네우로 예수를 체포했다. 남자는 잔뜩 술을 마신 상태였다. 사진=파노라마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뺨 한 대 맞아도 날 계발해 주면 고맙지 않아요? 욕심 나는 배우에겐 악독하죠”

    “뺨 한 대 맞아도 날 계발해 주면 고맙지 않아요? 욕심 나는 배우에겐 악독하죠”

    뮤지컬계에는 스타 배우 못지않게 이름 석자만으로 티켓 파워를 행사하는 스타 연출가들이 있다. 이지나(47) 연출가가 대표적이다. “스타는 절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치는 그이지만, ‘광화문 연가’, ‘에비타’, ‘아가씨와 건달들’, ‘헤드윅’ 등 올해 흥행 뮤지컬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그뿐인가. 번역극 ‘거미 여인의 키스’, ‘버자이너 모놀로그’도 그의 작품이다. 뮤지컬, 연극 등 장르를 오가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그를 지난 21일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만났다. 약속장소를 충무아트홀로 잡은 것은 그가 가장 애틋하게 여기는 작품이 공연 중인 무대이기 때문이다. 무대를 바꿔가며 10년째 장기공연 중인 ‘버자이너 모놀로그’(이하 ‘버자이너’)다. “아마 제가 만든 작품 중에서 가장 돈을 못 벌어다준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그래도 가장 자부심이 큰 작품이에요. 애착도 크고요. 지금의 ‘이지나’를 만들어준 작품이거든요.” 배우로 출발했던 그는 31살에 영국 유학을 떠났다. 석사과정을 끝낼 무렵 “아버지 회사가 망해” 부랴부랴 귀국했다. 손에는 작품 3개의 계약서가 쥐어져 있었다. 그중 하나가 ‘버자이너’였다. 무작정 ‘록키 호러 쇼’를 기획 중이던 제작사를 찾아가 “(미국) 뉴욕, (영국) 런던에서 열풍을 일으킨 ‘버자이너’ 공연권을 드리겠다. 단, ‘록키 호러 쇼’ 연출을 내게 맡겨달라.”고 요구했다. 이름 뒤에 연출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이었다. 그는 “‘버자이너’는 내게 개국 공신 같은 작품”이라면서 “어떤 작품도 ‘버자이너’를 숙청할 수 없다. 너무 오래 해 지겨워 접었다가도 이런 좋은 작품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다시 꺼내들게 된다.”고 말했다. 올해는 의미가 또 하나 생겼다. ‘버자이너’를 통해 프로듀서로 공식 데뷔했기 때문이다. ‘버자이너’는 제목에서 짐작하듯 여성의 성기(Vagina)를 뜻하는 단어가 시도때도 없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성(Sex) 문제를 건드린 작품은 아니다. 사회적 성(gender)을 같이 건드린다. 8살 나영이를 잔인하게 성폭행한 ‘조두순 사건’에서부터 20년간 수요 시위를 벌이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모두 녹아 있다. 이씨는 “10년 전 이 작품을 한국에 처음 올릴 땐 짧게 공연되고 끝날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어찌된 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성들이 성적으로 핍박받는 것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공연에는 김여진, 이지하, 정영주 등 걸쭉한 입담을 자랑하는 3명의 주연배우 외에 특별 초대손님들이 등장해 극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배우 김무열, 조정석, 조여정, 주지훈 등이 다녀갔다. “남자 게스트가 등장하면 여성 대 남성 이야기가 아닌, 폭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내년에는 아예 (남성 입장을 변론하는) 남성 패널을 고정으로 넣어볼까 합니다.” 그는 갑자기 음흉한 표정을 짓더니 “음기 가득한 공연장에 양기가 채워져 조화롭지 않겠느냐.”며 껄껄 웃는다. 식상한 질문이긴 하지만 흥행작이 많은 연출가인지라 묻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요? 당연히 ‘광화문 연가’지요. (판권을 사들여 무대에 올리는) 라이선스 뮤지컬은 연출이 뜯어고치는 데 한계가 있어요. 하지만 창작 작품은 달라요. 맨땅에 헤딩 그 자체이지요. 그것이 곧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는 매력이기도 해요.” 그는 자기 검열이 엄격하기로도 유명하다. “내 이름을 걸고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것이기 때문에 창작은 물론 라이선스 작품도 자체 검열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양심상 거절합니다.” 정선아, 옥주현, 김무열 등 뮤지컬 스타 배우들을 인터뷰할 때마다 ‘이지나 연출’ 이야기가 꼭 나오더라는 말을 꺼냈다. “욕심이 나는 배우들에게 악독하기 때문”이라는 답이 웃음과 함께 돌아왔다. “저는 배우들에게 아주 잔인한 연출가예요. 욕심나는 배우들을 보면, 내가 조금만 못되게 굴면 더 발전할 텐데 하는 마음이 들거든요. 인생을 살면서 솔직히 제겐 그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내 뺨을 한대 두들겨 패도 나를 계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고맙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더러 배우들이 칭찬도 좀 해달라고 볼멘소리를 할 때가 있단다. 그때마다 그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돌려주는 대답. “내가 너희를 캐스팅하고 무대 작업을 함께 하는 게 칭찬이야. 뭘 더 해줄까.” 그런 그이지만 인터뷰하는 동안 내내 그는 함께 작업한 배우들에 대한 찬사를 멈추지 않았다. “저는 제게 주어진 모든 작품에 죽을 만큼 노력을 쏟아붓습니다. 내 작품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기 때문이죠. 배우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저는 ‘이지나식 연출’이라는 말이 너무 좋아요. 서양 문화인 뮤지컬, 연극 분야에서 자신만의 연출 방식을 만들었다는 건 최고의 칭찬이니까요.” 그녀의 내년 공연 일정은 이미 꽉 차 있다. ‘이지나식 연출’을 확인해 보고 싶다면 아무 때고 공연장을 한번 찾을 일이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씨줄날줄] 북한권력의 영구결번/구본영 논설위원

    ‘롯데 자이언츠의 11번은 언제나 당신입니다.’ 지난 9월 30일 부산 사직구장에 내걸린 플래카드다. 11번은 최근 영화 ‘퍼펙트 게임’으로 되살아난, 작고한 프로야구 레전드 최동원의 등번호다. 27년 전 해태 선동열과의 명승부를 기려 구단이 고인의 등번호를 영구결번키로 한 것이다. ‘영구결번’. 프로야구 등에서 은퇴한 대스타의 등번호를 영구히 사용하지 않는 관습이다. 미국의 뉴욕 양키스는 베이브 루스, 루 게릭, 미키 맨틀 등 결번 처리한 전설적 선수가 15명이나 된다. 국내 프로야구 최초의 영구결번은 1986년 사고사를 당한 당시 OB 베어스의 포수 김영신의 54번이다. 이후 선동열의 18번을 비롯해 박철순·이만수·장종훈 등 9명의 등번호가 영구결번 처리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사 이후 북한권력의 3대 상속자 김정은의 ‘대장 명령 1호’가 눈길을 끈다. 전군에 훈련 중지와 부대 복귀 명령을 내려 군권을 장악했음을 시사한다는 차원만이 아니다. ‘국가 주권의 최고 군사지도기관’인 국방위원회가 아닌, 노동당 중앙군사위 명의라는 점이 주목된다는 것이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이와 관련, “김정은이 아버지의 국방위원장 자리를 이어받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 과시 내지 우상화 차원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후 주석직을 스포츠 스타의 등번호처럼 영구결번 처리한 전례가 있다. 1998년 북한 헌법 개정으로 주석직을 폐지하면서 김일성은 ‘영원한 주석’으로 떠받들어졌다. 김정일은 김일성 생전에도 삼촌인 김영주·박성철 등이 포진한 부주석단엔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국방위원장이라는 새로운 직책을 만들어 선군주의 슬로건과 함께 당·정·군을 장악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중국 공산당을 창건한 마오쩌둥의 신조다. 후임자 덩샤오핑은 마오가 갖고 있던 국가주석이나 당총서기직을 이어받지 않았지만, 당중앙군사위 주석직을 통해 군부를 확실히 장악했다. 그래서 비록 김정은이 피폐한 나라를 물려받았지만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직이란 직책만으로도 당장의 후계세습에는 큰 무리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덩과 같은 카리스마가 없는 20대 후반의 그가 국방위원장을 대신할 직책 신설을 통해 상징조작에 실패하는 순간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한 내부동향에 한시도 눈을 떼지 말아야 할 이유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