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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거래세 1% 거둬 빈자에 돌려줘라”

    “금융거래세 1% 거둬 빈자에 돌려줘라”

    ‘99%’의 시위는 현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폐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정치 경제적 구조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월가 시위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분석에 따른 것이다. 월가 시위대도 실질적인 정책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금융업계 규제 강화와 조세제도 개혁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모든 금융거래에 1%의 세금을 물리는 ‘로빈후드세’의 도입이다. 시위대는 모든 금융·통화 거래에 세금을 물려 빈자(貧者)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과 프랑스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금융시장 위축을 우려하는 미국, 영국 등이 반대하고 있어 입법화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시위대는 글라스스티걸법의 재도입도 과제로 내걸었다. 은행 개혁과 투기 규제를 목적으로 1933년 제정된 글라스스티걸법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를 각각 여·수신과 증권업무로 엄격하게 분리해 일반 상업은행이 고객의 예금으로 주식투자를 할 수 없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금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 우선순위를 둔 빌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과 월가 은행들의 로비로 이 법은 1999년 폐지됐다. 초단타매매처럼 무수히 많은 매매를 반복해 결국은 개미 투자자를 울리는 고빈도 매매 금지도 시위대가 내세운 정책 가운데 하나다. 시위대는 또 부유층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 폐지와 ‘버핏세’로 불리는 부자 증세를 주장하고 있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연 100만 달러(약 11억원) 이상을 버는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버핏세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이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으나 현실 정치의 벽에 부딪혀 버핏세는 일단 무산됐다. 시위대는 정치후원금을 내는 기업이 정치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악습을 막기 위해 정치인이 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지 못하도록 선거자금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학자금 부채 탕감과 월가 범죄자 기소, 증권거래위원회의 금융 규제 권한 강화 등도 이들의 요구사항이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남녀 ‘오바마·힐러리’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남녀 ‘오바마·힐러리’

    버락 오바마(왼쪽)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오른쪽) 국무장관이 올해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남성과 여성으로 꼽혔다. 미 일간지 USA투데이가 여론조사기관 갤럽과 공동으로 조사해 27일(현지시간) 발표한 결과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통령 당선자 시절부터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클린턴 장관은 무려 9년 연속 1위를 지켰다. 이번 조사는 지난 15~18일 성인 남녀 1019명에게 전화 설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美 공화 경선 D-6 주요 후보 분석 (2) 뉴트 깅리치

    “야외 식사 모임 때였어요. 그는 햄버거를 요리하면서 책을 읽었고 나와 대화도 했어요. 세 가지를 동시에 했다니까요.”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조지아주에 살 때 이웃이었던 조앤 하월(76) 캐럴튼 제일침례교회 목사 부인이 깅리치에 대해 지난 14일 워싱턴포스트에 밝힌 일화다. 공화당 대선 레이스에서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깅리치가 어릴 때나 지금이나 공통적으로 받는 인물평은 “똑똑하다.”는 것이다. 깅리치는 12살이 되기도 전에 두꺼운 ‘아메리카나 백과사전’을 독파했다고 그의 의붓아버지는 말했다. 깅리치가 첫 번째 부인과 결혼생활을 할 때 그의 집은 저녁에 온 가족이 책을 읽느라 책장 넘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막내딸 재키(45)는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문장에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었는데, 속도가 아주 빨랐다.”고 회고했다. 엄청난 독서량으로 무장한 깅리치는 정치권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스프링클러처럼 뿜어내는 ‘아이디어 제조기’로 불린다. 예컨대 깅리치는 지난달 “북한, 중국, 러시아 등의 ‘전자기파’(EMP) 공격은 강력한 전자파를 일으켜 일시에 모든 전자장비를 마비시키기 때문에 핵공격보다 미국의 안보에 더 위협적일 것”이라고 주장했고,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그의 주장을 분석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롬니가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수재급의 두뇌를 갖고 있다면, 깅리치는 정반대로 평범한 문제에 의문을 던짐으로써 기존 상식을 혼란에 빠뜨리는 수재형이라 할 수 있다. 깅리치 뇌의 절반은 각종 지식으로 가득 차 있고 나머지 절반은 폭탄이 장착돼 있다는 비유도 회자된다. 출생 직후 부모가 이혼하고, 이후 군인이었던 의붓아버지의 직업상 자주 이사를 다녔던 것이 깅리치의 ‘도전적 성향’에 영향을 끼쳤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그는 명석한 두뇌 탓에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봤는지 몰라도 정치역정과 사생활에서 보통사람은 감히 걷기 힘든 길을 걸었고, 이는 지금까지도 그의 발목을 잡는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는 1994년 중간선거에서 ‘미국과의 계약’이라는 공약으로 40년 만에 하원 다수당 지위를 민주당으로부터 탈환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며 정치적으로 급부상했지만, 이후 하원의장으로서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과 ‘정부폐쇄’라는 벼랑끝 승부를 벌이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추락했다. 또 암 투병 중인 부인을 두고 불륜을 저질러 이혼을 했고,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 공격을 주도하는 와중에 자신의 비서와 혼외정사를 벌였다. 깅리치가 만약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그의 독특한 아이디어 덕에 굼뜨고 매너리즘에 빠진 미국은 분주한 변화를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독단적 확신에 기반한 행보를 불사한다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큰 시험이 될 것이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뉴트 깅리치(68세) ●펜실베이니아주 출생 ●버지니아주 매클린 거주 ●제58대 하원의장 ●첫 부인과의 사이에 자녀 2명 ●캘리스터 비섹과 세 번째 결혼
  • 日 외상 9년만의 방문 美·中과 미얀마 외교전

    “미얀마를 잡아라” 미국과 중국, 일본이 동남아시아의 군사·경제적 요충지인 미얀마를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1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50년 만에 미얀마를 방문해 테인 세인 대통령과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 등을 만났다. 미국이 미얀마에 공을 들이는 것은 최근 미국이 전개하는 ‘대(對)아시아 외교’에서 성과를 내려는 포석이다. 중국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여 있는 미얀마는 미국에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교두보와 같은 곳이다. 특히 클린턴 장관이 수치 여사를 두 차례나 만나 미얀마 민주화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한 것도 중국에 대한 간접적인 압박인 셈이다. 미국 정부는 미얀마 시민사회의 성장을 위해 120만 달러(약 13억 5000만원)를 지원할 뜻도 밝혔다. 이에 중국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중국 외교 실무 사령탑인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이 지난 19일 메콩강 연안 국가회의 참석을 위해 미얀마를 방문했다. 리쥔화(李軍華) 미얀마 주재 중국대사는 그동안 미얀마 정부의 입장을 고려해 면담을 꺼리던 수치 여사를 20년 만에 만났다. 중국이 미얀마 군사정권을 전폭 지지하면서 야당 세력을 외면해 온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하지만 미국이 그동안의 봉쇄정책을 풀고 미얀마에 손을 내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미얀마에 대한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그동안의 외교정책에 변화를 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얀마를 잡기 위한 미국과 중국의 각축전에 일본도 가세했다. 일본 외무상으로는 2002년 이후 처음으로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이 지난 25일 미얀마를 방문했다. 겐바 외무상은 이날 우나 마웅 르윈 미얀마 외교장관과의 회담에서 양국이 투자협정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교도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일본이 미얀마와 투자협정을 체결하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모든 국가와 협정을 맺게 된다. 동결된 공적개발원조(ODA) 공여를 재개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겐바 외무상은 회담에서 정치범의 추가 석방과 민주화 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출마를 결정한 연방의회 보궐선거의 공정성 확보 등도 촉구했다. 이는 일본이 미얀마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민주화를 촉진하는 한편 미얀마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seoul.co.kr
  • [김정일 사망 이후] 국제사회, 입장 조절 골머리

    국제사회가 최고 지도자를 잃은 북한에 어느 정도 ‘성의’를 보여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일본 관방장관은 ‘애도’를 표했다가 이를 철회했고, 러시아 대통령은 조의만 표할 뿐 조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후지무라 오사무 일본 관방장관은 21일 기자회견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죽음에 대해 북한에) 조의를 표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앞선 19일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임시 회견에서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후지무라 장관은 입장을 바꾼 데 대해 “(사망 직후에는) 일본 문화의 일반적 상식에 비춰 (정부 입장이 아닌) 개인적 애도의 뜻을 밝힌 것”이라고 해명했다. 미국 등 동맹국이 직접적인 조의를 밝히지 않은 마당에 다른 입장을 취하기가 부담스러웠던 듯하다.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사망 발표 당일 북한 후계자 김정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조전을 보냈지만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관에 차려진 조문소는 찾지 않고 있다. 총선 부정 시비로 인한 정국 혼란 탓에 시간을 내기 어렵기도 하지만, 북한에 지나친 친밀감을 표시하면 러시아가 표방해 온 ‘남북한 균형외교’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 행정부는 나름의 ‘묘수’를 내놓아 국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발표한 성명에서 김 위원장의 죽음에 직접적인 ‘애도’(condolence)를 밝히는 대신 북한 주민에 대한 “염려와 기도(thoughts and prayers)”를 표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애도’를 전했다가 야당인 공화당으로부터 맹공을 받았던 전례를 피하기 위해 애매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장은 “성명은 매우 잘 만들어졌다.”면서 “북한은 미국이 애도의 뜻을 전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이집트 ‘히잡’의 분노

    이집트에서 반군부 시위에 대한 유혈진압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집트 여성 수천 명이 20일(현지시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여성 시위자에 대한 군경의 과잉 진압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여성들의 집단 행동에 놀란 군부는 서둘러 사과의 뜻을 밝히고,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시위대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AP, CNN 등에 따르면 이날 시위는 지난 16일 진압 군경이 군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는 과정에서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한 여성 시위자를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비롯됐다. 공개된 동영상에는 군인 2~3명이 여성 시위자의 셔츠를 잡아 끌고 가는 바람에 옷이 찢어져 속옷이 드러났는데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곤봉으로 계속 구타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 동영상이 TV뉴스에 보도되고,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면서 군부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날 시위 참가자들은 옷이 벗겨진 채 끌려가는 여성의 사진을 들고 나와 군부를 강하게 성토했다. 평소 시위에 참가하지 않았던 보수적인 중장년층 여성들도 눈에 띄었다. 한 시위 참가자는 “군인들이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우리 옷을 벗기고 있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부 장관도 비판에 가세했다. 클린턴 장관은 이날 워싱턴 조지타운대 연설에서 “이집트 여성들은 불과 몇 달 전 그들이 목숨을 걸고 혁명을 이뤄냈던 장소에서 구타와 굴욕을 당하고 있다.”면서 “이는 국가적 수치”라고 말했다. 시위가 거세지고 국제 사회의 비난이 일어나자 이집트 군부는 즉각 사과문을 발표했다. 군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깊이 후회하고 있다.”며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을 약속했다. 또 민주화 과정에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집트에서는 군부의 시위대 유혈 진압으로 지난 5일간 최소 14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다쳤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김정일 사망 이후] 조의표현에 숨은 외교학

    국가 간에 오가는 외교적 수사(diplomatic rhetoric)는 한껏 예의를 차린 말이어서 곰곰이 따져봐야 숨은 뜻을 읽을 수 있다. 지난 19~20일 발표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에 대한 한국과 미국, 중국의 공식 입장은 외교적 수사의 극치였다. 중국은 깊은 애도의 뜻을 밝혔지만 한국과 미국은 ‘위로’와 ‘걱정’이라는 어정쩡한 단어를 선택했다. 애도는 죽은 사람의 지나온 행적을 기리고 그를 잃은 슬픔을 표현하는 단어다. 국가 지도자가 사망하면 그 유족과 국민에게 유감의 뜻을 전할 때 쓰인다. 중국은 마자오쉬 외교부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김 위원장은 북한 인민들의 위대한 지도자이자 중국 인민들의 친밀한 친구였고 북한의 사회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며 애도했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20일 “북한 주민들의 안녕을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고, 우리 정부의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발표했다. 김 위원장의 과거 행적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차관보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독재적인 정권 관계자의 사망에 애도를 표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1994년 김일성 북한 주석이 사망했을 때는 상황이 다소 달랐다.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은 “미 국민을 대신해 북한 주민들에게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한다. 김 주석이 미국과 회담을 재개하도록 지도력을 보여준 데 감사한다.”며 조의를 전했다. 한 나라의 존경받는 지도자가 사망하면 각국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 1997년 중국의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 사망 소식에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은 “슬픔을 느낀다. 그는 세계무대의 탁월한 인물이었다.”며 애도했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한 용감한 투사였던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북·미, 뉴욕 접촉

    북한과 미국이 지난 19일(현지시간) 뉴욕채널을 통해 실무 접촉을 벌였다. 김정일 사망 이후 첫 북·미 당국 간 접촉이다.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은 20일 브리핑에서 식량지원 문제와 관련된 북한과의 ‘기술적 논의’를 전날 뉴욕채널을 통해 가졌다고 밝혔다. 그는 “(식량지원 외에) 좀 더 넓은 것을 논의했는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것(접촉)은 실무수준(technical-level)이었으며, (대북) 영양지원과 관련한 문제들을 명확하게 하려고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김정일 사망 후 북한이 애도 기간에 있는 만큼 연내에 대북 영양지원 문제가 결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그는 “식량의 필요성과 모니터링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여러 문제가 있으며 이를 계속 논의해야 한다.”면서도 “북한이 애도기간임을 감안할 때 정상적인 정부활동이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며, 따라서 우리가 새해 이전에 이 문제들에 대해 좀 더 명확히 하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3차 북·미대화 개최 여부와 관련, “미국의 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앞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북한 새 지도부에 “평화의 길로 향하는 선택을 하기를 희망한다.”고 촉구한 데 대해 눌런드 대변인은 “새 정권에 대한 미국의 기대와 희망의 신호를 보내기 위한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조문 파견’ 찬반 지상논쟁

    ‘조문 파견’ 찬반 지상논쟁

    “조문은 北에 화해메시지…한반도 평화구축의 기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9세의 젊은 아들에게 후계를 물려주고 급사, 북한에 안정된 정권이 정착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비록 무력·공안 기구를 중심으로 빠르게 후계 작업이 이루어졌지만, 김정일이 20년 동안 경험을 쌓은 것에 비해 3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권력이 안착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책 노선을 둘러싼 권력투쟁이 벌어질 개연성이 있고, 그 과정에서 권력자의 의도적인 도발이나 아니면 특정 세력의 일탈된 행위로 대남 도발이 감행될 수도 있다. 또 정책 노선을 두고 권력투쟁이 벌어져 내란과 같은 무력 충돌로 악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중국이 관여하게 된다면 북한은 사실상 중국에 예속될 위험마저 있다. 이렇게 우려되는 상황들이 실제 북한에서 벌어질 수 있으므로 김일성 왕조를 혐오하더라도 평화 유지와 평화 통일 등 우리의 국익을 수호하기 위해 김정은의 집권이 안착되기를 바라는 것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다. 또 유사한 맥락에서 새로운 북한 정권이나 일부 극렬 군부세력이 대남 도발을 감행할 핑계나 명분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정부가 종교단체들을 설득해 애기봉 등 세 곳의 성탄트리 점등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은 현명한 판단으로 평가된다. 이와 아울러 민간단체들이 북한 정권을 비난하는 전단을 살포하는 것은 적어도 새로운 북한 정권이 우리에 대한 적대감을 행동으로 표출할 때까지는 자제하는 것도 요망된다. 정부가 이들 단체들에 자제 협력을 요청한다면 위기에 처한 북한 정권에 화해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의 정세 안정과 새로운 북한 정권과의 화해를 도모하는 동시에 북핵 문제 해결 등 한반도 안보 문제 해결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고 외교적 주도권을 잡아 나가려 한다면, 조의 표시와 조문단 파견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우리 정부가 조의 표시를 하지 않고 조문단 파견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와 달리 미국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 “미국 국민을 대신해 북한 주민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전한다.”는 내용의 조의 성명을 발표해 북한과의 공존 의지를 표명했고 이후 제네바 핵합의 체결을 주도할 수 있었다. 현재 오바마 행정부도 조의 표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김정일의 사망으로 한반도 안보 상황이 위기로 악화할 수 있는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지만 이를 위기로만 볼 것이 아니다. 평화를 회복하고 조국 통일을 달성하는 기회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북한에 대한 이념적 갈등이나 도발에 대한 분노를 인내하면서 전향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할 것을 권한다. 때문에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를 보내고 민간인 중에 북한 당국의 조문을 받았던 이희호 여사, 현정은 회장 등의 조문 방북을 허용한 것은 잘한 결정이라고 본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핵실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감행하고도 사과하지 않은 김정일을 용서하지 않고 있으므로 정부 차원의 조문단을 파견한다면 ‘남남 갈등’을 재발시킬 수 있다. 그러나 향후 정세 관리가 너무 중차대하므로 정부가 지혜롭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남남 갈등을 유발하지 않는 수준에서 정부 조문단을 파견하는 방법도 있다. 여야 간 합의를 도출해 조문단을 구성한다면 남남 갈등 소지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위기에 처한 북한 당국에 화해 의사를 표명하면서도 국민 통합을 유지하는 지도력을 발휘한다면 한국의 평화공존·공영 의지를 과시하고 북한 관리를 포함한 동북아 질서 변화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 이번 위기를 한반도 평화 회복과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는 호기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 “대한민국 公敵에게 조의 목숨바친 호국영령 모욕”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두고 서거라 애도하는 일부 정치인을 바라보면 한심한 생각이 든다. 물론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해 애도를 표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도리인 것은 맞다. 하지만 우리는 김 위원장의 죽음에 대해 애도를 표할 수 없다. 김정일이 지난 17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우리는 그의 사망을 독재자의 종말로 규정한다. 그는 북한동포 수백만명을 기아로 죽게 했다. 독재체제 유지와 군사력 강화에만 급급했다. 조의를 표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 1950년 6월 25일 벌어진 한국전쟁은 동족상잔의 슬픔을 우리 가슴에 남겼다. 김정일의 아버지인 김일성에 의해서였다. 김일성은 그야말로 ‘역적’이었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북한의 변화를 기대했다. 분단의 아픔이 끝나길 소망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인 김정일은 아버지의 역사적 과오를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수많은 실향민과 국민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김정일은 또 37년간의 독재로 수많은 북한 동포들을 고통 속에 내팽개쳤다. 수백만 북한 주민이 굶어 죽어 가도 보살피지 않았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며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면서 개혁 개방을 거부하고 있다. 가짜 민주주의인 셈이다.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을 지시한 것도 바로 김정일이었다. 테러 교사범과 다르지 않다. 이렇듯 독재자 김정일이 대한민국의 공적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때문에 그의 죽음에 명복을 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을 보면 일부 정치인과 정당은 김정일의 사망에 대한 조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서거’(逝去)라는 극존칭 표현을 써 가며 ‘애도’를 표하는 사람도 있다. 정부도 북한에 조문단을 보낼지를 두고 논의를 했었다.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행위는 이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이 크게 노할 일이다. 그들에게 죄악을 저지르는 일이며 참혹한 전장에서 살아남은 우리 부모들을 우롱하는 짓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일의 사망을 애도해선 안 된다. 조문해야 한다는 진보 단체들과 정치인들의 말은 어불성설이다. 이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이 걱정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3대 세습독재가 굳어질까봐 두렵다. 최근 김정은은 1700억원짜리 호화 사저를 짓는 등 권력을 과시했다. 북한 정권에는 축복일 테지만, 북한 동포에게는 재앙이다. 그러나 북한이 현재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고, 김정은 세습체제가 굳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김정일이 사망했다. 이런 이유로 북한의 3대 독재체제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 내부의 치열한 권력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도 많다. 자멸할 공산이 크다. 북한 동포를 위해서라도 김정은 세습은 실패로 끝나야 한다. 세계 여론은 매우 부정적이다. 최근 북한이 저지른 천안함 테러와 연평도 포격 때문이다. 북한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일말의 사과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조문까지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미국 등 세계 선진국들은 북한을 적으로 표현했고, 김정일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어느 국가에서도 테러리스트나 독재자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다. 김정일 사망에 조의를 표하거나 분향소를 차리는 것을 자제해야 하는 이유다. 김정일의 죽음은 북한 민주화를 위한 절호의 기회가 돼야 한다. 북한도 이제 공존과 평화의 길로 나올 때다. 김정일의 사망을 계기로 북한의 지도부가 개혁과 개방의 길을 걷기를 바란다. 북한의 주체사상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전 세계가 알고 있다. 그간의 과오를 반성하고 한국과 손잡고 선진화 대열에 들어서야 한다. 심인섭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장
  • 김일성땐 “애도” 김정일엔 “위로”

    미국 정부가 19일(현지시간) 발표한 조의 성명은 1994년 김일성 북한 주석 사망 당시와 비교하면 미묘하지만 확실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미국 정부 스스로 당시 경험을 선례로 삼았다.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미국 국민을 대신해 북한 주민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전한다’는 공식 조의 성명을 발표했다. 또 당시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한과 핵협상을 벌이던 로버트 갈루치 협상대표를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 분향소에 보내 조문을 하게 했다. 성명의 주체 측면에서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 볼 때도 ‘심심한 애도’와 ‘위로’(염려와 기도)는 격이 다름을 알 수 있다. 1994년 때보다 수위가 떨어졌다는 얘기다. 미국이 ‘김정일의 존재’에 대한 이중적 고민을 했다는 게 외교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김 위원장에 대해 보수세력들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현실, 그러면서도 공식적으로 한 국가(유엔회원국)의 최고지도자의 사망이라는 외교적 사안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은 적극적인 조의 표명이 효과를 발휘해 김 주석 장례식 기간이 끝나고 1개월 뒤부터 북·미 핵협상을 재개했고 그해 10월 제네바 핵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속도내는 美·中 ‘포스트 김정일’ 움직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에 따른 북한 동향은 남북한은 물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된다. 북한 후계구도의 불안정성으로 급변사태가 일어날 경우 미·중 충돌로 이어질 소지가 있어 한반도는 세계의 ‘화약고’로 떠오른 셈이다. 주변 4강은 일단 북한체제의 연착륙을 선호하는 속내를 드러내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 美, 누가 됐든 조속안정 선호 미국 정부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명의로 19일(현지시간) 김 위원장 사망에 조의를 표했다. 성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외교적 격식은 차렸지만 분명하게 ‘조의’(condolence) 표명을 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이번 사안을 놓고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성명은 김 위원장의 공식 직함을 표기했다. 국가명도 평소 쓰던 ‘북한’이란 약칭 대신 정식 명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있는 그대로 사용했다. 미국 정부가 이번에도 국익을 최우선에 두는 외교 기본원칙을 충실히 따른 셈이다. 이런 분위기는 평소 북한에 대해 차가운 논평을 자주 내놨던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이 이날만큼은 “우리는 북한의 애도기간을 존중할 것”이라고 하는 등 우호적인 표현으로 일관한 것에서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이날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날계란을 옮기듯 발언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구사했다. 혹여 북한을 자극할까 신경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미국 정부의 반응을 종합하면, 미국은 김정은이 됐든 누가 됐든 미국에 도발하지 않는 한 북한의 새 지도체제를 인정하기로 내부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또 가급적 북한이 김정일 체제의 시스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혼란 없이 안정을 굳히기를 바라며, 그에 따라 북·미대화를 조속히 재개했으면 하는 속내를 드러냈다. 이 같은 자세는, 북한이 혼란에 빠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기존 체제대로 유지되는 게 미국의 이익에 더 부합한다는 계산의 발로로 풀이된다. 북한 체제가 동요하는 시나리오는 미국 입장에서 득실이 불투명한 반면, 기존 체제 유지에 따른 득실은 이미 나와 있기 때문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미국 국내 사정 때문에 북한의 혼란을 바랄 여유가 없다.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로 미국은 더 이상 대외문제에 무력으로 개입하기 힘든 상황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제 겨우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을 수습하면서 국방예산 감축에 들어갔다. 이러니 북한은 물론 중국과의 정면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급변사태는 미국으로서는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일 것이다. 한반도 정정이 불안해질 경우 글로벌 경제에 악재가 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내년 재선을 앞두고 경제회복이 급선무인 오바마로서는 북한 등 안보 현안들이 추가로 악화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상황이다. 결국 미국 입장에서 걱정되는 시나리오는 북한의 새 지도부가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핵실험 등 군사적 도발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 정권의 혼란으로 핵이 통제불능 상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유화적 제스처를 쓰는 것은 북한의 새 지도부나 군부가 강경노선을 택할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中, 대북외교 ‘특수딱지’ 떼기? 중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김정은 체제의 조속한 안정에 올인하는 양상이다.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 국무원, 중앙군사위원회 명의로 19일 발표한 조전을 통해 ‘김정은 영도’를 처음으로 인정한 데 이어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20일 오전 주중 북한대사관을 찾아 조문하면서 또다시 ‘김정은 영도’를 언급함으로써 중국의 의중을 드러냈다. 특히 후 주석 조문은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북한 당국의 발표 후 이틀이 지난 시점에 장쩌민(江澤民) 당시 주석과 함께 조문한 것보다 하루 빠르다. 동행인사들도 당시보다 거물급이다. 중국중앙(CC)TV 등 관영 언론들도 김정은을 집중 조명하면서 북한이 김정은 체제로 바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신경보는 “동북아 안정은 북한의 안정을 필요로 한다.”면서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북한의 안정이라고 강조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중국이 과도기의 북한에 믿을 만한 지지 국가가 돼야 하며 외풍을 막아 줘야 한다.”는 사설을 게재했다. 중국이 신속하게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는 등 안정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중국은 한반도가 요동치는 것을 원치 않고, 그런 차원에서 김정은을 내세운 북한의 입장을 존중하는 것”이라면서 “북한을 이끌 새 지도자가 김정은이든 아니든 중국은 북한의 조속한 안정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중국이 기존 북·중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국가끼리의 정상적 외교관계가 아닌 당 대 당 등 ‘특수관계’로 점철된 대북외교를 정상화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하면서 자국의 외교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는 현실에서 더 이상 북한과의 ‘특수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졌다는 내부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19일 중국이 발표한 조전은 공산당과 전인대, 국무원, 중앙군사위 등 4개 기구 명의로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등 5개 기구에 보냈다. 김 주석 사망 때 최고실력자 덩샤오핑과 장 주석, 리펑(李鵬) 총리, 차오스(喬石) 전인대 상무위원장 개인 명의로 보낸 것과 대비된다. 조전을 양제츠(楊??) 외교부장이 주중 북한대사관 대리대사를 불러 전달한 것에서도 공식외교 관계로의 전환 의도가 읽힌다. 중국과 북한은 김 위원장이 생전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비공식방문’을 표방하면서 돌아갈 때까지 모든 일정을 비밀에 부쳐 왔다. 하지만 중국 내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비밀유지가 힘들어졌고, 중국은 북한 측에 공식적인 외교관계로의 전환을 지속적으로 요청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중 관계가 국가 대 국가로 정상화됐는지는 향후 김정은의 방중 등에서 확실하게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日 “이란산 원유 계속 수입하겠다”

    일본이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미국에 통보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무상은 19일(현지시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회담한 뒤 “이란산 원유 수입이 중단된다면 세계 경제 전체가 타격받을 위험이 있다.”며 원유의 약 10%를 이란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일본을 배려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클린턴 장관은 “일본 측의 염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앞서 미국 의회는 이란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기 위한 조치로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어떤 경제 주체도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할 수 없도록 하는 제재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이란 원유를 수입하고 있으며 원유 대금 결제를 위해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한국, 일본 등의 우려를 낳았다. 한편 클린턴 장관은 이날 일본에 부모 한 쪽이 다른 쪽의 동의 없이 외국으로 자녀를 데려가지 못하도록 하는 ‘국제아동납치 민간 부문에 관한 헤이그 협약’ 비준을 촉구했지만 겐바 외상은 명확한 답변을 회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주요 8개국(G8) 국가 중 유일하게 이 협약의 비준을 거부하고 있으며 미국인 부모가 일본에 있는 자녀를 되찾으려고 제기한 소송이 120건 이상 진행 중이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美 “北의 평화·안정적 권력 이행 원한다”

    美 “北의 평화·안정적 권력 이행 원한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조문하면서 ‘김정은 영도’를 직접 거론했다. 미국 정부도 조의를 표명했다. 미·중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 4강이 김 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의 조속한 안정을 희망하는 양상이다. 후 주석은 이날 오전 베이징의 북한대사관에 마련된 김 위원장 빈소를 찾아 조문하면서 “우리는 조선(북한) 인민이 김정은 동지의 영도하에 단결해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고 한반도의 장기적인 평화안정 실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전날 공산당 중앙위원회 등 당·정·군 최고권력기관 명의의 조전을 통해 처음으로 김정은 체제를 인정한 데 이어 후 주석이 이를 직접 재확인한 것은 북한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중국이 김정은 체제의 조속한 착근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과시한 행보로 풀이된다.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은 “중국중앙(CC)TV 등 관영 언론들이 조전과 후 주석 조문내용 등 김정은 관련 보도를 잇따라 보도하고 있다.”면서 “중국은 김정은 체제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후 주석의 조문에는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을 비롯한 정치국 상무위원 3명 등 당·정·군 주요 간부들이 동행했다. 중국의 류훙차이(劉洪才) 주북 대사도 이날 오전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평양 금수산기념궁전 김일성동상에 헌화하면서 김 위원장을 조문했다. 미국 정부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19일(현지시간) “우리는 북한 주민의 안녕을 깊이 우려하며, 이 어려운 시기를 겪는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를 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날 성명은 김 위원장을 직접 애도하는 표현 대신 북한 주민들을 위로하는 형식을 통해 미 정부 차원에서 조의를 표명한 것이다. 이어 “북한의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권력 이행(transition)을 원한다.”면서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화의사도 분명히 했다.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북한의 애도기간을 존중할 것”이라면서 “적절한 시점에 분명 다시 대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무부는 대북 식량지원과 제3차 북·미 고위급 대화에 대해 “지금까지 어떤 결정도 내려진 바 없다.”고 부인해 이번 주중 열릴 전망이던 북·미 대화가 무기한 중단됐음을 시사했다. 지난 1994년 7월 김일성 북한 주석이 사망했을 당시에도 미국 정부는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직접 “북한 주민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전한다.”는 조의 성명을 발표하고 제네바에서 북한과 핵 협상을 벌이던 로버트 갈루치 국무부 차관보를 제네바 주재 북한 대표부에 보내 조문하도록 한 바 있다. 베이징 박홍환·워싱턴 김상연특파원 stinger@seoul.co.kr [용어 클릭] ●transition 일반적으로 전환, 이행 등으로 해석되며, 클린턴 미 국무장관 발언의 경우 김정일 체제에서 장례기간을 거쳐 안정적으로 다음 단계로의 권력 이행 의미가 강하다.
  • 김정일의 삶, 통치, 그리고 권력

    김정일의 삶, 통치, 그리고 권력

    17일 사망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권을 세운 아버지 김일성 전 국가주석의 사망으로 권력을 승계받은 뒤 17년간 봉건시대를 능가하는 절대 군주로 군림했다. 김정일 정권이 공식 출범한 것은 1998년으로 그가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된 뒤부터지만 실질적으로 북한을 통치한 것은 그가 1974년 후계자로 공식 내정된 이후부터다. 불우했던 유년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1942년 2월 16일 양강도 백두산의 항일빨치산 밀영(密營)의 귀틀집에서 김일성과 그의 전처인 김정숙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러나 출생연도와 출생지는 북한의 발표와 다르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 출생연도는 1941년으로 알려진다. 북한 당국은 김 위원장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된 1974년부터 주민들에게 그의 출생연도를 1941년으로 홍보하다가 후계자로 공식 추대된 2년 뒤인 1982년 김일성의 70회 생일 때부터 1942년으로 선전했다. 출생지에 대해서도 북한은 1980년부터 백두산이라고 선전하면서 대대적인 성역화 작업에 나섰다. 그 이전에는 김일성이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항일투쟁을 했다는 경력 때문에 러시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아명도 러시아식으로 ‘유라’로 불렸다. 김 위원장은 북한 최고지도자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유년시절은 불행했다. 그는 김일성이 평양으로 입성한 지 2개월여 지난 1945년 11월 생모인 김정숙과 그의 빨치산 동료와 함께 소련 함정을 타고 함경북도 웅기항을 통해 북한에 처음 발을 디뎠다. 그러나 남동생 슈라가 익사한 데 이어 7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듬해 6·25 전쟁으로 중국으로 피란살이를 가야만 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계모 김성애의 손에서 성장한 유년시절은 김 위원장의 모성애 결핍을 낳았고 계모와 이복형제에 대한 반감은 후에 후계자를 둘러싼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냉혹함을 보이게 했다. 휴전 이후 김 위원장은 평양으로 돌아와 삼석인민학교와 제4인민학교 등을 거쳐 남산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해 이듬해 7월 노동당에 입당했다. 1964년 6월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당 조직지도부에서 지도자로서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후계자 발돋움 김 위원장은 1967년부터 당의 핵심 부서인 조직지도부 과장을 거쳐 1971년 부부장으로 승진했고 1973년 중앙당 문화예술부장을 거쳐 당 조직 및 선동선전담당비서라는 막강한 지위에 올랐다. 그는 김일성의 장남이라는 유리한 신분을 이용해 김일성 정권에 불만을 느끼거나 권위에 도전하는 인물들을 적발해 김일성에게 보고하고 숙청하는 데 앞장섰다. 김일성의 신뢰를 얻은 김 위원장은 생모의 항일빨치산 동료인 원로 간부의 후원을 등에 업고 권력 2인자인 삼촌 김영주 당시 당 조직지도부장, 정치적 힘을 과시하던 계모 김성애, 김일성의 남다른 사랑을 받았던 이복동생 김평일을 물리치고 1973년 후계자 자리인 당 조직 및 선전비서에 올랐다. 이어 다음해 2월 제5기 8차 당 전원회의에서 김 주석의 공식 후계자로 내정됐다. 이 때부터 ‘지도자 동지’ ‘당 중앙’이라고 호칭됐으며 1975년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후계자 내정을 앞둔 1972년 12월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제5기 1차회의에서 주석제를 핵심으로 하는 헌법 개정과 국가기구 개편을 단행했다. 또 주체사상탑과 김일성 동상, 혁명사적지 등 북한 각지에 두 부자와 그 가계를 선전하는 시설물 건설과 외국에서의 주체사상 홍보 등에 막대한 재원을 쏟아 부었다. 김 위원장은 당과 군부 등 국정을 전반적으로 장악하도록 체제를 정비한 뒤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를 통해 정치국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으로 선출되면서 후계자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호칭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로 변경됐다. 이후 1990년 5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1991년 12월 최고사령관, 1992년 공화국 원수에 추대된 데 이어 1993년 김일성으로부터 국방위원장직을 공식 승계함으로써 권력 승계에 따른 절차를 모두 마무리했다. 17년 1인 독재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본격적인 김정일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3년상을 빌미로 ‘유훈통치’에 전념했다. 당시 북한의 상황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스스로 ‘고난의 행군’이라고 명명한 이 시기에 국가경제와 식량배급제가 붕괴해 수백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하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통제기능은 마비된 무정부 상태와 같았다. 김 위원장은 김일성 3주기를 마친 뒤 1997년 9월 추대형식으로 당 총비서에 올랐고 이듬해 10월 제10기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최고 권력기관으로 자리매김한 국방위원회의 수장으로 재추대되면서 김정일 시대가 공식 출범했다. 김정일 시대의 군부통치는 ‘선군정치’로 명명됐고 이는 강력한 통치구호로 자리했다. 1998년 10기 최고인민회의는 사회주의 헌법 개정을 통해 경제난 속에서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했으며 세대교체를 통해 젊은 기술관료를 내각에 등용했다. 2002년에는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시장을 확대하고 임금과 물가를 현실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강성대국론·신(新)사고론·실리주의 등 미래를 향한 새로운 비전을 내놓기도 했다. 그의 외교적 행보는 파격적이라고 평가받는다. 1994년 미국과 담판을 통해 북·미 기본합의를 이끌어낸 김 위원장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금강산 관광사업 등 남북교류를 추진했다. 2000년 6월 13일에는 반세기 만의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 6·15 공동선언에 직접 서명했다. 동시에 미국과도 적극적인 관계 개선에 나섰다. 2000년 10월에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특사로 미국에 파견하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과 클린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추진했다. 2002년에는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평양으로 불러들여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를 시인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고백외교’를 통해 북·일수교에 이어지는 일본의 경제적 지원을 겨냥하기도 했다. 한동안 소원했던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방문외교를 재개하고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적 성장을 이룬 이들 국가의 노하우를 받아들이려는 노력도 이어갔다. 그러나 북한의 대서방 관계개선 노력은 ‘자위적 억제력을 보유해야만 체제를 보위할 수 있다.’는 선군정치 논리에 묻혀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문제를 풀지 못한 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06년 10월에는 핵실험을 통해 군사적 위력을 과시했지만 국제적으로는 고립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는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부터 국정운영에 초조감을 드러냈다. 2009년 1월 셋째 아들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2010년 9월에는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을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선임하면서 후계체제 구축에 속도를 냈다. 경제적으로는 2009년 11월 화폐개혁이라는 무리수를 강행해 경제적 어려움을 격화시켰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동안에도 김 위원장은 지난해 5월과 8월, 지난 5월 등 1년여 동안 세차례나 중국을 방문해 황금평과 나진 특구 건설에 뜻을 모았으며 지난 8월에는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해 남·북·러 3국을 관통하는 가스관 연결사업 등에 합의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필리핀 열대폭풍우에 1500명 사망·실종

    필리핀 열대폭풍우에 1500명 사망·실종

    필리핀 남부가 16일(현지시간) 열대 폭풍우 ‘와시’에 휩쓸려 초토화됐다. 남부 민다나오섬의 카가얀데오로와 일리간, 라나오델수르 등 8개주에 집중된 피해로 18일 오후 8시(한국시간)까지 사망·실종자만 1500여명을 넘겼다. 필리핀 적십자사의 집계에 따르면 사망자는 652명에 이르고 900명이 실종됐다.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이 고립돼 있는 데다, 날이 개고 폭우가 그치면서 수면 위로 시신들이 무더기로 떠오르고 있어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피 주민도 3만 5000명을 넘어섰다. 특히 폭풍우는 주민들이 잠든 16일 밤부터 17일 새벽에 발생해 피해가 더 컸다. 12시간여에 걸쳐 내린 폭우가 민다나오 지역의 산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며 잠자던 주민들을 덮쳤다. 홍수에 만조까지 겹치며 수위는 성인 남자 키 높이만큼 급작스레 불어났다. 리처드 고든 적십자사 회장은 “민다나오는 평소에 태풍이 잦은 지역이 아니라서 주민들이 재난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터라 충격이 더 컸다.”고 말했다. 태풍, 강풍 등은 필리핀 중·북부를 주로 강타하지만 북반구의 겨울 찬바람으로 인해 남쪽으로 밀려 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가장 광범위한 타격을 입은 곳은 해안도시인 카가얀데오로와 일리간이었다. 이 도시들은 순식간에 전복된 차량과 뿌리째 뽑힌 나무들이 처참하게 나뒹구는 진창으로 변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카가얀데오로에서만 한국 교민 1명을 포함, 346명이 목숨을 잃었다. 교민 김모(16)양은 침수된 자택을 빠져나오지 못해 변을 당했다. 이곳 마을 23개가 전체 또는 부분 침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카가얀데오로에 거주하는 전 국회의원 아이 에르난데스는 AP와의 인터뷰에서 “1시간도 안 돼 물이 발목 높이에서 3.3m까지 불어나 천장까지 차올랐다.”고 말했다. 24개 마을이 침수된 일리간에서는 206명이 숨졌다. 이들 대부분이 어린이, 여성인 것으로 보고됐다. 콤포스텔라 밸리주(州) 몬카요에서는 산사태로 5명이 숨지고 90명이 긴급 대피했다. 필리핀 당국은 실종자 수색 및 구조작업을 위해 2만여명의 군 병력을 투입했다. 필리핀 재난대응기구는 시체 운반용 부대와 관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미국, 영국 등 국제사회는 잇따라 지원 의사를 밝혔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17일 희생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면서 “필리핀의 홍수 피해를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한편 태국 남부 동쪽 해안가에도 19일까지 이틀간 호우 경보가 내려졌다. 태국 남부센터는 태국만에 최대 3m 높이의 파도가 일 것으로 예상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글로벌 시대] 아·태로 전략적 무게중심 옮기는 미국/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글로벌 시대] 아·태로 전략적 무게중심 옮기는 미국/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으로 외교전략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30일 2박3일 일정으로 미얀마를 방문했다. 미국 국무장관의 미얀마 방문은 1962년 군사정권 집권 이후 처음이었다. 클린턴 장관은 행정수도 네피도에서 테인 세인 대통령을 만났고, 옛 수도 양곤에서 민주화 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 등 야당·시민단체 대표들과도 시간을 가졌다. 불편한 관계였던 두 나라의 관계 개선 시도는 미국의 아시아 접근을 상징한다. 클린턴 장관은 앞서 지난달 10일 하와이대 동서센터에서 미국의 외교전략 중심은 앞으로 아시아·태평양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11월호에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세기’라는 기고를 통해 미국이 왜 중동에서 아·태지역으로 전략 중심을 옮기고 있고, 전략의 원칙과 내용은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이 기고문에서 “미·중 관계는 지금까지 씨름한 양자 관계 중에서도 가장 힘겹고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중국 견제가 깔려 있음을 감추지 않았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 방문자리에서 “태평양시대의 대통령”이라고 말했고, 2010년 클린턴 장관은 난사군도(南沙群島·스프래틀리 군도) 분쟁에 “남중국해에 미국은 핵심적 이해를 가진 당사국”이라며 개입 강화 의도를 드러냈다. 클린턴 장관은 “아·태지역이 21세기 경제무역과 전략의 중심이 되고 있다.”면서 “앞으로 10년 동안 미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이 지역에서 역량을 확대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구축 시도, 안보 동맹 확대, 아·태경제협력체(APEC) 주도권 강화 등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 같은 발언과 움직임은 미국의 전략중심이 중동에서 아·태지역으로 옮겨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왜 이 같은 조정을 하려 하나. ‘테러와의 전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아·태지역의 정치·경제적 중요성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지역은 전세계 정치·경제를 움직이는 엔진이 되고 있고, 미국의 이해관계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주도권을 더 강화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 지역의 모순과 갈등이 미국에 파고들 공간과 기회를 제공하고 영향력 강화의 빌미를 주는 탓도 있다. 이곳은 정치적 대립과 역사적 모순이 겹겹이 쌓여 있고, 경제적 발전단계도 큰 차이를 보인다. 다른 이념과 생각들이 부딪치고 있다. 지역 강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일부 국가들은 미국을 이용해 중국을 견제하고 중국의 발전을 막으려 한다. 아·태지역에서 미국 외교전략의 초점은 어떻게 중국과의 관계를 정하느냐다. 미국의 대중전략 기조는 중국의 빠른 발전과 국력 강화를 막고, 중국의 확대되는 국제적 영향력을 견제하는 것이다. 중국을 의식한 외교전략의 이동이다. 중국 외교의 중점은 국가발전을 위해 평화롭고 안정된 주변환경의 확보에 있다. 미국은 주변국가와 중국 간의 갈등과 부딪침을 부채질한다. 냉전종식 이후 미국의 대중국 정책의 중심은 관여와 견제였다. 시기와 사안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원칙은 바뀌진 않았다. 호주 최북단 다윈에 미 해병대를 주둔시키기로 하고 우선 250명을 파견한 것도 중국을 겨냥한 일본, 필리핀 등과의 안보 동맹 일환이다. 미국은 중국을 둘러싼 전략적인 포위망을 만들려 해왔다. 난사군도 및 시사군도(西沙群島) 분쟁 탓에 미국의 이런 움직임에 동조하는 아시아 국가들도 있다. 미국은 인도에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 위협’ 견제라는 점에서 인도도 미국과 공감대를 갖고 있고,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려는 생각도 있다. 그렇지만 독립적 외교를 중시하는 인도가 미국을 추종하거나 남아시아에서 미국의 대리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가야 할 길이 멀다. 사회경제적 개혁, 민주화의 확대, 빈부격차 해소와 부정부패 방지. 낮은 자세로 주변국가들의 반감을 사지 않는 사려 깊고 조화로운 정책 추구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 힐러리 클린턴 “여성들이여 정치에 뛰어들어라… 보상 있으리”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15일(현지시간) 알려지지 않았던 자신의 경험담을 솔직히 공개하며 여성들의 공직(정치) 진출을 강하게 독려했다. 또 여성이라는 이유 만으로 대통령이 돼선 안 된다는 편견도 사라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직 여성 앞에 장벽은 여전” 그는 국무부에서 열린 ‘공직의 여성들’ 세미나에서 연설을 통해 “내가 뉴욕주 연방상원의원에 출마하라는 압박을 받았을 때 두려움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면서 “한번도 선출직에 출마한 적이 없었기에 그것이 옳은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 ‘아냐, (출마)하지 않을 거야’라고 결심했다가 다음날은 ‘아니지, (출마를)고려해야 해’라고 마음을 고쳐먹는 등 생각이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러던 중 뉴욕시내 한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을 때 당시 고교 농구팀 주장이었던 여성이 나와 악수를 하면서 (내 마음을 읽었는지)귀엣말로 ‘과감히 경쟁에 뛰어드세요’라고 속삭였다.”며 “그 직후 나는 출마를 선언했고 그것은 내 인생에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들이 과감히 경쟁에 뛰어든다면 크고 지속적인 보상을 받을 것으로 믿는다.”라고 강조했다. ●“여성 대통령 안된다는 편견 버려야” 그는 그러면서도 “아직 여성 앞에 장벽은 여전하다.”며 여성 정치인에 대한 세간의 편견을 지적했다. 그는 전날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공화당 여성 대선주자인 미셸 바크먼 하원의원에 대한 질문을 받은 일을 거론하면서 “(성별을 떠나)그녀는 자신의 장점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클린턴 장관은 “많은 남성들이 아직도 여성은 집안 일이나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심지어는 여성들 중에서도 ‘여성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 공직 진출은 재능 활용 측면서 바람직” 그러면서 “테이블(판)을 뒤집어 엎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많은 여성이 정부로 진출해 능력을 입증해 보이는 것”이라면서 인도의 예를 들었다. 2003년 인도 지방자치단체장 자리의 3분의1을 여성에 의무 할당한 이후 뇌물 사건이 급감하고 행정 서비스도 좋아졌으며, 이에 따라 이후 선거에서 여성 후보들이 더 많은 표를 얻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클린턴 장관은 “여성을 공직에 쓰는 것은 공정성 차원을 넘어 재능 활용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이라며 “이런 자원을 무시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中, 수치 여사와 면담…美에 외교 반격

    중국의 특명전권대사가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 아웅산 수치 여사를 만났다. 중국이 수치 여사의 가택연금 이후 공식적으로 그를 접촉한 것은 처음이다. 이달 초 미 국무장관으로는 50년 만에 처음으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미얀마를 방문해 수치 여사를 면담하는 등 미국과 미얀마 간의 관계정상화 움직임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미얀마의 민주화 추진 과정에서 정부뿐 아니라 야당과의 접촉면을 확대함으로써 미얀마에 대한 영향력 유지를 노리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 외교부 류웨이민(劉爲民) 대변인은 15일 정례브리핑에서 “수치 여사가 여러 차례 접촉을 제의해 왔다.”면서 “이에 따라 미얀마 주재 대사가 만나 그의 의견을 들었다.”고 공개했다. 류 대변인은 또 “중국은 상호존중과 내정불간섭의 전제하에서 중국과의 우호협력을 지지하는 미얀마 각계인사와의 교류를 전개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수치 여사 면담 일시와 대화 내용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앞서 수치 여사는 클린턴 장관과 만나기 직전 “미얀마의 이웃인 중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길 희망한다.”며 미국 뿐 아니라 중국과도 긴밀하게 접촉할 의사가 있음을 피력한 바 있다. 중국이 그동안 미얀마 군사정부 일변도의 ‘공식 외교루트’만 을유지해왔다는 점에서 수치 여사 접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지적이다. 미국이 그동안의 봉쇄정책을 풀면서 미얀마에 손을 내밀고 있는 현실적 요인을 감안해 미얀마에 대한 영향력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성추문 낙마’ 허먼 케인 돈방석 예약

    잇단 성추문 의혹으로 최근 미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낙마한 피자 체인 최고경영자(CEO) 출신 허먼 케인(63)이 ‘깜짝 스타’의 명성으로 강연과 토크쇼 등에서 몸값이 급등해 돈방석에 앉을 것으로 보인다고 로이터통신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관련 업계는 케인의 강연료가 선거운동 이전보다 3배 급등해 5만 달러(약 5700만원)를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현재 가장 유력한 공화당 대선 후보로 꼽히는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의 강연료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25년 경력의 한 강연업계 관계자는 “케인은 이제 유명 연사의 반열에 올랐다.”고 말했다. 현직에서 물러난 정치인이 큰 돈을 버는 사례를 감안하면 짧은 정치 경력에도 강한 인상을 남긴 케인 역시 이들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회고록의 선불 인세로 1500만 달러를 받았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2009년 1월 퇴임 이후 비슷한 수준의 강연료를 벌어들였다. 또 2008년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은 2009년 알래스카 주지사에서 물러난 뒤 8개월 만에 강연과 TV 출연, 책 출간 등으로 최소 1200만 달러를 벌었다. 하지만 공직 경험이 전무하고 첫 투표도 치르기 전에 후보 경선을 멈춘 케인이 이 정도의 성공을 거두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성추문 의혹에 대해 결백을 입증하든지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든지 어떤 식으로든 매듭을 짓지 않으면 공인으로서 입지를 넓힐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로이터는 지적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러 “투표 조작” 내부 고발… 푸틴 종말 서곡?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에 대한 퇴진 시위가 7일(현지시간) 사흘째 러시아 주요 도시를 잠식했다. 경제 부진, 예산 부족 등으로 푸틴에게 반전의 기회가 없는 상황에서 푸틴의 재집권, 부정선거에 대한 민심의 분노로 촉발된 이번 시위가 ‘푸틴 종말의 서곡’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푸틴은 굳건했다. “매일 시위를 열겠다.”는 한 소셜네트워크단체의 선전포고에도 아랑곳 않고 그는 이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내년 3월에 치러질 대선 후보 등록 서류를 제출했다. 지난 5일 푸틴의 대통령직 복귀를 말렸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인테르팍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지도자들은 이번 총선에서 수많은 조작이 저질러져 선거 결과에 국민의 뜻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고 새로 치러야 한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오는 10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갖자는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1만 5000명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 전날 수도 모스크바와 푸틴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위에서는 총 569명이 체포됐다. 특히 모스크바에서는 푸틴 지지 시위대 1만 5000여명이 ‘맞불 시위’에 나서 반정부 시위대와 충돌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대표적인 야권 지도자인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와 진보계열인 야블로코당의 세르게이 미트로킨 당수가 경찰에 연행됐다. 내무부는 5만 1500명의 경찰과 2000명의 진압부대를 모스크바에 배치했다. 선거 조작, 시위대 구금 등을 겨냥한 미국, 영국, 프랑스,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의 비난이 고조되는 가운데 “러시아 선거는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못했다.”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발언에 대해 러시아 외무부가 “용납할 수 없다.”고 맞대응해 양국 간 외교관계도 얼어붙을 위기에 놓였다. 투표 조작을 지시받았다는 지역 선거관리위원장의 내부 고발까지 공개되면서 파문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선관위의 한 위원장은 이날 AP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감독하던 모스크바의 한 투표소에서 푸틴이 이끄는 통합러시아당이 요구한 대로 득표율 65%를 맞추기 위해 투표 결과를 조작했다고 털어놨다. 득표율 조작에는 통합러시아당뿐 아니라 다른 주요 정당도 동참했다. 이 위원장은 “총선이 시작되기 전 주요 정당 4곳의 대표들이 모여 각 당이 얼마만큼의 득표율을 가져갈지 협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 당일 선관위 직원들을 동원해 미리 기표된 투표용지를 한 번에 최대 50장씩 투표함에 넣는 식으로 선거 결과를 조작했다.”면서 “조작된 투표용지를 제외하면 집권당의 실제 득표율은 25%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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