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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차와 커피차의 사회학…MZ게이머가 원하는 건 ‘소통’이었다[보편적겜뷰]

    마차와 커피차의 사회학…MZ게이머가 원하는 건 ‘소통’이었다[보편적겜뷰]

    보편적겜뷰 <9> 편집자주: 어릴 적부터 젤다의 전설, 슈퍼마리오, 파이널 판타지로 밤을 샜고, PC방에서 메이플스토리,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아이온을 신명나게 했습니다. 언론사에 들어오고 서초동과 세종시를 떠돌며 잠시 게임을 손에서 놨지만, 산업부 게임 출입기자가 되면서 다시금 컨트롤러와 키보드를 집어들었습니다. 기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게이머로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게임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최근 몇 년 사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한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 지난달 26일, 초고층 빌딩들과 내로라하는 국내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몰려드는 이곳에 난데없는 마차가 돌아다녔습니다. 바로 육성형 게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를 운영하는 카카오게임즈를 겨냥한 시위였습니다. 지난해 수많은 국내 게임사들이 유저들의 항의 현수막을 단 ‘트럭 시위’를 경험했는데, 우마무스메는 경마를 소재로 하는 만큼 트럭을 마차로 변형한 것이죠. 유저들의 요구는 다양했지만, 결국 한가지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바로 ‘소통’을, 그것도 ‘제대로’ 하라는 것이죠. 물론 카카오게임즈 측은 수차례 사과문을 올리고 조계현 카카오게임즈 대표도 직접 나서서 사죄를 표했습니다. 하지만 유저들이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습니다. 유저들은 최후통첩으로 직접적인 쌍방형 소통을 위한 간담회를 열라는 요구를 재차 전달했고, 결국 카카오게임즈는 백기를 들고 간담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유저 측의 판정승으로 평가됩니다. 지난해 넷마블부터 시작된 ‘트럭 시위’ 릴레이 유저들이 적극적으로 트럭을 (혹은 마차를) 동원한 시위에 나선 것은 지난해 1월부터입니다. 당시 넷마블의 ‘페이트 그랜드 오더’(페그오)는 기존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스타트 대시 캠페인을 중단하면서 일본과 서비스 차별 논란에 휩싸였고, 이후에도 유저들과 제대로 된 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불만이 커졌습니다. 결국 유저들은 (지금의 카카오게임즈처럼) 자발적으로 모금을 벌여 세 차례에 걸쳐 본사 앞으로 트럭을 보냈습니다. 판교에 갑작스레 등장한 트럭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고, 이는 연쇄적인 트럭 시위의 시초가 됐습니다.넷마블을 시작으로 같은 해에만 엔씨소프트, 넥슨, 그라비티, 데브시스터즈, 스마일게이트, 콩스튜디오, 시프트업 등의 게임사가 유저들이 보낸 트럭을 받아야 했습니다. 특히 넥슨은 ‘마비노기’, ‘메이플스토리’, ‘클로저스’, ‘엘소드’ 등으로 수차례에 걸쳐 유저들의 트럭 시위를 직면해야 했습니다. 물론 세부적인 이유는 제각기 달랐지만, 결국 사측의 폐쇄적인 소통 방식이 불만을 크게 키운 것은 동일합니다. 카카오게임즈 유저들 “지속적인 소통 창구 신설해달라” 우마무스메 유저들은 지난달 마차 시위를 진행하며 본사에 제출한 성명서를 통해 ▲운영 총책임자의 공식적인 사과 ▲유저 대표와의 간담회 개최 및 추후 지속적인 소통 창구 신설 ▲콘텐츠 누락 및 오역 문제에 대한 책임 소명 및 복구 ▲카카오게임즈의 운영 권한과 책임의 한계, 사내 업무 과정을 공개 ▲현 운영팀의 전면 교체 및 책임자의 견책 등을 5가지 사항을 요구했습니다.정리하면 유저들은 사측에 진실된 사과와 적극적인 소통을 원하는 것이죠. 한국게임학회장을 맡고 있는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카카오게임즈가 유저들의 아픈 마음과 우마무스메에 대한 애정을 모르는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유저들이 한국에서 재화가 훨씬 많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닌데 카카오게임즈가 오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저에 대한 배려나 그들과 게임이 함께 성장한다는 발상이 없다”고 지적했다. 현시점에선 간담회를 열기로 약속했지만, 이전까지 카카오게임즈가 유저들에게 간담회 개최 약속을 피해온 점에 대해서도 위 교수는 “공개적인 간담회를 거부하고 비공개 회의를 통해 소수가 모인 곳에서만 얘기를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사태의 본질을 전혀 모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카카오게임즈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인식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지난해엔 트럭, 올해는 커피차 받은 넷마블…정답은 ‘소통’ 해답은 간단합니다. 유저들이 원하는 건 일방적이고 형식적인 사과문이 아닌 사측의 진실된 소통입니다.지난 7일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넷마블 신사옥 앞에 유저들이 보낸 커피차가 나타났습니다. 넷마블과 자회사 넷마블엔투 임직원이라면 무료로 마실 수 있는 커피차는 사측의 지속적인 소통과 서비스 개선을 위한 노력에 대한 유저들의 ‘깜짝 선물’이었습니다. 커피차를 보낸 주체는 다름 아닌 트럭 시위의 시초였던 페그오 유저들이었습니다. 세 차례에 걸친 트럭 시위 이후 넷마블은 유저들과 간담회를 가진 이후 지난해 3월부터 유저 공식 방송을 진행하는 한편 소통 창구를 열었고, 실제 유저들의 지적을 적극적으로 게임에 반영하면서 호응을 얻었습니다.‘착한 과금’으로 인기를 얻은 로스트아크를 운영하는 스마일게이트도 대표적인 소통에 강한 게임사입니다. 특히 금강선 당시 로스트아크 총괄 PD는 유저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빛강선’으로 불리기도 했죠. 비록 스마일게이트도 지난해엔 자회사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를 통해 서비스된 모바일 RPG ‘에픽세븐’ 문제로 트럭을 받았지만, 로스트아크에 대해선 같은 해 커피차 모금이 이뤄졌습니다. 물론 코로나19가 재확산되는 상황이었던 만큼 결과적으로 커피차 이벤트를 불발됐지만, 채찍과 당근을 확실하게 주는 유저들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 해프닝이었습니다. 조만간 카카오게임즈와 유저들도 어려움 끝에 성사된 간담회 자리에서 마주할 예정입니다. 어떤 내용이 오갈지 알 수 없지만, 이른 시일 내에 카카오게임즈 앞에서도 커피차를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해봅니다. 또 다른 마차가 아니라요.
  • 자유의 몸 된 브리트니, 새 노래 발표…“벅찬 일”

    자유의 몸 된 브리트니, 새 노래 발표…“벅찬 일”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40)가 6년만에 새 노래를 발표했다. 스피어스는 26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영국 팝가수 엘턴 존과 듀엣곡 ‘홀드 미 클로저’(Hold Me Closer)를 공개했다고 알렸다. 이번 신곡은 지난 2016년 앨범 ‘글로리’ 발매 이후 6년만이다. 스피어스는 지난해 11월 법원의 결정으로 후견인인 친부 제이미 스피어스(70)의 통제와 간섭에서 벗어나 성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노래를 낸 소감에 대해 “나에게 벅차면서도 큰 일”이라고 전했다. 존은 “스피어스는 팝의 아이콘이자 역대 가장 위대한 팝스타 중 한 명”이라며 “함께 곡을 만들어 기쁘다”고 말했다. 노래는 1971년 존이 발표한 발라드 ‘타이니 댄서’(Tiny Dancer)를 클럽 댄스풍으로 바꾼 것이다. 팬들은 ‘#웰컴백브리트니’(WelcomeBackBritney)라는 해시태그를 단 글을 트위터에 올리며 그의 복귀를 환영했다. 스피어스 신곡은 발매 이후 몇 시간만에 미국·영국 아이튠즈 차트 1위에 올랐다. 그는 지난해 강압적인 통제를 받고 있다며 친부의 후견인 자격을 박탈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2008년 후견인으로 지명된 친부는 6000만달러(약 687억원)에 달하는 브리트니 재산에 대한 관리권을 가지고 있었다. 소송을 진행하며 방영된 다큐멘터리로 브리트니의 사연이 알려지자 팬들 사이에서 이른바 ‘브리트니 해방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 조선의 ‘화가 신씨’, 신사임당은 ‘시대착오적’ 현모양처인가? [클로저]

    조선의 ‘화가 신씨’, 신사임당은 ‘시대착오적’ 현모양처인가? [클로저]

    친정에 머무르며 시댁과 접한 시간 적어집안 위세 높고 실력 떨친 사임당,시대 가치 변화 따라 선택적 이미지 강화“지금 동양(東陽) 신씨가 있는데,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그의 포도와 산수는 한 때에 절묘하여 평하는 사람들이 안견(安堅)에 버금간다고 했다. 아! 어찌 부인의 필치라 하여 소홀히 할 것인가. 또 어찌 부인이 마땅히 할 일이 아니라 하여 책망할 것인가.” (조선 중기 학자 어숙권, 『패관잡기』) 62년 전인 1960년 8월, 우리가 오늘날에도 사용하고 있는 1만원권이 처음 등장했습니다. 세종대왕의 초상이 그려져 있죠. 1972년 7월, 5000원권에는 율곡 이이가 등장합니다. 2003년, 새 지폐 발행 이야기가 나오자 여성 위인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습니다. 2007년, 신사임당이 결국 5만원권 지폐 모델로 선정됐죠. 2009년에 시중에 유통됐습니다. 아들 율곡이 5000원권에 등장한 지 37년만에 어머니가 최고액 지폐의 주인공이 된 겁니다. ● “내 사후 혼인 말라” 당시 사임당이 지폐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현모양처’의 시각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여론도 일부 존재했습니다. 부적절한 모델을 확장하는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이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사임당은 정말 현모양처였을까요. 일처다부제가 일반적이었던 조선시대, 사임당은 남편 이원수에게 자신의 사후 재혼하지 말라고 요구했습니다. ‘동계만록’에는 이원수가 공자와 증자의 사례를 들어 이에 반발하자, 사임당은 공자는 부인을 내쫓은 것이 아니며, 증자는 새 장가를 들지 않았다고 반박했다는 기록이 있죠. 주자가 새 장가를 들지 않았던 사실도 강조합니다. ● “화가 신씨, 사대부에 의해 변모” 사임당 생전 그의 이미지는 오늘날처럼 현모양처보다는 실력있는 화가였다는 주장도 있죠. 화가 신씨로 더 알려졌던 그는 사후 100년이 지나 17세기, 노론의 영수 송시열에 의해 우리가 현재 인식하는 현모양처의 이미지로 소비됐습니다. 율곡 이이를 부각시키려면 그의 어머니 역시 위대해야 했고, 현모양처라는 가치는 이 때 가장 쓰기 좋은 개념이었죠. 이후 1970대 박정희 정권 당시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를 사임당에 투영해 우상화하면서 사임당의 현모양처 이미지는 더욱 강화됩니다. 글, 그림, 시에 탁월했던 사임당이 사후 유교적 가치, 정치적 필요에 따라 현모양처라는 점을 강조한 위인이 된 것이죠. ● 사임당의 터, 강릉 사임당은 생전 남편을 따라 옮겨다니며 살지 않고 친정인 강릉에 오래 머무른 사람입니다. 남편이 좋지 못한 지기를 만나면 그를 단속하고, 과거 공부를 게을리 하면 닦달을 하기도 했죠. 사후 혼인을 하지 말라는 당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한편 저작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죠. 오늘날 전해 내려오는 초충도의 상당수는 사임당의 작품이라는 설도 존재합니다. 이 때문에 사임당을 그저 ‘어머니’로만 표현한 강릉 오죽헌의 안내문 등은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왕성한 작품 활동 터전이었던 강릉을 그저 ‘현모양처의 터’로만 편집했기 때문입니다.  ● 시댁 접촉 적었던 사임당 사임당이 초충도 등 훌륭한 작품을 남기고, 딸 세 명, 아들 네 명을 낳아 기르면서 바느질에도 소질이 있었던 등 완벽한 인물로 그려질 수 있었던 배경은요. 시댁과의 접촉이 적었고 친정의 위세가 셌던 영향이 큽니다. 당대 다른 여성들과 달리 자신의 실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사임당의 어머니는 강릉 유명집안 이조참판 최치운의 자손입니다. 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는 혼인 후 16년간 부인의 집인 강릉과 서울을 오가며 생활했습니다. 이는 강릉의 친정 어머니가 병을 앓게 되자 무남독녀인 사임당의 어머니가 “집에서 어머니를 돌보겠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각자 부모를 모시자는 아내의 말을 남편이 잘 따른 것이죠. 사임당은 이러한 외가의 영향을 받아 친정에서 보낸 세월이 길었습니다. 남편은 데릴사위로 사임당의 집에서 지내기도 했죠. “사임당은 어느 날 남편을 학문에 매진시켜야겠다고 결심하고, 학업을 위하여 10년 동안 서로 떨어져 지낼 것을 제안했다. 남편이 이를 어기자 돌려보내 학업에 전념하도록 했다”는 강릉 지방 전설은 사임당이 집안 단속도 맡았을 가능성을 반영합니다. ● 율곡 “포도 탁월” 허균 “문장 능해” 율곡은 “7세 때부터 안견의 그림을 모방했고 산수도를 그린 것이 절묘했다. 특히 포도 그림이 탁월하다”고 어머니의 실력을 기록했습니다. 17세기의 허균은 사임당에 대한 당대의 평을 옮겨 “문장에 능하고 그림을 잘 그렸다”고 남겼죠. 그 어디에도 ‘여류 화가’라는 오늘날의 이름은 없습니다. 그저 당대 유명 문인, 화가로만 기록됐을 뿐입니다. “신사임당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한계를 극복하고 시, 글씨, 그림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였다.” 한국은행은 사임당을 5만원권 도안에 넣으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 시대착오적 인물이라는 비판에 이렇게 설명한 겁니다. 율곡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실력이 좋다고 언급하면서도, 집안 관리를 잘해 유교 이념에 부합했다고 서술했습니다. 이러한 율곡의 기록을 조선 사대부들은 그대로 수용했죠. ● 시대가 만든 이미지의 아쉬움, 새 시대의 몫 자신의 재능이 있더라도 드러내기 어려웠던 조선시대, 대학자 율곡의 어머니였던 사임당의 기록은 아주 잘 남았습니다. 대신 당대 화가 신씨로 불리던 기록이 아닌 율곡의 어머니 이미지가 강화됐고, 이후 사회적 가치 변화에 따라 현모양처로 더 크게 변모됐죠. 비교적 현대에 와서는 자식들이 똑똑했다는 점에서 교육을 잘했다는 점도 부각됐습니다. ‘화가 신씨’에서 ‘현모양처 사임당’이 된 그의 이미지가 앞으로 어떻게 또 변화하고 재생산 될지, 변화된 가치에 따라 어떤 면이 부각될지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 “표절이다” ‘中 한류열풍’ 허난설헌 괴롭힌 그 시비들 [클로저]

    “표절이다” ‘中 한류열풍’ 허난설헌 괴롭힌 그 시비들 [클로저]

    허난설헌, 살아서도 죽어서도 오해도교 색채 짙었던 그의 작품들그릇 작은 시대가 이해하기엔 무리“나이 스물일곱 살에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서 집안 사람들에게 ‘금년이 바로 3과 9(3X9)의 수에 해당하니 오늘 연꽃이 서리에 맞아 붉게 되었다 하고 눈감았다.” 조선 사대부 시절 중국서 한류열풍을 일으켰던 허난설헌의 죽음에 대한 기록입니다. 허난설헌의 집안이 도교 색채가 강했고, 그의 작품에도 이러한 경향이 반영된 것을 보아 신격화된 기록일 수도 있겠죠. 혹은 자살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허난설헌은 1563년(명종 18년)양반집안서 ’초희‘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27세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400년 전 중국서 오직 실력으로 한류열풍을 일으켰던 허난설헌, 그는 남녀 유별이 엄격했던 조선에서 살아서도 죽어서도 논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의 남동생 허균의 다른 자아였을 거라는 주장은 오늘날까지도 진짜인 것처럼 퍼져있기도 하죠. 허난설헌의 작품은 당시 여성 시인들의 작품이 유행하던 중국서 빠르게 퍼졌습니다. 허균이 명나라 사신들과 교류하며 이들에게 조선의 여러 작품을 전파했는데, 이중 허난설헌의 시도 있었죠. 이에 따라 1600년 출판된 ’조선시선‘(오명제)에 그의 시가 소개됐습니다. 이어 ’긍사‘(반지긍), ’명원시귀‘(종성)은 허난설헌의 시가 대부분인 채로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조선 땅서 살아 생전 홀대받았던 허난설헌의 작품이 중국서는 높은 인기를 구가한 것입니다. ● 역수입된 조선 여인의 글 “낭군께선 본래부터 무심하신 분 동접들은 어떤 분들이시기에 이간질이실까?” 허난설헌 남편 김성립의 친구였던 문장가 신흠의 기록입니다. 이에 따르면 허난설헌은 김성립이 기생방에서 놀고 있다던 거짓말에 이렇게 응수하며 술을 보냈다고 합니다.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호방함을 가졌던 허난설헌은 평생을 오해받아야 했습니다. 중국과 일본에 널리 퍼졌던 허난설헌의 작품들이 조선으로 역수입되면서부터입니다. 허균이 역적으로 몰려 죽은 후, 동서 지간이던 이수광은 허난설헌의 시중 일부가 당나라 시인 조당의 시를 베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은 허균이 지은 것이라고 우겼죠. 앞서 허난설헌에 대한 기록을 남겼던 신흠도 허난설헌의 시 중 절반 이상이 표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 주장의 상당 부분이 허균의 시를 끼워 넣은 것이라는 맥락이었죠. 즉, 남성만이 시를 지을 수 있다던 당대의 시각을 반영해 논리가 빈약한 주장을 읊었던 것입니다. 허균이 역적으로 몰려 사망한 후라 그와 거리를 두어야 했겠지만, 그 공격 대상이 여성인 허난설헌이 돼야 했고, 오늘날까지 그 주장이 영향을 끼쳐 허균의 작품이라는 설이 도는 것을 보면 씁쓸한 부분이죠. ● 표절, 남동생 작품 주장 허점은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허난설헌은 자신을 괴로움을 시로 풀었을 뿐, 활동을 한 적이 없으며, 27세 젊은 나이에 죽으면서 자신의 작품들을 태우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무서운 정치란 것이, 이미 죽은 창작자를 한 번 더 죽인 것이죠. 이 때문에 난설헌집의 대다수 작품이 습작이었다는 점이 이러한 논란을 더 부추겼습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불탔기에, 허균이 지닌 난설헌집엔 허난설헌 혼자만의 습작품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죠. 또한, 당대 중국 시를 가져다 재창조하는 의고시가 유행했던 영향도 있습니다. 또한 그의 작품엔 여성으로서 느끼는 답답함이 한껏 들어가 있어, 허균의 창작품으로 볼 수 없다는 해석도 힘을 얻습니다. ● 후대로 이어진 논란 허난설헌은 이미 혼인한 여인이 다른 남성을 사모했다는 우스운 오해도 받아야 했습니다. 오늘날에야 혼인한 남성, 여성이 당대 유명한 작품에 빠지는 것이 흠이 아니지만 16세기 조선에서 여성이 당나라 시인 번천 두목을 사모했다면, 논란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라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죠. 허난설헌의 집안은 허균과 함께 시를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자를 가질 수 있게 하는 등 당시로선 깨어있는 집안이었습니다. 허난설헌의 자는 ’경번‘이라고 지어졌는데, 이것이 당나라 시인을 사모해 지은 이름이라는 설이 조선에서 제기된 겁니다. 이 때문에 허난설헌은 되도 않는 오해를 받아야 했죠. 또한, 허균의 기록에 따르면 허난설헌의 호인 난설헌은 그가 직접 지은 것이지만 자는 누가 붙인 것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즉, 당대의 순리대로 아버지가 지었을 지점이 존재합니다. 또한, 김성립의 주변인들이 당나라 시인과 엮어 김성립을 놀렸던 것에서 이 논란이 시작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다만 이들이 10대에 결혼했으므로, 이는 어린 장난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실인 것처럼 변질된 것이죠. ● 홍대용·박지원조차 치우친 기록 홍대용, 박지원 등 실학자조차 이를 오해해 “저 생에서 두목을 따루고 싶네”라거나 “경번이라는 이름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기록을 남기는 등 답답한 오해가 이어집니다. 다만 경번이라 함은, 도가 사상에 젖어있던 허난설헌이 중국 선여 번고에서 따왔다는 설이 더 유력합니다. 허난설헌은 작품 속에서 도교적 색채를 자주 드러냈고, 유선시를 통해 이를 노래했죠. 도술이 뛰어나며 남편과 관계가 좋았던 그 선녀처럼, 노니고 싶다는 의미였겠죠. 동일시의 대상은 이 선녀였다는 해석이 더 힘을 얻습니다. 중국에선 경번을 이름이나 호로 오해하고 있으며, 후대에 관련된 추측들이 이어집니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강릉서 태어난 이 유사한 여인들의 삶과 그 후 평가는 왜 달랐을까요. 친정에 머무른 시간, 바느질 실력, 여러 차이가 있습니다만 이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신사임당의 아들은 율곡 이이라는 점, 허난설헌의 남동생은 허균이었다는 점이죠. 두 인물의 길은 아주 다릅니다. 정치란, 옛날에도 아주 무서운 것이었죠. 
  • 1991년, 그 해 태어난 아이 서른 됐는데…1호 ‘위안부’ 나온 후 지금은 [클로저]

    1991년, 그 해 태어난 아이 서른 됐는데…1호 ‘위안부’ 나온 후 지금은 [클로저]

    여전히 공식 사과없는 일본고노담화는 지우기피해자 목소리는 시간 흐르며 사라져“일본 제국주의자는 매춘제도의 가장 저변에 조선 부인을 대량으로 투입했다. 특히 군대를 상대로 하는 ‘위안부’ 제도야말로 가장 야만스럽고 오욕스러운 것이었다. 이것은 ‘위안부’ 한 명이 줄을 서서 차례로 밀려들어 오는 50명의 천황제 일본군 병사를 하루에 상대할 것을 강제한 제도였다. 이는 조선 본토뿐만 아니라 ‘만주’에서도 ‘지나대륙’에서도, ‘남방’에서도 우리 ‘황군’의 모든 전선에 ‘위안부 부대’로 배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중 80%가 강제로 끌려가 내몰린 조선 부인이었다.” (『일·조·중 삼국신민연대의 역사와 이론』, 일본조선연구소, 1964) 제77주년 광복절 후 일부 ‘위안부’ 피해자들의 서운함이 담긴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여전히 일본의 사과는 없기 떄문이죠. 1990년부터 2007년까지 17년간 ‘위안부’ 문제는 늘 한일 간의 주요 현안 문제였습니다. 1990년 한구에서 ‘위안부’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죠. 1991년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가 등장하면서 문제는 공론화되기 시작합니다. 1993년 8월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고노 관방장관 담화로 발표했죠. ● ‘위안부’ 문제는 현재진행형 그러나 이러한 일본 정부의 사죄는 아시아여성기금 형식을 취했고, 이에 ‘위안부’ 피해자들과 한국 단체가 거부하면서 피해자 일부만 기금을 받았습니다. 제대로 된 사죄가 아니었다는 비판이 이어졌죠. 이어 2011년 8월 30일, 한국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109명이 낸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한일조약 때 청구권협정 제2조 1항으로 소멸됐는지 아닌지에 대해 양국 정부 사이에 해석상의 분쟁이 있던 참이죠.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11명입니다.  2013년 등장한 아베 정권은 고노 담화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배경에 있는 아사히 신문의 보도가 틀렸다는 주장 등이 힘을 얻었죠. ● “우리나라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문제 밝혀야” 앞서 언급한 김학순 할머니는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처음 밝힌 분입니다. 그는 1991년 8월 14일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혔고, 이후 “우리나라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정신대 문제를 밝혀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반성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전세계로 알리는 트리거가 된 것은 물론, 당시 쉬쉬하던 피해자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역할도 했죠. 이후 위안소 안에서의 인격 말살에 논점이 잡혔습니다. 김 할머니는 지금은 고인이 되셨죠.● “강제연행 확인 불가” vs “설명 못 듣고 배 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본 정부는 검증보고서를 통해 “일련의 조사를 통해 얻은 인식은 이른바 ‘강제연행’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던 경찰이 과연 인도적으로 조선 처녀들을 연행했는지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존재합니다. 당시 21세 이하의 여성에게 매춘을 시켜서는 안 된다는 국제조약이 있었지만, 일본 정부에게 이는 무용지물이었죠. 2013년 미얀마·싱가포르에서 위안소 관리를 맡았던 조선업 업자의 일기도 발견됐습니다. 그는 1942년 전반에 여성 2800명을 모집해야 했다고 기록합니다. 이들 중 일부 그룹에 대한 심문 자료도 남아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여성들은 일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배를 탔습니다. 이처럼 조선 등에서 보통의 처녀들이 좋은 일자리라는 말에 현혹돼 모집됐습니다. 인근 마을을 습격해 납치하는 경우도 존재했죠. ● 제77주년 광복절, 사과는 아직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해방의 감격에 기뻐했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숨어야 했습니다.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일본군 ‘위안부’ 모집, 이송, 관리에 일본 정부가 관여했다”는 명확한 이야기는 이제 일본에선 자리가 없습니다. 아베 총리는 집권기 내 고노 담화를 검증한다며 무력화하려 노력했죠. ‘과거는 과거일뿐’이라는 논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일본 정부와 교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과거사 청산이 망각되는 것, 일어나서는 안 될 일입니다. 분명한 방식의 공식 인정과 사과, 아직 필요합니다. 11명.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 中 일각서 ‘디올 베끼기’ 논란…디자인의 영감, 어디서 올까 [클로저]

    中 일각서 ‘디올 베끼기’ 논란…디자인의 영감, 어디서 올까 [클로저]

    디자이너, 전통 참고하며 디자인하면 안 되나“고서를 많이 봐요. 조상들이 해둔 자료에 상세하게 디자인이 적혀 있거든요. 물론 이해하기까지 공부를 많이 해야 하지만 다 필요한 작업이죠.” (전통의복 D사 대표, 기자와의 인터뷰) “새로운 걸 제시해야 했어요. 오래 전 형제와의 추억을 떠올렸죠. 경계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사 속 무늬를 찾아 영감을 받았죠.” (명품 D사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 브랜드 스토리북) 일부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전통 의상을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서 복제했다며 지난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앞선 클로저 코너를 통해 일부 중국인의 디올 관련 의견을 전한 바 있죠. 디자이너가 전통을 공부해 의상을 제작하는 것,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일일까요. 일부 중국인들의 주장처럼 디올이 실제로 이들의 전통의복을 참고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중국 내에서도 억지 주장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죠. 또한, 디자이너가 전통을 참고해 공부했다는 사실 자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마냥 지적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 전통에서 공부디자이너의 업무 한 업체를 취재하던 때의 일입니다. 국내 유명 아이돌이 입어 화제였던 전통의복 업체 대표는 디자인의 영감으로 고서를 꼽았죠. 디자이너들이 옛 전통에서 디자인을 가져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영감을 얻어 새로운 전통을 이어나가는 것은 어느 업계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관건은 차별화입니다. 자신만의 영감을 불어넣어 새로운 라인을 창조해야 하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이 매번 새로운 컬렉션을 준비하며 고뇌하는 거겠죠. 오뜨꾸뛰르의 정의를 보면 이해가 좀 쉽습니다. 아주 숙력된 장인이 정교한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내는 개인 맞춤 여성복이라는 의미인데요. 패션을 공부할 때 이 라인은 고가 라인이며 과거의 패턴 디자인을 많이 참고, 이를 발전시키는 것이 관건입니다. 고객들에게 개인 맞춤형 의상을 제작했던 전통이 있으므로 모든 오뜨꾸뛰르 작품이 다품종 소량생산이었기에, 창의성의 산물로 남아있죠.● 전통 기반으로자신의 창의성 구현 이러한 전통 덕에 오늘날 오뜨꾸뛰르는 대개 브랜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의상을 칭할 때 붙입니다. 브랜드의 상징이 될 만한 작품을 만들고 이를 얼마나 잘 구현했는지, 시장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지가 관건이 됩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말하듯 패션쇼에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의 디자인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감을 공유한 이후 대중에겐 간결화된 디자인으로 퍼지는 것이, 지금까지의 패션 시장의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고서를 보거나 과거의 자료를 보는 것은 왜 필요할까요. 패션에도 엄격한 고증이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한복에서 모티브를 받았다면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많이 벗어난다면 전통성을 침해한다는 일각의 비판을 받기도 하죠. 실제 국내서 1020세대를 중심으로 한복을 다시 입는 것이 유행하면서 개량된 한복의 정의에 대해 업계의 토론이 일어난 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전통은 민감한 문제입니다. ● 디올의 ‘큰 손’, 중국 그렇다면 일부 중국인들은 왜 이 예민한 전통 문제와 디올을 엮어 비판하고 있는 걸까요. 중국은 세계 명품 시장의 큰 손입니다. 중국 현지 명품 전문 매체는 “중국 시장은 디올에게 돈벌이가 되는 시장”이라며 “디올은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데 어떤 명품 브랜드보다 적극적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디올은 중국 소비자들의 구미를 맞추기 위해 현지 맞춤 디올백 로고 각인 서비스, 결제 시스템을 구비하는 등 상당한 공을 들였습니다. 이 덕분에 코로나19 이후 매출은 직전년도 대비 12% 올랐죠.  중국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디올의 큰 손이라는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디올이 중국에 꼬리내린 적도 많죠. 이번에도 디올은 논란이 된 디자인은 디올 중국 홈페이지에서 내리는 등 급한 불 끄기에 나섰습니다. 시위 이후 일부 중국인들의 의견은 어떻게 전개될지, 디올의 중국 시장 장악력은 여전할지 주목됩니다. 
  • 돌아온 김선호 “더 나아지는 배우, 사람 되겠다.”

    돌아온 김선호 “더 나아지는 배우, 사람 되겠다.”

    “점점 더 나아지는 배우이자,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배우 김선호가 돌아왔다. 연극 ‘터칭 더 보이드’를 통해서다. 지난해 10월, 전 여자친구의 사생활 폭로 여파로 연기 활동을 잠정 중단했던 김선호는 20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열린 연극열전9 프레스콜을 통해 9개월만에 공식 석상에 섰다. 연출가와 배우들의 질의응답 시간에 앞서 무대에 오른 김선호는 적어온 글을 읽어 내려가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인사를 먼저 드리는 것이 도리인듯 해서 나왔다”며 “프레스콜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드리는 게 송구스럽고 죄송하다”고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올 봄부터 여름까지 많은 분들이 노력하면서 이 연극을 만들었는데, 이 자리에 누가 되는 것 같아 팀에게 죄송하다. 또 좋지 않은 소식으로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했다. 또 “시간을 돌이켜 보면서 제 부족한 점에 대해 많이 반성했다”고 덧붙였다. 연극 ‘터칭 더 보이드’는 페루 안데스 산맥 시울라 그란데의 서쪽 빙벽을 최초로 등정한 영국인 산악가 조 심슨과 사이먼 예이츠의 생존 실화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거대한 설산, 냉혹한 대자연에 갇힌 공포, 그 공포를 이겨낸 생의 투지 담아냈다. 김선호는 신성민, 이휘종과 함께 시울라 그란데 등반 중 조난을 당한 주인공 ‘조’ 역할을 맡았다. 김선호는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스타트업’ 등으로 대중에게 알려졌지만, 앞서 연극 ‘얼음’, ‘메모리 인 드림’, ‘거미여인의 키스’,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 ‘클로저’ 등 수많은 연극 무대로 연기 내공을 쌓아왔다. 그는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이미 오래 전에 제안을 받았던 작품이었기 때문”이라며 “영화, 연극 등 분야를 가렸던 것은 아니고 좋은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택을 하게됐다”고 밝혔다. 이날 프레스콜에서 김선호는 크레바스 아래로 떨어진 상황에서 누나 새라의 환영을 보는 장면을 연기했다. 김선호는 공백이 무색하게 빼어난 눈물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공연은 9월 18일까지 계속된다.
  • 中 네티즌 “A라인 치마, 우리가 원조” 황당 주장…그들의 이유는 [클로저]

    中 네티즌 “A라인 치마, 우리가 원조” 황당 주장…그들의 이유는 [클로저]

    中 네티즌, 명품 브랜드 ‘시그니처’ 표현에 ‘시끌’이들이 내거는 역사적 근거는 뭘까주장 모호성 많아…디올에 괘씸죄“일부 네티즌들이 14일 디올에 의문을 표했다.” (16일, 중국 법률지 포스팅) 중국 포털 바이두에 17일 다량 게재된 주제가 있습니다. 중국 관영언론, 전문지, 일반 네티즌의 포스팅 등의 공통된 키워드는 표절입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이 중국의 전통치마 디자인을 표절했다는 의구심이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퍼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 디자인이 현재 디올 차이나 홈페이지에선 볼 수 없고 디올 영국 홈페이지를 통해서는 유통되고 있다고 소개합니다. ● “디올 시그니처, 우리 것” 이들을 종합하면 14일 일반 네티즌 사이서 퍼진 디올의 2022 가을 겨울 컬렉션 치마에 대한 의구심은 16일 SNS 웨이보 실시간 1위를 기록하면서 전세계로 퍼졌습니다. 국내서도 이날 언론 보도를 통해 중국 네티즌들의 주장이 전해졌죠. 중국 네티즌들은 디올의 시그니처 실루엣이라 불리는 주름이 자신들의 전통 치마 마멘췬(馬面裙·마면군) 디자인에서 영감받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이 내건 역사적 근거는 뭘까요.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마멘췬은 고대 중국 한족 여성이 입던 치마입니다. 앞, 뒤, 내부, 외부가 다른 천으로 구성됐고 이를 둘러 입는 형태입니다. ● “디올 제품, 우리 전통 의상과 같다” 중국 네티즌은 디올의 중간 길이 주름치마가 이러한 디자인과 같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디자인은 현대인에게도 적합한 것을 보아 자신들의 전통 의상이 훌륭하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한족 여성이 입던 주요 치마 스타일인데 치마의 옆선을 접고 허리는 흰색 천으로 디자인했다”고 표현합니다. 또다른 네티즌은 “명나라의 우아함, 청나라의 화려함, 중국의 소박함을 드러내는 옷”이라며 “뿌리깊은 역사를 기반으로 한다”고 주장했죠. 논란은 더 확산하는 모양새입니다. 일부 네티즌들이 디올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러한 주름치마가 퍼지고 있다면서 “이미 이런 디자인 치마를 파는 여러 판매자가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인데요. 이들은 “중국이 자국 문화유산을 더 잘 관리해야 한다”며 “많은 문화가 다른 사람들에게 약탈됐다. 문화 보호를 위해 갈 길이 멀다”고 주장합니다.● “중국서 영향받은 것 틀림없다” 중국 네티즌들은 중국 박물관의 사진을 인용해 자신들의 주장을 강화하는 증거로 삼고 있습니다. 이들이 첨부하는 사진은 마멘췬으로 이들이 표현한 형태의 디자인입니다. 다만 디올의 디자인과 정확히 동일한지는 사진만으로는 식별이 어렵습니다. 이들은 디올이 이 치마에 대해 시그니처 디자인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일부 중국 네티즌들은 “치마 실루엣을 A라인으로 만드는 게 크리스찬 디올이 만든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이전부터 한족 여성의 스타일 중 하나다”라고 주장합니다. 즉, 밑으로 퍼지는 A라인의 풍성한 치마 스타일이 디올에서 출시한 시그니처 라인이 아닌 중국서 영향받은 것이 틀림없다는 내용입니다. 또다른 중국 네티즌은 “디올은 이를 자신들의 아이코닉한 디자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며 “치마 디자인의 영감을 어디서 받았는지 디올에서 답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중국은 많은 유산을 남겼고 중국이 최근 전세계서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중국적 요소가 파리패션위크 곳곳에서 포착된다”고 말합니다.  ● 中 네티즌, 디올에 왜 이러나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인과관계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전세계서 이미 많이 판매되는 이 A라인 치마에 대해 중국 네티즌이 갑자기 뿔난 이유도 추측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중국 네티즌은 최근 1년간 디올에 대해 앞서 인종차별과 시장 무시 의혹 등으로 반발한 적이 있죠. 디올은 17일 현재까지 이러한 중국 측 주장에 별다른 피드백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 아베 사망 관련 “1937” 언급에 좋아요 21만개…일부 중국인은 왜 기뻐할까 [클로저]

    아베 사망 관련 “1937” 언급에 좋아요 21만개…일부 중국인은 왜 기뻐할까 [클로저]

    아베 신조 전 총리 사망에중국 일부 네티즌, 왜 유독 기뻐할까일각 반응에 외신도 집중 보도역사 속 중일 분쟁, 어떤 연관있길래아베 신조(67) 전 총리가 사망한 8일 후 외신에선 중국 일부 민족주의자들의 반응을 집중 조명하는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8일(현지시간) “중국 SNS 플랫폼 웨이보에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을 기뻐하는 댓글이 가득했다”며 “1937년 이후 85주년이 된지 하루 만에 아베 전 총리가 사망한 것”이라는 게시글도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매체에 따르면 이 게시글은 좋아요 21만개를 받았습니다. ● “기뻐하는 댓글 가득하다” 중국 관영 CCTV 소셜 미디어 계정에 전해진 아베 전 총리 사망 소식에도 이를 기뻐하는 댓글이 가득했다고 매체는 보도했습니다. 이외 “축하하자”는 글이 올라온지 30분만에 좋아요 15만개 이상을 받았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어요. 매체는 그러면서 “아베 전 총리는 집권 당시와 후에도 중국 민족주의자들을 화나게 한 부분이 있다”며 “일본이 방위비 지출을 늘리고 평화헌법 개정을 하도록 했던 것 때문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지난 2013년 그가 일본 도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이 중국 측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고도 전했죠. ● “역사적 논쟁 탓 반응 달라” 미국 지역지 뉴질랜드헤럴드는 중국의 일부 네티즌이 아베 전 총리 살해범에 대해 영웅이라고 칭한다고 9일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연설 중 가까운 거리에서 두 발의 총격을 맞았다”며 “중국과 한국의 일부 대중들은 아베의 정책과 역사적 논쟁 때문에 애도가 아닌 사뭇 다른 반응을 보인다”고 전했어요. 매체는 “중국의 민족주의자들은 ‘파티를 시작하라’는 글을 SNS에 올렸고, 한국서는 소수만이 아베 전 총리의 명복을 빌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베 전 총리는 중국과 특히 군 문제 관련해 대립각을 세웠다”며 “2013년 그가 2차세계대전 전범자들을 포함한 이들에게 도쿄 신사서 참배한 것도 그랬다”고 설명했어요. 8일 이후 보도된 외신의 중국 반응 조명은 대부분 이러한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만 중국 일부 네티즌의 원색적인 아베 전 총리 사망에 대한 일부 반응과 달리 한국 네티즌의 SNS 비난 증거는 찾지 못한 모양새죠.● “1937년” 언급에 주목한 이유 “1937년 이후 85주년이 된지 하루 만에 아베 전 총리가 사망한 것이다.” 앞서 미국 블룸버그통신이 주목한 중국 한 네티즌의 SNS 글입니다. 1937년은 중국에게 어떤 해일까요. 제2차 세계대전은 1931년 일본의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입니다. 이후 1937년엔 중국, 1941년엔 미국이 방어했던 전쟁이죠. 1937년 7월, 루거우차오에서 생긴 중일간의 충돌은 전면전으로 커집니다. 루거우차오는 마르코 폴로가 ‘세계 최고의 다리’라고 평했던 오래된 석조 다리입니다. 이 곳을 점령하면 철도를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죠. 1937년 7월 7일, 일본은 이 곳에서 야전훈련을 하던 중 기관총으로 공포탄을 쐈고, 실탄 한 발이 대응 사격 됩니다. 일본 측에서는 공포탄에 대응하는 이유로 일본 병사를 중국 측이 잡아 갔다고 추측합니다. 이에 중국 측에 수색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죠. 여기서부터 기습 공격과 대응 사격이 이어집니다. 다소 사소한 것으로 여겨졌던 기관총의 공포탄은 이후 8년간 이어진 중일전쟁의 도화선이 됩니다. 아베 전 총리가 공격당한 날은 7월 8일입니다. 중국 측의 일부 도를 넘은 축하 SNS 글의 이유,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겠나요. ● “중국인은 축하 기회 놓치지 않는다” 인도 ABP뉴스는 9일 “중국은 왜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을 축하하나”라는 보도를 통해 중국 네티즌들의 웨이보 게시글을 소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일부 네티즌은 “오늘(8일) 일본 전 총리가 죽어 기쁘다”며 “축하하자.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은 누구든 할인받을 것이다. 오늘만이다”라는 공지를 게재했죠. 또한 웨이보에는 “그가 괜찮지 않아 기쁘다”는 글도 게재됐다고 매체는 소개했습니다. 또다른 네티즌은 “중국은 축하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며 “아베 전 총리가 피격받은 것을 축하하자”는 이벤트 글을 올렸죠. 이 방송에는 “사람들은 카르마를 말한다”며 “아베 전 총리가 그렇게 죽은 건 그의 조상들 탓이 아니라 카르마일 것이다”라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 또 시작된 中 콘텐츠의 문화 침탈, 중국은 왜 이럴까 [클로저]

    또 시작된 中 콘텐츠의 문화 침탈, 중국은 왜 이럴까 [클로저]

    ‘진수기’ 한국 드라마 표절 논란한복 따라 만든 ‘한푸’ 등장중국 일부 네티즌, 자국 중심 사고 이어가자신들만의 논리 강화하는 증거 만들기도“콘텐츠 공개 여부 및 일정은 각 나라의 여건과 사정에 따라 상이하다.” OTT플랫폼 디즈니플러스가 중국 드라마 ‘진수기’의 한국 드라마 표절 논란에 전한 설명입니다. 이달 초 한국 드라마 ‘대장금’에 대한 표절 논란이 일어난 중국 드라마를 스트리밍하고 있지만 설명은 다소 회피성이 짙습니다. 한국에선 볼 수 없기 때문에 중국에서 한국 콘텐츠를 얼마나 표절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이 드라마에 상추쌈을 싸먹는 장면이 밈이 돼 확산하고 드라마 포스터 속 인물들이 한복으로 추정되는 옷을 입은 것이 퍼진 것만 해도 한국에 대한 ‘문화공정’이 시작된 것으로 의심할 만하다는 일각의 해석도 있습니다. 서경덕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는 8일 진수기 관련 게시물을 공유하며 중국 내부의 아전인수식 해석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죠. 서 교수는 이날 중국 언론 보도 문제점을 지적하며 “중국 관영매체의 보도 내용이 더 문제”라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갔습니다. 서 교수는 “중국에서 한국 콘텐츠 훔치기는 만연했고, 인기 예능과 드라마 등을 불법으로 다운받아 유통했으며 한류스타들의 초상권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도둑국’ 이미지는 이미 전세계인이 알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또한 “남탓으 하기 전에 자국민들이 잘못하고 있는 상황을 기사화해 중국인들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질 수 있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도 당부했죠. 그렇다면 중국은 왜 이러는 걸까요. ● 중국, 한복 대해 ‘한푸’ 주장 지속 진수기 포스터 속 논란이 된 대상 중 하나인 한복은 중국이 자신들의 명나라 시절 한푸라 우기는 등 문화공정의 대상이 된 적이 이미 있습니다. 실제 중국 포털 사이트 넷이즈 등에는 지난 3월 ‘한푸는 중국 전통 의상이다’라는 취지의 글이 여럿 게재됐습니다. 당시 미국 패션잡지 보그의 캐나다서 자란 중국인 인플루언서 쉬잉(Shiyin)의 화보가 증거로 첨부되기도 했죠. 쉬잉은 해당 인터뷰를 통해 성장 후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한복의 존재를 몰랐다고 했으나 룸메이트를 통해 한복을 ‘한푸’로 소개받고 심취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중국은 이 한복을 자신들의 말대로 ‘한푸’로 부르면서 명나라 의복이라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죠. 진수기 복장 논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주장을 폅니다. ● 어떤 근거로 이런 주장 펼치나 중국 일부 네티즌들은 ‘한푸’라는 자신들의 주장을 반영한 단어를 쓰면서 7~10세기 당나라, 10~13세기 송나라, 15~17세기 명나라 기록을 참고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한국 네티즌의 사실 정정 요구에는 “열린 자세를 가지라”는 등 황당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죠. 또한 루 차오 랴오닝대 미국동아시아연구소장 발언을 인용해 “최근 몇 년 사이 발생한 한국과 중국 사이 문화 분쟁은 일부 젊은 한국인들이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됐다”는 다소 황당한 주장을 펼쳤습니다. 특히 그는 해당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시대 관복은 중국 명나라 의복을 거의 모방한 것 같다. 한국은 예로부터 유교를 내세우며 중국의 우수한 문화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흡수했다. 조선시대에는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라고 했다”고 주장했다“는 등의 발언도 했죠. 그러면서 ”최근 몇 년 사이 발생한 한국과 중국 사이 문화 분쟁은 일부 젊은 한국인들이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까지 했습니다. ● 불법 시청·베끼기 이어가 서 교수는 ”중국이 올바른 보도를 해야 젊은이들도 제대로 역사 인식을 가질 것“이라며 ”그래야 반중감정도 사라질 것“이라고 제시합니다. 중국은 앞서 지난해에도 OTT플랫폼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표절한 ‘오징어의 승리’를 만들었죠. 로고의 디자인까지 유사한데 한국에서 정식 수입해간 것도 아닙니다. 또한 최근엔 OTT플랫폼 쿠팡플레이 드라마 ‘안나’를 불법 경로로 시청하며 되레 표현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중국 본토에서는 그 어떠한 해외 OTT플랫폼을 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불법으로 한국 콘텐츠를 시청하고 베끼고 있는 겁니다. 지난 2005년 한국 드라마 ‘대장금’(2003~2004)이 중국서 방영된 후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는 기사는 다수 존재합니다. 중국 후난TV가 대장금을 방영하면서 배우 이영애의 인기도 높아졌고, 중국 내 한복 관심도가 증가했다는 당시의 보도들도 여럿이죠. 한국의 전통 의복인 한복을 자신들의 것이라고 둔갑시킨 이유,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 마룬5는 지웠지만…‘무지 탓’ 욱일기 사용,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나 [클로저]

    마룬5는 지웠지만…‘무지 탓’ 욱일기 사용,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나 [클로저]

    “항의할 때마다 무지 느껴”“사실 설명하는 수밖에”“사례집 만들어 빨리 받아들이도록”“항의메일 보낼 때마다 느끼는 건 무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거예요.” 서경덕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는 7일 오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 교수는 이날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큰 논란이 됐던 마룬5(Maroon5· 마룬파이브) 홈페이지의 욱일기가 사라졌다”며 “전날 홈페이지 상단에 그려졌던 욱일기 문양이 없어지고 마룬5 멤버들 이미지로 대체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오는 11월 내한 공연을 앞뒀던 미국 록밴드 마룬5는 홈페이지에 욱일기를 게재한 사실이 지난 5일 알려져 국내 여론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지난 3월 말부터 월드 투어를 이어가고 있는 이들은 추가 공연 일정을 공개하면서 배경 사진에 욱일기 문양을 추가로 넣은 것이라 더 비난받았죠. 지난 2019년에도 국내 네티즌과 욱일기 관련해 온라인서 이른바 ‘기싸움’을 벌였다는 사실이 알려져 더욱 비판받았죠. 서 교수는 이날 “마룬5 측에 지속적인 항의를 함께 해주시고 욱일기 문제의 큰 여론이 형성되다 보니 내한 공연 주최 측에서 마룬5 측에 우려를 전달했고 모든 것들이 맞아떨어져 욱일기를 없앨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엔 이렇게 욱일기를 지웠지만 앞으로 또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네티즌과 협업해 문제 해결 지난 2018년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예고 영상에 욱일기가 등장했습니다. 넷플릭스 영화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3에도 등장한 사실이 지난달 알려지기도 했죠.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는 게 서 교수의 설명입니다. 매 사건마다 파악 후 메일을 보내지만 무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죠. 서 교수는 과거에도 그랬듯, 이번에도 네티즌과 협업해 항의 메일을 통해 문제를 고쳐나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늘 강조했던 건 화내고 분노만 하는 게 아니라 잘 모르는 것이기에 제대로 알려서 다음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무지에 의한 소비, 어떻게 막나 서 교수가 항의 메일을 보내 욱일기 사용에 대해 문제점을 알린 적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일각에선 욱일기 디자인에 대해 가운데에 집중되는 강력한 이미지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본이 전후 욱일기를 전범기로 알리지 않고 자신들의 전통인 것처럼 홍보한 것도 영향을 끼쳤죠. 일본은 지난 상반기에도 욱일기에 대한 홍보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광고로 올리면서 전범기 이야기는 하나도 전하지 않았습니다. 서 교수는 “화내거나 분노하지 않고 지금처럼 차분하게 사실만 전하는 네티즌들의 활동이 활발하다”며 “무지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제대로 알려서 다음에 쓰지 못하도록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 사례집으로 계속 설명하는 수밖에 서 교수는 현실적인 대응책으로 지속적인 마케팅을 꼽습니다. 사안이 발생하면 분노할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광고 캠페인을 벌이면서 대응하자는 설명입니다. 상반기 일본 측의 욱일기 홍보 영상에 반박하는 광고를 낸 것도 그러한 관점의 일입니다. 또한 오는 여름을 목표로 욱일기 사례집을 만들 예정입니다. 앞으로 유사한 일이 생겼을 때 특정 아티스트 등 주체에게 이전에 개선됐던 사례를 전달해 효과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설명이죠. 무지 탓으로 욱일기를 쓰고 논란에 당황하지 않도록 이전에도 개선 사례가 있었다는 것을 구체 증거로 제시해 빨리 대처할 수 있게 돕겠다는 설명입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을 부각할 수 있는 홍보 영상을 계속 만들거나 세계적인 여론을 만들어갈 수 있는 홍보력을 키우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특히 음악·스포츠계 문제가 심각하다”며 “욱일기를 홍보할 수 있는 문화적인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도 좋다. 광고 캠페인을 만들어 계속 대응해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 마룬5, 일본 좋아하는 것 취향이지만…‘와패니즈’는 왜 다를까 [클로저]

    마룬5, 일본 좋아하는 것 취향이지만…‘와패니즈’는 왜 다를까 [클로저]

    록밴드 마룬5, 국내 일부 팬들에게 이미 낙인일본 옹호 과거 행적, 왜 비판받을까미국 록밴드 마룬5(Maroon5· 마룬파이브)가 오는 11월 내한 공연을 앞두고도 욱일기 이미지를 홈페이지에 사용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미 일부 마룬5 멤버들이 지난 2019년 일본 욱일기에 대한 한국 네티즌의 비판을 일각의 주장으로 치부한 전적도 수면 위로 올라왔죠. ● 팬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와패니즈 그룹’ 표현도 팬들 사이서 마룬5는 이른바 ‘와패니즈(Wapanese)’ 그룹으로 찍혀 있습니다. 지난 2000년 초 등장한 용어로 현재는 ‘위아부(Weeaboo·줄임말 Weeb)’로도 혼용됩니다. 이는 서양 백인 중 일본 문화에 심취한 이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미국 어번딕셔너리는 와패니즈에 대해 일본어 관련 전공을 한 사람은 제외한다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와패니즈는 일본은 역대 최고의 나라로 그들 자신이 일본에 가면 존경받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한 일본 만화에 심취해 관련 물건을 지나친 수준으로 사모으고, 일본 음악이 아니면 듣지 않습니다. 또한, 일본 만화 속 코스튬을 과도하게 따라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취향에서 나아가강요하는 순간 ‘논란’ 문제는 이들이 자신의 취향으로 그치는 것에서 나아가 일본이 아닌 다른 것은 모두 나쁘다고 치부한다는 것입니다. 즉, 마룬5 멤버들이 지난 2019년 한국 네티즌의 욱일기 사용 비판 여론에 “팩트 폭행”이라면서 자신들의 주장만을 강화하거나 조롱한 것도 이러한 개념에 속합니다. 미국 쿼라에서도 이 개념에 대한 미국인들의 볼멘소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학생이라고 소개한 한 네티즌은 “위아부(와패니즈)는 일본 문화에 집착하는 외국인”이라며 “만화의 영향을 받았고, 일본을 좋아하는 유일한 이유가 만화다”라고 설명합니다. 또다른 네티즌은 “일본 문화를 미화해 일본인이 되려 하는 사람”이라며 “물론 다른 나라의 문화를 즐기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위아부가 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라고 우려합니다. 다른 네티즌도 “일본 문화는 신적인 것이 아닌데 주변에 강요한다”며 “솔직히 짜증난다”고 지적합니다. 비슷한 네티즌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와패니즈는 일본 문화를 지나치게 신격화해 자신과 다른 사람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일본 문화를 다른 것보다 우위에 두면서 이를 통해 자신이 일본인이 된 것처럼 느끼려 하는 행위까지 포함됩니다. ● 일본 특히 사랑하는데속한 집단서 스스로 축출 미국 KYM에 따르면 이 개념은 일본을 특히 사랑하는 이들을 일컫습니다. 일반적으로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붙이던 속어 ‘오타쿠’보다 더 나아간 이들을 말하죠. 일본에 관한 것은 모두 편견을 갖고 사랑하며 다른 것은 배제합니다. 이를 위해 자신이 원래 속했던 집단에서 자신을 축출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일본어를 쓰는 외국인’이라고도 부릅니다. 지난 2014년 10월 유튜버 필시 프랭크가 위아부를 비판하는 노래를 업로드한 가사를 살펴보면 서양권에서 이들을 보는 시선을 집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일본인인 것 같으니까. 나는 짱이다.”, “일본이 다른 나라보다 얼마나 우월한지 인터넷에서 논쟁한다” 등의 가사에서 말이죠. 조건 없이 일본을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다른 나라의 문화를 무조건 무시하면서 자신들까지 부정하는 것이 와패니즈의 특징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개념이라면, 마룬5의 과거 행적 탓에 국내 일부 팬들이 그들을 ‘와패니즈 그룹’이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 오래됐으니 전통? ‘마룬5 무지’ 부른 일본 전후 욱일기 사용 [클로저]

    오래됐으니 전통? ‘마룬5 무지’ 부른 일본 전후 욱일기 사용 [클로저]

    독일은 지운 하겐크로이츠일본은 욱일기 계속 사용전 세계 ‘욱일기(旭日旗·욱일승천기)’ 퇴치 캠페인을 펼쳐 온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이번에는 마룬5(Maroon5· 마룬파이브) 공식 홈페이지에 등장한 욱일기 문양을 삭제하라는 항의 메일을 보냈다고 5일 밝혔습니다. 지난 2일 마룬5 공식 홈페이지에 오는 11월부터 진행되는 월드투어 추가 공연 일정을 공개했는데, 홈페이지 배경 사진에 욱일기 문양을 넣은 것이 문제되고 있죠. ● “욱일기, 하겐크로이츠 같은 전범기” 서 교수는 항의 메일에서 “일본의 ‘욱일기’는 독일의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의미인 ‘전범기’다”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마룬5의 욱일기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죠. 지난 2012년 발표한 ‘원 모어 나잇’ 뮤직비디오에서 욱일기가 걸린 장면을 내보냈습니다. 또한 2019년 마룬5의 멤버 제스 카마이클은 일본의 제국주의와 욱일기를 옹호하면서 한국인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한 가수 션 레넌(비틀스 멤버 존 레넌과 오노 요코의 아들)을 지지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션 레논의 친 오노요코가 일본인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가풍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팬들의 애정어린 시각도 존재했습니다만 말입니다. 억지로 이해하려는 눈물겨운 ‘팬심’의 일환이었습니다. 또한 션 레논을 이해한다 해도 그를 옹호한 마룬5는 이해할 수 없었죠. 이 때문에 마룬5는 국내서 일본을 사랑하는 그룹으로 팬들 사이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일본은 왜 욱일기를 계속 사용할까 일본은 독일과 달리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전후에도 욱일기를 응원기 형태 등으로 사용했습니다. 메이지유신 직후 근대국가로 나선 일본이 자신들의 ‘천황 군대’를 위한 상징으로 ‘육군어국기’를 법령으로 제정했습니다. 이것이 일본군 국기로서 욱일기의 시작입니다. 욱일기, 하겐크로이츠는 모두 국민을 교육, 세뇌할 때 쓰인 도구들입니다. 전시 반인륜적 범죄를 행할 때 상징이 되곤 했습니다. 이 때문에 패전 후 독일은 하겐크로이츠를 금지하고 있지만 일본은 다르죠. 욱일기는 기존 붉은 원에 태양 주위에 16갈래로 퍼져 나가는 햇살을 형상화한 문양입니다. 일장기를 써도 될 것을 굳이 일본은 전후에도 욱일기를 사용해 주변국과 갈등을 만든 적이 있죠. ● 응원기로도 적극 활용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응원기로 욱일기를 허용한다고 해 반발을 산 적도 있습니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정치적인 의도가 없으며 일본에서 널리 쓰이는 깃발일 뿐”이라는 다소 황당한 답변을 내놨죠. 2013년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일전, 2012년 8월 FIFA U-20 여자월드컵에서도 욱일기가 등장했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선 체조 국가대표 유니폼으로 욱일기 변형 디자인이 나왔죠. 그러나 자신들이 오래 써온 전통이기 때문에 욱일기를 사용해도 된다는 일본 측 주장은 어불성설입니다. 하겐크로이츠 역시 나치가 사용하기 전 스와스티카라는 이름으로 엽서, 훈장 등에 사용됐기 때문입니다.● 독일은 어떻게 하겐크로이츠를 지웠나 꺾인 십자가 모양의 하겐크로이츠(Hakenkreuz)는 독일 나치의 상징입니다. 독일어로 ‘갈고리(Hooks)’를 뜻하는 ‘하켄(Haken)’과 ‘십자가(Cross)’를 뜻하는 ‘크로이츠(Kreuz)’가 합쳐진 말로 ‘갈고리 십자가’라는 뜻이에요. 트로이 유적에서 발견한 이 문양을 독일 민족주의 운동에 사용한 것이죠. 아돌프 히틀러는 ‘나의 투쟁’을 통해 “수없는 시도 끝에 문양을 완성했다”며 “빨간색 배경에 하얀색 원, 중앙에 검정색 스와스티카가 있는 것이다. 오랜 시도 끝에 깃발의 크기와 흰색 원의 크기 사이 비율뿐 아니라 스와스티카의 모양과 두께도 최종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전범 국가인 독일은 현재 나치 상징물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독일 형법 제86조a는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 등을 반포하거나, 해당 표식이 그려져 있는 물건을 제조, 보관, 반입할 경우 3년 이하의 금고나 징역, 또는 벌금형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용이 허용될 때는 나치 반대 교육, 과거사에 대한 보도, 예술 및 학문 등 공익 목적이 있을 때입니다. 물론 이를 쓰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2012 유럽축구선수권대회가 열렸던 지난 6월, 독일-덴마크전이 벌어지자 일부 독일 관중이 네오나치 문구를 새긴 현수막을 걸고 나치 구호를 외쳤습니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이를 두고 독일축구협회에 2만5000유로(약 3600만원) 벌금을 부과했죠. 응원기로 사용해도 된다고 허락한 일본과는 아주 다른 처사입니다.
  • 흥미로운 신라의 금속공예…동궁과 월지의 구겨진 유물은 [클로저]

    흥미로운 신라의 금속공예…동궁과 월지의 구겨진 유물은 [클로저]

    이달 들어 경주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습니다. 지난달 국립경주박물관에 게재된 얼굴 없는 기증자를 찾는 게시물도 이달 알려졌고, 지난 16일엔 동궁과 월지에서 8세기 신라 장식물이 발견된 게 확인됐습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016년 11월 동궁과월지에서 발견한 금박 유물 두 점에 대해 본래 새, 꽃 그림인 ‘화조도’를 새긴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출토 당시 구겨졌던 유물 두 점을 펴보니 세밀한 공예가 필요한 금박 장식물이라는 게 밝혀진 겁니다. 순도 0.3g의 금이 사용된 이 유물은 가로 3.6㎝, 세로 1.17㎝, 두께 0.04㎜입니다. 세밀한 선은 0.05㎜ 이하로 머리카락 굵기보다 얇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그림에 대해 실크로드와 신라의 특징 모두가 들어갔다고 설명합니다. 게다가 순금에 세밀한 작업을 한 것이라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 고분출토물 아닌 금속공예 유물 금박은 전문 장인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수작업으로 이뤄지는데, 하나의 문양을 새겨넣을 때마다 금을 두드리고, 바르고, 말리고, 붙이는 등의 세밀한 작업이 필요해요. 근래에는 기계로 하는 일도 있지만, 여전히 세밀한 일에는 금속 장인의 수작업이 들어갑니다. 이번 일이 주목받는 건, 신라 시대 금속공예 출토물들이 대개 고분출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발견된 유물 두 점은 하나의 작품이 떨어져 있던 것으로, 이를 합쳐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도 큰 의미입니다. 또한, 아직까지 정확한 용도는 파악되지 않았으나 나무 등에 붙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또한 매우 세밀한 작업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이기에, 이 또한 당대의 높은 금속공예의 수준을 증명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 출토물로 짐작하는 과거 지금껏 신라의 금박 출토물은 금관 등에 이목이 쏠렸습니다. 화려하고 상징적인 금관의 용도에 대한 것, 디자인의 기원 관련한 것 등 분석도 다량 나왔습니다. 대개 신라가 주변국의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여 자신들만의 화려한 금속공예 문화를 이뤘다고 보고 있죠. 도굴이 어려웠던 덕분에 신라 고대 적석목곽분 등에서 다량 출토된 유물을 토대로 신라 금속공예에 대한 연구는 주로 진행됐습니다. 금관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권위의 상징으로 곡옥을 주렁주렁 매단 왕이 떠오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라의 금관은 실제 권위를 보이기 위한 머리 위의 왕관 역할이 아닌 죽은 이의 얼굴을 가리는 용도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학계의 의견은 분분합니다만 그 크기와 장식이 평소 사람이 쓰기엔 지나치게 무겁고 내세적 의미가 있다는 설이 있죠. 고분에서 출토된 이 금관들, 놓여있던 위치도 이 설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반면 신라 고분에서 출토돼 여러 방식으로 제작된 금속공예 장신구들은 지배층의 신분을 상징하는 수단이란 해석도 있습니다. 동궁과 월지의 서로 다른 곳에 떨어져 있던 유물 두 점이 또 어떤 새 금속공예 기술의 증거가 될지 관심이 쏠립니다.
  • “경주에 뭔가 일어나고 있어” 기증자 정체 모르는 유물, 어디로 [클로저]

    “경주에 뭔가 일어나고 있어” 기증자 정체 모르는 유물, 어디로 [클로저]

    “경주에 토기편은 너무 흔해서 학예연구과까지 나설 일도 아니야. 뭔가 일어나고 있어.” (이달, 온라인 커뮤니티) 이런 의구심의 근원은 어디일까요. 시작은 지난달 23일 국립경주박물관 새소식에 게재된 글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22년 5월 20일 오후 4시 경 신라천년보고 안내데스크에 유물 3점을 두고 가신 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라는 글을 게재했습니다. 이후 약 한 달이 흐른 지금, 유물을 두고 간 이들의 정체는 공개됐을까요. 유물 세 점을 습득한 박물관 측은 왜 이들을 찾으려고 했을까요. ● 기증자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이유 박물관에서 유물을 취득할 때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기증자는 명확해야 하고 작품이 정보도 정확해야 합니다. 작품이 박물관에 들어오면 기록, 보존, 공공에 공개할 의무 등이 생깁니다. 또한 장물인지 적법한 절차를 거친 유물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훔쳐온 것은 아닌지도 알아야 합니다. 이 때문이죠. 국립경주박물관이 출처도 모르는 유물 세 점을 그저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학예연구과가 나설 만한 일이 아니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거죠. 얼른 나서서 출처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 “이런 일 처음…기증자 안 나타나” 이 글이 게재된지 한 달이 좀 넘게 지난 22일, 서울신문 취재 결과 유물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소관이 아닙니다. 문화재청 규칙에 따라 유물 세 점은 이달 9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로 이관된 상태입니다.   박물관 측은 유물 기증자를 알 수 없었기에 문화재청 지도에 따라 발견 문화재로 신고 절차를 밟았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 관계자는 22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공지를 올린 배경으로 특이점이 있다기보다는 어떻게 유물이 유출됐는지 정확히 알 수 없기에 기증자를 찾으려 한 것이다”라며 “우리 쪽으로 연락이 오면 문화재청에 안내하려고 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런 일은 처음이다”라며 “기증자는 여성 분인데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문화재청의 지도에 따라 절차를 밟았다. 민감한 문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추측 봤지만…와닿는 것 없었다” “저도 추측들을 봤는데요. 와닿는 건 없었습니다 신명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지금 경주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글로 소비된 얼굴 없는 기증자와 유물 세 점에 대한 설들에 대해 그는 작게 웃기도 했습니다. 앞서 이달 9일 신원을 알 수 없는 기증자와 유물 세 점 이야기가 알려지자 유물이 발견되기 쉬운 경주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등의 추측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 모두 가능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 학예연구사는 ”이번 일은 특이한 사례다“라며 ”일반인들이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이나 인근에서 발견한 유물을 지자체로 신고하는 신고서가 있다. 언제, 어디에서, 몇 점을 발견했는지 적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번 일은 신고인도 모르고 언제 어디서 나온 건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특이한 사례다“라고 덧붙였죠. ● 출처 모르는데 어떻게 신고하나 박물관에서 유물 세 점을 처음 받은 날짜는 지난 20일입니다. 홈페이지에 게시글이 올라온 것과 동일한 날이죠. 연구소는 이 때문에 이 날짜를 발견신고일로 삼았습니다.  연구소에서는 두 번의 유물 평가 심의를 통해 국가에 귀속하는 절차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비 회의와 검토 회의를 각각 진행할 예정이에요.  이에 따라 오는 2023년 1~2월쯤 최종 조치 통보를 내릴 계획입니다. 신 학예연구사는 ”이 유물 자체는 세 점인데 대단히 특이하거나 가치가 높은 건 아니고 일반적으로 경주 일대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주변 공사장 발견설 같은 건 타당성이 없다“며 ”유물이 온전한 형태다. 깨졌거나 찍히지 않았다. 육안으로만 봤을 때는 보관하고 있던 것 같다“도 했죠. 그는 ”아직 정확히 공개할 순 없지만 흔한 형태의 유물이다“라며 ”이런 형태의 유물이 많아서 굳이 이걸 전시할 경우는 없을 것 같다. 일각의 상상들이 많은데 와닿는 설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얼굴 없는 기증자가 남긴 유물 세 점, 어디서 나온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 만든 것인지는 내년에 알게 되겠네요.
  • ‘꿀직업’ 같나요…“19세기 개들의 직업”, 사실은 이렇습니다 [클로저]

    ‘꿀직업’ 같나요…“19세기 개들의 직업”, 사실은 이렇습니다 [클로저]

    “사람과 개 서로에게 좋은 직업이다” “○꿀 직업이다” (이달, 인스타그램) 이달 인스타그램 등 SNS 피드를 통해 널리 바이럴된 글이 있습니다. 지난 1월 한 커뮤니티에서 작성된 내용으로, 19세기 개들의 직업이란 이름의 게시물입니다. 여기에는 개들이 사람들의 다리 위에 앉거나 누워 있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작성자는 이 사진에 대해 “칼붙이 등을 연마하는 작업을 하는 공방의 사진”이라며 “등을 굽히고 칼을 갈면 허리가 휘기 때문에 나무나 돌로 된 판 위에서 엎드려 누운 자세로 작업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어 “이 자세는 몸이 차가워지므로 다리 위에 생체난로로 개를 올려두고 작업한다”며 “하루종일 사람에게 (개가) 붙어 있어도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진에는 “사람 복지인가 동물복지인가”, “목 아플 듯” 등의 반응이 드러나 있습니다. ● 19세기 개 사진인가 그렇다면 이 사진, 근거는 있는 걸까요. 맞는 이야기도 있고, 틀린 것도 있습니다. 사진은 1902년 시작한 공방에 기원을 둔 프랑스 칼붙이 제조사 C사 홍보 자료에서 나온 것입니다. C사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1934년 이 공방을 인수해 이후 1970년대 사업을 키웠다고 소개합니다. 무역 박람회에 나가 자사 기술을 소개하고 최초의 접이식 나이프 기술을 만들었다고도 주장합니다. 또한 프랑스 최고 명예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개들의 직업”으로 소개된 사진은 19세기가 아닌 20세기 촬영된 것입니다. 사측 설명에 따르면 사진은 이 회사의 초창기인 1902년의 기록입니다. 첫 번째 워크숍이라고 설명하고 있죠. ● 배 깔고 작업하는 노동자들 사진 속 누워 있는 사람들은 누워 칼을 갈고 있는 노동자들입니다. 이들은 ‘그라인더(grider)’들로, 배를 깔고 대리석 위에 누워 작업합니다. 이 때 작은 개, 즉 강아지를 다리 위에 올려 체온을 유지합니다. 이런 작업 방식은 옐로 벨리즈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작업 자세는 다소 불편하지만, 칼날을 연마하기 위한 기초 단계를 수행하는 겁니다. 작업 공간은 춥고 습한 프랑스 중부 띠에였는데, 이는 인근에 듀 홀르 강이 있어 수력 에너지를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선정한 장소입니다. ● 열악한 작업 환경 해결책 이 지역은 본래 가파르기에 칼붙이 기술 제조 공장을 만들 만한 지형으로 고려되지 않았으나, 강 때문에 척박한 환경에 공장이 마련된 겁니다. 이후 17세기까지 이 지역서 스페인 등으로 칼이 수출됐고, 본격적인 수출이 이뤄진 건 19세기의 일입니다. 1855년까지 칼붙이 산업에 종사하는 2만500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게, 사측 설명입니다. 이런 작업 방식은 지난 15세기부터 시작됐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 당시에도 개의 도움을 받은 체온 유지는 있었겠지만, 온라인에 퍼진 사진은 사측에 따르면 1902년에 촬영된 것이죠. 미국 커뮤니티에도 지난 2017년 같은 사진이 게재됐습니다. 이들 역시 “정말 귀엽다”, “노동자들이 안마사를 기다릴 것 같다”는 등의 긍정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 왜 곡선 탈피의 상징이 됐나…실용성과 ‘체크’의 역사 [클로저]

    왜 곡선 탈피의 상징이 됐나…실용성과 ‘체크’의 역사 [클로저]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디올은 지난해 2022 가을·겨울 시즌 신제품을 선공개하면서 타탄무늬에서 영감받은 컬렉션을 선뵀습니다. 타탄무늬의 ‘타탄’은 그 자체에 ‘체크’ 의미를 갖고 있지만 편의를 위해 ‘타탄체크’로 불리기도 합니다. 일각에선 타탄무늬를 자사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영국 럭셔리 브랜드가 ‘버버리 체크’로 자신들을 특징화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하기도 하죠. 이미 있는 무늬를 자신화해서 부른다는 주장입니다. 디올의 타탄 재킷이 이달 3일부터 한국에 지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죠. 일각에선 디자인의 의도까지 폄하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무늬는 디올 측의 설명에 따르면, 여성복 라인이 강조되던 디올이 디자인에 중성성을 더해보겠다는 새로운 시도의 표명일뿐이었죠. 타탄을 통해 의지를 드러냈다는 설명입니다. ● 체크의 대명사 타탄 이렇듯 아직까지 다수 브랜드서 패션 아카이브로 활용하는 타탄을 포함한 체크 인기는 역사가 깁니다. 우선, 아직까지 체크의 대명사처럼 활용되는 타탄의 역사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1·2차 세계대전이 있던 20세기 초, 여성성이 강조되던 의복에도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따라 타탄무늬를 활용한 의복이 다수 등장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버버리는 이를 활용한 대표적 브랜드고요. 이 밖에도 다수의 패션 브랜드들이 타탄무늬를 클래식 아카이브로 활용하면서 컬렉션 론칭시 참고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벽화서 발견되는체크의 시작? 그렇다면 타탄 외 체크로 통용되는 이 체크(이하 격자무늬)의 역사는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요. 그 처음은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격자무늬와 유사한 디자인은 이집트 신왕국 시대 벽화 속 의복 튜닉에서 처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훗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체크의 기원인 영국 스코틀랜드의 체크로 이어집니다.  명확히 두 무늬가 연관있다고 해석하기보다는, 현재에 존재하는 체크의 기원에는 이집트의 벽화가, 이후 그 유래에는 스코틀랜드 체크가 있다고 해석하는 게 낫겠습니다. ● 체크는 어떻게실용성 추구 상징이 됐나 앞서 언급한 타탄의 역사가 19세기이듯 격자무늬가 본격적으로 의복에 활용된 것도 비슷한 시기의 일이에요. 단순한 의복에 격자무늬를 넣어 멋을 더하고자 했습니다. 앞서 디올이 지난해 시즌을 미리 공개하며 여성성의 탈피를 이유로 들었다고 했죠. 타탄이 포함된 이 격자무늬가 여성성의 탈피로 디자이너들의 아카이브에 활용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격자무늬를 넣기 위해서는 직물이 직선형이어야 합니다. 즉, 사각 형태 등의 공간이 필요한 격자무늬를 효율적으로 구현하려면 직물이 직선형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라인에 중점을 두고 패턴을 제작하던 과거와 달리 직선형으로 떨어지는 옷을 만들어야 합니다. ● 직선 형태로 떨어지는 직물몸매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아 학생들이 많이 입는 교복에도 이 체크가 자주 들어가죠. 이는 디자인의 단조로움을 체크로 해결하고, 치마여도 실용성을 강조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겁니다. 즉, 체크는 촌스러운 과거의 상징이 아닌, 치마를 입더라도 몸매가 지나치게 드러나지 않도록 돕는 장치 중 하나였다는 겁니다. 물론 오래 전부터 적용된 디자인의 향수도 남았겠지만 격자무늬의 시작은 그랬다는 거죠. 타탄 등은 특히 더 클래식한 느낌을 주는 체크입니다. 중성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버버리가 자신들의 상징으로 택한 것만 봐도 그 이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후 편안한 옷이 각광받으면서 패션으로서의 활용 가능성도 필요해지자 체크에 주목한 것이죠. 중성성이 드러나면서도 실용성을 낼 수 있는 제작적 편의성이 있는 덕분애 ‘매니쉬’를 사랑하는 요즘의 트렌드와도 아주 잘 맞는 클래식한 무늬가 됐습니다.
  • 안전 기술 집약된 ‘더 뉴 EQS’… 충돌 테스트 등 40여가지 안전진단으로 ‘든든’

    안전 기술 집약된 ‘더 뉴 EQS’… 충돌 테스트 등 40여가지 안전진단으로 ‘든든’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지난해 11월 국내에 공식 출시한 전기 세단 ‘더 뉴 EQS(The new EQS)’는 안전 규정을 충족하는 최신 안전 기술이 집약됐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충돌 테스트를 바탕으로 안전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2016년 5만 5000㎡ 규모의 ‘자동차 안전기술센터(TFS)’를 설립해 차량의 연구 개발과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센터에서는 양산 직전의 차량을 대상으로 양적·질적 측면에서 모두 법적으로 요구되는 수준 이상의 시뮬레이션과 실제 충돌 테스트를 하고 있다. 자동차 안전기술센터는 연간 약 900건의 충돌 테스트가 가능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낙하 테스트 등을 포함해 전 세계 차량 등급과 인증에 필요한 40여개의 세부 항목들에 대한 테스트가 이뤄진다. 또한 충돌 테스트에서는 초당 1000장가량의 사진을 찍어 충돌 상황을 100만분의 1초 단위로 재구성하고,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충돌 지점을 컴퓨터에 자동으로 입력하도록 설계했다. 더 뉴 EQS는 이 같은 충돌 테스트를 비롯한 다양한 안전 테스트를 거쳐 탑승 공간의 내구성부터 첨단 주행 보조 시스템, 배터리 안전성 등의 안전 기술을 확보했다. 더 뉴 EQS는 외부 표면은 물론 차체에도 에너지 흡수율이 높은 알루미늄을 적용했으며, 차체 바닥에는 고강도 강철로 만든 부자재를 적용해 안전성을 높였다. 차체 구조에는 프레스 경화 공법의 강철 보강재가 고강도 강철 요소와 결합하는 등 자체 충돌 요건을 충족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배터리와 고전압 케이블 등의 고전압 부품도 단계적 안전장치가 적용됐다. 배터리는 전면 및 측면에 에너지 흡수 구조가 있는 배터리 인클로저(enclosure)와 단단한 이중벽 형태의 베이스 플레이트(base plate) 등의 안전장치를 갖췄다. 배터리를 포함한 고전압 시스템은 온도, 전류 회로 등을 모니터링해 위험과 오류를 선제적으로 감지하고 디스플레이에 표시해준다. 사고 등의 위험에 처할 경우 자동으로 전원이 꺼지고 배터리가 분리되며, 사고 심각성에 따라 고전압 시스템이 차단된다. 더 뉴 EQS에는 최신 에어백 시스템도 적용됐다. 운전석과 조수석 에어백 외에도 운전석 무릎 에어백이 기본 탑재됐다. 측면 윈도 에어백은 A필러부터 C필러까지 앞좌석과 뒷좌석 창문 위로 커튼처럼 전개돼 탑승객의 측면 충돌을 예방해준다.
  • 신라 금관은 왜 바이든에게 ‘데드마스크’로 소개됐나 [클로저]

    신라 금관은 왜 바이든에게 ‘데드마스크’로 소개됐나 [클로저]

    “서양의 데드마스크 표현을 빌렸더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치셨습니다.” (신소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22일) 신라 시대를 다룬 콘텐츠를 보면 눈에 띄는 것이 있죠. 커다란 금관을 머리에 쓴 왕의 모습인데요. 그 무거운 금관을 머리에 쓰고 옛 사람들은 정말 하루 종일 생활할 수 있었을까요. 이 금관, 정말 이들이 평상시 생활용품으로 머리 위에 썼던 걸까요. 21일 바이든 대통령이 들은 금관 관련 비유에서 우리는 이와 다른 해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의 한미 정상 공식 만찬에 앞서 윤석열 대통령과 10여분간 박물관을 관람했습니다. ● 촉박한 시간에도 바이든 이목 끈 것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오후 7시 34분쯤 박물관에 도착해 윤 대통령과 신라 금관 등을 관람했습니다. 이전 회담이 길게 이어져 실제 박물관에서의 관람 시간은 10여분으로 촉박했습니다. 그럼에도 바이든 대통령의 귀를 사로잡은 비유가 있었습니다. 박물관 측 관계자가 신라 금관을 설명하면서 우리 측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이해를 돕기 위해 꺼낸 말은 ‘데드마스크’였습니다. 얼핏 듣기에는 죽은 사람의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 들리지요. 실제 신라 금관은 발굴 당시 왕의 머리 위에 있던 것이 아니라 고깔 모양으로 휘어 죽은 왕의 얼굴을 감싼 형태로 발굴돼 그 용도를 두고 다양한 시각이 존재했습니다. 이날 현장에서 양 정상에게 전시를 안내한 신소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22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금관을 왕이 실제 머리 위에 썼는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금관은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 둘레가 크다”며 “이 때문에 금관을 실제로 머리에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 금관, 쓰기엔 지나치게 크고금 변형 심해…얼굴 덮개 가능성 이는 실제 학계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발굴 당시의 모습과 금관의 둘레가 머리 위에 쓰기엔 지나치게 크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얼굴에 덮는 용도로 만든 것이 맞다는 설입니다. 이 때문에 전날 바이든 대통령에게 금관의 용도를 설명하면서 비유적으로 데드마스크란 표현이 나온 겁니다. 서양에는 고인의 얼굴을 본따 만드는 데드마스크가 있어요. 금관은 얼굴 가리개 정도이니 완벽히 들어맞는 것은 아니나 비유적으로 나온 말입니다. 이 표현에 바이든 대통령은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치고 관심이 있다는 표현을 했다는 전언입니다. 서양권에서 금관의 용도와 그에 대한 설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나온 표현이죠. 실제 금관은 잘 구부러지고 휘기 때문에 평상시 왕이 쓰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것이란 해석도 이러한 비유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 금관 디자인 두고 설왕설래장례용품 가능성 제기돼 금관 모양이 나뭇가지의 형태가 변형된 구성이 주를 이루는 점도 해석에 신빙성을 더합니다. 나무 모양, 사슴 뿔 등이 있는 것은 신성한 나무가 지상과 연결한다는 고대 신앙을 반영한 것이죠. 이를 미루어 보아 고대 북방민족이 사슴과 나무를 하늘과 인간의 연결고리로 봤던 해석을 떠올려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금관에 달린 곡옥은 생명의 열매를 상징한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각에는 곡옥은 열매가 아닌 용이며, 관에 새가 표현된 것은 지상과 하늘의 연결이라고 보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상징에 대한 세부 의견이야 분분하지만 공통적으로는, 금관을 두고 평시 왕이 쓰던 용품이 아닌 장례용품으로써 샤머니즘·내세적 관점을 반영한 시각이 존재하죠.  이러한 관점, 크기, 금의 변형성 등 때문에 금관을 평시 쓰는 일이 어려웠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신라 금관은 사실 ‘왕이 쓰는 왕관의 일종’이 아닌 죽음 후, 혹은 언제 쓰였지 모를 ‘얼굴 가리개’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거죠. 실제 지난 2020년에도 금동관 출토 현장 설명회에서 망자의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 쓰인 것이라는 설명이 나온 바 있습니다. 출토 당시의 모습이 이 주장을 증명했죠. 신비로운 신라의 금관, 실제 현실에서 왕의 머리 위에 쓰는 위엄의 상징이 아니라요.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고대인의 신앙에서 나온 가신 분에 대한 예우의 상징이었을 가능성이 있군요.
  • [단독] 고국 땅 밟은지 10주년…외규장각 의궤, 굿즈로 탄생할까 [클로저]

    [단독] 고국 땅 밟은지 10주년…외규장각 의궤, 굿즈로 탄생할까 [클로저]

    오는 11월이면 한국에 돌아온지 10주년이 되는 외규장각 의궤가 하반기 국립중앙박물관 판매용 굿즈 제작 대상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또한 국립진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의 대표 유물도 콘셉트 구체화 대상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굿즈 제작 관계자들은 하반기 전시 라인업 주제로 외규장각 의궤가 계획된 데 따라 이번주부터 프로젝트 구체화 준비에 들어갑니다. 관계자들은 이 과정에서 굿즈 제작 대상 유물 목록에 외규장각 의궤를 추가해 검토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측이 올해 초 밝힌 전시 이름은 ‘의궤에 조선이 있었다-외규장각 의궤 귀환 10주년’으로 오는 11월 1일부터 특별전시실에서 진행될 계획입니다. 외규장각 의궤 기반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진행할 특별 전시입니다. 굿즈 제작 관계자들은 국립중앙박물관뿐 아니라 국립진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의 대표 유물도 굿즈로 제작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는 9월 출시 예정인 굿즈들로 이에 대해 현재 라인업만 정한 수준이죠. 진주박물관의 경우 임진왜란 관련 유물이 많아 무기 콘셉트 등을 참고할 계획입니다. 앞서 업계 관계자들은 반가사유상 굿즈의 인기에 힘입어 달항아리 등 인기 유물에 대해 굿즈 제작 대상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서울신문에 밝혔습니다. 이 달항아리 등에 대해서는 오는 2023년 굿즈 제작 대상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 의식의 궤범 ‘의궤’인건비까지…글·그림으로 공유 의궤는 의식의 궤범이란 의미일니다. 조선 시대 왕실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정리해 공유하려고 제작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을 의미합니다. 국가나 왕실의 중요한 의식과 행사를 연 후 모든 과정을 기록한 보고서 개념입니다. 후대에 행사에 준비한 인원, 이들을 고용한 비용, 필요한 물건, 그 물건을 위한 재료, 재료 구매비 등을 상세히 전해 참고할 수 있도록 독려하려 만든 겁니다. 의궤는 태조 이성계 시절부터 지난 1926년까지 꾸준히 제작됐습니다. 왕실 일정, 활동, 사업, 제례, 의식, 건축, 편찬 사업 등 왕실 주요 행사들이 모두 정리돼 있습니다. 주요 기록임을 인정받아 지난 200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됐습니다. 아쉽게도 여러 번의 전쟁 탓에 현재까지 전해지는 의궤는 17~20세기 초의 것입니다. ● 대여 형태로 고국 땅 밟아10주년 맞은 외규장각 의궤 그중에서도 한국 땅에 돌아온지 10주년을 맞을 외규장각 의궤는 지난 2011년 4월 병인양요(1866년) 때 프랑스에 약탈당한 후 145년만에 대여 형태로 국내로 돌아와 있습니다. 정조가 지난 1776년 즉위하며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을 설치하고 정식 국가기관으로 발족시켰습니다. 규장각은 왕립도서관의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이어 수년이 흘러 1782년, 규장각 보관 자료 중 특히 중요한 것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당시 국방상 요충지던 강화도에 행궁을 지어 옮겼습니다. 그러나 1866년 고종 당시 프랑스가 천주교 박해(병인박해)를 문제삼아 강화도를 점령하는 사건(병인양요)이 벌어졌죠. 외규장각에 보관됐던 의궤 등 주요 왕실자료는 이 때 약탈당했습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까지 외규장각 의궤의 소유권은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있습니다. 우리 측은 5년마다 대여를 연장하는 방식으로 의궤를 반환받았죠. ● 실리주의 선택해 반환아직까지 논의 대상 이 선택을 두고 실리주의 외교라는 평이 있는가 하면 소유권을 국내로 가져와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맞서고 있습니다. 20년간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반환 협상은 정책 교육 대상이 돼 공무원들 내부서 참고 사례가 되기도 했습니다. 1978년 박병선 박사(당시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가 문제를 제기한 후 1991년 서울대학교가 프랑스 외무부 장관에게 ‘프랑스국립도서관 소장 규장각 도서 반환요청 의뢰’ 공문을 보냈고, 이어 지난 1992년 7월 정식 반환 요청이 시작됐습니다. 이후 2010년 11월 한불정상회담을 통해 대여 형식으로 우리 측이 돌려받은 것이 주요 골자입니다. 프랑스의 국내법상 제약으로 소유권 이전은 불가능해 연장이 가능한 기한 설정 방식으로 빌려주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해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영구반환을 요청하는 등 여전히 다른 목소리는 나오고 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017년, 재임 기간 문화재를 식민국에 영구 반환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요구예요.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재선에 성공했죠. 문화재 반환이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가능하지는 않지만요. 끊임없이 실리와 명분 간 논쟁이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다른 나라가 프랑스에게 약탈된 유물을 반환받았듯이 우리도 그럴 수 있다는 희망이 아직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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