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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선 D-2] 무소속 ‘얼굴 알리기’ 안간힘

    “그 많던 부동층은 어디로 갔나.” 선거가 종반에 접어들면서 무소속 후보들의 외침이 절규에 가깝다. 선거가 인물이나 정책보다 ‘탄핵역풍’,‘박풍’,‘노풍’ 등 정당 대결로 치달으면서 무소속 출마자들이 외면받고 있는 것.더구나 합동유세가 사라지고 방송토론 등 미디어 선거로 바뀌면서 무소속 후보들은 TV토론에서조차 배제돼 선거판에서 설자리가 없어져 버렸다. 대구 달서구에 출마한 무소속 A, B후보는 지난 9일 대구지법에 13일 예정된 선거방송토론회를 중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이들은 “개정된 선거법 통과가 늦어지면서 무소속 후보는 자신의 정책이나 정견을 알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면서 선거토론회 대신에 무소속 후보도 참여하는 합동연설회를 개최할 것을 촉구했다.이들은 조만간 후보를 단일화하기로 했다. 대구 북구의 무소속 C후보는 최근 선거방송토론회 배제에 항의하며 자해소동을 벌였다.개정된 선거법에는 무소속 후보의 경우 여론조사에서 5% 이상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방송토론회에 참가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이처럼 선거판에서 외면을 받자 무소속 후보들은 “우리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며 몸부림 치고 있다. 대구 수성구에 출마한 무소속 D후보는 부인과 함께 매일 밤늦게까지 두산오거리에서 차량과 행인들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D후보는 “무소속으로 3번째 출마했는데 이번처럼 외면받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정당이 없다고 하는데 참신한 무소속 후보에게는 왜 관심을 두지 않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말했다. 1인 2표제도 무소속 후보에게는 악재다. 유권자들이 후보와 지지정당을 패키지로 투표할 가능성이 높아 무소속 후보들은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본다는 것.이 때문에 대구지역 무소속 후보들은 ‘무소속 후보에 1표를,나머지 1표는 지지정당에’를 외치며 유권자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총선 D-13] 정동영 ‘입’ 사고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4·15총선을 앞두고 60대 이상 노년층 유권자들을 폄하하는 발언을 해 파문이 일고 있다.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정의장의 발언을 비난하는 글이 줄을 잇는 가운데 일부 옹호하는 주장도 있어 세대갈등 양상까지 우려된다. 1일 국민일보·CBS·iTV 공동 총선기자단 VJ팀에 따르면 정 의장은 지난달 26일 “(이번 총선에서)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해도 괜찮다.”며 “(투표일에)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된다.”고 말했다.정 의장은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유권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질문에 “촛불집회의 중심에 젊은이들이 있다.미래는 20∼30대들의 무대”라며 “한걸음만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그분들(60대 이상 70대)이 미래를 결정해 놓을 필요는 없다.그분들은 어쩌면 이제 무대에서 퇴장할 분들”이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당시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대구지역 언론사 오찬 기자간담회 직후 VJ팀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정 의장은 이날 호남 방문 도중 예정에 없이 전남 장흥에 있는 경로당 2곳을 찾아 노인들에게 큰절을 올리며 용서를 구했다.정 의장은 “만일 본인의 발언이 60,70대 분들은 투표를 안해도 된다는 식으로 들려 불쾌감을 드렸다면 사죄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일제시대와 전쟁을 겪고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세대인 노년층에 대한 경시를 넘어 살아 있는 역사에 대한 결례이며 모독”이라고 비난했다. 박대출기자 dcpark@ ˝
  • 儒林(50)-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1519년 11월 16일. 조선 역사상 가장 길고 길었던 한밤의 숙청극은 중종이 조광조에게 참형의 교지를 확정하여 내림으로써 마침내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이 비극적인 숙청이 일어났던 해는 기묘년.따라서 후세 사람들은 이 사건을 기묘사화(己卯士禍)라고 부르고 있다.결과적으로 정치적인 개혁의 희생양으로 죽음을 당하게 되는 조광조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공초를 올려 자신의 죄상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 공초란 죄인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사실에 대해 진술하고 이에 서명하는 일인데,술에서 깨어난 조광조는 다음과 같이 최후진술을 하고 있다. “신의 나이가 38세에 이르기까지 선비로서 이 세상에 살면서 믿은 것은 오직 군심(君心)뿐입니다.국가의 병폐가 모두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이원(利源)에 있다고 망령되이 생각하여 국맥을 영구히 새롭게 하고자 했을 뿐 전혀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자신의 입장을 담담하게 진술한 조광조뿐 아니라 8명의 죄인들도 공동으로 작성하여 중종에게 다음과 같은 상소문을 올리고 있다. “신들은 모두 뜻만 높고 어리석은 자들로서 어진 상감을 만나 경연에 드나들면서 성덕을 가까이하고 상감의 밝은 경광(耿光)만을 믿으며 미충(微衷)을 다하였습니다.간혹 많은 사람들의 시기심을 불러일으켰으나 오직 상감만을 믿고 다른 것을 헤아리지 않은 채 우리 임금님이 요순과 같이 되시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그러니 어찌 사심(邪心)이 있었겠습니까.하늘이 내려다보는데 정말로 다른 사사로운 마음은 없었습니다.신들의 죄는 죽어 마땅하다 하더라도 선비들의 참화가 한번 발생하면 장차 나라의 명맥이 염려되지 않겠습니까.천문(天門:대궐문을 가리킴)은 멀어 한번 직접 뵈옵고 말씀드릴 수 있다면 백번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뜻은 넘치고 마음은 간절하지만 말이 차올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비장한 상소문은 중종에 의해 무시된다.‘한번 직접 뵈옵고 말씀드릴 수만 있으면 백번 죽어도 한이 없을 것이다.’라고 진술함으로써 마지막으로 왕과의 면담을 간청하고 있는 8인의 진술은 그러나 중종에 의해서 철저하게 기각되는 것이다. 다만 중종은 조광조를 비롯하여 김정 김식 김구에게는 참형,나머지 4인에게는 귀양보내게 했던 처음의 형량을 변경하여 조광조 등 4인에게는 장 100대에 벽지에 안치시킬 것과 나머지 4인은 벽지에 부처(付處)시킬 것을 명령하였던 것이었다.그나마 조광조가 참형에서 장형으로 감형되었던 것은 정광필을 비롯하여 안당과 같은 의정부 대신들이 눈물로 읍소하였기 때문이었다.특히 정광필은 조광조가 병약한 몸이라 장 100대도 과중하여 장형을 감하여줄 것을 탄원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다음날 아침 8인의 죄수들은 의금부 앞뜰에 모여서 중종이 내린 최후의 전지를 듣게 된다.중종의 전지를 대신 읽은 사람은 판중추부사였던 김정이었다.조광조를 비롯한 8인의 죄인들은 부복하고 군신으로서의 예의를 갖춰 왕이 있는 곳을 향해 큰절을 올린 후 모두 무릎을 꿇고 중종의 교지를 듣는다.기록에 의하면 중종의 전지는 다음과 같다. “…너희들은 모두 나를 시종하던 신하들로서 경연에 출입하면서 상하가 한마음으로 옳은 정치를 하려 하였으므로 그것은 결코 나쁜 것은 아니었다.…”˝
  • 儒林(50)-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儒林(50)-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1519년 11월 16일. 조선 역사상 가장 길고 길었던 한밤의 숙청극은 중종이 조광조에게 참형의 교지를 확정하여 내림으로써 마침내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이 비극적인 숙청이 일어났던 해는 기묘년.따라서 후세 사람들은 이 사건을 기묘사화(己卯士禍)라고 부르고 있다.결과적으로 정치적인 개혁의 희생양으로 죽음을 당하게 되는 조광조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공초를 올려 자신의 죄상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 공초란 죄인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사실에 대해 진술하고 이에 서명하는 일인데,술에서 깨어난 조광조는 다음과 같이 최후진술을 하고 있다. “신의 나이가 38세에 이르기까지 선비로서 이 세상에 살면서 믿은 것은 오직 군심(君心)뿐입니다.국가의 병폐가 모두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이원(利源)에 있다고 망령되이 생각하여 국맥을 영구히 새롭게 하고자 했을 뿐 전혀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자신의 입장을 담담하게 진술한 조광조뿐 아니라 8명의 죄인들도 공동으로 작성하여 중종에게 다음과 같은 상소문을 올리고 있다. “신들은 모두 뜻만 높고 어리석은 자들로서 어진 상감을 만나 경연에 드나들면서 성덕을 가까이하고 상감의 밝은 경광(耿光)만을 믿으며 미충(微衷)을 다하였습니다.간혹 많은 사람들의 시기심을 불러일으켰으나 오직 상감만을 믿고 다른 것을 헤아리지 않은 채 우리 임금님이 요순과 같이 되시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그러니 어찌 사심(邪心)이 있었겠습니까.하늘이 내려다보는데 정말로 다른 사사로운 마음은 없었습니다.신들의 죄는 죽어 마땅하다 하더라도 선비들의 참화가 한번 발생하면 장차 나라의 명맥이 염려되지 않겠습니까.천문(天門:대궐문을 가리킴)은 멀어 한번 직접 뵈옵고 말씀드릴 수 있다면 백번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뜻은 넘치고 마음은 간절하지만 말이 차올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비장한 상소문은 중종에 의해 무시된다.‘한번 직접 뵈옵고 말씀드릴 수만 있으면 백번 죽어도 한이 없을 것이다.’라고 진술함으로써 마지막으로 왕과의 면담을 간청하고 있는 8인의 진술은 그러나 중종에 의해서 철저하게 기각되는 것이다. 다만 중종은 조광조를 비롯하여 김정 김식 김구에게는 참형,나머지 4인에게는 귀양보내게 했던 처음의 형량을 변경하여 조광조 등 4인에게는 장 100대에 벽지에 안치시킬 것과 나머지 4인은 벽지에 부처(付處)시킬 것을 명령하였던 것이었다.그나마 조광조가 참형에서 장형으로 감형되었던 것은 정광필을 비롯하여 안당과 같은 의정부 대신들이 눈물로 읍소하였기 때문이었다.특히 정광필은 조광조가 병약한 몸이라 장 100대도 과중하여 장형을 감하여줄 것을 탄원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다음날 아침 8인의 죄수들은 의금부 앞뜰에 모여서 중종이 내린 최후의 전지를 듣게 된다.중종의 전지를 대신 읽은 사람은 판중추부사였던 김정이었다.조광조를 비롯한 8인의 죄인들은 부복하고 군신으로서의 예의를 갖춰 왕이 있는 곳을 향해 큰절을 올린 후 모두 무릎을 꿇고 중종의 교지를 듣는다.기록에 의하면 중종의 전지는 다음과 같다. “…너희들은 모두 나를 시종하던 신하들로서 경연에 출입하면서 상하가 한마음으로 옳은 정치를 하려 하였으므로 그것은 결코 나쁜 것은 아니었다.…”
  • [김영희 이혼클리닉-만남,사랑 그리고 헤어짐] 은퇴한 남편의 과음 속상해요

    30년 교직생활하다 퇴직한 56세 주부입니다.공무원으로 일하던 남편도 얼마 전에 퇴직했습니다.연금 덕에 경제적 어려움은 없지만,문제는 남편의 술버릇입니다.남편은 소주 3병 정도를 1주일에 서너차례 마시고,만취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죽을 고비도 넘겼습니다.손찌검은 안 하지만,남편의 술을 줄일 방법은 없을까요? 이혼은 원치 않습니다. 수원에서 임영순 임영순씨.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남성음주는 전체인구의 40%를 넘고,지난해 국내 소주 판매량만 29억 1000만병이나 됐다고 합니다.믿기지 않는 엄청난 숫자지요. 과도한 음주는 가정을 파괴하고 개인의 삶을 파탄으로 끌고 가는 심각한 병입니다.‘술 먹은 다음날은 기억이 없다.’ ‘미안하다.’ ‘다시는 술 먹지 않겠다.’ 각서에 혈서까지도 쓰지만 길어야 1주일이지요.술과 원수 진 사람마냥 죽기 살기로 마셔대는 사람도 있고,술 때문에 패가망신한 사람도 많아요.살기 힘들어서 한잔,스트레스로 한잔,이래저래 한잔….이유도 많지요. 영순씨.‘남편에게 술 먹지 말라.’‘각서 써라.’‘이혼하자.’라는 정신적인 압박을 하지 마세요.아내 잔소리 무서워 술 끊는 남편은 없답니다. 영순씨.저도 술 좋아하는 남편과 36년을 살았습니다.1000여명 직원 중에서 술 많이 마시기로 1∼2위를 다투던 남편이었습니다.남편의 술을 내 힘으로 도저히 끊을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내일은 술을 끊겠지.’ 하는 기대를 버리고 몸이나 상하지 않게 해 주자며 고단백질 음식을 만들고,인삼달인 물을 냉장고에 항상 상비해 두었고,남편에게 술에 관한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술을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다시는 술 먹지 않겠다는 약속은,빈 약속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지요.저는 집안청소할 때면 빈 술병을 치우지 않고 남편이 치울 때까지 방치했습니다.‘도대체 술이 뭐기에.’ 펑펑 눈물을 쏟았고,남편 건강에 이상이 있을 것만 같아서 피가 말랐습니다. 요지부동이던 남편이 어느 날부터 동네 불곡산을 오르기 시작하더군요.저도 따라 나섰지요.술 먹는 날엔 못가기도 하고… 2년여를 그렇게 왔다 갔다하더니 남편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점차 술이 줄어들더니 어느 날,거짓말 같이 술을 딱 끊어버리더라고요.긴 세월의 인내가 남편을 변화시켰을까.제 간절한 마음이 남편에게 전달이 됐을까.저는 아직도 그걸 모릅니다.묻지 않고 있으니까요. 이제 남편은 매일 아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시간씩 산을 다녀 온 후에야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불곡산을 향해 큰절하고 싶은 심정입니다.하지만 과음하는 남편과 살고 있는 불행한 세상의 아내들에게,참고 살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영순씨.마침 두 분께서 정년퇴직을 하셨으니,생활 환경을 바꿔 전원생활을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지금 남편께서는 정년퇴직으로,마음이 허탈할 것입니다.수십년을 일해 왔던 직장을 떠나 있으니 홀로 외톨이가 된 느낌일 것입니다.붙일 곳 없는 허전한 마음을 술에 의지하며 달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더 이상 술에 마음을 주지 않게끔 영순씨께서 남편에게 일거리를 만들어 줘야 될 것 같습니다. 텃밭에 채소도 가꾸고,나무도 심고,닭도 개도 키우면서 자연을 벗삼아 사신다면,남편에게 새로운 일거리가 생겨 바빠지실 것 같은데요.그동안 술에 찌들었던 몸도 마음도 신선한 공기에 씻어낼 수 있어 건강에도 좋겠고요.아침이면 조랑조랑 이슬 맺힌 풀잎을 밟으며 자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채소밭을 향해 걸어갈 때,남편은 어떤 소속감으로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씨 뿌리고,싹이 돋고,땀 흘려 가꾼 것들을 수확하는 즐거움을 무엇에 비교하겠습니까. 하루 일을 마치고 정성들여 가꾼 싱싱한 채소를 안주 삼아 쏟아지는 달빛아래서 두 분이 술잔을 나누고,주말이면 자식들과 친구들을 초대하여 애써 가꾼 채소도 나누어주고,그러다 보면 남편의 음주는 점차 줄어들지 않을까요?술친구들도 자연스럽게 멀어져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 마실 기회도,만취상태에서 운전할 위험도 없을 것 같습니다.술은 본인의 확고한 의지와 가족의 도움 없이 끊을 수 없습니다.영순씨.남편의 술을 끊기 위해 전원생활을 하자고 해선 안 됩니다.두 분이 이곳저곳 여행 다니다 남편 스스로가 전원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유도하세요.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이 있습니다.영순씨.어느 따스한 봄날,저희 부부도 불러 주세요.우리 풀섶에 마주앉아,힘들었던 지난날을 이야기하며 한바탕 웃어봅시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서울신문은 김영희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의 에세이 칼럼 ‘이혼클리닉-만남,사랑 그리고 헤어짐’을 싣습니다.우리나라의 이혼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합니다.김 위원은 이 칼럼을 통해 부부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행복을 되찾을 수 있도록 아낌없는 조언과 충고를 해줄 것입니다.상담 신청은 서울신문 홈페이지 www.seoul.co.kr에서나 이메일 media@seoul.co.kr로 받습니다.
  • 53년만에 부른 “아버지…”/국군포로 전용일씨 ‘눈물의 성묘’

    “사랑하는 아버지,어머니.그리고 형님,불효 자식 용일이가 50년 만에 돌아왔습니다.큰절 받으십시오.” 20일 0시쯤 꿈에 그리던 고향에 도착한 국군포로 전용일(73)씨는 경북 영천시 화산면 유성리 동생 수일(64)씨의 집에서 첫밤을 보낸 뒤 부모님과 형님의 묘소가 있는 신령면 완전리 선영을 찾았다.고령에다 그간의 여독이 덜 풀린 탓인지 새벽 한때 정신을 잃고 인근 병원에서 링거를 맞기도 했다. 1951년 12월 입대할 때만 해도 홍안의 청년(20세)이었던 전씨는 일흔이 넘은 백발로 부모님의 묘소 앞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동생의 부축을 받아 반세기 만에 이뤄진 성묘에서 그는 감회가 벅찬 듯 수십 차례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아버지”를 큰소리로 외쳐댔다. “이 아들 53년 만에 고국에 돌아와 따뜻한 부모님의 품에 안겼습니다.이 불효 자식을 부디 용서해 달라.”고 절규했다. 전씨는 “내가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온 것은 부모님이 끝까지 걱정해 주신 덕분”이라며 “50년 전의 헤어짐이 영원한 이별이 될지는 몰랐다.”고 흐느꼈다. 그는1999년 77세의 나이로 작고한 인근 형님 환일씨의 묘소에도 절을 올린 뒤 “형님,몇 년만 더 사셨더라도 이 동생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요.왜 그렇게 빨리 가셨습니까.”라며 형님을 애타게 불렀다. 그는 성묘를 마친 뒤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신령면 신덕1리 마을회관을 찾아 주민들이 마련해준 다과와 손국수로 점심식사를 했다.그는 이 마을에 사는 가까운 친척집에도 들렀다. 전씨는 앞서 영천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혼자 사는 형수(완전리)를 찾아 인사한 뒤 차로 5분여 거리인 동생집으로 향했다. 마중 나온 환영객 50여명은 전씨에게 꽃다발을 전하며 환영했다.그는 환영객들에게 “환영해 줘서 감사하다.만나서 반갑다.”며 “여러분의 도움으로 사랑하는 조국과 고향을 찾을 수 있게 됐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편 영천시와 영천시의회는 설 연휴가 끝난 오는 27일 오후 영천시민회관에서 전씨의 무사귀환을 축하하는 범시민 환영식을 성대히 개최할 예정이다 영천 김상화기자 shkim@
  • “네가 끝분이냐…”전용일씨 눈물의 가족상봉

    “네가 끝분이냐.오빠를 용서해라.오빠 구실을 못했다.” 26일 오후 2시30분 서울 용산구 국방회관 1층 연회실. 천신만고 끝에 사흘 전 귀환한 탈북 국군포로 전용일(72)씨와 가족들은 대면하는 순간 잠시 머뭇거렸으나 이내 서로를 알아본 듯 부둥켜안은 채 이름만 연신 불러댔다. 전씨는 1953년 인민군의 포로가 되는 바람에 지금까지 가족들을 돌보지 못해 자책감이 드는 듯 눈물만 흘리다 막내인 여동생 전분이(57·대구시 달서구 진천동)씨와 눈이 마주치자 ‘끝분아'라고 외치며 오열했다. 전씨는 상봉한 동생 2명을 기억했다.하지만 군 입대 당시 시집간 누나 전영목(78·대구시 달서구 진천동)씨는 얼굴을 보고도 잘 알아보지 못해 가족들을 안타깝게 했다.한참 뒤에서야 누나를 알아보고 얼굴을 감싸안은 채 “누나,이 동생을 용서해.”라며 울먹였고,영목씨는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었구나.”라는 말만 연신 했다. 가족들은 꿈 속에서도 그리던 전씨와의 만남이 현실로 나타나자 그를 의자에 앉힌 뒤 큰 절을 올렸다.가족들은 이날 처음 본 분이씨의남편과 동생 수일(65·경북 영천시)씨의 부인,조카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전씨는 분이씨의 남편이 큰절을 하자 손위 처남으로서 아무런 역할을 한 게 없어 면목이 없다는 표정으로 ‘됐다.됐어.'라고 말했다.전씨는 특히 막내 분이씨에 대한 관심이 유달랐다.“이제 마음 푹 놓아라.오빠가 업어주고 안아줄게.이 오빠는 나약한 놈이 아니야.”라고 우렁차게 말하기도 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열린세상] 정체성의 위기

    다사다난했던 2003년 한해도 조용히 역사 속으로 저물어 간다.국가적으로 핵문제와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사회적으로 정치개혁과 대선자금 비리수사가 연일 언론의 뉴스 초점이 되었던 한해였다.각 정권마다 시대정신에 따른 시대적 소명이 있었다면,이로 인해 금년에 출발한 노무현 정권은 시대적 소명이 정치개혁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야당 후보보다도 훨씬 적은 돈을 쓰고도 당선이 되었기 때문에 정치자금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에 나온 결과로 보인다. 그런데 시대정신이 이와 같이 정치개혁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치개혁법안이 정치권에 의해 표류 내지는 개악되고 있다는 소식에 국민들은 절망하고 있다.선거철에는 국민을 위한다고 단상 위에서 유권자들에게 큰절까지 하는 쇼를 하면서,일단 금배지를 달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기득권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일부 의원들의 모습에 국민들은 암담할 따름이다. 이제 우리 국회도 대수술을 하고 정치개혁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그리고 민생문제와 민족문제만큼은 당리당략을 떠나야 한다. 정치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한다.우리 국민들도 냉소적으로 정치권을 방관하지만 말고,항상 깨어있어 내년 총선에서 올바른 선택을 몸으로 보여주어야 한다.양심적이고 애국적인 일부 정치인에게는 용기있게 격려도 하고,힘들지만 정치권을 감시하는 관련 시민단체에도 힘을 모아주어야 한다. 최근 모 일간지는 2003년 한해 동안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가 ‘우왕좌왕(右往左往)’이라고 밝혔다.이 말은 우리사회의 각 부문이 자신의 정체성과 본분을 망각하고 방황한 데서 연유한 것 같다.모든 실수를 자신 안에서 찾기보다는 타인의 책임으로 돌리거나,무조건 타인의 화려한 겉모습을 비판없이 본뜨다 보니 온 결과로 보인다. IMF위기 이후 우리사회에 가장 인기 있는 단어는 경쟁력이었다.경쟁도 우리사회를 활성화하는 데 필요하지만 무엇을 위한 경쟁이냐를 확실하게 해야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우리 모두에게 유익성을 가져온다.좋은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고시에 합격하기 위해서,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그 수단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고,왜 대학에가야하고,고시를 합격해서 무엇을 하겠으며,영어를 왜 잘 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목적과 동기를 동시에 항상 성찰해야 한다.무조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인을 제압하고 자신의 목적만 달성하는 그러한 경쟁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의 위기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정체성의 위기를 가져온다. 이제까지 어느 한해가 안 중요한 해가 없었겠지만,2004년은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물론 총선과도 관련해 다른 어느 해보다도 우리에게는 의미심장한 한해가 될 것 같다. 최근 한 영국 연구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 민족의 IQ가 다른 어느 민족보다도 높은 것으로 나왔다.우리 민족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5000여년의 역사를 일궈온 민족이다.우리 민족은 내년에도 현재 우리에게 맡겨진 시대적 소명인 정치개혁과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전 국민의 힘으로 이루어낼 것이라고 확신한다.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역사관 민족관 세계관 등에 관한 정체성이 확고히 서 있어야 한다. 아무리 우리사회가 물질주의에 함몰되어 있다 하더라도 우리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은 항상 도덕성과 한국적 문화적 정체성에 기반을 둔 역사관,민족관,세계관을 젊은 세대에게 고집스럽게 몸으로 보여주고 견지해야 한다.나라의 경제와 복지도 풍부한 정신문화와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기초 위에서 더욱 탄탄해진다.과거 권위주의시대와 군사독재시절에 반독재투쟁의 행태가 아니라,잘못된 것은 반드시 합법적 절차를 거쳐 바로잡는다는 고집스러운 선비정신이 우리의 정체성의 위기와 관련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아쉽다. 이 장 희 한국외대 법대 학장 국제법
  • 이회창씨 검찰출두/출두표정·검찰 반응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15일 오전 10시35분쯤부터 오후 7시10분쯤까지 9시간여 동안 조사받고 귀가했다.전직 야당 총재가 자진출두 형식으로 조사받은 것은 처음이다. ●한나라 “사법처리까지 염두둔것 같다” 이 전 총재는 출두 및 귀가 때 미리 기다리고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나 당 관계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짐짓 여유있는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지자 표정이 상당히 굳어졌다.한나라당 당직자들은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이회창 전)총재께서 사법처리까지 염두에 두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는 귀가할 때 오랜 시간 조사를 받아서 그런지 상당히 지친 기색이었다.혐의에 대해서는 “다음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거나 “별로 할 말이 없다.”며 짧게 대답했다. 이 전 총재는 이날 오전 조사에 앞서 대검 7층 안대희 중수부장 방에 들러 5분 동안 차를 함께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이 전 총재는 “모든 책임은 내가 질테니 관련자들은 선처해달라.”고 요청했고 안 중수부장은 “(총재님이)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면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전 총재는 곧 11층 1113호 특별조사실로 이동했다.유재만 중수2과장이 직접 조사에 나섰다.이 전 총재는 오후 1시부터 30분 동안 한나라당 소속 변호인단을 접견한 뒤 미역국으로 간단히 점심을 들었다.아직은 참고인이어서 검찰 관계자들은 ‘총재님’으로 호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검찰은 이 전 총재의 전격 출두에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송광수 검찰총장은 이 전 총재의 기자회견을 보고 회의를 소집,대책을 숙의했다.검찰은 그러나 일단 나온 이상 조사 준비가 덜 됐더라도 조사를 하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安중수부장에 “관련자 선처” 요청 문효남 대검 기획관은 “이 전 총재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하지만 수사팀은 이 전 총재가 전모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이 전 총재는 검찰에 들어올 때는 항의받고 나갈 때는 환대받는 이색 경험을 했다. 출두 때는 대검청사 정문에서 민주노동당 빈민위원회 소속 당원들로부터 제지당했다.이들은 LG 150억원 수수 당시 쓰였던 탑차를 동원,100억원이라 적힌 사과상자를 전달하려 하는 등 항의시위를 벌였다.반면 나갈 때는 ‘창사랑’ 회원 수십명이 나서서 ‘대통령 이회창’ 등의 구호를 외쳤다.한 노인은 이 전 총재에게 큰절을 올리겠다고 나서기도 했다.그러나 100억원 사과상자 전달도,큰절도 이 전 총재 측근들의 제지로 성공하지 못했다. 홍지민기자 icarus@
  • [사설] 崔해양 경질 타산지석 삼아야

    최낙정 해양수산부장관이 연이은 ‘튀는 발언’ 끝에 취임 보름만에 경질됐다.최 장관은 태풍 ‘매미’ 상륙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뮤지컬 관람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가 사과문을 발표했는가 하면,지난달 30일 목포해양대 특강에서는 취재 중인 기자들을 쫓아내면서 “갈 데까지 갔으니 옷을 벗겠다.”며 언론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시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지난 1일에는 초등·특수학교 교장자격 연수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면서 ‘선생 몇 놈’이라는 막말과 함께 교사 비하 발언을 했다가 큰절로 사과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최 장관은 전문성을 살려 태풍 피해를 조속히 수습하라는 취지에서 차관 승진 7개월만에 장관에 발탁됐다.그렇다면 당연히 태풍으로 어선이 부서지고 양식장이 폐허화된 현장을 찾아 어민들의 아픔을 다독이고 수습책 마련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하지만 최 장관의 행보는 태풍 피해 수습보다 외부 행사에 더 치우친 것처럼 비쳤다.게다가 국무위원으로서 지켜야 할 품위도 망각한 채 튀는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최소한 1년 이상 장관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공언했던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최 장관의 ‘파격’이 국정 운영에 미칠 부작용을 우려해 경질한 것으로 판단된다.설화(舌禍)가 몰고올 쓸데없는 소모전을 감안할 때 당연한 조치다.최 장관은 취임 이후 이미 한차례 국무총리로부터 언행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받은 적이 있다.그럼에도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다가 낙마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참여정부 출범 이후 많은 국정 혼란이 ‘말’에서 비롯됐다.최 장관의 경질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제자 사랑않는 교장 소용없다”/최낙정 해양 ‘교사비하’ 구설수

    “대통령이 태풍 때 오페라를 본 게 잘못이냐.”는 말로 비난을 샀던 최낙정(崔洛正·사진·50) 해양수산부장관이 교사비하 발언으로 취임한 지 보름 만에 또 구설수에 올랐다. 최장관은 1일 충북 청원군 한국교원대에서 초등·특수학교 교장자격 연수생들을 대상으로 한 ‘우리나라 해양정책과 국내외 동향’이란 주제의 특강을 통해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와 싸운 뒤 선생님으로부터 몇시간 동안 얻어맞고 다른 학교로 전학간 적 있다.”고 말하는 등 학생시절 교사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들을 열거,일부 연수생들이 퇴장하는 말썽을 빚었다. ●교장자격 연수생들 강의중 퇴장 그는 “교사들은 무조건 제자들을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교장으로 올라가고 해도 아무 소용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같은 발언에 연수생들은 “도대체 뭐 하자는 것이냐.”,“당신 어느 나라 장관이냐.”,“선생들을 이렇게 우습게 볼 수 있느냐.”며 강하게 항의했고 일부는 퇴장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최장관은 “선생님을 모독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 교육이 잘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며 뒤늦게 진화를 시도했다. ●항의 계속되자 “죄송하다” 큰절 그러나 약 5분간 계속된 해명에도 불구하고 일부 연수생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최장관은 갑자기 “죄송하다.”며 큰절을 하는 해프닝까지 연출했다. 행사를 주최한 교원대측 관계자들이 대신 나서 “최장관이 학생시절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런 말이 나온 것 같은데 오해다.”면서 “원래 주제인 해양분야의 특강을 듣자.”고 설득해 10여분 만에 강의가 속개됐다. 해명연수생 대표인 경기도 광명시 연서초등학교 신광열 교사는 “최장관의 의사전달 과정에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최장관은 “본인이 학생 시절에 선생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말을 하려고 한 것일 뿐”이라며 “의사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다.”고 해명했다. 청원 연합
  • 영욕의 권노갑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은 지난달 2일 진승현 게이트 관련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본격적인 정치적 복권을 준비했다. 공판 직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 오열하며 큰절을 올렸던 노(老)정객은,오는 14일 김근태 의원의 정치자금 관련 재판이 잘 마무리되면 미국에 있는 둘째 손자를 보러가겠노라며 기뻐했다. 그는 국민의 정부에서 ‘권력의 핵심’이라는 뜻에서 ‘권부’로 통했으나,그만한 영화를 누리지 못한 채 오욕의 길을 걸었다.국민의 정부 출범 전과 임기말 등 2차례 구속됐고,정치자금과 관련된 각종 스캔들에 단골로 거론됐다.지난 97년 2월 한보사건으로 구속돼 정권교체의 감격을 옥중에서 삭여야 했고,이듬해 8·15특사로 풀려나 복권된 이후에도 당시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종찬 국정원장 등 여권 신주류에 밀려 일본 등 해외를 떠돌며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2000년 16대 총선때는 스스로 출마를 포기하면서 공천 교통정리와 산하단체장 인사를 주도하고 그해 8·30전당대회에서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되면서 권력의 핵으로 재부상했으나,당시 특보였던 최규선 게이트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2000년 12월에는 정동영 고문을 비롯한 당내 쇄신파의 ‘인적 쇄신’ 요구에 밀려 ‘순명(順命)’이란 말을 남기고 최고위원직을 사퇴,2선 퇴진을 강요당했다.이어 이인제 의원을 대선후보로 밀면서 ‘킹 메이커’로서의 변신을 꾀했으나 노무현 돌풍에 밀려 재기의 발판을 잃었다. 지난해 5월에는 진승현씨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수감됐고,일생의 고락을 함께 해온 김 전 대통령과의 관계마저 소원해지기까지 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행동반경 넓히는 김상현·권노갑

    ‘마당발’로 소문난 민주당 김상현 상임고문의 행동 반경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아울러 권노갑 전 고문의 정치 재개 여부도 주목된다. 진승현씨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지난 2일 열린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권 전 고문이 주말인 5일 수도권 모 골프장에서 김상현 상임고문,이상수 사무총장,임채정 의원과 라운딩을 함께했다. 이날 골프 모임은 김 고문이 권 전 고문의 무죄판결을 ‘축하’하기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권 전 고문은 김 고문,임 의원,이훈평 의원과 한 조를 이뤄 라운딩을 하려고 골프장에 나갔으나 마침 이 총장이 인접한 시간대에 지인 3명과 골프를 하려는 걸을 알고 김 고문이 이 총장과 이훈평 의원의 조를 바꾸도록 했다는 후문이다. 이훈평 의원은 “골프모임은 김 고문이 권 전 고문의 무죄판결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면서 “신당 논의 등 정치적 얘기는 일절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 전 고문과 민주당 중진들의 골프회동을 두고 당내 일각에서는 권 전 고문이 조심스레 정치를 재개하는것 아니냐고 관측했다.권 전 고문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당일 동교동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 큰절을 하면서 통곡하기도 했다.권 전 고문은 이를 계기로 김 전 대통령의 동교동측과 서먹서먹했던 관계도 청산했다는 전언이다.한편 김 고문은 일요일인 6일에도 신주류 좌장격인 김원기 상임고문,중도파인 강운태 의원,정통모임 소속 유용태 의원과 운동을 함께하며 ‘신당 중재’에 나섰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권노갑 동교동 방문 오열 / 눈물 글썽인 DJ

    민주당 동교동계의 맏형격인 권노갑 전 고문이 2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큰절을 올린 뒤 오열을 터뜨렸다. 권 전 고문은 오전 진승현씨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항소심 공판서 무죄판결을 받은 뒤 낮 12시 45분쯤 김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을 찾아갔다.권 전 고문이 거실 바닥에 엎드려 울면서 큰 절을 올리자 김 전 대통령도 함께 눈물을 글썽이며 “법정투쟁하느라 고생했다.그런 일이 사실이 아닐 거라고 믿고 있었고 무죄가 돼서 나올 줄 알았다.”고 격려했다. 권 전 고문은 “건강을 유지하셔서 국민들을 위해 좋은 강연도 해달라.”고 인사했고,김 전 대통령은 “이제 그런 일은 자네들이 해야지.나는 은퇴했는데….”라며 30여분간 덕담을 주고 받았다.그러나 민주당 신당 문제나 특검 등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었다고 동행한 이훈평 의원이 전했다. 권 전 고문은 지난 2월 24일 김 전 대통령이 퇴임 때 동교동으로 가 먼 발치서 바라만보다 발길을 돌렸고,이후에도 “무죄를 받은 뒤에나 찾아뵙겠다.”는 의지를 밝혔었다.그는 정치 재개 여부를 묻는 보도진의 질문엔 손사래를 치며 웃음으로 대신했다. ●김 전대통령 영어통역 1명 공채 한편 동교동측은 김 전 대통령의 국제관련 업무 및 영어 통역을 담당할 별정직 2급 비서관 1명을 공개채용 한다. 이춘규기자 taein@
  • [열린세상] 어머니가 그리운 세상

    몇 해 전 일로 기억한다.워커힐에서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면이 TV를 통해 전국으로 방영되었다.북에서 온 칠순을 넘긴 아들이 넙죽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한다.그러고는 어머니 품에 안겨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못한 채,그동안 못 다한 자식의 도리를 대신 하려는 듯이 어머니를 만져보고 또 만져보던 장면이 기억난다.누가 시킨들 이런 감동적인 연기를 연출해 낼 수 있겠는가. 그저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하나만 가지고 달려와 어머니 품에 안기는 자식의 순수함이 이런 장면을 가능케 하였을 것이다.이런 순수함 때문에 이를 보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눈물의 바다에 빠지게 하였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떠한가? 매년 신학기가 되면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대학에 쏟아져 들어온다.이들을 대상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기피하고 싶은 인물이 누구인지를 물어보았다.그들의 대답은 놀랍게도 어머니였다.왜 그럴까? 정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노인이건 젊은이건 모두가 어머니가 그리워 눈물을 흘리던 세대를 살아온 우리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문제의 해답은 우리의 교육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우리의 자녀들은 유치원 시절부터 피아노,미술,무용 등의 과외공부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자녀의 적성과는 전혀 무관하게 단지 남들이 하니 우리 아이도 해야 된다는 부모의 강박관념 때문에 고행의 길은 시작된다.중학교,고등학교로 이어지면서 그 정도는 더욱 심해진다.급기야 고3이 되면 상상을 초월하는 고행의 길을 일년 동안 걸을 수밖에 없다. 그럼 누가 이들의 고행길을 뒷바라지하겠는가? 당연히 어머니다.아침 일찍 피곤에 찌들어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를 깨워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먹이고 차에 태워 학교에 보내는 일부터,밤늦게 돌아오는 아이의 시중까지를 도맡아 한다.그러면서 속으로는 ‘일류대학에 제발 합격만 해다오.’라고 기도한다.어머니의 헌신은 끝이 없이 계속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친 아이들을 짜증나게 하는 일이 있다.엄마가 이같은 고생을 하는데도 성적이 별로 오르지 않고 있다.그러면 엄마는 지친 아이에게 “공부 좀 잘해라.”“옆집 아이는 1등급인데 너는 무엇이 부족해서 이 모양이냐.” 등의 한탄 섞인 어조로 아이들을 몰아세운다.그 결과 대학 신입생들의 기피인물 1호가 바로 어머니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부모들은 아이들과 대화를 할 줄 모른다.고작 “공부해라,놀지 마라,방청소 해라.”등의 일방통행식 대화만 하고 있다.매년 입학시험 면접에서 “정확히 1분을 줄 터이니 본인 소개를 해보아라.”고 주문을 한다.면접결과는 점수화되어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순간이지만,수험생들의 발표능력은 1분을 다 채우지 못한다. 대부분의 경우 20초가 고작이다.왜 그럴까? 아이들이 대화를 통하여 남을 설득하려는 훈련을 받은 적도 없거니와 기회조차 주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집에서 할 수 있는 대화도 “밥 먹었니,숙제했니,방청소했니.” 등의 일방적인 대화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래 사회에 주역이 될 이들이 갖춰야 할 덕목이 있다면 협상의 명수가 되는 것이다.성공적인 협상은 바로 대화를 통하여 가능하게 된다.우리 아이들의 발표능력이 20초를 넘기지 못하는 한우리의 미래는 결코 밝지 못하다. 이를 해결할 책임은 우리 어른들에게 있다.아이들은 입시지옥에서 해방되어야 한다.자식과 어머니 간에 푸근함과 순수함이 있어야 어머니가 그리운 세상이 되고 올바른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현대적 의미의 ‘맹모삼천’은 장소를 옮기는 이사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자식에 대한 마음의 자세를 세 번 바꾸는 데 있다. 우리 어른들이 미래의 주역들에게 순수함을 유지하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어머니가 그리운 세상을 만들 때만이 우리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박 우 서 연세대교수 행정학
  • 레저단신/ 대학생 ‘캠퍼스 개강파티’등

    ***대학생 '캠퍼스 개강파티' 에버랜드는 새달 15일까지 대학생들을 위한 ‘캠퍼스 개강파티’를 개최한다.네덜란드를 테마로 ‘홀랜드 빌리지’에서 다양한 맥주를 즐기는 ‘캠퍼스 비어 페스타’ 및 힙합콘서트 등이 진행되며,대학생에 한해 페스티벌월드와 캐리비안베이를 각각 1만 5000원에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을 준다.(031)320-5000. ***미취학 어린이 체험교실 롯데월드는 새달 1일부터 10월 말까지 취학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요리 실습 및 전통예절 익히기 등 가을 어린이 체험학습프로그램을 진행한다.롯데월드 전문 요리사 3명이 어린이들과 조를 편성해 피자를 만들어 즉석에서 구워 함께 먹는다.큰절,평절 등 전통예절 강습은 민속박물관 놀이마당에서 진행된다.(02)411-4979.
  • 8.15 민족통일대회/ 개막식·합동공연 이모저모/견우·직녀 만나는 날 함께 감동 나눈 南北

    광복 57돌을 맞은 15일 온 겨레의 통일과 화해의 염원을 담은 8·15 민족통일대회가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막을 올렸다.때마침 음력 7월7일로 칠월칠석이었던 이날 견우와 직녀처럼 한자리에 모인 남북측 인사들은 함께 손뼉치고 환호하며 가슴찡한 감동을 나눴다. ◇개막식 직전- 워커힐 호텔에서 첫날 밤을 보낸 예술단원들은 제이드가든에서 열린 개막식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오전 9시쯤 1층 로비로 나왔다.맨 얼굴의 일부 여성 예술단원들은 의자에 앉아 화장을 시작했고 쑥스러운 듯 기자들에게 “맨 얼굴은 찍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전날 아버지 몽양 여운형의 묘소를 방문하고 호텔에 돌아온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여원구 의장은 환한 미소로 “푹 잘 잤다.”고 말했다.개막행사가 끝난 뒤 여 의장은 “마치 남북이 통일된 느낌”이라며 가슴벅찬 표정을 지었다. ◇개막식- 이날 오전 9시30분 열릴 예정이던 개막식은 남북 공동호소문 작성을 둘러싼 진통으로 1시간쯤 늦어졌다.개막식이 시작되자 행사장 입구에 도열한 남측 대표단은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는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에 맞춰 손뼉을 치며 북측 대표단을 맞았다. 조화윤(22·여·동아대 3년)씨 등 남측 대학생 3명과 조명애(21·여)씨 등북한 예술단원 3명이 가로 200㎝,세로 145㎝의 남·북한 단일기를 함께 들고 입장하자 남북측 대표단은 모두 기립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김영대 북측 대표단장은 축사를 통해 “따뜻하게 맞아준 남녘 동포와 서울시민들에게 감사한다.”면서 “6·15 공동선언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통일을 앞당기자.”고 말했다. 김명철 조선농업근로자동맹 부위원장은지난 6월 월드컵대회와 북한 아리랑축전을 나란히 언급,“아리랑 축전의 성공적 개최와 세계 축구선수권대회에서의 선전은 민족 공동의 자랑이자 긍지”라며 남북을 동시에 치켜세웠다. ◇합동예술공연- 개막행사가 늦어지자 공연도 예정보다 1시간30분쯤 지난 낮12시25분 시작됐다. 북측은 행사에 앞서 “오늘 이 자리는 견우와 직녀의 만남과 같다.”고 말해 갈채를 받았다.북측 대표단의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한편 이날 오후 2시30분쯤 여원구 의장은 호텔 1층 무궁화볼룸에서 5촌 조카 여인영(54)씨 등 남측 가족 11명과 57년만에 해후했다. 남측 가족이 호텔을 찾아오자 여 의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선 채로 3명의 조카로부터 큰절을 받은 뒤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여 의장은 가족의 얼굴을 일일이 감싸며 “네가 누구냐.꿈만 같다.”고 울먹였다.남측 가족은 북측의 혈육을 위해 준비한 한과를 전달했고,일부 가족은 편지를 건넸다. ◇사진·미술전- 오후 3시30분 무궁화볼룸에서 열릴 예정이던 사진전과 미술전은 북측이 가져온 일부 작품의 내용과 설명의 표현을 국정원이 문제삼는 바람에 1시간40분이 지난 5시10분쯤에야 가까스로 열렸다. 지난 7월 아들은 낳은 비전향 장기수 이재룡 부부에게 전달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필 서한 전시여부를 놓고 당국과 마찰이 빚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진전에서 그대로 공개돼 많은 남측 참관인들의 시선을 끌었다.이 서한에는 “우리나라 인민들의 축복속에 태어난 아기 이름을 ‘축복’이라고 지어줍시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구혜영 이세영 박지연기자 koohy@
  • 여원구씨 몽양묘소 참배/ “”18살 때 떠났던 딸 50년만에 왔습니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여원구(74) 의장이 14일 서울 우이동에 있는 아버지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선생의 묘소를 참배했다. 여 의장은 이날 오후 5시쯤 서울 워커힐호텔을 출발해 검정색 승용차를 타고 오후 6시50분쯤 묘소 입구에 도착했다.여 의장은 10촌 동생 여익구씨와 수행원 한 명의 부축을 받으며 묘소 입구에서 50여m 오르막에 있는 아버지의 묘소를 올라가는 동안 계속 가슴이 복받치는 듯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여 의장은 참배 물품으로 가져온 백로주를 술잔에 붓고 향불에 데운 뒤 제상에 올려 놓자마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버님,18세 때 아버지 곁을 떠난 뒤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 앞에 찾아왔습니다.아버지,큰절 받으십시오….아버님께서 지난 46년 서울 계동 집 앞에서 평양으로 떠나라며 제 등을 밀어주고 곧 통일된다며 뒤따라 오신다더니 왜 여기에 누워 계십니까….” 여 의장은 가슴에 사무친 한을 털어내듯 10여분 동안 혼잣말로 절규하다 아버지의 묘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잡초를 뽑았다.여 의장은 지난 47년부터 여운형 선생의 묘를 관리해온 유지현(65·서울 강북구 수유4동)씨에게 제기를 선물로 건네고 “불효자식을 대신해 아버지 묘를 지켜주셔서 고맙다.”며 큰절을 올리기도 했다. 여 의장 일행이 참배를 하는 동안 묘소 주위에 모여든 100여명의 주민들은‘50여년 만의 참배’를 조용히 지켜봤다.주민 양일두(40·서울 강북 수유4동)씨는 “자식이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오는 것은 우리의 전통”이라면서 “명절 때라도 자주 찾아올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후 7시25분쯤 자리를 뜨면서도 여 의장은 아쉬운 듯 멀어지는 아버지의 묘소를 자꾸만 뒤돌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구혜영 이세영 기자 sylee@
  • k-리그/ 이을용“국내무대 아듀”

    ‘사랑해준 팬들,그리고 K-리그가 있기에 정녕 꿈은 이루어진다.’ 착실하면서도 꿋꿋하기로 이름난 강원도 순둥이 이을용(27·부천)은 31일부천 홈에서 열린 부산과의 프로축구 K-리그 고별경기에서 “마지막까지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며 새로운 길로들어서는 소감을 이같이 말했다. 터키 진출을 확정하고 돌아온지 얼마 안돼 피로가 쌓인 탓에 전반 45분만뛴 그는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2002월드컵에서처럼 왼쪽 윙백을 맡아 ‘왼발의 마술사’로서의 위력을 유감 없이 뽐냈다. 특히 전반 14분엔 월드컵 터키와의 3·4위전 때 동점골을 넣었던 비슷한 위치에서 프리킥 키커로 나서 골을 노리기도 했으나 고별전에 대한 부담이 컸던지 득점에는 실패했다. 하프타임 때는 터키로 떠나는 이을용을 위한 환송행사가 펼쳐졌고 이을용은 담담한 표정으로 팬들의 격려 속에 작별 인사를 조용히 전했다. 부천 서포터스인 헤르메스의 평생회원 위촉패와 화환 전달이 끝난 뒤에는 강성길 부천 단장과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종환 부회장의 꽃다발 증정식도 이어졌다. 홈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인사에 나선 이을용은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한다.마지막 경기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이려 애썼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만큼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새로운 각오를 밝혔다. 이어 오픈카에 올라타 경기장 트랙을 돌던 이을용은 서포터스 헤르메스가 자리한 관중석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것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을용은 5일 새 둥지인 터키 1부리그 트라브존스포르로 건너가 10일 터키대표팀 골키퍼 레치베르가 속한 페네르바체와 홈 개막전을 갖는다. 부천은 이을용의 터키행을 축하하듯 다보가 연속골을 터뜨린데 힘입어 부산을 3-2로 물리쳤다.다보는 6호골로 득점 단독선두에 나섰다. 수원에서는 신병호(전남)가 4경기 연속골을 터뜨리며 팀을 단독선두로 끌어올렸다.신병호는 수원과의 원정경기에서 1-1로 팽팽한 동점을 이룬 후반 25분 이영수의 코너킥을 결승골로 연결,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로써 신병호는 올시즌 정규리그에서 4경기 연속 골을 넣은 첫번째 선수가 됐다. 송한수기자 onekor@
  • 월드컵/후회없는 한판, 하나된 ‘6월 신화’는 찬란했다

    720시간을 숨가쁘게 질주해온 ‘폭주기관차’가 마침내 종착역에 다다랐다.더 이상 나아갈 곳은 없었다.이제는 멈춰서야 할 때라는 것을 ‘태극전사’들도 이미 깨달은 듯했다. 2002 한·일월드컵의 국내 마지막 경기.후회없는 명승부였다.승패는 처음부터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대구 월드컵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도 4강 신화에 이미 만족한다는 표정이었다.경기 전 장내 아나운서가 터키 선수들을 호명할 때 떠나갈 듯한 박수가 터져나오면서부터 이런 분위기는 감지됐다. 전·후반 90분이 모두 지나고 종료 휘슬이 울렸다.선수들의 눈가는 촉촉히 젖어 있었다.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그간의 희열과 좌절이 한꺼번에 몰려왔다.꿈같이 멀게만 느껴졌던 월드컵 첫승,그리고 16강,8강.마침내 기적 같은 4강까지.결승 문턱에서 맛본 독일전에서의 뼈아픈 좌절도…. 이날도 마지막에 뒤집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움은 없었다.한국인의 저력을 이미 세계에 충분히 보여줬다는 자부심이 남아 있었다. 경기가 끝난 뒤 터키선수와 태극전사들은 굳게 손을맞잡았다.그라운드에 지쳐 쓰러진 한국 선수들의 손을 잡고 일으켜주는 터키 선수들도 눈에 띄었다.양팀 선수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그라운드를 질주하며 관중들에게 답례를 했다.양손에는 태극기와 터키국기가 나란히 들려 있었다.한국과 터키는 피로 맺어진 형제국가임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뒷짐을 진 채 경기 내내 애써 초연함을 지켰던 히딩크 감독도 이제는 축제를 끝내야 할 시간임을 알았다.‘히딩크 히딩크 히딩크’.스탠드의 열광적인 함성이 달구벌의 밤하늘을 다시 갈랐다. 한국 선수들과 모든 스태프들은 미들서클에 원을 그리고 모여 섰다.그리고는 관중들을 향해 모두 큰절을 올렸다.한국축구의 4강신화는 4700만 국민 모두의 공로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듯…. 선수들은 이어 히딩크에게 달려가서 팔다리를 부여잡고 헹가래를 쳤다.다소 멋쩍은 표정이었지만 히딩크는 이내 양손을 들고 고개를 숙이며 스탠드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했다.이번 대회를 끝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벗는 홍명보도 후배들의 헹가래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경기는한국팀이 아깝게 졌지만 이미 그라운드에 패자는 없었다.선수들도,관중들도,국민들도 모두 승자였다.경기가 끝난 뒤에도 그치지 않는 관중들의 함성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었다. 대구 김성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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