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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潘, 고향 업고 대망론 출정식

    潘, 고향 업고 대망론 출정식

    맹추위에도 곳곳서 ‘귀국 환영’ 野 소속 이시종 지사 극찬 눈길 지난 14일 오전 10시 충북 음성군 원남면의 ‘반기문 평화랜드’(반기문 기념공원)가 ‘쿵짝쿵짝’ 노랫소리로 들썩였다. 반기문(얼굴) 전 유엔 사무총장의 ‘금의환향’을 환영하는 행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영하 8도의 맹추위에 짧은 원피스를 입은 여성 초대가수가 무대 위에서 노래를 서너 곡 부르자 참석자들은 “아유 추워서 어떡해”라며 안쓰러워했다. 얇은 한복 차림에 장구를 메고 축하 풍물 공연을 준비하는 여성들도 오들오들 떨기는 마찬가지였다. 비닐하우스는 추위를 피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 됐다. 오전 11시쯤 반 전 총장이 탄 그랜저 승용차가 행사장에서 100m 떨어진 ‘반기문 생가’ 앞으로 진입했다. 이시종 충북지사, 새누리당 경대수 의원, 이필용 음성군수, 이언구 충북도의원 등이 마중을 나왔다. 반 전 총장은 짧게 인사한 뒤 차량을 타고 선친 묘소로 이동했다. 기자들은 뒤쫓아 달렸다. 한 남성이 반 전 총장의 부인 유순택씨에게 달려가 ‘유순택 팬클럽’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내보이며 “팬클럽 회장입니다”라고 소개하자 유씨는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성묘를 마친 반 전 총장은 ‘군민 인사회’에 참석했다. 음성군민, 광주 반씨 종친회 등 주민 700여명이 운집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이 지사가 인사말에서 “반 전 총장은 지구 100여 바퀴, 달나라 6번, 하루평균 10개 일정을 소화한 초인적 행보를 보였다. 국민과 도민의 꿈과 희망”이라고 ‘극찬’해 눈길을 끌었다. ‘음성꽃동네’로 이동한 반 전 총장은 입구에서 분향한 뒤 차를 타고 10여분 거리의 ‘부활의 집’으로 이동했다. 반 전 총장과 기자들의 ‘자동차 추격전’이 벌어졌다. 길을 잘못 들어 유턴하는 차량도 속출했다. 차가 없는 기자들은 산을 타느라 추운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렸다. 반 전 총장은 요양원 직원들과 점심 식사를 했다. 직접 밥솥에서 밥을 퍼와 두부, 호박전, 김치, 콩나물, 생선조림, 된장국 등과 함께 먹었다. 반 전 총장이 충주로 가기 위해 차량에 탑승하려 할 때 잠시 내부를 살펴보니, 좌석 앞에 수첩과 볼펜, 서류들이 꽂혀 있었다. 귀국 후 급히 차량을 공수했는지 차량에는 하이패스가 장착돼 있지 않았다. 반 전 총장은 어머니 신현순(97)씨를 찾아 부인 유씨와 함께 큰절을 한 뒤 “10년 동안 떨어져 있어 자식 도리를 다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계속 옆에 있으면서 효도하겠다”고 했다. 73세 아들의 절을 받은 노모는 “아들 오기 전엔 죽으면 안 된다고 해서 잘 먹고 잘 있었다”며 울먹였다. 충주시내 곳곳에는 반 전 총장의 귀국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내걸려 있었다. 충주체육관에서 열린 ‘시민인사회’에는 2000여명의 인파가 몰렸다.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온 몇몇 어린이를 제외하면 대부분 50대 이상 고령층이었다. 모두들 한 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반 전 총장은 15일 경기 평택 2함대의 천안함과 기념관을 방문했다. 그는 “폭침이 분명하다”면서 “안보에는 ‘두 번 다시’가 없다”고 강조하며 ‘안보 이미지’ 구축을 시도했다. 이에 앞서 반 전 총장은 천안함 전사자인 문규석 원사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유족을 위로했다. 음성·충주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우윤근, 국회 청소근로자들에 큰 절…“너무 늦게 국회직원으로 모셨다”

    우윤근, 국회 청소근로자들에 큰 절…“너무 늦게 국회직원으로 모셨다”

    새해부터 국회 청소근로자들의 직접 고용이 실현됐다. 국회는 지난 12월 3일 제346회 정기국회 제16차 본회의에서 의결한 2017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수정안에 국회 소관 예산 중 청소용역을 위한 예산 59억 6300만원을 직접고용 예산으로 수정 의결했다. 정부가 제출한 원안에는 이 예산이 간접고용(위탁고용)으로 편성돼 있었다.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은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청소근로자’ 직접고용 기념 신년행사에서 “너무 늦게 국회직원으로 모셨다”고 말한 뒤 “앞으로 잘 모시겠다”며 근로자들을 향해 큰절을 했다. 이에 청소근로자들은 맞절로 화답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당선 소감] 10여년 인내의 보상… 명품 한복 짓듯 명품 시조 짓겠다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당선 소감] 10여년 인내의 보상… 명품 한복 짓듯 명품 시조 짓겠다

    신춘문예라는 일생일대의 도전에 나서기로 마음먹은 것이 어언 10여년. 최종심에 다섯 번을 올랐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한 그 시간은 어쩌면 희망고문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심사평에 이름이라도 오르지 않으면 능력의 한계를 탓하며 포기라도 할 텐데 감질나게 이끄는 신춘문예의 유혹은 쉽게 끊기 힘든 마약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받게 된 당선 통보는 그 인내에 따른 보상이라는 생각에 주체 못할 눈물이 흘렀습니다. 수십 년 동안 가장 역할을 하면서 한복을 지어 왔습니다. 옷감을 고르고 마름질을 하고 정성껏 바느질을 해가면서 언젠간 꼭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입을 분을 생각하며 한복을 만들 때의 정성으로 시조 문장도 한 땀 한 땀 떠갈 때 마음은 차분해지고 경건함과 행복감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한복을 짓는 일은 시조를 쓰는 일과도 같습니다. 글감을 고르고 시어를 다듬고 장과 장을 마무르는 일이 옷을 짓는 과정과 흡사하기도 하고, 우리 고유의 멋과 얼이 살아 있다는 점에서도 일맥상통한다 하겠습니다. 새로운 시작점에서 제 자신을 명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한복장이에서 글쟁이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서울신문과 심사위원 선생님께 마음을 다해 큰절 올립니다. 또 묵묵히 지켜봐 준 성규 어멈과 사위, 아들 윤정과 윤현, 두 며느리에게도 예쁘게 살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특히 나이는 숫자도 아닌 단어에 불과하다며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채찍질하며 이끌어 주신 임채성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몸에 꼭 맞는 명품 한복을 짓듯 사람들의 가슴에 남는 명품 시조를 짓는데 남은 생을 바치겠습니다. ▲1943년 전북 김제 출생 ▲중앙시조백일장 장원(2011년 9월) ▲신사임당예능백일장 장려상(42회)
  • ‘장하나 파4 홀인원’ 올해 LPGA 최고 샷

    장하나(24)와 최나연(29)이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가 선정한 ‘2016 최고의 샷 톱5’의 주인공으로 뽑혔다. LPGA 투어는 30일 홈페이지를 통해 5개 ‘올해의 샷’를 선정했는데 LPGA 사상 최초로 ‘파4 홀인원’을 기록한 장하나를 1위에 올렸다. 올 시즌 3승을 기록한 장하나는 지난 1월 2016개막전인 바하마 클래식 3라운드 8번홀(파4·218야드)에서 홀인원을 작성했다. 3번 우드로 친 티샷이 핀 1m 앞에 떨어진 뒤 데굴데굴 굴러 홀컵으로 떨어졌다. 한꺼번에 3타를 줄인 앨버트로스다. LPGA 최초로 파4 홀인원의 주인공이 된 장하나는 두 손을 번쩍 들어 환호한 뒤 그린으로 올라가 홀을 향해 큰절을 하는 세리머니를 펼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회 주최 측이 진기한 장면을 유도하기 위해 만든 짧은 파4홀이었지만 정작 경품을 걸지 않아 장하나는 사상 첫 파4 홀인원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린 것에 만족해야 했다. 최나연은 박세리의 ‘맨발 샷’ 못지않은 ‘왼손 샷’으로 3위에 올랐다. 지난 4월 롯데챔피언십 2라운드 18번홀(파4)에서 최나연은 두 번째 샷이 그린 왼쪽의 워터해저드 턱에 걸려 타수를 잃을 지경에 빠졌다. 공을 제대로 치기 위해선 물속에 발을 담근 채 샷을 해야 할 상황. 오른손잡이인 최나연은 그러나 왼손잡이처럼 거꾸로 골프채를 잡아 샷을 날렸다. 땅을 찍듯이 쳐 높게 걷어올린 공은 스핀이 강하게 걸린 채 그린 위로 솟구친 뒤 지면에 떨어졌고, 공은 그린의 내리막 경사를 둥그렇게 타고 핀 앞 1.5m 지점까지 내려왔다. 최나연은 이를 한 차례 퍼트 만에 홀에 떨궈 버디 못지않은 파를 잡아냈다. 한편 2위에는 지난 6월 KMPG 여자PGA 챔피언십에서 자신의 첫 메이저 우승을 이끈 브룩 헨더슨(캐나다)의 이글 퍼트가 선정됐다. 헨더슨은 4라운드 11번홀(파5) 두 번째 샷을 핀에서 27m 떨어진 그린 밖에 떨군 뒤 단 한번의 퍼트로 이글을 낚아 올렸다. 또 4위에는 와타나베 아야카(일본)의 인터내셔널 크라운 와일드카드 플레이오프 10m짜리 이글 퍼트가 선정됐고, 리디아 고(한국명 고보경)의 리우올림픽 3라운드 홀인원이 5위에 뽑혔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새누리 의원들 ‘세 치 혀’ 놀리다 그만

    새누리 의원들 ‘세 치 혀’ 놀리다 그만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14일 “입술과 혀를 다스리지 못해 의원들과 국민들께 큰 죄를 지었다”며 사과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감정이 북받치다 보니까 가끔씩 그랬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러면서 “3적, 5적, 10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오늘부로 거둬달라”면서 “이제 이정현을 주적으로 삼아달라. 저는 주적으로서 다 둘러쓰고 모든 비난과 돌팔매를 받을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우리 뭉치자. 제발 나간다는 소리 좀 하지 말라”면서 “선배들이 목숨 걸고 지켜온 당을 없애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국회의원 선서하고 집에 가서 아버지(정석모 전 의원)께 큰절 드렸더니 딱 한말씀 하셨다”면서 “‘정치인은 말이 생명이다. 말로 살고 말로 죽는 게 정치인이다. 입 안에서 오물오물거리는 말의 65%만 해도 의미가 다 전달된다.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사는 게 정치인이 아니다’라고 충고했다”고 전했다. 이어 “저도 그 약속을 지키진 못했다”면서 “정치인들의 언어를 보면서 좀 더 신중해야겠다.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데뷔 앞둔 박지수, KB 생명수 될까

    데뷔 앞둔 박지수, KB 생명수 될까

    팀 연패 탈출… 화력 이을지 주목 ‘슈퍼루키’ 박지수(18)가 돌아와 KB스타즈의 반등을 이끌까.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KB스타즈 품에 안겼던 박지수는 18세 이하 대표팀에 차출돼 2016~17 삼성생명 여자프로농구 개막 첫 라운드를 팀과 함께하지 못했다. 박지수는 대표팀을 태국 방콕에서 열린 18세 이하(U-18) 아시아선수권 3위로 이끌어 내년 19세 이하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확보하고 21일 귀국했다. 박지수는 곧바로 인천 도원체육관으로 이동해 신한은행과의 2라운드 세 번째 경기를 지켜봤다. 박지수를 지명하고 큰절을 올릴 정도로 흥분했던 안덕수 KB스타즈 감독에게는 박지수의 합류가 가물 끝에 단비와 같을 것이다. 플레넷 피어슨과 바샤라 그레이브스 두 외국인이 골밑에서 좀처럼 믿음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 박지수의 합류는 팀 특유의 ‘양궁 농구’를 살리는 필요조건이 되고 있다. 안 감독은 그의 데뷔 시점을 오는 27일 KDB생명 원정 경기로 잡고 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날 박지수는 귀국 직후 취재진에게 몸이 좋지 않아 상황을 봐야 한다고 밝혀 유동적이다. 한편 KB스타즈는 이날 강아정의 3점슛 네 방 등 20득점 4리바운드 3스틸과 김가은의 3점슛 세 방 등 15득점 3스틸 활약을 엮어 신한은행을 67-49로 완파하고 연패 악몽에서 탈출했다. 4승4패가 되며 2위 삼성생명과의 승차를 반 경기로 좁혔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야권 대선주자들 촛불 들고 거리로

    야권의 대선주자들은 지난 12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촛불집회에 대거 참석했다. 100만여명의 시민들이 모인 이날 집회에서 이들은 퇴진과 하야를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함께 외치는 등 광장의 ‘촛불 민심’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이날 청계광장에서 열린 민주당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탄대회에 참석한 뒤 촛불집회에 합류해 “박 대통령이 국민 요구에 답을 하지 않는다면 저와 우리 당은 부득이 국민과 함께 거리에서 박 대통령 퇴진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퇴진 운동’을 처음 언급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문구가 새겨진 손팻말을 들고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에 맞춰 팔을 흔들기도 했다. 다만 문 전 대표는 하야나 퇴진 구호를 직접 외치지는 않았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이날 한빛광장에서 박 대통령 퇴진 서명운동을 한 뒤 무교동 사거리에서 진행된 당원보고대회에 참석해 “박 대통령이 물러가고 우리나라가 제대로 바로 서게 만드는 것이 국민의당의 소명”이라면서 “온몸을 바쳐 이루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후 촛불집회에 합류해 ‘이게 나라냐. 박근혜 퇴진’이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하야하라!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한편 가수들이 부르는 ‘하야가(歌)’도 함께 불렀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날 대학로에서 진행된 시민대행진에 참석한 뒤 민주당 규탄대회를 거쳐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박 시장은 대행진 도중 연설트럭에 올라 “헌법을 유린하고 국정을 농단한 박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라는 게 국민의 명령”이라면서 “머뭇거리는 여야 정치인들은 당장 주권자인 국민 명령을 따르라. 정치인을 대표해 사과와 부끄러움의 큰절을 드리겠다”며 시민들에게 무릎 꿇고 절을 하기도 했다. 당 규탄대회와 촛불집회에 잇따라 참석한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국민 다수의 목소리는 ‘대통령 퇴진’이었다. 민심의 쓰나미가 청와대를 삼킬 기세”라고 밝혔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부인 이윤영씨와 함께 촛불집회에 참석해 청운동 앞 집회현장까지 행진한 뒤 귀가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길섶에서] 고향/박홍기 논설위원

    전북 임실이 고향인 선배 마을에서 때아닌 큰 잔치가 열렸다. 풍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왁자지껄했다.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사는 어른 40명이 방문했기 때문이다. 한때 450명이 넘던 마을이 ‘늙은 동네’로 변한 지 오래다. 현재 동네 사람은 50명도 채 안 된다. 주인 없는 문패만 덩그러니 걸린 집들도 있다. 동네는 1주일 전부터 바빴다. 천막을 치고 돼지도 잡았다. 구십이 넘은 최고령 어른이 짧게 환영 인사를 했다. “객지서 고생혀. 살게 된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고향을 잊지 않고 찾아줘 반갑고 고맙소.” 화답이 이어졌다. “따뜻하게 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큰절을 올렸다. 동시에 힘찬 박수가 터졌다. “아이고, 50년 만이다~.”, “안 죽고 살아 있으면 만나는 날도 있구먼.” 손을 맞잡았다. 얼굴을 비비기도 했다. 이산가족이 따로 없다. 추억이 떠오르자 주름진 얼굴엔 젊음도 되살아났다. 그 시절로 돌아갔다. 술판도 무르익자 누군가 구성지게 노래를 시작했다. ‘고향을 떠나온 지 몇몇해련가…꿈에 본 내 고향이….’ 곧 합창이 됐다. 시끌벅적 속에 해가 저물었다. 고향에서의 짧은 한나절, 가슴에 간직하고 버스에 올랐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현장 행정] 컴퓨터 앞에 앉은 어르신… 정보 격차 줄겠네요

    [현장 행정] 컴퓨터 앞에 앉은 어르신… 정보 격차 줄겠네요

    “정보의 격차가 큰 차이를 만들죠. 우리가 만능은 아니지만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항상 상의해 주세요.” 유종필 관악구청장이 10일 서울대에서 기증한 중고 컴퓨터를 들고 찾은 곳은 보라매동의 한 모자 가정이다. 기초생활 수급권자인 어머니와 고등학생인 두 딸이 사는 가정으로 큰딸은 고3 수험생이지만 컴퓨터가 없어 그동안 인터넷 강의를 듣지 못했다. 문모씨는 “‘사랑의 컴퓨터’를 신청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컴퓨터가 집에 설치될 줄 몰랐다”며 기뻐했다. 유 청장은 컴퓨터를 설치하며 중고 컴퓨터지만 내부 부속품은 새것으로 모두 교체했고, 혹시라도 고장이 생기면 본체에 스티커로 붙어 있는 연락처로 전화하면 구청 직원이 와서 무상으로 수리해 준다고 꼼꼼하게 설명했다. 산타클로스처럼 빨간 목도리를 맨 유 구청장이 보라매동 다세대주택에 이어 들른 곳은 보라매경로당. 그는 경로당에 들어서자마자 넙죽 큰절을 할머니들께 올렸다. 이어 “저는 여당도 야당도 아닌 경로당입니다”란 ‘전매특허 농담’으로 어르신들께 큰 웃음을 안겨 드렸다. 보라매경로당은 ‘사랑의 컴퓨터’로 노인들에게 정보화 강의를 하고, 영화도 틀 계획이다. 관악구는 지난 10년 동안 모두 1000여대의 중고 컴퓨터를 기증받아 기초수급자, 복지시설, 장애인 등에게 나눠줬다. 정보의 격차가 결국 경제적 격차를 낳는다는 생각에 구에서 무료로 제공한 것이다. 중고 컴퓨터는 대부분 구에서 쓰던 것과 서울대와 개인, 기업에서 기증한 것이다. 중고 컴퓨터의 모든 부속품을 갈고 새롭게 정비를 끝내 새 컴퓨터 못지않은 성능을 자랑한다. 또 ‘한글’과 같은 워드 프로그램을 기본적으로 탑재해 사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사후관리도 빼놓지 않았다. 소모품인 하드 드라이브, 그래픽 카드 등은 직원들이 방문해 무상으로 고쳐준다. 컴퓨터 사용법 강의도 해서 정보 소외 계층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 지난해는 어머니가 사망하고 홀로 대입 준비를 하던 19살 청년, 사무자동화 취업과정 시험준비를 하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인터넷이 필요했던 홀몸 어르신 등이 사랑의 컴퓨터를 받았다. 유 구청장은 “어르신들이 컴퓨터가 생겼으니 이제 사용법도 배우게 될 것”이라며 “평생학습 도시인 관악구에서 ‘사랑의 컴퓨터’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중국인 앞에 무릎꿇고 큰절한 ‘삼성’ 왜?

    중국인 앞에 무릎꿇고 큰절한 ‘삼성’ 왜?

    중국 삼성 간부들이 중국 판매상들 앞에서 무릎을 꿇은 사진이 중국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중국에서는 '남자가 무릎을 꿇는다'는 것에 매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만큼, 이 사진이 남다른 주목을 끌며 이슈가 되고 있다. 펑파이뉴스(澎湃新闻)의 31일 보도에 따르면, 자칭 ‘노트7 폭발을 직접 경험했다’는 웨이보 ID ‘부라오더라오휘(不老的老回)’는 지난 29일 자신의 웨이보에 “판매업체들로부터 보다 많은 주문을 받기 위해 삼성직원들이 무릎을 꿇었다”라며, “삼성전자, 이것이 대체 무슨 기업문화인가?”라고 질타했다. 그는 이어서 “이곳은 중국이고, 중국에서는 ‘남자의 무릎 아래에는 황금이 있다(男儿膝下有黄金)’는 말이 있다”며, 직원을 무릎 꿇게 한 것은 인간취급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까지 덧붙였다. 중국에서 '남자 무릎 아래에는 황금이 있다'는 말은 '남자가 무릎을 꿇는 것은 황금의 가치가 있을 만큼 아무에게나 무릎을 꿇지 않는다'는 의미를 뜻한다. 그가 올린 사진의 무대 뒤 편에는 ‘삼성’ 로고가 보이고, ‘스자좡 가을 상품판매전시회(石家庄金秋订货会)’라는 글씨도 보인다. 좌측으로는 삼성의 신제품 갤럭시 C9 Pro 휴대폰 도안이 보인다. 이에 대해 중국삼성 관계자는 “이는 지역적 성향을 지닌 상품판매 전시회이며, PR부문에서는 사전에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서 “경위를 조사해 보니, 노트7 폭발사건에도 불구하고, 많은 판매업체들이 삼성을 적극 지지하고, 현장에서 수많은 계약 건수가 달성되었다. 이에 크게 감동을 받은 삼성한국 간부들이 한국식 예절에 따라 꿇어 앉아 큰 절을 올리며 감사를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삼성 중국 간부들 역시 이에 동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남자의 무릎 아래에는 황금이 있다, 남자는 세 번 무릎을 꿇는데, 하늘과 땅, 그리고 부모 앞에서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무릎을 꿇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번 삼성 중국 간부들이 무릎을 꿇은 사진이 이처럼 인터넷 상에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다. 즉 한국인의 감사를 표하는‘큰 절’예절이 중국인에게는 '무릎을 꿇는 행위'로 비쳐진 것이다. 한중간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라 할 수 있다. 중국 삼성 관계자는 “그들(한국간부)이 중국문화와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듯 하다”고 전했다. 펑파이뉴스는 당일 상품 판매 전시회에 참석한 삼성중국 간부와의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들(중국간부)이 실제로 무릎을 꿇은 것이 ‘강요에 의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KB스타즈가 ‘왕별’ 품었다…최대어 박지수 1순위 지명

    KB스타즈가 ‘왕별’ 품었다…최대어 박지수 1순위 지명

    14% 확률 뚫고 골밑 보강단박에 우리은행 ‘대항마’로안덕수 감독 큰절하며 ‘감격’“오늘이 내 인생 터닝포인트” 향후 15년간 한국 여자농구를 책임질 선수로 평가받는 고교 최대어 박지수(18)가 KB스타즈에 둥지를 틀었다. KB스타즈는 17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2017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신입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어 분당경영고 3학년생인 센터 박지수를 선택했다. KB스타즈는 지난 시즌 정규리그 3위에 올라 1순위 지명권을 얻을 확률이 14.3%에 불과했음에도 1순위를 차지하는 행운을 누렸다. 상대적으로 골밑이 약했던 KB스타즈는 박지수가 합류함에 따라 통합 4연패를 달성한 우리은행의 강력한 대항마로 떠오르게 됐다. ●키 195㎝·최연소 성인 국가대표 박지수는 키 195㎝의 장신 센터로 고교 1학년 때인 2014년 7월 한국 여자농구 사상 최연소(만 15세 7개월)로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특급 신인’이다. 농구 국가대표 출신 박상관 전 명지대 감독과 배구 청소년대표 출신 이수경씨의 딸인 박지수는 부모로부터 훌륭한 신체조건을 물려받았음은 물론 ‘농구 지능’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큰 키에도 불구하고 볼 컨트롤과 야투가 정확하다. 박지수는 올해 리우올림픽 최종예선에서 장신의 외국 선수들과의 대결에서 밀리지 않으며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안 감독 새옷입고 행사장 1등 도착 안덕수 KB스타즈 감독은 이날 1순위 지명권이 결정되자 양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고 박지수를 지목한 뒤에는 큰절을 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안 감독은 1순위의 기운을 받기 위해 양복과 구두, 와이셔츠, 넥타이, 양말까지 모두 새것으로 입고 나왔다. 신인 드래프트 행사장에 1등으로 온 구단이 1순위를 뽑는다는 농구계 속설 때문에 가장 먼저 도착해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안 감독은 “오늘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다. 너무 뽑고 싶었던 선수였는데 오늘 이런 결과가 나와 기쁘다”며 “저변이 부족한 한국 여자농구에서 드물게 나온 최고의 선수이기 때문에 훌륭한 선수로 잘 키우겠다”고 말했다. 박지수는 “주변의 기대가 큰 만큼 꼭 보답하도록 하겠다. 부담감 또한 이겨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시즌 WKBL의 판도를 뒤흔들 선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은 ‘인성여고 이주연’ 한편 2순위 지명권을 받은 삼성생명은 인성여고의 이주연(18)을, 3순위의 우리은행은 분당경영고의 나윤정(18)을 각각 지명했다. KDB생명은 지난 시즌 최하위를 기록해 1순위 지명 확률이 28.6%로 가장 높았지만 결국 4순위 지명권을 얻는 불운 속에 분당경영고 차지현(18)을 선택했다. 이로써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한 분당경영고 출신 세 명의 선수는 모두 1라운드에서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게 됐다. 5순위 신한은행은 삼천포여고의 한엄지(18)를, ‘첼시 리 혈통사기’ 사건에 대한 징벌로 마지막 순번인 6순위를 부여받은 KEB하나은행은 수원대 박찬양(23)을 각각 선발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mc몽, 컴백 앞두고 공식행사 큰절 “잠잘 때도 자숙하는 남자”

    mc몽, 컴백 앞두고 공식행사 큰절 “잠잘 때도 자숙하는 남자”

    mc몽이 컴백을 앞두고 있다. MC몽은 29일 목포시 평화광장에서 열린 ‘2016 다도해컵 국제요트대회’ 개막식 축하 공연 무대에 올랐다. 이날 MC몽은 “잠잘 때도 자숙하는 남자 MC몽”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mc몽은 “사실 500명 이상 모이는 행사는 용기가 나지 않아 거절했는데 이번에 좋은 뜻으로 공연을 진행한다고 해서 기쁘게 동참하게 됐다”며 “누구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행사일지 모르지만 저에게 이런 무대는 저의 가슴이고 사랑”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제가 지금 누구를 응원할 사람은 아니지만 오늘 재미있게 좋은 시간 보내고 행복하시길 바란다”며 히트곡 ‘서커스’ 등을 불렀다. 또 공연에 앞서 MC몽은 시민들에게 큰절을 올리며 과거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한 사과의 뜻을 밝혔다. 한편 MC몽은 오는 11월 초 정규 7집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해 3월 발표한 ‘송 포 유(SONG FOR YOU)’ 이후 1년 8개월 만에 내놓는 새 앨범이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미술자료전문가 김달진 관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미술자료전문가 김달진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첫 출근일은 1981년 9월 23일, 결혼 날짜는 1982년 12월 20일입니다. 아직 기사 마감 전이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다음날 그가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인터뷰 때 정확한 날짜를 얘기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도움 될 만한 정보와 자료들을 문자와 이메일로 알려 왔다. 참 꼼꼼하고 철두철미하다 싶었다. 김달진미술연구소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이끌고 있는 김달진(61) 관장은 그런 사람이다. 아마도 이런 섬세함과 집요함이 한국 근현대 미술자료 수집과 연구 분야의 독보적 존재로 지금의 그를 있게 했으리라. -“신문 쪼가리 모아서 밥은 어떻게 먹고살려는지…쯧쯧.” 어른들은 하나같이 혀를 찼다. 그럴 만도 했다. 한창 공부에 집중해야 할 고등학생이 신문이건 잡지건 서양 명화가 실린 자료라면 닥치는 대로 오려서 스크랩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으니 나중에 밥벌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을 게다. 나도 앞날이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당장은 좋아하는 취미가 우선이었다. 비록 인쇄물이긴 해도 르누아르, 피카소, 천경자, 박수근의 그림을 모으는 기쁨은 컸다. 고교를 졸업할 때 내가 모은 미술자료는 스크랩북으로 10권이나 됐다. 결과적으로 이 자료들이 내 밥벌이의 든든한 밑천이 됐다. -충북 옥천에서 5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초등 4학년 때 어머니를 여읜 뒤 셋째 형님을 따라 대전의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수집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시작은 껌종이, 담뱃갑, 우표 등이었다. 기념우표가 나오면 가장 먼저 우체국 창구로 달려가곤 했다. 그러다 ‘주부생활’ ‘여원’ 등 잡지에 실린 세계 명화를 접하며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됐다. 서울로 올라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본격적인 수집에 나섰다. 틈만 나면 헌책방이 많았던 청계천 6, 7, 8가를 돌며 미술전집 등을 샀다. 서점 주인에게 그림 한 장을 뜯어서 팔라고 조르기도 했다. 1972년 고 3 여름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본 ‘한국근대미술 60년전’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인쇄물로 된 서양의 명화만 보다가 우리 근대미술의 주옥같은 작품을 실물로 보니 그 감동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걸 네가 직접 다 모은 거냐? 참으로 기특하구나.” 고 3때 당시 홍익대박물관장이던 이경성 교수님을 만나 뵈었다. 막연하나마 미술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미술계와 학계, 출판계에 계신 분들에게 무작정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뜻밖에도 이 교수님이 한번 보자고 하셔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떨리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큰절을 한 뒤 가방에 싸 간 스크랩북 10권을 보여 드렸다. 교수님은 깜짝 놀라시며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말씀과 함께 등을 두드려 주셨다.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이때의 만남이 나중에 큰 인연으로 이어졌다.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 인사동 전시장을 돌며 자료를 수집하던 시절 동대문도서관에서 월간 ‘전시계’라는 잡지를 알게 됐다. 잡지사에 편지를 보내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최학천 사장이 전화해서 만나자고 하더라. 지금의 남대문경찰서 인근 초원다방에서 만났는데 대뜸 “잡지 일은 어렵다. 사환으로 심부름도 하면서 취재하러 다녀야 한다. 월급은 따로 없고 교통비 정도만 줄 수 있는데 그래도 하겠느냐”고 물었다. 두말없이 하겠다고 했다. 그때가 1978년이다. 취재해서 기사 쓰고, 미술자료 기획물도 연재하고, 편집일도 배우며 신나게 일했다. 하지만 1980년 언론사 통폐합 바람으로 잡지가 폐간되면서 일자리를 잃게 됐다. -“청소부라도 좋습니다. 미술관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전시계’가 폐간된 뒤 청주에서 누님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도우며 지내던 1981년 이경성 교수님이 정년퇴임하고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취임하셨다는 기사를 봤다. 당장 편지를 썼다. 관장님은 흔쾌히 나를 받아 주셨다. 당시 미술관 직원은 30명에 불과했다. 전시과, 서무과 2개만 있었고 큐레이터란 직제는 아예 없었다. 나중에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오광수 선생이 그때 전문위원으로 큐레이터 역할을 했는데 전문위원실에 책상 하나를 얻어 자료 수집을 담당했다. 하루 4500원 일당의 임시 일용직이었지만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매주 금요일마다 출근부에 사인한 뒤 인사동, 사간동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모았다. 그전까지 미술관은 보내오는 자료만 수집했는데 그렇게 해선 안 될 것 같았다. 그때 얻은 별명이 ‘금요일의 사나이’다. 한쪽 어깨엔 가방을 메고, 다른 손엔 쇼핑백을 든 채 신문사와 전시장을 쏘다녔다. 화랑 관계자들은 “뭐하러 이걸 가지고 가느냐. 다 보내줄 텐데”라고 의아해했지만 내 눈으로 직접 전시장에 걸린 그림과 도록에 실린 작품을 하나하나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 하도 집요하게 파고들다 보니 모 신문사 기자로부터 “편집광적이다”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그런 사소한 오류들이 자꾸 눈에 띄는 걸 어쩌겠나. 한 번 잘못 기록되면 계속 확대재생산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었다. 그때 하도 몸을 혹사한 탓인지 2011년 척추에 종양이 생겨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정년퇴직 때까지 미술관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1996년 1월 미술관을 그만뒀다. 일한 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응어리가 지더라. 처음 별정직 7급 계약직으로 들어가 8년을 일했는데 그다음에 기능직 10급으로 강등됐다. 미술 잡지에 내가 쓴 미술자료 관련 글이 여럿 소개되고, 신문에도 인용 보도되면서 미술자료 전문가로 인정받았지만 승진은커녕 월급도 오르지 않았다. 당시 아들이 몸이 약해 큰돈이 들어가야 하는 처지였던 데다 좌절감까지 더해져 결국 미술관을 떠나게 됐다. 마침 가나화랑 이호재 사장과 인연이 닿아 자료실장으로 발탁됐다. 5년 10개월 근무하는 동안 ‘가나아트’ 잡지 편집회의에 참석했고, 기획물과 인터뷰 기사를 썼다. 이 사장이 프랑스에서 가져온 미술 정보지 ‘파리스코프’를 견본으로 포켓용 전시회 가이드를 만들기도 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가나에서 독립한 뒤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를 내게 됐다. -2001년 12월 직장 생활을 끝내고 마침내 내 이름을 건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열었다. 이듬해 1월에는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를 창간했고, 그해 9월 미술정보 포털 사이트 ‘달진닷컴’도 오픈했다. 그리고 2008년 40여년 가까이 수집한 자료들을 한곳에 모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개관했다. 각종 희귀 자료와 기증 자료, 단행본, 정기간행물, 학회 자료 등이 하루가 다르게 쌓이면서 공간은 점점 부족해졌다. 평창동, 통의동, 창성동, 창전동 등지를 옮겨 다니며 전월세 생활을 한 끝에 지난해 3월 상명대 입구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오래된 건물을 매입해 박물관 겸 사옥을 마련했다. 건물 사느라 은행에 빚을 많이 졌는데 건축가 김원이 재능 기부로 리모델링을 맡아 준 덕에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미술자료를 수집·정리하면서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잡지 미술 연재물 기록을 시작으로, 미술단체카드, 미술인명카드, 주제별 미술기사 색인 카드 등을 정리했다. 1980~90년대 중반까지 내가 발표한 글이 신문에 자주 인용 보도되면서 ‘자료 하면 김달진’이란 인식이 서서히 자리잡았다. 평론가를 비롯해 이런 글을 쓴 사람이 없었다. 특히 미술자료 기록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선미술’ 1985년 겨울호에 쓴 ‘관람객은 속고 있다-정확한 기록과 자료 보존을 위한 제언’이란 글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자료의 힘이랄까, 자료의 활용도와 중요성을 널리 알린 게 나의 공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미술인 하면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만을 생각하지만 나는 비창작 미술인인 미술평론가, 미술사가, 큐레이터, 미술행정가, 작품 보존 및 수복전문가 등에 대한 기록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울아트가이드’ 미술계 인명록에 이런 인물에 관한 내용을 수집해 꾸준히 연재했다. 그리고 이를 보완해 2010년 ‘대한민국미술인 인명록 1’을 발간했다. 조선시대 초상화가 채용신부터 1850년 이후 태어난 4900명을 실었다.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1000부를 비매품으로 찍었는데 이 책을 보고 “우리 할아버지가 화가였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이 책에 약력이 실려 있어 깜짝 놀랐다. 가보로 삼겠다”는 반응을 들었을 때 가장 뿌듯했다. 밤하늘 별 중에 왜 일등별만 기억해야 하느냐. 이등별, 삼등별 자료도 남겨야 우리 미술계가 풍부해진다. 인명록에 숫자 1을 붙인 건 언젠가 2권을 꼭 만들겠다는 나의 다짐이다. 현재 달진닷컴에서 7800명의 미술인이 검색되니 곧 나오지 않을까 싶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 왔으니 후회는 없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아내(최명자씨)는 전시계에서 일할 때 같이 근무한 동료였는데 책을 좋아하고, 서예가 취미인 점 등이 나와 잘 맞았다. 박봉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할 때 아내가 아침마다 신문 배달하고, 우유 배달해서 살림에 보탰다. 직장이든 집이든 자료에만 매달려 있다 보니 아이들과 놀아 준 기억이 별로 없다. 아이들이 어릴 때 관악구 남현동의 오래된 예술인 마을에 살았는데 자료를 놓아 둘 데가 없어서 라면 박스와 사과 박스에 담아서 안방에 침대 매트리스처럼 깔아 놓고 그 위에서 잤다. 어느 날 무게를 못 이겨 마룻바닥이 휜 것을 본 주인이 방을 빼라고 하더라. 할 수 없이 앞집의 빈 지하실을 얻어서 자료를 옮겼는데 여름 장마철에 습기가 차서 자료를 몽땅 버려야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라 기억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언젠가 그때 얘기를 하는 걸 듣고 마음이 아팠다. 딸 영나(32)와 아들 정현(29)은 지금 나와 함께 일하고 있다. 딸은 대학에서 만화창작을 전공했고, 아들은 미술경영학을 공부했다. 일부러 시킨 건 아닌데 자기들이 스스로 아빠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대를 잇겠다고 하더라. 미술계 지인들이 다 부러워한다. 아내도 서울아트가이드 발행인을 맡고 있다. -2013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를 창립했다. 전시, 학술, 뮤지엄 분과로 나뉘어 있고 3권의 자료집을 발간했다. 라키비움(라이브러리+아카이브+뮤지엄) 강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우환, 천경자 화백의 위작 논란 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작품 이력과 같은 객관적 정보들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가 비엔날레 같은 대형 전시 등 눈에 보이는 지원에만 신경쓰지 말고 자료 수집과 보존, 디지털화, 공공 수장고 확보 등 미술계 토양을 튼튼히 하는 인프라에 좀더 지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신 일도 많으시지만 하실 일도 많으십니다.”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2005년 11월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국내 미술계가 직면한 한국 미술의 정체성 문제, 미술계 위작 시비, 미술시장 활성화, 한국 미술의 해외 진출 등 많은 문제들의 단초가 오늘 내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전시 리플릿 한 장, 메모 한 줄에 담겨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30년 전 ‘관람객은 속고 있다’에 쓴 글 “오늘의 정확한 기록이 내일의 정확한 역사로 남는다”는 신념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순녀 문화부장 coral@seoul.co.kr ■미술자료전문가 김달진 관장 46년간 한국 근현대 미술자료 수집과 보존, 연구에 매진해 온 자타공인 국내 미술자료 전문가 1호다. 미술계 안팎에선 오래전부터 ‘걸어다니는 미술사전’, ‘미술계 인간 자료실’로 통했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전문 분야를 개척해 온 그는 스스로를 “한국 근현대 미술의 기록과 공유를 지향하는 아키비스트(기록관리자)”라고 부른다. 2013년부터 라키비움 프로젝트를 통해 아키비스트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1955년 충북 옥천 출생 ▲서울과학기술대 금속공예과 졸업(1993),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화예술학과 졸업(1999) ▲월간 전시계(1978~1981),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1981~1996),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1996~2001) ▲2001년 김달진미술연구소 개관 ▲2002년 월간 서울아트가이드 창간 ▲2008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개관 ▲2013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 창립 및 협회장, 한국박물관협회 홍보위원장, 서울시박물관협의회 이사, 종로구사립박물관협의회 회장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통령상(2010), 한국미술저작출판상(2014), 홍진기창조인상(2016)
  • 아이오아이 ‘Whatta man’으로 1위 “팬 여러분 감사합니다”

    아이오아이 ‘Whatta man’으로 1위 “팬 여러분 감사합니다”

    아이오아이(I.O.I) 멤버들이 첫 1위 수상 소감을 전했다. 지난 16일 아이오아이 공식 트위터에는 “아이오아이 첫 1위! 팬 여러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에는 멤버인 최유정, 김도연, 전소미, 김소혜, 김도연, 주결경, 임나연이 손을 모으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이는 지난 16일 방송된 SBS MTV ‘더쇼’에서 유닛 신곡 ‘Whatta man’(와타 맨)으로 데뷔 3개월 만에 첫 1위를 기록한 데 대한 감사 인사로 보인다. 방송에서 아이오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실력으로 인정받는 가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큰절을 했다. 한편, 아이오아이 유닛 7인 멤버들은 지난 9일 신곡 ‘Whatta man’ 공개 후 활발하게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임효진 인턴기자 3a5a7a6a@seoul.co.kr
  • “즐기려고 여기 왔다” 졌지만 웃은 함상명

    “즐기려고 여기 왔다” 졌지만 웃은 함상명

    우여곡절 끝에 한국 복싱 선수 중 유일하게 리우올림픽에 출전한 함상명(21·용인대)의 아름다운 도전이 아쉽게 막을 내렸다. 함상명은 14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파빌리온 6관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남자 복싱 밴텀급(56㎏급) 16강전에서 장자웨이(27·중국)에게 0-3으로 심판 전원 일치 판정패했다. 2년 전 인천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는 함상명이 장자웨이를 3-0 판정승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이번에는 결과가 반대로 나왔다. 심판이 장자웨이의 승리를 선언하자 함상명은 패배를 인정하며 장자웨이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잡고 번쩍 들어줬다. 그리고 자신을 응원해준 한국 응원단 앞으로 가 큰절을 하며 감사인사를 했다. 경기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나타난 함상명의 얼굴은 혈투의 흔적을 보여주듯이 생채기가 여러 개 있었다. 개막 보름여를 앞두고 아르헨티나 선수가 출전을 포기해 극적으로 리우행에 올라 어느 누구보다 올림픽 무대가 소중했을 함상명은 이렇게 올림픽 무대가 끝나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함상명은 “즐기려고 여기에 왔다. 시합에 져서 아쉽지만 이렇게 큰 무대에서 이렇게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정말 기쁘다”며 “준비 기간이 짧기는 했지만 그것은 변명이고 실력 면에서 제가 부족한 것을 인정한다. 그래도 이 시합에서 제 한계 이상을 해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는 “(장자웨이가) 괴물이 됐다. 앞으로 다시 붙을 기회가 되면 제대로 싸워보겠다. 이번에 싸우는 것 너무 재밌었다”며 “한국 응원단의 소리가 링까지 들렸다. 응원을 많이 안 해주실 줄 알았는데 너무 많이들 해주셔서 정말 감동스러웠다”고 덧붙였다. 리우데자네이루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오심 딛고… 탈골 딛고… 금빛 동메달 대한민국 울렸다

    오심 딛고… 탈골 딛고… 금빛 동메달 대한민국 울렸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김현우 16강서 오심 논란 속 ‘판정패’ 좌절 않고 동메달 결정전 올라 마지막 경기 도중 ‘팔꿈치 탈골’ 극심한 통증 이겨내고 값진 메달 14일(현지시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급 동메달 결정전이 열린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2. 1회전을 마치고 30초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매트에 올라온 김현우(28·삼성생명)는 오른팔을 자꾸 만졌다. 1회전 종료 직전 상대 보소 스타르세비치(크로아티아)에게 옆굴리기를 허용할 때 팔을 잘못 디뎌 팔꿈치가 탈골된 듯했다. 제아무리 ‘삼손’ 같은 사나이라도 극심한 통증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 김현우는 그러나 2회전 시작과 동시에 저돌적으로 스타르세비치를 밀어붙였고, 허리 태클로 2점을 따내며 4-4 동점을 만들었다. 계속된 찬스에서 스타르세비치의 허리를 들어 넘기는 가로들기까지 성공해 6-4 역전을 일궜다. 팔이 빠졌다고는 믿을 수 없는 투혼과 괴력을 발휘했다. 스타르세비치의 거센 반격을 잘 막아내고 경기를 마친 김현우는 심판이 승자임을 알리기 위해 팔을 번쩍 들 때도 팔꿈치를 움켜잡았다. 하지만 새벽에 뜬눈으로 TV를 지켜보며 자신을 응원했을 국민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건 잊지 않았다. 코치로부터 건네받은 태극기를 매트에 펴고 넙죽 큰절을 했다. 감정에 북받쳐 태산 같은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흐느꼈다. “광복절을 맞아 꼭 태극기를 휘날리고 싶었습니다.” 김현우가 이날 투혼으로 따낸 동메달은 금메달 이상으로 값졌다. 2012년 런던올림픽 66㎏급에서 시퍼렇게 피멍이 든 눈으로 금메달을 따낸 김현우는 당시 못지않은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앞서 치른 16강에서 오심 논란의 희생양이 됐음에도 좌절하지 않고 메달을 따 더 큰 감동을 안겼다. 16강에서 로만 블라소프(러시아)와 맞붙은 김현우는 3-6으로 뒤진 종료 8초 전 완벽한 가로들기로 상대를 뒤집어 넘겼다. 블라소프의 배가 하늘을 향한 채 넘어갈 정도로 큰 기술을 성공했기에 4점을 줘야 하는 상황. 그러나 심판진은 2점을 주는데 그쳤고, 안한봉 감독은 격렬하게 항의하며 비디오 판정(챌린지)을 요청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블라소프에게 1점이 추가돼 5-7로 경기가 끝났다. 레슬링에서는 챌린지가 실패하면 상대에게 1점을 준다. 금메달을 딸 기회를 잃어버린 김현우는 패자부활전을 통해 동메달 결정전에 올랐다. 한국선수단은 세계레슬링연맹에 제소하는 걸 검토했으나 ‘괘씸죄’로 다른 선수들에게 불이익이 갈 것을 우려해 포기했다. 챌린지가 기각되자 매트 위에서 무릎을 꿇고 억울함을 호소한 안 감독과 박치호 코치는 레드카드를 받아 남은 경기에서 코치석에 앉지 못하게 됐다. 김현우는 “매 경기 결승전이라 생각하고 임했고 그래도 값진 동메달을 땄다”며 “이번 올림픽은 후회 없는 대회가 되는 게 목표였는데, 후회가 남는다”고 말했다. 런던올림픽 당시 “나보다 땀 많이 흘린 자가 금메달 가져가라”고 호기를 부릴 정도로 훈련량이 세계 둘째라면 서러워할 김현우. 오심 논란이 억울할 법도 하지만 “내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돌아가서 부족한 부분을 더 집중적으로 훈련하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태극기 사랑’ 김현우, 감당하기 힘든 ‘훈훈함’

    ‘태극기 사랑’ 김현우, 감당하기 힘든 ‘훈훈함’

    2016리우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kg급에서 ‘부상 투혼’을 발휘하며 동메달을 목에 건 김현우(28) 선수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사진이 화제다. 사진 속 김현우 선수는 북카페로 보이는 듯한 공간에서 한손에 커피잔을 들고 미소를 짓고 있다. 특히 김현우 선수는 매트 위에서 보여준 거칠고 에너지가 넘치는 ‘짐승남’의 모습 대신에 깔끔한 헤어스타일에 재킷을 입은 완연한 ‘도시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현우 선수는 15일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kg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크로아티아의 보소 스타르세비치에를 누리고 동메달을 따냈다. 김현우 선수는 경기 도중 팔꿈치가 탈골되는 부상을 겪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승리를 이끌어냈다. 또 김현우 선수는 경기 종료 후 매트에 대형 태극기를 깔고 관중석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판정 논란’ 딛고 銅 따낸 김현우, 태극기 앞에 엎드려 ‘엉엉’

    ‘판정 논란’ 딛고 銅 따낸 김현우, 태극기 앞에 엎드려 ‘엉엉’

    레슬링 김현우(28·삼성생명)가 경기 중 팔을 빠진 고통 속에서도 투혼을 발휘,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현우는 15일 그레코로만형 75kg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크로아티아 보소 스타르세비치에 2-0으로 앞서가다 2-4로 역전당했다. 상대에 파테르를 내준 뒤 두 차례 연속 옆굴리기를 당한 것이다. 김현우는 이 과정에서 오른쪽 팔을 잘못 디뎌 팔꿈치가 탈골됐다. 옆굴리기를 당하다가 매트에 손을 닿는 순간 팔꿈치가 어긋난 것이다. 김현우는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허리 태클로 동점을 만든 김현우는 아픈 팔로 상대를 들어 다시 2점을 땄다. 그리고 상대의 공격에 팔을 움츠리면서 끝까지 막아냈다. 경기가 끝난 뒤 김현우는 매트에 대형 태극기를 깔고 관중석을 향해 큰절했다. 그러면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4년 동안의 힘든 훈련 과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이어 관중석에서 가서 인사를 하며 성원에 답례했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으로 나온 김현우는 오른팔을 부여잡고 얼굴을 찡그리며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1회전 옆굴리기를 당하면서 팔을 잘못 집어 빠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4년 동안 금메달을 바라보고 운동을 했다”며 “아직 아쉬움이 남는다”며 16강 경기를 돌아봤다. 이어 “올림픽을 후회없이 마치려고 한 경기 한 경기 결승전이라 생각하고 경기에 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메달을 기다렸을 가족과 국민에게 보답을 못 해서 죄송하다”고도 했다. 김현우는 16강전에서 4점으로 인정받지 못한 데 대해 “아쉽다”면서도 “지나간 일이라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반환점 돈 더민주 전대… 결국 호남표심에 달렸다

    반환점 돈 더민주 전대… 결국 호남표심에 달렸다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지도부를 뽑는 8·27 전당대회가 약 2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당권 후보들이 ‘호남 공략’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번 전당대회는 당내 주류인 친문재인(친문)의 표심이 어디로 향하느냐가 관건이지만, 지역으로는 야권의 중심인 호남 표심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호남이 친문 쪽에 등을 돌린 상황에서 호남 민심을 누가 얼마나 끌어당기느냐가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김상곤·이종걸·추미애(기호순) 후보는 이런 상황에서 지난 13일 열린 전북과 광주 대의원대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목소리 높여 연설하고 큰절까지 하는 등 호남 표심 확보에 신경을 썼다. 특히 광주 대의원대회가 열린 김대중컨벤션센터에는 지금까지 열린 대의원대회 가운데 가장 많은 1000여명이 참석하며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광주 대의원대회에서 첫 번째 연설자로 나선 이 후보는 호남 내 반문 정서를 공략했다. 그는 “이번 전대는 호남의 아들을 뽑는 전대가 아니고 호남의 며느리를 뽑는 전대도 아니다”라면서 “문재인 전 대표를 대선 후보로 만들기 위해 충직한 대리인을 당 대표로 뽑는 전대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추 후보는 ‘호남 며느리’임을 강조했다. 그는 “호남으로 시집 올 때 사랑해 주셨던 그때 심정을 담아서 오늘 연분홍 새색시 옷을 입고 며느리의 변치 않는 마음으로 집을 부흥시키겠다는 각오를 보여드리고 싶다”면서 큰절을 올렸다. 광주 출생인 김 후보는 3명의 후보 가운데 유일한 호남 출신이라며 응수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를 하나로 모으겠다”면서 “솔직히 국민의당으로 정권교체가 어렵지 않으냐. 마지막으로 우리 당을 용서해 달라”고 말하면서 역시 큰절을 올렸다. 한편 14일 현재 더민주의 전국 16곳 대의원대회 가운데 지난 9일 제주와 창원 대의원대회를 시작으로 8곳의 대의원대회가 끝났다. 16일 전남 대의원대회를 시작으로 오는 21일 경기 대의원대회까지 나머지 8곳의 대의원대회가 차례로 진행된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세 번째 한국 사위 맞는 쑤옌 “손녀 잘 적응할 것”

    세 번째 한국 사위 맞는 쑤옌 “손녀 잘 적응할 것”

    “러우 로이 콩 갑, 반 쿠에이 크엄.”(오랜만이다. 잘 지내니?) “펑. 지. 또이 그잇 한국 그엇 야오.”(네. 이모. 한국 사람들 다정해요) 각각 10년, 8년 전 한국으로 시집을 보낸 여동생의 두 딸(조카)과 TV 화면을 통해 인사를 나눈 룩티쑤옌(74·여)의 얼굴에 미소가 흘렀다. 올겨울 전남 순천으로 시집가는 손녀 응우옌티장(21·여)은 쑤옌의 손을 꼭 잡은 채 근심 섞인 표정으로 TV 속 5촌 고모들에게 말을 걸었다. “한국 라 또옷?”(한국은 좋아요?) “특안 응온. 둥 로 랑.”(음식 맛있어. 걱정마) ●KT 등 18개 기업 무상 진료 5년째 봉사 고모들이 쑤옌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낯익은 사람이 화면에 등장했다. 올 초 베트남 하노이에서 상견례를 마친 예비 신랑 이모(42)씨가 아내가 될 장에게 손을 흔들고는 쑤옌에게 큰절을 했다. 장은 쑥스러운 듯 발그레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손을 흔들었다. 이로써 집안의 세 번째 한국 사위를 맞게 되는 쑤옌은 “베트남의 가족들, 이웃들 사이의 감정과 ‘한국의 정(情)’이 비슷해서 조카들이 잘 지내는 것 같아 기쁘다”면서 “손녀도 잘 적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KT 등 18개 기업체의 노사공동 나눔협의체(UCC)의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 가족 초청 화상상봉 행사가 열린 21일 하노이 그랜드호텔 3층 상봉장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나눔협의체가 딸을 한국에 시집 보내 놓고 요금 부담 때문에 전화 통화도 쉽지 않은 베트남 시골 마을 가족을 초청해 화상상봉(KT)과 문화체험(SH공사), 무상 진료(분당서울대병원), 초등학교 장학금 전달(농어촌공사) 등의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올해로 5년째다. 그사이 250여명의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과 1500여명의 현지 가족이 TV 화면을 통해 만났다. ●“영상으로 조카 만나 회포 풀어 기뻐” 부산으로 시집간 여동생의 초청으로 이날 행사에 참여한 응우옌쭈이뜨(33)는 “여동생이 늘 걱정됐는데, 영상으로 쌓인 이야기도 나누고, 조카들을 볼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면서 “여동생의 제2의 고향인 한국과 한국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최장복 나눔협의체 봉사단장은 “결혼 이주 베트남 여성은 중국(6만 3000여명) 다음으로 많은 4만명”이라면서 “우리 활동을 통해 우선 가족들이 안심할 수 있고, 나아가 양국 간 교류가 더 활발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노이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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