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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콘서트 파격 방송 편성 “심적으로 힘든 상황, 힐링되길”

    이승철, 콘서트 파격 방송 편성 “심적으로 힘든 상황, 힐링되길”

    이승철의 ‘30주년 기념콘서트’가 파격적인 편성을 통해 앙코르 방송된다. 소속사 진엔원뮤직웍스는 6일 “30주년 기념 콘서트 실황 영상이 오는 7일부터 약 6차례에 걸쳐 MBC뮤직, MBC에브리원 등 통해 앙코르 방식으로 공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MBC뮤직에서는 7일 오후 7시(본방)와 오후 11시10분(재방)에, MBC에브리원에서는 19일 오후 10시(본방), 10일 오후10시30분(재방)에 각각 70분간 편성이 확정됐다. 추후 두 채널을 통해 2차례 이상이 더 추가 편성될 예정이다. 제목은 ‘앙코르, 이승철 30주년 기념 콘서트-무궁화 삼천리’로 정해졌다. 앞서 이승철은 30주년을 기념해 지난 7월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펼친 콘서트를 지난 9월에도 MBC를 통해 무료 공개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이승철은 이번 앙코르 편성에 대해 “돌이켜 보면 지난 30년간 얻은 것이 너무 많았다”면서 “감사한 것을 되돌려주는 여러 일 중 하나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또 “바쁜 일상의 이유, 혹은 빠듯한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면서 “이들에게도 좋은 연말 선물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30년간 노래할 수 있게끔 해준 팬과 대중들에게 가슴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덧붙였다. 이승철은 이와 더불어 “요즘 심적으로 힘든 분들이 많을 텐데, 잠시나마 힐링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라이브 실황 무료 공개는 현재에도 30주년 기념 투어가 왕성히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어서 더욱 뜻밖이다. 투어 도중 실황 영상을 무료로 공개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승철의 30주년 기념 투어는 6일 오전 현재에도 인터파크티켓에서 2~3위를 달리고 있을 만큼 인기 공연으로 각광받고 있는 중이다. 앙코르 방송으로 내보내지는 영상은 지난 7월1~2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 2만4,0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치러진 ‘이승철 30주년 기념 공연-서울’ 편의 녹화 실황분이다. 가요계와 미디어, 공연계로부터 화제를 집중시켰던 당시의 공연은 총 제작비 12억원, 300여명의 공연스태프가 투입된 대규모 공연이기도 하다. 한편 지난 5월 대전을 시작으로 전국 주요 도시마다 열렸던 투어는 오는 10일 인천남동체육관, 16일 부산 벡스코, 22~24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31일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체조경기장 등지로 대장정을 이어간다. 이들 연말 공연은 대부분 매진이 임박했다. 부산, 서울 콘서트 등은 특히 앙코르 및 크리스마스 성격도 겸할 예정이어서 기대감을 키운다. 공연의 수익금 일부는 아프리카 차드 등지에서 짓고 있는 5번째 학교 건립에 사용된다. 30주년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이승철은 공연장을 직접 찾는 관객 전원에게도 12곡의 히트곡이 수록된 콘서트 라이브 앨범 ‘이승철-더 베스트 라이브’를 제공할 계획이다. 사진 = 진앤원 뮤직웍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대세 아이돌’ 방탄소년단, 크리스마스 기부 화보 ‘마음도 착해’

    ‘대세 아이돌’ 방탄소년단, 크리스마스 기부 화보 ‘마음도 착해’

    그룹 방탄소년단(랩몬스터, 슈가, 진, 제이홉, 지민, 뷔, 정국)이 따뜻한 기부 캠페인에 참여했다. 방탄소년단은 최근 사랑, 나눔, 보답이라는 취지를 담은 ‘알렛츠(ALLETS)’ 자선 캠페인 ‘렛츠 쉐어 더 하트(Let’s Share the heart)‘에 동참했다. 캠페인 VOD 촬영 차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방탄소년단은 무대에서 보여주던 ’상남자‘ 매력은 잠시 내려놓고 ’사랑은 함께 할 때 빛나는 것‘이라는 캠페인 주제에 맞춰 그들만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매력을 발산했다. 특히 ’렛츠 쉐어 더 하트‘ 방탄소년단 VOD 편은 서포터로 나선 하이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앤코(Tiffany&Co)와 한데 어우러져 더 아름답게 빛났다. 또 방탄소년단은 영상 말미에 “빛나는 사랑을 나눠주세요, 나누는 사랑으로 빛을 주세요”라고 클로징 멘트를 남기며 ’렛츠 쉐어 더 하트‘ 캠페인 참여를 독려했다. 함께여서 더 따뜻했던 방탄소년단의 ’렛츠 쉐어 더 하트‘ 캠페인 풀 영상(VOD)은 2일부터 알렛츠 홈페이지 및 소셜 채널, 네이버 V 라이브, 네이버 TV캐스트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한편 ’렛츠 쉐어 더 하트‘는 네이버와 스타가 함께 하는 기부 캠페인으로 네이버 해피빈 프로모션 페이지에서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 또한, 알렛츠 공식 사이트 및 SNS 채널에 올라오는 스타 콘텐츠에 ’댓글‘ ’좋아요‘ ’하트‘를 남기거나 공유하기만 해도 기부에 동참할 수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순록 이용해 피자 배달하는 일본 ‘도미노피자’

    순록 이용해 피자 배달하는 일본 ‘도미노피자’

    ‘피자 배달!, 드론이 아닌 순록으로…’ 크리스마스를 맞아 일본 피자 업체가 특별한 배달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28일(현지시간) 영국 동영상 공유사이트 ‘라이브릭’(Liveleak.com)에는 일본 최북단 섬인 홋카이도(북해도)에서 순록을 이용해 피자 배달을 계획 중인 일본 도미노피자사의 테스트 영상이 게재됐다. 공개한 영상에는 지난 11월 초 홋카이도 배달통합연구센터의 도움을 받아 GPS 추적기가 달린 순록이 피자 배달 훈련을 받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홋카이도의 혹독한 겨울 날씨로 인해 추위에 강한 순록들을 배달원으로 기용한 것이다. 피자를 주문한 고객들은 순록 배달원에 달린 GPS를 통해 실시간으로 배달 현황을 확인할 수 있으며 현재 차질 없는 배달을 위해 순록들은 마지막 교육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상에는 도미노피자 관계자들과 연구진이 시험장에서 순록에게 피자 배달을 열심히 훈련시키는 모습이 담겨 있지만 고객들이 제시간에 피자를 배달받긴 힘들어 보인다. 한편 일본 도미노피자의 크리스마스 특별 배달서비스는 12월 홋카이도에서 한시적으로만 운영될 예정이며 순록 배달원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오는 12월 1일에 공개될 예정이다. 사진·영상= ひらけ、おいしさ。 ドミノ・ピザ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김소현, 겨울 녹이는 인형 미모 “호흡 맞춰보고 싶은 배우는 유해진”

    김소현, 겨울 녹이는 인형 미모 “호흡 맞춰보고 싶은 배우는 유해진”

    배우 김소현이 스타일 매거진 앳스타일(atstar1) 12월호를 통해 주얼리 화보를 공개했다. 2017년 방영 예정인 MBC 드라마 ‘군주’에서 배우 유승호와 달달한 케미를 선보일 배우 김소현은 이번 앳스타일 화보를 통해 ‘크리스마스 여친룩’의 정수를 보여주며 사랑스러움이 돋보이는 주얼리 레이어드 스타일링을 선보였다. 공개 된 화보 속 김소현은 자연스러운 웨이브 헤어 스타일에 포근한 니트로 여성미를 강조했으며, 심플한 의상에 어울리는 다양한 디자인의 주얼리를 믹스매치하는 엣지로 눈길을 끌었다. 화보 촬영 관계자는 “김소현이 새로 준비하는 드라마 준비에 피곤했을 법도 한데, 촬영 내내 밝고 상큼한 미소로 프로페셔널한 모습까지 선보여 모든 스텝들의 찬사를 받았다”고 밝히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소현은 화보 촬영과 함께 진행된 인터뷰에서 “여러 작품에서 배우들을 만났는데 성격이나 합이 제일 잘 맞는 배우는 누구였냐”는 질문에 김소현은 “(옥)택연 오빠다. 사실 잘 아는 사이가 아니어서 걱정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생각이 바뀌었다”고 답했다. 이어 “택연 오빠가 에너지 넘치고 장난도 잘 친다. 밝은 에너지가 나랑 닮은 것 같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개그코드도 잘 맞았다”며 옥택연을 꼽은 이유를 덧붙였다. 또 같이 연기하고 싶은 배우가 누구냐는 질문에 “유해진 선배님”이라며 “나 스스로 풀어지는 연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배님과 함께 연기를 하면서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홈스쿨링을 하는데 장점이 많을 것 같다는 질문에는 “정말 많다. 일단 학업에 있어 효율성이 높다. 어떻게 보면 연기도 하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은데 둘 다 집중할 수 있어 좋다”고 전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30>TBWA코리아 박웅현 크리에이티브 대표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30>TBWA코리아 박웅현 크리에이티브 대표

    야구선수의 타율이나 방어율과 비슷한 지표가 광고인들에게도 있다. 기업들이 어느 광고 대행사에 자사 광고를 맡길지를 정하는 경쟁입찰에서 얼마만큼의 수주를 해내느냐가 그것이다. 통상 2할5푼(4회 입찰해 1회 수주) 정도가 광고업계의 평균인데 박웅현 대표는 5할 이상의 승률을 거두는 것으로 유명하다. 10건의 입찰에 참여해서 9건을 수주한 해도 있었다. 그에게 광고를 맡기면 다른 곳보다 확실한 결과를 낸다는 것을 광고주들이 두루 인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제일기획에서 17년을 보낸 뒤 글로벌 광고회사 TBWA코리아로 옮겨 2014년부터 크리에이티브 대표(CCO)를 맡고 있다. 광고만의 틀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콘텐츠를 책, 다큐멘터리, 공연 등 다양한 틀에 접목 해보는 실험가이기도 하다. 그의 ‘책은 도끼다’와 ‘여덟 단어’가 요즘 출판계에서 보기 드물게 각각 ‘100쇄’를 돌파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유명해졌다. ▲1961년 경기 동두천 출생 ▲돈암초, 용호중, 배재고,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뉴욕대 텔레커뮤니케이션 석사 ▲제일기획(1987년), TBWA코리아 제작 전문임원(2004년) ▲칸국제광고제 심사위원, 아시아퍼시픽광고제 심사위원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 ‘사람은 누구나 폭탄이다’, ‘다시, 책은 도끼다’ 등 저술 그에게 명함 뒷면은 하얀 도화지다. 줄이 쳐져 있지 않은 작은 공책이다. 그때그때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일들을 글자나 그림으로 새겨 넣는다. ‘진심이 짓는다’와 같은 광고 카피가 그곳을 채운 적도 있었고, ‘돈키호테’의 이미지가 거기를 다녀간 적도 있었다. 지금은 ‘망치’란 두 글자가 빨간색 해머와 함께 그려져 있다. 2014년부터 젊은이들의 꿈과 창의력을 키워 주기 위해 진행해 온 강연 프로젝트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세상을 두드리는 작은 망치질’의 의미를 소리 높여 말해 주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박웅현(55) TBWA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대표를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1993년 가을 어느 날. 우리는 오디션 경연장에 선 가수 지망생 같은 심정으로 앞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제일모직 의류 브랜드 ‘빈폴’의 TV CF 최종 시안 발표를 조금 전에 막 끝낸 참이었다. 우리 앞의 그들은 우리에게 CF 제작을 의뢰한 제일모직 간부들이었다. 몇 달을 고민한 결과를 쏟아낸 우리는 그들이 ‘OK’ 사인을 내주기만을 숨죽여 기다렸다. 당시 제일모직은 커져 가는 고급 캐주얼 시장에 자체 브랜드 ‘빈폴’을 내놓았지만 ‘폴로’, ‘라코스테’ 같은 외국 회사들에 밀려 고전하고 있었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라는 메인 카피를 배우 한석규의 목소리에 담아낸 영상이 끝났지만, 그들은 한참을 팔짱만 끼고 있었다. 얼마 후 한 임원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에 들어와서 뭐가 어쨌다는거요?” 아, 우리가 만용을 부린 걸까. 사실 광고주들이 처음부터 일관되게 요구했던 카피가 있긴 했다. 브랜드의 슬로건이 ‘도심 속의 자연주의’이니 그 표현을 그대로 광고에도 살려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 카피로는 소비자들에게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을 게 뻔했다. 나는 ‘라코스테’의 악어나 ‘폴로’의 말(馬)과 같은 ‘빈폴’의 자전거에 주목했다.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오잖아요. 사랑하는 여인의 가슴에 붙은 상징 또한 오래도록 기억에 남지 않을까요.” -차가운 반응 속에 시안 발표 자리가 파하려는데, 한 임원이 불쑥 제안을 했다. “40~50대인 우리들이 빈폴의 주요 타깃 고객층은 아니잖아요. 20, 30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들어봅시다.” 잠시 후 제일모직의 젊은 여직원들이 불려왔고, 상황은 그걸로 끝이었다. 빈폴은 우리가 제작한 CF를 기점으로 소비자 인지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하지만 광고를 잘 만들어서 브랜드가 떴다고 말해 주는 광고주는 없다. 자신들이 브랜드 콘셉트를 잘 잡고 제품을 잘 만들어서 그렇다고 말할 뿐이다. 반대로 제품이 뜨지 않으면 광고주들은 “광고를 못 만들었기 때문”이라 탓을 돌린다. 그것은 우리 직업의 어쩔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1975년 중2 때부터 나의 방대한 양의 책 읽기가 시작됐다. 이유는 수업 때문이었다. 당시 선생님은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같은 작품들을 읽고 감상문을 써오는 숙제를 많이 내주셨는데, 나는 독후감 낭독에 단골로 호명이 됐다. 그때 나 같은 친구들이 몇 명 더 있었는데 ‘내가 좀더 잘써야지’, ‘내가 더 많이 읽어야지’ 같은 일종의 경쟁심리 같은 게 생겼다. ‘호밀밭의 파수꾼’(샐린저), ‘개선문’(레마르크), ‘폭풍의 언덕’(브론테), ‘수레바퀴 아래서’(헤세), ‘인간의 굴레’(몸) 같은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배재고에 들어가서는 학교신문을 만드는 데 빠져 살았다. 누가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언제나 ‘칼럼니스트’였다. 결국 재수까지 해서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갔고, 여기에서도 꿈을 이루겠다며 14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학보사에 발을 들였다. 대학 때에는 한국문학에 심취했다. 이문열, 황석영, 이외수, 김원일, 이청준, 오정희 등을 찾아 도서관에서 살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책읽기는 내가 기자가 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문학과 철학, 역사를 두루 섭렵하는 것을 기자가 되기 위한 소양으로 생각하던 나에게 사법시험 준비 수준의 언론사 공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피터팬 신드롬’이니 ‘레임덕’이니 하는 시사용어를 모르면 기자가 될 수 없다는 건 내게 난센스였다. 상식책을 덮어버린 그날, 나는 친구들 보란 듯이 도서관에 가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펼쳐들었다. 친구들이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그들에게 독한 말투로 쏘아붙였다. “그게 상식이냐, 이게 상식이지.” -대학을 졸업한 1987년의 크리스마스 이브, 나는 학교 다닐때 상상도 하지 않았던 광고회사(제일기획)에 들어갔다. ‘뉴스 콘텐츠’ 대신에 ‘광고 콘텐츠’를 생업으로 택한 것이었다. 내 또래에 나만큼 책을 많이 읽은 사람도 없고 사고의 깊이가 나만 한 사람도 별로 없을 거란 막연한 자신감이 나에겐 있었다. 하지만 그건 요즘 말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다독(多讀) 때문이었을까, 광고인으로서 나는 너무 사변적이었다. 81학번으로 군사정권 치하에 학교를 다녔고, 대학 학보사 기자로서 현실을 비판해 왔으며, 학과 선배들과 사회과학의 벽을 깨는 훈련을 받아 온 나는 논리적으로 정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야, 박웅현, 향수 파는데 무슨 논리가 그렇게 장황하냐.” 선배들은 나와 함께 일하기를 싫어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이 주는 배움과 성장의 섭리는 나에게도 아주 예외는 아니었다. 입사 4년 정도가 지난 1992년. 당시 후배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던 오영곤(현재 서울광고기획 부사장) 국장이 우연히 내 카피를 보게 됐다. “야, 이거 누가 썼냐. 광고의 맥을 아주 잘 짚었네. 특히 논리가 뛰어나다.” 그는 이후에도 나를 여러 번 칭찬해 주었다. ‘지나치게 사변적이고 논리적인 게 나의 발목을 잡았는데, 그래서 나는 이 바닥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외려 그것 때문에 칭찬을 받게 되다니….’ 자신감은 성과로 이어졌다. 얼마 후 나는 ‘성깔 있는 두부’라는 풀무원 제품 카피를 써서 사내 입지를 확연히 넓힐 수 있었다. 선배들이 “같은 팀이 돼서 일해 보자”며 손짓을 해 왔다. -1995년 삼성그룹 이미지 광고 카피로 나온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시리즈는 ‘빈폴’ 못지않은 성공을 거뒀다. 삼성의 ‘세계 일류’ 캠페인이었는데, 신문광고를 통해 ‘(닐 암스트롱에 이어) 달에 두 번째로 도착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 ‘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일등했을 때 2등이 누구였는지 아느냐’와 같이 1등을 강조하는 광고였다. -어떤 광고에 가장 만족하느냐는 질문을 꽤 많이 받는데, 우리 사회에 담론을 던졌다는 측면에서는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차이는 인정한다 차별엔 도전한다’(KTF) 같은 것들이 의미 있었다고 본다. ‘진심이 짓는다’(대림 e편한세상)는 아파트 광고의 프레임을 바꾸고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가 지은 책들이 이렇게 잘 팔릴 줄은 나는 물론이고 출판사도 상상하지 못했다. 2011년에 출간된 ‘책은 도끼다’가 5년이 흐른 지금도 인기가 있는 걸 보면 신기하다. ‘책은 도끼다’가 107쇄, ‘다시 책은 도끼다’가 26쇄를 찍었고 ‘여덟단어’는 119쇄까지 갔다. 100쇄 도서가 많지 않은 요즘 한 사람의 책 2권이 동시에 100쇄를 넘어간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들었다. 사람들에게 어떤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책에 대해 말한 기존의 도서들이 “이 책들을 통해 내가 뭘 배웠다”고 이야기하는 식이라면, 내 책은 그냥 ‘책으로 접근하는 다리’ 정도의 역할만 해준게 외려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책을 잡아도 잘 읽히지 않는다고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그건 사실 나도 똑같다. 눈으로 받아들인 활자의 내용이 머리에 와닿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때에는 안 읽는 게 답이다. 잘못하면 보석 같은 페이지를 다 놓칠 수 있다. 어떤 책이 눈에 안 들어오면 다른 책을 읽어 보고 그것도 안 읽히면 놓는 것이 상책이다. 사람이 물리적 시간만 확보된다고 텍스트에 빠져드는 게 아니다. 심리적인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 -책읽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존중이다. 같은 책이어도 10대 때 읽은 것과 50대에 읽은 것이 다를 수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중국·일본 기행 ‘천상의 두 나라’가 나에겐 딱 그랬다. 40대 중반쯤에 그 책을 읽었는데 카잔차키스의 다른 책들과 달리 그다지 재미있게 읽히지 않아서 서가에 꽂아 두고 있었다. 2~3년 후 서가를 뒤적이다 우연히 책이 손에 잡혀서 펼쳐봤는데 완전히 달랐다. 물리적인 상태의 책은 전과 지금이 같겠지만, ‘나’라는 유기체와의 관계에서 본 그 책은 전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좋은 책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책이 될 확률은 적다고 생각한다. ‘서울대 권장도서’, ‘고전 100선’ 같은 것들을 믿지 말라고 이야기 하는 이유다. 그건 바깥에서 부여한 권위일 뿐이다. 나라는 유기체와 불꽃이 튀겨야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내가 낸 책들이 잘 팔리면서 마치 ‘인문학의 전도사’ 같은 평가를 받게 됐는데 사실 부담스럽다. 나는 광고를 만들어서 먹고사는 사람이다.(인터뷰를 하는 3시간여 동안 그의 휴대전화에는 업무와 관련한 전화, 문자메시지, 이메일이 쉴새없이 들어왔다.) 그럼에도 앞으로 책으로 다뤄 보고 싶은 단어를 고르라고 하면 ‘사유’나 ‘사색’을 고르겠다. 작은 불 하나 켜 놓고 눈감고 20~30분 동안 오늘 하루를 돌아보고 내 위치도 한번 돌아보고 하면서 느끼는 것들이 중요하다. ‘인풋’도 ‘아웃풋’도 없는 ‘노풋’의 시대가 와야 한다. 우리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강박이 있다. 그 결과 지식과 정보의 소화불량에 걸려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경찰에 체포되고파” 소원 이룬 102세 할머니

    “경찰에 체포되고파” 소원 이룬 102세 할머니

    최근 미국 미주리주(州) 세인트루이스에서 102세 할머니가 체포되는 일이 있었다. 이날 할머니는 경찰관들에게 둘러싸여 경찰서로 연행됐다. 고령 때문인지 경찰관에게 부축을 받고 있었고 한 손에는 수갑이 걸려 있지만 지팡이를 짚고 가야 하는 탓에 양손이 묶여 있지는 않았다. 파이브스타 노인센터에서 지내고 있는 이 할머니는 에디 심스. 할머니는 지난 수년간 매일 옷과 액세서리를 직접 만들어 센터의 다른 노인이나 지역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할머니가 만든 작품 수는 무려 413점이나 된다고 한다. 오랫동안 지역 사회를 위해 힘쓰고 있는 이 할머니는 도대체 어떤 죄목으로 체포된 것일까? 체포 사유는 바로 할머니의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 때문. 거기에는 “한 번 체포돼 보고 싶다”라고 쓰여 있던 것. 즉 항상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할머니를 위해 노인센터 측이 소원을 들어준 것이다. 물론 할머니가 실제로 수감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경찰 측에 사연을 알린 뒤 할머니를 위한 상황극을 재연한 것. 생애 처음 체포되는 일을 겪은 할머니는 CNN 등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갑을 차고 경찰차를 탈 수 있어 크게 만족스럽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모두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상대방과 대화하고 격려의 말을 해주는 것이다. 단지 이것만으로도 상대는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상대가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은 대상이 당신만일 수도 있다. 이는 엄청난 일이다. 눈을 뜨고 보면 세상은 매우 멋진 곳이다” 오랜 세월을 보내고 있는 할머니의 마음은 매우 깊고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 보이는 이들의 마음을 울린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이내 짓궂은 농담으로 주변 사람들을 웃게 했다. 할머니는 “내 생일은 9월 25일이다. 계산해보면 우리 부모님이 크리스마스 때 뭘 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바로 아이 만들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렇게 경찰에 체포되는 경험은 할머니의 생일에 거행된 것이다. 그리고 상황극 이후 할머니는 경찰관들과 함께 즐거운 파티를 즐겼다. 그리고 이날 할머니는 최근 자신이 손수 만든 작품을 경찰을 통해 필요한 이웃에게 선물해 달라며 전달했다. 독특한 버킷 리스트로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할머니. 앞으로도 모든 소원을 이루길 바랄 뿐이다. 사진=현지 방송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사랑을 남겼다 생명을 나눴다

    사랑을 남겼다 생명을 나눴다

    “제 신장을 받은 성주와 20년째 연락하며 엄마와 아들처럼 지내요. 신장 기증으로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긴 거죠.” 8일 경기도에서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명예퇴직한 뒤 노인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이경희(64·여)씨는 1996년 당시 고등학생이던 박성주씨에게 자신의 신장을 기증했다. 함께 공무원을 하고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남편 김근묵(66)씨도 1995년에 신장과 간을 기증했다. ●“내가 나눠줄 수 있는 것 찾았을 뿐” 기증한 계기를 묻자 김씨는 “대단한 사연이 있는 건 아니고 단순하게 내가 나눠 줄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니 내 몸에 있는 것을 발견했을 뿐”이라며 소탈하게 웃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이씨 부부 등 장기기증자 20명의 초상화를 9일 서울 청계천 광통교 하부공간 ‘생명 나눔의 벽’에 공개한다. 생존해 있는 장기기증인 8명과 뇌사 판정과 함께 세상을 떠나면서 장기를 기증한 12명의 초상화로, 국민들이 기증인에게 보내온 감사와 응원의 문구를 캘리그래피로 디자인했다. 초상화는 재능기부로 완성했다. 9일 장기기증의 날을 맞아 장기기증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높이기 위해 벌이는 행사다. ●국내 기증률 100만명당 9명 불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올해만 2974명이 장기기증을 실천했다.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2014년 우리나라의 100만명당 뇌사 장기기증자 수는 9명에 불과해 스페인(36명), 미국(27명), 이탈리아(23.1명), 영국(20.4명) 등에 비해 크게 낮다. 초상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인 김기석(당시 16세)군은 기말고사를 며칠 앞둔 2011년 12월 2일 학원을 가는 길에 갑자기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바로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불과 10시간 만에 뇌사 판정을 받았다. ●“그 애를 세상에 남기려고…” 김군의 아버지 태현(56)씨는 “아들을 어떻게든 세상에 붙잡고 싶은 마음에 기증을 결정했다”며 “장기 기증은 떠나간 기석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었다”고 말했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애끊는 부정은 신장, 췌장, 폐, 간, 심장 등의 기증으로 이어져 6명의 귀한 생명을 살렸다. 태현씨는 “간호사가 6명 모두 수술이 잘됐다고 말해 주더라”며 “기석이가 그분들에게 가서 건강히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충효(47)씨의 아내는 2013년 6월 1일 뇌출혈로 쓰러져 뇌사 판정을 받았다. 당시 15세, 12세, 7세에 불과했던 세 아들에게 엄마의 빈자리는 감당하기 버거웠다. 슬퍼하는 김씨 가족에게 병원 측에서 조심스레 장기기증 의사를 물어왔다. “할 수 있다면 마지막 가는 길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자.” 처가 식구들이 외려 망설이는 김씨를 응원해 줬다. 김씨의 아내는 간, 신장 등을 기증해 모두 5명에게 새 생명을 전했다. “사후 장기기증을 신청한 상태였는데 아내를 떠나보내고 죽기 전에도 장기기증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더군요. 아내가 남긴 사랑을 잇고 싶었죠.” 김씨는 201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신장을 기증했다. “최근에 열여덟 살이 된 큰아들이 ‘부모님이 자랑스럽다’며 ‘나도 장기기증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너무 기뻤죠.”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남미의 밥 딜런’ 비틀스 링고 스타… 설렌다, 한국무대

    ‘남미의 밥 딜런’ 비틀스 링고 스타… 설렌다, 한국무대

    해외 유명 뮤지션의 첫 내한 공연 소식이 줄을 잇고 있어 국내 음악 팬들의 마음이 부풀고 있다. 최근 리우올림픽 개막 공연 무대에 섰던 브라질 대중음악의 대부 카에타누 벨로주(74)가 오는 10월 1~3일 열리는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무대를 통해 첫 한국 공연을 갖는다. ‘남미의 밥 딜런’, ‘남미의 폴 매카트니’, ‘브라질의 다빈치’ 등이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1960년대 후반 브라질 군부 독재에 저항한 문화 운동인 트로피칼리아를 이끌었다. 브라질 전통 리듬에 록을 혼합하고 추상적인 시를 가사로 붙이며 저항 정신을 표현한 그의 노래는 브라질 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차례 투옥, 가택 연금 끝에 국외 추방됐다가 영국으로 망명하기도 했던 그는 1972년 귀국한 뒤 음악, 시, 영화 등 다방면에 걸쳐 재능을 뽐냈으며 월드뮤직의 바람을 타고 브라질 대중음악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한국에서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그녀에게’(2002)에 삽입된 명곡 ‘쿠쿠루쿠쿠 팔로마’를 부른 뮤지션으로 널리 알려졌다. 영국이 배출한 전설 비틀스의 드러머 링고 스타(76)도 11월 5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에 견줘 가려진 측면이 있지만 비틀스의 숱한 명곡 중 ‘위드 어 리틀 헬프 프롬 마이 프렌드’와 ‘옐로 서브머린’의 메인 보컬을 맡았고 몇몇 곡에선 작곡 솜씨를 발휘하기도 했던 링고 스타는 1970년 1집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꾸준히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비틀스로, 솔로 자격으로 두 차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이번에 내한하는 올스타 밴드에는 록밴드 토토 출신의 유명 기타리스트 스티브 루카서 등이 함께할 예정이다. 앞선 두 뮤지션이 전설이라면 오는 13~14일 잠실종합운동장 보조 경기장 일대에서 열리는 서울 솔 페스티벌을 통해 한국에 처음 인사하는 갤런트(24)와 다음달 23일 서울 광장동 YES24 라이브홀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갖는 앤드라 데이(32)는 떠오르는 샛별이다. R&B 솔 싱어송라이터인 갤런트는 올해 4월 선보인 메이저 데뷔 앨범 한 장으로 국내에서 이미 ‘갓런트’란 별명을 갖고 있다. 미국의 새로운 R&B 솔 디바로 떠오른 앤드라 데이는 방송 CF에 삽입된 ‘시티 번스’와 스티비 원더와의 듀엣 곡 ‘섬데이 인 크리스마스’ 등으로 국내 음악 팬들에게도 존재감을 알렸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지구로 떨어진 검은별’ 데이비드 보위 추모전 연다

    ‘지구로 떨어진 검은별’ 데이비드 보위 추모전 연다

    69년간 지구 체류를 끝내고 올해 초 고향 별로 돌아간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가 지구에 잠깐 들른다. 오는 21일 개막하는 제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가 ‘데이비드 보위 추모전: 지구로 떨어진 검은 별’ 특별전을 준비했다. 글램록 대부로 널리 알려진 데이비드 보위는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 패션, 공연 등 문화 전반에 걸쳐 빛을 뿜었던 세기의 아이콘이다. 장편 영화 20여편에 출연했던 그는 199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어 이듬해에는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소스코드’,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등을 연출한 던컨 존스 감독이 그의 아들이기도 하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네 편이 상영된다. 그에게 제2회 새턴 어워즈 최우수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겨준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1976)와 영상미가 빼어난 토니 스콧 감독의 데뷔작 ‘악마의 키스’(1983), ‘감각의 제국’으로 유명한 일본 거장 오시마 나기사 감독 작품으로, 칸영화제 초청작인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 앳된 제니퍼 코넬리와 대조를 이루는 마왕 역할을 맡아 열연한 판타지 ‘라비린스’(1986)다. 배순탁 음악평론가는 “앞으로 극장에서는 다시 보지 못할 영화들”이라며 기대를 부풀렸다. 영화제 기간인 23일 오후 7시 부천시청 잔디광장에서는 국내외 뮤지션 세 팀이 꾸리는 데이비드 보위 헌정 공연이 열린다. 대한민국 모던록의 선구자 이승열과 클래지콰이의 리더 클래지가 의기투합한 프로젝트팀 욜훈과 급부상 중인 일렉트로 록 듀오 프롬 디 에어포트, 올해 BIFAN 상영작 ‘라이브 프롬 울란바토르’의 주인공인 몽골 인기 밴드 모하닉이 무대에 올라 자신들의 곡 중에 데이비드 보위 분위기에 어울리는 노래를 골라 들려줄 예정이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 ‘삶의 책꽂이’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 ‘삶의 책꽂이’

    그의 방은 책의 숲이기도 했고, 서화의 숲이기도 했다. 또는 사진의 숲이기도 했다. 파주출판도시의 한길사 건물 3층에 자리한 그곳에는 김언호(71) 대표가 40년 동안 출판인으로서 가꿔 온 철학과 여정이 속속들이 배어 있었다. 벽 한쪽에는 그가 지금까지 써 온 서예 작품들이 1m 정도 높이로 쌓여 훈훈한 묵향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가 물었다. “기자분도 책 많이 보시지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살짝 고갯짓만 하고 말았다. -전국이 비상계엄의 장막에 갇혀 있던 1980년 2월 중순 어느 날, 나는 서울시청 건물에 차려진 계엄사령부를 내 발로 찾아갔다. 총을 둘러멘 군인들을 지나 2층 신문·서적 검열실로 올라가는 내 손에는 ‘판금(판매금지)도서’ 3권이 들려 있었다. “이 책들 제대로 읽어보기는 하셨습니까?” 검열실 담당자들에게 물었다. 다행히 검열의 실무 작업은 군인들이 아닌, 시청 직원들이 하고 있었다. 다소 용기가 났다. “민주주의 국가사회를 건설하려면 이만 한 수준의 논의는 허용돼야 합니다.” 검열실 뒤에는 소령, 중령 계급장을 단 장교들이 진을 치고 있었지만 시청 직원들은 나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김언호 대표님 말씀에 공감은 가지만, 판금된 책에 아무런 수정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저희가 ‘검열필(畢)’ 처리를 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필자들을 설득해 약간씩 내용을 수정했다. 얼마 후 책 3권의 맨 앞 장에 붉은색 검열필 도장이 찍혔다. 그 세 권의 책은 리영희 선생의 ‘우상과 이성’, 박현채 선생의 ‘민족경제론’ 그리고 ‘해방전후사의 인식’(제1권)이었다. 그때 그 책들이 복권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한길사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불을 밝힌 보석과 같은 책들을 세상에 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아이로니컬한 일이다. 군홧발과 총칼로 들어선 신군부의 계엄 통치하에서 박현채, 리영희 선생의 책과 민주주의 운동의 교과서로 통했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은 평생을 검소하고 성실한 농군으로 사셨다. 6·25가 한창이던 1952년 초등학교에 들어가 중학교까지 고향인 경남 밀양에서 나왔는데, 동네에서는 책이란 걸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우리 수준에서는 수련장이나 영어단어장 정도가 전부였다. 당시 독서에 대한 욕구의 빈 공간을 채워 준 건 부산에서 사범학교에 다니던 큰형이 집에 올 때마다 가져온 잡지 ‘사상계’였다. 중학생이 쉽게 이해할 만한 글들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뭐가 됐든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형은 ‘사상계’ 안에서도 함석헌 선생의 글을 자주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의 삶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1961년 부산상고에 입학했는데, 그해 5·16 정변이 났다. 우리 학교가 있던 서면에도 탱크와 군인들이 진주했다. 얼마 후 나온 사상계 7월호에 함석헌 선생의 글이 실렸다. ‘(박정희 님은) 단지 손에 든 칼만을 믿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민중은 무력만으로 얻지 못합니다.’ 선생의 글은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 주는 통쾌함 그 자체였다. -사상과 시국에 관심을 가지면서 언론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됐다. 중앙대 신문학과 64학번으로 입학했다. 2학년 때인 1965년 4월 한·일 기본조약 협정이 체결됐다. 전국이 반대 시위로 물결쳤다. 나도 그 속에 있었다. 어느 날 흑석동 캠퍼스 교문을 나와 한강대교 쪽으로 진출하며 구호를 외치다 경찰에 체포돼 선후배들과 함께 영등포경찰서에 끌려갔다. 우리 12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신청됐는데, 그중에서 나를 포함한 3명의 영장이 발부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몇 숟가락 안 되는 꽁보리밥에 허여멀건 국물.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늘 배가 고팠다. 태어나서 배고픔이란 걸 처음 느꼈다. 사형 집행도 보았다. 옆 방에 있던 2명이 교수대에 매달리던 그날 저녁 구치소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당시 우리 같은 대학생들은 교도소 내에서 꽤 예우를 받았다. 절도, 사기, 폭력 등 화려한 전과 기록의 잡범들과도 형, 동생처럼 친해져 많은 얘기를 나눴다. “범죄를 저지를 조건이 없어야 범죄가 안 일어날 것 아닌가. 이들이 대책 없이 그냥 사회로 나갔다간 언젠가 다시 이곳에 돌아오게 된다.” 이 부분은 나중에 사회부 기자가 된 후 내 취재의 주된 관심사였고, 실제로 나는 이에 대한 기획기사를 많이 썼다. 서울구치소 생활 두 달 만인 6월 중순 형의 도움으로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1975년 3월 나는 해직기자가 됐다. 자유언론실천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송건호 당시 편집국장 등과 함께 동아일보에서 강제 해직을 당했다. 1968년 입사하고 햇수로 8년 만이었다. 1년 정도 다른 직장을 거쳐 1976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길사를 차렸다. 은평구 불광동의 언덕배기 집 거실이 우리 회사였다. -“왜 멀쩡한 기자는 때려치우고 사서 고생을 하니.” 한길사를 차리고 몇 달 후인 1977년 봄, 결국 고향의 어머니에게 손을 벌리고 말았다. 책을 내려면 종잣돈이 있어야 했지만, 신문사에서 해직된 뒤 경제적인 궁핍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주신 30만원으로 그해 9월부터 ‘오늘의 사상신서’ 시리즈를 냈다. 동아일보 선배인 송건호 선생의 ‘ 한국민족주의의 탐구’를 첫 권으로 해서 고은 선생의 ‘역사와 더불어 비애와 더불어’, 리영희 선생의 ‘우상과 이성’ 등 3권을 차례로 펴냈다. 그러나 이 책들은 발간과 동시에 ‘불온서적’으로 몰려 판매금지를 당했다. 리영희 선생은 출간 직후인 11월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나의 아내 박관순(현 한길사 부사장)도 연행됐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아내가 회사의 대표로 등록돼 있었던 탓이었다. 아내는 얼마 후 풀려났지만, 리영희 선생은 2년간 옥고를 치르고 1980년에야 만기 출소했다. -이후로도 발간하는 족족 ‘판금’의 딱지가 붙었다. 1978년 4월에 나온 ‘민족경제론’이 그랬고 1979년 10월 16일 펴낸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그랬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나오고 10일 후에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10·26이 터졌는데, 그로부터 이틀 뒤인 10월 28일 문화공보부 출판 담당 과장이 나를 불렀다. 그의 책상 위에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펼쳐져 있었다. “친일행위를 좀 했다는 게 뭐 대수냐. 그걸 지금 들춰내서 대체 뭘 어쩌겠다는 거냐”고 엄포를 놨다. 그는 “구속이 당연하지만 이번만 봐 준다”며 그 책의 재고를 전량 문공부로 보내라고 윽박질렀다. 그때 용달차에 500여권을 실어 보냈는데, 그 책들의 ‘생사’는 지금도 알 길이 없다. -1980년 2월에 복권된 3권의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특히 학생들 사이에 ‘해전사’로 통했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1989년까지 총 6권이 나오는데, 사회과학 서적으로는 경이로운 40만권 판매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 책을 기획한 것은 1979년 봄이었다. “우리가 외세(미국·소련)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이 됐다고 하지만 이유가 단지 그것뿐일까?” 나의 문제의식의 출발점이었다. 책의 기획안을 송건호 선생에게 맨 처음 보여 드렸다. 무릎을 탁 치더니 “나도 한 편을 쓰고 싶다”고 하셨다. 결국 송건호 선생이 쓰신 첫 번째 장 ‘해방의 민족사적 인식’이 사실상 책의 총론이 됐다. -어두운 시대에 사회과학 서적을 내면서 회사와 나에 대한 위협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요리조리 잘 피했다는 생각이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든다. 1981년 8월이었다. 당시 문공부 과장으로부터 “조심하라”는 경고 전화가 걸려오더니 얼마 후 ‘3개월 영업정지’ 조치가 떨어졌다. 3개월이 지나서도 정지가 안 풀리면 등록이 취소되는 수순이었는데, 정부로서는 그걸 노린 조치였다.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책들을 낸다는 이유로 출판사를 폐쇄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만들겠다는 새 정부의 취지에도 맞지 않습니다.” 당시 서울대 정치학교 교수로 있던 김학준 전 동아일보 회장 등이 구명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다. 그런 도움들 속에 영업정지 처분은 일주일 만에 없었던 일이 됐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나는 허문도 정무수석과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만나 ‘올바른 출판인의 길’에 대해 일장 훈시를 들어야 했다. -1988년 작곡가 윤이상 선생을 독일 베를린에서 만나고 돌아온 뒤에는 1년 반에 걸쳐 출국금지를 당했다. 윤이상 선생은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자요 민족문화론자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이데올로기란 가을날 떨어지는 낙엽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민족은 저 푸른 창공처럼 푸르른 것이다.’ 세계가 연구하고 연주하는 음악가인데 그가 왜 자기 조국에서는 나래를 펼 수 없었던 것인지 현대사의 비극이었다. -1995년부터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소설 ‘로마인 이야기’를 펴내 2007년 15권을 완간했는데, 이 책이 400만권 정도 팔렸다. 최명희의 소설 ‘혼불’도 350만권 이상 나갔다. 판권이 바뀌기 전까지 우리가 찍었던 ‘태백산맥’도 약 400만부가 판매됐다. 내가 27권짜리 ‘한국사’를 비롯해 경제성에 약점이 있는 각종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출간할 수 있도록 해준 ‘효자’들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낼 때에는 상업성이 떨어진다며 주변의 많은 사람이 반대했다. 하지만 나는 이탈리아 로마로 저자를 직접 만나러 가 번역 판권을 확보했다. -보편적인 인문주의와 인문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출판 인프라 구축 운동 차원에서 1996년 ‘한길 그레이트북스’ 출간을 시작해 다음달이면 150번째 책이 나온다. 지난해에는 세계의 서점들을 찾아다니는 기행을 신문에 연재했다. 글은 물론이고 그 안에 들어가는 사진들도 모두 내가 찍었다. 그 연재물을 다듬고 보완해서 얼마 전 ‘세계서점기행’이라는 이름으로 냈다. 종이책의 미학과 존엄을 보여 주기 위한 기획이었다. 8만원이나 하는 고가임에도 책을 그리워하고 책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독자들 덕에 두 번째 판을 찍었다. -나는 진보와 보수는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진정한 보수와 진정한 진보는 서로 대화를 할 수가 있다. 출판을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 원칙을 적용한다. 책이 정직한가, 정확한가, 최선을 다한 성과물인가가 중요할 뿐 보수인지 진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으면 과감하게 일을 벌이는 편이다. 우리 파주출판도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곳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논의를 시작해서 90년대 초반 위원회를 가동하고 2010년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예술마을 ‘헤이리’ 프로그램도 이끌었다. 지금 내가 절실하게 바라는 것은 종로서적의 부활이다. 1907년 문을 연 그곳이 2002년에 문을 닫았는데, 그건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짧게 살았던 곳도 떠들썩하게 기념관으로 보존하면서 현대사에서 우리의 정신적 지주였던 그곳이 사라지는 걸 우리는 두 눈 뜨고 그저 바라만 보았다. 서점은 공공적 플랫폼으로 인식해야 한다. 출판사도 마찬가지다. 출판사는 단순히 종이와 잉크로 구성된 물건을 만드는 곳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 연관되는 것이 책이다. 당장 책을 읽지 않는다고 오늘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10년, 20년 동안 책을 안 읽으면 바보가 된다.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정의로운 사회, 도덕적인 사회가 돼야 한다. 그런 사회는 책을 읽고 건전한 토론을 해야 만들어진다.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자기주장만 한다. 현재 교육의 가장 큰 문제가 책 읽고 토론하고 생각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관용이 부족한 사회를 만든다. 나만 옳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김언호씨 ■언론자유를 위해 싸우다 동아일보에서 강제 해직된 뒤 1976년 한길사를 설립,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40년간 3000여권의 책을 펴냈다. ‘한 권의 책은 한 시대와 사회의 사상을 담아 내는 아름다운 그릇’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오늘의 사상신서’,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 현대사의 굽이굽이를 장식한 다양한 책들을 기획하고 펴냈다. 한국출판인회의 창설과 파주출판도시, 예술마을 헤이리 건설을 주도했다. ▲1945년 경남 밀양 출생 ▲밀양 대사초, 동명중, 부산상고, 중앙대 신문학과, 서울대 대학원 언론정보학과 ▲동아일보 기자(1968~1975), 헤이리 이사회 이사장,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동아시아출판인회의 회장, 파주북소리(책축제) 조직위원장,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책의 탄생 Ⅰ·Ⅱ’(1997), ‘헤이리, 꿈꾸는 풍경’(2008), ‘책의 공화국에서’(2009), ‘한권의 책을 위하여’(2012), ‘책들의 숲이여 음향이여’(2014), ‘세계서점기행’(2016) 등 저술 ■한길사를 대표하는 책(가나다順) ▲‘로마인 이야기’(오른쪽·전15권) ▲‘리영희 저작집’(전12권) ▲‘송건호 전집’(전20권) ▲‘오늘의 사상신서’(전172권)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전22권) ▲‘한국사’(전27권) ▲‘한국학술진흥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전100권) ▲‘한길 그레이트북스’ (7월 초 150권째 발간 예정) ▲‘한길역사강좌·한길역사기행’ ▲ ‘함석헌 전집’(전20권) 및 ‘함석헌 저작집’(전30권) ▲‘해방전후사의 인식’(왼쪽·전6권) ▲‘혼불’(전10권)
  • 가출한 고양이가 2300km 밖에서 2달만에…어찌된일?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집나간 고양이가 두 달 후 무려 2300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AP통신 등 현지 언론은 위스콘신주 셰보이건에 살았던 가출 고양이가 두 달 후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정확히 2388km에 달하는 여정에 올랐던 화제의 고양이는 러시안 블루종인 나디아. 지난해 3월 쉐리 스토커에서 입양됐던 나디아는 '집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크리스마스 이브에 집을 나갔다. 스토커는 "고양이를 찾기위해 반경 몇 km 안을 다 뒤졌다"면서 "처음에는 집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했으나 몇 주가 지나자 다시는 못만날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주인에게 기적적인 소식을 전해온 곳은 따뜻한 남쪽지역에서였다.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동물보호소에서 나디아를 보호 중에 있다는 연락을 받게된 것으로 체내에 삽입된 마이크로칩 덕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주인과 나디아가 다시 만나는 과정이었다. 거리가 멀리 떨어진 탓에 중간지점인 일리노이주 락포드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것. 지난 24일(현지시간) 스토커는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내린 나디아를 보자마자 믿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스토커는 "정말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뭐라고 감사의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떨궜다. 한편 나디아가 어떻게 그 멀고 먼 거리를 가게 됐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았으나 전문가들은 화물차 등을 타고 이동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집나간 고양이, 두 달 뒤 2300km 밖에서 발견, 어떻게?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집나간 고양이가 두 달 후 무려 2300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AP통신 등 현지 언론은 위스콘신주 셰보이건에 살았던 가출 고양이가 두 달 후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정확히 2388km에 달하는 여정에 올랐던 화제의 고양이는 러시안 블루종인 나디아. 지난해 3월 쉐리 스토커에서 입양됐던 나디아는 '집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크리스마스 이브에 집을 나갔다. 스토커는 "고양이를 찾기위해 반경 몇 km 안을 다 뒤졌다"면서 "처음에는 집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했으나 몇 주가 지나자 다시는 못만날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주인에게 기적적인 소식을 전해온 곳은 따뜻한 남쪽지역에서였다.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동물보호소에서 나디아를 보호 중에 있다는 연락을 받게된 것으로 체내에 삽입된 마이크로칩 덕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주인과 나디아가 다시 만나는 과정이었다. 거리가 멀리 떨어진 탓에 중간지점인 일리노이주 락포드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것. 지난 24일(현지시간) 스토커는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내린 나디아를 보자마자 믿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스토커는 "정말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뭐라고 감사의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떨궜다. 한편 나디아가 어떻게 그 멀고 먼 거리를 가게 됐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았으나 전문가들은 화물차 등을 타고 이동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산타할아버지는 어디 계셔요??’ 가정집 안방에 무단침입한 사슴

    ‘산타할아버지는 어디 계셔요??’ 가정집 안방에 무단침입한 사슴

    크리스마스 이브에 우리집 안방에 커다란 사슴이 있다면? 산타할아버지를 잃어(?)버린 사슴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유튜브 상에서 화제입니다. 지난 2011년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에는 가족들이 모여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는 외국의 한 가정집 모습이 보입니다. 영상에는 놀랍게도 불 꺼진 방 안을 서성이는 커다란 뿔이 달린 사슴 한 마리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남성이 불을 켜자 사슴은 뻘쭘한 표정을 지으며 방문 쪽을 응시합니다. 마치 산타할아버지와 썰매를 기다리는 듯이 말입니다. 사슴으로 인해 방안 장식장과 창문 블라인드 파손되어 있네요. 과연 사슴은 어디서 온 걸까요? 지난 2011년 12월 26일 유튜브에 게재된 이 영상은 현재 90만 4900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입니다. 사진·영상= C Keller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어쩌다 내 신세가…’ 쥐덫에 걸린 맹독사 ‘ 호랑이뱀’ ☞ “쉿! 조용히 좀!” 악어 근접 촬영하다 악어밥 될 뻔한 사진작가
  • 한국쌀 중국 가던 날… 군사작전 같았던 150일간의 뒷이야기

    한국쌀 중국 가던 날… 군사작전 같았던 150일간의 뒷이야기

    “실사단 5분 내 도착.”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 오후 2시 13분. 농림축산식품부 대중국 쌀 수출 추진 태스크포스(TF) 팀원들의 스마트폰에서 동시에 ‘카톡’ 신호음이 울렸다. 팀원들은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에 있는 광복영농조합의 쌀 가공공장에 집결해 있었다. 팀원들이 현장에 출동한 것은 중국 쌀 수출의 마지막 관문인 중국 실사단의 가공시설 현지 실사를 앞뒀기 때문이다. 남들은 성탄절을 앞두고 한껏 들떠 있었지만 팀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을 넘어 비장감마저 감돌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살펴봅시다.” 전병순 광복영농조합 대표가 채근하자 15명의 직원은 잽싸게 공장 구석구석을 다시 살폈다. 정확히 5분 뒤 중국 실사단이 도착했다. 이들은 TF 팀원과 직원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는 공장 안으로 직행했다. 실사단 3명은 공장 안을 그야말로 ‘이 잡듯이’ 뒤졌다. 조합 직원 최성현씨는 “군대 시절 군사령관 부대 방문 준비, 그 이상이었다”며 “실사 직전 청소하다가 창틀을 닦으면서 직원들과 ‘설마 여기까지 보겠느냐’고 웃으면서 이야기했는데, 실사단 한 명이 진짜 창틀을 손으로 문질러 보더라”고 말했다. 실사단은 공장을 샅샅이 뒤진 뒤 나락이 브랜드 계량 시스템, 진동체 선별기, 자동 현미기 등을 거쳐 백미와 현미로 분류되고 다시 포장돼 운반 로봇을 이용해 옮기는 모든 과정을 확인한 후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 대표와 직원들, TF팀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전 대표는 “중국 실사단이 검사를 마치고 돌아가기 전에 ‘이 시스템도 함께 수출할 생각은 없느냐’고 물어봤다”며 “그전에 세 번이나 국내 점검단과 모의고사를 치렀지만 긴장감을 떨치기가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전국 6개 쌀 가공공장에서 모인 중국 수출용 쌀이 전북 군산항에서 처음으로 선적된 29일은 지난해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우리 쌀의 빠른 수입 허용을 요청한 지 정확히 150일째 되는 날이다. 일본 쌀의 중국 수입 허용에는 5년이 걸렸다. 그것도 수출용 가공공장 지정은 단 한 곳에 그쳤다. 중국과의 농식품 수입 검역 협상이 어렵고 기준도 까다롭다는 뜻이다. 농식품부 식량산업과 노규진 주무관은 “중국은 우리와 달리 쌀 수입을 ‘농산물’이 아니라 ‘식품’의 관점에서 접근했다”며 “통념과 달리 중국 측은 식품에 대해 아주 높은 수준의 검역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9년째 넘지 못하고 있는 만리장성 같은 중국과의 검역 협상과 기준 통과를 위한 4개월은(검역 절차가 완료된 것은 지난 13일이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우리 정부는 2009년부터 중국 측에 쌀 수입을 허용해 줄 것을 줄기차게 요청해 왔다. 검역 당국 간 수차례에 걸친 협의, 양국 농업장관회의 및 고위급 회담 등을 통해 수입 허용을 촉구했지만 중국은 쉽게 문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한·중 정상회담 뒤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해 9월 2일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박 대통령의 쌀 수입 허용 요청에 화답하고 난 뒤 중국 쪽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면서 “국가 최고지도자의 관심 사항이 되고 난 뒤 소극적으로 ‘튕기기’를 반복했던 모습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다음달이었던 지난해 10월 15일 중국이 먼저 ‘쌀 수출 검역 기본 요건(안)’을 제시하며 같은 달 31일에 열릴 관계 장관급 회담에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자고 제안해 왔다. 6년 넘게 애만 태우게 했던 중국의 태도가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 달 만에 바뀐 것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쌀 수출 작전’이 시작됐다. 시 주석은 ‘대국적 풍모’를 보였지만 실제 중국 협상단이 제안한 검역 요건은 까다로웠다. 기존에 수입을 허용한 일본 등 다른 나라의 검역 요건과 비슷한 안을 들고 와서 우리 측이 무조건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우리 측은 수출 전 30일 동안 병해충 발생 예찰(예비검사) 등 수출 경작자나 쌀 가공공장에서 이행이 어려운 요건을 완화하기 위해 마라톤협상으로 중국을 끌고 들어갔다. 10월 21일부터 2박 3일 동안 베이징에서 열린 실무진 협상은 서로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아 매일 저녁식사를 거른 채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이었다. 당시 협상팀은 “쌀을 수출하겠다면서 저녁밥도 못 먹다니…”, “밥도 못 먹고 협상하는데, 중국이 반드시 우리 쌀로 밥을 짓게 해야겠다”는 등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전의를 불태웠다. 결국 다른 나라보다 완화된 요건을 관철시켰다. 그 결과 정미만 수출할 수 있는 일본과 달리 우리는 현미, 정미, 절미(낟알이 깨져서 토막 난 쌀)까지 중국에 수출하게 됐다. 또 우리는 일본이 매주 실시해야 하는 가공시설 해충 예찰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일본은 ‘훈증제 침투가 가능한 통기성이 있는’이라는 복잡한 조건의 포장재를 써야 하지만 우리는 그저 ‘깨끗한’ 포장재만 쓰면 된다. 이와 함께 일본은 수출 직전 검역을 중국 검역관에게 받았지만 우리는 우리 검역관이 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10월 31일 장관급 회담에서 이런 내용의 MOU를 체결했다. 그런데 이것저것 양보를 거듭했던 중국 측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품목의 수입을 허용할 때는 해당 농산물을 선별, 가공, 포장하는 시설을 지정하고 승인하는 것을 수출국의 검역 당국에 맡기고 수입국은 그 결과를 확인하는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중국 검역 당국은 수입하는 쌀을 가공, 보관하는 시설을 직접 현지 점검한 뒤 최종 승인하겠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농식품부는 MOU 체결 직후 TF팀을 꾸리고 쌀 수출 가공공장 선정, 무역·유통업체에 수출 절차 안내, 상표 붙이기 작업 등 사전 수출 준비에 돌입했다. 전국 각지의 60개가 넘는 쌀 가공공장이 지원했다. 이 가운데 6군데 업체가 선정됐다. TF팀은 올해 1월 수출을 위해 지난해 말까지 6개 공장 전원 지정·승인을 목표로 세운 뒤 서둘러 움직였다. 탈락하는 공장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중국 측에 “상대평가를 하지 말고 양국이 합의한 검역 요건을 이행하는 데 적합한지를 절대평가로 하자”고 수차례 요청해 예봉을 꺾었다. 충북도와 청주시도 공장 진입로나 주변 조경 개선을 지원하는 등 힘을 보탰다. 세 번의 자체 모의고사를 치르면서 실사 전까지 개선 및 보완을 끝냈다. 실제 실사와 비슷한 예행연습도 했다. TF팀은 중국 측에 제공하는 모든 자료를 중국어로 작성하고 브리핑 역시 중국어로 했다. 콧대 높은 중국 측도 이런 세심한 배려에 “감명 깊었다. 최대한 신속히 승인 작업을 진행하겠다”고 응답했다. 실사 과정에서의 돌발 상황에 대비해 TF팀 및 6개 공장의 ‘카톡망’도 구축했다. 결국 중국 검역 실사단은 모든 공장을 돌며 “유즈”(優質·최상)라는 감탄사를 연신 퍼부었고 6개 공장이 모두 지정·승인을 받는 데 성공했다. 29일 군산항에서 열린 합동 수출식에 참가한 전 대표는 “이번에 나가는 쌀은 5t이지만 50t, 500t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며 “농촌이 힘들고 벼농사가 갈수록 어렵다고 한다. 힘들고 멀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꼭 가야 할 길의 첫 발걸음을 뗀 날이 오늘”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선적된 우리 쌀은 중국인들이 주로 먹는 ‘훅 불면 날아가는 쌀’인 안남미나 중국 동북 지방에서 생산되는 쌀 가격의 3~5배에 달하는 고급 제품이다. 값은 비싸지만 중산층 이상을 주요 타깃으로 중국의 백화점과 현지 롯데마트, 알리바바 등 온라인몰, TV 홈쇼핑 등을 통해 팔리게 된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더민주 영입, “귀 기울이는 사람 좀 더 많다면…”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더민주 영입, “귀 기울이는 사람 좀 더 많다면…”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더민주 영입, “귀 기울이는 사람 좀 더 많다면…”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더불어민주당은 25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법률 대리인으로 활동해온 박주민(43) 변호사를 영입했다. 더민주는 이날 오후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8번째 외부인사로 박 변호사를 영입했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차장을 지낸 박주민 변호사는 해군기지 건설 문제로 정부와 대치한 제주 강정마을 주민, 송전탑문제를 놓고 한전측에 맞섰던 밀양송전탑 피해 주민 등을 위한 법률 지원활동을 했고 최근 2년간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법률 대리인으로 활동했다. 법조언론인클럽은 박주민 변호사의 헌신적인 활동을 높이 평가해 지난해 1월 ‘올해의 법조인’으로 선정한 바 있다. 박주민 변호사는 입당인사를 통해 “변호사로 살면서 권력에 대해 많은 비판을 했다”면서 “정치 영역 내에서 이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좀 더 많다면 훨씬 쉽고 빨리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아쉬움은 반복됐다. 그래서 정치 영역 안에서 한 번 해보자고 생각하게 됐다”고 입당 이유를 밝혔다. 아래는 박주민 변호사 입당인사 전문 → 20년 전 쯤으로 기억합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철거민분들과 함께 한 구청 주차장에서 눈을 맞으며 구청장을 만나려 하염없이 기다렸었습니다. 굉장히 귀여운 꼬마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결국 구청장은 볼 수 없었습니다. 참 문턱이 높다고 느꼈었습니다. 저의 스무살 청춘은 그 ‘문턱’을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 곳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있으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높은 문턱들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국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문턱을 넘을 권한도, 방법도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속 문장이 하나의 장식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세월은 흘렀어도 크게 바뀌는 것은 없었습니다. 높은 문턱을 통해 국민을 거부하는 정치는 국민과는 동떨어진 정책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그리고 국민과의 거리가 멀어진 만큼, 국민이 참여하고 감시하기 어려운 만큼 부패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이런 현실에 힘겨워 하고 있습니다. 문턱을 낮추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쉽게 감시할 수 있고, 쉽게 참여할 수 있으며, 쉽게 욕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정치와 국민 사이의 거리가 좀 더 가까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국민에 의해 선출된 자는 국민 앞에 겸손했으면 합니다. 저는 변호사로 살면서 권력에 대해 많은 비판을 했습니다. 힘센 분들과 수도 없이 소송도 했었습니다. 한 사람의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뻔합니다. 정치 영역 내에서 이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좀 더 많다면 훨씬 쉽고 빨리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아쉬움은 반복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치 영역 안에서 한 번 해보자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제 평생 기다려온 순간일까 아니면 평생 오지 않기를 바란 순간일까 아직도 혼란스럽습니다. 매우 두렵고 떨립니다. 제가 정치인으로 어떤 경쟁력이 있을지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있습니다. 제가 해왔던 활동이, 앞으로의 저에게 순풍이 될지 역풍이 될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저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욕심 버리고 열심히 하는 것은 제가 잘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요 며칠 동안 정치가 무엇인지 깊게 고민했습니다. 저의 결론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능한 정치는 국민과 함께 웃을 것이고, 무능한 정치는 국민과 함께 울고만 있겠지요. 최소한 제가 눈물을 나게 하거나, 눈물을 외면하는 나쁜 정치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에, 오늘 이 자리에서 입당의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루가고 또 하루가면 사람들이 조금씩 더 행복해졌으면 합니다. 그것을 위해 조그만 도움이라도 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마지막 황제’ ‘졸업’… 영화로 응답하라 1988

    ‘마지막 황제’ ‘졸업’… 영화로 응답하라 1988

    최근 인기리에 막을 내린 드라마 ‘응답하라 1988’ 8회에서 덕선이와 택이가 첫 극장 데이트를 할 때 본 영화는 바로 ‘마지막 황제’다. 이탈리아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1987년 작품이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9개 부문을 휩쓸었던 이 작품은 국내에선 이듬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개봉했다. 관객 60만명을 동원하며 그해 가을에 개봉한 ‘다이하드’에 이어 외화 흥행 2위를 달렸다. 경기 파주 명필름아트센터는 오는 30~31일과 다음달 설연휴에 1988년, 그 시절을 느낄 수 있는 영화 세 편을 모아 특별 상영전 ‘영화로 응답하라 1988!’을 연다. ‘마지막 황제’를 비롯해 ‘졸업’, ‘시네마 천국’이 준비됐다. 멀티플렉스가 없었던 시절 대한극장에서 단관 개봉했던 ‘마지막 황제’는 당시 오후 2시 전에 당일 입장권이 매진되는 등 ‘돈 내고도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사이먼&가펑클의 주옥같은 음악으로 유명한 ‘졸업’은 1967년작이지만 한 청년이 모녀와 동시에 애정행각을 벌이는 설정 때문에 상당부분 수정이 가해졌다가 1988년에서야 원작 그대로 재개봉했다. 1988년작인 ‘시네마 천국’은 국내에선 1990년 정식 개봉했다. 극장 영사기사인 알프레도와 꼬마 토토의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과 엔니오 모리코네의 서정적인 음악으로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1988년엔 어떤 영화가 있었나…명필름아트센터 특별 상영전

    1988년엔 어떤 영화가 있었나…명필름아트센터 특별 상영전

     최근 인기리에 막을 내린 드라마 ‘응답하라 1988’ 8회에서 덕선이와 택이가 첫 극장 데이트를 할 때 본 영화는 바로 ‘마지막 황제’(사진)다. 이탈리아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1987년 작품이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9개 부문을 휩쓸었던 이 작품은 국내에선 이듬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개봉했다. 관객 60만명을 동원하며 그해 가을에 개봉한 ‘다이하드’에 이어 외화 흥행 2위를 달렸다.  경기도 파주 명필름아트센터는 오는 30~31일과 다음달 설연휴에 1988년, 그 시절을 느낄 수 있는 영화 세 편을 모아 특별 상영전 ‘영화로 응답하라 1988!’을 연다. ‘마지막 황제’를 비롯해 ‘졸업’, ‘시네마 천국’이 준비됐다. 멀티플렉스가 없었던 시절 대한극장에서 단관 개봉했던 ‘마지막 황제’는 당시 오후 2시 전에 당일 입장권이 매진되는 등 ‘돈 내고도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사이먼&가펑클의 주옥같은 음악으로 유명한 ‘졸업’은 1967년작이지만 한 청년이 모녀와 동시에 애정행각을 벌이는 설정 때문에 상당부분 수정이 가해졌다가 1988년에서야 원작 그대로 재개봉했다. 1988년작인 ‘시네마 천국’은 국내에선 1990년 정식 개봉했다. 극장 영사기사인 알프레도와 꼬마 토토의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과 엔니오 모리코네의 서정적인 음악으로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비즈 in 비즈] 직원 휴게실 외면한 신규 면세점

    준비 부족일까요, 인식의 부재 때문일까요.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를 기해 일부 개장한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의 신라아이파크면세점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나네요. 살짝 귀를 대 들어 보니 ‘화장실’, ‘라커’(사물함), ‘휴게실’ 같은 얘기들입니다. 다 큰 어른들이 직장에서 화장실이나 라커 때문에 얼굴을 붉힌 이유를 14일 들어 봤습니다. “월급도 많은데, 쉴 곳이 없으면 커피숍에 가서 당당히 쉬세요.” 개장 닷새 만에 전국서비스산업노조연맹이 ‘산업보건기준 규칙에 의무 설치하도록 규정된 직원 휴게실이 설치되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하자 면세점 본사 직원이 한 말입니다. 말은 이래도 문제가 지적되자 면세점 측은 아직 공사 중인 매장 한쪽에 동시에 쓸 수 있는 임시 휴게실을 설치했습니다. 그러나 세계 최대 규모 시내면세점을 꿈꾸는 스케일에 맞지 않게 휴게실 수용 인원이 20~30명에 불과합니다. 휴게실 자리를 못 잡은 직원들은 20분 동안 점심을 먹고 남은 40분 동안 결국 주변 커피숍을 이용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직원들은 “구내식당 밥의 몇 배 가격인 5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된장녀’ 생활을 강요당했다”며 쓴웃음을 짓는다네요. “(차에) 치여 다치든가 해야 문제를 알려나.” 지하 3층에서는 다소 섬뜩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곳은 출퇴근하는 직원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인데, 주차장 출구 방향이라 차들이 쌩쌩 달립니다. 아직 바닥에는 차량 유도 표시만 있고, 이곳에 ‘사람이 있다’는 표시가 없다네요. 2교대 밤근무조가 출근하는 낮 12시 30분쯤 이쪽에 사람이 많다는 점, 운전자 고객들은 기억해 주세요. “화장실 가기 싫어 물도 못 마셔.” 한동안 직원들에게 ‘면세점 내 고객 화장실 사용 금지 조치’가 있었답니다. 직원들의 호소에 면세점 측이 방침을 바꿔 이제 누구나 고객 화장실을 쓸 수 있게 됐지만 면세점 설계 단계에서부터 직원 동선을 고민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3월 정식 개장할 때 직원 휴게공간을 선보이겠다”는 면세점의 약속을 일단 믿어 봅니다. 홍희경 산업부 기자 saloo@seoul.co.kr
  • 고슴도치 얼굴 된 가출견…생명 잃을 뻔

    고슴도치 얼굴 된 가출견…생명 잃을 뻔

    사진만 보면 웃음도 나오지만 사실 견공의 목숨이 오고가는 긴박한 상황을 담은 사연이 소개됐다.최근 미국 CBS뉴스 등 외신은 가출한 개 한마리가 호저의 가시 공격에 목숨을 잃을 뻔했던 소식을 사진과 함께 전했다.사건의 시작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콜로라도 오로라에 위치한 한 동물보호소에서 입양을 기다리던 카넬로(1)는 가출해 이후 행적이 묘연해졌다.카넬로의 '꼬리'가 잡힌 것은 지난 8일(현지시간) 아침 덴버의 한 주택 현관 앞이었다. 집주인은 낯선 개가 집 앞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으나 개의 상태를 보고 더욱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카넬로의 얼굴은 물론 혀, 목, 다리, 몸통 등 온 몸 전체에 수백 여개의 가시가 박혀있었기 때문.이에 집주인은 경찰에 연락했으며 곧 카넬로는 동물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3시간에 걸친 외과수술을 받았다. 전문가에 따르면 카넬로를 공격한 것은 고슴도치와 비슷하게 생긴 호저. 산미치광이로도 불리는 호저는 특히 길고 단단한 가시를 적에게 발사하기도 한다.현지언론은 "카넬로가 빠른 수술 덕에 운좋게 목숨을 구했다"면서 "치료가 완료되면 다시 보호소로 옮겨진 후 새 주인을 기다리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호저 가시 공격에 고슴도치된 가출견의 사연

    사진만 보면 웃음도 나오지만 사실 견공의 목숨이 오고가는 긴박한 상황을 담은 사연이 소개됐다. 최근 미국 CBS뉴스 등 외신은 가출한 개 한마리가 호저의 가시 공격에 목숨을 잃을 뻔했던 소식을 사진과 함께 전했다. 사건의 시작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콜로라도 오로라에 위치한 한 동물보호소에서 입양을 기다리던 카넬로(1)는 가출해 이후 행적이 묘연해졌다. 카넬로의 '꼬리'가 잡힌 것은 지난 8일(현지시간) 아침 덴버의 한 주택 현관 앞이었다. 집주인은 낯선 개가 집 앞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으나 개의 상태를 보고 더욱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카넬로의 얼굴은 물론 혀, 목, 다리, 몸통 등 온 몸 전체에 수백 여개의 가시가 박혀있었기 때문. 이에 집주인은 경찰에 연락했으며 곧 카넬로는 동물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3시간에 걸친 외과수술을 받았다. 전문가에 따르면 카넬로를 공격한 것은 고슴도치와 비슷하게 생긴 호저. 산미치광이로도 불리는 호저는 특히 길고 단단한 가시를 적에게 발사하기도 한다. 현지언론은 "카넬로가 빠른 수술 덕에 운좋게 목숨을 구했다"면서 "치료가 완료되면 다시 보호소로 옮겨진 후 새 주인을 기다리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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