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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 「12개공 주권국연방」 예상/신연방조약 체결이후의 구도 전망

    ◎「제한적 주권」속 경제 상호협력 모색/국경분쟁땐 전면내전 불가피할듯 소련이 새로운 탄생을 위한 진통을 겪고 있다.쿠데타 실패이후 각공화국들의 독립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은 소연방의 와해를 저지하려 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27일 연방최고회의 연설에서 『소연방의 와해는 소련전체의 파국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그는 『우리는 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너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새연방은 『단일 경제및 군대로 결속되는 하나의 주권국연방(A Union of Sovereign States)이 돼야한다』고 말했다.그는 이를 위해 각공화국의 신연방조약 체결을 촉구했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도 공화국독립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왔다.그는 러시아공화국은 인접공화국들에 대해 국경선 문제를 제기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다. 옐친은 또 러시아공화국은 카자흐공화국 북부지역및 우크라이나공화국의 도네츠크와 크리미아반도에 집단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러시아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다른 공화국에 있는 러시아인들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옐친의 이같은 발언은 이미 독립을 승인한 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 등 발트해 3개 공화국을 제외한 다른 공화국의 완전한 독립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옐친은 발트해 3개 공화국에도 러시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지만 소련과 독일의 비밀협약에 의해 강제로 합병된 이들의 독립은 허용하되 다른 공화국들은 소련방에 잔류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옐친의 구도는 아직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없다.일부 전문가들은 옐친은 러시아공화국을 중심으로 한 느슨한 연방체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한다.또 러시아공화국을 맹주로 한 「국가연합」을 구상하고 있다는 견해도 적지않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새로운 소련은 주권국가연방이어야 된다고 말했다.나자르바예프 카자흐공화국대통령은 각 공화국이 동등한 주권을 갖는 국가연합을 주장하고 있다. 소련의 장래 국가형태에 대해서는 이같이 지도자에 따라 의견이 다르며 개념도 모호한 면이 없지않다.국제법상으로 국가연합은 중앙정부가 아닌 각 구성공화국이 주권을 갖는 것이며 연방은 주권이 구성국가의 결집체인 연방에 있다.또 국가연합은 국제법인 조약에 의해 결성되지만 연방은 국내법인 연방헌법에 의해 구성된다.때문에 소련의 국가형태는 신연방조약이 체결된 후에나 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5개공화국중 11개공화국이 독립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신연방조약이 제대로 체결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우크라이나와 카자흐 등 일부 공화국들은 특히 쿠데타이후 러시아공화국의 「독주」에 대해 대러시아주의의 부활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나자르바예프 카자흐공화국대통령은 연방정부고위직에 너무 많은 옐친 측근들이 임명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그는 특히 옐친의 국경선 재검토발언은 공화국간의 심각한 국경분쟁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강조했다. 옐친이 러시아공화국을 중심으로 한 연방체제를 추진하고 다른 공화국들의 독립움직임이 강화될 경우 소련의민족분규는 내전으로 비화될 위험성이 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이같이 대립과 갈등이 많지만 경제적 협력관계는 각 공화국이 서로 필요로 하고 있다.소련의 중앙계획경제는 각 공화국의 경제관계를 상호 보완·의존관계 체제로 만들어 놓았다.전문가들은 공화국의 독립움직임으로 경제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련경제는 연방체제보다 먼저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고르바초프대통령과 러시아·카자흐·키르기스등 3개 공화국이 경제협정을 체결하기로 합의한 것도 경제의 붕괴를 막기위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혁명」의 와중에 있는 소련이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탄생할지는 확실치 않다.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소련의 새지도는 발트해3국을 제외한 12개 공화국으로 다시 그려질 것으로 전망한다. 소련은 외형적인 국가형태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소련은 본질적으로 바뀌고 있다.보수화의 쿠데타를 저지시킨 소련시민의식의 변화는 소련이 현대화된 유럽사회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건강 양호… 쿠데타에 맞서라”

    ◎고르비,연금속 “저항 촉구” 비디오 제작/들킬까봐 사위가 4벌 녹화… 크렘린 전달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흑해연안 크리미아반도 하계별장에서 연금중 쿠데타 세력을 비난하고 국민들에게 이들의 말에 현혹되지 말도록 촉구하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테이프가 25일 소련과 미국에서 각각 공개됐다. 고르바초프의 사위 아나톨리가 쿠데타 발생일인 지난 19일 밤 감시원들 몰래 자신의 가정용 비디오 카메라를 이용,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이 테이프는 이날 러시아공화국 TV와 미 NBC방송에 의해 방영됐다. 이 테이프는 고르바초프가 『국민들에 대한 추잡한 기만사건이 발생했으며 이 기만은 반헌법적 쿠데타의 토대가 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자신이 기용한 각료들의 배신행위에 치를 떠는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와이셔츠와 크림색 가디건 차림을 한 고르바초프는 이 테이프에서 『야나예프 부통령은 내가 건강이 나빠 대통령직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가 소련 대통령 직무를 대행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나는 아주 건강한 상태』라고 반박하면서『야나예프가 대통령의 직무를 인수키로 한 결정과 그 이후의 모든 다른 결정은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고르바초프와 사위 아나톨리는 이 메시지를 녹화하기 위해 별장안의 모든 전기불을 끈뒤 쿠데타 가담자들과 감시자들에게 가족들이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고 안심시킨후 별장내의 한 폐쇄된 방에서 성명발표 모습을 촬영했다. 고르바초프는 또 혹시 이 테이프가 탈취당할 것에 대비,같은 장면을 4번이나 반복 촬영한뒤 테이프를 가위로 4조각으로 절단해 개인비서·보좌관·주치의 등에 각각 한조각씩 보관토록 맡기는 한편 본인도 한 조각을 간직했다. 그는 쿠데타를 중단시키기 위해 테이프의 외부반출을 시도했으며 실제로 이 테이프는 모스크바까지 전해졌으나 이때는 이미 쿠데카가 실패로 돌아간 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 미 국방 정보국이 분석한 「3일정변」

    ◎“쿠데타 D데이는 원래 20일이었다”/고르비가 눈치채자 하루 앞당겨 단행/군부 이견 극심… 옐친 체포·거점장악 지연/야조프등 일부는 작전스케줄 몰라 소련강경파들의 쿠데타는 사전에 치밀한 준비없이 다급하게 진행된데다 정보가 미리 새나가 예정시간을 하루 앞당겨 진행케 됨에 따라 주동자들간에 손발이 맞지 않아 실패했다고 미국방정보국(DIA)은 분석하고 있다. 미외교정책위원회의 피터 슈바이저연구위원은 22일 뉴욕타임스에의 기고문에서 소련 쿠데타의 실패원인을 두명의 DIA 고위소식통을 인용,이같이 밝혔다. DIA의 분석에 따르면 이 쿠데타는 적어도 초기단계에서는 성공이 틀림없었다는 것이다.소련 내무부와 KGB·군부등 쿠데타 주동세력들은 원래 하루 늦은 20일로 거사일을 계획했으며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시간계획을 변경하도록 강요당하지 않았다면 그 결과는 상당히 다르게 나타났으리라는 것이다. 슈바이저는 이들의 거사과정에서 있었던 의문점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왜 군인들이 19일 고르바초프 구금후 4시간이 지나도록까지모스크바로 향하지 않았는가.왜 쿠데타세력에 심각한 위협이된 옐친을 체포하지 않았는가.왜 모스크바 주요지역에 쿠데타세력에 충성하는 부대 대신에 옐친에게 동정심을 가진 지휘관들의 부대가 동원됐는가.왜 쿠데타지도부가 그렇게 빠르게 와해됐는가. DIA의 분석은 고르바초프가 아마도 크리미아에 있는 동안 쿠데타를 경고받았으며 그 사태를 막기위해 원래 역사적인 신연방조약을 체결키로한 20일까지는 크렘린으로 돌아갈 계획이 없던 그가 19일 갑자기 모스크바로 가려고 했기 때문에 부득이 거사날이 하루 당겨지게 됐다는 것이다. 쿠데타 공모자들은 이때문에 서둘러 거사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옐친 추종자들에 의해 지휘되는 것으로 알려진 모스크바 인근 주둔부대들을 러시아공화국 건물을 경비케하는등 주요작전에 투입시키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것이다. 이사실은 또 고르바초프의 구금과 모스크바에서의 첫군사작전 사이에 왜 4시간의 갭이 있었는가에 대한 설명도 될것이다.내무부와 KGB에 소속된 충성스러운 정예부대들이 출동하는데는그로부터도 10시간이 더 걸렸다. 주동자들의 결속은 쿠데타가 계획보다 빨리 시작되면서 와해되기 시작했다. 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을 비롯한 다른 군지휘관들은 아마 이미 작전이 개시된 후까지도 앞당겨진 시간계획을 알지 못했던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야조프 국방장관은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미 쿠데타가 시작된것을 알고는 몹시 화를 냈는데 이는 그가 국가비상사태위의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축출을 발표한 20일의 기자회견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과 이어서 그가 건강상의 이유로 비상위 위원직을 사퇴했다는 발표에 대한 설명이 될것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거사계획을 미리 귀띔해준 사람이 바로 주동 핵심인 야조프장관이라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고르바초프대통령이 모스크바로 돌아가려고 시도하기 불과 몇시간 전에 크리미아에서 두사람이 만났다는 것이다. 또 주동자들의 군사작전이 제멋대로 진행됐다는 사실도 지적되고 있다.군대들은 고르바초프 구금 이후 7시간이 지나도록까지 러시아공화국의사당 주변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여 옐친이 자유롭게 지지자들을 규합하고 용기를 불어넣을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더욱이 옐친의 행동을 억제하기 위해 파견된 군부대 가운데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지휘되는 부대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쿠데타 주동자들이 얼마나 치밀하지 못했는가를 알수 있다.막상 옐친을 구금할수 있는 군대들은 10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했고 그들이 도착했을때는 이미 의사당빌딩이 수천명의 옐친 지지시민들에 둘러싸여 손을 쓸수가 없었다. 얼마전부터 쿠데타가 임박했다는 경고가 과거 고르바초프의 오른팔이었던 전외무장관 셰바르드나제와 전보좌관 야코블레프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KGB와 내무부·군부의 합동훈련이 실시되고 있다는 명백한 근거를 토대로한 것이었다.그러나 그 부대중 이번 쿠데타에 참여한 부대는 거의 없었으며 그들이 참여치 못한 것은 분명 계획된 것이 아니고 주동자들의 혼선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소련의 쿠데타는 사전에 잘 계획된 거사가 아니고 성급하게 급조된 것이었으며 진행과정에서 주동자들의 결속이 와해,실패하게 됐다는 것이다.
  • 연금에서 복귀까지 61시간

    ◎크리미아별장 겹겹 포위… 바다엔 함정 배치 고르바초프는 크리미아에 강제로 연금됐던 나흘동안 쿠데타 세력으로부터 직접적인 압력은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고르바초프는 보수파들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뒤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타기전 외신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쿠데타군으로부터 직접적인 압력은 받지 않았으나 초긴장상태가 계속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한가지 점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쿠데타 세력과 어떠한 거래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는 별장으로 침투하려 하는 어떤 세력에 대해서도 총을 쏘도록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그는 『월요일 새벽4시 바다에는 군함이 가득했으며 별장 주위에는 병사들이 여러겹으로 에워싸고 있었다.그러나 경호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충성심을 보였고 외부의 적에 대해 경계태세를 취했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22일(현지시간) 가질 예정인 기자회견을 통해 소련국민들과 국제사회에 그동안에 일어난 일에 대해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약속했다. 모스크바로 돌아오는비행기안에는 체포된 KGB의장인 크류치코프가 동승했으며 고르바초프의 가족들인 부인 라이사여사,딸 이리나,손녀 크세니아가 함께 타고 있었다.
  • 고르비,지도부 개편/옐친 연정제의… 오늘 요직인선

    ◎새국방·KGB의장·내무 임명/“공산당도 개혁세력으로 교체”/고르비 회견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모스크바로 돌아와 집무를 시작한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은 22일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과 함께 공석이 된 지도부의 요직인선에 착수,1차로 국방장관에 미하일 모이세예프참모총장을 임명했다.또 국가보안위원회(KGB)의장에 레오니드 셰바르신을,내무장관엔 바실리 투르신을 발령했다.이에앞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국방차관에 보리스 파안코프대장을 임명했는데 타스통신은 쿠데타 주동자의 체포로 자리가 빈 일부 핵심요직의 임명이 「임시적」인 것이라고 전했다. 고르바초프는 이날 모스크바로 귀환한 뒤 처음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공산당안의 반동세력을 몰아내고 개혁지지세력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정변을 계기로 급부상한 옐친러시아공대통령은 보수파 제거에 본격 착수함으로써 자신의 세력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옐친대통령은 그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23일 만나 정부구성문제를 비롯한 「대단히중요한」사안들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그는 3인의 요직인사와 관련,『앞으로 러시아공화국이 연방정부구성에 보다 많이 대표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그 이유는 어려운 시기에 민주주의를 수호한 것이 러시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옐친은 또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연금돼있었던 크리미아휴양지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온 직후 그에게 자신의 지지세력들과 연정을 구성할 것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모스크바 라디오방송이 보도했다. 이에앞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모스크바공항에서 크렘린관저로 돌아온 직후 발표한 첫 성명에서 『나를 축출하려던 쿠데타가 실패한 것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의 승리』라고 강조하고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소련은 큰 재난을 겪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시 미국대통령은 그동안 주저해왔던 대소직접경제원조 제공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했고 유럽공동체(EC)와 일본등도 소련에 대한 지원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 “비상사태 서명”거부하자 고르비연금/소 정변 「3일드라마」의 전말

    ◎KGB 30명 들이닥쳐 대통령내외 별장억류/크렘린측 전화불통되자 이상 감지/옐친,“대안은 군중동원”대책 주효 워싱턴 포스트지는 21일자에서 사흘동안의 소련쿠데타 실패의 전말을 3페이지에 걸쳐 상세히 보도했다.「소련에서 두려움이 사라졌을때」라는 제목으로 데이비드 렘니크기자가 쓴 이 글을 통해 쿠데타의 발생·전개·실패과정을 요약,소개한다. 쿠데타가 개시된 19일 하오 늦게 기관총으로 무장한 30여명의 KGB요원들이 고르바초프대통령과 그의 부인 라이사여사를 흑해연안 크리미아반도의 포로스별장에 억류하고 있었다.그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고 전화통화도 불가능했다.군인들은 이중으로 별장을 포위하고 있었으며 바다쪽에는 15척의 경비정이 포진하고 있었다. ▷쿠데타의 징후◁ 쿠데타의 원인은 고르바초프의 잦은 정책변화와 책략등 지나친 자신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면서 그동안 여러가지 방법으로 강경파들이 궁정반란을 도모했었다고 전직 KGB간부 올레그 칼루긴이 말했다. 첫시도는 1988년 전직 정치국원이었던 이고르 리가초프에 의한 것으로 그는 언론에 신스탈린주의 강령을 발표하므로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의 종식을 꾀했다. 또 옐친은 이번의 쿠데타가 금년들어서만 세번째 시도라고 주장했다.첫번째는 지난 1월 KGB와 군부의 리투아니아 민선정부 전복음모였고 두번째는 같은 무렵 두드러진 강경파의 하나인 빅토르 알크스니스대령이 고르바초프가 「의지」를 잃었다며 군부는 소련지도부의 지원과 관계없이 더이상의 진전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힌 것을 들 수 있다. 세번째는 6개월후 고르바초프가 옐친과의 협력관계에 돌입했을때 그의 반대자들은 「헌법상 쿠데타」를 시도,고르바초프와 협의없이 발렌틴 파블로프총리가 연방최고회의로 가서 크류치코프 KGB의장,야조프 국방장관,푸고 내무장관등 강경그룹에 별도의 권한부여를 요청,입법화를 추진했다. ▷쿠데타의 발생◁ 20일 고르바초프가 체결하려 했던 신연방조약은 ▲연방의 붕괴 ▲절대권한의 몰락 ▲개인적 지위의 손실등을 구실로 크렘린의 보수파들에게는 큰불만을 야기시켰다. 쿠데타 이틀전인 17일 하오4시 이후부터 기오르기 샤크나자로프등 고르바초프의 보좌관들은 갑자기 대통령과의 전화연락이 되지 않는 것을 알았다.그러나 크리미아와 모스크바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러시아 의회와 CIA의 보고에 따르면 야조프국방장관을 포함한 8인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지도부 수명이 일요일인 18일 크리미아의 별장으로 가서 대통령에게 신연방조약체결 무효화를 위한 소련전역에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포고령에 사인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즉시 대통령을 연금상태로 두고 쿠데타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쿠데타의 전개◁ 무력시위는 19일 새벽 모스크바와 발트해공화국들의 주요도시에 탱크와 장갑차들이 진입하는 것으로 시작됐다.북부러시아의 볼로그다 같은 소도시는 지방KGB가 라디오방송국을 점령했다. 그러나 이날 새벽 옐친과 그 보좌관들은 고르바초프가 권력에서 제거됐다는 사실을 즉각 간파했으며 쿠데타세력에 대한 유일한 대응은 대중을 동원한 시위밖에 없다고 생각,옐친이 강경책을 썼다.그는 연방의회청사내에 월 룸(전투지휘소)을 차려놓았으며 그곳에는 청년정치인,급진파 학자,언론인,심지어는 군장교와 KGB요원들까지도 모여 저항세력의 싱크탱크를 구성했고 옐친은 밖으로 나가 군중들을 이끌었다. 정치적조치로는 이날 아침 외무부에서 야나예프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쿠데타사실을 밝히고 포고령을 통해 자신들의 행동거취를 밝혔다. ▷쿠데타의 실패◁ 쿠데타가 실패한것은 지난 6년동안 고르바초프에 의해 소련국민들에게 심어진 신사고와 제도적 개혁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 또한 강경파 지도자들도 각자의 생각이나 목표가 달랐다.실패한 원인은 첫째로 옐친이나 리투아니아지도자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 같은 지도자들을 검거하지 않았고 단지 대중적인 지지에만 크게 기대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둘째는 외국특파원이나 국내신문·방송등 언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셋째는 러시아공화국의 KGB책임자인 블라디미르 포데리아킨이 옐친의 편에 가담했다는 사실이다.넷째 강경파지도자나 군인들에게 스탈린시대와는 달리 대량학살의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련민중에게 두려움이 소멸돼 있다는 사실이었다.옐친이 두려움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마구 진주해오는 군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광부들은 파업을,어린아이들까지도 탱크에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소 쿠데타 실패/고르비 대통령직 복귀

    ◎비상위 8인 체포,곧 재판회부/군 철수… 통금등 포고령 무효화/모스크바 이기동특파원/옐친 급부상… 오늘 긴급간부회의 소집 유혈사태까지 빚으며 내란위기로 치닫던 소련의 반개혁 쿠데타가 실패로 끝났다.이에따라 크리미아휴양지에서 연금상태에 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하오 모스크바로 돌아왔으며 연방최고회의는 그의 대통령직을 복권시켰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쿠데타 주도세력인 8인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20일 해산됐고 8인위원들도 대부분 체포되거나 도피한 것으로 전해졌다.이들은 모두 재판에 회부될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와 발트3국을 비롯한 비상사태선포지역에 배치됐던 모든 연방군 병력도 이날 철수를 시작했으며 모스크바를 비롯한 소련 전역은 축제분위기를 이뤘다. 연방간부회의는 22일 긴급회의를 열고 향후 정치일정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쿠데타의 실패에 따라 반쿠데타 선봉에 섰던 옐친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강화됐다. 【모스크바 AP 연합 특약】 고르바초프는 21일 모스크바로귀경길에 올랐다고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보좌관이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연금상태에 있던 크리미아반도의 휴양지로부터 루키야노프 연방최고회의 의장등과 함께 모스크바로 떠났다. 【모스크바 AP 연합】 소련 연방최고회의 지도자들은 21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축출기도 쿠데타를 비난했으며 쿠데타 지도자들에 의해 내려진 모든 포고령을무효화했다고 연방최고회의의 유리 카리아트킨 대의원이 말했다. 그는 연방최고회의가 모스크바의 야간통행금지령과 독립적인 언론매체의 보도금지령 등 쿠데타 주도세력들이 내렸던 모든 포고령을 무효화했다고 덧붙였다. 【모스크바 타스 AFP 연합】 소련 국방부는 모스크바를 비롯,비상사태가 선포된지역에 배치된 모든 연방군 병력에 대해 철수를 명령했다고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21일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국방부가 비상사태 선포 지역으로부터 모든 부대와 분견대 병력의철수를 이행토록 하는 결정을 채택했다고 전했다. ◎TV 정규방송/언론검열 해제 【모스크바 AP 연합】 쿠데타 세력들이 모스크바를 떠남에 따라 쿠데타발생이후 방송이 중단됐던 소련의 TV와 라디오가 21일 방송을 재개했으며 관영 타스통신은 독립적인 출판물에 대해 내려졌던 출판금지령이 해제되고 있다고 전했다.
  • 소 쿠데타 61시간만에 왜 실패했나

    ◎“공산회귀는 불용”… 국민이 등돌렸다/명분없는 거사에 군수뇌부 적전분열/경원동결등 서방의 강경대응도 큰 몫 전세계에 충격을 던진 소련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이유로는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강렬한 저항 ▲저항선봉장으로 나선 옐친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 ▲군장악의 실패등을 들수 있으며 그외에 간접적인 원인으로는 소련에 대한 서방세계의 강력한 압력도 들수 있다.그러나 한마디로 말한다면 소련국민들의 호응을 전혀 받지 못한 것이 쿠데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그것은 또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국민들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모하게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뜻이기도 하다. 3일간의 짧은 기간동안이긴 하지만 탱크로 무고한 시민을 깔아뭉개는 무자비한 무력탄압 앞에서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시위금지령과 통금령을 무시하고 20일 하룻동안에만 80만에 가까운 시민들이 반쿠데타 시위를 벌이는 한편 육탄으로 탱크를 저지한 소련국민들의 용기는 진정 놀라운 것이었다.과거 수차례에걸친 소련에서의 정변때마다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소련국민들이 이처럼 용기있게 변한 것은 바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개방정책이 소련국민들의 의식수준을 크게 향상시킨 결과라고 할수 있다.따라서 이번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것은 결국 쿠데타 주역들이 고르바초프의 신병은 체포할수 있었지만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이 국민들의 가슴속에 불어넣은 자유정신마저 가둬둘수는 없었던데 따른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지난 3일간의 쿠데타 진행과정을 지켜보면 이번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아무 계획도 없이 『일단 일부터 일으키고 보자』는 형태로 상황이 벌어졌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이들은 그동안 누려오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지난 20일 체결될 예정이었던 신연방조약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저지해야겠다는 초조감에서 쿠데타 성패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군장악과 국민동향,지도부내의 결속등을 사전에 치밀하게 점검하지 못한 상태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처럼 사전준비가 미비된 상태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과거처럼 무관심으로 나타나지 않고 적극적인 저항으로 나타나자 비상위는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쿠데타의 절대적 동조세력으로 생각했던 공산당이 중앙위원회 성명을 통해 쿠데타를 비난하고 나선 것은 비상위에 결정적인 정신적 타격이 된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타격은 비상위내부의 적전분열로 나타났다. 쿠데타 발생 이틀이 안돼 비상위의 8인 멤버중 3명이 『건강상의 이유로』사임했다는 것이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도부내의 분열과 함께 군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 것도 쿠데타 실패의 중요한 원인이다.비상위는 당초 군부내에 냉전종식에 따른 군위상 축소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판단,일단 쿠데타가 일어나면 군 대다수가 이에 동조할 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물론 군부가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자 평소 「국민의 군」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던 소련군은 『우리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돌릴수는 없다』는 쪽으로 급선회함으로써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됐다. 이번 쿠데타에서 서방이 보인 대응도 쿠데타실패를 간접적으로 도운 한 원인이 됐다고 할수 있다.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이 전해지자 서방측은 한결같이 고르바초프의 복귀를 요구하며 서방의 경제지원을 갈구하는 소련에의 원조를 동결시켰다.서방세계는 또 반쿠데타 저항세력의 선봉에 선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보냄으로써 옐친으로 하여금 국민저항을 극대화할수 있도록 했다. 결국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조속한 개혁의 완결이란 점을 무시하고 오히려 개혁을 지연내지는 후퇴시키는 쪽으로 기치를 들고 시작됐다는 점에서 소련에서의 쿠데타는 처음부터 실패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고 국민들의 진정한 바람 앞에선 무력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보여준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할수 있다. ◎“3일천하” 쿠데타 일지/비상위 구성→불복선언→서방 경원동결→유혈충동→비상위 분열→병력 철수→고르비 귀환 소련의 강경보수파가 21일 소련역사상 처음 「월요정변」으로 기록될군사쿠데타를 야기한지 3일만에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해체됨으로써 이들의 꿈은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모스크바정변 소식이 전해진것은 19일 상오4시.소련전역에 6개월시한의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언론과 출판물의 검열이 시작됐다.방송국들도 쿠데타군에 접수되어 방송이 통제됐다. 타스통신은 크리미아반도 휴양지에서 휴가중이던 고르바초프가 실각되었다고 전하면서 대통령직을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이 승계하고 8인으로 구성된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전권을 인수했다고 보도했다.그러나 기세 좋게 몰아 붙이던 쿠데타세력들은 옐친의 시민 불복종운동촉구와 총파업선동으로 시작부터 예상치않던 장애물에 직면했다. 보수파들에 의해 야기된 쿠데타가 시련을 맞기 시작한것은 정변이 발생한지 8시간만인 19일 정오.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포고령을 무효라고 선언하며 반쿠데타 봉기를 부추기자 모스크바 시민들은 이미 모스크바시내에 진입했던 중무장 소련군과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며 강력히 저항했다.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휴가를 중단하고 긴급대책회의를 연뒤 기자회견을 갖고 하오5시 소련의 군사쿠데타를 강력히 비난했으며 대소원조를 보류할것임을 시사했다. 이튿날 쿠데타세력들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상오6시 일류신76 수송기 60대를 동원,모스크바로의 병력을 증강했으나 이에 맞서는 소련국민들의 시위는 세를 더해갔다. 그후 러시아공내에 주둔하고 있던 무장병력들은 러시아공 의사당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으며 21일 새벽 급기야 유혈충돌로 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처음의 상황과는 달리 쿠데타세력이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주춤거리고 서방세계의 외압이 가중되는 가운데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이날 최후의 「히든카드」를 내보였다. 군내 강경파인 모이셰프군참모총장이 전면에 나서고 그로모프중장(전아프가니스탄 주둔군사령관)과 바렌니코프 지상군총사령관이 실세로 급부상한 것이 그것이다. 쿠데타 지도자들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듯 「최후의 항전」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으며 무력충돌도 불사하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뒤 10시간만에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듯 강경입장을 누그러뜨리고 고르바초프와의 면담을 시도했다. 루키아노프 소연방 최고회의의장이 크림반도로 고르바초프를 만나기 위해 떠났으며 소련 국방부는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역에 배치됐던 병력들에 대해 철수명령을 내렸다.이어 모든 포고령이 무효화되고 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 귀환길에 오름으로써 보수파들이 주연한 「쿠데타」드라마는 61시간만에 막을 내렸다.
  • 고르비는 어디서 무얼하나

    ◎크리미아서 안전히 휴식/비상위원/모스크바이송,연금상태/옐친측근 크리미아에서 여름휴가중 전격 실각된 고르바초프는 현재 어디에,어떤 상태에 있을까. 고르바초프의 신변과 관련,그가 축출됐음을 처음 알린 타스통신은 『고르바초프가 건강상의 이유로 대통령직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어 야나예프가 대통령직을 인수했다』고 밝혀 그의 신변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었다.그러나 그뒤로 전해진 보도나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그의 건강엔 이상이 없으며 그는 집권세력에 의해 모스크바로 이송,계속 연금상태에 놓여있는 것 같다. 그의 신변에 대해 이번에 쿠데타를 주도한 8인 비상위원의 한사람인 야나예프대통령대행은 『크리미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프바초프는 수년동안 너무 지쳤으며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할 뿐 더 이상의 자세한 것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그는 고르바초프의 신변에 큰 우려를 표시한 헬무트 콜 서독총리에 친서를 보내 『고르바초프는 극히 안전한 상태에 있으며 어떠한 위협도 받고 있지않다』고 안심시키고 있다.그러나 야나예프의 말처럼 고르바초프가 크리미아휴양지에서 어떤 위협도 받지않고 안전한 상태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또 『고르바초프가 건강을 회복한 뒤 대통령직에 복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한 것도 선무용 발언에 지나지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야나예프의 발언과는 달리 레닌그라드의 사프차크시장등은 그가 연금상태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사프차크시장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사임을 강요당했지만 이를 거부했기 때문에 크리미아휴양지 별장에서 연금돼 있다』고 말하고 쿠데타를 계획한 일원으로 보이는 인물이 휴가중인 고르바초프의 별장으로 찾아가 미리 준비한 사임문서에 서명토록 강요했었다고 그 내막을 폭로했다.러시아의 RIA통신은 그가 크리미아의 별장을 떠나 알려지지 않은 장소로 향했다고 보도하고 목격자의 말을 인용,그의 건강이 양호한 상태라고 전했다.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한 측근 소식통도 그가 지난 토요일밤 크림반도로부터 모스크바에 이송돼 강경파들로부터 대통령 권한을 포기한다는 문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받았으나 거부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한편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한 보좌관은 고르바초프가 지난 19일 군용기편으로 모스크바에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그의 소재확인과 관련,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은 고르바초프가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나야 하는지 의료검진을 받아야하며 고르바초프와 새로운 강경파지도부가 제3자와 대면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의 소재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연금돼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 “경협 어떻게 되나”… 경제계 초비상/충격·경악속 대책마련 부산

    ◎“북방 교역에 타격” 정정에 촉각/경제단체/소 지사에 급전… 현지동정 주시/진출업체/“계획경제로 회귀 힘들 것” 낙관도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갑작스런 실각은 그동안 소련진출을 활발히 추진해오던 경제계에도 충격과 심각한 우려를 주었다. 이날 하오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실각이 알려지자 주가는 대폭락을 했고 소련관련 경제단체및 진출기업들은 사태진전을 주시하며 앞으로의 대책마련에 부산했다. ▷경제단체◁ ○…전경련·대한상의·무역협회등 국내 경제단체들은 소련이 보수파의 득세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가 이끌어온 개방 경제정책에는 당분간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 이유는 소련이 예전의 계획경제체제로 급선회할 경우 서방 선진국으로부터 경제원조의 중단은 물론이고 고르바초프 집권이후 상당부분 뿌리내리고 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급속히 배제하기 힘들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경제단체들은 현재 소련 내부의 정국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추이를 좀더 지켜보고 대응해야 한다는 신중한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한상의 민완기이사는 『소련이 자국에 이익이 되는한 자본주의 경제를 구태여 막을 이유가 없다』며 『그러나 사태발생 원인이 정치·군사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에 있다면 우리기업의 소련진출 템포를 늦추거나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소경제협회 조중근사무국장은 『새로 집권한 보수세력의 성명문 논조가 강경한 것으로 봐서 경제정책을 포함,고르바초프의 정책에 강한 제동을 걸지 않을까 우려된다』면서도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소련이 완전히 과거의 계획경제체제로 돌아서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전경련의 소련경제담당 이성환선임조사역도 『강경 보수세력들이 고르바초프 실각후 내부 정리를 위해 일시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유입을 통제할지 모르나 결국은 자본주의 경제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갈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단체들은 우리나라가 소련에 30억달러의 경제원조를 약속했고 이를 계기로 상당수 기업들이 소련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단계에서 소련이 최악의 경우 고르바초프 집권이전 상황으로 회귀한다면 우리의 북방경제정책에 큰 타격이 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이번 고르바초프의 실각이 소련내부에서 오랫동안 진행되던 정치 상황의 일시적 변화가 아닌 군부세력에 의한 쿠데타 상황일 경우 정부차원에서의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북방국가와의 경협창구인 무공(KOTRA)은 이날 하오 임인주통상본부장을 중심으로 대소대책반을 긴급 편성,대책마련에 들어갔다. 무공측은 모스크바주재 무역관과 통화를 시도한 결과 이미 외신을 통해 보도된 내용외에는 더이상의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면서 가능한 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여 수시로 보고토록 조치했다. 지난 89년4월17일 모스크바에 무역관을 설치한 이래 올 10월 서울과 모스크바에 정식으로 양국의 트레이드센터를 건립키로 합의한 무공은 이번의 사태로 트레이드센터 건립일정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 ▷진출기업◁ ○…지난 89년 1월 이후 지금까지 정주영명예회장이 10차례나 소련을 방문하는등 민간업계에서 대소진출에 가장 적극성을 보여온 현대그룹은 갑작스러운 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에 어리둥절. 현대는 외신보도가 나온 이날 하오 모스크바지사와 전화통화를 통해 『방송으로 고르비의 실각소식을 들었으나 일반적인 분위기는 평온하다』는 보고를 받고 현대종합상사·현대자원개발·현대종합목재등의 지사와 현장을 통해 사태파악과 대책마련에 부산.현대 모스크바 지사는 현지에서 고르비가 ▲발레를 구경하던 중 당했다▲크리미아에서 휴가를 마치고 모스크바로 돌아오던 중 당했다▲가택에 연금돼 있다는등 3가지 설이 나돌고 있다고 보고. ○…삼성그룹의 경우 북방교역을 전담하고 있는 삼성물산의 시장개척팀이 모스크바 지사와 수시로 전화접촉을 가지면서 현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삼성은 특히 소련의 경우 고르바초프의 실각에 따른 권력변화가 기업활동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판단아래 보다 정확한 정보획득을 위해 미국·일본등 소련과 관련한 정보수집이 가능한 모든 해외지점에 긴급전문을 보내 소련내 동향을 세밀히 점검토록지시. 이와는 별도로 삼성물산의 시장개척팀은 전기·전자·섬유 등 소련에 현품을 수출하는 영업부서및 수입부서와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상품수출입및 대금결재 현황등을 재점검. 삼성의 올해 대소교역목표량은 모두 2억5천만달러(수출 1억5천만달러,수입 1억달러)이며 상반기중 수출 4천5백만달러,수입 2천1백만달러 등 모두 6천6백만달러 규모의 교역실적을 기록. ○…올 4월20일 국내은행으로선 처음으로 모스크바에 사무소를 개설,3명의 직원을 파견하고 있는 수출입은행도 나름대로 대책마련에 나섰으나 현지 사무소와의 통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내외신 보도에만 의존해 사태를 파악. 수출입은행측은 모스크바 사무소개설이래 동구권지원프로젝트 관리업무,해외투자,조사활동및 차관업무 등을 담당해 왔다.
  • “야간회담 곤란”에 “제주1박” 급선회/고르비 일정연장 안팎

    ◎우리측의 끈질긴 요청 주효/북한의식,막바지통보 관측도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19일 상오 갑자기 제주에서 1박 하기로 방한일정을 변경하겠다고 제의,우리측이 이를 받아들임에 따라 이날 저녁 가질 예정이던 한소정상회담이 20일로 순연됐다. 당초 3∼4시간 동안 체한하겠다는 일정을 바꿔 1박과 함께 17시간 남짓 체류케 돼 시간에 쫓기는 듯한 인상이었던 제주정상회담이 다소 여유를 찾음으로써 제주회담의 모양새는 갖춰진 셈이 됐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체한일정 변경은 이날 상오 3시쯤 도쿄에 머무르고 있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측근이 제주 신라호텔로 소콜로프 주한 소 대사에게 긴급 타전을 보내와 대통령 일행의 1박과 20일 상오 정상회담 개최를 우리측에 제의할 것을 지시함으로써 시작. 소콜로프 대사는 곧바로 이를 호텔내 외무부 의전상황실(CP)로 통보해왔으며 우리측은 장선섭 외무부 의전장이 상오 4시40분쯤 서울의 이병기 대통령의전수석에게 이를 통보하는 등 제주와 서울간 긴밀한 협의를 개시. 청와대측은 이에 따라 정해창 대통령비서실장·김종휘 외교안보·이 의전수석 등이 참석한 조찬회의를 열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일정 연장문제를 검토,상오 8시쯤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며 노 대통령은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는 것. 우리측은 이어 제주의 소련선발대를 통해 노 대통령의 수락의사를 소측에 통보한 뒤 이수정 공보수석이 상오 8시30분쯤 고르바초프 대통령 일정연장을 공식 발표. 이날 상오 제주에 내려온 이 의전수석은 『지난 17일 제주에 내려와 지난해 샌프란시스코·모스크바회담 이후 업무협조관계로 잘 아는 소측 선발대 의전팀장인 타쉐프의 전관에게 손님이 저녁에 와서 새벽에 떠나는 것은 우리 국민 관습에 비추어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체류연장의사를 타진했다』고 소개. 타쉐프 의전관은 이에 대해 『한국의 제주는 소련의 크리미아(휴양지)라고들 하던데 우리도 금방 떠나기가 아쉽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 한소 양국의 의전·경호관계자들은 상오와 하오에 걸쳐 거듭 회의를 갖고 고르바초프 대통령 일정연장에 따른 준비조정문제를 협의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이같이 제주도착 17시간을 앞두고 일정변경을 결심한 것은 우리측이 그 동안 빨리 도착하거나 체류를 연장할 것을 꾸준히 소측에 비공식 요청한 점도 작용하겠지만 소련측 나름대로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관측. 우선 고르바초프 대통령 일행의 바쁜 일본 일정을 들 수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지난 18일 가이후(해부) 일 총리와 3차례의 정상회담(4·5·6차)을 가졌으며 하오 11시30분쯤 공동선언문에 서명,회담을 모두 마친 데 이어 일 기자들과 회견을 19일 사용 2시까지 강행했다. 소련측은 또 당초 예정대로 상오 1시쯤 이한하게 되면 시차 및 비행시간을 감안,상오 5시쯤 모스크바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 경우 이른 시간에 출영나올 소 고위급 인사들 입장도 고려했을 것이라고 외교소식통들은 분석하고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열흘 전 방한의사를 우리측에 통보했을 때부터 제주에서 1박 할 것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다만 되도록 북한에 큰 충격을 주지 않고 방한을좋게 보지 않는 일본을 의식해 19일 마지막 일본일정이 확정된 뒤 이를 우리측에 알렸다는 관측도 없지 않다. 어쨌든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20일 이한,보다 자유롭고 느긋한 회담을 갖게 됨으로써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확실한 것 같다. 한편 한소 양측은 노 대통령이 제주공항까지 직접 나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영접,함께 차를 타고 신라호텔로 오면서 「차내회담」을 갖는 방안도 한때 검토했으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1박을 하기로 함에 따라 노 대통령의 공항영접은 않기로 결정.
  • 한·소 정부간 1차 회담을 마치고/모스크바 다녀온 김종휘보좌관

    ◎“수교 시간문제… 남북대화 지원 밝혀” 『연내 한소수교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치 않고 있습니다』 한소수교및 경협증진문제를 논의키 위한 정부의 방소단중 주로 수교문제를 놓고 소련측과 협상을 벌인 뒤 6일 낮 귀국한 김종휘 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은 한소수교 전망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낙관적 견해를 피력했다. ­한소간 첫 공식회담에 대한 소감은.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을 토대로 한 양국 정부간 첫 공식회담에서 국교수립·경협 등 모든 문제를 놓고 양쪽 모두 허심탄회하고 심도있게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공동발표문을 보면 수교보다는 경협문제등에 협상의 주안점이 있었던 듯한 인상인데. ▲발표문을 보면 경협과 양국 공동관심사를 협의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공동관심사에 외교등 기타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수교문제는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을 통해 이미 근본적인 결심은 선 것이며 다만 시간이 문제일 뿐입니다. ­다음번 소련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하면 수교문제가 매듭될 수 있습니까. ▲그때 끝날지 또 한차례 더 해야할 지 논의해 봐야 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수교문제도 윤곽이 잡혔다고 할 수 있어요 ­윤곽이 잡혔다는 뜻은. ▲가시권에 들어 왔다는 것이지요. 종전에는 양이 질을 변화시킨다면서 시기면에서 다소 불분명한 점이 있었으나 이번에 수교문제도 다른 것(경제협력)과 비슷하게 가기로 상호인식을 일치시켰습니다. 소련이 수교문제로 시간을 끌 것으로는 생각지 않습니다. ­수교문제는 주로 누구와 얘기를 했나요. ▲양국 대표단의 공식회담 자리에서도 얘기가 있었습니다만 도브리닌 대통령외교고문과 많이 얘기를 나눴고 소련 외무부 고위관계자의 예방을 받는 자리에서도 논의했습니다. ­소 외무부는 수교문제에 있어 대통령실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소극적이지 않았습니까. ▲경제문제나 수교문제가 같이 가야한다는 데 외무부도 전적으로 견해를 같이 했습니다. ­도브리닌고문이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외교정책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치는지 궁금하군요.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우리 대표단이 모스크바에 도착하기 전인 지난달 29일 크리미아지방으로 하계휴가를 떠났어요. 그러나 고르비는 휴가를 가기전에 대한 창구임무를 도브리닌에게 부여하고 필요한 지침도 시달한 것 같더군요. ­소련대표단의 방한시기와 그 구성은 어떻게 됩니까. ▲가을쯤이라고 했으나 9월중일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만 소련측은 9월에 인민대표자회의를 열어 각종 경제계획수립과 법률개폐문제 등을 다뤄야 하고 그 주역의 한 사람이 소련대표단 단장인 마슬류코프 제1부총리인데다 회의가 최소 10일이상 길게는 3주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다소 가변성이 있습니다. 또 소련측의 방한에 앞서 다듬어야 할 절차나 실무적 타협을 필요로 하는 사항이 있다고 봐야지요. 그들의 방한시기는 대체로 이른 가을쯤으로 보면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한소간의 각종 경제협력 협정은 수교이전에라도 체결이 가능합니까. ▲우리 입장은 소 정부의 위임을 받은 장관이라면 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투자보장·2중과세방지·항공·어업·과학기술협력·무역 등 6개 협정의 우리측 초안을 놓고 왔으니 그들이 대안을 제시하여 큰 이견이 없으면 체결이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한소 외무장관회담 개최에 관한 논의는 없었나요.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남북한 관계에 있어 소련의 적극적인 역할문제도 거론되었습니까. ▲남북대화를 해야 한다는 소련측의 입장을 북한에 명확히 전달했다고 해요. 계속 남북대화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유엔 단독가입문제도 거론되었나요. ▲논의됐지만 그것은 한소관계와 별개문제로서 여기서 언급할 사항이 아닙니다.〈이목희기자〉 ◎서울에 올 소 마슬류코프부총리/“정상 교환방문 「한국측 의지」에 달려” 소련을 첫 공식방문,두 차례의 회담을 가졌던 한국 정부대표단의 상대역이었던 마슬류코프 소련제1부총리 겸 국가경제계획위원회 위원장은 6일 한국대표단의 귀국을 하루 앞두고 한국 기자들과 인터뷰를 갖고 한소간 첫 공식대좌의 결과에 관한 소련측 입장을 설명했다. ­한소간 첫 공식회담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김종인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단장으로 한정부대표단과는 첫 대면이지만 정부차원의 회담은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에 이어 두번째이다. 이번 회담에 매우 만족하며 특히 회담의 정신·의제 및 결정사항에 대해서도 흡족하게 생각한다. ­한국과의 경제협력 형태는. ▲한소간의 경제협력은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 상호이익이 되게 장기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소련측도 물론 한국에 대해 이익이 될 수 있는 경제협력을 추진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경제협력의 리스트를 한국측에 제시했다. ­한국으로부터 어떤 형태의 경제협력을 원하는가. ▲소련은 페레스트로이카와 경제개혁을 위해 투자와 공업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소련의 공업은 중공업 위주로 발전해와 품질좋은 소비재를 국민에게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군수산업의 민수산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나 자력으로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외국의 도움이 필요하며 소련은 페레스트로이카를 신뢰하는 어떠한 나라의 도움도 거절하지 않을 것이며 먼저 원조를 제공하는 나라를 우대할 것이다. ­한국측은 수교와 경제협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인데. ▲한소관계는 상호인정의 바탕에서 금년들어 큰 진전을 보고 있다. 한소관계는 샌프란시스코의 회담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더욱 발전시키면 외교관계를 설정하는 데도 성과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나도 수교와 경제협력을 별도로 분리하고 싶지 않다. 이번 양국간 대표회담은 한소 양국의 외교관계 설정에 도움을 줄 것이며 이를 가속화시킬 것으로 확신한다.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교환방문 가능성은. ▲(웃으며)김종인단장이 얼마나 일을 해줄 수 있는지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나. 또 소련이 한국측과 얼마나 일을 해낼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고 본다. ­남북한 관계개선을 위한 소련측의 역할은. ▲남북한 관계개선을 위한 소련의 역할은 매우 긍정적이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는 9월 남북한 총리회담에서도 소련의 역할은 긍정적일 것이다. 통일문제는 한국민의 문제이며 미소를 막론하고 어떤 국가도 간섭할 수 없는 문제이다.〈모스크바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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