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빛 품은 ‘아드리아海 보석’
내전의 총성은 멎었고 두브로브니크의 밤은 아름다움으로 빛났다.전쟁의 상흔이 짙게 깔려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옛 유고연방의 크로아티아(현지에서는 크리에이시아로 발음한다)는 두브로브니크라는 ‘아드리아해의 보석’을 필두로,기품있는 중세도시 스플리트와 자다르,미증유의 폭포와 호수를 지닌 플리트비체 등의 빼어난 관광자원을 감추고 있었다.유니세프(UNICEF)는 일찍이 두브로브니크와 플리트비체 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여기에 흐바르 등 빼어난 섬 지방의 풍광이 보태지면 아드리아해를 따라 길게 뻗어난 소국의 아름다움은 더 총총히 빛난다.크로아티아 여행기를 두브로브니크와 플리트비체·스플리트·자다르로 나눠 게재한다.
크로아티아의 해안선은 총 1,772㎞.자그레브에서 자동차로 3시간 거리의 자다르에서 스플리트를 거치면서 리아스식 해안선을 따라 길게펼쳐진 아름다운 여정이 시작된다.두브로브니크에 도착한 것은 보름달이 뜬 한밤중.
유난히 바위가 많아 흰눈이 내린 것같은 산길을 내려가자 두브로브니크를 만났다.두브로브니크 맞은편의 외로운 섬,로크럼 위에 보름달이 떠오르자 이 밤은 평생 기억에 남을 밤이 됐다.대해(大海)답지 않게 잔잔한 바다,그 물결위에 보름달이 아로새겨지고 멀리 붉은 지붕의 성채는 보석처럼 빛나고….날이 밝았다.발칸의 트레이드 마크격인붉은 기와지붕을 인 하얀 집들이 예쁘장하기만 하고 그 사이 고개를내민 교회의 종탑들, 이 둘다를 감싸안고 든든히 서있는 길이 2㎞의성채.
밤새 내려온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해안도로를 따라 길게 목을 쳐든사이프러스와 올리브, 소나무들.그 사이로 두브로브니크가 웅자를 뽐내고 있고 성채 앞 부두에는 하얀 보트들이 짙푸른 바다빛깔과 멋진대조를 이루고 있다.
7세기경부터 달마티아 로마인들에 의해 이 도시는 건설되기 시작했다.슬라브인들이 대거 밀려 들어와 이름도 슬라브 냄새짙게 두브로브니크로 바뀌었다.10세기에 왕국을 건설했으나 12세기 국왕이 암살되자 헝가리국왕에게 나라를 헌사해버렸다.13세기 오스만튀르크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북상하자 헝가리도 이내 지배권을 포기하고 물러났다.그 틈을 베네치아와 합스부르크 제국이 밀고 올라왔다.
이런 정복과 침탈의 역사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96년 내전때는 성채안으로 포탄이 날아들어 어린이 등 270명이 숨지고 도시 곳곳이 파괴됐다.
총성이 멎은 지 5년,전쟁의 공포는 잊혀졌다.하지만 중세의 기억으로 반짝이는 이 도시는 천년의 세월을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지중해나 아드리아해를 건너온 유럽인들이 두브로브니크에 열광하는 이유도이곳만큼 중세 유럽의 진면목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서쪽에 난 필레문을 들어서면 오노프리오 분수가 손님을 맞는다.중심거리 플라카에 선다.반대편 동쪽 문이 훤히 보인다.성 구세주교회,성 프란시스코 수도원,성 블레즈 수도원이 차례로 나타난다.부속 약국·고아원·양로원이 세계최고의 역사를 자랑한다.성 블레즈광장에서면 오란도 기사상을 중심으로 스폰사궁전,시계탑 등이 들어서 있다.부도로 빠지는 길을 끼고 조금 더 오르면 렉터궁.최고 행정관의 집무실이 있던 이 궁은 지금은 바로크시대 회화와 이곳의 역사자료를보관하고있다.
플라카 도로는 수은등 조명을 받아 거울처럼 반짝이며 몽환(夢幻)적인 느낌마저 던진다.달이 첨탑에 걸린다.아름답다.천년의 세월,또 앞으로의 천년이 간단치 않겠지만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떠올리게 한다.성채 위로는 관광객들이 두브로브니크를 만끽할수 있도록 길을 냈다.1시간정도 걸린다.
두브로브니크 맞은 편에는 천혜의 섬 로크럼이 있어 아드리아해를더욱 아름답게 만든다.나폴레옹도 탐냈다는 이 섬에선 한여름 유럽의부호들이 나체파티를 열기도 했단다.
91년 1차내전 때 프랑스 학술원 회장인 장 도르메송(당시 66세)은유럽의 지식인들을 이끌고 두브로브니크 해상에 배를 띄운 채 포격을중단하라고 절규했다. “두브로브니크를 지켜내지 못하면 우리가 무슨 낯으로 유럽의 미래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겠느냐.” 버나드 쇼도이렇게 말했다.“진정한 낙원을 찾는 이가 있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크로아티아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국호.그들 자신은 헤르바츠카라고 부른다.국토는 5만6,538㎢로 남한 땅의 3분의 2에 이른다.480만명의 인구 가운데 크로아티아인이 80%,헝가리계와 체코계가 소수민족을이루고 있다.
30여년동안 복잡다단한 유고연방을 무리없이 통치해 ‘부드러운 독재자’란 명성을 얻은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80년 사망한 이후 연방은 급속한 와해의 길에 들어섰다.크로아티아는 91년 옛 유고연방 가운데 가장 먼저 독립을 선포해 내전을 촉발,연방 와해를 가져왔다고볼 수 있다.
화폐단위는 쿠나(Kuna).미화 1달러가 8.9쿠나이며 시장물가는 우리와 비슷한 수준.음식점에선 맥주 한병에 10∼12쿠나를 받는다.우리나라보다 8시간 늦다.
■어떻게 가나 직항편이 없어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 간 다음 자그레브를 거쳐 두브로브니크까지 이동해야 한다.비행기가 싫다면 자그레브에서 플리트비체를 거쳐 자다르에 이른 다음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는 렌터카 여행도 권할만하다.그러나 길이 험해 주의해야 한다.아직국내에서 크로아티아 여행을 주관하는 여행사는 없고 콘돌코리아(02-735-3335)가 지중해와 아드리아해의 풍광을 연계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크로아티아 성지 및 문화유산 답사여행 상품을 개발 중이다.두브로브니크에 본부를 둔 현지 에이전트 아틀라스(385-20-442-222)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두보로브니크 임병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