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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의 통일 한국이 주도를”/방한 소 장성 주장

    【서울 AP 연합】 한국을 방문중인 소련의 한 장성은 11일 분단돼 있는 한반도는 북한이 요구하는 조건대로 통일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라브렌티 이바노비치 김준장(55)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반도가 북한의 주장대로 통일된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이같이 말했다. 재소 한인 3세인 그는 또 정치·경제력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이 통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자신이 크렘린 보안관계책임자 서열 제3위에 있다고 밝힌 그는 전례없는 개인우상화를 요구하고 있는 김일성 북한주석에 대해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국가로 전락시킨 장본인이라고 비난하면서 『그가 성취한 것은 민주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개혁정책이 성공한다면 한반도의 통일이 용이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소련이 가능한 한 빨리 한국과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 고르바초프 당권투쟁서 승리/소 서기장직 재선 안팎

    ◎당정분리 진일보… 권력중심 정부로/“정치국원 직선” 보수파 제안 부결시켜/「민주집중제 유지」 개혁파서 양보할듯 개막초 보수ㆍ개혁세력간의 노선 갈등으로 험로를 예고하던 28차 소련 공산당 대회는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직에 재선출됨으로써 일단 그를 중심으로한 개혁지도부의 승리로 막을 내릴 전망이다. 서기장 선출 하루 전인 9일 당대회에서 현 지도부가 제출한 당지도부 개편안이 통과되면서 고르바초프의 서기장 재선출은 사실상 예상이 되었었다. 이 개편안은 당서기장 직을 존속시키기로 하는 한편 12명 정원인 기존의 정치국을 최고 23명선으로 확대 개편하는 것을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동안 크렘린 권력의 핵이었던 당정치국은 당서기장,신설되는 부서기장 및 15개 연방공화국당 제1서기들이 당연직으로 들어가고 그외 당중앙위서 선출하는 무임소 정치국원 약간명이 추가돼 인적구성면에서 과거와 큰변화를 겪게 되었다. 당초 새 당규약안에 포함돼 있던 당의장 신설안은 표결에서 3천6백47대 4백57로 부결되었다. 확대 개편되는 정치국의선출직 구성방법을 싸고 보수파들이 당대회 직선을 주장했으나 87표차로 부결됐다. 이번 당대회 결정사항을 현지도부의 승리로 풀이할 수 있는 근거는 그동안 당의 실질적 권력기반이던 정치국의 지위가 크게 퇴색됐다는 점을 우선 지적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정치국은 서기장을 비롯해 연방 최고회의의장 등 당과 정부의 고위직을 겸직하는 소련내 실질적인 최고권력자들이 포진된 최고 의사결정 기구였다. 새정치국의 과반수 이상을 공화국 당 제1서기로 채우기로 한 것은 정치국의 위상을 당대표기구로 분명히 한정시킨다는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는 고르바초프가 꾸준히 추진해온 당과 정부기구간 권한분리작업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대회개막 전까지 고르바초프는 권한이 1인에게 과도하게 집중돼있다는 이유로 급진ㆍ보수양세력으로부터 서기장직의 사임을 종용받았고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당의장과 당 제1서기로 지도부를 2원화 시킨다는 안이었다. 따라서 서기장직을 존속시키기로 한 것은 당권장악면에서 고르바초프가 다시한번 승리한 것으로풀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2백50명으로 구성될 새 당중앙위와 당중앙위서 뽑을 선출직 정치국원들의 성향 그리고,실질적으로 당무를 책임질것으로 보이는 부서기장을 어느 파의 인물이 맡을 것이냐에 따라 이번 지도부 개편의 성격이 보다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평가되는 현지도부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소련의 개혁 템포는 보다 신중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리가초프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는 이번 당대회를 개혁과정에서 약화된 당을 재건할 마지막 기회로 간주하고 일대반격을 감행한다는 방침이었다. 대회개막초 가열됐던 보혁논쟁이 이를 뒷받침 한다. 당지도부개편안이 고르바초프의 뜻대로 큰마찰없이 관철된 것은 보수세력의 패배라는 측면보다 이들 보수세력에게 수긍가능한 반대급부가 보장됐을 것이란 추리를 가능케한다. 다시 말하면 당권을 고르바초프가 계속 장악하는 대신 당의 위신유지,나아가 앞으로 개혁일정을 보다 신중하게 추진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11일 폐막일에앞서 채택될 새당강령에서는 하급당원에 대한 당지도부의 영향력을 보장하는 이른바 「민주집중제」원칙의 고수와 함께 국가보안위(KGB),군 및 내무행정에 대한 당의 통제권 등 기존의 당의 권한이 상당부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정책은 지난 3월 신설된 16인 「대통령자문위」를 중심으로 추진해 나가돼 당도 나름대로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게 됐다는 뜻이다. 그럴 경우 『당과 페레스트로이카를 따로 떼서 생각할 수 없다』는 보수파들의 목소리가 앞으로 개혁 일정 전반에 어떤 식으로든 반영될 것이다. 조직ㆍ인물,소련이 처한 현재 사정 등을 감안할때 보수세력은 어차피 고르바초프와 맞서 싸워 이기기는 힘든 실정이다. 현 지도부 역시 당원 1천9백만의 소련 공산당을 개혁과정에서 계속 뒷전으로 돌려 힘든 이념논쟁을 계속하기 보다는 타협의 길을 모색하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 경우 보다 과감한 개혁을 요구하는 급진세력들의 주장,생활개선을 요구하며 폭발 일보전에 이른 일반시민들의 불만 등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이런 의미에서고르바초프의 이번 승리는 「제한적」인 승리라 할 수 있다.
  • “2년내 개혁성과 없으면 소 지도부 전면 퇴진할 것”/고르바초프

    ◎당대회 4일째… 경제사회분야 실무회의 【모스크바 로이터 UPI 연합】 개막 4일째를 맞고 있는 소련 공산당대회는 5일 7개 실무그룹으로 나누어 경제ㆍ사회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크렘린궁과 당중앙위원회 건물등에서 비공개회의를 벌였다. 관영 타스통신은 이날 회의에서는 사회경제문제,농업문제,민족문제,국제정책문제,대중정치조직문제,당혁신방안문제,이념문제에 관한 실무팀이 구성돼 비공개 토론을 벌였다고 밝혔는데 소련 당대회에서 실무팀이 구성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공산당 지도부는 이들 실무그룹들이 6일 공개회의 재개에 앞서 이날 보혁 양파간의 어떤 합의안 도출에 도움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날 경제문제 실무회의는 니콜라이 리슈코프 총리가 주재했으며 농업문제 실무회의는 보수파의 거두 이고르 리가초프가 주재했다. 보혁세력간의 대립을 무마하기 위해 중도입장을 취하고 있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겸 당서기장은 이에 앞서 4일 향후 2년내에 현재의 경제개혁이 국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지 못한다면 자신을 포함한 당지도부가 전면 사퇴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치열한 보혁 대결… 안개속 크렘린 권력판도

    ◎공산당대회 계기로 본 인맥과 노선/고르비 정점으로 「신사고 개혁」추진 개혁파/옐친 주도… 과감한 군ㆍ경제 개편 촉구 급진파/군ㆍKGB,“개혁이 실업등 초래”비난 보수파 제28차 당대회를 계기로 소련공상당내 보수ㆍ혁신간의 노선대립이 표면화 되고 있다. 소련은 현재 두세력중 어느쪽도 완전히 세력장악을 못한 일종의 「권력공백」상태에 처해있다. 당정치국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되고 신설된 대통령자문위가 모든 정책입안을 담당하고 있지만 지방당은 여전히 각종 행정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새의회(인민대표회의)가 구성돼 실질적인 정책토의를 벌이고 있지만 의회내 보수세력의 존재 또한 만만치 않다. 여기에 덧붙여 「개혁2세대」격으로 급진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보수ㆍ급진 양세력으로부터 협공을 당하는 양상인 소련의 현지도부가 과연 어떻게 이번 당대회를 이끌어갈지 주목된다. 새롭게 드러나고있는 각 세력의 노선ㆍ인맥을 정리해 본다. ▷개혁파◁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중심으로 실질적으로 개혁 개방정책을 입안,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다. 현정치국내에도 다소 포진하고 있지만 지난 3월 신설된 대통령자문위가 이들의 활동기반이다. 「고르바초프의 분신」으로 통하는 알렉산더 야코블레프(66)가 핵심인물. 정치국원이며 대통령자문위원이다.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소장을 거쳐 87년 정치국원이 되었으며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의 이론적 바탕을 마련한 사람이다. 고르바초프에게 대통령직을 맡도록 권고한 장본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브게니 프리마코프(60)는 「신사고」외교정책을 입안한 장본인으로 외교정책에 관한한 고르바초프의 최고위 측근이다. IMEMO소장을 지냈으며 현대통령자문위원으로 최고회의대의원. 지역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국방비 삭감,동유럽에 대한 불간섭을 지론으로 내세운다. 대한 정책에도 실질적으로 고르바초프의 대행역을 하는 인물이다. 셰바르드나제외무장관(62)도 측근중의 측근. 그외 경제개혁추진과 함께 급부상한 경제 전문가들이 대통령자문위에 대거 기용돼 있다.국가계획위(고스플란)의장인 유리 마슬루코프(53)와 경제학자인 스타니슬라프 사탈린은 집권초기부터 고르바초프의 경제개혁을 보좌한 인물. 니콜라이 리슈코프총리와 레오니드 아발킨부총리는 「자문위」내에서 경제개혁팀을 이끌었으나 5월에 발표한 개혁안이 의회승인을 받지 못한 뒤 「희생양」으로 실각설이 나돌고 있다. 현내무장관이며 대통령자문위원인 바딤 바카틴(53)과 대통령개인보좌관인 게오르기 사크나자로프(65)는 정치구조개편을 주장하는 측근. 사크나자로프는 특히 정치국의 개편과 다당제 도입을 적극 주장하는 인물로 외교에서도 프리마코프와 한팀을 이뤄 「신사고」이론을 개발한 장본인이다. ▷급진개혁파◁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이 된 보리스 옐친은 자타가공인하는 이파의 대표인물이다. 의장당선직후 러시아공화국의 주권선포를 했으며 당대회를 앞두고 고르바초프의 서기장직 사임을 주장하기도 했다. 고르바초프에 맞설 유일한 인물로 꼽힌다. 최근 급격히 부상한 인물은 4월 모스크바시장에 선출된 가브릴 포포프(53)와 5월 레닌그라드시장이 된 아나톨리 소브차크(53). 포포프는 급진적인 경제개혁을 주장하는 경제학자로 의회내 야당세력인 「지역간 그룹」의 발기인. 리슈코프의 개혁안이 미흡하다고 신랄히 비난하고 경제부처의 전면 폐지를 주장하며 모스크바시의 독자적인 경제개혁추진을 내세운다. 소브차크시장 역시 「지역간 그룹」대표로 리슈코프개혁을 맹비난하는 급진개혁파이다. 최고회의 대의원으로 경제법학자,현공산당의 지위에 법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인물이다. 당내 야당세력인 「민주강령」파의 세력도 점차 확산일로에 있다. 옐친을 비롯해 블라디미르 리센코,소브차크 레닌그라드시장 등이 지도자들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강령은 다당제,당간부 특권폐지,당소유재산 반납,군ㆍKGB내 당세포조직 해체 등이다. 모스크바시내 곳곳에서 개혁요구 시위를 벌이는 일반시민들도 무시못할 이들의 지지세력이다. ▷보수파◁ 정치국원인 예고르 리가초프(70)를 필두로 이번 당대회서일대반격을 개시하고있다. 당ㆍ군부내 지지세력을 업고 반사회주의ㆍ반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당재건을 다짐하고 있다. 새로러시아공화국공산당 제1서기에 선출돤 이반 폴로즈코프(55)도 자타가 공인하는 정통마르크시스트. 정치국원으로 KGB의장인 블라디미르 크루츠코프(66)도 고르바초프의 측근이면서 이번 당대회연설에서 보수로 회귀한 듯한 발언을 해 주목을 받고 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입가,개혁정책이 빈부격차와 실업ㆍ범죄ㆍ마약사범 증가등 부작용만 가져왔다고 현지도부를 통박한다. 드미트리 야조프(67)국방장관도 군부개혁과 관련,지도부를 비난했다. 군부내 당세포를 폐지하려는것은 부당하다는 공식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통령자문위 소속의 베니야민야린(50),보리스 그로모프(46)도 보수노선을 고집하는 인물. 현역 육군중장으로 키예프군관구사령관인 그로모프는 군은 정치와 분리될수 없다며 개혁정책이 지금같이 계속 혼란을 가져온다면 군이 움직일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펴는 인물이다.
  • 「붉은 광장」선 시민들 반공시위/소 28차 당대회 이모저모

    ◎“2류국 전락위기”고르비,개혁 촉구/급진파,탈당 연기… 보수파도 의장직 도전 자제 ○신형투표기 설치 ○…소련 전국에서 4천6백83명의 대의원이 참가,불참자가 26명에 불과한 가운데 2일 개막된 소련공산당 제28차 당대회가 열리고 있는 크렘린궁 회의장에는 투표기가 설치돼 과거 대회와는 크게 변모된 모습. 즉 과거 수십년간 기계적 거수기역할에 머물러왔던 대의원들이 이제는 남의 눈을 의식치 않고 자신의 양심에 따른 표결을 할 수 있게된 것. 이 신형 투표기를 이용한 첫번째 표결에서는 당이 인민에게 책임을 지는 구조도입문제를 회의일정에 포함시키자는 제안에 대해 3천4백17명의 대의원들이 반대,찬성자 1천여명을 누름으로써 보수파들이 승리. ○“공산당을 법정에” ○…당대회 개막과 때를 같이해 크렘린궁이 위치하고 있는 모스크바 붉은 광장 한편에는 3백여명의 시민이 모여 공산당 반대시위를 전개. 「인민에 대한 범죄혐의로 공산당을 법정에 세우자」는 등의 반공산당 깃발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던 이들 시위대는 대의원들을 태운 검정색 볼가승용차 대열이 광장을 통과할때마다 야유를 보내는 모습. 이에 경찰이 개입해 군중들을 차량 행렬로부터 강제로 격리시켰으나 체포자가 있는지는 즉각 확인되지 않았다. ○당통제권 장악 애써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2일 개막된 소련공산당 제28차 당대회에서 자신에 대한 사임요구를 물리치고 자신의 개혁정책을 강력히 비호하는 등 이번 당대회의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당초 이번 당대회에 불참하고 공산당에서 탈당하기로 계획하고 있던 소련공산당내 급진세력인 민주강령운동측은 이같은 계획을 연기했다고 밝혔으며 2주전까지만해도 고르바초프를 축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던 보수파들도 고르바초프에 대적하기 위한 후보를 내세우지 않을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이날 당대회가 개막된지 9분쯤 뒤에 북서부 시베리아지방의 마가단 출신 광부인 블라디미르 블루도프라는 대의원이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데 실패한 책임을 지고 정치국과 당중앙위원회 멤버 전원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음에도 불구,이날 상오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진전사항은 고르바초프의 연설이 아닌 그의 당대회 통제능력인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는 정치국 및 당중앙위의 퇴진 요구안에 대해 자신의 연설이 끝난뒤 이 문제를 검토하자고 제의했으며 4천6백83명의 대의원들은 이를 지지함으로써 위기를 넘겼다. 공산당내 강경파인 이반K 폴로즈코프 신임 러시아공화국 공산당 제1서기는 대회장밖 로비에서 기자들에게 자신은 고르바초프에 맞서 중앙당서기장직 경선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탄광부들은 당지도부가 생활조건 향상에 실패한데 항의하기 위해 이번 당대회 폐막을 하루 앞둔 오는 11일에 당일 총파업을 벌일 것이라고 위협하는 한편,당지도부의 대거 축출,당자산의 국유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당관료제 격렬 비난 ○…고르바초프는 이날 연설에서 소련정부의 많은 공무원들이 그들의 권력과 특권을 보호하는데만 연연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소련정부 및 공산당의 방대한 관료제도를 비판했다. 그는 이어 『우리 자신들은 사회주의로부터 스탈린주의 색채를 제거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동구권의 강경공산정권의 붕괴를 비호하고 『소련이 급격히 2류 강대국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급진적 개혁은 필수적인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구체적 제안을 거의 내놓지 않았으나 공산당원들에게 ▲고급두뇌 및 인력의 해외유출 중단 ▲외국자본의 유입을 위한 정부의 농기계 생산독점 종식 법안의 통과 ▲소련화폐에 세계시장에서의 태환성을 조속히 부여할 것 ▲느슨한 기초에서라도 국가를 보전할 수 있는 소연방내 15개 공화국들을 연합시키는 새로운 조약에 관한 협상을 벌일 것 등을 당부했다.
  • “진통하는 크렘린”… 당대회의 향방

    ◎소 개혁ㆍ공산당 장래 가름할 중대 전기/혁신ㆍ보수 협공… 고르비 위상 “시험대”로 2일 개막된 소련공산당 제28차 전당대회는 소련공산당의 장래는 물론 현재 추진중인 개혁정책의 앞날을 가름할 일대 전환점이 될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번 당대회를 통해 페레스트로이카(개혁)의 기반을 한층 더 공고히 한다는 의도하에 당초 91년초에 예정된 당대회 일정을 앞당겨 개최키로 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대회를 통해 당중앙위를 비롯,당지도부내 잔존 보수세력을 견제할 장치를 보완,앞으로 경제 사회 제분야에서 개혁정책을 가속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정치국원 예고르 리가초프를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은 이번 당대회를 반격의 마지막 기회로 간주,일전불사의 태세를 보이고 있어 보혁간의 한판 대결이 불가피할 것같다. 6월에 열린 러시아 공산당대회는 이들 보수세력의 존재가 여전히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정통 마르크시스트를 자처하는 이반 폴로츠코프를 당제1서기로 선출하는 외에 대회 전반적인 분위기도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비난 일색이었다 보리스 옐친을 앞세운 급진개혁파들 또한 보다 과감한 개혁을 요구하며 독자 당강령제출의사를 밝히고 있고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분당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표면적으로 고르바초프는 보수ㆍ급진 양세력으로부터 협공을 당하는 양상이다. 두 세력 모두 현재 권력이 1인에게 너무 집중돼 있다며 고르바초프에게 대통령직만 갖고 당서기장직은 내놓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대회의 일차적인 관심은 고르바초프의 거취문제이다. 하지만 프라우다지에 공표된 당규약안대로 당의 권력구조가 당의장,제1서기로 분리되더라도 고르바초프가 실질적 대표자리인 당의장을 맡을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당대회 개막을 며칠 앞두고 열린 당중앙위 전체회의에서 보수파들이 고르바초프가 제출한 강령초안을 순순히 채택한 것은 이들이 조직적인 반발을 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임을 짐작케 한다. 서기장이든 당의장이 되든 당의 최고지도자는 당대회 대의원들이 직접 선출케 돼 있다. 4천6백83명의 대의원들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을 인물로 고르바초프외에는 내세우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페레스트로이카 추진과정에서 당의 권력기반은 크게 약화됐지만 군과 비밀경찰 KGB등은 여전히 당의 통제하에 있다. 지금 당을 포기하면 페레스트로이카는 끝장이라는 생각을 현 지도부는 하고 있다. 급진개혁파들은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민주강령」세력을 중심으로 새 당을 만들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현 지도부와 함께 보수세력 견제에 뜻을 같이할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가 제시한 당강령초안은 레닌이래 유지돼 온 당의 정신에 근본적인 변화를 담고 있다. 민주집중제 폐지,당관료직의 명실상부한 경선제 채택,당정책의 과오시인 등은 기본적으로 급진 개혁파들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동안 실질적인 최고 정책결정기구였던 당정치국을 폐지하고 대신 간부회로 개편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당의 권력기반을 거의 무너뜨리는 조치이다. 따라서 개혁세력들이 별도의 당강령 제시등 독자행동을 하더라도 이번 대회서 분당등의 과격행동을 취할 것 같지는 않다. 페레스트로이카에 따른 지위격하로 위상의 변화를 겪었지만 당원 1천9백만명에 달하는 공산당은 여전히 소련내 최대 정치세력이다. 보수세력들은 이번 대회를 계기로 그동안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려 하고 있다. 이들의 시도가 당권장악까지 발전하지 못하고 고르바초프의 의도대로 대회가 끝나더라도 혁신세력들과의 갈등은 이번 대회를 통해 한층 더 깊어질 것 같다.
  • 소,오늘 당대회 개막/급진 개혁파,독자 강령안 제출

    【모스크바 AP 연합】 소련 공산당의 향후 위상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을 판가름할 역사적인 제28차 소련 공산당대회가 2일 상오(현지시간) 크렘린궁 대회장에서 개막된다. 이번 당대회에서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추진해온 소련의 개혁과 권력구조 개편문제 등을 놓고 당내 급진개혁파와 전통보수파간의 첨예한 대결이 있을 것으로 예상돼 이번 대회에서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위상은 물론 소련 공산당의 미래와 관련된 중대한 결정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개막 첫날 4천7백명의 대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포괄적인 당개혁방안과 권력구조개편문제 등을 담은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나 대회개막을 앞두고 급진개혁파 단체인 「민주강령」이 지난번 당중앙위에서 채택된 새 당강령과는 별도로 독자적인 당강령 개정안을 제출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섬으로써 이번 대회는 개막벽두부터 상당한 파란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관련,민주강령측의 블라디미르 리센코 대의원은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된 이래 고르바초프의 필수적 전술무기가 돼온 협상의 가능성은 사실상 소진됐다』면서 『고르바초프는 이번 대회에서 그의 최종적인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 등 일부 급진개혁파들은 러시아공화국 공산당 창당을 계기로 세력이 급부상한 당내 강경 보수파들의 대회장악을 우려,고르바초프와의 연합을 통한 개혁추진을 주장하고 있어 이에 반발하는 보수파들의 탈당이 가시화될 경우,소련공산당의 분당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 문화진흥은 “발전의 추동력”/김문환 서울대교수ㆍ미학(세평)

    ◎「계획수립」에 총의 모의는 정성을 필자는 지금 핀란드로부터 온 흥미로운 문서를 읽고 있다. 「문화발전을 위한 세계의 10년 1988∼1997 핀란드의 국가적 행동계획」이라는 문서이다. 그 취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현대사회에서는 문화적 전망이 종종 경제적 정향과 경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유엔은 1988∼1997년을 우리 사회의 발전에서 문화적 차원을 강화하기 위해 문화발전을 위한 10년으로 선언했다. 이 10년은 전세계적으로 지켜질 것이고 그 목표는 문화적 협력의 증진이다. 핀란드에서는 그 10년이 문교부에 의해 설립된 위원회에 의해 준비되었다. 즉각적인 조치들은 물론 우리들의 사고방식에서의 변화들을 요구하는 그러한 문화적 정치적 문제영역들이 10년을 위한 핀란드의 행동계획속에서 초점을 이룰 것이다. 이 주요영역들은 예컨대 건전한 환경의 보존,소수문화의 지원,학교의 문화중심으로의 전환 등이다. 발전협력에서 이 문화적 국면들을 고려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핀란드예술가들의 지위 또한 국가적 행동계획의 열쇠영역중의 하나이다. 행동계획은 문화부문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뿐 아니라 개개 시민들의 활용을 위해 의도된 것이다. ○핀란드의 계획을 보고 이 계획이 밝힌대로 인류는 현재 문화에 바쳐진 10년을 살고 있다. 1982년 멕시코시티에서 개화된 문화정책회의에서 그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낼 때부터 이미 이 계획은 모든 발전에서 문화가 갖는 의의를 강조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발전을 위한 노력들은 문화적 차원을 또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문화가 발전계획들에서 모습을 나타내긴 했지만,그것은 오로지 분리된 정책영역으로서였다. 10년계획의 주요목표인 새로운 발전이념은 문화적 전망이 모든 계획과 정책결정에 침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통합된 사회계획을 뜻하는 동시에 그 목적은 특히 경제계획과 정책결정에 문화적 전망을 옮겨 다루려는 것이다. 주지하는 대로 유네스코는 이 10년계획의 주요목표들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 바 있다. 발전의 문화적 차원에 대한 인정,문화적 정체성의 긍정과 확충,문화생활에의 확충된 참여,여러 예술에서의 창조와 창조성의 격려,그리고 국제적 협력의 증진. ○2년간의 토론거치며 핀란드는 행정부가 1982년 의회에 문화정책보고서를 제출한 이후 1986년에는 이미 행동계획의 초안을 마련하여 이를 많은 숫자의 조직ㆍ협회 그리고 기관에 보내어 논평을 구하였다. 그뿐 아니라 스칸디나비아 국가간의 협력체계도 구축하였다. 이와같은 준비를 바탕으로 1987년 봄에 이 계획에 관계된 대규모 세미나를 조직한 후,1988년 11월에 2년을 임기로 한 국가위원회를 설립했다. 예술가협회ㆍ예술행정 그리고 다양한 공공기구들을 대표하는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20회에 걸친 회합을 갖고 관계된 주요과제들을 다루어왔다. 그 주요과제중 첫째는 무엇보다도 국가적인 우선순위의 영역들을 규정하는 일이었다. 물론 앞으로도 다양한 시민조직과 기관이 다양한 우선순위를 제시하고 자신들의 입장으로부터 이를 보완할 수 있겠지만,현재로서는 앞에 인용한 다음의 열쇠영역들을 「10년」을 위해 규정한다. 문화중심으로서의 학교,발전협력에서의 문화적 차원의 강화,건전한 환경의 보존,문화적 사회에서의 예술가의 위치,소수문화의 위치와 다문화적 사회의 강화가 곧 그것이다. 만일 여기까지 함께 읽어준 독자들이 있다하더라도,더이상 이런 식으로 계속한다면 곧 다른 기사로 눈을 돌릴 것이 거의 틀림없다. 우리도 근자에 문화발전 10개년계획을 발표했는데 왜 딴나라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느냐는 질책과 함께 이런 경우에 타산지석이라는 상투어를 사용할지 모르겠으나 필자의 소행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문화부장관의 발표가 있은 후 언론의 반응은 대체로 다음과 같아 보인다. ①문화에 무슨 계획이 필요한가? ②그것은 자칫 문화를 획일화하지 않을 것인가?,실상 계획의 수립발표가 관주도적이지 않은가? ③자금조달계획이 서 있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황당하지 않은가? 등등. 첫번째에 대해서는 전세계적으로 문화의 역할을 발전의 추동력으로 강조하고 있음을 감안하라고 응수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사회적 차원들 그리고 모든 정책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정책결정에 있어서 문화적 관점과문화적 구성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요청이 더이상 묵살되어서는 안된다는 구체적인 표현이 바로 국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러한 계획들의 기초가 된다. 따라서 세번째에 대한 답변도 별로 어렵지 않다. 그것은 곧 경제적ㆍ기술공학적 그리고 양적인 것을 내세우는 주장들에 맞서서 문화유산,쾌적한 환경,삶의 질 그리고 시민의 문화적 복지와 같은 가치들을 존중할 용의를 우리 모두가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 하는 반문으로 연결된다. 그러기에 두번째가 가장 어려운 질문에 해당된다. 이는 곧 우리의 경우에도 문화발전을 위한 정책들이 과연 핀란드처럼 공개적으로,그리고 거기에 관여된 개체들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책임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계획되고 수행되고 평가되어 왔던가 하는 질문과도 연결된다. 이번 계획의 수립에 많은 사람의 의견이 참작되었다고 하는 보도자료가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계획인 만큼 실천단계에서는 우선순위에 대해 좋은 의미에서의 문화관계인사들이나 단체뿐 아니라 다른 정책부문과도 연계된 검토작업이 부단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라야 문화향상과 아울러 이 계획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재정확보 방법의 일환으로 구상된 TV문화채널 확보라는 아이디어가 제1TV는 공보처,제2TV는 문화부,제3TV는 문교부,그밖의 민간TV는 기업의 지배아래 둠으로써 종국적으로는 문화퇴보를 결과하게 될 「음모」로 오해되지 않을 것이다. ○국제적 협력 증진도 6월29일자 서울신문의 해외화제는 참으로 참신한 소식을 싣고 있다. 소련 문화부가 문화예술부문에 대한 정부의 푸대접에 항의하기 위해 28일 전예술인과 협력해 소련 전역 모든 연주회장과 극장에서 각종 공연도중 공연을 일제히 5분간 동시에 중단하는 침묵시위를 벌일 예정이라고 니콜라이 쿠벤코 소련 문화부장관이 26일 선언했다는 것이다. 아직도 극장이나 박물관ㆍ전시회장이 없는 도시들이 있으며 문화관련 클럽이 없는 마을들도 있는 등 문화예술부문에서 「비극적인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고 소련의 문화현실을 개탄하면서 문화예술사업부문에 대한 크렘린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항의집회도 동시에 개최할 계획이라는 쿠벤코장관의 예고가 그대로 실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문화내용이 아니라 문화환경개선을 위한 이러한 발상이 먹혀들 수 있었다면 그는 내일 당장 장관직에서 물러나더라도 한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문화발전 10개년계획도 이 정도의 결속에 의해 지지ㆍ실천되어야 하지 않을까? 주무장관은 이 안이 국민 모두가 자신을 위한,자신의,자신에 의한,그리고 자신과 함께 만들어진 공유재산으로 여길 수 있도록 계속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이의 실현을 위한 참다운 힘이 생겨날 것이다.
  • 왜곡된 환율구조… 시장경제완 먼 거리(차동세의 경제기행 소련:상)

    ◎초라한 주택… 매점엔 상품 동나 텅비어/생활정도로 본 1인소득은 2천불선 최근 20일 동안 소련 동독 체코 헝가리등 동구권국가들을 돌아 볼 기회를 가졌다. 한창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는 이들 사회주의국가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고,어떤 애로에 봉착해 있으며,어떤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번 방문기간중에 많은 곳을 돌아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우선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인상부터 얘기한다면 대부분이 정부기관의 간부들이거나 학자들이라 그런지 대단히 예의바르고 친절하게,그리고 진심으로 환영하며 우리일행을 맞아주었다. 사람들의 따뜻한 환대와 친절 덕분에 여러가지 제도와 관행의 차이에서 나오는 불편한 점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보람있는 여행이 될 수 있었다. 제도가 사람의 근본을 바꾸어 놓지는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소 안심 되기도 하였다. 솔직히 말해 소련에 대해서는 평소 별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김일성을 도와 6ㆍ25때 우리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고,근래에 와서도 KAL기를 폭파하는등 우리와는 명백한 적대관계에 있어 왔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그들의 「페레스트로이카」와 우리의 「북방정책」이 맞아 떨어져 관계가 급속히 개선되고 있기는 하지만 마음속의 응어리가 다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소련행 비행기에 올라 앉아 있을 때는 세상 참 많이 변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국과 대등한 군사대국으로서 막강한 힘을 행사해 온 소련에 대해서는 궁금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호기심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우선 소련에서는 무엇보다도 1917년 레닌이 공산혁명에 성공한 이후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팽창주의원칙을 고수해 혁명을 세계각국에 수출해온 공산주의 종주국으로서 지금은 왜 상상을 초월하는 급격한 체제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나 하는 점과,과연 앞으로 소련은 어떻게 될 것이며 공산주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 가장 궁금한 사항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얻는 데는 결코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않았다. 비행기가 모스크바 공항근처에까지 왔을때 위에서 내려다 본 소련의 모습은 결코 미국ㆍ영국 혹은 일본과 같은 서방선진국의 상공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 아니었다. 길에 다니는 자동차수도 너무나 적을뿐만 아니라 주택들과 농장들도 초라하고 볼품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모스크바 국제공항으로 들어갔을 때 공항청사며 기타 시설들이 형편없이 초라한 것을 보고 소련경제의 심각함을 금세 실감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길 양옆의 많은 집들이 마치 오래전에 버려진 폐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깨끗하게 단장된 건물이라고는 멀리 보이는 크렘린궁과 몇몇 공공건물 뿐이었다. 지은지가 별로 오래된 것 같지 않은 고층 아파트들마저도 베란다등이 부서진채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인간이 사유물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저토록 냉담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고 새삼 실망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모스크바 최고급 호텔이라고 하나 숙박비면에서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점을 빼고는 호텔의 시설이나 방안의 집기등은우리나라 최고급 호텔에 비길바가 못되었다. 특히 타월ㆍ비누ㆍ휴지 등은 질도 아주 낮은 것이었고 공급도 충분하지 못하였다. 모스크바 시내에는 우리나라의 명동이나 혹은 강남같은 다운타운이 없다. 경비가 삼엄한 금빛 크렘린궁 주변의 시내 중심지에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대부분이 관광객이었고 모스크바 시민들이 쇼핑을 위해 북적거리는 그런 곳은 아니었다. 소비재를 파는 상점마다에는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사기위해 긴 줄을 서 있었기 때문에 안에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어쩌다 줄이 없는 상점이 있어 들어가 보았더니 무지하게 큰 닭 몇마리가 있을 뿐 그 안에서도 야채코너에서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리고는 텅빈 매장 뿐이었다. 소련의 1인당 국민소득은 발표하는 기관에 따라 커다란 격차를 보이고 있다. 소련정부에서 5천달러 정도로 발표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의 CIA는 9천달러 정도로 발표하고 있다. 사실 공산국가들의 국민소득을 계산하기란 물속에 있는 물고기를 세는 것 보다 더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가격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환율도 일정하지가 않으며 물량에 관한 통계도 명백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소련의 공항 주택 도로 전화 상점 상품 그리고 길에 다니는 사람들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고 필자가 직감적으로 느낀 소련의 1인당 국민소득은 잘해야 2천달러 정도에 이를 것 같았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각종 군사시설이라든지 군수품 등을 고려하면 국민소득은 그보다 크게 높아질 수 있겠지만 적어도 국민생활의 윤택함을 나타내는 지표로서의 국민소득은 최후진국 수준을 벗어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소련경제가 얼마나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가는 무엇보다도 환율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소련의 공식환율은 1달러에 0ㆍ6루블이다. 그러나 관광객에게 외화를 바꾸어 주는 환율은 1달러에 6루블이다. 그리고 암시장에서의 환율은 1달러에 15∼20루블이다. 그러니 공식환율로 거래를 해야 하는 상품수출입이 제대로 이루어질리가 없으며 시장경제에서와 같은 상품의 가격체계가 형성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소련에서는 길거리에서 거지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동시에 활기차고 유쾌하게 웃는 사람들의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이 소련사람들을 저렇게 침울하고 웃음을 잃은 모습으로 만드는 요인일까 생각할때 정치란 것과 사회제도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볼쇼이극장에서 본 감명깊은 오페라에서,각종 기술연구소들이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기초기술,그리고 모스크바대학의 웅장한 모습에서 소련의 문화적 기술적 저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적인 제도 공산주의의 실험장이 됨으로써 너무나 값비싼 희생을 치렀지만 앞으로 개혁이 왼전히 뿌리내리는 경우 소련은 다시 세계무대의 주역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평가와 과제(「6·29」 3년:상)

    ◎「국민통합 길」 여는 제2도전 바람직/통일열망 수렴·갈등해소가 숙제/“발상의 대전환”… 민주화 기틀 마련 6·29선언의 정신은 이제 국민통합과 민족통일의 차원에서 새롭게 재구현되어야 한다. 29일로 노태우대통령의 6·29선언 3주년을 맞게 되는 시점에서 그 선언내용의 실천정도를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정신을 국민적인 그리고 민족적인 과제에 어떻게 구현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6·29정신은 한마디로 발상과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에서 출발하여 과감한 해법을 도출,문제에 정면 승부를 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6·29선언이후 3년의 평가는 혁명적인 선언으로 민주화의 기틀을 어느 정도 단계에 올려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선언 8개항가운데 대통령직선제 개헌과 평화적 정부이양,공명정대한 선거를 위한 대통령선거법 개정,김대중씨 사면·복권및 시국사범 석방 등 3개항은 이미 완결되었으며 국민의 기본권 신장,언론자유의 창달 등도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 다만 ▲건전한 정당의 활동보장과대화와 타협의 정치풍토 조성 ▲사회 각부문의 자치·자율 최대보장 즉 지방자치제 문제와 각종 법률개폐문제 ▲사회정화조치 등은 부분적으로는 진행중에 있거나 다소 미흡한 상태이다. 6·29선언→정권의 정통성 시비 종식→민주화의 돌파구→치안부재,욕구분출 등 전환기적 상황→5공청산,3당통합→총체적 난국→5·7시국특별담화,특명사정활동 등으로 이어져 온 지난 3년은 전체적으로 보아 선언 8개항의 이행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할 수 있다. 집권중반기에서 통치력발휘에 가속력을 더해가고 있는 노대통령으로서는 과거지향적으로 선언내용의 도식적인 실천독려에 머물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는 과감한 의지로 승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 새로운 도전은 국민통합과 민족통일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6공정부가 출범때부터 내건 민주·번영·통일이라는 3대 목표에 비추어 보면 국민통합과 민족통일을 반드시 새로운 도전이라고 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정치적 민주화와는 달리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 갈등의 해소가 별로 진전되지 않고 있으며 일부계층의 과소비,호화사치풍조의 만연은 국민통합을 새로운 과제로 부각시키고 있다. 또 세계적인 냉전체제의 종식,화해기류의 풍미,한반도주변 강대국의 통일장애요소로서의 기능희박 등 정세변화는 민족통일을 먼 얘기가 아닌 당장 풀어나가야 할 과제로 만들어 놓고 있다. 국민통합에 따른 현실적인 정책수단은 크게 보아 경제정의의 실현,지역균형 발전,복지확충,산업평화 정착 등을 들 수 있다. 이를 더욱 구체화시키면 부동산 투기를 통한 불로소득 근절,토지공개념 확대실시,중산층이하 세금부담 경감 등의 세제개혁,농어촌 개발,근로자·서민주택 확충,의료보장 강화,국민연금제도 추진,근로자의 생산의욕 고취를 위한 각종 유인제도 확대 등이다. 6·29정신을 국민통합 측면에서 다시 구현시키기 위해서는 이와같은 현실적인 정책수단을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구사해야 한다. 그러나 3년전 6·29선언이 국민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엮었듯이 계층간의 위화감이 없어지고 전국민이 일체감을 가지게 되는 것은 가진자·권력자의 도덕성 회복,자기혁신이 행동으로 입증될 때일 것이다. 따라서 국민통합을 위한 6·29정신의 구현은 가진 자가 덜가진 자에게 마음으로부터 혜택을 베풀고 호화 사치를 자제하며 공직자는 자기관리를 엄격히 하는 데서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집권중반기에 들어선 노대통령에게는 이러한 측면에서 국민통합을 위한 일대 캠페인이 필요할 것 같다. 민족통일문제와 관련한 6·29정신의 발현은 이미 북방정책에서 상당한 성과를 나타낸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노대통령이 집요하게 크렘린의 문을 두드려 성사시킨 한소 정상회담은 기존의 외교발상에서 1백80도 전환한 「신사고」의 결과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통일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을 더이상 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7·7선언과 포괄적인 통일의 기본원칙및 그 과정을 담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천명함으로써 적극적인 대응자세를 견지해왔다. 그러나 북한이 아직도 폐쇄노선을 버리지 않고 있는 점을 감안,서독이 동독에 대해 과감한 경제원조를 해주었던 것처럼 우리가 북한을 민족성원의 진정한 동반자로서 도와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만약 노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테이블에 북한의 최고 당국자를 끌어낸다면 통일문제에 대한 6·29정신의 구현은 완성될 것이다. 6·29선언의 정신은 노대통령의 국정집행에 있어 일관되게 관통되어야 한다. 이 정신이 발상의 대전환이면서 동시에 국민의 뜻을 전폭적으로 수용한 것이라고 할 때 지금 국민들이 정부에 대해 무엇을 바라는지를 정확하게 파악,가려운 데를 확실하게 긁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는 공직사회의 기강확립은 가진 자,힘있는 자의 도덕성 회복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이며 국민통합에도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6·29정신이 국민통합과 민족통일문제에 적극적으로 발휘된다면 6·29선언은 또다른 역사의 평가를 받게될 것이다.〈이경형기자〉
  • 고르비­리투아공의장 첫 회동/「탈소선언」유예 돌파구 모색

    【모스크바ㆍ빌나 외신 종합 연합 특약】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란츠베르기스 리투아니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대통령)은 26일 크렘린궁에서 90분동안 회담을 갖고 리투아니아의 독립선언유예문제 등을 논의했다고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이들의 회담은 이날 리투아니아 최고회의가 독립선언 유예문제를 토론하기 수시간전에 이루어졌으며 양자간의 회담은 처음이다. 타스통신은 『고르바초프와 란츠베르기스는 상호관계와 협상가능성 및 독립선언유예에 관한 소련정부의 요구사항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 소 몰다비아공도 주권선언/최고회의/유엔가입 추진 결의

    ◎루마니아인 수만명 월경 축제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소련 몰다비아공화국은 러시아및 우즈베크공화국에 이어 공화국 영토에 대한 주권및 소 연방헌법에 대한 자체법의 우위를 선언했다. 이번 선언은 몰다비아공화국을 궁극적으로 독립국가로 격상시키며 루마니아와의 접경지대에 비무장지대를 설치한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소관영 타스통신이 전함으로써 크렘린에 가하는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풀이된다. 공화국 최고회의는 선언과 함께 몰다비아가 「주권국가」로서 유엔회원국이 돼야 한다는 내용도 승인했다고 공화국 현지언론이 전했다. 【알비타(루마니아)AFP 연합】 수만 여명의 몰다비아계 루마니아인들이 24일 문화단체들이 조직한 「국경개방」이란 행사의 일환으로 루마니아와 소련국경 경비대의 저지를 뿌리치고 소련영내 2㎞ 지점까지 진입해 1시간동안 머물며 이를 환영나온 소련의 몰다비아인들과 형제애를 나눴다. 몰다비아계 루마니아인들은 이날 소련 경비대원들에 의해 강제로 국경밖으로 밀려날 때까지 1시간여동안 소련영내에 머물렀으며 국경이 봉쇄된 뒤에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 축제를 벌였다. 문화단체들은 다음달 1일 루마니아와 소련의 몰다비아인들이 「인간사슬」을 형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 크렘린에 권력투쟁 “먹구름”/고르비 당서기장 사퇴압력의 안팎

    ◎보수파,실세만회 겨냥 선제공격/급진파선 개혁실패 들어 맹비난/「서기장 사임」발언은 당정분리 노린 애드벌룬 일수도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러시아공화국 공산당대의원총회 이틀째인 20일 강경보수파들로부터 서기장직 사임요구를 포함,실정에 대해 집중 공격을 받음으로써 그의 입지가 약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대통령)등 급진개혁파들은 그동안 고르바초프의 개혁(페레스트로이카)정책이 미온적이라며 비판의 소리를 높여왔으나 리가초프 농업담당 정치국원을 중심으로 하는 강경보수파들은 상대적으로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대한 비난을 자제해 왔었다. 그러나 이날 보수파가 고르바초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고르바초프는 이제 급진 개혁ㆍ보수파 양측으로부터 협공을 당하는 입장이 되었다. 리가초프는 20일 『고르바초프가 정치국원들과 협의하지 않고 중요한 경제ㆍ외교정책에 관한 결정을 내렸다』면서 고르바초프의 서기장직 사임을 촉구했다. 그는 또한 『고르바초프 자신과 공산당 그리고 소련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할 때가 왔다』며 고르바초프 공격의 강도를 높이고 동시에 보수파의 결속을 강조했다. 리가초프는 ▲시장경제로의 이행 ▲통독 ▲당의 권위상실 ▲동구의 발전 ▲해외에서의 소련의 힘 약화 ▲발트 3국문제 등에 관한 보수파의 불만을 한꺼번에 털어 놓았다. 소련정치권내 보수파들의 입지는 지난 85년 3월 고르바초프가 정권을 장악한 뒤부터 줄어든게 사실. 특히 보수파의 기수인 리가초프는 오는 7월2일의 당대회를 위한 대의원선거에서 지방으로 선거구를 옮겨 겨우 당선될 정도의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당내 보수파들은 소련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정책이 역전될 가능성이 없는 현실에서 더 이상 한데로 몰리는 것을 막고 실세를 만회하기 위한 방편으로 7월 공산당대회의 전초전인 러시아공화국 대의원총회에 배수진을 치고 선공의 화살을 고르바초프에게 겨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러시아공화국은 1천9백만 소련공산당원 가운데 58%를 차지하고 있는 최대공화국으로 비록 옐친이 지난 5월 최고회의의장으로 당선된 곳이지만 아직은 보수파의 우세지역이다. 때문에 보수파들은 러시아공화국의 대의원총회 분위기를 달궈놓은 다음 그 여세를 당대회까지 몰고가 고르바초프를 당서기장직에서 몰아낸다는 「거세작전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보수파들의 이같은 「희망사항」의 실현 가능성과 그들이 당서기장직을 장악한다 하더라도 그 자리가 대권이 없는 허세이기 때문에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우선 일부의 풀이대로 고르바초프가 20일 당서기장직 사임의사를 밝힌 것은 그동안 그가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곧잘 사용해온 「사임카드」의 일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는 그동안 당정의 분리를 주장,권력의 핵심이 민주화의 일환으로 당에서 정부로 이행되어야 한다고 밝혀왔고 또 실제대통령으로서 절대적 권한을 움켜쥐고 있다. 게다가 현재 당의 힘이 전에 비해 크게 떨어진 상태여서 당서기장직 사임이 고르바초프의 권력유지에 큰 상처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소련관측통의 지배적인 견해다. 현재 소련내 정국의 흐름은 페레스트로이카에도 불구,실생활이 나아진 것이 없다는 국민들의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중도ㆍ보수ㆍ급진파의 「어울리지 않는 악수」를 필요로 하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입지강화를 바라고 있는 서방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발트 3국의 독립운동ㆍ종족분규ㆍ경제문제와 함께 이번에 노정된 권력투쟁으로 고르바초프의 통치권이 어떻든 상처를 입은 것은 사실이다. 정치의 귀재로 통하는 고르바초프가 이 어려운 3파의 대립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 소 군장성,개혁정책 격렬 비난/군은 이데올로기의 항복 수용 못한다

    【모스크바 AP 로이터 연합 특약】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19일 당의 분파주의를 경고하며 단결을 호소한데 이어 같은날 군의 한 고위장성이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을 정면으로 비난하고 나서 소련내의 보수ㆍ혁신세력간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이날 러시아공화국 공산당대회에서 알베르트 마타쇼프장군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이 소련을 무방비상태로 몰아넣었다고 비난하며 군은 결코 「이데올로기의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크렘린 지도자들을 겨냥해 『독일이 재통일되어 나토의 일원이 되려하고 일본이 극동에서 핵심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데도 배웠다는 친구들이 이제 우리를 공격할 자는 없어졌다고 떠들고 있다』고 공격,회담장이 떠나갈 듯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는 이어 군은 레닌주의를 끝까지 받들 것이라고 말하고 이데올로기의 적들이 소련내 사병과 장교,관리들을 이간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소련군의 68%가 러시아공화국에 배치돼 있다며 이들은 결코 이데올로기의 항복을 받아들이지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카쇼프장군은 또 금년들어 소련군이 체코와 헝가리로부터 철수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공화국이 소연방으로부터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겠다는 움직임도 부당하다고 공격,『군은 소연방과 러시아공화국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소,보혁대결 재연 조짐/리가초프,고르비 비난… 투쟁 선언

    ◎소연방 개편안 공개적 반대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소련의 강경파 정치국원인 예고르 리가초프(68)는 크렘린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소연방 개편과 관련된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지도 노선에 공개적으로 도전,그가 국가를 분열상태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이에 맞서 정치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리가초프는 한 농업관리들의 모임에서 행할 아직 공개되지 않은 연설원고에서 『현 국가지도노선은 우리 연방정부의 몰락을 초래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면서 자신은 『이같은 위험한 시점에서 당과 국가를 위해 끝까지 정치투쟁을 벌여 나갈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가 14일 보도했다. 새 공화국 연합체제와 관련,크렘린 지도부에서 나온 최초의 공개도전으로 간주된 이 연설에서 리가초프는 『우리는 매우 위험한 시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즈베스티야는 그가 정치투쟁을 추구하기 위해 인민대회에 구성될 농부연합의장직 제의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 「한국전 기원과 성격」… 「6ㆍ25」 40돌 국제학술회의

    ◎스탈린,49년 3월 김일성 만나 “남침”확정 한국전쟁연구회(회장 김철범)가 주최하고 통일원이 후원한 한국전쟁 40주년기념 국제학술회의가 14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렸다. 「한국전쟁과 한반도의 평화 정착」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는 한국전쟁의 기원과 미소가 한국전쟁에 미친 영향 등이 집중 토의됐다. 이중에서 한국전쟁은 미소의 갈등으로 빚어진 특수한 내전이면서도 국제전의 양상을 띠었다고 주장하는 존 메릴 미국무성연구관의 논문 「한국전쟁의 기원 대답없는 질문」과 소련이 서유럽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북한을 사주 한국전쟁을 도발했다는 윌리엄 스투웨크 미조지아대교수의 논문 「소련과 한국전쟁의 기원」을 소개한다. ◎6ㆍ25의 기원/윌리엄 스투웨크 미 조지아대교수/크렘린,미ㆍ서구 밀착 저지 겨냥/극동에 긴장 조성… 미 경제난 유도 속셈도 한국전쟁은 주모자인 북한과 주요 군사물자 제공자이자 군사고문단 및 병력의 결정적인 공급자였던 소련,그리고 중국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났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정보다. 그러나 하필 이 시기에 소련이 이같은 모험을 추진할 것을 결정했느냐의 의문이 남는다. 당시 소련은 팽팽한 긴장속에 미국의 핵무기와 잠재된 기동력에 눌려 극도로 취약한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 소련은 49년 가을 마샬플랜의 시행,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결성,서독정부의 출범,미의회의 대서유럽군사원조결의 등 일련의 사태로 미루어 볼때 미국의 관심이 서유럽에 집중됐다고 판단,미국과 서유럽 동맹국들의 단결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국내외 문제의 최종결정권자였던 스탈린은 대외정책에 관한한 공개토론을 허용했다. 49년에서 50년에 걸쳐 프라우다지는 몰로토프,스슬로프와 같은 온건관료층의 견해를 주로 반영했고 이즈베스티야지는 말렌코프,베리야와 같은 강경군국주의자들을 지지했다. 강경파들은 미국경제가 점차 퇴조하고 있으므로 소련이 서유럽에 압력을 가중한다면 미국은 곧 해외원조를 포기하고 서유럽에서 물러날 것으로 믿었다. 반면 온건파들은 서유럽에서의 미국의 영향력 강화와 경제적으로 유리한 여건을 강조,소련의 압력이 오히려 서방국가를 결속시켰으므로 긴장상태를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은 온건파의 주장을 받아들여 서유럽에서는 평화정책을 쓰는 대신 극동지역으로 관심을 돌려 팽팽한 긴장상태를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국제긴장상태 조성을 통해 ▲국내에서 권력을 유지하고 ▲소련주변 위성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며 ▲유럽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분산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스탈린은 소련의 정책전환에 따라 미국이 아시아 문제에 휘말리게 되면 미국의 경제적 위기가 촉진되고 상대적으로 중국이 소련에 의존하게 되리라는 계산도 했음직하다. 이에 따라 스탈린은 가장 위험성이 높은 북한의 남침 등 여러조치들을 아시아 지역에서 잇따라 시행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남한으로부터 미국이 멀어져 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같은 모험을 할 수 있었다. 49년 한햇동안 미국은 남한주둔 미군을 모두 철수시켰으며 미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50년 1월12일 연설을 통해 미국의 태평양 방위체계에서 남한을 제외시켰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어 1월 중순에는 미하원에서 남한에 대한 경제원조안이 거부됐다. 스탈린은 이같은 상황이라면 남한이 위기에 처하더라도 미국동맹국들의 집단적인 개입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스탈린과 김일성은 49년 3월 김의 모스크바 방문시 북한의 침공을 논의했을 것이다. 스탈린은 마지막 남아 있던 미군이 철수하게 되니 침공계획을 세우라고 격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은 북한 김일성과 군사원조 합의안에는 서명했지만 상호안전보장 조약의 체결은 피했다. ◎6ㆍ25의 성격/존 메릴 미 국무성연구관/초강국갈등서 비롯된 「특수내전」/이해 엇갈린 미ㆍ소ㆍ중의 대리전 양상도 지녀 김일성이 살아있는 한 북한은 결코 그들이 전쟁을 시작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폐쇄체제의 영웅적인 자화상을 훼손하고 평양 당국으로 하여금 1백50만명에 달하는 한국인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을 일으켰다는 죄를 스스로 인정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에 대한 영웅적인자화상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지속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수년동안 평양에서 열리는 반미투쟁월의 경축행사를 계속 지켜보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는가에 관해 북한사람들이 형식주의에 의존한다는 것은 그들이 전쟁을 시작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자신의 입장을 아주 자신있게 변호하지도 않는다. 평양 당국은 전쟁초기의 며칠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세한 설명을 결코 출판물을 통해서 밝히지 않고 있다. 또 한국전쟁에 관한 학술토의에 참가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인민공화국에서 발간한 한국전쟁사를 유심히 살펴본 비판적인 독자라면 북한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호한 표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평양을 격하하거나 40년전의 엄청난 사건에 대해 그들을 비난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짐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특히 그들이 남한과의 신뢰를 구축하고 통일이라는 공동목표를 공유하려면 이러한 태도는 더욱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알 수 있듯이 남한도 나름대로의 짐을 지고 있다는 얘기다. 바로 이 대목에서 시작한 문제,즉 한국전쟁은 침략인가 아니면 민족해방전쟁인가에 대한 해답은 두가지 모두 해당된다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조전해방전쟁」이라고 부른다. 강제적으로 가로놓여진 경계선이 존재하고 있는 동안 1950년에 국토의 분단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그것을 영구적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드물었을 것이다. 수단과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이승만대통령도 김일성이 남한으로 쳐 들어왔던 것처럼 북진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이 국제전인가 아니면 내전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여기에서도 해답은 양자가 모두 해당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분단은 일본으로 부터의 해방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소련에서 비롯된 것이다. 초강대국의 불간섭과 그에 따른 한국에서의 경쟁적인 양체제의창출은 한국내의 좌익과 우익간 투쟁의 국내적인 측면을 강화했다. 이제 소련이 미묘하게 표명하고 있듯이 한국전쟁은 그 이후 미국과 중국의 개입(현재 우리가 조심스럽게 표명되고 있는 것을 듣고 있듯이 소련의 개입도 있었다)에 따라 국제화의 성격도 띤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은 냉전의 종식과 함께 두개의 한국이 상호 경쟁하는 국내적 성격이 다시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 “소 「공화국연합체」로 전환 용의”

    ◎고르바초프,발트정상과 연석회의서 제의/「탈소문제」해결의 시발점 될지도/소 15개 공화국 대통령,협정체결 추진 【모스크바 AP AFP 로이터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12일 탈소독립노선을 추진중인 발트해 연안 3개 공화국지도자들과 사상 첫 연석회의를 갖고 타협안을 제시하는 한편 소련 국가체제를 「주권을 갖는 공화국들로 구성되는 공화국연합체제」로 전환하자는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고 회의 관계자들이 밝혔다.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 리투아니아 공화국 최고회의의장(대통령)과 아나톨리 즈스 고르부노프스 라트비아대통령은 이날 회담이 탈소독립노선 공화국들로 인해 야기된 위기상황을 해결할 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으며 특히 란츠베르기스 대통령은 크렘린측이 모레쯤 대리투아니아 경제봉쇄를 곧 해제할 것임을 암시했다. 이날 회담 관계자들은 고르바초프가 제시한 타협안을 각 공화국 의회에서 토의에 부치기까지는 내용을 공개하길 거부했으나 독립문제에 관한 협상시작과 동시에 각 공화국들은 독립선언을 일시 유보하는 것과 크렘린측이 대리투아니아 경제봉쇄를 해제하는 내용인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란츠베르기스 대통령은 이날 회의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장차 소련의 국가체제를 주권을 갖는 공화국들로 구성되는 연방체 내지 이보다 결합이 느슨한 공화국 연합체제방식으로 구상을 진전시키고 있으며 리투아니아측은 이에 관한 협상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지난해 가을 이래 소련의 국가체제를 바꿀 것임을 여러차례 밝혀왔으나 이를 공화국들에 제의,구체적 실행에 들어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모스크바 AP AFP 연합】 소련 대통령자문기구인 연방위원회는 소연방을 「진정한 정치,경제적 주권을 가진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합체」로 규정하는 새로운 협정초안을 작성하기 위한 실무팀을 구성했다고 관영 타스통신이 13일 보도했다. 소련내 15개 공화국 대통령으로 구성된 연방위원회는 12일 연방내 각 공화국에 진정한 정치ㆍ경제적 특권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연방에 관한 새로운 협정의 신속한 체결을 촉구했다.
  • 한­중­소 관계를 보는 북경의 시각

    ◎“한­중국 관계정상화가 한­소 수교의 종속변수”/평양 자극 안하는 방법 선택에 고심/경협 앞세워 신중한 대한 접근 모색/“동북아 평화정착땐 중국에도 이익”판단 북경에서 발행되는 인민일보ㆍ북경일보 등 중국관영 언론매체들은 한국(남조선)과 관련한 기사를 다루는데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물론 평양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에 관한 소식도 예고기사로는 전혀 보도하지 않았고 회담이 있은 후에야 외신을 인용,비교적 간단히 보도했다. 다만 공산당원에게만 내부자료로 배포되는 「참고소식」을 통해 한소회담이 언제쯤 있을 것이라고 사전 귀띔을 해주었을 뿐이다. 한중 관계개선 움직임에 관한 사실도 아무리 큰 내용이라 할지라도 거의 침묵을 지킨다. 따라서 한국과 관계되는 일에 대해 공식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좀처럼 없다. 만약 외국기자들이 중국당국에 한중관계에 관해 물을 경우엔 『한국과는 정식외교를 맺고 있지 않다는 것이 우리가 밝힐 수 있는 기본 입장』이라고 틀에박힌 답변을 할 뿐이다. 그러나 북경에서 비공식적으로 만나본 언론계등의 지식층 인사들은 한국과 소련,중국의 관계변화에 매우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들이 가장 먼저 지적하는 소중의 대한관계 공통점은 모두가 평양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크렘린과 북경에는 내면적으로 커다란 시각의 차이가 있음을 강조한다. 고르바초프는 한국 노태우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평양에 개방의 자극과 변화를 주려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크렘린측은 동북아를 포함,아태지역의 데탕트 정착을 위해선 평양쪽의 심기가 불편해지더라도 할 수 없지 않느냐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중국은 지난해 천안문시위를 무력진압한데 대해 북한이 다른 사회주의국가들과는 달리 적극 지지를 해준데다 역사적으로 혈맹관계에 있는 점등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평양정권을 자극하는 일을 삼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연말 김일성의 북경행과 올봄 중국 강택민당총서기의 평양방문 등은 동구 및 소련의 민주개혁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북한이 사회주의 노선을더욱 굳게 지키며 상호유대를 강화키로 다짐했던 행사라는 데는 아무런 이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특히 경제적인 필요성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꾀하지 않을 수 없다는게 북경지식층과 서방외교소식통들의 일치된 견해인 것 같다. 천안문사건 이후 미국등 서방국가들의 경제제재조치가 계속되고 있는데다 동구의 개방이 가속화 됨에 따라 서방측의 자본과 기술이 그쪽으로 옮겨가는 경향을 보이는 상황이어서 중국은 개발경험이 풍부한 한국과 손을 잡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이 11일 여배검(심계서장)을 서울로 보내 북경 아시안게임 개최 이전에 상호무역사무소를 설치키로 공식제의한 사실은 이러한 중국측의 상황인식에 크게 힘 입은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한국측의 북방외교도 큰 성과를 발휘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중국은 나름대로 대외지향의 경제개발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상호협력 할 수 있는 동반자가 요청되는 것이다. 한편 중국 국가주석 양상곤은 11일 일본 사사카와 평화재단 명예회장인 사사카와 료이치(세천량일)와 만난 자리에서 『남조선 노태우대통령의 외교활동으로 북한의 고립화가 심화됐다』며 중국지도층 인사로선 처음으로 한소 정상회담에 대해 공식적인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중국이 한국과 실리적인 협력관계를 추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을 회유하기 위한 제스처를 쓰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중국당국의 입장에서는 한국과의 관계개선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꺼리고 있다. 북경주재 한국상사 직원들에 따르면 중국당국자들은 『상호 이익을 위해 실속있게 교류를 확대해 나가면 되는게 아니냐? 온 동네가 시끄럽게 떠들 필요가 무엇인가?』라고 거듭 강조한다는 것이다. 한중 수교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다소 막연한 단서가 붙는다. 어떤 특정의 타임 테이블에 따르기 보다는 어느날 갑자기 이뤄질 가능성이 많다. 또 한중 관계정상화가 한소 수교의 종속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고르바초프와 등소평은 이미 지난해 정상회담에서 동북아 평화수호를 다짐했고 이런 관점에서 한소간 수교가 이뤄질 때 한중 외교관계 수립과 함께 북한의 개방과 한반도 긴장 상태의 완전해소도 어렵잖게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
  • 발트3국의장과 오늘 회담/고르바초프 「독립문제」돌파구 모색

    【모스크바 AP 연합 특약】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처음으로 독립을 선언한 발트3국의 최고회의의장(대통령)들과 만나기로 동의했다고 리투아니아ㆍ라트비아 의회의 대변인들이 11일 말했다. 이 대변인들은 『고르바초프가 12일 대통령자문 평의회의 모임후에 발트3국 지도자들과 회담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빌나와 리가에서의 전화통화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고르바초프가 발트3국의 지도자들과 공동으로 회담을 하는 것은 처음이며 이것은 발트3국의 독립운동에 대한 교착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크렘린의 새로운 외교적 주도권의 표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발트3국의 최고회의 의장들은 11일 고르바초프와의 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리투아니아에서 미리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소련 정부는 리투아니아공화국이 독립선언을 지원하기 위해 통과시킨 법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리투아니아와 협상하기로 동의했다고 한 고위 리투아니아 관리가 11일 말했다. 이 관리는 리슈코프 소련 총리가 지난 8일 프룬스키에네 리투아니아 총리에게 이같이밝혔다고 말했다. 소련은 독립선언 자체의 동결이 있기전까지 협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동안 주장해 왔다.
  • 소 우즈베크공도 비상선포/대통령/“내전우려” 중앙정부에 개입요청

    ◎2만명 키르기스 월경시도 【모스크바 AFP AP 연합 특약】 소련의 키르기스족과 우즈베크족간의 인종분규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키르기스공화국에 이어 우즈베크공화국도 8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크공화국 대통령은 양종족간의 일련의 유혈충돌이 발생한후 접경지대인 안리잔의 수개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카리모프대통령은 또 키르기스공화국의 오슈지방을 비롯한 일부지역에서의 유혈충돌은 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크렘린당국에 인종분규 종식을 돕기위해 정치국원과 최고회의 대의원으로 구성된 정부조사위원단을 급파해 줄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 4일 사유토지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발생한 키르기스족과 우즈베크족간의 유혈충돌로 지금까지 적어도 78명이 사망하고 3백30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련 내무부대변인은 3천여명의 키르기스 청년들이 이날 키르기스공화국 수도프룬제에 모여 최초 충돌이 발생한 접경지 오슈지방으로 가는 것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1만5천여명의 우즈베크인들도 국경을 넘어 키르기스공화국으로 넘어가려고 시도했다고 말했다. 한편 대부분이 학생들인 5천여명의 키르기스인들은 프룬제에 모여 유혈충돌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집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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