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쿠시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789
  • 아르메니아­아제르 영토분쟁 5년(포연속의 코카서스에 가다:하·끝)

    ◎전화속의 쿠데타… 아제르정정 불안/좌익정권 들어섰어도 경제난 가중/시민들 공산통치시절 질서 그리움도 아제르바이잔군과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군간의 최초의 휴전은 아그람시가 함락된 이튿날인 지난 7월24일 자정을 기해 이루어졌다.3일간으로 예정됐던 이 휴전은 27일을 기해 1주일 더 연장됐다.카라바흐측은 3일 『아제르바이잔군이 적대행위를 하지 않는 한 휴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10여일째 불안한 평화가 이어지고 있다. 카라바흐측은 이번 공세를 통해 일단 아제르바이잔측으로 하여금 자신들을 협상상대로 간주하게 하는 성과를 얻어냈다.앞으로 전개될 평화협상에서 중요한 고지를 선점한 것이다.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휴전을 성사시킨 것만해도 크게 안도하는 양상이다.지금 국내사정으로 보아 아르메니아군이 밀면 밀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아제르바이잔측이 매달리는 것은 국제적인 중재뿐이다. 수도 바쿠시를 비롯한 아제르바이잔의 주요 도시들에서는 자정부터 이튿날 상오 5시까지 통금이 실시되고 있다.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됐고 총동원령이 내려져 17세부터 35세 사이 남자들은 전원 출국이 금지돼 있다.그런데 쿠데타로 집권한 현아제르바이잔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전쟁대책이 아니라 쿠데타 뒤처리같은 인상이다.쫓겨난 엘치베이대통령에 대한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일이 오는 29일로 확정됐다.굳이 대통령직을 내놓지 않겠다고 고집하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대통령직을 뺏겠다는 것이다. 전선이 무너지고 피란민이 60만명에 달하는 나라에서의 국민투표가 무슨 의미를 갖는지 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새 정권 출범과 함께 총리·국회의장을 비롯,국방장관 등 주요부처 장관 대부분이 경질되고 3일에도 쿠데타에 반대한 타이르 케리밀 최고재판소장이 해임됐다. 지난 6월4일 당시 카라바흐지구 사령관이었던 수레트 구세이노프(35)대령은 예하병력 2백여명을 이끌고 전선 반대방향인 바쿠시를 향해 진격해 들어왔다.오래 전부터 반란기미를 보인 그를 무장해제하기 위해 전날밤 정부군이 카라바흐 북서쪽 간자시에 위치한 그의 본거지를 기습,60여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이 싸움에서 이긴 그는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바쿠시쪽으로 4백여㎞를 진격해 들어와 엘치베이 대통령의 사임과 의회해산 등을 요구했다. 반란에 성공했지만 통치기반이 전무한 구세이노프는 지난 82년까지 13년간 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제1서기를 지낸 가이다르 알리예프(70)에게 손을 내밀어 권력을 나눠 가졌다.그는 구소련공산당 정치국원까지 올랐다가 고르바초프대통령때 「부패 정치인」으로 청산됐던 인물이다.알리예프는 6월15일 임시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의장과 대통령대행으로 선출돼 본인으로선 「화려한」 재기를 이루었다.구세이노프는 총리직과 함께 국방·내무·안보 등 주요부서를 장악했다. 엘치베이대통령은 6월18일 밤 새벽 단신으로 바쿠시를 빠져나와 나키체반자치주의 고향마을로 피신해 버렸다.나키체반 자치주는 카라바흐와는 반대로 아르메니아 영토내에 떨어져 있는 아제르바이잔인 자치주이다.최근들어 아르메니아와의 국경쪽은 수시로 아르메니아군의 공격을 받아 풍전등화와 같은 곳이다. 이렇게 해서 92년 3월 민주독립국가 실현을 내걸고 엄청난 지지속에 출범했던 엘치베이 대통령정부 대신 좌익연합정부가 들어서게 됐다.의회는 해산되고 공산주의자와 구의회대의원 각 25명씩으로 국민의회(밀리 마질리스)가 새로 구성됐다.구세이노프는 취임일성으로 『아르메니아군에게 빼앗긴 실지회복과 국가계획경제를 통해 국민생활을 향상시키겠다』고 약속했다.알리예프는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을 외교의 제1목표로 내세웠다. 알리예프의 복귀와 군부 쿠데타의 성공은 이 지역 민주주의의 기반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결과적으로 엘치베이정부는 아르메니아와의 전쟁에서도 패배를 계속했고 경제도 전혀 개선시키지 못했다.현재 7백만 인구중 1백만명,전체 노동인구의 25%에 해당하는 숫자가 실업자이다. 많은 시민들은 전쟁의 공포 못지않게 물건을 찾아다니기에 바쁘다.바쿠시내에서 만난 한 시민은 『민주주의가 무슨 소용인가.질서도 먹을 것도 없는 민주주의보다는 차라리 강한 지도자가 질서를 찾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공산주의 시절에는 질서와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그게 아직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아제르바이잔은 타민족과의 분쟁,거듭되는 정치적 불안,그리고 경제난으로 인한 국민불만 등 소연방해체 뒤 독립한 여러 공화국들이 앓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곳이다.그러나 보다 심각한 것은 아제르바이잔인들 스스로 이 문제들을 풀 능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 해외에 김정일 연구단체 결성/아·아·중남미서… 대민선전 일환

    【내외】 북한은 최근 해외에서 김정일 선전활동의 일환으로 일본과 일부 친북국가들에 「김정일 저작연구소조」「김정일 저작연구회」「김정일 저작학회」등을 잇따라 조직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말 아시아·아프리카 및 중남미 등 일부 친북국가를 중심으로 체제선전 책자와 함께 김정일 찬양도서를 대량 제작,배포한데 이어 올해 초에는 일본내 각 지방에 10여개의 「김정일 저작연구소조」를 결성했다. 또한 최근 들어서는 일본의 도야마(부산),후쿠시마(복도),가나가와(신나천)등 10여개 현에 「김정일 저작연구회」를 결성했으며 지난 13일에는 인도 뉴델리에 「김정일 노작연구회」를 결성한 것으로 북한방송이 21일 보도했다. 북한이 해외에 김정일 연구단체를 결성한 것은 지난 83년 파키스탄에 「김정일 연구소조」를 만든 것이 처음으로 이후 이와 유사한 조직을 연이어 결성하고 있는데 이는 해외에서 김정일을 「탁월한 사상이론가,위대한 정치가」로 부각시키는 한편 이를 주민들에게 선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거물급 대부분 개표초 당선 확정/일 중의원선거 이모저모

    ◎다케시타 무소속 출마해도 1위/미야자와 “정말 어려운 선거” 실토 ○…지난 12일 발생한 강진으로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한 홋카이도 서남부 오쿠시리(오고)섬은 선거일인 이날 새로 9명의 사망자가 발견되고 69명이 실종인 채로 있는등 최악의 상태에서도 전체 유권자의 절반 가까이가 투표에 참여. 이 섬에서는 이날 투표종사원의 제안에 따라 지진희생자에 대한 묵념으로 투표가 시작됐으며 투표순서도 지진피해 구호요원과 자원봉사자들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는등 투표소의 분위기가 이 섬의 침울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 선거종사원들은 지진으로 파괴된 5개의 투표소를 대신해 임시투표소를 긴급설치하는등 투표율제고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투표율은 49%를 조금 웃돌아 이 섬의 지난 90년선거에 비해 17%,이번 총선의 전국투표율보다 11%나 낮게 기록. ○…집권 자민당의 수성과 야당의 약진노력이 맞부딪치고 있는 총선의 열기를 잊은듯 미국의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이 제작한 영화 「주라기 공원」의 상영관들은 이날 관객이 대거몰려들어 최고의 흥행기록을 수립. 상영관들에는 상오7시 조조시간부터 관객이 장사진을 이룸으로써 투표참여율이 저조한 이유에는 정치에 대한 국민의 환멸이 뿌리깊이 박혀있는데다 날씨가 나빴던 탓도 있지만 주라기공원의 인기도 한몫을 차지한듯. ○…이날 개표에서 미야자와 총리등 대부분의 거물급 정치지도자들은 일찌감치 선두로 나서면서 당선이 확정. 미야자와총리는 자신의 지역구인 히로시마(광도)에서,하타 쓰토무(우전자)신생당당수는 나가노(장야)에서 각각 초반부터 선두를 유지,당락을 결정지었다. 또한 재선여부로 주목을 끌었던 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전총리도 정치자금스캔들 의혹으로 자민당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지역구의 폭넓은 지지로 1위로 당선,저력을 발휘했다.그의 1위당선은 8번째. ◎자민 부패불구 현상유지 성공/「신당트리오」 정국변수로 부상(해설) 일본정치가 이번 총선을 통해 구조적 대전환을 맞고 있다.전후 일본정치를 지배해온 자민당이 과반수의석 획득에 실패하고 사회당이 참패한 반면 신당그룹이 대약진했다. 신생당,일본신당,신당 사키가케(선구)등 「신당트리오」가 1백석 이상을 차지하며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등장,자민당과 사회당을 주축으로한 이른바 「55년 체제」와 함께 자민당 다수단독정권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일본정치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고 있는 이번 선거의 최대 특징은 사회당의 참패와 신당의 대약진이다.사회당의 참패는 자민당의 비판표가 과거와 같이 사회당으로 가지않고 신당으로 흘러들어갔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정치개혁을 전면에 내세운 신당들의 약진은 일본인들의 강한 정치불신과 정치개혁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자민당은 제1당이지만 과반수확보에 실패,다수단독정권은 불가능하게 되었다.그러나 연립정권을 구상하고 있는 신생당과 야당등 5개당의 의석수도 자민당보다 적어 이들의 연립정권 가능성은 높지않다.이때문에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일본신당의 움직임에 따라 다음 정권이 결정되게 되겠지만 현재로서는 자민당 재집권의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 불탄집·차 등 널려 전쟁터 방불/“지진… 물·불바다” 북해도현장

    ◎중국 등 인접국까지 피해 미쳐 ○…지진과 함께 수마와 화마가 할퀴고 지나간 일본북부 홋카이도 일대 피해지역에서는 잿더미가 된 가옥의 잔해와 어선 자동차 등 해일에 휩쓸려 어지럽게 널린 각종 파손품들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가운데 인명구조및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교통 통신 수도 등이 두절돼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은 헬기를 동원,환자를 수송하고있고 소방청은 간이 급수차량으로 물을 실어 나르고 있으나 도로붕괴 등으로 충분한 식수를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 ○…저녁을 마치고 가족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다 잠자리에 들기 시작한 「일본안의 큰 섬나라」 홋카이도 일대의 주민들은 12일밤 10시17분쯤 강력한 지진이 지축을 뒤흔들면서 이내 수라장으로 빠져들었고 신간센(신간선)속도보다 2배나 빠른 거대한 해일은 인명과 재산을 닥치는 대로 빼앗아갔다. 약4천6백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관광지 오쿠시리도는 12일밤 내내 격진과 해일,불로 섬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용광로를 만들었으며 불길을 피해 달아나는주민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경찰및 소방관계자들이 투숙객의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는 오쿠시리읍의 무너진 호텔 「양양장」현장 주변은 불에 타다 남은 주택들이 널브러져 있어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모습. ○보상금 신속 지급 ○…한편 일본 생명보험회사들은 일반적으로 천재지변으로 인한 사망자들에게 보상하지 않는 관례를 깨고 이번 지진 사망자들에 대해선 최소한의 서류절차로 신속히 보험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지진”우려도 ○…도쿄시민들은 TV에 방영되는 재해현장을 지켜보면서 「대지진」이 발생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도쿄도내에서 근무하는 한 사무직원은 『생각을 안하려고 애를 써봐도 안된다』면서 『만일 도쿄에서 지진이 발생한다면 엄청난 인명피해가 날것』이라고 걱정했다. ○…일본 홋카이도(북해도) 해저에서 12일밤 발생한 지진과 해일은 일본 북동부 지방에 막대한 인명·재산피해를 초래했으며 그 여파가 중국 러시아등 인접국에까지 미쳐 피해규모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 해일(외언내언)

    「성난 파도같이」란 말이 있다.감당할수 없을만큼 무서운 위력의 경우를 가리킨다.인간의 경험이 만들어낸 표현이다.바다가 화를 내면 그만큼 강하고 무자비하며 무섭기 때문이다.그성난 파도의 가장 화난 모습이 곧 해일이다. 태풍에 의한것이 다카시오(고조)이며 지진에 의한것이 쓰나미(진파)다.쓰나미가 더 무섭다.일본용어가 말하듯 피해가 심한곳이 일본이다.가장 심했던 경우는 18 96년 태평양연안의 산리쿠(산육)해일로 진도 7.8의 인근해저 지진 18분후 덮친 20여m높이의 쓰나미가 2만7천1백여 인명과 9천여채의 가옥을 삼킨 기록이 있다. 12일밤 일본 북해도를 강타한 지진도 해저 진앙으로 성난 파도의 쓰나미해일을 일으켰다.4m나 되는 물언덕(해벽)이 3m의 방파제를 넘어 2백m내륙까지 덮쳤으며 모든것을 쓸어갔다는것이 피해가 가장 심한 오쿠시리(오고)섬 주민의 증언이다. 이 쓰나미해일은 일본뿐아니라 동해를 건너 우리해안까지 밀려와 해일경보를 내리게하는등 긴장시켰으나 위력이 크게 약화되어 15척의 선박침몰파손의 피해에 그쳤다.그렇다고 방심할 일은 아니다.쓰나미는 파급의 거리도 길어 발생지에서 수천㎞ 떨어진 곳에도 큰 피해를 내는경우가 많다. 60년 5월 남미 칠레인근 태평양해저에서 일어난 진도 8.5의 지진으로 생긴 해일은 시속 3백㎞의 속도로 태평양을 건너와 5m이상의 파고로 일본해안을 강타 1백39명의 인명피해를 낸적이 있다. 지진과는 거리가 먼 우리지만 지진의 나라 일본과 이웃하고 있으며 이번처럼 일본 인근 동해바다 해저는 지진빈발 해역이다.83년 일본동북지방 지진땐 우리도 많은 피해를 입은 기억이 있다. 영조17년(1741년)7월9일 강원도평해등 9개군에 성난파도가 덮쳐 수많은 인가와 배들이 부서졌다는 왕조실록의 기록도 있다.이웃일본의 지진도 피안의 불일수 만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 비소피해 납·수은보다 무섭다(인체와 환경)

    ◎중독땐 발진증상… 심하면 사망까지/일 모리나가사건으로 130명 숨져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중금속으로 일반인들사이에서는 수은과 납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게 비소다.식물이 도저히 살수없는 한계치인 생육피해 한계농도가 15ppm으로 중금속중 가장 낮다. 비소는 철 금 은 납 아연 구리등을 캐거나 제련하는데서도 생성된다.지난해 토양오염도 조사결과 충남서천 장항제련소부근지역의 비소함유량이 10.636ppm으로 가장 높았던것도 이와 관계가 있다. 한때는 농약 살충제로 많이 이용됐으나 워낙 부작용이 심해 농민들이 숨지고 농산물이 크게 오염되자 최근들어서는 사용되지 않고 있는것만 봐도 그 독성을 짐작케 한다. 비소는 주로 소화기나 호흡기를 통해서 인체에 들어오나 피부를 통해서도 침투한다.뼈나 내장에 쌓이게 되어 배출이 거의 불가능하다. 인체의 전혈액중 약3㎎,오줌중에는 0.008ppm이상이면 중독증상이 나타난다.중독된 농산물이나 가축을 통해 중독되는 경우도 많다. 중독이 되면 구토,피부의 갈·흑색화,적혈구의 감소,간장비대,건조성발진등의 증상이 나타난다.급성중독의 경우에는 설사·복통·두통등이 일어나며 심장쇠약 전신경련을 일으켜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1955년 일본 서부일원에서 있었던 모리나가 우유중독사건이 비소의 맹독성을 알게한 대표적인 사건이다.모리나가유업의 도쿠시마공장에서 생산된 드라이밀크에 비소가 들어가 이를 먹은 사람중 1백30명이 사망했다. 그때 피해신고를 한사람은 1만3천1백31명이나 됐으며 현재까지 상당수가 발육장애·간장장애·시각장애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도 현재로서는 별문제가 없다고도 할수있다.그러나 벼농사지역가운데 특정지역에서는 거의 1ppm수준에 육박하고 있다.잠시도 경각심을 늦추지 말아야 하겠다.
  • 세르비아 수용소 무력해방/불·영과 실행방안 논의

    【파리 AP AFP 연합】 프랑스의 여야 정당들은 11일 보스니아내 곳곳에 산재한 세르비아의 강제 수용소를 해방시키기 위해 무력사용을 불사하겠다는 롤랑 뒤마 외무장관의 발언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뒤마 장관은 이같은 고무적인 분위기 속에 이날 베르나르 쿠시네르 보건장관및 시몬느 베이유 전유럽의회 의장등과 만나 강제수용소 해방구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뒤마 장관은 자신의 구상과 관련,프랑스는 필요하다면 단독으로라도 강제수용소를 해방시킬 용의가 있으나 서방 열강의 지원도 기대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우선 영국 관리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며칠안에 런던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 아프간 대홍수… 3천명 사망/중국엔 태풍… 이재민 5백만명

    【카불 로이터 AFP 연합】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북부의 힌두 쿠시산맥에서 호우로 인한 대홍수가 발생,4백50명 이상이 사망하고 적어도 5백명이 실종됐으며 사망자수는 3천명에 까지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아프간 정부관리들과 영국 구호단체 관계자들이 3일 말했다. 국방부 대변인은 홍수로 인해 높이가 9m까지 치솟는 거대한 물결이 2일 힌두쿠시산맥 남부 산록의 살랑·고르반드·슈툴등 각각 약30㎞까지에 이르는 3개 계곡의 모든 마을을 덮쳐 수백채의 가옥이 유실되고 광범한 농작물과 수로가 진흙과 돌더미에 매몰됐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30일과 31일 중국 동남부를 강타한 태풍 폴리로 인한 사망자수가 1백65명으로 확인되고 5백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가운데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북부 항구도시 천진시에서도 이 태풍으로 인한 해일이 발생,창고와 선착장이 침수됐다고 전했으나 희생자에 관한 보도는 없었다.
  • 미테랑대통령 부인 이라크서 암살 모면

    【파리·제네바 AP AFP UPI 연합】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다니엘 미테랑 여사가 6일 북부 이라크 쿠르디스탄지역에서 자동차 폭탄을 이용한 암살기도를 간신히 모면했으며 이 사건으로 최소한 2명이 사망했다고 프랑스 라디오와 유엔소식통들이 밝혔다. 이 폭탄은 산악지대에 위치한 북부 이라크의 상업도시 술라이마니야와 하와나간의 도로상에서 미테랑 여사의 차량행렬이 통과한 직후 폭발했으며 미테랑 여사와 여사를 수행중이던 베르나드 쿠시너 프랑스 보건.인도문제담당 장관은 다치지 않았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5

    ◎「도끼만행」은 월남전뒤 “미 의지 시험용”/운명의 날 8·18… 4분만에 미군 2명 살해/참모회의중 일보… 스틸웰장군에 “귀환 급전”/북측 병사 30여명,「가지치기 현장」 포위… “의도적 도전” 내가 다시 한국에 근무하게 된것은 1976년 봄 소장으로 주한유엔군사령부의 참모장을 맡게 되면서였다.이 직책은 주한미군 참모장과 미8군 부사령관등을 겸하며 또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의 수석대표도 맡았다.나는 대장이 된 스틸웰사령관과 다시 만나게 된것이 기뻤다. 7월1일 아내 메리와 함께 김포공항에 도착,용산 유엔군사령부까지 가는 동안 놀랍게 발전된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그러나 이도시의 불과 25마일 북방에 싸늘한 긴장이 감도는 DMZ(비무장지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때 한국은 평화롭다고만 할수 없었다. ○군 배치 공격형으로 그당시 판문점에는 긴장이 높아가고 있었다.75년 베트남전쟁이 끝난후 김일성은 군대의 현대화 및 증강에 박차를 가했으며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부대배치를 방어형에서 공격형으로 전환시켜 놓고 있었다.이 사실의 발견은 당시 정보활동의 개가로 평가되고 있다.베트남이 붕괴되기 전까지는 CIA나 DIA(미국방정보처)의 사진분석가들이 인도차이나에만 매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북한관련 정찰사진이나 위성사진들이 제대로 분석되지 않은채 그대로 쌓여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남북한이 비슷한 군사력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된 70년도의 평가를 아직도 그대로 채택하고 있었다.미국은 그같은 정보판단하에 닉슨독트린의 일환으로 한국에서 갑자기 7사단을 철수시켰으며 북한은 72년부터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해 왔다. 그러나 74년 민간 정보분석가들에 의해 북한이 엄청난 양의 철강과 콘크리트를 생산,불명확한 군사목적에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다음해부터 북한의 군사적 능력과 의도에 관한 조사가 국가안전국 특수조사팀의 일원인 베트남참전 보병장교 출신 민간인 존 암스트롱에 의해 행해졌다. 14개월간의 연구끝에 그는 북한의 군사력이 70년의 평가보다 80%이상 증강됐고 대부분이 DMZ 부근에 전진배치돼 있음을 밝혀냈다. 이같은 북한군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유엔군사령부는 76년말 김일성이 남침배치를 완료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이는 복잡한 국내문제와 외채압박등 경제난으로 전쟁도발은 어려울 것이라는 CIA보고와는 정반대 견해였다. 남침용 땅굴이 처음 발견된 것은 74년 11월로 그후 연달아 발견된 땅굴들은 북한의 침략의도를 보다 명백히 해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특히 내가 부임하기 수개월전부터 북한군은 한국군 순찰대에 사격을 가해오고 부비트랩을 설치하는등 DMZ에서의 도발을 한층 강화시켜오고 있었다.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에서도 북한경비병들의 도발 횟수가 늘고 있었다.우리정보기관들은 이를 지난 50년전쟁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침략을 위한 구실로 삼으려는 것으로 평가했다. ○“새 침략구실 노린듯” 북한군들이 저지른 대표적인 잔악한 도발이 부임후 두달이 채못돼 8월18일 아침 판문점에서 발생했다.JSA에서 북쪽을 연결하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까이에 높이12m 가량의 무성한 포플러가 있었는데 유엔군측 경비초소의 시야를 가려 가지를 칠 필요가 있었다.이날 북측에 사전통보를 하고 10명의 경비병과 도끼 사다리 톱등 작업도구를 든 5명의 작업단이 2.5t트럭을 타고 현장으로 들어갔다.아더 보니파스대위와 마크 바레트중위가 그들을 인솔했으며 한국군 김문환대위는 통역장교로 동행했다.적에 의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20명의 신속대응군이 JSA 바로 안쪽 제2경비초소 옆에 배치돼 있었다. 상오 10시30분 작업단은 두개의 사다리를 나무에 걸쳐놓고 작업을 시작했다.5분정도 지난후 북측트럭 한대가 오더니 장교2명과 사병9병이 내렸다. 인솔자 박철중위는 JSA에 오래 근무했으며 성질이 고약하기로 이름나 있었다.박철이 자꾸 작업을 간섭하더니 20분쯤 후에는 보니파스에게 작업중지를 요청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작업은 계속됐다.이어 북측 경비병 10명이 트럭을 타고 추가로 왔으며 근처 경비초소에서 6명이 더와 모두 30여명의 북측병사들이 작업장일대를 포위한 형상이 되자 박은 가지 하나라도 더자르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해 왔다. 보니파스가 작업계속의사를다시 명확히 하는 순간 박이 『죽여!』라고 외치며 보니파스를 세게 걷어차 수로로 쓰러뜨렸다.이것을 신호로 북측병사들은 주머니에서 쇠파이프와 곤봉등을 꺼냈으며 작업중이던 도끼도 빼앗아 주로 장교와 하사관을 공격했다.보니파스는 수로바닥에 쓰러진채 발길질과 쇠파이프를 피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그때 한 북측병사가 도끼로 그의 머리를 내려 찍자 그자리에서 바로 죽고 말았다.바레트중위는 공격을 피해 트럭쪽으로 뛰었으나 뒤따라온 6명의 북한병사들에 의해 역시 도끼와 쇠파이프등으로 두들겨 맞아 피투성이가 된채 쓰러졌다.신속대응군이 도착했을때는 북한군은 이미 돌아오지 않는 다리 건너편으로 달아난 후였다.정확히 4분동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신속 대응 군 힘못써 키티호크기지의 당직장교로부터 전화보고를 받은 것은 참모회의 중이었다.나는 우선 사령부 지하벙커에 있는 「월 룸」(전쟁지휘소)으로 갔다.그러나 사령관 스틸웰대장은 일본자위대의 초청으로 교토를 방문중이었고 부사령관 존 번 공군중장은 월례 연습비행을 위해 서해쪽으로 출격중이었다.리처드 스나이더주한미대사도 업무협의차 워싱턴에 가있었다.또 한미1군단사령관 존 쿠시맨중장은 의정부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유엔군사령부의 최고 선임자였다. 몇분후 보다 상세한 보고가 올라왔다.보니파스대위와 바레트중위가 살해당했고 수명의 경비병이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었다.이것은 분명 우리가 예측하고 있던 공산당의 의도적 도발이 틀림없었다.나는 즉시 주한미공군사령관 돈 피트만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스틸웰장군 귀환을 위한 비행기 급파와 연습비행중인 번중장에게도 급거귀환 연락을 하도록 지시했다.그다음 의정부의 쿠시맨중장에게 판문점의 상황을 보고하고 전투준비태세를 위한 데프콘 등급을 의논했다. 데프콘은 가장 약한 상태인 5등급에서 1등급까지 있는데 한국에서는 보통때도 데프콘4 상태였다.그러나 이를 높이기 위해서는 명백한 군사적 움직임이 수반돼야하기 때문에 적의 공격적인 대응을 예상해야했다.마침 스틸웰장군과 통화가 되어 그문제를 상의했다.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이번 사태에 대한우리의 대응은 보다 확고해야했다.분명히 북한측이 우리를 테스트하려 할것이기 때문이었다.또 그해는 선거의 해로 조지아주지사 지미 카터가 베트남전의 실패로 궁지에 몰린 제리 포드대통령에게 강력히 도전하고 있었다. 북한은 포드가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리라는 계산에서 도박을 걸어온 것이었다.앞으로 48시간내에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새로운 도발에 대해 전쟁을 개시하느냐,그대로 주저앉느냐를 선택해야 했다. 『좋소』 마침내 사령관의 대답이 떨어졌다.『당신이 펜타곤과 한국군측 그리고 우방국에 상세히 상황을 설명하시오. 정전위원회를 내일 열도록 요청하고 모든 부대는 데프콘3에 대비,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전부대원이 영내대기토록 하시오』 즉시 참모회의를 소집,우리의 대응계획인 OPLAN 작성에 바쁠때 서울의 미대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마침 이날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비동맹회의 기조연설에서 북한측대표 김정일이 이날 아침의 사건을 미군장교들의 인솔하에 저질러진 북한군에 대한 이유없는 공격이라고 설명하고 비동맹회의가 미국의 행위를 비난하는 동시에 유엔사령부의 해체와 한국으로부터 미군의 철수를 주장,쿠바의 열렬한 지지로 이 결의안이 통과됐다는 것이었다. 이날밤 김포공항에 도착한 스틸웰사령관에게 나는 세가지 대응책을 보고했다.
  • 징용한인 강제노역/대규모 터널 또 발견/일 후쿠오카서

    【도쿄 연합】 한국인 강제연행 실태를 파악중인 일본 후쿠오카(복강)현 한일합동조사단은 12일 후쿠오카현 치쿠시노(축자야)시에서 당시 일본 육군이 태평양전쟁 말기 한국인 약 5백명을 동원,파도록 한 대규모 군용터널을 발견했다. 이번에 발견된 터널은 길이가 약 8㎞에 달하는 대규모의 것으로 일육군이 미육군의 본토상륙에 대비,연료·의류등의 물자를 비축하기 위해 1944년에 착공,이듬해에 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 「공해」문제로 일 「공해국장」자살

    ◎정부서 「미나마타병」보상 거부로 갈등/“공직자의 고뇌 표현”… 일 사회 큰 충격 유기수은 중독에 의한 일본 특유의 공해병인 미나마타(수오)병의 총괄책임자인 환경청의 야마노우치 도요노리(산내풍덕·53) 기획조정국장이 5일 돌연 자살함으로써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야마노우치 국장은 이날 하오 2시10분쯤 도쿄도(동경도) 마치다시(정전시) 야쿠시다이(약사태) 1정목 자택 2층에서 목맨 시체로 발견됐다. 야마노우치 국장은 환경청내 미나마타병 문제의 책임자이다. 직원들에 따르면 야마노우치 국장은 이 병에 대한 공해소송에서 도쿄지방법원 등이 원·피고 쌍방간의 화해를 권유하고 있으나 피고측인 국가가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을 괴로워해왔으며,유사환자(미인정환자)에 대한 대책마련에 부심해 왔다는 것이다. 미나마타병은 구마모토현 미나마타만 주변에서 발생한 유기수은 중독현상으로 34년전에 처음으로 발견된 집단중독성 질환. 이 병은 어패류의 유기수은이 신경에 침투,사지가 감각장애로 뒤틀리고 발성,눈·귀 등에 장애가오는 공해병이다. 미나마타병으로 보상을 받으려면 우선 보건당국의 공식인정을 받아야 한다. 현재 구마모토·가고시마에 3백30명,니가타지역 15명 등 3백45명이 인정 신청중인데 이 인정여부를 둘러싸고 보건당국의 폭좁은 판정 때문에 환자측의 불만이 높다. 미나마타병의 인정신청자 단체 등에 의해 피해자구제를 요구하며 국가·현 등을 피고로 하는 재판은 지금 현재 전국 8개소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일련의 미나마타병 소송 가운데 도쿄지방법원이 지난 9월28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화해권고를 종용했다. 그 이유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 공해사건이 공식발견된후 34년 이상이 경과했는데도 여전히 미해결인채로 남아 있는 것은 서글픈 일로써 조기해결을 위해서는 소송관계자가 어느 시점에서 어떤 형태로든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후 각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에서도 잇따라 화해권고를 내렸으나 피고인 국가측은 『국가의 책임론,병상론에서 원고측과의 격차가 크다』며 화해권고를 일관되게 거부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공해병인 미나마타병의 소송과 관련,정부측의 창구였던 야마노무치 국장의 돌연한 자살은 이같은 국가측의 편협한 자세와 비참한 현실과의 사이에서 고민하던 한 공직자의 「목숨을 건 의사표시」가 아닌가 라고 각계에서는 침통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 2백38일 도일 투쟁ㆍ사내 농성/수미다 분규 타결

    ◎체임등 3억9천만원 지급 합의 【창원=이정규기자】 일본에 있는 본사가 일방적으로 노조에 폐업통보를 해와 노조원들이 2백38일동안 사내농성과 도일투쟁을 벌여온 마산수출자유지역내 한국수미다전기의 노사분규는 노사양측이 노조원들에 대한 체불임금 및 퇴직금 지급 등에 합의함으로써 타결됐다. 8일 이 회사 노조(위원장 정현숙ㆍ25ㆍ여)에 따르면 정위원장 등 노조대표 4명은 이날 하오 도쿄 본사에서 쿠시노 고이치사장 등 회사측대표와 협상을 갖고 ▲체불임금 1개월 이내 지급 ▲퇴직금과 퇴직위로금 지급 ▲퇴직할증금조로 평균임금의 2개월분 지급 ▲사내농성중인 노조원 1백여명에 대한 생계대책비 지급 등에 합의하고,회사측은 이를 위해 3억9천6백만원을 노조측에 일괄 지급키로 했다는 것이다. 회사측은 이와함께 노조가 지난해 10월14일 폐업통보된 이후 지금까지 폐업철회투쟁을 위해 사용해온 경비 7백80만엔을 1주일 이내에 지급키로 하는 한편,폐업통보 이후 사내에서 농성을 벌여 온 1백여 노조원들의 퇴직일자를 금년 5월말로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 징용희생자 명부/일 민간인이 보존

    【도쿄연합】 일본 후쿠시마(복도)현 이와키시에 사는 한 농부가 2차대전중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와 구조반(상반)탄광에서 노예처럼 혹사당하다 영양실조와 낙반사고 등으로 죽어간 한국인 희생자명부를 독자적으로 만들어 보존해온 사실이 1일 처음으로 밝혀졌다. 교도(공동)통신에 따르면 이와키시에 사는 오츠카 가즈지(대총일이ㆍ57ㆍ농업)씨가 작성한 이 명부에는 징용자의 이름과 출신지 생년월일 사인 등이 10개항목에 걸쳐 상세히 기술돼 있어 정부의 공식문서가 드문 당시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전후 전범재판과 점령군 사령부의 추궁을 피하기 위해 강제징용 관련서류의 대부분을 소각하거나 폐기처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소,리투아니아에 비상포고령/고르바초프,“공화국 독립”에 강경조치

    ◎주민에 무기반납 명령… 긴장 고조/KGB병력엔 국경통제 긴급지시 【모스크바 AP AFP 연합】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21일 소연방으로부터의 탈퇴결정을 고수하고 있는 리투아니아공화국에 대해 비상포고령을 발동,리투아니아인들의 모든 무기반납 및 비밀경찰 KGB의 국경통제 등을 명령했다고 관영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이 통신은 고르바초프가 대통령 당선후 처음 내린 이 비상포고령의 발동이유를 지난주 독립을 선언한 발트해의 리투아니아공화국이 소련시민의 권리 및 소련의 주권을 침해하는 불법행동을 계속함에 따라 대통령에게 부여된 비상포고령을 발령하는 것으로 밝혔다고 전했다. 이 통신은 이어 소련정부가 리투아니아내 소련 시민들의 권리 및 법적 이익 보호를 발동한 5개항의 포고령에서 ▲리투아니아 주민이 소지한 무기의 7일 이내 당국 반납 ▲리투아니아와 다른 지역의 국경에 대한 KGB(국가보안위원회)병력의 순찰 및 통제 ▲외국인의 리투아니아 여행 엄격 통제 ▲리투아니아내 모든 주민의 권리보호 등의 실시를 당국에 명령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에 있은 리투아니아의 탈소 독립선언이 불법이며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이의 번복을 요구해온 고르바초프가 그동안 이렇다할 조치없이 「인내심」으로 대처해오다가 무기반납을 거부하는 리투아니아인들의 무기를 압수할 수 있도록 명령하는등 강경책을 취하기 시작함으로써 리투아니아와 모스크바 중앙정부간의 긴장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해설/「독립」확산 저지 노린 초강경 승부수 21일 리투아니아에 대해 비상포고령이 발동된 것은 그동안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온 이지역의 독립움직임에 소련당국이 일단 강경대응쪽으로 방침을 잡았음을 보여준다. 지난 11일 소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이래 리투아니아공화국 정부는 크렘린의 설득노력을 무시하며 독립에 따른 후속조치에 착수할 태세를 계속 보여왔다. 19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독립취소 요구를 정식으로 거부한데 이어 이튿날에는 리투아니아에 행해지고 있는 연방군의 무력시위에 대해 크렘린측에 항의문을 보내기도 했다. 리투아니아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공화국 국경지역의 세관검사,국영공장의 운영권 인수,자체통화 동입 등 독립에 따르는 실질조치에 착수할 움직임까지 보여왔다. 따라서 소련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독립을 허용해준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셈이다. 이번 포고령은 1주일내에 무기반납ㆍ공화국 국경지역에 대한 연방보안군의 경계강화ㆍ외국인의 출입국 통제 등을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무력개입 의사는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번 포고령으로 어떤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현재 리투아니아 당국은 소련최고회의에서 마련한 연방공화국의 분리법안 등 독립허용을 전제로 하지 않은 어떤 대안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미 독립국임을 선포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절차논의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포고령발동 이후 소련당국이 취할 다음 조치가 무엇일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소련정부의 의도를 점쳐볼 수 있는 것이 포고령 선포와 같은 날 연방최고회의에서 승인된 연방공화국 분리법안이다.이 법안에 따르면 독립을 원하는 공화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분리결정을 내린 다음에도 연방최고회의에서 3분의2이상의 찬성을 얻고 다시 5년 이상 경과된후 다시 인민대회의 승인을 거치도록 되어있다. 독립이 리투아니아에서와 같이 해당 공화국의회에서 마음대로 선포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크렘린주도로 경제면에서 자치권의 대폭이양 등을 통한 점진적인 독립방식을 따르겠다는 뜻이다. 이미 보도된 경제제재조치 강구와 이번 비상포고령 발동등은 독립논의의 흐름을 이런 차원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압력수단으로 볼수 있다. 크렘린은 앞으로도 가능한한 무리한 무력사용은 자제하면서 이러한 설득과 압력의 두가지 수단을 병행해 나갈 것같다. 문제는 지금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발트해연안 공화국의 분위기가 크렘린의 이런 의도대로 움직일 단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결국 독립허용쪽으로 가더가도 아직은 정치적ㆍ심리적으로 「조정기」가 필요한 게 크렘린의 입장이라면 이들 공화국은 이 조정기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번비상포고령 발동에도 불구하고 크렘린이 마련한 연방법안의 구도대로 설득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지난 1월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시 경우처럼 유혈무력진압이 동원될 가능성도 부인키 힘들다. 비상포고령 이후 양측의 협상과정이 향후 소련의 민족문제 해결에 대한 하나의 분기점이 될 것같다.
  • 공장조업 재개 요구,도일투쟁/「스와니」노조대표 3명 윤화

    【도쿄연합】 폐쇄된 공장의 조업재개를 요구하며 내일투쟁중인 아시아 스와니 노조대표 4명중 김미숙양을 제외한 3명이 21일 하오2시30분쯤 스와니 본사방문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던중 도쿠시마(덕도)현 나루토(명문)시내에서 타고가던 승용차가 전주를 들이받는 바람에 부상,이중 서소화양과 자동차를 운전중이던 재일동포 김원희(47ㆍ대판거주)가 시내 나루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있으나 김씨는 중태이다. 서소화양은 전치 1개월의 상처를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아시아 스와니 노조위원장 양희숙양과 부위원장 우연희양은 가벼운 타박상을 입었다.
  • 소 민족분규 평화적 타결 조짐/아제르공­크렘린 협상 동의

    ◎현지 공산당도 재야에 회담 제안/소군,렌코란시 장악… 4백명 체포 【모스크바ㆍ바쿠 AFP 로이터 DPA 연합】 지난 13일 이후 계속돼온 소련남부 유혈 종족분규사태는 아제르바이잔 인민전선측이 소련중앙정부에 평화회담을 제의하고 크렘린당국이 아제르바이잔 공화국과의 협상용의를 표명한데 이어 아제르바이잔 공산당의 지도자도 27일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민주세력」에 회담을 갖자고 나섬으로써 평화적 타결의 가능성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소련군은 아제르바이잔의 항구도시인 렌코란시를 재장악한데 이어 4백20명을 체포함으로써 2주간 계속된 인민전선측의 점령이 종식되었다고 아제르바이잔 관영 아제린포룸통신이 28일 보도했다. 이와 관련 소련 관영 타스통신은 렌코란시 외곽에서 정부군과 인민전선의 「방위위원회」가 27일 충돌,정부군 병사 1명과 「테러리스트」 5명이 각각 사망하고 주민 4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는데 인민전선의 한 대변인은 렌코란시의 중심지가 소련군의 탱크에 의해 포위되었으며 사격이 계속되고있다고 밝혔다. 아제르바이잔 공산당의 새로운 지도자인 아야즈 무탈리보프는 27일 10분간에 걸쳐 TV방송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민주세력들과의 대화를 촉구하면서 그러나 그는 극단주의자들을 반대한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한 작가인 안나르 르바예프씨는 전했다. 그는 그러나 정부군이 언제 철수할 것인지와 비상사태가 언제 해제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인민전선측은 무탈리보프의 제안이 나온 이날 중앙당국과의 평화회담 제의가 26일 바쿠에서 있은 지도부회의에서 결정돼 바쿠시의 군사령부측에 전달됐다고 밝히고 종족분규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자신들과의 협상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인민전선은 소련당국의 체포령아래 놓여있는 지도부가 중앙당국과의 협상용의를 최초로 공식 발표한 이번 평화회담 제의에서 소련군이 철수하고 비상사태가 해제될 경우 질서회복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 아제르바이잔에 검거선풍/소군,분규선동 43명 전격체포

    ◎바쿠시엔 시위ㆍ파업 전면금지령/기안제 시의회,연방탈퇴 국민투표 요구 【모스크바 AP 로이터 외신 종합】 아제르바이잔 사태의 진압을 위해 파견된 소련군 지휘부는 24일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의 수도 바쿠에서의 모든 시위와 파업을 금지하는 한편 공공질서의 파괴 행위와 유언비어의 유포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갔다. 타스통신을 비롯한 소련관영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소련 정부가 파견한 진압군은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공화국간의 종족 분규를 선동한 현지의 불법 단체들에 관여하고 있는 행동대 가운데 43명을 체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군당국은 23일밤과 24일 새벽에 걸쳐 현지의 불법 단체들에 대한 단속에 나섰으며 이 과정에서 이들이 갖고 있던 복사기등을 압수하고 앞으로도 시위를 주동하려는 자들은 30일간의 구류에 처할 것을 경고한 것이라고 타스통신은 전했다. 타스통신은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최대의 반정부 단체인 「인민전선」산하의 민족방위위원회와 그 관련단체들의 활동이 금지됐다고 보도했으나 현지의 아제린폼 통신은 군당국의 심야단속에서 「인민전선」은 제외됐다고 상반되게 보도했다.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의 수도 바쿠에서는 24일에도 군당국의 파업금지령을 무시한 채 파업을 계속 단행,수도 바쿠시가 마비되고 있으며 모스크바 당국에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에서 군병력을 철수하라는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는데 23일밤 현재도 일부지역에서 총성이 울리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양 공화국간의 원천적 분쟁 대상인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의 상황에 대해 타스통신은 이 지역의 연료부족 사태를 덜기 위해 10대의 화물열차가 사태발생 이후 처음으로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측의 봉쇄를 뚫고 예레반으로 떠났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지도부는 24일 회의를 갖고 당중앙으로부터의 이탈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 지역 제2의 도시 기안제의 시평의회는 연방탈퇴의 가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요구하는등 불만의 강도를 더욱 높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앞서 아르메니아 당지도자인 아루트윤안은 23일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인들이 아제르바이잔 공화국내의 두 지역에서 서로 억류하고 있는 인질을 교환했다고 말했다.
  • 회교로 무장 무기한「성전」 전망/무력진압 뒤의 아제르바이잔

    ◎군투입이 오히려 민족감정 자극/사태 장기화땐 소 군부 반발 예상 소련연방정부가 아르메니아인 학살과 독립요구로 무정부상태에 빠진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시에 군병력을 투입,진압에 나선데 맞서 아제르바이잔 민족주의자들이 아프가니스탄식의 무장저항을 벌일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주민들이 소련당국의 무력진압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섬에 따라 고르바초프가 대지방정부 정치에서 상실한 지도력을 회복하는데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때문에 미국이 베트남에서,영국이 키프로스에서 당했던 것처럼 현재 종족분규지역에 투입된 소련군도 소수민족의 민족감정을 자극,호된 곤욕을 치를 것으로 소련관측통들은 전망하고 있다. 문제는 소련군이 얼마나 신속히 사태를 장악하고 아제르바이잔인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그렇지 못할 경우 정부군의 강경진압에 밀려 지하로 점적한 아제르바이잔의 과격 민족주의세력들은 정부군을 상대로 무기한 「성전」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제르바이잔이또하나의 아프간이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게릴라화의 저변에는 무력진압을 바쿠시에서 먼저 감행함으로써 정부가 일방적으로 아르메니아인의 편을 들고 있다는 아제르바이잔인의 피해의식도 깔려있다. 소련정부의 무력진압이라는 강경조치는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표현처럼 「국가적 재앙」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위한 것이지만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군사작전은 쉽게 끝나겠지만 작전이 끝난 뒤에도 군사개입을 계속해야할 뿐더러 소련군은 전통적으로 국내치안문제에 개입하길 원치 않아온 전통 때문에 대군부 문제도 만만치 않다. 반면,아프간 내전때 처럼 사태를 질질 끌게되면 결국 군의 사기가 떨어지고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반기를 들어온 수구ㆍ보수파들이 이를 이용,개혁ㆍ개방의 물결을 역류시킬 가능성도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19세기 중엽 제정러시아가 이 지역을 차지하면서 러시아 이란 터키 3국에 의해 분할됐으며 현재 이란내에 약 5백만명,소련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에 6백80만명의 아제르바이잔인들이 살고 있다.따라서 회교중에서 시아파에 속하는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이번 기회를 빌려,이들 양지역에 분산돼 있는 동족들을 통합,독립된 이슬람 공화국 수립을 최종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소련은 이같은 분리 움직임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지금으로선 무력에 호소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상태다. 만약 아제르바이잔을 잃었을 경우 소련이 입을 피해는 엄청나다.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는 카스피해의 최대항구이자 세계적 유전지대로 석유화학공업의 중심지다 이와함께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란과의 외교분쟁도 예상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인은 터키계로 페르시아계 이란인과는 인종적으로 다르나 같은 시아파 회교국가인 아제르바이잔과 이란은 종교적 유대가 강하다. 그러나 아제르바이잔 통합운동은 이란 북부지역의 분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란으로서도 결코 달가운 현상은 아니어서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되고 있다.
  • 아제르공 민병대,게릴라전 선언/인민전선 국방위의장,대중집회서 발표

    ◎소군진입 항의,시위ㆍ파업 계속/“소,「제2의 아프간사태」가능성” 영 전문가 【모스크바 외신 종합】 총파업으로 아제르바이잔공화국내 여러곳이 마비된 가운데 아제르바이잔 인민전선 국방위원회의 네이마트 파나코프의장은 『인민전선은 게릴라전 수행을 위해 지하로 잠적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소련관영타스통신이 23일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파나코프의장이 22일 1백만명이 모인 가운데 바쿠시에서 열린 집회에서 『아제르바이잔 인민전선은 지하로 잠적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는데 이는 게릴라전 수행 또는 불법투쟁 전개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아제르바이잔공화국의 연방탈퇴 위협에도 불구,소련군은 활동을 강화하고 있으나 일부 진압부대원들이 무기를 휴대한채 무장민병대에 가담하는 등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고 23일 현지 보도들이 전했다.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에서는 민족분규종식을 위한 연방정부의 무력개입에 저항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는 가운데 진압부대군인들이 무장민병대들에 의해 공격을 당하고 상호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진압부대원들가운데 아제르바이잔 출신 군인상당수가 부대를 이탈,무기를 소지한채 민병대에 가세하고 있다고 청년공산동맹기관지인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가 이날 보도했다. 이와 함께 바쿠항에 정박하고 있는 50척의 유조선 선장들은 지난 21일 두비니야크소장에게 전문을 보내 진압군이 바쿠시에서 전면 철수하지 않으면 유조선과 원유시추장비를 모두 폭파하겠다고 위협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또 아제르바이잔의 통신사인 아제리포름의 편집장은 23일에도 공화국전역에서 연방정부의 군사적 개입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리고 파업이 계속됐다고 밝혔다. 【브뤼셀 로이터 연합 특약】 소련군은 코카서스 지역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악몽을 또다시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군사문제 전문가들이 23일 경고했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앤드루 던칸씨는 『만일 모스크바 정부가 아제르바이잔 혹은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소련군의 장기주둔을 결정할 경우 이 지역의 주민들은 험한 지형과 기후를 이용,아프가니스탄에서와 같은 게릴라전을 벌이며 저항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