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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치 약탈 미술품 주인 찾아줍니다”

    ◎독 반환 21점 불오르세미술관 전시/모네 등 대가 작품… 관객 줄이어 요즘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에서는 나치 독일이 약탈해 간 미술품의 주인을 찾는 이색적인 미술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미술관 벽에 걸린 작품들은 르누아르가 1905년 아들 클로드가 연필을 잡고 뭔가를 쓰고 있는 모습을 담은 그림을 비롯,모네·마네·세잔·들라크루아·쇠라·피사로·쿠르베 등 프랑스 최고작가들의 미술품 21점으로 오는 12월18일까지 전시된다. 전시회가 열리자 방문객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으나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직 없다는 것이 미술관측의 말이다. 그러나 방문객들이 그림들을 찬찬히 뜯어보거나 사진찍는 모습은 쉽게 눈에 뜨인다. 이번에 오르세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은 2차대전중 독일군 장교가 약탈한 28점 가운데 주인이 확인되지 않은 것들로 그는 본국으로 이 작품들을 반출한뒤 한 사병에게 맡겨 보관토록 했다. 전리품에 대한 권리주장을 하기 위해 나타난 적이 없었던 장교는 전쟁중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사병은 작품들을 30년 가까이 숨기고 있다가 대주교에게 그 사실을 고백했다.그뒤 작품들이 옛동독 국립화랑으로 옮겨지자 프랑스와 동독은 72년부터 89년까지 여러차례 미술품의 반환에 대해 협상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다. 프랑스로의 반환이 결정된 것은 독일이 통일된 뒤 헬무트 콜 총리의 결심에 의해서였다. 콜총리는 지난 5월 작품들 가운데 하나를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에게 직접 건네준뒤 두달만에 나머지 전부를 파리로 보냈다. 그러자 프랑스 외무부는 미술품 되찾기위원회가 작성한 도난미술품목록을 이용해 콜 총리가 반환한 미술품의 주인들을 찾으려는 작업을 벌였고 그러한 작업의 하나로 이번 전시회를 개최했다. 도난미술품 목록은 옛서독으로부터 지난 45부터 56년사이에 6만1천점의 작품들을 되돌려받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6만점이상을 건졌으면 꽤 많은 것같지만 이것은 나치독일이 약탈해 간 것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미술사가 린 H 니콜라스는 그녀의 저서 「유럽의 겁탈」에서 독일은 7만1천6백19가구에 달하는 프랑스 가정을약탈해 1백만점이상을 독일로 실어날랐다고 밝혔다.다행히도 약탈 미술품 2만1천점은 나치독일 고위층인 헤르만 괴링의 양식있는 배려로 죄드 폼 미술관에 온전하게 보관됐다. 외무부 관리들은 이번에 돌려받은 28개 작품중 7점의 주인들을 확인했다. 그중 하나는 코로의 연필스케치인데 전직 대사를 지낸 라파엘 레그(81)에게로 되돌아 갔다.또 다섯 작품은 화가 동생의 상속인들에게 귀속됐고 나머지 한 작품은 어떤 가정집으로 갔다. 1933년 4백프랑(20만원)을 주고 산 코로의 그림은 오늘날 1만4천프랑(6백40만원)의 귀중품이 됐다.그러나 레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코로의 작품이 걸려있던 옛날집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다.『내방의 이 그림을 함께 보던 친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다』 그에게는 젊은 시절인 1930년대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것이 돌려받은 미술품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었다.
  • 한·불 「외규장각 도서」협상 모델될듯/독 약탈문화재 불반환의 영향

    ◎영구임대·교환보다 조건없는 결단 중요/국가정상의 정치적 배려 필요성 대두 독일의 프랑스 미술품 반환은 국제사회의 약탈문화재 반환의 중요한 선례가 될것으로 보인다. 독일이 2차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약탈한 미술품을 프랑스에 돌려주기로 한 것은 조건없이 자발적으로 이뤄졌고 거의 유례를 찾아볼수 없다.따라서 약탈문화재는 어떤 현태로든 반환돼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든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헬무트 콜 독일 총리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에게 『미술품들은 교환품이 아니라 순수한 선물』이라고 강조한 대목이 주목을 끌고 있다.약탈문화재는 교환의 대상이 될수 없고 무조건적인 반환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영구임대·교환임대를 놓고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는 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한불간 협상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한국의 입장이 유리해진 반면 프랑스측은 상대적으로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기가 어려워진 것임은 분명하다. 독일은 오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50주년 행사때 초청을받지 못했다.초청을 받았다고 해도 패전국 입장에서 참석하는 일도 껄끄러웠겠지만 프랑스국민의 정서와 미국·영국등의 연합국들도 독일이 노르망디에 오는데 그리 적극적인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행사 이틀뒤인 8일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서 대대적인 청년축제를 열어 화합의 장을 마련하자고 제의해 독일의 체면을 세워줬다.독일의 미술품 반환은 이런 프랑스의 세심한 배려에 대한 「답례」에 해당된다. 반환되는 미술품은 클로드 모네를 비롯해 쿠르베·르누아르·들라크루아·고갱·세잔등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이다.세계 어느 국민보다도 문화재를 사랑한다는 프랑스 국민들이 이런 미술품을 돌려받는다면 온통 화젯거리가 될만하지만 예상밖으로 조용하다. 프랑스의 일간지 르 몽드는 「나치에 의해 도둑맞은 모네의 작품이 프랑스에 반환되다」라는 제목으로 비교적 간단히 기사를 취급했다.프랑스는 흥분을 애써 감추고 있는 듯하다. 외규장각도서의 반환 협상에 대한 관심은 한불양국뿐이 아니다.일본도 파리시내의 엥발리드광장에 전시돼 있는 대포중의 하나가 약탈된 것이라면서 반환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그리스도 문화재 반환을 요구해 놓은 것으로 알려진다.때문에 한국의 반환협상은 파리 외교가의 주요한 관심 대상이다. 프랑스는 「정부가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는 국가 재산으로 양도할수 없다」는 국내법 규정을 들어 영구임대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따라서 형식은 「교환임대」라는 편법으로 사실상 반환의 효과를 이룰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법개정은 어렵지만 특별법으로 문화재를 영구 반환한 사례가 있다.지난 56년 기메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일본의 문화재는 특별법을 만들어 일본의 문화재와 교환하는 조건으로 돌려줬다.하지만 지금은 국민정서상 특별법 제정도 여의치 않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런 프랑스의 입장도 독일의 결단처럼 정치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독일의 미술품 반환을 외규장각도서등의 약탈문화재 반환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독일이 반환하는 미술품은 민간인인 유태인이개인소장한 것을 빼앗았다는 점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문화재이건 개인 문화재이건 분명한 것은 약탈에 해당된다는 것이고 그것이 원래 당사국에 돌려주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 독,약탈미술품 28점 불 반환/독­불 정상회담

    ◎콜,“교환품 아닌 순수한 선물” 【뮐루즈(프랑스) AP 로이터 AFP 연합】 헬무트 콜 독일총리는 30일 2차대전중 히틀러군대가 프랑스에서 약탈한 미술품들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에게 반환했다. 콜총리는 이날 프랑스동부의 국경도시 뮐루즈에서 이틀일정으로 열린 전후 제63차 독·불정상회담 첫날회담에서 베를린장벽 붕괴이후 동독의 한 박물관에서 발견된 28점의 프랑스 미술품을 정당한 소유권자들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해줄 것을 미테랑대통령에게 요청했다. 콜총리는 이날 만찬석상에서 황혼녘 파리서부의 눈덮인 루베시엔느가 풍경을담고 있는 클로드 모네의 1870년대 작품 「무제」1점을 상징적으로 미테랑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콜총리는 모네의 작품을 전달하면서 이들 미술품들은 「믿을 수 없는 여행을 한 끝에」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미테랑대통령은 미술품 반환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라고 반기면서 『나는 이런 귀중한 작품을 갖고 있는 어떤 나라가 이들 작품을 소유자에게 돌려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화답했다. 지난 89년 베를린장벽 붕괴후 동독의 한 박물관에서 발견된 프랑스 미술품 28점에는 모네를 비롯,쿠르베,르누아르,들라크루아,고갱,쇠라,세잔의 회화와 코로,밀레,마네의 스케치 등이 포함돼 있다.
  • 뉴욕서 마티스전/새벽부터 인파/세계각국 수집 3백90점 눈길

    맨해턴의 겨울은 유난히 음산하고 춥다. 끝없이 널려있는 마천루들이 햇볕을 차단하는데다 빌딩풍이 몰아쳐 체감온도는 실제보다 언제나 5∼6도 낮게 마련이다.이런 추위속에서도 요즈음 맨해턴 53가 현대미술관 앞에는 꼭두새벽부터 연일 수백명씩의 인파가 몰리고 있다. ○하루 7천명 관람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앙리 마티스 회고전」의 입장권을 사려는 사람들이다.입장권의 대부분은 예매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예매를 못한 사람들을 위해 하루 5백장씩 현장판매를 하고 있는데 아침10시부터 파는 표를 사기 위해 새벽7시만 되면 벌써 수백명이 줄을 서곤 한다. 아파트 추첨권도 아닌 한장의 미술전람회 관람권을 사기 위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있을까.하나의 뮤지컬이 10년을 넘겨 장기공연을 하고….뉴욕은 분명히 예술의 요람이라 할 수 있다. 지난 9월24일 시작된 앙리 마티스전은 본래 새해 1월12일 끝내기로 돼 있었으나 관람희망자들의 성화로 1주일을 연장했으나 그것도 연장발표 다음날 4만5천장의 예매권이 다 팔려버렸다. 현대미술관측은 현재까지 하루평균 7천4백명이 마티스전을 관람했다고 밝히고 이 회고전 기간동안 관람객 총수는 88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관람권은 12달러50센트(한화 약1만원). ○최초 공개 작품도 앙리 마티스는 잘 알려진대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초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을 풍미했던 야수파의 거장. 이번 전시회가 특별히 미술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그 규모와 완벽한 준비 때문.프랑스 러시아등 세계 각지에서 정선된 작품이 모두 3백90점에 이른다.마티스전으로 사상 최대의 규모일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유명한 화가의 회고전으로도 규모와 내용면에서 공히 단연 최고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러시아에서 온 28점이 이번 전시회의 백미.유명한 「헤르미타주 컬렉션」인 이들 작품은 그동안 서방세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들이며 그 가운데서도 7점은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미술애호가 찬사 현대미술관은 이번 마티스전을 위해 전시실 2개층을 모두 할애하고 있다.3백90점의 전시를 위해이렇게 방대한 공간을 쓰고 있는 것은 붐빌 관람객을 미리 예상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곳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는 프랑스 북부도시 릴 박물관의 진귀한 유화그림들이 첫 해외나들이 전시회를 열고 있어 역시 미술애호가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이곳에 전시된 스페인출신 프란시스코 고야의 「젊은 여인들」과 「노파들」등의 작품은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이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고야의 다른 회화들을 능가한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이 전람회 또한 진열대를 만들고 전시 공간을 넓혀야 할 정도로 걸작품들의 양이 방대하다.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드라크로아의 「알제리 여인」,쿠르베의 「오르낭에서의 저녁식사후」와 「에마우스의 제자들」등을 꼽을 수 있다.이들 작품은 새해 1월17일 뉴욕전시회를 마치고 런던·도쿄 등지로 오는 94년까지 순회하게 된다.이는 2년뒤에 마무리되는 릴박물관의 확장공사에 드는 비용을 보충하고 문화의 도시 릴을 해외에 널리 알려 관광수입을 올리려는 뜻에서이다.
  • 불 「물랭루주화가」 로트렉/런던전시회 성황(해외문화)

    ◎18세기 대표적인 외설작가/인간의 소외 신랄하게 표현 왜소한 체구에 중절모와 코걸이 안경에다가 지팡이를 짚고 몽마르뜨의 캬바레와 매음굴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던 프랑스의 화가 로트렉.우리에겐 물랑루즈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는 그의 대규모 회고전이 최근 런던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어 화제다.로트렉(18 64∼19 01)이 파리의 밤의 세계의 「기록자」를 훨씬 넘어서는 대화가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된 이번 회고전은 로트렉의 작품세계와 업적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근착 뉴욕타임스지는 전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유화·소묘작품·그레픽작품·스테인드 클라스 등 유년에서 말년에까지 걸치는 1백70점의 로트렉의 대표작품이 망라됐다.댄싱걸,레즈비언 창녀들을 그린 외설적인 그림들이 다수 전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회를 지배한 분위기는 단연 냉혹함과 무자비함 그리고 신랄함이었다. 로트렉의 작품이 지닌 소외 무료함 권태의 이미지가 다시금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로트렉그림의 인물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무표정하거나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게 특징이다.미소를 띤 얼굴은 물론 같은 육감적인 여인을 그린 작품이라도 쿠르베의 그것과는 달리 선정성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이다.이같은 결과의 원인으로는 로트렉의 개인 사적인 배경과 관련지어 설명되고 있다.명문귀족의 자손으로 태어났으나 부모의 근친혼인과 다리를 다쳐 성장이 멈춘 관계로 「난장이」로서의 불구의 삶을 살아야 했던 로트렉의 기구한 운명이 그를 어느쪽에도 쉽게 동화될 수 없는 아웃사이더로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현실을 미화시키지 않고 냉정하게 보는 로트렉의 아웃사이더적인 관찰력은 새삼 재평가의 기회를 맞고 있다.현실의 참모습을 찾아 자신의 운명만큼이나 냉혹하고 꾸밈없이 표현함으로써 비극을 넘어서며 진실을 포용하고 추악함마저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평가인 것이다. 무엇보다 로트렉은 36세 때에 성병에 걸려 사망하기 전까지 20년이 못미치는 기간에 무려 7백35점의 유화와 2백75점의 수채화,3백50점의 그래픽작품,5천점의 소묘작품을 남긴 다작의 프로화가였다.그의 화풍은 보나르 뭉크 마티스 피카소 등 후대 많은 화가들에게 그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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