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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로 본 오늘…민주화 짓밟은 12·12 사태, 군사 반란

    역사로 본 오늘…민주화 짓밟은 12·12 사태, 군사 반란

    1979년 12월 12일. 38년 전 오늘은 전두환,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대통령 승인 없이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 정병주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등을 체포한 날이다. 12·12 군사 반란 또는 12·12사태로 불린다.이들은 정 총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김재규가 시해하는 과정에서 방조한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12.12 군사 반란을 통해 군부 권력을 장악, 정치적인 실세로 등장했다. 신군부는 12월 13일 국방부·중앙청 등을 점령하고, 방송국과 신문사를 통제했다. 1980년 5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5·17 쿠데타로 사실상 정권을 장악했다. 5월 18일 쿠데타에 항거한 시민을 상대로 공수부대를 광주에 투입해 총을 발포하는 등 불법 진압을 했다.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수는 사망자 및 행방불명자가 약 200여명, 부상 및 피해자는 약4300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두환은 1980년 8월 22일 육군 대장으로 예편, 다음 달인 1980년 9월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이 됐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김영삼 대통령은 12·12 사건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했다. 90년대 들어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을 통해 1994년 12월 검찰은 이 사건은 군사반란이 맞지만 국내 혼란을 우려 기소 유예 처분한다고 발표했다. 12·12 사건 기소 유예 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1995년 1월 20일 12·12사건 기소유예처분취소청구에 대해 각하 및 기각 결정을 내렸다. 1995년 7월 검찰은 5·18 사건은 전두환 정국 장악 의도에 진행됐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기소하지 않았다. 이후 국회가 5·18 특별법을 제정, 신군부 인사들의 새로운 혐의가 발견되자 검찰은 1995년 12월 12·12, 5·18 사건 재수사에 나섰다.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핵심 인사는 1996년 1월 23일 5·18 사건에서의 내란혐의로, 1996년 2월 28일 12·12 사건의 반란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12·12, 5·18 사건 재판 1심서 전두환은 사형, 노태우는 무기징역 판결이 내려졌다. 고등법원에서 전두환은 무기징역으로 감경됐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12·12 군사반란에 대해 전두환과 노태우 등에게 반란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1996년 12월 16일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에 벌금 2205억원 추징을, 노태우에게 징역 15년, 벌금 2626억원 추징을 각각 선고했다. 그러나 1997년 대선 이후 정치 보복은 없다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자와 김영삼 대통령의 합의에 따라 1997년 12월 22일 전두환과 노태우를 포함한 12·12, 5·18 사건 관계자들은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감사원장에 최재형…‘7대 원칙’ 첫 인선

    감사원장에 최재형…‘7대 원칙’ 첫 인선

    과거 판례·정치성 등 꼼꼼히 확인 연수원때 동료 2년간 업어서 출근 두 아들 공개 입양 등 미담 알려져 문재인 대통령은 7일 감사원장 후보자에 최재형(61·사법연수원 13기) 사법연수원장을 지명했다. 최 후보자는 청와대가 지난달 발표한 ‘7대 비리(병역면탈·부동산 투기·탈세·위장전입·논문표절+음주운전·성범죄) 고위공직 원천배제’ 원칙을 적용한 첫 번째 인사다. 최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와 임명동의 표결을 통과하면 황찬현 전 원장에 이어 4년 임기(한 차례 중임 가능)에 들어간다.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인선 브리핑에서 “1986년 판사 임용 후 30여년간 민·형사, 헌법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보호, 국민 기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 온 법조인”이라며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수호하면서 회계 감사와 직무감찰을 엄정히 수행해 독립성·투명성·공정성을 강화하고 깨끗한 공직사회와 신뢰받는 정부를 실현해 나갈 적임자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 후보자는 “청문 절차를 거쳐 감사원장으로 임명된다면 우리나라 공직사회가 법과 원칙의 테두리 안에서 운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간 청와대는 황 전 원장의 후임 인선에 난항을 겪었다. ‘7대 비리 원천배제’ 원칙이 적용되는 첫 케이스인 만큼, 검증 과정에서 걸러지거나 대상자가 부담을 느껴 고사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기준에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했고 그 때문에 늦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감사원장이란 상징성은 물론 4대강 사업과 방산비리 등 보수정권 9년의 실정에 대한 정책감사를 펼쳐야 하는 만큼 야권의 공세 등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과거 판례와 이념·정치 편향성 등도 꼼꼼하게 확인했다는 후문이다. 경남 진해 출신으로 경기고, 서울대를 졸업한 최 후보자는 서울지법 부장판사와 대전지방법원장, 서울가정법원장,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역임했다. 법조계에서는 사법연수원 시절 다리가 불편한 동료를 2년 동안 업어서 출퇴근시킨 ‘미담’으로도 유명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두 딸을 낳은 뒤 두 아들을 공개입양했다. 그는 “입양을 마치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불쌍한 한 아이의 인생반전극으로 봐서는 안 된다. 입양은 평범한 아이가 놓칠 수 있었던 평범한 가정사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일 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최 후보자와 자녀들은 13개 구호단체에 4000여만원을 기부했다. 부친 최영섭 예비역 대령은 6·25 당시 대한해협해전 참전용사다. 아들 영진씨도 해군 이병으로 입대하면서 부자가 함께 지난해 6월 사직구장에서 기념시구·시타를 했다. 본인은 육군 중위로 전역했다. 재판에선 엄격한 증거주의를 채택하는 경향을 보였다. 1973년 윤필용 사건에 연루돼 군사 쿠데타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전직 장성에 대한 재심사건에서 강압수사로 인한 허위자백을 인정해 무죄 선고를 내렸다. 당첨률을 높이기 위해 명의를 빌려 분양권을 신청한 이들에 대해선 “불법행위를 한 이들의 권리를 보호할 필요는 없다”고 판결했다. 최근엔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청와대문건’ 유출 사건에 연루된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2012년에는 지인을 법정관리 기업 관리인으로 선임한 뒤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선재성 전 판사에 대해 뇌물수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일부 변호사법 위반 혐의만 인정해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해 솜방망이 판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씨줄날줄] 장기 집권 독재자의 말로/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장기 집권 독재자의 말로/이순녀 논설위원

    ‘아랍의 봄’ 여파로 5년 전 권좌에서 쫓겨날 때까지 33년간 예멘을 철권통치한 알리 압둘라 살레(75) 전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한때 동지였던 후티 반군에 피살됐다. 1978년 군사 쿠데타로 북예멘을 장악한 살레는 남예멘을 흡수통일해 통일 예멘의 첫 국가수반이 된 뒤 1999년 여권 단독의 첫 직선제 대선에서 96%의 지지율로 당선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012년 실각한 뒤엔 후티 반군과 연대해 과도 정부에 맞서면서 재기를 노려 온 불굴의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예멘 정부를 지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후티 반군과 단절하면서 반역자로 몰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살레 전 대통령은 살해당했지만 전 세계 장기 집권 독재자들의 말로는 엇갈린다. 살레 전 대통령처럼 총탄에 비명횡사한 독재자도 있지만 천수를 누리거나 퇴출 후에도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운 좋은 독재자도 적지 않다. 노환으로 자연사한 대표적인 독재자는 지난해 90세를 일기로 사망한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다. 재임 기간은 무려 52년이다. 14년 장기 집권한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오랜 암 투병 끝에 2013년 58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재임 17년째인 2011년 급성심근경색으로 70세에 사망했다. 권력은 잃었지만 면책특권을 누리며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독재자로는 단연 로버트 무가베(90) 전 짐바브웨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부부 세습을 노리다 집권 37년 만에 지난달 21일 불명예 퇴진한 그는 불기소 면책과 재산권을 보장받았을 뿐만 아니라 퇴진 위로금으로 1000만 달러를 받아 챙겼다. 게다가 새 지도부가 그의 생일을 공식 휴일로 지정했다고 하니 쫓겨난 게 맞나 싶을 정도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프리카에는 무가베 못지않은 장기 집권 독재자들이 여럿 있다. 적도기니 대통령은 38년, 카메룬 대통령은 35년, 콩고공화국 대통령은 33년째 집권 중이다. ‘아랍의 봄’ 당시 살레와 함께 축출된 독재자들의 운명도 제각각이다. 42년간 리비아를 통치했던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는 2011년 고향에서 반군에게 붙잡혀 살해됐다. 반면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은 대량학살과 부정부패 등의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지난 3월 석방돼 카이로의 고급 주택에서 머물고 있다고 한다. 목숨 걸고 민주화 운동을 벌였던 국민으로선 기가 찰 노릇이다. coral@seoul.co.kr
  • 심재철 한국당 의원 “문재인 대통령, 내란죄로 고발해야”

    심재철 한국당 의원 “문재인 대통령, 내란죄로 고발해야”

    심재철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 부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내란죄로 형사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심 의원은 28일 국회 정론관 브리핑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이라는 미명으로 여러 행정부처에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해 벌이고 있는 일은 적법절차를 명백하게 위배한 잘못된 행위”라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문재인 정부는 불법적으로 국민 혈세를 사용하며 점령군처럼 국가기밀을 마구 뒤지는 모든 과거사위원회를 즉각 해체해야 한다”며 “검찰은 과거사위원회의 명령을 받들어 수행하고 있는 불법수사를 즉각 중단하고, 법원은 검찰이 수사, 구속한 모든 피의자를 즉각 석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 임종석 비서실장, 서훈 국정원장과 윤석열 서울 중앙지검장을 법치파괴의 내란죄와 국가기밀누설죄 등으로 형사고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당 차원의 법률대응기구 출범 등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했다. 심 의원은 ▲국가정보원의 댓글수사 은폐 혐의로 조사를 받던 고 변창훈 검사 사망 사건과 관련한 국가배상청구소송 ▲적폐청산TF의 불법행위 국정조사 ▲‘문재인 정부 인권유린 행위’에 대한 유엔 자유권위원회 및 고문방지위원회 제소 필요성도 제기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심 의원의 사과와 국회직 사퇴를 요구하고 법적 책임을 묻겠다면서 강력 반발했다. 백혜련 대변인은 논평에서 “심 부의장의 발언은 아무리 한국당 소속이라지만 5선 국회부의장으로서의 발언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충격적이고 국민을 우롱한 발언”이라며 “사상 초유의 탄핵으로 선출된 대통령에 대한 내란죄 고발 운운은 결국 탄핵에 불복하겠다는 것이며,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오만불손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백 대변인은 “심 부의장은 문 대통령 등이 전두환·노태우 등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찬탈한 세력과 같다고 보는 것이냐”고 쏘아붙이면서 “심 부의장의 내란죄 발언은 단순히 물타기를 넘어 정권 불복과 같은 수준의 금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심 부의장은 즉각 국민 앞에 사과하고 부의장직에서 사퇴해야 하며, 법적·정치적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할 것”이라며 “심 부의장의 망언에 대해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한국당은 명확히 입장을 밝히고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박완주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심 부의장의 사퇴와 한국당의 사과를 공식적으로 요구한다”며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법치주의를 송두리째 무너뜨린 국정농단 사태를 야기한 한국당 출신 국회부의장의 금도를 넘은 주장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박 대변인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민주적 방식으로 탄생한 정부를 신군부와 비교하다니, 무지하고 천박한 역사인식에 민주당은 표현 가능한 모든 언어를 동원해 규탄한다”며 “도둑이 제 발 저리듯 국민의 명령에 저항하는 적폐 세력의 온갖 꼼수에 동조할 국민은 없다”고 단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30만명 학살한 ‘우간다의 히틀러’… 시민에 사살된 ‘리비아 철권통치’

    죽을 때까지 권좌에서 내려올 것 같지 않았던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이 허망하게 몰락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 AP통신은 16일 아프리카의 주요 독재자들을 조명했다. 대부분 쿠데타로 집권해 권력에 취해 인권을 탄압하고 사치·향락을 즐기다 반대 세력에 의해 쫓겨나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 야흐야 자메 전 감비아 대통령은 1994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다. 그는 감비아를 22년 넘게 지배했다. 반대파를 고문·살해해 비난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야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자메 전 대통령은 개표 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다며 불복했으나, 국내외의 압력에 굴복해 물러났다. 이후 세네갈로 망명했다. ●세코, 서방 업고 콩고 30년 통치 모부투 세세 세코 전 콩고 대통령은 1965년 쿠데타로 국가를 장악했다. 그는 미국과 서방의 지지를 등에 업고 30년 넘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1997년 반대파에 의해 축출돼 모로코로 쫓겨났다. 그해 전립선암으로 사망했다. 이디 아민 전 우간다 대통령은 ‘우간다의 히틀러’로 불렸다. 8년 동안 30만명을 학살했다. 그는 군 내부의 반발을 무마하려고 1978년 탄자니아를 침공했다. 그러나 탄자니아군과 반대파 우간다민족해방전선(UNLF)의 반격으로 실각했다. 1979년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2003년 지병으로 숨졌다.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는 1969년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전복시켰다. 의회와 헌법을 폐지하고 권력을 독점했다. 2011년 그는 42년에 이르는 철권통치에 반발한 시민군에 의해 쫓겨났다. 도주하다가 그해 10월 시민군의 손에 사살됐다. ●대통령 살해하고 권력 잡은 콩파오레 찰스 테일러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은 군벌 출신이다. 정권을 잡기 전 1차 내전을 일으켰고, 1997년 정권을 잡은 후 2차 내전을 벌였다. 두 차례 내전으로 25만명의 시민이 숨졌다. 다이아몬드를 받는 조건으로 이웃 나라 시에라리온 반군을 지원하기도 했다. 시에라리온 내전으로 12만명이 사망했다. 그는 반군의 공세와 미국의 압박에 못 이겨 2003년 나이지리아로 망명했다. 2006년 나이지리아에서 체포됐다. 2012년 국제형사재판소(ICC) 산하 시에라리온특별법정(SCSL)에서 민간인 학살 교사 및 방조 혐의로 5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블레즈 콩파오레 전 부르키나파소 대통령은 1987년 쿠데타를 일으켜 토마스 상카라 당시 대통령을 살해하고 권력을 잡았다. 그는 27년간 집권한 뒤 2014년 헌법을 개정해 임기를 연장하려 했다. 대대적 반정부 시위에 부딪혀 그해 사임했다. 코트디부아르로 망명했다. 이센 아브르 전 차드 대통령은 1982년 쿠데타로 대통령이 됐고, 1990년 쿠테타로 물러났다. 재임 기간 중 야권 인사 4만명을 살해해 ‘아프리카의 피노체트’로 불렸다. 지난해 아프리카연합(AU) 특별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집단농장·산업 국유화 추진한 마리암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전 에티오피아 대통령은 1974년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를 폐위하고 대통령이 됐다. 정적 수천명을 죽이고 집단농장, 산업 국유화 등 급진적 정책을 펼쳤다. 1991년 에티오피아인민혁명전선에 의해 축출됐다. 짐바브웨로 망명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사설] 국정원 개명 앞서 환골탈태 내부 개혁이 먼저다

    국가정보원 개혁위원회가 국정원의 명칭 변경 등의 내용을 담은 국정원법의 연내 개정을 추진한다고 한다. 국정원은 또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내 정치 개입 등 불법행위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할 예정이다. 민간인 댓글부대 운영,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 과거 정권 시절 국정원이 저지른 정치 공작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의 고해성사와 환골탈태하겠다는 다짐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그제 긴급 체포됐다.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한 의혹을 받던 이 전 원장에 대해 검찰은 뇌물공여, 국고손실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이 어제 구속영장을 청구한 남재준·이병호 전 국정원장까지 합하면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장 3명이 전원 사법처리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전망이다. 이유 불문하고 국가의 최고 정보기관 수장들이 줄줄이 사법처리의 수순을 밟게 된 것은 참담한 일이다. 마치 조폭이 보스한테 상납하듯이 국정원장이 총 40여억원을 청와대에 다달이 돈을 보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국정원은 고개를 들 수 없는 처지다. 이들은 과거 정권에서도 있던 관행이라고 항변할지 몰라도 이제 만천하에 드러난 적폐를 모른 척 덮고 갈 수는 없다. 이제 그 부패의 관행을 끊어야 할 때다. 다만 정치보복 논란이 일지 않도록 더 정교한 수사와 함께 정무적 판단도 필요하다. 더구나 국정원은 정권 비호를 위한 일에는 물불 안 가리고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취소 요구 서한까지 노벨위원회에 보낸 것도 국정원 작품이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국정원으로 회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국정원이 이제 과거와 단절한다는 의미에서 문패를 새로 달겠다고 나서야 하는 막다른 골목에 왔겠는가. 이번에 국정원의 이름을 바꾼다면 창설 이래 네 번째 개명이 된다.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중앙정보부’로 출범한 국정원은 1981년 전두환 정권 시절 ‘국가안전기획부’로, 1999년 김대중 정부에 의해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하지만 그동안 국정원은 명칭만 바뀌고 권력 비호기관의 역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개혁 없는 국정원의 개명은 의미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치 개입 금지”를 강조한 바 있다. 그렇다면 국정원이 나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국내 정치를 버리고, 국가 안보를 위한 중추적인 정보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지금 같은 안보 위기에 국정원의 정보 역량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불법과 탈선을 일삼은 국정원이 다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으려면 이제 국내 정치 개입에 대한 유혹을 과감히 떨쳐 내고 정권이 아닌 국익과 국가 안위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그 출발은 내부 개혁이다.
  • 32세 권력자, 숙청의 칼 휘두르다

    32세 권력자, 숙청의 칼 휘두르다

    왕위 계승을 눈앞에 둔 무함마드 빈 살만(32) 사우디아라비아 제1왕위계승자(왕세자) 겸 국방장관이 왕자들과 전·현직 장관에게 숙청의 칼을 휘둘렀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82) 사우디 국왕은 이르면 올 연말, 늦어도 내년 초에는 퇴위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전임 압둘라 국왕 인사 사정 예고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TV 알아라비야 등에 따르면 4일(현지시간) 반(反)부패위원회가 왕자 11명, 현직 장관 4명, 전직 장관 수십명을 체포했다. 구체적인 혐의는 알려지지 않았다. 앞서 이날 살만 국왕은 빈 살만 왕세자를 위원장으로 앉힌 반부패위를 창설한다고 직접 공표했다. 몇 시간 뒤 부패와 관련된 인사가 무더기로 체포됐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반부패위는 현재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창궐 및 2009년 사우디 남부 항구도시 제다에서 발생한 기록적인 홍수와 관련된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발표해 전임 압둘라 국왕(2015년 1월 서거) 시절에 대한 강력한 사정 드라이브를 예고했다. 압둘라 국왕은 살만 국왕과 이복형제지만 사우디 왕실의 핵심 세력인 ‘수다이리 세븐’(초대 국왕의 부인 후사 알수다이리의 아들 7명)이 아니다. 반부패위에는 막강한 권한이 부여됐다. 부패인사로 지목한 인사를 수사하거나 체포할 수 있으며 여행 금지 조치를 내릴 수 있다. 자산 몰수까지 가능하다. 반부패위는 고위 인사의 국외 도주를 막으려고 개인 소유의 항공기가 이착륙하는 공항을 폐쇄했다. 또 사우디 왕가 소유의 리야드 리츠칼튼 호텔 객실을 비웠다. 이 호텔에서 용의자를 수용할 방침이다. ●왕자만 6000여명 권력 투쟁 치열 뉴욕타임스(NYT)는 “살만 국왕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자 최고 국가 고문인 빈 살만 왕세자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려는 일련의 조치 중 하나”라고 진단했다. 살만 국왕은 2015년 1월 즉위 직후 당시 무크린 왕세자를 부패를 이유로 경질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6월에는 무함마드 빈나예프 왕자까지 2년간 왕세자만 2번이나 퇴위시키고 친아들인 빈 살만 당시 국방장관을 왕세자로 책봉해 힘을 실어줬다. 사우디의 알사우드 왕가는 왕자만 6000명으로 추정될 만큼 방대해 절대군주제라는 표면적인 통치체제와 달리 내부의 권력 암투가 매우 치열해 왕위가 견고하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1953년 압둘아지즈 초대 국왕의 사후에 형제 상속으로 왕위가 이어진 사우디 왕가에서 손자 세대로 넘어가는 첫 사례다. NYT는 “32세에 불과한 왕세자가 사우디의 군사, 외교,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에 대한 통제력을 틀어쥐었다. 이에 대한 왕족들의 불만이 크다”면서 “빈 살만 왕세자의 비전을 지지하는 사람과, 빈 살만 왕세자를 냉담하고 무력하며 경험이 없는 지도자로 평가절하하는 사람들로 사우디가 분열됐다”고 전했다. ●아랍 최대 부호 빈 탈랄 왕자도 체포 아랍권 최대 부호이자 살만 국왕의 사촌인 알왈리드 빈탈랄 왕자도 체포됐다. 빈탈랄 왕자가 소유한 투자회사 ‘킹덤홀딩’은 디즈니, 21세기 폭스, 애플, 제너럴모터스(GM) 등 글로벌 기업의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5일 사우디 증시에서 킹덤홀딩의 주식은 3분기 실적 상승에도 불구하고 10% 가까이 폭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빈탈랄 왕자는 돈세탁과 관련된 혐의를 받고 있다. WSJ는 “정치적 전환기를 맞은 사우디 왕실이 부패를 빌미로 왕가와 각료들을 탄압하고 권력을 일원화하려 한다”면서 “익숙한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빈탈랄 왕자가 체포된 것에 대해서는 “사우디 내부에서 빈탈랄 왕자의 영향력은 크지 않다. 하지만 그는 사우디 재계에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의 아버지 탈랄 빈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는 빈 살만 왕세자의 왕위 계승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쿠테타 막는 국가수비대까지 장악 또한 사우디 왕실은 이날 반부패위와는 별개로 사우디 왕실 근위대인 국가수비대와 경제부 장관 등을 물갈이했다. 이들의 파면 이유는 전해지지 않았으나, 역시 빈 살만 왕세자의 권력 강화 조치 일환으로 풀이된다. 이번에 파면된 미테브 빈 압둘라 전 국가수비대 사령관은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전 국왕의 아들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고위 관리였다. 빈 살만 왕세자가 급부상하기 전까지 차기 왕세자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미테브 사령관을 숙청함으로써 빈 살만 왕세자는 정규군뿐 아니라 왕가를 보호하고 쿠데타를 막는 근위대인 국가수비대(백색 군대)까지 통제할 수 있게 됐다. 경제부 장관도 정부자산 매각 정책을 이끈 친위 인물인 HSBC 중동 최고경영자(CEO) 출신 무함마드 알투와즈리로 바뀌었다. ●시아파 반군 사우디 향해 미사일 한편 알아라비야는 이날 예멘에서 리야드 외곽의 킹 칼리드 공항을 향해 발사한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했다고 보도했다. 예멘의 시아파 반군 ‘후티’는 자신들이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주장했다. 예멘에서는 사우디의 지원을 받는 수니파 정부와 후티족 시아파 반군의 내전이 3년째 지속되고 있다. 후티의 미사일이 이처럼 인구밀집지역 가까이 날아온 것은 처음이다. 사우디 국영 SPA통신은 “민간인과 인구가 많은 지역을 겨냥해 미사일이 발사됐다”면서 “격추된 미사일 잔해가 공항 내부 사람이 없는 지역에 떨어졌으며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기무사 ‘5·18 특수본’ 소속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도 사찰

    기무사 ‘5·18 특수본’ 소속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도 사찰

    1996년 국군 기무사령부가 당시 전두환·노태우씨를 수사하던 문무일 검사(현 검찰총장)를 사찰하고 수사팀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낸 문건이 발견됐다. 기무사는 또 당시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연구관까지 광범위하게 뒷조사한 것으로 드러났다.이런 사실은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5·18 특수부 문무일 검사, 동생이 희생된 피해자 가족’이라는 제목의 문건에 의해 확인됐다고 연합뉴스가 31일 보도했다. 1996년 1월 작성된 이 문건에서 기무사는 “서울지검의 5·18 특별수사본부 소속 문 검사는 5·18 당시 동생이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 가족으로 알려져 피의자 측의 기피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1995년 11월 30일에 출범한 검찰 ‘12·12 사건 및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는 1979년 12·12 쿠데타(전두환·노태우를 앞세운 신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킨 사건)와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및 학살’의 주범인 전씨와 노씨를 그 해 12월 21일에 기소했다. 두 사람에게는 반란수괴·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기무사는 또 문건에서 “문 검사는 61년 광주시 북구 유동에서 출생해 80년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고대 법대를 거쳐 86년 사법시험에 합격, 헌재 서울지검 특수2부에 소속돼 있으나 서울지검 특수부가 5·18 특별수사본부로 편성돼 5·18 수사검사로 참여(하고 있다)”면서 “5·18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동생이 계엄군 발포로 사망해 현재 피해자 가족 신분으로 5·18 수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기무사는 특히 “수사검사가 고소·고발인과 특별한 관계에 있으면 다른 검사로 교체하는 것이 관행”이라면서 문 검사를 수사팀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다만 기무사는 “문 검사의 경우 피의자 측에서 문제를 삼거나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아 검찰에서 교체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당시 문 검사는 특별수사본부에서 전씨의 비자금 관련 혐의를 전담한 수사팀에 배치돼 사실상 5·18 수사에는 관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의원은 또 이에 앞서 기무사가 헌법재판소를 사찰한 정황이 담긴 문건 2종을 함께 공개했다. 검찰은 특별수사본부가 출범하기 전인 1995년 7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전씨와 노씨를 불기소 처분했고, 고소·고발인들은 불기소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헌재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헌재가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각하 결정할 것이라는 정보가 새면서 청구인들이 소송을 취하해 심판이 중단됐다. 기무사는 이와 관련해 ‘헌재 연구관, 5·18 검찰 결정에 부정적 인식’이라는 문건에서 “연령이 비교적 젊은 계층의 연구관 상당수가 검찰의 결정 처분과 5·18 사건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헌재가 젊은 연구관들의 의견에 따라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취소할까 우려한 것이다. 이후 헌재 결정 내용이 유출되자 기무사는 ‘5·18 관련 헌재 결정내용 사전 누설자 조승형 지목’이라는 문건에서 “조승형 재판관은 전남 장흥 출신으로,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을 지낸 후 평민당 추천으로 재판관에 임명됐다”고 지목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문민정부가 들어서도 검사나 헌법재판관이 기무사의 사찰 대상이었다는 점은 충격적”이라면서 “전두환 정권에서 별동대 역할을 한 기무사가 민주화 이후에도 진실 은폐에 앞장섰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직접 만든 지도에 지역 민심 ‘빼곡’… 태국 국민 사로잡은 건 돈 아닌 도덕

    직접 만든 지도에 지역 민심 ‘빼곡’… 태국 국민 사로잡은 건 돈 아닌 도덕

    검소한 생활로 온 국민 존경 서거 직전까지 민심 귀기울여 왕실모독죄·군부와 공생 ‘그늘’ 태국 방콕의 교통 체증은 듣던 대로 대단했다. 택시기사는 신호 대기로 설 때마다 스마트폰의 온라인 메신저창을 만지작거렸다. 본능적으로 안전벨트를 조여 맨 뒤 화면을 흘깃 훔쳐봤다. 푸미폰 아둔야뎃 전 태국 국왕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었다. 택시기사는 친구에게서 받은 그 동영상을 다른 친구들에게 전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문득 깨달았다. 방콕 시내 곳곳에 걸려 있는 푸미폰 전 국왕의 수많은 초상화보다 훨씬 더 많은 태국인 한 명 한 명의 가슴속에 국왕이 남아 있었다.지난해 10월 13일 푸미폰 전 국왕이 서거한 뒤 그의 사진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는 태국인들의 모습은 태국 밖의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냈다. 정부나 왕실로부터 강요받거나 세뇌당한 것 아니냐는 의심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22일부터 사흘간 방콕에서 만난 태국인들은 진심으로 국왕을 존경하고 있었다. 흔히 재위 70년간 이어진 전 국민적 존경과 사랑의 근원에 대해 태국인들을 먹고살게 해준 ‘로열 프로젝트’를 꼽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 원인은 따로 있었다. 그는 태국인들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몸소 가르쳐 준 ‘도덕적 롤모델’이었다. 22일 방콕 중심지 수쿰빗 근처에 있는 퀸 시리낏 컨벤션센터에서는 책 엑스포가 열리고 있었다. 행사장 한편에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푸미폰 전 국왕에 대한 책을 무료로 받으려는 사람들이었다. 800명 한정이라 사람들은 번호표를 미리 받기 위해 줄을 섰다고 했다. 이 중 한 명인 나리폰 프라콩쌉(44·회사원)은 검은 옷에 검은 리본을 달고 있었다. 그는 국왕에 대해 묻자 “왕의 서거 소식을 TV에서 봤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면서 눈물을 터뜨렸다. 그는 “태국에는 자발적으로 조직된 왕의 팬클럽이 있다. 나도 활동하고 있다. 왕의 일정을 체크하고 따라가기도 했다”면서 “그분은 나의 아이돌”이라고 말했다. 나리폰 말고도 푸미폰 전 국왕을 추모하는 사람들은 그가 인간으로서 얼마나 훌륭했는지 앞다퉈 말한다. 첫 번째로 손꼽히는 것이 국왕의 성실함이다. 태국인들은 국왕이 전국을 직접 돌아다니며 만든 지도를 기억한다. 국왕은 이 지도를 색깔별로 다르게 표시해 지역별로 제각각인 요구사항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그는 서거하기 직전까지 지도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두 번째는 검소함이다. 국왕은 막대한 부를 쌓아 놓고도 직접 발명한 치약 짜는 도구로 인해 납작해진 치약을 사용하고, 평범한 중산층 주택으로 보이는 소박한 별장에 머물렀다. 국왕의 세 번째 미덕은 겸손함. ‘로열 프로젝트’가 한창이던 시절 벽지의 노인과도 손을 잡으며 스스럼없이 얘기했고, 요란한 의전을 좋아하는 정치인들과 달리 젊은 시절 직접 지프를 몰고 다녔다. 푸미폰 전 국왕은 자신이 모범이 돼 태국인들에게 이상적 삶의 방식을 제시했다. 24일 방콕 서쪽 나콘파톰에 있는 마히돈대학에서 만난 인권과평화연구소 나파랏 크란라타나수트 강사는 “국왕은 모든 면에서 나의 롤모델”이라고 말한다. 그는 “왕은 서거 전 ‘우리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일을 멈추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가르쳐준 대로 국가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왕을 제대로 추모하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태국의 평균 수명(2015년 기준)은 74.9세. 즉 현재 대부분의 태국인들에게 70년간 왕좌에 앉았던 국왕의 서거는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게다가 나라의 아버지로 추앙받았던 존재다. 태국인들은 길을 잃은 느낌이라고 했다. 자신의 이름을 프레디로 소개한 한 남성(37)은 “특히나 노인 세대에서는 앞으로 우리는 누구의 뒤를 따라가야 할지, 태국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푸미폰 전 국왕의 장남으로 지난해 12월 국왕으로 즉위한 마하 와치랄롱꼰(65)이 화려한 여성 편력과 잦은 외유 등 아버지와는 사뭇 다른 성정이어서 태국인들의 걱정은 더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언급하면 ‘왕실 모독죄’로 큰 곤욕을 치르기 때문에 아무도 입 밖에 내지 못한다. 왕실 모독죄는 완벽한 듯 보이는 푸미폰 전 국왕이 남긴 어두운 유산이기도 하다. 국왕은 재위 시절 일어난 19차례의 쿠데타 중 왕실에 충성하는 세력의 쿠데타는 승인하고 그렇지 않으면 승인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쿠데타를 일으키는 군부 세력이 정당성을 얻기 위한 명분으로 ‘왕실 보호’를 내세우는 탓에 왕실과 군의 ‘암묵적 공생 관계’가 태국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왕실 모독죄가 두려워 이런 비판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왕실 모독죄를 적용하는 나라 중 하나인 태국은 국왕에 대한 모독죄 혐의가 입증되면 최대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박은홍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태국정치 전공)는 “태국의 일부 비판적 지식인들은 왕실이 군의 후원을 받으며 정치에 관여한 듯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원래 입헌군주제의 취지대로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태국 민주주의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고 전했다. 방콕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50만명 숨진 인도네시아 반공 대학살, ‘美정부 묵인’ 증거 50여년 만에 공개

    美대사관 “환상적 전환 있었다” 알면서 침묵… 보도도 통제 미국이 과거 냉전 시대 인도네시아 친미 정권 수립을 위해 20세기 최악의 대량 학살로 꼽히는 ‘반공 대학살’을 묵인했음을 보여 주는 외교문서가 공개됐다고 AP통신이 17일(현지시간) 전했다. 이 문서들은 이날 미 정부가 1963~1966년 사이 주인도네시아 미대사관에서 작성된 외교문서 수천건의 기밀 지정을 해제하면서 공개됐다. 1965년 당시 인도네시아는 거의 소련의 영향권에 편입될 상황이었다. 공산당(PKI) 당원은 수백만명에 달해 중국, 구소련에 이어 세계 3위의 규모를 자랑했으며, 반미·반소련·비동맹 노선을 주창하던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도 반미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해 9월 30일 조작 의혹이 제기되는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친미 성향의 군부가 집권하면서 상황은 뒤바뀌었다. 군부는 쿠데타 배후 세력을 척결한다면서 무차별 살상을 저질렀다. 수카르노 체제는 그대로 붕괴했다. 이와 관련, 12월 21일 미대사관은 본국 국무부에 보낸 전문에서 “불과 10주 만에 환상적 전환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미 10만명이 넘는 시민이 학살된 시점이었다. 전문은 “발리에서만 약 1만명이 살해됐다”고 전했고, 두 달 뒤 발송된 전문에는 “발리에서 일어난 학살로 인한 희생자의 수가 8만명으로 늘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문건에는 인도네시아 최대 이슬람 단체 나들라툴 울라마(NU)와 산하 청년단체들이 학살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내용도 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상당수 지역에서는 공산당 가담 혐의로 체포된 주민 수가 급증해 시설 수용 및 식량 배급이 힘들어지자 이슬람 청년단체가 이들을 무차별 살상한 정황이 남아 있다. 1965년 12월 인도네시아 서부 메단 주재 미영사관은 현지 이슬람 사원에서 “공산당이 피를 흘리는 것은 닭을 잡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내용의 설교가 이뤄졌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목숨을 잃은 민간인 중 상당수는 공산당과 무관한 이들이었다. 그렇게 최소 50만명이 학살됐지만 미 외교관들은 친미 정권 수립이라는 결과에만 환호했다. 심지어 미 외교관들은 이런 만행에 앞서 군부에 불리한 외신 보도를 억제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비자 전쟁’으로 번진 美·터키 외교갈등

    미국과 터키 관계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미국 정부가 지난 4일(현지시간) 터키 당국이 수도 앙카라 주재 미 총영사관 직원을 체포한 것과 관련, 8일 비(非)이민 비자 발급을 중단하자 터키도 이에 맞서 미 주재 터키 대사관의 비자 발급을 중지했다. 지난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쿠데타를 진압한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인 터키와 서방 동맹국들과의 갈등이 더욱 격화하고 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터키 주재 미 대사관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최근의 사건들로 인해 미 정부는 미 외교기관과 직원의 안전에 대한 터키 정부의 약속을 재검토하게 됐다”며 “재검토가 진행되는 동안 (터키로의 미국인) 방문자 숫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터키의 모든 미 외교시설에서 비이민 비자 서비스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최근의 사건들이란 4일 터키 주재 미 총영사관의 터키인 직원 메틴 토푸즈가 터키 쿠데타 배후로 지목된 성직자 펫훌라흐 귈렌과 연계돼 있다는 혐의로 체포된 일을 뜻한다. 당시 미 당국은 총영사관 직원의 체포가 미국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비이민 비자 발급 중단 조치는 즉각 발효됐다. 중단 대상은 전자비자 및 국경 발급 비자, 여권 첨부 비자 등 모든 비자에 적용됐다. 몇 시간 뒤 터키 정부도 똑같은 조치로 맞대응했다. 워싱턴 주재 터키 대사관은 트위터에서 “최근의 사건들로 인해 터키 정부는 터키 외교기관과 직원의 안전에 대한 미국 정부의 약속을 재검토하게 됐다”며 “재검토가 진행되는 동안 (미국으로의 터키인) 방문자 숫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의 모든 터키 외교시설에서 비이민 비자 서비스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미측 성명을 고스란히 주어만 바꾼 것이다. 미국과 터키는 미국에 거주 중인 귈렌의 터키 송환을 두고 신경전을 벌여 왔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맞서 싸우는 시리아 내 쿠르드 반군에 대한 미국의 지원 문제를 둘러싸고도 외교적 마찰이 이어졌다. 터키가 시리아 내 쿠르드 반군을 분리독립을 꾀하는 쿠르드노동자당(PKK)과 연계된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터키는 독일과도 껄끄러운 관계다. 독일로 망명한 터키 측 군 인사들에 대한 소환 요청을 독일 측이 거부하자 터키는 지난 6월 터키 내 독일 연방군 기지에 대한 독일 의원들의 방문을 불허했다. 지난달 독일 총선에서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집권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과 사민당 등에 표를 던지지 말라고 터키계 독일 유권자들에게 주문하면서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터키 검찰은 또 지난 8일 테러 연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독일인 페터 슈토이트너 등 인권 운동가 11명에 대해 최대 징역 15년을 구형하기도 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러시아 봉쇄’ 임무를 수행해 온 터키가 미국, 유럽 동맹국들과 대립하면서 나토가 흔들릴 우려도 제기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러시아제 첨단 방공미사일 시스템 S400 ‘트라이엄프’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터키의 러시아제 무기 구매 결정은 최근 미국, 독일 등 나토 회원국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명예로운 양위’ vs ‘불명예 퇴위’...21세기 ‘왕’ 노릇 힘드네

    ‘명예로운 양위’ vs ‘불명예 퇴위’...21세기 ‘왕’ 노릇 힘드네

    “여러분, 카리브해의 우리 영토인 신트마르턴 섬과, 세인트 유스타티우스 섬의 허리케인 피난민들을 돕기 위해 우리 정부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현 내각 출범 초창기인 2012년과 비교하면 확실히 번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번영의 과실을 누리는데 소외되는 사람이 나와서는 안될 것입니다. 내년에는 4억 3500만 유로(약 5867억원)의 추가 예산이 노인 요양 시설을 위해 쓰이게 될 것이고 초등학교 교사 월급 인상을 위해서 2억 7000만 유로가 배정될 것입니다.” 이는 유럽 어느 공화국의 대통령이나 총리가 한 발언이 아니다. 입헌군주국가인 네덜란드의 빌럼 알렉산더르(50) 네덜란드 국왕이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의회에서 한 연설의 일부다. 유럽 입헌군주들은 의례에만 관여할 뿐 실질적 통치는 내각과 의회에 위임하며 정치 현안이나 정책과 관련한 발언은 자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알렉산더르 국왕의 거침없는 정치 발언은 이례적이다. 이는 그의 자유분방한 성향과 함께 선대 때부터 쌓아온 왕가에 대한 국민의 폭넓은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현재 네덜란드와 같이 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29개국이며 영국 국왕을 형식적 국가 원수로 삼는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일부 영연방 국가들까지 포함하면 44개국에 달한다.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 스페인 등의 유럽 입헌군주는 상징적 국가 원수 지위만 유지하고 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나 오만,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권 국왕은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전제군주로 분류된다. ‘권력은 부자 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속성에 따라 절대 왕정시대에는 생전 양위는 흔치 않았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국왕들이 장기간 재위와 고령에 따른 피로감을 호소하는 한편 왕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후계자에게 생전에 양위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의 선대 군주들은 물러날 때가 됐다고 판단되면 후임자에게 왕위를 양보하면서 왕실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전통으로 왕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유지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유럽 왕실 잇단 스캔들로 위상 저하소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네덜란드 왕가는 알렉산더르 국왕이 즉위하기 이전인 1890년부터 123년에 걸쳐 즉위한 여왕 3대가 모두 자식에게 생전 양위하는 전통을 만들었다. 1890년 만 10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빌헬미나(1880~1962년) 여왕은 58년간 왕좌를 지키다가 1948년 외동딸 율리아나(1909~2004년)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율리아나 여왕도 아들이 없었던 탓으로 1980년 맏딸 베아트릭스(79)에게 양위했다. 베아트릭스 여왕은 2013년 4월 맏아들인 빌럼에게 양위하고 ‘상왕’(네덜란드에서는 ‘대공’으로 부름)으로 물러났다. 이들 세 명의 여왕은 재위 기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지방을 돌며 국민과 소통하는 서민 행보를 보이며 인기를 관리했다. 알렉산더르 국왕도 어머니와 외할머니, 외증조할머니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국민과의 소통을 중시한다. 지난 8월에는 둘째 딸 알렉시아(12) 공주가 고교 입학 첫날 다른 학생들처럼 바지를 입고 백팩을 멘 채로 자전거를 타고 등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알렉산더르 국왕이 이 장면을 직접 촬영해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다.네덜란드의 이웃 국가인 벨기에의 알베르 2세(83) 전 국왕도 2013년 7월 맏아들 필리프(56)에게 건강 문제를 이유로 왕위를 물려줬지만 네덜란드와는 사정이 다르다. 알베르 2세의 경우 자식이 없는 형 보두앵 1세가 1993년 심장마비로 급사하자 왕위를 이어받았다. 알베르 2세는 2000년 받은 심장 수술의 관리 문제를 양위 이유로 내세웠지만 본인이 혼외 자식을 낳았다는 추문에 끊임없이 휩싸였다. 2007년에는 둘째 아들 로랑 왕자의 공금 횡령 의혹이 겹쳐 스트레스를 받아 퇴위하기에 이른다.2014년 6월 재위 39년 만에 퇴위한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79) 전 국왕도 초기에는 국민의 사랑을 받다 말년에 몰락한 인물이다. 카를로스는 1969년 군부 출신 독재자 프란시스 프랑코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됐고, 1975년 프랑코가 사망하자 즉위했다. 1978년 입헌 군주제로 헌법을 개정하고 1981년에는 군부의 쿠데타 시도를 무산시키는 등 스페인의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2008년 경제위기와 재정적자가 불거지면서 왕실의 사치스러운 행태가 도마에 올랐고 2011년 딸 크리스티나 공주 부부의 공금 유용 혐의 등 부패 추문까지 이어져 왕실의 인기는 급락했다. 결국 재위 39년 만에 “새로운 세대가 주역이 돼야 한다”며 아들 펠리페 6세(49)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부탄에서는 국왕이 절대군주제 포기하고 개혁 앞장 히말라야 산맥의 부탄에서는 절대군주가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입헌군주제로의 전환을 주도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1972년 17세의 나이로 즉위한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62) 전 국왕은 51세 때인 2006년 12월 아들 지크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37)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그는 2001년 국왕의 행정권을 각료위원회에 이양하는 등 재위 기간 말년에는 왕실의 권력을 축소하는 일에 전념한 계몽군주로 평가된다. 결국 부탄은 2008년 3월 첫 총선을 실시하며 입헌군주제로의 전환을 이뤄냈고 부탄 왕실은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비슷한 시기 인접국가인 네팔 갸넨드라(70) 당시 국왕이 입헌군주제를 전제군주제로 바꾸려다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폐위됐고 2008년 공화정으로 바뀐 것과 대조적이다. 이밖에 일본 아키히토(84) 일왕은 지난해부터 건강 문제를 이유로 생전에 퇴위하겠다고 밝혀 현재 선양을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다.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대표적 군주는 현재 유럽에서 재위 기간이 가장 긴 엘리자베스 2세(91) 영국 여왕이다. 1952년 26세의 나이에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는 66년째 군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76) 여왕은 45년, 스웨덴의 칼 구스타브 16세(71)도 44년간 왕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의 카리스마는 따라갈 수 없다. 엘리자베스 2세 치세 기간 거쳐 간 총리도 윈스턴 처칠부터 테리사 메이까지 13명이다. 여왕의 남편 필립공도 96세의 고령이다.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찰스(69) 왕세자는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아직 왕세자에 머물러 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 모리가 지난해 4월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영국인의 70%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계속 재임해야 한다고 답변해 양위해야 한다는 의견(21%)을 크게 앞섰다. 영국 왕실 전기작가인 로버트 잡슨은 지난해 4월 이브닝 스탠더드 기고를 통해 “여왕의 백부인 에드워드 7세가 1936년 갑자기 아버지 조지 6세에게 양위해 겪었던 혼란과 고통을 생각하면 여왕이 왕위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세계 군주제의 입지는 험난할 것 21세기 군주들이 생전 은퇴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군주제의 입지는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경제난과 긴축 재정 속에서도 왕실을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한 해 왕실 운영비로 3610만 파운드(약 518억원)를 쓰는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사후 찰스 왕세자가 그만큼 존경받을지도 미지수다.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네덜란드 왕실도 2012년 한 해 예산이 3100만 파운드 수준이었다는 사실이 가디언 보도로 밝혀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영국 여왕이 형식적 국가원수로 남아 있는 영연방 국가들 내에서도 군주제에 대한 반대 기류가 거세다. 1999년 완전한 공화국으로의 전환할 것인가 여부를 놓고 실시했던 국민투표가 부결됐던 호주에서도 개헌 논의는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맬컴 턴불 호주 총리는 지난해 1월 해럴드 선과의 인터뷰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통치가 끝나기 전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포스트 엘리자베스 2세’ 시대는 달라질 것임을 예고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훈 센 32년 철권통치 연장 행보에… 웃음꽃 핀 中

    훈 센 32년 철권통치 연장 행보에… 웃음꽃 핀 中

    캄보디아의 훈 센(65) 총리. 1985년부터 지금까지 32년째 단독·공동총리를 오가며 ‘철권’을 휘두른,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집권한 지도자 중 한 명이다. 내년 7월 총선을 앞두고 훈 센 총리는 집권 연장을 위한 행보를 본격화하며 “10년은 더 일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의 독재 행보를 지켜보며 웃음 짓는 것은 다름 아닌 중국이다. 그동안 훈 센 총리가 이끄는 캄보디아에 막대한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얻은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훈 센 총리는 지난 3일 제1야당인 캄보디아구국당(CNRP) 지도자 켐 소카를 미국과 결탁해 정부 전복을 꾀한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재판에 넘겨진 소카 대표는 반역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유죄가 인정되면 최장 3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캄보디아 정부는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영자지 캄보디아데일리에 지난 10년치 체납 세금 630만 달러(약 71억원)를 내라고 갑자기 통보, 캄보디아데일리는 지난 4일 결국 폐간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또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과 미국의소리(VOA) 방송 송출을 차단하고 미 비영리단체 민주주의연구소(NDI) 활동도 금지했다. 11일 일간 크메르타임스와 신화통신에 따르면 훈 센 총리는 전날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의류업계 근로자들과 만나 캄보디아구국당이 반역 행위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 해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1야당 지도자 구속에 이어 당 해체까지 이뤄지면 내년 7월 총선은 사실상 여당의 독무대가 된다. 훈 센 총리는 지난 6일 “이전에는 언제 공직을 사임할지 매우 주저했지만 최근 야당 지도자의 반역 행위를 목격하고서 10년은 내 일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며 “세계에서 최장수 총리가 되는 나를 질시하지 말 것을 외국인들에게 부탁한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훈 센 총리가 이렇게 독재 야욕을 거침없이 드러낼 수 있는 배경에는 중국과의 밀월 관계도 한몫하고 있다. 훈 센 총리는 그동안 캄보디아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온 중국을 등에 업고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한편, 중국은 훈 센 총리와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남중국해 등에서 이익을 보겠다는 계산을 각각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크메르타임스에 따르면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지난 7일 캄보디아를 방문해 헹 삼린 캄보디아 국회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은 캄보디아가 정치적 혼란의 와중에 주권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노력을 지지한다”며 “중국은 어떤 상황에서도 캄보디아를 돕겠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의 시사평론가 라오몽헤이는 “중국의 캄보디아 정부 지지는 예상된 것이었다”며 “중국은 캄보디아와의 우호적 관계에서 이익을 보려는 전략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해 7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남중국해 영유권 판결 직후 캄보디아에 36억 위안(약 6243억원) 규모의 지원을 약속했다. 캄보디아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을 지지한 것이 경제 지원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훈 센 총리도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중국에서 막대한 원조와 차관을 지원받았고, 이런 경제적 성공을 정권의 정당성으로 이용하고 있다. 원래 친(親)베트남 노선을 꾸준히 걸어온 훈 센 총리는 1997년 노로돔 라나리드 왕자를 몰아내고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뒤 국제사회의 고립에 직면했다. 훈 센 총리는 캄보디아에 제재를 가하려던 서방 세계를 피해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선택을 한다. 훈 센 총리는 1999년 처음 중국을 방문해 무이자 차관 2억 달러와 1830만 달러 원조 약속을 선물로 안고 왔다. 이후로 중국은 캄보디아에 막대한 지원을 이어 나갔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중국은 대(對)캄보디아 투자국 1위로, 캄보디아에 대한 중국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나머지 나라를 합친 것보다도 큰 수준이었다. 중국이 2013년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추진한 뒤 이 같은 움직임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2015년 중국은 캄보디아가 진 빚 8700만 달러를 탕감해 줬다. 중국은 이어 지난해 7월 캄보디아의 인프라, 교육, 건강 분야의 개선을 위해 6억 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지난 5월에는 훈 센 총리가 중국을 찾아가 2억 4000만 달러의 원조 약속을 받아 왔다. 정국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훈 센 총리는 판 소라삭 상무장관과 함께 11일부터 13일까지 중국 광시(廣西)성에서 열리는 중국·아세안 엑스포에 참석한다고 크메르타임스는 전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메르켈 “터키 EU가입 반대”… 난민 문제 불거지나

    메르켈 “터키 EU가입 반대”… 난민 문제 불거지나

    “터키가 유럽연합(EU) 회원이 돼서는 안 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3일(현지시간) ‘터키 EU 가입 불가론’을 천명했다. 3주 뒤 치러지는 독일 총선의 마지막 변수로 꼽힌 TV토론에 출연한 메르켈 총리는 마르틴 슐츠 사회민주당 당수와의 양자 토론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AFP통신 등이 이날 전했다.메르켈 총리는 TV토론에서 “터키의 EU 가입 대화를 중단할 수 있는지 EU 회원국과 논의할 것”이라면서 “(터키가) 가입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터키와의 경제 접촉에 대한 실질적 제재를 부과하고 터키 여행 경보 발령을 내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메르켈 총리가 터키의 EU 가입을 명시적으로 거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사실상 EU를 이끌고 있는 독일은 터키와 지난해 3월 난민 협정을 맺고 터키가 유럽행 난민을 차단하는 대신 EU 가입 협상을 서두르자고 약속했다. 이 협정을 이끌었던 메르켈 총리가 태도를 바꾼 데는 민주주의적 가치가 훼손되고 있는 터키의 정치적 상황 때문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실패한 쿠데타’ 이후 쿠데타 진압을 구실로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는 등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는 특히 지난 4월 국민투표 형식으로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헌을 단행했다. 이에 EU의회는 지난 7월 터키의 EU 가입에 관한 협상을 중단하라고 EU와 회원국에 권고하는 보고서를 채택하기도 했다. 터키의 ‘반민주주의적 흐름’은 독일과의 관계도 악화시키고 있다. 터키는 지난 3월 독일 일간지 디벨트의 터키 특파원을 테러 선전 혐의로 구속한 데 이어, 7월에는 독일 인권운동가를 테러조직 지원 혐의로 체포했다. 지난달에는 터키계 독일 국적 작가인 도간 아칸리가 스페인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터키 당국의 수배 요청으로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체포됐다가 조건부로 석방되기도 했다. 터키에 정치적 이유로 구금돼 있는 독일 국민은 모두 12명이다. AFP통신은 메르켈 총리의 터키의 EU 가입 반대 방침은 지난달 31일 터키가 2명의 독일 국민을 ‘정치적 이유’ 때문에 체포한 뒤에 나온 것이라고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터키는 모든 민주주의적 관례로부터 위험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면서 “그러나 터키와의 외교관계를 끊을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EU가 터키와 맺은 난민 협정이다. 터키는 EU 가입이 결렬될 경우 유럽행 난민 통제를 그만두겠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유럽이 다시 한번 난민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협정은 지난해 3월 이후 터키를 거쳐 그리스로 들어오는 중동 난민 수를 크게 줄이는 역할을 했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에 도착한 난민 수는 모두 36만 3300명으로 전년(100만 7400명)의 3분의1 수준으로 급감했다. 1987년 EU의 전신인 유럽공동체에 회원 가입을 신청했던 터키는 인권과 민주주의 등 각종 정치·경제적 수준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가입을 거절당했다. EU와 터키는 2005년부터 정식 가입 협상에 들어갔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잉락 친나왓 전 태국 총리 두바이 체류… 英 망명 추진

    잉락 친나왓 전 태국 총리 두바이 체류… 英 망명 추진

    실형이 예상되는 재판을 앞두고 해외로 도피한 잉락 친나왓(50) 전 태국 총리가 현재 두바이에 체류 중이며 곧 영국으로 건너가 망명을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고 AFP통신 등이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27일 전했다.치안 관련 조직에 몸담은 이 소식통은 “잉락이 태국에서 개인 비행기를 이용해 싱가포르를 거쳐 두바이로 갔다”면서 “두바이는 친나왓 가문의 가장인 탁신 전 총리의 활동 근거지”라고 밝혔다. 잉락은 현재 오빠인 탁신 전 총리와 함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식통은 “탁신은 여동생의 탈출을 오랫동안 준비했으며 동생이 단 하루라도 감옥에 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잉락의 최종 목적지는 두바이가 아니라 영국이며 그곳에서 망명을 추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국에 있는 잉락의 외아들도 조만간 영국으로 건너갈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소식통은 “잉락은 탁신이 주택을 소유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는 영국에 머무르겠지만, 정치적 망명자 지위를 얻으려 할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방콕포스트는 전했다. 잉락은 총리 재임 중인 2011∼2014년 농가 소득보전을 위해 시장가보다 50%가량 높은 가격에 쌀을 수매하는 정책으로 농촌 지역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2014년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군부가 잉락을 쌀 수매 관련 부정부패 혐의로 탄핵해 5년간 정치 활동을 금지했고, 검찰은 정부의 재정손실과 부정부패를 방치했다며 잉락을 법정에 세웠다. 민사소송에서 350억 바트(약 1조 1700억원)의 벌금을 받고 재산까지 몰수당한 잉락은 지난 25일 형사소송 판결을 앞두고 종적을 감췄다. 태국 대법원은 잉락에 대한 형사소송 선고 공판을 다음달 27일 속개할 예정이며, 잉락이 출석하지 않더라도 궐석재판 형태로 판결문을 낭독할 예정이다. 치안당국의 감시를 받아 온 잉락이 태국을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잉락이 군부의 의도적 묵인하에 도피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으나 군부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5.18 때 ‘발포 명령 하달’ 문건 공개…‘전두환 측근’ 최세창 재조명

    5.18 때 ‘발포 명령 하달’ 문건 공개…‘전두환 측근’ 최세창 재조명

    지난 24일 5·18 기념 재단이 1980년 5월 21일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1쪽짜리 군 문건을 최초로 공개했다. 이 문건에는 ‘발포 명령 하달’, ‘광주 소요가 전남 전 지역으로 확대됨에 따라 (경남) 마산 주둔 해병 1사단 1개 대대를 (전남) 목포로 이동 예정’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1980년 5월 21일은 계엄군이 전남도청 앞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한 날이다.이렇게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도록 계엄군이 발포 명령을 하달했다는 내용이 적힌 기록이 처음으로 공개되면서 당시 최세창 전 제3공수여단장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집단 발포 전날인 1980년 5월 20일 밤 11시 전남대 인근 광주역 앞에서 제3공수여단 소속 군인의 발포로 시민 4명이 사망했다. 당시 제3공수여단장이 최 전 여단장이다. 육군사관학교 13기 출신의 최 전 여단장은 1980년 5월 17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의 실권자이자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씨가 과거 제1공수여단장이었을 때 부단장을 지낸, 전두환씨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 조사기록 보고서 등을 보면, 최 전 여단장은 1980년 5월 20일 밤 10시30분 ‘경계용 실탄’을 위협 사격용으로 공수부대 각 대대에 지급했다. 육군본부 군사연구실이 낸 ‘광주 사태 체험수기’(1988)에도 이상휴 중령(당시 제3공수여단 13대대 9지역대장)이 “전남대에서 급식 후 중대장 지역대장에게 M16 실탄 30발씩 주고, 사용은 여단장 통제”라고 진술한 내용이 나온다. 제3공수여단의 지휘계통상 상급부대인 제2군사령부은 제3공수여단에 ‘발포 금지’ 및 ‘실탄 통제’ 지시(1980년 5월 20일 밤 11시20분)를 내렸다. 하지만 5월 20일 밤 제3공수여단 소속 군인의 총탄에 시민 4명이 목숨을 빼앗기고 말았다.하지만 당시 진상규명위는 발포 명령자에 대해서는 “판단 불가”라며 끝내 책임자를 규명하지 못했다. 최 전 여단장은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열린 ‘12·12 군사 반란’ 및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재판에서 반란 모의 참여 주요 임무 종사·상관 살해 미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98년 8월 15일 사면돼 풀려났다. 한편 국방부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공군 전투기의 출격대기 명령 여부와 전일빌딩 헬기 사격 사건에 대한 특별조사를 실시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특별조사단을 꾸려 5·18 진상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계엄령 선포’ 발언 태극기집회, 내란선동 혐의 수사받는다

    ‘계엄령 선포’ 발언 태극기집회, 내란선동 혐의 수사받는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열린 보수성향 ‘태극기 집회’에서 “계엄령을 선포하라”는 등의 사회 불안을 야기하는 발언을 한 참가자들이 내란선동 혐의로 수사를 받는다.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24일 “내란 선동 혐의 등으로 고발된 5명에 대해 수사 중”이라며 “고발인인 군인권센터 관계자를 지난 22일 조사했다”고 밝혔다.군인권센터는 올 1월 이들을 고발했다. 피고발인은 송만기 양평군의회 의원,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장경순 전 국회부의장 및 전 대한민국 헌정회장, 한성주 공군 예비역 소장, 윤용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회장으로 모두 보수성향 인물·단체다. 군인권센터는 “피고발인들은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 집회에서 ‘계엄령 선포하라’, ‘군대여 일어나라’ 등의 문장이 적힌 종이를 배포해 평화적 집회인 촛불집회를 군사력으로 진압하라고 하거나 군부 쿠데타를 촉구했다”고 고발 이유를 밝혔다. 센터에 따르면 한 전 소장은 지난해 11월 10일 인터넷에 올린 ‘북괴 특수군이 5·18처럼 청년 결사대를 이끌고 청와대를 점령하려 한다’는 제목의 동영상에서 “촛불집회는 북괴 특수군의 청와대 점령 작전”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그는 서울역 광장 집회에서 “군대 나와라, 탱크 나와, 총 들고 나와, 박근혜 대통령은 빨리 계엄령 선포하라”고 했다. 주 대표는 올해 1월 6일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 집회에서 “계엄령을 선포해야 하는 이 위중한 시기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탄핵까지 됐다”고 발언했다. 군인권센터는 “평화적인 촛불집회를 계엄령으로 진압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선동한 것은 내란 선동”이라며 “실행 착수 전의 내란 준비 행위를 예비·음모·선동·선전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 관계자는 “고발장 접수 이후 다각도로 자체적인 수사를 해오다가 고발인 조사를 마쳤다”고 말했다. 경찰은 조만간 피고발인들을 불러 사실관계와 발언 경위, 취지 등 구체적 사항을 조사할 방침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독립운동가 죽인 친일파들…이승만 정권 보도연맹 학살사건

    독립운동가 죽인 친일파들…이승만 정권 보도연맹 학살사건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국민에게 ‘빨갱이’라는 누명을 씌워 살해한 보도연맹 학살에 대해 추적했다.19일 방송된 ‘도둑골의 붉은 유령 - 여양리 뼈 무덤의 비밀’에서는 경남 마산의 여양리 인근에서 발견된 뼈무덤의 유해를 찾아갔다. 제작진은 당시 발굴 유해를 분석했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반세기 전에 묻힌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유해발굴 과정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한 폐광이 발견됐다. 누군가 입구를 흙으로 막아둔 이곳에서 발견된 것은 차곡차곡 쌓여있던 23구의 시신이었다. 전문가는 구덩이에 사람을 넣고 총으로 쏴 살해했다고 추정했다. 마을 어르신들은 1950년 여름 그날 마산 여양리에 사람들을 가득 실은 트럭이 도둑골 골짜기로 향했다고 증언했다. 그 여름 도둑골로 향했던 163명의 사람들은 살해당했던 것이다. 마을의 가장 연장자인 맹노환 어르신은 “살려고 꼬박꼬박 시키는대로 보도연맹 가입해라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고 가입한 사람은 다 따라가서 죽은거다”고 말했다. 보도연맹은 좌익 전향자를 국민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에서 만들어졌지만 결국 보도연맹 가입자를 죽이는 결과를 낳았다. 국가가 국민을 살해했다는 사실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보도연맹에 좌익과 무관한 국민들이 가입됐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글을 모르거나 먹을 것이 필요했던 국민들은 보도연맹에 대해 잘 모르고 가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보도연맹에 강제 가입돼 죽임을 당해야 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연맹원 중에는 어린아이들도 포함돼 있었다. 보도연맹은 친일파가 친정부 성향을 띄며 권력을 잡으려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보도연맹은 빨갱이를 잡는다는 명목하에 친일파를 수호하려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보도연맹은 사회주의자들의 전향이 목적이었던 보국연맹와 유사한 형태를 띄며 좌익을 격리하는 역할을 했다. 보도연맹 최고지도위원이었던 고 선우종원은 지난 2007년 인터뷰에서 “보도연맹에 빨갱이 아닌 것들이 많다. 관제 빨갱이라고 한다. 관에서 만든 관제 빨갱이라고”라고 말했다. 죄가 없는 줄 알면서도 발포를 명령한 사람은 누구일까. 고 선우종원은 이승만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김창룡 육군 특수부대 지휘관이었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김창룡은 현충원에 잠들어있다. 보도연맹원 학살을 지휘한 그는 수많은 공안사건 조작 혐의도 많다. 민간인 희생자이자 독립운동가 김영생 님의 손녀 효전스님은 악랄한 살해를 폭로했다. 효전스님은 “할아버지는 밀양의열단이었다. 빨갱이라고 하면 죽이면 되니까 독립군 의열단 한 사람들은 A급 빨갱이로 몰았다”고 밝혔다. 학살 당한 사람중 보도연맹원이 아닌 사람도 있다. 안용봉이라는 독립운동가는 해방 후 지역사회 시민들로부터 존경받았으나 이승만 정권 쪽에 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제로 보도연맹에 가입돼 학살 당했다. 장경근 보도연맹 부총재, 백한성 보도연맹 부총재, 오제도 보도연맹 기획 검사 등은 모두 일제시대부터 친일 행위를 한 사람들이다. 이태희 보도연맹 최고지도위원 아들은 아버지가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다는 말에도 “친일인명사전 만든 사람들도 정신 나갔다. 100년전 이야기를 들춰 뭘하겠다는거냐. 과거는 잊어야 한다. 지나간 일에서 뭘 배우겠냐”고 반응했다. 이승만 정권이 물러간 뒤 가족들은 학살 사건의 진상규명을 호소했다. 그러나 국가 폭력으로 숨진 이들의 억울함을 호소한 유족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학살은 불법이지만 유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은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판결이었다. 유족들에게는 죽음을 추모하고 절하는 것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5.16 쿠데타 이후 군인들이 묘를 파해쳐 유골을 산산조각 내 뿌려버리기도 했다. 침묵이 강요되고 폭력이 당연했던 시절, 오랫동안 고통은 오롯이 피해자들의 것이었다. 전문가는 “빨갱이의 탄생은 이 땅에 존재하는 기득권 세력들이 만들어 놓은 유령이라고 할까요. 그 낱말을 사용하는 데에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라며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씨줄날줄]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박홍기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박홍기 수석논설위원

    21년 전이다. 1996년 2월 26일 오전 10시 서울형사지법 417호 대법정에 연두색 수의를 입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들어섰다. 수인(囚人)번호 ‘3124’가 뚜렷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전직 대통령의 재판이 시작된 것이다. 국민의 눈과 귀는 온통 법정에 쏠렸다. 김영일 재판장은 “피고인 전두환”이라고 호명했다.인정신문에서 전씨는 본적과 주민등록번호를 또박또박 대답했다. “현재 주소가 어딥니까”라고 묻자 당황한 듯 “안양교도소”라고 답했다. 법정이 술렁이자 “서울 서대문구 연희2동 95-4입니다”라고 곧바로 고쳤다. 전씨는 재벌들로부터 돈을 받은 경위에 대한 질문에 “관행에 따라 으레 그런 것인 줄 알고 받았다”, “재벌들의 우국충정을 받아들여 정치자금을 받았다”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14일 뒤인 3월 11일 같은 시간 같은 법정에서 12·12 및 5·18 사건의 첫 재판이 열렸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나란히 법정에 섰다. 노씨의 수인번호는 ‘1042’였다. 검찰은 당시 12·12 사건을 군사반란, 5·18 사건을 내란행위로 규정했다. ‘성공한 쿠데타’에 대한 단죄였다. 국민은 다시는 이런 날이 없기를 바라며 두 전직 대통령을 지켜봤다. 21년이 지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법정에 선다. 법원은 피고인석에 선 박 전 대통령을 언론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21년 전과 같은 법정, 같은 시간에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 수인번호 ‘503’을 단 ‘피고인 박근혜’를 볼 수밖에 없다. 뇌물 등 18가지 혐의로 구속된 지 53일 만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껏 주장처럼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을 몰랐고 나는 한 푼도 사적으로 챙긴 게 없다”, “엮어도 너무 억지로 엮었다”라고 진술할 가능성이 크다. 변명과 부인으로 일관했고, 불리하다 싶으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 왔기 때문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1년 전으로 되돌아갈 듯하다. 국민의 눈에는 전직 대통령들의 ‘평행이론’ 같다. 40년 지기인 비선 실세 최씨와 같은 자리에서 재판을 받는다. 최씨 변호사의 말마따나 ‘살을 에는 고통’일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을 지켜보는 국민은 착잡하다. 떳떳하게 당당하게 국민 앞에 설 수 있는 전직 대통령을 또다시 볼 수 없어서다. 국민의 신뢰와 믿음을 깨 버린 탓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박 전 대통령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헌재의 결정 때처럼 승복하지 않는 자세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국론 분열과 혼란이 지속될 수 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위한 길이다. 남아 있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 박홍기 수석논설위원
  • ‘그것이 알고싶다’ 박근혜 비자금 실체 파헤친다

    ‘그것이 알고싶다’ 박근혜 비자금 실체 파헤친다

    SBS 탐사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가 박근혜(65·구속) 전 대통령의 은닉 재산을 파헤친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6일 “박근혜·최순실 경제공동체의 재산 형성과정의 의혹을 파헤치고 은밀히 보관되어 왔다는 막대한 규모의 비자금의 실체에 접근해본다”고 밝혔다. 앞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던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61·구속)씨가 ‘경제공동체’(이익을 공유하는 관계)라고 규정했다. 일례로 특검팀은 최씨가 박 전 대통령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을 사 주고, 미르·K스포츠재단을 두 사람이 공동 운영하는 등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고 판단했다. 제작진은 박 전 대통령 비자금 조성 의혹의 뿌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됐다고 판단했다. 1979년 10·26 사태가 발생한 직후 청와대가 두 개의 금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김계원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근무하던 비서실에서 나온 첫 번째 금고에서는 9억 6000만원이 발견됐다. 이 돈은 이후 12·12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 세력의 전두환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통령 집무실에 있었고 접근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던 두 번째 금고 안은 텅 비어있었다. 이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1989년 당시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국장(國葬·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로 치른 장례를 가리킴)이 끝난 11월 초순에 아버님 집무실을 정리한 적이 있었다”면서 “집무실 금고에는 서류와 편지, 아버님이 개인적으로 쓰실 약간의 용돈도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석연치 않은 해명이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부친을 잃은 직후라서인지 당시 이 문제에 대해 아무도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작진은 최씨가 관리를 맡아온 박 전 대통령의 재산 규모가 검찰·특검 수사에 의해 확인된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라는 의혹에 초점을 맞춰, 독일과 스위스를 오가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스위스 비밀 계좌와 관련한 사실을 추적했다. 그 과정에서 최순실씨의 재산 증식 사업을 돕던 독일인이, 박정희 정권 집권 당시 한국 내에 자신 명의의 차명계좌를 만들었고 역시 최씨를 돕던 독일 현지 측근이 스위스 은행에 계좌를 만들었다는 새로운 제보를 입수했다. 금융당국의 추적을 피하려는 의도로 개설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과 스위스의 두 계좌를 오가는 돈의 출처는 어디이며 그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최씨 일가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자금의 뿌리는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를 ‘그것이 알고싶다’가 집중 조명한다. 방송은 이날 밤 11시 5분에 방송된다. 592억의 뇌물을 수수하고 직권을 남용한 혐의 등 18가지 혐의가 적용돼 기소된 박 전 대통령의 첫 공판기일은 오는 23일 열린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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