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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터키 특수/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터키 특수/박현갑 논설위원

    한국전 참전국 중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병력을 보낸 나라. 국토의 97%가 아시아 대륙과 마주하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인 나토(NATO)에 가입한 나라. 미국의 무역 제재로 화폐 가치가 폭락하면서 국내 미디어에 부쩍 많이 거론되는 나라. 인구 8500만명에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3.5배인 터키다.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터키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의 관세를 2배로 인상하면서 터키 화폐인 리라화 가치가 올 초 대비 40% 이상 하락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우리나라에 ‘터키 특수’라 할 만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온라인 쇼핑으로 리라화로 표시된 영국 의류 브랜드인 버버리 등 명품을 거의 반값에 구매할 수 있고, 이스탄불의 5성급 호텔 숙박도 한국 돈으로 5만원이면 가능하다는 소식에 터키 쇼핑과 여행에 쏠린 높은 관심이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전 파병으로 ‘형제의 나라’로 불리는 터키이지만, 파병 당시에는 공식적 외교관계가 없었다. 터키와 우리나라가 국교를 맺은 시점은 한국전 정전 4년 뒤인 1957년 3월 8일이다. 터키는 한국전 참전국 가운데 군인수 대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다. 1만 4936명을 파병해 전사자 742명, 부상 2147명, 실종 175명, 포로 346명이 발생했다. 터키의 한국전 파병은 자유진영 가입을 통해 국가 안보를 유지하려던 터키와 당시 소련과 대치하던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가능했다. 터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 양극체제에서 과거의 중립정책을 포기하고 소련에 맞서기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진영이 만든 안보기구인 나토에 가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시아 국가라는 이유로 번번이 가입을 거절당하다 자국에서 8000㎞나 떨어지고, 외교관계도 없던 한국에 군대를 보내 수천 명의 사상자가 나면서 미국의 지원 끝에 한국전쟁 중이던 52년 2월 나토에 가입했다. 최근 미국과의 갈등도 안보 문제가 원인이다. 미국은 자국민인 앤드루 브런슨 목사를 억류한 터키에 브런슨 목사의 석방을 요구하나 터키는 거부하고 있다. 브런슨 목사는 2016년 터키 군부의 쿠데타 시도 세력인 재미 이슬람 학자 펫훌라흐 귈렌을 도왔다는 혐의로 그해 10월 구속됐다가 현재 가택연금 상태다. 대신 터키는 당시 쿠데타 미수 사건의 배후로 지목한 귈렌의 송환을 요구 중이나 미국 역시 거부하고 있다. 두 사람의 송환과 석방으로 위기를 타개할지, 미국이 최대 출자국인 국제통화기금 요구에 따라 경제개혁과 긴축정책에 나설지 아닐지, 아니면 러시아와 손잡고 또 다른 갈등을 증폭시킬지 터키의 선택이 주목된다.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한반도 해방에서 사라진 장면- 1945년 8월 북한 국경에서의 소일(蘇日)전쟁

    한반도 해방에서 사라진 장면- 1945년 8월 북한 국경에서의 소일(蘇日)전쟁

    2018년 8월 15일은 광복 73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73년 전인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함으로써 한반도는 일제 식민주의의 압박으로부터 해방되었고 그 아래서 신음하던 한국 사람들은 광복의 기쁨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 후 한국은 분단과 전쟁, 쿠데타와 민주화 운동 등을 겪으면서 오늘의 풍요롭고 자유로운 대한민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번영의 출발점인 해방과 광복의 진상은 냉전시대의 정치와 극단적 좌우갈등으로 왜곡되기도 하였다.한국인의 역사적 기억에서 지워져 버린 것에는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국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을 치르고 일본의 식민통치를 무너뜨린 유일한 나라 소련의 역할이 있다. 남한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해방은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것만 떠올리고 한반도 해방에서 소련의 역할 자체를 부정되거나 축소한다. 필자는 관련 학회에서 ‘소련이 한반도에서 전투 한 번도 치르지 않고 ‘그냥’ 들어왔다’는 주장까지 들어봤다. 이런 인식은 남한만이 아니다. 북한 평양에 있는 해방탑에 소련군에 의한 해방을 기념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북한 학자들은 해방을 김일성의 조선인민혁명군에 의한 것으로 해석하면서 ‘신화’를 만들었다. 남북의 국가 편찬 공식 역사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 뿌리깊은 신화를 깨뜨릴 수 있는 역사가의 유일한 무기는 사료(史料)이다. 그러면 소련군의 한반도 진출에 대해 사료들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살펴보자.소일(蘇日)전쟁과 한반도 진출 과정을 살펴보자. 1945년 8월 9일 새벽,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중심으로 ‘만주전략공세작전’을 개시하였다. 물론 한국에는 잘 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만주전략공세작전은 3가지의 하위 작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반도를 포함한 하위 작전은 하얼빈-지린성 공세작전이었으며 이 작전의 주력 부대 중 하나가 추후 북한 점령을 맡은 소련의 제25군이었다. 이 작전의 주요 방향은 만주와 조선의 국경 지대였고, 북한은 보조 작전 방향으로 설정되었다. 보조 방향이지만, 한반도 군사 작전은 만주전략공세작전 성공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소련군 한반도 군사작전의 목적은 관동군의 후퇴나 보급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 작전 수행을 위해 육해군 연합부대가 결성되었으며, 이 연합부대는 메레츠코프(K. A. Meretskov) 원수가 지휘하는 제1극동전선군 휘하 제25군의 남측부대와 유마셰프(I. S. Yumashev) 제독 휘하 태평양 함대의 해병부대로 구성되었다.소련군의 한반도 전투는 주력 부대의 만주전략공세작전 개시와 동시에 시작되었다. 1945년 8월 9일, 소련 공군은 함경북도 웅기읍의 일본군 시설에 대한 공습을 실시하였고 샤닌 (G. I. Shanin) 소장 휘하 소련육군 부대들은 두만강을 건너 일본군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그 지역 주둔 일본군은 소련군 급습에도 일본군은 치열히 반격했다가 결국 버티지 못해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8월 9일 밤 제25군의 부대들이 경흥군을 해방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제25군 남측 부대의 일부는 회령시 방향으로 진격을 계속하였고, 육해군 연합부대에 속한 부대는 남하를 계속하였다. 육군이 일본군과의 전투를 벌이는 동시에 소련 공군은 일본군의 해안 방어 시설에 대한 공습을 지속하였으며 일본 군함 2척, 수송선 25척을 침몰시킴으로써 해병대 부대의 작전을 가능케 하였다. 작전 개시 2일 후인 8월 11일, 메레츠코프가 태평양 함대 사령부에 상륙부대를 결성해서 청진, 웅기, 나진 등 지역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보냈다. 8월 11일, 해군대대와 소련최고의 훈장인 ‘소비에트 연방 영웅’ 훈장을 받은 레오노프 (V. N. Leonov) 상위 휘하의 태평양 함대 직속 정찰부대가 웅기에 상륙하여 전투없이 해방한 후 마침 도착한 육군부대와 합류하여 나진시에 돌격했다. 다음날 아침에 나진 해방 작전이 시작되었다. 웅기읍과 달리 나진 시는 웅기를 포기한 부대의 증원을 받은 일본군이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악화된 기후조건에도 12일 나진에 상륙한 소련 해군부대와 북쪽에서 진격하는 육군부대는 일본군의 저항을 받아 피해를 입었다. 그러다가 13일에 상륙한 증원군의 지원을 받은 소련군은 일본군의 저항을 뚫고 14일에 나진의 해방을 완수하였다. 웅기읍과 나진 해방 후 소련군의 다음 목표는 청진이었다. ‘조선을 빨리 해방하라’는 메레츠코프의 명령을 완수하기 위해 180여명 밖에 안되는 해군부대가 나진 전투가 끝나기도 전에 어뢰정 6척을 타고 청진에 돌진하고 상륙했다. 뜻밖의 습격을 받은 일본 위수부대는 항구를 방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항구의 점령을 저지하지 못했으나 그 직후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일본군은 선봉부대의 완강한 저항을 감수해가며 선봉부대에 큰 피해를 입혔으나, 이를 전멸시키지는 못했다. 다음날 14일에 대대 규모의 증원군을 받은 소련군은 공격을 시도했으나, 일본군은 장갑열차를 포함한 모든 예비대를 전투에 투입시켰다. 나쁜 기후조건을 이용하고 소련 증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항구 방어선을 회복하려는 일본군의 지속적인 공격을 받으면서 커다란 피해를 입은 소련군 선봉부대들은 제13해병여단이 도착한 15일까지 항구를 고수하고 있었다. 15일 정오, 일본 천황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선포한 ‘옥음 방송’이 울렸지만, 포성이 멈추지 않았고 관동군 사령부는 무기를 내려놓으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살벌한 청진 전투는 동해 해안선을 따라 내려오는 제393사단이 전투에 들어간 16일까지 지속되었다. 청진 상륙작전의 성공과 만주에서의 소련군 승리의 소식을 들은 관동군 사령부는 지속적인 저항의 무의미함을 인정하고 1945년 8월 19일 드디어 무기를 내려놓았다. 만주전략공세작전에 참여한 소련군은 3만 5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그 중 약 60%가 만주 남부와 한반도를 해방시킨 제1극동전선군이었다. 한반도 해방 작전에 참여한 소련 육군 부대들은 2000여명, 태평양 함대의 부대들은 100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소련의 한반도 해방에 참여한 제1극동전선군의 군사작전은 구체적 지역의 해방 이외에 또 한 가지의 성과를 거두었다. 소련군의 성공적인 상륙작전은 조선 북부에서 일제식민통치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일제 관료, 경찰, 군인들은 남진하는 소련군을 두려워해 북쪽의 주요 도시들에서 남쪽으로 도피하게 되었다.북쪽에서 이런 ‘권력 진공’을 메운 것은 36년 동안 참정권을 박탈당했던 조선인들이었다. 그들은 각지에서 자치위원회를 만들고 새로운 조선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물론, 나중에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한반도가 다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어가 분단되고 전쟁을 겪었으나, 이것은 소일전쟁을 평가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글: 바실리 블라디미로비치 레베데프(고려대 사학과 석사)
  • [데스크 시각] ‘이기적인 국민’의 탄핵소추를 허하라/이제훈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이기적인 국민’의 탄핵소추를 허하라/이제훈 정치부 차장

    2015년 무렵 여의도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가 여의도에 나타나 정치인과 만나거나 언론사 정치부 국회 담당 기자와 술을 먹고 상고법원 설치 당위성에 대한 논리를 설파한다는 것이었다. 국회 의원회관 복도에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는 소문도 들렸다.법무부와 함께 사법 정책을 담당하는 한 축인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은 늘 바쁘다. 그런 그들이 정치인을 만나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다. 법조를 담당하는 사회부 기자도 아닌 정치부 기자를 만나는 일은 더더욱 흔치 않다. 당시에는 참 특이한 소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지난달 3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문서가 추가로 공개된 뒤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법원의 사법행정사무 지원을 위해 존재하는 법원행정처에는 전체 2900여명에 달하는 판사 중에서 30여명 남짓만 근무한다. 살인적인 업무 강도에도 능력이 뛰어난 엘리트 판사만 모여 근무한다는 외부의 평가와 행정처 근무가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는 보증수표라 참고 견딘다는 말을 이해하려 했다. 그런데 이 엘리트 판사들이 작성했다는 문건을 보면서 이들은 판사가 아니라 마치 정보기관의 정보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문건에서는 ‘법의 따뜻함’을 갖고 있어야 할 판사가 아니라 특권 의식에 물든 협잡꾼 같은 오만함까지도 엿보였다. 2014년 8월 31일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에는 국민을 “내 사건은 대법원에서 재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라고 평가했다. 잘못 여부를 떠나 자신의 재판에 절박함을 갖고 있는 국민을 내려다보며 이기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이 묻어 있다. 2015년 7월 13일 작성한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법무부 설득방안’에는 “구체적으로 영장 없는 체포를 활성화해 수사기관에 재량권을 부여하겠다”는 생각도 담았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법원에서 국민기본권을 영장도 없이 제한하는 초법적인 생각을 자신이 속한 조직을 위해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황당함에 할 말을 잃게 된다.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가 판사 해외 파견과 징용 소송을 청와대에 함께 설명하며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에는 기가 막힌다. 사법고시 합격 한 번으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된 판사가 그것도 모자라 해외에서 면책특권이 적용되는 외교관 여권을 사용하고 싶어 하는 특권 의식까지 드러낸 것이다. 이렇듯 괴물이 된 법원행정처의 전신을 보면 사실 일제 식민시대의 잔재가 묻어 있다. 법원과 판사를 지배하고 통제하고자 설치된 사법성(司法省)의 후신이 바로 일본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이다. 법원행정처는 사무총국의 기능을 본뜬 것이다. 5·16 쿠데타 당시 현역 육군 대령이나 검사 출신이 법원행정처장으로 임명되면서 판사를 통제하는 기능을 한 곳도 바로 법원행정처였다. 이런 아픔의 역사를 가진 법원행정처가 판사 출신의 법원행정처장을 맞아서도 동료 판사의 재산 내역과 이메일을 사찰하거나 동향을 파악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만으로도 지탄받아 마땅하다. 사법부의 독립성과 신뢰도를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 시도는 국회가 개원한 후 1985년 유태흥 대법원장과 2009년 몰아주기 배당 의혹을 받은 신영철 대법관 등 모두 두 차례다. 둘 다 국회의 반대로 처리되진 않았다. 국민을 이기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기본권 보호 의무를 내팽개친 판사들에 대한 ‘이기적인 국민’의 준엄한 탄핵소추를 허(許)할 때가 됐다. parti98@seoul.co.kr
  • [불온(不·On)한 회의] 가상으로 본 ‘광화문 탱크’… 말로만 듣던 계엄령 공포 확 다가와

    [불온(不·On)한 회의] 가상으로 본 ‘광화문 탱크’… 말로만 듣던 계엄령 공포 확 다가와

    지난 ‘불온한 회의’는 기무사 계엄 문건 이슈가 어렵더라도 소홀하면 안 된다는 의견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이후에 이 이슈는 더 뜨겁게 불타올랐습니다. 계엄 문건으로 시작한 이번 회의는 안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성소수자’와 ‘막말’ 이슈를 거쳐 ‘혐오’까지 가 닿았습니다. 그야말로 ‘다이내믹 코리아’입니다. 온라인뉴스부 기자들의 오프라인 회의에서 한 주의 이슈를 만나보세요.●익숙한 ‘계엄령’…‘사법농단’ 보다 관심 집중 부장: 결국 기무사 계엄 문건의 파장은 기무사 해편으로 옮겨갔군. 세진: 초반에 ‘박근혜 정부 때 위수령을 선포해 촛불집회를 진압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보다 훨씬 관심이 높았죠. 계엄령이 한국 현대사에서 익숙한 단어인데다, 문건이 굉장히 구체적으로 쿠데타에 가까운 내용이 나오면서 관심도가 집중된 듯합니다. 혜진: 한 공중파 시사프로그램에서 컴퓨터그래픽으로 전차와 탱크가 광화문과 여의도에 진입하는 모습을 가상으로 보여줬어요. 확실히 계엄령에 대한 공포가 확 다가왔죠. 유민: 사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논란도 언론에서는 중요한 이슈로 삼지만, 일반 대중의 체감도는 낮아요. “양승태가 누군데?”라는 말이 나오기 일쑤죠. 하지만 기무사에 대한 기사는 조회수가 1만~3만이 거뜬히 나올 정도로 뜨거워요. 아마도 ‘어느 순간 내 눈앞에 탱크가 나타났을 수 있다’는 아찔함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광화문 촛불집회에 모인 연인원이 1000만명 이상이었잖아요. 경근: 탄핵 정국 때 국회 출입을 했는데, 정치권이나 기자들 사이에서 쿠데타를 입에 올리면서도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라는 말로 유야무야 넘어갔어요. 또 “요즘 사병들은 쿠데타 지시 내려오면 카톡으로 엄마한테 다 알려줄 거다.” 이런 농도 했고요. 그런데 ‘계엄 문건’에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의결을 못하게 하도록 의원들을 회유하는 방법과 과거 ‘보도지침’처럼 언론을 검열하는 방안이 있었던 걸로 드러났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엄혹한 시대’에 있었던 거죠. 유민: 문재인 대통령이 기무사를 ‘해편’하고 개혁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습니다. 국민의 분노는 ‘기무사 해체’로 향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거죠.진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기무사의 전신인 육군 보안사령관 역임)의 사진을 기무사에 걸기로 했다는 언론 보도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어요. “기무사를 해체·재편한다고 해놓고 김재규 사진을 건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김재규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와 별개로 말이죠. 유민: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는 간첩 색출, 군내 쿠데타 방지 등의 역할을 위한 조직이죠. 군부독재 당시는 몰라도, 지금 과연 군 정보기관과 별도로 그런 조직이 필요할까요. 대통령은 5년마다 바뀌는데 그런 무소불위 권력의 기무사는 그대로니까 적폐는 쌓이고. 세진: 개혁론이 나온 배경을 따져보면 해체가 능사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무사의 위법행위가 드러났고, 자행해온 문제를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은 거니까요. 부장: 청와대가 세부계획을 직접 공개하면서 개혁론에 드라이브가 걸린 거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한 지적도 만만치 않더군. 세진: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공개했어야 하는 문건이 맞아요. 국민들을 위협하는 수준의 세부계획이었잖아요. 기자회견이나 보도자료 배포로 처리하면, 보수·진보 언론사 이해에 따라 내용이 왜곡될 수 있으니까 생중계 브리핑이라는 형식을 취했을 거라고 봅니다. 혜진: 위수령·계엄령 문건을 여당 의원이나 군인권센터 등에서 공개했을 경우 출처와 의도를 문제 삼는 세력들이 있었어요. 문 대통령이 기무사에 ‘계엄 문건을 모두 제출하라’고 지시(7월 16일)하고, 청와대 차원에서 직접 검토하고 발표한 건 그런 우려를 차단하려는 취지로 읽힙니다. 유민: 언론사 입맛에 따라 해석하고, 그게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면, 일정 부분 언론의 문제도 있는 거군요. 진호: 하지만 결국 자유한국당은 이 일로 송영무 국방장관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등을 검찰에 고발했죠. 문제는 이런 건 물타기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정윤회 문건·국정농단 때도 폭로자 자질 공격 부장: 한국당의 국면 전환 방식이다? 진호: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가 ‘계엄령 문건’을 폭로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향해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했습니다. 성소수자인 임 소장이 군 개혁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는 말은, 막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문제는 이것이 정치권이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라는 거예요. 2014년 말 ‘정윤회 문건’이나 2016년 말 국정농단 사태 때도 당시 문건을 공개하거나 수사 의뢰를 한 당사자들의 자질을 공격하면서 ‘기밀 유출’을 문제 삼으면서 본질을 흐렸죠. 세진: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계엄령 세부계획엔 계엄령 선포 뒤 국회가 해제 표결하는 걸 막기 위해 당시 집권 여당(현 한국당)을 동원하는 방법이 언급돼요. 계엄령 공모 의혹까지 제기되는 한국당으로서는 프레임을 바꾸려는 시도가 필요했을 겁니다.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국민의 주의를 돌릴 수 있는 소재로 생각했다면, 더욱 질 나쁜 발언이 되는 거죠. 한국당은 지방선거 참패 이후에 ‘잘못했습니다’라는 현수막 아래 무릎 꿇고 사죄까지 해놓고, 전혀 변하지 않았던 걸 증명했죠. 혜진: 정치인들의 막말은 의도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홍준표 전 대표의 사례를 보면 이해가 가지 않나요. 누가 들어도 납득 안 되는 내용들인데 자극적으로 이야기하면 언론들이 보도해주고, 언론들도 기사 조회수가 높으니까 앞다퉈 다루는 게 사실입니다. 경근: 홍 전 대표를 취재했던 때를 떠올려보면, 행동 하나하나가 기삿거리였죠. 기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을 하면 “그 회사도 우리 당 출입하느냐”, “그런 질문은 다시 안 받는다”, 심지어 “앞으로 ‘넌’ 질문하지 마라”는 식으로 면박을 줘요. 막내 기자들과도 바득바득 싸워서 다 이기려 드니, 한때 ‘홍준표 마크맨’은 극한직업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죠. 문제는 그렇게 몇 번 당한 기자들은 아예 질문을 안 하게 된다는 거죠. 진호: 반면 김 원내대표는 ‘의도가 있는 발언’으로 보여요. 군 개혁이 빠르게 진행되는데 불만 있는 세력을 한국당으로 모으기 위해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군대 안 간 사람이 군 개혁 주도한다’는 발언을 던진 게 아닐까요. 인터넷상에서 침묵하는 특정 계층을 대변하면서 비판은 어느 정도 감수하고, 소위 ‘장사가 된다’라고 생각한 것 아닌가요. 지난해 5월 대선 이후 성소수자 공격은 한국당의 새로운 지지 세력 결집 전략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다음엔 페미니즘 등 젠더 이슈 다뤄보자 혜진: 지난 대선 후보 토론회 때 홍준표 당시 한국당 후보가 군 동성애 관련 질문을 하면서 애매하게 ‘동성애 찬반’으로 엮어갔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동성애 반대’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논란이 됐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그 자리에서 “동성애는 찬반 문제가 아니고, 성소수자는 인권 문제”라고 정리했고요. 이 논쟁의 반향은 꽤 컸습니다. 이때 보수 쪽에선 성소수자 문제가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는 수단이 된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 유민: 일부 사람들은 소수자에 대해 편견을 갖고 혐오를 표현하는 데서 자신이 기득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죠. 소수자들을 약자화하고 자극적인 발언으로 공격한 것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접하게 되면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에 앞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기 마련입니다. 특히 정치인이 이런 혐오에 앞장서면 파급력이 크고요. 페미니스트 문제도 여러 논의 지점들이 있지만, 소수자 낙인찍기 측면이 분명 있다고 봐요. 부장: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불온한 회의’에서는 성소수자와 페미니즘 등 젠더 문제를 이슈로 다뤄봅시다. 정리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남재희 전 노동장관 “자존심 대신 현실감각으로 북핵국면 주도해야”

    남재희 전 노동장관 “자존심 대신 현실감각으로 북핵국면 주도해야”

    “자존심 대신 현실감각으로 북핵 국면을 주도해야 합니다. 국제 정세를 냉정하게 바라보면서도 국익을 위해 현명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협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지만 ‘수구세력이 반전을 노린다’는 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남재희(84) 전 노동부 장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논객이자 정치평론가로 손꼽힌다. 서울신문 주필 등 언론인 출신으로 4선 국회의원과 장관 등을 지내며 언론과 정치 등 각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장관 재임 당시에도 노동계의 무노동 부분임금을 지지하면서 ‘비판적 보수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0년대 이후에는 웅숭 깊은 진보적 색채의 칼럼으로 우리 사회에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관훈클럽에서 만난 그는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형형(炯炯)한 눈빛으로 북핵 등 국제 정세와 한국 정치에 대해 막힘 없이 고견을 풀어냈다. -요즘 북·미 회담을 보면 마치 외줄타기 하는 광대를 눈 앞에 둔 듯 하다. 연일 냉·온탕을 오가고 있는데 어떻게 될까. =미국이나 북한이나 최고도의 전략 전술을 발휘하는 거다. 미국은 회담 과정에서 두 개의 목표가 있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북핵의 제거다.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직후 일본 국제정치학자가 ‘북한 문제에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할 시도는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핵 장착 미사일의 제거이고, 그 다음이 북핵일 것’이라고 분석하던데 맞는 이야기다. 싱가포르 북·미 회담에서 ICBM 해결은 끝난 것 같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오는 11월 중간선거에 활용할 카드가 생긴 셈이다. ‘내 업적은 ICBM을 제거한 것이다. 이로써 미국은 북핵으로부터 안전하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계속 북핵 협상에 낙관적인 이유다. 하지만 북한에게 핵은 유일한 밑천이다. 마지막 카드를 내놓는 건데 최고가로 흥정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북한은 핵 하나만으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불가침협정, 수교, 원조 등 여러가지를 다 해결해야 한다. 협상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 한국전쟁 당시 1년 간 전쟁이 벌어진 뒤 나머지 2년 간은 협상이 동시에 진행됐다. 공산권 협상은 전쟁과 협상이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이뤄진다. 공격하면서도 대화하고 대화하면서도 공격을 가하는 ‘타타담담(打打談談) 담담타타(談談打打)’가 그것이다. 나라도 마지막 카드는 쉽게 버리지 않을 거다. -판이 아예 깨질 가능성은 없나. =트럼프가 ICBM을 이용해 중간선거를 막더라도 여러 난제들이 있다. 북핵 말고도 이란·시리아 등 중동 문제도 복잡하다. 동북아 전체로 봐서도 러시아와 중국 등과 해결할 문제가 간단치 않다. 그러니 북한 문제가 추가적으로 악화되는 걸 원치 않는다. 쾌도난마 식으로 북한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없다. 북한도 판을 뒤엎을 처지가 못 된다. 국제 사회의 공론도 무시 못한다. 북한을 괴멸시키는 대신 북한의 생존을 인정한다는 식으로 인식이 바뀐 상태다. 그러니 결국 북미 긴장이 풀리는 방향으로 갈 거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우호적이라는 점도 북에게는 큰 힘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북한에도 변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쿠바의 경우 결국 카스트로 형제들이 다 물러나고 다른 이들이 집권하고 있다. 쿠바 모델이 북에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주한미군 주둔 인정 여부도 문제가 될 수 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도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직접 이야기한 건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이 그런 심증을 가졌다는 것이다. 북한은 주한미군 주둔을 미리 인정하지는 않을 거다. 주둔의 불가피성은 이해하지만 바겐 포인트를 스스로 버릴 이유가 없지 않냐. 협상할 때는 미군 철군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주한미군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국제정치의 큰 흐름으로는 미국의 동북아 정책을 수용하지 않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중간자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들 부시 대통령을 만났을 때 ‘디스 맨’이라고 지칭했다. 우리 식으로는 ‘이 자’에 해당한다. 매우 모욕적인 발언이었다. 오바마 대통령 당시 재임했던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도 회고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칭해 ‘크레이지(Crazy)’라는 표현을 썼다. 우리 식으로는 ‘괴짜’ 정도에 해당한다. 노 전 대통령이 미국 입장에서는 까다롭고 불쾌했다는 것이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강경화 외무장관 등을 계속 특사로 보냈다. 그 덕분에 아직 미국과의 관계는 부드러운 것 같다. 다만 창피한 일이지만 우리 입장에서 미국의 국익이라는 미국 정부의 기본 라인은 건드릴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6월 계간지 ‘황해문화’ 발간 100호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개번 맥코맥 호주국립대 태평양아시아학과 교수의 진단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맥코맥 교수에 따르면 2000년대 말 집권한 일본 민주당 정권은 미국 중심 외교에서 벗어나 자주외교를 시도했다. 그때 나온 말이 오키나와 미군 기지 이전이다. 당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제국주의 문화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한 정치인이다. 방한 당시 서대문 형무소에서 무릎까지 꿇은 사람이다. 그러나 일본 민주당 정권의 단명은 미국 외교라인과의 마찰이 한 요인이 됐다는 게 국제정치학계의 정설이다. 일본보다 외교력이나 경제력이 약한 한국은 더 말할 게 없다. 미국을 벗어난 자주 외교는 쉽지 않다. 그게 우리 앞에 놓인 운명이다. 사대에 대해서도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대는 약소국의 생존 전략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조선은 사대 정책을 펴왔지만 그걸 욕하기는 어렵다. 이승만 정부 때인 1951년부터 1955년까지 외교를 이끈 변영태 외교부장관이 퇴임 뒤 사석에서 “중국 주변국 중 화교가 자리를 못 잡은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우리 조상들의 사대외교가 능수능란하고 현명했다는 점을 방증한다”고 설명하더라. 노예근성을 갖자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러나 한·미 관계에서도 자존심만 내세울 건 아니다. 현실감각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남로당 경북도당 간부였다가 전향했던 박진목씨가 과거에 언론인들과 친했다. 그는 한국전쟁 중 평양 밀사로 가서 이승엽 당시 국가검열상과 협상을 벌였던 인물이다. 박씨의 지론은 “과거 남로당이 생각을 잘못 했다. 그 막강한 일본 제국주의 군대를 물리친 미군을 상대로 남로당 몇몇이 ‘물러나라’고 투쟁했으니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중국이 미국에 맞서는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는 중국의 부상과 동북아 정세를 일컬어 ‘빙하를 움직이는 일’(Moving Ice Glacier)라고 표현한다. 강대국 입장에서 빙하는 한반도다. 빙하가 움직이려면 몇 십년 몇 백년이 걸린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는. 출범 초에 혁명적 상황에서 만들어졌으니 혁명적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는데. =1960년 4·19 이후 장면 정부는 혁명적 상황을 비혁명적인 해법으로 일관했다. 군의 부정부패를 그대로 방치했다. 혁명적 상황에서는 최소한 반 정도는 혁명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시대 조류에 씻겨 내려간다. 그런 면에서 현 정부는 반 쯤은 혁명적인 색깔을 드러냈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기무사 해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쿠데타의 원조인 기무사를 이번 기회에 해체해 개편해야 한다. 최근 경제가 안 좋다. 근로시간 단축이나 최저임금 상승 등을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적인 경기 하락이라는 해외 요인이 더 크다. ‘삼성 투자 구걸’ 논란도 일종의 소아병적 반응이다. 대범하게 바라봐야 한다. -지방선거 압승 이후 여당의 탈주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정치 지형은 보수가 강하다. 이는 남북이 분단됐기 때문이다. 세부적으로는 북한에서의 상층 인텔리들이 월남을 하면서 남쪽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개신교만 해도 평안도 출신의 보수적인 예수교장로회가 주역이 되고, 함경도 기반의 진보적인 기독교장로회는 소수가 됐다. 예장을 대표한 한경직 목사도 보수적인 색채가 매우 강했다. 미국의 영향력도 엄청났다. 미국이 길러낸 군, 학자, 언론 등 분야의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미국 문화가 압도적이다 보니 보수가 강할 수 밖에 없다. 그에 반해 진보는 아예 없다시피 하다. 한국전쟁으로 일단 궤멸됐다가 조봉암 진보당 당수가 사형당하면서 더 위축됐다. 4·19 혁명 이후 잠시 머리를 들었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또 다시 사라졌다. 1980년대 이후 학생운동 정도가 진보의 명맥을 이은 것이다. 정치 지형만 놓고 보면 어쩌다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다가 문재인 정부로 이어온 것이다. 진보 정부라도 제대로 된 진보가 아닌 약한 진보다. 김대중 정부는 아주 약한,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조금 약한 진보 정부다. 이에 반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강한 보수였다. 그런 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지만 낙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다만 박근혜 정부가 완전히 망치고,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막말정치를 일삼으면서 보수가 힘을 못 쓰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책임이 있는 한국당은 연옥을 거쳐야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엄청난 자정 노력 숙청, 반성 등 재생을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했지만 연옥을 안 거치니 안 되는 거다.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점잖게 나가고 있지만 위기에 부딪혔을 때 어떤 행태를 보일 지 지켜봐야 한다. -그렇기에 평소 협치를 강조한 게 아닌가. 청와대도 협치내각을 구상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인 이해찬 의원 관련 기사를 가리키며) 이 의원이 자꾸 말을 잘못 한다. 협치하자고 하면서 “수구세력이 반전을 노린다”고 이야기하면 되겠냐. 여당이 원내 과반수에 미달하면 야당을 슬슬 구슬러야 한다. 같은 표현이라도 ‘개혁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면 되는데 이렇게 자극하면 될 일도 안 된다. 한국당과의 협치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더라도 그런 입장을 취해야 한다. 끌어들이지 못할 망정 도발하는 건 맞지 않다. 이 의원은 문 대통령과 갈등을 빚을 수도 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껄끄러운 관계로 가면 안 되는데 문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것이다. ‘나(이 의원)는 (예전에) 총리였고 넌(문 대통령) 민정수석이었고, 난 (운동권) 선배고 넌 후배’ 이런 식의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개헌을 통한 선거구제 개편 논의도 활발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10년 전 쯤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전 세계 인구 대비 적정 의원수는 우리나라가 500명 정도이고, 단원제를 감안하면 350명 정도가 적정한 것으로 나온다. 의원수를 현재보다 늘리는 데 대해 국민들의 반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숙제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정치 일성으로 의원수를 줄이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안철수는 끝났다’고 주변에 이야기했다. 의원 수를 줄이자는 건 정치를 전혀 모르는 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유럽식 선진 정치에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에 2015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했을 것이다. 나도 국회의원에 5번 출마해서 4번 이겼다. 상대방보다 약간의 표만 먹으면 권력의 전부를 먹는 거다.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이다. 이건 국회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비례는 대표의 원리요, 다수는 결정의 원리’라는 게 정치학의 기본 아닌가. 대통령 임기와 관련해서는 4년 중임제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5년 단임제 역시 무리하게 바꿀 필요는 없다고 본다. 1987년 개헌 과정에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세 유력 정치인이 서로 번갈아가며 대통령이 되기 위한 속내로 5년 단임을 지지한 측면이 강하다. 지금은 속도가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이젠 10년이 아닌 5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내각책임제는 우리 현실에서는 절대 안 된다. 국회의원들이 서로 자리다툼에 골몰해 내각이 몇 개월 만에 무너지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싸움하다가 볼일 못 볼 수 있다. 제2공화국 당시에도 헌법에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이 분명히 구분돼 있었지만 윤보선 전 대통령과 장면 전 총리는 권력을 놓고 서로 암투를 일삼았다. -경제 면에서는 빈부격차 심화가 사회정의 문제 뿐 아니라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의견도 많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헨리 조지를 언급하며 강조한 것처럼 지대추구의 특권이 용인되는, 곧 땅으로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건 큰 문제다. 일본 파나소닉 창업자이자 ‘경영의 신’으로 불린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은 “땅은 공기나 물과 같다”고 말했다. 하늘이 주고 다른 것과 대체할 수 없는 땅을 독과점하는 건 부당하다는 것이다. 땅의 독점을 통해 엄청난 이익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빈부격차가 심화된다면 당연히 정부 정책으로 해결돼야 한다. 다만 노무현 정부 때 그렇게 많이 올리지도 않았지만 종부세 인상으로 벼락을 맞았다. 속도는 알게 모르게 해야 한다. ‘오리털 뽑듯이 올린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원래 오리털은 펜촉으로 쓸 용도로 뽑았다. 오리털을 뽑으면 상처는 안 나지만 오리는 매우 아파한다고 하더라. 그래도 오리털은 뽑아야 한다. -얼마 전 한 언론(프레시안)에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글을 썼다. =노 의원보다는 심상정 의원과 더 가깝다. 하지만 노 의원과도 술자리를 갖는 등 잘 어울려 다녔다. 내가 인정하는 ‘구라’는 3명이다. 소설가 황석영과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그리고 노 의원이었다. 구라는 과장과 재치가 합쳐져야 가능하다. 황석영은 소설가로 1급, 유홍준은 미술평론으로 1급, 그리고 노 의원은 언어를 사용하는 정치인으로 1급이었다. 한국 정치 언어의 품격을 높인 그가 그런 선택을 해 애석하기 짝이 없다. 이두걸 논설위원 douzirl@seoul.co.kr
  • [어떻게 사법이 그래요] 판사 마음대로 ‘깜깜이·복사기 판결문’… 알고보면 법대로라네요

    [어떻게 사법이 그래요] 판사 마음대로 ‘깜깜이·복사기 판결문’… 알고보면 법대로라네요

    내부 감사·법관평가 대상서 판결문 제외 민사소송법, 5·16 쿠데타 직후 개정 필수기재 항목서 쟁점·판단근거 빠져 형사 판결문선 유죄 간결, 무죄는 장황 피고인보다 검사가 항소심 시작부터 유리 사건의 쟁점, 피고인이 부인하는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이유를 쏙 뺀 ‘깜깜이 판결문’이나 항소심 선고 때 1심 판결문을 그대로 베껴 ‘복사기 판결문’을 쓴 판사에게는 징계 등 불이익이 가해질까. 그럴 일은 없다.우선 판결문은 내부 감사는커녕 감시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서울변호사협회 등에서 매년 ‘법관평가’를 실시하지만, 재판 진행이 친절했는지 등을 평가할 뿐 판결문 평가 항목은 없다. 설사 판결문 감시가 이뤄진다고 해도 ‘깜깜이 판결문’은 민·형사소송법을 위반하지 않은, 합법적 판결문이다. 사건 당사자들이야 답답하든 말든, 법대로 작성된 판결문이다. 결국 기소·재판 ‘공급자’인 법조인 편의에 맞춰 설계된 소송법이 ‘깜깜이 판결문’의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민사소송법의 경우 1960년까지만 해도 판결문에 ‘사실과 쟁점’이란 항목으로 재판의 쟁점과 법원의 판단근거를 반드시 쓰도록 했다. 그런데 5·16쿠데타 직후인 1961년 9월부터 이 ‘사실과 쟁점’ 항목이 판결문(법령 용어로는 판결서) 필수기재 항목에서 빠지면서, 법원은 판단근거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원고와 피고 중 한쪽 손을 들어 주는 ‘주문’ 위주로 판결문을 작성할 수 있게 됐다. 재판에 필요한 증거에 대한 평가를 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기는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재판이 진행되는데, 법관이 자유롭게 판단한 근거를 판결문에 쓰지 않아도 되게 소송법이 허용한 덕에 판결문을 쓸 때 법관의 자유가 극대화된 셈이다. 형사소송법에선 1954년 제정 이후 줄곧 판결문 유·무죄 기재 요건이 바뀌지 않았다. 이 법 40조 판결문(재판서) 기재 요건으로 명시한 항목은 재판을 받는 자의 성명, 연령, 직업, 주거, 기소·공판 검사와 변호사의 성명 등 호구조사용 정보들이다. 같은 법에선 유·무죄 판결에 명시될 이유를 따로 규정했는데, 조항만 보면 유죄판결에 명시해야 할 이유가 더 많다. 형소법 323조에 따르면 판결 이유에 범죄 될 사실, 증거 요지, 법령 적용, 형의 가중·감면 이유 판단 등이 들어가야 된다. 반면 같은 법 325조에 따르면 무죄 판결은 그냥 무죄라고 선고만 해도 된다. 하지만 실제 형사 판결문에선 무죄 이유가 장황하게 설명되는 반면 유죄 판단은 ‘범죄 될 사실’ 항목에 공소장 내용을 붙여 한 줄 정도 지나가는 식으로 언급돼 있다.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된 이른바 ‘범털’이 아니라면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하더라도, 재판부가 피고인의 주장과 다르게 유죄로 본 근거를 쓰지 않는 게 보통이다. 재경지검의 한 검사는 “요즘에는 유·무죄를 다투는 사건에 판단 이유를 적으라고 권고하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하지만 재판부 성향 등에 따라 쓰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유죄 이유는 간단히, 무죄 이유는 장황하게 쓰는 판결문은 피고인이나 민사 패소 측을 난감하게 만드는 대신 검찰의 업무를 줄여 준다. 피고인은 1심 법원의 유죄 판단 근거를 재반박해 항소해야 하는데 판결문에 그 이유가 없으니 항소이유서를 쓰는 일이 어려워진다. 반면 검사는 판결문의 무죄 판단 근거를 읽은 뒤 1심 법원이 채택하지 않은 증거를 추려 항소심 재공격에 나선다. 삶을 걸고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직업으로 공소유지를 하는 검사보다 불리해지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항소심 시작 단계에서부터 조성되는 셈이다. 서울 소재 법학전문대학원의 한 형사법 전공 교수는 “피고인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경우에도 형사재판의 한 축에 불과한 검사의 기소내용을 따서 붙인 뒤 유죄라고 간략하게 선고하는 판결문 관행도 사법부의 적폐 중 하나”라면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오히려 판결문에 무죄 이유는 간단히 쓰고, 무죄가 아닌 유죄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그들에게 듣는 군부 통치 30년

    그들에게 듣는 군부 통치 30년

    서울신문 출신 작가 “떠나는 이들 정리”5·16 쿠데타, 12·12 군사반란, 1980년의 5·17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격동의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있었던 군인들의 뒷이야기가 한 권에 모였다. 책 ‘북악의 그늘’(두성사)은 한국전쟁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약 30년간 이어진 군부 통치 시대의 비화를 각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군 장성들의 일화로 풀어냈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을 위한 극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김희덕 장군과 한때 대권 주자로 지목받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던 채명신 장군, ‘미국통’으로 12·12 군사반란 당시 신군부의 대미 창구 역할을 했던 김윤호 장군, 영화 ‘빨간 마후라’의 실제 주인공이자 실미도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비화를 지니고 있는 옥만호 장군, ‘판문점 도끼 만행 보복작전’을 직접 지휘한 박희도 장군 등 14명의 생생한 증언이 담겼다. 서울신문 출신의 김문 작가는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군장성들과 오래전 나눴던 인터뷰 가운데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책 속에 실었다. 우리나라 군 현대사의 숨겨진 일화를 다룬 저자의 1998년 책 ‘장군의 비망록 1·2’와 메모 형태로만 가지고 있었던 저자의 ‘못다 쓴 이야기’를 함께 엮었다. 이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당시 시대상황을 재구성한 덕에 책은 시종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저자는 “나라를 지켜야 하는 군인들이 사회 밖으로 나와 본분을 망각한 채 쥐락펴락했던 30년 동안, 그러니까 문민정부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역사는 그렇게 군인들에 의해 흘렀다”면서 “오래전에 인터뷰를 했던 군장성들 가운데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많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뭔가 다시 정리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책을 소개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기무사 역사의 뒤안길로…‘정치개입·민간인 사찰’ 무소불위 70년

    기무사 역사의 뒤안길로…‘정치개입·민간인 사찰’ 무소불위 70년

    1948년 정부 수립 즈음 설립돼 70년간 군 정보를 틀어쥐며 정치 개입과 민간인 사찰, 쿠데타 모의 등으로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국군기무사령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3일 기무사 개혁위의 개혁안과 국방부의 기무사 개혁안을 검토하고서 “기무사를 ‘해편(解編)’하고 과거와 역사적으로 단절된 ‘새로운 사령부’를 창설하라”고 지시했다. 해편은 기무사를 해체 수준으로 재편한다는 의미다. 사령부로서의 지위만 유지될 뿐 ‘기무사’란 명칭도 바뀌며, 사실상 해체에 가까운 쇄신 수순을 밟게 된다. 기무사의 모체는 정부 수립 3개월 전인 1948년 5월 설치된 조선경비대 정보처 특별조사과다. 이후 특별조사대, 육군본부 정보국 방첩대로 개편돼 대공업무를 전담하고 간첩검거 임무를 수행했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대공전담기구를 확대하고자 육군 특무부대와 해군 방첩대, 공군 특별수사대가 3군에 각각 창설됐다. 기무사의 병폐인 정치 개입과 공작은 설립 당시부터 시작된 ‘고질병’이었다. 1949년 기무사 전신인 육군본부 방첩대의 김창룡 대장은 김구 선생 암살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김구 선생을 살해한 안두희는 방첩대 소속 육군 포병 중위였으며, 김창룡은 사건 당일 안두희를 방첩대 영창으로 이감해 특별 배려하는 등 배후 은폐에 가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김창룡은 방첩대를 확대·개편한 특무부대의 대장을 맡아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비호를 받으며 각종 정치 공작과 사건 조작을 자행했다. 군 내외 악명이 높던 그는 1956년 1월 출근길에 육군 서울병사구사령부 참모장인 허태영 대령 등에게 총격을 받아 숨졌다. 허태영은 “군 민주화를 위해 거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창룡의 ‘국정농단’에도 특무부대는 1960년대 방첩부대, 보안사령부로 개칭돼 명맥을 이어오다 유신 정권 말기인 1977년 3군의 보안·방첩·수사부대를 통합한 국군보안사령부로 확대·재편됐다.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가 장악한 보안사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12·12 군사 쿠데타,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 등을 주도하며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정치 개입을 넘어 국가 전복까지 획책한 것이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 3월 보안사는 친위쿠데타를 반대할 만한 반정부인사 목록(블랙리스트)을 만들고 이들을 사찰하는 ‘청명계획’을 수립·시행했다. 보안사는 친위쿠데타 디데이 즈음 이들을 전원 검거할 계획이었다. 블랙리스트에는 당시 민주자유당 총재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 야권·재야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 이해찬 전 국무총리, 문재인 대통령, 임종석 비서실장이 포함됐다. 청명계획은 1990년 10월 보안사에 근무했던 윤석양 이병이 민간인 사찰 사실을 폭로하면서 드러났다. 이후 노태우 정부 퇴진과 보안사 해체 요구가 거세지자 보안사는 기무사로 이름을 바꿨다. 기능 또한 축소됐다. 하지만 기무사는 문민정부와 국민의정부 시기에도 군 정보를 장악하고 사령관이 대통령에게 독대 보고를 하는 등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참여정부 시기 잠시 독대보고는 중단됐지만 이명박 정부 때 다시 부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기무사는 문재인 정부 들어와 이전 정부 시절 불법 댓글 공작, 세월호 유가족 사찰, 계엄 문건 작성을 주도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실상 해체의 길을 밟게 됐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한국당, ‘군사기밀 누설’ 송영무 장관 등 검찰 고발

    한국당, ‘군사기밀 누설’ 송영무 장관 등 검찰 고발

    자유한국당이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검토 문건’을 토대로 정부와 여당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에 나섰다. 한국당은 계엄령 문건을 ‘군사기밀 누설’로 규정하고, 송영무 국방부 장관 등 4명을 3일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석구 기무사령관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송 장관과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 문건 유출과 관련된 이들을 공무상비밀누설, 군시기밀 누설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검찰 고발 이유에 대해 “군사비밀의 무분별한 유출, 군기 문란은 물론 국기를 문란케 하고 사회적 혼란의 위험성을 크게 대두시킬 수 있어 결코 쉽게 간과할 수 없다”며 “기무사 문건이 쿠데타 문건으로 부풀려지고 내란음모 프레임이 덧씌워지는 과정에서 한국당을 내란공범으로 몰고 가는 등 시민단체를 동원한 정권의 정치적 기획과 정치적 공작 의혹이 짙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국당은 기무사 문건 유출 과정에 대한 국정조사도 흔들림없이 추진할 것임을 강조했다. 김 원내대표는 “한국당은 기무사 문건의 작성과 유출 경위에 대해 국정조사를 추진할 것을 분명히 한다”며 “더불어민주당도 뒤에서 볼멘소리만 할 게 아니라 국조 통해 국민 앞에 한 점의 의혹 없이 진실을 밝히는 데 적극 협조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반면 민주당은 한국당의 공세에 대해 ‘물타기’라며 맞서고 있어 실제 국정조사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추미애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한국당은 기무사 정권 계엄령의 조력자이자 책임자로서 자유로울 수 없는 당사자”라며 “이제라도 기무사 계엄령 문건의 실체적 진실을 인정하고 배후와 지시자 규명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국당은 이날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좌표·가치 재정립소위원회에 홍성걸 국민대 교수가 참여한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홍 교수 등 대내·외 인사들의 참여로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강조하고 있는 보수 가치 재정립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한국당 비대위는 당 재건을 위한 소위와 특위를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하며 당 혁신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2030 세대] 왜 터키인은 독재자를 찍어 주었을까/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3학년

    [2030 세대] 왜 터키인은 독재자를 찍어 주었을까/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3학년

    지난 6월 24일 ‘형제의 나라’ 터키에서 대선과 총선이 있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그가 이끄는 정의개발당이 승리하면서 ‘21세기 술탄’을 향한 탄탄대로가 열렸다고 평가받는다. 터키 리라화는 폭락해 경제가 휘청거렸고, 독재 권력을 강화한다는 논란이 끊이질 않았지만, 그는 대통령직을 사수해냈다. 대체 무엇이 터키 국민으로 하여금 에르도안을 지지하게 만든 것일까?첫째는 경제다. 2003년에 집권한 에르도안은 10년 동안 터키의 1인당 GDP를 3배 가까이 늘렸다. 과거 터키를 괴롭히던 인플레이션을 잡고 터키를 장래가 밝은 중진국으로 올려놓은 주인공이 바로 에르도안이었다. 하지만 경제만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다. 이후 성적은 전혀 좋지 않기 때문이다. 2013년 이후 터키 경제는 정체했다. 지금은 리라화 폭락으로 에르도안의 자랑이던 경제는 비상 상황이다. 많은 사람이 여기서 이슬람을 이유로 제시하곤 한다. 즉 에르도안이 다수 국민이 원하는 ‘이슬람의 부활’을 내걸었기 때문에 경제와 무관하게 찍어준다는 것이다. 이는 터키의 현대사를 들여다보면 지나친 단순화임은 금세 알아챌 수 있다. 터키는 원래 이스탄불과 앙카라를 중심으로 권력을 장악한 군부와 관료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것을 결정하던 나라다. ‘국부’ 아타튀르크를 필두로 하는 군부는 과거 오스만 제국이 이슬람에 발목 잡혀 서구 열강에게 굴욕을 당했다는 사실에 강박적으로 집착했다. 그래서 문자도 바꾸고, 무슬림 여성들이 쓰는 히잡도 없애고, 이슬람법인 샤리아도 추방했다. 이들 덕택에 터키는 근대 세속 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혜택은 대도시 엘리트들의 몫이었다. 터키인의 다수가 거주하던 시골은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방치되었다. 좌절한 터키의 빈농들은 도시로 몰려들어 슬럼가를 형성했다. 이 가난한 사람들은 세속주의 엘리트들이 그토록 몰아내고자 했던 이슬람을 고리로 결집했다. 군부에 억압받은 상공인들도 가담해 이들의 자금줄이 되었다. 이슬람, 빈민, 자본가의 동맹은 강력했다. 1950년 멘데레스가 1997년 에르바칸 총리가 모두 이 동맹을 이끌어 정권을 잡았으나 쿠데타로 제거당했다. 국민 다수는 자신들이 뽑은 총리를 멋대로 좌지우지하는 군부를 보면서 분노를 삭였을 것이다. 그리고 에르도안이 도래했다. 에르도안은 경제자유화를 이끌고 소외되었던 내륙에 과감한 인프라 투자를 단행했다. 부활한 이슬람과 오스만 제국의 영광은 억눌려왔던 자존감도 달래주었다. 마침내 군부까지 제압한 에르도안에게 ‘콘크리트 지지층’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에르도안의 등극은 그래서 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의 후예가 80년간 무시해온 ‘또다른 터키’를 대변한다. 엘리트들이 ‘정의로운 개혁´을 민중을 무시하고 추진하면 민심은 반동으로 개혁을 무산시킨다.터키는 그 역사적 반복에 직면했다.
  • “장관 2명 제재” “즉각 보복”… 충돌 치닫는 美-터키

    “장관 2명 제재” “즉각 보복”… 충돌 치닫는 美-터키

    미국과 터키가 미국인 목사의 터키 내 억류 사건을 둘러싸고 실력 행사에 나서며 부딪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죄도 없는 미국인 목사를 억류하고 있다”며 대(對)터키 제재에 착수했다. 터키도 물러서지 않고 즉각 보복을 시사하며 강경한 자세다.AP통신 등은 1일(현지시간) 미국이 압둘하미트 귈 터키 법무장관과 쉴레이만 소일루 터키 내무장관에 대한 제재를 발동했다고 전했다. 이는 터키가 가택 연금 중인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을 풀어 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무시한 것에 대한 응징 성격을 띤다. 귈 법무장관과 소일루 내무장관의 미국 내 재산은 동결된다. 미국인과의 거래도 금지된다. 터키의 러시아제 미사일 수입, 미국의 F35 전폭기 터키 판매 거부 등으로 삐거덕거리던 두 나라 관계는 이번 사건으로 더 나빠지게 됐다. 미국은 제재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입장이고, 터키 역시 당하지만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미국의 제재 조치는 터키 법원이 지난달 31일 브런슨 목사의 가택 연금 및 출국금지 명령 해제 요청을 기각한 뒤 나왔다. 앞서 지난달 2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브런슨 목사를 즉각 석방하지 않으면 대규모 제재를 하겠다고 경고했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열고 “(제재를 받은 두 장관은) 브런슨 목사의 체포 및 투옥에 책임이 있다”면서 “브런슨 목사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어떤 증거도 보지 못했다. 그는 터키 정부의 부당하고 불공평한 처사의 피해자”라고 밝혔다. 터키 정부는 미국의 이번 제재가 사법 침해이며 양국 관계를 해칠 것이라고 반발하고 “지체 없이 보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에 대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맞섰다. 두 나라 지도자의 자존심 대결 같은 양상도 띠고 있다. 브런슨 목사는 1993년 터키에 입국해 2010년부터 현지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테러조직을 지원하고 간첩 행위를 한 혐의로 2016년 10월 구속됐다. 유죄 판결이 내려지면 최장 35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두 나라의 갈등은 2017년 11월 터키가 러시아제 미사일 체계 S400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불거졌다. 미국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터키의 러시아제 무기 수입에 반대했지만, 터키는 내년 7월 S400을 실전 배치한다는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의 최신예 스텔스 전폭기 F35의 터키 판매 유예 결정 등에 터키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다”며 대항해 왔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기무사 개혁안] 정치 개입·민간 사찰 막는다… 장군 3~4명·대령 20여명 축소

    [기무사 개혁안] 정치 개입·민간 사찰 막는다… 장군 3~4명·대령 20여명 축소

    3개案 중 2개 입법화 안 거쳐 ‘신속’ 기무요원 재배치 통해 정예·전문화대공수사권·대전복 업무 계속 유지 시민단체 “사실상 부활 계기” 비판국군기무사령부 개혁위원회가 2일 발표한 개혁안은 대통령령(국군기무사령부령) 등을 새로 제정해 개혁의 추동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의도를 띠고 있다. 그러나 군인사에 대한 뒷조사를 뜻하는 ‘동향 관찰’ 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지 않은 채 인원만 30% 이상 감축하는 안에 대해선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개혁위 관계자는 “현행 기무사령부령은 두루뭉술하게 된 부분이 많다”며 “구체화된 처벌조항과 단서 조항을 집어넣어 (기무사에서)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하거나 적용해서 마음대로 활동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기무사 존치 근거인 대통령령을 개정해 정치 개입 등 탈선행위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기무사의 설치·운영 근거 조항인 기무사령부령은 목적, 설치, 직무, 조직, 임무, 정원, 무기 사용 등 7개 조항만으로 구성돼 기무사의 광범위한 사찰과 첩보 활동에 악용됐다. 특히 신원조사를 빌미로 한 각종 동향 수집과 국가보안법,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에 대한 수사권한은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과 정치 개입 의혹이 반복되는 배경이 됐다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집시법이나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에 대한 수사권한은 폐지하도록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개혁위는 4200여명에 달하는 기무사 인원을 3000여명 수준으로 계급별 30% 이상 감축하는 개혁안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기무사 소속 장군 9명 중 3~4명이 줄고 50여명의 대령 보직도 30여명대로 줄어들 전망이다.개혁위는 서울을 포함한 광역 시·도 11곳에 설치된 대령급 지휘 기무부대인 이른바 ‘60단위 기무부대’는 전면 폐지하는 방식으로 인원 감축을 권고할 방침이다. ‘범진사’ 등으로 불려온 600, 601, 608, 613부대 등 기무부대는 각 지역의 군부대 내에 설치된 기무부대를 지휘, 감독할 목적으로 생겼으나 ‘옥상옥’ 역할을 하면서 민간인 사찰과 정치 개입 여지를 높여 왔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60단위 부대 인원만 서울 100여명을 비롯해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개혁위는 기무사가 일상적으로 군인사를 관찰해 보고하는 동향 관찰 존안 자료를 없애고 일상적인 군 유선전화 도·감청을 금지하는 한편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독대 보고(대면 보고)를 하지 말라고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무사의 군인사 첩보 수집 권한과 대공수사권, 쿠데타 등을 막기 위한 대전복 업무를 그대로 유지한 채 인력 30%만을 감축했다는 점에서 이번 개혁안에서 근본적인 처방이 빠졌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기무사의 인적 청산 없이 잉여인력 30%를 명예 퇴직하는 형식의 감축은 사실상 기무를 살려 주는 꼴”이라며 “동향 관찰권에 대한 완벽한 폐지도 없고 사찰했을 때 처벌하겠다는 강력한 처벌조항 신설이나 대공수사권 폐지 등 알맹이는 빠져 결국은 기무에게 부활할 수 있는 계기를 개혁위가 마련해 준 꼴”이라고 비판했다.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도 “기무사 개혁의 핵심인 정보 사찰과 군 지휘관 동향 조사 기능을 그대로 두면서 30%의 인원만 감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잘못된 관행의 동력을 꺾을 순 있어도 언제든지 정치권으로부터의 유혹의 불씨를 살릴 수 있는 여지를 둔다”고 지적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밀고 ‘장려하는’ 중국 사회/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밀고 ‘장려하는’ 중국 사회/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중난(中南)재경정법대 디쥐훙(翟橘紅) 교수는 얼마 전 해직과 함께 당적 박탈 통지를 받았다. 수업 도중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주석직 임기 폐지를 비판한 사실을 학생이 당국에 밀고한 것이다. 베이징건축대 쉬촨칭(許傳靑) 교수는 학생들의 떠들썩한 수업 태도를 나무라며 일본이 중국보다 우수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가 학생이 고자질하는 바람에 행정처분을 받았다. 푸젠(福建)성 샤먼(廈門)대 유성둥(尤盛東) 교수 역시 잘못된 정치적 발언을 했다고 학생이 몰래 일러바쳐 해고당했다.중국 국가안전부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이스라엘 중앙공안정보기관(모사드)과 함께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꼽힌다. 그런 안전부가 석 달 전에 “익명의 밀고를 장려한다”고 밝히며 ‘밀고 사이트’를 개설한 뒤 포상금 지급 약속까지 내걸었다는 소식이다. 학생의 밀고만으로도 부족한지 정부까지 나서서 이를 부추기는 형국이다. 중국 밀고의 역사는 유구하다. 사마천(司馬遷)은 역사상 최초의 밀고자로 3100년 전 상(商)나라 주왕(紂王) 때 제후 숭후호(崇侯虎)를 꼽았다. “주왕은 자신의 말을 거역한다는 이유로 후궁과 삼공인 구후(九侯), 악후(?侯)를 무참히 살해했다. 삼공 중 한 명인 서백창(西伯昌)이 이 소식을 듣고 개탄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숭후호는 주왕에게 이를 고변했다. 주왕은 서백창을 7년 동안 감옥에 가뒀다.” ‘사기’(史記)에 나온다. 가장 기승을 부린 시기는 명나라 시대다. 쿠데타로 황제에 오른 영락제(永樂帝)는 환관들로 비밀정보기관 ‘동창’(東廠)을 꾸렸다. 주요 임무는 남몰래 밀고를 부채질해 정적 세력들을 철저히 감시하고 숙청하는 일이다. 죄의 유무와 상관없이 동창에 끌려갔던 사람들은 죄다 혹독한 고문에 시달려 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동창 우두머리 위충현(魏忠賢)은 황제마저 꼭두각시로 만들고 국정을 농단해 명나라를 멸망의 길로 재촉했다. 현대 들어서도 횡행한다. 문화혁명(1966~1976) 시기가 절정을 이룬다. 밀고를 통해 수많은 혁명가와 학자, 민주 인사들을 ‘인민의 적’으로 내몰아 공격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멋모르는 어린 홍위병에게 ‘반란은 정당하다’(造反有理)고 선동해 이들 인민의 적에게 치욕을 안기고 학대와 고문을 자행했다. 밀고가 수천 년간 중국의 영혼과 육체를 좀먹은 셈이다. 하지만 다행히 “밀고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중국 사회에서 나오고 있다. 인민대 우샤오추(吳曉求) 교수는 “인생에서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 있다”며 “거짓말하지 말고 밀고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샤먼대 재학생들은 “악랄한 밀고로 존경받는 유성둥 교수를 해고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커다란 손실”이라며 해고를 철회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밀고가 나쁜 것은 무엇보다 인간성을 황폐화한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스승이나 친인척·친구를 밀고하는 일은 가까운 사람들조차 믿지 못하도록 불신을 조장해 사회 전체를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밀고는 건강한 사회 풍토를 갉아먹는 암 덩어리 같은 존재다. khkim@seoul.co.kr
  • 트럼프 위협에도 터키 “마이 웨이”

    트럼프 위협에도 터키 “마이 웨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규모 제재 위협에도 불구하고 터키가 미국인 목사 석방을 거부했다.브랜슨 목사는 자신이 터키 정부가 쿠데타 배후로 지목한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을 추종한다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는 앞서 법원에서 “기독교인인 나에게 이슬람 성직자를 추종했다는 혐의는 모욕”이라고 진술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 정부는 터키에 브런슨 목사 석방을 수차례 요구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브런슨 목사의 장기간 억류에 대해 터키에 대규모 제재를 부과할 것”이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에 “물러서지 않겠다”고 맞섰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인권, 무기공급, 대테러 공조 등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특히 에르도안 대통령이 러시아제 무기를 구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미국은 터키가 러시아제 S400 방공미사일을 도입하면 F35 전투기의 터키 공급 제한 입법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같은 갈등 국면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브런슨 목사를 정치적 인질로 삼아 미국과의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고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性정체성 혼란 임태훈, 軍개혁 주도 어불성설”

    “性정체성 혼란 임태훈, 軍개혁 주도 어불성설”

    김성태 발언 논란… “盧 탄핵 때도 문건” 임 소장 “내란범 변호에 여념없다” 비판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31일 임태훈 군 인권센터 소장의 성 정체성을 운운하며 군 개혁 움직임을 비판해 인신공격 논란에 휩싸였다. 임 소장은 “성 정체성과 국방 개혁은 상관이 없다”며 “내란범을 변호하는 것이냐”고 반박했다. ●한국당 ‘군기문란 진상조사 TF’ 구성하기로 김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임 소장이 군 개혁을 주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군 인권센터가 폭로하는 (국군기무사령부 등) 군 내부 기밀이 어떻게 전달됐는지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군기문란 진상조사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기로 했다. ‘윤 일병 사건’ 등 군내 의문사 진상 규명에 앞장서 온 군 인권센터는 최근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공개하고 기무사의 폐해를 드러냈다. 임 소장 측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원내대표는 내란범을 변호하는 데 여념이 없다”며 “(성 정체성 혼란 발언은) 논리가 부족하니 상관없는 내용까지 끌어와 물타기를 시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 소장은 “기무사 문건은 반헌법적 쿠데타 계획을 참다 못한 전·현직 요원이 제보해 준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북한을 다녀온 사람만 북한 인권 이야기를 하냐”며 “말장난은 그만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무사 “盧 탄핵 때 계엄 내용 검토 없었다” 한편 김 원내대표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기무사 군대전복 상황센터에서 대응문건을 작성했다고 한다”며 “2004년 문건도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알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무사는 즉각 부인했다. 기무사는 “2016년 12월 박근혜 정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기간 중 문제점을 살펴봤지만 계엄 내용을 검토한 바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숲 거닐다 구름 보면 ‘내가 너구나’ 생각 들어···이게 걷는 거야” 上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숲 거닐다 구름 보면 ‘내가 너구나’ 생각 들어···이게 걷는 거야” 上

    죽음의 문턱서 돌아온 박상설씨가 들려주는 ‘걷기’란그를 4시간 넘게 인터뷰하고 회사로 돌아오는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사는 게 뭘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삶인가’ ‘왜 사는가’하는 문제를 곱씹어 보게 됐다. 정답은커녕 답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게 이런 문제 아닐까. 그래도 사람마다 제각각 해답을 품고 살고 있으리라. 박상설씨, 1928년에 태어났으니 올해 91세다. 그는 자신의 삶을 찾고자 가족을 ‘내팽개치고’ 혼자 청년의 삶을 살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을 보니 가장 번민하는 것이 돈이 아니라 가족이더라구요. 가족끼리도 많이 싸우고. 하지만 저는 가족에 대해 ‘초월적 사랑’을 하기에 혼자 나와 삽니다.” 기자는 지난 26일 승용차가 아니라 대중교통으로 오라는 그의 당부대로 1호선 양주역에서 내렸다. 그는 양주역에 내려 “중 같은 빡빡머리를 찾으라”고 했다.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가벼운 배낭과 작은 가방을 걸친 등산복 차림이었다. 91세라기엔 걸음걸이나 서 있는 자세가 믿기지 않을 만큼 곧았다. 말투는 빨랐고 목소리는 컸으며 거침이 없었다. 같이 버스를 타고 30분쯤 가니 그의 아파트가 나왔다. 집으로 가는 것이 폐를 끼치는 것 같아 근처 카페로 가자고 해도 박씨는 “집으로 가자”며 한사코 소매를 끌어당겼다. 그는 6·25 한국전쟁 때 공병 장교로 참전한 덕분에 임대주택에 산다고 귀띔했다. 배낭에는 원두커피와 루소의 에밀이 들어 있다고 했다. ●빡빡머리 박상설씨, 원두커피와 에밀이 든 배낭 메고 다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집안은 남자 노인네가 혼자 산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리가 잘 돼 있었다. 거실을 서재로 쓰는 듯 벽에는 인문학 서적과 지도, 사전과 등산 관련 책으로 가득 찼고 한쪽 벽에는 기사를 쓰기 위함인지 PC가 설치돼 있었다. 침실문을 열어 보여주기에 들여다보니 침대가 말끔히 정돈돼 있었다. 다른 한쪽 방은 ‘옷 방’으로 쓰는 듯 각종 옷이 반듯하게 걸려 있었다. 부엌은 설거지가 말끔히 돼 있었고, 세간은 깨끗하게 손질돼 있었다. 베란다에는 언제든지 나갈 수 있게끔 등산과 비박 장비들이 잘 꾸려져 한쪽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깔끔한 성격으로 보였다. 그에게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왜 가족과 같이 지내시지 않나요.☞ 건강을 크게 잃고 난 다음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혼자 살기로 했어. 가족회의에서 그렇게 결정한 거지. 그동안 살아보니 나머지 인생은 홀로 사는 게 옳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혼자 산지가 30년이 넘었어. 혼자 사는 게 편해. 잔소리가 없잖아. 아들 하나, 딸 둘이 있는데 다 잘 지내. 막내딸이 서울 강남에 사는데 내가 딸네 집을 몰라.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거든. 집사람하고는 십수 년 전부터 연락을 안 하고 지내.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리를 들었는데···(부인에겐 짠하고 시린 듯 말끝을 흐렸다.) 김치도 식혜도 혼자서 잘 담가 먹어(직접 만든 식혜를 자랑하듯 김치냉장고에서 꺼내 한 사발 권했는데 시원하고 은근한 단맛이 일품이었다.) 둘째 딸이 가끔 여기를 방문해. 딸이 친구들과 같이 와서 식혜를 먹고 가기도 하고. - 가족과 연락을 안 하는 건 너무 한 것 아닌가요.☞ 내가 생일이라고 미역국 한 그릇 얻어먹은 적이 없어. 생일날 오라고 하지만 가본 적이 없으니. 그리고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잖아. 대신에 내가 아이들에게 아프다고 신세 한번 진 적이 없어. 요새 보면 늙은 부모가 요양원에 가는 바람에 자녀들이 죽을 고생들 하잖아. 난 그런 게 없으니 아이들 고생시키지 않았지. 옛날에 탈장과 전립선 수술을 했는데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수술했지. 그래서 가족에겐 ‘냉정한 사랑’이랄까 ‘초월적 사랑’이랄까 뭐 그런 것을 주는 셈이지. “너무 하다”고 비판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인생이 다른 사람들이 사는 삶과는 다르니깐. 그래도 애들이 미성년자일 때 부모 도리를 다 했지. 자식이 다 자라고나서 부부 간에 성격이 안 맞고 하니 내 성격대로 살고 싶었던거야. 집사람도 마찬가지였을 테고. 사랑은 바라는 게 아니니깐.●“뇌졸중에 1년 시한부 선고···길에서 죽자고 걸어” - 이렇게 건강하지만 크게 앓았던 적이 있다던데.☞ 30년도 더 전에 쉰여덟 살 때(1987년)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지. 건설회사 임원이었는데 그때 하루 담배 두 갑씩 피웠고, 며칠씩 밤샘도 했고, 스트레스가 엄청났지. 그러다가 갑자기 쓰러진 거지. 목덜미와 손발이 마비되기 시작했지. 한국에서 병명을 찾지 못해 3년 뒤 지팡이를 짚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지. 미국서 ‘뇌간동맥경색(뇌졸중)’ 판정을 받았지. 길어야 1년밖에 못 산다고 했어. 죽음의 문턱에 섰던 거지. 수술을 못해 지금도 동맥이 막혀 있어(그는 컴퓨터를 켜서 목 부분의 뇌간동맥에 흰색이 선명한 MRI 촬영 사진을 보여줬다.) 대신에 모세혈관들이 피와 산소를 공급하고 있어. 그래서 살고 있는 거야. 의사가 아스피린 복용과 운동을 권했어. - 그래서 운동으로 등산을 시작한 건가요. ☞ 그땐, 등산보다는 생활 방식을 바꾸고 싶었던 거지. 1년밖에 못 산다기에 미국 간 김에 차를 렌터해서 종주를 한 거야. 길 위에서 죽자고 작정한 거지. 마비가 서서히 번져가고 있었지만 운전은 할 수 있으니.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미국 종주를 서부에서 동부로, 남쪽 마이애미까지 4번 했어. 멕시코 캐나다 알래스카도 가고, 유럽과 인도, 네팔 등을 쏘다닌 거야. 죽을려고 하루 일고여덟 시간씩 걸었어. 나무 지팡이를 짚고서. 미국선 인디언들과 같이 지내고, 인도에선 거지들과 같이 잠자고 했어. 굶어가면서 사막과 오지를 찾아다닐 때 한 번도 호텔에 들어가지 않고 텐트를 치고 살았지. 렌트카에서 숙식을 해결하고(그는 자신의 말을 입증하듯 미국의 인디언과 인도 거지 소굴에서 지냈던 사진들을 찾아서 보여줬다.)- 사진을 보니 그때도 머리를 빡빡 미셨네요. ☞ 이러다가 길바닥에 쓰러져 죽을 텐데 멋있게 보이는 게 무슨 소용이야 싶어서 머리를 밀어버렸지. 그 뒤, 자연 속에 지내는데 꾸밈이 필요 없어 계속 머리를 밀고 다녔지. 황량한 사막, 북극 오로라, 빙하 탐험···. 나를 뒤돌아보게 하고, 사막의 무의미한 것들이 사방이 벽처럼 무섭게 느껴지더라고. 여행이 아니라 나를 버리러 간 것이지만 적막의 자유를 얻었지. 그걸 즐겼던 것 같애. 지금 생각해보면 엄두가 안 나. 늘 새로운 모험에 흥미를 건 만용이자 호기이지. ●“하루 7~8시간씩 서너달 걸으니 마비 풀려···지팡이 버려” - 환자가 그렇게 몸을 굴리면 건강이 더 나빠질 텐데.☞ 미국의 오지를 찾아 서너 달 다니니 마비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더라고. 지팡이 없이 다닐 수 있게 됐지. 아프다고 눕지 않고 떠돌아다닌 게 기적을 가져왔던 거지. 1년밖에 못 산다고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그 뒤로 유럽을 여행했어. 1년을 넘기자 이젠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어. 그 후 자연을 찾는 삶을 계속했어. 그래서 오지 체험, 등산, 자동차캠핑, 주말농원 등을 한 거야. 난 덤으로 사는 거야. 기적이지요. 건강은 발바닥에서 온다는 걸 깨달았지. 그걸 후학들에게 알려주고 있어(그는 요즘 공무원이나 기업 연수나 등산학교 등에 강사로 초청을 많아 받는다.)- 등산은 언제부터 했나요. ☞ 오지로 가는 게 등산이지. 숲 속에서 없는 길을 만들어 앞으로 갔지. 대학시절 불암산에 자주 갔어. 그때 서울대 공대가 공덕리(현재 공릉동)의 원자력병원 자리에 있었어. 30대 시절엔 화전민이 사는 곳을 찾아다녔지. 갇혀 사는 게 싫고 지시하고 지시받는 게 싫었지(그는 5·16쿠데타 직후 국토교통부 공무원을 지냈다고 한다.). 스무 네 살 때 부모와 일곱 식구를 먹여 살려야 했고, 서른한 살엔 열한 명의 가장이 됐지. 보릿고개 시절 죽기 살기로 일했고, 그때의 피난처가 산이었지. ☞ 하편 계속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숲 거닐다 구름 보면 ‘내가 너구나’ 생각 들어···이게 걷는 거야”-下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숲 거닐다 구름 보면 ‘내가 너구나’ 생각 들어···이게 걷는 거야”-下

    죽음의 문턱서 돌아온 박상설씨가 들려주는 ‘걷기’란박상설씨는 여전히 ‘현역’이라고 주장한다. “91세에 기사 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걸, 내가 최고령 기자야. 그리고 오지도 탐험하지”. 이런 그에겐 별명이 많다.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 ‘책 읽는 농사꾼’ ‘오지 탐험가’ ‘오토캠핑 선구자’···. 그는 1928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6·25 한국전쟁에 공병 대위로 참전했다가 5·16쿠데타 직후엔 건설부 공무원으로 3년 남짓 근무했다. 1967년 기술사 자격증을, 1987년 심리상담자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그해 뇌졸중으로 쓰러져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을 산행으로 극복해 냈다. 2001년 동아일보 투병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2014년엔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펴냈다. 인터넷 매체에 칼럼니스트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산이 내 직장이고, 숲이 내고향···걷다가 죽을 생각이야”   - 등산은 주로 어디로 다니셨나요. ☞ 가평, 원주, 춘천 등에 화전민들이 더러 있었지. 그런 데로 갔지. 그때는 등산이란 ‘단어’가 생기기 이전이었지. 우리나라엔 등산이란 개념도 없었어. 산을 좋아하는 유전자가 내 속에 있었나 봐요. 설악산은 한 100번쯤 갔을까, 덕유산도 많이 찾았지. (아파트 복도에서 한 야산을 가르키며) 요즘엔 저 산을 자주 가지. 이젠 나이가 드니 높은 산엔 못 가. 얉은 산에나 가고, 그래도 걷는 거지. 산이 내 직장이고, 숲이 내 고향이야. 걷다가 죽을 거야. - 걷다가 죽다니요.☞(그는 작은 가방에서 꼬깃꼬깃 접은 낡은 종이를 꺼내 펴보이며) 이건 내가 등산 다닐 때 메고 다니는 것인데, 여기에 현금 20만원하고 시신기증 등록증, 시신기증인 유언서를 넣고 다니지. 내가 죽고 누군가가 시신을 발견하면 처리하는데 드는 간단한 비용이야. 연세대 의과대학에 해부실습용으로 기증하라는 유서를 담은 거야. 병원 측에 실습 후엔 화장해 산에 뿌려주고, 뿌린 장소를 가족에게 알려주지 말라고 당부한 거야. 가족들에겐 제사 지내지 말고, 외부에 사망 사실 알리지 말라고 했어. 죽음은 묵묵히 받아들여야 해. 우리는 자연을 거역할 수 없는 미미한 존재거든. 그래도 죽으면 물려줄 유산이 있어. (벽을 가르키며) 저 사진(덕유산 정상에 오른 모습)과 이 낡은 신발이야.●“물려줄 유산은 낡은 등산화 한 켤레···시신은 실습용 기증” - 홍천에서 캠프를 하신다고 했죠.☞ 오대산 아래 샘골에, 한강 발원지쯤에 있지. 주말 레저농원 ‘캠프 나비’라고. 말이 농원이지 비닐하우스 한 동뿐이고, 밭엔 더덕과 산풀이 같이 자라지. 주말농원을 한 지가 50년은 됐을 거야. 서른아흡살 때부터 했으니. 여기가 내 오토캠핑장이야. 책도 읽고.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에 음악도 듣고. 1990년대 후반 오토캠핑을 시작했어. 내가 우리나라 (오토캠핑) 1세대일 거야. 그러다 2002년부터 오토캠핑 강사도 했고. 그때 강연을 들었던 제자들이나 친구들이 주말에 더러 놀러 오기도 해. (동영상을 보여주며) 농원 옆 계곡에서 물에 빠져서 걷는 이런 탐방도 하고. 농원 이름 나비는 자연(Nature)과 존재(Being)를 합친 말이지. (예쁜 곤충 나비일 것이라는 기자의 추측은 빗나갔다.). 강남에 사는 막내딸이 와서 며칠씩 묵기도 해. 우연히 여기서 만나면 동해안으로 같이 드라이브 가기도 하고.- 최근 오토캠핑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요즘 야영장 가보면 말이야, 밤새 시끄러워요. 삼겹살 구워먹고, 막걸리 마시고, 고스톱 치고. 싸우기도 하고. 장비를 자랑하려는 듯 사치를 부리는 이들도 많아. 10만원대 장비면 충분한데 500만원, 천만원짜리 호화 장비를 갖고 오고. 텐트는 도심 아파트처럼 다닥다닥 붙여 치고 있어. 그런 게 싫고 마음이 편치 않아서 난 오토캠핑도 주말농장에서 하지. 조용히 책을 읽거나 별을 보고 생각에 잠겨야 하는데···. 요새 오토캠핑에는 오지 체험이랄까, 자연에 들어간다는 철학이나 인문학적 뜻은 없어. 오토캠핑을 난 주말농장에 접목했지. 홍천 주말농장에서 자연하고 사는 거지. 마음이 편하고 골치 아픈 게 없어졌지. - 건강을 위해 특별히 드시는 음식은.☞ 그런 것 없어. 보약은 한평생 먹어본 적이 없어. 3년 전인가 큰 삼을 받았는데, 700만원인가 한다는데 난 먹지를 않아 다른 사람 줬어. 특별히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양파와 파를 많이 먹는 편이야. 미역국, 아욱국 좋아하고 토속음식 좋아하지. 고기도 안 먹는 것은 아닌데 생선회와 개고기는 안 먹어. 미신이라기보다는 그냥 인문학적으로 싫어서 그래. 커피는 원두를 집에서 내려 하루 20잔쯤 마셔. 누가 불러 남의 사무실 갈 때 원두커피를 내려 보온통에 넣어서 배낭에 메고 가지. 가서 같이 따라 마시고. 산에서 캠핑할 때 누룽지를 끓여 먹지만 라면은 냄새가 싫어서 안 먹어.●“요즘 젊은이들, 5분만 얘기하면 할머니 할아버지 냄새가 나” -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책을 내셨던데.☞ 아주 우연이 겹쳤지. 옛날에 인터넷이 생기기 전부터 주말농장 생활을 하면서 글을 썼지. 그때 쓴 글을 복사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줬지. 이게 모교로 흘러가 어느 날 동창회보 편집자손에 들어 갔더래요. 그때 기자가 찾아와 동창회보 신문에 올렸어. 그 기자가 수년 후에 창간되는 인터넷 매체 아시아N에 합류하더라고. 이를 계기로 인터넷에 십수년째 칼럼을 쓰고 있지. 칼럼 제목이 ‘박상설의 클래식’이거든. 이 기사를 보던 한 여성이 칼럼을 엮어 책으로 만들자며 쳐들어왔지. “창피하다”고 처음엔 거절했는데···. 아무튼 책이 나오게 됐지. - 거의 100년 사셨는데 요즘 젊은이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 요즘 전철을 타면 젊은이들이 스마트폰만 쳐다보지 책을 안 봐. 젊은이들이 “IT가 어떻니”, “정보화가 어떻니” 하면서 그런 것에 물들어 회사에 나가 일하지만, 의식은 이네들 아버지 엄마의 감옥에 갇혔어. 젊은이들의 버릇도 그렇고. 그건 젊은이들이 문제가 아니고 그 뒤에 있는 부모들이 문제지. 부모들이 책을 안 읽고, 문화생활, 인문학적 생활은 안 하잖아. 그 부모가 젊은이들의 거울입니다. 20대 젊은이들과 한 5분 이야기하면 금방 할머니 할아버지 냄새가 나거든. 젊은이들이 자기 엄마 아버지 이외에는 세상을 모른다 이게 문제야. 젊은이들이 빨리 이를 깨고 나와야 하는데.- 하루 일상은 어떻게 되나요.☞ 보통 새벽 4시쯤 일어나서 두 시간씩 걷지. 뇌졸중이 오고 난 다음부터 완전히 그렇게 하지. 혼자 사니 밥하고 빨래하고, 보통 10시쯤 자. 칼럼이나 글을 쓸 때 읽어줄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이야. 새벽 두세 시까지도 하는데 이젠 무리하지 않으려고 해. 그리고 노래방, 카페, 사우나에는 안 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타락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서지. 가는 사람들을 욕하는 건 아니고, 그 사람들은 그런 생활에 젖어 있는 거야. 또 내가 심은 나무가 잘 자라는지, 봄에는 싹이 생기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병이 생겼지. 지금까지 20만그루 이상 심었어. 주로 잣나무와 금강송. 활엽수를 심었거든. 나무가 잘 자르는지, 싹이 잘 자라는지 보고 싶어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나태해지지 않으려는 것이야. ●“시력이 나빠져 걱정···강아지 앞세우고 걸어야겠지” - 시력이 많이 나빠졌다는데.☞ 황반변성이 와서 눈이 어두워, 한 5년 전부터 시작됐어. 칼럼을 쓰는 데 제일 어려움을 겪고 있어. 전에는 한 두어 시간이면 됐는데 요즘은 이틀에 걸쳐 쓰고 있어. 책 읽는 것도 어려워지고 있어. 장애인 신청을 해 뒀지. 홍천 오토캠핑장 갈 때에는 멤버들이 서로 와서 운전을 해 데려다 주고 있어. 앞이 보이지 않으면 강아지를 앞세우고 걸어야겠지.- 걷는 것이 무슨 의미지요. ☞ 건강은 말할 필요가 없이 걷다가 죽는 것이 노인들의 바람이야. 병들고 노쇠해지면 걸을 수 없잖아. 그런 것 생각하면 끔찍해. 걷는다는 것, 한 발자국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소중한 증거지. 경사가 있는 곳에선 숨이 턱턱 막히지만 살아있음에 감사한 생각이 들지. 루소는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라고 말했어. 숲을 허허롭게 거닐면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마음이 상쾌해져. 구름을 보면 ‘내가 너 같구나’란 말이 저절로 나와. 이게 걷기의 의미지. ▶“숲 거닐다 구름 보면 ‘내가 너구나’ 생각 들어···이게 걷는 거야” 上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이종수의 헌법 너머] 계엄의 유혹과 교훈

    [이종수의 헌법 너머] 계엄의 유혹과 교훈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국군기무사령부가 비밀리에 마련했다는 계엄 준비 문건 기사가 마치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 연일 새롭게 터져 나오고 있다. 그 시나리오는 섬뜩하고 기괴한 납량특집 드라마 같은지라 간담이 서늘해지다가도 되새겨 보면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불쾌지수를 높인다.평화로운 촛불집회와 합헌적인 탄핵 절차가 진행되던 중에 국가 안보에 그 나름 만전을 기하려는 기무사의 지나친 염려증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치밀하다. 대체 뭘 수사하려는지도 불분명한 합동수사본부 설치, 국회 무력화 계획, 야간 통행금지, 언론검열 등 마치 시곗바늘이 40여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이 기각되더라도 정권의 남은 임기와 차기 정권의 재창출을 고려하면 정상적인 헌정으로는 도저히 무망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도 의심된다. 게다가 기무사가 군의 방첩활동과는 전혀 무관한 세월호 유족 사찰까지 한 이전의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국가 안보가 아니라 정권 안보 유지에 골몰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국가긴급권의 하나인 계엄은 질서유지를 위해 경찰력이 아닌 병력이 동원되는 가장 극단적인 비상적 조치이고, 이는 정상적인 헌법 정치의 잠정 중단을 뜻한다. 한마디로 국가비상사태에 직면해 군사통치를 합법적으로 용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행 헌법은 여러 국가긴급권들 중에서 유독 계엄에 대해서만 따로 계엄법을 마련해 그 발동 요건과 절차 및 권한을 나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계엄을 포함한 국가긴급권은 헌법학에서 그간 오랜 난제이자 고민이었다. 헌법이 규범적으로 예정하는 기본권의 보장, 권력분립과 법치주의 등은 정상적인 헌정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마련된 장치들이다. 그런데 천재지변 또는 전시·사변과 같은 국가비상사태에 당면해 헌법 정치의 통례적인 메커니즘의 작동으로 사태의 신속한 극복을 기대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이러한 까닭에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국가긴급권을 헌법에 규정하면서 예외적인 비상사태의 규범화를 도모하고 있다. 고대의 로마공화국에도 이 같은 고민이 똑같이 주어졌었다.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침공하자 원로원은 집정관을 한시적으로 독재관으로 임명하면서 원로원의 견제를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전권을 부여했다. 오로지 목적은 외적을 물리치고서 로마를 하루빨리 평화체제로 다시 되돌리는 것이다. 오늘날 독재자를 뜻하는 ‘Dictator’가 이 로마의 독재관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번 주어진 이 비상적인 독재권력이 쉽사리 그리고 자발적으로 회수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바로 권력과 독재의 유혹 때문이다. 이로써 로마의 카이사르와 긴급조치로 일관했던 박정희는 유감스럽게도 같은 비극적 운명을 겪었다. 기무사의 계엄 관련 문건이 사전 검토에 그친 것인지 아니면 구체적인 실행계획인지는 추후의 사법적 판단에 맡기겠지만, 해당 문건의 작성 주체들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과 함께 조용히 타올랐던 촛불이 마치 들불로 크게 번지기를 내심 기대했던 듯도 싶다. 히틀러의 집권과 독재체제 구축에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독일 공산당 당원들이 1933년 제국의사당 방화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일소됐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참으로 아찔하다. 게다가 문건 작성 지시자가 당시 국방장관이라는 내부 증언을 접하고서는 더욱 황당하다. 그간 여러 차례의 군사 쿠데타 경험도 그렇듯이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 나라들의 헌법은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요청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걸프전쟁의 영웅이었던 콜린 파월 장군이 이후에 국방장관이 아니라 국무장관을 맡았고, 역대 유명한 국방장관인 로버트 맥나마라는 기업인 출신이었다. 독일에서도 주요 정치인이 국방장관을 맡는 것이 군에 대한 문민통제 원칙상 확립된 오랜 관행이고, 노동장관을 역임한 여성 정치인이 현재 국방장관을 맡고 있다. 우리의 경우에 국방부 대변인에 민간인 출신이 임명된 것도 불과 최근의 일이다. 이번 사건을 거울삼아 향후 기무사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은 물론이거니와 그간 줄곧 불거진 방산비리의 근절, 군 내부의 정치적 통제를 위해서라도 민간인 출신의 국방장관 임명을 통해 헌법이 요청하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에 더욱 충실을 기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宋장관, 위수령 문건 잘못 아니라고 말해” 기무사 대령 폭로에 宋 “완벽한 거짓말”

    “宋장관, 위수령 문건 잘못 아니라고 말해” 기무사 대령 폭로에 宋 “완벽한 거짓말”

    기무사 참모장 “한민구 장관 지시라며 조현천 사령관이 계엄 문건 작성 명령” 군·검 수사기구 서울동부지검에 설치박근혜 정부의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계엄 문건’이 공개된 뒤 처음으로 열린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는 송영무 국방장관의 계엄 문건 은폐 의혹을 두고 송 장관과 기무사 대령이 낯뜨거운 진실 공방을 벌였다. 상하 관계가 엄격한 군 조직치고는 극히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이날 국방위에서 100기무부대장 민병삼 대령은 “장관이 7월 9일 오전 간담회에서 ‘위수령 검토 문건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내가 법조계에 문의해 보니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다만 직권남용에 해당되는지 검토해 보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저는 현재 36년째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으로서 명예를 걸고 양심을 걸고 답변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민 대령이 갑작스럽게 ‘하극상’으로 비칠 수 있는 폭로를 하자 황영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민 대령 말이 사실이 아니냐”고 추궁했다. 송 장관은 “완벽한 거짓말이다. 대장까지 지낸 국방부 장관이 거짓말을 하겠나. 장관을 그렇게 얘기하시면 안 된다”고 반발했다. 이석구 기무사령관이 지난 3월 ‘계엄 문건’을 송 장관에게 보고할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두 사람의 의견이 엇갈렸다. 이 사령관은 “위중한 상황으로 보고했다”고 말한 반면, 송 장관은 “5분 정도 보고를 받았다. 중요한 사안이라고 해서 놓고 가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보고 시간에 대해서도 이 사령관은 20분 동안, 송 장관은 5분 동안이라고 각각 밝혔다. 황 의원은 송 장관이 거짓말을 했다며 추궁했고 송 장관은 “평생 정직하게 살아왔다. 증인이 있다”고 반박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송 장관이 지난 3월 이 사령관으로부터 계엄 문건을 전달받고도 4개월가량 묵살한 의혹에 대해 “쿠데타 세력에게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준 것 아닌가”라고 추궁했고 송 장관은 “정무적 판단이었다”고 답했다. 소강원 기무사 참모장(육군 소장)은 이날 회의에서 “(박근혜 정부 당시) 조현천 기무사령관이 불러 ‘한민구 장관이 위중한 상황을 고려해 위수령과 계엄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며 “8장짜리 원본(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을 만들고 나서 조 사령관이 당시 한 장관께 보고할 때 궁금한 점이 있으면 참고할 수 있도록 67쪽짜리 자료(대비계획 세부자료)를 같이 만들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논란을 규명하기 위한 군·검 합동수사기구는 서울동부지검에 설치된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1945년 ‘소련 신탁통치 주장’ 가짜뉴스에 통일정부 수립 물거품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1945년 ‘소련 신탁통치 주장’ 가짜뉴스에 통일정부 수립 물거품

    “나는 지금 우리나라의 파쇼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인데 성명 석 자가 반파쇼의 위원장이 되고, 나는 총동원 조직을 마음에 합당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인데 성명 석 자가 위원회의 상무가 되어 있다. 이만 정도는 참을 수 있지만….”대하소설 ‘임꺽정’의 저자 벽초 홍명희는 1946년 1월 5일자 서울신문에 개인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모스크바 3상회의가 결의한 신탁통치 문제를 놓고 극우와 극좌 진영이 벌인 헤게모니 싸움에서 양쪽이 그의 이름을 멋대로 도용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하소연이었다. 홍명희는 당시 서울신문 고문이었다. 당시 한민당과 이승만이 주도하던 극우 진영은 김구의 임시정부를 앞세워 ‘반탁’ 대중운동에 총력전을 펴고 있었다. 임시정부는 1945년 12월 28일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이하 총동원)를 결성해 대중운동으로 미군정 권력을 이양받으려 했다. 공산당, 인민당 등 좌익도 30일 반파쇼공동투쟁위원회(이하 반파쇼)를 결성해 ‘반탁’의 주도권 다툼에 뛰어들었다. 양쪽에 일제 병탄기 항일 민족통일전선을 추구한 신간회를 주도했던 홍명희는 명분 확보와 외연 확장에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 해가 바뀌면서 반파쇼 측은 돌연 반탁의 기치를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결정 지지’(찬탁)로 바꿨다. 반파쇼는 1월 3일 개최한 ‘민족통일자주독립촉성시민대회’를 애초 공지한 것과 달리 외상회의 결정 지지 행사로 진행했다. 본의 아니게 ‘반탁’과 ‘찬탁’에 양다리를 걸치게 된 홍명희로서는 묵과할 수 없었다. 그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신탁통치는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던지는 것과 같다”고 밝힌 바 있었다. 좌익의 시민대회 이후 국론은 돌이킬 수 없는 분열의 길로 들어섰다. 정국 주도권은 극좌와 극우의 손으로 넘어갔다. 해방 후 가장 강력했던 여운형, 김규식 등 중도 혹은 좌우합작 추진 세력은 민주통일전선 기치를 꺼내기조차 힘들었다. 이들은 우선 통일된 임시정부를 세운 뒤 신탁통치를 거부해도 늦지 않다고 설득했지만, 흥분한 대중들에게 먹혀들 리 만무였다. 한민당의 공식 입장과 달리 ‘반탁 운동’에 회의적이었던 수석총무 송진우가 12월 30일 암살당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국론 분열에 이어 분단, 나아가 골육상잔의 길로 내몬 찬탁·반탁의 충돌은 어이없게도 한 토막 ‘가짜뉴스’에서 비롯됐다. 1945년 12월 27일 석간신문들은 합동통신을 받아 미국 번스 국무장관이 정부로부터 받았다는 훈령 한 토막을 보도했다. “번스가 (3국 외상회담) 출발 당시 소련의 신탁통치안에 반대하여 즉시 독립을 주장하도록 훈령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동아일보는 이것을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점령”이라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소련이 한반도 38도선 이북을 집어삼키기 위해 신탁통치를 주장한다는 것이었다. 조선일보는 “조선의 자주독립은 어디로, 독립·신탁론 대립”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 서울신문은 “아(조선) 독립 문제 표면화” “미, 즉시 실현 주장”이라는 제목 아래 훈령 내용이라고 전해진 것만 간단히 보도했다. 출처도 애매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이 기사는 미군 태평양사령부가 발행하는 태평양판 성조지에 보도된 것을 합동통신이 전재한 것으로 취재원도 없었다. 훈령 내용 역시 그동안 미 국무부가 밝힌 입장과 전혀 달랐다.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한다는 내용도 알려진 것과 정반대였다. 그러나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28일자에서 1면 전부를 ‘탁치’에 대한 반대 여론으로 채웠다. 29일 미 군정청에서 외상회의 결정문을 발표했다. ‘한국에 민주주의 임시정부를 수립하며, 최장 5년간 신탁통치를 하되 미국과 소련 대표로 구성되는 공동회의가 임시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확정한다’는 것이었다. 동아일보는 신탁통치만 앞세워 간단히 처리했고, 나머지 지면은 ‘반탁 운동’으로 채웠다. “한국은 신탁통치를 받게 되겠지만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그 기간은 최장 5년”이라고 보도한 서울신문과 대조를 이뤘다. 신탁통치를 한사코 밀어붙인 것은 미국이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2년 전후 식민지 신탁통치 구상을 처음 밝힌 이래 1943년 영국의 앤서니 이든 총리와의 워싱턴 회담에 이어 11월 스탈린과의 테헤란 회담에서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안을 공식화했다.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선 ‘신탁통치 20년’ 안을 제시했다. 루스벨트에 이은 트루먼 행정부도 마찬가지였다. 10월 20일 존 카트 빈센트 미 국무부 극동국장은 외교정책협의회에서 이렇게 밝혔다. “조선은 자치를 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미국은 따라서 우선 신탁관리제를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조선에서 반탁 운동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자 빈센트는 1월 16일 “조선 임시정부가 통일적인 통치와 치안의 능력을 보여 줄 때에는 탁치를 실현하지 않겠다는 것이 미국뿐만 아니라 연합 3국의 공통된 의견”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그날 동아일보는 소련이 조선을 속국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보도했다. 소련이 한국에서 ‘신탁통치의 원흉’으로 악마화되자 스탈린은 1월 23일 윌리엄 해리먼 주소련 미국대사를 불러 ‘회담 과정을 공개하겠다’고 통보했다. 24일 관영 타스통신은 회담 과정을 소상히 보도했다. 그러자 동아일보는 다짜고짜 “근거 없는 타스통신 보도”라고 비난했다(1월 26일자). 27일 미 국무부는 “타스통신 보도가 맞다”고 확인했다. 가짜뉴스임이 드러났지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난 뒤였다. 한민당을 중심으로 한 친일파들은 즉각 독립을 추구하는 민족세력의 일원이 됐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친일 매판의 과거를 세탁하고 ‘민족지’로 분식했다.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민족적 염원은 분단 정부 건설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이승만과 한민당의 꿈은 성큼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대성공은 이후 가짜뉴스의 거대한 뿌리가 됐다. 그 대상이 소련과 좌익에서 북한과 민주세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북한 관련 뉴스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학 교수의 말마따나 “백지수표”처럼 이용됐다. 아무렇게나 쓰고 말해도 되는 대상이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때 조선일보 25일자 사설엔 이런 대목이 있다. “(남파 간첩들이) 민심을 흉흉케 함으로써 사태를 격화시켰으리라는 것도 십분 짐작이 가기도 한다….” 남파간첩 배후설이다. 1986년 11월 16일자엔 ‘세계적 특종’이라며 1면 톱으로 김일성 주석 암살 의혹을 보도했다. 김 주석은 다음날 조선중앙TV에 나타났다. 이후 성혜림 망명설, 김정일 국방위원장 정신병설, 평양 계엄령 선포설, 조명록 전 군총정치국장 쿠데타설 등 ‘아니면 말고’ 식의 가짜 기사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2010년 천안함 사건 때는 북한의 인간어뢰설을 제기해 세계적인 비웃음을 사더니, 2012년엔 김정남이 일본 도쿄신문 고미 요지 편집위원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통해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필요로 이루어졌다”고 밝혔다는 기사를 창작했다. 2018년 1월 북한 공연단을 이끌고 남쪽을 방문한 현송월은 이 신문 보도에 따르면 2013년 ‘음란물 제작 취급 혐의로 공개 총살’당한 인물이었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할 때 방문 취재기자들에게 1인당 1만 달러를 요구했다는 가짜뉴스에 청와대 대변인이 발끈했지만, 이런 전례를 생각하면 특별한 ‘가짜’도 아니었다. ‘해방일기’의 저자 김기협 교수의 1945년 12월 27일 ‘일기’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동아일보가 아직 살아 있는 신문이라면 해마다 12월 27일에는 1945년 12월 27일 내보낸 이 기사에 대한 사과문과 반성문을 실어야 한다. 언론이 사회에 해악을 끼친 사례로 이 기사는 한국 언론사에서 가장 극악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짜뉴스의 거대한 뿌리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한다. 가짜뉴스를 잘 활용해 최고의 영향력을 구가하는 매체가 달라졌을 뿐이다. 혹자는 법적 처벌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북한 관련 오보는 처벌이 불가능하다. 오로지 눈 밝은 시민들의 양심과 판단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게 현실이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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