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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두환 조문?...이준석·송영길 대표 “계획 없어“ “불가”

    전두환 조문?...이준석·송영길 대표 “계획 없어“ “불가”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양당 대표가 23일 사망한 고 전두환 전 대통령 빈소를 조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오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저는 전두환 전 대통령 상가에 따로 조문할 계획이 없다”고 짤막한 입장을 밝혔다. 다만 “당을 대표해서 조화는 보내도록 하겠다”며 “당내 구성원들은 고인과의 인연이나 개인적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조문 여부를 결정하셔도 된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은 이날 전 씨 사망과 관련해 공식 논평을 내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민주당은 조화, 조문, 국가장 모두 불가”라고 말했다. 송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그의 사망 소식에 끝까지 자신의 죄의 용서를 구하지 못한 어리석음에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이같이 밝혔다. 송 대표는 “두 눈으로 목격한 5·18과 이후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며 “쿠데타를 시작으로 통치 기간 동안 숱한 죽음들과 그보다 더 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겪었던 형극의 삶을 기억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아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5·18의 진실을 밝히고 진심으로 사죄하길 간절히 바랐다”고 덧붙였다. 송 대표는 “민주주의를 지켜낸 5월 영령들을 위해, 그 민주주의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 반드시 짚어야 할 일이었다”며 “하지만 그 간절함마저도 이제는 이룰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의 생물학적 수명이 다하여 형법적 공소시효는 종료되었지만, 민사적 소송과 역사적 단죄와 진상규명은 계속될 것”이라며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이에 대한 정의를 세우는 길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5·18조사위 “사죄 기회 있었지만 변명 일관…희생자 고통 가중”

    5·18조사위 “사죄 기회 있었지만 변명 일관…희생자 고통 가중”

    “진상규명 지속할 것…신군부 핵심인물들 더 늦기 전에 진실 고백해야”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규명위)는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망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면서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상규명위는 이날 “전두환 씨는 지난 41년간 피해자와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고 사죄할 기회가 있었으나 변명과 부인으로 일관했다”면서 “이는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고통을 가중시켜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씨를 포함한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죄의 핵심 인물들에게 출석요구서를 발송했고, 전두환 씨는 지병을 이유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면서 “그의 사망에도 법률이 부여한 권한과 책임에 따라 진상규명을 위한 엄정한 조사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진상규명위는 “신군부 핵심 인물들은 더 늦기 전에 국민과 역사 앞에 진실을 고백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1979년 12월 12일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은 5·18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하고 같은 해 9월 1일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접선거를 통해 1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1997년 대법원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유혈진압과 관련해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죄 등 으로 무기징역 판결이 확정됐다.
  • “독재자” “학살자”…외신, 전두환 철권통치·광주 학살 조명

    “독재자” “학살자”…외신, 전두환 철권통치·광주 학살 조명

    외신은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 소식을 전하며 ‘한국의 전 독재자’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1980년대의 철권 통치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서의 학살을 소개하면서도 재임 기간 동안 한국의 경제성장도 조명하며 ‘명암’을 동시에 짚었다. 로이터통신은 23일 “한국의 전 군인 독재자(military dictator)가 사망했다”면서 “1979년 군사 쿠데타 이후 철권 통치로 대규모 민주화운동을 촉발시킨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위대를 대상으로 학살을 지휘했으며 이후 유죄를 선고받았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즈는 전씨에 대해 “한국에서 가장 비판받는 군인 독재자로, 끝까지 자신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라면서 “정경유착으로 수억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한국 경제는 연 평균 10%씩 성장했고 1988년 올림픽을 유치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광주 대학살을 주도한 전두환이 사망했다”면서 전씨를 ‘광주의 학살자(butcher)’라고 소개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내란 혐의 등으로 기소돼 법정에 선 1996년 재판을 ‘세기의 재판’이라고 소개하며 “쿠데타 공범인 노씨와 함께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전씨는 냉담하고 강경한 태도로 정치적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였다며 쿠데타를 옹호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언론도 전씨의 사망 소식을 일제히 속보로 전하며 관심을 보였다. 아사히신문은 “민주화운동을 억압하는 한편 경제성장에 힘을 실어넣었고 1984년 한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방일해 ‘일한(한일)신시대’를 천명했다”며 “퇴임 후에는 쿠데타에 동조하고 민주화운동을 탄압한 죄를 물어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후에 사면됐다”라고 밝혔다. NHK는 “1980년 쿠데타로 실권을 쥐고 약 7년 반 동안 경제 개발을 배경으로 한 강권적인 개발 독재형 정치를 펼쳤다”라고 평가했다.
  • 사죄 없이 “찬송가 들려” 목회자 된다는 전두환 아들 [김유민의돋보기]

    사죄 없이 “찬송가 들려” 목회자 된다는 전두환 아들 [김유민의돋보기]

    지난달 26일 먼저 세상을 떠난 ‘군사 쿠데타 동료’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유족과 달리 23일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 유족은 과오를 인정하지 않았다. 부인인 이순자씨와 아들 재국·재용·재만씨, 딸 효선씨 중 어느 누구도 전씨가 미납한 추징금을 납부하겠다거나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사죄하지 않았다. 부인 이순자씨는 2017년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를 내고 “정략적인 역사 왜곡 앞에서 나는 몇 번이고 전율했다”라며 “당시 수사책임자인 동시에 정보책임자였던 그분은 결코 발포 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았다”라며 전씨의 쿠데타를 두둔했다.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죄 재판을 받으러 광주를 오갈 때에도 전씨와 동행하면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노태우씨는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1997년 대법원에서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받았고 16년 만인 2013년 추징금을 완납했지만 전두환씨는 2200억 원의 추징금에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며 1020억 원 정도를 납부하지 않았다. 전두환씨 장남 재국씨는 “온 가족이 돈을 모아 부친(전두환)의 추징금을 완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연희동 자택이 공매에 넘어가자 이에 반발하며 소송을 통해 본채를 사수했다. 또한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나 국정감사에 불려 나와 사과하기도 했다.하루 일당 400만원…황제노역 논란“전두환, 아들 신학 공부에 기뻐해” 전두환씨의 차남 재용씨는 양도소득세 포탈 등의 혐의로 처벌받으면서 부과된 40억원의 벌금을 내지 않고 ‘황제 노역’을 하다가 비난을 받았다. 전재용씨는 2006년 12월 경기도 오산시 임야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다운계약서를 작성하고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15년 8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원을 선고받았다. 전씨는 벌금 40억원에서 불과 1억4000만원(3.5%)만 납부하면서 원주교도소에서 약 2년8개월간 하루 8시간씩 노역을 했고 지난해 2월 출소했다. 하루 일당이 400만원인 셈이라 당시 논란이 됐다. 그리고 지난 3월 극동방송 ‘만나고 싶은 사람 듣고 싶은 이야기’에 출연해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원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며, 이 소식에 아버지 전두환씨가 굉장히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다.전재용씨는 “교도소에서 2년8개월이란 시간을 보내게 됐다. 처음 가서 방에 앉아 창살 밖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찬송가 소리가 들렸다”라며 “종교방에 있던 분이 노래를 너무 못 불렀는데도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 찬양, 예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목회자의 길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전씨는 “부모님에게 말씀드렸더니 생각하지 못한 만큼 너무 기뻐했다”라며 “아버지는 ‘네가 목사님이 되면 네가 섬긴 교회를 출석하겠다’고도 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꼭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강조했다. 광주사태 가해로 국민 지탄…아들의 사죄 이러한 유족의 행보는 지난달 별세한 노태우씨 유족과 대비되는 것이기도 하다. 노태우씨의 아들 재헌씨는 부친을 대신해 여러 차례 5·18에 대한 사과의 뜻을 밝혔다. ‘삼가 옷깃을 여기며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분들 영령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리며 광주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노재헌씨는 2019년 8월 23일 두 전직 대통령의 직계가족 중 유일하게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사죄했다. 지난해 5월 29일에는 5·18 40주년 기념 배지를 달고 광주 남구 양림동에 위치한 오월어머니집을 찾았다.재헌씨는 오월어머니집 방명록에 ‘오늘의 대한민국과 광주의 정신을 만들어주신 어머님들과 민주화운동 가족 모든 분들께 경의와 존경을 표합니다’고 적었다. 같은해 6월23일에는 CBS라디오와 인터뷰에서 ‘5·18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치유와 화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100번이고 1000번이고 사과를 해야 되고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일어나지 말아야 될 5·18과 관련해 항상 마음의 큰 짐을 가지고 계셨다”며 “특히 병상에 누운 뒤부터는,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이 오면서 참배를 하고 사죄의 행동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고 저한테도 고스란히 마음의 짐이 됐다”라고 말했다.
  • 이재명 “전두환 조문 안해” 심상정 “죽음조차 유죄”…국힘은 침묵(종합)

    이재명 “전두환 조문 안해” 심상정 “죽음조차 유죄”…국힘은 침묵(종합)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사망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조문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성찰 없는 죽음은 그조차 유죄”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이날은 공식입장을 내지 않기로 했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 40분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숨졌다. 그는 지난달 26일 12·12 군사 쿠데타를 함께 일으킨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한 데 이어 한 달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전 전 대통령의 사망과 관련해 이 후보는 “중대 범죄 행위를 인정하지도 않은 점을 참으로 아쉽게 생각한다”며 “자신의 사적 욕망을 위해 국가권력을 찬탈했던,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에 대해 마지막 순간까지도 국민께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으니 전두환씨라고 하는 게 맞겠다”며 “전두환씨는 명백하게 확인된 것처럼 내란 학살 사건의 주범이다. 최하 수백명의 사람을 살상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미완 상태인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이 드러날 수 있게, 당시 사건 관련자들의 양심선언을 기대한다”며 “현재 상태로 아직 조문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민주·정의 “국가장은 있을 수 없다” 민주당은 전 전 대통령 사망에 대해 “국가장은 있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조오섭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가장법을 발의한 의원으로서 말씀드리면 아무런 사과도 없고 진실 규명에 대해서 왜곡만 하고 반성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한 것에 대해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어 “광주가 지역구인 의원으로서 말씀드리면 화가 난다.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반성하고 사죄했으면 좋았을 텐데, 광주시민들에게 사죄하라는 게 아니라 국민께 사죄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장’에 대해 “국가장은 행정안전부에서 국무회의에 부의하면 국무회의 의결로 국가장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한다”면서도 “국가장으로 치러지는 것에 대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의당 심 후보도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역사를 인식한다면 국가장 얘기는 감히 입에 올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심 후보는 “전두환씨가 끝내 진실을 밝히지 않고, 광주 학살에 대한 사과도 없이 떠났다. 역사의 깊은 상처는 오로지 광주시민들과 국민의 몫이 됐다”며 “전두환씨는 떠났지만, 전두환의 시대가 정말 끝났는지 이 무거운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 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헌정질서를 유린한 군사쿠데타 범죄자 전두환씨가 역사적 심판과 사법적 심판이 끝나기도 전에 사망했다”며 “전두환씨의 죽음은 죽음조차 유죄”라고 밝혔다.국민의힘 “오늘은 입장 없이 침묵하기로” 한편 국민의힘은 이날 당 차원의 공식 논평을 내지 않기로 했다. 당 관계자는 “오늘은 입장을 내지 않고 침묵하기로 했다”며 이준석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의 조문이나 조화 등에 대해서도 “정해진 바 없다”고 밝혔다. 다만 김기현 원내대표는 개인 자격으로 조문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싫든 좋든 여러 논란을 벌였던, 한국사의 한 장면을 기록했던 분이시고 많은 국민적 비난을 받았던 엄청난 사건의 주역이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한 책임이 막중하다”며 “인간적으로는 돌아가신 것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조문하는 것이 인간으로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군홧발에 짓밟힌 민주주의, 끝내 사과는 없었다

    군홧발에 짓밟힌 민주주의, 끝내 사과는 없었다

    행정안전부, 국가장 예우 여부 검토역사적 과오 사과 표명 없어 국가장 쉽지 않을 듯군사 반란으로 정권을 손에 넣은 ‘전두환 신군부’는 시민들의 들끓는 민주화 요구를 군홧발로 잔인하게 짓밟았다. 국민들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서울의 봄’의 계속 될 것으로 봤지만 이는 얼마 가지 못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정치 과도기적 상황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이라고 빗댔다. 1980년 2월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소위 3김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였다. 많은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유신독재가 무너져 곧 민주화가 이뤄지고 김대중 또는 김영삼이 대통령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소한 당시 여당이었던 공화당 김종필 총재나 최규하 대통령이 상당 기간 정권을 이끌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3김 회동’에서 김 전 국무총리는 ‘춘래불사춘’이라는 묘한 말을 남겼다. 불길한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전두환·노태우·정호용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석 달도 되지 않아 광주 유혈진압을 통해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렸다. 1980년 5월 18일 새벽 2시 전남대와 조선대 등 이 지역 대학에 계엄군이 투입되면서 시작된 ‘5.18 유혈진압’은 9일 뒤인 27일 새벽 4시55분 계엄군의 전남도청 접수로 ‘악몽의 10일’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 열흘의 기억은 훗날 전두환 정권의 반민주적 철권통치를 종식하는 민주화운동의 원동력이 된다.전 전 대통령은 1980년 9월 1일 장충체육관에서 간접 선거를 통해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후 1981년 1월 창당된 민주정의당의 총재가 됐고, 개정된 헌법에 따라 그해 3월 역시 체육관 간선제를 통해 제12대 대통령에 올랐다. ‘신군부 독재’ 5공화국의 시작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이후 야간통행 금지 조치 해제와 학원 두발·복장 자율화 등을 시행하며 정권에 반발하는 세력에 대한 유화 정책에 주력했다. 스크린(Screen)·스포츠(Sports)·섹스(Sex)를 일컫는 ‘3S 정책’은 신군부 정권의 대표적 우민화(愚民化) 정책이었다. 아울러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새 질서를 확립한다는 목적하에 삼청교육대를 창설했으나 공포 정치를 펼치기 위해 범법자들의 인권을 유린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탄압 또한 지속했다. 정치인은 물론 재야인사, 학생에 이르기까지 ‘반정부 활동’을 한 것으로 의심되면 가차 없이 잡아들여 고문을 자행했다.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은 1985년 9월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로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강제감금·고문을 당한 사실을 폭로하고 수사를 요구했으나 묵살당하기도 했다.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던 그는 2011년 12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민주화 운동 세력에 대한 폭력상은 정권 말기인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통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경찰은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이던 박종철 군을 불법 체포한 뒤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하다 사망케 했다. 당시 내무부 치안본부장은 사건의 진실을 알고도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며 사인을 ‘단순 쇼크사’로 은폐했다.5개월 뒤인 6월 9일 연세대학교 정문 앞. 1000여 명의 학생들이 대정부 시위를 벌이던 중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이던 이한열 군이 경찰에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 위험에 처한 사실이 알려졌고 이는 6·10 민주항쟁을 부르는 도화선이 됐다. 학생, 회사원 할 것 없이 전국에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호헌 철폐’와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했다. 앞서 ‘4·13 호헌조치’를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거부했던 전 전 대통령은 전국적으로 일어난 시위에 무릎을 꿇고 만다. 그해 6월 29일. 여당인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선 후보는 ‘6·29 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5공화국의 종식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군대를 다시 동원해 반정부 시위대 진압을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신의 치적이었던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있던 데다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라는 미국의 압박 등에 결국 물러선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전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과 함께 12·12 군사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이라는 큰 역사적 과오를 짊어지고 있지만, 노 전 대통령과 달리 사과 표명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적반하장격의 발언으로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이후 2003년 방송 인터뷰를 통해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라고 발언하는 등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고, 선고받은 추징금 2205억원을 완납하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이 이날 사망하면서 그의 장례 절차에도 관심이 쏠리지만 ‘국가장’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역사적 궤적을 살다 지난달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가장으로 치러진 전례가 있지만, 전 씨의 경우 과거의 과오에 대해 나름의 반성의 뜻을 표한 노 전 대통령과 다른 행보를 보여온 만큼 장례와 관련한 예우도 다를 가능성이 크다. 행정안전부는 이날 전 씨의 사망 소식을 확인한 직후 국가장 등 예우 대상이 될지 여부에 대한 검토에 돌입했다. 국가장법은 2조에서 전·현직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인이 사망시 국가장을 치르도록 하고 있다. 중대 범죄를 저질렀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았지만, 법의 목적을 담은 1조는 “이 법은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서거(逝去)한 경우”라는 표현을 썼다. ‘국가·사회에 현저한 공훈’이 있거나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을 국가장의 대상자로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국가장법은 국가장 여부의 결정 절차에 대해 ‘유족 등의 의견을 고려해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의 심의를 마친 후 대통령이 결정한다’고 적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노 전 대통령 사망 때는 고심 끝에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는 예우를 하기로 하면서 비판 여론을 고려해 정부 차원의 분향소를 차리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에 조기 게양을 독려하지 않았다. 전 씨는 법이 정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 대상이 아니기도 하다.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7조)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되긴 했지만 이런 ‘결격 사유’를 해소할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전 씨의 반성 없는 행보에 여권 등 정치권은 물론 정부 내에서도 지난달 노 전 대통령의 장례 때부터 이미 전 씨의 국가장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나왔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달 28일 CBS라디오에 나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국가장이나 국립묘지 안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노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은 완전히 다른 케이스“라고 말한 바 있다.
  • 전두환 전 대통령(1931~2021) 연보

    전두환 전 대통령(1931~2021) 연보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8시 40분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사망했다. 다음은 전 전 대통령의 출생에서부터 사망까지 연보. ▲ 1931년 1월 18일 =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출생 ▲ 1951년 = 육군사관학교 11기 입학 ▲ 1955년 = 육군 소위 임관 ▲ 1959년 = 이순자 여사와 결혼(슬하에 3남 1녀 둠) ▲ 1961년 = 육사 생도들의 5·16 군사쿠데타 지지 시위 주도 ▲ 1963년 = 중앙정보부 총무국 인사과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인사과장 ▲ 1967년 = 수도경비사령부 제30대대장 ▲ 1969년 = 육사 11기 중 첫 대령 진급 ▲ 1970년 = 육군 제9보병사단(백마부대) 29연대장으로 월남전 참전 ▲ 1973년 = 육군 준장 진급 ▲ 1976년 = 청와대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 1977년 = 육군 소장 진급 ▲ 1978년 = 육군 제1사단장. 북한 제3땅굴 발견해 ‘5·16 민족상’ 수상 ▲ 1979년 = 국군 보안사령부 사령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 10·26 사태 수사. 수도권 지역 무장병력 6000명 동원 육군본부·국방부·수경사·특전사 등 점거해 정승화 계엄사령관 체포하는 등 12·12 군사반란 주도▲ 1980년 = 전국에 비상계엄령 선포. 3김(김영삼·김종필·김대중) 가택 연금 또는 구속. 전국 대학에 휴교령. 국회 봉쇄. 계엄군과 공수특전여단 광주 투입, 5·18광주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삼청교육대 설치. 육군 대장 진급 뒤 예편. 민주공화당·신민당 등 강제해산. 대통령 간선제 및 7년 단임제 골자로 한 8차 개헌 실행.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간접선거로 11대 대통령 선거 당선. 대통령 취임 ▲ 1981년 = 민주정의당 입당, 초대 총재로 추대.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로 제12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 대통령 취임 ▲ 1982년 = 한국프로야구 창설. 국풍 81 개최 ▲ 1983년 =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공식·비공식 수행원 17명 사망 ▲ 1984년 = 홍수 피해 북한에 식량지원 ▲ 1985년 =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으로 첫 이산가족 상봉 성사 ▲ 1986년 = . 3저 호황(원유가격 하락·달러 가치의 하락·국제금리 하락)으로 무역수지 흑자 전환. 서울 아시안게임 개최 ▲ 1987년 =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발생. 4·13 호헌조치. 이한열 열사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 6월 민주항쟁 전국 확산.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6·29 선언 발표해 직선제 개헌 요구 수용 ▲ 1988년 = 대통령 퇴임. 백담사 첩거. 민주정의당 탈당 ▲ 1989년 = 국회 ‘5공 비리 청문회’ 참석 ▲ 1990년 =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복귀 ▲ 1994년 = 5·18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이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고소▲ 1995년 = 검찰,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 헌법재판소, 불기소 처분 취소. 검찰, ‘12.12 및 5.18특별수사본부’ 설치 후 재수사 개시. 사전구속영장 발부돼 안양교도소에 구속 수감 ▲ 1996년 = 5·18 사건에서의 내란죄·내란목적살인죄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 1심에서 사형과 2259억원 추징금 선고. 항소 후 2심에서 무기징역 감형과 추징금 2205억원 선고 ▲ 1997년 = 대법원 2심 선고 확정. 특별사면 후 석방 ▲ 1999년 = 백범기념관 건립위원회 고문 ▲ 2003년 = 법원 재산 명시 명령에 ‘예금자산 29만원’ 기재. 검찰, 진돗개 2마리, TV·냉장고·피아노 등 경매 처분 ▲ 2004년 = 이순자씨, 추징금 200억원 대납 ▲ 2006년 = 세무 당국을 상대로 80억원대 증여세 부과 취소소송 제기▲ 2013년 = 대검찰청, 고액 벌과금 집행팀 마련. 서울중앙지검에 전씨 미납 추징금 1672억원 집행을 위한 전담팀 구성. ‘전두환 추징법’(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별법 일부개정안) 국회 통과. 전씨 추징금 환수 시효 2020년 10월까지로 연장 ▲ 2017년 = 회고록 출간. 조비오 신부 유족 등이 사자 명예훼손 혐의 형사고소. 광주지법 전두환 회고록 출판·배포금지 결정. 회고록 5·18 일부 내용 삭제 재출간 ▲ 2018년 = 알츠하이머 진단 사실 공개하며 첫 공판 불출석 ▲ 2019년 = 광주지법 형사재판 3차 공판, 이순자 여사와 함께 출석 ▲ 2020년 11월 30일 = 사자명예훼손 혐의,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유죄판결 ▲ 2021년 8월 9일 = 사자명예훼손 혐의 항소심 재판 출석 ▲ 2021년 11월 23일 사망
  • 전두환 전 대통령, 오늘 오전 연희동 자택서 사망(종합)

    전두환 전 대통령, 오늘 오전 연희동 자택서 사망(종합)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사망했다. 90세. 지병을 앓아온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 40분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55분쯤 전 전 대통령이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은 오전 9시 12분쯤 사망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 전 대통령은 발견 당시 심정지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시신은 곧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될 예정이다. 한편 지난달 26일 12·12 군사 쿠데타를 함께 일으킨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한 데 이어 한 달도 되지 않아 전 전 대통령도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5·6공에서 차례로 대통령을 지낸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5공 숙청’을 명분으로 전 전 대통령을 백담사로 보낸 애증의 관계이기도 했다.전 전 대통령은 1931년 1월 18일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에서 태어났다. 1950년 대구공고 기계과를 졸업한 후 이듬해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교했다. 1961년은 전 전 대통령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서울대 ROTC 교관으로 근무하던 전 전 대통령은 당시 박정희 육군 소장이 5·16군사정변을 일으키자 육사 생도를 동원해 군부 혁명 지지를 이끌었다. 이 일로 전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고, 노 전 대통령 등 육사 동기들을 끌어들여 육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선·후배가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들어선 문민정부 출범 후에도 군내 요직을 장악했다. 1979년 박 전 대통령의 암살로 혼란스러운 정국을 틈타 12·12 쿠데타를 일으켰다. 1980년 5·17 쿠데타를 일으켜 헌정을 중단하고 정적들을 탄압했고,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 했다. 1980년 8월 군에서 전역함과 동시에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후 1988년 2월 임기를 모두 마치고 대통령에서 물러났다.퇴임 후는 책임을 요구받는 삶이 이어졌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반란수괴죄와 살인,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돼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 사상 두 번째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었으나, 2년 후인 1997년 12월 22일 ‘국민 대화합’을 내세운 김 전 대통령의 결단으로 특별사면됐다. 노 전 대통령과 달리 추징금을 완납하지 않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13년 9월 추징금 2628억 9600만원을 완납했다. 전 전 대통령이 납부하지 않은 추징금은 약 1000억원이다. 전 전 대통령은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고,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항소심이 진행 중이었으나 전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재판은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
  • 밥값이 金 0.25g… ‘경제 폭망’ 베네수엘라, 정치서 해법 찾나

    밥값이 金 0.25g… ‘경제 폭망’ 베네수엘라, 정치서 해법 찾나

    21일(현지시간) 국제사회로부터 독재 정권이란 이유로 비판받는 베네수엘라에서 지방선거가 열렸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2018년 이후 처음으로 야당이 출마한 선거다. 한때 ‘남미의 부국’에서 ‘망국의 대명사’로 몰락한 베네수엘라가 다시 예전의 영광을 꿈꿀 수 있을지 가늠할 선거이기도 하다. 국내 정치권에서도 툭하면 조롱의 대상으로 언급될 만큼 친숙해져 버린 베네수엘라의 경제 위기는 ‘초인플레이션’ 지표 하나만 봐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최근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세계 경제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각국 중앙은행은 물가 상승 압력을 낮추기 위한 논의에 분주하다. 베네수엘라 사례와 비교하기엔 위기의 원인이나 주변 상황 등이 크게 다르지만, 과도한 인플레이션이 경제에 얼마나 큰 위험 요소가 되는지 환기하는 기회로는 삼아 볼 수 있다.#그림 그리는 의대생 엘리아니 디 그레고리오(24)에게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지폐는 캔버스다. 그는 색색의 지폐 위에 물감으로 베네수엘라의 자연, 위대한 예술가들의 회화 작품, 대중에 익숙한 여러 캐릭터 등을 그린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화폐의 액면가를 낮추는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한 뒤 ‘휴지 조각’이 된 구권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그는 “이제는 쓸모없어진 지폐의 가치를 복원하는 일은 내가 꿈꾸는 미래의 베네수엘라를 건설하려는 나만의 방식”이라고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지난달 1일 베네수엘라 정부는 자국 화폐 단위에서 0 여섯 개를 한꺼번에 빼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했다. 전날까지 100만 볼리바르였던 물건은 이날부터 1볼리바르가 됐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1볼리바르 동전과 5, 10, 20, 50, 100볼리바르 신권을 발행했다. 구권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 화폐 훼손이 아닌 창작 활동이 될 수 있는 이유다. 2008년에는 화폐 단위에서 0 세 개, 2018년에는 0 다섯 개를 뺐다. 불과 13년 사이에 무려 열네 개의 0이 사라졌다. ●100만 볼리바르=1볼리바르 리디노미네이션 베네수엘라가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초인플레이션 때문이다. 2010년대 초반까지는 그래도 두 자릿수를 유지하던 인플레이션율이 마두로 대통령 집권 후 고삐가 풀렸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연간 인플레이션율은 2015년 처음 세 자릿수에 접어든 뒤 2016년 254.95%, 2017년 438.12%로 점차 가속도가 붙더니 2018년엔 무려 6만 5374.08%에 이르렀다. 1만원이던 치킨 한 마리가 1년 사이에 650만원을 돌파했다는 얘기다. 자고 나면 가치가 폭락하는 볼리바르화가 교환수단으로서 제 기능을 상실하면서 일부 지역 주민들은 100년 전 과거로 회귀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디지털 간편결제가 이뤄지는 시대에 실물자산인 금이 다시 거래 매개체로 등장한 것이다. 블룸버그는 최근 베네수엘라 남동쪽 광산 마을 투메레모의 실상을 보도했다. 그곳에서는 모든 가격이 금의 무게로 표시된다. 호텔 1박은 2분의1g, 중식당에서 2명분 점심값은 4분의1g 그램, 이발비는 8분의1g이다. 금을 차지하기 위해 이 지역엔 갱단이 들끓는다. 사람들은 그럼에도 임금을 금으로 받을 수 있는 광산으로 몰려든다. 다른 지역에선 이웃 나라 화폐가 베네수엘라 볼리바르를 대체했다. 서쪽 국경지대에서는 콜롬비아 페소가, 남쪽 국경지대에서는 브라질 헤알이 지배적인 통화다. 수도 카라카스에서는 달러가 통용된다. 외화에 접근이 힘든 가장 가난한 사람들만이 여전히 볼리바르를 주로 쓸 따름이다.●인구 20% 560만명 탈출… 난민 범죄도 기승 경제 파탄에 떠밀린 국민들은 대탈출을 이어 가고 있다. 지난 6월 유엔난민기구(UNHCR)와 국제이주기구(IOM) 발표에 따르면 2015년 이후 560만명의 베네수엘라 국민이 고국을 등졌다. 전체 인구의 약 5분의1에 해당하는 수다. 코로나19로 주변 국가들이 국경봉쇄를 시행하고 있을 때도 매일 2000명 가까이가 베네수엘라를 빠져나갔다. 취약한 난민의 처지를 노린 범죄도 기승을 부린다.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가장 많이 이주한 콜롬비아에선 반군 세력이 이들을 포섭하기도 한다. 난민 중 일부는 생존을 위한 성매매에 내몰린다. 한때 남미의 경제 강국 베네수엘라 몰락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2014년 국제 유가 폭락이다. 원유 매장량 세계 1위인 베네수엘라 경제는 석유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채산성은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비해 낮았던 탓에 저유가 시대가 장기화하자 직격탄을 맞았고 경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몰락을 온전히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금까지도 베네수엘라 경제가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정치·정책 실패에 기인한 바가 크기 때문이다. ‘21세기 사회주의’와 ‘반미 노선’을 앞세운 우고 차베스 정권 말 부통령이었던 마두로는 2013년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높아져 가는 인플레이션 위기를 타개하는 방법으로 상품 가격과 환율에 적극 개입했고, 그 결과 암시장만 키우는 결과를 불러왔다. 국가 재정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재정지출을 무분별하게 늘렸다.나라가 파탄에 이른 상황에서 다가온 2018년 대선에서 마두로는 선거 개입을 자행했다. 선거일을 멋대로 바꾸고 유력 야당 인사들의 대선 참가를 금지한 끝에 6년 임기 대통령에 재선했다. 여소야대 국회는 마두로 대통령 취임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하는 과도 정부를 선포했다. 뒤이어 벌어진 과이도의 쿠데타는 군부를 장악한 마두로에 의해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미국·유럽연합(EU) 등 마두로 정권을 합법정부로 인정하지 않는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지속되면서 경제는 여전히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결국 정치적 변화가 선행하지 않는 한 베네수엘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쉽게 끊기 힘들어 보인다. 이런 가운데 21일 열린 지방선거는 향후 베네수엘라가 위기를 딛고 재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우선 야당이 출마 거부를 끝내고 선거에 나선 것이 변화의 단초다. 야당은 2018년 대선에서 마두로 대통령이 야당 인사들의 출마를 봉쇄한 후 선거 보이콧을 선언했고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도 불참했다. 야권은 최근 베네수엘라의 오랜 정치·사회·경제 위기를 해소하겠다며 마두로 정권과의 대화를 재개했다. 베네수엘라 여야가 갈등을 봉합하더라도 경제 회복은 국제사회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가능할 전망이다. 지난해 베네수엘라의 원유 및 석유정제품 수출량은 하루 평균 62만 6534배럴로 전년보다 37.5% 급감, 7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한 바 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기업 PDVSA는 물론 PDVSA와 거래하는 외국 기업들도 제재 리스트에 올리는 강력한 경제제재를 취하고 있어서다. 다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 후 미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1년간 베네수엘라로의 액화석유가스(LPG) 수출을 허용하는 등 ‘인도주의적 제스처’를 보인 것은 한 가닥 긍정적 신호로 풀이된다.
  • 팬데믹이 키운 권위주의… 전 세계 70% 민주주의 ‘뒷걸음질’

    팬데믹이 키운 권위주의… 전 세계 70% 민주주의 ‘뒷걸음질’

    코로나19가 대유행하는 동안 민주 정권이 쇠퇴하고 권위주의 정권이 득세하는 ‘민주주의 침식’이 일어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전 세계 인구의 70%가 비민주적 정권이나 민주주의가 뒷걸음질 치는 국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각국 정부는 최악의 감염병 사태에 맞서기 위해 국가의 통제 권한을 강화하려는 유혹에 흔들리고, 권위주의 정부는 코로나19를 핑계로 공권력을 휘두른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기반을 둔 비영리단체 국제민주주의·선거지원기구(IDEA)는 22일(현지시간) 이런 내용의 ‘2021년 세계 민주주의 현황 보고서’를 공개했다. 165개국의 민주주의 지수를 평가한 결과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2년간 권위주의 정권 방향으로 이동한 국가는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코트디부아르, 세르비아, 말리, 콩고민주공화국 등 6개 국가였다. 이 가운데 말리와 아프간은 권위적인 정권보다는 개방적이지만 민주 정권에 못 미치는 하이브리드(혼합형) 정권에서 권위적 정권으로 올해 이동했다. 반면 민주주의 정권 방향으로 이동한 나라는 볼리비아, 잠비아 등 2곳에 그쳤다. 권위주의 쪽으로 이동한 나라가 민주주의 쪽으로 이동한 나라보다 많은 경향은 2016년 이후 5년 연속 이어졌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제3의 물결’이라고 명명한 1970년대 민주화 열풍 이후 민주주의가 가장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IDEA는 분석했다. 민주주의의 암흑기를 알린 사건은 지난 2월 1일 터졌다.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는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등 정부 고위 인사를 구금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아프간 무장 조직 탈레반은 지난 8월 수도 카불을 장악하고 철권통치를 시작했다. 중국, 브라질, 인도 등 거대 개발도상국은 코로나19를 빌미로 정부 권력을 한층 공고히 했다. 특히 중국은 정부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의 온라인 데이터 수집, 정교한 얼굴인식 기술, 수백만 대의 감시카메라 등의 혁신 기술을 활용하고 있으며 신장 위구르 자치구 소수민족에 대한 광범위한 생체정보 수집을 자행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3개국인 헝가리, 폴란드, 슬로베니아에서도 민주주의 쇠퇴 조짐이 나타났다. 지난해 대선에 불복해 지지자들의 과격 시위를 부추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경찰에 피살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흑인 인권 시위 등을 보고서는 사례로 들었다. 팬데믹이 한편으로 민주주의 회복력을 시험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벨라루스, 미얀마 등에서 권위주의 정부에 반발하는 민주화 운동이 촉발됐으며 군중집회를 막는 정부 방역조치에도 기후변화와 인종 불평등에 항거하는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 “인간방패가 된 투쟁 동지…결국 후퇴” 미얀마 군부의 무자비함

    “인간방패가 된 투쟁 동지…결국 후퇴” 미얀마 군부의 무자비함

    미얀마 쿠데타 군부가 전쟁용 살상무기와 인간방패를 동원해 대대적 반군 소탕 작전에 나섰다. 21일 현지매체 미얀마나우에 따르면 미얀마 정부군은 군용 헬리콥터와 포로를 앞세워 시민방위군에 대한 보복 전쟁에 돌입했다. 20일 미얀마 마궤주 소우 지역 하늘에 군용 헬리콥터 2대가 떴다. 정부군이 투입한 헬리콥터는 1시간 동안 민가를 향해 기관총을 난사했다. 마을 주민 상당수가 중상을 입었고, 일부는 간신히 근처 밀림으로 대피했다. 이날 작전은 19일 정부군 20여 명이 소수민족 반군과 시민방위군 지뢰 공격으로 사망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2월 군부 쿠데타 이후 열 달 넘게 반군 저항이 이어지자, 미얀마 정부군은 전쟁용 살상무기를 동원한 대대적 진압에 돌입한 모양새다. 특히 반군 지뢰 공격을 피하려 ‘인간방패’까지 앞세우고 있다. 20일에도 정부군은 청소년 10명과 여성 2명 등 무고한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삼아 마궤주 예사 지역 반군 거점지로 진격했다.앞서 깔레이 지역에서도 정부군은 생포한 시민방위군을 인간방패로 내세웠다. 깔레이 시민방위군 관계자는 “깔레이 시민방위군 근거지를 점령한 정부군이 생포한 시민방위군 12명 중 3명을 고문·살해하고 나머지 9명을 인간방패로 삼았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지난주 전투에서 정부군 30명이 사망했다. 그러자 정부군은 인질을 인간방패로 내세웠고, 우리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간방패로 끌려간 젊은 여성 9명의 안전을 우려했다. “인간방패가 된 포로들이 심리적·육체적 고문을 당할 수 있다”며 국제사회에 도움을 청했다. 이 같은 군부 무력 진압에 미얀마 민주화 시위는 어느새 정부군 대 반군의 내전으로 변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미얀마 군사정권에 여러 차례 폭력 중단을 촉구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미얀마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15일까지 군부 강경 진압으로 사망한 미얀마 시민은 1265명이며, 7291명이 체포되거나 처벌당했다.
  • ‘토리 아빠’ 윤석열, 펫페어 방문해 “개 식용 반대”

    ‘토리 아빠’ 윤석열, 펫페어 방문해 “개 식용 반대”

    “반려동물 진료비 표준화 추진해야”‘토리스타그램’ 재개는 “생각해보겠다”“식용견 따로 있나” 비난 소동도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9일 개 식용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윤 후보는 당내 경선 TV토론에서 “식용 개라는 것은 따로 키우지 않나”라고 발언해 애견인들로부터 “개도 계급이 있나”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윤 후보는 이날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대한민국펫산업박람회인 ‘2021 케이-펫페어 일산’ 행사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다만 “형사처벌 등의 법제화는 국민 합의를 거쳐야 하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윤 후보는 ‘반려동물 진료비’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대책도 언급했다. “반려동물은 아플 때 진료비가 많이 들어가서 부담이 된다”며 “진료비 표준화를 추진해 예측 가능한 진료비가 합당하게 잘 정착이 되면 보험으로 진행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동물) 등록제를 좀 더 철저하게 하고, (반려동물 진료비) 수가를 표준화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소동도 있었다. 윤 후보의 ‘식용 개’ 발언과 관련해 “식용견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항의하는 시민들과 지지자들 간에 실랑이가 일부 벌어졌다. 윤 후보는 이른바 ‘개 사과’ 논란으로 폐쇄한 반려동물 전용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 ‘토리스타그램’을 재개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한번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윤 후보 측은 지난달 21일 윤 후보의 반려견 ‘토리’에게 사과를 건네주는 사진을 올려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당시 “(토리가) 아빠를 닮아서 인도 사과를 좋아해요”라고 적었는데, 윤 후보가 “전두환 대통령이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는 주장을 펼쳤다가 비판 여론에 직면한 것과 맞물려 큰 논란을 불렀다. 한편 반려견 4마리와 반려묘 3마리의 아빠인 윤 후보는 이날 행사에 반려동물을 데리고 오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윤 후보는 “다른 분들에 폐를 끼치지 않을까 싶어서 못 왔다”고 설명했다. 대신 그는 이날 박람회에서 반려동물을 위한 간식, 배변용 패드 등을 샀다.
  • ‘임을 위한 행진곡’ 속 그 ‘임’, 그림·글로 다시 울려퍼진다

    ‘임을 위한 행진곡’ 속 그 ‘임’, 그림·글로 다시 울려퍼진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한 윤상원(위) 열사의 일대기를 담은 전시가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린다. 윤상원기념사업회와 광주 광산구는 오는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코트 갤러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의 주인공인 윤상원의 삶을 돌아보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전남 광산군 임곡 천동마을(현 광주시)에서 태어난 윤상원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가 유신 독재를 타파하겠다며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공장에 취직해 노동 현장을 누비는 한편 들불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자 그는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시민들의 눈과 귀가 됐고, ‘투사회보’ 발행인으로서 참상을 알렸다. 이번 전시는 부산, 울산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리는 전국 순회전이다. 서울에서는 총 5개 전시실에서 윤상원의 삶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다. 윤상원의 불꽃같은 생애를 수묵으로 그린 화가 하성흡의 작품(아래) 12점과 조각가 김광례의 흉상 조소가 전시되고, 다큐멘터리 사진가 성남훈의 사진이 함께해 5월 그날의 현장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투사회보를 함께 만든 동지 김상집이 쓴 ‘윤상원 평전’과 항쟁 당시 동료 이태복·김상윤·이양현·김상집·전용호의 증언을 기록한 김지욱 작가의 영상도 주목할 만하다. 윤상원이 노동운동가로 투신하던 때 직접 쓴 일기도 공개된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할머니의 지도로 일기를 쓰기 시작해 중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간 뒤에도 꾸준히 하루하루를 기록했다. 윤상원의 상징과 같은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보는 사진전도 마련됐다. 홍콩 다큐멘터리 사진가 주용성, 미얀마 사진가 쿤낫이 홍콩 민주항쟁과 미얀마 쿠데타 반대 시위 현장 사진을 보내왔다.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아시아 곳곳에서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전시는 수원, 인천, 대구, 원주, 대전 등으로 이어진다.
  • 미얀마 쿠데타 군부 “오토바이에 남성 2명 타면 총 맞는다”…왜?

    미얀마 쿠데타 군부 “오토바이에 남성 2명 타면 총 맞는다”…왜?

    미얀마 쿠데타 군사정권이 남성 2명 이상이 오토바이에 탑승하는 것에 대해 발포를 경고했다. 반군부 세력이 오토바이를 이용해 폭발물을 투척하고 달아나는 공격을 막기 위함이지만, 오토바이와 삼륜 자전거 등에 크게 의존하는 시민들의 불만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17일 현지 매체인 이라와디와 미얀마 나우는 “미얀마 군사정권이 양곤, 타닌타리, 사가잉, 만달레이를 포함한 일부 지역에서 차량 운행의 새로운 조치를 시행했다”고 보도했다. 이 조치에 따르면, 남성 2명은 오토바이에 함께 탑승할 수 없다. 남녀 동승의 경우 남성은 뒤에 탑승할 수 없다. 오토바이 탑승자가 노령자면 2명이어도 이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부는 지난 16일부터 이 규정을 위반하면 오토바이가 압수될 수 있으며, 18일부터는 위반시 체포되거나 총에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조치는 민간인 무장세력인 시민방위군(PDF)이 최근 오토바이를 이용해 군경 및 군정 관련 시설에 폭탄을 던지고 달아나는 공격이 일어나는 것에 따른 것이다. 지난달 25일에도 만달레이 지역 메익틸라구의 PDF가 오토바이를 타고 군경 순찰대에 폭탄을 던져, 경찰 2명이 숨지고 수 명이 부상했다고 PDF가 주장했다. 오토바이 탑승 인원을 제한하면서 시민들의 불편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메익틸라구의 한 주민은 “군과 경찰은 2명이건 3명이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오토바이를 타면서 시민들에게만 이런 규정을 적용하는 건 불공정하다”고 토로했다. 오토바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운전사들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오토바이 택시 운전사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일을 계속해 먹고 살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 [정대화의 더 정치] 사회 갈등·양극화 풀자… ‘소통·협의·상생’의 패러다임 전환 필요

    [정대화의 더 정치] 사회 갈등·양극화 풀자… ‘소통·협의·상생’의 패러다임 전환 필요

    인류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일까 전쟁의 역사일까? 둘 다 맞는 말일 것이다. 나는 여기에 패러다임의 역사라는 말을 추가하고 싶다. 역사라는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수많은 대립과 우여곡절을 거치며 복잡하게 전개되는데, 이 과정을 토머스 쿤의 말로 표현하면 역사란 하나의 패러다임이 형성돼 도전받고 무너지면서 다른 패러다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패러다임이란 한 시대의 다수 인간의 인식과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특정한 인식체계, 가치체계, 행동 양식의 총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은 패러다임 간 대결의 극단적 형태 종교적 관점이지만 불교와 유교의 세계관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패러다임이고 지금도 그렇다. 서양에서도 기독교적 관점은 절대적 중요성을 가지며 그 안에서 천동설과 지동설이 패러다임 차원에서 대립했다. 물리학에서 뉴턴의 고전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산업혁명 이후 부르주아혁명과 사회주의혁명, 정치 영역에서 왕권신수설과 민주주의론 등 패러다임의 대립과 발전의 사례는 많다. 그러므로 역사는 패러다임의 대결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며 전쟁은 패러다임 간 대결의 극단적인 형태이므로 전쟁의 역사는 곧 패러다임의 역사가 된다. 이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보자. 매우 가혹한 역사적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변화가 빨랐고 변화의 폭이 컸고, 그에 따른 패러다임의 교체가 매우 극심했다. 무엇보다도 외압이 강하게 작용했으므로 한순간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조선 후기의 거듭된 당쟁과 대규모 농민봉기, 외세의 침탈과 국권 상실, 식민지 억압과 독립운동, 해방에 이은 분단과 한국전쟁, 정부 수립과 독재와 민주화 등 급격한 전환기가 연이었다. 이렇게 가혹한 운명을 타고난 이유를 탐구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지금 우리가 직면한 또 다른 전환의 문제에 집중하자.우리 현대사는 한마디로 청산되지 못한 역사다. 조선 후기의 봉건적 유제가 청산되지 못한 채 망국의 길을 걸었고 식민지 지배의 유제가 청산되지 못한 채 해방을 맞았다. 더구나 해방은 청산되지 못한 반제 반봉건의 과제 위에 분단 극복과 반독재의 과제까지 떠안았다. 막중한 4대 과제를 짊어졌으니 등이 휘어질 지경이었고, 사정이 이러하니 정의와 도덕보다는 불법과 반칙이 난무했으며 정상적인 사람들은 좌절했다. 75년 전 우리는 이런 악조건에서 출발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그래서 행복한가 그러나 전화위복이랄까 새옹지마랄까. 우리는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달성했고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 쿠데타와 독재로 점철됐던 정치가 점차 민주화됐다. 그 결과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매우 드문 나라가 됐다. 자동차, 철강, 조선, 반도체, 인터넷, 스마트폰 등에서 세계적 수준에 올랐고 케이팝과 한류로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대단한 일이고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상전벽해의 반전을 실현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편안하고 안락하고 행복한가. 그렇지만 이 질문에 선뜻 긍정적으로 답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해방 시점에서 짊어진 4대 과제 중에서 민주화를 제외한 나머지 세 과제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인 데다 그 그늘 또한 매우 짙다. 한반도 분단체제는 아직도 끝이 보이질 않고 반제 반봉건의 과제는 시효소멸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깊이 내장됐다. 그것이 최근의 양극화, 지역 불균형과 지역소멸, 자살률, 정치사회적 갈등과 같은 극단적 양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은 미어터지는데 지역과 시골은 사람의 흔적조차 사라지고 젊은이들은 아예 아이를 낳지 않는 기형적인 나라가 돼 버렸다. 이 모든 현상을 한반도 분단체제의 유산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분단 만능주의라거나 분단 환원론이라고 매도하지 말자. ●분단체제·반제국·반봉건 과제 해결해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선거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통상의 선거라는 것이 양극단을 배제하고 중간으로 수렴되는 경향성을 갖는 법인데 분단체제의 모순구조는 중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군사독재의 철옹성을 민주화의 염원으로 넘어선 것처럼 패러다임의 혁명적 교체가 불가피하게 됐다. 1945년에 해방과 동시에 분단됐으니 2045년이면 해방 100년이자 분단 100년이 된다. 오스트리아, 베트남, 독일의 경우를 생각할 때 우리가 해방 100년이 되는 2045년을 분단 상태로 맞이해서는 안 되겠다는 국민적 각오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연방제 패러다임이 제기된다. 연방제는 한반도 분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남북한의 체제가 이질화되고 격차가 큰 상황에서는 남북한이 만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 남북한이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남한을 강력한 자치권을 갖는 남한연방으로 전환하고 그 후 남북협상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북한연방을 권고한 후 남한과 북한의 연방이 하나의 통일연방으로 결합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이때 적용되는 연방의 강도는 유연하고 탄력적이어야 한다. 남한연방이나 북한연방은 결합의 강도가 높아도 무방하지만 남북한이 만나는 마지막 통일연방은 연합 수준으로 충분히 강도를 낮추는 것이 좋다. 연방제가 한반도 통일에만 유용한 것은 아니다. 국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지방자치 30년 동안 많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지방자치로는 망국적인 수도권 집중과 참혹한 지역소멸을 막을 수 없다. 오랜 세월 정부와 정치권과 학계와 시민사회가 한목소리로 지역분권을 주장했지만 지역 불균형은 더욱 심화됐다. 중앙과 지방의 불균형이 엄존하고 지방이 중앙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에서 시혜적 지역분권론으로는 균형발전이 불가능하므로 현행 지방자치제 아래서는 지역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이 그저 꿈일 수밖에 없다. 결국 지역이 권한과 재정을 갖는 자립적 지역분권이어야 하는데, 연방제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차제에 대통령제와 내각제에 대한 오래된 고정관념도 재검토할 때가 됐다. 대통령제와 내각제는 각기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제도가 더 좋다고 일률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우리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대통령제를 선택해서 70년 이상 사용해 왔기 때문에 이 제도에 매우 익숙하다. 그러나 경제발전과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정치사회적 갈등이 오히려 증폭되는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와 달리 사회적 요구가 매우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제가 그 다양성을 포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도 고려할 때가 됐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대신 사회적 다양성을 보장하면서 합의를 촉진하는 내각제로 타협적 리더십을 구축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 더욱이 내각제 방식은 대통령제보다 남북한 통일에 더욱 유리하다. ●만고불변의 제도 없어… 새로운 상황 시작돼 제도는 역사적 산물이므로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는 만고불변의 제도는 없다. 상황이 바뀌면 제도가 바뀌고 해결책도 달라진다. 경제가 성장하면 배분의 문제가 발생하고,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지면 억눌렸던 요구가 분출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제약 없이 표출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경제발전과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 민주화가 됐는데도 사회갈등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경제가 발전했는데도 양극화가 외려 심화되고, 도시의 발전이 지역의 소멸을 재촉하고,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상황이라면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발전주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소통하고 협의하고 상생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 딱 적기다. 상지대 교수
  • 독재자 카다피 아들 리비아 대선 출마

    독재자 카다피 아들 리비아 대선 출마

    14일(현지시간) 리비아 남부 세브하시에서 사이프 이슬람 카다피(왼쪽)가 다음달 24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후보 등록을 하고 있다. 그는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해 2011년 민중 봉기로 쫓겨나 처형될 때까지 42년간 리비아를 통치한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둘째 아들로 6년간 구금됐다 2017년 풀려난 후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리비아 선거관리위원회 제공 EPA 연합뉴스
  • 미얀마 군정, 사흘 전 징역 11년형 선고한 미국인 기자 귀국 허용

    미얀마 군정, 사흘 전 징역 11년형 선고한 미국인 기자 귀국 허용

    미얀마 군사법원에 의해 징역 11년형이 선고된 미국인 기자 대니 펜스터가 판결을 받은 지 사흘 만인 15일 풀려났다. 군정은 나중에 그를 인도적 관점에서 사면했다고 밝혔다. 그가 소속된 영어 뉴스 매체 프론티어 미얀마는 펜스터가 이미 비행기에 몸을 싣고 미얀마를 떠났다고 전했다. 미얀마 군부 대변인인 자우 민 툰 준장은 영국 BBC에 펜스터 기자가 미얀마를 떠나도 좋다는 허락을 받을 것이라고 확인해줬다. 군부가 이렇듯 오락가락하는 듯한 행보를 연출하는 것은 지난 2일 미얀마를 개인 자격으로 찾은 빌 리처드슨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와의 협상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며칠 전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과 면담해 석방 협상을 벌였다. 리처드슨 대사는 성명을 내 펜스터 기자가 카타르를 거쳐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면서 “오늘은 여러분이 열심히 노력해 희망이 주어지는 날이다. 대니가 마침내 사랑하는 이들과 다시 만날 수 있게 돼 기쁘다. 가족들은 엄청난 역경에도 늘 그를 지지해줬다”고 말했다. 앞서 미얀마 법원은 지난 12일 펜스터 편집주간이 허위 정보를 퍼뜨려 선동한 혐의, 불법 단체와 접촉한 혐의 그리고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11년형을 선고했다. 변호인인 딴 조 아웅은 세 가지 혐의 모두 최고형이 선고됐다고 설명했다. 펜스터에게는 지난주 테러 및 선동 혐의도 추가됐다. 특히 테러 혐의만으로도 종신형 선고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는 지난 5월 말 미국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양곤 공항을 통해 출국하려다 군부에 체포돼 인세인 교도소에 수감됐다. AP 통신은 펜스터가 2월 1일 쿠데타 발발 이후 군정 아래 중형을 선고받은 유일한 외국 언론인이라고 보도했다. 쿠데타 이후 군부는 100명 가까운 언론인을 체포·구금했으며 이 중 30명가량이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군부 법원은 지난 9일 카렌주 수석장관이었던 난 킨 트웨 민(67)에게 징역 75년형을 선고했다. 또 같은 주 재무장관이었던 딴 나잉(65)에게는 무려 징역 90년형을 언도했다. 군정 법원은 지난달 말에는 수치 고문의 핵심 측근이자 수석 보좌관인 윈 테인(80)에게 반역죄를 적용, 징역 20년형을 선고했다. 군정의 잇따른 중형 선고는 자신들이 테러 단체로 규정한 민주진영의 국민통합정부(NUG)나 시민방위군(PDF)을 돕거나, 이들과 접촉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시민들에게 보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 “아름다운 인레 호수와 미얀마 아이들” 17일 막 올리는 애틋한 사진전

    “아름다운 인레 호수와 미얀마 아이들” 17일 막 올리는 애틋한 사진전

    “아름답네요. 인레 호수와 샨 주네요. 우리 할아버지가 태어난 곳이예요. 아기를 안고 가는 숙녀는 샨 주에 많이 모여 사는 파오족 여인이네요. 정녕 고향이 그립네요. (포스터 사진들을 보니) 금방이라도 미얀마로 날아가는 것 같아요.” 유엔 대사를 지낸 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이사장이 17일 서울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리는 사진작가 유재력의 사진전 ‘해피 로드 투 세이브더칠드런’ 포스터를 유엔 대사 시절 비서로 자신을 도왔으며 지금도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미얀마 여성에게 페이스북을 통해 전달했더니 이런 댓글을 달았다고 소개했다. 인레 호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치기 전 배낭여행객들이 머무르고 싶은 곳으로 첫 손가락으로 꼽았던 곳이다. 동아일보 사진기자로 시작해 중앙일보를 거쳐 국내 패션 사진을 선도하는 등 60년을 오롯이 카메라 렌즈에 바친 유재력 작가는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국제적인 사진작가로, 미얀마 아동과 청소년들을 기록한 100여점을 이번 전시에 선보인다. 유 작가는 “정치적 이념이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어른들의 틈바구니에서 가장 고통을 받는 것이 아이들이다. 평화로웠던 시절, 미얀마 아동의 삶과 눈빛, 자연과 유산을 담은 사진을 통해 현재 고통 받고 있는 미얀마 아동들에게 작은 희망을 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미얀마는 현재 군부 쿠데타와 코로나19, 경제적 위기 3중고에 처해 있다. 2000만명 이상이 빈곤선 아래에서 허덕이고 있다. 식량과 연료 가격마저 치솟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친주 탄드란에서 발생한 무차별 폭격과 화재로 최소 100채에 달하는 가옥이 파손됐으며,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소 한 곳도 피해를 입었다. 세이브더칠드런 직원 10명을 비롯해 1만여 주민들이 인근 지역으로 이주하는 등 국내 난민의 규모가 불어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인터내셔널은 내년 12월까지 미얀마 국민 99만 3440명에게 8000만 달러(약 947억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어린이 30만 6607명을 포함해 124만 3306명에게 보건 및 영양, 식수 위생, 교육, 아동권리 거버너스 증진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는 지난 1월 군부의 폭력에 시달리는 아동들을 위해 10만달러(약 1억 1300만원)을 긴급 지원한 바 있다. 오 이사장은 “작품 하나하나가 작가의 따뜻한 인간애와 인도주의적 관점을 담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 다시 한번 열린 마음으로 미얀마를 생각하고 도움의 손길을 뻗을 기회를 주는 작품들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번 사진전은 마루아트센터에서 오는 30일까지 진행되며, 다음달 1~15일은 양산 통도사 앞 예원 갤러리, 새해 1월 6~20일은 부산 구박갤러리 사진미술관에서 이어진다. 사진 판매 등 수익금 전액은 세이브더칠드런의 미얀마 긴급구호 지원에 기부된다.
  • [이종수의 헌법 너머] 판사 구성의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종수의 헌법 너머] 판사 구성의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판사 임용 때 요구되는 법조 경력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려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지난 8월 국회에서 부결됐다. 오래전부터 논의돼 온 ‘법조일원화’ 작업의 하나로 변호사 등 다른 법조직역에서 충분한 사회적 경험과 연륜을 갖춘 이를 판사로 임용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게끔 하려는 취지인데, 법원 쪽에서 스리슬쩍 해당 기간을 줄이려다가 좌절된 셈이다. 이후 어느 토론회에서 지난 10년 동안 임용된 초임 판사들의 연령별 통계가 공개됐다. 가장 나이가 어린 30세 전후의 젊은 지원자 그룹에서 눈에 띄게 판사 임용률이 높았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별도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법원 일각에서는 법규정대로라면 우수한 인재들을 놓치게 되고, 이에 따른 재판의 질적 수준 하락을 감수할 거냐며 오히려 겁박한다. 게다가 예의 박봉 타령도 흘러나온다. 판검사들의 봉급이 여느 공무원들보다 훨씬 많은데도 이들의 비교 대상은 대형 로펌에서 잘나가는 변호사들이다. 한마디로 엘리트적인 특권의식의 발로다. 연령뿐만이 아니다. 2007년에 당시의 신임 법관 임용 통계를 분석하고서 “강남·외고 출신 28%, 그들만의 법원 될라”라는 제목의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러고서 시간이 꽤나 흘렀으니 지금의 법원은 이런 출신 배경을 지닌 판사들이 누적돼 심각한 계급편향성을 갖고 있다고도 짐작된다. 그 무렵에 법원행정처 소속의 어느 판사는 젊은 판사들이 혼인 이후에 신고 재산이 급증하는 현실을 마지못해 인정했었다. 법조 경력 10년을 요구하는 현행 법원조직법 대로라면 향후에는 남자 초임 판사들의 연령이 적어도 40대 초반이어서 결혼시장에서 판사 사위를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이것만으로도 나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과거 독일에서 나치 불법정권에 저항한 판사들이 극히 드물었다. 오히려 이들은 그저 충실한 ‘법률의 시녀’로서 무수히 많은 억울한 죽음들에 직접 관여했다. 예컨대 히틀러가 권력을 잡기 전의 바이마르공화국에서 우파세력에 의해 자행된 314건의 살인 사건에서 평균 2개월의 실형이 선고된 반면에 좌파세력에 의해 자행된 15건의 살인 사건에서는 8건이 사형 그리고 나머지 7건에서 평균 14년의 실형이 선고됐다고 한다. 이로써 당시 판사들의 계급성과 이념편향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당시의 판사 임용 현실에서 부유한 집안의 자식들만이 사실상 판사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이다. 당시에는 대학 학업과 사법시험 합격 그리고 여러 시보 근무에 이르기까지 근 20년 동안 따로 수입이 없기 때문에 부유한 집안의 자식들만이 이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1911년 프로이센에서는 7500마르크 이상의 자산을 갖고 있고, 봉급이 없이도 연간 1500마르크 이상을 지출하면서 ‘신분에 걸맞게끔’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지원자에게만 판사시보 근무가 허용됐다. 게다가 당시에 법원장 등 고위 법관직의 대다수가 검사 출신들로 채워졌는데, 이들이 오랜 직업생활 중에 체득한 대로 상급청의 지시와 명령에 더욱 복종적이었던 까닭이다. 히틀러와 나치 당원들이 벌인 1923년의 ‘뮌헨 쿠데타’ 사건에서도 당시 재판부는 이들이 나라를 구하려는 애국충정에서 벌인 일이라며 히틀러에게는 5년형의 관대한 실형을 선고했는데, 히틀러는 불과 6개월을 복역하고 바로 풀려났다. 이렇듯 당시의 독일 사법은 나치운동의 폭력적 성격을 애써 내내 외면했었다. 전후의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나치체제하의 고위직 법관 16명이 기소됐는데, 사법이 나치불법국가의 범죄적 도구였다고 규정하면서 “살인자의 단검이 법관들의 법복 속에 감춰져 있었다”고 비판됐다. 그래서 전후에 처음으로 연방헌법재판소를 만들면서 일각에서는 헌법재판관으로 나치사법에 때 묻지 않은 비법률가를 일부 포함시키자고 강하게 주장했다. 옛 과거시험과도 다르지 않은 출세지향적인 일제 강점 때의 고등문관시험 그리고 해방 이후 사시체제하에서 설령 똑똑한 이들이 판검사로 임용돼 왔을지는 몰라도, 이들이 과연 공정한지는 줄곧 의문이었다. 사법에 대한 우리 국민 신뢰도가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은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똑똑하면서도 공정하면 더욱 좋겠지만, 똑똑한 판사보다는 당연히 공정한 판사가 더 낫다. 또한 똑똑하다는 이들이 지닌 강한 권력지향성이 공정한 재판에는 오히려 해악이기도 하다.
  • [이경우의 언파만파] 반듯이와 반드시/어문부 전문기자

    [이경우의 언파만파] 반듯이와 반드시/어문부 전문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지난달 19일 이렇게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여야 안팎에서 전두환을 두둔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그는 지난 10일 광주 5·18국립민주묘지를 방문해 “제 발언으로 상처받은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방명록에는 ‘민주와 인권의 오월 정신 반듯이 세우겠습니다’라고 썼다. 방명록의 ‘반듯이’가 그리 매끄러워 보이지 않았다. ‘반듯이’가 적절치 않다는 논란이 일었다. ‘반드시’여야 했고, 이어지는 서술어는 ‘지키겠습니다’가 어울린다는 주장도 있었다. 논란에 대해 윤 후보 쪽은 ‘똑바로라는 뜻’으로 썼다고 밝혔다. ‘반듯이’와 ‘반드시’. 국어 선생님들이 혼동하기 쉽다고 강조하던 말이었다. ‘반듯이’와 ‘반드시’는 [반드시]로 똑같이 발음하지만, 표기할 땐 구분해서 정확히 적어야 한다고 자주 말했다. 문장에서 ‘반듯이’는 “고개를 똑바로 들어”라고 할 때의 ‘똑바로’처럼 ‘굽지 않고 바르게’란 뜻일 때, ‘반드시’는 “약속을 꼭 지켜야 해”라고 할 때의 ‘꼭’처럼 ‘틀림없이 꼭’이란 뜻일 때 써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여전히 헷갈리게 적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상에서 둘을 섞어 쓴다고 ‘크게’ 지적하는 일도 드물다. 상황이 되면 말을 건네는 정도다. 그렇지만 사회적 지명도가 높은 정치인들은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국민들은 이들에게 표현이나 맞춤법의 정확성을 더 엄격히 요구한다. 정치인 같은 유명 인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른바 ‘유명세’를 낸다. 여기서 ‘세’는 세금을 가리킨다. 실제 세금을 내는 것은 아니고 유명하기 때문에 치러야 하는 불편이기도 하고 곤욕이기도 하다. 이것을 세금에 빗대 우린 ‘유명세를 치른다’고 말한다. 유명해져서 얻는 이익도 있을 것이고, 사회적 책임도 따르는 것일 테니까. 그래서 돈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세금을 내게 하는 건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에게는 정확성에 더해 진정성이 담긴 말을 국민은 더 원한다. 말은 번지르르할 것이라 여긴다. 말이란 껍데기 같은 것이어서 제대로 들리지 않을 때도 많다. 그래서 말 뒤에 숨은 것, 말에 배어 있는 태도를 보려고 숨을 죽이곤 한다. 거기에 얼마간이라도 진실이 배어 있기에. 언어로 나타난 사실은 왜곡되기 쉽다. 언어에 진실을 담으려 하지만 비틀어지는 일이 허다하다. 말과 글은 있는 그대로 듣고 읽으면 낭패를 보기 쉽다. 잘 듣고 잘 읽는 게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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