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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캄보디아 평화협상과 북한(사설)

    인지반도의 소국 캄보디아가 평화모색의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수차례에 걸친 휴전합의와 실패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있는 가운데 24일 또 한차례의 내전종식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번에는 항구적 평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여전히 불안한 출발이다. 우리가 캄보디아의 평화협상에 관심을 갖는 것은 캄보디아의 분열과 대립 갈등 역시 한반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냉전과 이데올로기대립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냉전이 종식되고 이데올로기가 무의미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유산의 굴레를 아직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동병상련같은 것을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국왕 시아누크공의 비동맹중립노선의 캄보디아가 냉전과 이데올로기갈등의 비극에 본격적으로 휘말리기 시작한 것은 론놀의 우경화쿠데타 이후 75년 월남과 함께 적화되면서부터였다. 적화통일은 기대했던 통일캄보디아의 사회주의평화가 아니라 크메르루주의 1백만 캄보디아인 학살이라는 죽음과 공포의 지옥을 초래했다. 그리고 공산 베트남과의갈등은 마침내 공산형제국간의 대립과 전쟁이라는 전례없는 상황을 조성했다. 소련을 조국으로 하는 세계공산주의의 환상은 이때 이미 끝장이 났던 것인지도 모른다. 소련과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헹 삼린파의 공산정부가 수립되고 이에 대항하는 친중국의 크메르루즈 및 온건공산의 인민민족해방전선 그리고 시아누크공의 민족주의세력연합의 지루하고도 무의미한 동족상잔의 내전이 12년 동안이나 계속되어온 것이다. 그것은 이미 공산주의를 위한 싸움도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투쟁도 캄보디아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싸움도 아니었다. 그것은 결국 파벌간의 세력다툼이요 이해갈등이며 기득권 싸움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냉전의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비롯되었으면서도 냉전이 모두 무의미해진 지금까지 화합의 해결을 못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 해야 할 것이다. 평화협상이 시작된 것은 87년 12월이었다. 약 4년의 협상 끝에 도달해 있는 곳이 24일 발표된 무기한 휴전과 외국으로부터의 무기도입 종식합의인 것이다. 그 동안 소,동구의 민주화와 동·서독통일 등 세계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캄보디아화합의 분위기도 많이 개선된 상태라 할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세계는 이번 기회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캄보디아와 그 국민을 위한 제파벌의 양보와 희생과 타협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의 캄보디아평화와 화합의 실패를 보면서 우리는 북한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은 소,동구 등 세계적인 공산이데올로기의 패배와 포기를 보면서도 사회주의 고수만 선언하고 있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지키겠다는 것인가. 말은 그럴 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북한공산당과 김일성 일가를 비롯한 그 지도자들 이른바 북한노멘클라투라(특권계급)의 기득권 수호선언이 아닌가. 그런 북한을 어떻게 민주개혁과 평화통일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인지 새로운 각오와 특별한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 태국 수친다사령관/차기 총리 취임 시사

    【방콕 연합】 지난 2월23일의 태국 군부쿠데타를 사실상 주도했던 수친다 크라프라윤 육군사령관(사진)을 차기 총리로 추대하려는 새로운 친군부정당이 서서히 태동하고 있는 가운데 수친다 사령관은 쿠데타 후 처음으로 12일 차기 총리를 맡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특히 친군부인사들이 주축이 돼 추진하고 있는 새 정당이 자신을 총재로 옹립하려 하고 있다고 밝혀 이를 뒷받침했다.
  • 태,최대 반정시위/군사정권 퇴진 요구

    【방콕 연합】 일단의 태국 학생들은 9일 방콕에서 지난 2월23일의 쿠데타 후 군부 수뇌들에 대항하는 최대의 시위를 벌이고 군사혁명위원회인 국가평화유지위원회(NPKC)의 즉각 해체 및 연말까지의 총선 실시 등을 요구했다.
  • 에티오피아 반군지도자 멜레스/의학도 출신… 74년부터 반정 활동

    에티오피아의 과도정부기 수립될 때까지 임시로 국정운영책임을 맡게 된 멜레스 제나위(36)는 한때 의학도였던 반군지도자. 지난 55년 에티오피아 북부 아두아에서 태어나 아디스아바바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중 74년 셀라시에 황제를 퇴위시킨 쿠데타 발생 후 정파들간의 권력다툼에 염증을 느껴 학업을 중단하고 마르크스 이론책자 몇 권과 소총을 들고 산속으로 들어가 반 정부 게릴라 활동을 시작했다. 수도를 함락시킨 최대반군조직인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민주전선(EPRDF)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에티오피아의 정식 국정책임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 호리호리한 체격에 턱수염을 기르고 있다. 그는 28일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공산주의 성향에 대한 서방의 우려를 의식한 듯 『에티오피아는 군의 무력이 아닌 다양한 국민들의 의사에 근거한 진정한 민주국가가 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내달 거국임시정부가 구성된 뒤 1년내에 치러질 민주선거에서 EPRDF가 승리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 멀고도 험한 미얀마 민주화/미완의 선거혁명 1돌

    ◎군,보복 우려… 민정에 권력이양 거부/반정인사 거세 노골화… 임정수립도 기대난 27일로 미얀마(구버마)가 30년 만에 처음 총선을 실시,「미완의 선거혁명」을 이룩한 지 1년을 맞았다. 그러나 미얀마의 대표적인 야당인 민주민족연맹(NLD)은 지난해 5월27일의 총선에서 총의석 4백85석 가운데 3백92석을 석권하는 대승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집권군사혁명평의회(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 SLORC)의 권력이양 거부로 아직도 신정부를 구성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NLD는 대도시뿐 아니라 농촌지역 및 군가족의 거주지역에서도 압승,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지만 SLORC의 실세인 소 몽 장군은 『신헌법이 제정된 후에야 권력이양을 할 수 있으며 헌법제정은 복잡하고 긴 과정』이라고 밝혀 민의를 받아들일 뜻이 없음을 분명히했다. SLORC는 총선 패배 후 오히려 수백 명의 NLD의 간부 당원 및 지지자들을 체포,NLD의 와해를 기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NLD를 이끌고 있는 아웅산 수 키 여사는 지난 89년 7월 이래 가택연금상태에 놓여 있으며NLD 집행위원 가운데 4분의3이 구금돼 현재 미얀마는 글자 그대로 철벽같은 「공안정국」하에 놓여 있다고 서방외교소식통들은 전하고 있다. SLORC가 권력이양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지난 62년 네윈 장군의 군사쿠데타 이후 30년 동안 움켜쥐고 있는 군부의 기득권 상실에 대한 공포와 지난 88년 민주화 시위 때 일어난 수천 명의 학살에 대한 책임 추궁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야당에 권력을 이양할 생각이 없는 현 군사정부가 지난해 총선을 실시한 것은 일면 88년 민주화 시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총선을 통해 차세대 반정부 지도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정략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 88년 9월 수천 명이 희생된 민주화 시위를 유혈진압,궁정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사우 마웅 SLORC 의장(당시 참모총장)은 겉으로는 다당제와 조기총선을 약속해놓고도 뒷구멍으로는 여전히 대국민 탄압정책을 고수해오고 있다. SLORC는 지난해 9월 서방대사관에 군을 투입,반체제 미얀마인 직원 체포를 서슴지 않았으며 10월에는 반정부활동의 본거지가 되고 있는 만달레이시의 1백여 불교사원을 급습,승려들을 체포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미얀마국민의 85%가 신봉,영향력이 큰 불교의 승려들은 지난해 8월 만달레이시의 반정부시위 도중 승려·학생들이 사살된 것에 항의해 군인과 그 가족에 대한 결혼식 및 장례식의 집전을 거부,군사정부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 바 있다. 한편 미얀마의 일부 야당인사들이 지난해 12월 태국과의 접경지역에서 임시정부 수립을 선언했지만 그 효력은 의문시되고 있다. 많은 관측통들은 군부가 여전히 전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얀마의 현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이라크의 대쿠르드족 탄압에 대한 세계여론의 압력행사와 같은 국제적인 제재뿐일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 역시 실효를 거두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엔은 지난해 11월 민간정부에의 권력이양 거부에 대한 우려와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는 대미얀마 결의안 채택에 실패한 바 있다. 민주화와 개혁이라는 역사의 대세를 외면하고 있는 미얀마의 현군사정부에 대해 국제적인 압력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군부 온건파가 득세하지 않는 한 미얀마의 민주화는 많은 국민들이 피를 흘렸음에도 쉽게 달성될 것 같지 않다.
  • 에티오피아 반군 대공세/수도 인근 육박/평화회담 앞두고 입성자제

    【아디스아바바 로이터 연합 특약】 에티오피아 반군들은 24일 수도인근 30㎞ 지점에까지 진격했으나 3일 안으로 시작될 정부와의 평화회담을 앞두고 수도진입은 보류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민주전선(EPRDF)은 새 정부의 휴전제안을 거부했으나 외교관들은 수도를 포위하고 있는 반군들이 사기가 저하된 정부군을 격파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이상 수도안으로의 진격을 중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27일 미국의 중개로 런던에서 열리는 평화회담에서 반군측이 최상의 협상입장을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이들 외교관들은 분석했다. 한편 반군의 공세에 쫓기고 있는 에티오피아정부는 23일 화합조치의 일환으로 멩기스투에 대한 쿠데타기도 혐의로 투옥된 7명의 장성이 포함된 1백87명의 정치범을 석방하고 마르크스주의의 과거를 청산하는 조치를 취했다. 런던을 방문중인 로버트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은 만일 멩기스투 전 대통령이 정치적 망명을 요구했다면 『흔쾌히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 “소 연방 무너져도 10년 뒤 초강국 재기”(해외논단)

    ◎슬라브계 4공화국만 뭉치면 미에 필적/러시아 민족주의로 「이념공백」 극복할 것 소련은 민족분규·경제난 등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5∼10년이면 강대국의 힘을 회복,다시 서방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는 요지의 글이 발표됐다. 미 하버드대 올린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인 브루스 D 포터 교수는 계간 「내셔널 인터레스트」 1991년 봄호에 실린 「러시아는 재기한다」라는 글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련의 잠재력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이같이 주장했다. 특히 포터 교수는 소 연방의 장래와 관련해 소련은 앞으로 러시아공화국·우크라이나·백러시아 등을 중심으로 러시아 민족주의에 입각한 대러시아국으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알렉시 토크빌은 1835년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저서에서 강대국의 요건으로 영토,풍부한 자원,인구,활기찬 민족성 등을 꼽고 미국을 세계최강국,당시 러시아제국을 그에 필적할 강국으로 들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금 소련의 몰락을 예견하고 있다. 이미 2류국으로 전락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경제적 침체,정치적 위기,군사력의 단기적 우열 등을 가지고 평가한다면 이런 진단도 일견 일리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것을 한 나라의 국력을 재는 궁극적인 잣대라고 할 수는 없다. 토크빌의 기준으로 보면 소련은 여전히 초강대국이다. 설사 지금의 소 연방이 와해되더라도 러시아공화국,러시아민족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국(편의상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은 여전히 강대국 역할을 하며 서방세계에 위협적인 존재로 남을 것이다. 이 러시아국은 인구 1억5천여 만 명에 영토는 프랑스의 30배나 된다. 현 러시아공화국을 비롯해 우크라이나·백러시아·카자흐공화국을 포괄할 것이며 이 경우 현 소련 영토의 92%,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아울러 소련이 가지고 있는 군사력의 태반을 그대로 갖게 된다. 세계 최대의 핵무기,유럽 최대의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될 것이다. 소련의 군수산업 중 85%,군사연구시설의 90%가 위의 4개 공화국에 집중돼 있다. 러시아국은 소련으로부터 물려받은 군사력을 더 강화시켜 2000년까지는 미국에필적할 군사력을 재건할 것이다. 과거 러시아제국은 영토확장욕과 군사력에의 높은 의존,대내적으로는 독재체제가 특징이었다. 70년의 공산통치는 이런 특징을 더 강화시켰을 뿐이다. 따라서 공산주의 운명이 끝나고 연방이 해체되더라도 이 유산은 남을 것이다. 새로 탄생하는 러시아국은 현재의 비밀경찰·군사조직을 존속시켜 정치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물론 과거 냉전시대의 미소관계가 재발뢴다고는 보지 않는다. 러시아국은 사회주의를 내세우기야 하겠지만 외교정책은 훨씬 현실적이 될 것이다. 이데올로기 대신 러시아민족주의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서방세계는 이제 러시아공화국을 비롯,소련 전역에서 일고 있는 민족주의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서방이 소련의 몰락을 점치는 근거는 크게 다음의 3가지 가정에 기초한다. 첫째 지금 같은 경제난이 계속돼 서방을 위협할 수준의 군사력 유지가 힘들 것이다. 둘째 동구를 잃은 지금 유럽에서 영향력을 되찾기는 힘들다. 셋째 민족분규로 인해 연방이 와해될 것 등이다. 이 가정들은 정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소련의 경제난은 너무 과장된 면이 있다. 지난해 소련의 곡물수확량은 사상 최고였다. 수송체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데 이는 개선 가능한 문제이다. 산업구조도 개선돼 지난 2년간 국방비가 매년 10%씩 감소됐다. 소비부문 활성화를 위한 시장경제화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소규모 자영기업과 코페라티브가 번성해 이곳에서 일하는 인원이 5백만명에 달한다. 동구 상실을 소련 몰락의 전조로 보는 견해도 문제가 있다. 2차 대전 후 유럽에서 소련외교정책의 기본목표는 ▲유럽 주둔 미군 철수 ▲나토 해체 ▲독일의 중립화였다. 역설적이지만 나는 소련이 동구를 포기함으로써 이 목표에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통일독일은 중립화는 안 됐지만 소련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유럽 주둔 미군은 감축을 시작했으며 나토는 존재이유를 거의 상실했다. 가장 골치아픈 문제는 역시 민족문제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대제국의 붕괴는 대부분 외침으로 이루어졌는데 지금 소련에 결정적 타격을 가할 외부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르바초프 정권의 장래를 놓고 크게 5개의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보수파 주도의 궁정 군사쿠데타 ▲극단적인 러시아민족주의 세력의 권력장악 ▲개혁세력에 의한 권력장악 ▲대규모 민중시위에 이은 민주정부 수립 ▲전면 내전상태 등이 그것이다. 나의 판단으로는 이 5개 시나리오 모두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 쿠데타에는 군의 지지가 필요한데 군내부에 이런 움직임이 없다. 러시아 민족주의는 이념적으로 뉴파시즘,반유태주의,쇼비니즘 등이 복합된 것 같은 것으로 군·최고회의에 동조자가 많다. 하지만 러시아민족주의를 표방한 「러시아민족 애국운동연합」의 인민대표회의 의석수는 16석에 불과해 이들이 합법적으로 정권을 장악할 가능성은 아직 없다. 소련국민들의 정치수준이나 정치적 무관심 등으로 볼 때 체코,폴란드 식으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도 없다. 그리고 중앙정부가 건재하기 때문에 전면 내전상태로 돌입할 가능성도 배제된다. 현재 어떤 연방공화국도 군사적으로 중앙정부에 맞설 수 있는 곳은 없다. 몇 개 공화국이떨어져 나갈 수야 있겠지만 전면내전은 일어나기 힘들다. 소련은 지금 자신을 괴롭히는 제문제를 극복,다시 힘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연방이 무너지더라도 러시아공화국을 중심으로 러시아민족주의를 근간으로 한 군사·산업 강국이 등장한다. 5∼10년 뒤면 우리는 이러한 러시아국의 등장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1942년 윈스턴 처칠이 『우리는 러시아사람들을 너무 과소평가한다』라고 한 말을 새삼 되새겨 보게 된다.
  • 에티오피아 정부/정치범 대거 석방

    【아디스아바바 AFP 로이터 연합】 에티오피아 반군들이 테스파예게프레 키단 대통령 권한대행의 즉각적인 휴전촉구를 무시한 채 수도 아디스아바바로 진격해 오고있는 가운데 에티오피아정부는 23일 국가적 화합을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정치범들을 석방하기 시작했다. 키단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반으로 한 에티오피아 정부는 이날 국외로 탈출한 멩기스투 아일레 마리암 전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 기도로 15년 징역형에 처해졌던 한 해군장교 등 1백87명의 정치범들을 석방했다.
  • 크로아티아/독립 찬반투표 강행

    【자그레브 로이터 AP 연합】 유고슬라비아 연방간부회의장(대통령)의 선출이 실패함에 따라 헌정위기가 극도로 고조되면서 군사 쿠데타의 우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크로아티아 공화국은 19일 독립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강행했다. 크로아티아의 국민투표는 3백60만명의 유권자에게 유고 연방을 주권공화국의 동맹체로 대체하려는 자체 지도자들의 요구를 지지하는지 또는 세르비아가 주창하고 있는 현행 중앙통제형 연방의 존속을 희망하는지를 묻게 된다. 이번 국민투표로 크로아티아인과 민족적 라이벌 관계인 세르비아인간에 긴장이 한층 고조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는데 크로아티아내 소수민족인 60만 세르비아인은 1주일 전 자체 국민투표를 통해 거주지역의 세르비아로의 편입과 유고연방에 남기로 결정했었다. 크로아티아 언론이 투표에 앞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투표자의 압도적 다수가 독립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최종 개표결과는 21일에 나올 것이라고 국민투표위원회가 밝혔다.
  • 크로아티아·마케도니아등 4개 공화국

    ◎“유고연방 이탈… 독립국 창설” 경고/연방간부회선 비상회의 재개 【베오그라드 AP 연합 특약】 유고슬라비아가 연방대통령 선출 실패로 헌정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비공산계열의 4개 공화국은 16일 4개 공화국으로 이뤄진 독자 연합국가를 형성할 가능성을 시사,연방분열의 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연방간부회에서 크로아티아 출신의 스티페 메시치 연방간부회 부의장이 세르비아 등 4개 공화국·주 대표의 반대에 부딪혀 의장으로 피선되지 못함에 따라 밀란 쿠찬 슬로베니아공화국 대통령은 16일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공화국 등 4개 공화국이 『공동이해를 추구하고 미래에 대한 가능한 해결방안을 논의키로 합의했다』고 말하고 4개 공화국만의 공동국가 형성을 고려키로 했다고 한 성명을 통해 천명했다. 쿠찬 대통령은 『세르비아가 자신의 이익을 다른 공화국에 강요할 수 있을 때만 유고슬라비아를 필요로 하며 그렇지 못할 때는 유고연방을 무시하고 법치주의를 깨뜨리고 있다』고 비난하고 『그러한 연방구조하에서 우리의 사활적 이익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15일 메시치부 의장이 대통령(의장)에 세르비아의 반대로 선출되지 못한 것은 「쿠데타」라고 말하고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등 4개 공화국은 메시치가 유고슬라비아연방 대통령에 선출된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베오그라드 AP AFP 연합】 15일 관례적인 신임 의장(대통령) 선출에 실패한 뒤 휴회에 들어갔던 유고슬라비아연방 간부회는 16일 밤 비상회의를 재개했다고 유고 관영 탄유그통신이 보도했다. 보리샤프 요비치 현 연방간부회 의장의 임기는 공식적으로 15일 밤 24시를 기해 만료됐는데 유고연방내 6개 공화국 및 2개 자치주 대표들로 구성되는 간부회의 소집은 간부회 의장만이 할 수 있다. 이번에 연방간부회 의장직을 맡게 돼 있었던 크로아티아공화국 출신의 스티페 메시치 간부회 부의장은 연방간부회가 휴회에 들어간 것으로 공식발표된 가운데 『우리가 회의를 이대로 끝낸다면 연방간부회를 재소집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날 비상회의에서는 메시치 부의장의 대통령 선출문제와 비공산공화국이 대표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몬테네그로공화국,코소보자치주,보즈보디나자치주 대표의 수용여부가 의제로 디뤄질 것으로 전해졌다.
  • 태국,계엄령 해제

    【방콕 로이터 연합】 아난 판야라춘 태국 과도내각 총리는 지난 2월23일 군사쿠데타 이후 실시돼 온 계엄령을 2일 해제했다. 아난 총리는 이날 서명한 훈령을 통해 『일부 지역에서의 상황은 계엄령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계엄령 해제를 발표했다.
  • 아주 레소토에 쿠데타/군사평의회 의장 축출

    【마세루(레소토) 로이터 UPI 연합】 남아프리카에 위치한 레소토에서 30일 기습적인 무혈 쿠데타가 발생,실권자인 주스틴 레키니아 군사평의회 의장이 축출됐다고 외교관들이 밝혔다. 국영 레소토 라디오방송은 이날 상오 10시경(한국시간 하오 4시) 지난 86년 자신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던 레키니아 의장과 6인 군사평의회 위원 중 한 사람인 미카엘 초테치 대령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한 현지 외교관은 누가 이번 쿠데타를 조종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소유즈 리더” 알크스니스 첫 단독인터뷰/김영만 특파원

    ◎“파국위기의 소련… 비상선포로 타개해야”/쿠데타 성공하기엔 소 너무 큰 나라/보·혁 대결 장기화땐 내전 부를수도/경제독립 없는 연방탈퇴는 공염불… 단합 긴요 소련 인민대표회의의 강경보수파 의원들로 구성된 소유즈그룹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에 따른 혼란을 비난하며 비상사태 선포 등을 주장해 소련의 장래와 관련,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서울신문 김영만 모스크바특파원은 당중앙위 개막 직전인 23일 이 그룹의 실질적인 리더인 빅토르 알크스니스 대령(41)을 우리나라 기자로는 처음으로 단독으로 만나 개혁에 대한 입장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평가 소련의 장래 등을 들었다. 현역 공군대령으로 베일에 가린 채 막후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뜻에서 일명 「검은 대령」으로도 알려져 있는 그는 지난해말 셰바르드나제 당시 외무장관이 사임연설을 통해 『새로운 독재의 출현을 음모하는 검은 대령』이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소련 정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알크스니스 대령은 서울신문과의 회견에서 자신들이 쿠데타를 꾸민다는 설은부인했지만 급진개혁세력의 요구는 결단코 저지돼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비상사태와 통제경제를 주창하는 소유즈는 개혁 자체에 반대하나.』 『개혁을 반대하지 않는다.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바로 경제개혁을 위해 정치적 안정은 필요하다. 한국은 우리가 따라야 할 주요한 모델이다. 당신들은 정치적 안정이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정치적 안정이 없었다면 한국이 오늘은 없었을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사임을 지지한다고 했는데 그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나. 『고르바초프는 노련하고 또한 여러 가지 복잡한 권력게임 때문에 우리가 사임에 필요한 지지를 얻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치적인 패배를 안길 수 있고 동시에 우리가 주장하는 비상사태의 선포를 얻어낼 가능성은 있다고 여겨진다』 ­일부 분석가들은 소유즈의 발빠른 행보가 고르바초프의 입지를 강화시켜주기 위한 것이란 해석도 한다. 말하자면 보수파의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개혁파와의 협상 여지를 오히려 넓힐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이른바민주파를 곤란하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고르비와 우리의 이해가 같을 수 있다. 결과가 어떨지는 모르지만 고르비에게 우리는 민주파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인민대표회의 특별회의 소집은 가능하다고 보나. 『오늘부터 서명에 들어갔다. 4백50명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전체 대의원 정수의 5분의1). 소유즈그룹의 대의원 대부분이 현재 지방에 머무르고 있어 필요서명인원을 채우는 데는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 ­의회가 비상사태를 선포치 않을 경우 소유즈는 자신들이 제안한 방안들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이 조치는 쿠데타가 반의회적인 다른 방식에 의한 정부구성을 의미하나. 『우리의 결의내용은 아니고 블로힌 의원의 연설에 그런 내용이 있어 오해를 사고 있다. 비헌법적이고 위협·암시·공포로 이해되고 있어 유감스럽다. 우리는 합헌적인 것이 때때로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헌법의 범위내에서만 행동할 것이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의 비상사태 선포 같은 극단적인 방법의 사용은 유혈사태를 부를 가능성이 크다. 그런 가능성까지 감내하면서 비상사태를 주장하나. 『생명의 가치는 무한한 것이다. 나는 유혈적인 방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국가는 때때로 힘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지금 소련에서는 전쟁이 아닌데도 지난 2년간 정치적 분쟁으로 1천명 이상이 사망했다. 세계는 지금 이라크내의 쿠르드족 문제에 비난을 집중하고 있다. 소련은 지금 민족분규 등으로 피난상태에 있는 사람의 숫자가 1백만명을 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군부쿠데타가 가능할 수 있나. 『우린 쿠데타를 하기에는 너무 큰 나라다. 장군만 모아도 크렘린으로는 모자랄 정도로 숫자가 많다. 우리는 프랑코 장군이나 피노체트 장군,주코프 원수도 없다. 있다면 야조프 원수가 있을 뿐이다』 ­군부 내에도 옐친을 지지하는 개혁파가 형성돼 있나. 『있지만 모스크바에서만 조직이 있는 극소수다. 우라즈체프 러시아 대의원(예비역 중령)이 대표로 있는 「방패」가 그것인데 최근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나에서 이 조직을 만들려다토론도 하기 전에 그들은 도망가야 했다』 ­옐친이 러시아공화국 헌법개정에 성공하고 6월12일로 예정된 선거에서 직선대통령이 된다면 소련의 장래는 어떻게 되나. 『이 대결이 멈추지 않는다면 내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곧 세계3차대전으로 치달을 것이다』 ­당신은 독립운동의 열기가 높은 라트비아 출신인데 강경세력의 간판으로 꼽히고 있다. 출신배경과 현재의 정치적 견해 사이의 차이를 무엇으로 설명하나. 『민족주의자들이 내놓는 구호는 「배고프지만 자유롭게」이다.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한데도 탈퇴만이 살 길 인양 외친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 때문에 인간의 생존권을 희생시킨다면 지나치게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셰바르드나제 전 외무장관의 사임연설로 당신은 유명하게 됐다. 실제로 사임을 종용했는가,그것 외의 다른 배경은 무엇인가. 『사임을 종용한 바 있지만 현역 대령 두 사람(한 사람은 페트루센코 대령)의 종용으로­비록 그것이 검은 대령이라 할지라도­장관이 물러날 수 있나? 그보다는 다른 배경이 있다. 하나는 그가 실시해온 정책에 대한 책임추궁의 두려움을 갖고 있었고 또 하나는 이라크를 반대하는 진영에 서겠다고 미국에 약속했음에도 이를 지키지 못 한데 따른 자기인책으로 보는 것이 옳다』 ◎군부 강경파가 주도… 반고르비 선봉/소 「소유즈그룹」이란 소유즈(연합)그룹은 급진개혁을 반대하며 지난해 2월 소련 최고회의 보수파 대의원 1백여 명이 결성한 압력단체. 최고회의 대의원인 유리 블로힌이 대표를 맡고 있으나 알크스니스 대령을 비롯한 강경파 군장교 5∼6명이 사실상 모임을 주도해가고 있다. 89년 7월 인민대표회의내 급진파 대의원 2백50여 명이 급진개혁을 요구하며 「지역간 그룹」이란 단체를 만든 것이 소유즈그룹이 결성된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창립 당시 이들이 밝힌 결성취지는 소연방을 와해시키려는 분리주의,민주주의세력과의 투쟁 및 러시아민족의 권리보호였다. 이들은 그 동안 각종 회의에서 고르바초프의 국내외 정책에 강한 비판을 가해 주목을 끌었다. 특히 90년 11월17일 최고회의에서는 『30일내에 개혁정책을 중단치 않으면 고르바초프는 사임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서방 분석가들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12월에는 셰바르드나제 외무,바딤 바카틴 내무 등 개혁파 장관 2명을 사퇴케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현재 회원수는 4백50∼5백명 선으로 알려져 있으며 군장교,군수산업체 간부,지방공화국 거주 러시아인 출신 대의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 마라톤회담에 일왕 고별방문 연기/고르비 방일 사흘째 표정

    ◎일 실업인,대소투자·원조호소에 냉담한 반응/라이사 벚꽃놀이 취소… 꽃꽂이 강습에 참가 ○…제4차 일·소 정상회담은 예정보다 40분 늦게 시작돼 도중에 20여 분 간 중단되는 등 두 나라 정상은 역시 북방영토 문제를 놓고 된씨름을 하는 기색을 역연히 드러내기도. 처음부터 두 나라 정상은 간단히 악수만 할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아 회의장 분위기가 어색한 느낌이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가이후 총리는 18일 하오 6시쯤 각각 부인을 동반,세계어린이 축제에 참석해 정상회담장에서의 딱딱한 분위기를 풀려고 힘쓰는 모습. 두 나라 수뇌는 세계 10개국 10명의 어린이들과 패널 토의에 참가해 어린이들의 질문에 열심히 대답해주었다. 이 자리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싫어하는 과목은 말할 수 없다』고 말하고 『부인의 장점은 나를 전혀 비판하지 않는 점』이라고 익살스럽게 말해 어린이들을 웃기기도. ○…아키히토(명인) 일왕 부처는 이날 하오 도쿄도내 영빈관으로 고르바초프 대통령 부부를 방문,석별인사를 나눌 예정이었으나 정상회담이 진전을 보지 못한 채 계속돼 송별방문을 부득이 19일로 연기. 일본 황실 의전상 국왕의 외국손님에 대한 송별인사가 연기된 것은 지난 61년 5월 한국의 쿠데타로 인해 방일중인 블라드 페루 대통령 부부의 일정이 변경,연기된 일이 있은 이후 처음이라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신간선을 타고 교토(경도)에 가 이조성을 구경한 후 다시 오사카로 가서 공로로 나가사키(장기)에 도착하며,이곳에서 제주도로 향한다는 일정을 짜놓고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18일 일본 불교지도자와 만난 자리에서 다시 일본을 방문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 그는 일본불교 소카이 가카이종의 지도자 이케다 다이사쿠 스님에게 이번 방문은 너무 바빠 후지산조차 가보지 못했다며 다음에는 덜 바쁜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싶다고 피력. ○…일·소 양국 정상회담이 예정을 넘겨가며 계속되자 라이사 여사도 일정을 취소한 채 일본의 전통기예를 맛보는 것으로 대체. 라이사 여사는 예정대로라면 18일 아카사카 왕궁에서 벚꽃을 구경하기로 돼 있었으나 정상회담이 거듭되자 대중앞에 나서지 않고 숙소인 아카사카 영빈관에 머물며 낮시간을 보냈다. 이날 상오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함께 영빈관 뜰에 보리수나무를 심은 라이사 여사는 하오에 아카사카의 초월회관을 방문,꽃꽂이 회원들로부터 실습을 받는 등 일본문화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17일 저녁 도쿄도내의 한 호텔에서 약 1시간 동안 가진 일본 대학생들과의 강연회에서 능숙한 대화장기를 과시,청중들을 매료시켰다. 「일본 대학생들과 말한다」라는 이름이 붙은 이 강연회에는 6개 대학의 교수와 학생 등 3백여 명이 참석,고르바초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예정보다 약 20분 늦게 도착한 고르바초프 대통령 부처는 참석자들의 열띤 박수속에 웃음을 지으며 등단,과학문제를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 나갔다. 그는 『소련의 기초연구와 일본의 선진기술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히로시마(광도)와 체르노빌 비극에 언급,『과학자는 영지와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필요하다. 대학생 여러분에게는「세계질서 구축」이라는 큰 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느긋한 분위기 가운데 열린 이날 강연회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학생들은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다. 영토문제와 경제원조의 관련성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 학생의 물음에 고르바초프는 『정치와 경제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결론은 역사에 맡기자』며 질문의 핵심을 슬쩍 피했다. 어느 학생이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결과,대통령 자신이 민주적으로 해임된다면…』 하고 꼬집어 묻자 그는 고개를 옆으로 갸웃하고 다소 열적은 표정을 지으며 『나는 민주적 개혁을 지지한다. 이 문제가 제대로 풀리기를 바란다. 법 앞에서는 대학생도 대통령도 평등하다. 이것이 나의 대답이다』며 더 이상 말문을 막았다. ○…일본 실업인들은 17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대소원조 및 투자 호소에 대해 소련이 국내의 경제적 문제들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구체적 해결방안들을 제시하지 않는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17일 5백50여 명의일본 재계지도자들에 행한 연설에서 일본 기업들이 소련의 원유 및 천연가스 개발·항만·철도·호텔·레스토랑·소비재 생산 등에 투자해줄 것을 호소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 대변인 비탈리 이그나텐코는 17일 일본의 3대 일간지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주요연설과 일본측에 제안한 공동성명 초안을 앞질러 보도한 데 대해 불만을 토로. 이그나텐코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17일 저녁 일본 총리초청 만찬에서 행할 연설의 일부를 낭독한 후 나머지 부분은 일본의 3대 일간지를 읽으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
  • 잇단 「고르비 축출설」 언저리/크렘린에 「궁정쿠데타」 가능할까

    ◎64년 흐루시초프 실각 때와 상황 비슷/군·당이 변수… 일부선 후임자까지 거론 고르바초프를 축출시키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루머가 꼬리를 물고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이러한 음모설은 경제난·민족문제 등으로 페레스트로이카가 비틀거리기 시작한 2∼3년 전부터 간간이 외신을 타고 들어왔으나 그때마다 「읽을 거리」 이상의 관심을 끌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러시아공화국 의회가 독자 대통령을 선출키로 결정한 이달초부터 소련내 정세가 극도로 악화되자 「음모설」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어떤 분석가들은 인민대표회의 의장인 아나톨리 루키야노프,부통령 겐나디 야나예프가 그의 후임자가 될 것이라는 성급한 추리를 내놓기도 한다. 10일 일본 지지(시사)통신 보도는 음모의 결행 시기·방법까지 적시하고 있다. 공산당내 보수파들이 고르바초프의 일본·한국순방 끝날인 19일 긴급 당중앙위 총회를 소집해 그를 축출하려는 거사가 추진중이라는 것이다. 지난 7일에는 리처드 체니 미 국방장관이 ABC­TV와의 회견을 통해음모가 사실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고르바초프는 과연 실각할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는 쪽의 견해가 아직은 우세하다. 하지만 연방공화국들의 독립요구·파업·경제난 등 정국상황을 감안한다면 시기적으로는 지금이 음모를 결행하기에 최적기라는 지적도 있다. 소련에서 당 최고지도자 부재중 중앙위 총회가 열린 것은 지난 1964년 흐루시초프 당시 제1서기가 요양지에서 불려와 해임된 경우가 있다. 지금 고르바초프가 처한 입장이 불행히도 그때와 유사한 점이 많다. 소련에서 궁정쿠데타의 음모를 꾸밀 수 있는 세력은 역시 군부·당·보안세력으로 대변되는 보수세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들이 처한 상황이 그때와 지금 아주 흡사하다. 1956년 20차 당대회에서 흐루시초프가 스탈린 비난연설을 한 이래 소련에서는 대대적인 스탈린격하운동이 벌어졌다. 보안조직의 총수 베리야가 숙청되고 스탈린의 학정에 연루된 당·보안조직 세력들은 모두 된서리를 맞고 공산당에는 탈당사태가 벌어졌다. 탈스탈린화가 진행되면서 동구위성국들에도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56년 헝가리 민주화운동 등이 그 실례이다. 고르바초프는 이보다 한술 더 떠 동구를 모두 잃고 독일을 통일시켜주었다. 대외정책도 유사한 점이 많다. 흐루시초프는 사회주의 해방전쟁 지원과 혁명수출 포기를 선언하고 제국주의 세력과의 평화공존을 주장하며 전쟁불가피론을 부정했다. 고르바초프가 추진해온 개혁 개방,신사고 외교정책과 흡사한 「모험」들이 당시에 시도된 것이다. 경제면에서도 흐루시초프는 1956년 경제분권화계획을 발표하면서 군비삭감과 소비재 생산확충을 추진해 기득권층으로부터 반발을 샀다. 1964년 10월 긴급당중앙위가 소집돼 그의 실각을 통보하기 전까지 흐루시초프는 자신이 당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당조직은 스탈린을 비난하며 당의 권위에 손상을 입힌 그를 버렸다. 보안조직과 군부도 그의 몰락을 외면했다. 스탈린시대를 청산한다는 이름하에 자신들의 「피묻은」 과거를 들추어 단죄한 그를 구해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지난해말을 고비로 그 동안소원했던 군·KGB·당과 다시 손을 잡으려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 6년간 소외되고 공공연히 비난받아온 이들이 만약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그를 「살리려고」 나설지는 아무래도 미지수이다. 『고르바초프 물러나라』고 외치는 거리의 외침 못지 않게 크렘린궁내의 「소리없는」 음모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 고르비 부재시 쿠데타 가능성

    【도쿄 연합】 소련 공산당 보수파그룹은 이달 19일 당중앙위 총회 개최를 추진중이라고 일본의 지지(시사)통신이 10일 모스크바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19일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일본·한국방문 마지막 날인데 바로 이때 보수파가 총회를 열려는 것은 「궁정 쿠데타」을 일으켜 그를 해임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 통신은 밝혔다.
  • 경제파탄/정정불안/흔들리는 후세인 정권/「유엔휴전안」 수락 이후

    ◎전후 배상 수백억불 지불 불가피/「대탈출」등 혼돈속 유혈권력투쟁 가능성 이라크가 걸프전 휴전을 받아들임에 따라 이라크는 가난과 압제,정정불안 그리고 더 많은 유혈의 가능성에 당면해 있다. 바그다드정부가 지난 6일 마지 못해 받아들인 유엔결의문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으로서는 쿠웨이트사막에서 겪은 참패를 능가하는 것으로 후세인은 이로 인해 중동과 그 밖의 지역에서 공포를 유발했던 미사일과 화학무기·핵프로그램 등을 빼앗기게 됐다. 이라크는 이제 더 이상 주변국가를 위협할 수 있는 군사적인 공격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이같은 새로운 약점이 국내의 정정불안을 야기해 이웃 국가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후세인은 지난 10년 동안 20만명의 이라크인 생명을 앗아간 두 차례의 전쟁으로 이라크를 몰아갔다. 이라크정부군이 시아파 회교반군과 쿠르드족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테러를 자행,1천7백만명의 이라크국민 가운데 75만명 이상이 이란과 터키·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탈출하게 만들었다. 이같은 대탈출은 전후혼돈과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전후 복구 비용과 맞물려 이라크가 당면한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이같은 가난과 좌절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독재나 민주주의의 가능성 어느 쪽도 안정을 약속할 수 없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동맹국들이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있는 군부쿠데타도 지난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 이라크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유혈권력투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망명 반체제 단체들이 체결한 민주협력협약은 각 단체간의 정치적 차이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권력을 잡는다 해도 심각한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후세인은 전후 국내문제 처리에 있어 자신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하는 대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더 잔인한 탄압을 하는 이른바 채찍과 당근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후세인은 지난 2주간 각료를 임명하면서 쿠르드족 백정으로 알려진 자신의 사촌 알리하산 알 마지드 장군을 내무장관에,사촌이자 사위인 후세인 카멜 준장을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수 년간에 걸친 전쟁과 어려움으로 국민들 사이에 좌절감이 팽배해지자 후세인은 한때 외국인과 대화한 것만으로도 투옥할 수 있었던 구속적인 분위기를 완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외국의 금융대출기관들은 쿠웨이트와의 전쟁 이전에 이미 6백억달러의 전쟁부채를 지고 있던 이라크를 돕는 데 주저할 것이다. 게다가 이라크는 현재 쿠웨이트에 대한 전쟁배상으로 수백억 달러를 지불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됐다. 후세인은 외교적 고립에 종지부를 찍고 경제적 혹은 기술적 지원을 제공할 용의가 있는 동맹국들을 찾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하게 될 것이다. 그는 이라크에서 생산되는 석유와 교환해 재건작업에 값싼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인도·중국·브라질 등 제3세계 국가와 친교를 맺을 것으로 보인다.
  • 주용기·추가화 부총리 임명 승인

    ◎중국 보수파 반발… 정쟁 우려/“등,이붕정부 불신임” 교도통신 【북경 AP 연합 특약】 중국 제7기 전국인민대표회의는 8일 상해시장 주용기(62)와 국가계획위원회 주임 추가화(64)의 국무원 부총리 임명을 승인했다. 이로써 국무원 부총리 5명 중 3명이 60대의 인물로 채워지게 됐다. 【도쿄 연합】 실무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주용기 상해시장 등 3명을 중심으로 한 이번 중국정부의 수뇌인사는 경제건설 가속을 위해 서방측의 협력이 절대필요함을 강조해온 등소평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이며 이붕 정권에 대한 불신임의 표현이라고 교도(공동)통신이 중국 소식통을 인용,8일 북경발로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등소평의 쿠데타』로까지 비유되는 이번 인사의 배경에는 복잡한 권력투쟁 양상마저 비쳐 장차 보수파의 반발과 함께 상당한 파란이 일 것 같다고 내다보았다.
  • “12·12때 숨진 김오랑중령 미망인/2억 받고 소송 포기”

    ◎측근 주장/당시 부산 영도구청장,“전달설” 부인 【부산=장일찬기자】 지난 79년 12·12사태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으로 근무중 총격으로 숨진 김오랑중령의 미망인 백영옥씨(43·부산시 영도구 영선1동1가 21·자비원원장)가 지난해 12월 전·현직 대통령을 포함해 12·12 신군부쿠데타 주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리려하자 당시 임종택 영도구청장이 소송포기 조건으로 2억원을 건네준 것으로 밝혀졌다. 30일 백씨와 가까이 지내온 김모씨(42)에 따르면 백씨가 12·12사태 11주년인 지난해 12월12일 장기욱변호사를 통해 서울민사지법에 전·현직 대통령과 최세창·장기오·박희도씨 등 12·12주역을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계획이었으나 당시 임구청장이 백씨의 측근을 통해 소송포기조건으로 2억원을 건네줘 소송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이에대해 임종택 당시 영도구청장은 『상식적으로 그런 성격의 돈을 구청장이 전달할리가 있겠느냐』며 이를 부인했다.
  • 「검은대륙」 아주에도 민주화 진통

    ◎동구개혁 영향… 반독재시위 확산/“선두주자”베냉,독립 30년만에 첫 민선정부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도 민주화와 개혁의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그동안 아프리카는 군부독재와 1당 독재로 상징되어 왔으나 경제난과 지난 89년 동구를 휩쓴 민주화 혁명의 영향을 받아 세계적인 진운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아프리카의 경제형편은 주요 수입원인 커피 코코아 원유 등의 국제가격 하락으로 80년대 들어 최악의 상황이었다. 아프리카 민주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청신호는 지난 24일 대통령선거를 실시한 서부해안의 소국인 베냉에서 울렸다. 지난 10일 13명의 후보자가 난립한 가운데 실시된 1차선거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24일 실시된 결선선거에서 개혁파 총리인 니세포레 소글로는 지난 72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마티유 케레쿠 대통령을 68%대 32%의 표차로 누르고 당선,아프리카 대륙(본토)에서는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교체한 「선거혁명」을 이룩한 것이다. 마르크스­레닌노선을 추구했던 케페쿠는 지난 89년 12월 반정부 시위대들의 개혁과 사임요구를 수용,지난해 2월 다당제를 허용했으며 3월에는 반체제 인사인 소글로를 총리로 하는 과도내각을 출범시킨뒤 실세에서 물러나는 「용단」을 내렸다. 베냉의 민주화 시위는 지난해 가봉·코트디부아르·니제르·자이르·모잠비크 등 10여국으로 확산,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다당제와 개혁 실천을 약속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은행에서 8년간 근무하는 등 친서방파 인물로 알려진 소글로 정부의 앞날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24일 선거당일에도 종족간의 유혈 충돌로 1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남부와 북부지역의 반목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화 실시와 함께 떠올랐던 국민들의 1인당 국민소득 3백달러의 탈최빈국 요구 역시 단시일내에 해결될 사항이 아니다. 한편 말리에서는 26일 쿠데타가 발생,트라오레 대통령이 실각하는 홍역을 치르고 있다. 트라오레는 지난 22일 학생들의 시위로 불붙은 반정 민주화시위를 무력으로 진압,4일동안 1백50여명이 숨지고 수천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유혈 참극을 빚게 했으며 결국 쿠데타로 실각하는 최후를 맞아 베냉의 경우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지난 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지 8년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트라오레는 국민들의 개혁요구에 완강하게 저항,다당제 요구를 거부해왔다. 동구 여러나라의 경우가 그러했듯 아프리카 제국의 민주화 역시 간단히 이뤄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전 아프리카의 GDP(국내총생산)가 벨기에와 같은 1천3백50억 달러에 불과한 열악한 경제수준하에서의 민주화는 너무많은 위험요인들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80년대 남미의 민주화로 군정이 종식된 것처럼 아프리카의 90년대가 군정이 몰락하는 격변의 한 시대가 될 것만은 분명하다. 아프라카에도 분명 봄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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