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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소 경협차관 예정대로 제공”/정부,소 사태 진정따라

    ◎민간투자도 적극지원/각공화국과 경제교류 확대추진/은행/수출어음매입·보험인수 재개 소련의 쿠데타가 3일만에 실패로 끝나고 미·일·EC 등 서방각국이 긴급 대소경제지원에 나서는 등 대소경협여건이 급속히 호전됨에따라 정부와 금융계 및 관련업계는 22일 이번 사태로 일시 유보했던 상품수출과 경협자금제공 관련업무를 재개했다. 경제기획원·재무부·상공부 등 관계부처는 이날 소련쿠데타 실패 이후 대소경협추진대책을 협의,소비재 전대차관과 은행차관 등 대소경협차관을 당초 예정대로 집행키로 했다. 이와 관련,재무부관계자는 『내달부터 연말까지 8억달러규모의 소비재 전대차관을 집행,차관자금을 이용한 대소상품수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말하고 『은행차관 2차분 5억달러도 차관제공에 관한 양측간의 실무협의를 거쳐 오는 9∼10월중에 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특히 이번 쿠데타의 실패로 소련의 개혁정책추진속도가 빨라지고 우리 기업의 진출여건도 오히려 좋아질 것으로 예상됨에따라 민간기업의 대소투자도 적극지원키로 했다. 또 소련내의 정정불안으로 무산된 어업협정체결 문제를 비롯,합작투자 자원공동개발,기술협력 등 각 분야의 교류협력도 당초 계획대로 추진키로 했다. 은행·보험등 국내 금융기관은 지난 며칠동안 중단했던 소련수출환어음 매입과 수출보험인수 업무를 이날 하오부터 재개했으며 산은등 국내10개 은행차관단은 소련에서 신용장이 오는 대로 소비재 전대차관을 집행키로 했다. 삼성물산·대우·럭키금성상사등 관련업계는 이날 상오 상사별로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대소교역여건이 정상화함에따라 그동안 선적을 미루었던 상품수출을 다시 시작하고 대소투자 문제 등도 활발히 추진키로 했다. 특히 의류·신발·가전제품등 소비재 선적및 생산업무를 잠정 중단했던 업체들은 쿠데타 발생 이후 대외결제업무를 보류했던 소련대외경제은행의 업무가 정상화되는대로 소비재 수출이 재개될수 있도록 선적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합성수지원료인 ABS소재의 선적을 보류했던 럭키금성상사의 경우 이날 하오 대소수출에 대한 은행의 자금결제가 이루어짐에따라 다시 선적을 재개했다. 그러나 일부 수출기업들은 이번 쿠데타로 드러난 소련내부의 정정불안과 후유증 등을 감안,대소교역과 투자진출에 대한 보다 세심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사태로 옐친이 이끄는 러시아공화국등 소련내 15개 공화국의 지위가 크게 강화될 것으로 보고 연방정부 뿐만 아니라 각 공화국과도 경제유대를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 소 개혁 가속화 희망/대소경협 적극 추진/공보처 성명

    정부대변인 최창윤공보처장관은 22일 소련쿠데타실패와 관련한 성명을 발표,『비합법적인 헌정중단 기도가 대규모 유혈사태 없이 조기에 좌절되고 헌정질서가 회복되고 있는데 대해 온세계 자유민과 함께 크게 기뻐하고 환영한다』고 밝혔다. 최장관은 또 『정부는 양국간 굳게 다져진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선린협력관계가 가일층 심화되고 나아가 동북아평화와 안정에 더욱 기여하게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최장관은 이어 『앞으로 소련의 민주화와 개혁·개방정치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에 양국간의 관계는 훨씬 돈독해 질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소련에 대한 서방세계의 지원이 높아지고 우리도 이에 적극 동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고르비,지도부 개편/옐친 연정제의… 오늘 요직인선

    ◎새국방·KGB의장·내무 임명/“공산당도 개혁세력으로 교체”/고르비 회견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모스크바로 돌아와 집무를 시작한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은 22일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과 함께 공석이 된 지도부의 요직인선에 착수,1차로 국방장관에 미하일 모이세예프참모총장을 임명했다.또 국가보안위원회(KGB)의장에 레오니드 셰바르신을,내무장관엔 바실리 투르신을 발령했다.이에앞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국방차관에 보리스 파안코프대장을 임명했는데 타스통신은 쿠데타 주동자의 체포로 자리가 빈 일부 핵심요직의 임명이 「임시적」인 것이라고 전했다. 고르바초프는 이날 모스크바로 귀환한 뒤 처음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공산당안의 반동세력을 몰아내고 개혁지지세력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정변을 계기로 급부상한 옐친러시아공대통령은 보수파 제거에 본격 착수함으로써 자신의 세력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옐친대통령은 그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23일 만나 정부구성문제를 비롯한 「대단히중요한」사안들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그는 3인의 요직인사와 관련,『앞으로 러시아공화국이 연방정부구성에 보다 많이 대표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그 이유는 어려운 시기에 민주주의를 수호한 것이 러시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옐친은 또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연금돼있었던 크리미아휴양지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온 직후 그에게 자신의 지지세력들과 연정을 구성할 것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모스크바 라디오방송이 보도했다. 이에앞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모스크바공항에서 크렘린관저로 돌아온 직후 발표한 첫 성명에서 『나를 축출하려던 쿠데타가 실패한 것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의 승리』라고 강조하고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소련은 큰 재난을 겪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시 미국대통령은 그동안 주저해왔던 대소직접경제원조 제공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했고 유럽공동체(EC)와 일본등도 소련에 대한 지원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 외언내언

    소련의 강경보수 세력에 의한 쿠데타는 문자 그대로의 삼일천하였다.현지시간으로 19일 상오4시 거사에서 21일 하오6시까지의 62시간.세계는 거사와 실패에 두번 놀란다. ◆「3일천하」는 우리 역사에도 있다.이번 소련의 쿠데타는 보수회귀에의 성격이지만 1백여년 전의 우리나라 쿠데타는 혁신·개혁 의지를 담았던 것.1884년의 12월4일(음력으로는 10월)김옥균·박영효·홍영식등 독립당(개화당)이 사대·보수정도를 내건 거사였다.새 내각을 짜고 새 정책까지 발표했지만 사흘 만인 6일 실패로.우리가 흔히 「갑신정변」이라 부르는 구한말의 몸부림이었다. ◆일본사람들에게도 「밋카덴카」(삼일천하)라는 말이 있다.짧은 동안의 권세를 뜻하는 말이면서 도요토미(풍신수길:그때의 성은 우채)와 아케치(명지광수)사이의 야마자키(산기)싸움을 배경 삼는다.아케치가 그 주군인 오다(직전신장)를 배신하여 죽이고 집권하려 했으나 도요토미한테 그 싸움에서 짐으로써 꿈은 무산되었던 것.다만 3일은 더 걸린 멸망이었으나 그렇게들 부른다.도요토미의 세력은 이 때부터 커지기 시작했다. ◆한 나라의 정변과 그 추이에 대해 온 세계가 이렇게 충격 받고 관심 가진 일이 일찍이 있었던가.3일 62시간동안 지구촌은 긴장하고 흥분했다.도도한 역사의 흐름에 대한 역류를 저주하면서.하지만 주류의 물살은 거세었다.역류3일에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린 역사에의 거역.생각하자면 역류를 3일천하였다고 할 수도 없다.역류는 시작하면서부터 거스르지를 못했던 터이니까. ◆3일만에 끝난 것은 그나마 다행한일.끝내 거스르려 했을 때 유혈이 그 얼마였겠는가.고르비의 그 특유한 미소를 금방 다시 대하게 되어 기쁘다.지구촌은 행복하다.몇몇 이상자를 빼고는.
  • 고르비 복귀 소식이 반가운 예레멘코 소 대사대리

    ◎“소­한유대 모든 분야에서 가속화확신/콜레라핑계 고위회담 기피 우스운일” 『27년동안의 외교관생활중 가장 길고 어려웠던 사흘이었습니다.그동안 쿠데타에 맞선 소련국민들에게 지지와 성원을 보내준 한국정부와 국민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본국에서 개혁에 반대하는 강경보수파들의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대통령직에 복귀한 22일 아침 주한소련대사관의 로엔그린 예레멘코대리대사(52)는 참으로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올레그 소콜로프대사가 본국에서 휴가중이었기 때문에 주한대사관의 총책임자로 누구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본국정세의 변화에 온갖 신경을 다 썼기 때문이다. 그는 『타스통신을 통해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그땐 대통령이 체포됐는지 어떤지 몰라 불안했고 매우 슬펐다』면서 『이제 국민들이 쿠데타를 물리친 만큼 소련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소련의 장래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가 여기서 끝나면 안된다.개혁은 시작하면 계속해야하는 것이다.자전거가 굴러가지 않으면 쓰러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고르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으로서 존경한다.소련의 민주화를 추진하는데 교량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실세로 떠오르고 있는 것처럼 외신은 전하는데. 『옐친이 쿠데타기간중 국민에게 반쿠데타를 직접 호소한 것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같다.그도 이미 개혁의 맛을 봤으며 연방대통령(고르비지칭)밑의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일 뿐이다. ­한소관계는 우리의 북방정책추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소관계의 장래를 어떻게 내다보는지. 『기존의 유대관계가 계속 진전할 것으로 낙관하며 특히 정치·사회·문화·경제 등 모든 분야의 협력이 더욱 가속화되기를 희망한다』 ­북한에 대해 매우 잘 아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난 57년부터 8년동안 세차례에 걸쳐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에 2등·1등서기관과 참사관으로 근무했다.지난 88년11월엔 셰바르드나제 당시외무장관의 북한 공식방문준비단으로 평양에서 김일성주석과도 만났다.어제 신문에서 북한측이 남북고위급회담을 한국의 콜레라비상때문에 판문점에서 열자고 제의를 했다는 뉴스를 봤는데 우스운 얘기다』 소련 모스크바국립대 동양대학에서 우리말을 익힌뒤 64년까지 소련과학아카데미에서 몇년동안 근무하다 외무부에 들어온 예레멘코대사대리는 모스크바에있는 부인과 역시 모스크바의 한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외딸(34)과 떨어져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3일천하」로 끝난 쿠데타의 부담을 던 탓인지 활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소 대사관·상의 활기/항공사엔 모스크바행 예약 쇄도 ○…서울 용산구 한남동 262 청산빌딩 2층에 자리잡은 소련대사관은 예레멘코대리대사가 상오8시57분쯤 출근한데 이어 유학생·기업인 등의 비자발급도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강남구 삼성동159 공항터미널 6층에 있는 소련연방상공회의소 주한대표부(소장 발레리 리자로프)는 이날 소련인 직원 5명과 한국인 직원 1명이 평소보다한시간 빠른 상오8시쯤 출근해 본국에서 전해오는 텔렉스와 타스통신 등을 지켜보며 쿠데타실패에 안도하는 표정. ○…이 건물1층의 소련국영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 서울지점(지점장 파블리오크 비탈리)도 비행기 좌석을 예약하기 위해 걸려오는 문의전화를 바쁘게 받는등 정상업무에 들어갔다. 예약과 직원 오모양(25)은 『지난 20일과 21일 이틀동안 비행기 이륙이 가능한지,또는 예약을 취소할수 있는지에 대해 문의가 쇄도했으나 오늘은 상오에만 20여통의 비행기 좌석 예약문의가 들어와 바빴다』고 말했다.
  • 한­소 우호·경협 더욱 다져질듯/소 쿠데타 실패이후의 양국관계

    ◎시베리아개발등 투자사업 박차/대북·유엔정책 수행에 자신감/북한,혼란 가중… 폐쇄노선 설땅 잃어 소련 보수강경파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남으로써 한소우호협력관계는 더욱 공고해질 것같다. 노태우대통령도 22일 언론발표를 통해 이 점을 강조했 듯이 이번 사태는 한소관계가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에서 지니는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정부로서는 30억달러의 대소경협과 관련,미국 등 일부 서방국가들로부터 성급하다는 눈총을 받아왔으나 이번 사태를 통해 소련과의 경제협력관계를 더욱 가속화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대소경제원조에 난색을 표시했던 서방국가들도 세계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소련의 지속적인 개혁정책을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했다고 볼때 오히려 한국의 선도적인 대소협력자세는 새삼 평가될 만한 것이다. 정부는 대소경협을 예정대로 집행하는 것은 물론 한소어업협정 등 각종 협정체결과 시베리아개발 등 투자사업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쿠데타실패가 남북한관계,특히 북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소련에 쿠데타가 일어나자 이례적으로 신속 보도하고 쿠데타세력을 고무·찬양하는 태도로 나왔다가 「실패」이후에는 사실보도도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는 북한이 지금 노선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음을 뜻한다.이번 사태는 또 폐쇄정책을 고수하며 부자세습체제로 권력이양을 추구하고 있는 북한의 입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 이제 소련이 군부등 보수강경파를 배제하고 서방국들의 지원하에 개혁·개방정책을 가속화시켜나갈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북한은 국제사회의 거대한 개방압력에 직면하게 될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주화와 개방이라는 대세의 흐름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며 앞으로의 남북한 관계에서도 그같은 징후들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들은 소련에 쿠데타가 나자 돌연 오는 27일의 제4차평양남북고위급회담을 남쪽의 콜레라발생을 이유로 판문점에서 회담을 열자는등 대화거부자세를 취했으나 조만간 태도변화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오는 9월 남북한이 유엔에 가입하고 유엔총회에서 한반도문제가 다뤄질 경우 소련은 종전보다 더 전향적인 자세로 우리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관측된다. 전반적으로 보아 이번 소련사태를 계기로 한소관계는 더욱 강화될 것이며 우리의 대유엔외교,대북정책은 확실한 자신감 속에 강도 높게 추진될 것이 분명하다. ◎노 대통령 소 사태 언론발표 전문 나는 소련이 불행한 사태를 큰 유혈없이 단기간에 극복하고 헌정질서를 회복한 것을 환영합니다.고르바초프대통령이 모스크바에 귀환하여 합헌적인 통치권을 회복하고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소련의 갑작스런 사태에 우리는 충격과 우려를 금할수 없었습니다.세계에 냉전질서를 종식시키고 한소관계를 정상화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안위에 대해서도 큰 걱정을 했습니다. 세번에 걸친 정상회담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세계의 평화에 관해 깊은 마음을 주고 받은 나로서 지난3일간은 인간적으로도 매우 고통스런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소련의 사태가 비단 소련 국내문제일 뿐 아니라 세계의 장래는 물론 우리와도 직결된 문제임을 실감했습니다. 오늘의 사태진전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소련국민의 결의와 용기의 위대한 승리입니다.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을 비롯한 소련지도자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지도력이 그것을 이끌어냈습니다.나는 이에 대해 소련국민과 지도자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소련사태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단합되고 효율적인 행동은 소련사태의 정상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자유와 민주주의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 되었습니다.세계는 이 조류를 더욱 진전시켜 평화롭고 화해로운 하나의 세계를 실현하는데 협력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나는 세계 각국이 소련이 현재 맞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개혁을 진전시키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나가기를 바랍니다. 소련사태의 정상화를 전기로 한소우호협력관계가 더욱 강화되고 지속적으로 발전될 것으로 믿습니다.
  • “비상사태 서명”거부하자 고르비연금/소 정변 「3일드라마」의 전말

    ◎KGB 30명 들이닥쳐 대통령내외 별장억류/크렘린측 전화불통되자 이상 감지/옐친,“대안은 군중동원”대책 주효 워싱턴 포스트지는 21일자에서 사흘동안의 소련쿠데타 실패의 전말을 3페이지에 걸쳐 상세히 보도했다.「소련에서 두려움이 사라졌을때」라는 제목으로 데이비드 렘니크기자가 쓴 이 글을 통해 쿠데타의 발생·전개·실패과정을 요약,소개한다. 쿠데타가 개시된 19일 하오 늦게 기관총으로 무장한 30여명의 KGB요원들이 고르바초프대통령과 그의 부인 라이사여사를 흑해연안 크리미아반도의 포로스별장에 억류하고 있었다.그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고 전화통화도 불가능했다.군인들은 이중으로 별장을 포위하고 있었으며 바다쪽에는 15척의 경비정이 포진하고 있었다. ▷쿠데타의 징후◁ 쿠데타의 원인은 고르바초프의 잦은 정책변화와 책략등 지나친 자신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면서 그동안 여러가지 방법으로 강경파들이 궁정반란을 도모했었다고 전직 KGB간부 올레그 칼루긴이 말했다. 첫시도는 1988년 전직 정치국원이었던 이고르 리가초프에 의한 것으로 그는 언론에 신스탈린주의 강령을 발표하므로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의 종식을 꾀했다. 또 옐친은 이번의 쿠데타가 금년들어서만 세번째 시도라고 주장했다.첫번째는 지난 1월 KGB와 군부의 리투아니아 민선정부 전복음모였고 두번째는 같은 무렵 두드러진 강경파의 하나인 빅토르 알크스니스대령이 고르바초프가 「의지」를 잃었다며 군부는 소련지도부의 지원과 관계없이 더이상의 진전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힌 것을 들 수 있다. 세번째는 6개월후 고르바초프가 옐친과의 협력관계에 돌입했을때 그의 반대자들은 「헌법상 쿠데타」를 시도,고르바초프와 협의없이 발렌틴 파블로프총리가 연방최고회의로 가서 크류치코프 KGB의장,야조프 국방장관,푸고 내무장관등 강경그룹에 별도의 권한부여를 요청,입법화를 추진했다. ▷쿠데타의 발생◁ 20일 고르바초프가 체결하려 했던 신연방조약은 ▲연방의 붕괴 ▲절대권한의 몰락 ▲개인적 지위의 손실등을 구실로 크렘린의 보수파들에게는 큰불만을 야기시켰다. 쿠데타 이틀전인 17일 하오4시 이후부터 기오르기 샤크나자로프등 고르바초프의 보좌관들은 갑자기 대통령과의 전화연락이 되지 않는 것을 알았다.그러나 크리미아와 모스크바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러시아 의회와 CIA의 보고에 따르면 야조프국방장관을 포함한 8인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지도부 수명이 일요일인 18일 크리미아의 별장으로 가서 대통령에게 신연방조약체결 무효화를 위한 소련전역에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포고령에 사인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즉시 대통령을 연금상태로 두고 쿠데타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쿠데타의 전개◁ 무력시위는 19일 새벽 모스크바와 발트해공화국들의 주요도시에 탱크와 장갑차들이 진입하는 것으로 시작됐다.북부러시아의 볼로그다 같은 소도시는 지방KGB가 라디오방송국을 점령했다. 그러나 이날 새벽 옐친과 그 보좌관들은 고르바초프가 권력에서 제거됐다는 사실을 즉각 간파했으며 쿠데타세력에 대한 유일한 대응은 대중을 동원한 시위밖에 없다고 생각,옐친이 강경책을 썼다.그는 연방의회청사내에 월 룸(전투지휘소)을 차려놓았으며 그곳에는 청년정치인,급진파 학자,언론인,심지어는 군장교와 KGB요원들까지도 모여 저항세력의 싱크탱크를 구성했고 옐친은 밖으로 나가 군중들을 이끌었다. 정치적조치로는 이날 아침 외무부에서 야나예프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쿠데타사실을 밝히고 포고령을 통해 자신들의 행동거취를 밝혔다. ▷쿠데타의 실패◁ 쿠데타가 실패한것은 지난 6년동안 고르바초프에 의해 소련국민들에게 심어진 신사고와 제도적 개혁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 또한 강경파 지도자들도 각자의 생각이나 목표가 달랐다.실패한 원인은 첫째로 옐친이나 리투아니아지도자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 같은 지도자들을 검거하지 않았고 단지 대중적인 지지에만 크게 기대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둘째는 외국특파원이나 국내신문·방송등 언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셋째는 러시아공화국의 KGB책임자인 블라디미르 포데리아킨이 옐친의 편에 가담했다는 사실이다.넷째 강경파지도자나 군인들에게 스탈린시대와는 달리 대량학살의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련민중에게 두려움이 소멸돼 있다는 사실이었다.옐친이 두려움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마구 진주해오는 군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광부들은 파업을,어린아이들까지도 탱크에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미 대사 소에 급파

    【워싱턴 AP 로이터 UPI 연합】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20일 실각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권력회복을 미국과 서방측이 지지하고 있으며 「불법 쿠데타」를 일으킨 공산당 강경파에는 경제원조가 제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리스 옐친 소련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에게 말했다. 그는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이날 옐친 대통령과 전화로 회담하여 이같이 말했다고 밝히고 그러나 고르바초프 대통령과도 접촉하려고 여러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면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건강상의 이유로 하야했다는 쿠데타 세력의 공식발표는 「낡은 속임수」라고 말했다.
  • 소 쿠데타 실패와 김일성(사설)

    고르바초프 소련방대통령이 지난 19일 군부쿠데타에 의해 실각되는듯하자 북한방송은 이를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보도했다.북한의 언론매체들은 북한과 이해관계가 밀접한 국가에서 모종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그 사태의 추이를 분석한뒤 뒤늦게 그들 나름의 시각을 곁들여 보도하는 것이 관례이다.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 처형과 중국의 천안문사태에 관한 보도 등이 그 좋은 예이다.그런데도 고르바초프의 실각설에 그날 하오에 즉각 보도한 것은 김일성주석이 소련사태에서 크게 고무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모스크바의 정변이 소련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냉전종식으로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세계질서에 어떤 충격을 던질 것인지,또 소련의 쿠데타가 성공할 것인지,실패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채 사실 자체만 신속하게 보도한 것은 그 자체가 김일성주석에게는 지극히 반가운 소식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사태를 피상적으로만 관찰하면 그로서는 입지를 보다 강화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다고 판단할 수도있다.고르바초프의 실각설은 그로 하여금 「우리식대로 살자」는 폐쇄체제의 당위성을 인민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됐고 그 기회가 그의 발언권을 대내외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계바늘을 되돌려 놓는다고 해서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소련의 강경보수파와 군부가 설사 고르바초프를 실각시켰다고 해도 페레스트로이카의 거대한 불길이 사그라들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이미 자유와 개방의 참뜻을 체득하고 있는 소련국민들은 스탈린과 브레즈네프식의 탄압정책을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쿠데타가 실패할 것이란 징후도 여러 곳에서 발견됐었다.따라서 김일성주석은 소련사태에 고무될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에 반역하는 극단적인 폐쇄주의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주석은 남북관계를 냉각시키는 어리석은 작태를 서슴지 않고 있다.남북체육회담을 거부한데 이어 오는 27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고위급회담도 엉뚱한 트집을 내세워 무산시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그가 남북고위급회담을 기피하고 있는 이유가 콜레라 때문이라면 누구나 웃을 일이다.그의 속셈은 소련의 사태를 지켜본뒤 대남및 대외정책을 재조정해 보겠다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문제는 탈냉전의 도도한 흐름속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소련사태를 바라보는 김일성주석의 인식이 어느 정도의 현실감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그는 최근 『우리도 지구의 한 나라인 이상 지구의 움직임과 함께 행동해 나가겠다』고 언급했으며 우리는 그의 이같은 현실판단을 환영한바 있다.그런데도 소련에서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돌발사태」가 일어난 것을 기화로 폐쇄의 사슬을 더 죄고 남북관계를 냉각시킨다면 그에게나 7천만겨레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남북한의 유엔가입이 사실상 확정된 이 시점에서 우리는 김일성주석이 「남조선해방」이라는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 책임있는 국제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남북관계도 개선시켜나가는 슬기로운 자세를 보여주었으면한다.그는 소련의 정변이 결국 민주화된 국면의 힘에 의해 실패로 돌아간 사실에서 많은 교훈을 얻어야한다
  • “고르비개혁의 승리/부시 회견/그의 권좌에 상처 없을 것”

    【케네벙크포트(미메인주) AP 연합】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21일 소련의 상황이 강경파들의 쿠데타 초기 당시 보다 약간 더 긍정적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그러나 상황은 아직도 유동적이고 불확실하며 상황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케네벙크포트 별장 인근의 한 작은 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쿠데타 주도 세력들이 국민들의 힘과 자유,민주주의의 맛이 가져다주는 의미를 과소평가했다고 밝히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보내는 공개적인 메시지를통해 『당신(고르바초프)의 개혁 노력과 민주주의에 대한 노력을 계속할 것을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다시 권력을 잡을 것인지 여부에 대한 질문에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능력은 앞으로도 상처를 받지 않을 것이며 그가 위기를 극복했다는 사실로 인해 오히려 입장이 강화될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쿠데타가 실패한다면 소련의 민주주의는 큰 도약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우리는 엄청난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민주주의의 토대가 마련되는 것을 목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 미의 외교 목조르기 주효했다/부시,왜 강력대응했나

    ◎“반개혁세력”국제사회서 고립 압력/옐친 지원·차관취소 천명,기세 꺽어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쿠데타로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전복시킨 소련의 새 지도부를 국제사회의 이단자로 고립시키기 위한 외교적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그는 또 이 쿠데타에 대한 가시적인 저항의 심벌로서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을 지원하고 나섰다. 부시대통령은 20일 회견에서 『이 불법적인 쿠데타가 효력을 갖는한 우리는 쿠데타음모자들에게 미국과 정상적인 관계는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할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소련의 새 지도부를 이라크및 리비아와 같은 「이단정권」으로 비유했다. 이날 워싱턴에서 휴양지 케네벙크포트로 다시 돌아온 부시대통령은 옐친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거국적인 쿠데타 반대호소와 헌정회복 요구에 지지를 표명했다. 이와 함께 부시는 미국의 쿠데타 반대를 강조하기 위해 로버트 스트라우스 주소신임대사를 모스크바에 급파했다.스트라우스는 모스크바에서 수일간 체재한 뒤 워싱턴으로 다시 돌아와 부시에게 소련정세등을 보고할 예정이다. 부시는 또 소련사태에 대한 서방측의 공동보조를 모색하기 위해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을 나토 긴급회의에 파견했다. 부시의 이같은 조치는 걸프사태때 이라크를 응징하기 위한 국제적 컨센서스 구축에 사용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서 국제적 규범을 벗어난 행위는 용납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겠다는 뜻이다. 부시가 노린 「국제적 컨센서스」는 굳어져 가고 있는 느낌이다.EC(유럽공동체)는 모스크바에 대한 10억달러 이상의 원조중단선언과 더불어 고르바초프의 북귀를 요구하고 나섰고,케야르 유엔 사무총장은 소련지도부에 대해 최대한의 자제력 발휘와 사태의 평화적·합법적 해결을 촉구했다.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대통령은 『고르바초프의 실각으로 유럽에서 미국과 나토의 강력한 군사력 유지 필요성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부시는 또 동구지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동구각국의 민주화는 후퇴될 수 없다』고 다짐했다. 부시와 그의 고위보좌관들은 소련의 쿠데타가 좌절되기를 바라고 있다.그러나 대응방안은 고르바초프의 권좌복귀가가까운 장래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수립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가 지금까지 내보낸 메시지는 한마디로 말해 「미국은 소련의 개혁파를 지지하며 쿠데타 지도자들의 권위를 정당화시킬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부시는 앞으로 케네벙크포트 해변의 개인별장에서 남은 휴가 2주일을 보내며 소련사태를 주시,대책을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그는 케네벙크포트에서 러시아공화국 외무장관을 만날지도 모른다.옐친은 휘하 외무장관의 미국파견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이번 사태와 관련,부시는 소련에 대한 미국정부의 차관보증·곡물수출·기술원조 등이 중단될 것이라고 거듭 천명했다. 부시는 주소대사로 임명한 스트라우스로부터 당초 예정보다 2주일 빠르게 부임선서를 받았다.그러나 스트라우스는 미국이 모스크바의 현 지도부를 합법정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소련측에 신임장을 제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시는 밝혔다.스트라우스는 자신의 임무를 『모스크바에 가서 자유와 민주주의 원칙,그리고 법치에 관해 아주 분명하고 솔직하게 주지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시는 옐친과 다시 통화할 계획이며 고르바초프와의 접촉도 계속 시도할 예정이다. 현재 미국정부는 고르바초프의 소재와 상황에 관해 알지 못하고 있다.말린 피츠워터 백악관대변인에 따르면 백악관은 백악관 구내전화와 유사한 통상적인 크렘린 호출채널을 통해 고르바초프와의 통화를 시도하고 있으나 불재중이라는 답변만을 듣고 있다는 것이다. 부시대통령은 설령 개혁주의자가 포함됐더라도 고르바초프가 배제된 소련정부에 대한 지원문제는 검토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부시는 고르바초프가 와병중이라는 모스크바 성명과 소련 국민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경제개혁을 지속하겠다는 소련 신정부의 주장을 불법적인 권력찬탈의 호도책으로 볼뿐 진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 부시는 또 미국이 고르바초프를 좀 더 많이 도와줬더라면 이번 쿠데타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나 그의 정책을 고르바초프 운명에 너무 밀착시키고 있다는 비난도 일축하고 있다.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최상의 희망』이 그의 정책이라고 강조하며 이번 쿠데타의 결과가 무엇이든 소련과 동구에서 민주주의와 개혁의 물결은 거스를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소 사태가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긴급대담

    ◎“당분간 과실송금·자본회수등에 지장”/진출기업 정상조업… 경협에 급변 없어/연방정부로 수출입창구 단일화 가능성/“미의 대소정책도 변수… 유연한 대응방안 수립을 소련사태가 혼미를 거듭함에 따라 소련에 진출한 기업을 비롯한 경제계의 관심도 온통 소련에 쏠려있다.현재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대소경제협력은 어떻게 될 것인가,소련과의 경제관계는 과연 계속될 것인가.앞으로 소련정국의 향방이 우리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줄것이기 때문이다.소련진출의 선두인 진도의 정효현 소련담당상무와 소련경제전문가인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이기영박사와의 대담을 통해 소련사태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과 진출기업들의 현황,우리의 대처방안 등을 알아본다. ▲이기영실장=소련의 정국혼미가 3일째 계속되고 있습니다.현 상태로 봐선 군부를 등에 업은 강경보수파의 쿠데타의 성공여부를 점치기는 어렵습니다.그러나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듯이 국민들의 반발이 완강하지 않는한 군부 쿠데타는 성공해왔고 미국 또한 결국 그 정권을 인정해왔습니다. 만에 하나 고르바초프가 재집권하거나 옐친등과 같은 제3의 인물이 소련의 새지도자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정효현상무=고르바초프 실각이후 현지 지사로부터 들어오는 연락으로 보아 소련의 쿠데타 상황이 외신이나 국내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등 큰 도시를 제외한 대부분 소련 국민들은 정치적 격변에도 불구하고 예전대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밖에서 느끼는 것만큼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오늘 아침에는 크렘린궁의 통행이 통제되고 러시아공화국 청사 부근에는 2천여명의 시민이 몰려있으며 유혈충돌도 있었지만 일상생활에는 별지장이 없다는 연락이 왔습니다.따라서 현재로선 쿠데타의 성공여부나 내전확산등을 점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앞으로 2∼3일이 고비인것 같습니다. ○소련인들 정상생활 ▲이실장=어쨌든 쿠데타세력은 국민들의 소요에 대비해 미국등 외국의 반응을 포함,대내외 경제문제까지도 충분히 고려한 단계에서 고르바초프축출을 시도했을 것입니다.경제문제에 국한해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부분은 소련경제의 현실인식입니다.소련은 지난 5년간 고르바초프가 추진해온 페레스트로이카 정책과는 상관없이 3년째 경제성장이 감소하는 추세에 있으며 이기간동안 3백%이상의 인플레이션과 심각한 실업문제로 고민하고 있습니다.특히 식량문제는 심각합니다.따라서 앞으로 누가 집권하든 대내적으로 물가의 동결을 비롯해 생필품및 식량의 배급제등 강력한 통제경제정책을 추진하고 대외적으로는 국내 경제의 피폐를 막기 위해 상당부분 개방하는 유화책을 쓸 것으로 보입니다. ▲정상무=현재 소련에 투자를 하고 있는 기업은 우리 진도를 비롯 현대종합상사·삼성물산 등 7개업체입니다.진도는 지난 83년부터 중개상을 통해 레닌그라드에 모피시장을 개척했고 85년에는 우리 정부 및 소련 정부의 허가를 받아 현지 공장을 세웠습니다.진도가 소련에 본격 진출한 것은 「JIN DO RUS」현지 법인을 설립한 89년부터입니다.그동안 주로 소련을 찾는 외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해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실장=한소간 경제협력은 지난 89년이후 급격히 증가했습니다.교역규모만 해도 88년 3억달러에서 지난해는 9억달러로 늘었습니다.특히 양국간 시베리아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대소교역은 급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5월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방한이후 30억달러 차관약속은 나름대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일부에서는 이미 건네준 5억달러에 대한 회수가 어렵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든 멀리보아 계획대로 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30억달러는 우리에게 무척 큰 돈입니다.그러나 소련측으로선 별 것 아닐 수도 있습니다.우리가 안주겠다면 그들로선 「주기 싫으면 그만두라」고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규모입니다.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소수출의 전망과 원만한 정치·경제적 협력관계를 위해 30억달러정도는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상당부분 개방할것 ▲정상무=보수파와 군부가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이들 신집권층은 소련이 자체적으로 물자 및 자원 등을 조달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서방과의 경제협력 및 타협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표방한 고르바초프가 지난 85년 집권한 뒤 소련인들의 외국여행과 외국인들의 소련방문이 급증,많은 소련인들이 자유와 자본주의의 좋은 점을 맛보았기 때문에 보수파가 기왕의 개혁정책에서 후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번 쿠데타로 인해 한소경제교류 및 협력이 지장을 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봅니다.그러나 보수파가 집권할 경우 당분간 통제정책을 실시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과실송금 투자자본의 회수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레닌그라드에 있는 지사 직원들에 따르면 현지 공장은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답니다.현지 직원들도 평소와 다름없이 모두 출근해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실장=소련에 진출한 다른기업들도 예정대로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번 쿠데타가 성공한다면 새로운 집권층은 국내적으로는 1∼2년간 물자관리를 하고 가격통제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는등 강경한 정책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되며 4∼5년간의 내부진통이 전망되지만 대외적으로는 외국과의 경제협력을 위해 유화정책을 펼것으로 전망됩니다. 국내기업으로서는 소련의 상황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야하는 문제가 있습니다.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내기업이 소련에 계속 진출하는것은 한미관계상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상무=고르바초프가 재기하게 되면 기업들의 어려움은 없겠지만,군부가 실권장악에 성공할 경우에는 그들의 통제경제나 자유경제에 대한 정책기조에 따라 기업들의 대응방안이 좌우될 것입니다.진도의 경우는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기 전부터 소련에 진출했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겠지만 다른 기업들은 보수파가 집권할 경우 그들이 유화조치를 취하더라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차관약속 지키도록 ▲이실장=보수파의 등장으로 한소우호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소련은 동북아에서 미국및 일본의 영향력을 막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은 원치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한소경제관계도 큰 틀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경제관계는 큰 타격이 없을 것이며 오히려 이런 기회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위험은 있지만 장기적인 견지에서 투자효과는 클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번 사태로 서둘러서 대소진출을 포기하거나 지나치게 관망만 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당분간은 대소수출이 격감될것이 불가피하겠지만 장기간이 필요한 자원개발과 관련된 진출은 별로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이번 사태로 보수파가 집권할 경우 시계의 추는 분명히 뒤로 가겠지만 그 시계는 이미 스탈린시대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것이며 오히려 이번 사태를 통해 연방정부로 진출창구가 단일화될 가능성도 있기때문에 투자가 용이해질수도 있다고 봅니다. 보수파의 경제정책은 중요한 핵심상품및 기업에 대한 통제이기때문에 현재와 큰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유리해▲정상무=소련은 방대한 나라입니다.모스크바 주변 큰 도시 몇개를 제외한 다른 지역 주민들은 아직까지도 자유시장경제가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그들에게 있어서 중앙정부가 자유시장체제를 택할 것이냐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할 것이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실장=「소련은 일반적으로 못사는 나라」라고 평가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빵과 생필품을 사기 위해 몇시간동안 줄을 서야하는 겉모습만 보고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뜻이지요.이것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고물가·고임금정책과는 달리 저물가·저임금정책의 차이일 뿐입니다.소련은 어디까지나 미국 다음의 강국이며 그만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정상무=동감합니다.소련의 잠재력은 시장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큽니다.지금은 생필품등 실생활에 필요한 제조업이 뒤떨어져 우리에게 기술협력을 요청하고 있지만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이 분야에서도 무서운 저력을 과시하게 될것입니다.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격변상황이 문제되더라도 대소경제관계는 계속 발전적으로 이끌어가야 합니다.최근 몇년사이 우리의 황금시장으로 떠오른 동구권에 대한 진출을 위해서도 단기적으로는 손해가 되더라도 꾸준히 교역량을 늘려 나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이기영 현대경사연 소련실장·경제학 박사/정효현 주식회사 진도 소련담담상무)
  • 「소 대반전드라마」에 뜬눈 밤샘

    ◎시민들,고르비 권좌 복귀소식에 안도 표정/탱크 몸으로 막은 용기에 찬사/업체등선 현지 정황파악 분주/“북한빗장 열리는 계기됐으면” 소련의 강경보수파들이 결행한 쿠데타가 실패로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21일 밤 시민들은 모스크바 현지에서 연출되는 「역전 드라마」를 밤늦게까지 TV화면을 통해 지켜보며 한결같이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시민들은 특히 무력에 의해 합헌적인 정권을 붕괴시키려 한 반란세력의 탱크와 총칼앞에 분연히 맞서 위대한 민권의 승리를 창출해낸 소련 시민들의 용기와 자유수호정신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 일부 시민들은 지난 89년 6월 발생한 중국 천안문사태와 이번 소련사태를 대비시켜 가며 쿠데타가 실패하게 된 배경과 향후 전망등에 관해 밤을 세워가며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이날 밤 언론기관등에는 쿠데타 실패의 사실여부및 반란 주역들의 행방을 묻는전화가 빗발쳤으며 「모스크바 8인방」의 정권 찬탈극이 「3일천하」로 끝났음을 확인했다. 소련에 진출한 일부 기업체에선 간부들이 회사에 나와 그동안의 불안을 털어내고 현지 지점이나 거래처와 전화연락을 시도하며 정확한 사태및 향후 전망을 파악하는등 바쁘게 움직였다. S대학생 김봉수군(22)은 『이번 소련에서의 쿠데타실패는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있는 소련국민의 승리이자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세계인의 승리』라고 정의를 내리고 『지난 19일 사태가 터진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보여준 단합된 힘이 쿠데타를 주도한 8인비상사태대책위원들의 무릎을 꿇게했다』고 분석했다. 서울D고교 교사 김재봉씨(38)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산주의는 몰락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보수강경파에 의해 주도된 쿠데타를 내심 반겨왔던 북한이 큰 충격을 받을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밖에 회사원 김정섭씨(35·동부고속 인사과)는 『밤늦게까지 TV를 지켜보면서 자유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을 했다』면서 『소련사태가 이처럼 빨리 끝난 것은 개혁과 개방의 물결속에서 소련국민의 인권존중과 헌법수호정신이 살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주부 하유미씨(28·노원구 중계 아파트 124동)는 『TV를 지켜보면서 흥분에 몸을 떨었다』면서 『지난 19일 이후 우리나라와 소련·북한과의 관계가 다시 악화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했으나 이같은 걱정이 사라지게 돼 반갑다』고 말했다.
  • 소 강경파,「국민의 뜻」 못읽었다

    ◎엉성했던 조직력… “수준미달의 거사”/“실패원인” 미 시각 『소련 보수파의 쿠데타 성공 확률은 50%를 넘지 않는다』이것이 쿠데타 발발 사흘째를 맞은 미국의 많은 관리들의 예상이다. 따라서 부시 미국대통령의 잇따른 강경발언은 감정적이고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 쿠데타가 종국에는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다는 실질적인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고 관측되고 있다. 즉 미국의 부시행정부는 소련 쿠데타의 실패를 예상하고 반쿠데타전략을 세운 것으로 대부분의 언론들은 보고 있다. 쿠데타를 일찍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는 충분한 조직과 무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설마 쿠데타를 일으켰을까 하는 최초의 생각이 크게 빗나갔기 때문. 쿠데타 중심세력의 결집력이 예상외로 단단하지 않다는 진단은 거사당일인 19일부터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우선 쿠데타 지도부안의 분열 또는 충분히 계획이 안된 임시변통의 조치로밖에 볼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그리고 발틱해안 여러 공화국들에의 쿠데타군 배치가 엉성하며 엄격한 비상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더욱이 모스크바에 배치된 군대의 일부는 배치된 뒤 친옐친으로 태도를 바꾸기까지 하고 있다.미국관리들은 『아직까지의 사태진전만 가지고 말할 때 이것은 고전적인 쿠데타와는 다르다.탱크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쿠데타 발표가 있은지 몇시간이나 지난 뒤였다』는 말로 실패를 단정했다. 또 하나의 실패징조는 쿠데타지도자들이 소련의 여러 공화국 지도자들을 설득하거나 강요하는 노력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일부 공화국 지도자는 이미 반쿠데타 입장을 밝혔으며 다른 지도자들중 상당수도 그 뒤를 이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라디오와 TV 등의 언론에 대한 통제도 보통의 쿠데타 수준에 훨씬 못미치고 있다. 모스크바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감에 따라 미국은 영국을 비롯한 다른 우방을 독려하여 쿠데타 지도자들에게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즉 미국은 쿠데타 지도자들에게 경제원조를 잃게될지 모르며 국제적인 미아가 될 것임을 믿게 하려 노력하고 있다. ◎경제난 해결책·정통성 미비가 치명적/불 르몽드지 분석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인 르 몽드지는 21일 소련전문가 미셸 타튀의 분석을 인용,이번에 고르바초프를 축출한 보수파의 쿠데타가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르 몽드지의 모스크바특파원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소련문제전문가인 타튀는 르 몽드지 기고를 통해 이번 쿠데타상황이 지난 64년의 흐루시초프 실각 당시와 판이하고 또 쿠데타 주도세력이 경제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을 갖고있지 못한데다 군부내의 이견등이 겹쳐 결국 성공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흐루시초프 실각 당시 소련의 정치·경제상황이 현재와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중국 천안문사태때의 반정부세력도 지금 소련의 경우와 비교하면 훨씬 미약했을 뿐 아니라 당시 중국내부문제도 현재 소련에 비해 덜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타튀는 우선 현 쿠데타세력이 흐루시초프때와 비교해 「권위성」「신뢰성」,그리고 무엇보다 「정통성」이 결여돼 있다고 전제,64년 당시 흐루시초프 축출세력은 공산당 중앙위원회라는 제도의 틀내에서 일을 벌였으며 또 소련최고회의가 이를 승인하고 당사자인 흐루시초프도 자신의 사임에 동의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경우 쿠데타 인정을 거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비상사태를 선포한 국가비상사태위원회 역시 헌법상 규정되지 않은 기관이며 이는 공산당내에서도 합법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타튀는 주장했다. 쿠데타 주동세력들은 또 최대한 지지를 긁어모으기 위해 「법과 질서」「범죄와 부도덕 비난」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있으나 이는 스탈린­브레즈네프 시대에 성행했던 「러시아인 주도 질서」를 연상케 하는 「향수적」인 것으로서 다른 민족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타튀는 군부내 이견을 지적,구세대 고위간부와 중간장교·사병 등 군구성원중 중간장교와 사병은 이제 정치보다는 경제적 요인에 불만이 더 큰 만큼 대중에 보다 접근해 있다고 지적했다. 공산노선 고수를 주장하는 고위장성들 역시 최근 기존노선고수와 군개혁 필요성의 모순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 크렘린 정변과 북 동향/이명영 성대교수·정치학(특별기고)

    ◎시대흐름 착각한 평양의 흥분/“대남 강경노선 구상은 커다란 오판” 소련에서 정변이 일어났다.민주화노선을 힘겹게 달리고 있던 고르바초프는 유폐되고 군을 등에 업은 보수파들은 끝내 전면에 나오고야 말았다.지구인의 눈 귀를 모으고 있는 TV화면에는 모스크바 거리를 달리는 탱크의 모습과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분노로 가득하다.특히 옐친의 결연한 반대 성명은 역사의 기로에 선 소련 자체의 몸부림 같기도 하다. 소련의 사회주의체제가 장엄한 인류사적 대실험이긴 했어도 도저히 성공할 수 없는 무모한 실험이었음이 분명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였다.레닌 혁명 후의 소련에서 한때 성행했던 아진 스타칸주의(한컵주의·목마르면 한컵의 물을 마시듯이 성생활도 그렇게 자유롭게 해야한다는 주의)가 그들 스스로에 의해 배격,청산되었듯이 사회주의·공산주의의 꿈도 그들 스스로에 의해 청산되지 않으면 안될 운명이었는데 그것을 실천에 옮긴 것이 고르바초프로 대표되는 개혁파인 것이다. 그러나 위로부터의 개혁이 밑으로부터의 혁명을 야기함이 예사이듯이 소련의 대중들도 개혁의 선을 넘어 혁명적인 전진을 재촉했다.그러나 결정적인 모순은 그 대중들이 전진을 감당할 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다.70년동안 갇혀 왔던 새들은 새장 밖으로 내보내져도 제힘으로 날 줄을 몰랐던 것이다.민주화개혁파의 고민은 그 혼란을 틈타고 대두하는 보수파의 역공에 의해 더욱 가중되어 오다가 이번에 당하고 만 것이다. 보수파란 기득권을 지키려는 노멘크라투라들이다.당료·군·KGB들로 대표된다.KGB지배하의 국경경비대 20만과 최정예부대인 내무부직속 보안군 30만 및 4백만의 국방군등이 그 세력의 기반이다.미국은 장군 1인에 사병이 3천4백명이지만 소련은 1대7백이다.너무도 많은 별들이 특권의 포기를 거부해 왔다.공산당의 지도적 기능이 부정된 작년의 개헌이래 모든 조직에서 당위원회는 해체되었으나 군에서만은 그것이 온존되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강화되어왔다.그래서 군의 등장이 예견되기도 했던 것이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쿠데타를 질타하고 있다.그러나 이 정변에 회심의미소를 머금고 있는 곳이 평양이다.수년전부터 평양에서는 「고르비놈」「소련 놈들」이란 욕소리가 공공연했다.소련의 개혁을,소련의 탈냉전 정책을 평양은 제국주의에의 투항이라느니 사회주의의 변절이라느니 하면서 매도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그 고르비가 실각하고 소련제국의 권세와 공산당의 지배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등장했다.평양은 세계정세에 일대 역전이라도 온듯이 고무되고 기대에 부풀어 있는 것이다. 우선 그 징후가 총리 회담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27일부터 평양에서 있기로 했던 것인데 판문점에서 하자는 것이다.구실은 콜레라이나 속셈은 회담을 늦추자는 것이다.소련 정세의 귀추를 좀더 보고서 대남 작전을 다시 짜겠다는 계획일 것이 뻔하다.본디 북한은 총리 회담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그것은 미일과의 관계개선을 겨냥한 성동격서전술의 일막이며 남한의 사회주의혁명세력들의 범민족대회(하층통일전선)를 성사시킬 것을 겨냥한 상층통일전선의 일막으로 짜여진,그야말로 담담정정전술의 한 회전장에 불과했던 것이다. 상층과의 회담은 하층의 투쟁을 부추기기 위해 하는 것이고 그래서 회담(담)은 회담이고 투쟁(정)은 투쟁인 것이다.회담을 한다고 투쟁을 중지하는 것이 아니다.투쟁을 부추기기 위해 오히려 회담을 하는 것이다.모든 것은 투쟁이다.무엇을 위한 투쟁인가.김일성부자지배하의 통일을 쟁취키 위한 혁명투쟁인 것이다.이 금과옥조와 같은 원칙들을 관철하기 위해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총리 회담이지만 그것도 마다할 정도로 나오는 것은 소련의 정변에 대한 부푼 기대 때문인 것이다. 평양의 통일 원칙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노선전환이 있을 것을 저들은 모스크바에 걸고 있다.사회주의는 필승불패의 길이라고 했던 지난 5월의 김정일의 담화를 뒷받침해 줄 권력의 정책을 평양은 모스크바에 기대하고 있다.그래서 요즈음의 평양의 신문 방송은 흥분하고 있다.마치 소련마저도 평양을 추종하고 있다는 듯이 들떠 있다.그렇다면 총리회담쯤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조소 합작의 보다 근본적인 통일 문제 해결의 방안(남진)이 더 중요시될 것이다.평양은 그것을 거머쥐고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약자의 허약심리에서 나오는 착각이다.소련의 정변은 성공하지 못한다.한번 자유와 민주에 눈뜬 대중은 반동을 허락하지 못하는 법이다.설사 쿠데타 세력이 일시 권력을 유지한다 해도 그들은 국내문제에 쫓겨 세계를 대상으로 할 여유가 없다.평양의 흥분은 곧 허탈을 불러올 것이다.그러한 비주체적인 기대는 일찍 버리는 것이 낫다.
  • 소 강경보수파의 「막후」/“검은대령” 알크스니스

    ◎김영만기자가 만났던 “소유즈의 얼굴”/“고르비식은 혼란만… “비상조치 역설/“「60년대 한국」,경제난 타개의 모델” 소련쿠데타세력이 지향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독재」가 아닌가 싶다.그들이 구체적 모델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박정희형독재」라는 유추도 가능하다. 서울에서 이같은 추론이 가능한 것은 쿠데타세력의 의회내 기반으로 보이는 소유즈그룹이 한국의 「박정희독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들이 현 쿠데타세력의 아이디어뱅크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지기 때문이다.실제로 8인국가비상위원회의 실세로 알려진 푸고내무장관은 소유즈그룹의 「도움」으로 개혁파인 전내무장관 바딤 바카틴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지난 4월 검은대령 알크스니스를 정점으로 한 소유즈그룹은 『파국의 소련을 구하기 위해 소련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일찌감치 쿠데타세력에게 거사의 명분을 제공한 바 있다. 기자는 지난 4월23일 알크스니스대령의 숙소인 모스크바 호텔에서 2시간동안 그와 단독인터뷰를 했다.당시 그들은 비상사태선포를 주장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으려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축출하려는 운동을 공공연히 벌이고 있었다.그들의 소련정세에 대한 시각과 그들이 바라고 있었던 소련의 미래상을 다시 되새겨 보는 것은 현 쿠데타세력의 이념적 기초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알크스니스는 고르바초프가 말하는 시장경제로 가기위한 혼란과 경제침체가 「일시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있었다.그는 공산당과 연방정부가 강력한 힘을 행사해 전권을 장악하지 않을 경우 소련경제는 3류 빈민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며 보혁갈등이 조기에 종식되지 않음으로써 끝내는 내전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알크스니스는 박정희와 한국경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그는 『보수세력이 개혁자체에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우리는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에 개혁을 위한 정치안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한국은 우리가 따라야 할 주요한 모델이다.한국은 정치적 안정이 있었기때문에 경제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정치적 안정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은 없었을 것이다』 알크스니스의 소련정치관을 요약하면 이렇다.우선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해 소련경제를 희생시켜야한다.그러나 그방법은 현재와 같은 연방정부의 무기력화로는 빈곤과 내전만이 있을 뿐이며 연방정부가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면서 하나씩 개혁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알크스니스 일파가 현재 어느정도의 쿠데타 핵심세력인지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이같은 알크스니스식 논리가 핵심세력의 이론적 기초임에는 틀림 없어 보인다. 그들은 유혈사태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감내해야 할 희생」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민주화가 어느정도 진행된 시점에서 비상사태선포와 같은 강경책은 필연적으로 유혈이 따를 수 밖에 없다는 한국의 경험을 알크스니스에게 이야기해주자 그는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이야기했다.그는 『생명의 가치는 무한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자신은 유혈적인 방법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러나 다른 생명을 보호하기위해 국가는 때때로 힘을 사용할수 밖에 없고 소련은 개혁정책이 실시된이래 민족분규 등으로 1천명이상이 사망했다』고 덧붙였다. 알크스니스 일파가 직접 쿠데타에 연루돼있는지는 지금 확인할 수는 없으나 다만 당시의 보수파들은 쿠데타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알크스니스는 쿠데타가 가능할 것으로 믿느냐는 질문에 『불가능하다』고 한마디로 잘랐다.한국과 달라서 쿠데타를 지휘하고 의견일치를 보아야 할 장군의 숫자가 너무 많고 나라가 커서 쿠데타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그는 『장성만 모여도 크렘린궁으로는 자리가 모자란다.또한 우리는 쿠데타를 일으켰던 프랑코나 피노체트,주코프원수 같은 대중에게 익숙한 장성도 없다』고 말했다.그럼에도 소련에는 쿠데타가 일어났다.모스크바에 진주해 있는 군부대간에도 알력이 있고 비상위원회와 친고르바초프쪽으로 세가 나누어져 있는 것을 보면 알크스니스의 쿠데타 불가능론은 어느정도 맞아들어간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알크스니스는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한 발트3국중 라트비아 출신이다.그는 출신배경과 현재의 정치적견해 사이를 어떻게메울수 있느냐는 질문에 『민족주의자들이 내놓는 것은 「배고프지만 자유롭게」이다.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한데도 연방탈퇴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것은 정치적 이해 때문에 인간의 생존권을 희생시키는 지나치게 무책임한 처사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당시 모스크바는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개혁파가 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을 때였다.그럼에도 알크스니스는 매우 확신에 찬 어조로 비상사태를 선포해야한다고 이야기해 나갔다.
  • 소 쿠데타 61시간만에 왜 실패했나

    ◎“공산회귀는 불용”… 국민이 등돌렸다/명분없는 거사에 군수뇌부 적전분열/경원동결등 서방의 강경대응도 큰 몫 전세계에 충격을 던진 소련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이유로는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강렬한 저항 ▲저항선봉장으로 나선 옐친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 ▲군장악의 실패등을 들수 있으며 그외에 간접적인 원인으로는 소련에 대한 서방세계의 강력한 압력도 들수 있다.그러나 한마디로 말한다면 소련국민들의 호응을 전혀 받지 못한 것이 쿠데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그것은 또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국민들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모하게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뜻이기도 하다. 3일간의 짧은 기간동안이긴 하지만 탱크로 무고한 시민을 깔아뭉개는 무자비한 무력탄압 앞에서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시위금지령과 통금령을 무시하고 20일 하룻동안에만 80만에 가까운 시민들이 반쿠데타 시위를 벌이는 한편 육탄으로 탱크를 저지한 소련국민들의 용기는 진정 놀라운 것이었다.과거 수차례에걸친 소련에서의 정변때마다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소련국민들이 이처럼 용기있게 변한 것은 바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개방정책이 소련국민들의 의식수준을 크게 향상시킨 결과라고 할수 있다.따라서 이번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것은 결국 쿠데타 주역들이 고르바초프의 신병은 체포할수 있었지만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이 국민들의 가슴속에 불어넣은 자유정신마저 가둬둘수는 없었던데 따른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지난 3일간의 쿠데타 진행과정을 지켜보면 이번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아무 계획도 없이 『일단 일부터 일으키고 보자』는 형태로 상황이 벌어졌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이들은 그동안 누려오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지난 20일 체결될 예정이었던 신연방조약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저지해야겠다는 초조감에서 쿠데타 성패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군장악과 국민동향,지도부내의 결속등을 사전에 치밀하게 점검하지 못한 상태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처럼 사전준비가 미비된 상태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과거처럼 무관심으로 나타나지 않고 적극적인 저항으로 나타나자 비상위는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쿠데타의 절대적 동조세력으로 생각했던 공산당이 중앙위원회 성명을 통해 쿠데타를 비난하고 나선 것은 비상위에 결정적인 정신적 타격이 된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타격은 비상위내부의 적전분열로 나타났다. 쿠데타 발생 이틀이 안돼 비상위의 8인 멤버중 3명이 『건강상의 이유로』사임했다는 것이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도부내의 분열과 함께 군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 것도 쿠데타 실패의 중요한 원인이다.비상위는 당초 군부내에 냉전종식에 따른 군위상 축소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판단,일단 쿠데타가 일어나면 군 대다수가 이에 동조할 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물론 군부가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자 평소 「국민의 군」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던 소련군은 『우리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돌릴수는 없다』는 쪽으로 급선회함으로써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됐다. 이번 쿠데타에서 서방이 보인 대응도 쿠데타실패를 간접적으로 도운 한 원인이 됐다고 할수 있다.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이 전해지자 서방측은 한결같이 고르바초프의 복귀를 요구하며 서방의 경제지원을 갈구하는 소련에의 원조를 동결시켰다.서방세계는 또 반쿠데타 저항세력의 선봉에 선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보냄으로써 옐친으로 하여금 국민저항을 극대화할수 있도록 했다. 결국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조속한 개혁의 완결이란 점을 무시하고 오히려 개혁을 지연내지는 후퇴시키는 쪽으로 기치를 들고 시작됐다는 점에서 소련에서의 쿠데타는 처음부터 실패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고 국민들의 진정한 바람 앞에선 무력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보여준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할수 있다. ◎“3일천하” 쿠데타 일지/비상위 구성→불복선언→서방 경원동결→유혈충동→비상위 분열→병력 철수→고르비 귀환 소련의 강경보수파가 21일 소련역사상 처음 「월요정변」으로 기록될군사쿠데타를 야기한지 3일만에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해체됨으로써 이들의 꿈은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모스크바정변 소식이 전해진것은 19일 상오4시.소련전역에 6개월시한의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언론과 출판물의 검열이 시작됐다.방송국들도 쿠데타군에 접수되어 방송이 통제됐다. 타스통신은 크리미아반도 휴양지에서 휴가중이던 고르바초프가 실각되었다고 전하면서 대통령직을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이 승계하고 8인으로 구성된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전권을 인수했다고 보도했다.그러나 기세 좋게 몰아 붙이던 쿠데타세력들은 옐친의 시민 불복종운동촉구와 총파업선동으로 시작부터 예상치않던 장애물에 직면했다. 보수파들에 의해 야기된 쿠데타가 시련을 맞기 시작한것은 정변이 발생한지 8시간만인 19일 정오.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포고령을 무효라고 선언하며 반쿠데타 봉기를 부추기자 모스크바 시민들은 이미 모스크바시내에 진입했던 중무장 소련군과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며 강력히 저항했다.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휴가를 중단하고 긴급대책회의를 연뒤 기자회견을 갖고 하오5시 소련의 군사쿠데타를 강력히 비난했으며 대소원조를 보류할것임을 시사했다. 이튿날 쿠데타세력들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상오6시 일류신76 수송기 60대를 동원,모스크바로의 병력을 증강했으나 이에 맞서는 소련국민들의 시위는 세를 더해갔다. 그후 러시아공내에 주둔하고 있던 무장병력들은 러시아공 의사당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으며 21일 새벽 급기야 유혈충돌로 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처음의 상황과는 달리 쿠데타세력이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주춤거리고 서방세계의 외압이 가중되는 가운데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이날 최후의 「히든카드」를 내보였다. 군내 강경파인 모이셰프군참모총장이 전면에 나서고 그로모프중장(전아프가니스탄 주둔군사령관)과 바렌니코프 지상군총사령관이 실세로 급부상한 것이 그것이다. 쿠데타 지도자들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듯 「최후의 항전」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으며 무력충돌도 불사하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뒤 10시간만에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듯 강경입장을 누그러뜨리고 고르바초프와의 면담을 시도했다. 루키아노프 소연방 최고회의의장이 크림반도로 고르바초프를 만나기 위해 떠났으며 소련 국방부는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역에 배치됐던 병력들에 대해 철수명령을 내렸다.이어 모든 포고령이 무효화되고 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 귀환길에 오름으로써 보수파들이 주연한 「쿠데타」드라마는 61시간만에 막을 내렸다.
  • 소 쿠데타 실패/고르비 대통령직 복귀

    ◎비상위 8인 체포,곧 재판회부/군 철수… 통금등 포고령 무효화/모스크바 이기동특파원/옐친 급부상… 오늘 긴급간부회의 소집 유혈사태까지 빚으며 내란위기로 치닫던 소련의 반개혁 쿠데타가 실패로 끝났다.이에따라 크리미아휴양지에서 연금상태에 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하오 모스크바로 돌아왔으며 연방최고회의는 그의 대통령직을 복권시켰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쿠데타 주도세력인 8인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20일 해산됐고 8인위원들도 대부분 체포되거나 도피한 것으로 전해졌다.이들은 모두 재판에 회부될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와 발트3국을 비롯한 비상사태선포지역에 배치됐던 모든 연방군 병력도 이날 철수를 시작했으며 모스크바를 비롯한 소련 전역은 축제분위기를 이뤘다. 연방간부회의는 22일 긴급회의를 열고 향후 정치일정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쿠데타의 실패에 따라 반쿠데타 선봉에 섰던 옐친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강화됐다. 【모스크바 AP 연합 특약】 고르바초프는 21일 모스크바로귀경길에 올랐다고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보좌관이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연금상태에 있던 크리미아반도의 휴양지로부터 루키야노프 연방최고회의 의장등과 함께 모스크바로 떠났다. 【모스크바 AP 연합】 소련 연방최고회의 지도자들은 21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축출기도 쿠데타를 비난했으며 쿠데타 지도자들에 의해 내려진 모든 포고령을무효화했다고 연방최고회의의 유리 카리아트킨 대의원이 말했다. 그는 연방최고회의가 모스크바의 야간통행금지령과 독립적인 언론매체의 보도금지령 등 쿠데타 주도세력들이 내렸던 모든 포고령을 무효화했다고 덧붙였다. 【모스크바 타스 AFP 연합】 소련 국방부는 모스크바를 비롯,비상사태가 선포된지역에 배치된 모든 연방군 병력에 대해 철수를 명령했다고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21일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국방부가 비상사태 선포 지역으로부터 모든 부대와 분견대 병력의철수를 이행토록 하는 결정을 채택했다고 전했다. ◎TV 정규방송/언론검열 해제 【모스크바 AP 연합】 쿠데타 세력들이 모스크바를 떠남에 따라 쿠데타발생이후 방송이 중단됐던 소련의 TV와 라디오가 21일 방송을 재개했으며 관영 타스통신은 독립적인 출판물에 대해 내려졌던 출판금지령이 해제되고 있다고 전했다.
  • 고르비 정치생명 어찌되나/쿠데타 실패로 당연히 복귀

    ◎인기 하락… 옐친에 승계 유력 고르바초프는 다시 복귀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정치생명을 끝낼 것인가. 소련 보수파가 주도한 「궁정 쿠데타」가 실패로 끝남에 따라 고르바초프의 재기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되고있다. 신집권세력의 정권장악 성공여부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고르바초프의 운명은 쿠데타가 실패쪽으로 가닥이 잡힘에 따라 일단 권좌 복귀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부시 미국대통령을 비롯한 서방각국의 지도자들 뿐 아니라 반쿠데타 저항운동을 주도해온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까지도 보수파의 쿠데타식 집권이 불법이라고 비난하며 고르바초프의 원상복귀를 강력히 촉구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그가 연방대통령으로 되돌아오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을 것같다.쿠데타 주도세력이 명분으로 둘러댔던대로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것이 사실이라면 물론 사정이 다르다.그가 지난 87년 두차례나 심장마비증세를 일으켰다는 보도도 한때 있었다.그러나 이제까지 그의 정열적인 업무수행과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해볼 때 고르바초프의 중병설은 어디까지나 변명에 지나지 않을뿐 그의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사태이후 한때 사망설이 나도는 등 소재와 안전여부에 관한 우려는 아카디 볼스키 소련과학산업연맹위원장이 20일 고르바초프와 통화함으로써 말끔히 해소됐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직에 복귀한다고 해서 그의 입지가 예전과 변함없이 탄탄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그는 이번 사태를 통해 해외에서의 높은 인기에 반해 국내에서의 형편없는 지지도를 확인하며 지도자로서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셈이다.보수강경파를 숙청하는 등 나름대로 정권기반 다지기 작업에 나서겠지만 저하된 국민들의 지지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의 집권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신연방조약이 체결된 뒤 머지않아 치러질 연방대통령 직선에 의해 옐친 이나 다른 개혁파 인사에게 국가원수 자리를 넘겨줄 공산이 크다.오히려 그에 앞서 연방인민대표대회에서 간선에 의해 평화적인방법으로 권좌에서 밀려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말하자면 고르바초프의 향후 집권기간은 길어야 1∼2년에 지나지 않을것 같다.그후에는 물론 회고록을 집필하는 등 「보통사람」으로서의 노후생활을 보내야한다. 물론 이번 쿠데타에 대한 저항과정에서 눈부신 활약을 벌여 차기집권이 유력시되는 옐친이 자신은 계속 러시아공화국대통령으로 남고 권력이 대폭 축소된 연방대통령으로 고르바초프를 지원할 경우 그가 계속 집권할 가능성도 없지않다.옐친의 입장에서 볼 때 과거 냉전시대와는 달리 화해의 시대에서는 군부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여건에서 신연방조약 체결이후 외교·국방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권한을 공화국에 넘겨줘야할 실권없는 연방대통령보다는 자원관할권 등 막강한 권한을 지닌 러시아공화국대통령 자리를 더 선호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그럴 경우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각각 내정과 외교로 역할을 분담할수 있다.고르바초프는 심하게 말하면 국제무대에서의 「얼굴마담」역에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명실상부한 소련대통령으로서의 고르바초프의 시대는 이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고 볼수 있다. 물론 쿠데타가 성공했거나 쿠데타세력과 개혁저항세력이 내정으로 치닫는 장기대치로 돌입하는 경우보다는 고르바초프에게 있어서 한결 나은 결과다.쿠데타가 성공했을 경우 다른 개혁파 인사들과 함께 숙청대열에 포함됐을 것이고 장기대치상태 지속의 경우에는 자칫하면 처형대상이 됐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는 이번 사태에서 나름대로 커다란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권력핵심부의 장악과 대중의 지지기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 것이 그것이다.
  • 한민족철학자대회 참석 재소학자 박일·김영웅씨

    “고르비 곧 복귀할 것”/“「크렘린정변」 1년여전부터 예견/한·소관계 「큰틀」에 변화는 없을듯” 지난 14일 입국,한민족철학자대회에 참석중인 재소한인 학자 일행 5명은 사태발생이 며칠 지나서인지 그래도 조금은 안정된 듯보였다.그러나 처음 사태발생 소식을 접하고는 무척이나 놀랐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들은 이번 사태를 비교적 낙관적으로 보는 듯했다.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잘 수습될 것으로 보았다.또한 현 쿠데타주도세력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견해는 비치지 않았으며 특히 민감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완곡한 표현으로 대답했다. 다음은 일행 가운데 박일 전 김일성종합대총장(81)과 소련최고인민위원회 김영웅대의원(50)과의 일문일답. ▷박일◁ ­사태발생 소식은 어떻게 접했습니까. 『당일 누가 호외를 갖다줘서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예측했습니까. 『사태가 이렇게까지 험악해지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지만,1년전부터 어느정도는 일이 벌어질 것을 예감했지요.상처가 곪아터진 것입니다』 ­일이 어떻게 발전될 것 같습니까. 『내가 「정감록」의 지은이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습니까.하지만 짐작은 할 수 있지요.지금 정권을 장악한 사람들이 당분간은 감기가 걸린 상태가 계속될 것입니다.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차차 나아지겠지요』 ­고르비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습니다. 『한국신문에서 「실각」이란 표현을 쓰는데 그 말은 다리를 완전히 잃어버린다는 뜻 아닙니까.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과거와 같이 되지는 못해도 형식적이나마 제자리로 돌아올 것입니다』 ▷김영웅◁ ­한소관계에 영향이 없겠습니까. 『한동안은 물론 영향이 있겠지요.그러나 큰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소련당국보다는 한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문제지요.즉 한국이 새정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고 봅니다』 ­남북관계에는. 『별 영향이 있겠습니까.정부가 바뀌었다고 대외정책이 갑자기 바뀌겠습니까.새정부가 전보다 북한을 지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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