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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수리남에 한국군투입 기도/83년에 좌익정권 전복 계획

    ◎슐츠 전 국무 회고록서 밝혀 미중앙정보국(CIA)이 지난 83년 3월 남미의 수리남에 「한국인 특공대원」을 보내 좌익성향의 부테르세정권을 전복시키려 했음이 당시 미국무장관 조지 슐츠에 의해 처음 확인됐다. CIA의 이같은 기도는 슐츠 전장관의 강력한 반대로 결국 실행되지는 않았으나 동기야 어찌됐든 미국이 수리남과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한국인을 이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슐츠는 지난 82∼89년까지 자신의 국무장관 재직시절을 다룬 1천1백여쪽 분량의 「혼란과 승리」(Turmoil and Triumph)라는 제하의 회고록(미맥밀리언출판사)에서 「수리남의 위기」에 관해 언급하면서 CIA의 한국인 특공대원 투입계획을 폭로했다. 슐츠는 이 책 2백92∼2백97쪽에서 『(83년) 3월말 CIA측은 부테르세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한국인특공대원 50∼1백75명으로 구성된 일단의 병력이 수리남 수도 파라마리보를 공격한다는 계획을 브리핑했다』고 밝혔다. 지난 75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수리남은 브라질및 가이아나와 접하고있는 인구 42만명(90년말 현재)의 작은 나라로 80년 2월 육군상사이던 부테르세가 군사쿠데타로 민정을 전복시키고 정권을 장악,소련과 쿠바의 지원아래 남미 최초로 반미좌익정권을 수립하려고 하자 CIA는 부테르세를 제거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슐츠의 이같은 회고록 내용에 대해 우리 군관계자들은 『전혀 아는 바 없다』면서 『더욱이 미국이 한국특수부대나 한국인 용병을 동원해 한국과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나라의 정권을 전복시키려 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우며 특히 현역군인이 용병으로 동원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 아르메니아­아제르 영토분쟁 5년(포연속의 코카서스에 가다:하·끝)

    ◎전화속의 쿠데타… 아제르정정 불안/좌익정권 들어섰어도 경제난 가중/시민들 공산통치시절 질서 그리움도 아제르바이잔군과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군간의 최초의 휴전은 아그람시가 함락된 이튿날인 지난 7월24일 자정을 기해 이루어졌다.3일간으로 예정됐던 이 휴전은 27일을 기해 1주일 더 연장됐다.카라바흐측은 3일 『아제르바이잔군이 적대행위를 하지 않는 한 휴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10여일째 불안한 평화가 이어지고 있다. 카라바흐측은 이번 공세를 통해 일단 아제르바이잔측으로 하여금 자신들을 협상상대로 간주하게 하는 성과를 얻어냈다.앞으로 전개될 평화협상에서 중요한 고지를 선점한 것이다.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휴전을 성사시킨 것만해도 크게 안도하는 양상이다.지금 국내사정으로 보아 아르메니아군이 밀면 밀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아제르바이잔측이 매달리는 것은 국제적인 중재뿐이다. 수도 바쿠시를 비롯한 아제르바이잔의 주요 도시들에서는 자정부터 이튿날 상오 5시까지 통금이 실시되고 있다.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됐고 총동원령이 내려져 17세부터 35세 사이 남자들은 전원 출국이 금지돼 있다.그런데 쿠데타로 집권한 현아제르바이잔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전쟁대책이 아니라 쿠데타 뒤처리같은 인상이다.쫓겨난 엘치베이대통령에 대한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일이 오는 29일로 확정됐다.굳이 대통령직을 내놓지 않겠다고 고집하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대통령직을 뺏겠다는 것이다. 전선이 무너지고 피란민이 60만명에 달하는 나라에서의 국민투표가 무슨 의미를 갖는지 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새 정권 출범과 함께 총리·국회의장을 비롯,국방장관 등 주요부처 장관 대부분이 경질되고 3일에도 쿠데타에 반대한 타이르 케리밀 최고재판소장이 해임됐다. 지난 6월4일 당시 카라바흐지구 사령관이었던 수레트 구세이노프(35)대령은 예하병력 2백여명을 이끌고 전선 반대방향인 바쿠시를 향해 진격해 들어왔다.오래 전부터 반란기미를 보인 그를 무장해제하기 위해 전날밤 정부군이 카라바흐 북서쪽 간자시에 위치한 그의 본거지를 기습,60여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이 싸움에서 이긴 그는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바쿠시쪽으로 4백여㎞를 진격해 들어와 엘치베이 대통령의 사임과 의회해산 등을 요구했다. 반란에 성공했지만 통치기반이 전무한 구세이노프는 지난 82년까지 13년간 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제1서기를 지낸 가이다르 알리예프(70)에게 손을 내밀어 권력을 나눠 가졌다.그는 구소련공산당 정치국원까지 올랐다가 고르바초프대통령때 「부패 정치인」으로 청산됐던 인물이다.알리예프는 6월15일 임시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의장과 대통령대행으로 선출돼 본인으로선 「화려한」 재기를 이루었다.구세이노프는 총리직과 함께 국방·내무·안보 등 주요부서를 장악했다. 엘치베이대통령은 6월18일 밤 새벽 단신으로 바쿠시를 빠져나와 나키체반자치주의 고향마을로 피신해 버렸다.나키체반 자치주는 카라바흐와는 반대로 아르메니아 영토내에 떨어져 있는 아제르바이잔인 자치주이다.최근들어 아르메니아와의 국경쪽은 수시로 아르메니아군의 공격을 받아 풍전등화와 같은 곳이다. 이렇게 해서 92년 3월 민주독립국가 실현을 내걸고 엄청난 지지속에 출범했던 엘치베이 대통령정부 대신 좌익연합정부가 들어서게 됐다.의회는 해산되고 공산주의자와 구의회대의원 각 25명씩으로 국민의회(밀리 마질리스)가 새로 구성됐다.구세이노프는 취임일성으로 『아르메니아군에게 빼앗긴 실지회복과 국가계획경제를 통해 국민생활을 향상시키겠다』고 약속했다.알리예프는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을 외교의 제1목표로 내세웠다. 알리예프의 복귀와 군부 쿠데타의 성공은 이 지역 민주주의의 기반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결과적으로 엘치베이정부는 아르메니아와의 전쟁에서도 패배를 계속했고 경제도 전혀 개선시키지 못했다.현재 7백만 인구중 1백만명,전체 노동인구의 25%에 해당하는 숫자가 실업자이다. 많은 시민들은 전쟁의 공포 못지않게 물건을 찾아다니기에 바쁘다.바쿠시내에서 만난 한 시민은 『민주주의가 무슨 소용인가.질서도 먹을 것도 없는 민주주의보다는 차라리 강한 지도자가 질서를 찾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공산주의 시절에는 질서와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그게 아직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아제르바이잔은 타민족과의 분쟁,거듭되는 정치적 불안,그리고 경제난으로 인한 국민불만 등 소연방해체 뒤 독립한 여러 공화국들이 앓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곳이다.그러나 보다 심각한 것은 아제르바이잔인들 스스로 이 문제들을 풀 능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 아르메니아­아제르 영토분쟁 5년(포연속의 코카서스에 가다:중)

    ◎두민족 금세기 4차례 피의 살육전/“카라바흐 독립운동”“침략전쟁” 입장차/「국경선 변경」 걸려 국제적 중재도 허사 아르메니아군의 대공세는 금세기들어 4번째이다.3차 공세때인 1918년에는 수도 바쿠까지 아르메니아군이 진격,1만1천명의 시민이 사망했다.두 민족간 원한의 뿌리가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아제르바이잔측은 이번 공세도 『아르메니아인들의 영토확장욕에 의한 침략전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아르메니아측은 이를 구소련시절 잘못된 역사에 의해 생존권을 박탈당한 카라바흐주민들의 독립운동이라고 규정한다.동족인 카라바흐주민들에 대한 무기·경제지원은 시인하되 자기들의 직접개인은 절대 부인한다. 양국분쟁의 진원지인 나고르노 카라바흐는 아제르바이잔 영토내에 고도같이 떠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의 자치주이다.이들이 고르바초프시절인 지난 88년 개혁분위기를 틈타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선언하면서 분쟁이 시작된 것이다.다수인 아르메니아인들이 소수 아제르바이잔인들을 내쫓으면서 두 민족간 유혈충돌이 시작됐고 이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영토전역에서 강제추방과 피의 살육이 자행됐다. 지난 5년간 이렇게해서 생긴 인명피해가 쌍방 합쳐 6천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돼 있다.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의 공동묘지들은 전선에서 실려온 전사자들과 민간인 피해자들로 초만원이 됐다. 아르메니아의 직접 개입여부는 향후 카라바흐문제의 평화논의에 상당히 중요한 변수가 된다.국제사회는 지금까지 아르메니아측 주장에 일리가 있다며 아르메니아정부에 아무런 제재조치도 취하지 않았다.유엔결의안도 카라바흐자치군대가 켈바자르를 침략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격규모상으론 아르메니아 정규군의 직접 개입없인 불가능하다는게 통설이다.카라바흐자치군의 규모는 마을주민들로 구성된 3만5천명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이번 아그담공격 때는 아르메니아군의 T­72탱크 20대와 20대의 장갑차가 동원됐고 지대지 그라드 미사일과 D­80가우비차 미사일이 집중 포격을 퍼부었다.2개의 탱크여단과 5개의 포병사단으로 구성된 아르메니아군 제2군단병력 6천명이 공세를 주도했다고 아제르바이잔측은 파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르메니아군의 배후에는 러시아군까지 개입돼 있다는게 아제르바이잔측의 주장이다.소련방해체뒤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소련군이 완전 철수한 반면 아르메니아영토에는 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해 러시아군 제7군이 계속 주둔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군이 밀리는 이유 가운데는 정규군의 경험·훈련부족도 큰 몫을 차지한다.아르메니아는 지난 88년 독자군을 창설한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금년초 겨우 독자군을 창설,그것도 각지구별 지방군대로 이루어져 일사불란한 작전수행이 어렵게 돼있다. 어떤 싸움에서든 쌍방간 힘의 균형이 유지되는 한 타협은 힘든 법이다.역설적으로 아그담이 점령된 직후 전전선에서 극적인 휴전이 이루어졌다.평화협상 재개를 위한 막후모색도 시작됐다. 그러나 양국간에는 기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있다.아제르바이잔은 카라바흐를 자국영토내의 한 자치주로 간주,후원국인 아르메니아와의 국가간 협상을 고집하는 반면 아르메니아측은 협상주체가 카라바흐 자치정부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우선 카라바흐를 독립공화국으로 인정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카라바흐의 독립국인정은 넓게 보면 2차대전후 수립된 「국경선의 변경」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 쉽게 결말이 날 성질이 아니다.우선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양국의회의 승인도 있어야 한다. 국제적인 평화노력도 진행되고는 있다.유럽안보협력회의(CSCE)가 주도하는 중재노력이 대표적인 하나다.러시아·미·독·불·이·벨로루시·스웨덴·체코·터키등 「민스크그룹」9개국이 ▲점령지 선철수 ▲즉각휴전 ▲CSCE평화유지군주둔등을 명시한 유엔결의안 822호의 시행을 성사시키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군이 힘의 절대우위를 확보한 이상 민스크그룹의 중재안은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게 이곳의 분위기이다. 팰릭스 파미코니안 주모스크바 아르메니아대사는 『점령지철수등은 카라바흐정부가 결정해야지 아르메니아정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아르메니아정부가 국제적인 중재 대신 카라바흐와 아제르바이잔 정부간 1대1 협상쪽으로 전략을 수정했음을 인정한 것이다.카라바흐는 이미 협상대표까지 선임해 놓고있다.휴전합의도 공식적으로는 카라바흐자치정부와 아제르바이잔 정부간에 마무리됐다. 아제르바이잔 아사이라다통신의 이라다 사장은 『전쟁와중에 군부쿠데타로 집권한 아제르바이잔 새정부로서는 군사적으로 더 이상 밀리면 정권유지 자체가 어렵다는 강박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일단 협상에 임할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그렇다고 아제르바이잔 새정부가 쉽게 카라바흐의 독립을 인정해 아르메니아측에 넘겨주리라고 보는 사람 또한 드물다. 6월말 군부쿠데타로 집권한 아제르바이잔 새정부는 아르메니아에 잃은 실지회복을 거사의 주명분으로 내세웠다.정권유지를 위해서도 일단 숨을 돌린 다음 재반격 기회를 노릴 것이 분명하다.평화해결의 길은 여전히 요원하게만 보인다.
  • “옐친이 쿠데타 준비중”/하스불라토프 의장,의회연설서 주장

    ◎옐친,휴가 단축… 대응책 부심 【모스크바 AFP DPA 타스 연합】 러시아 최고회의가 일련의 대정부공세를 가한데 이어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쿠데타 음모설까지 제기하고 나섬으로써 여름휴가를 앞둔 하한정국에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 옐친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루슬란 하스불라토프 최고회의(상설의회)의장은 이날 의회 폐막연설에서 옐친 대통령측이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정국을 돌연 긴장시켰다. 10일전 휴가를 떠난 옐친 대통령은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감에 따라 일정을 단축,귀경할 방침인 것으로 대통령공보실은 밝혔다.
  • 아이티 신구세력/민정이양에 합의

    【유엔본부 로이터 연합】 중남미 아이티의 신구 정치세력들은 지난 91년 군부쿠데타에 의해 축출된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전대통령을 현직에 복귀시키고 신임총리 지명권을 보장하는 협정에 16일 서명했다.
  • 유학성씨 등 4명에 공개 서면질문 발송/민주 12·12조사위

    민주당 12·12쿠데타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권노갑최고위원)는 15일 마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학성(12·12 당시 국방부군수차관보),차규헌(〃수도군단장),황영시(〃1군단장),허화평씨(〃보안사령관비서실장)등 4명에게 공개 서면질문서를 발송했다. 조사위는 이들에게 오는 30일까지 서면답변서를 제출하고 30일 하오 국회의원회관 1층 소회의실에서 면담에 응하라고 요구했다.
  • “클린턴은 「YS 성공」주목해야”/미 「유에스 뉴스」지 지적

    ◎「군정 32년」 극복,가장 민주적인 아주국 견인 클린턴 미대통령은 오는 10일 방한때 김영삼대통령의 성공사례를 주목해야만 할 것이라고 미국의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가 최신호에서 지적했다. 이 시사주간지는 「한국이 달려가고 있는 방향의 변화」라는 특집기사에서 한국은 두차례의 유혈 군사쿠데타,30여년 이상의 군부지원 정권,인권침해와 관련한 오명을 극복하고 아시아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자유롭고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로 급속히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잡지는 클린턴대통령보다 불과 1% 적은 42%의 지지율로 당선된 김대통령이 취임 1백일의 한 여론조사에서 88·4%의 지지율을 나타내 한국 정치사상 가장 인기있는 지도자로 부상했다고 지적하면서 『클린턴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김대통령은 한때 원칙을 항상 고수하지 않는 정치인이라는 평판이 있었지만 취임이래 정치적 상징주의의 대가이자 용감하고 과감한 지도자임을 입증했다』고 말했다.다음은 특집기사의 요약이다. 한국에서는 교통위반으로 적발됐을 때 면허증 뒤에 1만원짜리 지폐를 함께 끼워 교통순경에게 주면 소환장 대신 간단한 훈시로 때울 수 있었던 것이 다반사였다.뇌물을 노리는 것은 교통순경만이 아니다.일부 세관원,소방수,관리,기자,교사 등도 이른바 촌지를 받곤했다.그러나 김영삼대통령은 지난 2월 취임이래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대통령의 반부패운동은 이미 1천명의 고위관리,교육자,사업가,정치인,군인들을 숙정하거나 징계하는 결과를 낳았다.새로운 공직자 윤리법은 7천명의 의원및 고위공직자들이 재산을 공개토록 하고 있다. 김대통령은 국내의 지지를 확보하거나 반정부인사들을 억압하기 위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활용하는 것을 삼가고 있다.그 자신의 정통성이나 국민지지를 자신하고 있는 김대통령은 과거 성역시돼온 군부에까지 반부패운동을 추진,일부 고위장성까지 파면조치했다. 김대통령의 메시지는 한국이 이미 국민에게 숨길 것이 없는 대통령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김대통령은 한국의 경제기적에 다시 불을 붙이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한국은 91년까지 10년동안 연평균 10%의 성장을 기록했으나 지난해는 4.7%로 내려왔고 현재는 3% 전후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지난 88년 1백41억달러에 달했던 경상수지흑자는 지난해 46억달러의 적자로 반전했다. 경제력이 소수의 재벌들에 집중된데다 과도한 규제위주의 경제도 문제이다.쌀개방문제 역시 주요 현안의 하나이다.경제문제가 궤도에 오른다 할지라도 김대통령은 정치적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김대통령은 집권 민자당의 소수파 출신이며 민자당의원중 상당수는 기득권상실 때문에 개혁에 냉담하다.그러나 한국에서 비관론자는 소수이다.클린턴대통령은 미국에서 같은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 “군 특수부대 정치테러 규명하라”/사회·문화 대정부 질문·답변

    ◎“「무노동 부분임금」 정부의 입장은” 질문/“96년까지 수돗물 획기적 개선책”/답변 국회는 6일 본회의를 속개,김한규의원(민자)과 이해찬의원(민주)의 사회·문화분야에 대한 대정부질문에 이어 황인성국무총리를 비롯한 관계국무위원으로부터 답변을 들었다. ▷질문◁ ◇이해찬의원=현정부의 개혁은 시대적 소명의식이 없는 집권세력이 과거에 대한 반성없이 개혁이란 이름으로 국민을 호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최근 폭로된 군 특수부대의 정치테러는 어느 부대가 행한 것인가.그 예산의 출처는.5·6공하에서 저질러진 정치테러를 전면적으로 조사할 조사단을 구성해야 한다.5·16을 포함해 2번의 쿠데타과정에서 압수된 환수재산의 처리과정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를 실시할 용의는. ◇김한규의원=사학재정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강화를 위한 기본구상은.전교조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무엇이며 현재 전교조소속 교사들의 숫자와 적극적으로 교단에 복귀할 의사를 가진 교사들의 숫자는. 노동정책에 대한 정부내의 철학과 방향이 정립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총리의 입장은.노동장관은 무노동부분임금및 노조의 인사경영권 참여요구에 대한 현재의 입장은 무엇인지 밝혀라. 주한미군철수와 국가보안법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한총련의 성격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답변◁ ◇황인성 국무총리=무노동 부분임금 문제의 논의에 대한 발표를 자제토록 한것은 정책 확정전에 잘못 발표되어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였다.법원의 판결과 다른 정부의 행정지침이 있다면 사법부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 옳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국고지원은 전직대통령의 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거,국회에서 책정한 예산의 범위내에서 집행하고 있다.외국에도 전직대통령에 대한 예우제도가 있다. 80년 당시 환수재산은 72명으로부터 7백36억원이다.이중 부정축재관련 환수액이 6백72억원,대통령시해사건 관련이 64억원이었다.부정축재 환수액중 3백96억원은 국고에 귀속시켰고 나머지는 농수산부등에 이관,농어민후계자 육성등의 사업에 사용됐다.시해사건 관련 환수액 전액은 국고에 귀속됐다. 약사·한의사간의 조제권분규와 관련해 국무회의에서 별도 안건으로 상정,논의한 바 없다. 삼청교육이 범죄자 교화라는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입소자 선정에 무리가 있었고 사망자까지 나온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삼청교육대 피해보상은 현재 관계법률이 의원입법으로 계류중이므로 통과되면 최선을 다해 처리하겠다. ◇이해구 내무부장관=투전기업소의 신규및 재허가를 불허하고 이미 허가된 업소는 허가기간만 영업토록 하는 관계법령 개정을 준비중이다.카지노 업소도 국세청의 정밀조사가 끝나면 빠른시일내에 개선대책을 마련하겠다. ◇김두희 법무부장관=91년 4월부터 93년 2월까지 부산세관에서 수입식품 검사전 미원식품등 12개업체가 밀과 옥수수를 밀반출한데 대해 부산세관이 지난 4월15일 조사에 착수,현재 조사가 진행중이다.아직 검찰에 고발되지 않았으나 7월중 검찰에 고발될 것으로 알고 있다. ◇오병문교육부장관=올해 GNP대비 3.7%인 교육재정을 94년 4.2%,98년까지 5%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전교조 해직교사의 복직은 현행법 테두리안에서 해결할것이며 전교조를 탈퇴하는 해직교사는 내년부터 복직시키겠다. ◇이민섭문화체육부장관=청소년 위해환경에 대해서는 관계부처와의 합동대책회의를 수시로 열어 강력한 단속을 펴나가겠다. ◇송정숙보사부장관=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없애기 위해 국무총리직속의 「맑은물 공급대책위원회」활동을 통해 96년까지 획기적인 수질개선책을 마련하겠다.식품및 의약품에 대한 관리대책이 미흡한 점을 감안,식품의약품관리청을 신설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인제노동부장관=노동자의 경영참여는 인사및 경영권에 관한 사항이 근로자의 지위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의 한도내에서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경영권 본질에 관한 사항에 대한 참여 요구는 정당성이 없다. 능력없는 중소기업및 영세기업 근로자 복지를 위해 복권을 발행,근로복지진흥기금을 설치할 계획이다. ◇최창윤총무처장관=전직대통령에게는 매월 4백38만원이 지급되고 있다.공무원 상조회의 회원을 전직공무원으로 한정하고 수익사업을 최소한의 범위내에서 하도록 지도·감독을 강화하겠다. 차관급이상 고위공직자의 외국은행 예금현황은 12일 시행되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오는 9월11일 이전 파악된다. ◇황산성환경처장관=폐수처리부담 예치금제는 공산품가격 동결시책에 따라 하향 조정하고 일부 품목을 제외시켰다. 정부는 이미 가입한 야생동식물보호에 관한 협약(CITES)외에 바젤협약·런던덤핑협약·기후변화협약에 연내가입할 예정이다.
  • 아리스티드 전대통령/아이티군부,복권 수락

    【뉴욕 AFP 연합】 아이티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전대통령을 축출했던 군부 쿠데타 지도자들은 2일 아리스티드전대통령을 오는 10월30일까지 복권시키려는 유엔의 아이티 민주화 계획을 수락했다고 발표했다. 91년 9월 쿠데타를 주도했던 라울 세드라스장군의 한 대변인은 국제중재자인 단테 카푸토가 지난 1일 제의한 민주화 계획은 몇가지 세부사항들을 제외하고는 수락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최 전대통령에 질의서/민주 12·12조사위

    민주당 12·12쿠데타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권로갑최고위원)는 2일 마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규하전대통령에게 17개항의 공개 서면질의서를 발송,협조를 요청했다. 조사위는 최전대통령에게 오는 12일부터 15일 사이에 적당한 날짜와 스스로 원하는 장소를 결정,면담에 응해줄 것을 요청했다. 조사위는 질의서에서 『최전대통령이 12·12의 최대피해자중의 한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국민 다수가 오히려 석연치 않은 의혹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고 『12·12및 그후의 정국전개과정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 국민과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주장했다. 조사위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정승화 계엄사령관 연행을 사후재가한 경위와 전보안사령관에게 중앙정보부장 겸임을 허용한 배경및 이유등에 관해 질문했다.
  • “「한비밀수」 박 대통령과 상의했다”

    ◎고 이병철씨 장남 맹희씨,자서전서 주장/이병철씨 야심과 대선전략 맞물려/일 미쓰이 백만불 리베이트 3등분/김모씨 별도로 정치자금 요구 거절 『삼성 밀수사건의 주모자는 한비의 상무이사로 근무하던 이일섭이며,그는 주소불명의 이창식과 공모,사카린의 원료인 OTSA 2천4백 부대를 지난 5월5일 울산에 입항한 일본 선박 신슈우마루호로 건설 자재와 같이 밀수입했다.주모자 이일섭은…』 지난 66년 9월16일 당시 세무국장은 이른바 「한비사건」의 조사내용을 이렇게 발표했다.그러나 30여년이 지난 지금 삼성의 밀수는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음이 새롭게 밝혀졌다. ○조직적으로 이뤄져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맹희씨는 최근 펴낸 「묻어둔 이야기」란 회상록에서 자신이 밀수를 직접 지휘했던 사실을 밝히며 이 사건의 내막과 시말을 폭로했다.그는 비료공장 건설에 대한 아버지의 야심과 박대통령의 재선전략,한비공장 건설을 둘러싼 일본 미쓰이사의 1백만달러 리베이트 제공과 이의 배분문제,당시의 권력투쟁과 이로 인한 한비사건 발각과정 등 저간의 상황을 소상히 털어놨다. 그가 밝힌 「한비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박대통령은 민정 이양이라는 절차를 통해 63년 12월 정권을 거머쥐었지만 67년에 있을 대선을 위해선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농촌인구가 절대적인 상황에서,농민들을 위해 값싼 비료를 공급할 비료공장을 짓는다는 것은 그에게 가장 확실한 선거 대책이었다.정권 차원에서 시작된 이 일은 곧바로 아버지에게 넘어왔다. 아버지의 꿈은 비료공장을 짓는 것이었다.나라 전체가 보릿고개를 넘는 일이 아득했던 시절 좁은 땅덩어리에서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데는 비료를 얼마나 사용하느냐가 열쇠였기 때문이다.이미 10여년 전부터 비료공장 건설에 마음을 두고 독자적으로 해외 차관선을 물색했던 삼성은 박정희대통령의 제의를 받아들였다.대신 조건을 제시했다.비료공장 건설과 관련해 단 한푼의 정치자금도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박대통령은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기관서 적극적 보호 일은 시작됐다.일본 미쓰이사가 4천2백만달러를 차관으로 제공했다.현찰이 아니라 거의 공장에 필요한 기계류로 제공했다.그 대가로 1백만달러의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거금이었고 또 양국 간에 국교가 수립되지 않아 이 돈을 들여올 방법이 없었다.반면 공장 건설에서 정부가 약속한 지원이 여의치 않아 예상 이외의 자금난을 겪게 됐다. 때문에 아버지는 미쓰이가 제공한 리베이트 1백만달러로 정치자금 문제를 해결하고 공장 건설자금 부족분과 기계류 반입을 동시에 해결하려 했다.박대통령이 아이디어를 냈다.『돈을 가져오는 것이 힘들면 물건을 사와서 여기서 처분하면 될 것 아니냐』 그는 돈을 만든 다음 3분의 1은 정치자금으로,3분의1은 부족한 공장 건설 대금으로,나머지 3분의 1은 한비의 운영자금으로 하자는 안까지 내놓았다.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지 불과 3년여.군사 정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기에 정부의 묵인이나 적극적인 협조 없이 대규모의 밀수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한비 밀수사건은 박대통령의 지시 하에 중앙정보부 세관 경찰 등 관련 기관의 적극적인 보호 아래 이뤄졌다. 이 사건이 최초로 외부에 알려진 것은 발표 4개월 전인 그해 5월이었다.그러나 이 때는 정치권에서 이 사건을 유야무야 해버렸다.정부 내에서 밀수를 같이 진행했던 세력이 이를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기존 언론사들 위협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공화당의 실력자이면서도 박대통령이나 이후락,고 김형욱과는 사이가 벌어져 있던 김모씨는 삼성에 대통령 라인과는 별도의 정치자금을 요구했다가 거부 당한 적이 있다.그는 그후 저간의 사정을 다 알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5월 OTSA를 실은 삼성의 트럭을 부산 진입로 검문소에서 잡은 것도 김씨의 정보망과 정치계 후면에서 활동했던 김씨의 형이 이면에 개입됐기 때문이다. 김씨측은 삼성의 밀수혐의를 정확하게 잡아내긴 했지만 정치권의 내부알력으로 당시 문제를 비화시키지 못했다.그러다 9월 삼성의 중앙일보에 대한 여타 매스컴의 경계심과 김씨측의 정치적 입지강화 욕심 등 정계와 언론계의 요구가 맞아 떨어지면서 이 사건은 불을 댕기게 됐다. ○“약고 의리가 없다” 당시 중앙일보는 삼성이 전주제지를 인수,신문용지를 자체 생산한 데다,홍진기사장이 『신문도 어차피 상품이다.자율경쟁에 맡겨야 한다.부수를 무한정 늘려갈 것이다』라고 발언,기존의 언론사들이 위협을 느꼈던 때이다.삼성은 9월16일 이후 무려 45일간을 융단폭격 당했다. 4개월 전에 끝난 사건이 이유 없이 신문지상에 「재벌밀수」라는 제목으로 실리며 전 언론이 삼성을 향해 포문을 열자 박대통령은 등을 돌렸다.처음 밀수를 제안한 것도 박대통령이었고 밀수의 진행 상황도 뻔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한비사건에서 발을 뺀 것이다.그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삼성은 밀수했으면서 왜 안했다고 그래』 그 긴 45일의 일정이 시작되는 초기인 66년 9월20일 아버지는 차 안에서 말했다.『맹희야 정치한다는 사람들 믿지 마라』 아버지가 입 밖에 내는 욕설이라는 것이 「나쁜 사람」이라는 정도를 넘지 않았는데 이날 평생 듣지 못한 말이 나왔다.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박대통령이 「약고 의리없다」는 내용이다. 이 와중에 고 김두한의원의 국회 오물투척 사건,고 장준하씨의 「박정희씨야 말로 밀수왕초」라는 발언 등으로 정국이 싸늘하게 얼어붙기도 했다.
  • 인명에 많이 쓰이는 한자 “종­상­동”

    ◎국어연,「한자­외래어 사용실태」 분석 사람의 이름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한자는 종­상­동의 순서인 것으로 나타났다.또 땅이름으로는 산·남­천­대 순으로 많이 쓰였다. 국립국어연구원은 지난 91년 발행된 3개 일간지와 5개 잡지를 대상으로 조사한「한자·외래어 사용실태」를 통해 최근 이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이번 조사에서 한자의 사용에는 사람의 성과 이름,땅이름을 비롯 단체·정기간행물·작품·사건·건물·상품등의 이름등 9가지 고유명사에 한정했다. 조사 결과 사람이름에는 종­상­동­태­기­영­성­희­재­식등이 사용빈도에서 10위권에 들었다.성의 경우 3위까지를 김­이­박이 차지해 성별 인구수 순위와 같았지만 4∼10위는 정­최­노­강­조­장­윤의 순으로 차이가 있었다.특히 희성인 노씨가 언론에 6번째로 자주 등장한 이유는 노태우전대통령 관련기사가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 땅이름은 산·남­천­대외에 동­주­북­성·강­도등의 순으로 많이 쓰였다. 또 단체명에 쓰인 한자는 민이 가장 많았으며 정기간행물에는 일이 널리 사용된 것으로 집계됐다. 9종류의 고유명사를 통틀어 가장 널리 사용된 한자는 남·대·백으로 나타나 한국인들이 이들 글자를 매우 선호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한편 외래어 빈도조사에서는 팀,달러,아파트,쿠데타,호텔,그룹,프로그램(프로),서비스,올림픽,컴퓨터등이 10위까지 차지했다. 전년에 비해 빈도수가 가장 늘어난 외래어는「에이즈」였는데 90년에는 23회 등장했으나 1년만인 91년에는 1백53회로 늘어났다.
  • 전·노 두 전대통령/서면질의에 불응/민주 12·12조사위

    민주당의 12·12쿠데타진상조사위는 전두환·노태우두전대통령측으로부터 민주당의 서면질의서에 답변하지 않겠다는 뜻을 확인했다고 29일 밝혔다.
  • “사정 특별검사제 도입을”/이 민주대표 귀국회견

    ◎국정현안 논의 상시국회도 민주당 이기택대표는 28일 『정부는 5·16과 유신,12·12,5·18등 김영삼대통령이 이미 쿠데타로 규정한 4대 헌정유린사건을 역사의 판단에만 맡기지 말고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 4개국 순방을 마치고 이날 하오 귀국한 이대표는 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정부는 청와대와 정부,국회,정보기관에 있는 과거 헌정을 유린했던 사람들의 처리에 과감해야 하며 스스로 헌정을 유린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역사의 장애물이라는 시각아래 역사의 현장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대표는 비리척결작업이 한창인 이탈리아를 예로 들며 『검찰의 완전독립이 없이는 사정이 구두선에 그칠 공산이 크다』면서 『정부는 검찰의 완전독립이 늦어질 것같으면 그 대안으로 특별검사제를 도입해 사정에 박차를 가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 “범법해위 12·12 그냥 넘길수 없다”/정승화씨·민주조사위 문답

    ◎김재규재판 지연 주장 어불성설/박 전대통령비자금 음모에 쓴듯 민주당 12·12진상조사위원회가 26일 발표한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의 증언 요지는 다음과 같다. ­김영삼정부가 12·12를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하면서도 처벌은 역사에 맡기자는 입장을 어떻게 생각하나. ▲합법으로 위장한 범법행위인 12·12 쿠데타는 공소시효가 아직 남아있으므로 묵살할 수 없다. ­12·12를 묵인 또는 방조한 것으로 보이는 최규하 전대통령,노재현 전국방장관,윤성민 전육군참모차장의 책임도 규명해야 한다는 견해에 찬성하나. ▲책임을 진 사람들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점을 철저히 가려야 한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10·26이후 이듬해 9월 정권을 잡을 때까지 약 10개월동안 5백여억원을 정치자금으로 썼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아는 바가 있는가. ▲전보안사령관이 박정희대통령의 비자금을 수사하다 나온 9억원중의 일부라며 내게 2억원을 가져온 적이 있다.이 돈을 경리부에 맡겼는데 12·12 직후 전합수부장이 가져갔다고 들었다.그런 돈은 분명히 음모를 꾸미는데 쓰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당시 그런 사실을 알았다면 노재현국방장관이 만류하더라도 전보안사령관을 반드시 교체했을 것이다. ­전두환 당시 합수부장측에서 12·12 이전 정총장을 회유해보려는 움직임을 보인 적은 없는가. ▲없었다.다만 전두환 합수부장이 찾아와 부정축재자 처단 이야기를 하길래 그 문제는 새정부가 할 일이라고 못박은 적이 있다. ­전두환합수부장측이 정총장이 김재규의 재판을 지연시켰다고 주장했는데 사실인가. ▲수사와 재판이 그처럼 신속하게 진행됐는데 가당치 않은 말이다. ­유신헌법의 폐기를 정총장이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오히려 10·26직후 최초로 열린 육군지휘관회의에서 『유신헌법 개정문제를 포함해서 이제야말로 국민이 바라는 정치발전을 이루어야 하는데 이를 군이 동요없이 뒷받침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 “「12·12」는 계획된 군사반란/정부서 사법적조치 취해야”

    ◎정승화 전 육참총장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은 『12·12는 사전에 계획된 명백한 군사반란행위로서 정부는 진상규명과 함께 응분의 사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전육군참모총장은 25일 저녁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민주당 12·12쿠데타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권로갑최고위원)에게 행한 비공개 증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고 민주당이 26일 발표했다. 정전육군참모총장은 『12·12는 순수한 군인이 아닌 정치적 야심을 가진 사조직이 집단이기주의에서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다가 일어난 것』이라면서 『12·12는 계엄하에서 일어났고 대통령의 재가도 없이 계엄사령관에게 무력을 행사했으며 공관경비병을 무장해제시켰으므로 군사쿠데타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정전육군참모총장은 이어 『12·12는 이러한 불법행위를 수습하려는 정상적인 군통수체제에 대항해 국방부와 육본을 무력 점령하고 총리공관을 봉쇄한 것만 봐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군사반란』이라고 주장했다. 정전육군참모총장은 정부가 12·12 주동자들을 사법처리하지 않을 경우 이들을 고소하겠다는 장태완전수도경비사령관과 김진기전육본헌병감의 생각에 동조하느냐는 질문에 『크게 이견이 없다』고 답변했다.
  • 김일성 사망후 쿠데타 가능성

    【도쿄=이창순특파원】 김일성 북한주석이 사망한 후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일본을 방문중인 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국방차관보가 전망했다.
  • 12·12 5·18관련 공직자 사퇴촉구/민주,19명 명단발표

    민주당 정책위는 22일 5·16과 12·12,5·18에 관련된 국회의원,군장성,외교관 19명의 명단을 발표하고 이들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함께 관련자들의 공직사퇴를 요구했다. 민주당 정책위가 밝힌 관련공직자는 김종필 민자당대표를 비롯해 구자춘 허화평 허삼수 정동호 정호용 박준병의원등 국회의원 7명,김동진육군참모총장 함덕선11군단장 길영철11사단장 이종규15사단장 유효일육군대학총장 정영진육본작전처장 강영욱3군사령부작전처장 변길남39사단장 임수원육본인사운영감대리 권승만육군하사관학교장 김완배준장등 현역장성 11명,그리고 최웅 주폴란드대사이다. 민주당 정책위는 『정부가 군사쿠데타를 미화하거나 진상규명에 전혀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면서 『문민개혁시대를 표방하는 정부라면 군사쿠데타에 대한 진상을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 12·12는 명백한 반란/관련 5명 고소방침

    ◎장태완씨 등 조사위 증언 민주당 12·12쿠데타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권로갑최고위원)는 21일 하오 가든호텔에서 장태완 전수경사령관과 김진기 전육본헌병감으로부터 신군부의 쿠데타 진행과정과 진압군의 대응움직임등에 관한 증언을 청취했다. 이날 증언에서 장전수경사령관은 『12·12는 국권장악을 위한 전단계의 군권장악 행위로 명백한 반란이며 반드시 사법처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전사령관은 따라서 12·12 주도세력인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과 황영시 차규헌 유학성씨등 5명을 국가반란혐의(형법 93조)로 고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전육본헌병감은 『보복과 한풀이의 차원이 아니라 민족정기와 실정법이 엄연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들에 대한 처벌이 행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 민주 「12·12」 관련 서면질의서 내용/요약

    ◎최규하대통령에 대한 “하야협박” 사실인가/재가 받지않은 상황서 정 총장 연행 이유는/전 전대통령/80년5월20일 광주방문 어떤 목적이었나/9사단 1개연대 출동 누구지시며 임무는/노 전대통령 ▷전두환 전대통령◁ ▲김영삼정부가 12·12를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표현했는데 이에대한 소감은 ▲79년 11월 하순 보안사 허화평대령과 만나 정치정화계획을 세우고 정화대상자들에게 합수부에 협조하면 명단에서 제외해주겠다고 회유했다는데 대상자의 규모와 이름은 ▲79년 11월25일에서 30일 사이 허대령이 수도권 각부대의 하나회 책임자들을 개별적으로 보안사에 불러 중대사태에 대비하라고 지시했다는데 당시 소환인물들은 ▲79년 12월6일 보안사에서 노태우 당시 9사단장을 만나 정총장을 연행하기 위해 모의한 내용은 ▲79년 12월12일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중장을 경복궁 30경비단에 불러모은 근거와 경위및 목적은 ▲정총장에 대한 체포지시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했는가 ▲대통령의 재가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정총장을 연행한 이유는 ▲9사단 28연대와 2기갑여단 예하의 16전차대대 출동은 언제 누가 명령했는가 ▲최규하대통령으로부터 정총장 연행을 재가받게 된 경위는 ▲대통령 재가를 집단건의하기 위해 출발직전 3공수여단장 최세창준장,5공수여단장 장기오준장에게 병력장악 또는 출동준비 지시를 내렸는가 ▲최대통령의 정총장 체포건의안 재가는 언제 누가 받았는가 ▲신윤희수경사 헌병단부단장에게 하소곤육본작전참모부장과 장태완수경사령관이 순응하지 않을 경우 사살하라는 명령을 한 특별한 동기는 ▲최세창여단장을 통해 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중령에게 정병주특전사령관이 순응하지 않으면 사살하라는 지시를 했는가 ▲장태완사령관과의 면담시 장사령관이 회유를 거절했으며 당시 이학봉보안사수사국장이 대화내용을 녹음했다는데 사실인가 ▲신현확총리를 찾아가 최대통령을 박정희대통령 시해방조죄로 조사하겠다고 한 사실이 있는가 ▲광주항쟁 진압전후인 5월22일 전투교육사령부를 방문해 보고받은 내용과 지시내용은 ▲김정렬 당시 국정자문위원과 총리공관에 찾아가 최대통령에게 하야하도록 협박한 것이 사실인가 ▷노태우 전대통령◁ ▲김영삼정부가 12·12를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했는데 소감은 ▲『12·12는 구국의 일념에서 발생한 것으로 상관에게 행한 불경보다 더큰 명분과 정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소신에 아직도 변함이 없는가 ▲신군부가 79년 11월 H그룹 조모씨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제공받았다는데 사실인가 ▲12월12일 경복궁 30단에서 열린 이른바 「생일집잔치」에는 누구의 지시로 참석했으며 발언내용은 ▲12월12일 9사단 1개연대를 출동시킨 것은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이며 출동이유와 임무는 ▲당시 귀하의 직속상관인 황영시1군단장은 사후에 보고를 받았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80년 5월20일 직접 광주를 방문했다고 하는데 누구의 지시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갔었나 ▲80년 5월20일 보안사령관실에서 당시 전두환보안사령관,진종채2군사령관,정호용특전사령관과 회의를 가진 적이 있는가 ▲80년 8월10일을 전후해 최대통령의 삼청동총리공관에 김정렬씨와 함께 무기를휴대하고 들어가 하야를 협박했다는데 사실인가 ▲10·26이후 정치정화계획 구상,광주항쟁 유혈진압,요인숙정등 정권찬탈과정의 모든 문제를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과 협의했다는데 사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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