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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산씨 정치소설 「한국지」 출간

    ◎광주항쟁·배경 군부·정객 움직임 다뤄 지난해 경향신문과 전주일보 신춘문예에서 모두 단편에 당선돼 문단에 데뷔한 신예작가 김정산씨(34)가 집념의 역작 「한국지」를 민예당에서 펴냈다. 해방후 흥망을 거듭한 공화국과 그 관련인물들의 이야기를 경신군란·득세·동국·서국·동서국 교류등 5편으로 나눠 집필중인 한국지 시리즈중 첫작품 경신군란편을 선보인 것. 경신년의 광주사태를 배경으로 80년대 한국을 좌지우지했던 군부와 주요 정객들의 안팎을 집요하게 추적해 다루고 있는 본격 정치소설이다. 난세의 영웅격으로 등장한 박태환소장이 군 사조직인 일심회를 기반으로 쿠데타에 성공한후 언론장악과 정치인 숙청 단행에 이은 군사정권 출범까지를 그리면서 권력이동에 따른 인간심리를 놓치지않고 있다. 『훗날의 작가가 대작을 쓰는데 한 톨 밀알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겸손한 출간소감을 밝힌 이씨는 그러나 『뒷날 누군가가 지난 시대의 인물들을 다룬 소설을 읽을때 사료나 신문기사에서 느끼는 것과는 또다른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이 작품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기도.
  • 옛 남예멘수도 함락 위기/「최악상황」 치닫는 남북격전

    ◎북군,아덴외곽 수㎞까지 진격/공항·항만 폐쇄… 외국인 발묶여 【사나·두바이 외신 종합】 전면 내전 사흘째를 맞고있는 남북예멘은 7일 북예멘 치하의 수도 사나에 위치한 대통령궁이 불에 타고 북예멘군이 남예멘의 아덴에서 불과 수㎞ 떨어진 곳까지 진격하는등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북예멘군은 이날 성명을 통해 과거 남예멘 수도였던 아덴을 향해 4개 방면으로 진격중이며 남부에 주둔하고 있는 아말리카 여단이 남예멘 육해공군의 공격을 격퇴했다고 밝히고 『이 도시를 장악할 때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예멘군은 또 남예멘군이 이날 수도 사나에 지대지 스커드미사일을 발사한데 이어 북부 타이즈시에도 스커드미사일과 로켓공격을 가해왔으나 『민간인시설에 대한 무차별 발사에도 불구하고 경미한 피해만 발생했다』고 전했다. 한편 남예멘측은 전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북측에 휴전을 제의했으나 북측은 이를 거부하는 한편 남예멘 지도자들에게 즉각 투항할 것을 요구했다. 양측 군대간의 전투가 격화됨에 따라 미국과영국,러시아등 외국공관원들은 자국민을 소개키로 결정,외국인들의 예멘 탈출도 러시를 이루고 있다.그러나 공항과 항만등 주요 대외통로가 전투로 폐쇄돼 탈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관련,아랍연맹은 이날 카이로에서 긴급회의를 열어 예멘 내전종식 방안을 논의할 예정인데 아무르 무사 이집트외무장관은 『아랍연맹회의의 승인과 예멘의 수락을 거쳐 아랍군대를 평화유지군으로 예멘에 급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예멘내전은 사흘째인 7일 남과 북이 각각의 수도를 대상으로 포격전과 함께 공중전을 확대해가는등 90년 통일이후 최악의 전투상황은 점점 격화되고 있는 느낌. 현지 인접국 외교관들은 북예멘이 월등한 병력과 화력을 바탕으로 전국경지역에서 남예멘을 조금씩 압도해나가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실제의 전황에 대해서는 확인하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전언. 이들은 사나와 아덴에서 양측 군대간 전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으며 북측의 목표는 남예멘을 군사력으로 완전 굴복시키는 것이라고 분석,전쟁이 어느 한쪽의 승리로 끝나기까지는 장기화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 ○…예멘의 이번 내전은 양측의 지도자들이 정치·경제·문화등 이질적인 요소를 무시하고 외형상의 통일만 서두르다 「불씨」가 폭발해 일어난 것이라고 지역전문가들은 분석. 영국이 예멘에 발을 디딘 1839년부터 1백50여년동안 북부에는 자본주의가 가미된 이슬람문화가,남부에는 전통문화가 파괴된채 사회주의체제가 유지됐는데 4년전의 통일에선 이런 사실들이 철저히 무시됐다는 것. 또 91년 국민투표 당시에도 3대1 이라는 인구비율을 무시한채 총선이 치러졌고 이에따라 북예멘출신의 살레대통령이 이끄는 총국민의회당이 1백21석을 얻었으나 남부의 베이드부통령은 56석을 차지하는데 그쳐 권력불균등이 심화된채 통일을 재촉,그 결과 내전을 부른 것이 아니냐는 분석. ○…이와함께 무엇보다 내전의 직접적인 원인은 남과 북의 군대통합이 이뤄지지 않은데 있다는 분석이 우세. 즉 한나라의 국방력을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남북이 따로 관리,결국 정치·경제적 차별등 내부갈등이 전쟁이라는 상황으로까지 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 결국 이번 내전은 정치·경제적 상호신뢰가 전연 구축돼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분화된 군대를 방치함으로써 그 갈등이 고스란히 폭발한 셈. ○…북예멘이 주도하는 예멘의회는 이날 『이번 전투는 남북예멘 사이의 불화가 발단이 된 내전이 아니라 남측에 의한 반란이며 군사쿠데타』라고 주장,남측이 한때 제의한 휴전제의를 거부. 또 북예멘의 살레대통령도 포고령을 통해 남예멘의 사회당출신이거나 사회당쪽에 가까운 각료를 해임해버려 이미 행정은 두동강이 난 상황. 포고령에 따라 해임된 각료는 예멘의 국방장관을 비롯,사회당출신인 석유상과 아덴주지사등 현재까지 3명.
  • 예멘 재분단위기의 교훈/통일 4년만의 내전돌입 보며/유지호(기고)

    협상을 통해 통일을 달성한 유일한 사례로서 국제적인 선망의 대상이 된 남북예멘이 최근 무력충돌로 다시 분단될 위기를 맞이하고있다는 보도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외부 부주 사병의 남예멘계 군인에 대한 저격에서 비롯된 이번 충돌은 현재의 집권 3대정당이 제각기 병력을 지휘하고 있다는 심각한 갈등구조로 말미암아 급기야 전면전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통일된지 4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남북예멘의 야전군 부대가 통합되지 못하고 있다.걸프사태를 전후한 경제·사회적 혼란으로 군부통합이 어려웠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고 하겠으나 1992년 하반기 총선을 대비할 무렵부터 정치적 고려가 야전군 통합계획을 지연시켰다는 것이 현지분석이다.회교 부족세력의 예멘개혁당은 남부 사회당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군통합을 지연시켜왔다고 비난하고 있는데 반해,사회당측은 중앙정부 통제 밖에 있는 부족세력의 사병제 철폐등 군개혁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응수하고 있다. 남북의 정권이 군사정권적인 성격이 강했던 탓으로 막바지 협상에서 군부의 기득권을 최대한 보호하기로 양해한 것도 군통합 지연에 기여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예멘통일을 회고할때 남북의 수뇌가 상황변화를 민첩하게 포착,정치적 결단을 내린 것은 높이 평가할만 하다.동시에 통일을 서두른 나머지 국내의 회교 부족세력을 통일협상과 그후 과도련정 참여에서 배제하고 남북예멘의 통일을 우려해온 사우디를 통일협상중 별로 설득하려하지 않았을 뿐더러 걸프사태시 사우디의 외군주둔허용을 비판한 것은 80만 예멘근로자에 대한 대량추방과 경제원조중단등 사우디로 부터의 보복조치를 초래,과도기의 경제난과 사회문란만을 가중시켰다. 양측 수뇌는 과도기 이후의 총선전략에 대해서는 충분한 의견교환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당제하에서의 정국운영에 대해서는 더욱 논의가 없었기 때문에 총선후 조각에 1개월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많은 차질이 생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수년간 남북예멘간의 정치적 갈등은 기본적으로는 남예멘의 사회당과 북예멘의 회교 부족세력을 대표하는 예멘개혁당간의대립관계를 북측 국민회의당이 중간위치에서 조정하는 양상을 띠어왔다.예멘개혁당은 예컨대 사회당문제에 있어서는 국민회의당과 협력하지만 사우디문제에 대해서는 대립하는 경우가 많다.이는 1962년 북예멘의 「자유장교」들이 왕정전복 쿠데타를 일으켰을때 사우디는 회교부족세력의 왕정파를,이집트의 4만 파견군은 군부의 공화파를 각각 지원하기 시작하여 8년간의 내전에 관계한 역사적인 인연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예멘 통일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하지 않았고 예멘과의 외교관계르 유지하고 있다.그러나 양국관계의 완전한 「수복」에는 현안의 국경분쟁과 예멘의 생소한 다원주의 정치에 대한 시각차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가닥의 희망을 주는 최근의 사태발전은 이스라엘­아랍 평화회담의 진척이다.아라비아반도 남서단에서의 새로운 분쟁은 골란 고원문제 타결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아랍권 뿐만 아니라 미국등 서방측에도 바람직스럽지 않을 것이다.더욱이 지난 2월20일 암만에서 예멘대통령 살레와 부통령 알비드간에 서명된화해 및 정치개혁 협정에 이어 이번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가까운 아랍 에미리트 연합과 이집트가 중재에 적극 나서고 있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국제적인 화해분위기에 걸맞게 예멘의 국민들도 남부의 석유자원을 개발하고 경제의 안정을 갈구하고 있다.암만 정치개혁 협정은 대통령의 안보및 재정분야의 권한축소와 부통령의 남예멘 유전지역에 대한 통제권의 축소,3개월내 테러범 체포 및 재판회부를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이 모두 3대 집권당에 해당하는 사항이다.이 합의사항의 이행이 여의치 않을 경우 알비드 부통령이 제안했던 연방제가 어쩌면 재분단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 될는지 모른다.
  • 수장없는 내각… 일손 안잡힌다/총리 공석 1주일… 겉도는 국정

    ◎총리실·외교안보팀 어정쩡한 상태/“서리제 부활해야” 푸념섞인 주장도 이영덕국무총리내정자는 지금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5층에 있는 통일부총리실에서 근무하고 있다.바로 위 9층에 있는 총리집무실이 비어 있건만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회창전국무총리가 경질되고 이총리내정자가 새로 지명된 것은 지난 22일의 일이다.국회는 그럼에도 아직 총리임명동의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임시국회의 회기를 28일까지 연장했으니 그때나 임명동의안이 처리될 것으로 예상된다.일주일이나 총리자리가 비어 있는 셈이다.이총리내정자가 총리업무를 볼수도,그렇다고 통일부총리 일을 할수도 없는 어정쩡한 위치에 놓인 것도 거기에서 비롯된 일이다. ○경제팀도 좌불안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부처도 비슷하다.총리가 임명되어야 개각을 하고 새마음을 다질터인데 도무지 일손이 안잡힌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개각의 폭이 극히 제한된다는 소식은 들리지만 외교안보팀은 여전히 좌불안석이다.경제및 다른 부처도 들떠 있기는 마찬가지다. 쿠데타등의 정변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총리직이 이처럼 오래 비어있던 전례는 없었다.61년 5·16,79년 12·12등의 비정상적 상황에서 총리직이 일정기간 공석으로 있었던 적이 있었을 뿐이다. 물론 총리임명동의를 둘러싸고 여야 정파 사이에 간혹 다툼이 있기도 했다.국회가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지명행위가 이루어져 임명동의는 한참후에 받기도 했고 몇몇은 끝내 임명동의를 못받은채 물러난 일도 있었다. 권위주의시대에는 임명동의가 늦다고 국정공백이 생기지는 않았다.「서이」라는 편리한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법규정은 없지만 대통령이 총리내정자를 지명하면 바로 「서이」로 내부발령을 내 업무를 시작했다.국회동의는 사실상 「사후 추인」이었다.안받아도 업무수행에 있어서는 지장이 없었다. ○서리제 사실상 폐지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6공」말 중립내각으로 출범한 현승종총리 때부터는 국회동의를 받은 뒤에 임명·발령을 내는 쪽으로 관례가 바뀌었다.문민시대를 맞아서는 「헌법대로」 하자는데 정부와 여야의 견해가 일치,사실상「서이」제도가 없어졌다. 총리가 공석이면 어떻게 되는가.정부조직법은 경제부총리를 첫번째 「직무대행」으로 지정하고 있다.이 「직무대행」이라는 것은 최소한의 행정행위를 할수 있을 뿐이다.정재석경제부총리는 그저 국무회의를 대신 주재하는 정도의 대행역할을 하고 있다.헌법에 규정된 내각통할권,각료제청권등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정부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총리훈령」도 중단되고 있다.총리실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 여겨지는 정책조정역할도 사실상 스톱상태이다. ○정책조정기능 중단 이전총리의 경질이후 총리 권한의 한계에서부터 시작,과연 총리라는 자리가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까지 나오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미래의 우리 정부구조를 어떻게 정립해 나가느냐 하는 문제이지 현재 헌법기관인 총리직을 비워두어도 무방하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위헌」이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없앤 서이제도가 다시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면 그것은 매우 불행한 일일 수밖에 없다.
  • 부룬디 불발쿠데타/주동자 6∼7명 체포

    【나이로비 AFP 연합】 시프리엥 은타리아미라 대통령의 급서로 인한 부룬디의 정국 불안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24일 쿠데타가 발생했으나 불발에 그쳤다고 군부와 외교소식통들이 25일 밝혔다. 부룬디 군부와 이곳에 주재하는 외교관들은 전날 소수파 종족인 투치족 출신 공수부대원들이 가담한 쿠데타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로 돌아갔으며 주모자 가운데 장교를 포함한 6∼7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벨기에의 RTBF 라디오 방송은 이번 쿠데타에 3백명 정도가 가담했다고 밝혔다.
  • 주체사상 교과서에 안싣기로/역사용어 개편

    ◎「대구항쟁」 철회,「대구사건」으로/여순반란사건→여순사건/「6·25」「4·3」은 원래대로/5·16혁명→5·16쿠데타 지난달 18일 발표된 국사교과서의 근·현대사 용어개편 준거안 가운데 물의를 빚은 「대구항쟁」이 「대구사건」으로 바뀌고 김일성주체사상을 싣기로 했던 방침이 백지화된다. 특히 교육부는 내달에 준거안이 제출되는대로 문제가 된 내용을 심의하기 위해 준거안을 특별히 1종교과서편찬심의위원회에 넘겨 정밀검토할 방침이다.22일 교육부에 따르면 오는 96년도부터 중·고교에서 사용될 국사교과서의 준거안을 마련중인 연구위원회(위원장 이존희서울시립대교수)는 지난 21일 서울대에서 모임을 갖고 준거안 발표이후 쟁점이 돼온 일부 근·현대사 역사용어및 내용을 이같이 바꾸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 참석자는 『이번 준거안에서는 「대구항쟁」으로 표기하자고 제기된 「대구폭동」(현행교과서)을 「대구사건」이나 「대구사태」로 하고 「여수·순천반란사건」(현행교과서)은 「여수·순천사건」으로 하되 내용상 사건의 성격을 서술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또 당초 북한역사와 관련, 김일성주체사상을 싣기로 한 준거안을 철회키로 했다. 이 관계자는 이밖에 제주도 「4·3사건」은 현행대로 표기하고 「6·25전쟁」도 준거안의 「한국전쟁」으로 표기하자는 주장과 달리 그대로 쓰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행 「4·19의거」는 준거안을 따라 관련법이 올 정기국회를 통과할 경우 「4·19혁명」또는 「4월혁명」으로 고치고 「5·16군사혁명」은 「쿠데타」나 「군사정변」으로 고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12·12」와 「10·26」은 현행대로 내용을 서술하면서 「사태」라는 용어를 쓰기로 했다. 한편 이같은 근·현대사 용어의 의견조정외에도 고려시대의 향·소·부곡을 천민계층이 아니라 양인(양인)계급의 집단거주지로 정정키로 했다. 이같은 의견조정과 심의절차에 따라 당초 오는 6월말까지 확정키로 한 국사교과서의 개편안 마련은 2개월정도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 요즈음의 대언론 시각(청와대)

    청와대가 언론보도와 관련해 연일 기분이 좋지 않다. 일련의 사건보도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들은 언론불신을 넘어 노이로제 증상으로 이야기할 만큼 예민하다.한마디로 있지도 않은 사건을 언론이 의혹화해 문민정부의 도덕성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는 게 청와대의 불만 요지다.청와대의 불편한 마음은 좀체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언론문제,정권안보문제를 다루는 정무수석실이나 비서실을 총괄하는 비서실장의 방에는 냉기가 흘러 넘친다.언론에대한 불편함을 알릴 방도가 많지 않은 청와대측이 출입기자들을 향해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있는 탓이다.청와대는 언론이 정통성없는 과거정권을 다루던 잣대와 관행으로 자신들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청와대가 언론에 대해 못마땅해 하기 시작한 것은 북한핵문제 정책에 대한 보도에서부터다.청와대는 북한핵을 저지할 효과적인 수단이 정부자체에 사실상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런 저런 방책을 써볼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그런 것을 신문마다 각각 다른 목소리로 정부정책부재라고 비난해 마치 정부가 국정운영능력이 없는 것처럼 몰아갔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한 당국자는 동일한 매체에서도 사안마다 다른 입장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청와대측이 언론에 대해 마침내 심각해진 것은 조계종사태와 상무대사건에 대한 일련의 보도에서 찾을 수 있다. 청와대는 언론이 상무대건과 관련,검증되지 않은 야당의 주장을 거름없이 기사화함으로써 야당의 정치공세를 「의혹」화시켰다는 생각을 한다.특히 청와대가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부분은 정대철의원이 주장해온 청와대 측근인사의 이니셜을 일부언론이 그대로 보도한 부분이다.청와대가 실익없는 국정조사권을 받아야겠다고 판단한 직접적인 동기도 여기서 비롯됐다. 청와대는 그러나 국정조사권을 발동해 조사를 하더라도 청와대에 씌워진 의혹의 그림자가 말끔히 씻기지 않을 것이란 점에 조바심하고 있다.그동안의 언론보도 관행으로 미루어 관련사실이 드러나지 않으면 『깨끗했다』고 쓰는게 아니라 『밝혀내지 못했다』고 쓸 것으로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증되지 않은야당의원의 주장을 그대로 기사화함으로써 문민정부 최대의 장점이자 무기인 도덕성에 흠집을 냈고,그같은 보도 관행때문에 이를 깨끗하게 씻어낼 방법조차도 없다고 본다. 청와대는 여전히 조계종사태에 대해 폭력이나 쿠데타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된다는 속마음을 갖고 있다.그러나 이런 속마음과는 별개로 조계사에서 경찰을 철수시켰다.혐오하는 쿠데타적인 방법에 의해 종권이 인수되도록 방치한 것이다.『폭력이 있는 곳에 경찰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도 언론은 이를 조계종집행부와 정부가 결탁한 것처럼 여론을 호도해 갔다』는 한 당국자의 발언에서 보듯 이 문제에 대한 언론의 태도 역시 불만이다. 청와대는 최근의 이런 보도태도들이 의도적인 것이라고 믿는 눈치다.특히 최근 몇몇 언론에 대한 세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실을 이와 연관시키고 있다.그러면서 청와대 당국자들은 『언론이 기업이라면 당연히 받아야 할 세무조사에서 자신들은 면책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동시에 『그런다고 하던 세무조사를 그만둘 것 같으냐』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청와대가 오해를 하고 있을 소지도 없지 않다.설령 그렇더라도 이를 풀어낼 방도는 찾기 어려워 보인다.
  • 레소토 쿠데타 진행/부총리 피살… 각료들 군인에 납치

    【요하네스버그 AFP 연합】 레소토의 은추 모켈레 총리는 14일 자국에 쿠데타가 진행중이라고 밝힌 것으로 국영 SABC방송이 보도했다. 모켈레 총리는 셀로메치 바흘로 부총리가 살해되고 4명의 각료가 중무장 군인들에게 납치된후 남아공의 개입을 호소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레소토의 수도 마세루에서는 이날 총성이 들렸으며 이는 군파벌간의 전투 때문인 것으로 믿어지고있다. 피크 보타 남아공 외무장관은 남아공 방위군의 고위간부들이 사태를 진정시키고 현 위기를 해소하기위해 레소토군 관계자들과 접촉을 시도하고있다고 밝혔다. 보타장관은 이어 남아공은 폭력을 통한 어떠한 정권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구 1백80만의 산악 소국 레소토는 지난 1월 수도 마세루에서 군 파벌간의 전투가 벌어진 바 있으며 그동안 급여와 처우를 둘러싸고 군 내부의 불만이 계속돼온 것으로 알려졌다.
  • 아 르완다·부룬디 대통령 탑승기피격 사망/르완다내전…정정 악화일로

    ◎키갈리서 종족간 무차별 학살극/총리·유엔평화유지군 10명 피살 【키갈리(르완디) 로이터 연합】 르완다·부룬디 양국대통령의 비행기피격사건에 뒤이어 8일 르완다 수도 키갈리전역과 반군의 수중에 들어간 의사당건물주변에서 이틀째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등 르완다 전체가 극도의 혼란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6일밤 탑승기피격에 따른 주베날 하비아리마나대통령과 총리의 사망으로 권력의 공백상태를 맞은 르완다의 의사당건물주변에서는 이날 상오 정부군과 반군들이 격전을 벌이고 적대관계에 있는 후투족과 투치족이 서로 무차별 학살극을 벌이는등 아수라장을 이뤘다고 현지목격자들이 전했다. 유엔관계자들은 4년전 내전발발이후 최악의 유혈충돌사태를 빚고 있는 후투족과 투치족간의 분쟁이 수도 키갈리이외 지역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또 7백명의 대통령경호대 병력은 3명의 각료와 헌법재판소장,국회의장을 비롯한 반대파인사들과 그의 가족들을 납치했다고 현지 유엔관계자들은 전했다. 과거 르완다식민통치국인 벨기에정부는 이날 성명에서 현지군인들에 의해 벨기에출신 평화유지요원 10명이 살해됐다고 밝히면서 이들 요원은 제2 플라윈대대소속으로 아가테 우윌린기이마나총리의 경호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고 말했다.현지 유엔소식통은 투치족출신인 우윌린기이마나총리가 태통령궁부근에서 살해됐다고 말했다. 한편 주베날 하비아리마나 르완다대통령과 시프리엔 은타리아미라 부룬디대통령은 탄자니아 수도 다르 에스 살람에서 양국 모두의 라이벌종족인 후투족과 투치족간의 내전종식방안을 논의한후 6일밤 비행기로 키갈리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비행기착륙중 피격됐다. ◎대통령 참사… 양국 내부 정쟁사/르완다 후투족정권에 투치족 반발로 대립/작년 쿠데타 5만명 숨져… 또 대량살육 우려 아프리카 중남부 르완다와 부룬디 두나라가 극도의 혼란과 함께 전면내전의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선 약탈과 폭행이 자행되고 있으며 폭력배와 군인·경찰에 의한 구금과 살인행위마저 벌어져 「사망자 통계를 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는 양국 대통령이 비행기 폭발사고로 모두 사망한데 이어 르완다총리마저 군인들에 의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한데 따른 것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 62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하기 전까지 지배계층의 위치를 누렸던 소수종족인 투치족과 현집권세력으로 전체인구의 85%를 차지하는 후투족 사이의 종족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두 종족간의 대립은 소수종족인 투치족을 이용해 식민통치를 실시하던 벨기에가 독립을 앞두고 다수종족인 후투족을 지원,정권을 잡게한데 대해 투치족이 강력히 반발함으로써 시작됐다. 그동안 두 종족간의 내전으로 수십만명이 사망했으며 특히 부룬디에서는 지난해 10월 사상최초의 후투족 대통령인 멜치오르 은다다예가 투치족의 불발쿠데타 과정에서 사망하면서 전투가 벌어져 5만여명이 사망했다. 르완다에서도 지금까지 종족간 교전으로 10만여명이 사망했으며 90년에는 투치족이 주도하는 반군단체인 르완다애국전선(RPF)이 우간다로부터 침입,후투족 정부군과의 교전에서 수천명이 사망하고 1백만명이 인근 우간다등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이번에 사망한 두 대통령은 이같은 피비린내나는 유혈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군부개혁을 포함한 평화구축 방안을 모색해 왔다.그러나 후투족 내부 강경파의 반발과 소수인종이면서도 부룬디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투치족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어왔다. 아직 비행기 폭발사고의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온건노선을 추구해온 두 대통령에 대해 강경파들이 계획적으로 저지른 음모로 보여지고 있다.이에따라 현재 르완다에만 2천5백명의 유엔평화유지군이 파견돼 있는 이 지역에서 또다시 두 종족간에 대규모 살육전이 벌어질 위험이 우려되고 있다.
  • “쿠데타적 사건”/「12·12」 진상 규명될까

    ◎검찰,피고소인 소환 착수/정승화총장 연행과정 등 집중조사/전대통령 3명 조사방식 싸고 고심 검찰이 「12·12」고소·고발사건과 관련,지난주까지 고소인·참고인 조사를 벌인데 이어 23일 허삼수의원을 전격 소환한 것을 시작으로 피고소인 37명에 대한 조사에 착수함으로써 이 사건의 「법적 해석」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7월 정승화전육참총장 등의 고소 이후 고소인 22명,노재현전국방장관 등 참고인 31명 등 모두 53명을 조사했다. 이와 함께 국회청문회 기록,언론보도,관계 인사들의 회고록,당시 작전상황일지 등 방대한 양의 참고 자료를 입수해 검토작업을 벌여 왔다. 이번 사건의 공소시효는 오는 12월13일이어서 앞으로 8개월여 남았다. 검찰은 이에 따라 늦어도 공소시효 3개월 전인 9월까지는 피고소인 조사를 마치고 수사결과및 사법처리 여부를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수사방향과 관련,『12·12에 대해 수사기관이 나서서 진상을 규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검찰은 그동안의 조사결과,고소인및 참고인측이 ▲정총장 연행 재가과정에서 최규하 당시대통령에 대한 협박이 있었고▲정총장 연행에 앞서 신군부측이 미리 병력을 동원하는등 쿠데타 의사를 갖고 있었다는 점등을 주장함에 따라 피고소인들을 대상으로 이 부분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그러나 검찰의 의욕적인 수사 의지에도 불구하고 피고소인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 수사 관계자는 『성공한 쿠데타에 대한 법적 평가는 사상 유례가 없었던 일 아니냐』고 말한다.검찰의 고민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특히 김영삼대통령이 12·12를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하면서도 주동자 처리에 대해서는 『역사에 맡기자』고 밝힌 만큼 검찰의 판단도 이 범위를 넘지 못할 것이라는게 법조계 주변의 중론이다. 법적으로는 쿠데타로 인정하되 신병처리는 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지지않겠느냐는 시각이다. 검찰은 내부적으로 ▲무혐의 처분 ▲기소유예 ▲불구속기소등 모든 가능한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공식적으로는 『아직 고려할 단계가 아니다』 말하고 있다. 검찰은 또 결정적인 참고인인 최규하전대통령및 피고소인인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에 대한 조사 여부및 방식에 대해서도 뾰족한 「해법」을 찾지못해 고심하고 있다. 검찰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와 수사상의 효율성을 감안,일단 피고소인 조사를 마친뒤 이들에 대한 조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혀 경우에 따라서는 조사가 생략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조사가 이뤄질 경우 소환조사보다는 방문 또는 서면조사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허의원을 비롯한 정호용·박준병·허화평·정동호의원등 5명의 현역 의원들에 대한 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 러에 쿠데타 임박설/크렘린,“옐친 휴가 틈탄 음해공작”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예정에 없던 휴가를 보내면서 쿠데타 임박설이 나돌고 대통령실과 빅토르 체르노미르딘총리 등이 이를 부인하는 성명을 잇따라 발표하는등 모스크바 정가가 어수선하다. 이와관련,크렘린측은 22일 옐친대통령이 이번주 후반인 25일이나 26일에 러시아 남부 해변휴양도시 소치에서 휴가를 마치고 귀임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일부에서 혼란을 조성하기 위해 낭설을 퍼뜨리면서 대통령에 대한 음해공작을 펴고있다고 비난하는등 쿠데타 풍설을 잠재우기 위한 분위기 통제에 나서고 있다.
  • 교과서 역사용어 변경 논란 가열/시안발표에 학계등서 비판론 대두

    ◎북 주체사상 거론하며 남부정요소만 강조/「제주 4·3항쟁」 표기는 국민정서 안맞아/“의견수렴 심의거쳐 6월 확정”/교육부 국사교과서에 실려있는 「대구폭동」을 「대구항쟁」으로,「5·16」과 「12·12」「5·17」은 모두 「쿠데타」로 바꾸자는 「국사교육 내용전개 준거위원회」(위원장 이존희서울시립대교수)의 시안이 18일 발표되자 학계와 이해당사자는 물론 일반 국민들 사이에도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교과서 개편의 주체인 교육부와 각 언론사에는 19일 아침부터 『5·16과 5·17이 교과서에도 쿠데타로 실리게 된 만큼 이제 국립묘지에 있는 주도자들의 무덤을 모두 이장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에서부터 『이게 어느나라 교과서냐.북한의 주체사상까지 싣기로 했다면서 우리는 부정적인 부분만 강조된다면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갖겠느냐』는 의견까지 갖가지 상반된 내용의 전화가 쇄도했다. 그러나 이런 열기는 「준거위원회가 교육부의 용역을 받아 안을 마련한 만큼 발표된 내용이 그대로 당장 96년부터 교과서에 실리는 것이 아니냐」는오해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교육부측의 설명이다.이번 안은 학자들의 개인적 논문발표와 같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18일 열린 세미나에서 이미 한차례 여과된 이 시안은 31인의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가 이달안에 1차,4월중에 2차 심의를 벌여 다듬은뒤 5월말쯤 국사편찬위원회에 넘겨져 다시 심의과정을 거치고 나서 6월에 최종 확정될 예정이라는 것.그런 만큼 이 시안에 대한 현재의 논란은 폭과 강도에 있어 크면 클수록 좋다는 것이 학계와 교육부의 공통된 시각이다. 실제로 이번 시안은 18일 발표되는 자리에서부터 연구자와 토론자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특히 현대사 용어부분과 관련한 용어개칭문제에 대해 학자들의 강력한 반대의견이 제기됐다.논란의 핵심인 현대사부문의 연구자는 서중석성균관대교수.토론에는 이범직건국대교수와 유영렬숭실대교수,심지연경남대교수를 비롯,31명의 심의위원 전원이 참여하다시피 했다. 서교수의 시안 가운데 「여순반란사건」을 「여수·순천사건」으로 쓰자는데는 별다른 이의가 없었으나 좌익계가 포함된 폭동이라는데 별다른 이의가 없는 「대구폭동」을 「대구항쟁」으로 표기하는 문제와 「제주4·3사건」을 「제주4·3항쟁」으로 바꾸자는데 대해서는 뜨거운 격론이 벌어졌다.또 「5·16」과 「12·12」「5·17」등의 개념규정에 대해서도 이를 「쿠데타」로 기술해도 좋을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 상당한 의견개진이 있었다.한마디로 일반인들이 우려하는 것과 같은 차원에서 학자들 사이에 심도있는 논의가 이루어 졌다고 보면 된다. 국사교과서 편수를 맡고 있는 교육부 신영범연구관은 『「대구항쟁」은 물론 「쿠데타」도 언어정서에 맞지않을 뿐 아니라 교육용어로도 부적절하다고 생각된다』면서 『이번 시안과 논의 결과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좋은 참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자들은 이번 논란에 대해 『가장 보수적이라는 교육부가 진보적인 학자들에게 연구를 맡겨 이같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느낌』이라면서 『그런만큼 교육부는 국사교과서의 내용이 확정되기까지 논의를 더욱 개방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데 최선을다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중·고교과서에 북주체사상 기술

    ◎「5·16」·「12·12」쿠데타로 표기/96년부터… 「6·25」는 한국전쟁으로/국사연구위 개편 시안/4·19의거→혁명,대구폭동→항쟁/여순 반란사건→여수·순천사건/8·15는 광복·해방용어 병용케 96학년도 중·고교 국사교과서에서부터 북한의 김일성주석 사상을 체계화한 주체사상을 설명하는 내용이 새로 실린다. 논쟁을 빚어온 근·현대사의 역사용어도 시대에 맞게 고쳐진다. 「국사교육 내용전개 준거안 연구위원회」(위원장 이존희서울시립대교수)는 18일 서울시립대에서 국사교과서 개편방안에 관한 세미나를 갖고 이같은 개편시안을 발표했다. 시안은 앞으로 교육부 심의위원회와 국사편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오는 6월까지 확정된다. 새 교과서는 북한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주체사상의 기본틀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며,수령유일체제와 김정일 후계체제의 성격을 이해하도록 새로 기술할 예정이다.또 1967년경을 전후한 주체체제로의 이행이 이뤄지는 국내외적인 여건과 주체사상과 예술·역사학·학문과의 상호관계도 기술하기로 했다. 이와함께 87년 6월 민주항쟁이후 북한에 대한 이해가 크게 늘어난 점과 남북한간의 상호이해를 위한 노력을 서술하기로 했다. 연구위원회는 또 8·15광복을 전후해 일부 민족지도자들이 일제말 황국신민화운동과 침략전쟁에 협력했었음을 간략히 기술하지만 가급적 구체적인 이름의 언급은 삼가하기로 했다. 71년 대선과 총선속에서 민주화운동이 있었으나 박정희정권은 철권강압으로 영구집권을 계획하여 국헌이 파괴된채 유신독재체제가 이루어졌음이 처음 기술된다.박대통령의 경제업적도 종전과 같이 기술,균형을 맞추기로했다. 역사용어의 경우 5·16군사혁명과 5·17사태를 모두 쿠데타로 고치며,대통령이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한 12·12사태도 쿠데타로 고쳐진다. 4·19의거는 외국의 사례와 같이 날짜를 쓰지않고 4월혁명으로,6·25전쟁은 한국전쟁으로 표기한다. 또 동학농민운동은 동학농민전쟁으로 ,8·15는 광복으로 쓰되 내용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해방이란 용어도 병용하기로 했다. 여순반란사건은 주민반란으로 오해하는 것을 막기위해 여수·순천사건으로,대구폭동은 대구항쟁,광주민주화운동은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 “12·12사태는 쿠테타”/노재현 전국방 검찰출두 진술

    「12·12」고소·고발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장륜석부장검사)는 11일 노재현전국방부장관을 소환,참고인조사를 벌였다. 이날 하오2시 검찰에 출두한 노전장관은 『12·12가 하극상에 의한 계획된 쿠데타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노전장관을 상대로 12·12당시 최규하대통령에게 합수부측이 정승화육군참모총장 연행을 승인하도록 요청한 경위및 사태발생 직후 잠적한 이유등을 조사했다. 검찰은 노씨에 대한 조사로 참고인조사를 모두 마친 뒤 빠르면 다음주부터 허삼수 당시 보안사인사처장등 34명의 피고소인에 대한 조사에 들어갈 방침이다.
  • 러 91년 쿠데타 주모자/대법서 재판재개 결정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러시아대법원은 11일 지난 91년8월의 불발쿠데타주모자들에 대한 재판을 새 재판부를 구성해 재개하도록 결정했다고 인테르팍스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대법원 군사부는 이달초 의회의 사면조치에 부응,재판중단을 선언했으나 검찰은 이에 불복,이의를 제기했었다. 인테르팍스통신은 대법원이 사건을 새 재판부에 회부키로 결정했다고 밝혔으나 재판기일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 “정치개혁 공동노력”/김 대통령­이기택대표 회담

    ◎안보법개정 문제엔 이견/북 전략에 말릴우려… 방북반대/김/UR 수정안하면 비준때 반대/이 김영삼대통령과 이기택민주당대표는 11일 상오 청와대에서 여야영수회담과 양당간부들이 참석한 오찬회동을 잇따라 갖고 정치개혁법의 통과를 계기로 정치개혁에 공동노력키로 했다. 두사람은 그러나 이대표가 제기한 국가보안법 개정문제,방북에 대한 정부의 협조문제,우루과이라운드 협정 재협상등 주요현안에 대해 이견을 좁히는데 실패했다. 주돈식청와대대변인은 회담결과를 발표한 뒤 『회담의 의미는 혁명적인 선거법에 의한 새정치풍토의 조성과 국가현안 전반에 대해 격의없는 의견을 나누었다는데서 찾아야 할것』이라고 말하고 『특히 여야간부들의 오찬에서 새선거풍토의 조성을 재확인한 것은 50년 여야사에 처음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1백23분에 걸친 영수회담에서 김대통령은 이대표의 보안법개정 주장에 대해 『아직도 북한이 적화야욕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안법의 개정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보안법을 형법에 흡수하자는 주장 역시 통일까지의 한시법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이대표는 자신의 방북추진에 협조해달라면서 『북한에 가게 되면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하겠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에 대해 『북한방문은 북한의 통일전선전략에 말려들어갈 우려가 있다』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통일정책은 초당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이대표가 대한민국의 대표가 될 수 없고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여러 채널로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우루과이라운드 재협상 주장에 대해 불가능하다고 밝혔으며,경찰중립화를 위한 별도기구의 설립에 대해서도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그러나 이대표의 법률개폐,통합의료보험제 시행주장은 검토하겠다고 말했으며 광주민주화운동지원·김대중납치사건 진상규명에 대한 협조요청에도 협조할 것은 협조한다는 뜻을 표시했다. 김대통령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의 국회비준에 야당이 협조해주도록 요청하면서 국회상설화와 TV국회생중계는 총무단에 맡기자고 제의했다. 김대통령은 『선거법을 통해 선거혁명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95년 지방선거에서는 행정력을 총동원해 불법자를 색출해 숫자에 관계없이 엄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야당이 제기한 상무대관련 정치자금제공설은 철저히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면서 12·12고발사건은 쿠데타적사건으로 규정한 정신에 따라 법대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대표는 이날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보안법을 폐지,「민주질서보호법」으로 대체하거나 형법으로 흡수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대표는 이어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에서 공산품분야뿐 아니라 농산물분야의 이행계획서도 수정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때 민주당은 UR협정의 국회 비준동의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문민정부」 아닌 「제3민주정부」/이달순(기고)

    ◎「김영삼정부」의 성격과 명칭 「문민」시대와 「개혁」을 외치고 있다.그런데 문민정부라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우리는 오랫동안 「양반」시대를 살아왔다.「무」반과 「문」반의 시대였다.우리는 그 양반권위주의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지금부터 꼭 1백년전인 1894년 동학교도혁명을 일으켰다.일본의 침략으로 그 혁명은 실패했다.그뒤 우리 조상들은 일본인들을 내쫓고 민주국가를 건설하겠다고 싸웠다. 상해에 세워진 임시정부는 민주정부였다.3·1민족독립혁명으로 세운 우리나라 제1민주정부였던 것이다. 8·15해방과 함께 우리는 노래불렀다.『남대문을 열어라.동대문을 열어라.임시정부 들어온다.광복군이 들어온다』그러나 임시정부는 들어오지 않았다.이승만이 들어와 이씨왕조를 「이은」(승) 그것도 「뒤늦게」(만) 나타난 왕으로 행세했다.백성들은 그를 국부 즉,임금으로 떠받들었다.우리는 그의 정부를 제1공화국이라 할 수 없다.현대판 이승만왕조였다.왕조정치는 혁명으로 무너진다.4·19학생혁명이다.그리고 장면내각이 성립되었다.임시정부에이은 제2민주정부의 탄생인 것이다. 혁명 뒤에는 온건파가 집권한다.그 시대는 이중주권시대로 불린다.혼란한 질서가 나타난다. 이때 쿠데타가 발생한다.5·16이다.쿠데타는 민주혁명에 대한 반동이지만 역사가들이나 정치학자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혁명의 이념을 이상으로 삼고 그 실천을 위해 광신도처럼 날뛰었다.우리는 조국근대화,민족중흥의 역사를 창조했다. 이 시점에서 민주정치만 실시되면 금상첨화다.그러나 집권자는 장기집권의 독재자로 변신한다.박대통령은 18년(목=십,팔) 집권하고 점(복=박)을 보러갔다.당신은 일단(일) 끝났다고(지=정) 했다. 이를 무시했더니 자기의(기) 신하(신=와)가 총을 네방(····=희) 쏘았다.궁정동 한모퉁이에서 그때 그사람 노래듣다 그때 그사람이 되고 말았다. 독재자의 말로는 비참했다.그 뒤로는 민주화가 구현될 것 같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다시 왕정복고를 불러왔다. 12·12(두)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대통령은 왕(팔+왕=전)이 되어 빛나는 존재가 되었다.「오야」맘대로 하던 이승만왕조로의 복고였다.민주정치를 위한 국민의 투쟁은 맹렬했다. 3김씨의 싸움은 국민의 표를 갈라놓았다.군사권위주의에 종지부를 찍으려던 국민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12·12세력의 한 사람인 노태우대통령이 들어섰다. 군사통치의 권위주의시대였다.이때에도 「양반」의 시대였다.군출신인 「무」반이 주도권을 행세했고 지식인들이 들러리를 섰다.「문」반인 것이다.양반의 시대는 조선왕조이래 노태우정부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이를 가리켜 3·4·5·6공화국이라고 부르고 있다.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장기집권하고 독재공포정치를 한 「양반」정권을 공화국이라고 계속 불러줘야 하는가 말이다. 앞으로 다시 양반권위주의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를 공화국이라 불러서는 절대 안된다. 역사의 정률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명예혁명으로 민주정부로 발전했다.국민의 지지와 집권층의 도움까지 얻어 김영삼정부가 탄생했다. 그러나 군사통치의 「밀리터리언」시대에서 「시빌리언」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문민정부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호칭인 것 같다. 「문」은 선비또는 지식인을 뜻하기 때문이다.「반」이 아니고 「민」이기 때문에 올바른 해석이라고 할 법하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가 그러했고,오늘의 세계가 산업사회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귀에 거슬리고 전제주의시대의 양반을 연상시키는 용어다.국민을 문민으로 대치할 수 없다.이제 우리는 김영삼정부를 제3민주정부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본다.
  • 동학군,공주우금치서 일군과 결전(동학의 함성을 찾아서:5)

    ◎서울난입 소식에 전봉준 등 전국서 봉기 동학혁명이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깨끗한 정부를 표방한 항쟁이다.그러나 외세에 대한 항쟁 역시 민족자존의 의지가 서렸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학혁명은 그 초기부터 「왜인과 양인을 쫓아내자」(축멸양위)는 구호를 내걸었다.이는 외국 자본주의 침략에 대항하는 항일전쟁으로서의 민족의식을 일깨웠지만 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실제 외세와 조우하는 숙명을 겪게되는 것이다. 이른바 전주화약에 이어 집강소가 설치되는등 호남은 일단 위급한 형세를 넘기는 듯했다.그러나 조정내 민씨 일파의 난국수습책에 따른 청나라로부터의 청병의도와 맞물려 1894년6월5일 정여창이 이끄는 청의 함대가 인천에 들어온다.이어 6월5일과 8일에는 청의 육전대가 아산쪽으로 상륙하기에 이른다. 청의 출병소식을 들은 일본은 이에 뒤질세라 6월9일 군함 3척을 인천항에 투입시키는 한편 육전대를 서울로 몰고들어왔다.일군은 쿠데타를 통해 민씨 일파 대신에 대원군을 옹립하고 내정간섭을 자행한다.일본군은 7월26일 충청도 앞바다에서 청의 함대에 함포사격을 가함으로써 드디어 청일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다. 전봉준은 서울에 난입한 일군의 횡포를 소식으로 듣고 귀를 기울이다 마침내 전주에서 기병한다.손화중은 광주에서 군사를 모았다. 그리고 호남 각지역의 남접군 11만5천명과 충청,경기,강원도의 북접군이 삼례에서 합세했다.전국 각처에서기병한 동학군은 일군의 전신선을 끊고 병참기지를 습격하는등 항전에 나선다.이때의 동학군의 활동은 군으로의 성격보다는 동학교도로서 일군에 대한 봉기항쟁으로 기록된다. 당시 관군은 일군과 행동을 같이했다.이때문에 동학군은 담은 안은채 11월9일 공주의 관문격 요충지 오금치·웅치에서 장렬한 최후의 결전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 ◎우금치는 어디 있나/농민군이 일군에 참패 당한곳/동학사 있는 계룡산국립공원 지척에 동학농민군이 일본군에 참패를 당한 우금치는 공주시내에서 부여쪽으로 가다 마주치는 첫번째 고개에 있다.오금치는 글자 그대로 소도 못 넘어갈 만큼 가파른 고개라는 뜻이라고 한다. 동학혁명기념비가 서 있는 고개마루에 서면 장총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을 향해 죽창을 들고 달려드는 농민군의 함성이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이곳에서 참패한 농민군의 시체를 거두어 한데 묻었다는 송장배미는 거리상으로 우금치에서 십리안쪽이다. 금성여고앞,지금은 논으로 변한 송장배미에서는 몇해전까지만해도 농민군의 유골이 쟁기에 걸려나오곤 했다고 마을 사람들은 전한다. 공주는 백제의 고도이자 조선시대에는 감영이 있었고 19 27년까지만해도 충남도청이 자리잡고 있었던만큼 찬란한 역사의 고장이다. 그만큼 주위에는 볼거리가 널려있다.시내에 있는 박물관과 송산리 고분군,공산성은 물론 갑사와 동학사가 있는 계룡산 국립공원이 지척이다.
  • 「당당히」 풀려난 러 쿠데타범/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오늘의 눈)

    의회의 사면결의안에 따라 소위 10월사태 주모자들과 함께 지난 91년의 소련쿠데타 주역 12명이 모두 석방됐다.국가반역죄로 최고 사형에까지 처해질 수 있는 이들이 개선장군같은 모습으로 정치범감옥인 모스크바시내의 레포르토감옥을 걸어나왔다. 당시 부통령으로 「8인비상위원회」 대표를 맡았던 겐나디 야나예프는 출옥일성으로 『정의가 승리했다』고 외쳤다.그러고는 『91년 여름 우리는 비록 미숙했지만 구국의 일념으로 거사를 했었다』고 덧붙였다. 당시 총리로 쿠데타에 가담했던 발렌틴 파블로프는 『국가화합을 위해 이번 사면은 현명한 결정』이라고 말했다.함께 풀려난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비슷한 소감들을 피력했다. 지난해 4월 이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될 당시 옐친대통령은 『법과 정의가 지배하는 국가를 세우는 각오로 이 재판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그러나 재판은 시작되면서 곧바로 코미디나 다름없는 장면들을 연출했다.피고들은번갈아가며 칭병,출정을 거부했고 그때마다 재판은 기약없이 연기됐다. 의회보수파와의 정쟁이 심화되고 국민들사이에 보수세력들에 대한 동조분위기가 확산되는 기미가 있자 이들의 재판은 의식적으로 자꾸만 연기됐다.최고회의의장으로 쿠데타에 가담했던 루키야노프는 지난해 12월 피고의 신분으로 총선에 버젓이 출마해 당선,이번 사면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이미 의정활동을 하고 있었다. 쿠데타저지에 앞장섰던 많은 러시아국민들은 이들에 대한 재판이 「법에 의해」 공정하게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맛보고 싶어했을 것이다.그러나 옐친대통령은 속절없이 재판을 끌다 사면에까지 이르게 함으로써 이 기대를 저버렸다.그해 여름 모스크바시민들이 맨손으로 탱크에 맞서며 지키려 했던 정의는 결국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풀려나는 쿠데타주범이 오히려 『정의가 승리했다』고 외쳤다.이들의 사면은 러시아의 개혁이 보수대 개혁세력간 권력대립을 넘어 보다더 깊은 곳에서 멍들어간다는 우려를 갖게한다.
  • 러,91년 쿠테타 주모자 재판 중단/대법원 “사면결정 뒷받침”

    ◎옐친­의회지도자 정국수습 논의 【모스크바 AP 로이터 연합】 러시아 대법원은 1일 지난 91년 8월 쿠데타 주모자에 대한 소를 기각,재판을 중단키로 했다고 관영 이타르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이 통신은 대법원의 이같은 조치는 지난주 러시아 두마(하원)의 이들 쿠데타 주모자와 지난해 10월 무장봉기 주동자등에 대한 사면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의회의 사면결정으로 수감중이던 알렉산드르 루츠코이 전부통령과 루슬란 하스불라토프 전최고회의의장은 지난 26일 풀려났다. 한편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석방된 루츠코이 전부통령등 무장봉기 주동자들이 또다시 투쟁을 시도할 경우 이들은 재구속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옐친대통령은 이날 이반 리브킨 하원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고 현재 시민들의 평화에 아무런 실재 위협은 없으며 자신이 사회·정치적 상황을 완전하게 장악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크레믈린의 한 대변인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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