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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당선자 베네수엘라 차베스(뉴스의 인물)

    ◎92년 쿠데타 실패로 2년 옥살이/“부패척결” 목청 빈민층 80% 몰표 우고 차베스(44)는 지난 92년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한 쓰라린 전력을 딛고 정식으로 대통령궁에 입성하게 된 인물.농촌 출신으로 육사를 거쳤다.쿠데타 당시엔 중령으로 부패한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대통령 정부의 전복을 시도했다.2년간 옥살이를 했다.공수부대 특유의 빨간 베레모가 트레이드 마크인 그는 대선 기간중 부패한 정부에 반기를 든 전 쿠데타 지도자라는 명성을 십분 활용했다. 좌파정당연합 대표로 카스트로 대통령 추종을 공언하면서 고질적 부패와 가난 척결,서민 보호 헌법 제정 등을 내세워 빈민표의 80%를 긁어모았다.하지만 정책적으로는 정통 좌우파 사이로 ‘제3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다. 92년 이후 미국 입국이 금지돼온 그는 당선이 확실해지자 베네수엘라 주재 미국 대사를 만나는 등 미국과의 관계개선 노력부터 가시화하고 있다.야구광이며 가족으로는 부인과 자녀 4명.
  • 지구촌 곳곳 선거 열풍/베네수엘라 좌파연합 차베스 대통령 당선

    ◎키프로스 의원선거 독립­EU존속 첨예 대결/가봉 대선 정권교체 놓고 부정·폭력으로 ‘얼룩’ 6일은 선거하기에 길일(吉日)(?).지구촌 곳곳에서 이날 각종 선거가 한꺼번에 치러졌다.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베네수엘라에서는 좌파 연합의 우고 차베스(44) 후보가 보수파 엔리케 살라스 로메르(62) 후보와 맞붙었다.65%가 개표된 상황에서 차베스가 56%를 득표,39%를 얻는 로메르를 따돌리고 승리가 확정적이다.차베스가 당선될 경우 군부의 반발 쿠데타설이 유포돼 7만 병력이 삼엄한 경계를 폈지만 선거는 별탈없이 끝났다. 이날 아프리카 가봉에서도 대선이 실시됐다.67년 정권을 잡은 뒤 30년 이상 장기집권해온 독재자 오마르 봉고 현 대통령이 6선에 도전했다.오마르 대통령은 지난 90년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굴복,다당제 실시를 골자로 한 개헌을 수용한 뒤 93년 5선에 성공한 인물.대통령 임기가 7년으로 늘어난 뒤 처음 치러진 이번 선거는 부정과 폭력으로 얼룩졌지만 봉고의 6선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인다.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는 시의회 의원 50석을 새로 뽑는 선거가 진행됐다. 국가두마(하원) 여성 중진의원 스타로포이토바의 암살 이후 선거폭력으로 어지러운 정국 타파를 공언하며 577명의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자유주의자들이 약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계 키프로스에서도 의회 의원 50명을 뽑는 선거가 이날 있었다.터키계 키프로스로 독립하려는 라우프 덴크타슈 대통령,키프로스가 EU(유럽연합)에 남아야 한다는 데르비스 엘로글루 총리 등의 7개 정당이 각축,복잡한 대결 양상을 보였다.
  • 다시 ‘腐敗’를 생각한다(林春雄 칼럼)

    지난달 19일자 칼럼 ‘부패학 교육을 시작하자’가 나간후 몇몇 독자가 고견을 보내주었다. 생각은 좋으나 이나라의 부패문제가 교육으로 해결되리라고 믿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라는 고언(苦言)에서부터 교육도 좋지만 우선은 제도적 장치가 더 급하다는 견해도 있었다.부패방지법을 제정하는 일에서부터 정부도 구상중인 관급공사의 공사 당사자들이 반(反)부패협정을 맺도록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이디어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부패문제 제기에서 가장큰 소득은 우리사회가 공동체 차원에서 이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그 사실이다.정부 스스로가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부패 방지대책이란 것을 내놓았고 방지법 제정도 약속하고 있다. 특별히 참여연대등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부패방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앞서도 언급했었지만 이 나라의 보통사람들은 부패문제가 자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국민들 부패의 폐해 인식해야 관리가 뇌물을 받으면 국민의 세금부담으로 돌아오고 납품업자가촌지를 제공하면 제품의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부패는 나아가 우리사회 전체를 병들게 한다는 것을 몰랐었다.시민들이 자각하고 부패의 피해의식을 갖게 될 때 감시의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시민이 나서서 감시하지 않으면 부패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한때 한국의 유식한 사람들중엔 부패예찬론을 편 이까지 있었다.적당한 부패는 돈을 돌게하는 효과가 있어서 경기를 활성화시키게 되고 결과적으로 경제전반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였다.그러나 이런 얘기는 뇌물의 단물을 즐기는 일부 사람들의 아전인수(我田引水)식 괴변이다. ○‘신흥 특권층’ 해체 시급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공동 발행하는 권위있는 계간지 ‘금융과 경제발전’은 연초 부정·부패와 경제발전에 관한 특집을 낸 바 있다.이 특집은 부정·부패가 발전 도상국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일뿐 아니라 국가경제를 기본적으로 그르치게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90년대 들어 외환 홍역을 겪거나 당하고 있는 멕시코,태국,인도네시아,한국 등이 모두 부패한 국가들이란 지적이었다.부패가 국가경제를 망치게 한다는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사회가 이토록 부패한데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중에도 지난 반세기 가까이 지속된 독재체제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미국 조지 워싱턴대의 박윤식 교수는 진단한다.그는 “우리 경제위기는 그동안 암적으로 존재해온 부패 특권사회의 부산물”이라고 잘라 말한다. 특히 “61년 쿠데타 이후 우리나라에는 실질적인 정권교체 한번없이 정치군인들과 고급 관료들을 중심으로 신흥특권층을 형성해 왔으며,이들 최고세력의 이해집단이 경제발전이란 명분을 내세워 자기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권력과 각종 규제를 통해 국민과 기업인들을 먹이사슬로 삼아왔다”는 것이다. 박교수는 “한국이 오늘의 경제위기를극복하려면 이들 부패 특권 사회구조를 먼저 해체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물론 이 나라의 부패는 지난 반세기 동안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그러나 부패를 줄이는 최선의 방책은 결국 투명한 민주사회를 건설하는 일이다. ‘금융과 경제발전’지는 부정·부패에 철퇴를 가할 절호의 기회는 국가가 위기를 당했을 때나 정권교체기라고 지적한다.지금 우리는 모처럼 정권교체를 이룩했고 IMF라는 국난을 맞고 있다.
  • 故 보카사 황제 아들 노숙자로/파리서 역·공원 돌며 연명

    【파리 AFP 연합】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황제였던 독재자 고(故)장 베델 보카사의 아들이 파리의 노숙자로 살고 있다. 보카사의 마지막 처인 조엘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올해 28살의 샤를마뉴 보카사.파리에 있는 다른 많은 노숙자들을 따라 전철역과 공원 등지를 정처없이 떠돌며 연명해가고 있다. 보카사 황제는 생전에 여러명의 처를 거느렸다.샤를마뉴의 형제 자매는 자그마치 30명에 이른다.파리를 비롯해 코트디부아르,가봉,중앙아프리카 등지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지만 교류가 거의 없다. 샤를마뉴와 같은 엄마에게서 태어난 장 르 그랑,장 세르주,마리 베아트리스,디안 카롤린과의 관계도 소원하다.친척들이 파리 서쪽 아르드리쿠르에 있는 아버지 소유의 성(城)을 횡령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샤를마뉴는 중앙아프리카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지 10년 후,그리고 군 참모총장이던 아버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지 5년 후에 태어났다. 2살 때 아버지 보카사는 종신 대통령이 됐고 다시 5년 뒤에는 황제에 즉위했다.국민들의 가난을 외면한 채 프랑스의 지원을 받으며 화려한 궁전에서 살았다. 운명이 반전되기 시작한 것은 9살 때인 79년.보카사 황제는 권좌에서 내쫓겨 코트디부아르에서 4년간의 망명생활을 한다.그리고 2년 전 숨질 때까지 극도의 빈곤에 쪼들리다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최후를 마쳤다. 보카사의 몰락은 곧바로 가문의 전락으로 이어졌고 후손들이 파리의 알거지가 된 것이다.심지어 샤를마뉴의 이복 형 장 이브스는 강도사건에 연루돼 수감되어 있기도 하다.
  • 高洪株씨 인권담당차관보 ‘금의환향’/訪韓 클린턴 공식 수행

    한국계 2세인 高洪株(미국명 해럴드 고·44) 미 국무부 인권담당차관보가 20일 빌 클린턴 대통령의 공식수행원 자격으로 ‘금의환향’했다. 한국계 중에서 미 행정부의 최고위직에 오른 인사다. 상원 인준을 거쳐 지난 13일 공식 취임한 지 1주일만에 모국인 한국땅을 밟은 것이다. 그는 방한기간에 클린턴 대통령을 보좌해야 하기 때문에 개별적인 일정은 마련하지 않았지만,한국의 인권위원회 설치문제 등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일들을 파악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高차관보는 예일대 교수 출신으로 헌법과 국제법 분야에서 미국 법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로 알려져 있다.부친은 지난 60년 주미 한국대사관 공사 등을 지내다 5·16쿠데타 후 미국에 망명한 고(故) 고광림 박사이다.
  • ‘역사’ 두렵거든 바른 길을/金三雄 주필(특별시론)

    수명의 사형수중에는 16세 소년도 떨며 옆에 서 있었다.“아플까요?”라고 소년이 묻자 “아니야,전혀 아프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부드럽게 소년을 감싸주며 ‘프랑스만세’를 외친 마르크 블로흐는 맨 먼저 쓰러졌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역사가이며 소르본대학 교수를 지낸 58세의 블로흐는 나치병사들에 의해 이렇게 처형되었다.“아빠, 도대체 역사란 무엇에 쓰느 것인가요?”란 첫마디로 시작되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린 ‘역사를 위한 변명’의 저자는 독일패망을 목전에 두고 리옹 근처의 벌판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의 삶을 접었다. 역사란 무엇에 쓰는가,역사를 우습게 아는 사람들에게 역사의 효용가치란 자장면 한그릇보다 못할지 모른다.블로흐는 그 명제를 완성하지 못한채 비명에 갔지만 역사에 대한 질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문을 남긴다. 이와 관련,‘시간은 세계사의 심판관’(헤겔)이란 말은 명언이다.시간이 축적되면 역사가 되고 역사를 쪼개면 시간이 된다.신을 믿지않고 종교를 부정하더라도 시간과 역사만은 믿지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간과 역사만큼 진실과 거짓,정의와 불의를 공정하게 판별해주는 심판관은 다시없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통곡도, 백이숙제의 원망도 시간이라는 역사가 모두 해결해주었다.단종의 절규와 사육신의 분노도 시간이 모두 들어주었다.천도(天道)마저 침묵한 사마천의 아픔,백이숙제의 억울함, 단종과 사육신의 피맺힌 한을 천도를 대신하여 시간이 풀어주고 역사가 옳게 평가했다. ○당대사를 보라 당장 우리시대의 당대사를 살펴보자.나라를 판 대가로 부귀영화를 누리던 매국노와 변절자들이 ‘친일파’로 지탄받아 후손들이 조상을 원망하면서 살고 쿠데타와 양민학살을 일삼던 살인자들은 떳떳하게 사회활동을 하기 어려운 반면 그들에 저항하여 몸을 던졌던 분들은 ‘민주열사’로 대접받는다. 어찌 천도가 무심하며 역사가 눈멀었다고 하겠는가.아직 친일파와 양민학살 세력이 활개치고 있지만,그들은 명분과 국민의 눈총에서 점차 설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시간은 한국사의 심판관이기도 하다. ○대한매일의 역사관 ‘生의 권력의지’를 필생의 중심개념으로설정한 니체가 시간의 가치를 탐구한 것은 당연하다.그는 인간의 삶의 시간성을 동물의 무시간성과 구별하여 “그대곁을 지나가는 가축을 보라.저들은 내일이 무엇이고 오늘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다만 고락에만 매달려 있으니 곧 그들의 순간의 일편(一片)에만 매달려 있기때문에 우수도 권태도 알지 못한다”고 개탄했다.그러면서 니체는 인간의 숙명적 기능을 ‘어제를 기억하고 내일을 아는 것’이란 명쾌한 해답을 제시했다. 시간과 역사의 가치를 잊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권력을 탐하거나 물욕에 빠지는 사람,퇴폐행각을 즐기는 부류,곡필아세를 명예로 착각하는 지식인이 너무 많다.이런 현상은 시간 역사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순간의 쾌락과 동물적 포만을 즐기려는 반시간 반역사적인 ‘인간모독’이다. 1세기전 국운이 바람앞의 촛불과 같았을 때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장도빈 등 대한매일신보 주필을 맡았던 선각자들은 국권수호에 온몸을 던졌다.이들은 지사적 순결주의, 도덕주의, 순교주의까지 지닌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거룩한 언론인들이었다.이들의 한결같음은 항일구국운동가,정론언론인,바른 역사학자라는 일체성이다.아마 이들이 믿었던 신이 있었다면 ‘역사’또는 ‘역사법칙’이 아니었을까. 당시 많은 권력자,지식인들이 시류를 좇아 매국의 대열에 설때 이들 선각들은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역사의 대열에 섰던 것이다.白凡의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정도(正道)냐 사도(邪道)냐가 생명이라는 것”도 바로 이런 역사법칙의 준거라 할 것이다. 역사를 흔히 대하장강(大河長江)에 비유하지만,역사는 모든 오물을 받아들여 스스로 썩는 강물과는 다르다.역사란 받아들일 것은 받고 배척할 것은 배척하면서 종국에는 반드시 바르고 옳게 회귀하는 것이 역사,그 대하장강의 법칙이고 엄숙성이다. ‘역사’가,그 평가가 두렵거든 진실과 정도를 걸으라.이는 바로 ‘대한매일’이 추구하는 역사관이며 마르크 블로흐가 꿈꾸었던 ‘역사의 쓰임새’이기도 하다.
  • ‘국면전환용 영수회담’ 탈피를/柳敏 기자·정치팀(오늘의 눈)

    여야 정치인들은 ‘꼬인 정국’을 총재간 회담으로 풀려고 한다. 많은 국민들 역시 총풍(銃風)·세풍(稅風)사건으로 얼룩진 정치권의 대립이 총재회담을 통해 풀리기를 바란다. 정치권과 국민들이 여야 총재회담을 정국해법의 도구로 자연스레 인식하고 있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5·16쿠데타,12·12쿠데타 등으로 정권을 잡은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우리의 정치는 오랫동안 ‘영수(領袖)결단에 의한 정치’가 지속됐다. 경색정국의 고비마다 ‘영수’들은 조직이나 정책과정보다는 ‘결단’에 의존했다. 87년 당시 여권이 대통령직선제를 수용한 6·29선언,85년 학원안정법 철회 등이 그랬다. 가까이는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가 ‘국회내 투쟁’을 선언함으로써 정국돌파구를 마련한 적이 있다. 최근 여야가 총재회담의 분위기가 됐느니 안됐느니 티격태격하는 것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다. 또 李會昌 총재가 총재회담에 의존하려 하는 것도 나무랄 수만은 없다. 李총재로서는 ‘실권’을 가진 金大中 대통령을 만난다면 문제를 훨씬 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이제 바뀌어야 된다고 본다. 한순간의 ‘영수결단’보다는 과정과 조직을 소중히 여기는 정치가 돼야 한다. 오늘날의 민주정치는 정당정치다. 정당을 통해 권력이 창출되고 정당메커니즘을 통해서만 권력의 정당성이 부여된다. 시대도 바뀌었다. 지도자의 결단에 의존한 권위주의시대를 벗어나 시민정치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따져봐야 한다. 왜 지금의 정당들은 국면전환을 꾀할 효과적인 수단을 사용하지 못하는가. 왜 난국을 풀기 위한 대화다운 대화,협상다운 협상을 못하는가. 왜 툭하면 사태의 해결을 국회보다는 상부에만 의존하는가. 여당인 국민회의는 야당의 ‘총재회담 건의’를 검토해야만 하는가 등등. 여야가 ‘물밑대화’에서 약속한 것들이 깨졌다고 야단법석이다. 물밑대화도 따지고 보면 권위주의시대에 ‘밀실정치’의 방편으로 악용돼 왔다. 떳떳한 대화였다면 그 합의사항을 깼느니 안 깼느니 하는 논란은 없을 것이다. 집권 여당으로서,우리 정치의 한 축인 ‘파트너 야당’으로서 각자 책임을의식하고 있다면 정당 민주화와 함께 ‘국회 안에서의 정치’를 돌아볼 때가 됐다고 본다.
  • ‘더 그리운 朴正熙’(林春雄 칼럼)

    매년 10월26일은 이른바 ‘십이륙’이다.“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는 당시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현직 대통령이 쓰러진 날이다.금년에도 신문들은 이날 동작동 국립 현충원에서 있었던 고(故)박정희 대통령 19주기 추모행사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런데 26일자 어느신문은 ‘IMF체제속… 더 그리운 朴正熙’라는 제목으로 관련 기사를 다루고 있다.정론지임을 자처하는 신문에서 말이다.가슴 아픈 일이다.이른바 ‘박정희 신드롬’이란 것이 어제 오늘에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이쯤되면 사회통념이나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뿌리째 뒤틀리는 일이어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자민련에서는 ‘박정희 되찾기 운동’도 추진하겠다고 한다. 이 나라 역사상 박 전 대통령만큼 평가가 어려운 인물도 흔치 않을 것이다.박 전대통령은 이땅의 가난을 물리쳐준 인물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사람사는 일중에 먹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는가.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가난을 추방해준 그는 분명히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다. ○잘못된 현실이 향수 불러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압살한 독재자’다.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강압적으로 3선 개헌을 했으며 역사의 시계바늘을 한참이나 거꾸로 돌려놓은 ‘유신’(維新)을 강행한 인물이다.그가 집권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으며 얼마나 많은 민주인사들의 인권이 손상됐는가.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박정희 평가는 전혀 다를 수 있다.그렇다고 박정희 평가의 이중성(二重性)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평가의 혼란은 그의 족적과 업적에서 오는 복잡성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시대적 상황도 적절치 못했다. 최근 간행된 ‘박정희의 유산’을 쓴 김재홍씨는 “오늘날 역사의 아이러니는 문민시대의 정치인들이 씨를 뿌렸다”고 말한다. “목불인견의 문민정치가 군인정치의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고 보고 있다. 그는 “박정희 향수의 실체를 단순논리로 재단할 수는 없는 일이나 복고주의의 속성이 그렇듯이 진보의 가치를 신봉해온데 대한 배신감이 그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 같다”고 진단하고 있다. 곤혹스런 현실이 복고에의 향수를 부른 일은 역사적으로도 얼마든지 있다.나폴레옹 황제를 맞아들인 프랑스 혁명이 그렇고 나치즘을 부른 바이마르 공화국이 그렇다.‘박정희 신드롬’의 위험성이 바로 여기 있다. 박정희 평가가 박정희 자신의 행적과 관계없이 잘못된 현실이 그에 대한 향수를 부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말이다.그리고 그 결과는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우리는 지금 IMF체제에 놓여있다.우리가 이 경제난국을 현명하게 극복치 못하게 되면 정치적으로 엉뚱한 결과가 나타나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도 상상해 볼수 있다. ○이중적 평가로 가치관 혼란 그런 점에서 박정희 평가작업은 중요하다.어느 한 시각에서 만이 아니라 종합적 평가가 나와야 한다.어느 점은 잘못됐지만 어느 부분은 잘했다는 식의 평가는 가치체계에 혼란만 가중시키게 된다.평가에 어려움이 있으면 원칙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무엇보다 그는 군사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이는 폭력이다.유신은 시대착오적 역사의 반동(反動)이었다. 그에게 국가 산업화 업적이있다고 해서 보다 원초적인 흠결이 가려 지거나 희석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는 분명한 독재자였다.무엇으로도 독재를 미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박정희 신드롬’은 위험하고 반 역사적이다.
  • 진정한 영·호남 화합을 위해/崔弘運 논설의원(대한포럼)

    우리 시대의 화두(話頭)는 단연 개혁과 민족화합이다.오늘의 국난(國難)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선진국 대열에 들어 21세기를 주도할 수 있기 위해서는 분명히 이 과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이는 바로 우리 민족의 사활(死活)이 걸린 문제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각 분야에서 더디지만 개혁과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고 화합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본다.이 가운데서도 민족화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최우선과제가 아닐 수 없다.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져 통한(痛恨)의 반세기를 보낸 것만 해도 억울한데 동·서로 일컬어지는 영남과 호남이 대립하고 충청지방까지 지역색을 드러내고 있어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지배계층 권력 다툼의 산물 지역갈등의 뿌리를 찾자면 그 옛날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신라가 백제와 동맹을 맺어 고구려를 쳤음에도 백제의 옛 땅인 한강지역을 차지했고 심지어 당(唐)나라와 연합,백제를 점령해 준식민지 정책을 펴면서 오늘의 영·호남 갈등은 시작된다.고려시대에도 호남지역에 대한 지배자들의 압박이 극심했다. 조선시대 역시 영남사림(嶺南士林)들은 권력집단에 속해 있었으나 호남은 유배지로 이용됐다.그러나 이런 불균형과 편견은 지배계층인 양반들의 권력다툼이었을 뿐 피지배층인 평민들에게는 전혀 지역감정이 없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일제시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은 식민통치수단의 하나로 조선시대 양반들이 유포한 일방적인 편견과 감정을 일반화하고 더욱 조장하며 심화시켰다.이 편견과 감정이 지역패권주의로 발전하고 이토록 풀리지 않는 적대감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60년대 이후다.朴正熙 전 대통령은 군사쿠데타에 의한 집권이라는 콤플렉스를 딛고 장기집권으로 가기 위해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한 국가경영을 꾀하기 시작했다.이는 곧바로 편중인사로 나타났다.1공화국때는 장·차관 244명 가운데 서울과 경기,경상도,전라도 출신이 각각 25.6%,18.8%,6.6%였으나 3·4공화국때는 각각 14%,30.3%,13.2%로 바뀐 사실이 이를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다.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짓밟고 집권한 5공화국때의 편중인사는 더욱 심화돼 18%와 43.6%,9.6%가 되고 6공화국 들어서는 20%,41%,12.7%가 된다.문민정부가 들어서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죄·용서하는 마음 가져야 건국이후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정권교체가 이뤄졌다.이번에는 반대로 호남편중인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이번 국정감사를 앞두고 한나라당 李海鳳 의원이 바로 그 점을 지적해 국민회의측의 반박이 이어졌고 이에 앞서 야당 총재권한대행을 지낸 李基澤씨도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을 해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두 지역의 골이 이렇게 깊게 팬 이유는 바로 정치권력의 야욕 때문이었는데 그들은 아직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정치권의 다툼과는 달리 최근 두 지역의 자치단체나 민간인,학생 등의 교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것은 다행이며 반갑다.그러나 그 많은 행사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화합을 위해서는 사죄하고 용서하는 자세가 앞서야 한다.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청할 때 화해는 시작된다.미래는 그렇게 함께 손잡고 나아가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시대다.
  • 부패한 지도층 퇴진 필수적/李成株 언론인(기고)

    ◎철저한 분석과 검증통해 부정적 비판인사 골라내야/지역·친소 등 정서 초월/진정한 새 시대 동지 찾을때 ‘국민의 정부’를 표방한 金大中정권의 탄생은 사실 金대통령의 원숙한 인간성으로 그 역사적 성격이 겸손하게 자리매김되고 있다.사선을 넘나든 그의 개인적 역정이나 군사 쿠데타로 시작된 폭력적 근대화 작업이 이제 민주방식으로 시장경제를 정상화시킨다는 데까지 이른 것을 생각하면 역사의 단계론으로 엄청난 수식이 필요할 것이다. 중요한 역사 발전의 의미를 갖고 탄생한 金대통령의 새정부는 IMF 빚덩이를 떠안고 파산국가를 면하려 동분서주하고 있다.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칫 한국사회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간과하거나 몇가지 현상적인 위기의 극복에만 매달려 역사적 사명에 대한 통절한 인식이 결핍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다행히 내년부터는 조금씩이나마 경제가 호전되리라는 전망이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따라서 집권 전에 작성한 100대 과제 등을 다시 점검하면서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개편·개혁작업을 이제 본격적으로 착수해나갈때라고 본다.현정부의 개혁 청사진은 개선해야 할 현상들을 다수 선정해놓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극소수의 책임자들만이 개혁을 위해 발을 구르고 있는 것 같다.나머지는 적당히 눈치나 보면서 시일을 보내고 있으며 아마도 내년에 경제가 좀 나아지면 지금보다도 긴장이 더욱 느슨해질지 모른다.상황이 이렇게 돼버리면 모든 것이 유야무야된다.이 시대의 결정적인 중요성은 만약 현정부에서 총체적 개혁이 마무리되지 못하면 미래에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金대통령 이후에 적당주의에 젖은 수완있는 지도자야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1,000년 이상 계속된 전제정치에서 누적된,그리고 최근의 천민자본주의·관료자본주의에서 번진 이 사회의 모든 부조리를 핵심에서 인식하고 사회의 질적 전환을 도모할 원칙이 확고한 지도자를 기대할 수 있을까.하긴 영명(英明)한 지도자에게 의존하기보다 시민계급의 머리와 손으로 사회개혁을 추진한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지도자는 국가 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체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조직의 분위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그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수많은 구성인원의 자세가 달라진다.이런 점에서 한국사회의 질적 전환을 가져오려면 현재의 지도급 인사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비판(긍정적 또는 부정적)이 있어야 하고 부정적 비판이 우세한 인사의 퇴진이 필수적이다. 아첨꾼 기회주의자,영악한 출세주의자,부패한 배금주의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승승장구했고 그 결과 조직의 일선부서가 얼마나 심각히 오염됐는지 의식있는 사람들은 안다.우리사회가 부패의 광맥임을 실감하는 국민은 소수이고 그것이 사회발전에 얼마나 파멸적인 영향을 주는지 아는 사람은 더욱 적다. 경력·지역·친소등 일차집단의 정서를 초월한 진정한 새 시대의 동지(同志)를 찾아야 한다.정부가 앞장서야 민간조직도 영향을 받아 전반적인 새 기풍이 조성될 것이다. 2차대전후 프랑스의 드골은 대독(對獨) 부역자들을 숙청할 때 “독초는 뿌리째 뽑아야 다시 돋지 않는다”고 했다.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포진하고 있는 독초들,그리고 그 독초들을 무성하게 만든 정신구조.이것은 혁명적 결단없이 척결되지 않는다.이 결단은 저차원의 보복이 아니다.진정한 문명사회를 위한 토양가꾸기이며 그 토양에 새로운 씨앗을 심는 일이다.
  • 장준하 영전에 금관문화훈장을(金三雄 칼럼)

    우리나라처럼 훈·포장이 원칙과 기준 없이 수여되는 경우도 흔치 않을 것이다.독재정권 시절 채찍과 더불어‘당근’의 대용이 되고,김영삼 정권 때까지도 대통령이 국무위원이나 청와대비서실·경호실 요원들에게 나눠주는 선심용이었다. 원칙과 기준 없이 남발되다 보니 막상 받아야 할 사람이 제외되거나 수상하더라도 격에 맞지 않는 경우가 적지않았다. 張俊河 선생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하는 문제로 파문이 일고 있다.문화관광부는 고인이 생전에 사상계(思想界)를 발간하여 한국 잡지문화 발전에 끼친 공로를 높이 평가해 11월1일 잡지의 날에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고 한다. 문화관광부는 당초 잡지협회의 추천을 받아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줄 것을 추진했으나 청와대와 행정자치부의 협의 과정에서 은관문화훈장으로 훈격(勳格)이 한 단계 낮아졌다는 것이다. 어느 부처의 의견 때문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훈장 격하는 크게 잘못된 결정이다.다른 상이면 몰라도‘잡지문화 발전’에 끼친 공로라면 장준하와 사상계에 금관문화훈장을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상계는 우리 잡지 역사에서 단연 선구적 정론지였다.6·25전란으로 폐허가 된 1950년대에 청년과 지식인들에게 자유민주주의 가치관과 폭넓은 교양을 심어준 복음서 역할을 하였다. 사상계의 정론과 비판정신은 4월혁명의 기폭제가 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5·16 후에는 박정희 독재에 대항하여 새로운 전위가 되었다.하나의 월간 잡지가 아닌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한 것이다.그렇다고 저항 일변도의 정치 잡지였던 것은 아니다. 동인문학상으로 상징되는 문학운동과 신인 발굴,지방순회 문화강연회 등 사상계 영역은 미치지 않은 데가 없었다.우리 잡지문화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다. ○정론잡지의 선구자 사상계를 이끈 선구자는 장준하 선생이다.장준하가 누군가.식민지 시절에는 총을 들고 왜적과 싸우고,해방 후에는 金九 선생 비서로서 건국운동에 헌신하고,이승만과 박정희 독재시대에는 펜을 들고 자유민권 수호에 앞장서고,유신체제가 선포되면서 온몸을 던져 민주회복과 통일운동에 헌신하다가 암살 당한 민족 지도자다. 그는 박정희 정부가 북한특사와 통일원장관을 제의할 때 친일 전력과 쿠데타 정권을 이유로 이를 거부하고,군사정부의 훈장 제의도 같은 이유로 거절하였다.올곧게 산 지사적 지식인의 전형을 살피게 된다. ○왜곡 잡지계에 경종 계기를 고인에게는 노태우 정부가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고 1962년에는 필리핀에서 막사이사이 언론문학 부문상을 수여한 바 있다.때문에 새삼 문화훈장추서 문제로 논란이 생긴다면 고인에게 욕주는 일이 될지 모른다. 그렇지만 유족의 항의대로 고인이 생전에 추구하던 50년 만의 정권교체가 이뤄져 국민정부가 출범했는데,정부가 금관·은관·보관훈장 중 기껏 은관문화훈장이나 주겠다는 것은 격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예우에도 미치지 못하고 사상계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싶다. 정부는 엄격한 기준과 원칙에서 수상자와 훈격을 결정해야 한다.오늘 열리는 국무회의는 장준하 선생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여 업적이 평가되고 대접받는 질서를 보여줘야 한다. 그리하여 이를통해 왜곡과 모해로 지탄받는 잡지계 일각에 경종이 되고 장준하의 정론정신이 모든 언론인의 귀감이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사악한 ‘적과의 동침’/李孝成 성균관대 교수·언론학(서울광장)

    남한에서 쿠데타 때마다,정권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또는 선거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차림표가 북한의 위협이다.우리는 그때마다 휴전선에서 또는 그밖의 장소에서 북한의 도발적인 행동을 전해 듣거나 국내외에서 대규모 북한 간첩단 사건 발표룰 접하게 된다.우리 국민들은 정권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북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데도 ‘일부 몰지각한’ 국민들이나 학생들이 소요를 일으킨다는 비난을 들어왔다.또 쿠데타나 기타 비상조치때마다 북한의 남침 위협이 급박했다는 보도를 접하곤 하였다.그리고 선거 때에는 그런 발표에 놀란 유권자들이 집권당에 표를 몰아주었다. ○기득권 지키려 뒷거래 과거에는 이러한 북한의 위협을 단순한 언론조작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과거와 같이 철저한 언론통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언론조작으로 북한의 위협을 만들어내기는 어렵다.그래서 이제는 북풍조작사건이나 북한총격유도 모의사건에서 보듯이 북한과 거래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북한으로 하여금 비상한 움직임을 연출하도록 부탁하여사건을 조작하는 것이다. 이런 사건조작에 의한 북한의 위협은 실제 사건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훨씬 더 잘 먹혀들게 될 것이다.그래서 북한에 상당한 대가를 치르고 북한의 위협을 선전할 수 있는 적당한 사건을 연출해 주도록 요구하는 적대적 협력관계까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국민에게는 북한에 적대감을 일으키고 자신들은 북한과 뒷거래를 하는 이런 기만적인 적과의 동침은 사악하기 이를 데 없다.남북한의 집권세력들이 이러한 사악한 적대적 협력관계에까지 가게 된 것은 정당한 방법으로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이 떳떳하지 못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민들을 억압하거나 기만하지 않으면 안 된다.그래서 그들은 겉으로는 북한을 적대시하면서도 속으로는 북한과 내통하는 적과의 동침관계 즉 상대가 필요로 하는 적대성을 적당히 연출해주는 협조관계를 발전시킨 것이다.지금까지 남한의 정권은 이런 기만적인 적대적 협조관계로 기득권을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었다. ○국민 이익 위한 정권돼야 이제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남북한 정권들의 이러한 기만적인 관계는 타파되어야 한다.그 타파는 남북한의 정권들이 자신들의 이익이 아니라 진정한 국민들의 이익을 위한 국민의 정부가 될 때 가능하다.불행히도 북한의 정권이 진정한 국민의 이익을 위한 정부가 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다행히 남한에서는 지금까지 남북한 정권들의 적대적 협조관계의 최대 피해세력이 정권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생겼다.‘국민의 정부’를 표방한 김대중 정권은 남북관계에서도 그 이름에 걸맞게 진정으로 국민의 이익을 위한 정권이 되어야 한다. 우리 집권세력은 이제 남북관계를 정권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통일이라는 국민적 차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집권세력은 더 이상 정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적과 내통하여 국민을 속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먼저 과거 적과 내통한 자나 내통을 모의한 자는 철저히 가려내어 엄벌에 처함으로써 누구도 다시는 그런 시도나 모의를 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 “美 피노체트 인도 반대”/英 가디언紙 보도

    【브뤼셀 연합】 미국이 런던에서 체포된 칠레의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스페인에 인도하는데 반대,영국 정부가 난처하게 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지가 20일 보도했다. 미국은 피노체트의 집권당시 인권침해를 단죄하려는 스페인에 넘길 경우 피노체트가 지난 73년 군사 쿠데타로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리고 집권한 과정에서 미국이 한 역할이 드러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편 영국 정부에 피노체트 체포를 요구한 후 신병인수 작업에 들어간 스페인의 발타자르 가르손 치안판사는 영국 정부에 제출한 피노체트 체포 영장근거 서류를 강화해 당초 79명보다 늘어난 94명에 대한 학살과 고문,테러기록을 영국 당국에 제출했다.
  • 독재자의 말로/蔣正幸 논설위원(外言內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지난 73년부터 17년동안 남미 칠레를 통치하며 무자비한 납치·살해·고문을 자행한 악명 높은 군사독재자이다.90년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끄떡없이 지내고 있던 그가 신병치료차 런던에 갔다가 영국경찰에 체포돼 국제적 관심사가 되고있다. 82세 노독재자가 체포된 것은 독재시절 80여명의 스페인 국적인을 살해한 혐의로 스페인 사법당국의 요청에 따른 것.스페인의 요청으로 영국경찰이 체포한 피노체트의 신병은 앞으로 어떻게 처리될 것이며 그를 체포한 영국의 윤리외교와 유럽통합체의 사법공조 등이 당장 관심의 대상이다. 거기에다 막상 당사국인 칠레는 상원의원 신분인 피노체트의 외교관특권을 무시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영국에 강력한 항의를 하고 그의 석방을 위해 특사까지 파견했다니 관심은 더할 수 밖에 없다.그의 체포에 대한 국제적인 반응도 ‘정의의 승리이자 독재자들에 대한 경고’라는 환영과 함께 강대국의 횡포라는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관심의 초점은 역시 늙은 철권 독재자의 말로가 어떻게 되느냐에 모이고 있다.73년 군참모총장으로 선거에 의한 살바도르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부를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집권한 피노체트가 장기집권을 위해 저지른 가혹한 인권탄압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악랄했다.그의 집권기간동안 3,000여명이 살해되고,흔적없이 사라진 실종자만도 1,000여명에 10만여명이 고문으로 불구자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좌익소탕을 명분으로 반체제인사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의회와 정당은 아예 없애버렸다.피노체트의 칠레는 공포가 휩쓴 암흑시대의 대명사였다. 이처럼 악명높은 피노체트였지만 90년 그가 물러나고 민정으로 복귀한 칠레정부도 막상 그를 어쩌지 못했다.그가 군 총사령관직에 그대로 머물며 권력을 행사했고 면책특권을 가진 종신 상원의원 신분을 갖는등 하야 이후에 철저히 대비했기 때문이다.그런 피노체트를 영국이 정의의 이름으로 체포한 것이다. 피노체트의 신병이 어떻게 처리되든 그의 체포로 분명해진 것이 있다.독재자는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고 말로는 비참하다는 사실이다.그동안 독재자들의 은신처로 알려졌던 유럽도 이제는 더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다. 이제 피노체트의 운명은 냉전 종식이후 이념보다는 인간의 생명과 인권을 더욱 존중하는 국제조류의 결정에 달려있다.체제나 이념,그 무엇보다 인권이 우선하는 21세기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사건이다.
  • 피노체트는 누구/73년 유혈쿠데타로 집권… 17년 철권통치

    ◎반대파 무자비한 탄압… 4,309명 사망·실종 【산티아고(칠레) 외신 종합】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73년부터 90년까지 칠레를 철권 통치한 독재자. 1915년 칠레의 항구 도시인 발파라이소에서 태어나 18세 때에 사관학교에 들어가 지정학을 공부했다. 73년 당시 아옌데 대통령에 의해 군 총사령관에 임명됐고 그후 한달만에 유혈 쿠데타로 아옌데 대통령을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88년 집권 연장을 묻는 국민투표가 압도적 표차로 부결되자 마지못해 다음해 대통령 선거를 실시했으나 파트리시오 아일윈 후보가 당선되는 바람에 90년 3월12일 퇴임했다. 그러나 재임중에 개정했던 헌법에 따라 면책특권이 부여된 종신직 상원 의원에 취임하는 등 퇴임 후도 미리 대비를 해놓는 치밀함을 보였다. 피노체트는 칠레식 독재 모델로 경제성장을 달성해 부유층으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경제건설과 공산주의로부터 칠레를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좌파 등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해 악명을 떨쳤다. 관계 보고서에 따르면 그의 집권기간에 3,197명의정적들이 살해됐고 보안군에 의해 체포 구금됐다 실종된 사람도 1,102명에 달했다. 또 수십만명이 체포,고문당하거나 외국에 망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부패의 국가경쟁력(張潤煥 칼럼)

    지난 70년 필자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월남등 몇몇 동남아 국가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 나라들은 하나같이 부패해 있었다.그러나 당시 필자는 동남아 국가들이 대부분 개도국(開途國)이기 때문에 부패 또한 과도기적 현상쯤으로 가볍게 보아 넘겼다.한국도 부패에서 예외는 아니지만 개도국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근거 없는 우월감을 가지고 말이다. 당시 월맹과 전쟁을 치르고 있던 월남의 부패상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돈이면 안되는 일이 없다고 했다.결국 월남은 총체적 부패로 패망하고 수도 사이공은 ‘호치민시’가 됐다.75년 4월30일 월남이 패망하자 朴正熙 대통령은 엉뚱하게도 긴급조치 9호를 발동했다.그러나 그는 유신헌법을 철폐했거나 절대권력에 따르는 ‘절대부패’의 싹을 잘랐어야 했다. ○‘墨筆代’라는 급행료 필리핀은 당시 마르코스가 통치하던 시절이었으니 그 부패상은 말할 것도 없다.마르코스가 국민의 힘에 몰려 권좌에서 물러난 뒤 스위스 은행에 빼돌려 놓았던 몇십억달러의 비자금이 드러났고,영부인 이멜다는 구두가 몇백 켤레나 된다고 해서 세계적인 조소거리가 됐다.아키노와 라모스 정권을 거친 오늘날의 필리핀에서 마르코스 일족이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아키노나 라모스의 민주화가 현상적 민주화에 그쳤을뿐,구조화된 부정부패의 뿌리를 뽑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독재의 반대어는 민주화가 아니라 부패구조의 척결이라고 해야 옳다. 70년의 인도네시아는 65년 공산당의 9·30 불발 쿠데타를 진압한 우익 군부의 실력자 수하르토장군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다.군사정권인지라 장차관은 물론 도지사와 시장 군수,심지어 산림청장 같은 직책마저도 현역 군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5·16군사쿠데타 당시 한국을 다시 보는듯 했다.朴正熙 소장이 그랬듯이 수하르토도 반공과 빈곤퇴치,그리고 ‘부정부패의 척결’을 혁명공약으로 내걸고 있었다.자카르타에서 만난 한 화교(華僑)는 공직 사회에 만연된 극심한 부패상을 ‘묵필대’(墨筆代)라는 한마디로 요약했다.묵필대란 ‘잉크값’이라는 중국말로 공무원들에게 바치는 급행요금을 의미했다. 관청에서 서류 한장을 떼더라도최말단에서부터 주사·계장·차석·과장·부국장·국장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묵필대를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다.그것도 공공연하게 말이다.수하르토가 그동안 얼마나 빈곤을 퇴치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했는지는 잘 모른다.다만 수하르토가 국민의 힘에 몰려 권좌에서 밀려난 뒤 부패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으며,인도네시아 또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체제에 들어갔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다. ○IMF 구제금융의 뿌리 ‘사돈 남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아시아의 몇마리 용들 가운데 선두를 달린다던 한국은 구제금융에서도 선두주자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정치권과 재계와 공직사회가 부패의 고리로 서로 뒤엉켜 나라를 송두리째 부도낸 마당에 더이상 할 말이 있는가.동남아 국가들을 내려다 보았던 그때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뒤늦게 한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국가경쟁력도 가려가며 높아야 한다는 사실이다.한국을 포함해서 앞에 말한 나라들은 적어도 ‘부패의 국가경쟁력’에서는 세계 상위권에 속한다.그러나 엉뚱하게 높은 부패의 국가경쟁력이 바로 구제금융을 불러온 뿌리다.
  • 코소보 사태 평화해결 실마리/유고,유엔결의 준수 동의

    ◎클린턴 “신뢰성 의구심… 완전항복을”/홀브룩­밀로셰비치 4일간 최종담판 【워싱턴·베오그라드 AP 연합】 공습 직전까지 갔던 코소보사태가 극적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대통령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군사적 위협에 굴복,코소보주의 알바니아계에 대한 7개월에 걸친 탄압을 종식하라는 유엔의 결의를 준수하기로 전격 동의했다고 12일 밤 미국 백악관 관리들이 전했다. 이 관리들은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또한 약속 준수를 보장하기 위해 2,000명의 감시단 배치에도 동의했다고 말했다. 공군력을 이용한 감시단 보호활동과 코소보주의 자치선언에 대해서도 합의가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나토는 리처드 홀브룩 특사가 밀로셰비치 대통령과 최종담판을 벌일 수 있도록 4일간의 유예기간을 허용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1199호)내용의 완전 준수를 약속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밀로셰비치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유고에 대한 군사적 압박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해 코소보주에 평화가 완전 정착될 때까지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할 뜻임을 내비쳤다. 홀브룩 특사는 13일 베오그라드로 가 밀로셰비치 대통령과 협상을 재개한다. ◎유고 ‘무릎’ 꿇기까지/낮부터 새벽까지 양보없는 밀고당기기/공습 임박하자 밀료셰비치 힘없이 굴복 새로운 한주를 시작하는 12일 새벽 신유고 수도 베오그라드 주재 미국 대사관에는 숨막히는 긴장이 감돌았다. 밀로셰비치 대통령과의 회담장에서 밤을 꼬박 세우고 돌아온 리처드 홀브룩 미국특사가 밀실에 틀어박혀 세시간째 전화통을 붙들고 백악관과 통화중이었기 때문이다. 날이 밝으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16개국 대사들이 대 유고 무력사용을 승인하기 위해 브뤼셀로 모여든다. 승인이 떨어지면 미사일 발사장치의 빨간단추는 웨슬리 클라크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 손가락 아래로 들어가게 돼 있다. 백이면 백 만장일치 승인이 확실한 상황. 지난 일주일간 고집쟁이 밀로셰비치의 마음을 돌려놓으려 홀브룩은 갖은 애를 써왔다. 주중에 벌써 60여시간에 걸친 세차례 담판이 이어졌다. 노련한 홀브룩도 10일 오후 회담장을 나설 때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어제,오늘 아침,지금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토와 미국은 격분했다. 남은 것은 전쟁뿐이라고 배수진을 쳤다. 11일 홀브룩은 회담장으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발길을 옮겼다. 6시간에 걸친 낮 회담이 저녁 식사후 재개돼 이튿날 새벽 한시반에야 끝났다. 와중에 미국은 전투기 70대와 토마호크 미사일 발사용 전투함 등을 탑재한 대규모 운반함을 지중해에 배치하고 크루즈 미사일 발사용 B­52 폭격기를 영국으로 이동했다. 공습이 곧 시작되는 듯했다. 나토 국가들도 12일 무력사용을 승인,긴박감은 절정에 올랐다. 하지만 상황은 싱겁게 끝났다. 12일 저녁 늦게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밀로셰비치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 준수 약속을 공표한 것. 코소보 휴전,2,000명 규모의 국제사찰 등을 모두 받아들이며 밀로셰비치의 버티기는 여기서 끝났다. ◎리처드 홀브룩 미국 특사/외교협상의 명수/월남 평화회담 맹활약 유태계 독일인 이민3세. 뉴욕 태생으로 브라운 대학을 졸업한 후 약관 21세에 국무부에 입성,직업외교관으로서의 길을 걸었다. 60년대 말 파리 월남 평화회담의 미국 대표단으로 활약했으며 코소보 사태이전 보스니아 사태때도 특사를 역임,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을 정도로 유고문제에 뛰어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한때 관계에서 물러나 컨설팅 회사의 부사장과 은행의 중역 등을 역임하는 등 야인으로 지냈으나 클린턴 정부 출범후 주 독일대사로 복귀,국무부 차관보에까지 이르렀다. ◎밀로셰비치 신유고 대통령/“발칸의 도살자”/87년부터 쿠데타로 집권 강경한 민족주의자로서 89년 세르비아 대통령이었을 당시 ‘대세르비아’를 주창하며 코소보주의 자치권을 박탈,코소보 분리독립운동의 불씨를 낳았다. 정치 명문가 출신인 아내와 처가의 후광으로 일찍 권력 핵심에 다가갔으며 87년 옛 공산당내 정치선배들을 쿠데타로 몰아내고 마침내 현 집권 사회당의 당권을 장악했다. 특히 암투와 계략 등 정치술수에 뛰어나다. 그의 백기투항에도 불구하고 서방세계가 계속압박을 가하는 것은 약속 깨기를 밥먹듯 하는 전력 때문이다. 아내 미리아나 마르코비치는 나치에 항거한 국민적 영웅의 딸이다.
  • 양국정상 공동회견 요지

    ◎金 대통령 “天皇 방한 가능토록 분위기 조성”/오부치 총리 “공동선언 존중 왜곡발언 않을것” 【도쿄=梁承賢 기자】 金大中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는 8일 한·일 양국의 과거사 정리 등을 담은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위한 공동선언’을 채택한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 모두 발언을 통해 “공동선언 채택은 새 시대의 한·일 우호협력의 장전을 마련한 것으로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 만족해했다. 金대통령는 “오부치 총리대신과 양국의 경제구조조정 노력의 성공과 아시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협력해가기로 했다”면서 오부치 총리의 방한을 공식 초청했다고 덧붙였다. 오부치 총리는 “일본정부를 대표해서 우리나라가 과거의 일정기간 한국 국민에게 식민지 지배에 의한 커다란 피해와 고통을 안겨준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그것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의 사죄를 했다”고 소개하고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일 관계의 개선을 향한 정치적 의지를 표명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만족하며,새로운 파트너십의 실행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공동회견 요지. ­일본은 과거에도 사과성 발언을 했으나 번번이 이를 왜곡하는 발언이 나와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오부치 총리=일본정부는 공동선언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인정했으며 金대통령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이번에는 양국 정상이 문서를 통해 서명했다는 데 의미가 큽니다.앞으로 이를 왜곡하는 발언은 하지 않을 것이며,정부의 입장이 명확히 천명됐기 때문에 일본 국민들도 존중할 것으로 봅니다. ▲金대통령=모든 여건이 과거와 다르고,또 앞으로 달라져야 합니다.일본정부의 과거사 표명이 문서화됐다는 게 지금까지와는 대단히 다른 것입니다.한국을 직접 지칭하고,우리에게 가한 피해에 반성·사죄하는 뜻을 표했기 때문에 그 무게가 과거와는 다릅니다. ­아키히토 일황의 방한 초청은. ▲金대통령=천황의 방한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부자연스런 일입니다.2002년 월드컵 공동주최라는 공동목표도 있습니다.일본 대중문화가 단계적으로 한국에 개방되고,그런가운데 천황의 영접이 따뜻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노력할 것입니다. ­金대통령은 25년 전 도쿄 납치사건의 당사자였습니다.방일중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데 어떤 입장입니까. ▲金대통령=지난 80년 5·17 군사쿠데타 전에 납치문제에 대한 생각을 밝힌 바 있습니다.양국정부에 어떤 문제도 제기하지 않고 관련자의 처벌도 요구치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다만 인권문제이기 때문에 사건의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지금도 그런 입장에 변화가 없습니다.
  • 건전 소비문화 되찾아 국난극복을/金容汶(발언대)

    IMF체제가 시작되면서 많은 기업체가 도산하고 실업자가 넘쳐나게 됐다. 수입이 줄어든 반면 물가는 폭등해 국민들 모두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 와중에서 국민들은 IMF체제의 책임을 정치인들에게만 돌렸다. 그 책임이 정작 정치인들에게만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보다는 국민들의 검약정신과 건전한 소비의식 결여가 IMF를 초래하지 않았나 싶다. 지난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민주정치가 시행돼 오면서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이른바 ‘칠비’라는 해괴한 단어가 등장했다. ‘칠비’는 ‘비정상적 사고’‘비정상적 행태’‘비윤리적’‘비상식적’‘비합법적’‘비합리적’ ‘비공식적’ 등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한마디로 5·16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이 권력유지를 위해 법을 편의적으로 해석하고 뜯어고쳤기 때문이다. 이 뿐 아니다. 부패한 권력은 물질적 부를 좇게 됐고,결국 자본가와 권력자가 결탁한 정경유착은 우리 사회의 모든 악의 근본이 됐다. 이들은 부정축재한 돈으로 호화스런 생활을 했고 이들의 과소비는 일반 국민들의 도덕적 불감증을 불러 일으켰다. 너도 나도 흥청망청 쓰다보니 결국 외채가 1,500억달러,국민 1인당 500만원이라는 외채의 굴레를 쓰게 된 것이다. 이렇듯 국가경제를 파멸로 이끈 1차적 책임자는 정치인들이지만 원죄는 우리 국민들 모두에게 있다. 무능한 정치인들에게 권력을 위임한 바로 우리 국민들 자신의 잘못인 것이다. ‘그럴 줄 몰랐다’고 후회하기엔 너무 큰 불행이 우리들을 덮쳤다. 그렇기 때문에 또 다시 ‘그럴 줄 몰랐다’고 후회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경제 신탁통치’라는 IMF체제를 극복하는데 온 힘을 모아야 한다. 모든 국민이 ‘제2의 건국 운동’에 적극 나서고 노·사·정이 국력을 한 데 모으면 IMF체제에서 벗어날 날도 그리 멀지만은 않다.
  • 李會昌 총재 外信 회견

    ◎“司正 특별검사에 일임/경제위기 극복 진력을”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가 24일 낮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가진 외신기자회견을 통해 현 정권의 사정(司正)과 각종 정책을 강력 비판했다.작심한 듯 金大中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며 대여(對與)투쟁의 ‘당위성’을 부각시켰다. 李총재는 기조연설에서 “金대통령이 지난 6개월 동안 회유와 협박 등 비민주적 방법을 동원,과반 의석을 차지했다”며 “말로는 민주주의의 신봉자라고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李총재는 “부정부패 척결과 정치개혁을 위한 사정은 공정성 시비가 없는 특별검사에 맡기고 정치권은 경제위기 극복에 진력하자”며 “金대통령이 구국적 제안을 거부하고 편파사정과 야당파괴를 계속한다면 단호히 맞서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적 정당정치와 의회정치를 짓밟는 정치쿠데타”“독단적이고 독재적인 1인 통치체제 구축”“위선과 보복,권력투쟁의 정치”“후진과 퇴영의 흐름” 등 격렬한 용어도 곁들였다. 이어 일문일답에서 李총재는 현 정권의 개혁과 관련,“원칙없이 지역적 선호나 일반 대중의 인기에 좌우돼 우선순위를 바꾸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공정성을 문제삼았다.‘햇볕정책’도 도마에 올려 “어중간한 안도감은 위험하다”고 피력했다.국세청의 대선자금 모금 사건의 경위를 묻는 질문에는 “선거기간 동안 일부 기업이 국세청의 권유를 받아 우리한테 준 것인지는 알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앞서 李총재는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여당이 야당의 생존권 투쟁을 외면하고 단독국회를 강행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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