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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음하는 ‘검은 대륙’

    검은대륙 아프리카가 그칠줄 모르는 내전,흑백 인종분쟁,기아,질병등 천재(天災)와 인재(人災)로 신음하고 있다. 50여개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 15개국 이상이 내전에 시달리고 중동부지역은 3년째 계속된 극심한 가뭄으로 1,600만명이 아사위기에 직면했다.모잠비크보츠와나 짐바브웨 등 남부 4개 국가들에서는 대홍수로 수천명이 사망하고 100여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시에라리온] 유엔평화유지군 500명을 인질로 한 반군의 도발로 급기야 유엔이 전면전 준비에 나섰다.유엔은 유엔 파병 사상 최대규모인 1만 1,000명의파병을 승인했다.프레드 엑하드 유엔 대변인은 10일 20∼31일 사이 3개 부대를 현지에 추가 파병하고 러시아 전투헬기들도 시에라리온평화유지군(UNAMSIL)에 합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방의 압력을 받던 반군조직 혁명연합전선(RUF)지도자 포다이 산코가 행방을 감춘 가운데 반군들은 이미 수도 프리타운을 향해 진격중이다.외국인과주민들의 프리타운 탈출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르완다] 1994년 후투족과 투치족의 종족 분쟁으로 80만명이상이 학살된 르완다에서도 아직 무자비한 살육이 계속되고 있다.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르)의 로랑 카빌라 정부와 반군도 지난해 7월 휴전했지만 무용지물. 지난 연말 이후 5,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르완다 우간다가 반군을 지원하고 앙골라 짐바브웨 나미비아가 정부군을 지원하면서 국제전 양상까지 띠고 있다. [수단] 1983년부터 시작된 수단의분쟁은 종족분쟁과 종교대립이 가미된 경우다.쌍방 사망자가 150만명을 넘었다.북부의 회교도 아랍계인 국민회교전선(NIF)과 남부의 기독교계 수단인민해방군(SPLA)의 정권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짐바브웨] 백인 농장주들에 대한 토지몰수와 테러로 긴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인근 남아공과 케냐로 흑백 토지갈등이 확산되는 양상이다.아프리카 최대인구국인 나이지리아에선 지난달 이슬람 율법 샤리아의 도입을 둘러싸고 이슬람교도인 하우사족과 기독교도인 요루바, 이보족이 대립, 1,000명 이상이살해됐다. 이처럼 아프리카가 내전의 땅이 된 가장 큰 이유는 과거 제국주의 식민통치시절 서구 열강들이 자국의 이해타산에 따라 제멋대로 그린 지도 때문. 거주영토를 둘러싼 종족간 분쟁이 끝이 없다. 게다가 정치적 미성숙으로 쿠데타가 끊이질 않고 있다. 반군들이 다이아몬드와 금광을 장악,무기를 수입할 수있는 것도 내전 악순환의 한 요인. 세계에서 유통되는 다이아 원석의 20%가아프리카 반군들 손에서 나온다는 통계도 있다. 여기다 서방은 자국의 국가안보와 국익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적극적인 개입을 꺼려왔다.시에라리온 유엔평화유지군의 경우도 잠비아와 가나,케냐,나이지리아,기니 등 아프리카 출신 병력으로 주로 구성돼있다. 아프리카의 참극을 중지시키기 위해 국제사회가 발벗고 나서야할 때라는 소리가 점차 높아가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3共 朴正熙시대‘통치일지’발견

    청와대는 지난 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68년까지 국가재건최고회의 및제3공화국 대통령 비서실에서 작성한 국정 일지를 발견,11일 공개했다. 청와대 공보수석실 통치사료비서관실은 최근 청와대 도서관 창고의 자료를정리하는 과정에서 5·16 이후 집권한 최고회의 수뇌부 일지 및 63년 12월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취임한 뒤 68년까지 5년동안 대통령 비서실이 작성한 일지 총 15권중 67년분 1권을 제외한 14권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자료는 검은색 하드커버의 겉장에 ‘日誌’라고 한자로 적혀 있으며,국가재건최고회의 통치기 및 제3공화국의 주요 사항을 항목별로 나눠 펜글씨로기록하고 있다. 일지에 따르면 첫날인 61년 5월16일에는 ‘혁명’이라는 항목에 ‘미명 군부에서 무혈혁명,군사혁명위원회 설치하고 정권인수를 선언,전국에 비상계엄령,혁명위 각급회의를 소집하고 전 국무위원을 체포할 것을 명령’이라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또 61년 10월18,19일 이틀동안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일본 오키나와(沖繩)의 미 제7함대 항공모함을 비공개로 시찰했다는 등 비공개 기밀사항도 수록되어 있다. 아울러 61년 9월7일자 ‘중요업무’란에는 ‘백범 암살범 안두희가 특수폭행으로 서울지검에 송치됐다’는 내용과 함께 ‘각 정당 및 사회단체에 대한동향을 내사중’이라는 보고사항이 들어있다. 정 비서관은 “특히 최고회의 초기에는 ‘외교’를 제1항목에 두어 최고회의가 쿠데타 성공뒤 국제여론을 민감하게 체크했음을 반증한다”면서 “현대사학계의 검증을 거친 결과,당시의 통치활동을 기록한 유일한 일지임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대통령 관련 기록물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라 후대 역사의 심판이나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국가자산이라는 게 김 대통령의인식”이라면서 “이달중 정부기록보존소로 자료를 이관해 국가자료로 영구보존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양승현기자 yangbak@
  • 3共 ‘국정日誌’ 내용·의미

    ‘61년 8월16일 주요사항:서울 중앙우체국 이동무선전화 설치,공중전화 업무취급 개시.중요 지시명령:택시 메터제 실시 지시’,‘동년 8월17일 중요지시명령:경향 각지에서 인사정리에 도태된 공무원들이 상관을 무고하는 경우가 허다하여 무고자 엄중 처단을 검찰에 지시.재판:이정재 사형언도’,‘동년 8월25일 고대생 습격사건 피고인 언도공판:신도환 무기,임화수 사형…’ 청와대 통치사료 비서관실이 지난 2월 중순 발굴,정리해 11일 공개한 국가재건최고회의 및 3공화국 대통령비서실이 작성한 국정 ‘일지(日誌)’에 기록된 일부 내용이다. ●제3공화국의 날짜별 기록. 날짜별로 ‘주요사항’ ‘중요 지시명령’ ‘인사자 명단’ ‘주요업무 처리사항’ ‘국내외 뉴스’ ‘재판’을 수록한 일종의 편년체 통치사료다. 청와대 정은성(鄭恩成) 통치사료비서관은 “통치사료 창고에 있던 각종 자료를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면서 “최고회의 의장과 대통령의 활동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포착하고 정리한 국가재건최고회의 통치기 및 제3공화국의 날짜별 기록”이라고 말했다.또 “통치주체의 활동과 동정을 통치주체의 입장에서 기록한 ‘1차 사료’는 이번에 발견된 일지가 처음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역사학자들도 “새로 밝혀진 사료가치가 있는 기록은 아니나 당시 집권세력의 동향 및 정국인식 등을 직·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것”이라고 평가했다. ●발견된 자료는 총 14권 . 이번에 발견된 자료는 63년 12월17일 박정희(朴正熙) 최고회의 의장이 대통령에 취임할 때까지는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실이,그 뒤에는 대통령비서실 산하 정무수석실 담당직원이 작성한 ‘상황일지’형식이다. 크기는 A3 용지이며,가로로 기록되어 있다.63년 말까지는 대략 3개월 단위로,64년부터는 1년 단위로 편철되어 있다.총 번호는 15권으로 되어 있으나,67년 일지 1권이 분실돼 모두 14권이다. ●사건개요만 기록.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는 특이사 항이 없어서인지 기록이남아 있지 않았고,68년 1월21일 ‘김신조 간첩단 청와대 피습사건’ 등 청와대 내부 혼란기에도일지가 누락돼 있었다.그러나일지에는 사건 개요만 적혀 있을 뿐,구체적 내용은 기술되어 있지 않다.예를 들면 ‘63년 1월25일 주요뉴스:1.김종필씨,박의장의 특명전권 순회대사로 외유 등정,2.김종필씨,외유에 앞서 기자회견에서 의혹사건에 관련이 있다면 달게 심판받겠다고 언명’ 등으로 적혀 있다. 특히 61년 7월3일 인사 항목에는 ‘최고회의 의장 박정희(朴正熙) 육군소장선출,상임위원장 겸임…’이라고 적혀있어 이날 박의장이 전권을 장악했음을 알 수 있다.또 62년 3월22일 국내외 뉴스란에는 ‘윤보선(尹潽善) 대통령하야.상오 11시30분 하야성명서 발표…’라고 기록돼 이날 윤대통령이 물러났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혁명’ 당시의 사회 엿보기. 당시의 사회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내용도적지 않았다.61년 9월4일 주요업무항목에는 ‘커피 원두는 법에 의하여 합법적으로 판매할 수 있으나 다방에서 커피를 판매하게 되면 혁명 분위기를깨뜨리는 일이 발생하므로 업자에게 권고해 역수출되도록 결의했다’고 기록,당시 혁명주체들이 다방커피 판매조차 규제한 사회상을읽을 수 있었다. 아울러 항목 구성에서 최고회의나 대통령의 주요활동방향이 나타나 있는 것도 흥미롭다.최고회의 초기에는 ‘외교’를 제1항에 두고 있어 최고회의가쿠데타 이후 한·미간 외교마찰,한·일회담 등 국제여론에 대단히 민감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 3권부터는 ‘재판항목’을 새로 두어 혁명재판소의 각종 반혁명 재판을 정리해 놓았으며,61년부터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작성과 관련한 박대통령의 각종 업무보고와 경제동향보고 청취 등이 기록되어 있어 경제개발이최우선 국정목표임을 나타내주고 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英 병력 급파…시에라리온 긴장 고조

    유엔 평화유지군 500여명이 인질로 잡히고 반군들의 공격이 계속되는 등 치안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영국이 시에라리온의 자국민 보호를 위해 헬리콥터항공모함을 주축으로 한 5개 함정과 특수군 800명을 급파하고 미국과 영국이 시에라리온내 자국민에게 소개령(疏開令)을 내리는 등 긴장이 계속 고조되고 있다. 영국군 공수부대 800명이 8일 시에라리온 인근 세네갈에 도착했고 헬기 항모 오션호와 구축함 캐섬을 주축으로 한 함대도 곧 시에라리온 연안에서 대기하게 된다.영국과 미국은 이에 앞서 프리타운 공항이 아무 예고도 없이 폐쇄될 가능성이 우려된다며 자국민들에게 시에라리온에서 떠날 것을 지시했다. 196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시에라리온은 내전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참혹한 비극을 빚은 것으로 악명을 떨쳤다.8년간의 내전을 통해수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890만 인구중 절반을 넘는 450만명이 고향을 떠나떠돌이 신세가 됐다.또 10만여명이 손발이 잘리는 등 불구자가 됐다. 시에라리온은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꼽히지만 다이아몬드와 보크사이트,철광석 등 천연자원 매장량이 많아 잠재력은 풍부한 나라.그러나 광물 수출에따른 부(富)가 몇몇 정부관료들에 의해 독점되는 등 부패가 극심해 이같은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국민들의 불만이누적됐었다. 독립 이후 40년이 채 안되는 세월 동안 5차례의 군사쿠데타를 겪으면서도이같은 부정부패의 고리가 끊기지 않자 91년 포다이 산코가 이웃 라이베리아의 지원 아래 부정부패 일소를 주장하며 혁명연합전선(RUF)을 결성하고 정권축출을 시도하면서 내전이 시작됐다. RUF는 오랜 부정부패에 넌더리를 내는 국민들에게 인기를 끌면서도 정부에협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고용으로 민간인들의 손발을 자르고 살육과 강간을 저지르는 등 무자비한 테러로 원성을 샀다.99년7월 잔혹행위에 대한 사면과 반군 지도자들의 입각을 조건으로 평화협상이 체결됐으나 무장해제를 둘러싸고 충돌이 계속돼 평화협정은 사실상 문서상으로 그치고 있다. 반군인 RUF는 다이아몬드 광산이 집중된 북부와 동부 등 전국토의 절반 가량을 장악하고 있다.반군이 무장해제를 거부하는 것도 다이아몬드 광산의 채굴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이다.결국 다이아몬드 광산을 지키려는 반군과 이를 되찾으려는 정부를 대신한 유엔군이 충돌을 빚는 꼴이 된 것이다. 다이아몬드 채굴을 둘러싼 이권 다툼이 해결되지 않는 한 시에라리온의 평화는 요원할 수 밖에 없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외언내언] ‘上向式 공천’

    한국정치의 후진성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지적이 있을 수 있겠지만,정당 운영의 비민주성도 빠질 수 없을 것이다.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집권세력이 정통성을 의제(擬制)하기 위해 급조한 ‘관제 여당’이 당을 군 조직처럼 수직적으로 운영한 것은 접어두기로 하자.그러나 여타 정당들도 이념이나정책이 아니라 특정지역에 기반을 둔 1인 보스를 중심으로 조직된 나머지,철저한 1인 지배의 ‘하향식’으로 당을 운영해 온 게 사실이다.그렇기 때문에,현행 정당법이 각급 선거 후보 공천에서 당원들의 의사가 반영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후보 공천은 지구당 위원장이나 중앙당의 ‘낙점’으로 이뤄지는 게 관행이었다. 정당 민주화 향한 새로운 실험 그러나 이같은 정당의 비민주적 운영의 틀을 깨기 위한 작은 시도들이 움트고 있다.지난 총선 출마 등으로 공석이 된 기초단체장 및 광역·기초의원 91명의 자리를 메우기 위한 재·보선이 오는 6월8일 전국적으로 실시되는데,민주당과 한나라당 일부 지구당에서는 후보 공천을 위원장이 ‘낙점’하지 않고 대의원들이 투표로 선출하기로 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어떤 지구당에서는 전 지구당원들을 상대로 예비선거를 실시하는 파격적인 ‘모험을 시도하기도 하지만,대부분 대의원들로 선거인단을 구성해서 투표를 통해 공천자를결정한다는 것이다.이미 선관위를 구성,흑색선전 및 인신공격 금지와 지역감정 조장 금지 등 내부 선거규약을 제정한 곳도 있다고 한다. ‘작은 싹’,국민이 키워내야 이같은 시도를 하는 각 당 지구당 위원장들은 한 두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다.그들은 지난 총선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힘을 실감했을 것이다.시민단체들의 선거 참여가 상황의 급박성 때문에 ‘낙천·낙선 운동’으로 나타났지만 그 근본 취지는 정당의 민주화에 있다고 할 수 있다.일부 지구당 위원장들의 ‘상향식 공천’시도는 정당의 민주화라는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이해된다.물론 이같은 시도에 대해 ‘시기 상조’라거나 ‘조직 분열’ 등을 내세워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그러나 분명한것은 이 작은 실험이 정당의 민주화와 정치 발전의 시금석이라는 사실이다.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정당 민주화를 위한 역량 축적으로 보고 국민들이 앞장서 이 작은 싹을 키워낼 일이다. 張潤煥 논설고문
  • [16대 국회 초선 대해부] (7.끝) 군·노동계·기타출신

    “정치개혁이 최대 화두인 16대 국회에 들어가게 된 만큼 당리당략과 줄서기로부터 벗어나 전문성을 십분 발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16대 국회에는 각계의 명망가들이 대거 진입해 눈길을 끈다. 군출신인 민주당 장태완(張泰玩·비례대표)유삼남(柳三男·비례대표)당선자,노조 출신인 민주당 박인상(朴仁相·비례대표),한나라당 김낙기(金樂冀·비례대표)당선자,농협과 수협 중앙회장을 지낸 자민련 원철희(元喆喜·충남 아산),한나라당 이방호(李方鎬·경남 사천)당선자,60년대 ‘은막’의 최고스타였던 한나라당 강신성일(姜申星一·대구 동·한)당선자 등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은 만큼 16대 국회에서 유망 기대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비례대표 당선자들은 자신의 직능단체를 지역구 삼아 최선을 다하겠다며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헌금이 아닌 명망을 토대로 입당이 결정된 만큼 나름의 소신을 펼치겠다는 각오다. 민주당 장태완 당선자는 수도경비사령관을 지내던 지난 79년 12.12 당시 쿠데타 진압을 시도하다 실패,2등병으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은 ‘참군인’이다.6년간 재향군인회장을 지낸 장 당선자는 그동안 소외된 참전 및 제대군인에 대한 복지 향상에 힘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해군참모총장 출신인 같은 당 유삼남 당선자는 안보 전문가를 자처하고 나섰다.앞으로 구성될 국회 남북정상회담 지원특위에서 정부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각오다. 노조 출신 당선자들은 “노동자의 권익을 찾는데 유리한 상황을 감안,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한국노총 위원장을 지낸 박인상 당선자는 “노조전임자 문제,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계의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는데 소신을 갖고 앞장서겠다”고 말했다.한국노총 부위원장 출신의 김낙기 당선자는 “노동관계법·산업안전법 등노조 출신들의 관심사는 한가지”라면서 “박 당선자와는 정당을 떠나 생각이 같은 만큼 당파를 떠나 이견조율이 가능할 것”이라며 특정정파가 아닌노동계 출신에 무게를 둘 것임을 분명히 했다. 농협중앙회장을 지낸 원철희 당선자는 “식량안보문제 등 농촌과 농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밝혔다.수협중앙회장 출신인 이방호 당선자는 “농어민 권리 행사를 위해 바꿔야 할 게 많다”면서 “농림해양수산분야의 전문성을 살려 농어민을 위한 전문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영화배우 출신인 강신성일 당선자도 “애니메이션 영상사업 등 우리 나라의 문화사업을 국가에서 적극 지원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
  • [대한시론] 부패구조 더 놔둬선 안된다

    1960년대 군사정권의 부패 분위기속에서 군사정권 개발독재의 나팔수로 기웃거리던 어느 경제학 교수는 부패에 대한 변호론을 썼다.어느 정도의 부패는 사회발전에 촉매체가 된다는 외국학자의 논의를 자기 편리한대로 끌어다가 엮어낸 궤변이었다.당시 쿠데타를 한 군인들은 ‘혁명공약’이란 쿠데타정당화론에서 반공을 국시의 제1로 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노라고 했다.그런데 그들 자신이 역사상 최대의 부패분자가 되었다. 부패는 미군정시대에 ‘통역정치’로부터 이승만 정권하에서 ‘빽’과 ‘사바사바’의 시대로 이어졌다.그래서 1960년 4·19혁명 후에는 헌법을 개정해부정축재를 몰수하기 위한 소급입법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군사정권은 이들부정축재 장본인들을 근대화의 기수로 변신시켜 그들과 밀월관계로 돌입했다.특히 1965년의 한일협정으로 일본 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부패가 단군 이래 반만년 역사에서 최고의 절정에 이르렀다.군사정권 이전에 김성두가 쓴‘재벌과 빈곤’이란 책에서 밝힌 부패구조는 어린애 걸음마 배울적 이야기가 되었다.결국 뇌물이란 부패의 핵을 둘러싸고 정상배와 고급관료 및 기업이 유기적 결합을 이룬 정경유착 구조가 뿌리를 내린 것이다. 여기서 부패에 기생하는 부류가 누구인가를 살펴보는 것은 뇌물의 주고받기의 과정과 구조를 보면 된다.정치인은 흔히 ‘떡값’이라고 해 기업인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아먹는다.그것이 말썽이 되면 떡값은 ‘정치자금’으로 될수도 있다.정치자금이라는 옷을 입혀서도 말썽이 나서 법정에 서면 아는 사람끼리 ‘대가성 없이’ 준 돈이기 때문에 죄는 안된다는 법이론으로 무죄가되어 실뱀장어처럼 법망을 빠져 나온다. 참으로 절묘한 묘기이다.우리사회에서만 통하는 법이론이고 법기술이다. 유사한 나라라고 하면 일본 보수정권의 부패구조에 선례가 있다.유식한 법률가가 그 기발한 외국선례를 이용하지 않을리가 없는 것이다.그런데 그 것으로도 안돼 잠시 감옥이란 곳에서 머무르게 되면 ‘사면’이란 편리한 제도를 통해서 ‘새사람’으로 되어 감옥을 걸어나오는 요술을 부리기도 한다.그래서 우리 법률에선 부자나 높으신 관료가 감옥신세를 지는 일이 없다.박정희가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쿠데타의 정치를 말한 적이 있는데,이러한 ‘사이비 법치’가 후세에 ‘한국적 법치주의’라는 말로 불리게 될까봐 걱정이다. 80년대 사나운 군사정권시절에 공공연히 “민나 도로보다”란 말이 유행했다.일본말로 “모조리 도적놈”이란 뜻이다.이런 부패가 구조화된 사회는 정치고 경제고 법제이고 공중분해되어 버려서 망하게 된다.그래서 개혁은 생존을 위한 최후의 자구책이다.개혁의 대상은 정경유착으로 표현되고 독과점과정부의 특혜로 나타난 파행적 관행과 구조이다. 일본에서 패전직후 민주화개혁의 일환으로 재벌을 해체했듯이 우리에게도재벌이 문제가 되고 있다.그런데 반세기에 걸쳐 불사조처럼 뻗어나오며 1990년대부터는 정권을 압도할 정도로 기세와 위력이 세진 재벌을 무서워 비판하기를 겁낸다.한국 의회정치의 역사에서 처음 있은 청문회에서 유수한 재벌의회장이 그 입으로 말하기를 청문대에 들어갈 적마다 거액의 돈을 챙겨가지고 가서 상납했다고 실토했다.청문회가 있은지 얼마가 지났는데 아직도 정경유착의 과거 찌꺼기가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박정권 초창기의 부패필요론에서 발전해 지금은 재벌의 경제기여론이란 찬양 옹호론이 버티고 있다. 여기서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정리해보면 ▲정경유착의 부패구조로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경제 정의를 실종시키고 ▲개방화 추세에서 재벌의 시장독점은 유지할수 없고,그런 체질로는 국제경쟁력을 스스로 약화시킬 뿐이며▲독점재벌의 독식은 소비자,중소기업과 농어민,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부담을 전가시키고 ▲부의 일부 집중과 벼락부자의 풍조는 퇴폐 타락을 조장하고계층간 이질화와 갈등을 심화시킨다. 전근대적 족벌지배의 독점기업집단이라는 재벌의 문제는 주식회사의 유한책임제도의 교묘한 악용과 법의 허점을 최대한 악용한 탈세와 부자간 변칙상속,일가 일족의 사유물로 기업을 변질시켜,일족의 수장이 ‘전제군주’로 군림하는 관리방식이라는 시대착오적 경영,자기 돈은 몇푼 없고 압도적 비율로정부와 국민의 돈을 특혜융자로 빌린 자금을 사유물로 생산보다 유통구조에기생하여 부당이득을 챙기는 파행적 기업구조 때문 아닌가.개혁의 주역은 국민이 돼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부패 기득권세력의 방해로 개혁은 한 때의 해프닝으로 그치게 된다.해방이래 부패기득권층은 교묘하게 위기를 넘기면서살아 남았다.이번에도 그들은 과거의 수법과 기술을 총동원하여 개혁을 회피해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 한상범 동국대교수 법학.
  • 보혁대결 심화 배경·전망

    [카이로 연합] 신문 폐간,총선결과 뒤집기 등 이란 보수파의 반개혁 공세를보다 못한 대학생들이 대규모 항의시위에 나서 보수·혁신 세력 간 정면충돌이 심화되면서 이란의 앞날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란 대학생 수천명은 25일 강당,교내 모스크,기숙사 밖 등 테헤란 대학 곳곳에서 개혁파 신문 폐간에 항의하며 하루종일 격렬한 시위 및 집회를 가져당국을 긴장시켰다. 이밖에 남부 시라즈시에서 3,000여명,하메단시에서 1,000여명의 대학생이 가담하는 등 개혁파 신문 폐간에 대한 항의시위가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보수파가 장악한 사법당국은 지난 22∼23일 개혁파 신문,잡지 13개를 폐간시키고 그 발행인 등을 구속했다. 또다른 보수파의 하수기관인 혁명수호위원회는 25일 테헤란 시는 물론,남부케르만주 지로프트시 등 개혁파 압승지역의 선거 결과 번복 시도 등을 통해개혁 무력화에 가세했다. 학생들은 특히 개혁파 신문 폐간 조치를 위기에 처한 보수파의 권력유지용‘쿠데타’로 규정,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지난해 7월에도 개혁파 신문1개가 폐간된 뒤 학생들의 거센 항의 시위와 경찰의 과잉진압이 맞붙어 79년 이란혁명 이후 최대 소요사태로 번진 사례가 있으나 이번 사태는 추이에 따라그보다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보수파의 공세는 97년 대선 패배 이후 가속화해 오다 특히 2월 총선 이후노골화됐다.폐간 명령을 받은 주간지 발행인들은 25일 공동성명에서 이같은공세를 “권력에 굶주린 무리들의 혼란 조성 기도”라고 규정,“무엇도 개혁의 수레바퀴를 멈추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편 최근의 정국 혼돈과 관련,군부 쿠데타설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이란대학생연합회는 이날 학생들의 감정적 행동 자제를 호소하는 성명서를 냈으며 일부 개혁파 인사들도 군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등 우려감이 증폭되고 있다.
  • [사설] 4월 민주혁명 40주년 아침에

    올해도 그때처럼 진달래가 산녘마다 지천으로 피어났다.접동새 울음소리가끊인지는 오래됐지만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와 함께 4·19는 다시 찾아오고 어언 40주년을 맞는다.올 4·19의 감회는 남다르다.40주년이란 연대기적의미와 함께 4월혁명이 추구했던 민족통일을 향한 본격적인 남북대화가,그것도 정상회담의 형식으로 예비된 까닭이다.4·19는 자주·평화·민주의 통일3대원칙을 제시했었다. 이 원칙은 그로부터 10년 뒤 7·4남북공동성명에도 나타나고 80년대 통일운동의 기본원칙이 되었으며 지금 국민의 정부가 추진하는 햇볕정책의 기조가되고 있다. 4·19공간의 통일논의가 비록 군사쿠데타에 의해 일과성(一過性)으로 역사속에 매몰되고 말았지만 분단 반세기의 어느 시기보다 활기차고 실천적으로전개되었다.연면히 흐르는 민족 양심의 발로였다.그러나 4·19공간의 통일논의는 일부 급진세력과 이상주의자들에 의해 과격성과 조급성을 띠게 되고 중립화통일론 등 이상론이 제기되면서 극우보수세력에 빌미를 주게 되었다. 이같은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면서 40년 만에 다시 전개되는 남북대화 공간을 보다 지혜롭게 활용해야 한다.여전히 분단을 전제로 해야만 존립할 수 있는 세력이 있고,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을 거부하는 냉전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따라서 지나친 조급성이나 이상론은 자칫 이러한 세력에 또다른 빌미를주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4·19정신의 실천은 민주주의 건설과 민족통일의 성취로 모아진다.민주주의건설은 그동안 피맺힌 민주화투쟁으로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수평적정권교체도 이룩했다.그러나 민족통일은 이제 첫걸음을 시작했다.걸음마단계다.정치권은 물론 학생,노동자,언론,지식인 등 모든 사회주체들이 차분하고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독일의 경우 첫 양독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도 통일은 20년의 세월이 더 흐른 뒤에야 가능했다.남북정상회담이 통일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국민적합의와 지원이 뒤따라야 하는 배경이다.언론은 선정주의적 보도행태와 발목잡기식 보도를 지양하고 지식인들은 지나친 이상론을 배제해야 한다.학생들의 조급성도 대사를 그르치기는 마찬가지다.40주년을 맞게 되는 ‘4·19교훈’은 또다른 측면을 남긴다.이른바 ‘4·19주역’들이 군사정권의 나팔수가되거나,이론가로 변절하면서 4월혁명정신을 크게 훼손시켰다는 사실이다.진정한 주역은 희생자·부상자들인데 그들이 흘린 피를 팔아 출세하고 민주주의를 압살한 자들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 이뤄지지 않았다.이로 인해 7,80년대 민주화운동의 경력을 내세워 독재·부패세력에 기생해온 정치인·관료·언론인 등이 양산되는 풍토가 조성되고 사회정의가 땅에 떨어졌다.진정한 4월혁명 정신의 계승을 위해서는 반4·19적 잔재를 청산하는 작업이 시급하다.다시는 “진달래는 다시 피어 무엇하리”란 시인의 개탄이 나오지 않도록하자.
  • [역사를 바꾼 정상회담](1)부시‘고르비 정상회담

    세계 현대사의 굵은 매듭에는 어김없이 그 시대,세계를 이끌어온 지도자들의 역사적인 대좌가 있었다.살벌한 군비경쟁속에 인류를 이념의 틀에 얽어맸던 냉전체제도 강대국 정상들의 결단에 의한 회담으로 무너졌다.관계가 소원하기만 했던 나라들의 해빙(解氷)무드 역시 지도자들의 ‘만남’을 필요로했다.정상간의 대화는 묵었던 현안을 해소할 수 있는 장(場)이 될 수 있음을역사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6월12일의 한반도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새 천년의 기억 한편에 물러서 있는 세기의 정상회담을 돌아보고그 의미를 되짚어본다. *89년 美·蘇정상회담.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4주 뒤인 1989년 12월2일,지중해의 휴양지 몰타해변.정박중인 소련 순양함 ‘막심 고리키’호의 카드놀이방을 개조해 임시로 만든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고르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마주앉았다.주위에는 소련의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과 미국의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이 배석했다. “얘기가 잘 안되면 책상을 발길로 걷어 찰 수 있을 정도로 너무 좁군요.”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고르비는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정상회담 얘기가 나가자 동유럽 등 지구촌 곳곳에서 커다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자주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맞아요.오늘 만남도 오래전부터 이어진 대화의 연장선 같습니다.” 헝가리의 국경 개방,베를린 장벽 붕괴 등 냉전의 벽들이 무너지는 소용돌이속에서 구질서의 양대 축인 미·소의 정상은 이렇게 만났다. 부시 대통령이취임한 이후 10월 말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치며 추진해 온 정상회담이었다.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공한다면 세계는 더욱 좋아질 것입니다.” 부시는 참모진과의 협의를 거쳐 준비한 양국 무역협상 개시,소련의 최혜국 대우를 금지시킨 잭슨-바닉 수정안 해제 등 고르비 최대의 관심사항인 경제 제안들을한꺼번에 제시했다. 부시는 무기감축에 관해서도 진일보한 입장을 보였다. “세계는 변화하고 있으며 양극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우리는과거 냉전에서 얻은 교훈들을 토의할 필요가 있으며,대립의 정치학인 냉전적방법론은 전략적 패배를 맞고 있습니다.” 고르비는 다소 철학적인 답변으로대신하며 대화분위기에 신경을 썼다. 정상회담이 열리는 동안 몰타의 기상은 최악이었다.미국의 순양함 벨크냅호와 소련 함정 슬라바호를 오가며 갖기로 한 정상회담은 폭풍우를 꺼린 고르비의 제안으로 장소가 고리키호로 변경됐다. 이튿날 회의에서 고르비는 미·소관계의 이정표를 긋는 중대한 발언을 한다.“우리는 미국이 유럽에 남아있는 것을 원하며 이것은 유럽의 장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우리는 이제 여러분들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물론 언쟁도 있었다.아프카니스탄 나지불라 정권에 대한 소련의 지원을 두고 설전이 오갔으며,동독의 변화를 서방의 가치에 기초를 둔 변화라는 부시의 언급에 고르비가 “우리도 민주적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되받는 등 한때 공기가 냉랭해지기도 했다. 부시는 고리키호를 떠나지 않으려는 고르비를 위해 이틀 동안 거센 파도속에 함재정을 타고 밸크냅호와 고리키호를 오가,이를 TV로 지켜보던 미 국민들은 가슴을 졸여야 했다. 몰타회담의 하이라이트는 12월3일 열린 사상 최초의 미·소 정상 공동 기자회견.고르비의 전격 제안이었다. 부시가 기자들에게 “미·소 관계개선으로 고쳐 나갈 수 없는 문제가 세계,특히 유럽에는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말을 꺼내자 고르비는 “우리 두 사람은 세계가 냉전의 시대를 지나 다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영구적 평화로 가는 긴 여정의 시작입니다”라고 화답했다. 기자회견을 끝낸 두 사람이 전용기를 타고 몰타를 떠날 때 회담 내내 멈추지 않던 폭풍우는 빛나는 태양에 그 자리를 내줬다. 45년간 지구촌을 갈라놓은 냉전시대 구질서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서는 순간이었다. 김수정기자 crystal@. *조지 부시,냉전해체과정 충격없이 연착륙시킨 주역. 미국 41대(1989∼1992) 대통령.89년 1월23일 취임,동구 민주화 도미노,베를린 장벽 붕괴 등 급속한 속도로 진행된 냉전 해체 과정을 충격 없이 연착륙시킨 당사자다. 76세.매사추세츠주 밀튼 출생으로 예일대 경제학과 출신.텍사스에서 정유사업으로 부를 축적,64년 상원의원 출마로 정치에 입문했다.닉슨 대통령 시절주 유엔 대사를 거치고 75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냈다.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헝가리 국경 개방 이후 선물받은 ‘헝가리 철조망조각’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소개해 당시 외교 결실에 따른 보람을 은근히 내비쳤다. 98년 보좌관이었던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와 함께 당시를 기록한 회고록 ‘세계의 대전환(A World Transformed)’을 펴냈다. 동구 해체시의 위기관리 능력과 91년의 걸프전 승리에도 불구,미 경제의 침체로 클린턴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줄 무렵 인기가 급추락했다.아들인 조지 W부시가 공화당 후보로 올 대선에 출마한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냉전해체 1등공신…90년 노벨평화상 수상.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1985∼1991년),옛 소련 대통령(1990∼1991년).명실상부한 냉전해체의 일등 공신으로 9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69세.스타프로폴의 농가 출신.모스크바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52년 공산당에 입당했다. 82년 후견인인 안드로포프가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의 뒤를 이어 공산당 서기장이 되면서 정치적 위치가 급상승했다.이때부터 부패와 비효율에 대한 개혁을 시도,명성을 얻었다. 85년 서기장으로 선출된 뒤 추진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개방)는 80년대 국제사회 최대의 화두였다.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강경파와 개혁파들 사이에서 입지가 흔들렸고 91년 8월강경파들의 쿠데타로 실각했다. 개방정책은 발트해 공화국들의 분리독립,소련연방의 해체로 이어졌고 경제는 피폐해졌다.서방에서는 ‘칙사’ 대접을,러시아내에서는 러시아 추락의주범이라는 원성을 듣고 있다.지난해 9월 부인 라이사가 암으로 사망,쓸쓸한말년을 보내고 있다. 김수정기자
  • [대한광장] 작은 선별이 큰 변화를 낳는다

    그렇게도 말많던 16대 국회의원 총선일이다.이번 선거는 직업 정치가들만의 경쟁이 아닌 많은 시민운동단체들이 선거 캠페인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역대 선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고 그만큼 결과에 대해서도 모두의 관심이 크다.정치권의 큰 변화를 요구하는 소리와 함께 지역구도가 타파되지 않았다느니,대안 부재라느니 등등 벌써 변화에 대한 비관적 예측이 나오고 있다.무소속이 축소되는 구도 속에서 각 정당은,특히 양당은 이번 총선을 대선가도로보고 과반수 확보를 목표로 승부에만 몰입돼 있다. 조지프 슘페터는 정치를 시장에 비유해 공급자인 정당이 제공하는 상품 가운데 소비자인 유권자가 가장 양질의 상품을 선택하면 민주주의는 잘 담보될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정치시장의 독과점은 유권자의 선택 폭을 제한하고있다.특히 현재 우리나라 정치판을 냉소적으로 보는 시각도 현재의 구도로는기성 정치판을 바꿀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각 정당이 하루가 다르게 내놓는공약과 정책도 실천성을 믿을 수 없으며 졸속으로 제안된 정책을 놓고 정당간 차별성을인식한다는 것이 의미없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변화를 기대할 것인가? ‘초록이 동색’‘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하는 냉소적 판단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초록이 난무하는가운데,그 밥에 그 나물 속에서도 자세히 관찰해 조그만 차이를 찾아내는 관심과 노력만 있으면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이제 한국에서 급격한 혁명과 쿠데타의 시절은 지나갔다.민주주의의 문턱을넘어선 것이다.어렵사리 획득한 민주주의의 시계를 정치권은 어처구니없게지역감정으로 되돌려 놓았다.정치권의 집단적인 총체적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제는 위로부터 또는 아래로부터의 직접적이고 집단적 변화보다는 민주시민 각자의 민주적 태도 변화를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를 심화,발전시킬 수밖에 없다.민주적 태도는 관심으로부터 출발하며 정보획득을 통한지식을 통해 굳어진다.정치권에서 내놓는 구시대적 추잡한 그물망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이번 선거를 매번 치러지는 선거로서가 아니라 그 의의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것이다. 이번 선거는 새로운 세기,새로운 밀레니엄의 첫 단추를 끼우는 중요성을 갖는다.새로운 시대는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글로벌시대의 정보화와 문화에 대한 의식과 감각,민족의 화해와 통일에 대한 의무감,세대·계층·남녀·지역간 균열을 치유하는 국민화합,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정책지향적 정치 등이 이 시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이 과제를 담당할 대표를선출하는 일이다. 반면 우리가 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제들이 있다.지역감정과 반민주적 정당운영,권위주의적 사고,연고주의,권력만능주의 등이다.1인2표제가 확립되지않은 상황에서 유권자가 할 일은 뭉뚱그려 섞여 있어 판별이 쉽지 않은 정당선택보다는 해야 할 일과 버려야 할 일 사이에서 그러한 임무수행을 조금이라도 더 잘할 인물을 세심히 가려내는 일이다.과거의 경력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에 더 비중을 둘 필요가 있다.또한 자신의 맘에 들든 안 들든 간에 그간의 여러 단체들이 기울여온 노력의 결과물을 흘려보내지 말고 그 속에서 귀중한 정보를 얻어내야 한다. 그동안 한국정치는 세대·계층·남녀·지역에 있어서 한쪽으로 과대 대표돼왔다.50년 만의 정권변화에 대한 기대와 새 시대에 대한 기대에도 불구하고변한 게 없다고 하는 자조는 그러한 불균형적인 과대 대표에 기인한다.이제정치의 중심에서 소외돼 왔던 주변인들이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이번 선거는 주변인들의 적극 참여를 통해 불균형을 균형으로 바로잡는 시발점이 돼야할 것이다.그것은 주변인들의 세심한 관심과 관찰에서 시작된다.조그만 차이에 대한 인식이 큰 변화를 잉태하는 것이다. 金 明 淑상지대교수·정치학
  • 짐바브웨 무가베 20년독재 무너지나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의 20년 독재가 흔들리고 있다.장기집권에따른 부패 만연과 비효율적 국정 운영으로 인플레가 50%를 넘는 등 경제는파탄에 이르러 전국민의 3분의2가 최저생계 수준에도 못미치는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 2월 집권기간을 12년 연장하기 위한 헌법 개정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무가베 대통령이 예상 밖의 패배를 당한 것도 이처럼 국민들의 불만이극에 달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짐바브웨 의회가 12일 자정을 기해 임기가 만료됨으로써 자동 해산됐다.새 총선이 불가피해진 것이다.아직 총선 날짜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무가베 대통령은 5월말쯤 총선을 치를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짐바브웨 사회와 정국은 심각한 불안 양상을 보인다.무가베대통령은 국민들의 불만 무마를 위해 백인이 소유한 토지와 농장을 몰수,땅이 없는 흑인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겠다고 밝혀 흑인들의 백인농장 점거를부추기고 있다.이에 따른 충돌과 끊임없는 폭력,반정부 시위 등으로 사회 불안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짐바브웨 경제의 미래가 없다는 점은 무가베의 집권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애국전선(ZANU-PF)당의 인기를 곤두박질치게 만들고 있다.반면 노조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야당 민주변화운동(MDC)당은 날로 인기를 얻고 있어 총선이 실시되면 ZANU-PF가 패배할 것이란 전망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문제는 무가베와 ZANU-PF가 한번 잡은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데 있다.150석의 의석 가운데 147석을 차지하고 있는 ZANU-PF는 야당인 MDC를 탄압하는데군과 경찰을 동원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집권당이 총선에서 패배한다면 무가베를 다시 권좌에 앉히기 위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란 추측도 나돌고 있다. 유세진기자 yujin@
  • 숨가쁜 3시간…‘MH’역전드라마

    24일 오후 5시10분,김재수(金在洙) 현대구조조정위원장이 ‘정몽구(鄭夢九)회장,면(免) 경영자협의회 회장’과 ‘이익치(李益治) 현대증권 회장, 현직유지’를 발표하기까지는 하루종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급박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정몽헌(鄭夢憲) 회장이 이날 오후 1시54분 일본 JD251편으로 귀국하면서 3시간 동안의 급박한 상황은 시작됐다.정몽헌 회장은 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나현대상황에 대해 “나는 모르겠다.그런걸 왜 나한테 물어보느냐”면서 황급히 입국장을 빠져나갔다.그는 곧바로 서울 계동 본사 사무실로 갔다.오후 3시쯤 본사 12층 자신의 사무실에서 김윤규(金潤圭) 현대건설 사장,이익치 회장 등과 30여분간 인사문제를 포함한 출장 뒷얘기를 나눈뒤 4시쯤 이 회장과함께 가회동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을 찾아갔다.30여분동안 인사안을 상의한 뒤 나온 정 회장은 무표정이었으나 이 회장은 비교적 밝아 보였다. 정회장 보다 3분 정도 뒤에 나온 이 회장은 “5시쯤 구조조정위원회에서 공식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자진해서 말해 ‘역쿠데타성공’을 암시했다. □숨가쁘게 돌아가던 인사파문이 열흘만에 뒤집히자 현대증권은 환영분위기일색이었고 이번 인사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현대자동차는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현대증권 관계자는 “이 회장 부임 이후 ‘바이코리아 붐’을 일으키고 회사도 업계 수위권으로 끌어올린만큼 우리가 최고경영진 교체를 바라지 않는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면서 ‘사필귀정’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반겼다. 반면 그룹내 ‘MK(정몽구 회장의 별칭)’ 세력을 대표하는 현대자동차는 발표 직후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발표 직전까지만해도 이 회장 경질을 뒤집을 수 없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왔던 현대자동차 관계자들은 믿어지지 않는듯 할 말을 잃었다. □이에 앞서 전날 중국에서 귀국한 이 회장은 이날 오전 발령지(고려산업개발)가 아닌 현대증권으로 출근해 임원회의를 주재하고 실무자들로부터 업무보고를 다시 듣는 등 정상 근무에 들어갔다.이 회장은 이날부터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3개월 업무정지가 풀렸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이날 현대증권으로 출근하자 직원들은 일제히 반색했다.그간 인사파동을 겪으며 다소 침체된 분위기에서 벗어나 “국내 증시발전을 선도하고 현대증권을 정상권에 올려 놓은 분이 꼭 다시 오실줄 알았다”고 했다. 이 회장은 오전 8시40분부터 2시간 가량 임원회의를 주재했다. 직원들에겐“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당부했다.이어 오전 10시40분부터 현대증권 7층 소회의실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시종 밝은 표정과 자신감 있는 어조로 자신의 경영철학을 밝혔다. 한편 이 회장의 고려산업개발 회장 선임건은 이날 오전 고려산업개발 정기주총에서 상정되지 않았다.이와관련 현대 한 관계자는 “인사내정안이 (언론에) 흘러나간 것은 관계자들의 실수였다”면서 “내정안일뿐 확정된 게 아니다”라고 말해 이번 인사의 번복이 감지되기도 했다. □재계는 현대의 인사파문이 재벌 체제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가중시키고 정부의 더욱 강도 높은 재벌 개혁 정책을 부추기는 사태를 불러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다른 그룹 얘기지만 우리한텐 도움이안된다”면서 “남들은재미있겠지만 걱정이 더 앞서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쪽에서‘이것들이’ 뭐하는 작태냐고 비난할 소지도 있고,4·13 총선이 끝나면 재벌에 대한 시각이 다시 도마위에 오를 것 같다”면서 우려했다. 다른 관계자는 “가뜩이나 재벌 오너 체제에 대한 국민적 비난과 불신이가중되는 마당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인사 파동이 생긴 건 매우 유감스런 일”이라고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사실상 현대의 대권이 정몽구 회장에게서 정몽헌 회장으로 넘어감에 따라 회장단에 소속된 정몽구 회장의 거취 문제를 포함,향후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육철수 박건승 안미현기자 ycs@. *MK, 회장직 박탈로 공식행사 손떼. ‘현대경영자협의회’는 98년 4월1일 현대가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 기존의 ‘운영위원회’ 대신 신설한 그룹내 최고의사결정기구다. 그룹 비서실을 없애라는 ‘DJ(金大中대통령)정권’의 당시 요청에 따라 현대는 그룹 종합기획실과 운영위원회를 없앴다.대신 계열사간연결고리를 위해 주요 계열사 사장단 30여명으로 구성된 ‘경영자협의회’를 발족시키고,정몽구(鄭夢九·MK)회장과 정몽헌(鄭夢憲·MH)회장 두 사람을 공동회장에 선임했다. 하지만 그룹내 주요 의사결정은 여전히 MK·MH 양 회장을 포함해 두 회장의측근인 이익치(李益治)·박세용(朴世勇)·김형벽(金炯璧)회장 등 이른바 ‘6인위원회’가 주도해왔다.정세영(鄭世永)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분가 전까지는 몽규(夢奎)회장도 6인 멤버였다. 이후 청와대 및 전경련 행사 등 국내 행사는 MK가,외국 행사는 MH가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현경협’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하지만 MK는 이번 ‘쿠데타실패’로 현경협 회장직을 박탈당하고 그룹내 모든 공식행사에서 손을 떼게됐다. 안미
  • 특별기고/ YS·李총재의 ‘下野’ 독설

    김영삼씨는 대통령 재임시절 군사정권과 쿠데타의 역사를 종식시킨 역사적정치인이면서 동시에 격변기에 국민경제를 도탄에 빠뜨림으로써 나라를 망친무능 정치인이다. 그런데 퇴임후 김영삼씨는 자신의 긍정적 치적(治績)조차도 다 까먹는 독설과 망발의 언행을 보여왔다. YS가 DJ에 대해 유달리 개인적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아는 사실이지만,대통령 퇴임후 그가 DJ에 대해 쏟아낸 독설들은 일반국민의상식과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엊그제 이회창 총재의 대통령 하야 운운에 대해 맞장구를 치며 김대중 대통령을 ‘독재자’로 폄하,하야를 거론한 것은 이런 독설의 정점이다.물론 야당총재가 주권자인 국민의 뜻으로 민주적 절차를 통해 대통령직에 취임해 있는 현직 대통령에게 하야 운운한 것은 국헌을 문란케 하는 망언이다. 하야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된 ‘신종 관권선거’니 대통령과 정부의‘선거개입’이니 하는 야당의 비난도 잘 뜯어보면 과거에 그들이 수십년 동안 대규모로 저지른 불법적 관권선거 행각들을 현 정부에 뒤집어씌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현재의 정부·여당도 과거 자기들처럼 그런 짓을 할거라고 무리하게 역추정(逆推定)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에 강한 대여(對與) 투쟁을 연일 촉구하는 YS의 정치감각과 심리는국민의 의식과 정반대로 뒤집히고 꼬여 있는 것 같다. 상당수의 국민들이 대통령과 정부가 유약할 정도로 너무 민주적이라고 걱정하는 마당에 YS는 틈만나면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방해 왔다. 또 국민의 70% 이상이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만족하고 대통령의 계속적인 건투를 비는 마당에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는 것도 민심과 동떨어진 것이다.YS는 자신이 망친 나라경제를 살려낸 DJ에 대해 강한 질투심을 표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3김 청산을 주장하는 이회창 총재는 YS의 지원을 받는 자기모순적인 행동을보여 왔다. 이회창 총재는 국민 앞에 책임있는 정치인이 되려면 현직 대통령의 청산에 앞서 먼저 전직 대통령 YS부터 청산해야 할 것이다.나라 망친 전직 대통령과의 관계도 청산하지 못하는 야당총재가,경제를 살려낸 치적으로국민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현직 대통령의 하야를 운운하는 것은 정말우스운 일이기 때문이다. 3김 청산을 주장하는 이회창씨와 YS가 현직 대통령을 임기 전에 퇴진시키기위해 맺고 있는 이른바 ‘삼·창동맹’은 국민이 볼 때 역겨운 것이다. 특정지역의 반(反)호남·반(反)DJ 정서를 자극하여 선거를 이기겠다는 얄팍한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삼·창동맹’과 하야망언을 국민은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간의 과격한 대여투쟁과 정치왜곡으로 이회창씨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기피정치인 제1호’가 되어 있다.하야망언과 ‘삼·창동맹’은 일시적으로 특정지역의 배타적 지역감정을 선동하여 선거에서 약간의 덕을 볼지는 몰라도 이회창 총재에 대한 국민의 기피심리를 더욱 확산시키는 부작용이훨씬 더 큰 점에서 이총재 개인에게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자신을 위해서도 이총재는 이런 정치행각을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YS도 자신을 위해 자중해야 한다.어떤 민심조사에서든 YS는 국민적 분노의‘표적 1호’로 나타난다.자신의 신변안전을 위해서도 YS는 DJ비방과 정치간여를 그만두어야 한다.필자는 민심조사 중에 주민들이 격렬한 욕설과 함께 YS를 ‘광인’으로 규정하는 소리를 들었다.YS의 하야망언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YS를 총선에 이용하고자 부지런히 상도동을 드나드는 정치인들도 이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黃 台 淵 동국대교수·정치학
  • “파키스탄 내년7월 총선”

    [이슬라마바드 AFP 연합 특약]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23일오는 12월부터 내년 5월 사이에 지방자치 단체장을 뽑는 지방선거를 실시하고 곧이어 내년 7월 총선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이틀 앞두고 나온 이같은 무샤라프 대통령의 약속은 파키스탄에 대한 민주화 복귀 압력을 무마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이날 두번째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무샤라프는 “파키스탄은 점진적으로 그리고 적절한 때에 맞춰 민주화를 향해나아갈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그러나 “나는 어느 누구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도 않으며 누구도 우리에게 지시를 내릴 수 없다”며 파키스탄의 민주화 복귀 속도가 매우 늦다는국제사회의 비난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고 강한 어조로 덧붙였다.
  • 샤리프 前총리 사형 구형

    파키스탄 검찰은 20일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에 대한비행기 납치 등에 관한 형사재판에서 사형을 구형했다. 라자 쿠레쉬 수석 검사는 이날 카라치 반(反)테러 법정에서 “법원은 피고인에게 법정 최고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비행기 납치는 종신형이나사형에 처해지며 법정 최고형은 사형이다. 샤리프 전 총리와 그의 동생 샤바즈씨를 비롯한 7명은 비행기와 승객 납치,살인 기도,테러리즘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그러나 이들은 모두 혐의사실을부인하고 있다.이들은 비행기납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될 경우 사형에 처해질수도 있다. 카라치 AP AFP 연합
  • 클린턴 순방 앞두고 ‘시끌’

    빌 클린턴 대통령의 순방을 앞두고 있는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 서남아 3개국이 시끌하다. 각국 정부는 회담 준비와 함께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경호 예행연습을 실시하고 있는 반면 일반 시민들은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 등을 요구하며 반정부시위를 벌이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이 21일부터 닷새간 머무는 인도는 수도 뉴델리에 경찰 5만5,000명을 배치,경계에 들어갔고 인도 군·경찰 특수부대 및 미국 경호팀 등 8개 경호팀이 경호예행 연습을 강도높게 실시하고 있다.클린턴 대통령이 머물 쉐라톤호텔을 ‘미니 백악관’으로 꾸미고 워싱턴과의 비상통신망도 설치,영접 준비를 끝낸 상태다.클린턴이 약 9시간 동안 머물 방글라데시도 수도다카도 곳곳에 수천명의 경찰과 특수부대를 배치하고 주요 도로를 폐쇄,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클린턴이 25일 인도를 떠나는 길에 5시간 정도 머물 파키스탄도 대중집회를 금지하고 폭발물 탐지견을 동원,수도 이슬라마바드 곳곳에서 폭발물 탐지 등 안전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클린턴의 서아시아 방문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 조인하도록 인도를 설득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각국이 클린턴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는 제각각이다.인도는 ▲카슈미르지역내 게릴라에 대한 파키스탄의 지원 중단 ▲핵문제 등에서 클린턴이 인도의 손을 들어줄 것을,지난해 10월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파키스탄의무샤라프 정권은 ‘정권 용인’을 기대하고 있다.외국인 투자가 절실한 방글라데시는 치타공 항구내 컨테이너 터미널 건설같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 약속이 쏟아지길 갈구하고 있다.클린턴의 방문에 때맞춰 미국기업에 천연가스·석유전(田) 탐사·시굴·수출을 허용하는 계약 체결을 준비했다. 그러나 시위도 적지 않다.‘자유운동구원’이라는 민간단체 소속 회원 200여명은 16일 뉴델리주재 미국 대사관 앞과 뭄바이에서 1998년 인도의 핵실험 이후 가한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방글라데시 항운노조원 수천명도 치타공에서 컨테이너 터미널 건설이 결국 민영화로 이어져 대량실업을 낳을 것이라며 이의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 경찰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박희준기자 pnb@
  • [총선 엿보기]’아도니스 의혹’관련

    * 홍사덕의원 사실상 '백기' 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 선대위원장이 제기한 아도니스 골프장 헐값매각의혹 사건은 홍위원장의 ‘KO패’로 결론났다. 그 자신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회창(李會昌)총재가 돈과 관련된 얘기는묻는 사람도 품위를 지키기 어려운 사안이니 그쯤에서 중단하는 게 좋겠다고해 여기서 끝내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간 ‘억울한’ 오해를 받았던 민주당이 가만 있지 않았다.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을 내세워 대대적인 공세를 취했다. 정대변인은 10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한나라당 이총재와 홍위원장이 ‘아도니스 골프장을 더이상 거론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비겁한 행동”이라면서 “자신들의 주장이 거짓말로 드러났다면 사과하는 것이 당당하고책임있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거래계약이 성사되기 전에 해지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건을 두고마치 정권에 1,000억원 이상의 비리가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온 야당이,이회창총재식의 ‘아니면 말고’ 형태로 넘어가려 해서는 안된다”고 일갈했다. 이런 맥락에서 민주당은 이총재와 홍위원장의 대국민사과를 거듭 요구했다. 정대변인은 “사과하지 않을 경우 총선기간동안 홍위원장을 상대방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결코 ‘일과성’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총재를 겨냥해서는 “입으로는 ‘새로운 정치’를 말하면서,하는 행태는철저한 구악정치”라면서 “돈 공천,공천 쿠데타,사천(私薦),거짓폭로의 교사와 지시,거짓말로 드러나면 ‘아니면 말고’의 이회창식 정치행태는 새천년 우리 정치의 추방 1호”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종태기자
  • [기고] 지역패권주의냐 개혁민주화냐

    최근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의 지역감정 발언으로 총선정국이 지역감정 공방으로 달아오르고 있다.김종필 명예총재에 따르면 지역감정의 책임은 1971년 대선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출마였다는 것이다.그러나 그 당시 영남출신 이효상 국회의장이 지역을 대선에 활용하여 최초로 지역이 정치에 등장하였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사실 자체도 왜곡하는 JP의 발언은현재 열세를 면치 못하고 충청권마저 민주당 이인제 선대위원장의 공략으로흔들리는 상황에서 ‘호남 대 비호남’ 대결구도로 몰고가 충청권 수성을 도모하겠다는 승부수로 보여진다. 한국사회의 지역갈등문제는 5·16쿠데타 이후 정치적 정당성의 확보가 어려운 공화당 정권이 영남지역 중심의 산업화와 엘리트 충원을 토대로 지역적지지기반을 확보하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산업화의 혜택이 영남중심으로 분배되는 문제점 이외에도 사회 엘리트 충원시에도 영남중심 지역편중 인사의폐해는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심대하였다. 이러한 영남 중심의 패권적 지역연합은 호남을 푸대접했을 뿐만 아니라 충청 강원 등에 대해서도 무대접으로 일관하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남 지역패권주의에서 별 혜택을 보지 못한 충청 강원(출신)주민들의 지역적 정체성은 반 호남 이데올로기 영향으로 영남지향적으로 형성되었다.그러나 지난 YS정권에서 JP가 YS에게 팽(烹)당하자 충청도에선 핫바지론,무대접론 등이 무성해졌다.이러한 지역정서를 바탕으로 JP는 자신의 부정적인 과거 경력에도불구하고 소외지역 간의 지역연합인 DJP연합에 합의하여 또한번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DJP연합의 실제적 내용은 내각제개헌을 토대로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차기정권을 JP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돼있었다.그러나 한나라당이 반대하거나 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석이 3분의 2를 점하지 못하는 한 내각제개헌은 사실상 성사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JP집권을 통한 충청정권 탄생은 실현될 수 없게 되었다.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500여만표를 얻은 이인제(IJ) 국민신당 대통령후보가 국민회의에 합류하면서 충청권은 구정치인인 JP보다 대권가능성이 높은 차기 대권주자로서IJ를 옆에 두게 되었다. 국민의 정부는 차기 대권후보를 호남출신으로 내세울 경우 ‘호남 대 비호남’ 대립구도가 형성되어 정권 재창출은 불가능하게 된다.그러므로 국민의정부 입장에서 보면 비호남출신,권위주의,부정부패 등 이미지가 강한 JP보다는 개혁성향의 충청지역 출신 IJ가 민주주의,시장경제,생산적 복지 등 현 정부 국정철학의 계승·발전에 보다 적합한 사람으로 판단할 수 있다.따라서향후 IJ는 보수적 DJP연합 대신,개혁적 DIJ(김대중 이인제)연합을 구축할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소외지역 연합 뿐만 아니라 개혁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민주세력간의 연합도 의미하는 새로운 DIJ연합의 탄생 가능성은 IJ가 민주당 선대위 위원장으로 임명되고 자신의 고향 논산에서 출마선언을 하면서 가시화되었다.그러나IJ가 충청권 대표성을 획득해야 실현 가능하다.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JP와 IJ간의 충청권 쟁투는 JP의 충청권 수성,IJ의 대권발판 마련을 위한 단순한싸움이 아니라 향후 한국정치 및 국가발전 방향의 풍향계를 결정하는 역사적선택이 되고 있다. 만일 JP가 충청권의 대표성을 다시 장악한다면 새로운 민주적 국가발전모델구축은 물건너가고 소외지역인 충청권의 이익에 봉사하기보다는 지역패권주의에 봉사하는 정치구조를 생성할 것이다.그러나 IJ가 충청권에서 약진한다면 민주화세력은 개혁적 DIJ연합 형성을 기반으로 유사 이래 최초로 개혁과민주화를 자력으로 달성하는 전기를 만드는 한편 소외지역의 민주적 이익에봉사하는 정치구조를 만들 것이다.그러나 이런 모든 역사적 선택은 JP와 IJ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유권자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황 병 덕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초점 인물] 민주당 입당 장태완 향군회장

    12·12사태 때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신군부측에 맞서다 온갖 고초를 겪었던장태완(張泰玩)재향군인회장이 7일 민주당에 입당했다. 장회장은 “군부 불순세력의 쿠데타를 막지 못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했던 사람으로서 신군부에 핍박과 고통을 받았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더욱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입당했다”고 밝혔다.장회장은이어 “앞으로 재향군인의 명예와 권익,복지에 관한 문제들이 입법에 반영될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영훈(徐英勳)대표는 “군의 옳지 못했던 행동속에서도 군의 본분을 지키던 분을 모시게 돼 당으로서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반겼다.장회장은 “국가와 당을 위해 백의종군(白衣從軍)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으나 당은 그의비중을 감안,비례대표를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운기자 j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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