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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건 인사청문회 전망/병역등 7대의혹 ‘최대쟁점’한나라 자유투표 채택할듯

    국회는 이번 주 고건(高建)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한 인사청문특위 위원 인선에 착수하는 등 본격적인 청문회 준비 작업에 들어간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한나라당을 방문,어느 정도 여야 대화정치 분위기가 조성된 데다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도 인준 여부를 의원들의 자유투표에 맡길 것으로 보여 인준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본인과 차남의 병역 문제 고 지명자는 대학시절인 1958년 현역 판정을 받았으나 입영이 미뤄지다 4년 뒤에 병역이 면제됐다.고 지명자는 60년 4·19혁명과 61년 5·16군사쿠데타 등으로 징집 자체가 연기됐고,62년 병역법이 개정되면서 보충역으로 편입됐다고 해명했다.그러나 61년 행정고시에 합격,“미필적 고의에 의한 병역기피가 아니냐.”는 추궁을 받을 전망이다. 차남 고휘(高煇·40)씨는 84년 징병검사에서 현역 판정인 1급 판정을 받았다가 87년 재검사에서 면제 등급인 5급 판정을 받았다. ●과거 행적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의 모임인 ‘국민속으로’는 지난 21일 “고건씨는 정부 요직이란 요직은 거의다 거친 인물로 무사안일의 표본”이라고 반대 성명을 내며,청문회에서 7대 의혹을 철저히 추궁하겠다고 밝혔다. 고 지명자는 임명직 서울시장 재직시절 한보그룹의 수서아파트 택지개발 인허가 과정에 개입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이에 대해 그는 “3번 허가 신청을 취소했으며 외압을 거부하다 경질됐다.”고 해명했다.79년 청와대 정무수석 시절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사망했으나 3일간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았고,80년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 때에도 1주일간 출근하지 않아 공직자로서 기본 자질이 의심스럽다는 지적이다.정무수석과 내무장관 재임시절,부마사태와 87년 6월 항쟁이 발생하자 대통령에게 위수령 발동을 건의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이에 대해 고 지명자는 “10·26 당시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했고,5·17 때는 비상계엄 확대에 반대해 사표를 낸 상태였다.”면서 “부마사태 때는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위수령 발동을 건의해 왔으나 반대했다.”고 해명했다. ●인사청문회 전망 민주당측은 “병역문제 등은 이미 지난 98년 서울시장 선거 때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검증됐다.”면서 “고 지명자가 노련하게 야당의 공세를 피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한나라당은 개혁파 의원들이 인준을 반대하고 있으나,인준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기엔 정권초반부터 ‘발목잡기’라는 인상을 줄 경우의 역풍이 부담스러운 입장이다. 김경운기자 kkwoon@
  • 타임지“아랍, 후세인 축출 쿠데타 모색”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개전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전쟁없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한 망명·친위 쿠데타 가능성에 관한 보도가 연일 쇄도하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16일 아랍권 지도자들이 전쟁 전 이라크 내부 쿠데타를 유발시켜 후세인을 축출,전쟁을 피하는 방안을 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종전 후 이라크 내부의 혼란상이 중동 전체의 안정을 해칠까 우려,이같은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라크 군부에 후세인 정권 전복을 위한 쿠데타에 나설 것을 적극 설득하고 있다.타임은 최근 사우디가 이집트,터키 정부와 연쇄 접촉한 것은 이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으나 사우디 관리들은 이를 공식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쿠데타를 우려한 이라크 정부 요인 가족들이 최근 바그다드의 한 수용시설로 거처를 옮겼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쿠데타설이 힘을 얻고 있다. 아랍 관련 전문 사이트 ‘알바와바닷컴’은 16일 후세인 대통령이 쿠데타 가능성에 대비해 정부 고위 관리와 보안기구간부 가족 상당수를 재개된 수용시설로 이주시켰다고 보도했다. 한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주재 외교관들이 후세인 대통령이 신분 보장을 조건으로 해외 망명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독일 DPA통신이 보도했다. 이들은 후세인이 미국이나 유럽 동맹국으로부터 기소나 박해받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아프리카의 한 국가로 망명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망명시 정부 고위 관리와 가족들도 동행한다. 후세인의 망명설이 잇따라 나오는 가운데 미국은 이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16일 “만약 후세인이 망명을 선택한다면 이는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숙기자 alex@
  • 在美 고경주씨 하버드대 대학원 부학장에

    |뉴욕 연합|한국인 하워드 고(사진·50·한국명 고경주)씨가 하버드대학 보건대학원(HSPH) 부학장에 선임됐다. 고씨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행정부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는 최고위직인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로 재직했던 해럴드 고(한국명 고홍주)씨의 맏형이며 1960년 주미 한국대사관 공사로 재직중 5·16 군사쿠데타가 발발하자 미국에 망명한 고(故) 고광림 박사의 장남이다. 하버드대 발표에 따르면 97년부터 매사추세츠주 보건위원장으로 일해온 고씨는 HSPH 부학장 겸 교수직을 맡아달라는 학교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오는 4월15일 부임키로 했다. 그는 암 예방,담배 규제,아시아계 미국인의 보건,피부종양 등의 분야에 관한 20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이런 업적을 인정받아 1999년에는 미 암학회로부터 ‘훌륭한 의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檢,이번엔 ‘경찰대 폐지론’

    수사권 독립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대립과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15일에는 검찰이 경찰대 폐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확인돼 경찰이 반발하고 있다.경찰의 수사권 독립 요구에 대한 검찰측의 논리를 요약한 내용으로 검찰 내부통신망에 게재된 이 문건에는 “위헌소지가 많은 경찰대학을 폐지하고 경찰관을 재교육하는 경찰간부학교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들어 있다.이어 “경찰대학은 박정희 대통령 유고 이후 12·12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가 경찰을 통한 조직 장악을 위해 육사를 모델로 만들어 81년부터 신입생을 모집했다.”면서 “특정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로 간부로 자동임용하는 제도는 위헌소지가 높다.”는 내용이 있다.또 매년 170∼180명의 경위 승진자 가운데 120명은 경찰대 졸업생이 차지하고 나머지 50∼60명만 간부후보생과 순경에서 출발한 내부승진자로 채워 일선경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검찰 관계자는 “검사 개인의 의견을 내부통신망에 올린 것일 뿐 공식문건이 아니다.”라고 밝혔다.한편 서울지검 서부지청(청장 姜忠植)은 전례없이 관할 경찰서에 경찰간부 명단과 경력을 적어 내라고 해 말썽을 빚고 있다.서부지청은 지난 14일 마포·서대문·서부·은평·용산경찰서에 A4 한 장 분량의 ‘업무협조’ 공문을 보냈다.공문에는 “업무보고에 필요하니 과장 이상 명단을 15일까지 팩스로 제출해달라.”고 적혀 있다. 서부지청의 한 관계자는 “경찰간부 인사철에 맞춰 명단을 새로 작성하는 것은 관례”라면서 “15일 오전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인사이동이 없을 경우는 명단을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고 정정했다.”고 밝혔다. 장택동 박지연기자 taecks@
  • [젊은이 광장]수구 물결을 경계한다

    제6공화국의 두번째 대통령인 김영삼(金泳三)씨는 민주화의 발목을 붙잡는 ‘군부 후견주의’를 일소했으나,개발독재의 잔재 청산에는 실패했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경제위기와 냉전논리를 나름의 방법으로 극복하였지만,소외계층의 삶을 보장하는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획기적으로 구현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이제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대통령 당선과 진보정당의 성장을 보게 됐다.다소 낙관적인 전망을 해본다.새 정부의 보수화를 부추길 것으로 예상됐던 민주당내 일부 세력이나 정몽준(鄭夢準)씨가 정치무대의 ‘코러스라인’(연극에서 주역 배우만이 넘는 선) 뒤로 일단은 물러났기 때문이다. 예비 정부의 첫걸음은 수구파에 안기거나,그들을 껴안고 정치를 했던 과거 두 전임 정부와 분명 다르다.젊고 신선해보이는 전문가와 지식인이 미래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노 후보의 대선 승리를 ‘87년 6월항쟁의 완성’이라고 찬탄하는 소리에 멈칫하지 않을 수 없다.그의 득표율은 과반에 이르지 못했다.또 진보정치를 이끌고 있는 민주노동당 등도 국회에서 개혁을 주도할 만한 의석을 갖고 있지 않다.때문에 비관적인 전망도 없지 않다. 특히 ‘검열자’들은 큰 불안감을 안겨준다.그중 가장 드센 ‘칼잡이’는 매일 아침 가정을 방문,냉전적인 대북관과 반민주적인 가치관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수구언론이라고 생각한다.그들의 사고와 행동을 구성하는 씨줄과 날줄은 ‘사익 추구’와 ‘반대자 탄압'이다.그들은 진보적이고 좌파적인 의견이라도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기꺼이 용인하고 종종 지면에 올린다.반면,좌파라고 규정하기도 힘든 민간정부의 개혁적인 인물들은 서슴없이 ‘빨갱이’로 몰아친다. ‘건전한 보수우파’를 자처하면서도 보수우파의 상식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칙을 독재자 찬양이나 재벌체제 비호 등으로 전면 부정하는 수구언론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새 정부의 누군가가,혹은 학계의 개혁적 인물이,노 당선자나 최장집(崔章集) 교수가 당했듯,마녀사냥의 도마 위에 올려질 수도 있다.국가보안법과 그것을 지탱하는 무리들도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국가보안법은 안전과 보호의 미명 아래 개인의 자유를 탄압하는 모든 습속과 제도의 ‘두목’이다. 국가보안법은 5·16,유신,12·12,5·17 같은 쿠데타의 당사자들을 단죄하는 대신,‘불온한 사상’을 신봉하는 소위 ‘반체제 인사들’을 감옥에 가두었다.국가보안법이 ‘구체적인 범죄’가 아닌 ‘사람의 속내’를 주목하는 탓이다.예컨대 ‘한총련 대의원’들은 ‘이적단체’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배와 구속의 대상이 된다.뿐만 아니라,국가보안법의 ‘부하들’이 사회문화 분야에서도 온갖 참견을 일삼고 있는 세상에서,결국 우리는 모두 ‘한총련 대의원’이 될 수 있다. 6월항쟁은 5공의 후임자인 노태우(盧泰愚)씨의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져 회한에 찬 뒷말을 남겼다.이번에도 우리는 ‘검열자’들의 포위와 개혁 시도의 좌절로,또다시 회한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그래서 바란다.구시대적 시각을 뚫고 다양한 정치색이 사회에 만개하길.또 여러 정파의 연대를 통한 시민사회의 분투를. 투표용지를 날려 보내고 새 종이에 쓴다.“검열자들을 검열하라!”
  • 민주화운동 산증인 강희남 목사“40년만의 투표… 손이 떨려”

    “40여년 만에 투표를 하려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군사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뜻으로 주민등록증을 찢어버리고 40여년간 각종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던 강희남(姜希南·81·전북 전주시 인후동 인후아파트) 목사.19일 이른 아침 부인 주정수(54)씨와 함께 투표소로 가기 위해 주민등록증과 도장을 챙기는 그의 손은 자신도 모르게 느껴오는 전율로 가볍게떨렸다. 지난 92년 고(故) 문익환 목사와 함께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을 결성,남측본부 의장을 맡아 재야의 통일운동을 주도했던 강 목사는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이다.6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자 주민등록증을 찢어버리고 민주화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총칼로 국권을 탈취한 박 정권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고,이런 나라의국민 노릇을 한다는 게 창피하고 분해서 주민등록증을 찢어버렸지요.” 강 목사는 “청와대 주인공은 ‘청바지 대통령’이어야 민중과 가까워질 수 있다.”며 박 정권은 물론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까지를 군사정권의연장으로 간주해 이들 정권을부정하는 상징적 의미로 35년 동안 주민등록증을 갖지 않았다.“내 앞에 권력이란 없고,권력을 가진 자란 내 안중에 없다.”며 전북 김제시 백구면 난산교회에서 민중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선구자로자신의 삶을 불태워 왔다. 신분증이라고는 주민등록증뿐이었던 그는 이 기간 단 한 번도 투표를 하지못했을 뿐 아니라 혼자서는 배나 비행기를 타지도 못했다.불심검문에 걸려곤욕을 치렀는가 하면 77년부터 10여년 동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5번이나 투옥되는 등 기구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자 ‘통일 지향적인 정권’으로 받아들여 지난 98년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았으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현 정부의 미국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에 실망해 99년 또다시 주민등록증을 찢어버렸다. 중국에서 역사공부를 하는 데 필요한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올 4월 주민등록증을 다시 만든 그는 “죽기 전 마지막 주권행사가 될지도 모르는 이번 선거에서 꼭 한 표를 던지겠다.”며 “분단의 역사를 청산하고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세계에 과시할 수있는 후보를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최근 두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미국의 패권주의로 약소국이유린당하고 있는 것”이라며 “민족의 대동단결로 자주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98년 사면조치로 교도소를 나올 때 신도들이 마련해준 13평짜리 아파트에서부인과 함께 살고 있으며,지난해 12월 ‘민중주의’라는 책을 펴냈다.최근에는 한국 고대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현대百 3세경영체제로

    ‘오너의 쿠데타?’ 현대백화점이 18일 고 정주영(鄭周永) 현대 창업주의 비서 출신인 이병규(李丙圭) 사장을 전격 경질하고,정몽근(鄭夢根) 회장의 장남인 정지선(鄭志宣·30)부사장을 그룹 총괄부회장에 선임했다. 현대가 3세의 경영권 장악이란 측면 외에도 ‘왕회장’의 작고이후 가신들의 몰락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 부회장은 ‘왕회장’의 3남인 정몽근 회장의 장남.연세대 사회학과와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과묵한 성격에 대외활동보다는 업무에 정진하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지난 97년 3월 현대백화점에 입사한 뒤 지난해 기획실장으로 임원에 오른데 이어 연초 기획·관리담당 부사장으로승진했다. 그의 승진은 지난 9월말 현대백화점그룹이 현대백화점과 현대백화점H&S로분리될때 이미 예견됐던 것으로 현대가의 3세 승계를 본격화한 것으로 풀이된다.현대자동차 정의선(鄭義宣) 전무 등 현대가의 3세인 4촌 형들보다 빨리 부회장 대열에 오른 것이다. 그룹내 지분비율은 정회장이 현대백화점과 현대백화점H&S의 지분을 각각 23.5%씩 갖고 있으며,정 부회장은 1.3%씩을 확보하고 있다.이 때문에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지분변동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실질적인 경영에 참여하면서 4개 계열사를 총괄 지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사에서 이병규 사장 후임에는 하원만(河元萬·55) 경인지역본부장이 임명됐다.동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78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한 이래 백화점에 근무한 정통 유통맨이다.한편 유통업계에서는 이 전사장의 낙마를 ‘의외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는 정주영 창업주의 브레인으로 활동한데다 현대백화점을 고급화시키는데 상당히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올해 능률협회가 주는 고객만족 경영대상 개인부문을 받기도 했다. 유통업계 고위관계자는 “전문경영인으로서 책임감있게 이끌었는데 아쉽다.”면서 “부회장이 아닌 상근고문으로 물러난 것을 보면 오너가 친정체제를 구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이 때문에 그동안 오너와 이사장간에 소유구조 문제와 그룹비전 등을 둘러싼 갈등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아니냐는 풀이도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현대가가 ‘몽’ 형제들의 그룹 분할체제가 가속화되면서 자연스레 가신들의 설 자리가 옅어지는 현상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한편 참여연대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에도 재벌들의 ‘황제경영’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며 “최고경영자로서 자질을 검증받지 않은 2,3세들이 무분별하게 경영권을 넘겨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광삼기자 hisam@
  • [마 당] 대선과 문화사이

    이제 종반전으로 치닫고 있는 대선 상황에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이번 대선은 대규모 유세전으로 서로의 세를 과시하던 과거보다는 조용하지만,두 당이 역전과 역전을 거듭해 2강으로 압축된 지금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면서 물 밑으로 그 치열함이 점차 더해가고 있다. 나 역시 오늘 아침도 여러 일간신문과 인터넷에 나타난 대선의 양상을 훑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아마도 새 지도자를 뽑는 대선에 높은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자신의 앞날에 대한 나름의 기대와 꿈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장기 군사독재와 쿠데타로 이어지는 어두운 시절을 거쳐 지난 10년간 문민정부와 국민정부를 차례로 경험했다.이제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 민주화와 경제번영을 이루었지만 아직도 과거의 잔재는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지역분열과 정경유착,사회비리와 부정부패,입시지옥 등 지금 우리 사회가당면한 모든 사회문제들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 뿌리를 내린 것으로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 그늘을 만들고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새로 등장하는 21세기 첫 정권에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러한 낡은 시대의유산을 완전히 청산하고 우리 미래에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하는 정권일 것이다. 지금 각 당에서는 많은 정책들이 앞다투어 제시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속에서 새로운 우리 사회의 미래상을 찾아보기는 어렵다.각 당이 모두 나름의 경제성장의 목표수치를 제시하고 있지만 그러한 성장을 바탕으로 과연 우리 사회가 어떠한 사회를 지향해 가야 하는가에 대한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당면한 현상적인 문제의 해결책에만 매달려 보다 근본적인 문제 인식이 담긴 구체적인 미래의 비전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나라다운 나라”“새로운 대한민국”이란 구호가 아직도 공허하게만 들려온다.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갈 미래 사회는 과연 어떤 사회가 돼야 하고 이러한사회의 건설을 위해 지금 무엇을 개혁하고 준비해 갈 것인지 구체적인 정책제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성장을 위해,민주화를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고 그 결과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하지만 경제성장과 민주화는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토대이며 수단일 뿐이다. 경제성장과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우리 사회는 이제 보다 근본적인 지표를 상실한 채 방황하고 흔들리고 있다. 과외의 중압에 못이긴 초등학생들이 줄이어 자살을 기도하고 청소년들은 최소한 사회적 책임조차 망각한 텔레비전의 천박한 문화에 중독돼 가고 있다. 이것은 독재시대의 폭정보다도 더욱 무서운 우리 사회의 질병이다.나는 이러한 질병들은 보다 수준 높은 문화의 힘으로만이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이 선거를 지켜보면서 해방 후 김구 선생께서 생각하신 우리 사회의비전을 다시금 떠올린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나아가 남에게 행복을주기 때문이다.” 윤광진 연출가·용인대 교수
  • [씨줄날줄]기자 고시

    언론인들이 월드컵축구대회 같은 대규모 행사 등을 취재하기에 앞서 주최측으로부터 발급받는 프레스 카드(Press Card))란 것이 있다.주최측에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경기장 입장과 선수 인터뷰 등 각종 취재편의를 제공받기 위한 것이다.언론인 각자의 신분증이 있겠지만 세계각국,혹은 전국 각지에서몰려온 각양각색의 언론인들을 일일이 다른 방식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편의상 만들어놓은 임시 신분증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 프레스 카드가 언론통제의 수단으로 악용된 적이 있었다.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정권 시절이다.혁명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포고령으로 한 차례 언론기관 ‘정화’를 감행했던 박정권은 1972년 철권 통치를 강화하면서 또다시 프레스 카드제를 내밀었다.이 제도는 한마디로 증명서 교부라는 형식을 통해 정부가 모든 언론기관의 종사자들을 관의 통제 하에 두려 한 것이었다.이에 따르면 언론기관의 장이 ‘취재 보도 활동에 적합하다고 인정하는’ 기자의 명단을 작성해 정부에 내면 정부가 이에 의거해프레스 카드를 교부해 주고 1년에 2회 각급 기관에 기자의 명단을 통보해 취재 편의를 제공토록 해 준다는 것이다.명분은 당시에 판치고 있었던 사이비기자를 제거하겠다는 것이었고 형식은 정부의 권고를 받은 언론기관들의 자율 결의를 통해서였다.그러나 이 제도가 실시되면서 중앙 일간지의 지방주재기자 400여명이 자리를 잃는 등 기자들의 집단해고가 이어졌다.취재 편의는커녕 기자실 통폐합,출입기자수 축소 등 국민의 알권리를 위축시키는 조치가 잇따랐다.일부 지방에선 프레스 카드가 이권화돼 언론사주가 보증금을 받고 이를 팔아 넘기는 웃지 못할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했다. 원성이 높던 프레스 카드제는 이후 10년이 넘게 존속되다가 1987년 6월항쟁으로 쟁취한 6·29선언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중국 정부가 앞으로 모든 기자들에게 자격 고시를 실시하고 자격증 소지자에게만 취재활동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한다.프레스 카드의 망령이 뒤늦게 중국에서 되살아난 것일까.중국은 북한 등과 함께 ‘국경없는 기자회’가 최근 발표한 언론자유 최하위 국가이다.기자 고시가 곧 마음에 안드는 기자를 제거하기 위한 ‘사상검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그래서 더욱 실감나게들린다. 신연숙 논설위원 yshin@
  • 베네수엘라 일부유전 폐쇄/원유 수출 중단 장기화... 유혈시위 3명 사망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베네수엘라 총파업이 엿새째를 맞은 7일 미주기구(OAS) 중재로 재개된 정부와 야당의 협상이 결국 결렬됐다. 이에 따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수만명의 친정부 시위대와 반(反)차베스 시위대가 각각 집회를 갖는 등 혼란이 가중되고 있어 원유 수출 중단이 장기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루 94만배럴이던 원유 생산도 4분의1 수준으로 떨어졌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날 카라카스 중심가에 모인 수만명의 지지자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국민들이 총단결해 석유 산업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해 달라.”고 촉구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파업은 붕괴하게 돼 있으며 처음부터 파업도 아니었다.”고 비난하고 “지난 4월 이틀동안 나를 권좌에서 밀어냈던 쿠데타 시도와비슷한 일이 현재 벌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자신이 이런 쿠데타 시도에 충분히 대처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날 처음으로 원유 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으며 일부 유전이 폐쇄됐다고 말하고 전날 사의를 표명한 국영 석유회사 PDVSA 이사진전원을 경질할 뜻을 내비쳤다. 그는 또 선장이 파업에 동참한 유조선 한 척을 해군이 접수했으며 원유 28만배럴을 실은 이 유조선이 마라카이보 호수에 정박해 있다고 말했다. 호세 루이스 프레이토 국방장관도 파업에 맞서 군이 석유산업을 보호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세계 5위 원유 수출국의 신뢰 추락과 단전 등을 막기 위해군 병력의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차베스 대통령의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수만명의 반정부 시위대는 6일 시위 중에 7세 소녀 등 3명이 숨지고 28명이 다친 데 항의하는 거리 행진을 벌인 데 이어 9일부터 다시 파업을 재개하기로 했다. 임병선기자 bsnim@
  • 선택2002/국정원 대수술 ‘예약’/李.盧.權폐지.개편론 주장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2일 “대통령이 되면 국가정보원을 폐지하겠다.”고 발언함으로써 유력 후보들이 한결같이 국정원 폐지 또는 개편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어느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도 불법 도청 의혹과 국내 정치사찰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기구 등에 대한 전면적인 수술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이 후보는 도청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에 대해 “규정된 직무 외 기능을모두 없애겠다.”고 단언했다.대신 국가이익을 위한 ▲해외정보 수집 및 테러방지 기능 ▲간첩수사 기능 등 두가지 업무에 전념하도록 중립적이고 경쟁력있는 첨단 정보기관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다.감사원 감사 등을 통한견제도 받게 하겠다고 공약했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도 지난달 30일 국정원의 도청 논란이 거듭 제기되자 국정원의 명칭을 ‘해외정보처’로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임채정(林采正) 정책위의장은 “새로운 국정원의 위상은 해외정보에 치중하고 국내 정보는 대공·산업 정보에 국한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후보도 국정원을 폐지하는 대신 해외정보수집기구를 신설하고 국내 수사기능은 검찰과 경찰이 맡으면 된다고 강조했다.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는 후보 사퇴 이전에 국정원을 전면 개편,대통령직속 대외정보국과 총리실 산하 국가수사국으로 나누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정원은 1961년 5·16쿠데타가 발발한 뒤 김종필(金鍾泌) 현 자민련 총재의 주도로 신설된 중앙정보부가 그 전신이다.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81년 전두환(全斗煥)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나쁜 이미지를 벗고자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정치 사찰 등악명은 여전했다. 98년 현 정부들어 국가정보원으로 세번째 개명하고 국내·보안 기능을 해외·국내·대북 기능으로 확대,개편했으나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역대 집권자들이 모두 정보기관의 대수술을 약속했으나 결국 이름만바꾸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김경운기자 kkwoon@
  • 대선과 북한/북풍은 없다?

    북한이 조용하다.남한의 대통령선거를 20여일 앞둔 현재 북측의 언론 매체를 통한 구체적인 선거 관련 언급이 거의 없다.특정 후보에 대한 비방도 전에없이 약하다.휴전선과 서해상에서 특별한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고 있다.미국의 대북 중유공급 중단이라는 굵직한 사건에 대한 공식 반응도 당초 예상을밑돌고 있다.남북한간 경의선·동해선 연결사업 착수,북·일 관계개선 등 일련의 혁신적인 조치를 취해오다 미국에 대한 핵개발 시인으로 대외정책에 제동이 걸린 북한 입장에서 이번 대선이 갖는 의미는 남다를 수 있다.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간 ‘보혁대결’구도가점쳐지는 이번 선거에서 북한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그리고 후보들과의 역학관계는 무엇인지를 짚어본다. ◆북한이 바라보는 연말 대선 지난 6·29 서해교전이 발생한 일주일 뒤 북한은 ‘유감 표명’과 함께 남북 장관급회담을 제의해왔다.이때부터 한반도 정세는 급진전됐다.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의정상회담,8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의 잇단 합의 등 북한이 내놓은 조치와 관련,대북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은 북한이 포용정책을 펴온 김대중(金大中) 정권임기 내 성과를 만들어놓으려 한다는 것이었다.다시말해 이번 대선이 북한에는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는 북한에 대해 철저한 상호주의와 군사문제의 우선 해결로접근해야 한다는 이회창 후보와,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승계하면서 대북 교류·협력은 지속해야 한다는 노무현 후보간 정책 대결로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현재 북한은 상당히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남한 선거와 관련해 공식 논평을 내는 일은 거의 없고 조선중앙통신이나 노동신문,평양방송 등에서 후보들의 구체적인 발언을 문제삼고 비난하는 일이 있었지만 빈도수는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든 느낌”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유호열(柳浩烈) 교수는 북한의 최근 태도와 관련,“최대한 문제를일으키지 않고 대선을 일단 지켜본다는 입장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현재핵문제로 미국과 신경전을 거듭하고 있는 북한은 군사분계선 지뢰제거 작업과 관련,유엔사의 개입은 안 된다며 상호검증을 거부,결국 동해선 도로 연결 연내 완공에 차질을 빚게 하면서도 지난 25일에는 금강산 관광지구 사업을전격 발표했다. 대북 핵포기 압박책인 미국의 대북 중유공급 중단에 대해서도 제네바 핵합의 파기상황에 대한 미측 책임만 거론하는 강도 낮은 반응을 보였다. 후보에 대한 비방도 지난 7일 북한핵문제와 관련,한나라당을 비난한 것을제외하곤 드물게 나오고 있다. 이런 기류는 북한이 현재 대내적으로 처한 어려움과 고민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두 후보와의 역학관계 북한이 실제로 어떤 후보를 선호하는지,어떤 후보를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평가는 전문가에 따라 엇갈린다.현상적으로는 남북 정상회담을 정례화하고,각종 교류를 제도화하자는 노무현 후보를 선호할 것이란 추측에는 대체적으로 이견이 없다.노 후보가 햇볕정책을 이어가리란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북한이 노 후보를 일방적으로 지지·지원하지 않고 있는 ‘현실’도눈여겨볼 대목이라고 지적한다.만약 노 후보의 당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길 원했다면 포용정책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 이산가족 연내 추가상봉과 경의선·동해선 연내 연결 등에 앞장섰어야 했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강경한 부시 미 정부와의 핵 협상을 통해 과실을 얻고자 하는 ‘큰 과제’를 해결하기엔 남한 정부의 변수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북한이 핵포기 선언 등 전향적인 자세로 최근 한반도상황과 체제 변화를 꾀하지 않고 다시 벼랑끝 전술로 북·미관계 돌파를 시도하려 한다면,이회창 후보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의미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 평양에 주재했던 외교관은 “김정일 위원장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교류·협력의 길을 뒤로 물릴 수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김 위원장은 남한의 상대역이 누구인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얘기다. 김수정 박록삼 기자 crystal@ ★역대선거와 북풍사례 지난 87년 13대 대통령선거. 그해 6월 연세대 이한열(李韓烈)군의 죽음 뒤 연인원 2000여만명이 거리로뛰쳐나와 ‘군부독재 철폐,직선제 개헌’을 외치는 ‘6월 항쟁’이 들불처럼 일어났다.그 결과 5공정권이 이른바 ‘체육관선거’를 포기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을 받아들였다.그러나 민주정부를 수립하려는 국민들의 요구가 뜨거웠음에도 김대중(金大中) 평민당 후보와 김영삼(金泳三) 통일민주당 후보간 ‘후보 단일화’가 불발하는 바람에 정권교체는 이뤄지지 못했다.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의 후계자격인 노태우(盧泰愚) 민정당 후보가 결과적으로 어부지리를 얻은 것이다. 특히 87년 11월 ‘대한항공 858기’가 폭파됐다.그리고 대통령 선거 투표일 하루 전날인 12월 15일 ‘미모의 폭파범 김현희’는 자해를 방지하기 위해입에 재갈이 물린 채 서울로 압송됐다.비행기 트랩을 내리는 사진과 기사가모든 신문 1면에 일제히 실렸고 ‘당연하게도’ 유권자들의 반북 이데올로기와 보수심리를 자극하며 이 또한 문민정부 수립의 열망을 위축시켰다. 결국 선거는 36.6%를 득표한 노태우 후보의승리로 판가름났다.15년이 지난 지금도 일부 시민단체들이 KAL기 폭파 사건의 진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을 만큼 이 사건이 당시 대선의 변수였다. 이처럼 지난 남측의 크고 작은 선거에는 북한의 의도와 상관없이 항상 선거의 주요 변수로 작용했고 영향력을 미쳐 왔다.분단된 상황에서 이른바 ‘북풍(北風)’이 선거의 당락을 결정짓는데 요인중의 하나로 작용해왔다.87년대선 이후에도 92년 대선 직전 안기부가 발표한 ‘거물 간첩 이선실과 남조선노동당 사건’ 역시 북한 변수로 작용하면서 김영삼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는 것은 대다수 선거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대목이다. 급기야 지난 96년 4월 13대 국회의원 선거인 4·11총선때는 ‘판문점 무력시위 사건’이 일어나며 집권 세력이 북한 변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상황까지 번졌다. 이듬해 15대 대선에서는 ‘오익제 편지사건’이 일어나며 당시 조심스럽게 당선을 자신하면서 ‘북풍 대책팀’까지 가동했던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선 후보의 발목을 잡았다.오익제 전 천도교 도령이 월북한 뒤김대중 후보에게 보냈다는 편지가 안기부를 통해 공개된 것이다. 상지대 서동만(徐東萬) 교수는 “최근 북핵문제가 현안인 만큼 이와 관련해보수세력에서 반북 이데올로기를 조장하려는 시도가 있을 수는 있다.”면서“하지만 선거 공간에서 분단 상황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남북의 화해·협력에도 맞지 않으며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북한과 선거관련 일지 ◆13대 대통령 선거(87.12.16) 87년 11월 29일 KAL 858기 폭파.12월 15일 폭파범 김현희 서울 압송.여당인민정당 노태우 후보 당선 ◆14대 대통령 선거(92.12.18) 92년 10월 안기부,남파간첩 이선실 및 남조선노동당 사건 발표.여당 민자당김영삼후보 당선. ◆첫 지방자치단체장 선거(95.6.27) 95년 6월26일 김영삼 정부는 민간의 대북지원도 금지하다가 갑자기 강원도동해항의 대북 쌀 수송선 출항식.역효과 불러 신한국당 참패. ◆15대 국회의원 총선거(96.4.11) 96년 4월5∼7일 무장 1개 중대 무력시위.11일 북한군 군사분계선 월경.여당신한국당139석,제1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 79석 확보. ◆15대 대통령선거(97.12.18) 97년 11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측 인사 북한 관계자 만나 ‘북풍 공작’ 시도.새정치국민회의 미리 알고 문제 제기.한나라당 패배.
  • 남미 좌파·유럽선 우파 바람

    쿠데타 혐의로 투옥된 경력이 있는 중도좌파 루시오 구티에레스(45) 후보가 24일 에콰도르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승리함으로써 남미의 좌익정권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25일 에콰도르 선관위에 따르면 개표작업이 97% 진행된 결과 당초 예상대로 육군대령 출신인 구티에레스 후보가 유효 득표의 54.3%를 얻어 45.7%에 그친 알바로 노보아(52) 후보에 압승을 거뒀다. 구티에레스의 당선은 지난달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노동당(PT) 후보가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데 이은 것이다. 여기에 내년 3월 대선을 치르는 아르헨티나도 좌파 루이스 사모라 의원의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다. 구티에레스 당선자는 2000년 1월 경제실정에 항의하는 원주민 시위 때 군부 소장파를 중심으로 쿠데타를 주도해 부정부패와 무능의 상징이었던 하밀 마와드 전 대통령을 축출하는 데 성공한 인물. 그러나 쿠데타 직후 구스타보 노보아(64) 현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겼다. 쿠데타 혐의로 체포돼 군교도소에서 6개월 옥고를 치른 뒤 예편한 그는 원주민과 공산당,노동조합 등의 강력한 지원을 업고 결국 대권을 거머쥐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신봉하는 그에게는 ‘좌파’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으나 자신은 “결코 공산주의자가 아니며 사유재산과 인권을존중하는 기독교인”이라고 강조해 왔다. 이에 견줘 바나나 농장과 110여개 기업을 거느린 해운업 갑부인 노보아 후보는 자유시장경제와 외자유치를 통한 경제회복을 주장했음에도 원주민과 빈민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분석가들은 부패와 맞서 싸울 수 있는 강한 지도자 이미지가 구티에레스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고 지적했다. 에콰도르에선 1년에만 20억달러가 정부 금고를 통해 빠져나가는 것으로 추계될 만큼 부정부패 문제가 심각하다. 임병선기자 bsnim@
  • [글로벌 시각] 민주주의 확산에 인색한 美-서울민주주의 각료회의를 보고

    지난주 서울에서 개최된 민주주의공동체 회의에는 110여개국이 참가해 자유를 보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한 ‘행동계획’을 채택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주요 국제회의였지만 이번 민주주의공동체 각료회의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미국의 주요 언론들도 관련 기사를 다루지 않았다.유엔에서의 이라크 결의안 조정작업 등을 이유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참석을 취소하자 각국의 언론도 관심을 거뒀다.민주주의 국가들의 행동방향을 규정한 ‘행동계획’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과 오사마 빈 라덴의 생존 소식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무관심은 외교정책에 있어 자유의 확산에 주안점을 두겠다고 공언해 온 부시 행정부의 의도에 비추어볼 때 실망스럽다.부시 행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많은 곳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하지만 아프간에서의 군사행동,이라크에 대한 전쟁 준비,예멘내 알 카에다 조직원에 대한 폭격 뉴스에 가려 이러한 노력은 빛을 잃었다. 민주주의 운동가들은 종종 고립된 무리들처럼 보인다.서울 회의에미국을 대표해 참석한 이는 폴라 도브리언스키 미 국무차관이었다.도브리언스키 차관은 과격론자들을 낳는 사회에 정치적 자유를 심어주는 것이 테러리즘을 해결하는 최선책이라고 주장해왔다.민주주의공동체 회의는 지난 75년 헬싱키선언의 민주주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시작됐다.과거 유럽안보협력회의(OSCE)를 창설시키고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데탕트시대의 외교는 마침내 소연방을 붕괴시켰다. 그러한 정신은 지금도 전세계가 자유의 원칙을 이행하도록 유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또 민주주의의 확산과 국가들 사이의 유대감을 돈독하게 할 수 있다.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부시행정부 들어 이같은 노력은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도브리언스키 차관을 중심으로 한 미국 팀은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한 길을 끈질기게 모색해 왔다.서울 회의에 참석하기 전 미국 대표단은 과거 미국 동맹국이면서 엉터리 민주주의의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들을 몰아내기 위한 개혁안을 마련했다.이집트,파키스탄,말레이시아는 모두 회원자격을 얻지 못했다.물론 회원자격을 주지 않는다고 이 나라들이 체제를 바꾸지야 않겠지만 이는 이들 나라들의 관행을 과거처럼 용인하지만은 않겠다는 분명한 제재조치다. 이에 격분한 나머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마하티르 모하메드 말레이시아 총리는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하라는 제의도 거절했다. 이번 서울회의에서 채택된 행동계획은 민주주의 국가들간의 연대강화를 위한 지역협력,주변국에 대한 변화 촉구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미국과의 민주적 협정은 올초 베네수엘라의 쿠데타를 저지시켰다. 서울 행동계획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지역적 연대강화를 통해 비슷한 방화벽을 만들도록 촉구하고 있다.흥미로운 사실은 알 자리라 방송을 두고 있고 자유투표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는 여러 페르시아만 국가들 중 하나인 카타르가 내년 중동에서 연대회의를 갖자고 제의했다는 것이다.또 유엔총회에서 민주주의 연대회의를 열자는 계획도 있다. 국제적인 무관심이 아니라도 민주주의 발전에는 시간이 걸린다.89년 중유럽에서 일어난 혁명도 헬싱키 회담이 열린 지 14년만이었다.한 정부 관계자는 협력이 되더라도 그 성과가 나타나는 데 6∼8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하지만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것은 파괴보다 중요하다. 잭슨 딜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 [데스크 시각] ‘고르비’를 기다리며-

    지난 1987년 현직 당서기장이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직접 쓴 저서 ‘페레스트로이카(개혁)’는 당시 소련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속속들이 털어놓고 반드시 이를 고치겠다고 다짐한 일종의 고백서이자 참회록이다. 페레스트로이카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통절한 철학적 반성과 성찰을 이 책은 담고 있다.저자 스스로 밝혔듯이 책을 미국에서 출판한 의도도 당시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딱지 붙인 미국을 향해 자신의 절박함과 진지함을 직접 호소하겠다는 뜻이었다. 이후 고르비의 개혁과정에 가장 큰 힘이 됐던 것은 러시아 국민과 서방의 일관된 신뢰였다.사람들은 그의 개혁 의지를 의심치 않았고 이를 밑천으로 그는 불가능해 보였던 변혁의 대장정을 성공시켰다. 북한의 경제시찰단이 8박9일간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남쪽 경제 학습’을 마치고 갔다.74세인 박남기(朴南基) 단장의 노익장과 시찰단원들의 진지함이 많은 화제를 뿌렸다. 김정일 위원장도 이들을 보내며 핵문제로 야기된 긴장상태를 빗대 “정세는 정세고 배울 건배워오라.”고 했다고 하니 앞으로 이들이 보여줄 학습효과가 자못 기대된다.지난해 1월에는 김 위원장이 몸소 중국 경제학습에 나서 상하이 일대를 둘러보고 ‘천지개벽을 보는 것 같다.’는 심경을 토로한 적도 있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중국식 개혁을 뒤따르는 게 아니냐는 기대를 가졌다.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이 보인 행동은 이런 기대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본 것 따로 행동 따로였던 셈이다. 북한도 나름대로는 적지 않은 개혁조치들을 내놓았다.가격자유화,인센티브제까지 도입됐다.신의주특구 발표가 있었고 개성공단이 진행 중이다.그런데도 북한을 바라보는 외부세계의 눈길은 여전히 싸늘하게 식어 있다. 왜 그럴까.가장 큰 이유는 김정일 위원장의 개혁의지를 못 믿기 때문이다.김 위원장 스스로 자신의 개혁 의지가 얼마나 절박하고 진지한 것인지에 대한 설득 노력을 제대로 한 적도 없었다. 우리 정부의 책임도 크다.DJ정부가 펴온 대북정책의 근간은 우리가 베풀면 북한도 언젠가는 변한다는 것이다.그 바닥에는 민족의 일체감이 최우선 가치로 자리했다.하지만 경협과 지원에만 골몰한 나머지 개혁의 초심에 충실하라는 훈수에는 소홀했다.핵개발을 한다는 데도 우리는 그것은 안 된다고 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핵에 대해 북한은 안보논리를 내세우고 있다.안전보장을 확약하라고 미국에 요구하고 있다.그러지 않으면 핵합의는 지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하지만 북한이 ‘강한 미국’을 내세워 상하원까지 장악한 부시 행정부와 외부 세계를 상대로 끝까지 이런 ‘벼랑끝 전술’로 맞설 수는 없다. 그보다는 지금부터라도 치열한 ‘개혁의 고백서’를 만드는 편이 훨씬 더 현명하다.시간이 걸리겠지만,그래서 북한 주민들이 지지하고 바깥 세상이 믿게 해야 한다.국민이 따르지 않는 개혁이 성공할 수는 없다.그리고 개혁이 역풍을 맞을 때 이를 지켜주는 것도 국민이다.91년 여름 보수 쿠데타 때 맨몸으로 고르비를 지켜준 것은 바로 모스크바 시민들이었다. 남북의 주민들과 서방세계가 지지하고,개혁의 초심에 천착하는 진정한 개혁가의 모습을 북한 땅에서 보고 싶다. 이기동 국제팀장 yeekd@
  • 터키총선 이슬람계정당 압승

    3일(현지시간) 실시된 터키 총선에서 이슬람계 정당인 정의발전당(AKP)이 압승을 거뒀다.특히 세계적으로 이슬람주의자들의 반미(反美) 정서가 고조되고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예상되는 시점에서,이라크와 접경한 터키의 이슬람계 정당 집권은 작지 않은 파장을 몰고올 것으로 전망된다. 터키 관영 TRT방송은 4일 정의발전당 34.2%,인민공화당(CHP)이 19.3%의 득표율을 기록했으나 뷜렌트 에체비트 현 총리가 이끄는 집권 연정 내 3개 정당 등은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득표율을 획득했다고 보도했다.이에 따라 정의발전당은 전체 550석 가운데 363석을 얻어 독자 내각을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정의발전당의 승리는 터키 국민들이 2000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 지원을 받았을 정도로 사상 최악의 경제난을 초래한 집권 연정에 책임을 물어 철저히 등을 돌린 것이 주요인으로 분석된다.하지만 정의발전당의 대승에도 불구하고 터키의 앞날은 그리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정의발전당이 위기에 빠진 터키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안정적인 정국 운영이쉽게 이뤄지기 어려운 탓이다.정의발전당은 이슬람계 정당 출신 의원이 주축이 돼 창당한 만큼 이슬람 색채가 너무 짙다.당수인 레셉 타입 에르도간은 1999년 이슬람 근본주의 내용의 시를 암송하다가 체포돼 4개월간 복역한 전력을 갖고있어 총선 출마가 봉쇄됐다. 때문에 정의발전당이 과격한 이슬람 계파와 유착돼 친서방적이고 정·교 분리를 내세운 터키 정치체제를 흔들어 3차례나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를 자극할 것이란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터키 국민들은 정의발전당이 종교보다는 경제난 해결을 우선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에르도간 당수가 어려운 서민생활을 이해하고 있는 데다,각종 복지정책 확충과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지지,IMF와의 공조 등을 공약으로 내걸며 이슬람 색채를 털어버리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덕분이다. 에르도간 당수는 승리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승리에 도취돼 있을 시간이 없다.선거공약에 따라 유럽연합(EU) 가입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하며,160억달러를 지원한 IMF와도 계속 협력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결국 터키의 앞날은 에르도간 당수의 정의발전당이 안고 있는 이슬람 색채를 얼마나 털어버릴 수 있을 것인지 여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김규환기자 khkim@
  • 시티그룹 이미지 변신 안간힘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시티그룹이 이미지 개선에 나섰다.투자 수익을 올리기 위해 회사에 유리한 증권분석을 일삼았다는 세간의 의혹을 무마시키기 위해서다.시티그룹은 30일 증권분석과 주식인수·공개 등의 투자은행 업무를 분리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분석업무와 투자업무를 겸하고 있는 계열사 살로몬 스미스 바니 증권에서 증권투자 분석을 전담하는 ‘스미스 바니’를 분사시키겠다는 것.특히 37세의 여성 분석가인 샐리 크로첵을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로 영입,월가를 놀라게 했다.크로첵은 경제분석회사인 샌포드 번스타인의 대표지만 시티그룹의 신진 경영진으로 발탁된 것은 뜻밖이다. 월가의 분석가와 투자자들은 그의 발탁을 높이 사면서도 인사상 ‘쿠데타’로 표현했다.크로첵은 투자은행 분야를 전담한 분석가로서뿐 아니라 경영인으로서의 감각도 인정받았다.인터넷 거품이 꺼질 때 광고수입의 격감을 맨먼저 정확히 짚은 것은 유명하다.1994년 보험 분석사로 번스타인에 입사한뒤 4년만인 1998년에 조사 책임자가 됐다.언론으로부터 정직한분석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발탁 시점에 논란이 일고 있다.시티그룹은 뉴욕주 검찰과 미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혐의는 2000년 살로몬 스미스바니가 AT&T 주식을 인수·매각하는 과정에서 시티그룹이 정보통신 분야를 담당한 분석가 잭 그럽먼에게 투자등급을 좋게 유지하라는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초점은 샌포드 웨일 시티그룹 회장에 직접 맞춰졌다. 게다가 시티그룹은 스미스 바니가 독립적인 업무를 수행할 것이라는 것 이외의 구체적 기능은 설명하지 않았다.투자은행 업무와 분리한다고 했으나 특정기업에 투자하거나 공개 업무를 대행할 때는 분석 파트와 협조하는 게 일반적이다.크로첵이 투자은행으로만 남는 살로먼 스미스 바니가 아닌 웨일 회장에게만 직접 보고하는 시스템을 갖춰도 내부적으로는 얼마든지 사전 협의가 가능하다. 때문에 월가에서는 시티그룹의 이번 조치를 검찰 등의 조사에 영향을 미치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한다.뉴욕주 검찰은 크로첵의 발탁이 긍정적인 조치라고 평가하면서도 수사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크로첵이 증권 분석의 주된 고객은 주식을 파는 기업이 아니라 주식을 사는 투자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시티그룹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어느정도 회복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mip@
  • 8년만에 스크린 나들이 이종원/ 멜로물 별 거 아니던데요 사랑할때 누군 안 벗나요?

    영화사 홍보실에서 그를 “예뻐 죽겠다.”고 칭찬하는 이유를 알겠다.새달 8일 개봉하는 멜로영화 ‘밀애’(제작 좋은영화)로 8년만에 스크린 나들이를 한 이종원(34).“인터뷰 다니느라 피곤하겠다.”고 인사말을 건넸더니 무심한 대답을 돌려준다.“영화만 찍어놨다고 끝인가요? 사람들이 보게 만들어야지.” ◆ 8년만에 영화 찍기 ‘열일곱의 쿠데타’‘푸른 옷소매’‘계약커플’.‘밀애’는 4번째 영화다.1994년 ‘계약커플’을 찍기까지 흥행과는 인연이 없었다.깨끗이 미련을 접고 TV로 돌아선 이유는 하나. “먼저 지명도를 높여야겠다고 계산했어요.방송국에서는 욕할지 모르겠는데(웃음)….방송을 우습게 보자는 얘긴 아닙니다.평생 연기자로 남겠다는 신념은 방송국에서 건졌으니까요.” 내공을 쌓을 만큼 쌓고 스크린으로 돌아왔다는 완곡한 표현이다. 한 2년 방송을 쉬겠다고 선언한 게 지난 2월.호시탐탐 마음에 드는 책(시나리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 그를 잡아당긴 영화가 불륜을 격정적으로 담은 멜로였다. “지난 5월 대본을 처음 받고많이 망설였어요.이렇게나 ‘찐한’ 멜로를 찍을 수 있을까,멜로물로 재도전에 성공할 수 있을까,다큐멘터리 전문 감독(변영주)이 상업 멜로를 잘 찍을까….주판알 튕기며 고민할 때 마음을 잡아준 건 집사람이었어요.집사람만큼 정확하고 좋은 모니터가 없어요.” 끝내 죽음에 이르는 아찔한 불륜영화를 찍었어도 정작 그는 “끔찍한 애처가”다. “감독의 여고 후배인 아내가 무조건 변 감독의 역량을 믿어보라고 등 떼밀었다.”고 머쓱한 듯 웃는다. ◆ “사랑할 때 누군 안 벗나요? ” 영화에서 그의 역은,남편 외도로 상실감에 시달리는 여자와 돌이킬 수 없는사랑에 빠지는 이웃집 남자.불륜의 주인공이다.그러나 세상의 편견이 마음에 안 든다. “유부녀·유부남의 사랑은 덮어놓고 불륜인가요.영화를 찍다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한 남자가 한 여자를 장난처럼 만나다 진짜 사랑하고마는 절절한 이야깁니다.” 수위 높은 정사장면으로 촬영기간 내내 충무로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모텔,숲속 정사 신을 찍을 때는 감독과 촬영담당만 현장에 들어갔을 정도였다.많이 의식하고 지낸 모양이다.묻기도 전에 쓰윽 말머리를 꺼낸다.“해보니까 별 거 아니던데요.(정색 하더니)사랑할 때 누군 안 벗나요?” 생각보다 그는,참 말을 잘 한다. ◆ 말 잘하는 남자,빈틈없는 배우 건조하고 냉소에 찬 캐릭터를 소화하느라 몸무게를 11㎏이나 뺐다.기자의 취재노트를 흘끔흘끔 곁눈질까지 하는 꼼꼼함.경남 남해 촬영장에 갇혀 있다시피할 때에도 그랬다.생후 2개월된 둘째아들이 그렇게 보고 싶었어도 서울집에 한번도 들르지 않았다.“눈빛이 행복해져 촬영장에 내려올까봐”였다. 기왕에 별러서 돌아온 영화판.한 2년 정신없이 굴러볼 작정이다.“‘젊은이의 양지’‘청춘의 덫’에서처럼 비정한 역이 잘 어울린다고들 한다.”는 그는 “동선이 큰 액션물을 꼭 한번 찍고 싶다.”고 말한다. 차기작 ‘나비’가 그나마 욕심의 절반은 채워준단다.삼청교육대를 자원해간 남자로,시대가 만들어낸 악을 대변할 것이다. “모델,탤런트,영화배우.이런 수식어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아갑니다.‘연기자 이종원’ 하나면 족해요.”황수정기자 sjh@
  • 진압부대 알파·오몬/ 테러진압 전담 해결사 마피아도 겁내는 부대

    (모스크바 연합) 진압작전 주역은 23일 사건 발생 직후부터 현장을 지키며 ‘명령’만을 기다려온 특수부대인 ‘알파부대’와 ‘오몬’.1974년 창립된 알파부대는 모든 테러사건 해결에 빠짐없이 개입하는 대 테러전 전담 부대이다.연방보안국(FSB)차장이 직접 지휘한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 침공시 대통령궁을 습격,대통령을 비롯해 100여명을 사살하는 등 크고 작은 사건에 투입돼 테러전문 해결사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1991년 옛 소련의 보수파 쿠데타 당시에는 의사당 앞에서 쿠데타 반대세력을 지휘하던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등 주요 인사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거부해 쿠데타를 무산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기도 했다. 250명으로 1개 부대가 편성된 알파부대는 모스크바 외에 크라스노다르와 하바로프스크 등 전국 주요 도시에 지부를 두고 있다. ‘검은 베레’로 알려진 특수부대 오몬은 내무부 산하기관으로,우리의 ‘경찰특공대’에 해당하는 조직.조직범죄와 마약 밀매단 소탕을 주임무로 하고 있어 옛 소련 해체 이후 준동하는 마피아가 가장겁내는 부대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박봉에 시달린 나머지 일부 부대원들이 마피아로부터 돈을 받고 출동 계획을 미리 유출시키는 등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으나 테러진압과 같은 작전에서는 특유의 근성으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 北核 파문/ 파키스탄과 核·미사일 교환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북한이 핵개발 계획 사실을 시인했다고 미국 정부가 발표한 지 이틀째인 18일 미국과 일본 언론들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 계획 내막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미 행정부 고위관리와 정보기관은 북한의 비밀 핵무기 개발 계획은 1997년쯤부터 파키스탄의 절대적 지원으로 진행됐다고 잠정 결론짓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가스원심분리기를 비롯해 파키스탄이 제공한 주요 핵무기 개발 부품들을 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하는데 사용했다고 보도했다.이 신문은 이러한 거래는 1990년대말부터 구상무역 형태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재가동할 수 있도록 파키스탄이 장비를 제공하고 북한은 인도 핵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미사일을 파키스탄에 공급했다는 것이다. 타임스는 미 관리의 말을 인용,파키스탄과 달리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개발에 큰 지원을 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파키스탄과 북한 거래는 1997년쯤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무혈쿠데타로 집권하기 2년전 시작돼 대통령이 된 뒤는 물론 지난해 9·11테러 직후까지 계속돼왔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날 미국이 비밀리에 진행중이던 북한의 핵개발 사실을 포착해낼 수 있었던 것은 우라늄 농축에 필요한 고강도 알루미늄을 다량 확보하려는 북한의 시도를 미 정보기관이 감지해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신문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이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는지,파키스탄 이외에 다른 국가나 기업이 우라늄 농축기술 확보에 도움을 제공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또 우라늄 농축시설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상당한 규모의 건설활동에 대한 정보도 입수했지만 미 관리가 위치를 밝히길 거부했다고 보도했다.이 신문은 이전부터 자강도 하갑 등 3곳에 우라늄 농축공장이 있는것으로 추정돼왔다고 전했다. 파키스탄 대통령 공보비서 겸 국방부 대변인인 라시드 구레시 소장은 이날 교도통신에 파키스탄이 북한에 핵무기 개발 계획을 위해 일부 부품이나 장비를 공급했다는 외국 언론 보도들을 ‘근거없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일본의 아사히(朝日)신문은 북한이 이달초 평양에서 열린 북·미고위급회담에서 우라늄 농축장비를 제3국으로부터 구입했다는 사실을 시인했으나 가동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아사히는 외교 소식통들을 인용,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제임스 켈리 특사가 미 중앙정보국(CIA)이 입수한 우라늄 농축장비의 통관서류를 들이대자 구입사실을 시인했다고 전했다. 한편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통신은 18일 북한 외교 소식통들이 북한의 핵개발 계획 보유 사실을 부인했다고 평양발로 보도했다.익명의 소식통은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비밀리에 추진해 왔음을 시인했다는 미국측 발표는 외교적 책략에 불과하다.”며 이같이 일축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m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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