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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세인 분신 알 두리 미군에 체포”

    “후세인 분신 알 두리 미군에 체포”

    “이라크 ‘아이스맨’ 붙잡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23일(현지시간)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자트 이브라힘 알 두리(65)가 미군에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알 두리는 2006년 12월 사형된 후세인과 그의 아들 우다이(36)·쿠사이(34) 형제, 당시 대통령 비서실 안보담당 아비드 하미드(60)에 이어 미군 지명수배 명단 5번째 거물이었다. 그는 후세인 치하 혁명위 부위원장, 부통령을 거친 수니파 지도자로, 미군은 그의 목에 현상금 1000만달러(99억 4500만원)를 걸고 있었다. 텔레그래프는 후세인의 고향인 북부 티그리트 출신의 알 두리가 티그리트 산악지역에서 붙잡혔다는 사실이 중동 텔레비전에 방영됐다고 보도했다. 알 두리는 얼음가게를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혁명군을 이끌며 ‘아이스맨’(Ice-man)이란 별명을 얻었다.1988년 쿠르드 지역인 북부 할랍자에서 민간인 5000명을 학살한 사건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고교중퇴 학력에 군사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후세인의 총애에 힘입어 중장 계급장까지 달았다. 후세인이 그를 신임한 것은 68년 성공한 바트당의 쿠데타 모의에 적극 가담,79년 후세인이 대통령에 오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후세인의 장남 우다이에게 딸을 출가시켜 최고 권력자와 사돈관계를 맺기도 했다. 미군은 알 두리가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후세인 해외은닉 자산의 열쇠를 쥔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집권 바트당은 2001년 이라크전 발발 뒤 해산됐으나 후세인 처형 직후 조직을 재건, 알 두리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하지만 위성방송 알-아라비아는 체포된 사람의 신원이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으며, 이라크 보안군이 미군에 넘겨 DNA검사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남경필 “당권 도전할 수도”

    남경필 “당권 도전할 수도”

    한나라당 소장파의 리더격인 남경필 의원이 7월 전당대회에 출마, 당권에 도전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혔다. 남 의원은 15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전당대회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있고, 아무 것도 안할 수도 있다.”면서도 “당에서 무언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면 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안인 친박(親朴·친박근혜) 인사 복당에 대해 남 의원은 “친박연대에 대해서는 반대다.”고 분명한 입장을 보인 반면 친박 무소속 연대에 대해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지난 공천과정에서 이상득 국회부의장 불출마를 요구하며 ‘3·23 쿠데타’에 적극 가담한 것에 대해 남 의원은 “(불출마를)이루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그동안 당내 비주류 행보를 보여 왔지만 4선 중진의 반열에 오른 남 의원은 “정치인 남경필의 독자적인 길을 가겠다.”며 새로운 길을 모색 중임을 시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친박연대 복당에 반대하는 명분은 무엇인가. -크게 보면 해당행위를 했다. 특히 비례대표 부분에서 국민적인 검증을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 결격 사유가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 분을 받아들이기는 무리가 있다. 한나라당에서 공천 신청자격조차 안된 분들이 많다. 하지만 지금 논의할 것은 아니다. ▶총선 결과 영남권에서 친박 계열이 돌풍을 일으켰다. 공천이 잘못된 것 아닌가. -잘못됐다. 하지만 공천 피해자 중 당을 위해 출마 안한 사람이 더 많았다. ▶한나라당과 친박연대의 관계는 어떻게 봐야 하나. 친박연대가 범여권인가, 야당인가. -그건 그분들에게 물어 봐라. 그분들이 앞으로 어떤 행동 하느냐에 달려 있다. ▶수도권 민심이반을 명분으로 공천과정에서 이상득 부의장 불출마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 부의장이 출마하고도 선거 결과는 한나라당이 수도권에서 압승했다. -오히려 그때 (이 부의장이 불출마)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고, 영남권도 무소속 출마자들이 당선되기 어렵지 않았겠나. 공천 책임자들로 알려진 분들이 흔쾌히 책임졌으면 박근혜 전 대표도 그렇게 못했을 것이다. 영남에서도 친박 바람이 불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득 부의장과 친박측에 각을 세워 전당대회에 출마하더라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렇게 평가된다면 안하는 거다. 내 목소리가 당에서 받아들여지고 인정되면 하는 거고. 한편으로는 아무 것도 안할 생각도 있다. ▶앞으로 당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옛날처럼 모임을 만들 생각은 없다. 이제는 개인적인 얘기하면서 의사소통하고 네트워킹할 것이다. 사람이나 세력에 소속해서 할 생각은 없다. 원칙과 기본에 맞춰 얘기할 것이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與 당권주자群 ‘도전 딜레마’

    與 당권주자群 ‘도전 딜레마’

    “선뜻 나서기에는….” 한나라당의 차기 당 대표직 도전을 두고 당권 주자들의 딜레마가 깊다. 자천타천으로 후보군에 들고 있지만 당내 역학관계와 마땅한 지원세력이 없어 정작 당사자들은 주저하고 있다. 가장 먼저 당권 도전을 선언한 정몽준 의원은 “6선 의원으로 전당대회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 의원은 4·9총선에서 대선 후보인 통합민주당의 정동영 후보를 여유 있게 누르고 차기 당권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간 상태다. 이번 총선에서 친이(親李·친이명박) 핵심인사들이 줄줄이 낙마한 가운데 친박(親朴·친박근혜) 견제의 적임자라는 당내 평가 등도 그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정 의원이 당 대표가 된다면 현대그룹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현대가(家)가 권력을 독식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부자 정당의 부자 대표’라는 꼬리표는 야당의 공격 대상이 될 공산도 크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초기 부자 내각으로 얼마나 곤혹을 치렀나. 당 대표까지 정 의원이 맡는다면…”이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5선의 고지에 오른 김형오 의원도 당 대표로 거론된다. 친이로 분류되면서도 친박 진영에서도 거부감이 없어 관리형·화합형 대표로 적격이라는 평이다. 그러나 김 의원이 당권에 도전하면 여당에서 마땅한 국회의장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부담이다. 김 의원은 “고민 중”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지난해 대통령 경선에 출마한 홍준표 의원도 타천으로 당권주자로 거명된다.4선에 오른 만큼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이 높지만 홍 의원은 “지켜보고 있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그는 지난 경선에서 참여 자체로 흥행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저조한 득표를 얻는 데 그쳤다.‘싸움닭 이미지’도 약점이다. 차기 경기도지사 출마가 유력한 남경필 의원도 당권 도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소장개혁파 리더로 꼽히는 남 의원은 소장파의 지원을 업고 나설 태세다. 하지만 남 의원은 공천 과정에서 ‘3·23 쿠데타’에 적극 가담하면서 ‘반(反)이상득’ 행보를 보인 데다 최근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파트너는 야당”이라며 친박 인사 복당 논의를 정면으로 비판,‘반박’(反朴) 행보를 보인 것이 큰 부담이다. 게다가 지난 공천과정에서 자파 계보 인사들이 대거 낙천해 입지도 줄어든 상태다. 원희룡·정병국 의원 등 동료 소장파의 지원도 얻기 힘들다는 평이다. ‘정치 1번지’ 종로에서 야당의 당수 손학규 대표를 누른 박진 의원도 여세를 몰아 당권에 도전할 것으로 보이지만 손 대표를 꺾고도 아직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내 지원세력이 적은 게 최대 약점으로 꼽힌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좌충우돌 남경필 “국정파트너는 野”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이 13일 당내외에서 불붙고 있는 친박(친 박근혜)계의 복당 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당 지도부와 박근혜 전 대표가 ‘친박세력’의 복당을 놓고 대립하는 가운데 소장파인 남 의원까지 나서 논란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다. 그는 18대 총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불출마를 주장하며 소장파 ‘쿠데타’를 주도했다. 지난번엔 ‘반(反)이상득’에서 이번에는 ‘반(反)친박’으로 돌아선 것이다. 남 의원은 “당 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 당선자들의 입당 논란은 이제 중단돼야 한다.”며 명확히 ‘복당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이어 “집권 여당의 국정 동반자는 야당이라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고 원칙이다.”면서 “마치 친박연대가 한나라당의 첫번째 국정 동반자로 인식되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남 의원은 또 청와대를 향해 “대통령께서도 빠른 시일 내에 제1야당 대표를 만나 ‘대통령의 국정 파트너는 야당’임을 천명하시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이는 “친이·친박이 어디 있느냐. 국내에 경쟁상대가 어디 있느냐.”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과도 맥을 같이한다. 대통령은 ‘더 큰 그림’을 보고 친박계를 놓고 벌어지는 갈등의 ‘총대’는 자신이 메겠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경기도당 관계자는 “친박계를 대척점으로 삼아 친이(친 이명박)계 내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생각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재오·이방호 의원 등이 낙선한 상황에서 소장파 내 입지를 다지고 차기를 겨냥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7월 전당대회뿐만 아니라 차기 경기도지사 경선까지 염두에 둔 행보라는 얘기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단독]6선 이상득 부의장과의 KTX 동승 상경기

    [단독]6선 이상득 부의장과의 KTX 동승 상경기

    지난 12일 오전 10시30분 대구 경북대병원 영안실. 전날 부친상을 당한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 상가(喪家)에서 조문을 마친 이상득 국회부의장을 만났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으로 이번 총선을 통해 한나라당 내 최다선인 6선 고지에 오른 이 부의장은 기자의 질문 공세에 극도로 말을 아꼈다. 이날 오후 2시 동대구역 귀빈실,2시10분에 출발하는 서울행 KTX를 기다리는 이 부의장을 다시 만났다. 이 부의장은 함께 귀경길에 오른 김경한 법무장관과 안택수·심재철 의원 등과 잠시 담소를 나눈 뒤 귀빈실을 나서려는 순간 이재오·이방호 의원과 마주쳤다. 두 의원은 오후 2시40분 KTX 열차를 예약해 뒀다고 했다. 이 부의장은 이재오 의원과 반갑게 악수를 나눈 뒤 서둘러 귀빈실을 나섰다. 플랫폼에선 서울행 KTX를 기다리던 정두언 의원을 만났다. 정 의원 역시 강 대표를 조문한 뒤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이 부의장은 공손히 인사하는 정 의원과 반갑게 악수를 나눈 뒤 열차에 올랐다. 공천 과정에서 정 의원은 수도권 출마자들의 ‘이상득 후보 사퇴’ 요구에 동참했다. 이 부의장은 김 법무장관과 함께 4호차에 탑승했고, 정 의원은 5호차에 올랐다. 이 부의장은 창쪽 자리에 앉았고, 그 옆에 기자가 자리했다. 출발 직후 “이렇게라도 인터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걸 이해해달라.”고 하자, 이 부의장은 “인터뷰는 안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손사래부터 쳤다. 그는 “국회의원 한번 더 하게 된 것이 후회스럽다.”고 했다. 공천이 끝난 뒤 수도권 소장파가 이 부의장의 출마가 수도권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후보 사퇴를 촉구했던 게 줄곧 마음이 쓰였던 것 같다. 이 부의장은 “젊은 사람들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도 아니지만 공천이 끝난 상황에서 그런 식으로….”라며 말끝을 흘려 ‘쿠데타’에 가담한 소장파에 대해 섭섭함을 숨기지 않았다. 이어 “지역 구민들도 화가 많이 났던지 서울로 올라간다는 것을 막느라 애를 먹었다.”고도 했다. 당내 역할과 관련해서는 “6선이면 뭐 하느냐. 대통령 친형이라는 이유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지 않으냐.”면서 “지역구 현안을 해결하는 데 노력할 뿐이다.”고 말했다. 앞서 공천 과정에서 만났을 때 “동생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도록 미력이나마 보태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당외 친박 인사들의 복당을 둘러싼 당내 논란과 관련해서도 “한나라당이 그런 일로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기다리면 모든 것이 순리대로 잘 될 것”이라고 휴지기를 가진 뒤 풀릴 것임을 시사했다. 다만 “그 문제 역시 내가 나서서 해결할 일은 아니다.”고 못박았다. 이 부의장은 기자와 30분가량 대화를 나누던 도중 총선 과정에서의 피로가 덜 풀린 탓인지 스르르 눈을 감았고, 서울역에 거의 도착해서야 단잠에서 깼다. 그는 “이렇게 하니 나도 힘들지만 기자들도 힘들겠다.”면서 “앞으로는 좀 편한 자리에서 만나자.”며 작별의 악수를 청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4·9 총선-희비 갈린 與거물들]이상득·정두언 입지 강화될듯

    이재오 의원이 낙마하기는 했지만 한나라당의 다른 친이(親李·친 이명박) 실세들은 건재를 과시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다수 당선돼 당내의 새로운 세력으로 진입했다. 현재 한나라당내 친이계열은 이상득 국회 부의장이 이끄는 친이직계와 이 의원을 중심으로 한 실세그룹 그리고 정두언 의원을 대표로 하는 소장파 그룹이 삼분하고 있다. 그동안 암묵적 동맹관계를 가지고 있던 이 의원의 실세그룹과 정 의원의 소장파가 이 부의장의 퇴진을 요구한 ‘3·23 쿠데타’이후 결별하면서 이들은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 국회 부의장은 이번 총선 승리로 친이계의 주도권을 확실히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 부의장은 지난 3월말 ‘형님공천’ 파동 당시 일체의 당권을 맡지 않겠다고 공헌했지만 막후에서 이 대통령과 당의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부의장은 친이내에서도 당내화합을 강조하는 ‘온건파’에 속해 총선 직후 혼란스러운 당을 수습하는 데 적임자라는 평가와 함께 당내 입지도 한층 견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부의장에게 반기를 들며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정 의원은 당분간 정국을 관망할 가능성이 크다. 이 부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3·23 쿠데타’를 주도해 청와대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기류가 정 의원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의원이 낙마한 공백을 정 의원이 메우면서 친이내에 또다른 세력인 ‘강경파’의 좌장을 넘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55인의 쿠데타’를 이끌면서 당내 소장파의 대표 주자로서의 입지도 한층 다지게 돼 당권경쟁에 뛰어들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한편 이번 총선에서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는 김영우·강승규·진수희·권택기·정태근 후보 등 친이계 인사들도 향후 당권 경쟁의 다크호스로 등장할 전망이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단독]MB, 정치특보·정무장관 곧 임명

    이명박 대통령이 조만간 대통령 정치특보와 정무기능을 담당할 특임장관을 임명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18대 총선에서의 한나라당 압승으로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한 발판이 마련된 만큼 정치특보와 정무장관 기용을 통해 정국의 안정을 도모할 방침이라고 청와대 관계자가 9일 전했다. 정치특보는 18대 총선을 통해 거대여당으로 부상한 한나라당을 이 대통령 친정 체제로 재편하고, 긴밀한 당·정·청 관계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다른 관계자는 “한나라당 공천자 55명이 이상득 국회 부의장의 총선 불출마를 집단으로 요구한 ‘3·23쿠데타’ 직후 복잡한 당내 이해관계를 조정할 중량급 인사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국정 전반에 대한 조언뿐 아니라 당장 7월 한나라당 대표 선출을 앞두고 자칫 불거질 당내 갈등을 조율하는 역할을 정치특보가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이에 따라 이번 총선에서 공천 탈락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선대위원장을 맡은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이 민주평통 부의장과 대통령 정치특보를 겸직하거나 9일 총선에서 석패한 이재오 의원이 정치특보로 기용될 가능성이 점쳐진다.정무담당 특임장관은 이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한 야당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4·9 총선-한나라 승리이후 기상도] 당안팎 친박 대거 생환… 정국안정의 변수로

    [4·9 총선-한나라 승리이후 기상도] 당안팎 친박 대거 생환… 정국안정의 변수로

    한나라당은 4·9 총선을 통해 과반 의석을 어렵사리 확보했다. 당초 기대했던 168석에는 크게 못 미쳤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는 당 안팎의 친박 세력들이 대거 살아돌아와 박근혜 전 대표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의 정국 안정은 박 전 대표의 협조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오는 7월 전당대회를 앞둔 상황이어서 공천과정에서부터 시작된 각 계파간 갈등은 당권 경쟁을 앞두고 더욱 가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친이(친 이명박)-친박(친 박근혜) 진영은 물론이고 친이측 내부에서도 ‘공천 파동’으로 인한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당권의 향배는 2010년 지방선거 공천은 물론 차기 대권행보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각 계파 모두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다. 우선, 친박측은 이번 총선에서 다시 한번 ‘박근혜의 힘’을 보여줌으로써 비록 당내에서는 비주류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우뚝 섰다. 당내 친박측 당선자는 35명 안팎에 불과하지만 당 밖의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연대를 합하면 60명 선에 이른다. 지역구 당선자만 놓고 보면 친이측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특히 친박측은 당내 어느 계파보다 강한 결속력을 지니고 있어서 차기 당권 경쟁에서도 만만찮은 저력을 과시할 것 같다. 게다가 친박 진영에선 박 전 대표가 직접 당권에 도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 내부에서는 박 전 대표가 직접 당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박 전 대표가 지난달 23일 기자회견에서 공천 결과를 강하게 비난한 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면서 “지속적인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과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을 위해서라도 한나라당을 다시 꼭 바로잡겠다.”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친이측은 공천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거취문제를 둘러싼 친이측 내부의 갈등은 쉽사리 봉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 부의장은 6선 의원으로 당당히 원내에 입성한 반면 ‘친이 내부 쿠데타’를 주도했던 이재오 의원은 원내 진입에 실패했기 때문에 이 부의장의 당내 위상은 더욱 공고해진 상황이다. 다만 이 의원과 함께 ‘쿠데타’를 주도한 남경필·정두언 의원 등 수도권 소장파 의원들은 지속적으로 이 부의장측과 대립각을 세울 것으로 보이며 독자적으로 당권 주자를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남경필·정두언 의원 등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이 부의장측은 박 전 대표나 정몽준 의원과 손잡을 공산이 커 보인다. 박 전 대표와 손잡을 경우, 당내 주도세력이 다시 한번 바뀌게 되지만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친이측의 또 다른 딜레마는 거대 여당을 이끌 만한 카드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친이측 내부에서는 5선 고지에 오른 김형오·정몽준 의원과 4선의 홍준표·안상수 의원 등이 ‘유력 당권주자’로 거론된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4·9 총선-희비 갈린 與거물들]이재오·이방호 공천파동 두 주역 ‘쓴잔

    “이재오도, 이방호도, 박형준도…” 4·9총선 결과 한나라당 공천 파동의 주역인 이재오 의원과 이방호 사무총장도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두 사람은 친이(親李·친이명박) 실세로 이번 공천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본인들은 낙마하고 말았다. 공천과정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공천심사위 간사인 정종복 의원마저 친박연대 후보에게 ‘금배지’를 양보했다. 한때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친이 세력의 좌장으로 불리던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은 ‘대운하 반대’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원외에 머물게 될 이 의원은 이제 정치적 위상이 저하될 처지에 놓였다. 이 의원은 한나라당 공천 과정에서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불출마를 요구한 ‘3·23 쿠데타’ 과정에서 이 부의장측과 수도권 소장파의 협공을 받은 터라 그의 낙선은 더욱 치명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이재오는 여전히 살아 있는 카드”라는 평가도 있다. 선거기간 중 이 대통령이 이 의원의 지역구인 은평뉴타운을 ‘깜짝 방문’하면서 힘을 실어 준 것은 “이재오는 버리는 카드”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켜 줬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친박(親朴·친박근혜)에 맞설 대항마는 “역시 이재오뿐”이라는 ‘존재의 이유’를 인정받았다는 평이다. 이 의원의 향후 행보에 대해 당권 도전설과 입각설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이방호 사무총장은 경남 사천에서 47.3%를 얻는데 그쳐 민주노동당 강기갑(47.7%) 의원에게 석패했다. 불과 182표차의 피말리는 승부였다. 지역구의 친박(親朴·친박근혜) 세력이 민노당 강 의원을 지원한 것이 결정적 패인이라는 분석이다. 정종복(경북 경주) 의원의 낙선은 의외라는 평이다. 투표가 끝난 직후 발표된 각 방송사 출구조사는 정 의원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했다.KBS 출구조사에서 정 의원(53.7%)은 친박연대 김일윤(39.1%) 후보를 이기는 것으로 발표됐다. 하지만 개표 결과는 정 의원(42.0%)은 김 후보(47.5%)에게 무릎을 꿇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아시아, 친성장 정책 원한다”

    “아시아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친(親)성장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과 타이완에서 성장 친화주의자가 대통령으로 선택됐다.” 31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동아시아 국가들(중국 제외)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지난 97∼98년 IMF사태 이후 평균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지부진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렇게 분석했다.. WSJ는 “이런 현상은 한국과 타이완 이외에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에서도 보이고 있다.”며 “아시아 지역은 ‘바꿔 열풍’에 휩싸여 있다고 진단했다. 아시아국가들은 IMF사태 이전에는 높은 저축률, 수준 높은 산업인력, 절묘한 경제 운용 등으로 다른 대륙에 귀감이 되었었다. WSJ에 따르면 타이완 유권자들은 총선과 대선에서 기업친화적인 국민당과 마잉주에게 표를 몰아주면서 새 정부가 경제성장 위주의 정책을 원하고 있다. 태국 국민들도 지난해 총선에서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탁신 친나왓 전(前) 총리가 사실상 이끌고 있는 ‘국민의 힘’당을 제1당으로 만들어줌으로써 탁신 집권 시절의 경제성장을 일궈낸 경제정책을 기대하고 있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3·23 쿠데타’ 이후 靑 2題] 박희태 정치특보 검토

    한나라당내 친이(親李·친이명박) 진영의 권력다툼이 ‘3·23쿠데타’로 표출된 직후 청와대에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다. 친이 그룹내 소장파들의 퇴조, 그리고 중진급들의 부상(浮上) 가능성이다. 청와대가 ‘박희태 카드’를 만지작대고 있다. 그를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특보로 임명해 당·청 관계 등 정국 전반을 조율토록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28일 “최근 잇따른 한나라당내 파동을 거치면서 중량급 인사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며 이같은 청와대 기류를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나라당 공천자 55명의 이상득 국회 부의장 불출마 요구 파동이나 친박(親朴·친박근혜)진영의 집단이탈 등도 결국 당내 어른이 없기 때문”이라며 “당·청의 중심을 잡을 인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앞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도 3·23쿠데타 직후 대통령 정치특보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다른 관계자는 “현재 청와대 정무기능은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다.”면서도 “총선 이후 정국지형 변화나 한나라당내 당권 경쟁 등을 감안할 때 정치특보의 역할이 막중한 상황”이라고 말했다.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3·23 쿠데타’ 이후 靑 2題] 이태규 연설비서관 사퇴

    이태규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이 자진사퇴 형식으로 청와대를 떠난다. 청와대내 대표적 ‘정두언 사람’이라는 점에서,‘3·23쿠데타’를 주도한 정 의원에게 청와대가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28일 “이 비서관이 지난 26일 사의를 밝혔다.”고 전하고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 고심했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윤여준 전 의원 보좌관 출신인 이 비서관은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정두언 의원 천거로 당 선대위 전략기획팀장으로 활동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론 청와대에서 대통령 연설문 작성 업무를 맡았다.‘가방 속에 한달치 뉴스가 들어 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한때 핵심 중 핵심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청와대 일각에서 잇따랐고, 지난 11일 육군사관학교 임관식 때부터는 사실상 연설문 작성 작업에서 배제됐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업무 부적응에 따른 자진사퇴일 뿐 다른 배경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주변에선 그의 퇴진을 권력 핵심부의 역학구도 변화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 비서관은 그러나 “정 의원과 관련짓는 것은 억측”이라고 말했다.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혁명의 시간/알렉산더 라비노비치 지음

    한국 근현대사와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일제강점기 러시아에까지 흘러 들어간 조선인들은 일본의 시베리아 침공 소식을 듣자마자 내전 초기부터 볼셰비키 편에서 반혁명에 맞서 싸웠다. 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은 볼셰비키 당원이었고, 레닌에게 받은 권총을 평생 소중히 간직했다.1980년대 젊은이들은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는 이론적 틀로서 러시아혁명을 숨어서 공부했다. 인연의 깊이에 비해 러시아혁명은 우리에게 오랜 기간 금기어였다. 특히 볼셰비키 ‘10월 혁명’에 초점을 맞춘 국내 연구서는 번역서조차 흔치 않았다. 근래에 번역된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과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가 명저로 꼽히나, 전자는 혁명의 현장을 기록한 저널리스트의 르포르타주 성격이, 후자는 혁명 주체가 쓴 혁명옹호 성격이 강한 글로 엄정한 학술서와는 거리가 있다. ‘혁명의 시간’(알렉산더 라비노비치 지음, 류한수 옮김, 교양인 펴냄)은 박진감 넘치는 르포 형식을 띠면서도 객관적 사료에 기반한 학술서란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만하다. 미국 인디애나대 역사학과 명예교수인 알렉산더 라비노비치가 냉전의 절정기인 1976년에 쓴 이 책은 ‘10월 혁명’을 ‘볼셰비키로 대표되는 극소수 무자비한 혁명가들의 권력 탈취 쿠데타’로 규정해온 서구 역사학계의 통설을 뒤집는 대담한 주장을 담고 있다. 저자는 혁명의 성공요인을 대중의 요구를 민감하게 포착한 볼셰비키의 현실 인식과 토론과 논쟁이 거침없이 이뤄진 볼셰비키 내부의 민주적 논의구조에서 찾는다. 이는 볼셰비키 집권요인을 당의 권위적 위계에서 찾는 서구 학계와 레닌의 탁월한 지도력을 강조하는 구 소련의 관점을 모두 뒤집는 해석이다. 볼셰비키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계 러시아인 집안 출신인 저자는 혁명 당시의 신문기사와 관련 문서, 회고록 등 1차 사료들을 광범위하게 활용해 ‘10월 혁명’의 성공 요인을 재규명했다. 그의 학설은 이후 서구 학계가 러시아 혁명을 재평가하게 만든 계기가 됐고,70년대 보수적 역사해석에 반발해 등장한 수정주의적 관점을 형성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구 소련 비밀문서 해제 후 수정주의가 도전받고 있는 지금도 저자는 “새로운 자료가 내 분석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지만 결론까지 바꾸지는 못했다.”고 주장한다.2만 9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내 책을 말한다] 역사·고전 속 ‘우먼파워’

    사람이 살면서 어떤 대상에 지적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많겠지만, 기본적인 관심대상은 역시 자기의 문제일 것이다. 자기 문제에서 출발한 발언이야말로 가장 큰 공명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자기 문제에서 출발하다’라는 전제는 흔히 보편성의 이름 아래 포기되기도 한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더 그러하다. 약자는 자기와 자기 문제에서 쉽게 소외된다. 그리하여 여자들, 특히 공부하는 여자들은 흔히 여성 문제는 주변적인 것이므로, 더 중요하고 더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나도 사실 그런 구석이 없었다고 자신할 수 없다. 여성의 역사를 공부해 오면서도 이것이 내 전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공은 어디까지나 어렵고 ‘폼 나는’ 러시아 역사 연구라고만 여겼으니까. 하지만 여성의 역사를 강의할 책임이 주어질 때 마다하지는 않았는데, 그때마다 여성은 역사적으로 종속적인 지위에 있었고 희생자, 피억압자라는 내용의 책들을 접해 왔다. 이 자체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어떤 학생들은 “왜 여자들은 심한 억압 상황 아래에서도 순종만 했는지” 질문하며 곤혹스러워했다. 또, 그들과 함께 읽은 책의 한 여성저자는 통탄하며 말했다.‘역사 속 여성선배들의 정신적 노력은 축적되지 않은 채 단절되었고, 여자들은 항상 원점에서 새로 출발해야만 했다’고. 이 책은 이러한 질문, 혹은 개탄에 답하려는 시도이다. 나는 여성은 사회적 약자이기는 했을망정, 자신을 비인간화시키는 상황에 맹종하고 산 것이 아니라, 주어진 여건 속에서 주체적 삶을 살고 독자적 문화를 형성해 온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역사와 고전 속의 여자들을 불러내 그들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 싶었다. 레스보스 섬에서 여성동료들과 더불어 살며 시를 쓰고 여신들을 찬양했던 사포, 내가 소녀 시절부터 좋아했던 안티고네를 비롯하여 문학작품 속 여성인물들,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 통치자를 옹립하기 위해 궁정 쿠데타를 조직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던, 러시아 제국의 여성 공인 다슈코바에 이르기까지. 숨겨졌던 보배와도 같은 이 여자들은 내게 와서 말을 건넸고, 나는 그들을 내 친구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개하고자 했다. 인문학 연구자로서의 내 능력이 닿는 한 이들과 함께 여성주체를 복권시키고 싶었다. 사람이 자기의 문제를 피하면 그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차별받는 게 민족이건 성별이건, 인종이건, 계급이건,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이렇게 비분강개하며 말하지만, 사실 책을 쓸 땐 비분강개하지 않았다. 명민하고 용감하고 현명한 여성선배들과의 대화는 통쾌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한정숙 서울대 서양학과 교수
  • [총선 D-13] 與 상처만 남긴 ‘공천 쿠데타’

    [총선 D-13] 與 상처만 남긴 ‘공천 쿠데타’

    “찌른 이도, 찔린 이도 상처뿐.” 요란하게 시작된 한나라당 공천 파동은 파국은 피했지만 모두에게 상처만 남겼다. 먼저 공세를 취한 친이 측근들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깊은 내상을 입었고, 공격의 대상이 된 이상득 국회부의장은 ‘대통령의 형’의 굴레를 절감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변치 않는 ‘박근혜의 힘’을 보여 줬지만 계파의 수장이라는 지도부의 반격으로 논란을 샀다. 이번 공천 파동에서 공격 대상이 된 이 부의장은 출마를 강행함으로써 판정승을 거뒀지만 상처뿐인 영광에 그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번 사태로 친이(親李)세력 일각의 ‘공적’이 된 이 부의장은 대통령의 형이라는 이유만으로 앞으로도 역할과 운신에 적지 않은 제한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당선돼도 어떤 사소한 직책도 맡지 않겠다.”고 강조한 점은 동생인 대통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계를 분명히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칼을 뽑은 이재오·정두언 의원도 향후 입지가 위축될 공산이 커 보인다. 이들이 내세운 수도권 민심 이반은 이 부의장을 치기 위한 주된 명분으로 삼기에는 다소 약했다. 수도권 민심 이반은 장관 인선과 잘못된 공천논란, 이명박 정부의 미숙함 등 총체적 요인에 기인했다. 등돌린 수도권 민심을 ‘이상득 불출마’로 되찾겠다는 것은 애당초 기대난망이었다. 특히 이 의원은 이 부의장 불출마에 적극 가담하며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막판에 ‘유(U)턴’함으로써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쳤다. 이 의원은 “내가 이 부의장과 동반사퇴를 건의했던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발을 빼면서 청와대와 소장파의 협공을 불러들이며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유력한 차기 당권주자였던 그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의 선전으로 총선에서도 힘든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이 의원이 이번 총선에서 낙마한다면 정치 생명이 흔들릴 수도 있다. 차기 서울시장 출마가 유력했던 정 의원도 ‘주군의 역린’을 건드리며 칼은 맞았다. 하지만 수도권 공천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수도권 소장파의 새로운 리더로 급부상했다. 이번 공천파동으로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가운데 친이 내부에서 발발된 ‘3·23 쿠데타’에서 한 발 비켜 있었던 박 전 대표는 공천파동에서도 변치 않는 영향력을 보여 줬다. 박 전 대표의 경우 확실한 당내 기반을 과시하며 7월 전당대회 출마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하지만 탈당한 ‘친박연대’ 및 친박계열 무소속 출마자들에게 “살아서 돌아오라.”는 그의 말은 ‘계파 챙기기’라는 친이측과 강재섭 대표의 반발을 사고 있다. 불출마를 선언한 강재섭 대표는 공천문제에 책임을 지며 희생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실리는 없었다는 평이다. 강 대표는 자신의 희생으로 “공천갈등을 끝내자.”고 했지만, 공천 파동은 확산일로로 치달았다. 강 대표는 “총선에서 과반 의석에 미달하면 대표직을 사퇴하겠다.”는 배수진의 각오로 이번 총선에 정치생명을 걸었지만, 총선 결과에 따라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처지에 놓였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총선 D-14] MB ‘새 친정체제’ 구축 나설듯

    친이(親李·친이명박) 진영의 권력투쟁으로까지 비화한 한나라당 공천 갈등은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적지 않은 내상(內傷)을 안겼다. 친이 진영의 ‘3·23쿠데타’가 비록 이틀 만에 진압(?)됐다지만 당에서든, 청와대에서든 이를 이 대통령 형제의 힘을 입증한 사건으로 보는 시각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친박(親朴·친박근혜) 진영의 집단 이탈 등 일련의 공천 갈등을 통해 ‘이명박 정치’의 취약성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선 실용과 효율을 앞세운 그의 ‘탈(脫) 여의도 정치’가 자칫 대화와 타협, 절충을 외면하는 뺄셈정치로 흐를 가능성을 내보였다는 지적이 많다. 일사불란한 기업형 정당 구조를 겨냥한 이 대통령의 공천 구상이 비주류인 친박 진영의 배제로 이어졌고, 결국 친박연대, 친박 무소속 연대의 탄생이라는 범여 다원화로 귀결됐다. 압도적 우세가 점쳐지던 총선 구도를 스스로 박빙의 대결구도로 바꿔버린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25일 “이 대통령에 대한 박 전 대표의 불신이 워낙 커 총선 이후에도 두 사람의 신뢰 회복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한나라당의 당·정 분리 원칙에 대한 이 대통령의 어정쩡한 접근도 사태를 악화시킨 요인으로 꼽힌다.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당 안팎에선 그간 ‘보이지 않는 손’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여권의 한 인사는 “이 대통령은 공천에 개입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이런저런 ‘이심(李心·이 대통령의 의중)’이 나돌았던 건 다 아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친박 진영의 반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저마다 자기 사람을 심으려 앞다투다보니 친박측 반발은 거들떠 볼 겨를이 없었다.”고 전했다. 당·정 분리라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친정체제 구축을 꾀하다보니 친이측 내부의 파열음만 증폭시켰을 뿐 그 무엇도 제대로 얻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청와대의 정무기능을 문제 삼지만, 이런 이 대통령의 의중 아래에선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집권 한 달을 맞은 이 대통령의 정치지형은 취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 우선 야권이 살아났다. 통합민주당은 기사회생했고, 자유선진당은 충청권 입지를 더욱 다지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지지율 급락 속에 지지기반인 영남권마저 양분될 상황에 놓였다. 친이 진영의 사분오열은 그나마 일사불란한 대응마저 가로막고 있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하나하나가 난제들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결과를 지켜봐야겠으나 총선 이후에는 지금까지와 다른 모습의 친정체제가 한나라당에 구축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를 통해 친박측과의 화해도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총선 D-15] 與 소장파 멈칫…숨고르는 권력투쟁

    [총선 D-15] 與 소장파 멈칫…숨고르는 권력투쟁

    한나라당의 주류인 친이(친 이명박) 진영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비롯된 수도권 소장파의 ‘3·23 쿠데타’가 사태 발발 하루 만인 24일 소강국면으로 접어드는 양상이다. 4·9 총선을 보름 앞두고 친이측 핵심측근과 수도권 중심의 공천자 55명이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총선 불출마를 요구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친이 내부의 권력투쟁은 청와대의 강경 반대 기류로 인해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남경필 의원이 이 부의장의 보좌관을 지낸 청와대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의 실명을 거론하며 “청와대에 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사태의 배후자로 의심받는 이재오 의원이 총선 불출마 등 거취 문제를 놓고 장고에 들어갔다. 이 의원 측근그룹은 이날 오후에도 서울시내 모처에서 모여 이 의원의 결단을 기다리며 향후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는 폭발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휴화산’으로 남게 됐다. ‘이상득 불출마’ 촉구로 시작된 친이 내부의 권력다툼은 청와대가 극도의 불쾌감을 표시한데 이어 이 부의장이 ‘불출마 요구’에 대해 “불순한 정치적 목적에 동의할 수 없다.”며 강하게 버티면서 ‘화산폭발’은 잠시 멈칫하는 모양새다. 전날 이 부의장이 출마를 강행할 경우 공천 반납도 불사하겠다며 투쟁 의지를 불태웠던 55명의 공천자 대부분이 적극적인 의사 표시 없이 “하고 싶은 얘기는 다했으니 이 부의장의 현명한 결정을 기다릴 뿐”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이같은 친이 내부의 권력 다툼은 총선 이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될 공산이 크다. 이 부의장과 박희태 의원 등 70세 안팎의 원로그룹과 이재오 의원을 주축으로 한 60세 전후의 중진그룹, 정두언·박형준·주호영 의원 등을 주축으로 한 50대 전후의 소장그룹 등 친이 그룹은 크고 작은 현안을 놓고 보이지 않는 알력을 빚어 왔다. 특히 원로그룹과 소장그룹의 갈등은 청와대와 각료 인선과정에서 소장그룹이 철저히 배제된 데 따른 것 같다. 그러던 중 남경필 의원이 ‘이상득 불출마’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데 이어 이재오 의원과 가까운 공천자들과 정두언 의원을 중심으로 한 MB(이명박) 직계그룹이 가세함으로써 가뜩이나 가시방석인 이 부의장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았다. 그러나 이들의 첫번째 기싸움에서는 이 부의장측이 판정승을 거둔 모습이다. 무엇보다 원희룡·정병국·권영세·임태희 의원 등 수도권의 또다른 소장파들이 다른 목소리를 낸 것도 ‘이상득 불출마’ 촉구파의 힘을 빼놓았다. 다만 이재오 의원이 청와대의 의중과 달리 총선 불출마를 강행하고, 남경필 의원이 이 부의장측과 결전을 선언하고 나선 상황이어서 이번 사태는 새로운 형태의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곳곳에 우편향 역사인식… 논란 불가피

    곳곳에 우편향 역사인식… 논란 불가피

    현행 고등학교용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와 ‘해방 전후사의 인식’으로 대표되는 기존 역사서를 ‘좌파적 역사인식’이라고 비판하는 뉴라이트 계열 지식인들이 ‘대안교과서’를 내놓아 논란이 일고 있다.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주축으로 하는 ‘교과서포럼’은 23일 기존 역사 서술의 상식을 뛰어넘는 내용이 곳곳에 보이는 ‘대안교과서 한국 근ㆍ현대사’(기파랑 펴냄)를 펴냈다. 이 책은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등에 대하여 일본에 의존한 경거망동으로 식민지화 위기만 불러일으켰다는 기존의 역사 서술과는 달리 청나라에 대한 조공과 문벌폐지 등을 시도했다는 점을 들어 근대화를 추구했던 선각자로 적극평가를 요구했다. 반면 ‘동학란’ 당시 농민군이 요구했다는 탐관오리 처벌 등의 폐정개혁안은 1940년 출간된 ‘역사소설 동학사’에 수록된 내용일 뿐으로, 실제 봉기는 유교적인 근왕주의(勤王主義)에 입각하여 서민 경제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했던 성격이 강했다고 언급했다. ●“동학은 혁명아니라 복고운동에 불과” 또 일제 지배체제인 1910∼1945년은 ‘일제 강점기’가 아니라 ‘식민지 시기’로 ‘정치적 차별과 억압을 동반한 야만의 정치체제’였지만, 일제의 지배는 총칼로 한국인의 재산을 빼앗는 전근대적 폭력적 수탈이 아니라 근대적 재산제도와 시장경제의 원리에 준하는 것이었다고 서술했다. 앞서 ‘대안교과서’ 편찬은 시작단계에서부터 반발에 부딪혔다.‘교과서포럼’이 2006년 11월30일 학술심포지엄을 열었으나, 군사정권과 유신체제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이유로 4·19 관련단체 회원들이 몰려들면서 폭력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당시 문제가 됐던 4·19는 민주혁명,5·16은 쿠데타로 정리했다.10월유신은 정변으로 박정희의 비타협적 귄위주의의 정점이었으며, 정통성에 치명적 오점을 남겼다고 비판했다.12·12는 하극상,5·18은 민주화운동으로 서술했다.6·25는 남침전쟁으로 규정하고, 북한은 세습왕조나 다름없는 체제이고 세계에서 가장 낙후한 정치집단이라고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제주 4·3사건은 좌익무장 반란” 역사용어의 선택도 파격적이어서 ‘명성황후’는 ‘민왕후’로 격하시켰고, 여순사건과 제주 4·3사건은 ‘좌파세력의 무장반란’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이 책은 일본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후쇼사 교과서의 한국판”이라면서 “이들의 주장은 한국 근현대사를 오로지 경제시장주의와 반공주의로만 설명하려는 것으로 과거 조선총독부 주장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이 책의 필진으로는 이영훈 교수를 비롯하여 김재호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주익종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김세중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등 12명이 참여했다. 서동철 이문영기자 dcsuh@seoul.co.kr
  • [총선D-16] 친이 측근들 ‘3·23 쿠데타’

    비등점을 향해 치닫던 한나라당 공천 갈등이 4·9 총선을 보름 앞둔 23일 결국 폭발했다. 침묵하던 박근혜 전 대표가 마침내 공격의 포문을 열자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친이(친 이명박)측 공천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총선 불출마를 촉구하고 나섰다. 최근 여론 악화에 따른 책임론을 둘러싸고 친이계 내부의 권력 다툼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 부의장 불출마 요구 대열에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정두언 의원이 가세했다. 또 친이측 좌장 격인 이재오 의원은 이날 밤 8시부터 9시30분까지 청와대로 이 대통령을 찾아가 공천 갈등과 관련해 여러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측의 한 관계자는 이 의원이 이 대통령에게 자신과 이 부의장의 동반 총선 불출마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 “사실무근”이라면서 “그런 건의를 하지 않았고, 그런 문제가 논의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주변에선 ‘측근들의 3·23쿠데타’라는 말까지도 나온다. 이날 한나라당 기류는 갈수록 급해졌다. 박 전 대표의 기자회견에 이어 오후 4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공천자 28명이 이 부의장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불씨를 댕겼다. 강재섭 대표는 3시간 뒤인 오후 7시 총선 불출마 카드를 던지며 진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다. 저녁 8시를 넘기며 ‘이상득 불출마’ 요구는 수도권뿐 아니라 충남·북과 강원, 광주·전북, 부산·경남 등으로까지 확대됐다. 대열에 가세한 공천자 수도 44명에서 다시 55명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들의 집단행동은 보름 앞으로 다가온 총선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위기감에 더해 총선 이후 당권을 둘러싼 친이 진영 내부의 경쟁이 뒤엉킨 결과로 풀이된다. 이 부의장을 물러앉힘으로써 악화일로에 있는 총선 민심을 되돌리고, 향후 당권 경쟁에서도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려는 일거양득의 계산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총선 D-18] 손학규·박재승의 애증

    ‘이이제이(以夷制夷)’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의 관계를 두고 당내 일각에서 나오는 말이다. 다른 세력을 제어하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비례대표 추천 심사위원 선정을 둘러싸고 불거진 두 사람간 신경전에는 두 사람만의 복잡한 애증관계와 셈법이 그대로 표출됐다는 지적이다. 공천심사 초기에는 ‘손·박 밀월’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두 사람 관계가 매끄러웠다. 손 대표는 박 위원장의 ‘공천 쿠데타’를 통해 공천쇄신의 반사효과를 누렸다. 당 안팎에서는 손 대표가 박 위원장을 통해 “본인 손에 피 묻히지 않고 당내 입지를 확고히 했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그러나 두 사람간의 파열음은 지난달 말 박 위원장이 손 대표의 수도권 출마를 종용하는 발언으로 틀어지기 시작했다. 손 대표측은 자신의 거취를 당 차원의 총선 전략의 일환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떠밀려 가는 모양새에 상당히 불쾌해했다는 전언이다. 이후 전략공천을 논의하면서 사사건건 부딪쳤다. 외부에는 박 위원장과 박상천 대표와의 ‘박·박 갈등’으로 비쳐졌지만 손 대표와의 이견도 좀처럼 좁히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손 대표의 한 측근은 “박 위원장이 ‘정치를 모른다.’는 지적을 수긍했어야 했는데 여론을 등에 업고 너무 오버했다.”고 말했다. 결국 박 위원장이 비례대표 추천 심사위원에 신계륜 사무총장, 김민석 최고위원 등 비리전력으로 공천 탈락한 인사들이 이름을 올렸다며 공천심사를 거부하면서 두 사람간의 관계가 틀어졌다. 박 위원장은 19일 밤 손 대표에 대해 ‘육두문자’까지 써가며 맹렬히 비난했고, 손 대표도 20일 오전 박 위원장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간의 갈등은 21일 적절한 선에서 정리됐다. 박 위원장이 신 사무총장과 김 최고위원의 임명을 양보했지만 개혁 공천의 당위와 필요성에 대한 명분을 재확인했다. 손 대표도 전략공천 및 비례대표에 있어 각 계파의 요구를 거부하기 난감한 상황을 박 위원장이 대신 정리해준 효과를 얻었다. 총선 이후 새로 짜게 될 당내 역학관계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오히려 ‘중간자’의 위치를 확보함으로써 구 민주당계와 열린우리당계 사이에 빚어질지도 모를 갈등을 조정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수도권 386을 축으로 하는 우군을 다수 확보하며 당내 주류로 부상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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