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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신 때문에… 날세운 태국-캄보디아

    탁신 때문에… 날세운 태국-캄보디아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이후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가 오랜만에 웃었다. 지난 10일 캄보디아에 입국한 그는 바로 다음날 훈센 총리를 접견했다. 12일에는 ‘경제 고문’ 자격으로 캄보디아 관리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훈센 총리와 골프 약속을 잡으며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어보였다. 태국 정부가 탁신 총리의 신병인도를 요청했지만 캄보디아 정부가 이를 거절하는 등 보호의 손길을 뻗치자 탁신은 잠시 여유를 찾은 듯 보인다. 하지만 태국과 관계가 불편한 캄보디아에서의 활동은 태국 내 여론을 악화시키는 등 위험한 전략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3일 보도했다. 방콕 출라롱콘대 티티난 퐁수드히라크 교수는 “탁신이 캄보디아와의 관계를 지속할 경우 태국 내 민족주의자들은 물론 지지자들의 반발을 살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국의 악감정은 캄보디아의 전신인 크메르 왕조가 당시 지금의 태국 지역을 지배했던 역사에서 시작됐을 정도로 오래된 것이다. 2003년에는 태국 여배우 수바난트 콩잉이 “앙코르와트는 태국 영토에 있기 때문에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이에 격분한 캄보디아인들이 태국 대사관과 기업체 등에 난입, 방화를 하는 등 유혈사태를 일으켰고 잠시 양국 외교관계가 단절된 바 있다. 특히 힌두사원인 프레아 비헤아르를 둘러싼 국경 분쟁은 지난해 10월 이후 지금까지 최소 7명의 양국 병사를 희생시킬 정도로 가장 뜨거운 이슈다. 1962년 국제사법재판소가 관할권이 캄보디아에 귀속된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인접 지역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면서 분쟁의 불씨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탁신 전 총리가 캄보디아의 환대를 받은 배경에는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문제에 있어서 캄보디아 측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양국의 외교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탁신의 캄보디아 입국 당일 태국 내각은 지난 2001년 캄보디아와 체결한 태국만 유전·가스전 공동개발 양해각서(MOU) 폐기를 의결했다. 이어 양국은 지난 12일 외교관을 맞추방했다. 국민 감정이나 외교관계뿐만 아니라 ‘파트너’의 위상면에서도 탁신이 불리한 입장이다. 탁신이 훈센 총리와 나란히 있는 모습은 오는 15일 아피싯 웨차치와 현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찍게 될 사진과 확연히 비교될 것이다. 반면 캄보디아 입장에서는 크게 손해볼 게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탁신으로 인해 재점화된 갈등으로 향후 프레아 비헤아르 분쟁에서 캄보디아가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WSJ는 전망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北 “작계5029는 북침전쟁 선언” 맹비난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과 주간지 통일신보는 한국과 미국이 최근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 ‘작전계획 5029’에 대해 “북침전쟁을 선언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민주조선은 8일 ‘대결과 전쟁을 고취하는 반역행위’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작전계획 5029’를 완성한 것은 우리 공화국(북한)에 대한 비방 중상이고 우리 군대와 인민에 대한 용납 못할 모독이며 노골적인 도발”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우리 측은 최근 북남관계 개선을 위한 대범한 조치들을 취하고 성의 있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그런데 남조선 군당국은 외세와 야합해 동족을 해칠 ‘작전계획 5029’를 완성하는 것으로 대답하는 반역행위를 감행한 것은 그들이 여전히 외세의존, 동족대결의 길로 질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비난했다. 통일신보는 7일 “‘급변사태’라는 것은 영도자와 인민과 군대가 하나의 사상의지, 숭고한 도덕의리로 굳게 단합되어 있는 우리 공화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미 군 당국은 최근 북한의 급변사태 유형을 핵과 미사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의 유출, 북한의 정권교체, 쿠데타 등에 의한 내전 상황, 북한내 한국인 인질사태, 대규모 주민 탈북사태 등으로 분류, 유형별 작전계획을 세운 ‘작전계획 5029’를 사실상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3共~유신시대 풍운아 이후락씨 별세

    박정희 시대의 실세 중 실세였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에서 뇌종양과 노환이 겹쳐 별세했다. 85세. 그는 지난 5월 이 병원에 입원했다. 이 전 부장은 1924년 울산에서 태어나 울산공립농고를 졸업했다.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1기로 졸업해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육군 정보국 차장과 주미대사관 무관을 거쳤다. 미 중앙정보국(CIA) 연락책도 맡았다. 이 전 부장이 고(故)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1년의 5·16 군사쿠데타였다. 5·16 주체세력은 미국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당시 CIA와 가까웠던 이 전 부장을 영입했다. 이 전 부장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공보실장으로 발탁됐다. 그는 미국의 지원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1963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이 전 부장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기용됐다. 이 전 부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 출범과 함께 권력핵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박 전 대통령은 1969년 3선(選) 개헌의 후폭풍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이 전 부장을 주일대사로 보냈으나 1년 뒤 핵심자리인 중앙정보부장으로 발탁했다. 이 전 부장은 1971년의 대통령선거를 사실상 총지휘했다.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971년의 대선에서 패배한 뒤 이씨에게 “나는 박정희 후보에게 진 것이 아니라 이 부장에게 졌소.”라는 말을 남겼다. 당시 관권 및 금권 선거를 총지휘한 그를 비꼰 것이다. 이 전 부장은 ‘대한민국 제1세대 대북 밀사’로도 유명하다. 1972년 5월2일 자살용 청산가리 캡슐을 몸에 감추고 3명의 수행원과 함께 채 판문점을 넘었다. 그는 3박4일간의 방북기간 중 김일성 주석(당시 직함은 노동당 총비서)을 두 차례 만나 북측으로부터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7·4 공동성명의 기본 원칙’을 받아 왔다. 북측의 김영주(김일성 주석 동생)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대신해 박성철 제2부총리가 그해 5월29일부터 서울을 답방, 박 전 대통령 및 이 전 부장과 수차례 회담을 가졌다. 그 결과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 그는 공작정치의 대명사라는 말도 듣는다. DJ 납치 사건의 주범으로도 꼽힌다. 1973년 7월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DJ 납치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잃었다. 특히 1973년 12월1일 당시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사석에서 “박정희의 후계자는 이후락”이라고 발언한 게 파문을 일으켜 중앙정보부장 자리에서 경질됐다. 권좌를 떠난 뒤 신변에 위협을 느낀 이 전 부장은 “조계종 회의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그해 12월 말 극비의 정보 문서들을 챙겨 영국령 바하마로 출국했다. 사실상 망명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망명한 이 전 부장이 자신의 치부를 폭로할 것을 우려해 귀국을 종용했다는 설이 정설로 돼 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친필 편지를 받고 1974년 2월 귀국했다. 1970년 말 국회의원을 잠시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신군부 세력으로부터 부정축재자로 몰리면서 공직에서 사퇴하고 정치활동을 규제받았다. 1985년 정치활동 규제에서는 풀렸으나 외부행사에 나오지 않으며 사실상 은둔생활을 해 왔다. 이 전 부장은 입원하기 전까지 경기 하남시에 있는 별장에서 칩거하며 조용히 말년을 보냈다. 유족은 이동훈 전 제일화재 회장 등 3남1녀. 빈소는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발인은 2일 오전 8시30분. (02)440-8922.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한·미 北급변 작전계획 완성한 듯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것에 대비한 군의 ‘작전계획 5029’를 완성했다는 설이 나오고 있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1일 “한·미 양국은 북한의 급변사태 유형을 5~6가지로 정리해 이 유형에 따른 작전계획(작계 5029)을 완성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한·미가 정리한 북한의 급변사태 유형은 핵과 미사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의 유출, 북한의 정권교체나 쿠데타 등 내전 상황, 대규모 주민 탈북사태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이 소식통은 “그동안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한·미 군당국의 계획은 개념계획(개념계획 5029) 수준이었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를 작전계획으로 발전시키는 작업을 해 왔다.”며 “최근 개념계획이 작전계획으로 완성됐다.”고 설명했다.그는 “북한의 급변사태시 한·미 연합군이 불가피하게 개입할 경우 대부분의 작전은 주변국 등을 고려해 한국군이 주도하게 될 것”이라며 “다만 핵시설과 핵무기 제거는 미군이 맡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은 지난달 30일 서울 이태원동 캐피탈호텔에서 한·미안보연구회가 주최한 국제회의 초청연설에서 “2012년 4월 전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으로 이전된 이후에도 핵과 미사일 등 북한의 WMD를 제거하는 작전과 해병대의 강습상륙 작전은 미군이 주도하기로 최근 합의했다.”고 말했다.한·미는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WMD 또는 그 기술이 테러집단이나 다른 나라로 수출되거나 유출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한·미는 이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실전적인 대비계획을 마련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고 최근 구체적인 결과를 도출했다.”고 전했다.한편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사태 변화에 대비한 개념계획 5029는 유지하고 있지만 작전계획 5029를 완성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합참은 “우리 군은 북한의 사태변화에 따른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연합뉴스
  • 온두라스 전·현 정부 셀라야 복귀안 서명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마누엘 셀라야 온두라스 전 대통령 측과 과도 정부가 셀라야의 대통령직 복귀를 가능케하는 합의안에 서명했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로베르트 미첼리티 과도정부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대법원과 의회의 승인을 전제로 셀라야 전 대통령을 복귀시키고 오는 29일 열리는 대선 전까지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는 그동안 셀라야의 복귀를 완강하게 반대해온 미첼리티 대통령이 한발 물러선 결정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공을 넘겨받은 대법원 역시 셀라야의 대통령직 복귀를 반대해온 만큼 이번 합의 후에도 넘어야할 장애물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그럼에도 셀라야는 이날 현지 라디오 글로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합의는 내가 수일 내에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환영했다. 또 힐리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역사적인 합의”라며 4개월간 지속돼온 온두라스의 위기 상황을 끝내고 오는 11월 대선을 위한 길을 열였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미국과 미주기구(OAS)는 셀라야의 복귀가 전제되지 않는 온두라스 대선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대법원과 의회 승인이라는 ‘조건부 합의’에도 미국 등은 “대선을 치르는 데 함께 하겠다.”며 이번 결정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10·26 30주년] 기억하십니까, 그때 그 사람들

    1979년 10월26일, ‘궁정동의 총성’은 많은 이의 운명을 갈랐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절대 권력’도 한 순간에 쓰러졌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고 말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다음날 새벽 국방부에서 체포됐다. ‘12·12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신군부에 의해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듬해 1월 육군 고등군법회의는 김 부장과 부하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 미수죄였다. 그해 5월24일 형이 집행됐다. ●김재규 유족, 명예회복·재평가 추진 이후 ‘김재규’라는 인물은 ‘10·26’과 함께 금기어가 됐지만, 민주화 정부가 들어선 뒤 유족을 중심으로 명예회복을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당시 김 부장의 변론을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가 공동대표로 있는 ‘10·26 재평가와 김재규 장군 명예회복 추진위원회’는 그를 민주화 유공자로 신청하는 등 재평가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당시 김 부장을 체포했던 육군 헌병감 김진기 준장은 2006년 12월 별세했다. 김 준장은 12·12 때 신군부에 저항하다 모진 고문을 받고 강제 예편됐다. 10·26 다음날 정부 대변인 자격으로 박 전 대통령의 서거를 발표한 김성진 전 문공부 장관은 지난달 17일 지병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10·26 유일한 생존자 김계원은 침묵 경호원을 제외하고 당시 현장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김계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그날의 일에 대해 오랜 시간 침묵을 지키며 은둔해 왔다. 최근 언론을 통해 아들이 운영하는 중견 무역업체인 원효실업의 회장을 맡고 있다고 소개되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실세들의 행보는 엇갈린다. ‘2인자’였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신민주공화당 창당과 3당 합당, 자민련 창당, 김대중-김종필(DJP) 연합 등을 통해 주요 국면마다 타고난 정치감각으로 존재감을 이어갔다. 지난 2007년 대선 때는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했으며, 현재 당의 명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이후락, 당뇨·중풍으로 쓸쓸한 노년 평양을 비밀리에 방문해 7·4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 냈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은 당뇨와 중풍에 시달리며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를 잘 아는 한 관계자는 25일 “한달 전쯤 몸이 다시 안 좋아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은밀한 내막까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가운데 하나이지만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당시 권력투쟁에서 밀려난뒤 ‘반(反) 박정희’ 행보를 보이다가 1979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됐다. 당시 김 전 부장에게 정권의 내밀한 비사를 전해 들은 김경재 전 의원은 최근 펴낸 저서 ‘김형욱 회고록 제5권 박정희 시대의 마지막 20일’에서 박정희 정권이 파견한 암살자에게 김 전 부장이 처참하게 살해됐다고 썼다. ●남덕우, 한국선진화포럼 이사장 맡아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는 10·26 이후 국무총리에 오른다. 지금은 경제인들을 중심으로 한국선진화포럼을 꾸려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박정희 정권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김용환 전 재무부장관은 한나라당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도왔다. 재무부·상공부 장관을 지낸 김정렴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이사장직에 있다. 홍성규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北 5·16쿠데타 예견 지지성명 준비”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북한이 5·16쿠데타를 예견하고, 이에 대한 지지 성명까지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KBS는 미국 우드로 윌슨센터와 한국의 북한대학원대학교가 공동으로 발굴한 26페이지 분량의 중국 외교부 기밀 문건에 담긴 이 같은 내용을 15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쿠데타 당일 저녁 김일성 당시 수상은 부수상 김일에게 중국 대사를 만나라고 지시했다. 이 자리에서 김 부수상은 중국 측에 북한이 5·16쿠데타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신종대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지 성명까지 검토했다는 것은 5·16 주도 세력에 대해 북한이 상당히 기대와 희망을 걸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북한은 중국에 남한 군대 내 진보세력이 반란을 꾀할 것이라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밝히면서 중국이 갖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자고 요청했다. 하지만 쿠데타 세력이 ‘반공’을 기치로 내걸자 북한은 쿠데타 세력을 ‘진보군인의 독자적인 쿠데타’에서 ‘(미군의) 사주를 받은 반동 쿠데타’로 규정한 것으로 이 문서에 기록돼 있다. 이틀 뒤인 18일 노동당 중앙상임위원회는 안보 위기를 느끼고 경제보다는 자체 군사력 강화가 우선이라고 판단, 국방력 강화에 역량을 집중하자고 촉구했다. 제임스 퍼슨 우드로 윌슨센터 북한담당 연구원은 “1961년 남한에서 일어난 사건의 결과로 북한은 경제 중심 정책의 추진을 연기해야 한다고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김 수상은 박정희 의장 형의 고향 친구인 황태성 무역성 부상을 밀사 자격으로 남측에 파견했지만, 그가 사형당하면서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됐다고 이 문서는 적고 있다. kmkim@seoul.co.kr
  • [테마 스토리 서울] (16) 등록문화재 11호 서울시의회

    [테마 스토리 서울] (16) 등록문화재 11호 서울시의회

    “이곳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시의회 건물의 역사를 듣고 깜짝 놀라곤 합니다.” 서울시의회 시설과 송정미 주임은 담담하게 건물의 생애를 풀어놨다. 1935년 옛 경성부 공연장인 ‘부민관(府民館)’으로 탄생해 광복 후 미군정 방송국, 국립극장, 국회의사당, 세종문화회관 별관, 시의회 등 차례로 옷을 갈아입고 살아온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부민관은 당시 경성전기주식회사가 100만원을 기부해 지어졌다. 오늘날 화폐가치로 따지면 100억~150억원. ●35년 부민관으로 건립 식민문화 홍보 공연예술사에 한 획을 그은 무용가 최승희의 공연은 대부분 이곳에서 열렸다. 일제 식민문화의 홍보 창구로 사용되면서 친일파 예술인들이 일본에 충성을 맹세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승만 박사는 이곳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사사오입 개헌과 국가보안법 파동, 군사쿠데타에 따른 의사당 폐쇄와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까지 모두 이곳에서 이뤄졌다. 특히 1966년 김두한 의원이 국무위원들에게 ‘똥물’을 투척한 사건은 지금까지 회자된다. 이곳은 1975년 국회가 여의도로 이사하면서 서울시에 회수돼 세종문화회관 별관으로 활용돼 오다 1991년부터 시의회로 사용되고 있다. 일제시대 부민관은 단성사, 경성의대병원, 화신백화점과 함께 이 시기를 대표한 건축물이다. 국가지정 등록문화재 11호이기도 하다. 문민정부 때 헐린 조선총독부와 해체수순을 밟는 옛 서울시청사와 달리 일제시대를 증언할 마지막 증인으로 남을 전망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선출한 곳 시의회 건물은 고희(古稀)를 넘겨 2015년 80세인 산수(傘壽)를 맞는다. 전형적인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100년은 거뜬히 버틸 모양새다. 정문 모서리의 63척(약 19m) 높이의 탑은 당시 경성 전역이 내려다보인 도심의 랜드마크였다. 송 주임은 “가공하지 않은 천연자갈과 모래, 전통 철근과 시멘트로 지어져 20~40년 주기로 재건축하는 요즘 건물보다 훨씬 단단하다.”며 “탑 위에는 일제시대 만들어진 국기 게양대 흔적이 남아 있다.”고 전했다. ●매년 7억 정도 유지보수비 소요 건물에는 비밀도 많이 숨어 있다. 시의회 건물은 애초 대지 4912㎡, 연건평 5676㎡로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로 지어졌지만 개·보수를 거치며 조금 작아졌다. 1968년 태평로 확장공사 때 시의회 건물이 축소되며 정문을 동향에서 남향으로 바꿔놓았다. 송 주임은 “1800석 규모의 대강당은 시의회 대회의실로 바뀌었지만 잦은 내부공사로 현재 400석 규모의 중강당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매년 7억원 정도의 유지보수비가 소요되는 건물은 앞으로 친환경·주민친화형 건물로 꾸준히 변화될 예정이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中 “원자재 얻는다면 도덕성쯤이야…”

    中 “원자재 얻는다면 도덕성쯤이야…”

    중국이 서아프리카의 최빈국 기니에 70억달러(약 8조 2000억원) 상당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12일 보도했다.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아프리카의 ‘불량’ 정권을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이 다시 제기될 전망이다. 중국은 현재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단, 리비아 등과 석유 거래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해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은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아프리카가 필요한 것을 가져다 주지만 유럽과 미국은 아프리카에 미래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며 중국을 두둔했다. ●中CIF·기니정부, 개발회사 설립 모하메드 시암 기니 광업장관은 중국인터내셔널펀드(CIF)가 사회간접자본, 광물개발, 석유 탐사를 위해 수십억달러를 투자하는 협상이 연말쯤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시암 장관은 “앞으로 5년에 걸쳐 70억달러 이상이 쓰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홍콩에 소재한 CIF는 앙골라의 국영석유회사 손앙골과 중국의 국영석유회사 시노펙의 연결고리로 활동 중이며 앙골라 정부에 수십억달러 차관을 제공했다. 투자는 CIF가 75%, 기니 정부가 25% 지분을 갖는 기니개발회사를 만든 뒤 이 회사가 각종 개발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중국 정부에 자원개발권을 이양한 앙골라, 콩고 등이 자원 개발에 따른 이익을 누리지 못하는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반면 아프리카연합은 17일 기니에 대한 제재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달 말 기니의 군정 지도자 무사 카마라의 대선 불출마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반정부 시위대에 정부군이 발포, 150명 이상이 숨진 것에 따른 조치다. 카마라는 20년간 독재를 했던 랑사나 콩트가 지난해 숨지자 쿠데타를 통해 집권했다. 인권단체와 유엔기구들은 민간에 정권을 이양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中자본 기니군사정권 좌우할 듯 기니의 2008년 국내총생산(GDP)은 45억달러로 추정된다. CIF가 투자할 70억달러는 1년치 GDP를 훨씬 뛰어넘는 규모로 군사정권의 생명줄이 될 전망이다. 야당 지도자인 시디아 투레 전 총리는 “어떻게 그렇게 큰돈이 기니 경제에 투입될 수 있다고 보느냐.”며 협상 진행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중국의 투자를 둘러싼 군벌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일부 노조는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기니는 알루미늄의 원재료인 보크사이트의 세계 최대 매장국이다. 금, 다이아몬드, 우라늄, 철광석의 매장량도 풍부해 독재자들이 서방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건재할 수 있던 동력이 됐다. 최근에는 상업적으로 채산성이 있는 석유의 매장 가능성이 큰 것으로 확인됐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라디오 ‘격동 50년’ 21년 만에 눈물의 종방

    라디오 ‘격동 50년’ 21년 만에 눈물의 종방

    “마지막 원고는 쓰고 싶지 않았어요. 이걸 쓰면 진짜 마지막이 되기에…” MBC 표준FM(95.9MHz) 라디오드라마 ‘격동 50년’의 극본을 맡은 이석영 작가는 떨리는 목소리로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3년 간 치열하게 작업한 작품이 끝내 폐지된다는 것보다,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할 동안 건재한 프로그램을 지키지 못해 죄인 된 기분이라며 주름진 눈에 눈물이 고였다.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MBC 7층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오는 17일 전파를 타게 될 마지막 편인 70화 ‘민주화 항쟁’의 녹음이 진행됐다. “어떤 소중한 가치도 가꾸고 돌보지 않으면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허둥지둥 쫓기듯 살아가는 삶이라도 가끔은 안부를 물어볼 일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안녕하시냐고….” 해설을 맡은 원호섭씨가 굵직한 목소리로 마지막 대본을 읽자 출연진과 제작진은 서로 악수를 하며 그 동안 수고를 어루만져줬다. 한 여자 스태프와 출연 성우들은 숨죽여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MBC 라디오드라마, 역사 속으로 청취율 감소와 MBC 경영상 문제가 맞물리면서 폐지가 결정된 ‘격동 50년’은 1988년 4월 1일 첫 방송 이래로 지난 21년 간 우리나라 근현대 정치사 이면에 감춰진 비화와 에피소드 등을 다뤘다. 특히 4ㆍ19혁명과 이승만 정권의 몰락, 5ㆍ16군사쿠데타와 군부 세력의 등장, 10월 항쟁 등 군사 독재정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거침없이 파헤치며 이름만큼이나 격정적인 세월을 보냈다. 현재 연출을 맡은 오성수PD를 비롯해 연출자만 6명이 거쳐갔으며 대본을 집필한 작가만 9명이었다. 낮 시간 대 운전을 하는 택시와 버스 기사 청취자들을 바탕으로 인기를 끌었다. 폐지가 결정됨에 따라 1961년 ‘골목 안 풍경’을 시작으로 ‘법창야화’, ‘평양 25시’, ‘집념’ 등 명맥을 이어온 MBC 라디오 드라마가 방송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 성우의 마지막 자존심, 이제는 굿바이! 지난 7년 여 간 ‘격동 50년’을 진두 지휘한 오성수 PD는 “세월이 변했고 세상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하면서도 “청취자와 성우들에게 미안하다.”고 못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20년 넘는 시간을 동고동락한 성우들은 녹음을 마치고도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악수와 포옹을 나누거나 기념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더러는 “한 달에 한번씩 시간을 정해 만나자.”는 구체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다. 70세로 현 출연진 중 최고령인 황일청 씨는 “오랜 시간을 함께 일해 가족과도 같다.”고 말한 뒤 “성우들에게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라디오드라마라는 상징성이 영영 사라지는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정희, 김영삼, 노무현 전 대통령 역을 연기한 이상훈씨는 입고 온 흰색 티셔츠에 작별의 메시지를 담고 디지털 카메라에 기념사진을 남겼다. 그는 “연기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해에 폐지 결정까지 나 더욱 안타깝다.”고 말했다. 아쉬움에 끝내 눈물을 보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연기한 이철용 씨는 “처음 MBC 성우로 입사해 처음 한 작품이 ‘격동 50년’이다. 외화 더빙 등이 돈벌이가 더 되는 건 사실이지만 ‘격동 50년’은 성우들이 주인공으로 서는 마지막 공간이었다.”고 말했다. ◆ ‘희망’을 떠올린 마지막 회식 오전 8시에 시작해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마지막 녹음이 끝나자 ‘격동 50년’ 팀은 회사 근처 김치찌개 식당에서 마지막 회식을 했다. 머리가 희끗한 퇴직 성우부터 30대 성우까지 ‘격동 50년’을 거쳐간 사람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녹음이 끝나면 늘 점심식사를 했던 곳이었는데 마지막 회식을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성우들은 입을 모았다. 진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한 성우가 일어나 소주잔을 들었다. ”성우들의 마지막 자존심과도 같았던 격동 50년은 폐지되지만 언젠가 반드시 다시 한번 라디오 정치드라마로 뭉치는 기회가 올 것입니다.” 그들이 연기했던 역사의 한 장면처럼 ‘격동 50년’은 사라지지만 영원히 청취자들의 가슴에서 숨쉬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소주잔을 부딪쳤다. 사진·동영상=김상인VJ bowwow@seoul.co.kr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기니 反군정 시위악화

    서아프리카 기니의 반(反) 군정 시위로 최소 157명이 사망하고 1250명 이상이 부상당했고 AFP통신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날 수도 코나크리의 운동장에서는 수천명의 시민들이 군정 지도자 무사 다디스 카마라의 대선 출마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진압에 나선 보안군이 이들을 향해 발포하는 과정에서 사상자가 속출했다고 AFP는 전했다. 또 전직 총리인 셀루 달랭 디알로와 시디아 투레도 시위 도중 부상을 당한 뒤 군부로 압송됐다. 국제사회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기본적인 인권을 존중하는 법의 지배를 확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카마라는 지난해 12월23일 란사나 콩테 당시 대통령이 사망하자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다. 민정에 정권을 이양하기 위해 내년 1월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번복해 국민적 반발을 샀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브라질·온두라스 ‘셀라야 격돌’

    군 쿠데타로 축출됐다가 3개월만에 비밀 입국해 주 온두라스 브라질 대사관에 머물고 있는 마누엘 셀라야 전 온두라스 대통령 문제가 브라질-온두라스 간 외교문제로 본격 비화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셀라야 전 대통령의 신변안전이 확실히 보장될 때까지 브라질 대사관에 머물게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현지 언론이 26일 보도했다. 이에 대해 로베르토 미첼레티 임시 대통령은 27일 브라질 정부에 “셀라야의 신병을 어떻게 할 건지 10일안에 결정하라.”고 경고해 양국간 갈등이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였다. 미첼레티는 또 만약 브라질이 그때까지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추가 (압박) 조치를 단행하겠다고 대변인실을 통해 밝혔다고 AP통신이 이날 전했다. 룰라 대통령은 전날 미국 피츠버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 끝난 뒤 가진 회견에서도 “비정상적인 것은 셀라야 전 대통령이 온두라스로 귀국한 사실이 아니라 미첼레티가 임시정부의 대통령직에 앉아 있는 점”이라며 쿠데타 집권세력을 비난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과도정부와 첫 대화 실패 암살 공작… 美서 막았다”

    군 쿠데타로 축출됐다 3개월 만에 온두라스로 귀국한 마누엘 셀라야 전 대통령과 과도정부의 첫 대화는 실패로 끝났다. AP통신에 따르면 셀라야는 24일(현지시간) ‘채널 36’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23일 과도정부 관리 한 사람과 만났지만 이 관리는 극도로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며 이같이 밝혔다. 셀라야는 이 대화에 대해 “정부의 입장은 어떤 식의 합의도 절대 불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과도 정부와의 합의는 자신의 대통령직 복귀로 결론이 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누구를 만났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또 셀라야는 일간지 엘 문도와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을 암살하고 자살로 위장하려는 공작이 있었지만 미국과 미주기구(OAS)가 이를 막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현재 내가 있는) 브라질 대사관을 공격해서 자살했다고 발표할 위험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런 가운데 로베트로 미첼리티 대통령의 대변인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 미첼리티에게 전화를 걸어 현 사태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고 밝혔다. 미첼리티는 이 통화에서 카터 전 대통령에게 “언제, 어디서든 현 상황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기꺼이 대화에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11월 대통령 선거와 관련, 미첼리티는 셀라야가 이번 선거의 신성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셀라야는 자신의 복귀가 전제되지 않으면 11월 선거는 합법적이지 않다는 입장이다.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 외에도 셀라야는 이날 대선 후보 4명과 만남을 갖는 등 바쁜 하루를 보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씨줄날줄] 무아마르 카다피/김종면 논설위원

    유엔총회에 참석한 무아마르 카다피(67) 리비아 국가원수가 ‘국제사회의 악동’이란 이름값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베드윈족 전통에 따라 대형천막을 치고 숙소로 사용하겠다고 고집했다가 면박을 당하더니 유엔총회장에서는 좌충우돌 행태로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20대 청년장교 시절 쿠데타로 집권해 41년째 리비아를 통치하고 있는 세계 최장기 집권자. 엊그제 아프리카 왕 중 왕이라는 거창한 소개를 받으며 연단에 오른 그는 무려 96분에 걸쳐 장광설을 쏟아냈다. “신종플루는 군사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신종생물무기 아니냐.” “‘아프리카의 아들’ 오바마 대통령은 영구 집권해야 한다.” “유엔본부를 리비아로 옮기자.”는 등 그가 토해낸 말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카다피는 단상에 놓인 유엔헌장을 찢어버리며 “1945년 유엔창설 이래 65개 전쟁이 일어났지만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은 자기 이해관계에만 충실해 왔다.”면서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이 나머지 나라들을 2등국가로 경멸하는 만큼 테러이사회로 불러야 한다.”고 일갈했다. 아프리카연합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진출해야 한다는 대목에선 아프리카 국가 대표들로부터 박수까지 받았다. 강대국 중심 유엔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인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카다피의 모습에서 발양망상의 흔적이 읽힌다. 남들은 다 불편해하지만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에고 신토닉(ego syntonic)’ 상태도 감지된다. 하지만 유엔과 서방세계를 질타한 카다피의 원맨쇼는 서구 패권주의 국제질서에 휘둘려온 아프리카의 내력을 살펴보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카다피는 일찍이 이집트·시리아 등과 함께 중동지역에 단일 아랍국가를 건설, 강대국의 영향력을 배제하려 했지만 좌절한 경험이 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외세의 영향력을 상징하는 프랑사프리카(Francafrica)에 이어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을 상징하는 차이나프리카(Chinafrica)라는 조어까지 생겨났으니 ‘아프리카의 왕’ 카다피로서는 부아가 날 만도 하다. 안하무인 갈색 사나이의 ‘막장외교’를 흘겨만 볼 수도 없는 현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돌아온 셀라야… 온두라스 ‘폭풍전야’

    지난 6월 군부 쿠데타로 축출돼 망명 중이던 마누엘 셀라야 온두라스 전 대통령이 전격 귀국한 뒤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AP통신은 온두라스 경찰이 22일(현지시간) 셀라야가 귀국 뒤 임시정부의 체포를 우려해 피신한 수도 테구시갈파의 브라질 대사관 주위에서 밤을 새운 셀라야 지지자 수천명을 향해 최루탄을 쏜 뒤 해산시켰다고 보도했다. 오를린 세라토 치안부 대변인은 “이 과정에서 체포되거나 부상당한 사람은 없었다.”고 밝혔다. 임시정부는 소요사태에 대비, 셀라야가 귀국한 21일 오후 4시부터 22일 오전 7시까지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나라 전역의 공항도 폐쇄했다. 그러나 셀라야 지지자 수천명은 브라질 대사관 주변에서 밤을 새우며 항의했다. 교사 6만여명이 셀라야를 지지하기 위해 파업을 선언했다.앞서 셀라야는 귀국 직후 기자회견에서 “임시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온두라스의 평화와 안정을 되찾겠다.”고 밝혔다. 귀국 경로에 대해선 “군 검문소를 피해 15시간 동안 산과 계곡을 넘어야 했다.”고 털어놨다. 또 지지자들에게는 대사관 주변에 모여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다.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셀라야가 니카라과 국경을 통해 온두라스로 입국했다면서 “쿠데타 세력은 셀라야 전 대통령의 신변안전을 보장하고 권력을 평화적으로 이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그러나 로베르토 미첼레티 임시 대통령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는 “우리 현실을 바꿀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브라질 정부에 셀라야를 헌법 위반과 부패 혐의로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며 그를 넘겨줄 것을 종용했다. 셀라야의 갑작스러운 출현으로 국내에서의 입지도 위협받게 된 과도정부는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다. 로이터통신은 미첼레티가 권좌에서 물러나거나 대화를 재개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점쳤다.이날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셀라야와 군부 지도자들은 폭력사태를 피할 길을 찾아야 한다.”면서 양측이 대화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경제정책연구소의 공동소장 마크 와이즈브롯은 “이번이 버락 오바마 정부의 진실을 보여줄 최적의 순간”이라며 “다른 나라들은 셀라야 편에 설 것이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보수파는 커피와 섬유의 주요 수출국인 온두라스에서 얻는 이득을 감안, 오바마에게 임시정부에 대한 반대 의견을 재고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브라질은 셀라야의 피난처까지 제공하며 정치·외교적 세력 확장을 노리고 있다. 셀소 아모림 브라질 외무장관은 “셀라야의 귀국이 온두사스 사태를 종식시킬 협상의 새 단계를 열 것으로 기대한다.”며 “브라질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온두라스 사태를 국제적 이슈로 끌어올렸던 오스카르 아리아스 코스타리카 대통령은 자신이 온두라스를 방문해 양측을 중재하겠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연합(EU),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도 온두라스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는 등 임시정부를 압박했다.셀라야 전 대통령은 내년 1월 임기를 마칠 예정이었다. 그러나 재선을 위해 헌법을 개정하려고 국민투표를 강행하다 지난 6월28일 새벽 잠옷 바람으로 군부에 의해 추방당했다. 이후 두 번가량 귀국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레바논’

    제66회 베니스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 수상작으로 이스라엘 새뮤얼 마오즈 감독의 ‘레바논’이 선정됐다. 12일 저녁(현지시각) 폐막된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의 영예를 차지한 ‘레바논’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이스라엘 젊은 병사들의 시각에서 묘사한 반전영화이다. 마오즈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나는 이 작품을 세계 곳곳의 전쟁터에서 살아서 그리고 무사히 돌아 온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바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들은 멀쩡하게 일하고 결혼하며 아이들을 낳았을 것이다.하지만 전쟁의 기억은 그들의 영혼에 깊이 뿌리박혀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당시 21살의 젊은 신병으로 참전했던 마오즈 감독은 자신이 경험했던 두려움과 탱크 안에서의 밀실공포증의 전염 등을 한 편의 드라마로 만들어냈다. 최고상을 놓고 경쟁했던 미국의 토드 솔론즈 감독의 ‘전쟁 기간의 삶’은 각본상을 받았다. 은사자상에 해당하는 감독상은 1953년 미국 CIA가 지원한 이란 쿠데타를 배경으로 4명의 여자들의 삶을 그려낸 영화 ‘남자 없는 여자들(Women Without Men)’을 감독한 이란 출신의 여감독 시린 네샤트에게 돌아갔다. 심사위원 특별상은 독일계 터키 감독 파티 아킨이 감독한 ‘소울 키친’에 돌아갔다. 남우주연상은 패션 디자이너 출신의 미국 톰 포드 감독의 데뷔 작품 ‘싱글 맨(A Single Man)’에서 애인이 죽은 뒤 외로움에 사로잡힌 동성애자 대학교수 역을 맡은 영국 배우 콜린 퍼스에게 돌아갔고,여우주연상은 이탈리아 영화 ‘라 도피아 오라’에서 호텔 웨이트리스로 분한 러시아 여배우 크세니야 라포포르트가 차지했다. 베니스 AP·AFP 연합뉴스
  • 미국, 온두라스 대통령 등 18명 임정인사 비자 취소

    미국 정부가 지난 6월 군 쿠데타를 통해 마누엘 셀라야 전 대통령을 축출한 온두라스 임시정부의 로베르토 미첼레티 대통령 등 주요 인사 18명의 미국 비자를 취소했다고 AP통신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 정부는 이날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에 있는 미 영사관을 통해 미첼레티 대통령과 대법원 판사 14명, 외무장관, 검찰총장, 육군참모총장 등의 비자 취소 방침을 전했다. 이는 온두라스 정부가 셀라야 전 대통령의 복귀와 조기 선거 등을 골자로 하는 ‘산호세 중재안’을 거부하자 원조를 중단한 미국 정부의 추가 압박 수단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미첼레티 대통령은 이날 “이는 미국이 우리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셀라야의 복귀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 했다. 앞서 미 국무부는 지난 3일 온두라스 정부에 대한 광범위한 규모의 원조를 전면 중단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확한 원조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략 2억달러(약 244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한국 현대사의 증인… 만화로 만나는 DJ

    한국 현대사의 증인… 만화로 만나는 DJ

    정치인의 생애를 만화로 다룬다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특히 전·현직 대통령의 경우 더욱 그렇다. 살아 있건, 고인이 됐건 잘못하다간 명예를 건드릴 수 있는 데다가, 또 자칫 찬양 일변도일 경우 작가 자신에 쏟아지는 눈총과 ‘찍힘’을 감내하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하여 웬만한 작가적 통찰력과 냉정한 용기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선뜻 펜을 들기가 쉽지 않다. ●TV프로그램 ‘동물의 왕국’ 가장 즐겨 서울신문에서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시사만평’의 작가 백무현(46) 화백. 그는 2005년 전직 대통령을 정면으로 다룬 ‘만화 박정희’(전2권)를 펴내 주목을 끌었다. 뒤이어 2007년에는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을 다룬 ‘만화 전두환’(전2권)을 발간,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1979년 12·12 하극상 반란부터 구속되기까지 굴곡의 15년 현대사를 거침없이 다뤘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가 이번에는 ‘만화 김대중’(시대와 창 펴냄)을 펴냈다. 3년여의 작업끝에 한국현대사의 증인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만화로 엮은 것. 앞의 두 저서에도 그렇지만 작가 특유의 치밀한 자료조사와 고증을 거쳐 역사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곳곳에 베어난다. ‘만화 김대중’에서 저자는 ‘인간 김대중’ ‘경천애인’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 김대중’ 등 크게 네가지 분야로 접근하고 있다. 정치적 거물이었던 김대중이라는 사람이 가장 즐겨보는 TV프로그램이 ‘동물의 왕국’이었다는 사실과, 귀여운 강아지를 혼낸 것에 단단히 화가나 국회에서 집으로 득달같이 달려와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따졌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리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휴머니스트로서의 인본주의적 성정을 부각시켰다. ●‘선생님’ ‘빨갱이’ 호칭 동시에 얻어 그는 ‘행동하는 양심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서문에서 “한 시대를 살아가는 ‘빨갱이’와 ‘선생님’이란 호칭을 동시에 얻은 사람이 또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빼놓고 정치와 경제·사회·문화 등 한국의 현대사를 말할 수 없다는 점에 방점을 찍는다. 또 집필 내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치와 정신 만큼은 빠뜨리지 않으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인간 김대중·정치인 김대중 등 4분야로 원래 5권으로 계획된 ‘만화 김대중’은 이번에 우선 2권이 출간됐다. 1권 ‘하의도에 핀 인동초’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태어난 하의도의 풍경을 펼치면서 하의도에서 겁쟁이었던 어린 시절과 목포상고를 나와 해운사업으로 성공하고, 6·25 전란 속에서 첫 번째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 정계에 입문하기까지의 행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권 ‘행동하는 양심’에는 첫 부인 차용애씨의 죽음과 새로운 정치적 후원자 이희호 여사와의 결혼, 5·16군사쿠데타를 통해 악연으로 만난 박정희 정권과의 투쟁을 담았다. 이후 1971년 대선, 김대중 납치사건 등도 만화적 기법으로 흥미롭게 접근했다. 나머지 3, 4, 5권도 이달 안으로 모두 출간될 예정이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나의 전투력은 돈에서 나온다…국적·충성심 따윈 없는 어둠의 전사들 ‘용병’

    나의 전투력은 돈에서 나온다…국적·충성심 따윈 없는 어둠의 전사들 ‘용병’

    “나는 청부인이오. CIA는 수십년 동안 민간 청부인을 써 왔소. 우리들은 공식적으로 군인도 아니고, 공무원도 아니고, 정보요원도 아니오. 모든 건 베트남에서 시작됐소. 없다고 부인할 수 있는 요원들이 필요했으니까. 붙잡혀도 미국 정부에서 보낸 사람들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는 사람들 말이오. 요즘은 CIA가 돈이 많아서, 사람들을 새로 뽑아 훈련시키느니 그냥 우리를 고용하는 게 편하다오.” 막후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미 중앙정보국(CIA)과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어떻게 조국도 없는 어둠의 전사들을 만들어 냈고, 또 활용했을까? 이런 상식 수준의 의문을 가졌다면 앞의 자술적 인용구가 상당 부분 답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들을 ‘용병(mercenary)’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고용인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주저없이 살육을 감행하거나 한 국가를 전복시키는 어마어마한 일도 서슴없이 저지르지만 누구도 이들의 후사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철저한 일회용 소모품일 뿐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들은 국가적 혹은 도덕적 신념의 집단이 아니라 달러가 필요한 개개인의 결집체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용병들에게 이데올로기나 조국, 신의 가호를 기대한다는 건 그들의 생존 방식에 대한 몰이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달러벌이’ 민간 군사기업 그렇다고 용병의 수요와 공급이 언제나 미국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것은 아니다. 로마제국은 기원전부터 누미디아, 갈리아 등 주변국에서 수많은 용병을 모아 전쟁을 치렀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제국들이 이런 전통을 이어받았고, 미국은 이를 기업형으로 전환시켰다. 현대 용병의 효시인 ‘이그제큐티브 아웃컴즈(Executive Outcomes)’나 ‘샌드라인 인터내셔널(Sandline International)’ 등의 ‘민간군사기업’이 그것이다. 옛날의 ‘건달’이 ‘조폭’으로 바뀌었듯 ‘용병’도 ‘청부인(Private Military Contractor)’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한다.’는 이들의 직업관이 바뀐 건 아니다. 개개인이 주체이던 ‘달러벌이’가 집단화된 비즈니스로 바뀌었을 뿐이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며, 이윤 창출의 바탕에는 투자라는 경제 형식이 개입된다. 기업화된 현대의 용병집단은 돈 되는 일이라면 한 나라를 뒤집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 나라의 실체와 지향이 악인지, 선인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사례가 있다. 2004년 2월 아프리카의 기니에서 음바소고 대통령을 권좌에서 축출하려는 쿠데타 음모가 사전에 발각됐다. 이 쿠데타 음모는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의 아들 마크 대처가 핵심 투자자인 용병집단이 기니의 천연자원을 노리고 꾸민 일이었다. 이들은 ‘말이 통하는’ 통치자를 권좌에 앉혀 두고 기니의 석유와 천연가스 이권을 마음대로 주무를 생각이었다. 이를테면 ‘쿠데타 비즈니스’였던 셈이다. 이 사건에서도 용병의 가치가 거듭 확인된다. 돈만 주면 용병, 즉 사설 병력은 주문대로 움직여 준다.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평가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러면 이런 용병이 우리와는 무관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지난 6월 철원 평화전망대에서 열린 ‘육군 토론회’에서 국방연구원 김종탁 박사는 이런 사실을 공개했다. “육군은 2025년까지 제대군인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민간군사기업 설립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민간군사기업 관련 계획은 ‘2020국방개혁 기본계획’에도 포함돼 있다. 그런가 하면 일각에서는 해외에서 빈발하는 한국인 피랍사태에 대비해 민간군사기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계획이나 주장의 이면에 기업적 의도가 개입돼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머잖아 용병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점이다. ●세계 분쟁지역 누비며 용병실체 파헤쳐 우리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이런 용병의 문제를 CNN과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탐사보도 전문 저널리스트인 로버트 영 펠튼이 전쟁산업의 시각에서 파헤친 신간 ‘용병-Licensed to Kill’(윤길순 옮김, 교양인 펴냄)이 나왔다. 펠튼은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을 발로 누비며 반군과 테러조직, 비밀작전의 실체를 파헤쳤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 이런 청부인들로 구성된 비밀작전팀을 운영한 사실도 그의 탐사보도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펠튼은 세계 도처에서 전쟁산업 종사자들을 만난다. 미국의 3대 민간군사기업인 ‘블랙워터’의 최고 경영자, 베트남전쟁에서 빈 라덴 체포작전까지 수십년 간 미국의 용병작전을 수행해 온 CIA 비밀요원, 기니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잡힌 레바논 출신 용병대장과 이라크 바그다드의 전장에 몸을 던진 전쟁청부인 등을 통해 용병의 세계가 적나라하게 실체를 드러낸다.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국적이나 충성심, 도덕적 명분에 얽매이지 않는 용병들이 곳곳에서 정규군 대신 총을 들고 있다. 가장 근접한 계기는 ‘9·11 테러’였다고 펠튼은 진단한다. 그는 이런 용병산업이 신자유주의시대 최고의 블루칩이라고 말한다. 이런 그의 전망에서 세기말적인 우울한 징후를 본다. 신자유주의적 가치인 ‘저비용 고효율’을 명분으로 삼아 국가가 공권력을 민영화했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2만 3000원.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그래픽 김송원기자 nuvo@seoul.co.kr
  • 4·19~MB정부 ‘민주화 연대기’ 조명

    4·19~MB정부 ‘민주화 연대기’ 조명

    MBC 라디오 다큐멘터리 드라마 ‘격동 50년’(95.9MHz·월~토요일 오전 11시40분)이 새달 1일부터 제70화 ‘민주화 연대기’(41회 예정)를 방송한다. 1988년 4월1일 ‘격동 30년’이라는 이름으로 ‘4·19 항쟁’ 편을 방송하며 출발한 ‘격동 50년’은 1999년 현재 타이틀로 간판을 바꾸고 21년째 한국 현대 정치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며 전파를 타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연출은 오성수 PD까지 7명이 번갈아가며 맡아 왔고, 대본은 이영신(4년 8개월) 작가를 시작으로 고(故) 김문영 (8년) 작가 등을 거쳐 현재 이석영 작가까지 9명이 참여했다. 이번 70화는 첫 방송의 주제였던 4·19혁명부터 17대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에 이르기까지 부끄럽고 자랑스러운 기억이 섞여 있는 50년 동안의 한국 현대사를 민주주의 수립 과정에 초점을 맞춰 다시 살펴보는 시간이다. 이승만 정권의 몰락, 5·16, 3선 개헌, 10월 유신, 10·26, 12·12, 광주 학살, 6월 항쟁과 6·29 선언, 3당 합당, 국민의 정부 탄생, 남북 정상회담, 노무현 당선, 대통령 탄핵, 또 한 번의 정권 교체 등 한국 민주주의가 걸어온 길을 재구성하는 한편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묻게 된다. 오성수 PD는 “4·19 이후 두 번의 쿠데타를 거쳐 마침내 민주화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정치적인 관점에서 정리하며 지금 이 순간이 절차상 민주화가 아닌 명실상부한 민주화를 향해 나아가야 할 단계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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