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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위대 “100만 항의” vs 정부 “軍 강경진압”

    의사와 변호사 등 전문직 및 중산층이 대거 총파업에 가담하며 거리 시위에 속속 합류하는 데다 버스 운전사, 운하 근로자 등 노동자들의 총파업 및 시위 참여도 확산돼 이집트 민주화 시위가 다시 급류를 타고 있다. 시위대가 11일 금요 예배 후 ‘100만명 항의 집회’를 강행하겠다고 예고하자 정부는 군 개입을 경고하는 등 양측의 양보 없는 대치가 점점 더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시위대와 정부 사이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집트 외교부가 10일 미국의 계엄령 즉각 해제 요구를 비판하면서 미국과 이집트 관계도 삐걱대는 등 그동안 유혈 충돌을 막아왔던 안전판들이 흔들리고 있다. 알자지라 방송은 10일 “수천여명의 의사들이 이날 파업에 참여해 수도 카이로 중심부에 있는 타흐리르(해방) 광장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방송은 “변호사 3000여명도 변호사 회관에서부터 타흐리르 광장까지 시위를 벌였으며 상당수가 시위대에 합류했다.”고 전했다. AP는 노동조합들의 총파업 호소가 있은 지 이틀째인 이날 전국에서 6만여명의 운전사 등이 파업에 참가했으며 수만명의 공장 노동자도 이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노동자들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과 함께 근로 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그동안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무바라크 퇴진 운동은 시위 16일째인 9일(현지시간) 광장 바깥으로 퍼져 나갔다. 카이로의 시위대는 의회와 정부 건물 주변에서 의회 해산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다른 지역 곳곳에서도 수백명에서 수천명 단위의 시위가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수에즈 운하 근로자 6000명이 파업하는 등 그동안 관망하던 노동조합까지 동참했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야권 대표들 간 대화 이후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던 시위 분위기가 11일로 예정된 100만명 항의 시위를 앞두고 재점화하는 양상이다. 이에 정부는 군 개입 가능성을 언급하며 시위대를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전날 술레이만 부통령이 무바라크의 즉각적인 퇴진은 군 쿠데타를 가져올 수 있다고 발언한 데 이어 이날엔 아메드 아불게이트 외무장관이 미 공영 PBS와의 인터뷰에서 군 개입 가능성을 언급한 뒤 “군이 들어오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금요 시위 때는 군이 “시위대에 발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최악의 사태를 면했지만, 이번 시위는 ‘피의 금요일’로 얼룩질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개헌위원회는 대통령 출마 자격 요건을 극도로 제한한 76조와 대통령의 연임 제한을 두지 않은 78조를 삭제하는 등 헌법 조항 6곳을 손질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위원회는 인권단체와 미국이 즉각적인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긴급조치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집트와 미국의 관계도 심상치 않다. 그동안 시위대와 정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온 미국이 이집트 정부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자 이집트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등에 업고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직접 전화해 야권 인사와의 대화를 포함한 미국의 네 가지 요구 사항을 전달하자 게이트 외무장관은 “미국의 뜻을 강요하지 말라.”며 ‘발끈’했다. 이에 백악관은 게이트 장관 발언 직후 “이집트 정부는 국민이 보고 싶어 하는 조치들을 취하지 않고 있다.”고 몰아세웠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집트 정부의 자제와 개혁 수준이 (원조 문제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원조 삭감 카드’를 다시 꺼내들기도 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개헌委 구성” 무바라크, 개혁요구 처음 실행

    궁지에 몰린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당근과 채찍’을 함께 빼들며 정국 수습에 나섰다. 개헌위원회를 구성하며 시민들의 개혁요구를 일부 수용하면서 동시에 “시위에 대한 인내심이 바닥나 간다.”며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은 8일(현지시간) 국영TV를 통해 “무바라크 대통령이 개헌 문제를 검토할 위원회와 정치 개혁 과정을 검토할 독립위원회 등 2개의 기관 구성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두 위원회의 설치는 지난 6일 정부와 야권이 합의한 사안으로 무바라크 정권이 정치개혁 약속을 실행에 옮긴 것은 처음이다. 개헌위원회는 상소법원장을 위원장으로 10명의 수석 판사 및 헌법 전문가들로 구성할 예정이다. 또 오는 9월 치러질 대통령선거의 입후보 자격 완화와 대통령 연임 제한 규정의 신설 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공무원 임금인상 등 유화책을 잇달아 내놓은 정부가 실질적인 개혁 절차를 하나씩 밟아가며 민심 달래기에 속도를 붙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5일째 반정부 시위의 열기가 사그라지지 않자 정부는 그동안 참아 왔던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시위대에 대한 불편한 심기도 드러냈다. 술레이만 부통령은 이날 이집트 민·관영 언론사 책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타흐리르 광장에서 연일 계속되는 시위를 참고 견디기가 어렵다.”면서 “시위가 조속히 끝나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술레이만 부통령이 자극적인 표현까지 써 가며 시위대를 압박한 것을 두고 AP통신은 정부의 조바심이 반영된 발언이라고 풀이했다. 간담회에서 민주화 세력과의 대화 의지를 재차 강조한 술레이만 부통령은 “(시민들과) 대화하지 않으면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면서 “(쿠데타는) 계산되지 않은 경솔한 단계이며 많은 부조리를 낳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언론사 대표들이 발언 취지에 대해 묻자 군사 쿠데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집권 준비가 되지 않은 세력이 국가 기관을 전복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술레이만 부통령은 “현재 타흐리르 광장에 있는 시위대와 몇몇 위성방송들이 이집트를 모욕하고 비하해 시민들이 직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고 불쾌해하면서 “시민 불복종 행위는 사회를 매우 위험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참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체제의 종말은 없을 것이며 무바라크 대통령이 즉각 떠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혼돈의 이집트] 이집트 개혁 ‘총감독’ 군부… 경제도 좌우 ‘막강파워’

    [혼돈의 이집트] 이집트 개혁 ‘총감독’ 군부… 경제도 좌우 ‘막강파워’

    호스니 무바라크 정부와 야권이 헌법개혁위원회 구성 등에 합의해 소요 사태 2주일 만에 대화 국면을 형성하면서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막후의 군부가 집중적인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가 6일(현지시간) “9월 선거 이후 누가 새 대통령이 되더라도 부유하고 비밀스러운 군부가 이집트 통치의 열쇠를 쥐게 될 것”이라고 보도한 데에서 보듯 ‘포스트 무바라크 시대’의 열쇠는 결국 술레이만과 군부가 쥐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집트 정치 개혁 논의의 ‘주연’이 술레이만이라면, 군부는 이를 연출하는 ‘총감독’으로 자리매김해 가는 형국이다. ●현대 이집트 권력의 원천 사실 이집트의 현대정치는 군부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1953년 ‘자유장교단’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린 뒤 초대 대통령이 된 무함마드 나깁부터 가말 압델 나세르, 안와르 사다트는 물론이고 무바라크 현 대통령까지 역대 모든 최고 권력자가 군부를 기반으로 권력을 잡았다. 이집트 군부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30년이나 장기 집권할 수 있는 원동력이 돼 왔다. 상대적인 청렴성과 우수한 인재들로 구성된 덕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조차 군대와 별다른 충돌이 없을 정도로 국민들의 신뢰까지 얻고 있다. 이스라엘을 빼고는 중동과 아프리카를 통틀어 최강 전력이자 세계 10위 군사력을 자랑하는 이집트군은 약 47만명에 이르는 현역에 예비군도 48만명이나 된다. 고졸자까지는 3년, 대학생 이상은 1년간 의무복무를 해야 하는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다. 단 기독교의 한 분파인 콥트교 신자는 병역을 면제한다. 군부는 막강한 경제력도 갖고 있다. 국방예산도 2009년도 기준 58억 5000만 달러로 국내총생산(GDP) 1891억 달러의 3%나 된다. 군부는 무기뿐 아니라 도로와 주택건설, 소비재, 리조트 경영 등 사업에도 관여한다. 대통령에게만 보고할 뿐 구체적인 국방예산 내역 등 대다수 군 관련 정보는 공개하지 않는 등 상당한 독립성과 특권을 누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6일 “최근 군 장교들의 임금이 사기업 직원들에 비해 떨어지면서 군의 인기가 시들해지긴 했지만 이집트군은 전자제품이나 의류, 심지어 식품 생산에도 직접 개입하고 있다.”며 막강한 군부의 부와 영향력을 전하기도 했다. ●미국·이스라엘과 밀월 관계 유지 이집트군이 국민들에게 인정받는 배경 중 하나로 이스라엘과 벌였던 전쟁을 빼놓을 수 없다. 1948년 제1차 중동전쟁에서 겪은 치욕적인 패배가 쿠데타로 이어졌고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승리는 아랍권의 자존심을 세우며 위상을 높였다. 특히 당시 공군을 이끌었던 무바라크가 이 전쟁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하면서 이후 대통령에 오르는 배경이 됐다. 이집트군은 1979년 사다트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뒤 미국으로부터 해마다 막대한 군사 지원을 받고 있다. 2009년 지원액도 13억 달러에 이른다. 덕분에 미국제 F16은 이집트 공군의 주력 전투기가 됐고, 미국제 M1A1 에이브럼스 탱크는 이집트 육군을 이스라엘에 이어 중동에서 두 번째로 많은 차세대 전차를 보유한 군대로 만들었다. 이스라엘과 전쟁을 거치며 성장한 이집트 군부가 1979년 이후로는 미국·이스라엘과의 밀월 관계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해 온 셈이다. ●무함마드 탄타위 국방 등 주목할 인사 이집트 정세가 요동치면서 군부를 움직이는 핵심 인사들의 면면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술레이만 부통령이다. 육군 중장 출신으로 무바라크 대통령의 오른팔로 꼽히는 그는 1993년부터 2011년까지 정보국장에 재직했다. 그의 잠재적인 경쟁자로 꼽히는 무함마드 탄타위 국방장관은 군 안팎에서 전쟁 영웅으로 명성이 높다. 군 원수 출신이며 전형적인 야전 군인이다. 1956년 이스라엘과의 수에즈 전쟁에서부터 1991년 미국의 이라크전 때까지 중동에서 벌어진 전투에 빠짐 없이 참전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카이로 주재 미국 대사관 외교전문에 따르면 일부 군 장교들은 탄타위 국방장관을 ‘무능력한 무바라크의 딸랑이’로 묘사했다. 해외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사미 에난 참모총장도 주목해야 할 인물로 꼽힌다. 그는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않은 깨끗한 이미지로 국민의 신임을 받고 있다. 사실상 최대 야당인 무슬림형제단도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정도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쫓겨난 독재자’ 벤 알리는 누구

    ‘쫓겨난 독재자’ 벤 알리는 누구

    1881년부터 75년간 프랑스령이었던 튀니지는 1956년 3월 독립한 뒤로 단 두명의 국가 지도자만이 존재해 왔다. 독립 운동을 이끌었던 하비브 부르기바 초대 대통령이 30년간 권좌를 지켜온 튀니지는 1987년 당시 총리이던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74) 현 대통령의 무혈 쿠데타로 정권 교체를 이뤘다. 국민의 환영 속에 막을 올린 새 정권도 오래 지나지 않아 민주주의를 도입하겠다던 약속을 저버렸다. 종신 대통령 직함을 없애고 최대 3선까지만 허용하도록 했지만 2002년 4선 도전을 위해 다시 개헌했다. 지난 2009년 5선 연임에 성공, 23년 넘게 튀니지의 독재자로 군림했다. 임기 초기를 제외하면 정권 유지에 ‘올인’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당 인사들을 끊임없이 탄압하고 국민들의 인권을 제약했다. 튀니지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국이 안정돼 있지만 1058만명의 국민들은 언론의 자유를 포함한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살아야 했던 것이다. 심지어 다른 독재국들과 달리 경제적 풍요라는 ‘당근’을 주지도 못했다.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 추정치는 9500달러로, 1만달러가 안 된다. 실업률은 1990년부터 지금까지 12~16%를 유지했고 최근에는 물가, 특히 식품 가격이 치솟았다. 석유가 나오지만 하루에 수백만 배럴을 생산하는 인근 산유국과는 달리 일일 산유량이 고작 9만 7600배럴 정도에 불과하다. 빼어난 자연경관과 함께 페니키아, 로마, 비잔틴, 이슬람 등 다채로운 인류문명의 유적지를 지니고 있는 튀니지는 GDP의 54.8%가 관광업을 비롯한 서비스업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 세계 제2위의 올리브 수출 국가이긴 하지만 농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인구의 98%는 수니파 무슬림이며, 1%는 기독교인이다. 아랍권 국가 중에서는 비교적 많은 1000명가량의 유대인 인구도 살고 있다. 공식 언어는 아랍어이며, 무역 등에서는 프랑스어도 통용된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튀니지 ‘재스민 혁명’ SNS의 힘

    튀니지 ‘재스민 혁명’ SNS의 힘

    지난해 12월 17일. 튀니지 중부에 있는 인구 4만명의 소도시 ‘시디 부 지드’가 지구촌에 조용히, 그러나 빠른 속도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노점상을 하던 26세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 소식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타고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한달이 채 안 된 지난 14일(현지시간).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튀니지의 23년 독재 체제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인구의 18%가 페이스북 가입자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부아지지는 독재정부가 망쳐 놓은 경제난 탓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과일 노점상으로 겨우 생계를 꾸렸다. 노점 단속에 나선 경찰이 그의 뺨을 때리고 과일 수레를 부순 뒤 외상으로 구입한 과일 200달러어치를 압수했다. 시청을 찾아가 사정했지만 소용없었다. 자기만 바라보는 가족과 아직 갚지 못한 빚, 암울한 내일…. 부아지지에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주정부 청사 앞에서 머리에 기름을 붓고 불을 댕겼다. 그의 희생은 그러나 헛되지 않았다. 살인적 실업률에 신음하던 튀니지 국민들은 부아지지의 분신 소식에 들고 일어났다. 튀니지의 공식 실업률은 14%. 하지만 이 숫자를 믿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튀니지 경제는 바닥을 헤매고 있다. 특히 15~29세 청년 실업률은 30%에 이른다. ●위키리크스도 혁명 성공 한몫 혁명 성공의 또 다른 열쇠는 내부고발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제공했다. 대통령 일가의 과도한 재산 축적과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담은 외교 문서들이 튀니지 민주화 운동가들이 만든 ‘튀니리크스’(Tunileaks)를 통해 확산되면서 혁명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더욱 북돋았다. 시위가 열흘 넘게 계속되자 독재자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은 뒤늦게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사경을 헤매던 부아지지는 지난 4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 성난 민심은 더욱 달아올랐고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사망자가 잇따라 발생하자 항의 시위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매개로 한 정권 퇴진 운동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1987년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로 인권 탄압과 부정부패 등 독재의 전형을 보여 온 벤 알리는 결국 사우디아라비아로 달아났고, 철옹정권은 무너졌다. 전 세계 언론은 튀니지의 민중 봉기를 ‘SNS가 꽃피운 재스민 혁명’이라 불렀다. 튀니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스민처럼 평범한 민초들이 SNS를 통해 하나로 뭉쳐 거둔 승리라고 평가했다. 튀니지는 인구의 60%가 25세가 채 안 되는 ‘젊은 국가’다. 이 때문에 페이스북 가입자가 18%에 이를 만큼 SNS 이용률이 높다. 튀니지 독재를 무너뜨린 SNS는 이제 이웃 중동과 아프리카, 남미의 독재국들을 겨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청년층 비율이 높고 경제 사정이 열악한 예멘(70%), 알제리(75%)가 다음 타깃이 될 가능성에 주목한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열린세상] 추기경의 성탄절 메시지와 사제단의 ‘쿠데타’ /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열린세상] 추기경의 성탄절 메시지와 사제단의 ‘쿠데타’ /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정진석 추기경(서울대교구장)의 성탄절 메시지가 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하여 철저하게 유린되었다. 이는 천주교의 전통적 권위 체계를 부정한 것으로서, 한마디로 ‘사제들의 쿠데타’나 다름없다. 그것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도 닮은꼴이었다. 추기경은 지난 12월 8일, 마흔아홉 번째 책 “하느님의 길, 인간의 길”을 펴내는 자리에서, ‘성탄’은 오셨던 구세주를 기념하고 오실 구세주를 기다리면서 차별 없는 세상을 이루려는 마음 속에 있다고 했다. 추기경은 민심을 굴절하거나 조작하지 않고서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지도자의 덕목이라고도 밝혔다. 그리고 종교 갈등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었다. 진리와 영원한 생명을 지향하는 종교인들이 신앙의 문제로 갈등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추기경은 연평도 포격이 북한 지도자들의 그릇된 욕망에서 나왔으며, 1949년 이후 동료 사제들의 행방에 대해서 북한이 침묵해 온 사실을 지적했다. 주교회의가 4대강 사업 반대를 천명한 것이 아니라 자연 환경의 ‘파괴’를 우려한 것이며, ‘개발’이 ‘발전’인가 ‘파괴’인가의 문제는 종교인보다는 해당 전문가들의 일이라고 정리하기도 했다. 그러자 정의구현사제단은 12월 10일, 추기경의 4대강 발언을 ‘거짓 예언’ 또는 ‘궤변’이라고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13일에는 25명의 진보적 원로 사제들이 추기경의 4대강 발언은 주교단의 의사에 반하는 그릇된 해석이라고 주장하면서 서울대교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추기경이 주교회의의 결정을 잘못 해석했다면 당연히 주교회의가 그 진의를 확인했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왜 천주교의 공식기구가 아닌 정의구현사제단이 ‘추기경 죽이기’에 나섰던 것일까? 그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지난 3월 10일, 5명의 주교와 1104명의 사제가 서명했던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의 성명서 사건의 실질적 주체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4대강 반대에 서명한 5명의 주교 가운데 주교회의 소속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가 있다는 사실이다. 5명의 주교와 정의구현사제단의 결속이 4대강 문제를 신앙의 차원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실제로 지난 3월 12일의 미사에서 강우일 주교회의 의장은 4대강 사업 반대가 ‘교회의 가르침’이라고 일방 선언함으로써 천주교 신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이들의 세몰이는 결국 “생명지킴과 4대강 살리기 성명서”를 주교회의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22명의 주교가 승인한 3월 12일의 주교회의 성명서는 이용훈 주교 등 5명의 주교가 서명한 3월 10일자 천주교 연대의 4대강 개발 반대 성명서와는 내용이 다르다. 이 성명서는 현재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는 4대강 사업이 우리나라 전역의 자연 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을 뿐, 교회가 4대강 개발에 반대한다는 직접적인 표현을 담고 있지 않다. 추기경은 주교회의가 4대강 개발 반대를 천명한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정의구현사제단과 그 후원세력들이 반발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들은 추기경을 ‘골수 반공주의자’라고 매도하면서, 교회 분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윽박질렀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이용훈 주교도 12월 16일, 4대강 사업 반대가 세상을 복음화하고 올바른 인간의 길을 제시해야 할 교회 본연의 사명에 해당한다고 재천명하면서 추기경과 대립각을 세웠다. 어떤 개인이나 사제이든지 간에 4대강 사업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정치 문제를 교회가 신봉해야 할 진리로 세우고자 할 때 교회 안팎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설사 그들이 정치적 이슈를 천주교회의 일치된 의견으로 포장하더라도 결코 신앙적 구속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장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시기 위하여 오셨다. 사제들이라면 마땅히 따르고 본받아야 할 가르침이다.
  • 승자독식 대한민국 실업탈출 아직 멀었다

    ‘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다’(강준만 지음, 개마고원 펴냄)는 한동안 한국 사회문제 전반에 대한 비판적 글쓰기로 유명했던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의 ‘한국 생활사’ 작업이다. 강 교수의 ‘한국 생활사’는 전화, 커피, 축구, 입시, 어머니 등 일상을 주제별로 나눈 통시적 저술 작업으로 이번 주제는 제목 그대로 실업이다. ‘한국 생활사’는 전 18권인 강 교수의 ‘한국 현대사 산책’이나 전 17권인 ‘미국사 산책’보다 더 많은 40여권의 책을 예정하고 있다. ‘영혼이라도’는 해방정국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실업의 역사와 슬픈 구직 수난사를 살펴 실업 문제 해결이 단순히 ‘방법’이 아니라 ‘철학’과 ‘자세’에 있음을 제시한다. 왜 구직에 철학이 등장할까. 우리나라는 ‘1등만 기억하는’, 한 번 나락으로 떨어지면 끝장이라는 식의 승자독식 문화가 강고하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이런 문화에서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나 기업형 슈퍼마켓, 이마트 피자, 롯데마트 치킨 논란에서 보듯 누군가 제아무리 ‘기막힌 방법’을 마련해도 이해당사자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해결책은 내놓기 어렵다. 따라서 저자는 실업 문제를 넓고 깊게 보기를 권한다. 실업 문제는 그 어떤 이념도 뛰어넘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운영과 작동방식의 문제란 것이다. 기존의 좌우 이념의 틀을 벗어나 승자독식 문화의 의식과 관행을 바꾸고 공존공생의 자세를 찾지 않으면 영원히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1945년 8월 15일 이후 해방정국에서 우익 청년·학생 단체가 엄청나게 많이 생겨났다. 이는 당시의 대규모 실업과 심각한 경제난 때문이란 게 강 교수의 설명이다. 청년단의 폭력 행사는 배고픔을 해결하려는 방편이었다는 것이다. 1960년대 폭발적으로 늘어난 대학생과 30%가 넘는 실업률은 4·19 혁명을 촉발시킨 요인이었다. 5·16 쿠데타 역시 주동자들의 실업 문제가 큰 원인이었다. 강 교수는 정치란 ‘그 주체들이 고급 일자리를 얻기 위한 투쟁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아무리 정교한 법과 제도라도 공기업과 정부 산하단체의 보은성 ‘낙하산 인사’를 차단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결국 실업을 경제적 문제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원수와도 같이 살자’는 자세를 갖춰야 “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다!”는 절규를 해소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책의 결론이다. 1만 2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中, 北 급변시 親中성향 정부수립 지지”

    북한의 급변사태 발생 시 중국은 남북통일을 지지하기보다는 북한 내 친중 성향의 정부 수립을 지지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신범철 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1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동아시아연구원 주최 한·미동맹 콘퍼런스에서 이같이 밝히고 “한·미 간 급변사태 대비, 논의 과정에 중국을 참여시켜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연구위원은 또 “미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은 미국에 적대적인 북한을 지지함으로써 동북아에서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며 “현실적으로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이런 중국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에서 쿠데타나 내란이 발생할 경우 중국은 친중국 성향의 세력을 지지할 것”이라며 “급변사태 발생 시 중국은 미국에 앞서 대량살상무기(WMD)를 확보하고 미국의 개입에 반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중국을 설득하는 수단으로 국제법과 민주주의, 인권, 국제사회 공조 등을 제시하며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하고 강제송환을 자제하도록 함으로써 인도적 지원 측면에서 중국의 부정적인 역할을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중국의 부상’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북한을 압박해 긴장을 완화하는 노력에 중국이 동참하지 않는 이유는 자국의 대북 압박이 북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국은 북한의 유일한 후원국인 자국이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면 북한이 붕괴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美가 가장 아끼는 외교관 잃었다”

    “美가 가장 아끼는 외교관 잃었다”

    미국 외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리처드 홀브룩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특사가 지난 13일(현지시간) 별세했다. 69세. 지난 10일 대동맥 파열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던 홀브룩이 숨지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비롯해 각계 각층이 조의를 표했다. ●대동맥 파열로 쓰러져 오바마 대통령은 홀브룩 임종 직전 유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홀브룩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 지치지 않는 공직자였다.”며 “그는 진정한 거인”이라고 평가했다. 힐러리 장관은 성명을 통해 “오늘은 나에게, 미 국무부에, 미국에 슬픈 날”이라면서 “동남아시아에서 냉전체제 이후 유럽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는 그의 공헌으로 인해 평화로운 미래를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미 상원 외교관계위원장 존 케리 의원은 그를 “완강하고 결코 멈추지 않는 외교관”으로 묘사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도 “홀브룩의 외교술과 전략적 비전, 전설적 결의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하는 등 국제사회 역시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홀브룩은 불도저란 별명이 붙을 만큼 저돌적이고 급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생전의 그를 ‘미국 정부가 아끼는 최후의 외교관’, ‘미국에서 가장 거친 외교책사’로 평가했다. ●카터 행정부 때 35세 차관보 올라 홀브룩은 케네디 행정부부터 오바마 행정부까지 역대 모든 민주당 정부에서 고위 외교관으로 재직하는 기록을 남겼다. 1941년생인 홀브룩은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베트남에서 외교관으로 첫발을 뗀 뒤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차관보에 올랐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선 유럽 담당 차관보로 보스니아 전쟁을 끝내는 외교협상을 이끌었다. 그는 한국 현대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기도 했다. 홀브룩은 1977~1981년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로서 10·26 직후 최규하 권한대행 체제에서 진행되는 정치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 12·12쿠데타 직후에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대사에게 신군부의 권력 강화 움직임을 견제하는 입장을 취하게 하기도 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여·야 지도부는 ‘육탄’ 독려… 질서유지권도 안 통한 국회

    여·야 지도부는 ‘육탄’ 독려… 질서유지권도 안 통한 국회

    “이것이 정의다.”(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 “3년 연속 날치기하는 이명박 정권을 국민이 반드시 심판해 주기 바란다.”(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 한나라당이 민주당 등 야당 측과 치열한 몸싸움 속에 8일 새해 예산안을 강행 처리했다. 전날부터 국회 의장석을 점거한 민주당 여성의원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한나라당 의원들 간 충돌 끝에 오후 4시 20분쯤 한나라당 김소남 의원이 국회의장석을 뺏었다. 25분 뒤쯤 정의화 국회 부의장이 본회의 개회를 선언, 일사천리로 방망이를 두드렸다. 새해 예산안이 상정되고 이주영 예결위원장의 ‘간단한’ 심사 보고가 이어지는 동안 야당 의원들은 “내려와, 내려와”를 연호했다. 310조원에 이르는 새해 예산안은 순식간에 여야 합의 없이 국회를 통과했다. 오랜 시간 국회 본회의장 안은 탄식과 환호가 교차했다. 전날 1차 ‘예산 대전’으로 긴장감에 휩싸인 국회는 이날 오전부터 벌어진 여야의 2차 예산 대전으로 위기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한나라당 예결위원들은 오전 10시부터 속속 국회 245호실로 집결하며 단독 처리 수순에 돌입했다. 문을 걸어 잠그고 4분여만에 예산안을 본회의로 넘겼다. 허를 찔린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은 오전 10시 30분쯤부터 본회의장 출입구를 막아섰다. 본회의장 로텐더홀에서 꼬박 밤을 새운 손학규 대표와 이인영·김영춘 최고위원은 눈을 감은 채 곧 닥쳐올 상황을 그리는 듯했다. 손 대표는 앞서 로텐더홀에서 가진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명박 독재” “이성을 잃은 폭거, 쿠데타”라며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한나라당의 단독 의결로 예산안이 예결위를 통과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야당 보좌진들과 당직자들은 스크럼을 짜며 본회의장 주변에 늘어섰다. 오후 1시 40분쯤 한나라당 홍준표·원희룡 의원이 앞장서서 본회의장 입구로 들어서자 야당 보좌진들이 몰려들면서 대치가 시작됐다. “날치기 반대” 구호가 로텐더홀을 뒤흔들었다. 진입을 시도하는 한나라당과 결사적으로 막아서는 민주당의 격렬한 밀고 당기기가 계속됐다. 여성 당직자가 실신했고 곳곳에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오는 등 본회의장 입구는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다.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은 양복이 갈갈이 찢어졌다. 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에게 주먹으로 얼굴을 맞아 많은 피를 흘렸다. 김 의원도 주변에서 수차례 얼굴을 가격당했다. 10여분 뒤 박희태 국회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했다. 사회를 보기 위해 본회의장으로 들어가려던 박 의장은 결국 민주당 측에 막혀 정의화 국회 부의장에게 사회권을 위임했다. 뒤늦게 본회의장에 들어가려던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야당 측 관계자들에게서 “보온병, 보온병” 소리를 듣는 곤욕을 당했다. 오후 2시 30분쯤 본회의장 안에서 “의결 정족수가 됐다.”는 말이 타전됐다. 한나라당 160여명, 민주당 60여명의 의원들은 국회의장석 주변에서 충돌을 반복했다. 그동안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던 두 당의 원내 사령탑들은 끝내 등을 돌렸다. 구혜영·강주리·김정은기자 koohy@seoul.co.kr
  • 軍 교전규칙 대폭강화

    軍 교전규칙 대폭강화

    국방부는 30일 국회 국방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유엔사 및 한미 연합사와의 협의를 거쳐 정전 교전규칙을 개정하고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전 이후 유엔군사령부가 정한 교전규칙은 한번도 개정된 적이 없다. 그동안 우리 군은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교전규칙을 개정하겠다고 했지만 군 자체의 작전지침만을 수정해 왔다. 작전지침은 유엔사 교전규칙을 근거로 만들어진 작전예규에 따라 정해진 우리 군의 대응 방향으로 교전규칙의 범위를 넘을 수 없는 하위 지침이다. 국방부는 천안함 사건과 함께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이 발생하면서 유엔사와 미군 측에 직접 협조를 요청해 교전규칙 개정을 추진하게 됐다. [포토] 한미연합훈련 실시…美항공모함의 위력 개정되는 규칙은 평시 작전권을 행사하는 합참의장의 권한과 책임을 보장하고 기존 비례성의 원칙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적의 응징 여건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방부는 “기존 동종(同種)·동량(同量)의 무기사용 기준에서 ‘적의 위협과 피해규모’를 기준으로 응징의 종류와 규모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군이 연평도 공격 때와 같이 122㎜ 방사포를 동원한다면 우리 군은 다연장로켓포와 같은 무기로 대응한다는 것이 수정된 개념이다. 한편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훈련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서해 한·미 연합훈련에서 실시된 대량살상무기(WMD) 해양차단훈련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훈련인 것으로 확인됐다. 군 고위 소식통은 “이번 훈련은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해상차단훈련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훈련”이라면서 “북한 정권의 붕괴 등 급변사태를 고려한 (개념계획 5029에 따른)훈련으로 이번 (서해 한·미 연합)훈련에서 함께 이뤄졌다.”고 전했다. 급변사태에 대비해 한·미 양국군이 실제 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한·미는 북한의 급변 사태를 김정일 변수에 따른 정권교체와 대량살상무기 유출, 군사쿠데타, 자연재해, 북한 내 남한인 인질사태, 대규모 육·해상 탈북 등 여러 유형으로 나누어 시나리오를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군 당국은 북한의 추가도발에 대비해 이날 오전 수뇌부 회의를 열고 북한의 추가도발이 있을 경우 합동전력으로 강력히 대응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성규·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위키리크스 폭로 파문] 北 1990년대 3차례 쿠데타 시도…김정일 사후 2~3년내 붕괴 전망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 전문 중에는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고 북한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속내가 잘 드러난다. ●쿠데타 적발 후 강력한 통제정책 한국 정부의 대북 인식을 특징 짓는 것은 북한이 여러 차례 쿠데타 시도를 겪는 등 극심한 혼란과 불만으로 내부통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죽고 나면 얼마 못 가 붕괴될 것이란 점이다. 하지만 북한 붕괴가 한반도 안보에 미칠 치명적인 불안정성을 최소화할 구체적 대응책 등은 공개된 문건에 담겨 있지 않았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미 국무부에 보고한 2월 28일 자 3급 기밀 외교 전문에 따르면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2월 3일 한국에서 ‘여론 주도층’ 5명과 만나 북한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이 자리에서 이름을 확인할 수 없는 한 전문가는 1990년대 북한에서 개별적인 쿠데타 시도가 세 차례 있었다고 발언했다. 이 전문가는 “쿠데타 시도를 적발한 이후 김 위원장은 매우 강력한 통제정책을 시행했으며 쿠데타 계획에 조금이라도 연관된 사람이면 누구나 공모자로 판단하겠다는 엄격한 경고를 내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이유로 북한에서는 오로지 군부만이 (북한 정권에) 맞설 수 있지만 정보기관이 군부의 모든 상황을 효과적으로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장관은 지난 1월 한국을 방문한 로버트 킹 대북인권특사에게 북한이 화폐개혁 실패와 후계 이양 문제로 혼란상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화폐개혁은 ‘큰 문제’를 초래했고 후계문제는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 화폐개혁 실패 등으로 혼란 극심 김성환 외교부 장관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일하던 지난 2월 캠벨 차관보와 면담하면서 북한 소요에 대한 신뢰할 만한 보고가 있다면서 한국 정보통에 따르면 북한 경찰이 최근 평양에서 베이징으로 향하는 노선 객차에서 폭탄을 발견했다고 언급했다.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외교부 제2차관 시절이던 지난 2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와 한 오찬에서 김 위원장 사후 2~3년 안에 북한이 붕괴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북한은 경제적으로는 이미 붕괴했으며 김 위원장이 죽고 나면 정치적으로도 무너질 것으로 전망했다. 캠벨 차관보와 면담한 자리에서 한 전문가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사망 이후 권력 상층부에서 벌어졌던 혼란을 언급하며 “북한은 당시 한국보다 100배는 더 까다로운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른 한 전문가는 “지난 10년 동안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등 국제 사회가 응석을 받아 준 것이 북한의 정권 유지를 도와줬다.”며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을 비판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씨줄날줄] 레짐 체인지/구본영 수석논설위원

    폭로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어제 미국의 외교 전문 25만여건을 공개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각국 지도자들에 대한 거침없는 인물평으로 미 국무부를 궁지로 몰아넣으면서다. 우방인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를 “깊이가 부족하다.”고 폄하할 정도였으니….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평가다. 외교 전문은 그를 ‘무기력한 늙은 친구’(flabby old chap)라고 표현했다. 아마 뇌졸중으로 쇠약해진 그에 대해 주한 미 대사관 정보통들이 보낸 동향보고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활발한 근황은 그런 첩보를 무색하게 한다. 그는 연평도 도발 닷새 만에 3남 김정은과 함께 교향악단 공연을 관람했다. 포격 이틀 전엔 해안포 지휘부대를 찾았다고 전해진다. 2008년 미 공화당 대통령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북한 ‘정권교체론’(regime change)을 제기했다. CNN방송의 대담 프로그램에서 우라늄 농축시설 시위와 연평도 도발을 자행한 북측을 겨냥, “정권 교체를 논의할 시기가 됐다.”고 한 것이다. “한반도 위기에서 공화·민주당 행정부들이 추구해온 대북 유화정책이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설명과 함께. ‘레짐 체인지론’은 2기 부시 행정부도 한때 검토했다. 9·11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콘돌리자 라이스를 국무장관으로 지명했다. 그녀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때 동유럽의 공산정권들이 친시장 정권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관리’한 백악관의 실무자였다. 북한 정권교체론의 이면에는 미 조야의 좌절감이 배어 있다. 북핵 개발 저지를 위한 강온 전략 어느 것도 먹혀들지 않는 상황을 반영한다는 뜻이다. 클린턴 행정부 때 검토한 영변 핵단지 폭격은 한국이 인질로 잡혀 있는 한 선택하기 어려운 카드다. 대북 경제제재 또한 중국이 북한에 계속 뒷문을 열어주는 바람에 별다른 실효성이 없지 않은가. 이런 딜레마 속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북 지도부를 교체하는 방안은 외견상 그럴싸해 보인다. 그러나 ‘레짐 체인지’는 가능한 수단 측면으로 보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나 마찬가지다. 북한주민들이 들고 일어나거나, 궁정 쿠데타를 유도해야 한다는 차원에서다. 김 위원장이 북 내부에서 무소불위의 통제력을 행사하는 한 현실성이 적은 얘기가 아닐까. 다만 독재정권이 3대를 이어간 역사적 전례가 없다는 ‘상식’이 유일한 위안일 듯싶다. 굳이 “군사력이 경제력에 비해 비대한 나라는 반드시 멸망했다.”는 폴 케네디 교수의 연구 결과를 들먹일 필요도 없겠다.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kby7@seoul.co.kr
  • “식당밥 너무 비싸!” …중학생들 ‘교내쿠데타’ 난동

    “식당밥 너무 비싸!” …중학생들 ‘교내쿠데타’ 난동

    중국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교내식당의 밥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단체 ‘쿠데타’를 일으킨 일이 발생했다. 관영언론인 인민일보에 따르면 지난 22일 밤 구이저우성 류판수이시의 제2중학교에 다니는 천 여 명의 학생들은 이날 밤 학교 식당을 찾아 집기들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는 등 소동을 일으켰다. 학생들이 단체로 나선 까닭은 22일 오후 학교측이 일방적으로 교내식당의 메뉴 가격을 일제히 올렸기 때문. 학생들은 공지를 받은 뒤 자율학습이 끝나고 식당에 모여 자체적인 회의를 했으며, 곧장 식당으로 진입해 테이블과 의자, 유리창 등을 부수고 식기도구를 깨는 등 행동에 돌입했다. 소동에 가담한 한 학생은 “학교가 갑자기 물 한 병에 7마오~1위안(약 120~171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또 야채값이 급등했다는 이유로 모든 음식 값이 5마오(85원) 씩 비싸졌을 뿐 아니라 국수와 밥값도 모두 올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학교 측이 일방적으로 식당 메뉴의 가격을 올린 게 벌써 두 번째”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들의 과격한 행동 때문에 사건 발생 날짜를 따 ‘11·22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번 일에 학교 측도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 담당자는 “야채 가격이 37.5%나 올랐다며 식당 측이 가격을 올리자고 했다. 식당은 학교가 아닌 개인업자가 운영하는 것이라서 달리 도리가 없었다.”고 변명했다. 학교 측은 교내식당 운영권을 양도받고 학생·학부모 측과 협의해 좋은 방향으로 이번 일을 마무리 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서울광장] 정두언 쓴소리 귀담아야 할 이유/박대출 논설위원

    [서울광장] 정두언 쓴소리 귀담아야 할 이유/박대출 논설위원

    정두언은 ‘친이 1호’ 의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다. 이 대통령을 서울시장 때부터 보좌했다. 현역 의원 중 가장 먼저 이 대통령 편에 섰다. 이명박 정권의 일등 공신이다. 한발 더 나가면 원조 공신이다. 이쯤 되면 실세로 분류된다. 대개 정권의 방패막이가 된다. 그게 정치 상례였다. 정 의원은 이를 거부한다. 이단아 행보를 주저하지 않는다. 여권에 쓴소리를 쏟아낸다. 정권의 아픈 데를 콕콕 찌른다. 야당의 공격수 같다. 여권 핵심부에겐 밉상 수준이다. 한나라당 최고위원인 그가 왜 그럴까. 여권에선 여러 분석들이 나온다. 깎아내리려는 내용이 주류다. 정치 위상을 높이려는 제스처로 보기도 한다. 정치적 주목을 받으려고 튄다는 것이다. 권력 핵심부로 복귀하려는 몸부림으로 보는 이도 있다. 대칭점에는 ‘이상득-박영준 라인’이 서 있다. 화풀이나 투정, 혹은 반발이나 보복 심리 등으로 연결짓기도 한다. 정 의원은 대포폰 논란을 주도하고 있다. 이상득-박영준 라인을 겨냥하는 모양새다. 그의 사찰 공세는 집요하다. 지도부의 자제 요청에 오불관언이다. 끝까지 몸통을 밝혀내겠다고 버틴다. 명분도, 실리도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여권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언론·야당만 해도 버거운 상황이다. 집안 식구마저 물고 늘어지니 몇 곱절 어려워졌다. 검찰과 정부가 국민을 농락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재수사론은 그만의 투정이 아니다. 메아리가 있다. 한나라당에서도 동조한다. 최고위원도 여럿이다. 안상수 대표, 김무성 원내대표 정도가 반대다. 안상수 대표와의 설전은 압권이다. 한나라당이 청와대에 끌려다닌다고 했다. 안 대표는 모독발언이라고 발끈했다. 국민들이 오해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국민은 오해가 아니라 직시하고 있다. 당·청 재정립 운운한 게 몇번인가. 모두 말에 그쳤다. 변화된 모습이 안 보인다. 4대강은 한나라당에 성역처럼 되어 버렸다. 입도 뻥긋하는 이가 없다. 지도부는 사찰 논란에 속수무책이다. ‘모독 발언’을 자초한 꼴이다. 그는 감세 논란, 외고 개혁론을 주도한다. 강만수 대통령실 경제특보,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타깃이다. “강만수 죽이고 싶겠네.”라는 해프닝까지 연출했다. 이 장관에겐 “트릭을 시도했다.”고 비판했다. 속임수 운운하니 인신공격 수준이다. 감세 논란은 여권이 덫에 걸렸다. 부자 감세란 정치 공세의 함정에 빠졌다. 국민들을 이해시키는 노력이 모자란다. 위기 극복 능력이 부족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쇠고기 촛불정국 때처럼. ‘정두언 쿠데타’니, 항명이니 말들이 많다. 여권에선 짜증 섞인 반응이 나온다. 정치적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고, 최고 실세로 군림한다면 그러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본질은 그가 왜 그러느냐가 아니다.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배경이 순수하든, 그렇지 않든 중요하지 않다. 본질은 내용이다.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 있느냐가 핵심이다. 이게 여권의 몫이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론 위기를 키울 뿐이다. 정 의원을 향해 그만하라는 푸념이 나온다. 그의 처신을 반조직 행태로만 보는 이들이 진원지다. 부정에 매달려 긍정을 외면하는 게 더 큰 반조직 행태다. 비판에 마음을 열면 얻는 게 생긴다. 투정이라고 폄하하면 남는 게 없다. 그에 대한 평가는 뒤로 접는 게 낫다. 쓴소리 내용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의 쓴소리는 정곡을 찌르기도 한다. 날카로운 진단과 처방이 묻어 있는 칼날이다. 무시하면 베인다.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북한이 연평도 도발을 자행했다. 여의도 국회는 일순간에 방향을 틀었다. 어지럽게 나뒹굴던 정치 현안들도 그 속에 묻혔다. 민주당은 장외투쟁을 멈췄다. 정두언 쓴소리도 수그러들게 됐다. 여권으로서는 뜻하지 않던 국면 전환이다. 하지만 안도할 게 아니다. 골칫거리들은 미뤄졌을 뿐이다. 쓴소리를 외면하면 쓴맛 본다. dcpark@seoul.co.kr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원형대로 재탄생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원형대로 재탄생

    독립과 민주의 현장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새롭게 탄생했다. 서대문구는 3일 2008년부터 국비와 시비 등 121억 2700만원을 들여 역사관 종합정비 보수공사와 전시관 전시물을 대폭 교체해 오는 6일 재개관한다고 밝혔다. 우선 옛 보안과 청사로 사용됐던 주전시관을 원형대로 복원했다. 지하1층, 지상2층 연면적 1398㎡(423평)로 1961년 5·16쿠데타 이후 군인출신 형무소장이 냉전 이데올로기에 따라 붉은 색을 꺼려 기존 외벽에 흰 타일을 덧붙였던 것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전시 아이템도 ‘독립과 민주’에 걸맞은 시설물로 꾸몄다. 전시관 1층 역사실에서는 폭압적인 식민권력의 상징이었던 형무소의 연혁과 독립운동, 민주화 운동과정에서의 역사적 의미를 조망하고 관련 영상을 상영한다. 지하1층 그림자 영상 체험실에서는 벽면에 설치된 특수카메라가 관람객의 얼굴을 그림자 형태로 촬영해 마치 독립운동을 하는 것처럼 합성한 특수영상을 올린다. 형무소를 감시·통제하는 건물인 중앙사에는 간수사무소 및 수감자 기록과 식사, 의복, 생활을 보여 주는 ‘형무소 의·식·주’를 만들었고 12옥사에는 독방과 독립운동가 사이의 암호통신이었던 타벽통보법을 보여준다. 1987년 서울구치소 이전 직후 철거된 취사장도 1930년대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398㎡(120평)의 취사장은 1936년 제작된 도면을 조사해 드러난 지층 구조물과 취사장 천장 증축 공사도면을 근거로 복원한 것이다. 이 밖에 옥사 지붕과 외벽보수, 보강, 지붕 채광장을 복원하고 경내 외래수종 수목을 심어 1930년대 경관을 재현했다. 문석진 구청장은 “시와 문화재청의 협의가 끝나는 대로 내년부터 유관순 지하감옥, 격벽장(수감자 운동장), 담장 등에 대한 원형복원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라며 “독립·민주화 열사들의 수난처인 서대문형무소가 역사문화의 명소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재개관 기념으로 무료 개방하는 6일 형무소에 투옥됐던 독립지사 이병희·이병호 선생과 이돈명·이소선·박형규·리영희씨 등 민주인사 4명이 풋 프린팅을 하고 다중집합장소에 입식 조형물로 전시할 예정이다. 앞서 4일 경술국치 100년·형무소역사관 개관 12주년을 기념하는 학술심포지엄을 열고 7일에는 을사늑약 체결지인 경운궁 중명전~경교장~4·19혁명도서관~독립문~서대문형무소를 걷는 민주올레길 탐방 행사가 이어진다. 역사관 관람객은 연간 일본인 4만 2000여명 등 60만명에 이른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금융·정보산업 허상 좇기보단 제조업 집중해야”

    “금융·정보산업 허상 좇기보단 제조업 집중해야”

    ‘이명박 정권의 경제 정책은 스탈린주의, 그것도 이미 실패로 판명난 스탈린주의다?’ 자금을 큰손-예컨대 재벌-에게 몰아주고, 이들이 투자에 나서면 성장은 저절로 따라오며, 성장의 떡고물이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논리를 고수해서다. 수십년 전 박정희 정권 논리를 아직도 고집하는 것도 우습지만, 한편으로는 이 주장이 ‘샌드위치론’ 같은 것으로 얼굴 바꿔 등장하는 것을 보면 숨겨진 저력도 만만치 않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의 도발은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기업집단(재벌)의 긍정적 측면을 설파하다 보니 ‘재벌옹호론자’라는 말도 나오고, 국가의 산업정책에 무게를 두다 보니 ‘제도학파’라는 평도 있고, 칼 마르크스까지 인용하면서 자유시장주의를 비판하다 보니 심지어 ‘좌파’ 아니냐는 반응도 나오지만, 장 교수는 경제학으로 분리되기 이전의 정치경제학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발도상국의 발전 문제를 전공한 점이나, 성장의 목표를 모두가 잘 사는 사회로 잡는다는 점에서 ‘21세기판 국부론’을 꿈꾸는 쪽에 가깝다. 이번에 낸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도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명박 정권이 박정희 성장담론을 끄집어내는 것은 그 방법이 아직도 유효하고 좋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우선 장 교수가 지적하듯 박정희 정권 성장전략의 원산지는 스탈린주의다. 장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러시아 혁명 뒤 경제개발을 해야 하는데, 농업국가라서 자본이 축적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집단농장을 만들어 농업 부문에서 나온 이익을 국가가 독점한 뒤 이 독점이익을 산업개발에 투하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트로츠키의 참모 예브게니 프레오브라젠스키에게서 나왔고, 이 논리를 스탈린이 채택하면서 소련의 경제개발 논리가 됐다.” (13장-부자를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점진적으로 산업화로 나아간 선진국들과 달리 성장에 동원할 돈이 부족하니 어떻게든 끌어모아 종잣돈을 마련한 뒤 한곳에 ‘몰빵’하자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이 한·일협정으로 얻어낸 차관으로 포철을 지은 게 이런 전략의 한 사례다(12장-정부도 유망주를 고를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이 처음부터 이런 전략을 택한 것은 아니다. 쿠데타 직후에는 박현채 같은 일군의 젊은 경제학자들이 제기한 자립경제와 균등발전론(나중에 정치인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으로 이어진다)을 검토했다. 그러나 성장 욕구에 비해 동원할 수 있는 자본은 턱없이 부족했다. 불균등발전론으로 선회한 이유다. 어떻게 한곳에만 몰아주느냐는 불만에 대한 대답이 바로 ‘조금만 참아라. 성장이 이뤄지고 나면 분배해줄게.’라는,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유예되고 있는 약속이다. 장 교수는 이 정도 언급에서 끝냈지만, 사실 이론적 측면에서 스탈린주의의 영향력은 더 강했다. 소련의 급속한 성장에 영향을 받아 서구 학계는 ‘해로드-도마 모델’을 만들어냈다. 일정 정도의 자본량만 채운다면 성장은 급속하게 이뤄진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모델은 1950년대부터 장기적 성장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미국의 사례에 비춰봐도 대공황 탈출기에나 성립할 뿐이라는 얘기다. 때문에 두 학자는 이 모델을 자진폐기하기도 했다. 실제 역사에서 이 모델의 성공사례도 없다. 스탈린체제는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한국전쟁 뒤 김일성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숙청하면서 중화학공업에 집중투자해 한때 거들먹거렸으나 지금은 거의 망조가 났다. 미국이 지원했던 제3세계 국가 가운데서도 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룩한 국가는 거의 없다. 따라서 한국의 성공은 세계적으로 볼 때 대단히 예외적인 사례다. 더구나 한국의 성공 또한 순탄한 것만도 아니다. 유신정권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 때문에 물가앙등과 생필품 부족 사태가 일어났고, 부마사태와 10·26사태 등 정권 말기의 정치적 혼란도 이 때문이라는 연구도 많다. 또 전두환 정권이 집권 내내 손댔던 작업이 박정희 정권이 판을 벌여놓은 중화학공업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 작업이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장기적 성장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말은 곧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나 먹혀들 전법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 모델이 여태껏 살아남은 이유는 백악관의 정치참모였던 월트 로스토의 발전단계론 덕분이다. 냉전의 공포를 등에 업은 로스토는 자본을 투하해 성장이 이뤄지면 민주주의도 공고화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악의 제국’ 소련에 맞서야 했던 미국은 이 논리를 그대로 채택했다. 지금도 세계적으로는 국제원조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국내적으로는 마이크로크레딧(우리나라의 미소금융)이라 일컬어지는 방식이다. 옛 동구권에 대한 국제원조 문제를 연구했던 윌리엄 이스터리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를 “공산주의 국가가 제공한 잘못된 영감을 옛 공산권 지원을 위해 자본주의 국가들이 다시 채택하는 아이러니의 순환”이라 불렀다. 장 교수의 결론은 지금 당장 대기업들이 거금을 투자한다고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또 설사 성장한다 해도 그게 바람직하진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박정희나 스탈린 때야 워낙 자본금이 부족한 사정이라도 있었다지만, 지금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투자 안 한다고 볼멘소리를 낼 정도로 기업들이 돈을 쌓아두고 있다. 그럼에도 ‘투자가 우선’이라는 명제에 목을 매다 보니 세금 깎아주겠다고 선심쓰고, 법치주의를 내세우면서 기업인들은 줄줄이 사면복권해 주고, 환율 유지를 위해 물가를 포기해 주변국과 마찰을 빚고, 서민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것만 남는다. 이러한 것들이 잘 풀리면 경제활성화로 이어진다는 것은 옛날 이야기인데도 말이다. 장 교수는 대안으로 금융·정보기술산업 같은 허상을 좇기보다 제조업에 더 충실해야 하고, 더불어 증세를 통한 보편적 복지정책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뿌리부터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른 누구보다 청와대가 열심히 읽어야 할 책으로 보인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공연리뷰]두가지 버전의 셰익스피어 ‘맥베스’

    [공연리뷰]두가지 버전의 셰익스피어 ‘맥베스’

    셰익스피어의 비극이 지금처럼 비극이란 이름을 달고 명작 대접을 받는 것은 낭만주의적 해석 덕분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철부지 어린 남녀가 근엄한 가문을 무시한 채 사랑이랍시고 날뛰면 어떤 결말에 이르는지 보여 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진실한 사랑 어쩌고저쩌고 하는 건 억울하단 소리밖에 안 된다. 한마디로 ‘자업자득’을 드러내는 교훈극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맥베스’도 마찬가지다. 운명과 죄의식 따위를 잔뜩 읊어대지만, 실패한 쿠데타의 변명에 불과할 수 있다. 권력의지란, 하나의 도시에 공수부대를 투입해 과감하게 ‘진압’해 버려도 죄의식 따윈 느끼지 않는 것이다. 29만원 가지고 살아도, 지역명사로 고향에 초대받아 박수를 받아도 하나도 거리낄 게 없도록 하는 것이 권력의지다. 맥베스가 7년 정도 왕좌를 차지했다면 지금쯤 거만한 표정으로 지난 세월을 회고하면서 “그 시대엔 어쩔 수 없었어.”라고 뻐기고 있을는지 모른다. 그런데 맥베스는 잡은 권력을 이내 빼앗겼다. 때문에 “사실 그러려고 그런게 아닌데 운명이 속삭였고, 마누라가 부추겼어.”라고 변명하는 것이리라. ‘맥베스’에 대한 발랄한 변주를 보여주는 두 작품이 공연되고 있다. ●‘내가 그랬다고’ 기묘한 음악도 매력적 누군가 그랬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하다 못해 벽에다 대고 욕이라도 하라고. 오는 31일까지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에 오르는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배요섭 연출, 공연창작집단 뛰다 제작)의 제목은 바로 그 대목을 지적한다. 권력자가 그랬다고 말하지 못하는 시대에 대한 우화다. 진한 어릿광대 분장으로 등장한 배우들은 맥베스가 던컨왕을 죽일 때까지의 과정과 맥베스가 왕좌를 차지한 뒤 미쳐 가는 과정을 몸동작으로, 가끔 단말마적인 비명만을 섞어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대신 권좌에 있는 맥베스가 권력을 어떻게 쓰는지, 권력의 작동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운명이나 부인 핑계를 대지만, 실은 자기 욕망에 들어맞는 말만 듣는 맥베스를 그린다. 기본적으로 광대놀이의 설정에다, 우리나라 독재정권의 추억들도 간간이 삽입되고, 무대 전환을 위한 암전 대목에도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아 웃음을 준다. 기타와 키보드 2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욤 프로젝트’의 기기묘묘한 음악도 좋다. 이 음악을 타고 배우들은 가끔 떠돌이 유랑악극단과도 같은 면모를 선보이는데 아주 매혹적이다. 창단 10년을 맞아 올해 강원도 화천군 신읍리 폐교가 있던 곳에 ‘화천공연예술텃밭’을 마련, 이주한 극단이 내놓은 첫 창작품이다. 서울보다 더 어려운 여건에서 훌륭한 연기와 작품을 선보인 극단에 박수를 보낸다. ●‘칼로 막베스’ 서울공연예술제 참가작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으로 29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칼로 막베스’(고선웅 연출, 극단 마방진 제작)는 발음나는 그대로다. 진짜 칼로 막 벤다. 무협액션극으로 변주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일단 시공간을 이동시켰다. 일본 영화 ‘배틀 로얄’의 설정과 비슷하게 범죄자들만 따로 수감해 둔 야생의 세계 ‘세렝게티 베이’가 무대다. 수감된 범죄자들은 자기네들끼리 편을 갈라 늘 칼부림을 해대는 야생의 생활을 이어간다. 배우들의 칼부림 액션신이 예상 이상으로 좋다. 편집이 없는 무대에서 합을 맞추기까지 들였을 노고와 땀이 빛난다. 곳곳에 숨어 있는 유쾌한 웃음 코드도 좋다. 아쉬운 점은 좋은 아이디어가 여러 곳에 포진했음에도 이를 더 발전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왕 발상을 달리한 작품이라면 제목처럼 원작을 시원스럽게 막 베어 버리면 좋겠는데, 그러질 못한다. 악질적 범죄자들의 소굴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더 우악스럽고 광포스러워도 될 법한데, 원작의 길고도 거창하고도 유려한 대사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번쩍이는 아이디어는 가끔 수면 위로 나오려다 다시 잠복해 버리고, 극은 늘어진다. 권좌에 오른 뒤 악령에 눌려 괴로워하는 맥베스처럼, 공들여 새로운 시도를 해 놓고도 원작의 무게감에 눌려 괴로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칠레 구리산업의 두 얼굴

    칠레 경제뿐 아니라 굴곡 많은 현대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인 구리가 칠레 산호세 광산의 극적인 구조 드라마를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구리는 칠레에 매장량과 생산량 모두 세계 1위라는 ‘축복’도 안겨주었지만 1973년의 군부 쿠데타와 뒤이은 장기독재라는 ‘저주’도 함께 선사했다. 민주주의의 피를 먹고 자란 구리 산업은 이제 칠레 경제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 칠레 전체 수출액은 22억 2900만 달러. 이 가운데 광산물 비중이 6억 4000만 달러나 되고 그 중 절반 가량을 구리가 차지한다. 정부가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칠레구리공사는 2006년 기준 정부 재정수입의 15%를 책임졌다. ‘학살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16년간 악명 높은 독재자로 군림했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1973년 쿠데타를 일으켰던 배경에도 구리산업이 자리잡고 있었다. 1970년 세계 최초로 국민투표에 따른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시킨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극심한 빈부격차 해소와 외국계 기업으로 인한 국부유출 폐해를 막기 위해 미국계 광산회사 아나콘다가 소유한 세계 최대 노천 구리광산인 추키카마타를 국유화시켰다. 미국 정부는 아옌데 행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국제 구리값을 폭락시키며 칠레 경제 공황을 유도했다. 이마저도 실패하자 마침내 군부쿠데타를 사주했다. 결국 아옌데 대통령은 대통령궁에서 직접 총을 들고 쿠데타군과 싸우다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국영 칠레구리공사를 설립한 것은 1976년 피노체트 정권이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번 사고를 계기로 칠레에선 민간광산을 폐기하거나 국유화하자는 주장과 민간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늘리자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구조현장에 설치한 ‘희망캠프’ 유지비를 빼고도 최소 2200만 달러에 이르는 구조비용만 해도 산호세 광산을 소유한 민간업체 산에스테반 혼자선 감당하지 못해 정부에 손을 벌려야 했다. 2200만 달러 가운데 75% 가량인 1500만 달러는 칠레구리공사가 부담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데스크 시각] 창경궁 담장의 높이/김상연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창경궁 담장의 높이/김상연 정치부 차장

    162번 시내버스를 타고 창경궁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나는 궁의 담 높이에 절망한다. 아름답고 단아한 그 담장의 디자인은 외국인 누구라도 붙잡고 마구 자랑하고 싶지만, 안보적 측면에서 그 담의 키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어쩌자고 우리 선조들은 무인경비시스템도 없었던 시대에 왕궁의 담을 그토록 낮게 만들었을까. 무동 한번 서면 훌쩍 넘어갈 그 담의 높이는 문(文)의, 문에 의한, 문을 위한 나라 조선의 긴장도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조선의 백성들은 왕궁의 담을 감히 넘어올 만큼 성정이 사납지 않았을 테니 담장을 높게 쌓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창경궁·덕수궁·경복궁의 담벼락에 익숙했기에 몇년 전 일본 교토(京都)에서 맞닥뜨린 어떤 궁의 담 높이는 내게 충격이었다. 궁을 두르고 있는 담의 키는 창경궁의 몇배나 됐고, 그것도 안심이 안 됐는지 담의 주위를 해자(垓子)가 휘감고 있었다. 담장이라기보다는 성벽이라고 불러야 마땅했다. 궁 안의 나무 복도를 걸을 때 삐걱삐걱 소리가 나기에 물어봤더니 잠잘 때 자객이 침입하는 것을 알아채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단다. 긴장 때문에 하루도 발 뻗고 잘 수 없었던 봉건국가가 일본이었다. 이 긴장도의 차이가 100여년 전 우리를 식민지로, 일본을 동아시아의 강자로 가른 근인(根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동양의 힘으로는 서양에 맞설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이 대낮처럼 훤히 드러났을 때 일본은 스스로를 개조할 힘이 있었다. 무(武)의 긴장 속에서 칼을 갖고 있었던 젊은 사무라이들은 ‘위로부터의 쿠데타’를 일으켜 일본을 신속하게 변신시켰다. 반면 칼을 천대했던 문약(文弱)한 조선은 이러저리 휘둘렸고, 아름다운 왕궁의 담장 안은 동물원으로 전락했다. 문(文)을 숭상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선조들의 DNA는 세월이 흐르고 국체(國體)가 바뀌고 강산이 몇번을 변해도 우리의 피 안에 면면히 흐르는가 보다. 나라를 지키는 군함이 적의 공격에 무참하게 두 동강 나 46명의 아들들이 불귀의 객이 된 이후 우리가 보여준 태도는 우리의 삼엄함이 창경궁의 담 높이에서 한 치도 자라지 않았음을 웅변한다. 무력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부를 것이란 이유로, 그리고 무력 이외의 방법이 더 효율적이라는 논리로 무력 응징을 제외한 응징들이 채택됐다. 그리고 사건 발생 6개월밖에 안 지난 지금 북한과 이제 그만 화해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어디선가 솔솔 들리기 시작한다. 가해자가 범행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는데 피해자가 먼저 그만 털고 가자는 것은 어떤 나라, 어떤 국민들한테서도 찾아보기 힘든 우리만의 ‘이상한’ 정서다. 이런 특유의 정서에 대한 분석은 구구하지만, “잃는 게 두려워서”라는 게 가장 솔직한 이유인 것 같다. 휴전선이 시끄러워지면 주가가 떨어지고 아파트값이 떨어지고 군에 보낸 아들의 안위가 걱정되는 것이다. 미국 군함이 자기네 바다에서 멕시코 잠수정의 어뢰공격에 침몰했을 경우 미국이라면 우리처럼 했을까. 영국의 함정이 프랑스 어뢰에 격침됐을 경우 영국이라면 우리처럼 했을까. 정부는 여전히 북한의 천안함 사건 사과를 남북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고수하고 있지만 여론이 이른바 ‘출구전략’ 쪽으로 기운다면 선거로 뽑힌 정부는 당해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평화’나 ‘화해’ 같은 말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나약함을 감추는 교언(巧言)으로 이용되면 그것처럼 추악한 단어도 없다. 이런 우리한테 정말 두려운 시나리오는 북한이 또 도발하는 것이다. 그때는 우리가 한번 더 참겠다고 할 명분도 없을 테고, 그렇다고 응전할 자신도 없을 텐데 어떻게 할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래도 이런 ‘굴신(屈身)의 처세’ 덕분에 약소한 우리 민족이 스러지지 않고 반만년 동안 생명을 부지해온 것이라고 누군가 강변한다면 할 말이 없다. 162번 버스는 오늘도 창경궁을 스치고, 창경궁 담벼락엔 가을빛이 완연하다.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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