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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구 “문제의원 퇴출기준 완화 입법”

    이한구 “문제의원 퇴출기준 완화 입법”

    이석기·김재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당선자의 제명 추진안이 개원을 앞둔 19대 국회의 최대 현안으로 등장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제명안을 놓고 정면 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제 의원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징계는 물론 허점이 드러난 문제 의원 퇴출 기준을 보완하는 입법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통합진보당이 이·김 당선자 출당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비례대표 경선에서 결정적 부정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야권이 제명 조치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중적 태도”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새누리당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종북(從北) 논란이 제기되는 당선자의 국회 입성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에 제명안 논의를 공식 제안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우편향 사상도 검증 대상에 넣는다면 헌정질서를 파괴한 쿠데타를 높이 찬양한 박근혜 의원도 제명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박용진 대변인은 “논의를 정말로 하려면 이미 탈당한 문대성, 김형태 당선자도 처리할 수 있고 같은 이유로 사퇴를 요구받는 정우택, 염동열, 신경림, 유재중 당선자도 함께 논의 대상에 올린다면 정치적 의도를 인정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합진보당 강기갑 혁신비대위원장도 “새누리당의 제명 추진은 국민적 지탄을 틈탄 초법적 발상”이라고 반발했다. 한편 통진당은 검찰의 당원명부 압수수색을 ‘불법 기획 탄압’으로 규정하며 서울 중앙지법에 준항고를 제출했다. 통진당 정치검찰 진보탄압대책위원회도 헌법소원 제기를 위한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 준항고는 검사나 사법경찰관의 구금·압수 또는 압수물 처분에 이의가 있을 경우 관할 법원에 그 처분의 취소나 변경을 청구하는 제도다. 법원이 준항고를 받아들이면 검찰은 당원명부 서버를 반환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영장 청구에 대한 법원의 결정은 준항고 대상이 아니라는 게 대법원 판례”라면서 “서버의 외부 반출은 통진당에서 협조를 거부해 정당하게 영장에 의해서 가져온 것”이라고 반박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2) 단종과 세조

    [선택! 역사를 갈랐다] (12) 단종과 세조

    단종 원년(1453) 10월, 수양대군은 야음을 틈타 세종 이래의 명신들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했다. 그날 밤의 일을 ‘세조실록’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김종서 부자(父子)·황보인·이양·조극관·민신·윤처공·조번·이명민·원구 등을 모두 저자에 효수(梟首)하니, 길 가는 사람들이 통쾌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어 그 죄를 헤아려서 기왓돌로 때리는 자까지 있었고, 여러 사(司)의 비복(婢僕)들이 또한 김종서의 머리를 향해 욕하고, 환시(宦寺)들은 김연(金衍)을 발로 차고 그 머리를 짓이겼다.” ●정난(靖難)? 김종서(宗瑞), 세종이 문종과 단종을 부탁했을 정도로 신임했고, 조선의 원칙과 상식을 구현하여 호(號)조차 절재(節齋)였던 인물이다. 나머지 모두 아까운 인물들. 과연 민심이 ‘세조실록’에서 말한 것처럼 그러했을까? 수양대군과 그 세력들은 이 일을 정난, 즉 나라의 혼란을 바로잡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소중한 인재들을 죽인 재난, 즉 사화라고 불렀다. 조선후기 역사서인 ‘아아록’(我我錄)이 대표적이다. 당시는 왕조시대였다. 수양대군이 세조가 되면서, 세조의 후손이 왕위를 이었으니 세조가 찬탈했다고 할 수 없었다. 세조가 찬탈한 것이면 후대 임금의 정통성도 무너지고 왕조의 운명이 달려 있으니까. ●승자의 역사? 이래서 첫 번째 역사왜곡이 생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런 왜곡의 내면화이다. 한데 이러한 역사사실을 접하면서 사람들은 흔히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는 말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역사는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되게 마련이고, 따라서 승자의 관점에서 왜곡되게 마련이라고. 역사에 대한 가장 소박한 형태의 냉소(笑). 이런 견해는 일부에 대한 진실로 전체를 덮어버리는 지적(知的) 게으름의 온상이 된다. 역사나 인생이 승패로 점철되는 경우는 일부이고, 승패가 있더라도 그 상황을 보고 듣는 이는 승자만이 아니다. 패자도 보고, 승패와 관련 없는 사람도 본다.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사이비(似而非) 역사인식은 내려놓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면 모르거니와,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고? 그런 거 없다! 수양대군은 정적들을 살해하고 정권을 잡은 뒤 영의정부사(영의정), 판이병조사(이조판서, 병조판서)를 겸임했다. 백관(百官)에 대한 통솔권을 비롯하여 문관, 무관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한 것이었다. 이런 권력 집중은 왕실의 종친이 조정의 관직을 갖지 못하게 했던 법례를 깨뜨린 일이기도 했다. 대체로 태종대를 지나면서 국왕의 사적 네트워크가 공적 정치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법규로 정착되었다. 종친은 종친부(宗親府)에 속하게 하여 녹봉과 명목상의 관직을 주어 넉넉한 생활은 보장하되,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수양대군에 의해 깨졌던 이 규정은 ‘경국대전’에서 다시 살아나, 국왕의 적실은 4대, 서실은 3대가 지나야만 관직 진출을 허용하였다. ●나이가 어려서? 학계의 평가는 수양대군, 세종의 둘째 아들이자 단종의 숙부로 나중에 세조가 되는 그가 단종에게서 왕위를 빼앗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는 듯하다. 그러나 세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는 면이 보인다. 일부는 세조대의 업적, 예를 들면 북방 개척, ‘경국대전’의 완성과 같은 문화 발전을 들어 세조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을 갖기도 한다. 세조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찬탈 정권(쿠데타 정권)이며 세조시대의 정치 운영이 반(反)유가적이었고, 동시에 공신(功臣) 중심의 권력구조로 되어 있었다고 본다. 세조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국왕의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그것이 정권이양의 명분이 될 수 없다는 점과 세조가 당시 보편적 이념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유가적 정치 질서에 어긋나는 공신 중심의 정치를 펼쳤다고 평가한다. 문화적 성과라는 것도 이미 세종조에 심어진 열매를 거두었을 뿐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왕조란 어떤 집안이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 제도이다. 출생에 의해 왕위에 오를 자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 왕위를 내놓아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단종은 12살에 왕위에 올랐고 세조의 손자인 성종은 13살에 왕위에 올랐다. 다시 말하면 왕조에서 왕위에 오르는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왕의 나이가 정통성에 흠이 될 수 없는 것은 보통선거제로 뽑히는 대통령의 득표율이 정통성에 흠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수양대군이 단종의 어린 나이를 선위의 명분으로 내세우고자 했다면 문종이 승하한 후에 바로 문제로 삼았어야 했다. 세조 때 편찬한 ‘단종실록’에는, 국왕이 어린 탓에 의정부의 권한이 강해져서, 관리를 임명하는 데도 의정부에서 김종서 등이 해당 인물에 노란 표를 하여 건의하면 단종이 낙점했다고 하여 당시에도 ‘황표정사’(黃標政事)라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선양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정치운영을 바로잡아야 할 일이지, 정통성에 흠이 되는 사안은 아니다. 선위의 이유로 내세웠던 나라에 변고가 많다는 것도 국왕이 적극적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그 때문에 왕위를 내놓아야 할 일은 아니다.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넘겨준 일을 ‘세조실록’에서는 ‘선위’라고 적었지만, 세조가 빼앗았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산군일기와 단종실록 세조 2년 상왕(上王) 복위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민심의 반영이었다. 성삼문을 비롯해서 상왕, 즉 왕위에서 밀려난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이 일은 김질의 밀고로 발각되었고,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단종은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등되었고, 이듬해인 세조 3년 영월 귀양지에서 살해되었다. 영월 청령포는 평창강이 굽어 돌아나가며 삼면이 물길이고 뒤는 산으로 막혀 있는 지형이다. 어떻게 여기 이런 땅이 있는 줄 알고 단종을 유배 보냈을까. 건국 이후 조선 정부는 전국적 통치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각도의 지리지를 편찬하기 시작했다. 이때의 지리서는 지형, 특산, 인물 등 정보를 수록한 인문지리서에 해당된다. 세종대에는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세종실록’에 수록되어 있어서 ‘세종실록지리지’라고도 부른다-가 편찬되었고, 성종대에는 ‘팔도지리지’가 부족하였던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편찬하기에 이른다. 단종이 유배되던 때가 세조 2년이니까 각도 지리지의 편찬을 통하여 전국의 지역적 특성과 지형을 중앙 조정에서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므로 척박한 외지를 단종의 귀양지로 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종은 아들인 수양대군이 손자인 단종을 유배 보내는 데 그 지리지가 이용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사람이 하는 일이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잠깐 상식 하나 추가한다. 조선시대 왕대별로 역사를 편찬하고 이를 실록이라고 불렀는데, 단종시대의 실록은 오래도록 실록이 아닌 일기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었다. 실록은 정통성을 확보한 왕의 시대를 기록한 역사서라는 상징성과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조선시대 폐위된 세 임금 시대의 실록에 해당하는 기록은 각각, ‘노산군일기’, ‘연산군일기’, ‘광해군일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지금도 ‘연산군일기’와 ‘광해군일기’는 여전히 그대로 부르고 있다. 다만 ‘노산군일기’는 242년 뒤인 숙종 때 ‘단종실록’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집현전은 사라지고 집현전은 세종 때 설립되어 쟁쟁한 인재를 길러내고 한글, 의학, 출판, 농업기술 등 조선의 미래를 설계하고 정책을 실천에 옮겼던 기관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고려 말부터 시작한 문치주의 운동의 결산이기도 하다. 집현전이 설립되던 세종 2년은 부왕 태종이 병권을 유지한 채 세종에게 왕위를 넘겨준 시기였던 데서 알 수 있듯이, 집현전 자체의 역사에서 태종의 역할 또한 빼놓을 수 없었다. 세조 2년 일어난 단종 복위 운동의 중심이 바로 집현전이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무력에 의한 찬탈은 세종시대를 부정하는 것이었고, 세종시대의 중심에 집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조의 찬탈에 동조했던 신숙주, 정인지, 권람 등과 찬탈을 비판했던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등으로 집현전 학사들은 선택을 달리하게 된다. 정인지, 신숙주는 이미 고관대작이 되어 있었다. 박팽년이 단종이 양위할 때 자결하려 하자 성삼문이 말렸다. 결국, 수양대군에게 붙었던 일부 집현전 학사를 제외한 인재들 대부분 계유사화와 단종 복위 운동의 와중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조선 문명으로서는 첫 번째 손실이었다. 그러나 정작 원기(元氣)의 손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동시에 그 사화를 잊지 않는 조선 사람들의 줄기찬 역사바로세우기도 시작되었다. 공론(公論)의 이름으로! 오항녕(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 北 개혁·개방 압박… ‘한국 6대 전략 광물’ 개발 협력 탄력

    이명박 대통령의 전격적인 미얀마 방문은 두 가지 목적을 지닌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적으로는 미얀마와의 자원 개발 협력 강화, 외교 안보적으로는 북한의 개혁·개방 촉진이다. 미얀마는 62년간 영국과 일본의 식민지로 있다가 1948년에 독립했지만 1962년 발생한 군부 쿠데타 이후 군사 독재 체제를 유지해 왔다. 1988년 8월 8일엔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대규모 유혈 사태도 겪었다. 그러다 지난해 테인 세인 대통령이 민간 정부를 출범시킨 뒤 민주적인 선거를 실시하고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북한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국제사회의 제재 완화 조치가 추진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미얀마를 방문한 데 이어 캐나다와 유럽연합(EU), 호주도 제재 완화를 약속했고 일본도 대규모 부채 탕감 조치에 나섰다. 국제사회의 이 같은 유화적인 조치는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2010년 11월 21년간의 가택연금에서 해제된 것을 기점으로 민주화와 개혁·개방 조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과 맞물려 있다. 미얀마는 지난달 1일에 실시된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했지만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였고 최근에는 정치범을 대규모로 석방하고 있다. 북한과 달리 개혁·개방의 길을 선택한 중국과 베트남의 모델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체제 속에서도 여전히 폐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에는 ‘닮은 꼴’이었던 미얀마의 급격한 변신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이번 방문이 결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통일정책 최고위과정 특강에서 민주화 바람이 아프리카를 넘어서서 미얀마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며 테인 세인 대통령과의 일화도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2009년 6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제주에서 할 때 총리 자격으로 방한한 테인 세인 대통령에게 ‘민주화를 하지 않고는 미얀마는 경제 발전을 하기 어렵다. 총리께서 미얀마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국도 경제 협력을 할 수 있다’고 했다.”고 소개하고 “당시 조금 불쾌한 듯 서먹서먹하게 갔는데 이후 지난해 (11월) 발리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다시 만났을 때 테인 세인 대통령이 ‘우리가 민주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계속 노력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미얀마와의 경제 협력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는 석유, 천연가스, 납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자원 부국이다. 한국이 6대 전략 광물로 분류한 유연탄, 우라늄, 구리, 철, 니켈, 아연도 다량 보유하고 있다. 인구가 6240만명으로 노동력도 풍부하고 문맹률이 3~4%로 낮아 기술력이나 국민성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얀마에는 현재 170여개의 한국 기업이 활동 중이며 지난해 기준 양국 간 교역 규모도 9억 7000만 달러로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정치 안정을 찾고 있는 미얀마에 우리나라의 경제 개발 경험까지 합쳐진다면 경제 발전에 급속히 탄력이 붙고 우리나라로서도 ‘자원 외교’를 통한 또 다른 돌파구를 찾게 되는 ‘윈윈’ 효과가 기대된다. 네피도(미얀마)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친노 미운 오리새끼서 진보개혁 선봉… 유시민 다시 뜬다

    친노 미운 오리새끼서 진보개혁 선봉… 유시민 다시 뜬다

    통합진보당 당권파 내에서는 국민참여당 유시민 전 공동대표와 손을 잡은 게 결정적 패착이었다는 자성이 흘러 나온다. 유 전 대표를 얕잡아 보다 정파의 정치적 몰락까지 초래하고 말았다는 뒤늦은 후회도 있다. 당권파는 당초 국민참여당계 경선 후보의 부정선거 의혹이 당권파 비례대표 후보로 불똥이 튄 데 대해서도 ‘유시민의 기획 쿠데타’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지난해 12월 통합진보당 창당으로 통합 주체들의 지분 배정에 따라 2대 주주였던 유시민 공동대표는 창당 5개월 만인 14일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유 전 대표는 통진당의 총선비례 대표 부정선거를 통해 주목받는 ‘정치인’으로 재부각되고 있다. 진보 진영의 아이콘이었던 이정희 전 공동대표가 비례대표 경선 부정과 당권파 폭력 사태로 인해 정치적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유 전 대표는 이날 당권파를 작심하고 공격했다. 그는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의 권력을 쥐고 있던 분들이 대선 후보든 당 대표든 하고 싶다면 같이 해 주겠다는 의사를 수차례 전해 왔었다.”고 폭로했다. 이어 “서로 변하기로 약속하고 통합을 해서 합법적이고 대중적인 정당으로 가기로 합의했지만 그분들을 지켜본 결과 이분들과 힘을 합쳐 파당을 짓게 되면 큰일 나겠다고 생각해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당권파의 실세이자 당권거래설의 당사자로 지목된 이석기 비례대표 당선자도 비판했다. 유 전 대표는 “단순히 정치적인 욕심이든 이권이든 뭐든 있는 것 같다.”며 “어떤 일이 있어도 당권은 못 놓겠다, 또 어떤 일이 있어도 이석기 당선자는 꼭 국회에 보내야 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의 의사결정기관의 결정을 다 막아야 된다,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될 때까지는. 이렇게 판단하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유 전 대표는 한때 미운 오리새끼였다. 2003년 열린우리당 분당 때 민주당 당권파로부터 분열주의자로 낙인찍혔고 친노 진영의 분열이라는 비판 속에 지난해 1월 국민참여당을 창당했다. 그가 정계 입문 후 갈아탄 당적도 개혁국민당-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무소속-국민참여당에 이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분열주의자 이미지가 강해 민주당 등 기성 야권의 비토가 적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을에서 치러진 지난해 4·27 보궐선거에서 자신이 지원한 국민참여당 소속 야권 단일 후보가 패배했고, 앞서 2010년에는 야권 단일 후보가 되고도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떨어졌다. 적어도 대선후보군에서는 멀어졌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그런 그가 강성 운동권 세력이 득세해 온 ‘호랑이 굴’을 쇄신하는 모습으로 정치적 재기를 이뤘다는 평가이다. 머릿수만 앞세우며 패권주의라는 자가당착에 빠진 당권파가 유 전 대표를 얕본 게 자충수라는 지적도 있다. 유 전 대표 역시 경기동부연합의 자주파(NL) 운동권 못지않은 강성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는 ‘인물과 사상’에서 정치인 유시민에 대해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스트”라고 규정한 바 있다. 자신의 ‘개혁 열망’을 잣대로 ‘속도’의 문제를 ‘본질’의 문제로 탈바꿈시켜 낙인 정치와 선동 정치를 구사한다고 평가했었다. 유 전 대표 스스로도 이정희 전 공동대표와의 대담집인 ‘미래의 진보’에서 “이정희보다 훨씬 마키아벨리적인 사람”이라고 자평한 바 있다.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를 진보적 자유주의자이자 대중 정치를 지향하는 ‘정치인 유시민’이 정파 프레임에 갇힌 ‘무능’한 NL 운동권을 쳐낸 ‘정치적 사화’로 보는 분석은 그래서 나온다. 통진당은 민노당 자주파와 국민참여당(유시민), 민중민주(PD)계의 진보신당 탈당파(심상정·노회찬)가 55대30대15의 지분으로 한 살림을 꾸린 정치적 연합체다. 정치 철학과 문화가 다른 세 정파는 4·11 총선을 통한 세력 확장이라는 정치적 실리가 유일한 결합 명분이었다. 통진당 사태의 이면에 담긴 최대의 아이러니는 유 전 대표와 연합해 당권파 숙청에 나선 심상정 전 공동대표가 당초 유 전 대표와의 통합을 강력하게 반대했던 인물이라는 점, 그리고 참여당과의 통합을 강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원했던 세력이 다름아닌 지금의 당권파였다는 점이다. 유·심 두 전 공동대표는 1959년생 동갑내기이자 서울대 78학번 동기다. 정통 PD로 NL에 대한 이해가 깊은 심 전 대표는 유 전 대표가 NL 당권파와 절대 공존할 수 없다는 점을 예견하고 있었다. ‘유시민과 당권파의 전쟁’은 어느 한쪽의 백기 투항이나 당이 쪼개지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기고] 미얀마의 개혁과 북한의 선택/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기고] 미얀마의 개혁과 북한의 선택/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독재국가로 고립되었던 미얀마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중동의 민주화가 미얀마에도 영향을 주는 듯하다. 미얀마는 1962년 군사 쿠데타 이후 수십년 동안 독재체제를 유지해 왔지만 결국 개혁의 길을 선택했다. 지난해 3월 민간정부를 출범시킨 테인 세인 대통령은 영웅이 되었고,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이 처음으로 미얀마를 방문했다. 미얀마에 그동안 갈망하던 ‘새로운 정치와 역사’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지난 4월 1일 보궐선거가 민주적으로 진행된 이후 압승을 거둔 야당 ‘국민민주주의연맹’(NLD)의 지도자이자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역할에 여러 나라의 관심이 뜨겁다. 이미 유럽연합(EU)은 올해 초 미얀마의 개혁 조치들을 높게 평가했으며 각료들에 대한 비자발급 금지 조치를 해제하는 등 제재를 일부 완화했다. 미국도 미얀마에 대한 제재 완화에 동참했고, 일본이 수천억엔 규모 부채를 탕감해 주기로 했으며, 중국·인도 등도 적극적으로 경제지원에 나서고 있다. 북한의 혈맹국인 중국은 1970년대 말 ‘시장중심적’ 개혁·개방을 통해 30년이 넘은 현재 주요 2개국(G2)의 반열로 들어섰다. 또 1970년대 중반 사회주의 통일 이후 낙후된 사회주의 경제체제와 빈곤에서 신음하던 베트남 역시 1980년대 후반 ‘국가중심적’ 개혁·개방을 통해 성공적으로 경제발전을 달성하고 있다. 이렇게 주변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들은 물론 미얀마도 국제사회의 요구를 수용해 고립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가발전의 장을 열었다. 하지만, 북한은 어떠한가.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3대 세습체제의 절대권력 공고화에 주력하면서 북한주민은 만성적인 식량난에 고통을 받고 있다. 또 소수 핵심 특권계층의 충성심 속에 대규모 정치범수용소가 현존하는 최악의 인권 탄압을 지속하고 있다. 더욱이 북한은 몰락해 가는 사회주의 체제 고수를 위해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안보를 위협하는 핵보유국을 자처하고 김정은은 불안정한 정권 유지에 급급하고 있다. 김정은이 지난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년을 맞는 태양절 행사를 통한 당·정·군 장악에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시장중심적이나 국가중심적 개혁·개방 정책 없이 북한의 ‘강성대국’ 건설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패 이후 가해진 유엔 안보리 강경 제재의 국제사회 압박과 달리 유화적 대북 메시지를 보냈다. 주요 핵심은 북한의 변화와 그런 변화를 우리 정부는 수용할 수 있고 지지 및 지원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얀마처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 또는 개방을 선택한다면, 국제사회도 북한에 가해진 제재를 완화하고 각종 지원을 할 것이다. 북한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추대된 김정은은 스스로 국제적 고립을 자처하지 말고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 군비 경쟁과 추가도발을 하루속히 포기해야 한다. 동시에 북한은 연일 계속되고 있는 적반하장의 대남 도발 협박을 중단해야 한다. 벼랑 끝에 선 북한 권력층이 정권을 유지하고 경제 파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중국, 베트남과 최근 미얀마처럼 개혁·개방을 단행하고 국제사회와 대화와 협력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 [데스크 시각] 진보의 허기(虛飢)/진경호 정치부장

    [데스크 시각] 진보의 허기(虛飢)/진경호 정치부장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 사태의 중심에 선 이석기 비례대표 당선자의 이런저런 말 가운데 눈에 띈 단어는 미안하지만 ‘라면과 김밥’이다. 최근 한겨레와의 통절(?)한 인터뷰에서 그는 “라면, 김밥 먹으면서 지난 10년간 하루 18시간씩 일했다.”고 했다. 통합진보당 NL(민족해방) 그룹의 핵심이라는 그는 광고기획사 CNP전략그룹을 운영하면서 그렇게 불철주야 진보진영의 선거에 헌신했노라 말했다. “운동권과 거래해서 돈 번 데는 없다.”고 했다. 그가 지난달 19대 국회 총선에 출마하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재산액은 7억 6128만원이다. 19대 총선 당선자 300명의 평균 재산신고액 20억 4863만원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러나 지난해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자산 2억 9765만원과 비교하면 2배가 넘는다. 그런 그가 라면과 김밥을 먹었다면, 재산이 그의 절반도 안 되는 국민 대다수는 라면과 김밥 중 하나는 포기했어야 할 법하다. 많다면 많은 재산이건만, 그는 그렇게 배고파했다. 이석기의 정치적 허기(虛飢)는 사실 그만의 것이 아닐 듯하다. 단 한 번도 정권을 잡아보지 못한 좌파진영 모두의 것일지 모른다. 1970년대 유신독재와 1980년대 신군부 정권에 맞서 싸우며 감옥에서 청춘을 보냈다. 1990년대엔 자본권력에 맞서 싸우느라 아스팔트를 헤맸다. 그런 희생 위에서 ‘민주노동당’이라는 간판으로 제도권 정치의 한 귀퉁이에 조그만 좌판을 폈고, 10년이 지난 지금 4·11 총선에서 13석을 확보하며 마침내 차기 정권의 한쪽을 거머쥘 티켓을 손에 넣었다. 김영삼은 군사정권 세력과 손잡았고, 김대중은 5·16 쿠데타의 주역 김종필과 손잡았고, 노무현은 이 나라 대표재벌 정몽준과 손잡았다. ‘적과의 동침’으로 점철된 그런 정권 쟁투사와 비교하면 정책과 이념을 고리로 한 민주통합당과의 연대는 정치사적으로도 얼마나 멋진가. 우리는 누구보다 당당하고 자랑스럽다. 풍찬노숙을 이겨내고 마침내 잘 차려진 밥상 앞에 앉은 지금, 민주당과의 공동정부 구성이 눈앞에 어른대는 지금, 그 허기는 그래서 칼에 베인 듯 더 아리다. 이 고비만 넘기면, 이 고비만 넘기면…. 대망의 정권 교체와 공동정부 구성이라는 ‘대의’ 앞에서 지금 불거진 경선 부정 논란은, 이렇게 커져서는 안 될 작은 에피소드다. 유시민 같은 진보 아류들이 만든 덫이고, 보수 세력의 마녀사냥이다. 지금까지 그랬듯, 이겨내야 한다. 이정희와 이석기, 그리고 통합진보당 당권파로 불리는 수만명은 그래서 지금의 경선 부정 논란이 억울한지 모른다. 그러나 이 ‘수만명’을 바라보는 이 시대, 이 땅의 나머지 수천만은 이런 억울한 그들이 안타깝다. 군사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안으로는 ‘까라면 까’라는 군사문화를 답습했던 그들, 민주를 외치면서 정작 자신들은 목적 앞에서 수단을 정당화했던 그들, 그런 30년 전 학생 운동권의 악폐를 지금껏 떨치지 못한, 오늘의 안타까운 그들. 이들이 딱한 건 장삼이사만이 아니었을까. 진보진영의 어른들이 보다 못한 듯 나섰다. 서울대 백낙청 교수 등 ‘희망2013 승리2012 원탁회의’ 멤버들은 9일 성명을 내고 “진보당의 폐습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꾸짖었다. 그러면서 재창당 수준의 갱신을 촉구했다. 한데 다음 말, 귀가 번쩍 뜨인다. “진보개혁세력 연대를 재구성해야 한다. 아직 정당구조에 포섭되지 않은 안철수 지지세력까지 끌어안아야 한다.” 진보당에 든 회초리는 시늉이고, 하고픈 말은 ‘어서 안철수를 잡아라’인가. 정녕 그런가. 많은 국민들이 진보당에 의해 난도질당한 민주적 절차의 시신(屍身) 앞에서 가슴을 떨고 있는데, 진보의 어른들은 안철수, 대타(代打)를 말하는가. 그게 진보(progress)인가. 진보당의 민주주의 훼손을 연말 대선 공식에 끼워넣어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게 시대를 앞서가는 것인가. 정치적 굶주림으로 따지면 이정희, 이석기, 당권파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어떤 부모도 아이의 잘못 앞에서 이렇게 꾸짖지는 않는다. jade@seoul.co.kr
  • 도마 오른 진보 ‘진성당원제’ 경기동부연합 기득권 도구?

    비례대표 부정선거 논란 속에 통합진보당의 ‘진성당원제’가 도마에 올랐다. 당권파는 지난 4~5일 전국운영위원회의 권고안이었던 ‘대표단 총사퇴, 순위 경쟁 명부 비례대표 당선자 및 후보 전원(14명) 사퇴,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을 모두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당권파 측은 “운영위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 당원 투표로 선출된 비례대표가 사퇴하는 것은 진성당원제에 대한 정치적 쿠데타”라고 비판했다. 진성당원은 정기적으로 당비를 내는 당원으로 국고보조금 등 재정의 외부 의존율을 낮추고 책임 있는 당원들의 투표권을 보장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당 안팎에서는 이런 진성당원제가 당권파의 조직 기반인 경기동부연합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유시민 공동대표 등 비당권파는 이번 비례대표 선거 과정에서 투표자 수와 선거인단 수가 일치하지 않고 심지어 투표한 것으로 집계된 당원이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나온 조사 결과와 관련해 이른바 ‘유령 당원’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며 당원 명부를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진성당원제에 대한 전면적인 검증을 요구한 것이다. 유 대표는 7일 국회 대표단 회의에서 “비례대표 경선이 이뤄지고 당원 총투표의 근간이 됐던 당원 명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당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던 이석기 국회의원 비례대표 당선자는 온라인 투표(1만 183표)와 현장 투표(1052표)에서 1만 1235표를 받아 27.58%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4분의1이 넘는 당원이 후보 14명 가운데 이 당선자를 지지한 것이다. 이는 당권파 ‘실세’를 지지하는 경기동부연합 7000표, 광주·전남연합 4000표를 더한 수치와 거의 일치한다는 게 당 안팎의 해석이다. 복수의 관계자는 “결국 특정 정파의 진성당원 몰표로 비례대표 경선을 승리로 이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를 놓고 국민은 안중에 없고 각 정파 간 당원 머릿수 싸움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통합진보당의 진성당원은 7만~8만명으로 추산된다. 최소 당비 5000원을 한 번만 내면 당권을 획득할 수 있다. 과거에는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당비를 낸 사람들만 진성당원이 됐으나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가 합치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공직 선거를 앞두고 자신들의 지지자를 늘리기 위해 당비를 대납해 주고 당원으로 가입시켜 득표율을 높이는 편법이 횡행했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당비 대납은 정당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정당법에 근거한 통합진보당 당헌에는 당비 대납시 1년간 당원 자격을 정지하고 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열린세상] 위기의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체제/이문기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

    [열린세상] 위기의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체제/이문기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

    위기의 중국 공산당은 어디로 갈까. 보시라이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는데, 중국 공산당은 쉽사리 문제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다. 외신은 연일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당 중앙이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보시라이 부인의 영국인 사업가 살인혐의 외에도 당 지도부 통화내역 감청, 부정부패로 축적한 1조 2000억원 규모 재산의 해외 은닉, 쿠데타 시도설, 100명의 여성과 염문설 등등. 4월 30일 관영 신화사는 보도를 통해 보시라이 스캔들 관련 외신 보도는 터무니없는 소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사람들은 외신보도를 더 신뢰하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보시라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은 외신이 먼저 터뜨리고, 얼마 후에 중국 정부가 인정하는 양상이었다. 중국 정부의 정보통제력은 상실되었고, 중국 공산당은 국내외적으로 조롱거리가 되는 신뢰의 위기에 직면했다. 사실 중국 최고지도부의 부패혐의 숙청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 장쩌민 시대에는 천시퉁 베이징시 당서기와 양바이빙 중앙군사위 비서가 숙청되었고, 후진타오 시기에는 천량위 상하이시 당서기가 숙청되었다. 이들 역시 정치적 비중에서 보시라이에 뒤지지 않는 거물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보시라이 사건은 그때와 전혀 다른 양상이다.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에 대량의 내부정보를 유출했기 때문에 중국 정부의 정보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보시라이가 ‘충칭 모델’이라는 친서민 정책을 통해 대중적 스타 정치인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으로서는 보시라이의 신병처리 자체가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요구되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이미 알려진 범죄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 보시라이는 사형이 불가피한데, 그럴 경우 그의 대중적 인기 때문에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1989년 톈안먼 사건도 개혁적 지도자인 후야오방의 무리한 숙청이 발단이 되었다. 중국 사회에 누적된 다양한 불안 요인이 일거에 중앙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만으로 폭발하는 사태가 최악의 경우일 것이다. 그렇다고 적당히 봉합하고 넘어가기에는 이미 시기도 놓쳤고, 정보 통제도 안 되는 상황이다. 어쩌면 보시라이 사건에 대한 정보를 상당 정도 확보한 미국의 물밑 협조 여부가 사태해결의 관건일 수도 있다. 내부문제 해결에 미국의 협조를 얻어야 하는 상황은 중국의 위신과 국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보시라이 사건의 마무리 과정은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일각에서는 가을에 열릴 18차 당대회 연기 가능성까지 거론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올가을에 출범하는 시진핑 체제가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가이다. 민심을 달래고 정치적 동요를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가 나올 수 있지만, 역시 근본적인 해법은 투명하고 민주적인 정치체제 개혁이라 할 수 있다. 지난 3월 15일 전국인민대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원자바오 총리가 보시라이 문책을 시사하면서 강조했던 것도 바로 정치개혁의 중요성이었다. 보시라이 사건을 정치개혁 추진의 동력으로 삼아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만 있다면, 시진핑 체제의 통치 정당성은 오히려 더 단단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시진핑 체제가 그 정도 수준의 정치개혁을 단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치개혁에 대한 구체적 비전과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중국 지도부가 제시한 정치개혁의 방향은 서구식 다원주의와 극좌적 회귀를 배격한다는 원칙하에 ‘중국식 사회주의 민주’를 실현한다는 것인데, 그 알맹이가 공허하기 그지없다. 일반적인 관측으로는 시진핑 집권 3년차 정도에 정치개혁 의제를 당의 공식방침으로 제기하고, 집권 2기에 본격적인 정치개혁이 단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최근 중국 공산당이 처한 급박한 위기상황을 이런 일정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올가을 출범하는 시진핑 체제는 시작부터 당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국면을 돌파해야 하는 험난한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 동양사상·건축의 신비?… 왜곡·연출로 덧입혀진 그 실체를 증명하다

    동양사상·건축의 신비?… 왜곡·연출로 덧입혀진 그 실체를 증명하다

    ‘나는 동양사상을 믿지 않는다’(김경일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사라진 건축의 그림자’(서현 지음, 효형출판 펴냄). 두 책을 덮고 나면 귀에서 환청이 들린다. “데끼놈!” 위대한 선조의 얼과 숨결이 담겨 있다고 누누이 배우고 가르쳐온 것들을 뒤집어 봐서다.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추상적인 신화 대신 구체적인 역사를 보자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쯤 된다. 그럼에도 마냥 불편하지만도 않은 것은 독자와 함께 호흡을 맞췄다는 점이다. ‘선수’들 사이에선 일부 알려진 내용이지만 독자와 함께 상상하고 추리해 보는 점이 매력 포인트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 같다고 하기엔 2% 부족하다. 살을 더 붙이자면 ‘동양고전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중화사상으로 인해 오염되고 뒤틀린 전통’이란 입장이다. ‘나는 동양사상을 믿지 않는다’의 저자 이름 ‘김경일’을 보면 아마 낯익다 싶을 독자도 있을 것이다. 환청이 들리는 게 무리만도 아닌 게, 1999년 ‘공자를 죽여야 나라가 산다’(바다출판사 펴냄)로 유림을 벌컥 뒤집어놨던 한국인 갑골문 박사 1호이자 상명대 중문과 교수다. 저자는 자신의 작업을 이렇게 비유한다. “클래식 복서에게 무에타이 발길질을 해댔다.” 동양고전이라 일컬어지는 경전을 중심으로, 그러니까 절제된 풋워크와 스윙을 통해 복싱이 폭력이 아닌 예술임을 주장하는 것이 기존의 연구라면, 자신의 연구는 피와 땀이 튀기는 원시적 폭력성을 고스란히 노출하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우아함은 잊으라는 거다. 저 언급에서 드러나듯, 책은 동료나 친구들에게 얘기를 건네듯 써놔 읽기에 어렵지 않다. 책을 펴면 일단 4장 ‘기상천외한 정치적 레토릭’부터 읽길 권한다. 동양문화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역사적 배경설명이어서다. 중국 고대 상(商)나라 왕의 계보는 무정-조경-조갑-형신-강정-부을-문무정으로 이어지는데, 저자는 건국초기 어정쩡한 타협을 타파하고 중앙집권적 왕권 강화에 목숨을 건 조갑의 쿠데타와 이에 대항해 부을 시대에 이뤄지는 무당과 연계된 기존 토속권력자들의 반동적 복고운동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이 부분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쉽게 풀어 쓴 것인데, 정치적 급변과 거기에 따른 사회문화적 변동을, 갑골문에서 ‘제’(帝)자를 어떻게,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지를 대들보 삼아 추적해 들어간다. 이렇게 고대 중국 사회에 대한 워밍업이 끝났다면 이제 처음으로 돌아와 동양문화의 뿌리, 공자를 만날 차례다. 저자는 복서가 아니라 무에타이 선수이기 때문에 이리저리 재보는 잽을 던지느니 바로 상대방의 숨통에다 킥을 날린다. 바로 온 천지사방 사람들이 찬탄해 마지않는 논어의 첫 구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다. 자기계발과 처세술을 다루는 온갖 책들뿐 아니라, 공자를 봉건제국의 이데올로그라고 손가락질해야 할 좌파들마저 ‘옛 동양고전 읽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소.’라며 고르는 책 가운데 하나가 논어다. 이유가 뭘까. 배우고 익히는 것을 이처럼 기꺼워하는 데다, 논어를 채우고 있는 수많은 좋은 말씀들 중에 배우고 익히는 것에 대한 얘기를 제일 앞에다 배치할 정도니 공자는 정말 성인답구나 하는 감탄이다. 저자는 피식 웃는다. 갑골문에 기반한 해석은 이렇다. “왕실 제사를 진행하는 궁궐에서 제례 절기에 따라 제반 절차를 실제로 실습하는 과정이, 그 얼마나 기쁜 일인가.” 춘추전국시대 때 묵가에서 유가 무리들을 일러 제사상을 쫓아다니며 단물만 빨아먹는 ‘상갓집의 개’라 부르며 경멸한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사실 후대 유학자를 괴롭힌 공자의 개인사 가운데 하나는 공자가 야합(野合)으로 태어났다는 점이다. 오늘날 정치권에서 비유적으로 쓰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들판에서 결합한 것이다. 제사를 그토록 강조한 공자건만, 야합의 결과물이었기에 정작 공자는 제사 지낼 아버지가 누군지 몰랐다. 많은 학자들은 원시난혼과 모계사회 풍습이 남아 있던 당시에 야합은 별스럽지 않은 일이라고 본다. 곤혹스러운 것은 공자가 밥 먹고 화장실 갈 때조차도 성인의 ‘포스’가 뿜어져 나온다고 굳게 믿은 후대 유학자들이었다. 말씀이야 해석을 달리해 분칠하면 그만이지만, 어느 날 밤 파티에서 만난 남자와 원나이트 스탠드를 즐긴 결과물이 공자라는 역사적 사실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공자 역시 이게 걸림돌이었다. 야합이 흔한 풍속이었다지만 그건 하층민 얘기고, 지배층은 그렇지 않았다. 출세욕이 강렬했던 공자는 지배계층의 문화를 깊이 연구해 그 속에 편입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 지배계층의 문화란 요즘 말로 ‘상위 1% 계층의 이너서클 파티’라 부를 수 있는 제사다. 공자가 어릴 적부터 제사놀이에 심취했었다는 얘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해서 학습(學習)이란 끝없는 배움의 열정이 아니라 권력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추파다. 나도 공부 많이 해서 잘 아는데 왜 안 끼워주느냐는 호소다. 저자가 공자와 노자의 철학을 비교하면서 노자는 “집요한 사색가”이지만 공자는 “사유라 이름짓기조차 초라”하다고 평하는 이유다. “혈족의 끈이 없었기에 당시 주류사회에서 벼슬을 할 수는 없었던” 사람, “파티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 그 파티 멤버로는 참가할 수 없는 사람”, “바로 파티에서 서빙하던 사람”, “당시 귀족들의 주류문화에 심취한 제례 마니아”,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제례 평론가”에 불과했던 사람, 그게 공자의 실체라는 것이다. 저자는 동양고전을 통해 “인간의 가치나 정신의 원류를 찾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 딴죽을 걸 생각은 없다.”고 한다. 저자가 겨냥하는 것은 중화사상이다. 그런 순수한 마음이 실은 “중국인들과 중화사상이 오랫동안 만들어낸 해석에 충실”한 것은 아닌지 되묻는 것이다. 저자는 갑골문을 통해 중화주의가 덧칠한 신화를 벗겨내고, 권력의 간계가 스며든 핏빛 역사를 복원하고픈 것이다. 그래서 책 제목이 다시 읽힌다. 나는 “너희가 말하는” 동양사상을 믿지 않는다로. 책에는 공자의 논어뿐 아니라 주역과 노자 등에 대한 다양한 얘기가 실려 있다. 갑골문을 통해 붕(朋), 도(道)처럼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여러 한자들을 달리 풀이해 주기 때문에 읽는 맛도 상당하다. 1만 7800원.
  • 보시라이 스캔들 연루 혐의 저우융캉 서기 입지 어떻게

    ‘왕리쥔(王立軍) 망명 사건’으로 당국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있는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시 서기와 내통한 혐의로 실각설이 나도는 저우융캉(周永康) 정법위 서기(정치국 상무위원)의 강연 내용이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저우 서기의 거취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언론활동 늘려 역할 강조 인민일보는 24일 3면 주요 기사로 절반 이상의 면을 할애해 저우 서기가 지난 3월26일 전국정법위원회 행사에서 강연한 전문을 게재했다. 지난 3월 행사 이후 신화통신과 인민일보는 저우 서기의 당일 활동을 동정 형태로 소개하면서 강연 내용도 일부 전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저우 서기가 최근 언론에 얼굴을 비친 뒤에도 예상만큼 소문이 가라앉지 않자 이번에는 보도의 폭을 대폭 늘려 건재를 과시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그는 강연에서 기존에 소개된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정점으로 하는 당 중앙과의 의견 일치’를 강조한 내용 이외에도 “올해 열리는 제18차 당대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조화롭고 안정적인 사회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정법기관의 첫 번째 임무다.…맡은 안건을 제대로 처리해 국민들이 공평과 정의가 살아있음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자신의 역할을 수차례 강조해 실각설을 일축했다. 최근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의 회동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그동안 ‘보시라이 스캔들’을 두고 여론전에서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에 밀린 상하이방이 반격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 바 있다. 저우 서기는 장 전 주석을 대표로 하는 상하이방 계열이다. ●지도부 안정 위해 처벌 안할 수도 그럼에도 저우 서기의 실각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저우 서기가 보시라이와의 사적 관계로 공산당 중앙기율검찰위원회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으나 공산당 최고 지도부의 안정과 결속을 위해 조사가 처벌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이날 보도했다. 이에 앞서 저우 서기는 보시라이에게 왕리쥔의 청두(成都) 미 영사관 망명 사실을 귀띔했다고 시인했으나 쿠데타를 시도하기 위한 공모는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홍콩 언론들이 보도한 바 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보시라이, 英사업가 사망 조사 경찰관 3명도 고문·살해”

    “보시라이, 英사업가 사망 조사 경찰관 3명도 고문·살해”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 피살 사건 이후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 서기와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의 부정부패와 관련된 의혹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사건이 종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중국 당국은 법에 따라 사건을 처리해 조만간 결과를 발표하겠다며 보시라이 스캔들이 오는 10월 권력 교체를 앞두고 정치권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당, 10월 권력교체 전 확대 차단 ‘총력’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은 보시라이가 다롄(大連)시 서기 때부터 아끼던 부하로 ‘조폭과의 전쟁’을 위해 충칭으로 스카우트해 온 ‘오른팔’이었다. 그러나 지난 1월 28일 이들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구카이라이의 53번째 생일이던 지난해 11월 15일 충칭의 5성급 호텔에서 독살된 헤이우드 사건의 배후에 구카이라이가 있다는 내용을 왕리쥔이 수사해 보고하면서 보시라이의 심기를 건드린 것. 보시라이는 당시 사건을 조사한 왕리쥔의 심복 수사관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했다. 이 과정에서 2명은 숨지고 1명은 자살했다. 보시라이가 관련된 살인사건이 추가로 드러남에 따라 혐의가 사실로 확인되면 사형이 불가피하다고 홍콩 아시아위크가 20일 보도했다. 또 왕리쥔은 당시 헤이우드가 보시라이의 해외자금 밀반출 및 돈 세탁 내역을 보관 중이던 컴퓨터 파일도 확보했다고 보시라이에게 보고했다고 명보(明報)가 전했다. 베이징에 있던 헤이우드를 11월 15일 충칭으로 데려온 것은 살해혐의를 받고 있는 보시라이의 개인비서 장샤오쥔(張曉軍)이라고도 소개해 살인이 계획적으로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앞서 언론들은 구카이라이와 헤이우드는 지난 2001년 영국에서 동거했던 사이였으나 헤이우드가 자금이전 및 돈 세탁에 대한 보상으로 거액을 요구한 탓에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 전했다. 보시라이와 불륜으로 만난 구카이라이가 다시 헤이우드와 불륜을 저지른 데에는 보시라이가 다롄TV 장웨이제(張偉杰) 앵커와의 사이에 딸까지 두는 등 여성편력이 심했기 때문이라는 추문도 불거졌다. 공안국 부국장직 박탈은 물론 자신의 부하들이 보시라이에 의해 고문사당한 것을 알게 된 왕리쥔은 지난 2월 6일 할머니 분장을 하고 충칭 공안국 왕펑페이(王鵬飛)의 차를 빌려 타고 청두(成都) 미 영사관을 찾아갔다. 보시라이는 곧바로 46명으로 구성된 개인 경호대를 동원해 왕리쥔의 심복 경찰 11명을 추가로 체포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앞서 당시 왕리쥔의 망명 소식을 보시라이에게 귀띔해준 배후가 최고지도부인 저우융캉(周永康) 정법위 서기로 드러나면서 보시라이의 ‘쿠데타 시도설’과 ‘베이징 내란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자금줄’ 쉬밍 회장·큰형 등 전방위 조사 베이징 당국은 현재 충칭과 홍콩을 중심으로 보시라이의 여죄를 캐는 데 총력을 쏟고 있다. 보의 뒤를 이어 충칭서기로 부임한 장더장(張德江)은 보시라이 재임시절 녹지조성, 지하철보수, 전광판 사업 등 정부로부터 돈을 빌려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충칭시 재건 사업, 이른바 충칭 모델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보시라이가 공금을 전용했는지를 수사중이라고 중화권 언론들이 보도했다. 보시라이의 큰형 보시융(薄熙永) 등 형제들과 구카이라이의 자매들도 자산 해외이전에 연루됐는지에 대해 조사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시라이의 자금줄로 알려진 스더(實德)그룹 쉬밍(徐明) 회장, 독살 혐의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충칭 난안(南岸)구 서기 샤저량(夏澤良) 등 총 39명이 베이타이허(北戴河)에서 조사받고 있다고 서방 언론들이 보도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하루가 짧은 ‘3주 대표 문성근’

    하루가 짧은 ‘3주 대표 문성근’

    민주통합당 문성근 대표 대행은 3주짜리지만 역할은 막중하다. 친노(친노무현), 비노(비노무현)의 힘겨루기 속에 총선 패배 후유증을 추스르고, 당화합의 기초를 다져야 한다. 민심을 수렴, 대선 대비 전략의 틀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취임 후 연속 사흘째 ‘좌클릭이 아닌 서민클릭’이라는 민생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18일 낮 여의도공원에서 시민들과 만나 총선 결과 및 대선 정국에 대해 토론했다. 앞으로도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민심을 들을 예정이다. 이어 기자간담회를 통해서는 대표 대행 임기가 끝나도 부산 지역구 활동을 하며 정치인으로 계속 남겠다고 밝혔다. 배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다. 총선 결과에 대해서는 “새누리당은 독재의 효율을 즐겼고 민주당은 민주주의의 비용을 치렀다.”고 평가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지만 민주당은 공천 갈등 등 여러 계파가 양보 없는 다툼을 해 민심이반을 촉발, 총선 패배로 이어졌다고 진단한 것이다. 할 말이 많은 듯 대여 공격에 날을 세웠다. 그는 앞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나라당이 립스틱 짙게 바르고 새누리당이라고 이름을 바꿨지만 총선이 끝나자 너무 빨리 립스틱을 지우고 있다.”면서 “총선이 끝나자마자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폐지하고 KTX 민영화를 강행하겠다는 등 교만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고 공격했다. 그는 “부산일보는 야당에 유리한 기사를 썼다며 편집국장에 대한 징계 절차를 밟는다고 한다.”면서 “부산일보는 5·16 쿠데타 이후 강제 헌납받았다는 게 정부기구 공식발표인 만큼 부산시민에게 환원해야 하는데 박근혜 위원장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시간만 보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서울고법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해 원심(벌금 3000만원)보다 높은 징역 1년을 선고한 데 대해선 “나는 곽 교육감의 인격과 진정성을 믿는다.”고 옹호했다. 총선 패배에 대해 사죄하면서도 진보진영의 앞선 득표율에서 정권교체의 희망을 봤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사설] 지방행정·의회 개편 적극 검토할 때 아닌가

    지방행정과 지방의회 등 지방자치제도의 전면 개편이 추진되고 있다.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체제 개편추진위원회는 최근 비공개회의를 통해 서울특별시와 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울산 등 6개 광역시의 구(區)의회를 없애고, 6개 광역시에서는 구청장을 현재의 민선 대신 정부가 임명하는 관선으로 바꾸는 내용 등이 포함된 지방자치제도 개편안을 확정했다. 이 안은 2014년 지방선거부터 적용하도록 돼 있다. 이날 개편추진위는 일부 위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개편안을 전격 표결처리했다. 의결정족수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으나 강현욱 위원장이 표결을 강행했다고 한다.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30년 만에 부활된 지방자치에 대해서는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개편추진위가 표결처리를 강행하는 무리수를 두면서도 서울과 광역시의 지방행정과 지방의회를 바꾸려고 한 것은 지방자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반영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지방의회는 강제로 없어졌고,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1년 다시 문을 열게 됐지만 지난 20여년간 대도시의 구 의회가 제 기능을 했다고 보는 주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할 때 지방의회 의원들은 무보수였지만, 2006년부터는 지역에 따라 연간 3000만~4000만원을 의정비로 받고 있다. 의정비 문제는 둘째로 치더라도, 지방의회가 지방자치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일을 제대로 한다면 의정비도 올려주고 보좌관들을 두는 것을 반대할 주민들이 많지 않겠지만 현실과 거리가 멀다. 광역시에서 구청장까지 관선으로 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구 의회를 없애는 것은 성격이 다소 다르다. 구 의원이 없더라도 광역의원인 시 의원이 주민들의 뜻을 반영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은 그동안 구 의원 공천권까지 행사하면서 풀뿌리정치에 너무 많은 영향력을 발휘해 왔으나,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야 모두 지방행정·지방의회 개편에 정략적인 접근 대신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 [보시라이家 ‘끝없는 추락’] 보前서기 쿠데타 시도설… 친인척 사법처리 가능성

    중화권 인터넷 사이트를 중심으로 ‘베이징 내란설’이 유포된 이후 군부 지도자들이 당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칼럼을 속속 게재하는 가운데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 당서기와 절친한 군부 인사들이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현지에서는 보시라이의 ‘군부 쿠데타 시도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중앙군사위원회 2인자인 궈보슝(郭伯雄) 부주석은 최근 인민해방군 청두(成都) 군구 사령부를 시찰한 자리에서 “정치와 전체 국면이라는 눈높이에서 중대한 안전 문제를 더욱 경계하고 전체 국면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며 당에 대한 충성을 강조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지난 14일 보도했다. 제2포병부대에서는 최고위급인 정치위원 장하이양(張海陽) 대신 정치부주임인 인하이룽(殷海龍) 명의로 칼럼을 실었다. 이는 보시라이와 절친한 장하이양이 최근 보시라이 문제로 조사받으면서 행적이 묘연해졌다는 추측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홍콩의 싱다오(星島)일보가 전했다. 지난 2월 말부터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등 주요 지도자와 관영 언론들은 군의 당에 대한 충성을 줄기차게 강조했고, 이를 두고 항간에는 권력투쟁에 군이 관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급기야 3월 말에는 군이 동원된 ‘베이징 내란설’이 퍼지기 시작했다. 한편 중화권 언론들은 보시라이의 부정부패에 친·인척이 대거 연루됐다고 보도했다. 맏형인 보시융(薄熙永)은 리쉐밍(李學明)이란 가명으로 국무원 직속 금융그룹인 광다집단(光大集團)의 부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연 170만 달러(약 19억원)에 이르는 연봉을 챙기는가 하면 2500만 위안(약 22억 5000만원) 규모의 주식도 보유했다고 홍콩 빈과(?果)일보 등이 전했다. 구카이라이(谷開來)의 언니인 구왕장(谷望江)과 구왕닝(谷望寧)은 홍콩의 한장글로벌(漢江全球) 등 8개 이상의 기업체에서 재직하고 있다고 전해, 보씨 집안이 친·인척을 이용해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앞서 인민일보는 사설에서 “어떤 이들은 이중 국적을 이용해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는가 하면 친척과 친구, 정부(情婦) 등을 통해 재산을 은닉했다.”고 지적해 보시라이의 친·인척들까지 비리 문제로 사법처리될 수 있음을 암시한 바 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테마로 본 공직사회] (42)역사로 본 지방의회

    [테마로 본 공직사회] (42)역사로 본 지방의회

    지방의회와 관련된 해마다 불거지는 문제가 의정비 인상이다. 이전에 무급명예직이었던 지방의회 의원들에게 2006년부터 의정비를 지급하기 시작하면서, 열악한 지방재정으로 볼 때 의정비가 과다 지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2008년부터 중앙정부에서 지방자치법 시행령을 개정, 의정비 결정절차 등을 규제하고 있다. 정부 수립 후 최초의 지방선거가 치러지던 1952년 4월 25일, 임시수도 부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난리 중 제대로 된 투표소는 없었지만, 주부·노동자·샐러리맨이 한 표를 행사하러 장사진을 이뤘다. 누더기를 걸친 북한 피란민도 눈에 띄었다. 당시 언론들은 이 선거를 “민주주의에 핀 또 한 송이 꽃”, “민주주의 발전의 바로미터”라고 묘사했다. 자치에 대한 주민들의 열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지방의회의 의정비 몇% 인상논의나 의원들의 해외연수 횟수 공개에 지역 여론이 들끓는 것도 달리 보면 관심 때문이다. 해방 직후에는 혼란도 컸지만 시·읍·면장은 물론 동·이장까지 직선으로 선출하는 등 지금으로 봤을 때는 과감하고 실험적인 형태의 지방선거가 치러졌고,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에는 지방의회가 자취를 감췄다. 1991년 다시 문을 연 지방의회는 높아진 주민들의 기대에 의회 운영의 효율성과 의원들의 전문성 확보가 중시되고 있다. ●의원 1인당 주민 1073명 첫 지방의회 선거는 1952년 4월과 5월 각각 시·읍·면의회와 도의회 의원선거로 치러졌다. 시·읍·면 의회의 법적 성격은 지금의 기초의회에 해당하지만, 인구는 읍·면·동이나 그보다 적었다. 당시 인구가 1885만여명이었는데 의원은 1만 7559명을 선발했으니 의원 한 명당 주민 1073명을 대표한 셈이다. 지금은 기초의원 1인당 주민이 1만 6000여명 수준이다. 규모면에서만 보면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기에 지금보다도 좋은 환경이었다. 또 내각제 요소를 가미, 시·읍·면 의원들에게는 시·읍·면 단체장 선출권과 단체장 불신임권이 주어져 지금 기초의원보다 권한도 컸다. 모두 3만 2682명이 출마했다. 전쟁 중이라 일부 지역은 선거를 시행할 수 없었다. 한강 이북 미수복지구와 지리산 주변, 서울·경기·강원 도의회 의원 선거는 치러지지 않았다. 부산 동래 좌천선거사무소는 선거 하루 전날 오전, 북한군 15명으로부터 박격포 공격을 받았다. 면장이 숨지고 경찰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첫 선거가 외부 적에 의해 제대로 치러지지 못했다면, 1956년 실시된 2회 지방선거는 불법·관권 선거로 가장 혼탁했던 선거로 기록됐다. 정부 수립 초기 혼란 양상이 지방선거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당은 ‘임기 기득권 인정’ 등을 이유로 이때부터 선거 대상에 포함된 시·읍·면장의 약 60%와 의회의원 5%를 선거대상에서 제외했다. 여권과 경찰이 야권후보들에게 입후보 자체를 막거나 사퇴를 강요했다. 당시 경기·충북·전북·경북 등 5개 도에서만 중도 사퇴자가 909명이나 나왔다. ●1960년 ‘최말단’ 직선 유일 선거 4·19혁명이 일어났던 1960년 12월 제3대 지방선거가 실시됐다. 시·도지사는 물론 동·이장까지 모두 주민이 선출했다. 형식적으로는 지방선거가 최말단 조직에서 치러진 유일한 해였다. 정부의 지방의회백서에는 이 시기를 ‘사회 전반의 민주화의 열의가 팽배해 있을 때’라고 표현했다. 이런 열의는 선거결과로 표출됐다. 시·읍·면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당선자 비율이 81.2%에 달했다. 1956년 선거(28.6%), 1952년 선거(42.5%)의 무소속 득표율과 비교,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자유당을 대신해 정권을 잡았지만 악습을 바꾸지 않았던 민주당 정권에 대한 불신의 표출이었다는 것이 당시 언론 등의 평가다. 하지만 이런 혼란도 잠시, 다음해 일어난 5·16쿠데타로 3대 지방의회는 5개월 만에 문을 닫는다. 다시 지방의회 선거가 실시될 때까지 30년 세월이 지났다.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 1995년 자치단체장도 민선으로 선출됐다. 지방의회 당선자를 보면 1991년 시·도의원 866명, 시·군·구 의원 4304명 등 5170명이었다. 하지만 지방재정 등의 이유로 매번 의원수는 줄었다. 1995년 5511명, 1998년 4254명, 2002년 4240명, 2006년 3626명으로 점차 줄다가 교육위원 등이 편입됨에 따라 2010년 3731명으로 조금 늘었다. ●1995년 자치단체장도 민선 선출 이 같은 인원 축소에는 지방의회에 대한 불신이 작용했다. 부정선거·관권선거는 해방 직후보다는 많이 사라졌지만 ▲주민 대표성 ▲행정기관 견제기능 ▲의원 전문성은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지난해 4월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방의회의 주민의견 대변 정도에 대해서는 44.7%가 ‘거의 대변하지 못한다’, 40.2%가 ‘약간 대변한다’고 답변했다. ‘매우 잘 대변한다’는 1.7%에 머물렀다. 이 때문에 주민자치위원회의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재 주민자치위원회는 2000년부터 설치, 거의 대부분의 읍·면·동 주민자치센터(자치회관)에 구성돼 있다. 하지만 주민직접 선출 방식이 아닌 관선 읍·면·동장이 새마을부녀회장이나 자유총연맹회장 등 소위 ‘지역유지’를 임명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기능도 행안부 조례준칙 등에 따라 자치센터 시설·프로그램 운영안을 심의하는 정도로 제한되고 있다. “아파트 입주자회보다 못하다.”는 지적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최근 각 지자체는 자치위원회 구성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통·이·반장, 직능단체출신, 지방의원 등 지역유지들의 구성비율은 2009년 21.5%에서 2012년 24.9%로 오히려 높아졌다. 일부 자치센터는 자치위원들의 인적사항을 공개할 때 똑같은 위원의 직업을 한번은 직능단체 대표로, 다른 한번은 주부·자영업 등으로 공공연하게 편법 기재하고 있다. 하지만 섣불리 주민자치위원회를 직선으로 구성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방행정체제개편 위원회 측은 “새로운 자치위원 선출 방법으로 직선제, 추천제, 직능대표통합형 등을 고려했다.”면서 “하지만 직선제는 지나친 정치화·선거과열 등이 우려돼 일단 제외됐다.”고 말했다. 1952년 4월 25일, 한 일간지의 사설에 이런 글귀가 등장한다. “지방선거는 지방 보스들을 모아서 민주주의 간판 아래 그들에게 또 하나의 권력·세력을 부여하자는 것이 아니다. 하부 말단을 어떤 관료나 독선이 지배한다면 민주주의는 형식일 뿐이요, 국민은 반민주적 지배하에서 신음해야 할 것이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英-미얀마 64년 만에 ‘화해의 악수’

    미얀마가 1948년 영국 식민통치에서 독립한 이후 처음으로 영국 현직 총리가 미얀마를 방문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13일 미얀마 행정수도인 네이피도의 대통령궁에서 테인 세인 대통령과 만나 민주화와 미얀마에 대한 제재 완화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서방 지도자가 미얀마를 공식 방문한 것도 1962년 군사 쿠데타 이후 처음이다. 캐머런 총리는 미얀마 도착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얀마는 수십년 동안 독재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개혁을 시작했다.”며 미얀마 정부의 개혁 의지를 높게 평가했다. 지난해 3월 민간정부를 출범시킨 테인 세인 대통령은 캐머런 총리의 방문을 ‘역사적인 일’이라고 환영했다. 캐머런 총리는 테인 세인 대통령과의 회동이 끝난 뒤 옛 수도인 양곤으로 이동해 민주화 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와 만났다. 캐머런 총리는 공동기자회견에서 “수치 여사는 전 세계인들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수치 여사는 미얀마에 대한 제재 조치를 완화하겠다는 캐머런 총리의 발언을 환영하며 “갈 길이 멀지만 우리는 목표를 이룰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유럽연합(EU)은 오는 23일 미얀마에 대한 제재 해제를 논의할 계획이다. EU는 올해 초 미얀마의 개혁 조치들을 높게 평가하면서 미얀마 각료 등에 대한 비자발급 금지 조치를 해제하는 등 제재를 일부 완화했다. 주요 8개국(G8) 외교 장관들은 이날 워싱턴에서 회담을 가진 뒤 공동성명을 통해 “미얀마가 국제사회에 편입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제재 완화를 고려할 것”이라며 “미얀마는 모든 정치범들을 석방하는 등 개혁 조치들을 계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英 캐머런 총리, 미얀마 경제 선점 나섰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아시아 순방길에 나섰다. BBC 등 영국 언론들은 이번 캐머런 총리의 아시아 순방을 ‘통상 순방’이라며 경제적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10일 첫 방문국인 일본에 도착한 캐머런 총리는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헬리콥터 등 무기와 관련 장비를 공동개발하기로 합의했다. 13일에는 서방 최고 지도자로서는 처음 미얀마를 방문해 민주화 지원에 나서는 한편 경제적 이권을 선점하기 위한 통상 외교를 펼친다. 캐머런 총리와 노다 총리는 공동성명에서 “적어도 하나의 무기 개발 계획을 조기에 개시한다.”고 명시했다. 일본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에 참여했으나 미국 외의 국가와 무기 공동개발에 합의한 것은 처음이다. 양국 정상은 북한의 위성 발사와 관련,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이를 금지한 2009년의 유엔 안보리 결의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북한에 자제를 요구했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무기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무기수출 3원칙’을 완화하면서 외국과의 무기 공동 개발이 가능해짐에 따라 영국과 처음으로 무기 공동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도 일본의 차기 주력전투기 선정에서 미국에 패한 이후 방위산업 분야에서 일본과의 협력에 전력을 쏟고 있다. 일본이 영국과 무기 공동개발에 나선 것은 기술 이전에 엄격한 제약이 있는 미국에 비해 영국은 라이선스 생산과 기술 이전의 제약이 적기 때문이다. 영국은 수출 관리가 엄격해 공동 개발한 무기가 분쟁 당사국으로 이전될 위험성이 낮다는 점도 고려됐다. 캐머런 총리는 13일에는 미얀마를 방문해 테인 세인 대통령과 민주화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와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영국 총리가 미얀마를 공식 방문하는 것은 1962년 군사 쿠데타 이후 처음이다. 캐머런 총리는 시장 개방에 나선 미얀마의 광물 등 풍부한 자원 확보 등 경제적 이권을 선점하기 위한 세일즈 외교에 진력할 방침이다. 캐머런 총리의 이번 방문은 특히 지난 1일 치러진 미얀마 보궐선거에서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을 거둔 직후 이뤄진 것이어서 영국의 미얀마 민주화 지원을 약속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미국 정부가 최근 미얀마에 대한 경제 제재 후 22년 만에 데릭 미첼 국무부 미얀마 특사를 미얀마 대사로 지명한 것과 같이 서방 세계의 미얀마 민주화 지원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캐머런 총리는 당초 일본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4개국만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막판에 일정을 바꿔 미얀마도 포함시켰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자살한 KGB 총수 시신곁 유서 내용 뭐기에…

    1990년대 초 옛 소련 KGB(국가보안위원회) 총수를 지냈던 레오니드 셰바르쉰(76)이 30일 모스크바에 있는 자택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CNN이 이타르타스 등 현지언론을 인용 보도했다. 수사위원회 블라디미르 마르킨 대변인은 그의 시신 옆에는 총기와 유서가 발견되었으며 자살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다른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경찰은 무슨 이유인지 현재 유서내용을 공개하지 않고있다. 한편 셰바르신은 7년전 부인을 여읜 후 아파트에서 혼자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외교관 신분으로 위장해 파키스탄, 이란, 인도 등지에서 활동해왔으며, 1989년 KGB 부의장에 임명됐다. 1991년 8월 22일 보수파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하루동안 KGB를 이끌었으며 개혁파의 등장으로 다음달 전격 은퇴했다. 인터넷 뉴스팀
  • 교황 “美 제재에 쿠바 국민 부당한 부담”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쿠바 방문 마지막 날인 28일(현지시간) 쿠바에 대한 미국의 장기간 경제 제재 조치에 일침을 가했다고 BBC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교황은 2박 3일간의 쿠바 방문 일정을 마친 뒤 라울 카스트로 대통령이 배석한 가운데 열린 출국 기념식에서 “쿠바 국민들은 폭넓은 비전을 갖춘 새롭고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며 개혁과 개방을 재차 강조했다. 교황은 그러나 “쿠바 외부의 경제 제재로 쿠바 국민들이 부당한 부담을 떠안는 현실에선 어렵다.”고 말해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쿠데타 이후 50년간 지속돼온 미국의 경제 제재를 비난했다. 교황은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집전한 대규모 야외 미사에서도 “쿠바와 세계는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각자가 진리를 추구하고 사랑의 길을 선택해 화해와 친선의 씨를 뿌릴 때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미사에는 시민 30만명이 몰렸으며 라울 대통령도 앞줄에서 설교를 경청했다. 교황은 이에 앞서 아바나의 교황청 대사관에서 피델 카스트로와 만나 30분간 환담했다. 85살로 교황보다 한살 많은 카스트로가 교황에게 “요즘은 무슨 일을 하시냐.”고 농담을 던지는 등 화기애애하고 활기찬 분위기였다고 교황청 대변인은 전했다. 교황은 쿠바의 환대에 감사의 뜻을 표하며 해외 순방과 미사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카스트로는 교황의 쿠바 방문을 TV를 통해 줄곧 지켜봤다며 두 아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교황이 공산권 국가인 쿠바를 방문한 것은 1998년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14년 만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2PM 닉쿤, 태국 女총리 만나더니 그녀를…

    2PM 닉쿤, 태국 女총리 만나더니 그녀를…

    “정치에 입문한 뒤 많은 실패와 성공을 겪으면서 여성의 어려움을 잘 알게 됐습니다. 항상 침착하게 노력하되 기회가 왔을 때 붙잡기 바랍니다.” 26일 오전 10시 이화여대 국제교육관 LG컨벤션홀에서는 잉락 친나왓(45) 태국 총리의 강연이 열렸다. 이날 ‘여성 리더십, 태국 총리의 비전’을 주제로 강연을 한 그는 태국 첫 여성 총리라는 점에서 미리부터 관심을 끌어 10여명의 태국 유학생을 비롯, 130여명이 참석해 경청했다. 잉락 총리는 2006년 군부 쿠데타로 물러난 탁신 친나왓(63) 전 총리의 막내 동생으로, 지난해 5월 정계에 데뷔해 총리에 당선된 인물이다. 잉락 총리는 태국 치앙마이대학에서 정치행정학을 전공한 뒤 미국 켄터키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인대회 출신이라는 이색 경력도 눈길을 끄는 이력이다. 검은색 투피스와 파란색 블라우스 차림의 잉락 총리는 두 손을 모으고 “사와디카(안녕하세요)”라는 태국 인사로 강연을 시작했다. 잉락 총리는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전 세계 146개국을 대상으로 성평등지수를 조사한 결과 한국이 11위였다. 여성의 힘이 국가 발전에 꼭 필요한 전제임을 알 수 있었다.”면서 “그렇다고 여기에 계신 남성분들은 상심하지 마시라. 함께하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방청객들의 웃음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한편 잉락 총리는 한국 아이돌 그룹 ‘2PM’의 태국인 멤버 닉쿤 하르웨치쿨을 방한 중 가질 공식행사에 초대했다. 잉락 총리는 지난해 대홍수 이후 투자자 신뢰 회복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 예정이다. 잉락 총리는 열광적인 한국팬을 거느린 닉쿤이 태국 이미지 개선에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닉쿤 또한 자신이 태국 경제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데 큰 보람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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