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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 권력에 지배당하거나 공간을 지배하거나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을 보자. 어떤 이에게는 ‘예술의 중심지로 보일 테고 어떤 이에게는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건축물로 보일 것이다. 시인이자 건축가, 건축평론가인 함성호에게는 “궁궐 건축의 기둥 형태를 기괴한 스케일로 ‘뻥튀기’하여 육중한 돌로 포장”한 “정권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한 과거 양식 차용의 좋은 예”다. 그는 경복궁의 ‘국립민속박물관’이나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도 ‘한통속’으로 본다. 정치 권력과 자본의 시녀로 전락한 건축물이다. 그는 건축에 대한 날카롭고 진지한 비판과 건축 예술에 대한 찬사를 담아 ‘반하는 건축’(문예중앙 펴냄)을 냈다. “우리가 당연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드나들고 있는 건축이라는 공간 체험 예술이 어떤 내밀한 욕망과 사회적 담론들을 내재하고 있는지 밝혀내려고 했다.”고 말한다. ‘반하고 반하는 건축 이야기’라는 부제로 설명하자면 앞에 있는 ‘반(反)하는’은 건축의 본질과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고 뒤의 ‘반하는’은 가치가 살아 있고 감정적으로 끌리는 건축물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 두 성격으로 분리해 건축을 이야기한다. 그럼 ‘반(反)하는 건축’이란 무엇인가. 앞서 말한 건축물이 대표적이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3공의 콤플렉스는 도덕성 결여, 정당성 부재였다. ‘우리에게 전통이 있어.’라고 강조하기 위해 구례 화엄사 각황전, 법주사 팔상전, 금산사 미륵전을 ‘짬뽕’한 것이 국립민속박물관이다. 유신시대에 지어진 세종문화회관의 거대한 수직 열주들도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대변한다. 건물을 정치적 의미로 해석해 치워 버리기도 한다. 1997년에 사라진 조선총독부가 비근한 예다. 저자는 아파트 주거 형식이 민족 생활 환경을 어떻게 파괴하고 고부 갈등을 부추겼는지, 학교 구조가 어떻게 감시와 처벌의 공간으로 작용하는지, 종교 대자본가들이 선호하는 건축이 왜 체육관을 닮았는지 설명하면서 시대와 세태를 배반하는 건축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친다. 이어 모더니즘에서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 건축 사상을 소개하고 매혹적인 건축의 방법과 공간 개념, 한국적 미니멀리즘의 본령도 전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런 방식의 접근은 순전히 건축을 보는 내 자의적인 방법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면서 “이 작업은 어쩌면 내 개인적인 가설이 될 수도 있음을 밝혀둔다.”고 했다. 그 개인적인 가설을 서울시 신청사에는 어떻게 대볼까 궁금증이 일어 저자에게 물었다. “슬쩍 지나가 보기만 했지 자세히 보지 않아서 어떤 분석을 할 수는 없지만 첫눈에 쓰나미(지진해일)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저자는 “우리나라 관공서가 늘 원하는 것이 전통미인데 그런 의도에서 신청사가 처마 모양을 땄다는 것은 대단한 비약이고 구색 맞추기”라고 말했다. 저자의 ‘가설’에 철학적 사유도 덧대고 의미 있는 그림을 넣어 건축을 보는 시선에 대한 깊이와 즐거움을 상승시킨다. 1만 5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KPGA 선수회 “집행부 해임” 집행부 “그들만의 총회 무효”

    수장을 잃은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의 내홍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이인우 KPGA 선수회 대표 등 관계자들은 12일 오전 10시 서울 송파여성문화회관에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어 전윤철 전 회장 영입과 최근 골프회관 매입 등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김학서 회장 권한대행 및 집행부 전원 해임안을 의결하고 김정석 업무감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오전 11시에는 KPGA 집행부가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선수회의 임시대의원총회는 적법하지 않아 무효”라며 “2개월 안에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차기 회장 선출을 비롯한 현재의 상황들을 봉합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선수회와 집행부의 갈등은 지난달 전윤철 전 회장의 영입을 놓고 비롯됐다. 선수회 측은 “절차를 무시한 집행부의 독단이 초래한 쿠데타”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최근 김학서 회장 권한대행이 최근 KPGA회관 건물을 매입하면서 노후 기금인 회원 상조금까지 건드렸다며 건물 매입에 동조한 집행부 전원을 횡령 등의 혐의로 형사 고발할 것이라고 밝혀 갈등이 증폭됐다. 그러나 김 권한대행은 기자회견에서 “건물 매입은 정당한 절차에 의해 추진됐고, 회장을 비롯한 새로운 집행부의 구성도 2개월 안에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어 뽑게 돼있는 만큼 선수회의 임시대의원총회 개최 결의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선수회와 집행부의 갈등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회장 후보들의 ‘대리전’이나 다름없다는 게 골프계의 진단이다. 박삼구 전 회장이 당시 불려 놓은 170억여원의 기금을 둘러싼 ‘쟁탈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사상계, 초기 박정희정권과 어떤 관계였나”… 정진아 건국대 교수 논문

    “사상계, 초기 박정희정권과 어떤 관계였나”… 정진아 건국대 교수 논문

    ‘사상계’는 1960~70년대 가장 대표적인 ‘민족적 저항 잡지’로 손꼽힌다. 1970년 5월 호에 김지하의 시 ‘오적’을 실었다는 이유로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폐간 처분을 받고 사라진 것도 지식인들에게는 ‘저항’을 떠올리는 역사의 한 장면이 된다. 그러나 사상계와 박정희 정권이 처음부터 악연은 아니었다. 사상계의 경제부문 편집위원들은 군사정권의 경제개발정책 골격을 형성할 만큼 협조적이었다. 정부 주도의 계획경제 수립, 농업과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의 전환, 7%대의 높은 성장률 추구, 국민의 소비절약과 내핍의 일상화, 수출증가 등이 그것이다. 정진아(43)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교수는 신간 ‘냉전과 혁명의 시대 그리고 사상계’(작은 소명출판 펴냄)에 실은 소논문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반 사상계 경제팀의 개발담론’에서 사상계와 박정희 정권의 관계를 파헤쳤다. 사상계 인사들은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부패와 무능과 무질서와 공산주의의 책동을 타파하고 국가의 진로를 바로잡으려는 민족주의적 군사혁명”이라고 규정하고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4·19 민주주의 혁명의 계승자로 바라보며 장면 정부의 무능을 극복하려는 불가피한 혁명으로 평가한 것이다. 당시 지식인 대부분이 호의적이었다. 정 교수는 “지식인들은 박정희 등 군사쿠데타 세력들이 ‘혁명 과업을 완수한 뒤 군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겠다’고 한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처음엔 “민족주의적 군사혁명” 호응 따라서 사상계 경제부문 편집위원들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고문과 각 부처 장관의 고문 등으로 참가했다. 특히 김준엽은 고문 요청을 거절했다가 장준하 등의 적극적인 권유를 받아들여 수락했다. 1962년 1월 경제기획원이 제출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성안 과정에 사상계 편집위원인 성창환 고려대 교수와 이정환 연세대 교수가 참여했다. 정 교수는 “정권의 정통성이 취약한 상황에서 사상계 소장 학자들의 경제개발론을 포용해 환심을 샀지만, 정책 운용에서 점차 노선을 달리했다.”고 말했다. 사상계와 박정희 군사정권 사이의 틈은 군사정권이 한일회담 과정에서 대일 청구권을 포기하려고 하자 벌어졌다. 사상계 측은 대일 청구권 문제를 우선 해결한 뒤 국교를 수립하고, 그 뒤에 일본과의 경제실무를 협의하는 한·일 협정을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결과는 반대였다. 이어 군사정권이 군정 연장을 시도하고, 민족적 자존심을 버리고 원칙 없는 한일회담을 강행하자 사상계는 1962년 7월부터 군사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해 “의욕의 과잉”, “체계화되지 않은 혼합경제 정책으로 혼란 가중”을 들어 비판하기 시작했다. 1년 2개월의 밀월이 박살 나는 순간이다. 군사정권도 중앙정보부를 설치해 대민 사찰을 강화하고, 정치활동정화법을 제정해 정적들을 숙청해 나갔다. ●‘민생 vs 국가부흥’ 가치 엇갈려 정 교수는 “사상계는 경제개발안에서 일자리 창출 등 ‘민생’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군사정권은 ‘민족과 국가의 부흥’이라는 전체주의적 가치에 역점을 뒀다. 또한 사상계가 민주화와 산업화의 동시 진행을 요구한 반면, 군사정권은 산업화 이후에 민주화를 주장해 산업화가 진행되는 동안 형식적인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게 됐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현재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극심한 양극화나 민주주의의 제한 등은 모두 선(先) 산업화, 후(後) 민주화를 주장했던 박정희 정권 때부터 배태된 것”이라며 “파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그때그때 해결하지 못한다면 파이를 다 키운 뒤에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1960년대 경제개발의 교훈”이라고 지적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박근혜의 인생역정… 현대사 담긴 ‘질곡의 삶’

    박근혜의 인생역정… 현대사 담긴 ‘질곡의 삶’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대권을 향한 재도전의 길에 섰다. 12월 대선에서 당선된다면 우리나라 첫 여성 대통령이자 아버지와 딸이 대통령이 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올해로 만 60세인 그는 나이만큼 흘러온 한국의 현대 정치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질곡의 삶을 살아왔다. 양친을 모두 흉탄으로 잃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비운의 공주’이자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물려받은 정치적 유산과 14년간 이어온 의정 활동을 디딤돌 삼은 정치 지도자다. 박 전 위원장은 1952년 2월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 사이의 2녀 1남 중 장녀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9살이던 1961년 육군 소장이던 부친이 5·16군사쿠데타를 일으키며 정권을 잡았고 1963년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박 전 위원장은 1979년까지 청와대, 권부의 핵심에서 정치와 권력을 배웠다. 성심여고를 거쳐 이공계인 서강대 전자공학과(70학번)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부국강병을 앞세운 선친의 영향이 컸다. 인생의 첫 굴곡은 22살 때 찾아왔다.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간첩 문세광의 총탄에 절명했다. 신문기사로 어머니의 별세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그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수만볼트의 전기가 훑고 지나가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그의 삶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퍼스트 레이디 대행’이라는 굴곡진 공인의 길로 들어섰다. 원칙주의자 박근혜의 모습은 이즈음부터 서서히 드러난다. 사소한 국정도 수첩에 일일이 기록하며 챙겼다. 폭설이 온다는 날씨 정보만 나와도 “전국을 빠짐없이 챙기라.”며 청와대 참모진 보고를 메모했다는 일화가 있다. 10·26 사태가 난 이튿날 새벽 1시, 유고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그의 첫마디는 “전방의 상태는 괜찮습니까.”였다. 이후 서울 중구 신당동 옛집에서 보낸 18년간의 야인 생활 동안 그는 아버지 저격범 김재규를 비롯해 박정희 체제를 누렸던 이들의 배신으로 인해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저서인 ‘고난을 벗삼아, 진실을 등대삼아’에는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슬프고 우울하게 만든다.”, “배신하는 사람의 벌은 다른 것보다 자기 마음 안의 무너뜨려서는 안 되는 성을 스스로 허물어뜨렸다는 점이다.”라고 나와 있다. IMF 사태 직후인 1998년 15대 국회의원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박 전 위원장은 원칙 정치의 외길로 접어들었다. 당 대표 시절엔 ‘수첩공주’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세세히 기록하는 면모가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천막당사 2주년인 2006년 3월 한국 정당 최초로 ‘대국민 실천백서’를 출간한 것도 이런 소신의 방증이다. 정치인으로서 박근혜가 주목받은 사건은 2000년 당 총재 경선 때다. 경선에서 이회창 전 총재에 이어 부총재로 당선됐으나 이듬해 ‘이회창 대세론’에 반발해 당 개혁안을 요구하며 탈당, ‘미래연합’을 창당하는 강단을 보였다. 2002년에 재입당한 그는 불법 대선 자금 수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침몰 직전이었던 2004년 3월 당 대표를 맡았다. 국민 앞에 과거를 반성하고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의미에서 ‘천막당사’를 감행했고 직후 치러진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싹쓸이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21석이라는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면서 그는 ‘선거의 여왕’이 됐다. 2009년 9월부터 1년 넘게 이어진 세종시 수정 논란은 ‘박근혜 원칙론’의 대표 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때 약속했던 ‘행정복합도시’를 ‘교육과학 중심 경제도시’로 바꾸려 하자 박 전 위원장은 세종시 원칙론을 고수하며 정부 수정안을 무산시켰다. 원칙주의자로 비치는 그의 모습은 그러나 ‘불통 이미지’라는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대권 주자로서 가장 큰 한계점이기도 하다. 이런 당 안팎의 비판에 대해 박 전 위원장은 10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소신과 불통을 구분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민주, 朴 출정식 맞춰 정수장학회 파상공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10일 민주통합당은 박 전 위원장이 이사장을 지낸 정수장학회를 집중 파고들며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당 초선의원 모임 ‘민초넷’이 주최한 ‘박근혜 의원과 정수장학회’ 주제 강연에 참석해 “정수장학회는 5·16 군사쿠데타 이후 설립자에게서 강압으로 빼앗아 만든 장학회다. 박 의원은 사회 환원으로 명확히 정리하라.”고 요구했다. 특강에는 박지원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 100여명이 총출동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강연에서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은 유신 시절 청와대 의전비서관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어린 딸을 보호하기 위해 후견인 격으로 붙여놓은 자”라고 주장했다. 부산일보 기자 출신 배재정 의원, MBC 기자 출신 신경민 의원 등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정희 정권이 고(故) 김지태 사장으로부터 MBC, 부산일보 주식을 강제 헌납받았다.”면서 “박 전 위원장은 10년 동안 재단 이사장을 지내고 자신의 최측근 인사를 앉히고는 소유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수장학회의 강제헌납 판결, 박 전 대통령이 당시 국가권력을 동원해 이뤄진 인권과 재산권 침해 등에 대한 박 전 위원장의 답변을 촉구한 뒤 공개질의서를 전달했다. 민주당은 이날 ‘부일장학회 강탈의 역사’ 관련 사진 20여점을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 전시하려 했지만 국회 사무처가 정치적 게시물이라는 이유로 이례적인 불허 방침을 내려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성호 대변인은 박 전 위원장의 출마선언문과 관련, “반성·개혁·소통·비전이 없는 공허한 허무주의 추대 리허설이다. 슬로건인 ‘내꿈이 이뤄지는 나라’는 ‘박근혜 대통령 꿈이 이뤄지는 나라’”라고 꼬집었다. 평일 오전 출정식을 한 데 대해 “방학 중에도 대학생들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알바 뛰고, 학원에 가 있는 현실을 ‘유신공주’는 모르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9) 정읍·고창·부안 동학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9) 정읍·고창·부안 동학로

    갑오년(1894년) 음력 1월 고부(지금의 전북 정읍시) 봉기로 발발해 같은 해 12월 전봉준 등 주요 지도부가 체포되면서 막을 내린 미완의 혁명. 그 정신이나 사상에 대해서는 1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학자마다 이견이 있지만,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는 곡조에는 누구나 가슴이 먹먹해진다. 민초들에게 두고두고 양각으로 아로새겨진 이 기억은 그러나 권세가들에게도 특별했긴 매한가지다. 무수한 세도가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그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했고 머리를 조아렸던 혁명이다. 그 정신을 오롯이 기리고 있는 전북 정읍·고창·부안의 동학로를 찾았다.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끝자락에 있는 황토현 전적비.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곳이다. 화강암으로 된 비석 위에는 ‘제폭구민 보국안민’ 즉, ‘폭정을 없애고 나라를 보존하여 인민을 안정하게 한다’라고 쓰여 있다. 동학농민군은 갑오년 음력 4월 7일 이곳에서 정규 정부군인 전라 감영군과의 전투에서 최초·최대 승리한 것을 이렇게 기념했다. ●과거 권력자들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 1963년 10월 3일 제막식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이 참석했다. 여기서 박 의장은 “동학혁명은 부패·당파싸움·사대주의에 물든 탐관오리들에게 항거한 최초의 대규모 서민혁명으로 그 정신은 길이 계승돼야 한다.”면서 “5·16혁명도 이념면에서는 동학혁명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진윤식(69) 고창동학농민혁명연구소장은 “5·16군사쿠데타를 동학농민혁명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꼼수였다.”고 비판했다. 또 같은 목적으로 전두환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정화사업으로 황토현 기념관·전봉준 장군의 동상 등을 세우도록 했다. 하지만 1980년 5월 당시 야당 정치인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읍농고에서 열린 13회 동학문화제에 참석한 이후 이를 막지 못한 책임으로 기념사업회장을 구속하고, 정읍군수·경찰서장을 직위해제했다. 박대길 정읍시 동학농민혁명선양팀장은 “군부정권이 행한 ‘정화사업’은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적비 뒷산인 두승산에 오르면 동쪽으로 배들평야, 서쪽으로는 부안군 백산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동학로 끝에서 황토현로, 말목장터로를 따라오면 배들평야 끝으로 만석보터가 있다. 고부군수 조병갑은 정읍천과 동진강이 만나는 곳에 새로 만석보를 만들어 군민들에게 물세를 물렸고, 이에 전봉준 등이 주동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고자 사발통문을 쓰고 농민들과 함께 관아를 습격했다.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었다. ●“농민도 성실히 일하면 잘사는 사회” “정읍이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라면, 고창은 동학농민군의 조직·사상이 잉태된 곳”이라고 고창군 관계자들은 말한다. 고부농민봉기를 일으킨 전봉준이, 갑오년 음력 3월 20일 고창지역에 있던 손화중과 손을 잡고 무장현에서 봉기를 했다. 이 때문에 동학농민혁명이 충청도는 물론 경상·강원·황해도 등 전국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손화중은 당시 최시형과 함께 양대 동학접주 중 하나였다. 이런 점에 주목한 고창지역 동학농민혁명 관련 길은 전봉준로, 녹두로와 함께 동학농민군로, 손화중로 등으로 그 의미를 담고 있다. ‘인민은 나라의 근본이요, 그 근본이 깎이면 나라가 잔약해진다. 보국안민의 방책은 생각지 않고 바깥으로는 고향집만 꾸미고 오직 제 혼자 온전할 방법에만 힘쓰면서 녹봉과 벼슬자리만 도둑질하니 어찌 다스려지리오’ 동학농민군로가 끝나는 지점인 전남 영광과 접한 무장현 봉기 장소에 있는 기념비에는 당시 만들어진 이 포고문이 새겨져 있다. 오늘날 정부관료들에게 훈계해도 될 법한 글귀다. 농민이기도 한 진 소장은 “무장포고문은 동학농민혁명의 사상을 압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은 서푼어치라도 매년 오르지만, 쌀값만은 십수년째 16만원 내외로 같은 값이다. 정부는 전 국민을 먹여 살리는 국가기간산업인 농업을 경시하고 있다.”면서 “농민도 성실히 일하면 국민평균소득 정도는 벌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118년전 동학농민군이 이루고자 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못한 사회모습”이라고 강조했다. ●민란 아닌 혁명인 이유는 ‘인권중시사상’ 과거 고부군에 속했고 지금은 부안군에 속한 백산(白山). 이곳에서 열린 백산대회는 동학농민혁명사에서 가장 신나는 장면 중 하나다. 해발고도 47m에 불과한 낮은 산인 백산은 사방이 평야지대에 홀로 솟아 시야 확보가 쉽고, 호남 서부지역 교통의 요지였다. 정읍 배들평야 쪽에서 이곳 백산까지가 동학로라 이름 붙여졌다.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 갑오년 음력 3월 25~26일 1만명 가까운 농민군이 모였다. 전봉준 장군을 총대장으로 조직이 재편됐고 호남·호서 일대에 격문이 나붙었다. 백산에서 농민군 군율인 4대 명의·12조 기율도 제정된다. 왜 동학농민혁명이 ‘민란’이 아닌 ‘혁명’이었는지, 이 군율에 나타난다. 4대 명의에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물건을 함부로 없애지 않는다.’는 내용이, 12조 기율에는 ▲항복한 사람은 따뜻하게 대한다 ▲곤궁한 사람은 구제한다 ▲굶주린 사람은 먹여준다 ▲도주하는 사람은 쫓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은 진휼한다 ▲병든 사람은 약을 준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때 집결한 농민군은 한 달 뒤 조선왕조의 본향이자 전라도 수도인 전주성 점령까지 승승장구했다. 이런 백산에서의 기억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부안이야말로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직접 계승한 곳”이라는 자부심으로 남았다. 정재철 백산고 국사교사는 “동학농민혁명 정신은 부안에 저항정신·애향심으로 남아 있다.”면서 “그 힘으로 2003~2005년 2년 2개월여 전 군민의 방폐장 반대 시위를 벌인 것”이라고 말했다. 세 지역 중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가 가장 활발한 곳도 역시 부안이다. 상서면 호암수도원에는 천도교 교구가 설치돼 있고, 주기적으로 집회가 열린다. 민관이 함께 통치하는 집강소를 세우는 등 새 시대를 열어가던 동학농민혁명군은 갑오년 음력 11월 충청도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에 크게 패하면서 급격히 쇠퇴한다. 한 달 뒤 전봉준은 옛 친구의 밀고로 전라도 순창 피노리에서 체포되고, 이듬해 을미년 음력 3월 교수형을 당한다. 이런 안타까운 결말에 민초들은 이런 노래를 남겼다. ‘가보(甲午·1894년)세. 가보세. 을미(乙未·1895년)적 을미적 병신(丙申·1896년)되면 못 가보리’ 혁명이 성공했다면 달랐을까. ‘동학로’라 이름붙여진 서로 다른 길들은 한결같이 가난한 농촌길이었다. 토지가 비옥하고 기후가 좋아 이 지역 쌀 생산은 전국 최고지만, 농민들의 소득은 여전히 밑바닥이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10회는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방동 약수로를 소개합니다.
  • [데스크 시각] 그때 우리가 알았어야 할 한가지/심재억 전문기자

    [데스크 시각] 그때 우리가 알았어야 할 한가지/심재억 전문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했던 국격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데, 아니 실체도 모호한 국격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국정 난맥상도 이쯤 되면 한참 낯이 뜨거워야 할 텐데 여전히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의 도그마에 취해 똥오줌을 못 가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더욱 수습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쥐뿔도 아니면서 눈에 힘만 주고 설치던 ‘날라리 진보’가 선사한 ‘종북’이라는 그 새콤달콤한 종합선물세트도 약발 끝이다. 영유아 무상복지 정책의 수정 논란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말이 수정이지 정책 철회 수준이다. MB정권의 다양하고 파괴력 있는 실정 파노라마가 어지러운 판에 이 정도 사안이 대수일까만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복지는 국가의 의무이고, 국민에게는 권리인 까닭이다. 국민들이 기꺼이 세금을 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삼척동자가 봐도 엉망인 정부의 예산 지출구조를 개혁하려는 고민은 하지 않고, 하기 쉽다며 대뜸 영유아 복지에 칼을 대겠다는 발상이 놀랍다. 당초 4조원이면 떡을 친다며 울대 돋우던 4대강 사업 예산은 그 새 30조원에 이르렀는데, 연간 부담액이 1조 9000억원 수준인 영유아 무상복지가 버겁다는 건 복지에 대한 몰이해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가뭄에 타드는 논밭에 물 한 바가지 못 대는 4대강에 혈세를 쏟아붓느라 영유아 복지예산을 토막내겠다니, 육아 부담을 덜어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장담이 허튼 말임을 알겠고, 그러면서도 입만 열면 국민 운운하는 그 후안무치가 실은 돌아서서 국민들 뒤통수 때리는 짓임을 아는 것도 어렵지 않다. 논란은 정부가 0∼2세 영유아의 무상보육 철회를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영유아 무상정책이 무엇이냐 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국정연설에서 “두살 이하 아기를 둔 모든 부모는 올해부터 누구나 보육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다.”고 자랑했던 바로 그 정책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4·11 총선 공약으로 내세워 젊은 층 표를 쓸어담았고, 반응이 짭짤하자 아예 대선까지 겨냥해 “내년부터 만 5세까지의 모든 아이들에게 양육비나 보육비를 지원하겠다.”고 했던 바로 그 정책이다. 이쯤 되면 ‘약속은 지킨다.’며 측근들이 열나게 발전기를 돌려대는 그의 이미지가 실은 또 다른 여론조작의 산물일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각성의 계기’도 될 법하다. 하기야 정부가 영유아 전면 무상보육 정책을 총선용으로 급조해 내놓을 때부터 꼬일 줄 알았던 문제다. 급한 김에 재원 조달방안을 대충 엮어놓다 보니 재정 부담을 덤터기 쓴 지방자치단체들이 두 손을 들고 만 것이다. 자치단체들은 향후 두세 달이면 재원이 바닥나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정부가 수습하라고 입에 거품을 문다. 그럴 만도 하다. 총선을 앞두고 정권이 계속 헛발질만 해댄 통에 전국에서 “선거 끝”이라며 곡소리가 쏟아지고, 새누리당에서는 모두 노랗게 뜬 얼굴로 위만 쳐다보는 판국에, 총선에 깨지고 작두날 타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거라도 내지르고 보자고 내민 카드였으니 현실적 타당성을 주밀하게 살폈을 리 만무하다. 그랬는데, 이게 계산과 달리 대선까지 버텨주지 못해 골머리가 아프다. 화들짝 놀라 이번에는 슬그머니 선별지원책을 만지작거린다. 많이 듣던 말이다. 되짚어 보니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전면 무상급식에 맞서 내세운 선별급식안과 희한하게도 닮았다. 지금으로서는 중앙분리대를 치고나가 역주행을 시작한 정부의 구상이 어떻게 종결될지 알 수 없다. 이런 유의 기만이 선거 때마다 넘쳐나지만 정작 분노해야 할 국민들 시선이 엉뚱한 데 가 있는 것도 문제이고, 그걸 잘 아는 사람들이라 어렵게 자리잡은 복지의 디딤돌을 아예 들어내 버리지나 않을까 불안하다. 분배구조가 엉성해 성장의 과실을 재벌 등 상위 1~2%가 독점하는 나라에서 복지 쪽으로 한 걸음 내딛기가 이렇게 어렵다. 이 정권이 뒤집어 쓴 위장포를 한 겹 들춘 영유아 무상복지 논란을 ‘복지쿠데타’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jeshim@seoul.co.kr
  • 정치범 아기 500명 ‘강탈’ 아르헨 前 대통령 50년형

    ‘더러운 전쟁’이라 불리는 아르헨티나 군사정권 시절의 독재자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86)가 ‘아기 납치’와 관련한 범죄로 중형을 선고받았다. 아르헨티나 법원은 5일(현지시간) 1976~1983년 군정 시절 좌익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감옥에 수용된 정치범들로부터 조직적으로 아기를 납치해 군인과 그 가족들에게 강제 입양시킨 혐의로 비델라 전 대통령에게 징역 50년형을 선고했다. 비델라는 독재 시절 저질렀던 납치, 구금, 고문, 살해 혐의로 2010년 이미 종신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조직적 계획’이라고 알려진 이번 사건에 대한 이날 재판은 당시 34명의 아기를 불법 납치한 혐의에 대한 것으로, 피고는 비델라 전 대통령과 군정 마지막 집권자인 레이날도 비뇨네(84), 군인, 경찰 등 모두 11명이다. 비델라는 “아기 납치는 무계획적으로 발생한 것이지 조직적으로 계획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하며 “오히려 감옥에 수용된 정치범들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을 ‘인간 방패’로 내세워 국가를 상대로 싸우려고 했다.”고 말했다. 더러운 전쟁 기간 동안 실종된 아기 어머니들이 모여 만든 인권단체인 ‘5월광장 어머니회’는 1996년부터 정부를 상대로 사라진 아기들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 단체는 “납치된 아기 500여명 중 106명은 현재 친부모를 찾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족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델라는 1976년 3월 쿠데타를 일으켜 이사벨 페론 대통령을 무너뜨리고 1981년까지 집권했다. 1983년 라울 알폰신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군정 인사에 대한 처벌이 이뤄졌지만 군부의 반발을 우려한 카를로스 메넴 전 대통령이 1989년 사면법을 제정하면서 처벌이 중단됐다. 그러나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이 이 법을 취소하면서 2006년부터 처벌이 진행되고 있다. 조희선기자 hsncho@seoul.co.kr
  • [열린세상] 가계부채, 무엇인가 해야 할 때다/김관기 김&박 법률사무소 변호사

    [열린세상] 가계부채, 무엇인가 해야 할 때다/김관기 김&박 법률사무소 변호사

    가계부채 걱정을 한 지가 벌써 몇 년째인가. 워킹 푸어, 즉 일하는 서민이나 주택담보대출을 힘들게 갚아 나가는 하우스 푸어 등의 용어는 진부할 정도다.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내려고 고금리 대출과 신용카드 급전을 쓰고 그 소액 대출을 갚지 못해 주택이 경매당하는 사태가 현실화하고 있다. 이것이 주택 가격을 떨어뜨려 은행에 손해를 끼치고, 은행은 가계대출을 축소해 다시 경매를 유발하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그런 와중에도 가계의 과도한 차입을 탓하는 한편 과도하게 대부해준 금융업자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논의만 가끔 있었을 뿐, 가계부채 축소를 위한 조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문제를 바로 보자. 가계부채에 대한 핵심 대책은 채무를 직접 취소·조정하는 것이다.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불편한 진실은 그들의 잘잘못을 따질 여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우는 바가 있어야 한다. 이집트어와 그리스어가 각인되어 있어 고대의 상형문자를 번역할 수 있는 열쇠가 된 로제타스톤은 프톨레마이오스 5세가 기원전 196년에 채무자와 죄수들에게 사면을 선언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었다. 구약성서에도 7년마다 채무를 면제해 종을 풀어 주고, 50년마다 희년을 삼아 땅을 원소유자에게 돌려 주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세상은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빚에 못 견딘 농민들이 달아나 유민이 되고 사회는 붕괴한다. 고대 그리스의 솔론이 취한 개혁을 보자. 그 시절 인신을 담보로 빚을 내 쓰는 것이 허용돼 채권자는 빚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를 죽일 수도 있었고 노예로 팔 수도 있었다. 비참한 운명에 처한 채무자나 가족들이 폭력으로 저항하는 갈등이 자주 발생하는 상황에서 계층 간 타협으로 지도자가 된 솔론은 약간의 보상으로 기존의 채무를 취소해 멀리 노예로 팔려간 사람을 귀국시키고, 부채로 인하여 빼앗긴 땅을 원소유자에게 돌려 주었다. 개혁의 결과, 사회적 긴장이 완화되고 경제도 발전하였다. 그 무렵 아테네 지역에서 생산된 검은색 도기가 지중해 연안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증명된다. 과격한 채무 취소는 먼 나라의 오래된 이야기만도 아니다. 1961년 5월 16일의 쿠데타로부터 불과 한달이 지나지 않은 6월 10일 농어촌고리채정리법이 시행됐다. 이에 의하면 채권을 지역별 위원회에 신고하여 위원회가 금액을 조정하고, 농업은행이 농업금융채권으로 채권자에게 대위변제를 하고 채무자에게 구상하도록 하되, 신고하지 않은 채권은 실효하도록 하였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이런 혁명적 조치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지만 파산제도의 활성화, 주택담보대출의 대환 인정과 같은 법제적인 대응을 강구할 수 있다. 1929년 대공황 이후 미국의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실패한 기업가와 소비자가 파산절차를 통하여 금융채무에 관한 면책을 얻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을 기본적 인권으로 인정한 로컬 론 대 헌트 판결이 1934년에 나왔다. 담보대출의 연체로 주택을 경매로 잃을 위기에 처한 가계에 연방정부가 장기저리자금을 융자하는 조치가 시행되었다. 1938년의 챈들러 법은 근로자가 즉시 면책을 얻는 대신에 향후 버는 수입으로 담보대출을 포함한 채무를 상환하고 주택을 지키는 방식을 도입하였다. 금융업자와 가진 자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그들은 위기에 처한 근로계층·하위중산층을 지켜냈고 혁명과 파시즘을 피했다. 사법 엘리트들이 채무자를 구하기 위하여 파산제도를 활용하기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우리의 현실은 답답하다. 개인회생제도는 각 가정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도식적인 변제계획안을 적용, 채권추심과 비슷하게 운영돼 민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공정채권추심법은 채무자대리인이라는 핵심을 빼고 제정되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주택담보대출을 개인회생에 포함시키는 입법안도 금융 당국의 반대로 두 번이나 좌절되었다. 사회적 안전밸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러다가 언젠가는 대중의 과격한 채무 취소 주장을 수용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을 맞게 되리라. 가계부채가 심각하다고 말만 하지 말고 무엇인가 해야 할 때이다.
  • 김두관 “라이벌 박근혜뿐”… ‘朴 4대 불가론’ 공세

    김두관 “라이벌 박근혜뿐”… ‘朴 4대 불가론’ 공세

    오는 8일 민주통합당 예비 후보로 대선 출마 선언을 할 예정인 김두관 경남지사가 4일 “당내에는 라이벌이 없고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라이벌”이라며 당내 경선 승리를 자신했다. 민주당 대권 주자들도 바쁜 행보를 이어 갔다. 김 지사는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야권 단일 후보가 돼야 하는 이유는 박 전 위원장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카드이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제가 전문대, 이장 출신인데 전문대 졸업생 450만명, 전직 이·통장 100만명 등 550만명이 (나를) 지지하면 게임 끝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표의 확장성을 강조했다. 김 지사는 “박 전 비대위원장은 군사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이라 말하는 반헌법적 인물, 이명박 정권 실정에 공동 책임이 있는 국정 파탄의 주역, 독선과 불통으로 이명박 정권보다 더한 민주주의 위기를 가져올 사람, 미래 가치를 찾아볼 수 없는 과거의 그림자”라며 ‘박근혜 대통령 4대 불가론’을 주장했다. 김 지사는 “역대 대선에서 비토 세력이 많은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다.”며 친노 대표주자인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을 향해 견제구를 던졌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해서도 “국정 운영은 한 개인이 탁월한 리더십을 갖고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라고 깎아내렸다. 김 지사는 기자간담회에 앞서 민주당 시도지사협의회에 참석해 지사직 사퇴를 공식 전달했다. 행정자치부 장관 재임 당시 살았던 서울 마포구 대흥동에 거처를 마련한 김 지사는 7월 한달간 인지도가 낮은 서울에서 표심 공략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는 전날 박원순 서울시장 등을 만나 “앞으로 5년간만 서울에 살고 싶다.”고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출마 선언 이후 강행군을 해온 문재인 고문은 이날 임플란트 치료를 받으며 정책 공부에 돌입했다. 그는 내부 전문가 10여명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4대 성장 동력 관련 정책 토론을 벌였다. 문 고문은 평소 이가 좋지 않아 발음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손학규 상임고문은 서울 강동구민회관에서 ‘저녁이 있는 삶’에 이은 두 번째 정책 슬로건인 ‘맘(mom) 편한 세상’ 정책간담회를 열고 보육 분야에 대한 여성의 표심 잡기에 나섰다. 손 고문은 “육아휴직제를 활성화하고 출산육아보험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약에는 ‘0~2세, 3~4세 맞춤형 무상교육’이 포함될 예정이다. 손 고문은 다음 주 중 보육 분야 공약을 공식 발표한다. 손 고문은 앞서 오전 자신의 정계 입문을 도왔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감기 증세로 입원한 서울대병원에 들러 위로하기도 했다. 5일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미니콘서트 형태로 그의 저서 ‘저녁이 있는 삶-손학규의 민생경제론’ 출판기념회를 열기로 했다. 정세균 상임고문은 전남 신안 하의도의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해 주민 간담회를 가지며 전통 호남 표밭 다지기에 공을 들였다. 정 고문은 자신이 호남 출신의 유일한 대선 주자로 김 전 대통령의 적통임을 거듭 부각시켰다. 정 고문은 이날 목포 농산물경매장에서 경매 체험을 하고 현대 삼호중공업 조선소, 목포 조선소 등을 찾아 지역 경제를 챙겼다. 아울러 인터넷 방송인 ‘정세균의 옥상토크’를 매주 3회 홈페이지를 통해 내보내며 소통 강화에도 나섰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중도좌파’ 파라과이 대통령 탄핵 사임

    ‘중도좌파’ 파라과이 대통령 탄핵 사임

    우파가 장악한 파라과이 의회가 21일(현지시간) 중도좌파 성향의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 정부를 출범시키자 좌파 계열의 중남미 국가들이 ‘의회 쿠데타’라고 맹렬히 비난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 15일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에서 북서쪽으로 250㎞ 떨어진 쿠루과티 지역의 한 농장에서 경찰과 빈농이 충돌해 최소 17명이 숨지고 80여명이 다친 사건이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됐다. 하원은 페르난도 루고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으며 탄핵을 발의했고 21일 탄핵안을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다. 상원 역시 전날 표결에서 찬성 39표, 반대 4표로 탄핵안을 승인했다. 루고 대통령은 즉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으며 페데리코 프랑코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해 내년 8월 15일까지 루고 대통령의 잔여 임기를 채우게 됐다. 이에 아르헨티나 외교부는 “(루고 대통령의 탄핵은) 민주적 질서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비판하며 파라과이 주재 자국 대사를 즉시 철수시키기로 했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파라과이를 메르코수르(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남미 4개국 공동시장)에서 제명할 수 있다는 의사까지 밝혔다. 메르코수르는 오는 28~29일 아르헨티나 멘도사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파라과이 사태에 대한 입장을 논의할 예정이다. 조희선기자 hsncho@seoul.co.kr
  • “국회 입법권 짓밟는 쿠데타적 발상”

    “국회 입법권 짓밟는 쿠데타적 발상”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19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한국규제학회가 체결한 양해각서(MOU)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 양해각서는 19대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에 대해 규제 모니터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전경련에서 경제 민주화를 해치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말문을 연 뒤 “경제 민주화를 막기 위한 경제 쿠데타적 발상을 취소할 것을 촉구한다. 민주당은 전경련에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압박했다. 그는 “(전경련이) ‘헌법 119조 2항에 명시된 경제 민주화 조항을 삭제하자’는 반헌법적 주장을 서슴지 않더니 한국규제학회를 내세워 국회 규제 입법마저 무력화하려 한다.”면서 “헌법이 정한 국회 입법권마저 짓밟겠다는 건지 유감을 표하고, 경제 민주화를 무산시키려는 오만방자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측 한 관계자는 “박 원내대표가 (전경련이 자발적으로 취소하도록) 엄정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원내대표는 초선 의원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도 “전경련이 경제 민주화에 역행하면서 의원들의 입법 활동을 감시하겠다고 했다. 그분들이 바로 경제 민주화 헌법 조항 삭제를 주장한 사람들”이라면서 “이럴 때 우리 민주당 의원들, 특히 초선이 들고일어나서 부당함을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양해각서 체결식에 참석한 김주찬 광운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 입법의 경우 자체 심사와 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를 거치고 난 뒤 법안을 제출한다. 이렇게 되면 상당히 좋은 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면서 “의원 입법의 경우에는 그런 규제가 없어 나중에 초래되는 결과가 국민에게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원 구성 협상이 끝나고 모니터링 한 법안에 대해 리포트가 나오면 오해는 불식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범수기자 bulse46@seoul.co.kr
  • 재계 “입법 감시” 정계 “반헌법적 행태”… 경제민주화 전면전

    재계 “입법 감시” 정계 “반헌법적 행태”… 경제민주화 전면전

    재계가 경제 민주화와 관련해 정치권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19대 국회의원들이 내놓는 각종 규제법안 감시에 착수, 정치권이 의원입법을 통해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규제를 남발하는 것을 사전에 막아보겠다는 복안이다. 또 대선을 앞두고 신규 순환출자 금지, 재벌개혁 등 재계에 민감한 논의가 부상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도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9일 재계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이날 민주통합당 등 정치권이 재계에 대해 ‘쿠데타적 발상’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한 것은 전날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한국규제학회와 함께 19대 국회의원 발의 법률안에 대해 규제 모니터링을 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전경련과 규제학회는 다음 달부터 학회 내에 규제영향분석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정기적으로 의원입법의 규제 사항을 점검하는 활동을 시작할 방침이다. 전경련에 따르면 18대 국회에 제출된 의원 발의 법률안은 정부 제출 법률안(1466건)의 7배 수준인 1만 359건이었다. 의원 발의 법률안의 가결 건수 역시 1287건으로 정부 제출안 가결 건수인 632건의 2배를 넘겼다. 여기에 발의된 규제 신설 및 강화 법안 1986건 중 국회의원 발의 법안은 전체의 93%인 1848건에 달했다. 정부가 발의한 법안은 138건에 그쳤다. 이 중 가결된 266건의 규제 신설·강화안 가운데 219건(82.3%)이 의원 발의안이었고, 정부 안은 47건에 그쳤다. 가결된 의원 발의 규제안 중에는 과징금 상향조정, 가격보고 및 공개 등 기업 경영에 파급효과가 큰 규제가 다수 포함됐다. 이러한 흐름은 19대 국회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이후 이틀간 의원들이 발의한 법률안 중 절반 정도가 중소기업 적합 업종, 대부업 등록,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청년고용 할당제 등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의원입법은 부처 자체 심사와 규제개혁위원회 본심사를 거쳐야 하는 정부 법안과 달리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한 장치가 마땅치 않아 무분별한 규제가 이뤄질 수 있다.”면서 “입법 목적과 수단이 잘 맞는지 따져 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의원의 법률안 발의가 늘어나는 것은 의회 본연의 입법 기능이 발전했음을 보여 주지만 그 과정에서 규제가 남발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재계는 2010년 중순부터 정부와 정치권에서 대·중소기업 상생을 이슈로 내세우는 등 압박을 강화한 데 대해 수세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정치권이 여야 가리지 않고 일감 몰아주기 금지와 신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등 강도 높은 경제 민주화 정책을 내걸면서 재계는 ‘반시장주의 정책’이라면서 반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4일에는 전경련의 유관 단체인 한국경제연구원이 경제 민주화 관련 정책토론회에서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 정책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다. 정치권과 재계의 갈등은 대선이 다가올수록 수위가 높아질 전망이다. 전경련과 한경연은 오는 10월 이후 거시금융과 기업제도 분야에서의 재계 요구를 담은 ‘차기 정부 정책 과제’ 보고서를 펴낼 예정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다른 재계 단체들도 정책 건의서 등을 내놓을 계획이다. 일부 대기업 역시 특정 후보군의 예상되는 정책 방향과 대응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 중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재계 단체 관계자는 “유로존 위기 등에 따라 글로벌 경제가 과거 경제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정치권이 포퓰리즘적인 입장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정치권과 어느 정도 대립각을 세우더라도 재계 나름의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이집트 군부 임시헌법 발동… ‘위기의 봄’

    “노골적인 군사 쿠데타로, 사실상의 계엄 상황이다.” 호스니 무바라크의 30년 통치를 종식시킨 이집트 국민의 민주화 바람이 16개월 만에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이집트 사상 첫 민주적 대선의 결선 투표가 17일(현지시간) 일단락됐지만, 과도정부를 이끄는 군최고위원회(SCAF)가 군부의 권한을 유지, 강화하는 임시헌법을 발동함으로써 이집트 정국이 또다시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AFP와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SCAF는 임시헌법에서 새로운 의회가 구성될 때까지 입법권과 예산 감독권을 SCAF의 권한 아래 두고, 새 헌법을 마련할 제헌위원회 위원 100명도 직접 지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조치는 무바라크 시절 임명된 인사들로 구성된 헌법재판소가 하원의원 3분의1이 불법으로 당선돼 의회 구성 자체가 불법이라고 규정하며, 의회해산 명령을 내린 지 이틀 만에 이뤄졌다. 외신들은 군부가 입법권과 예산 감독권을 계속 장악함으로써 군 관련 법률 등 입법상의 기득권과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유지하려 한다고 전했다. 이는 60년간의 군부 통치를 종식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 선출직 대통령이 제한된 권한만 행사할 처지에 놓였다는 것을 뜻한다. SCAF의 조치를 전후해 의사당은 원천 봉쇄되고, 수도 카이로 상공에는 군 헬기가 날아다니며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또 사소한 법률을 위반하거나 범죄 혐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시민들을 체포할 권리를 군경이 행사하게 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당장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SCAF의 위헌적 행태를 비난하고, 이집트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한때 무바라크 이후 지도자로 거론된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트위터에서 “시민 혁명과 민주주의의 심각한 역행”이라면서 “SCAF가 민간인 대통령의 권한을 빼앗고, 군부 통제를 강화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한 시민은 페이스북에 SCAF의 쿠데타는 “선출됐지만 권한 없는 대통령”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조지워싱턴대 중동연구소의 마크 린치 소장은 트위터를 통해 “SCAF는 어떤 실권도 새 대통령에게 이양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집트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갔다.”고 밝혔다. SCAF가 제시한 일정에 따르면 향후 3개월 내에 헌법 초안이 마련되고, 헌법안 승인을 위한 국민투표와 새 총선이 실시된다. 이를 위해 적어도 5개월 이상 소요될 것으로 외신들은 전망했다. 결선 투표 마감 이후 승리를 주장하고 있는 무슬림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61) 후보와 지지자들은 ‘군부 종식’을 강조하며 SCAF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다. 무르시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장담했지만, 실제 당선되면 군부와의 극한 갈등과 대치를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무바라크 시절 마지막 총리를 지낸 군사령관 출신의 아흐메드 샤피크(71)가 집권하면 군부와 상호 협력하며 반대파와 시위대에 대한 탄압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샤피크 측은 “(무슬림형제단이) 선거를 하이재킹하려 한다.”며 무르시 진영의 우세 주장을 일축했다. 결선 투표의 공식 결과는 21일 발표될 예정이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씨줄날줄] 육군사관학교/곽태헌 논설위원

    육군사관학교 11기 출신으로, 보안사령관(현 기무사령관)을 거친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사’자(字)로 끝나는 서열과 관련, ‘학사 위에 석사, 석사 위에 박사, 박사 위에 육사, 육사 위에 보안사, 보안사 위에 여사’라는 말이 나돌았다. 1980년대 초 어렵다는 박사 학위를 받아봐야 육사 출신 밑이고, 육사 출신 중에도 보안사 출신이 더 실세였다는 얘기다. 육사, 보안사 출신이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보안사가 세다고 해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 여사의 영향력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었다. 보안사 위에는 여사가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79년 10·26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그해 12·12로 최고의 실력자가 됐다. 1980년 전두환 장군을 비롯한 신군부가 전면에 부상하면서 육사 출신 전성시대가 열렸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도 육사 출신이지만, 4년제 정규사관학교 1기라는 자부심이 강했던 전두환·노태우·정호용 등 11기 출신들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육사 출신의 위상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19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에 사실상 내정된 육사 출신의 새누리당 강창희 의원(6선)은 신군부 집권 뒤 중령으로 예편해 금배지를 달았다. 초대 대통령인 고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현 이명박 대통령까지, 10명의 대통령 중 육사 출신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3명으로 가장 많다. 집권기간으로만 보면 절반이나 된다. 1961년 5·16쿠데타 이틀 뒤 육사 생도들이 쿠데타를 지지하는 시가행진을 한 배후에는 당시 대위였던 전두환의 개입이 있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소수파이던 육사 출신 장교들은 군 내에서 풋내기로 설움을 받았으나, 5·16 쿠데타 지지 시위를 이끌어낸 뒤부터 힘을 얻기 시작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최근 육사에서 열린 육사발전기금 200억원 달성 행사에서 생도들을 ‘사열’했다. 선배가 후배를 아끼고, 후배가 훌륭한 선배를 존경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모교에 대한 사랑도 당연하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국가반란수괴죄가 인정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후배 생도들을 사열할 자격이 없다. 51년 전에는 육사 교장이 생도들의 지지행진에 반대하는 것을 쿠데타 주모자들에게 밀고한 ‘정치군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 최근에는 선량한 후배 생도들에게 부담을 주는 ‘사열’까지 했으니 역시 제 버릇은 남을 못 주는 것인가. 잘못된 일부 선배 때문에 잘못 없는 육사 출신이, 육사 생도가 억울하게 매도당해서는 안 된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민주, 전두환·노태우 국립묘지 안장금지법안 발의

    민주통합당 진성준 의원은 12일 “군사반란 수장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면·복권이 돼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도록 하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두 전직 대통령은 1997년 12월 특별사면 및 복권이 이뤄진 상태다. 진 의원은 “국립묘지의 영예성과 국가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는 부적격자들이 ‘사면법’에 따라 국립묘지의 안장대상자로 결정되는 사례가 발생해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립묘지에 국가반란의 수장들이 사면·복권됐다고 안장되는 것은 군사쿠데타를 정당화하는 것이며 유공자와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며 “19대 국회 의정활동의 첫 번째 대표발의 법안으로 개정을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은 임수경·이인영·전병헌 등 민주당 의원 15명이 공동 발의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신당동 가옥 개방은 언제…

    서울 중구 신당동 박정희 가옥은 당초 올해 9월에 일반인들에게 개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년으로 연기된 상태다. 유족과의 협의, 문화재청 현상변경 등 관련 절차 이행, 전문가 자문사항 반영 등에 필요한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 때문이다. 시 문화재과 관계자는 12일 “향후 박정희 가옥은 12월까지 전시공사를 마치는 대로 점검을 거쳐 개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정희 가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58년 5월부터 쿠데타를 일으킨 직후인 1961년 8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관사로 이주할 때까지 생활했던 곳이다. 시 문화재과에 따르면 당초 유족 측에서는 가옥 내 물건들을 2010년까지 이전하기로 했지만 이전 장소 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지난해 6월이 돼서야 이전을 완료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복원공사도 당초보다 5개월 늦어져 지난해 12월 준공할 수 있었다. 복원공사 뒤에도 전시공간 조성을 추진하면서 근현대사와 근대건축 전공학자들로 구성된 전시자문위원회의 자문사항 반영, 대통령기록관 등 관련기관과의 협의를 통한 전시유물 확보 등을 위해 전시 공사가 늦어지면서 개방 일정이 늦어지고 있다. 지난 2월 기념관을 개관한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 기념·도서관’은 원래 올여름에 도서관도 개방할 예정이었지만 가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도서관 개관을 위해서는 기념사업회와 시가 운영협약을 체결하고 건물을 시에 기부채납하는 등의 절차가 필요하지만 시와 기념사업회 측은 도서관 성격에 대해서도 아직 합의하지 못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선택! 역사를 말하다] (15) 박제가와 유수원

    [선택! 역사를 말하다] (15) 박제가와 유수원

    국왕이 내려주는 술잔을 받고 국왕과 더불어 꽃길을 산책하고 시를 쓰는 신하가 있다. 가득 내려진 음식에 국왕의 따스한 눈길을 받는 신하는 감격하여 세상을 품에 얻은 것 같다. 한편, 국왕을 인정하지 않고 끌어내려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다가 역모라는 이름으로 대역죄인이 되어 형장에 서 있는 신하가 있다. 그의 학문은 세상을 바꾸기에 충분하였지만,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뜻을 펼칠 수 없었다. 이 두 사람의 운명은 왜 이리 다를까? ●정조의 총애 받은 자 vs 북학의 원조지만 잊힌 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경륜의 학자들. 서얼이라는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국왕 정조의 총애로 정조시대 북학을 중심 정책으로 만들어낸 박제가와 북학의 원조라고 할 수 있지만 영조대 반역자로 규정된 유수원의 삶은 한편으로 유사하면서 한편으로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유수원과 박제가는 모두 우리 역사에서 북학을 강조한 학자들이다. 박제가는 정조가 규장각 5대 검서관의 한 명으로 가장 총애하는 인물이었고 ‘북학의’라는 명저를 남긴 인물이다. 그러나 유수원에 대해서는 조선후기 역사를 전공한 학자들이 아니고는 대부분 관심 밖의 인물이며 그가 ‘우서’(迂書)라는 개혁사상이 가득 담긴 책을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이들은 거의 없다. 그만큼 역사의 기억에 남는 인물이 아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그가 영조대 ‘나주벽서 사건’(1755년 을해옥사)이라는 역모 사건의 관련자이고 그 탓에 대역죄인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역적으로 몰린 그의 이야기가 후세에 제대로 전달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얼 출신이었지만 정조의 총애를 입었던 박제가는 정조의 배려에 의해 두 번이나 연행사로 참여하면서 새로운 중국 문화를 볼 수 있었고, 이러한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조선의 다양한 문화에 적용시켜 변화를 추구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그의 북학 정신은 정조의 적극적 후원으로 경세치용학파와 더불어 이용후생이라는 큰 사상으로 발전하여 정조시대 백성을 부유하게 하고 국가 재정을 안정시키는 데 많은 이바지를 하였다. 두 사람 모두 시대를 앞서가는 개혁 사상이 있었지만 한 사람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한 사람은 역사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국가 권력의 최고 정점이었던 국왕과의 관계였다. 국왕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던 인물과 국왕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와 더불어 파트너로서 국가 개혁에 동참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어떤 시대적 이유로 인생과 역사의 평가가 달라졌을까? ●명문 소론 가문 출신의 귀머거리 유수원 유수원은 1694년(숙종 20년)에 유봉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종숙부가 영조 연간 영의정을 지냈던 유봉휘이니 명문 가문 출신임을 알 수 있다. 그의 본관인 문화 유씨는 당파적으로 소론이었고, 유수원은 소론의 중심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사실 유수원은 소론 중에서도 급진파라고 할 수 있다. 유수원에게는 치명적인 신체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귀머거리였던 것이다. 그가 언제부터 귀가 먹었는지 알 수 없지만, 훗날 영조와의 대화에서도 필담으로 할 정도였으니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신체적 결함은 그를 더욱 과격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유수원의 종숙인 유봉휘는 영조 즉위년에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하였지만, 영조는 그를 끝내 조선 팔도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저주의 땅 경원으로 유배 보내고 말았다. 그 이유는 유봉휘가 “경종이 즉위한 뒤 ‘김창집 등 4명의 노론 대신들이 연잉군을 세제(世弟)로 책봉하고 대리청정을 시키라고 강요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노론 입장에서는 당연히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기에 제거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유봉휘를 종숙으로 두었으니 유수원 역시 노론에게 있어서는 견제의 대상이었다. 유수원은 20세에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24세에 정시 문과에 급제하였으니 가히 천재라고 할 만한 인물이었다. 조선시대 과거 평균 합격 연령이 41세였으니 24세에 합격한 것은 그가 뛰어난 자질과 열심히 공부하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유수원의 급진성은 경종에 의해 정6품의 정언으로 임명받은 후 나타났다. 나라가 안정이 안 되고 국정이 어지러운 것은 바로 소론 온건파인 영의정 조태구가 국정운영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상소를 올린 것이다. 영의정 조태구는 소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종대에 노론 4대신의 입장을 받아들여 영조의 왕세제 책봉을 묵인한 인물이었다. 이처럼 소론 급진파로서 소론 온건파인 조태억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린 것은 이미 마음속으로 영조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영조가 국왕이 되고자 자신의 형인 경종을 독살하였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속에선 노론에 대한 적개심만이 아니라 국왕에 대한 반감도 가지고 있었다. 집권 세력에 대한 반감을 품고 있는 유수원은 영조를 비롯한 집권 노론에게 중용될 수 없었다. 관직에서 물러난 그는 본격적으로 사회 개혁에 대한 구상과 집필을 하였다. 나라가 왜 이리 어려워졌을까에 대한 고민을 그는 깊이 하였다. 그 결과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사농공상’에 따른 신분 차별이 나라가 가난하고 백성이 빈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였다. 개인의 능력에 따른 직업 선택의 자유를 주어야 각자가 자신의 능력에 맞는 직분을 찾을 수 있고,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나라와 백성은 부국안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농공상이라는 편벽되고 고루한 강제성이 나라의 변화 발전을 이루지 못하게 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는 학문에 관심도 없고 실력도 없는 양반 사대부들이 유생(儒生)이라고 자처하면서 온갖 편법과 협잡으로 벼슬자리를 구한 다음 권력과 세도를 부려서 나라 꼴이 말이 아니라고 진단하였다. 바로 노론을 자임하는 양반들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다. 결국, 양반들 역시 놀고먹을 것이 아니라 일해야 하고 특히 상업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주장이 훗날 그를 양반상인론의 원조로 평가하는 것이다. 영조는 그의 ‘우서’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그를 중용하고자 하였으나 노론 대신들의 집요한 반대로 그를 우대할 수 없었다. 나주에 유배 가 있던 소론 윤지는 나주목사 등을 포섭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영조를 제거하고자 하였다. 영조는 자신의 최대 약점인 경종과의 관계를 건드린 이 사건에 대하여 격노하였고 직접 국문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사람이 죽어나갔다. 탕평의 군주 영조는 이미 없었다. 그 과정에서 나주벽서 사건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관련 인물들을 찾는 과정에서 유수원이 검거되었고 유수원은 영조 앞에서 당당히 국왕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그 결과 그는 다음 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모든 가족은 관노로 편입되었다. ●박제가 “조선의 가장 큰 폐단은 바로 가난” 유수원과 반대로 서얼 출신이었던 박제가는 정조를 만났다. 흔히들 사람들은 정조와 정약용의 관계를 이야기하지만, 실제 이덕무나 박제가에 대한 정조의 총애는 정약용 이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제가는 중국의 선진문물을 배워서 조선의 발전을 강조한 이용후생 학파의 대명사이다. 연암 박지원, 청장관 이덕무, 그리고 지난해 TV드라마 ‘무사 백동수’의 주인공이었던 야뇌 백동수(1743~1816)와 교류를 하며 북학파의 일원이 된 그는 정조 즉위 후 연경에 사신단의 일원으로 다녀온 후 북학에 대한 생각을 굳혔다. 이들 모두 정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는 인물들이었다. 정조는 국가 개혁을 위해서라면 당론을 가리지 않고 우대를 하는 인물이었다. 특히 민생 안정을 위해 그는 과감한 주장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정조의 의중을 파악한 그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 그것이 바로 ‘병오소회’(丙午所懷)이다. 1786년인 병오년에 자신이 품은 생각을 아뢴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바로 중국과의 통상과 양반상인론이었다. 박제가는 그렇게 이야기하였다. “현재 국가의 가장 큰 폐단은 바로 가난이옵니다. 그렇다면, 가난을 어떻게 하면 구제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중국과 통상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박제가는 중국과 통상을 중요시했고, 중국 통상 이후 주변의 여러 나라들과도 통상해야 한다고 하였다. 서양의 선교사들까지 조선으로 입국시켜 그들의 지식을 배워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도 하였다. 국가의 경제적 안정과 백성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양반들이 상인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양반상인론은 실제 정조가 수원에 화성을 축성하고 양반들을 대거 상업과 유통업에 참여시키고자 하는 정책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유수원이 노론으로 전향했더라면 결국, 유수원과 박제가는 나라와 백성을 위한 개혁 사상가이자 관료였다. 하지만, 유수원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박제가는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정조시대 문화의 중심에 서 있었다. 어떤 군주를 만나느냐에 따라 정치적 생명이 달라지는 봉건적 구조의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유수원이 만약 영조를 국왕으로 인정하고 노론으로 전향하여 그가 가진 생각을 적극적으로 펼쳤다면 어떤 세상을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또 박제가가 서얼이라는 이유로 조정에 대한 반감으로 출사하지 않고 역모를 꿈꾸었다면 그의 북학사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선택은 어렵고 힘든 것이다. 김준혁(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 전두환 손녀 호화 예식 사회자, 누군가 했더니…

    전두환 손녀 호화 예식 사회자, 누군가 했더니…

    KBS 윤인구(39) 아나운서가 국내 최고급 호텔에서 치러진 전두환(81) 전 대통령의 손녀 결혼식에서 사회를 본 것으로 드러나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의 장남인 전재국(53) 시공사 대표의 장녀 전수현(26)씨는 지난 5일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중소기업 이사 김모씨와 결혼했다. 결혼식에는 전 전 대통령과 이순자씨 부부, 차남인 전재용씨와 탤런트 박상아씨 부부, 장세동 전 대통령 경호실장 등 600여명의 하객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례는 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이 맡았고 사회를 윤 아나운서가 봤다. 신라호텔의 다이너스티홀은 장동건·고소영, 고수, 전지현, 강호동 등 톱스타들이 결혼식을 올린 곳으로 통상 억대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독재의 상징으로, “전 재산 29만원”이라는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펴온 전 전 대통령의 손녀가 공개적으로 초호화 결혼식을 올린 데 대해 비난여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날 사회를 맡았던 윤 아나운서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나오고 있다. KBS 아나운서실 관계자는 “윤 아나운서가 결혼식 사회를 본 것은 전수현씨와 개인적인 친분 때문으로 알고 있다.”면서 “영리 목적의 외부 행사가 아닌 개인적 친분으로 인한 사회는 허용된다.”고 말했다. 1997년 KBS에 입사한 윤 아나운서는 제4대 윤보선 대통령의 당질이자 윤치영 초대 내무장관의 손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야 “新공안 정국” 여 “색깔론 호도”

    야 “新공안 정국” 여 “색깔론 호도”

    순국선열과 국군 장병들의 충절(忠節)을 기리는 현충일인 6일 여야는 거친 색깔론 공방을 주고받았다. 민주통합당은 새누리당이 전날까지 종북 공세를 편 데 대해 신공안 정국 조성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집중 공세로 맞섰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색깔론 운운은 어불성설이자 정치 공세라고 일축했다. 민주당 대표 경선에 나선 이해찬 후보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새누리당은 종북·용공 광풍을 조장하고, 사상 검증이니 자격 심사니 하며 대대적인 이념 공세를 자행하고 있다.”면서 “매카시적 광풍으로 대선을 치르겠다면 이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국가관 문제를 거론한 것과 관련해서는 “헌정질서를 유린한 5·16 군사쿠데타와 12·12 군사쿠데타에 대해 어떤 견해인가.”라고 되물으며 “박정희·전두환 군부정권의 후예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군사정권에서 찾고 민주 정부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반헌법적 발상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한길 후보는 국회 기자회견에서 “새누리당의 신공안 정국 조성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를 위한 것”이라며 “새누리당이 이해찬 의원에게 퍼붓는 색깔 공세는 현 정부의 무수한 실정을 감추는 한편 신공안 정국을 조성하려는 불순한 시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인권법 문제와 관련, “인권의 이름으로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우상호 후보는 “대선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세가 하루이틀 사이에 사라질 것이 아니라고 보는 만큼 범야권 진영의 공동투쟁기구 구성을 제안한다.”면서 박근혜 전 위원장이 신공안 정국 조성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하며 “국회의원의 사상을 검증해서 걸러 내겠다는 발상은 유신시대 박정희 독재자의 그것과 똑같다.”고 공격했다. 박지원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라디오 교섭단체 대표연설과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박 전 위원장을 ‘독재자의 딸’이라고 호칭하며 여야 간 상임위 협상이 꼬이고 있는 것과 관련, “문방위를 주면 방송 장악과 박근혜의 정수장학회가 만천하에 드러날까 두려운가 보다. 열쇠를 쥐고 있는 박 전 위원장이 풀어야 한다.”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증오와 분열의 색깔론이 아니라 희망과 단결의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색깔 논쟁으로 몰고 가고 있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종북주의니 하는 말은 본인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나오는 말인데 그걸 지적한다고 색깔론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면서 “광범위하게 색깔 논쟁으로 몰아가는 것은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영우 대변인은 “북한 인권을 논하는 새누리당에 대해 공안정국 운운하는 분들은 도대체 어느 시대, 어느 나라 국회의원들인지 모르겠다. 북한 인권문제 언급에 있어 색깔론을 들고나온다는 게 어불성설”이라면서 “인권 문제를 논한다고 해서 매카시즘이나 색깔론으로 호도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재원 의원은 “민주당이 통합진보당과의 야권 연대를 해 오다가 (이념 문제) 불똥이 자기들한테 튀니까 벗어나 보려 했는데 임수경 의원 사건으로 여의치 않으니까 일종의 반격을 해서 초점을 흐려 보려는 거 아닌가.”라며 “성공할지는 국민들이 어떻게 판단할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정현 최고위원은 “종북주의는 민노당 분당과 이번 통합진보당 경선 논쟁 과정에서 자신들이 스스로 제기했고, 민주당도 수차례 우려를 표명했던 문제”라면서 “이래 놓고 색깔론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 얼굴에 침 뱉기다. 국가의 핵심 가치에 대한 문제 제기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색깔론 공방이 대선 정국까지 이어질지, 새누리당에 유리할지 등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특히 색깔 공방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한 대학교수는 “새누리당의 공세가 정교한 기획에 의하지 않고 우발적이라는 느낌을 준다.”면서 “따라서 여야를 당혹스럽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제명한다는 것 자체에 부담이 있고 간단한 문제가 아님은 잘 알고 있다. 종북 논쟁 얘기를 하며 대북 정책과 관련된 논의가 파묻히는 것이 아쉽다.”면서 “정치가 희화화되는 것 같다. 정책적인 부분에 대해 좀 진지한 논의를 해 보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념 논쟁이 붙었을 경우 새누리당으로서는 정권 심판론과 반이명박 정서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전략적으로 효과적일 것이다. 이념 구도로 갈 경우 민주당이 더 불리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이 쟁점을 6개월 이상 끌고 갈 수는 없기 때문에 대선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춘규 선임기자·최지숙기자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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