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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우디 예멘 반군 공습 “아랍 10개국 동시 참전” 도대체 왜?

    사우디 예멘 반군 공습 사우디 예멘 반군 공습 “아랍 10개국 동시 참전” 도대체 왜?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아랍권 10개국이 26일(현지시간) 예멘의 시아파 후티 반군을 상대로 한 군사작전을 전격 개시했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 배후로 지목된 후티를 저지하기 위해 걸프지역 수니파 왕정이 군사 개입을 주도함에 따라 예멘 사태가 중동 전체의 종파간 충돌로 확산할 공산이 더욱 커졌다. 아델 알주바이르 미국 주재 사우디 대사는 25일(미국 현지시간)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예멘의 합법적인 정부를 지키고 후티가 나라를 장악하는 것을 막기위한 작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날 새벽 전투기 여러 대가 후티가 장악한 수도 사나 북부 알다일라미 공군기지 등 후티의 주요 시설물을 겨냥해 공습했다. 후티의 본산인 사나 북쪽 사다주에도 폭격이 이뤄졌다. 후티와 연관된 알마시라방송은 이날 공습으로 민간인 18명이 숨지고 24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사우디 정부가 소유한 알아라비야 방송은 사우디가 이번 작전에 전투기 100대를 동원했고 지상군 15만명도 파병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예멘 공습에 동참한 국가는 사우디를 비롯해 이집트, 모로코, 요르단, 수단,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바레인 등이며 이집트, 파키스탄, 요르단, 수단도 지상군 파병을 준비 중이라고 이 방송은 전했다.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를 보호하기 위해 군함 4척을 홍해 입구 아덴만에 파견했다. 버나뎃 미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걸프국가 주도의 이번 작전에 정보·군수 분야의 지원을 하는 안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걸프국가 외무장관들과 전화통화에서 공습 결정을 환영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반면 이란 외무부는 “중동 전체의 안전을 위험하게 하는 침략행위”라면서 즉시 후티에 대한 공격을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후티는 지난달 6일 쿠데타로 정부를 전복한 뒤 현재 반대세력의 중심지인 남부도시 아덴까지 위협했다. 외신들은 아덴으로 피신했던 하디 대통령이 25일 후티가 아덴과 60㎞ 거리인 알아나드 공군기지를 장악하고 아덴 대통령궁 단지를 폭격하자 국외로 빠져나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아직 그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았다. 하디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후티를 피해 남부 항구도시 아덴으로 거처를 옮겨 유엔과 걸프국가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이곳을 임시수도로 선포, 반(反)후티 세력을 모아 상황 반전을 노려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예멘 반군 후티, 아덴서 ‘군사충돌’ 초읽기

    내전에 폭탄테러까지 겪은 예멘에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대리전이 임박했다고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 등 현지 언론들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예멘의 시아파 반군 후티가 같은 시아파 회교국인 이란의 지원을 받는 가운데 수니파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을 돕기 위해 무력 개입을 시사하면서 예멘은 끝 모를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다. 하레츠에 따르면 지난달 6일 수도 사나를 완전히 장악한 시아파 반군 후티는 순식간에 남하해 남부 분리주의자들의 근거지인 항구도시 아덴을 위협하고 있다. 같은 달 21일 유엔 주재의 평화협상이 좌절되면서 사나를 탈출한 하디 대통령은 이곳을 임시 수도로 선언하고 반(反)후티 세력을 규합해 왔다. 하디 대통령은 아랍연맹과 유엔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예멘의 수장이다. 후티는 지난 20일 사나의 이슬람 회당 2곳에서 수니파 무장단체가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자살 폭탄테러가 발생하면서 공세에 불을 붙였다. 테러의 배후를 하디 대통령으로 지목한 직후 총공세에 나서 파죽지세로 남하했다. 제3의 도시 타이즈를 시작으로 알모카, 알달리 등 아덴 주변의 주요 거점을 점령한 데 이어 이날 아덴과 고속도로로 통하는 알아나드 기지마저 손에 넣었다. 알아나드 기지는 아덴에서 북쪽으로 불과 60㎞ 떨어진 곳이다. 하디 대통령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덴을 떠났다는 일부 보도가 나왔으나 측근들은 이를 부인했다고 알아라비야 방송은 보도했다. 이에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지역 수니파 왕정 국가들을 중심으로 후티를 저지하기 위한 군사 개입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하레츠는 전했다. 이 경우 예멘 사태가 중동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랍연맹 측은 27일 군사개입을 논의하기 위한 외무장관 회의를 소집할 예정이다. 현지 언론들은 사우디가 아덴 함락 등 급변사태에 대비해 중화기를 이미 예멘 국경지대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남성 4명 자살폭탄 공격…“희생자 피로 강 이뤘다”

    시아파 후티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예멘 수도 사나의 모스크 2곳에서 20일 정오(현지시간) 연쇄 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137명이 숨지고 340여명이 부상했다고 CNN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공격이 예멘에 근거지를 둔 수니파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AQAP)의 전형적인 자살 폭탄 공격이라고 추정하면서도 수니파 이슬람국가(IS)의 보복 공격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후티 반군은 이란계 시아파의 지원을 받고 있어 수니파 무장조직들의 반감을 사왔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날 사나 시내의 바드르 모스크와 알하샤후시 모스크가 허리띠에 폭탄을 두른 4명의 남성들로부터 공격을 당했다. 두 모스크는 모두 시아파 사원으로 후티 반군 지지자들이 주로 이용하던 곳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들은 금요일을 맞아 기도를 하러 온 신도들로 사원이 붐벼 피해가 더 커졌다고 덧붙였다. 목격자들은 굉음과 함께 시신들이 공중으로 2m 넘게 튀어 올랐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현지 알마시라 TV를 인용해 “사원들이 희생자들의 피로 강을 이뤘다”면서 “시내 병원들이 시민들에게 긴급 헌혈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공격은 지난 1월 사나에서 폭탄을 실은 차량이 경찰학교에 돌진해 40명이 사망한 이후 최대 규모다. 당시 예멘 당국은 테러의 배후로 AQAP를 지목했으나 AQAP는 부인했다. 로이터는 사나 북쪽의 후티 군기지 근처에서 세 번째 폭탄 테러 시도가 있었으나 폭탄이 일찍 터져 테러범만 목숨을 잃었다고 덧붙였다. 외신들은 이번 테러가 예멘의 정정 불안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했다. 지난해 9월 사나로 진격한 후티 반군이 1월 말 쿠데타를 일으켜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을 축출하고 사나를 장악하면서 갈등이 극에 달했다는 설명이다. 가택연금에서 탈출한 하디 대통령은 남부 도시 아덴으로 피신한 뒤 아덴을 임시 수도로 선포한 상태다. 지난 19일 사나에서 출격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전투기가 하디의 사저를 공격하면서 아덴공항 인근에선 하디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BBC 등 외신들은 이번 테러가 하디 대통령 사저 폭격과 관련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한편 IS 예멘 지부는 테러 직후 온라인 성명을 통해 이번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朴대통령 부산대 방문에 학생들 반대 시위…왜?

    朴대통령 부산대 방문에 학생들 반대 시위…왜?

    박근혜 부산대 방문에 학생들 반대 시위…왜? 박근혜 부산대 방문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에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반대 시위를 벌였던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부산을 찾았던 16일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부산대학교 학생 일동’이라고 밝힌 학생 20여명이 오후 1시부터 부산대 정문에서 박 대통령의 부산대 방문에 대한 반대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박 대통령의 방문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의 부산대 기습방문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박근혜 정권은 과거 역사관 뿐 아니라 현재 국정운영에서도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면서 “박근혜 정권은 사상 유례없는 초유의 정당해산과 종북몰이, 공안탄압으로 이 땅의 수많은 민주적 가치들을 유린하고 있으며 이에 많은 민주 재야인사들은 과거 박정희 유신독재를 연상케하는 이러한 반(反)민주적 행보에 대해 우려와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권이 과거 역사관 논란에 대한 진정성 있는 성찰 없이 부산대 방문을 추진하려다 무산된 과거의 경험을 뒤로 한 채 진행되고 있는 지금의 기습적인 부산대 방문에 우려를 감출 수 없다”면서 “반 유신의 상징인 부산대 방문은 유신독재에 맞서 우리 국민이 피를 흘리며 만들어온 민주주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심사숙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5·16 쿠데타, 유신독재가 불가피한 선택입니까’,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을 환영하지 않는다’라고 쓴 푯말을 들고 2시간 가량 시위를 진행했다. 당초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하고 오후 부산대 IoT(사물인터넷) 연구센터를 시찰하려고 했으나 학교 정문에서 반대 시위가 진행돼 옛 정문을 통해 부산대로 들어갔다. 경찰 관계자는 “부산대 정문이 지하주차장과 곧바로 연결돼 있어 경호상 문제로 옛 정문을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병호 “정치 개입 있어선 안 돼… 역사적 범죄자 되지 않겠다”

    이병호 “정치 개입 있어선 안 돼… 역사적 범죄자 되지 않겠다”

    국회 정보위원회가 16일 실시한 이병호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국정원장으로서의 정치적 중립성과 국정원 개혁이 최대 화두가 됐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 개입 방지다. 이병기 전 국정원장은 정치 관여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지운다고 했다”며 집중 추궁했다. 이에 이 후보자는 “국정원 정치 개입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고 국가 안보를 흔드는 아주 나쁜 것”이라면서 “역사적 범죄자가 되지 않겠다”고 답했다. 같은 당 김광진 의원이 이 후보자의 언론 기고문을 예로 들며 “조직적인 선거 개입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는데 사실관계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지적하자 이 후보자는 “당시 사사로운 자연인으로서의 의견 표출이었다. 국정원 직원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참 무서운 일”이라고 해명했다. 이 후보자는 과거 언론 기고문에서 용산 참사를 ‘폭동’에 비유한 데 대해서는 “어휘가 사려 깊지 못했고 부적절했다. 상처받으신 분이 있다면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자성한다”고 사과했다. “5·16을 쿠데타로 생각하느냐”는 김 의원의 질문에는 “용어에 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즉답을 피했지만 오후 질의에서 같은 당 박지원 의원이 재차 묻자 “법률적, 학술적으로 군사쿠데타로 규정하는 것을 봤다. 이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문병호 새정치연합 의원이 이 후보자 친·인척들의 미국 영주권·시민권 보유와 관련해 “한·미 간 이익 충돌이 생겼을 때 미국에 불리한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고 따져 묻자 이 후보자는 “이해 충돌이 있을 땐 대한민국 국가의 이익만 생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야는 휴대전화 감청을 놓고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은 “미국, 영국, 일본 등 웬만한 문명국가 중에 휴대전화를 감청하지 않는 나라가 하나도 없다”면서 “합법적 감청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문 의원은 “국정원이 과거 불법적 도청을 많이 했다. 정치 관여, 민간인 사찰 등의 업보 때문에 감청을 반대하는 것”이라며 “감청 얘기를 하려면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먼저”라고 맞섰다. 정보위원회는 17일 전체회의를 열고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 여부를 논의할 방침이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친유럽과 친러의 공생… 핏빛 우크라, 분열은 숙명인가

    [글로벌 인사이트] 친유럽과 친러의 공생… 핏빛 우크라, 분열은 숙명인가

    #1 지난달 5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들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러시아 방문을 긴급 뉴스로 전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한 획기적인 행보로 평가받은 덕분이다. 같은 시각 CNN은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동부 도네츠크에서 또다시 충돌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 반군이 점령한 도네츠크 키로프 거리의 병원에 정부군이 쏜 우르간 미사일이 수차례 떨어져 환자 5명 이상이 숨지고 2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지난 1월 반군이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향해 로켓 공격을 퍼부어 민간인 30명이 숨진 데 따른 보복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2 지난 7일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은 분쟁을 종식하기 위해 동부지역에 배치된 중화기들을 50~100㎞ 후방으로 철수했다고 선언했다. 지난달 15일 자정을 기해 발효된 휴전 합의에 따른 조치였다. 독일, 프랑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정상이 17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 끝에 마련한 휴전안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교전 당사자인 자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의 지도자들이 벨라루스 민스크에 도착해 추인하면서 효력을 얻었다. 오는 16일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크림반도가 주민투표로 러시아에 합병된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친러파인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축출되자 이에 반발한 크림반도의 러시아계 주민들은 97%란 찬성표를 던졌다. 한 달 뒤 정부군과 반군은 ‘지옥 같은’ 교전을 개시했다. 피비린내 나는 1년 내전의 서막은 이렇게 열렸다. 최근 휴전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의 앞날은 여전히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9월 민스크 평화협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데다,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가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타산지석의 교훈을 준다고 말한다.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지역색을 등에 업은 다양성이 분열을 초래한다는 교훈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세계 5대 군사대국이던 우크라이나는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통해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주권과 영토를 보장받았다. 이런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빼앗겼다는 건 두 번째 교훈이다. 북한의 핵무기 협상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셈이다. 우크라이나는 동슬라브어로 ‘변경’(邊境)이란 뜻이다.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지정학적 요지에 남한의 6배 면적을 지닌 자원 대국이다. 13세기 몽골, 14세기 리투아니아, 17세기 이후에는 러시아의 침략을 받으며 제대로 된 민족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다. 중서부 지역은 수백년간 폴란드·리투아니아에 가까웠고 동남부는 친러시아 정서가 강했다. 러시아정교와 가톨릭,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가 공존해온 것도 이런 배경 탓이다. 1917년 제정러시아가 붕괴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연방(옛 소련)에 편입됐으나 수탈과 기근이 겹쳐 100만명 넘는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석탄, 철광석 등 지하자원이 풍부한 동부 지역에 러시아인들이 대거 이주하자 정서적 괴리감은 더욱 커졌다. 1991년 12월 옛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했으나 고난의 행보를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했다. 수많은 민족이 이동과 교역, 충돌과 통합을 반복하던 이곳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사태의 발단은 2013년 11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던 야누코비치가 러시아의 압력에 굴복해 협상을 중단하자 “러시아 치하로 돌아갈 수 없다”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의회의 탄핵을 받은 야누코비치는 이듬해 2월 러시아로 망명한다. 이른바 ‘우크라이나 혁명’이다. 기업가 출신의 친서방파 포로셴코가 집권했지만 이미 경제는 붕괴 직전에 내몰렸다. 동부지역의 친러계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우크라이나는 동서로 분열됐다. 야누코비치의 축출은 친유럽 진영에선 시민혁명으로, 친러 진영에선 쿠데타로 각기 다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애초부터 국가 정체성을 친유럽, 친러시아 등 어느 한쪽으로 단정 지을 수 없었음에도 독립 이후 정부가 바뀔 때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행태를 보여왔다. 1991년 독립 이후 크라우축, 쿠치마, 유셴코, 야누코비치, 현재의 포로셴코까지 정권은 예외 없이 친유럽과 친러시아를 오갔다.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의 분열을 숙명이라 표현했다. 민족 구성은 우크라이나계가 75%, 러시아계가 25%다. ‘유럽의 화약고’는 잠시 총성이 멎었을 뿐이다. 로이터통신은 향후 변수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라고 단정 지었다. 미국 입장에선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만 러시아는 서방 세력의 동진을 더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인천공항 6개월 숙식’ 아프리카인, 난민심사 받는다

    아프리카인 A(24)는 내전이 반복되던 고국을 도망치듯 떠나 2013년 11월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 즉시 출입국관리소에 난민신청서를 냈지만 우리 당국은 “난민 신청 사유가 부족하다”며 입국을 불허했고, 그를 태우고 온 항공사에 송환 지시를 내렸다. A는 입대 명령을 거부했기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며 송환을 거부했다. 또 ‘송환대기실’에 머물며 6개월간 지루한 법적 투쟁을 이어갔다. 끼니는 송환대기실에서 제공하는 치킨버거와 콜라로 때우기 일쑤였다. 그의 슬픈 사연은 고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귀국할 수도 미국에 입국할 수도 없게 된 주인공이 뉴욕 JFK공항 환승구역에서 9개월 동안 지내며 벌어진 일을 그린 스티븐 스필버그의 2004년 영화 ‘터미널’을 연상시켜 ‘한국판 터미널’로도 불린다. “형제·자매를 죽이는데 이용되는 전쟁에 참여할 수 없다”며 강제송환을 거부하던 A에게 마침내 ‘빛’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A는 송환대기실에 머물며 가까스로 변호사를 선임해 그동안 3건의 소송을 진행했다. 송환대기실에서 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인신보호 청구소송’, 변호사를 접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가처분신청, 정식으로 난민심사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행정소송 등이다. 지난해 4월 인천지법은 대기실 수용이 법적 근거 없는 위법한 수용이라며 그의 손을 들어줬고, 이후 입국이 허용됐다. 며칠 뒤에는 대기실 내 난민 신청자의 변호인 접견권을 허가하는 헌법재판소의 가처분 결정이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A는 정식으로 난민 인정 심사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은 A가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소장을 상대로 낸 난민 인정 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청구소송에서 지난 달 10일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A에게 최소한 심사 기회는 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의 진술에 다소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등의 사정만으로 난민 인정 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심사에 회부되더라도 난민 신청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 불과하며 사실조사를 거쳐 불인정 결정을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A의 심리적 불안정을 걱정하기도 했다. 이 판결은 출입국 당국이 상고를 포기해 확정됐고, A는 지난달 10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지 1년 3개월 만에 정식으로 난민 인정 심사를 신청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3부)공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포스코] 기술도 자본도 없는 亞 변방 황무지에 ‘금빛 철강신화’ 일구다

    [재계 인맥 대해부 (3부)공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포스코] 기술도 자본도 없는 亞 변방 황무지에 ‘금빛 철강신화’ 일구다

    포스코의 47년 역사를 논할 때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을 빼놓고는 이야기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고 경영자로 일한 25년간 그는 불가능할 것만 같던 철강 보국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박 회장이 철강왕이라 불리는 건 글로벌 철강업체로 우뚝선 포스코를 일궈낸 그의 업적을 감안할 때 결코 무색하지 않다. 미국의 카네기는 당대 35년 동안 조강(가공되지 않은 강철) 1000만t을 이뤘지만 박 회장은 25년(1968~1992년) 내 연산 조강 2100만t이라는 신화를 일궈냈다. 기술도 자본도 없는 아시아 변방의 후진국에서 만들어진 신화라는 점에서 더욱 높이 평가된다. 물론 포스코가 지금의 경쟁력을 확보하기까지는 1960~80년대까지 절대권력을 행사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그의 존재감은 1978년 중국의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의 일본 방문 일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당시 일본 기미쓰제철소를 방문한 덩샤오핑은 이나야마 요시히로 신일본제철 회장에게 “중국에도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를 지어 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당시 이나야마 회장의 대답은 간단 명료했다.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으냐” 이 대화는 한동안 중국 대륙에서도 ‘박태준 신드롬’이 나타나는 배경이 됐다. 1927년 부산 기장에서 태어난 박태준은 일자리를 찾아 현해탄을 넘은 부친을 따라 학창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 1940년 이야마북중에 다니던 그는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제철 근로봉사에 동원됐다. 용광로와의 첫 만남이었다. 1945년 일본 와세다대에 합격했지만 2년만 다니고 귀국해 남조선경비사관학교(현 육군사관학교 6기)에 입학했다. 박 전 대통령을 만난 것도 이때다. 당시 사관학교 중대장이던 박정희는 수학 실력이 탁월한 박태준을 눈여겨봤다. 박태준이 임관한 후 한동안 두 사람은 교류가 없었다. 하지만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으로 발령받은 박정희가 박태준을 참모장으로 발탁하면서 인연은 다시 시작됐다. 10살 터울인 부하 장교 박태준에 대한 박정희의 신임은 절대적이었다. 5·16군사혁명을 준비하던 박정희는 어느 날 박태준을 따로 불러 부탁한다. “임자는 이 일(쿠데타)에 참여하지 말고 만약 일이 잘못되면 내 식구들이나 좀 돌봐줘.” 결국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는 스스로 2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오르면서 비서실장에 박태준을 임명했다. 2년 후 대부분 정치에 입문한 혁명세력과 달리 박태준은 소장으로 예편했다. 박 전 대통령은 박태준에게 텅스텐 수출업체인 대한중석 사장을 맡겼고 이어 제철사업도 지시했다. 한국이 제철사업을 하겠다고 나서자 우방인 미국은 물론 일본까지 비웃었다. 군사정권의 과시용 사업일 뿐이라는 냉소만 돌아왔다. 그럴 법도 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 이하, 국가의 총수출액은 4200만 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종합제철소는 건설에 드는 돈만 무려 1억 5000만 달러에 달했다. 1968년 4월 포스코의 전신 포항제철은 그렇게 시작됐다. 가장 큰 걸림돌인 자금은 해외 차관에 의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국 등 5개국 8개사로 구성된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과 세계은행(IBRD), 미국국제개발처(USAID), 대한국제경제협의체(IECOK) 등은 결국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국을 방문해 KISA 대표에게 최종적으로 ‘협력 불가’라는 답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박태준 사장은 하와이에서 대일청구권 자금의 일부를 제철소 건설 자금으로 전용하는 이른바 ‘하와이 구상’을 하게 된다. 당시 8000만 달러 정도 남아 있던 대일청구권 자금을 제철사업에 투자해 보자는 아이디어다. 곧바로 박 전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박 사장은 곧장 일본으로 가 일본 정재계 주요 인사들 설득에 나섰다. 미쓰비시상사의 후지노 사장 등 철강업계 관계자는 물론 통산성의 오히라 마사요시 장관 등을 연이어 만나 한국에 철강산업이 필요한 이유를 말하며 설득했다. 오히라 장관은 김종필과 함께 한·일청구권 협상을 타결 지은 인물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당시 박 사장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다. “박 선생은 보는 이들이 오히려 안타까워할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의 진지한 노력에 일본은 감동했다” 박 사장은 결국 대일청구권 자금 7370만 달러와 일본 은행 차관 5000만 달러를 합한 1억 2370만 달러로 제철소사업을 시작했다. 1969년 8월 제3차 한·일 각료회담에서 일본 정부도 한국의 종합제철 건설 사업을 지원키로 약속했다. 자금이 확보되자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일제 식민 지배에 대한 피해 배상 청구권을 사실상 포기하는 대일청구권 자금은 우리 민족에겐 피 같은 돈이었다. 회담을 성사시킨 박정희 정권은 ‘3억 달러에 민족의 자존심을 팔았다’는 비난과 반발을 감수해야 했다. 그런 사실을 박 사장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공사를 독려하면서 박 사장은 “이 제철소는 식민 지배에 대한 보상금으로 받은 조상의 혈세로 짓는 것이니 만일 실패하면 바로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는다는 각오로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3년여에 걸친 공사 기간 중에 13번이나 포항 현장을 방문했다. 박 사장에게 건넨 ‘종이 마패’는 또 하나의 유명한 일화다. 공사 과정에서 당시 정치인들이 박 사장을 흔들어대자 박 전 대통령은 종이 마패 한장을 박 사장에게 쥐여 줬다. 마패에는 ‘박태준을 건드리면 누구든지 가만 안 둔다’고 적혀 있었다. 포항제철은 가동된 지 1년 만에 매출액 1억 달러를 기록하며 빚을 다 갚고 흑자를 기록했다. 결국 1970년 4월 1일, 온 국민의 기대 속에 연산 130만t 규모의 철을 생산하는 포항 1기 설비를 착공했다. 1973년 6월 마침내 우리나라 최초의 용광로는 쇳물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후 건설과 조업을 병행하며 포철은 성장 가도를 달렸다. 세계 최대 제철소라는 타이틀은 포항제철소에서 광양제철소로 이어지며 1992년 2100만t의 사반세기 대역사를 마무리하게 된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설비 가동 첫해인 1973년 매출액 416억원에 46억원 흑자를 기록한 이래 1992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매출액을 149배(6조 1821억원), 순이익을 40배(1852억원) 이상으로 늘렸다. 용광로가 가동하기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단 한번의 적자 없이 흑자 행진을 지속하는 기틀이 됐다. 한국 제철사업에 투자하는 것을 강력히 거부했던 존 자페 전 IBRD 한국 담당자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도 대한국제제철차관단에 투자 반대 의견을 제출했던 내 보고서가 옳다고 믿는다. 다만 박태준 회장이 상식을 초월하는 일을 해 나의 보고서를 틀리게 만들었을 뿐이다. 포스코의 성공은 지도자의 끈질긴 노력을 바탕으로 설비 구매의 효율성, 낮은 생산 원가, 인력 개발, 건설 기간 단축을 실현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중앙대 내년 학과 폐지… ‘기업식 구조조정’ 또 논란

    중앙대 내년 학과 폐지… ‘기업식 구조조정’ 또 논란

    중앙대가 내년부터 학과제를 폐지하고 단과대학별로 신입생을 뽑는 학사구조 개편안을 내놓았다. 학내 구성원들은 “학생, 교수와 협의 없는 일방적 구조조정”이라며 반발했다. 2008년 두산그룹 인수 이후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비인기 학과를 통폐합하는 등 ‘기업식 구조조정’ 논란을 일으켰던 중앙대가 학내외 반발을 비켜가면서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중앙대는 2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2016학년도부터 학과가 아닌 단과대별로 신입생을 뽑는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을 발표했다. 학과별 모집 정원이 정해졌던 기존 방식 대신, 내년부터 단과대학별 모집 정원을 정하는 식이다. 학생들은 단과대 소속으로 교양과 단과대학별 전공기초 과목을 수강한 후 2학년 2학기부터 전공을 정하게 된다.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으로 배우는 고교생들이 입학하는 2021학년도 이후에는 모집단위를 넓혀 인문·사회, 자연·공학, 예술·체육, 사범, 의·약·간호 등 계열별 모집을 시행한다. 중앙대가 계획하고 있는 방식은 이미 일부 대학에서 시행되고 있다. 서강대는 계열별로 학생을 뽑고, 성균관대는 광역 단위 모집은 유지하면서 전공별 정원만 따로 두고 있다. 반면,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등은 계열별 혹은 단과대별로 뽑다가 학과별 모집으로 전환하는 추세다. 중앙대 관계자는 “학과제를 유지하면서 모집단위만 광역화한 대학들과 달리 학과 자체가 없어지고 단과대를 중심으로 전공을 운영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공선택 과정에서 ‘쏠림현상’이 가속화할 경우 취업이 잘 안 되는 인문·자연과학 등은 고사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중앙대 관계자도 “선택을 받지 못한 전공은 다른 학문과 융·복합 등 다른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며 전공 통폐합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사회의 인력 수요만 고려해 학과 구조를 개편하면 결국 대학은 취업 양성소 이상의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며 “비인기 전공에 관심 있는 학생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조치”라고 말했다. 학생·교수 등과 협의 없이 이뤄진 일방적 구조조정이란 비판도 제기됐다. 학교 측은 이날 오전 전체교수회의에서 이 같은 계획을 처음 공개했다. 대학 평의원회와 교수협의회 전·현직 회장 6명으로 구성된 ‘대학구조조정에 대한 교수 대표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간담회장에 들어와 “일방적·비합리적 구조조정 추진이 도를 넘고 있다”며 “총장에 대한 불신임과 함께 법적 대응도 준비할 방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누리(독어독문학과 교수) 비대위원장은 “밀실에서 소수 교수가 음모적으로 진행한, 학문에 대한 쿠데타”라며 “한국에서 기업이 대학을 장악했을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를 보여준다”고 우려했다. 중앙대가 지금껏 추진해 온 학내 구조조정의 연장선에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용성 이사장 체제에서 중앙대는 2010년 18개 단과대를 10개로 줄이고 77개 학과를 46개로 통폐합했다. 2013년에는 비교민속·아동복지·가족복지·청소년학과를 폐지했다. 윤지관(덕성여대 영문학과 교수) 한국대학학회 회장은 “학문에 대한 고려 없이 수요·공급에 따라 대학 정원과 학과 존속을 결정하는 건 철저한 시장 논리”라며 “결국 중앙대가 계속해서 시행해 온 학과 통폐합의 연장선”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최장수 국방부 기자실장’ 김안중씨 퇴임

    ‘최장수 국방부 기자실장’ 김안중씨 퇴임

    만 38년 동안 서울 용산 국방부 기자실을 지켜 온 김안중(58·여) 기자실장이 17일 퇴직한다. 정부 기관의 기자실장은 출입기자들에게 보도자료 배포, 일정 전파 등 취재 편의를 제공하는 ‘살림꾼’ 역할을 해 왔다. 김 실장은 정부 부처 기자실장 가운데 최장수 근무 기록을 갖고 있다. 김 실장은 1977년 2월부터 국방부 기자실에서 근무했다. 김 실장에게 1979년 12·12 쿠데타와 전두환 전 대통령, 신군부의 등장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한 기자가 신군부의 병력이 국방부 청사로 들어오는 장면을 촬영했다가 끌려가기도 했다. 김 실장은 근무 기간 동안 거쳐 간 24명의 국방부 장관 가운데 1990~1991년 재임한 이종구 전 장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김 실장은 16일 “국방부는 군에서 발생한 사건·사고에 대해 보도를 통제했었지만 이 전 장관 재임 때부터 유연해졌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이집트軍 “피에 대한 복수”… IS 무기고·은신처 겨냥 융단폭격

    이집트軍 “피에 대한 복수”… IS 무기고·은신처 겨냥 융단폭격

    이슬람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이집트 콥트교도 21명을 집단 참수하면서 이집트가 ‘IS와의 전쟁’이란 칼을 뽑아 들었다. 이집트 국영 나일TV 등 현지 언론은 16일(현지시간) 새벽 이집트군 전투기들이 리비아 공군과 합동으로 이집트와 리비아 국경지대에 있는 IS의 훈련 캠프와 무기 저장고, 은신처를 정밀 타격했다고 보도했다. 이집트 전투기의 공격은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이 복수를 천명한 뒤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뤄졌다. 이집트가 IS를 겨냥해 직접 공습한 사실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8월 이집트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리비아 내 이슬람 무장세력을 비밀리에 공습했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이집트 정부는 이를 부인해 왔다. 이집트군은 이번 공격을 두고 “피에 대한 복수이자 살인자들에게 보복을 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집트군은 17일에도 리비아군과 함께 추가 공습을 감행할 것이라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이집트는 그동안 IS와의 전쟁에 직접 참가하지 않았지만 시리아와 이라크 내 미국 주도의 IS 공습을 지지해 왔다. 동북부 시나이반도에서 IS 연계 세력 등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와 교전을 벌여 온 데다 미국의 IS 공습을 지지하는 것만으로 미국의 군사·경제적 지원을 끌어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공습은 쿠데타로 집권한 시시 정권 등장 이후 소원해진 양국 관계를 회복하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지만 국내 치안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 탓에 이집트가 미국 주도의 공습에 직접 참여하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편 이번 IS의 참수 동영상 공개를 놓고 안팎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아라비아 등은 IS의 무모한 집단 참수가 ‘눈에는 눈’ 식의 보복이란 설명과 함께 알카에다 현 지도부와 IS의 갈등이 표출됐다는 해석을 내놨다. 해변에서 콥트교도들을 참수한 것은 미군에게 사살된 뒤 바다에 수장된 오사마 빈라덴과 연결 지어 의미를 부여한 것이란 설명도 나왔다. 콥트교는 1500여년 역사를 지닌 이집트의 전통 기독교 분파이지만, IS는 이들을 서방과 손잡고 무슬림을 박해하는 ‘십자군’으로 규정해 왔다. 아울러 IS가 이번 콥트교도 살해 과정에서 IS의 모체로 콥트교에 우호적인 알카에다 현 지도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IS는 동영상 자막을 통해 콥트교도가 과거 이집트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려는 여성을 박해한 만큼 자신들이 참수로 복수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참수 동영상 공개 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IS를 규탄하고 나섰다. 조시 어니스트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16일 성명을 내고 “비열한 짓”이라고 비난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어르신들 가슴 속 묻어둔 이야기 ‘세상 밖으로’

    “해방 이후 태어나서 6·25전쟁을 겪었고, 4·19혁명과 5·16쿠데타의 정치 격변기를 통해 급속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나라를 보았다. 나는 그 시대를 겪으며 살았다.” 1946년 함경남도 정평군에서 태어난 이근철 할아버지는 1948년 어머니의 손을 잡고 월남했다. 이 할아버지는 동년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피란 생활을 겪어야 했고, 산업화 시기에는 수출 역군으로 일해야 했다. 그 시대엔 누구나 그랬다. 그래서 그의 머리에는 지난 60년간 보통 사람들이 기억하는 전쟁과 경제성장, 민주화에 대한 기억이 오롯이 남아 있다. 1944년 전북 남원에서 출생한 황오주 할아버지는 2004년 공직 생활을 끝내고 수년간 할 일을 찾아다녔다. 그는 “인생 이모작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본들 소용없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사는 법”이라며 결국 2009년 학교보안관 일을 시작했다. 평생 공무원으로 지내 온 그에게 학교보안관은 또 다른 세계였다. 그는 “엄마 닭만 졸졸 따라다니는 병아리처럼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라고 말했다. 1939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42년간 교편을 잡아 온 심진용 할아버지가 수십년간 써 내려온 일기에는 삶의 고민과 함께 가장으로서의 무게,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등이 깊이 있게 담겨 있다. 심 할아버지의 아들은 부친의 인생을 “5남매의 아버지로서 젊은 날의 열정이 저당 잡힌 고난”이라고 표현했다.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내가 살아온 인생을 말하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라”라는 이야기가 현실이 됐다. 서울 관악구는 12일 구청 강당에서 ‘어르신 자서전 출간지원 사업’을 통해 자서전을 낸 노인들의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흔히 어른들의 삶이야 비슷비슷한 게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유종필 관악구청장의 생각은 달랐다. 유 구청장은 “굴곡진 우리 현대사를 살아온 이들의 삶은 그 자체가 현대사의 기록”이라면서 “평범한 사람도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어 누구나 자서전을 남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응은 뜨겁다. 올해도 10명의 노인이 자서전을 썼다. 구는 자서전을 출간하는 노인 1인당 250만원을 지원한다. 이번에 출간하는 책은 ▲최창락 ‘나의 뿌리와 삶의 흔적’ ▲심진용 ‘심해가 살아온 길’ ▲전태권 ‘노송처럼 늙고 싶다’ ▲김태곤 ‘가난은 내 삶의 지름길’ ▲송태선 ‘아, 어머니’ ▲황오주 ‘어린이에게 길을 묻다’ ▲문금선 ‘들꽃 향기 같은 소중한 순간들’ ▲이근철 ‘금진강의 꿈’ ▲김애숙 ‘기억속 풍경’ ▲임동길 ‘Soli Deo Gloria’ 등 10권이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고립된 차르, 이집트 군부 독재와 손잡다

    고립된 차르, 이집트 군부 독재와 손잡다

    ‘강한 러시아를 꿈꾸는 거침없는 행보인가, 생존을 위한 방어인가.’ 9일(현지시간) 이집트를 공식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행보가 서방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푸틴의 이집트 방문은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2005년 이후 10년 만이다. 푸틴은 이날 오후 카이로국제공항에 도착해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의 환영을 받으며 이틀간의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푸틴과 시시의 만남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13년 이슬람주의자인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쿠데타로 축출한 군부 출신 시시는 대통령 취임을 전후한 지난해 2월과 8월 잇따라 러시아를 방문했다. 이같이 국제사회의 비난과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양국 정상의 뜻과 맞물려 지난해 러시아와 이집트의 무역 규모는 전년 대비 50%나 급증한 45억 달러(약 4조 9000억원)로 치솟았다. BBC방송은 양국 정상의 관계를 1956년 2차 중동전쟁 당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집트의 나세르 정권 때와 비교해 “냉전 시대를 상기시킨다”고 꼬집었다. 당시 옛 소련과 이집트는 서방에 맞선 가장 가까운 맹방이었다. BBC는 카이로 도심 곳곳에 푸틴을 환영하는 인파가 몰려 러시아와 이집트 국기를 흔들었고, 푸틴은 시시에게 미국과 겨루는 러시아 군사력의 상징인 AK47 소총을 선물했다고 전했다. 반면 이날 알렉산드리아의 경찰서 등 3곳에서 사제 폭탄 테러가 일어나 10명이 다치는 등 반발도 적지 않았다고 방송은 덧붙였다. AFP통신은 푸틴과 시시가 양국 관계 발전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전에 휘말린 시리아와 리비아, 예멘 사태 외에도 이집트가 옛 소련권 경제동맹체인 유라시아경제연합(EEU)에 참여하는 방안이 거론된다고 통신은 전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 방점은 무기 거래와 루블화 영향력 확대에 찍혔다. BBC는 러시아가 이집트와 미그 29기와 공격형 헬기 등 30억 달러(약 3조 3000억원) 규모의 무기 거래 성사를 앞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양국이 무역 결제에서 미국의 달러를 배제하고 양국 화폐인 루블과 이집트 파운드를 사용하는 방안과 원자력·위성내비게이션 등으로 교역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가디언은 이번 푸틴과 시시의 만남이 미국 등 서방국가에 보내는 일종의 신호라고 분석했다. 푸틴 전문가인 벤 유다의 말을 인용, “우크라이나 사태로 고립된 푸틴이 옛 소련 동맹국과의 관계가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 주려 한다”고 설명했다. 푸틴은 이날 이집트 관영 알아흐람과 가진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와 유럽연합(EU)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한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 탓”이라며 “해법은 연방제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11일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열릴 4자 회담 참가를 앞둔 푸틴이 여전히 서방과 분명한 인식 차를 지녔음을 보여 주는 발언이다. 한편 알아흐람은 10일 러시아가 이집트에 첫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양국 정상이 이날 서북부 해안 도시 알다바에 원전을 짓는다는 내용의 합의문에 서명함으로써 이집트에 원전을 수출하려던 한국의 계획은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시아파 반군 ‘쿠데타’… 예멘 25년 만에 재분단 위기

    시아파 반군 ‘쿠데타’… 예멘 25년 만에 재분단 위기

    시아파 반군인 후티가 정부를 전복한 예멘이 통일 25년 만에 남북 재분단 위기에 놓였다고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자지라가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걸프 지역 최빈국인 예멘은 2012년 2월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의 34년 철권통치가 무너진 뒤 불과 3년 만에 ‘아랍의 봄’에서 ‘분단 위기’로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남부 분리주의 세력의 근거지인 아덴시는 이날 후티 무장대원의 침범을 막는다며 시 주변에 안전구역을 설정했다. 시 안보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후티의 쿠데타를 인정하지 않고 이들이 세운 새 정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는 여론에 따른 것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앞서 반군 후티는 지난 6일 TV 중계를 통해 임시 헌법을 선포하고 기존 의회를 해산, 551명으로 구성된 새 의회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후티는 기존 내각을 해산하고 임시 국방장관과 내무장관도 임명했다. 예멘 남단의 최대 항구도시인 아덴시는 지난달 후티가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의 집무실과 사저를 무력으로 장악하자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아덴국제공항과 항구를 하루 동안 폐쇄하기도 했다. 살레 정권에서 16년간 부통령을 맡다가 평화적 정권 이양에 나섰던 하디 전 대통령은 예멘 남부 아브얀주 출신으로 소외된 남부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 1990년 남북 통일 이전까지 남예멘의 수도였던 아덴시는 그간 분리 독립의 중심축 역할을 해 왔다. 정통성이 결여된 후티의 쿠데타 정권 수립은 이런 아덴시에 여러 면에서 분리 독립의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후티가 수도 사나와 정부 청사, 의회 등을 장악했으나 중남부의 수니파세력, 이와 연계된 예멘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에 막혀 남부 지역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도 걸프 지역 최초의 반미 시아파 정권 탄생을 꺼리고 있다. 예멘은 전체 인구의 30%가 시아파 이슬람교도이며 나머지 70%는 수니파다. 예멘을 제외한 걸프 지역 6개 국가로 구성된 걸프협력이사회(GCC)는 7일 후티 쿠데타 종식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IS “알카에다 지도자 알리비 죽음 보복” 이번엔 리비아 호텔 테러… 10명 사망

    IS “알카에다 지도자 알리비 죽음 보복” 이번엔 리비아 호텔 테러… 10명 사망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의 고급 호텔에서 이슬람국가(IS)의 폭탄 테러로 10명이 숨졌다. 시리아와 이라크를 주 무대로 활동하던 IS가 리비아로 손길을 뻗쳤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리아 북부 도시인 코바니를 IS로부터 탈환하는 등 대테러전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미국이 주장하던 참이었다. 27일(현지시간) 오전 10시쯤 무장 괴한 3~4명이 트리폴리의 오성급 호텔 코린시아 정문에서 차량 폭탄 테러를 벌인 뒤 호텔 내에서 총격전과 인질극을 벌였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이 과정에서 경비원 등 호텔 측 직원 5명과 미국인 1명, 프랑스인 1명 등 모두 10명이 사망했다. 진압 병력이 곧 출동해 범인들과 대치전을 벌였으나 이들은 호텔 24층에서 자폭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발생 뒤 IS는 트위터를 통해 이번 테러는 자신들이 저질렀으며 아부 아나스 알리비가 죽은 데 따른 보복 차원이라고 밝혔다. 알리비는 알카에다 조직원으로 2013년 10월 트리폴리에서 미군에게 붙잡혀 미국으로 이송된 뒤 재판을 앞두고 사망했다. 그는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동시다발 테러에 관여해 220여명을 사망케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또 지난 17일 트리폴리의 알제리대사관을 공격한 것도 자신들이며 튀니지 기자 2명도 납치해 뒀다고 주장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테러 사태를 “IS 같은 극단 세력이 리비아를 비롯해 북아프리카까지 넘보고 있다는 징후”라고 전했다. 리비아는 1969년 쿠데타 이후 42년간 철권통치를 펼쳐 온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죽은 뒤 혼란에 빠졌다. 크게 봐서는 동부 벵가지 중심의 이슬람계 정부와 동부 토브루크 중심의 반이슬람계 정부가 반목하고 있는 양상이지만 여기에다 지역별, 이념별 분파 간 대립까지 겹쳐 사실상 국가가 갈가리 찢긴 내전 상태로 평가된다. 지난 6개월간 최소 1000여명이 죽고 40여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FT는 이 분파들 가운데서도 ‘파즈르 리비아’(리비아의 여명)를 주목해야 할 대상으로 꼽았다. 이슬람계 정부가 수세에 몰리자 이슬람 강경 세력 후원에 나섰고, 이에 힘입어 파즈르 리비아가 IS화되면서 세를 확장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가디언은 “미 국방부는 시리아 일부 지역에서 IS식 참수나 처형이 늘어나고 있으며 IS 훈련캠프로 보이는 시설이 들어서는 현상에 주목해 이 지역의 IS화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AFP통신 등 일부 외신은 이번 폭탄 테러 사망자 가운데 한국인도 1명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우리 외교부는 “현재까지 리비아 내무부를 통해 파악한 바로는 한국인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우리 국민 피해 여부를 계속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 등 다양한 이유로 리비아에 머물고 있는 한국인은 40여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美, 北 급변사태·대량살상무기 대응 회의

    美, 北 급변사태·대량살상무기 대응 회의

    미군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 D)에 대응하기 위한 비공개 전략회의를 본토에서 개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인터뷰에서 북한 붕괴 가능성을 거론한 가운데 미 군 당국이 북한 급변 사태에 대비해 핵과 미사일 등을 제거하는 등 개입 시나리오를 구체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27일 미국의 정치군사전문 웹진 워싱턴 프리 비컨을 인용해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 미군 사령관이 이번 주 중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 특전사령부 모의전쟁센터에서 미 국방부 고위 관리들과 한국 전략 세미나를 개최한다”고 보도했다. 미 국방부는 비공개로 진행되는 이번 회의에서 북한의 신형 이동식 장거리미사일 KN08와 사이버 공격 등에 대한 평가와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유사시 북한 내 WMD 비축분을 파괴하는 특전사의 기존 작전 계획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미국 자체 회의로 우리 측은 참석하지 않는다”면서 “적 후방에 침투하는 특수부대의 WMD 제거 임무 등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 미군은 2013년 6월에도 플로리다 모의전쟁센터에서 유사한 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미 국방부가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와 탄도미사일 위협의 심각성을 인식해 국면별 대응 체계를 갖춰 나가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북한에서 전쟁뿐 아니라 쿠데타 등 급변 사태가 발생할 때 미국은 WMD의 확산 방지를 명분으로 북한에 개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6월에는 북한 WMD 제거를 위한 연합훈련을 한 바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씨줄날줄] 북한의 인터넷 기피증/구본영 논설고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그제 경제 또는 군사 제재와는 다른 제3의 대북 압박 카드를 제시했다. 유튜브와의 인터뷰에서 “외부 소식이 북한 내부에 스며들며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라며 인터넷을 가장 효과적 압박 수단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주민들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는 잔혹한 북한 정권이 시간이 지나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는 소니 픽처스 해킹 사건 이후 북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부쩍 강경해졌음을 뜻한다. 물론 그 이면에는 오바마 행정부의 현실적 고민이 담겨 있다. 즉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로 체제를 유지하려고 하는 김정은 정권을 제어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극도로 폐쇄적 자급 체제로 연명하고 있어 경제 제재의 효과가 제한적인 데다 오바마도 말했듯이 무력 응징은 한국으로 불똥이 튈 수 있어 선택하기 어려운 탓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인터뷰를 듣고 잊고 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참여정부 때 한 군 장성이 월간지에 쓴, 쿠데타가 불가능해진 이유라는 주장이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보편화된 한국 사회에서는 군사정변을 꾀하려 해도 보안 유지는커녕 모의 사실이 순식간에 알려지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요행히 병력을 집결시켜 중앙무대를 접수하려 해도 수도권의 교통체증에 막혀 곤란하다는 농담 같은 분석도 그럴싸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진단처럼 인터넷이 북한의 변화를 견인할 특효약일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게다. 다만 인터넷으로 각종 정보가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사회에서는 독재 체제의 온존이 불가능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에게 인터넷은 언감생심이다. 그렇기에 북의 세습 체제가 상당 기간 더 존속하리라는 역설도 성립할 듯싶다. 재미교포 작가 수키 킴은 엊그제 인터뷰에서 자신이 4년 전 영어 강사로 일했던 평양과기대 학생들이 인터넷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선발된 엘리트들마저 당국이 허용한 일부 사이트를 연결한 인트라넷을 인터넷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초 AP통신도 김일성대 e라이브러리를 방문해 북한 인트라넷 ‘광명’을 접하고 “자유로운 인터넷의 독재 버전”이라고 평가했다. 검색 가능한 사이트가 제한적인 데다 이메일·채팅 등이 감시 대상이라니 그럴 만도 하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어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유인하려는 듯 금강산 관광 재개 용의를 비쳤다. 하지만 오바마가 정곡을 찔렀듯 금강산 관광보다 인터넷이 비용 대비 북한 개방효과가 더 크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금강산에 갈 때마다 훈련된 요원만 있고 북한의 보통 사람들은 볼 수조차 없었지 않은가. 인터넷을 포함해 통신·통행·통관 등 3통 합의가 실행에 옮겨질 때 개성공단 업그레이드 등 남북 경협의 확대가 가능함을 북한 당국에 주지시킬 때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권력 나눠 갖는 예멘정부·반군… 美 케리 “예멘 지도자 만날 것”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예멘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킨 시아파 반군 후티와 권력 분점 등 9개항에 대해 합의했다고 2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하디 대통령은 “후티와 권력을 분점하고 신헌법 초안을 수정할 준비가 됐다”는 공식 성명을 냈다. 합의안은 정부, 의회, 군부 등에 후티 측 인사를 배치하고 신헌법에도 후티 측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내용이다. 대신 후티는 수도 사나 일대 병력을 철수하고 납치했던 정부 인사들을 석방했다. 이번 쿠데타에는 종파와 부족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예멘의 사정이 반영돼 있다. 예멘은 이런 난국을 풀기 위해 지난해 1월 연방제 개헌을 통해 6개 자치지역을 설립한다는 내용의 신헌법을 만들었다. 후티는 이 방안에 처음에는 수긍하는 듯하다가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걸 깨닫고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럼에도 후티가 하디 정부를 전복하지 않은 것 역시 복잡하게 얽힌 종파와 부족 문제 때문으로 분석된다. 북부 무장 세력인 후티에 남부 출신 하디 대통령은 국내적으로 좋은 방패막이다. 또 하디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를 통해 미국과 가깝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유리하다. 미국은 “하디 정권이 합법 정권”이라고 밝혔고, 존 케리 국무장관은 “예멘 정치 지도자들과 만나겠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통성 있는 정부를 뒤집을 경우 뒷감당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쿠데타의 완전한 성공 여부는 아직도 미지수다. 종파와 부족 간 갈등이 어디로 번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예멘 반군, 대통령 가택 연금… 쿠데타 성공 땐 내전 위기

    예멘 반군, 대통령 가택 연금… 쿠데타 성공 땐 내전 위기

    1517년 오스만튀르크에 정복되기 전까지만 해도 예멘(시바 왕국)은 ‘행복의 아라비아’로 불렸다. 몬순기후로 인한 풍부한 강우와 홍해 및 인도양의 중계지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 때문에 아덴항을 중심으로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더 이상 행복은 찾아오지 않았다. 식민 지배, 분단, 내전, 독재가 예멘의 현대사를 물들였다. 2012년 찾아온 ‘아랍의 봄’은 한 줄기 빛이었다. 다른 중동국가와 달리 별다른 충돌 없이 알리 압둘라 살레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과도정부 수립 이후 예멘은 다시 종파, 민족, 이념으로 찢겼고 쿠데타를 거쳐 내전으로 치닫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북부를 거점으로 하는 시아파 반군 ‘후티’는 20일부터 21일까지 대통령궁을 장악한 뒤 대통령 관저를 공격하고 예멘 최대 미사일기지와 군사학교를 장악했다. 로이터통신은 후티가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사저의 경호원을 자체 병력으로 바꿨다고 보도했다. 사저에 ‘포로’로 잡혀 있어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인 것이다. 후티는 지난해 9월 수도 사나를 점령한 뒤 정치적 실권을 쥐었다. 초기엔 대통령에게 협조적이었으나 이후 자신의 몫을 주장하면서 갈등을 빚어 왔다. 특히 최근 예멘을 6개 자치 지역으로 나누는 연방제로 새 헌법 초안이 작성되면서 후티의 공세는 거세졌다. 자원이 풍부한 남부까지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계획이 연방제로 막히자 쿠데타를 시도한 것이다. 만일 후티가 쿠데타에 성공한다면 참혹한 내전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 후티는 예멘의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AQAP)와도 교전을 벌이고 있다. 후티가 정권을 쥐면 AQAP 등 수니파 무장조직들이 반후티 연합전선을 형성해 전쟁에 나설 것이다. 더욱이 후티는 사우디아라비아, 미국과도 각을 세우고 있어 국제적 고립 속에서 내전이 치러질 수 있다. 미국은 후티를 도울 수도 없고 알카에다를 지원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질 우려가 있다. 옛 공산주의 정권을 추종하는 남예멘 세력도 분리 독립을 선언할 태세여서 예멘의 위기는 한층 더 고조되고 있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시황제의 칼날… 정보기관 지도부 찌르다

    시황제의 칼날… 정보기관 지도부 찌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반(反)부패 드라이브가 연일 속도를 내는 가운데 중국 최고 정보기관의 차관급 고위간부가 잇따라 낙마했다. 고위 공직자와 군 고위 장성, 국유기업인 등이 잇따라 낙마하는 데 이어 최근에는 문화예술계, 국가정보기관 등으로 사정 범위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시 주석 반부패의 선봉인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최근 우리의 국정원 격인 국가안전부의 부부장(차관급) 추진(邱進)을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중화권 매체 명경(明鏡)이 19일 보도했다. 앞서 중앙기율검사위는 추진과 같은 급인 국가안전부 부부장 마젠(馬建)을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보기관 지도부가 2~3일 사이 줄체포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두 사람 모두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 링지화(令計劃) 전 통일전선부장 등 반시진핑 쿠데타를 모의한 것으로 전해지는 ‘신 4인방’을 지원해 온 혐의를 받고 있다. 저우융캉은 지난해 12월 초 ‘당과 국가의 기밀을 유출한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됐으며, 같은 달 말 당국의 조사 사실이 공개된 링지화는 시진핑 일가 등 중국 지도부의 축재 및 비리 자료를 만들어 해외 정보기관과 언론에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 4인방’이 시 주석 집권을 막기 위해 흑색선전 자료를 모으는 등의 과정에서 국가안전부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추진 부부장은 보시라이 낙마 때부터 체포설이 나돌던 인물이다. 2012년 2월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이 당시 충칭시 1인자이자 차기 지도부로 거론되던 보시라이의 비리 자료를 들고 청두(成都) 미 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했을 때 저우융캉의 지시를 받고 총영사관을 찾아가 왕리쥔을 회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왕리쥔 망명 사건은 보시라이 낙마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마젠의 경우 저우융캉은 물론 링지화와도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이 사정 범위를 국가정보기관으로 확대하려는 것은 시 주석의 의중이란 분석이 나온다. 전임자이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시절 정법 계열의 수장으로 국가안전부를 장악한 저우융캉의 그림자를 지우고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중화권 매체 둬웨이(多維)는 이와 관련, “후 주석 시절 국가안전부가 여러 파벌로 갈려 비정상적으로 운영돼 왔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은 지난해 2월 대내외 정보를 총괄하는 국가안전위원회를 창설해 최고 책임자인 주석직을 꿰차는 등 정보기관을 정비하기 위해 오랜 기간 준비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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