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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드래곤 ROD, 한예슬 테디 노래 “내가 테디의 뮤즈”

    지드래곤 ROD, 한예슬 테디 노래 “내가 테디의 뮤즈”

    지드래곤 ROD 한예슬 테디 지드래곤 ROD, 한예슬 위한 테디 노래 ‘가사보니’ 배우 한예슬이 지드래곤의 노래 ‘라이드 오어 다이’(R.O.D, Ride or die)가 남자친구인 테디가 자신을 위해 만든 곡이라고 밝혔다. 한예슬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테디가 나를 생각하면서 많은 노래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한예슬은 “2년 전부터 테디가 만든 곡들을 다 들어보시면 된다. 특히 여자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노래나 사랑을 고백하는 가사가 내 이야기다. 내가 테디의 뮤즈다”라며 “테디가 따로 나를 위해 노래를 만들었다고 코멘터리를 남기진 못 해 아쉬웠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한예슬은 테디가 만든 노래 중 지드래곤의 ‘라이드 오어 다이’(R.O.D, Ride or die)가 자신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 중 하나라고 밝혔다. ‘ROD’는 2013년 발매된 빅뱅 지드래곤의 솔로 정규2집 ‘쿠데타(COUP D’ETAT)‘ 수록곡으로 가사에는 ‘네 얼굴은 조각같이 너무 아름다워/ 너만 보면 난 동상같이 얼어 / 작은 미소에 내 맘속에는 폭풍이 일잖아/ 네 생각 안 하고 버티기 길어봐야 10분/ 남자는 ‘애’ 아님 ‘개’ 라잖아 다른 놈 ‘매’ 같이 채가잖아/ 지금까지 못 느껴 본 사랑 줄게’ 등 사랑에 빠진 심경이 담겨 있다. 한편 한예슬은 최근 테디와의 첫 만남에 대해 “한 편의 영화와 같았다”면서 “2년 전 연말 한 지인의 모임에서 테디를 처음 만났다. 서로 자기소개를 한 후 내가 먼저 연락처를 물어봤고, 데이트 신청도 먼저 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해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지드래곤 ROD, 한예슬 위한 테디 노래 “내가 먼저 데이트신청”

    지드래곤 ROD, 한예슬 위한 테디 노래 “내가 먼저 데이트신청”

    지드래곤 ROD 한예슬 테디 지드래곤 ROD, 한예슬 위한 테디 노래 ‘가사보니’ 배우 한예슬이 지드래곤의 노래 ‘라이드 오어 다이’(R.O.D, Ride or die)가 남자친구인 테디가 자신을 위해 만든 곡이라고 밝혔다. 한예슬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테디가 나를 생각하면서 많은 노래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한예슬은 “2년 전부터 테디가 만든 곡들을 다 들어보시면 된다. 특히 여자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노래나 사랑을 고백하는 가사가 내 이야기다. 내가 테디의 뮤즈다”라며 “테디가 따로 나를 위해 노래를 만들었다고 코멘터리를 남기진 못 해 아쉬웠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한예슬은 테디가 만든 노래 중 지드래곤의 ‘라이드 오어 다이’(R.O.D, Ride or die)가 자신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 중 하나라고 밝혔다. ‘ROD’는 2013년 발매된 빅뱅 지드래곤의 솔로 정규2집 ‘쿠데타(COUP D’ETAT)‘ 수록곡으로 가사에는 ‘네 얼굴은 조각같이 너무 아름다워/ 너만 보면 난 동상같이 얼어 / 작은 미소에 내 맘속에는 폭풍이 일잖아/ 네 생각 안 하고 버티기 길어봐야 10분/ 남자는 ‘애’ 아님 ‘개’ 라잖아 다른 놈 ‘매’ 같이 채가잖아/ 지금까지 못 느껴 본 사랑 줄게’ 등 사랑에 빠진 심경이 담겨 있다. 한편 한예슬은 최근 테디와의 첫 만남에 대해 “한 편의 영화와 같았다”면서 “2년 전 연말 한 지인의 모임에서 테디를 처음 만났다. 서로 자기소개를 한 후 내가 먼저 연락처를 물어봤고, 데이트 신청도 먼저 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해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 타깃은 궈보슝… 장쩌민의 軍 심복도 체포 임박설

    반시진핑(習近平) 쿠데타를 주도한 ‘신4인방’이 모두 제거됨에 따라 차기 타깃으로 지목돼 온 궈보슝(郭伯雄)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에 대한 체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반체제 매체 보쉰(博訊)이 13일 보도했다. 보쉰은 베이징(北京)에 주둔하는 무장경찰인 베이징총대(총본부)에 비상 출동 대기령이 발동됐으며 이는 궈보슝 전 부주석을 긴급 체포하기 위한 조치라고 전했다. 총대는 베이징시 하이뎬(海淀)구 완서우루(萬壽路)에서 대기 중이다. 궈보슝은 ‘신4인방’의 일원으로 지난해 낙마한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과 함께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군부 심복으로 통한다. 두 사람은 장 전 주석의 후광을 입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시절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지내며 군내 파벌을 구축하고 각종 비리와 인사 청탁에 광범위하게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궈보슝의 측근들이 지난해 말부터 숙청되자 그 역시 곧 제거될 것이란 설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군 당국으로부터 소환 통보를 받은 뒤 투신자살한 마파샹(馬發祥) 해군 부정치위원(소장)도 궈보슝의 측근으로 전해진다. 특히 궈보슝 체포 이후 시진핑 국가주석의 반부패 칼날이 더 높은 곳을 향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신화망은 시 주석이 최근 각종 담화를 모아 출간한 책에서 “반부패에 있어 (건드릴 수 없는) 마지노선은 없으며 악을 제거해야 임무가 끝난다”고 말했다며 ‘호랑이(부패 몸통) 사냥’이 계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中 ‘차기 호랑이’ 싹 자른 시진핑

    中 ‘차기 호랑이’ 싹 자른 시진핑

    중국 장쑤(江蘇)성의 성도인 난징(南京)시의 일인자 양웨이쩌(楊衛澤·53) 당서기가 ‘엄중한 기율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관영 신화망이 5일 보도했다. 양웨이쩌는 올 들어 낙마한 첫 성부급(省部級·장차관급) 고위직이다. 양웨이쩌가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부주석의 측근이라는 점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사정 칼날이 ‘차기 호랑이’(부패 몸통)로 리위안차오를 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웨이쩌는 리위안차오 부주석이 장쑤성 일인자인 당서기 재직 시절(2000~2007년) 장쑤 지역에서 승진 가도를 달려온 인물이다. 2000년대 초반 쑤저우(蘇州)시장에서 우시(無錫)시 당서기로 한 단계 올라선 데 이어 2006년 차관급인 장쑤성 당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승진했다. 중화권 매체 명경(明鏡)은 이날 리위안차오 부주석이 장쑤성 당서기 시절 음주 사건 등으로 위기에 처했던 양웨이쩌를 보호해 주며 측근으로 관리해 왔다고 전했다. 시 주석 집권 이후 ‘큰 호랑이’들은 주변 측근들부터 정리돼 온 패턴에 비춰 리위안차오 부주석의 낙마설과 연계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리위안차오는 반(反)시진핑 쿠데타 세력인 ‘신4인방’과 가까운 사이라는 소문에 휩싸여 있다. 명경은 앞서 리위안차오가 ‘신4인방’의 일원인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과 링지화(令計劃) 전 통일전선부장의 비밀 모임에 참석해 충성 서약을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리위안차오의 측근인 양웨이쩌는 리위안차오뿐만 아니라 우시 당서기 재직 시절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 가족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저우융캉 일가가 호화 별장을 짓도록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치킨으로 전투기도 살 수 있다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치킨으로 전투기도 살 수 있다

    포클랜드를 두고 영국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아르헨티나가 지난 2일(현지시간) 러시아로부터 12대의 전투폭격기를 임차하기로 합의하면서 현지 언론과 누리꾼들의 화제가 되고 있다. 최신형도 아닌 구식 전투기 12대를 임대하는 것이 현지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르헨티나가 빌려오는 전투기가 ‘러시아판 F-111’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다양한 정밀유도무기를 운용할 수 있어 포클랜드에 배치된 영국군에게 큰 위협이 된다는 것도 있지만, 거래 방식이 특이했기 때문이었다. -전투기 임대료는 ‘쇠고기’와 ‘밀’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아르헨티나는 유럽에서 ‘아르헨티나 드림’을 꿈꾸며 이주할 정도로 부유하고 살기 좋은 나라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만화영화 '엄마 찾아 삼만 리'의 원작인 '아페니니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라는 아동 단편소설 역시 아르헨티나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어머니를 찾아 떠나는 이탈리아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었을 만큼 20세기 초 아르헨티나는 강대국이자 희망의 나라였다. 1920년대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줄곧 내리막길을 걷긴 했지만, 넓은 영토와 탄탄한 1차 산업이 유지되고 있었던 아르헨티나의 군사력은 ‘썩어도 준치’였다. 1980년 포클랜드 전쟁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과 함께 남미의 양대 강국으로 항공모함과 순양함, 중형 잠수함, 당시 기준으로 최신 전투기를 다수 보유한 군사강국이었다. 그러나 포클랜드 전쟁에서 무려 100여 대의 항공기와 8척의 군함을 상실하면서 군사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전쟁 이후 패전에 의한 정치적 혼란과 경제 위기 등으로 인해 20년 가까이 제대로 된 무기 도입을 하지 못해 현재는 육·해·공군을 막론하고 노후 장비만 보유한 나라로 전락했다. 아르헨티나 주변에는 안보를 위협할만한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노후 전투기나 군함만으로도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는 전투기와 군함이 너무 낡아 부품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신형 무기 도입이 필요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아르헨티나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포클랜드에 영국이 지난 2008년부터 전투기와 구축함을 증강 배치하면서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 도입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신형 전투기 도입 사업을 시작했다. 아르헨티나가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곳은 이스라엘이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스라엘제 크피르(Kfir) 전투기 18대 도입을 추진했고, 지난해 1월 도입이 성사되는 듯 했으나, 협상 타결 직전 영국의 압력으로 협상이 유야무야되면서 전투기 도입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스웨덴과 접촉해 최신형 전투기인 JAS-39E 그리펜(Gripen) NG 전투기 도입을 추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전투기는 전체 부품의 약 28%가 영국에서 생산되고 있었고, 당연히 영국은 수출 허가를 내주지 않아 그리펜 전투기 도입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영국의 집요한 방해공작을 피하기 위해 아르헨티나가 눈을 돌린 곳은 러시아였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2010년부터 러시아제 무기 도입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러시아 입장에서는 돈 없는 고객인 아르헨티나 보다는 돈 있는 국가인 영국과의 관계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수송헬기 몇 대 도입하는 것 말고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의 사이가 급격히 틀어지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러시아와의 무기 도입 협상도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는 러시아에 중고 전투기와 군함을 임대 또는 판매해 줄 것을 요청했고, 러시아 역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변수는 ‘결제방식’이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지난해 여름 디폴트를 선언했고, 외환보유고는 바닥을 치고 있으며, 대외 부채가 1320억 달러를 넘는 상태이기 때문에 사실상 무기 대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는 상태였다. 돈은 없어도 무기 도입은 절실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가 러시아에 제시한 결제 방식은 ‘바터 무역(Barter trade)' 즉, 물물교환이었다. 아르헨티나는 돈은 없지만 콩과 밀, 쇠고기 등 농축산물은 풍부한 나라이고, 세계적인 농축산물 수출국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는 자신들에게 풍부한 밀과 쇠고기로 전투기 임대료를 내겠다고 러시아에 제안했다. 전투기 임대 계약은 스위스와 체코, 스페인 등의 국가가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종종 썼던 방식인데, 계약 기간이 길지 않다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단시간 내에 전력 증강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돈은 없는데 전력공백 문제가 시급한 아르헨티나에게 농축산물과 전투기 물물교환은 매력적인 결제 방식이었다. 러시아는 세계 3위의 밀 수출국이기 때문에 아르헨티나로부터 밀을 수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으나, 쇠고기는 이야기가 달랐다. 러시아는 과일과 채소류, 육류 등을 매년 400억 달러 이상 수입하는 세계 5위의 농축수산물 수입대국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미국과 캐나다, EU, 호주 등 주요 농축수산물 수출국들이 대러시아 경제제재 조치를 발표하자 이에 격노한 푸틴 대통령이 이들 국가로부터의 농축수산물 수입을 1년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해버리면서 러시아 국내 농축수산물 가격이 급등해 버렸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축수산물의 수입선 다변화를 모색하던 중 돈은 없지만 농축수산물은 풍부해 현물로 대금을 지급하고 무기를 도입하려는 아르헨티나와가 물물거래를 제안해 온 것이었다. 러시아는 입장에서는 도태 장비인 Su-24를 아르헨티나에 빌려 줌으로써 노후 항공기 운용에 필요한 유지비를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임대 대금으로 농축산물을 들여와 국내 식료품 가격 안정도 도모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아르헨티나 역시 강력한 정밀유도무기 운용이 가능한 Su-24 도입을 통해 공군력 강화를 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 위축되고 있는 국내 축산업계에 활력을 불어 넣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태국도 ‘닭’으로 전투기 구매한 적 있어 물물교환을 통해 전투기를 도입한 사례는 아르헨티나 이외에도 태국이 있다. 사실 ‘먹을 것’으로 전투기 대금을 지급한 원조는 핀란드였다. 핀란드는 지난 1992년 64대의 F/A-18 전투기를 구매하면서 약 30억 달러에 달하는 전투기 구매 대금에 상당하는 절충교역을 요구했고, 이 가운데 일부는 순록고기도 있었다. 여담이지만 순록고기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이나 독일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거의 소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팔리지 않았고, 이 때문에 핀란드에 F/A-18 전투기를 판매했던 맥도널 더글러스 공장의 구내식당의 메뉴로 순록고기가 질리도록 올라왔다는 일화도 있다. 그러나 핀란드는 전투기 대금으로 순록고기를 직접 지불했던 것이 아니라 일정 금액의 순록고기의 미국 시장 판매를 요구했던 것이고, 이 물량 일부를 전투기 제작사가 떠안은 것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순록고기로 전투기를 구매했다고 볼 수는 없다. ‘먹을 것’으로 물물교환을 통해 무기를 구매한 대표적 케이스는 태국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에는 지난 2000년대 이후부터 중국 위협론이 대두되면서 군비 증강 열풍이 불고 있는데,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인접한 국가들이 전투기와 호위함, 잠수함 등을 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경제가 어렵던 태국은 이러한 무기 대량 구매를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중국의 위협 때문에 군사력 현대화는 절실했고, 우선 노후화된 F-5 전투기를 대체하기 위한 신형 전투기 도입에 착수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태국은 미국의 F-16, 러시아의 Su-30과 MIG-29, 프랑스의 라팔(Rafale) 등을 후보 기종으로 놓고 신형 전투기 구매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외환위기를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태국은 대당 1억 달러에 가까운 고성능 전투기를 구매할 여력이 없었지만, 당장 전투기는 급했기 때문에 지난 2004년부터 ‘닭 물물교환’을 통해 전투기를 구매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세계 4위의 닭 수출국인 태국은 2004년 여름 아시아를 덮친 조류독감으로 인해 닭 수출길이 막히자 “닭을 시장에 팔 수 없다면 물물교환이라도 해서 시장에 진입해야지 언제까지고 닭을 태국에 썩혀둘 수 없다”는 탁신 총리의 강력한 지시에 따라 물물교환 방식으로 무기 도입을 추진했다. 태국이 가장 먼저 물물교환 의사를 타진한 나라는 러시아였다. 태국정부는 Su-30MK 전투기와 MIG-29를 저울질 하다가 인접국인 미얀마와 말레이시아가 MIG-29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MIG-29는 고려 대상에서 제외하고 Su-30MK를 도입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곧 모스크바 주재 대사관을 통해 “닭 25만 톤을 Su-30MK 전투기 6대와 바꾸자”고 제안했으나, 러시아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러시아는 이미 브라질에서 대량으로 닭을 수입하고 있었고, 조류독감이 유행하는 태국에서 닭을 구입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국은 포기하지 않고 미국에게 매달렸다. 2005년 미국 정부에 냉동 닭 8만 톤을 제공하는 대신 F-16 전투기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2006년 봄에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 미국이 군사정권에 대한 무기 수출을 거부하면서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러시아와 미국에게 퇴짜를 맞은 태국은 프랑스에 닭 - 전투기 물물교환 의사를 타진했으나 애초에 유럽 최대의 닭 생산국 가운데 하나였던 프랑스가 이를 받아들일 리 만무했고, 태국이 마지막으로 눈을 돌린 곳이 스웨덴이었다. 2006년부터 본격화된 협상에서 태국은 냉동 닭고기와 고무, 쌀 등으로 대금을 결제하고 JAS-39C/D 전투기 6대와 Saab 340 조기경보통제기 1대, 각종 미사일 등을 받아오는데 합의하고 2008년과 2010년에 비슷한 조건으로 총 12대의 전투기를 계약하는데 성공했다. 냉동 닭 1마리에 평균 1kg 안팎인 것을 고려하면, 약 8,000만 마리의 닭이 희생되어 6대의 전투기로 돌아온 것이었다. 이 전투기는 체급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FA-50과 비슷하지만, 전체적인 성능은 최신형 F-16에 버금가는 강력한 수준을 자랑하는 기종이기 때문에 태국의 공군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실제로 지난 2011년부터 본격적인 운용에 들어간 태국공군 역시 이 전투기의 성능에 크게 만족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2013년 말부터 6대 추가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태국은 이번에도 물물교환 방식의 거래를 원하고 있어 스웨덴 정부가 과연 이를 받아들일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시진핑 사정 칼날에… 외교부 고위관료 첫 낙마

    시진핑 사정 칼날에… 외교부 고위관료 첫 낙마

    중국 외교부 장쿤성(張昆生·56) 부장조리(차관급) 겸 예빈사(의전국) 사장(국장)이 부패 혐의로 낙마했다. 차관급 이상 고위 외교 관료가 낙마한 것은 근래 들어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국 외교부는 2일 홈페이지에서 장 부장조리가 공산당 기율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혐의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그의 해임은 반(反)시진핑(習近平) 쿠데타를 주도한 ‘신(新)4인방’의 일원인 링지화(令計劃) 전 통일전선부장(장관급)의 낙마와 관련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해외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명경(明鏡)은 이날 “장쿤성은 링지화와 같은 산시(山西)성 출신으로 링지화와 가까웠던 일파들이 척결되는 과정에서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지난해 6월 이후 산시성 출신 고위직 다수가 부패 혐의로 체포되고 있다. 2011년 부장조리로 승진한 장 부장조리는 그동안 라틴아메리카 업무를 관장하면서 예빈사 사장을 겸임해 왔다. 부인은 유명 배드민턴 선수 샤오제(肖杰)다. 그의 후임으로는 친강(秦剛·48) 신문사(新聞司) 사장 겸 수석 대변인이 임명됐다. 친강이 맡았던 기존 수석 대변인 자리는 류젠차오(劉建超·50) 부장조리가 맡기로 했다. 류 부장조리는 37살이던 2001년 중국 역사상 최연소로 대변인에 기용돼 2009년까지 8년간 ‘중국의 입’으로 활약해 온 최장수 대변인으로도 통한다. 지금도 외교부 언론 총사령탑으로서 영사 업무, 한반도 등 동북아 문제까지 담당하고 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비박의 반격 “朴대통령 폐쇄적 소통 방식 문제”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가 김무성 대표를 상대로 칼을 뽑아 든 지 하루 만에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이 반격에 나섰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김 대표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일단 정면 대응은 피했다. 계파 갈등이 폭발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경우 자신의 대표직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친이(친이명박)계 5선의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와대가 환골탈태해서 속좁은 정치를 그만했으면 한다. 국가나 권력을 사유화하지 말고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패거리 정치 하지 말고 너그러운 정치를 했으면 한다”고 썼다. 친이(친이명박)계 5선의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와대가 환골탈태해서 속좁은 정치를 그만했으면 한다. 국가나 권력을 사유화하지 말고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패거리 정치 하지 말고 너그러운 정치를 했으면 한다”고 썼다. 비박계 3선인 나경원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얼마 전 청와대에서 당 의원들과 함께 대통령을 뵀는데, 여당 의원들이 편하게 이야기를 못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와 적극적인 이야기가 오가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면서 “여당은 (청와대와) 직접적이고 비공개적인 소통 방식을 사용하는데, 그런 부분이 덜 작동된 것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비박계인 재선의 김용태 의원은 대선 승리 2주년째인 지난 19일 있었던 박 대통령과 친박계 7인 간 청와대 회동을 직접 겨냥했다. 김 의원은 “대통령이 집권 여당의 의원을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친박 핵심들만 불러서 비공개로 회동했다는 것은 오해를 살 만하다”며 “걱정이 되고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친박계 의원들이 “김 대표가 당을 사당화하고 있다”며 비난을 퍼부은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면서 “김 대표 스스로가 부당한 공천으로 당에서 쫓겨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허술하게 처신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며 김 대표의 편을 들었다. 논란의 당사자인 김 대표는 이날 영화 국제시장 관람차 찾은 서울 영등포의 한 영화관에서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시끄러운 것이고 분출된 많은 의견을 수렴해 좋은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 정치이기 때문에 그런 말(친박계의 비판)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친박계 7인의 청와대 회동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이 소통이 부족하다고 다들 지적했는데, 그렇게라도 만나서 소통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 대표가 친박계의 공격을 정면으로 되받아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도 친박계의 연말 ‘봉기’를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원내대표 선거와 총선 등을 앞두고 지분 확보를 위한 친박계의 존재감 과시가 필요한 타이밍이었다는 것이다. 친박계의 ‘생살여탈권’도 여전히 김 대표의 손에 쥐어져 있다 보니 김 대표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눈치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있는 친박계도 이번 공격을 신호탄으로 을미년 한 해 동안 더욱 거세게 김 대표를 몰아붙일 것으로 보인다. 한 정치권 인사는 “친박계는 원샷 쿠데타가 아닌 지속적으로 공포감을 심어 주는 방식으로 김 대표 체제 흔들기를 시도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 충돌은 1월 초 국회의원 선거구 조직위원장 인선 결과 발표 직후, 그다음 충돌은 1월 말쯤 4월 보궐선거 공천 과정에서 벌어질 전망이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中, 30년 만에 정치국 위원급 통전부장

    中, 30년 만에 정치국 위원급 통전부장

    반(反)시진핑(習近平) 쿠데타 ‘신(新) 4인방’으로 통하는 링지화(令計劃) 통일전선공작부장의 후임으로 쑨춘란(孫春蘭·64) 톈진(天津)시 당서기가 임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30년 만에 지도부인 정치국위원급 통일전선공작부장이 탄생했다고 홍콩 명보(明報)가 31일 보도했다. 통일전선공작부(통전부)는 소수민족·종교는 물론 대만·홍콩·마카오, 지식인, 화교 등 공산당과 입장이 다른 주요 집단 전반을 관리하는 중앙부처로 중앙선전부(언론), 중앙조직부(인사), 중앙대외연락부(타국 공산당) 등과 함께 4대 중앙 직속 부처로 꼽힌다. 그러나 정치국위원급 가운데 통전부장이 나온 것은 1977년 이래 처음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전임자인 링지화도 중앙위원(205명)급이었다. 정치국위원은 시진핑 국가주석 등 상무위원 7인을 포함해 총 25명으로 중국 공산당 최상층부를 말한다. 신문은 전문가를 인용, “정치국위원급에서 통전부 관리에 나선 것은 홍콩과 대만 업무의 중요도가 커졌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홍콩 행정장관의 민주직선제를 요구한 홍콩 시위의 잔불이 살아있는 데다, 친중국계인 대만 국민당이 지난 11월 총선에서 대패함에 따라 통전부의 홍콩·대만 관리 문제가 공산당 전체의 핵심 업무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 내 자살 시위가 이어지고 있고,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의 분리 독립 테러도 끊이지 않는 등 통전부가 담당하는 소수민족 문제도 골칫거리가 되면서 통전부의 중요도가 한층 커졌다는 관측이다. 쑨춘란은 랴오닝(遼寧)성 안산(鞍山)공업기술학교에서 기계를 전공한 뒤 시계공장 노동자로 시작해 랴오닝성 부녀연합회와 총공회 주석(회장), 다롄(大連)시 당서기, 푸젠(福建)성 당서기 등을 거쳐 4대 직할시인 톈진시 당서기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독재자 암살 가능할까... ‘인터뷰’ 계기로 본 역사속 작전들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독재자 암살 가능할까... ‘인터뷰’ 계기로 본 역사속 작전들

    미국과 북한의 치열한 사이버 공방까지 낳게 만들었던 미국 소니 픽처스의 코미디 영화 '인터뷰'가 미국 전역의 320개 독립 영화관에서 개봉과 동시에 매진 사례를 이어가면서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북한의 강력 반발과 해킹 사건 등으로 인해 영화 제작사가 상영을 포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개봉과 함께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면서 흥행에 성공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 독재국가의 지도자를 암살한다는 주제는 B급 코미디 영화의 소재로 쓰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이고, 과거 개봉되었던 암살 영화들을 보면 당대의 정치 상황을 반영한 역사극이거나 특수부대와 같은 히어로가 등장하는 액션 영화였던 경우가 많았지만, '인터뷰'는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의 어린 지도자를 암살하는 스토리를 코미디로 풀어냈다.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답게 관객들이 시종일관 폭소를 터트릴만한 장면들이 자주 나오고, 결말 역시 김정은이 헬기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우스꽝스럽게 죽는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영화 속에서나 실제 역사에서나 ‘독재자 암살’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방법으로 시도되었던 암살 시도는 미국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가 195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무려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알려진 것만 638가지 방법으로 시도했던 쿠바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암살 작전이었다. 1958년 플로리다 해안에서 불과 180km 떨어진 곳에 들어선 공산국가는 미국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고, 1962년에 있었던 쿠바 핵미사일 위기는 미국으로 하여금 쿠바의 공산 독재 지도자 카스트로를 어떻게 해서든 제거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만들었다. 미국은 1958년 쿠바 공산혁명 직후 쿠바를 탈출한 1,500여 명의 망명자들을 모아 ‘제2506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 이 부대를 동원해 쿠바 침공을 감행했지만, 부대원들이 몇 달 전부터 작전 내용을 떠벌리고 다니는 등 형편없는 보안 유지로 인해 상륙과 동시에 대부분 전멸하고 상당수가 포로로 잡히는 참담한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쿠바 배후의 소련, 그리고 국제사회의 비난 때문에 군사력 동원을 통한 카스트로 공산정권 축출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미국은 카스트로를 암살해 버리기로 결심하고 여러 방법을 동원했는데 그 방법은 참신하다 못해 기상천외했다. 20년 넘게 쿠바 정보기관의 수장으로 활약했던 파비안 에스칼란테(Fabian Escalante)는 지난 2006년 펴낸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이라는 저서에서 미국 CIA에 의해 자행된 카스트로 암살 시도는 무려 638회에 달했고, 여기에는 단순한 방법부터 최첨단 장비를 이용한 시도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고 전했다. 애연가였던 카스트로의 시가(Cigar) 담배에 미량의 폭약을 넣는 방법은 애교에 불과했다. 스쿠버 다이빙 애호가였던 카스트로의 취미 생활을 이용해 해파리 등 수중 연체동물의 촉수에 독을 발라 카리브 해에 풀어놓는가 하면, 카스트로가 자주 다이빙을 즐기는 지역에 알록달록한 조개 모양의 폭발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카스트로가 해외 순방에 나서면 호텔 직원을 포섭하거나 직접 암살요원을 보내 음료에 독을 타거나 소파에 폭발물을 숨겨 놓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CIA가 벌였던 카스트로 암살작전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작전은 바로 카스트로의 옛 애인이 동원되었던 작전이었다. 19세의 나이에 카스트로를 처음 만나 9개월 간 동거하며 카스트로의 아이까지 임신했던 마리타 로렌츠(Marita Lorenz)는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어 강제로 낙태를 당했고, 카스트로와 강제로 이별해야 했다. CIA는 카스트로에게 상처 받고 버림받아 복수심에 불타 있을 로렌츠가 암살 작전에 더할나위없이 제격이라고 판단하고, 암살 작전에 성공하면 안전 보장과 함께 200만 달러를 현찰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로렌츠는 카스트로가 머물던 아바나 호텔방에 들어서자마자 CIA가 준 독약캡슐을 버리고 카스트로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다. 카스트로는 로렌츠에게 권총을 쥐어주며 자신을 쏘라고 했지만, 로렌츠는 카스트로를 차마 쏘지 못했고, 결국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카스트로는 로렌츠를 처벌하지 않고 미국으로 돌려보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으로 돌아간 로렌츠가 그 이후에도 반(反) 카스트로 활동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결국 40년에 걸친 미국의 카스트로 암살 시도는 모두 실패했고, 피델 카스트로는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좌를 이양하고 물러나 편안한 여생을 살고 있다.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작전명 : 발키리 성공했다면 세계사를 바꿀 뻔 했지만, 나무 테이블 하나 때문에 실패해 5,000여 명이 반역자로 몰려 처형당한 ‘발키리 작전’ 역시 유명한 암살 시도 가운데 하나였다. 오래 전부터 나치의 군 장악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던 독일 국방군의 프로이센 귀족 출신 장교들은 1944년 6월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면서 패색이 짙어지자 히틀러 암살과 나치 체제 전복을 위한 쿠데타 계획을 수립했다. 독일군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깊은 신망을 받고 있던 루트비히 베크(Ludwig Beck) 대장 등 고위 장교들이 가담한 이 암살 및 쿠데타 계획의 내용은 단순했다. 폭탄을 이용해 히틀러를 제거하면, 국방군이 장악하고 있던 예비군조직을 이용해 베를린과 독일 각지의 주요 시설을 점거하고, 나치에 충성하는 경찰과 친위대 조직을 제압한 뒤 베크 대장을 임시 수반으로 추대하고 연합군과 항복 협상에 나선다는 것이었다. 가장 위험한 암살 임무는 국방군본부 예비군 참모였던 슈타우펜베르크(Stauffenberg) 대령이 맡았다.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라슈텐부르크에 있는 히틀러의 비밀 지휘소였던 ‘늑대굴(Wolfschanze)'에서 히틀러가 주재한 전시 작전회의에 예비군 동원 계획을 보고하기 위해 참석했는데, 이 늑대굴에는 아무리 고위장교라도 무기 등 금속을 휴대하고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액체와 플라스틱을 이용한 폭탄을 휴대하고 회의장에 들어갔다. 이 폭탄은 연합군이 프랑스에 있는 레지스탕스에 공급하기 위해 제작한 특수 폭탄이었다. 플라스틱 시험관 안에 들어있는 캡슐을 깨뜨리면 시한신관이 작동하면서 정확히 10분 후에 폭발하는 구조였다. 슈타우펜베르크는 회의장에 다소 늦게 들어가 작전 테이블 아래에 폭탄가방을 내려놓았고, 발을 뻗어 다른 참석자들 몰래 그 가방을 히틀러 발 앞에까지 밀어 넣고 회의장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전속부관인 하인츠 브란트(Heinz Brandt) 대령이 그 가방을 발견하고 거추장스러운 가방을 히틀러가 발견하면 싫어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 가방을 옆으로 치우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잠시 뒤 폭탄이 터지면서 지붕이 날아가고 창문이 깨지는 등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폭탄을 자기 쪽으로 치웠던 브란트 대령 등 3명이 즉사하고 참석자들 상당수가 중상을 입었으며, 히틀러 역시 고막이 터지고 팔과 다리에 나무 파편이 박히는 등 상당한 부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던 것이다. 마침 폭탄이 터질 때 히틀러가 작전지도를 자세히 보기 위해 테이블 깊숙이 몸을 숙인 상태였고, 두꺼운 참나무 테이블이 폭발의 충격을 상당부분 막아주면서 히틀러는 크게 다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나치 조직은 사건 직후 병력을 동원해 친위대 사령부를 포위하고, 예비군 사령관이었던 프롬 대장에게 병력을 출동시켜 쿠데타에 가담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날 오후 히틀러가 자신의 건재함을 발표하자마자 반란군에 대규모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다. 사건 직후 히틀러는 친위대와 게슈타포를 총동원해 가담자 색출에 나섰고, 약 7,000여 명이 체포되고 그 중 5,000여 명이 처형당했는데, 이 가운데는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음에도 반란 세력으로 몰려 강제 자살로 내몰린 에르빈 롬멜(Erwin J.E. Rommel) 장군도 있었다. 실제로 있었던 김정일 암살 미수 사건 최근 김정은이 주관한 행사장에서 몰래 숨겨 놓은 기관총이 발견되어 관계자가 숙청당했다는 소식처럼 김정은 일가에 대한 위해 시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정보기관과 대규모 경호부대를 통해 자신의 주변에 수십 겹의 안전장치를 깔아 놓은 김씨 일가의 조심성 때문에 그동안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김씨 일가에 대한 암살 모의 사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1992년에 있었던 ‘프룬제 아카데미아 사건’이다. ‘프룬제 아카데미아’란 우리나라의 합동군사대학교와 비슷한 개념의 고급장교 보수교육 기관으로 냉전 시절 소련의 위성국이나 공산국가들의 고급 장교들이 가장 많이 유학했던 교육기관이다. 북한은 현대전에 대비하기 위한 정예 장교를 육성을 목적으로 1980년대 초부터 소련 각 학교기관에 대규모 유학생을 파견했는데, 이들 유학생들은 소련 정보기관 KGB의 최우선 포섭대상이 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북한이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적당히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최대한의 실리를 챙겨는 노선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 입장에서는 북한을 확실히 옭아매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유학 장교들은 유학 장교들 나름대로 유학 생활을 통해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흐루시초프 이후 자유로운 상호 비판과 권력 이동이 이루어지는 소련 체제에 큰 충격을 받았고, 무엇보다 세습적 봉건왕조화 되어가던 북한을 이대로 두면 동구권 국가들처럼 붕괴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이들은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안종호 상장을 중심으로 결집했다. 혁명유자녀만 들어갈 수 있다는 만경봉대학원과 남산학교를 거쳐 프룬제 아카데미아에서 수학한 안 상장(한국군 중장 계급에 해당)을 중심으로 결집한 프룬제 출신 장교들은 1992년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건 60주년 기념 행사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암살하고 쿠데타를 일으키기로 모의하고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거사는 평양방어사령부 예하 전차부대 지휘관을 맡고 있었던 김일훈 소장(한국군 준장 계급에 해당)이 맡기로 했다. 인민군 창건 기념 열병식에서 김일성 광장을 가로지르는 전차부대가 김일성 부자가 위치한 인민대학습당 주석단 정면을 통과할 때 포탑을 돌려 전차포로 주석단을 날려버리겠다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빗나갔다. 열병식에 자신의 부대인 제820기계화군단을 내보내 김정일에게 눈도장을 찍겠다는 박기서 상장이 인민무력부에 압력을 넣어 열병식 참가 전차를 평양방어사령부가 아닌 820군단 전차로 바꿔버렸기 때문이었다. 거사 직후 뒤를 봐주기로 약속했던 KGB의 배신 역시 치명적이었다. 김일성과 치열한 권력 암투를 벌이던 김정일에게 접근한 KGB는 “1,000만 달러를 주면 프룬제 아카데미아 유학파 가운데 소련에 포섭된 자와 반란 모의에 가담한 자의 명단을 넘겨주겠다”고 제안했고, 김정일이 이를 수용하면서 암살 계획 전모가 드러났던 것이다. 이후 소련 유학파, 특히 프룬제 아카데미아 출신 고위 장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이어졌고, 노동당과 내각, 군부 내에서 소련 유학파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국내파들이 득세하면서 김정일 시대는 ‘철저한 자주노선’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엘리트 장교들이 가담한 암살 모의 사건에 경악한 김정일은 이후 보위사령부와 호위사령부를 확대 개편해 친정 체제를 강화하고, 평양을 철통같은 보안이 유지되는 철옹성으로 바꾸어 놓았다. 김정은 역시 아버지를 이어 자신의 최측근으로 보위사령부와 호위사령부를 장악하고 세계 최대 수준의 경호 부대를 만들어 자신의 주변을 24시간 지키게 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은 무작정 경호원을 늘리는 것보다 자신의 곁을 지키는 그 군인들도 본질적으로는 북한의 인민이며, 폭정(暴政)이 계속되어 인민들의 한(恨)이 쌓이면 자신의 경호원들의 총구가 자신을 향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지금&여기] 데모스테스의 재판/강병철 정치부 기자

    [지금&여기] 데모스테스의 재판/강병철 정치부 기자

    극작가 이근삼의 1964년 작품 ‘데모스테스의 재판’은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는 저세상의 어느 재판에 대한 이야기다. 생전에 ‘까뚜리왕국’ 경비원이었던 데모스테스는 폭동을 막던 중 왕궁에 침입한 시민 한 명을 죽인다. 이후 폭동은 성공한 혁명이 되고 그 결과 ‘뚜방뚜왕국’이 들어서면서 데모스테스는 반동으로 몰려 사형을 당한다. 죽은 데모스테스는 다시 사후세계의 재판정에 서고 이 재판은 무려 5000년 동안 5만 3221회나 이어지는데도 그의 유무죄는 가려지지 않는다. 이 재판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살인에 대한 평가가 계속 뒤바뀌기 때문이다. 차례로 저세상으로 오는 새로운 증인들은 데모스테스의 살인을 저마다 다르게 평가한다. 결국 그는 까뚜리왕국이 5000년 역사 속에서 24번 역적집단으로 몰리고 19번 위대한 왕국이라고 규정되는 동안 반동과 애국자라는 양극단의 평가를 번갈아 받는다. 4·19혁명과 5·16쿠데타가 차례로 일어난 때를 즈음해 이런 비정상적인 극중 상황을 그려낸 작가의 주제의식이 뭔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그건 자고 나면 애국과 반동이 뒤바뀌는 현실에 우리가 과연 정의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느냐는 회의감이었을 것이다. 당시 무수한 데모스테스들은 반동으로 몰려 이 나라에서 사라졌지만 기나긴 역사의 호흡에서 볼 때 그건 무구한 진실성을 담보하기는 힘든 판결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선고를 바라보며 50년 전 이 작품을 떠올린 건 2014년 헌재가 일종의 데모스테스의 재판을 너무 서둘러 끝낸 게 아닐까 하는 찝찝함 때문이다. 물론 작품 속 재판정처럼 헌재가 무한정 선고를 미룰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른바 통합진보당 ‘주도세력’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1·2심 판단이 엇갈린 상황에서 헌재는 왜 고작 다음 달인 대법원의 판단조차 기다릴 수 없었을까. 더욱이 정치적 논란이 분명히 예상되는 때에 헌재는 오히려 논란을 더 증폭시키고 스스로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식으로 재판을 마무리했다. ‘데모스테스의 재판’이 발표됐던 시대에 벌어진 상당수 정치적 재판은 최근에 와서 그 결과가 뒤집히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2014년 헌재의 선고가 다시 그 같은 길을 가리라고는 당연히 믿지 않는다. 대신 선고와 별개로 해산된 통합진보당과 해산을 선고한 헌재 그리고 해산을 청구한 현 정권에 대한 평가는 분명 언젠가 바뀔 것이다. 앞으로 몇 번이나 까뚜리왕국과 뚜방뚜왕국이 뒤바뀔지는 모를 일이니까. bckang@seoul.co.kr
  • [기획] 영화 ‘인터뷰’를 통해 본 김정일·카스트로·히틀러 암살 사건

    [기획] 영화 ‘인터뷰’를 통해 본 김정일·카스트로·히틀러 암살 사건

    미국과 북한의 치열한 사이버 공방까지 낳게 만들었던 미국 소니 픽처스의 코미디 영화 '인터뷰'가 미국 전역의 320개 독립 영화관에서 개봉과 동시에 매진 사례를 이어가면서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북한의 강력 반발과 해킹 사건 등으로 인해 영화 제작사가 상영을 포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개봉과 함께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면서 흥행에 성공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 독재국가의 지도자를 암살한다는 주제는 B급 코미디 영화의 소재로 쓰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이고, 과거 개봉되었던 암살 영화들을 보면 당대의 정치 상황을 반영한 역사극이거나 특수부대와 같은 히어로가 등장하는 액션 영화였던 경우가 많았지만, '인터뷰'는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의 어린 지도자를 암살하는 스토리를 코미디로 풀어냈다.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답게 관객들이 시종일관 폭소를 터트릴만한 장면들이 자주 나오고, 결말 역시 김정은이 헬기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우스꽝스럽게 죽는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영화 속에서나 실제 역사에서나 ‘독재자 암살’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방법으로 시도되었던 암살 시도는 미국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가 195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무려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알려진 것만 638가지 방법으로 시도했던 쿠바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암살 작전이었다. 1958년 플로리다 해안에서 불과 180km 떨어진 곳에 들어선 공산국가는 미국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고, 1962년에 있었던 쿠바 핵미사일 위기는 미국으로 하여금 쿠바의 공산 독재 지도자 카스트로를 어떻게 해서든 제거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만들었다. 미국은 1958년 쿠바 공산혁명 직후 쿠바를 탈출한 1,500여 명의 망명자들을 모아 ‘제2506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 이 부대를 동원해 쿠바 침공을 감행했지만, 부대원들이 몇 달 전부터 작전 내용을 떠벌리고 다니는 등 형편없는 보안 유지로 인해 상륙과 동시에 대부분 전멸하고 상당수가 포로로 잡히는 참담한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쿠바 배후의 소련, 그리고 국제사회의 비난 때문에 군사력 동원을 통한 카스트로 공산정권 축출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미국은 카스트로를 암살해 버리기로 결심하고 여러 방법을 동원했는데 그 방법은 참신하다 못해 기상천외했다. 20년 넘게 쿠바 정보기관의 수장으로 활약했던 파비안 에스칼란테(Fabian Escalante)는 지난 2006년 펴낸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이라는 저서에서 미국 CIA에 의해 자행된 카스트로 암살 시도는 무려 638회에 달했고, 여기에는 단순한 방법부터 최첨단 장비를 이용한 시도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고 전했다. 애연가였던 카스트로의 시가(Cigar) 담배에 미량의 폭약을 넣는 방법은 애교에 불과했다. 스쿠버 다이빙 애호가였던 카스트로의 취미 생활을 이용해 해파리 등 수중 연체동물의 촉수에 독을 발라 카리브 해에 풀어놓는가 하면, 카스트로가 자주 다이빙을 즐기는 지역에 알록달록한 조개 모양의 폭발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카스트로가 해외 순방에 나서면 호텔 직원을 포섭하거나 직접 암살요원을 보내 음료에 독을 타거나 소파에 폭발물을 숨겨 놓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CIA가 벌였던 카스트로 암살작전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작전은 바로 카스트로의 옛 애인이 동원되었던 작전이었다. 19세의 나이에 카스트로를 처음 만나 9개월 간 동거하며 카스트로의 아이까지 임신했던 마리타 로렌츠(Marita Lorenz)는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어 강제로 낙태를 당했고, 카스트로와 강제로 이별해야 했다. CIA는 카스트로에게 상처 받고 버림받아 복수심에 불타 있을 로렌츠가 암살 작전에 더할나위없이 제격이라고 판단하고, 암살 작전에 성공하면 안전 보장과 함께 200만 달러를 현찰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로렌츠는 카스트로가 머물던 아바나 호텔방에 들어서자마자 CIA가 준 독약캡슐을 버리고 카스트로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다. 카스트로는 로렌츠에게 권총을 쥐어주며 자신을 쏘라고 했지만, 로렌츠는 카스트로를 차마 쏘지 못했고, 결국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카스트로는 로렌츠를 처벌하지 않고 미국으로 돌려보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으로 돌아간 로렌츠가 그 이후에도 반(反) 카스트로 활동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결국 40년에 걸친 미국의 카스트로 암살 시도는 모두 실패했고, 피델 카스트로는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좌를 이양하고 물러나 편안한 여생을 살고 있다.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작전명 : 발키리 성공했다면 세계사를 바꿀 뻔 했지만, 나무 테이블 하나 때문에 실패해 5,000여 명이 반역자로 몰려 처형당한 ‘발키리 작전’ 역시 유명한 암살 시도 가운데 하나였다. 오래 전부터 나치의 군 장악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던 독일 국방군의 프로이센 귀족 출신 장교들은 1944년 6월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면서 패색이 짙어지자 히틀러 암살과 나치 체제 전복을 위한 쿠데타 계획을 수립했다. 독일군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깊은 신망을 받고 있던 루트비히 베크(Ludwig Beck) 대장 등 고위 장교들이 가담한 이 암살 및 쿠데타 계획의 내용은 단순했다. 폭탄을 이용해 히틀러를 제거하면, 국방군이 장악하고 있던 예비군조직을 이용해 베를린과 독일 각지의 주요 시설을 점거하고, 나치에 충성하는 경찰과 친위대 조직을 제압한 뒤 베크 대장을 임시 수반으로 추대하고 연합군과 항복 협상에 나선다는 것이었다. 가장 위험한 암살 임무는 국방군본부 예비군 참모였던 슈타우펜베르크(Stauffenberg) 대령이 맡았다.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라슈텐부르크에 있는 히틀러의 비밀 지휘소였던 ‘늑대굴(Wolfschanze)'에서 히틀러가 주재한 전시 작전회의에 예비군 동원 계획을 보고하기 위해 참석했는데, 이 늑대굴에는 아무리 고위장교라도 무기 등 금속을 휴대하고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액체와 플라스틱을 이용한 폭탄을 휴대하고 회의장에 들어갔다. 이 폭탄은 연합군이 프랑스에 있는 레지스탕스에 공급하기 위해 제작한 특수 폭탄이었다. 플라스틱 시험관 안에 들어있는 캡슐을 깨뜨리면 시한신관이 작동하면서 정확히 10분 후에 폭발하는 구조였다. 슈타우펜베르크는 회의장에 다소 늦게 들어가 작전 테이블 아래에 폭탄가방을 내려놓았고, 발을 뻗어 다른 참석자들 몰래 그 가방을 히틀러 발 앞에까지 밀어 넣고 회의장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전속부관인 하인츠 브란트(Heinz Brandt) 대령이 그 가방을 발견하고 거추장스러운 가방을 히틀러가 발견하면 싫어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 가방을 옆으로 치우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잠시 뒤 폭탄이 터지면서 지붕이 날아가고 창문이 깨지는 등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폭탄을 자기 쪽으로 치웠던 브란트 대령 등 3명이 즉사하고 참석자들 상당수가 중상을 입었으며, 히틀러 역시 고막이 터지고 팔과 다리에 나무 파편이 박히는 등 상당한 부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던 것이다. 마침 폭탄이 터질 때 히틀러가 작전지도를 자세히 보기 위해 테이블 깊숙이 몸을 숙인 상태였고, 두꺼운 참나무 테이블이 폭발의 충격을 상당부분 막아주면서 히틀러는 크게 다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나치 조직은 사건 직후 병력을 동원해 친위대 사령부를 포위하고, 예비군 사령관이었던 프롬 대장에게 병력을 출동시켜 쿠데타에 가담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날 오후 히틀러가 자신의 건재함을 발표하자마자 반란군에 대규모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다. 사건 직후 히틀러는 친위대와 게슈타포를 총동원해 가담자 색출에 나섰고, 약 7,000여 명이 체포되고 그 중 5,000여 명이 처형당했는데, 이 가운데는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음에도 반란 세력으로 몰려 강제 자살로 내몰린 에르빈 롬멜(Erwin J.E. Rommel) 장군도 있었다. 실제로 있었던 김정일 암살 미수 사건 최근 김정은이 주관한 행사장에서 몰래 숨겨 놓은 기관총이 발견되어 관계자가 숙청당했다는 소식처럼 김정은 일가에 대한 위해 시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정보기관과 대규모 경호부대를 통해 자신의 주변에 수십 겹의 안전장치를 깔아 놓은 김씨 일가의 조심성 때문에 그동안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김씨 일가에 대한 암살 모의 사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1992년에 있었던 ‘프룬제 아카데미아 사건’이다. ‘프룬제 아카데미아’란 우리나라의 합동군사대학교와 비슷한 개념의 고급장교 보수교육 기관으로 냉전 시절 소련의 위성국이나 공산국가들의 고급 장교들이 가장 많이 유학했던 교육기관이다. 북한은 현대전에 대비하기 위한 정예 장교를 육성을 목적으로 1980년대 초부터 소련 각 학교기관에 대규모 유학생을 파견했는데, 이들 유학생들은 소련 정보기관 KGB의 최우선 포섭대상이 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북한이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적당히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최대한의 실리를 챙겨는 노선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 입장에서는 북한을 확실히 옭아매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유학 장교들은 유학 장교들 나름대로 유학 생활을 통해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흐루시초프 이후 자유로운 상호 비판과 권력 이동이 이루어지는 소련 체제에 큰 충격을 받았고, 무엇보다 세습적 봉건왕조화 되어가던 북한을 이대로 두면 동구권 국가들처럼 붕괴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이들은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안종호 상장을 중심으로 결집했다. 혁명유자녀만 들어갈 수 있다는 만경봉대학원과 남산학교를 거쳐 프룬제 아카데미아에서 수학한 안 상장(한국군 중장 계급에 해당)을 중심으로 결집한 프룬제 출신 장교들은 1992년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건 60주년 기념 행사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암살하고 쿠데타를 일으키기로 모의하고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거사는 평양방어사령부 예하 전차부대 지휘관을 맡고 있었던 김일훈 소장(한국군 준장 계급에 해당)이 맡기로 했다. 인민군 창건 기념 열병식에서 김일성 광장을 가로지르는 전차부대가 김일성 부자가 위치한 인민대학습당 주석단 정면을 통과할 때 포탑을 돌려 전차포로 주석단을 날려버리겠다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빗나갔다. 열병식에 자신의 부대인 제820기계화군단을 내보내 김정일에게 눈도장을 찍겠다는 박기서 상장이 인민무력부에 압력을 넣어 열병식 참가 전차를 평양방어사령부가 아닌 820군단 전차로 바꿔버렸기 때문이었다. 거사 직후 뒤를 봐주기로 약속했던 KGB의 배신 역시 치명적이었다. 김일성과 치열한 권력 암투를 벌이던 김정일에게 접근한 KGB는 “1,000만 달러를 주면 프룬제 아카데미아 유학파 가운데 소련에 포섭된 자와 반란 모의에 가담한 자의 명단을 넘겨주겠다”고 제안했고, 김정일이 이를 수용하면서 암살 계획 전모가 드러났던 것이다. 이후 소련 유학파, 특히 프룬제 아카데미아 출신 고위 장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이어졌고, 노동당과 내각, 군부 내에서 소련 유학파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국내파들이 득세하면서 김정일 시대는 ‘철저한 자주노선’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엘리트 장교들이 가담한 암살 모의 사건에 경악한 김정일은 이후 보위사령부와 호위사령부를 확대 개편해 친정 체제를 강화하고, 평양을 철통같은 보안이 유지되는 철옹성으로 바꾸어 놓았다. 김정은 역시 아버지를 이어 자신의 최측근으로 보위사령부와 호위사령부를 장악하고 세계 최대 수준의 경호 부대를 만들어 자신의 주변을 24시간 지키게 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은 무작정 경호원을 늘리는 것보다 자신의 곁을 지키는 그 군인들도 본질적으로는 북한의 인민이며, 폭정(暴政)이 계속되어 인민들의 한(恨)이 쌓이면 자신의 경호원들의 총구가 자신을 향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세계의 창] “종교는 정치 참여 말라” vs “신정일치 국가 건설” 세력다툼

    [세계의 창] “종교는 정치 참여 말라” vs “신정일치 국가 건설” 세력다툼

    #1 지난 8월 미국의 맹방을 자처하는 이집트와 아랍에미리트(UAE) 공군이 리비아를 기습 폭격해 미국을 당황케 했다. 이들은 왜 미국 몰래 공습을 감행했을까? #2 ‘아랍의 봄’ 투사였던 이집트 청년 아흐메드 알다라위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대원으로 활동하다 전사한 사실이 지난 3일 전해졌다. 경찰 출신으로 민주정부 수립을 위해 헌신했던 그가 왜 세계 ‘공공의 적’인 IS의 대원이 됐을까? #3 터키의 판검사들은 왜 국민이 장기집권을 허락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려고 할까? 위 세 가지 질문은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발단의 단초는 하나다. 바로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충돌’. 얽히고설킨 중동 정세를 이 키워드를 통해 바라보면 분쟁의 원인과 실체가 드러날 때가 많다. 먼저 이집트와 UAE의 리비아 공습부터 살펴보자. ‘아랍의 봄’으로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정권이 무너진 이후 리비아에서는 이슬람주의 민병대와 세속주의 민병대가 일진일퇴의 내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8월은 이슬람 민병대가 의사당과 정부 청사를 점령한 때다. 세속주의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이집트와 세속주의 왕정이 통치를 하고 있는 UAE로서는 자신들의 턱밑에 이슬람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다. 미국은 왜 놀랐을까? 이집트와 UAE가 리비아 내전에 개입하면 이슬람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는 이웃 카타르와 터키도 개입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중동전문가 미셸 둔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가자 사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에게 리비아에서 4개국이 전투를 벌이는 상황은 그야말로 악몽과 같다”고 분석했다. 피아 구분이 불분명해진 시리아 내전도 근원은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의 충돌이다. 처음에는 세속주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에 대항해 모든 이슬람 세력이 함께 대항했다.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이슬람 무장단체 내부에서 종파 분쟁이 터졌고,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려는 ‘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ISIS·이후 IS로 진화)가 다른 반군들을 제압해 가며 극단적인 이슬람 원리주의의 ‘괴물’이 됐다. IS의 단기 목표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세속주의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고, 장기 목표는 미국을 침몰시키는 것이다. 이집트 청년 알다라위는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전쟁의 희생양이다. 촉망받는 경찰이었던 그는 호스니 무바라크를 무너뜨린 항쟁의 최전선에 섰다. 그러나 ‘아랍의 봄’이 가져다준 해방 공간에선 이슬람주의 시위대와 세속주의 시위대가 충돌했다.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한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를 급속도로 이슬람화시켰다. 이에 반발한 압둘 팟타흐 시시 국방장관은 쿠데타를 일으켰고, 무바라크보다 더 강압적인 철권통치에 나섰다. 알다라위의 삶을 추적한 파이낸셜타임스는 “알다라위는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시위대가 분열되는 것을 보고 절망했으며, 다시 군부가 집권하는 것을 보고 극단적 이슬람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 같다”고 보도했다. 시민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시리아, 리비아, 예멘, 알제리 등에서도 알다라위와 같은 선택을 하는 청년들이 줄을 잇고 있다.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제 뉴스의 단골손님이다. 최근 그는 “무슬림 뱃사람들이 콜럼버스보다 314년 빠른 1178년에 아메리카 대륙에 당도했다”고 주장해 때아닌 역사 논쟁을 일으켰다. 여성학자들의 토론회에 참석해서는 “여성은 기본적으로 남성과 평등할 수 없다”고 말해 공분을 샀다. 터키 공교육의 이슬람화도 추진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가자지구 전쟁에서 하마스를 지원하고, 시리아에서는 무슬림형제단 반군을 지원하며, 이집트 군사정권과 각을 세우는 원인은 그의 판단 기준이 이슬람주의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주의자 에르도안에게 가장 강력하게 저항하는 이들은 터키의 검사와 판사들이다. 삼권분립과 신정분리에 의해 통치되길 바라는 사법부는 이슬람 율법에 따른 통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 특히 터키는 1923년 중동 국가 중 처음으로 헌법에 세속주의 통치를 못 박은 나라다. 이 때문에 판검사들이 나서서 대통령과 대통령의 아들 및 측근의 비리를 캐고 있다. 가디언은 “터키는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향방을 정하는 시금석”이라고 평가했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용어 클릭] ■이슬람주의 이슬람의 이념을 현실 정치에서 실현하려는 이데올로기이다. 종교지도자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따라 통치하는 신정일치 국가 건설을 추구한다. ■세속주의 정치와 종교가 분리돼 종교의 정치 참여를 금지해야 한다는 이념이다. 중동에서는 주로 왕족과 군부가 독재 통치로 세속주의 정치를 유지해 왔다.
  • 터키, 반정부 언론인 등 대대적 검거…국제사회 “반민주적 행위” 맹비난

    터키 당국이 반(反)정부 성향의 언론인, 경찰 등에 대한 대대적 검거작전에 나서자 국제사회가 “반민주적 행위”라며 맹비난하고 나섰다. AFP통신 등 외신은 14일(현지시간) 터키 경찰이 터키 전역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 반대하는 신문사 편집국장과 방송사 회장, 프로듀서, 작가, 경찰 등 최소 27명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체포영장은 32명에 대해 발부됐다. 언론인들은 협박과 위협을 통해 국가 권력을 찬탈하려 한 혐의를, 경찰들은 2010년 알카에다와 연관된 범죄 조직을 수사하면서 증거를 조작·왜곡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고 터키 국영 아나톨리아통신이 전했다. 이날 체포된 인사 중에는 터키 최대 일간지 자만의 에크렘 두만리 편집국장과 사마뇰류 TV의 히다예트 카라차 회장 등이 포함돼 있다. 두만리 국장이 체포되는 모습은 TV로 생중계되기도 했다. 두만리 국장 체포 시 이스탄불 자만 본사 앞에는 수천명의 지지자와 언론인이 모여 “자유 언론은 침묵할 수 없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체포된 사람들은 과거 에르도안 대통령의 동지였다가 최대 정적이 된 이슬람 성직자 페툴라 귤렌의 지지자들이다. 귤렌은 현재 미국에 머물며 교육과 언론, 문화, 경찰, 사법부 등에 지지자를 다수 확보한 터키의 사회단체 ‘히즈메트(봉사) 운동’을 이끌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2일 귤렌 지지자에 대한 대대적 검거를 예고했다. 두 언론사는 1년 전 당시 총리였던 에르도안 대통령의 부정부패 의혹을 집중 보도한 바 있다. 터키 제1야당이 “이번 급습은 쿠데타”라며 반발하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비난도 이어지고 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담당 집행위원과 요하네스 한 EU 확대협상담당 커미셔너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검거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인 언론 자유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며 “이는 터키의 EU 가입 신청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도 성명을 통해 “터키 당국이 자국의 민주적 근간과 핵심가치를 침범하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정윤회 문건 파문] 靑 vs 趙 공방 격화… 檢 “얽히고설킨 문제” 한숨

    청와대와 정윤회씨가 한 축이 되고,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또 다른 한 축을 맡아 벌이는 진실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양측은 정씨 국정개입 문건 작성 및 유출 의혹을 놓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지난달 28일 정씨와 이른바 ‘십상시 모임’을 담은 문건이 공개되자 청와대 측은 곧바로 “찌라시(사설 정보지) 수준”이라고 일축했다. 정씨도 “전부 조작”이라고 했다. 반면 조 전 비서관은 “(신빙성이) 6할 이상”이라며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나중에 “사실에 부합할 가능성이 60% 이상이라는 뜻”이라고 조금 물러서긴 했다. 최근에는 청와대가 조 전 비서관 측 이른바 ‘7인회’를 문건 작성 및 유출 배후로 지목하며 역공을 가하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1일 문건 유출에 대한 특별감찰을 통해 오모 행정관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 전 비서관 이름이 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과 함께 조 전 비서관이 청와대에 재직할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함께 일했던 인물이다. 청와대는 조 전 비서관이 박지만 EG 회장의 측근, 오 행정관, 박 경정 등과의 ‘7인 모임’을 통해 문건 작성과 유출을 주도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비서관 측은 박정희 정부 시절 쿠데타 음모를 조작해 구속시킨 ‘윤필용 사건’에 비유하며 “청와대 조사 결과는 조작”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청와대 측에 의해 언급되고 있는 7인회 인물 중에는 모르는 사람도 있고 한두 번밖에 만나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조 전 비서관은 또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다리를 놓아 박 회장과 세계일보 기자가 만나 유출된 청와대 문건 문제를 논의했다는 새로운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오 행정관도 “조 전 비서관을 배후로 설정해 놓은 강압적인 감찰을 받았으며 진술서 서명을 거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사는 한참 뒤처져 있는데 청와대 측과 조 전 비서관 측 간 진실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검찰은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검찰 관계자는 12일 “정치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자꾸 검찰로 가져오는 것은 정치권에도, 검찰에도 모두 좋지 않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편 청와대는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 작성 및 유출의 배후로 의심하고 있는 오 행정관의 사표를 수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브라질도 “인권유린 고백합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1964~1985년)의 인권유린 행위를 담은 브라질 국가진실위원회 보고서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웃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와 달리 군사정권 시절인 1979년 제정된 사면법에 따라 전범들을 처벌하지 못했던 브라질이 본격적인 과거사 재정립에 나설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진실위는 10일(현지시간) ‘세계인권의 날’에 맞춰 2년 6개월간의 활동을 마감하며 2000쪽 분량의 진상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영국 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사망·실종자 등 피해자와 인권 범죄 가해자의 명단이 고스란히 실린 보고서는 군사정권 종식 후 정부 차원에서 만든 첫 공식 문건이다. 보고서는 군사정권 시절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을 총 434명(191명 사망·243명 실종)으로 집계했다. 실종자 가운데 신원이 밝혀진 사람은 33명에 불과하다. 또 당시 인권 범죄 행위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군인과 경찰관, 정보기관원 377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이 중 139명은 사망했으며 생존자는 196명으로 파악됐다. 나머지 42명은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진실위는 “군사정권 시절에 심각한 인권유린 행위가 자행된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 같은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군부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군사 쿠데타 기념행사 금지, 국가보안법 폐지, 중무장 경찰조직 해산 등 29개 항을 건의했다. 군사정권으로부터 고문을 당했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며 “브라질과 젊은 세대들은 마땅히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해외여행 | 아프리카의 꽃 에티오피아①Addis Ababa 아디스 아바바

    해외여행 | 아프리카의 꽃 에티오피아①Addis Ababa 아디스 아바바

    ETHIOPIA 아프리카의 동쪽 끝, 검은 땅 에티오피아를 다녀왔다. 기아와 분쟁으로 기억되는 그곳은 장엄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위대하고도 성스러운 땅이었다. 낮은 자리에서도 강인한 걸음을 이어 온 그들의 삶에 고개가 숙여졌다. ●Addis Ababa 아디스 아바바 고원 위에 선 아프리카의 심장 해발 2,300m. 우기의 끝을 알리는 비가 간간이 적실 뿐 10월의 아디스 아바바는 쾌청했다. 이곳 사람들은 아디스 아바바를 아디스라고 부른다. 아디스의 시내 중심가는 중국이 투자했다는 경전철 공사가 한창이다. 아프리카의 정치·외교 수도답게 시내 북쪽에는 세계 각국 대사관과 유엔 아프리카경제총회본부 그리고 호텔 등이 밀집해 있지만 주변은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 에티오피아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아디스 아바바대학을 스치듯 지나쳐 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국립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의 규모. 그러나 이곳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인류 시조의 화석 ‘루시Lucy’ 때문이다. 3,000년의 역사를 가졌다는 에티오피아인들의 자부심은 이 인류의 기원까지 닿아 있다. 학자들은 에티오피아가 속한 동아프리카 지역에서부터 아시아와 유럽으로 인류가 퍼져 나갔다고 주장한다. 루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화석 중에서 가장 오래된 약 320만년 전의 것이다. 1m 정도의 키에 20세 전후의 여성으로 알려진 ‘루시’는 비틀즈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화석이 발견될 당시 발굴단의 캠프에서 이 음악이 흘러나왔단다. 박물관 정원에는 메넬리크 2세MenelikⅡ, 1844~1913가 1896년 아두와 전투에서 이탈리아에 맞서 승리하는 데 사용했다는 대포도 전시되어 있다. 그는 에티오피아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다. 부족간의 대립으로 분열된 에티오피아를 통일하고 근대국가로서의 에티오피아의 기초를 다진 한편, 1887년에 수도를 엔토토로부터 아디스 아바바로 천도했다. 해발 3,000m의 엔토토산Mt. Entoto까지는 찻길이 잘 나 있어 어렵지 않게 올랐다. 길목마다 유칼립투스 나무가 빽빽했다. 메넬리크 2세가 고산지대에 잘 적응하는 유칼립투스 나무를 호주로부터 가져와 심었다는데, 바람을 타고 그 향기가 무척이나 싱그러웠다. 자동차 매연으로 답답했던 시내 중심과는 사뭇 공기가 달랐다. 예라루산, 즈콸라산, 사파타산이 도시를 두르고 호위무사처럼 솟아있는 아디스 아바바. 높은 탁상지인 엔토토는 군사적인 요지로는 이상적이었지만 기온이 낮고 땔감용 나무가 부족해 수도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귀족들에게 엔토토산 기슭의 땅을 나눠 주고 그들이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꽃’이라는 뜻의 아디스 아바바가 새로운 수도로 탄생된 것이다. 메넬리크 2세의 개혁을 이어 간 것은 1930년부터 40여 년간 재위에 오른 하일레 셀라시에 1세Haile SelassieⅠ, 1892~1975다. 쿠데타로 즉위한 그는 1974년, 또 다른 쿠데타로 실권하기까지 아프리카통일기구(AU)를 세우고 에티오피아를 국제연맹과 UN에 가입시키는 등 에티오피아의 근대화를 다졌다. 1960년대까지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까지 끌어 올렸는데,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되지 않던 시절이다. 셀라시에 국왕은 한국전쟁 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왕실 근위대였던 강뉴 부대Kangnew Battalions 6,037명을 우리나라에 파병한 장본인이다. 당시 철원, 춘천, 화천, 양구에서 전사하고 부상당한 에티오피아 용사들이 657명에 달한다. 셀라시에 국왕이 1931년에 세운 트리니티 대성당Holy Trinity Cathedral에는 한국전에 참전했던 121명 용사들의 유해와 함께 그 자신도 묻혀 있다. 하일레 셀라이시에라는 이름은 암하라어로 ‘삼위일체의 힘’이라는 뜻이다. ‘성삼위일체 성당’으로도 불리는 트리니티 대성당은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총본산이다. 총대주교의 즉위식과 그가 집전하는 미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의 조각상이 배치된 유럽 스타일의 외관은 무척 아름답다. 내부에는 성서의 주인공들이 스테인드글라스로 빛나고, 셀라시아 황제와 왕비가 미사를 드릴 때 앉았던 화려한 왕좌도 그대로다. 에티오피아 정교회Ethiopian Orthodox Tewahedo Church는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의 기도시간에만 개방하지만 트리니티 대성당은 하루 종일 열려 있다. 트리니티 대성당 P.O.Box 3137, Addis Ababa 251-11-1233518 www.trinity.eotc.org.et 입장료 100비르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취재협조 에티오피아항공 02-733-0325 www.ethiopianairlines.co.kr
  • 링지화, 트럭 6대분량 뇌물 …구쥔산은 5조원 재산 은닉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반부패 캠페인에 스러진 ‘부패 호랑이’(지도자급 부패 인사)들이 축적한 부의 규모가 대부분 조(兆) 단위로 나타나고 있다. 뇌물 규모가 천문학적이어서 진짜라고 믿기 어렵지만 중국에서는 이를 사실로 보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9일 홍콩 봉황주간(鳳凰周刊) 최신호에 따르면 연초 정식 기소된 ‘군 호랑이’ 구쥔산(谷俊山) 전 인민해방군 총후근부 부부장이 부정부패로 축적한 재산이 300억 위안(약 5조 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6억 위안(1082억원)의 뇌물을 수수하고 60여 채의 부동산을 소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 언론들은 올해 1월 당국이 연초 허난성 푸양에 있는 구쥔산의 고향 집을 수색해 트럭 4대분의 재물을 압수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순금으로 만든 마오쩌둥(毛澤東) 조각상 등 각종 금 조각상, 중국 최고급 술인 마오타이 1만여병 등도 발견됐다고 전해져 중국 사회에 충격을 줬다. 앞서 봉황주간은 지난 11월 ‘군 호랑이’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의 베이징 자택에서도 당국이 1t 이상의 현금과 금은보화를 대거 발견해 이를 옮기는 데 트럭 10대가 동원됐다고 보도했다. 이날 반체제 매체 보쉰(博訊)은 현직인 링지화(令計劃) 통일전선부장(장관)이 고향 산시에 숨겨둔 트럭 6대 분량의 뇌물을 당국이 적발했다고 전했다. 링지화는 최근 사법처리된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과 함께 반(反)시진핑 쿠데타를 모의한 신(新) 4인방 중 한 명으로 조만간 정식 조사를 받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쉬차이허우와 링지화의 축재 액수가 정확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들 모두 구쥔산보다 계급이 높은 데다 압수에 사용된 트럭 수량으로 볼 때 구쥔산의 축재 규모를 능가할 것이란 분석이다. 앞서 로이터 통신은 당국이 최근 검찰에 송치된 저우융캉 일가로부터 압수한 자산이 최소 900억 위안(약 16조원)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인민(人民)대 정치학과 장밍(張鳴) 교수는 서울신문에 “권력 감시 시스템이 있는 한국의 경우 이처럼 천문학적인 액수의 뇌물을 받기 어렵겠지만 중국에서는 가능한 일이어서 중국인들은 관련 보도를 사실로 믿는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기사를 쓴 봉황주간은 친중국 매체로 기사를 당국이 제공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당적 박탈·檢송치… ‘단두대’ 앞 저우융캉

    당적 박탈·檢송치… ‘단두대’ 앞 저우융캉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반부패 정책 핵심 타깃으로 지목돼 온 최고 지도부 출신 ‘부패 호랑이’(지도급 부패 인사)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에 대한 사법처리가 수사 1년 만에 마침내 본격화됐다. 시 주석이 권력투쟁에서 거둔 또 하나의 정치적 승리로 평가받는 가운데 1인 지배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한 그의 칼날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5일 시 주석이 주재한 당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저우융캉에 대한 당적박탈 및 검찰 송치 조치가 결정됐다. 당국은 처음으로 저우융캉의 혐의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조사 결과 저우융캉은 엄중한 기율 위반, 직권 남용, 뇌물 수수, 부정 축재, 당과 국가의 기밀 누설, 간통·성매매, 기타(전처 살해) 등 7대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당국은 저우융캉이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주변 사람들이 불법 이익을 얻도록 하는 식으로 친·인척을 동원해 거액의 뇌물을 챙겼을 뿐 아니라 친·인척, 정부, 친구들이 사업상 거대한 이익을 얻도록 하고 국가 자산에 손해를 초래했다고 적시했다. 중국에서는 부패 혐의만으로도 사형이 선고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우융캉은 최고 사형도 가능하다. 앞서 지난해 10월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는 뇌물 수수, 공금 횡령, 직권 남용 등 부패 혐의만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명보는 권력 집중을 완성한 시 주석이 저우융캉 구명에 나섰던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체면을 고려해 저우융캉 사형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밀 누설 혐의는 저우융캉이 보시라이와 손잡고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해 시 주석 취임 전 시 주석 일가 등 지도부의 축재 내역을 해외 언론에 건넨 것을 가리킨다는 분석이다. 2012년 6월 블룸버그는 지난 10여년간 시진핑의 누나 등 일가가 약 4000억원의 재산을 형성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명경은 관련 보도 모두 저우융캉이 정법 계열을 장악하던 시절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저우융캉 재판에서 이를 공개할 경우 보도를 확인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만큼 이 부분은 비공개 처리될 것이란 관측이다. 중국의 검찰 수사는 최장 14개월까지 가능해 내년 말이나 내후년 초까지 저우융캉에 대한 부분 공개재판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앙기율검사위가 ‘기타 범죄 혐의 단서를 포착했다’고 지목한 부분은 저우융캉의 전처 살해 혐의를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저우융캉 사법처리가 본격화된 만큼 시 주석 낙마 쿠데타를 계획한 신(新)4인방 중 유열하게 사법처리가 안 된 현직 인사인 링지화(令計劃) 통일전선부장에 대한 수사도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 결정이 고강도 반부패 정책의 계속적인 추진을 예고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장 전 주석과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 자칭린(賈慶林) 전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 등도 표적이 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아랍의 봄’ 투사, IS 전사로 죽다

    ‘아랍의 봄’ 투사, IS 전사로 죽다

    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랍의 봄’ 당시 이집트 민주투사에서 이슬람국가(IS) 전사로 ‘180도’ 변신한 아흐메드 알다라위(38)의 인생을 조명하면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조금 더 다차원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FT는 “아랍의 봄이 무색해진 뒤 IS는 알다라위 같은 이들을 자신의 궤도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유한 집에서 자란 알다라위는 경찰대 졸업 뒤 경찰간부가 됐다. 무바라크 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이 지겨워져 휴대전화회사 마케팅 매니저로 변신했다. 활달하고 솔직한 어법으로 평균 월급이 500달러인 곳에서 7000달러의 수입을 올리던 능력자였다. 그러나 2011년 말 아랍의 봄이 불붙으며 모든 것이 변했다. 세 아이와 괜찮은 직장을 걱정한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그는 “역사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신념으로 온몸을 던졌다. 경찰에서 일한 경험으로 그는 곧 두각을 나타냈다. 동료 시민운동가 무함마드 카사스는 “행정 경험이 있었기에 혁명이 모든 것을 바꾸리라는 환상 없이 아주 현실적이고 세부적인 개혁안을 내놨다”면서 “그럼에도 개혁안이 모두 거부당하자 극심한 절망에 빠졌다”고 말했다. 2012년 총선에서도 떨어졌다. 한술 더 떠 2013년 7월 군부 쿠데타까지 벌어지자 절망감은 극에 달했다. 동생 헤이담은 “그 이후 형은 늘 ‘혁명은 이제 끝났다. 이제 반혁명이 들이닥칠 시간’이란 말을 되뇌었다”고 전했다. 조금 뒤 알다라위는 사라졌다. 지난 5월 29일 다시 전해진 알다라위의 마지막 소식은 놀라웠다. IS 전사로 싸우다 이라크 티크리트에서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민주화운동 동지인 야세르 알하와리는 “그가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IS 전사로 변신했다는 소식은 예전 동료들에게 큰 충격”이라고 말했다. 파라즈 게르게스 런던정치경제대학 중동정치학 교수는 “이슬람 극단주의 문제를 단순하게 봐서는 안 된다”라면서 “뚜렷한 정치적 변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독재자’ 무바라크 끝내 무죄… 짓밟힌 ‘이집트의 봄’

    ‘독재자’ 무바라크 끝내 무죄… 짓밟힌 ‘이집트의 봄’

    “학살자가 무죄라면 내 아들이 자살했다는 말입니까?” 이집트 카이로에 사는 무스타파 무르시는 지난 29일(현지시간) 아들이 총알을 맞고 쓰러졌던 ‘민주화의 성지’ 타흐리르광장에 나왔다. 무르시처럼 2011년 초 ‘아랍의 봄’ 당시 군경의 살인 진압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시위대의 맨 앞에 섰다. 시위대 규모는 순식간에 2000여명으로 불어났으나 군경이 쏜 최루탄과 물대포에 곧바로 진압됐다. 이 과정에서 시위 참가자 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했다고 알자지라 등이 보도했다. 시위대는 2011년 봄날처럼 ‘정권 퇴진’을 외쳤지만 재집권한 군부는 이미 철옹성으로 변해 있었다. 카이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은 이날 오전에 있었던 법원의 판결 때문이다. 카이로 형사법원은 ‘아랍의 봄’ 당시 권좌에서 축출된 호스니 무바라크(86) 전 대통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시위대 85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유혈 진압의 책임을 물어 1심에서 종신형이 선고됐던 독재자를 2심 법원이 사면한 것이다. 담당 판사는 “무바라크가 시위대 사망과 연관이 있다는 혐의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무바라크는 이날 두 아들과 함께 기소된 부정부패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치안 최고 책임자 5명도 무죄가 됐다. 무죄는 예고된 것이었다. 민주항쟁의 산물로 탄생했던 무슬림형제단 중심의 민선정부가 지난해 7월 군부 쿠데타로 전복되면서 이집트는 ‘아랍의 봄’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에는 쿠데타에 항거한 시위대 529명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지기도 했다. 반면 시민혁명 도중 시위대 살해 혐의로 기소됐던 경찰관 170여명은 대부분 풀려났다. 쿠데타를 주도한 압둘팟타흐 시시 전 국방장관이 군복을 벗고 대통령에 당선된 지난 6월부터는 옛 군사정권 인사들의 복권이 노골화됐다. 시시 정권에 우호적인 판사들로 물갈이된 법원은 이번에 무바라크에게 면죄부를 줌으로써 옛 군부 세력과 손을 잡으려는 ‘신군부’의 정치적 계획을 완성해 줬다. 무바라크는 재판 직후 이집트 엘발라드TV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나는 전혀 잘못한 게 없다. 2012년 1심 선고를 들었을 때 ‘하’ 하고 웃어 버렸다”면서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고 말했다. 무바라크는 이번 판결과는 별개의 소송인 공금횡령 사건으로 3년형을 받았지만 교도소 대신 현재 카이로 시내의 한 군 병원에 연금 상태로 있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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